차    례 (1971년 2월호)

설  교  편

1. 인생의 복된 생활 (창1:26~31, 2:18~19)

2.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될까 조심하자 (사1:2~20) 

3. 종교 지도자의 탈선은 무엇인가 (미3:1~12) 

4. 신앙노선의 차이점 (마2:1~23)  

5. 알곡으로 이루어지는 다윗왕국 (암9:8~15) 

6. 강국을 이루는 비결 (미4:1~8)

7. 에서의 발전과 야곱의 승리 (옵1:1~21) 

8. 성산축복을 목적하고 나갈 신앙노선 (사65:1~25) 

9. 선한 목자의 죽음 (요10:7~18) 

10. 낙망중에서 오히려 찬송하는 자가 되자 (시42:1~8)  

11. 기도 응답과 영광 (요14:10~14)

12. 증인된 자격과 사명 (행1:21~23, 계10:7~11)

13. 주 재림시까지 머물게 한 사명 (요21:21~23) 

14. 사도적인 신앙의 계통 (요1:39~51) 

 

장년 공과편 - 예수님에 대한 천사의 증거

제1과 수태시의 증거 (눅1:26~38)

제2과 탄생시의 천사의 증거 (눅2:1~14) 

제3과 환란을 피하도록 천사가 증거함 (마1:20~25, 2:13~23) 

제4과 부활 승천에 대한 천사의 증거 (눅24:1~7, 행1:6~11)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1과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1:1~14) 

제2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 (요1:29~42) 

제3과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 (요2:1~11)  

제4과 성전에 있는 자들을 책망하신 예수님 (요2:13~22)  

 

논 설 편

1. 급한 일 많은 세상  

2. 인생의 근본과 종말   

 

신앙문답

1. 세계 교회가 모이는 일이 식어지는데 대하여 어떻게 하면 열심히 모일 수 있게 되겠습니까? 만일 이대로 나간다면 큰 문제가 될 일이라고 봅니다 

2. 천국 복음과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사명자가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4.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믿음으로 찬송할 일  

2. 새해에 새로운 출발을 하는 종의 기도  

3. 어린이 공과를 이 달부터 보내드리면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4. 새해 새 출발에 네 가지 엄수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설 교 편

 

인생의 복된 생활

- 창 1:26~31, 2:18~19 -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요 빛의 자체이시니 인생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복된 생활이 인생에게 있게하여 복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자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는 것이다.

  이제 조물주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복된 생활을 주신 일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복된 인격 (26~27)

  가장 복된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인격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지 못한다면 모든 일이 다 헛된 것뿐이로되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인격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도 허사가 없고 다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인생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활동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한 짐승에 불과하다고 계시록 13장에 가르쳤다. 이것은 붉은 용의 도구가 되고 보니 심판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짐승의 사상에 표를 받지 않고 이긴 자들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복된 인격을 준 것인데 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으므로 복된 인격을 상실한 것을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종말의 진리를 믿으므로 간교한 뱀의 미혹을 이긴 자는 복된 인격을 다시 찾게되므로써 이루어지는 시대를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2. 복된 사명 (28~31)

  인생이라는 것은 복된 사명을 바로하므로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한 목적이 인생의 복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복된 사명을 하므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요, 그 목적을 달성할 때 인생은 그 사명을 다했다는 값으로 세세 왕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자녀를 이 땅에 충만케 하라는 것이니 복된 인격이 복된 사명을 다 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인격을 지면에 충만케 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미라는 것은 충만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명을 가진 자들은 우리의 받은 인격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요, 자기와 같은 사람을 많이 번창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는데는 모든 만물은 사람이 복된 사명을 바로 하므로 말미암아 바로 사용되는 만물이 될 때에 그 만물은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물은 복된 사명을 위하여 있고 천국의 만물은 사명을 다한 종들의 영광을 위하여 있다(계21:5~7).

 

  3. 복된 교제 (2:18~19)

  복된 교제라는 것은 돕는 배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너는 내 아내요 나는 네 남편이라고 하시었고 예수님도 당신은 신랑이요 우리를 신부라고 한 것은 복된 교제를 뜻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런 교제없이 홀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여자를 낼 때에 남자와 복된 교제를 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어서 남자를 돕게 했던 것이다. 언제나 남자라는 것은 여자의 돕는 일이 없이는 복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이 남자와 여자가 성결한 생활에서 복된 교제가 있으므로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남자에게 큰 사명을 맡기고 여자가 그 사명을 도와 주므로써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을 하게되고 열매있는 생활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그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미라는 것은 돕는 자가 있게 되므로 친밀한 교제를 하게되고 친밀한 교제가 있으므로 아름다운 가정과 아름다운 사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 가장 복된 인격을 이룰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고 복된 사명을 맡길 때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충만해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살라는 것이며 복된 교제를 하게 할 때에 영, 육간 일체 된 관계를 맺으면서 아름다운 만물을 아름답게 사용하고 아름답게 생활하면서 아름답게 길이길이 영광을 누리라는 것이 사람에게 축복한 것이니 이 축복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그 축복을 다시 받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될까 조심하자

- 사 1:2~20 -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도덕적으로는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요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사랑을 받고도 짐짓 거역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해코자 하는 마귀를 거역하는 것은 의가 되는 것이요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멸망 받을 죄라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마음이 태만해지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한다하여도 중심보는 하나님은 더 가증히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되 가까이 하기를 기뻐하시고 고쳐주기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멀어질 적에 슬퍼하는 것은 주고싶은 마음이 불타오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가슴에 빚어진 젖이 있는데 이것을 주고픈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잃고 슬퍼하듯이 하나님은 충만한 은혜를 가지시고 주고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마음이 멀어진 자녀를 향하여 슬퍼하는 경고를 하신 것이 이사야서이다.

 

  2. 불탈 것을 슬퍼하신다 (7)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가 불탈 때도 친히 롯의 가정을 찾아 구원하고자 했지만 순종치 않는 롯의 처를 버린 것같이 지금 온 세상이 불탈 수밖에 없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건지고자하여 아무리 기다리고 참고 있어도 짐짓 순종치 않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집에 불이 붙게 되었는데 그 집에 있는 자녀가 도저히 모르고 잠이 들어 있다면 슬피 울면서 그 자녀를 그 불에서 건지고자하는 심정을 가질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는 일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심령상태가 병들어 피곤해졌고 상처를 받았고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것을 볼 때 그대로 있다면 불타는 재앙이 올 때 자기의 자녀도 같이 죽을 것을 슬퍼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는 병든 심령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3. 헛된 예배를 드리는 자 (11~14)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 예배가 신령한 일이요 제일 슬퍼하는 것이 예배가 속화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은혜를 내리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니 예배가 상달될 때에 얼마든지 하나님은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이다.

  예배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요, 자기 부족을 깨닫는 예배라면 얼마든지 받으시고 은혜를 내리시므로 예배하는 자들로 만족함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예배하는 시간에 죄를 짓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 (15)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그 기도를 오히려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은 오히려 요청하는 것이 더 수치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횡설수설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가증한 일이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사랑이 식어진 마음으로 기도를 오래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바리새교인들을 책망할 때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제일로 슬퍼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이 식어지는 일, 피곤해지는 일, 예배할 때 범죄 하는 일, 죄를 숨기고 기도하는 일, 이러한 무리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지만 진노의 날에 하나도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흰눈같이 희게 하여 새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기 위하여 심판의 변론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순종치 않을 때는 원수의 칼에 삼킴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8~20).

 

 

종교 지도자의 탈선은 무엇인가

- 미 3:1~12 -

 

  종교라는 것은 아무리 시작이 바로 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도자가 탈선할 때에 그 종교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가끔 변동할 수 있으나 종교라는 것은 도저히 변동할 수 없는 정확무오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육적을 위해서 있으니 만큼 육적 생활에 대한 일을 잘 발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잘 지도하는 것으로 목적을 두지만 종교는 신령한 반면에 큰 변화를 주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종교 지도자의 탈선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랑이 없는 기도 (1~4)

  종교 지도자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선한 일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우지 않고 오히려 선한 일을 미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선하신 신이시니 지도자로서 그 뜻에 순종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을 목적한 것 외에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다 쓸데없는 우상적인 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금일에 어떤 종이 기도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종이라면 반성하여야 할 일이다. 공연히 이유 없이 다른 종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니 도저히 그 기도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은 두 사람의 기도를 받을 수 없는 조건이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기도하는 종의 기도가 상달이 되었다면 그 종을 누명을 씌우는 종의 기도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교인의 기도라는 것은 아무런 응답이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지만 사도들의 기도에는 응답의 역사가 있을 때 응답을 받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사도들의 역사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2. 자기를 중심하여 싸우는 일이다 (5~7)

  우리가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종교 지도자로서 마땅히 싸워야 할 의무라고 보지만 자기에게 이익이 없다고 싸운다는 것은 자기를 위한 거짓 선지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에게는 흑암에 빠지는 일이 있으므로 아무 것도 분별할 수 없는 자리에 있으므로 자기도 미혹을 받은 자로서 따라가는 자도 같이 미혹을 받게 된다.

  지도자라는 것은 대중을 살린다는 공적 사랑에서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제일 큰 죄는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죄요, 지도자의 큰 의는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3.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일이다 (11~12)

  교훈이라는 것은 사회에는 직업적 교훈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가 삯을 따라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행자이니 아무리 원수의 피해가 있다 하여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증거하는 자 외에는 자동적으로 삯군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말씀을 전할 때에 하나님은 그 종에게 모든 것을 만족히 주는 것이니 삯을 위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이 되려면 삯을 위하여 움직이지 말고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모든 전부를 바치고 싸울 때에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요, 진노의 날에 큰 축복은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에게 올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을 들어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는 기도가 상달된 자, 친히 갚아줄 것이 있도록 일한 자, 진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는 자를 들어쓰되 수풀 속에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쓰므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진노라는 것은 참된 종을 강하게 들어서 대적을 치는 날을 가르친 것이다(미5:7~9).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어느 때나 처음에는 망할 자를 들어서 복 받을 자를 괴롭게 하고 다음에는 복 있는 자에게 강한 권세를 주어서 원수를 갚게 한다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것이 선지서란 것이다.

 

 

신앙 노선의 차이점

- 마 2:1~23 -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 탄생할 때 되어진 일의 신앙의 차이점은 재림의 주가 올 때에도 반드시 이와 같은 신앙의 차이점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완전한 왕국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그 노선이 하나가 못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리스도의 탄생시에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우리의 신앙 노선의 정로가 무엇인 것을 알 수 있다.

 

  1. 징조를 보고 움직이는 믿음 (1~3, 9~12)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별 징조를 보고 큰 격동을 받고 밤낮으로 수고를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성경은 모르며 또는 어떤 뚜렷한 종교의 획선을 가진 일도 없이 이상한 징조를 보고 움직였다는 것은 맑은 양심의 작용이라고 본다. 아무리 이방 사람이지만 양심으로 옳은 사상과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왕권의 징조를 볼 때 그 왕권을 양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박사이지만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지금도 이러한 자들이 있다고 본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양심적인 사상이 그 위인을 숭배하고 또는 자기네 사상과 양심과 정신에 의하여 국경을 초월한 활동을 목적 두는 사람도 있으니 이러한 자들은 반드시 옳은 신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상 양심이 구비된 자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동방 사람 중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날 것을 믿는다.

 

  2. 성경 교리화 된 인격 (4~6)

  소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난다는 것을 교리로 배운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지 체험적인 신앙도 없고 확실한 메시야의 소망관에 불타는 마음도 없고 한 교리를 자기의 교제로 이용하여 자기의 직업화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기의 인격과 위신과 권리를 세우기 위한 데 불과한 종교인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이 움직이는 일에 대하여 하등에 충격이 없고 한 교리를 듣고서 말한 것뿐이고 마음에 어떤 적극성을 띠는 것이 없이 두고보자는 태만에 불과한 신앙이었던 것이다.

  금일에도 이러한 인물들이 많다고 본다. 종교를 믿되 한 이지적인 신앙에서 생명 없는 마른나무같이 아무런 발전 없는 의식적, 교리적인 신앙 체계에서 초인간적인 신비의 활동을 하등에 관심조차 두지를 않고 마음이 굳어진 마른 흙덩이같이 되어있는 자들이다. 이런 무리들이 진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한 직장화 되는 생활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3. 정치적인 야욕에서 움직이는 인격 (7~8, 16)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정치적인 야욕이 있는 자는 언제나 인간의 방법으로써 자기의 권리를 보장해 보려는 자들이다. 헤롯은 이방적인 로마의 정권을 배경 삼고 자기의 세력을 내세워 보려는 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징조가 있고 성서에 있는 말씀이 응한다 하여도 거기에는 아무런 감화를 받을 수 없는 인격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말씀과 같이 이러한 정치야욕이 있는 자라면 아무리 보배로운 말씀이 있고 놀랄 만한 징조가 있다하여도 오히려 그 마음은 더 강퍅해지는 것이다.

 

  4. 말씀에 순종하는 인격 (13~15, 19~23)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잉태할 때도 무조건 순종한다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요셉도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것으로 된 인격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와 그 마리아를 절대 의심하지 않고 도와주는 요셉과 한 가정이 되어 순종의 걸음을 걸어간 것이 이상적인 신앙 부부의 생활이었다.

  천사는 날마다 그 부부와 같이해서 모든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아무리 인위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헤롯이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왕으로 나신 예수를 죽이려 하였지만 철저히 순종하는 신앙을 가진 요셉의 가정은 대 승리를 보게 되었다.

  오늘도 여러 가지의 난제가 닥쳐오지만 요셉과 마리아 같이 합심하여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가정이 되면 천사가 같이하므로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초림의 주를 영접한 신앙의 가정이나 재림의 주를 영접할 신앙의 가정이 한 계통적인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앞으로 오는 난국을 돌파할 가정은 합심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신앙은 어떤 흥분이나 교리나 주권을 떠나서 자기의 위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의 비밀의 말씀을 깊이 믿고 순종해 나가는 길밖에는 승리의 길이 없는 것이다.

 

 

알곡으로 이루어지는 다윗 왕국

- 암 9:8~15 -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이루어 놓으시고 그 왕국에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인간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실 적에 다윗 왕국의 부패를 책망하는 동시에 그 경고가 심판의 다림줄이 되었고 부패한 다윗 왕국을 없이하고 다시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역사를 들어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를 들어서 부패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할 때에 오늘 본문에는 천하만국을 벌하는 날에 알곡을 모아서 다윗의 왕국이 다시 이루어질 것을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이제 알곡을 모아서 다윗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데는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1. 범죄한 나라를 지면에서 멸함 (8)

  하나님께서 천하에 복음을 전한 것은 목적이 죄를 없이 하자는 것인데 첫째는 사람의 몸에서 죄를 없이하고 다음에는 교회 안에서 죄를 없이하고 다음에는 지면에서 죄를 없이하는 것을 심판이라는 것이다.

  아모스가 받은 묵시는 용서없는 심판의 경고가 된다. 아무리 야곱이요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알곡이 못되고 부패한 자는 범죄한 나라를 없이 할 때에 함께 망한다는 것이 심판의 다림줄이란 것이다(암7:7~9).

  이제 심판기에 범죄한 나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범죄라는 것은 개인적인 범죄도 있고 정치적인 범죄도 있으니 심판기에 범죄한 나라라는 것은 정치적인 범죄를 말한 것이다. 과거에 이방적인 정치가 범죄한 일이 많이 있지만 지금 공산 정치 같은 범죄는 인류 역사상 없던 일이다.

  하나님 말씀에 의하여 볼 때 소위 민주국가라는 정치 하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배도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있던 교회를 없애는 정치는 적 그리스도의 정치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 사람이 어떤 이방 종교를 숭배했다는 것보다도 더 큰 범죄가 되며 또는 이러한 사상을 가진 정치를 용납한다는 것은 음녀적인 범죄가 되므로 심판의 대상자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붉은 짐승과 그 앞에 절하는 음녀적인 바벨론이라는 것을 계시록 14장 이하에 분명히 가르쳤다.

  이날까지는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깨닫도록 하는 역사를 해온 것이다(행17:30~31). 과거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 행한 일은 용서가 있어도 알고도 짐짓 진리를 대적한 범죄는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할 수 없는 정책 앞에 머리를 숙이는 자는 아무리 야곱이라도 다같이 망한다는 것이다.

 

  2.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함 (9)

  지금은 심판기가 아니므로 알곡되는 성도들이 다 숨어있지만 심판기에는 알곡은 알곡끼리 모이도록 곡식을 체질함같이 까불어서 알곡 되는 자들이 누구인지 다 드러나게 하여 그들을 통하여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이룬다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마음에 진리가 충만하여 남은 자라고 보게 된다.

  이제 알갱이가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한 자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이다.

  셋째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는 자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조금도 형식이 있을 수 없다. 신앙은 도덕과 의식을 초월한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고 그 말씀을 떠는 마음으로 존중히 알고 자기의 맡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자 외에는 환란에 남은 자가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충성을 다하려고 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책임을 지고 하나도 잃지 않도록 역사해서 남은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3. 남은 자로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함 (11~12)

  하나님께서 다윗왕국을 세울 적에 목적이 세계 통일의 승리를 이루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윗 왕에게 하나님은 역사할 때에 아무리 이방이 강하지만 다윗 왕으로 승리케 하시면서 세상 끝에도 네 왕국이 승리한다고 한 것은 성도의 나라를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니 구약 시대에 성도가 되는 선지들에게 묵시가 나타날 적에 필연코 승리는 다윗 왕국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니 어느 나라든지 남은 자는 다 세계 통일의 다윗왕국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을 새시대라 하는 것이다.

 

  4. 사시 장춘의 나라이다 (13~15)

  지금은 기후 변천이 많으므로 극히 한서가 심하여 사람이 괴로움을 느끼지만 성도의 나라가 되는 다윗 왕국은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리라고 한 것은 극도로 기후가 변천되어 자유로운 수확이 있을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극도로 평화롭게 사는 나라를 이루어 주실 것을 다윗 왕국이라고 한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되고도 평화로운 나라는 성도가 통치하는 나라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충만해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뜻이다. 아무리 죄의 세력이 강하지만 죄를 진 나라는 전멸시키고 알곡이 되는 성도로 말미암아 다윗왕국이 이루게 될 것을 목적하고 묵시를 보인 것이 아모스서라는 것이다.

 

 

강국을 이루는 비결

- 미 4:1~8 -

 

  인류 역사의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는 다 자기의 세력을 믿고 남의 국토를 침략하다가 결국은 망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제 영원히 망하지 않는 강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인간들은 남을 압박하고 쫓아내는 세력이 강하다고 인정하지만 영원한 강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쫓겨난 자로 이루어진다고 7절에 말했다.

  이렇게 되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 교회 확장 (1)

  세계 인류 역사상 남의 나라에게 압박을 제일 많이 받은 나라는 예루살렘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침략하던 강대국들은 다 망하였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복음 운동은 대 승리를 보아 금일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계 열방에 작은 산에 굳게 선 것을 보면 인간의 권력이라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만경 창파에 웅장한 기선은 물에 침몰 당할 수 있어도 그 밑의 작은 고기 한 마리는 그 굳센 물결을 이용하여 자기의 활동 무대를 삼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강국은 파도같이 일어나는 환란을 이기지 못하고 그 나라에 모형조차 찾아볼 수 없는 존재를 이루고 말았지만 생명이 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는 그 환란을 무대로 삼고 역사하므로 결국은 기독교를 반대하던 나라까지도 그 신앙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죽어 천당을 목적한 신앙도 지상에서 승리하였거든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진리를 믿는 신앙 운동이 필연코 승리하고 새 시대를 이룰 것은 확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일 (2)

  세상에 많은 교육이 있지만 그 교육이 세계 통일의 강한 나라를 이룬 교육은 없었던 것이다. 한 때는 그 교육이 그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일도 있었지만 이것은 완전한 교육이 아니므로 부분적인 지식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움직여온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일은 완전히 세계 통일의 강국을 이루는 교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약속을 세운 그 말씀을 믿는 자에게만 복을 주고 역사하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야곱의 도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교훈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하나님 말씀은 율법과 선지서인데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동시에 그 죄를 범하면 용서없이 죽이라는 교훈이요, 선지서는 택한 백성을 새시대로 인도하되 누구든지 그들에게 피해를 못 주도록 한다는 것과, 또는 억울하게 압박을 받고 쫓겨나면서도 말씀을 믿는 자는 필연코 승리하도록 해주시겠다는 말씀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하여 괴로움을 극복하고 나가는 자는 초인간적인 강한 역사가 일어나되 필연코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 교훈은 하나님의 완전 승리의 역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이며 새 땅 축복을 야곱에게 주겠다는 교훈이 야곱의 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야곱이라는 것은 말세의 성도를 뜻한 것이니 성도가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것과 하나님은 성도에 대하여 어떻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 야곱의 도가 되는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날까지 십자가의 도는 누구든지 그 보혈을 믿으므로 성도의 자격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는 성도가 된 야곱이 지상에 축복을 받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니 이 복음이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3. 강한 이방을 판결하고 평화의 나라가 옴 (3)

  아무리 강대국의 세력이 북방으로부터 온다하여도 하나님께서 강한 이방인 북방 세력을 없이하고 평화로운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을 본 이때에 북방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필연코 승리는 미약한 야곱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므로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데는 이방의 강한 세력은 그 앞에 굴복을 당하고 영원한 시온산 통치의 강한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4. 미약한 야곱을 두렵게 할 자가 없음 (4~5)

  아무리 인간이 볼 때는 저는 자 같고 환란을 받고 쫓겨나는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백성이므로 누구든지 그들을 해칠 자는 전혀 없다.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한 자 같으나 반드시 두렵게 할 자가 있지만 하나님이 같이하는 백성은 두렵게 할 자가 전혀 없으므로 약한 것 같으나 실지는 강한 자요, 환란을 당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평강의 나라를 얻게되는 한 과정에 하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는 환란이 아니고 악자를 들어서 악한 세상을 망하게 하는 환란이요, 강한 세력을 심판하여 없이하는 것을 인간 종말에 환란과 재앙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하여 교회를 세웠지만 앞으로는 찾은 백성을 한번 시험을 통과시켜 남은 자로 강국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모략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하여 학과를 가르치고 한번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서 끝을 맺는 것과 같이 천하에 교회를 세운 것은 야곱의 도를 가르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시험을 통과시킨 후에 완전히 끝을 맺는 평화 왕국이 온다는 것이 강국을 이루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에서의 발전과 야곱의 승리

- 옵 1:1~21 -

 

  하나님께서 오바댜에게 묵시를 보여줄 적에 에서와 야곱을 두고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보여준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사상적인 투쟁은 심판기에 가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으로 보여진 묵시가 오바댜의 묵시다.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한 복중에서 한 씨를 받아 났다 하여도 사상은 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삭의 씨를 받은 에서와 야곱은 전체가 달랐던 것이다.

  에서는 붉은 사람이요 야곱은 흰 사람이며,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며 야곱은 털이 없이 매끈한 사람이요, 에서는 용사적이요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요,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등한히 아는 사람이요 야곱은 그 축복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도저히 합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심판기에 에서적인 사상은 극도로 발달하여 강하게 될 것을 가르쳤고 야곱적인 신앙사상을 가진 자는 극도로 미약할 것을 가르쳤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에서의 발전 (3~4)

  에서적인 사상은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심판기에 극도로 물질 향락을 일삼고 튼튼한 기반을 세우고 높이 집을 짓고 영구히 세상 향락을 누려보자는 것인데 하나님 말씀을 중심하지 않고 세상 향락을 중심하여 거기에 전심 전력을 쓰므로 극도로 발전을 보아 별세계까지 올라가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과학문명을 성경보다도 더 존중히 아는 세력이 우주 세계를 침범하는 것은 심판 받을 에서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이때는 심판기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세력을 극도로 강하게 하는 것은 심판기라고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기 위해서는 악자나 선자나 다 하나같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시므로 악자의 세력이 다수인 동시에 극도로 물질 문명으로 발달되어 별세계까지 올라가는 것이 심판기의 징조라는 것이다.

 

  2. 인간 지혜와 지각이 있는 자를 없이하는 심판이 오므로 에서가 망함 (5~9)

  인간 지혜와 지식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여도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영적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지혜와 지식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보다도 인간 지혜와 지식을 존중히 아는 것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하나도 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게 지각이 있게 모든 일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 대한 지각이 없는 자는 오히려 지혜와 지식으로 말미암아 영적 흑암을 가져오게 되므로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날뛰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3. 야곱에게 행한 포악을 인하여 망하게 됨 (10~14)

  에서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그때 그때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형제를 해치는 일을 하는 자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상인데 에서적인 행동은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면 오히려 원수 편에 가서 하나가 되어 가지고 형제를 해치는 일을 하는 행동이다.

  참된 사상이라는 것은 옳은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는 자라야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승리하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한 것이 심판 날에 망할 에돔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4. 야곱의 승리 (15~18)

  심판이라는 것은 야곱의 승리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싸워 나가던 사람에게 그 축복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는 것을 심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의로운 심판이 되는 것이다.

  악자나 선자나 동등하게 권리를 주어가지고 악자가 의로운 자를 압박을 하며 해쳐도 의로운 자는 악자를 악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줄 심판을 기다리고 끝까지 참아 왔기 때문에 야곱의 족속은 불이 되고 에서의 족속은 초개가 된다고 한 것은 야곱의 족속이 에서의 족속에게 크게 멸시를 받고 쫓겨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의 족속은 내어 놓기 위하여 에서의 족속을 남은 자가 없도록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복있는 자는 야곱의 족속이라고 한 것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끝까지 믿고 싸워 나가는 변화 성도를 뜻한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에서적인 세력을 몽땅 없이하는 것을 심판으로 가르쳤고 야곱의 족속이 남아서 새 시대 가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구원이라고 말씀하셨다(19~21).

  우리는 완전한 것을 가졌다는 것보다도 완전케 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미약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강한 대적이 초개같이 타져 버리고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이 에서의 발전과 야곱의 승리라는 것이다.

 

 

성산 축복을 목적하고 나갈 신앙 노선

- 사 65:1~25 -

 

  기독교는 천국을 목적한 신앙 노선과 성산 축복을 목적한 신앙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 노선은 “회개하라, 중생을 받으라”하는 것으로 하나같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노선을 찾게 된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중생을 받으면 그 시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성산의 축복을 목적하고 걸어가는 노선은 무엇이냐는 것을 모든 선지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65장 본문을 통하여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몸에 성결을 가져야 된다 (1~7)

  아무리 은혜 시대에 부르심을 받았다 하여도 몸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진노의 날에 망할 것을 가르쳤다. 이 몸이 죽어서 흙에 가고 영혼이 천당에 간다는 것은 중생 받는 즉시에 죽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거요, 이 몸이 살아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가는데는 돼지고기나 가증한 물건을 먹으면 그 몸이 진노의 날에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다(5~6).

  왜냐하면 이 몸이 성산의 축복을 받게 될 때는 몸에 완전 성결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등한히 알고 비웃는 자라면 용서없이 망한다는 것이다(4~5).

  하나님은 선악과 하나를 먹으면 죽는다는 법도 그대로 시행하셨는데 진노의 날에 몸을 더럽히면 망한다는 것을 어찌 경홀히 볼 수 있는가. 이렇게 되는 것을 합법적으로 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 몸이 영생할 몸이 되는 축복을 받을 때 돼지고기나 가증한 물건을 먹을 수 없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결을 요구하신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마음에 성결을 요구하시고 몸을 구원할 때는 몸의 성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완전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8~9)

  영혼 구원은 회개하는 즉시에 받는 거요 성산의 축복은 예언의 말씀을 가감없이 믿고 순종할 때에 받는 것이니 극상 포도가 맛이 변치 않듯이 진리의 말씀에 맛을 잃지 않고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성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에덴 축복을 빼앗겼고 그 영은 구원을 받은 거와 같이 성산의 축복은 영혼 구원의 정도 사람으로는 될 수 없고 그 몸이 완전 축복을 받아 성산에 들어가게 하는 말씀을 순종해야만 될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노아의 방주를 믿지 않을 때에 육의 구원을 받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노아의 가정만 육의 구원을 받은 거와 같이 세계 인류가 전멸되고 성산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들어갈 것이다.

 

  3.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가 죽게 됨 (10~15)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성산의 축복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며 자기 생명을 운명에 맡긴다는 것은 용서없이 원수의 칼에 살륙을 당하고 성산의 축복을 믿고 순종하던 종과 같이 성산의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만일 순종하든 하지 않든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라고 다 같이 성산의 축복을 준다면 이것은 의로운 심판이라고 할 수 없다. 성산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는 심판이 있고야 오기 때문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말씀 심판이기 때문이다.

 

  4. 진리를 따라 복을 구할 것 (16)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인데 성산의 축복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죄를 사하시고 진리대로 은혜를 나리시고 진리대로 성산의 축복을 주는 것이니 그 진리를 믿고 기도할 때에 속죄도 은혜도 성산의 축복도 받게 되는 것이다.

  축복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진리를 모르고 축복을 구한다는 것은 미신의 우상적인 종교라고 보게 된다. 금일에 기독교가 기도를 한다 하여도 진리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상 종교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결    론 (17~25)

  성산 축복이라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생의 원죄로 왔던 죽음이 없고 헛된 수고가 없고 아무런 피해가 없는 세계를 가르쳤다. 자범죄로 영이 죽고 원죄로 몸에 사망이 오고 몸에 고통이 오고 몸에 피해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순종한 자들에게 다시 육의 사망과 고통과 피해가 없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성산 축복이라는 것이다.

  영적 구원이라는 것은 자범죄에서 받는 구원이요  육적 구원은 원죄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가르친 것이다.

 

 

선한 목자의 죽음

- 요 10:7~18 -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지만 죽음을 슬퍼하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에 큰 화를 가져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니 먹지 말라는 것으로 엄한 법을 세웠던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지 않았으면 죽음이 없을 것이 아니냐고 하는 말도 있다. 그러나 영원히 산다는 법이 있는 동시에 죽는다는 법도 있어야만 공의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국민을 사랑하는 정객이 살린다는 법만 있고 죽인다는 법이 없다면 이것은 국민을 사랑하는 법이라 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덮어놓고 사랑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고 가정과 사회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 없이 덮어놓고 사랑한다는 것은 방랑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목적을 두되 당신을 의심없이 믿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더 준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꾀어 보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없이 믿나 안 믿나 보자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한 죄로 결국은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죽게된 것이니 이제 믿지 않고 죽게 된 자를 다시 한번 믿게 해서 용서하며 구원한다는 것이 희생의 피를 드리는 제사의 법으로 세운 것이다. 인생이 믿지 않은 죄로 죽게되고, 다시 믿는 법을 의심없이 믿는다면 다시 산다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로 오셔서 죽기까지는 원죄로 죽을 몸을 가진 사람들이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은 피의 제사였던 것이다. 피의 제사라는 것은 그 영을 구원해 주는 동시에 앞으로 올 소망을 갖되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을 믿었던 것이다. 이 부활이라는 것은 선한 목자가 죽음을 통하여 온 것이다.

  이제 선한 목자의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1. 구원을 얻게 하자는 것이다 (7~9)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는 독생자 예수라고 본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는 첫째아담으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나라가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나라이라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누구나 원하되 어느 부모가 아들이 있다면 가장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원할 것은 사실이다. 다윗 왕도 솔로몬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아들보다도 그 아들이 왕이 되기를 원하는 말을 했으므로 솔로몬이 왕이 된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천국의 만왕의 왕이 되는 것보다도 자기의 신성을 가진 독생자를 통하여 천국에 왕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첫째아담은 성령을 부어준 일이 없으므로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고 왕권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나 둘째아담 예수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올 때에 성신이 비둘기 같이 임하며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으로만 천국을 이루어 놓는 것을 조물주께서 기뻐하심으로 첫째아담까지라도 피의 제사를 드리게 한 것은 피조물인 인생 중에서 누구든지 자기가 천국에 갈 수 없고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가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2.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자는 것이다 (10)

  하나님께서 무한의 생명을 가지셨지만 첫째아담에게는 생명을 풍성히 준 것이 아니고 생령이 되게 한 것뿐이다. 그러나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께 있는 풍성한 생명을 몽땅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얻는데는 사람의 행위로써 얻는 것을 아버지께서 원치 않고 독생자의 의로운 행실이라야 그 생명을 풍성히 얻을 조건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가 만민을 위해 죽었다는 의(義) 외에는 하나님을 만족케 할 의는 세상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도덕적인 행위가 옳다 하여도 그것은 사람 앞에 상대는 될지언정 하나님과 상대는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제사가 최고의 의가 되고 다음에는 그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피흘리기 까지 싸운 의가 만왕의 왕권에 가입되는 의다.

  독생자의 의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동시에 많은 영혼을 살리고 몸까지 영생하는 의가 되었다.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많은 사람의 죄가 사해지고 부활했으므로 많은 사람이 영생의 생명을 받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성신을 보냄으로 몸까지 신령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가 재림하므로 의를 위하여 죽은 몸은 부활하여 왕이 되고 재림시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쥐고 싸워서 붉은 용의 미혹을 이기고 승리한 자는 그 몸이 변화 승천하는 것이니 이 전부가 독생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열매다.

 

  3. 하나가 되기 위하여 (14~16)

  세계 인류가 하나가 된다는 이유는 십자가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행위로써 천국을 이룬다면 사람마다 자기가 옳다는 것으로 될 것이니 자기가 옳다는 것으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십자가 의로써 구원을 받게 되는 것으로만이 자기가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뿐이라는 것으로 하나가 된 것이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단체는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뭉쳐진 단체라고 보게 된다. 이 단체만이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동시에 영원히 같이 즐거워하며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 5장을 보면 네 생물, 24 장로, 천천만의 천사, 만물까지도 다 어린양의 죽음으로 된 일을 노래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자는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 뿐이라고 계21:27에 말씀한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누구든지 어린양의 죽음을 통하여서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의 최고의 의는 선한 목자 예수님이 죽었다는 그 의로만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도 선한 목자가 죽었다는 것이 제일 큰 역사요, 인간의 역사에도 선한 목자가 죽었다는 것으로써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낙망 중에서 오히려 찬송하는 자가 되자

- 시 42:1~8 -

 

  인생이라는 것은 낙망될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완전이 아니요 낙망될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도우시므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는 일이 완전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낙망이라는 것은 버림을 당한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목적두고 바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넘어지는 것도 달음박질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요, 상처를 받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있는 거요, 피곤해지는 것도 전력을 다하던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피실 때에 뛰다 넘어진 자, 열심히 일하다가 상처를 받은 자, 전력을 다하다가 피곤해 쓰러진 자,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돕는 역사를 하시므로 그들에게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어떠한 자가 낙망 중에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느냐에 대하여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갈망하던 자 (1~2)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던 자가 낙망을 당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도우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그 밖의 모든 선지들도 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인데 하나같이 낙망을 당하게 되는 일이 닥쳐 올 때 그들은 오히려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통하여 당신이 하실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무정한 인간도 자기를 갈망하는 자에게는 도와줄 마음이 생기는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갈망하는 자를 돕기 위해서는 갈망하는 자가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 낙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기가 막히고 앞길이 캄캄할 때에 하나님은 홀연히 나타나므로 오히려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2. 무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던 자에게 (4)

  주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요, 부소 부지하신 신이시니 천하의 만민을 구원하되 낙망하지를 않으시지만 하나님의 종은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다가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닥쳐올 때에 낙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당할 때에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마음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에 뜻밖에 주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오히려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많은 사람이 자기를 지지할 때에 힘이 나고 다 배반할 때에 낙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주님은 택한 종을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은 겸손한 종을 만들어 쓰는 모략이라고 보게 된다. 언제나 주께서는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고 낙망할 일이 올 때에 원망하지 않고 아주 배반하지 않고 눈물 흘려 기도하는 사람을 불쌍히 보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3년간 전도할 때 많은 사람이 물밀 듯 따라왔지만 겟세마네와 골고다를 거칠 때에 한 사람도 따라오지 않고 홀로 걸어갈 때 그 눈물과 그 피는 세계를 살리는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말세의 종은 시련을 거친 후에 오히려 찬송하게 되므로 인정을 받는 종으로서 승리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3. 밤이 맟도록 기도하는 자 (7~8)

  기도라는 것은 평안할 때의 기도보다도 어려운 풍랑이 일어나고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그 물결을 거스릴 수 없을 때에 밤을 새워 기도할 때 하나님은 물결치는 파도를 잔잔하게 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려운 난관이 올 때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더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밤을 새워 드리는 기도가 없이는 낙망될 일이 올 때 오히려 찬송하는 일이 있게 되지를 않는 것이니 하나님의 사람은 밤에 기지개켜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앞으로 오는 풍랑을 감히 이기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밤을 새워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고요한 밤을 통하여서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의 큰 체험은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밤을 새워 기도할 수 있는 힘은 인간 자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온 힘이라는 것을 분명히 증거하는 바이다.

  이 사람이 진리를 깨닫게 된 힘은 빈민굴에서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3일 밤을 계속 밤을 새워 눈물 흘려 기도하던 중에 초인간적인 기도의 힘을 얻어서 10개월간 조금도 자지 않고 계속으로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에 계시록을 분명히 알려주는 음성을 듣고 받아쓴 것이 오늘에 성경 전체의 진리를 변론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인생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할 일은 낙망할 일이 없으므로가 아니고 낙망할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써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므로 신앙이 자라고 영계가 향상된다는 것을 이 사람은 40년간 기도 생활에 체험한 일입니다. 나는 언제나 낙망할 일이 올 때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기뻐하는 바입니다.

 

 

기도 응답과 영광

- 요 14:10~14 -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된 인생에게 기도 응답을 주시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독립적으로 완전하게 살 수 있는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야 할 질그릇에 불과한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것이 인생에게 오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가 얼마나 어리석고 믿음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독생자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음으로써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아담 하와도 피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은 독생자의 피로만 응답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구약시대에 양의 피가 없이는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된 것은 아들의 피로만 구원받을 것을 예약하신 것이다.

  이제 기도 응답과 영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1. 아들 예수를 믿어야만 응답이다 (10~11)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하여도 아들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응답을 받을 자격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세운 것은 타락한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고 독생자의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각각 자기의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은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천상 천하에 독생자와 같은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 아들과 같이 인정을 해주고 아들과 같이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독생자도 하나님 아버지도 다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한 방법이다.

 

  2. 믿는 자를 들어서 역사하므로 (12)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를 들어서 영광을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이 예수를 믿으므로 중생을 받고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역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영광으로 받으시는 것은 사랑하는 아들의 수고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부모가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에게서 훌륭한 자손이 번창한다면 이것이 영광이 되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들어 역사하는 것보다도 아들을 믿는 자를 아들과 같이 성신을 주어 역사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독생자의 대언 기도를 통하여 아들의 소원을 이루어 줌으로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신의 역사로만이 천국을 이루자는 것인데 먼저는 아들을 들어서 만민을 위하여 죽게 하고 부활케 하고 대언 기도하게 하고 아드님을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게 하고 성령이 역사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믿는 자들로 말미암아 완전한 왕국을 이루어 놓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새 일의 역사로 지상왕국을 이루는 것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역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오히려 노여워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신의 역사를 대적하는 자와 같이 취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업을 할 때에 사업의 위원회를 조직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어떤 직공이 그 위원회를 반대하고 자기는 따로 독립을 한다고 하면 그 위원회는 그 사람을 대적으로 알 것이다.

  이와 같이 성부 성자 성신께서 예지와 예정 아래서 대자연을 창조하고 사람을 내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을 들어 쓴다는 예정이 있는데 그 뜻을 믿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인격이 있고 학식이 있다 하여도 들어 쓸 수가 없고 성부 성자 성신께서 예정하신 섭리를 믿는 자를 들어 쓰되 당신의 완전한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주어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신다.

  무소 불능하신 신이시지만 당신이 직접으로 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지 않고 사람이 홀로 하는 것도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믿는 자에게 당신의 모든 보화로운 지혜와 지식과 능력과 재능을 주어서 그 사람으로 승리하도록 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신다.

 

  3. 아들이 시행하시므로 (13~14)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전부가 영광으로 받으신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소원을 아들을 통하여 이루되 아버지의 사랑과 공의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이 아무리 무엇을 한다 하여도 그 일이 아버지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고, 아무리 만물이 열매를 맺는다 하여도 아버지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고, 오직 독생자가 인간의 죄를 걸머지고 죽었다는 일과, 또는 부활해서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과, 구름 타고 다시 와서 인간의 범죄로 더러워진 땅을 다시 성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성도들을 죽은 자는 부활시키고, 살아 남은 자는 변화 승천시키어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되는 일은 전부가 아들이 행하는 일이니, 이것으로만이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영광이 된다.

  우리는 아들이 시행하는 일에 대하여 믿고 기도할 것뿐이요, 그밖에 모든 행사는 주의 역사로 되는 것이니 이것이 조물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일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본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주먹이 천금이라는 시대도 있었고 황금 만능이라는 시대도 왔지만 기도 응답이라는 역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자기 인간 지혜와 지식에 미혹된 자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기도 응답으로만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우리도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믿는 것이다.

 

 

증인된 자격과 사명

- 행 1:21~23,  계 10:7~11 -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증거할 신앙의 대상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므로 친히 제자를 불러서 항상 같이 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 3년간 함께 하던 종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주님은 승천하신 것이다. 먼저 제자를 택하여 세울 때에 완전한 종으로 쓴 것이 아니고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는 증인을 삼아서 그들이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하므로 누구든지 그 증거를 믿으므로 만이 구원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제 증인된 자격과 사명에 대해서 본문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자격과 사명 (행1:21~23)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그 사명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고 그 즉시에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명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이루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사명을 맡았으나 그 사명을 할 수 없는 자이므로 타인에게 옮겨갈 때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 예수께서 승천할 때까지 항상 같이한 자를 택하여 가룟 유다를 대신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은 자라야 12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2 사도는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라는 것을 먼저 믿었고 율법 시대의 선지 사명은 세례 요한으로 끝을 맺고 그의 제자로서 예수를 증거하게 된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란 사람들은 선지 사명이 아니요 선지자의 증거를 듣고 이루어진 것을 본대로 나가 증거하는 자들이다.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할 때에 그 증거를 믿고 따라가서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것을 친히 보았으므로 그들은 세례요한의 증거가 참으로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기는 했으나 분명히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야 증거할 자격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요10:40~41).

  둘째 : 끝까지 따라 왔다는 것이 증거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고 예수를 따라가던 자라도 끝까지 남아 따라가던 자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수 있는 증인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완전히 보고 친히 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도의 증거는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 아니요,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기 때문에 항상 예수와 같이 한 자라야 될 수가 있다.

  셋째 : 승천할 때에 친히 본 자라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는 것을 본 자들은 주께서 친히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종을 세울 때는 친히 보고 듣고 체험한 자로서 선구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선구자가 완전한 증인 자격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은 죽은 영을 살려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말을 듣고 의심없이 믿는 자는 즉시에 중생을 받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써 중생을 받은 자로 사도의 사명을 계대하는 자가 된 것은 그들은 친히 예수를 따라 가며 보고 듣고 만져본 사람들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사도들의 증거를 의심없이 믿을 때에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기 때문에 사도의 증거를 자기가 다시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이날까지 증거한 목적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온 천하 사람이 다 믿으므로 중생을 받도록 하는 것 뿐이었다. 이것은 중생과 천국이라는 것이다.

 

  2. 다시 예언자의 자격과 사명 (계10:7~11)

  사도 요한이 기독교 종말에 끝을 맺는 말씀인 계시록을 받을 때에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안팎으로 가득히 기록한 책을 하나님께로 받는 광경을 계시록 5장에서 보았고 그 책에 봉한 인을 뗄 때 백마탄 자가 나타나서 두 번째 이기려고 하는 광경이 나타났고 다음에 붉은 말, 검은 말, 얼룩 말, 세 말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말, 검은 말, 얼룩 말인데 심판자는 백마란 뜻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란 뜻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가 된다.

  이 진리를 증거하려면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먼저 꿀같이 받아먹되 사람에게 받아먹는 것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로 받아먹은 자로서 아무리 쓴 시련이 와도 달게 먹은 책을 토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고 나간 자라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계시로 받았지만 기독교 종말에 가서는 보고 기록한 계시록의 비밀을 꿀같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먹고 시련을 이기고 나간 자가 나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자의 자격이 이루어지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은 중생을 받은 자라면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예언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책에 기록한 대로 몽땅 먹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비밀을 다 알려 주므로 꿀같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받은 사람은 많이 있지만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하나님께로 받아서 꿀같이 먹은 자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심판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비밀을 종들에게 꿀같이 먹도록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에게 꿀같이 먹도록 알려줄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쓴 것을 통과시키는 것은 꿀같이 먹은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나 시험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여 다시 예언하려면 그만한 영계에 도달하도록 쓴 시련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시 용서할 기회가 없는 때이니 만큼 미리 시험을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이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심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 문제가 아니요,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그날에 받는 구원은 인류적인 큰 구원이 되는 문제이므로 세계통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계에 올라가야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세계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열매로 나타났고 말세에 다시 예언자가 나옴으로써 환란과 재앙속에서 세계 인류가 그 예언을 듣고 지키므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을 믿으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다시 예언하는 말을 순종해야만 재앙을 면하고 천년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계11:1에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한 것은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통일될 것을 뜻한 것이다. 지금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계 혼란과 진리 말씀에 혼선을 바로 잡는 것은 다시 예언자가 나오므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을 먼저 세우고야 역사하는 것이니 할례 언약에 아브라함, 율법과 계명에 모세,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12 사도, 예언을 다시 증거하는 일에 두 증인 이렇게 되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다 이루어지므로 지상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 재림시까지 머물게 한 사명

- 요 21:21~23 -

 

  금일에 기독교는 이 날까지 머물게 했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시대를 따라 종을 들어 쓸 적에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도 있고,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고, 기록한 성경을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들어 쓴 종도 있다. 먼저 성경이 없이 들어 쓴 종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들어 쓴 종은 첫째 모세니 이 사람은 몽학적인 율법을 받아 기록한 종이다.

  그 때에는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모든 종을 들어 쓰되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있었다. 또는 언약의 말씀인 예언서를 기록한 종들이 있으니 이것을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이 종들로 기록한 글은 몽학적인 교훈이 아니요, 여호와께서 앞으로 말세에 행하실 일을 묵시로 나타나 말함으로 기록한 자들이다. 그 시대에는 선지서를 가르치는 때는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을 가르친다는 성전에서 참된 선지들이 묵시로 받은 책을 반대하고 심지어 불살라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 때 사람이 이 글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시하고 배척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부터 재림 시까지는 율법을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고 선지서를 가르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선지서를 가르치는 사도들을 박해하는 때가 있었다.

  이 때는 소위 율법주의라는 자들이 율법을 가르치면서 선지서를 가르치는 일을 반대했던 것이다(행3:24~26, 4:1~3). 아무리 율법주의자들이 반대해도 담대히 선지서를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때가 사도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성경을 해석해 주었던 것이다(눅24:25~27, 44~47). 이렇게 성경을 깨닫도록 가르친 것은 사도들이 성경을 해석할 범위를 말씀하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성경을 가르친 것이다.

  선지서를 깨달은 사도들은 4복음을 기록할 때에 선지서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예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 시대의 종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지식의 한계가 되었던 것이다(벧후1:19~21). 어느 사도나 다 하나 같이 예언서를 들고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초대 교회 교훈이었던 것이다. 그 때는 신약 전서가 있은 것이 아니요, 성경을 가지고 증거할 때에 사도들은 율법을 가르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선지서를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동시에 예수 행적을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행13:27~30).

  그 때를 지나 모든 사람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그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여 그대로 저술한 것이 복음서이다(눅1:1~3). 그 때는 성경을 새로 기록한다는 목적이 아니고 성경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 행적을 썼던 것이다. 또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자는 성신이 오셔서 역사할 때에 선지서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편지서를 쓸 때에도 선지서를 증거하되 예언대로 은혜 시대가 왔으니 우리는 이루어진 십자가를 믿고 이루어진 성신의 역사를 받았으니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신앙 생활을 바로 해 나가라는데 대하여 권면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사도들이 기록한 책을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싸워 온 것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 날까지에 머물러 있는 사명은 사도가 쓴 성경해석 외에 해석을 더할 자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에 정통학설은 사도들이 해석하여 놓은 해석에 의하여 좀 더 변론을 세밀히 말한 것이 정통 신학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신이 충만치 못한 사람들이 학설을 쓰게 될 때에 금일에 영들을 죽이는 쑥물이 된 것이다.

  이 날까지 하나님께서 머물러 둔 사명은 이제 무엇이냐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복음도 예수님이 전한 천국 복음이 있고(마24:14),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한 복음이 있으니 이것은 천국을 목적한 복음이 아니요, 지상 왕국을 목적한 복음이다(계11:15). 천국 복음은 베드로에게 맡긴 사명이요, 지상왕국이 오는 영원한 복음은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준 복음이다. 바벨론이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계14:6~7, 20:1~3).

  기독교에 머물러 있던 사명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이 세상이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되어 새 시대 간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천당을 목적한 말씀이 아니요, 몸에 사망이 온 땅에 사망이 없는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사25:7~8). 인간에 사망이 온 것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 죄를 없이 하고 사망을 없이하는 세상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종들로 큰 축복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이 임하는 날에 남은 종이 전하는 복음이다.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는 변화 성도가 전할 복음인 동시에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를 볼 때 인간 종말의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날 것을 보았고 자기가 받은 진리는 재앙의 날에 읽고 듣고 지켜야 될 말씀이라고 받았던 것이다.

  이 재앙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의 재앙이다. 금일의 기독교가 머물렀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이 사명을 바로 찾아서 역사 하는 일이 없다면 극도로 위기를 만난 것이 71년도부터 오는 시기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이 계시를 보이기 전에 베드로가 묻는 말에 대하여 요한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 두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선지서를 전하는 사명에 있어서 사도들은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했지만 재림시에 남아 있는 변화 성도는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때부터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전하는 때가 왔으니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학설을 듣지 말고 선지서 전체를 그대로 전하는 자로만이 새로운 역사를 받음으로 완전한 승리의 용사로 새 시대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선지서를 전하는 종들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선지서를 들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던 종들은 은혜시대를 이루었고 선지서를 들고, 심판과 새 시대를 증거하는 종들은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사도적인 신앙의 계통

- 요 1:39~51 -

 

  기독교는 계통적인 신앙이 있는 것이니 이 계통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된 계통 (39~45)

  많은 사람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방 갈릴리를 찾아가서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벗삼고 기도하면서 고기를 잡는 생활에서도 양심을 살려 가며 기도의 한 클럽이 되어 벳세다 동네를 자리잡고 오실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이다. 이 때에 헤롯의 정치 부패, 바리새교의 영계 부패, 그 지도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으로 교통하는 한적한 곳을 찾아간 그의 신앙 믿음으로 사귀어진 친구들이 사도의 한 클럽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순수한 성경 본문 주의에서 기록한 그대로 될 것을 믿었던 것이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로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대로 믿는 신앙이라야 사도적인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이들은 나사렛 목수 예수를 볼 때 성경에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45절에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갈릴리 바다 옆으로 인도한 것은 그들은 자기네가 거기서 메시야를 영접하리라고 생각한 바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정 아래서 인도했던 것이다.

  지금도 택한 사람은 자기가 계획한 바는 아니로되 하나님의 신이 인도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 동네에서 살 때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함께 사도가 되자는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메시야를 영접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들어 쓰기 위해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 클럽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2.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46~47)

  신앙이라는 것은 조금도 간사함이 없는 자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니 나다나엘은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간사함이 없다는 조건이다. 간사함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비밀을 알려 주기도 하시고 그를 들어 쓰기도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혈통에 관한 것보다도 사상, 정신, 양심에서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되므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간사함이 없는 자라면 그에게 사명을 맡겨 일할 수 있도록끔 지혜와 능력을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이다.

 

  3. 하나님만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 (48~51)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님만 상대하는 숨은 기도, 숨은 봉사, 숨은 중심 성결이 있어야 된다.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알게 일하는 자에게 역사 하는 신이시다.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하되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중심할 때에 놀라운 역사를 할 수 있는 영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도들이 완전한 권능을 못 받고 완전한 신앙 지식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자라는 것을 주님은 인정하시고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다. 지금도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라면 주님은 그들을 통하여 재림의 주를 영접하도록 역사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은 언제나 계통이 있는 것이니 사도들이 메시야를 영접할 때에 가졌던 계통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그 계통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혜를 크게 받음으로써 바로 선다는 것보다도 바른 신앙을 가질 적에 큰 변화를 받게 되며 큰 역사를 받게 되므로 시대적인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장 년 공 과 편 - 예수님에 대한 천사의 증거

 

제1과  수태시의 증거

- 눅 1:26~38,  요절:31 -

 

  서    론

  예수께서 누구시라는 것을 마리아에게 증거한 것은 마리아로 하여금 믿음으로 복을 받게 하는 데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증거했다.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마리아에게 알려 주지 않으면 안될 일이므로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보냈던 것이다.

  이제 천사의 증거에 대하여 공부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1대지 : 주께서 함께 하신다고 증거함 (26~28)

  마리아는 이미 메시야를 고대하던 자로서 거룩한 생활의 은혜가 같이하는 자이므로 주께서 함께 하는 생활이다. 비록 농촌에 숨어 있는 여종의 하나이지만 주의 신이 함께 하는 생활이 있으므로 성신의 잉태를 할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물과 피가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임한 것은 주께서 신으로 함께 하는 생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마리아 홀로 있어 가지고 성령으로 잉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몸도 선악과를 먹은 질적 타락에 속한 몸이므로 그 몸으로 말미암아 수태가 된 것은 절대 아니고 물과 피가 그 몸에 능력으로 임한 것이다(요一5:6).

 

  2대지 : 예수의 인격을 증거함 (29~32)

  수태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을 뜻한 것이니 그 인격은 세상에서 제일 큰 자라고 말했다. 세상에 많은 영웅들이 위대한 세력을 가지고 한 때는 이름을 날렸지만 세계를 통일하는 인격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생 중에 제일 큰 인격을 가진 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인격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웅이라 하여도 다 죄에서 난 몸이니 죄의 종이 되어 죄 때문에 종말은 사망의 비극을 이루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 임한 인격이니 그 몸에는 조금도 사람의 몸으로써 온 물과 피로 이루어진 인격이 아니요, 하나님의 신의 창조적인 능력에서 거룩한 물과 피가 임한 인격이니 그 인격은 가장 큰 인격으로 만민의 죄를 대신할 인격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그 몸이 인간의 피와 같은 피로 이루어졌다면 거룩한 제물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피는 타락한 죄에 속한 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제일 큰 자로서 만 왕의 왕이 될 인격을 가진 것이다.

 

  3대지 : 영원한 왕이라고 증거함 (33)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속죄의 은총이 있고 영원한 왕권이 있으므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이 아니라면 영원한 나라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로되 영원한 왕권으로서 그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시므로써 그 왕국을 이루는 데는 참된 이스라엘을 이루어 야곱의 집인 다윗의 왕권으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언약한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모든 성도들이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시어 자유롭게 승리할 수 있는 역사를 성도들에게 주므로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대지 : 성령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될 것을 증거함 (35~38)

  하나님의 성신이 크게 임하고 능력이 역사하므로써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말할 때에 마리아는 그 때부터 믿음으로 그 역사를 받아들여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억지로 하시는 신이 아니요,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 믿을 때에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확실한 증거를 보고서 믿으라는 것이니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증거를 보고 믿으라고 했던 것이다.

 

  결    론

  인류 역사상 제일 큰 일은 여자 한 사람에게 시작된 일이라고 본다. 에덴동산에서 여자 하나가 순종치 않으므로 인간에게 타락이 왔고 산 깊은 나사렛 동네에서 마리아 한 사람이 순종하므로 온 세계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왕이 나게 된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자 하나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을, 구원할 때에 여자 하나로 말미암아 이루게 한 것은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신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제2과  탄생시의 천사의 증거

- 눅 2:1~14,  요절:14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일이 세상에 이루어질 때는 먼저 천사를 동원하여 역사하되 확실히 믿도록끔 해주는 일도 천사가 증거하고 그 말씀을 전할 때에 전하는 종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전할 수 있는 길을 인도해 주는 것도 천사가 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탄생시에 천사가 증거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있다.

 

  1대지 : 영광을 보여줌 (8~9)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일은 그날 그날에 걸어가는 길이 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사렛 동네에서 나타나던 천사가 어째서 베들레헴에 다시 나타났느냐는 것은 먼저 사7:14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나타났고 베들레헴에 나타난 것은 미5:2이 응하기 위하여 나타났다.

  요셉과 마리아가 가이사 명령에 의하여 호적을 하려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서 유대를 향하여 가던 길에 베들레헴 다윗 동네에 머무르자 여관에서 갑자기 해산하게 되어 예수를 낳게 된 것도 성경이 이루어지는 일인데 요셉과 마리아는 이것이 미5:2이 응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응하는 시간이므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징조를 보일 때에 영광이 내려 비치는 광경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 영광을 보는 자는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무심중 나타난 일이니 인간으로서 알지 못하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2대지 :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함 (10~11)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일이 인간에게 얼마나 크게 기뻐할 일인 것을 모르고 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알려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원하므로 주는 사랑이 아니고 먼저 자원하는 사랑이시다. 주님이 구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인간이 알도록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보고 말씀을 하셨다 하더라도 그 말씀 자체가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친히 찾아오는 일이 있을 때부터 크게 기뻐할 일이라는 것을 천사는 증거했다.

  예를 든다면 캄캄한 마음에 밝은 빛이 나타나듯이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에게 힘이 오듯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지고 아무 활동을 할 수 없는 세상에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때부터 이 세상은 생명의 빛이 나타났고 아무런 활동을 해 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이것이 얼마나 크게 기쁜 일이란 것을 모르는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알게 했던 것이다.

  차디찬 말구유에 탄생한 어린아이 하나가 전 세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는 구주가 된다는 것은 주님 탄생시에 인간의 지식으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20세기 반기를 지나서 71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무엇으로 그 기쁨을 다 척량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인간이 볼 때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분명히 알아서 누구나 다 믿어야 할 증거가 확실하지만 그 때에 이것을 참으로 믿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린 자는 심히 적었던 것이다.

 

  3대지 : 인류 평화를 증거함 (12~14)

  인간의 참된 평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천사들은 증거했던 것이다. 오늘에 평화를 무엇으로 가져올 것이냐 하는 것을 아는 자도 심히 적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상, 정신 양심으로 하나가 되는 왕국을 이루는데는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참 기쁨을 얻은 자로서 이루는 것이 완전 평화왕국이라는 것이다.

  완전 평화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권력 아래서 복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쁨을 받을 적에 자동적으로 평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쓸 적에 억지로 일하도록 하는 신의 역사가 아니요, 기쁨을 주는 동시에 괴로워도 기뻐하고 죽어도 기뻐하고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도 기뻐하는 무리들이 하나가 되어 평화의 세계를 이룰 것을 천사는 증거할 때에 지극히 높으신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증거했던 것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비롯하여 이 땅에 완전 평화가 올 것을 알려준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의 탄생을 증거하는 천사들은 너무나 크다는 일을 말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마리아에게 수치스럽고 괴롭고 또는 인간이 오해할 일이지만 하늘에서는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가장 인간이 볼 때 여행 중에 집이 없이 한데서 해산했다는 일, 말구유에 아기를 뉘었다는 일, 처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일, 이 모든 전부는 인간이 볼 때에 얼마든지 불평, 불만, 수치라고 볼 조건이 되지만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인간에게 알도록끔 증거하여 준 것이니 우리는 천사의 증거를 보아서 더 큰 기쁨과 영광과 평화를 누려야 할 것이다.

 

 

제3과  환란을 피하도록 천사가 증거함

- 마 1:20~25, 2:13~23,  요절2:13 -

 

  서    론

  예수께서는 복중에서부터, 탄생할 때부터 환란을 만났지만 하늘의 천사가 역사해 주므로 어린 예수는 환란을 피하게 되었다. 천사는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을 환란을 피하도록 한 것 같이 하나님의 종들도 환란을 피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린 예수를 환란을 피하도록 역사해 준 천사의 증거를 본문에서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복중에서 당하는 환란을 피하게 함 (1:20~25)

  마리아 홀로 있을 때에 천사의 증거가 있고 그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가 되어 그 소문이 일반에게 알려질 때에 요셉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천사가 증거하지 않는다면 복중에 있는 예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 때에 법에 의하면 처녀가 잉태하면 사형에 처하는 일이요,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만 하고 동침한 일이 없는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말을 듣고, 이 말을 들은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것은 복중에 있는 예수는 죽을 일이 될 때에 천사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증거하면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명령하면서 사7:14를 깨닫도록 해주므로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여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까지 보호하되 한번도 그 몸에 동침을 한 일이 없이 하므로 복중에 있는 예수는 어려운 환란을 피해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일은 인간이 볼 때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이라도 사람을 깨닫게도 하시고 인도하기도 하시어 모든 난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2대지 : 베들레헴에서 당하는 환란을 피하게 됨 (2:13~18)

  가장 악독한 일 중에도 크게 악한 일은 헤롯이 베들레헴에 있는 어린이들을 이유 없이 다 죽였다는 일은 전무후무한 비참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의 환란이라는 것은 군인이 군인을 상대하여 싸우는 전쟁이요, 정객이 정객을 대해 싸우는 일이요, 교권이 교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이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죽인다는 것은 천인이 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마의 정권을 배경 삼고 어린 예수를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한다는 일은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천사는 그 환란을 벗어나도록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사가 역사한 일이 아니고는 사람의 힘으로는 꼼짝 못하고 죽게 된 일이다.

  세상의 전쟁도 선전포고가 있고 아무리 죽을 죄가 있어도 사형 선고가 있고 죽이는 법인데 쥐도 새도 모르리만큼 갑자기 군대로 베들레헴을 둘러싸고 어린 예수 하나를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을 어린 생명의 피로 물들게 하는 잔인하고도 악독한 헤롯의 손을 어린 예수가 벗어나서 애굽으로 피하도록 천사는 지시하고 인도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하나님의 자녀를 해치려고 계획하여도 천사가 도와주는 일이라면 반드시 환란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3대지 : 평안히 장성하도록 천사가 인도함 (19~23)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기를 때에 원수의 피해가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헤롯을 죽이고 예수를 인도하되 산 깊은 나사렛 동네로 인도했던 것이다. 지금 서기 1971년이지만 숨어서 기른 기간이 4년이라고 하며 지금 주님의 서기 단년을 하나님의 모략으로 숨겨 놓은 바가 있으므로 2천년이 거의 차가는 시기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이 너무나 귀한 일은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인줄 안다면 안되겠으므로 요셉과 마리아만 알게 하고 나사렛 동네에서 기를 때에도 때가 올 때까지는 숨겨 놨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금은 보석을 숨겨 두듯이 천사를 통하여 어린 예수를 숨겨서 기르도록 인도하고 보호하여 주었던 것이다.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호받고 새 시대 가는 것도 맏아들 예수님에게 하듯이 천사로 역사해 줄 것은 사실이다.

 

  결    론

  가장 귀하고도 아름답고 놀랄 일은 천사가 역사해서 당신의 사람을 길러 주기도 하고 인도해 주기도 하고 싸워 주는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천사를 통하여 지시하고 인도한 일은, 자녀가 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니 우리는 예수님을 위한 천사의 증거를 공부할 때에 앞으로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믿고 기도해야 될 것이다.

 

 

제4과  부활 승천에 대한 천사의 증거

- 눅 24:1~7, 행 1:6~11,  요절 행 1:11 -

 

  서    론

  하늘의 천사들은 언제나 시대적인 큰 변사가 있을 때는 인간에 나타나서 증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되 이 땅에 확실한 역사가 나타나서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나타나야 할 시기에 천사가 나타나서 인간에게 알도록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이 탄생할 때도 세례요한의 증거가 나오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마리아에게도 증거했고 요셉에게도 증거했고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도 증거했고 또는 천사의 인도가 어린 예수에게 같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증거가 나오게 되고 주님의 증거가 세상에 나타날 때는 천사가 나타나 증거한 일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증거한 것이나 승천에 대해서 천사가 증거하면서 재림할 것을 증거했다. 이 때는 사도들이 증거하러 나서지 않았을 때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제자들에게 천사들은 증거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천사의 증거를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부활에 대한 천사의 증거 (눅24:1~7)

  사람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고 가장 비겁한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2, 3차나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분명히 증거한대도 불구하고 믿음이 좋다는 여자들까지도 부활하시는 날 아침에 부활을 믿지 않고 예수 몸에다 향품을 발라 드리겠다고 준비를 해 가지고 갔던 것이다. 그 성의는 사도보다도 지극한 성의이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갔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는 것을 보고 근심하다가 천사를 보고 두려워 얼굴을 땅에다 대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 얼마나 믿음이 없고 비겁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사는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하면서 부활한 것을 증거했다. 천사는 말하기를 너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다.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만에 다시 산다고 말했는데 왜 믿지 않느냐는 말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인간들에게 믿음을 얻게 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서 깨우쳐 주는 일이 있다. 마리아도 아무리 믿음이 있지만 성신의 잉태를 의심했고 두려워 할 때에 천사가 믿도록끔 말하였고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를 의심할 때에 믿도록끔 천사가 깨우쳐 주었고 양치는 목자들이 영광을 보고도 두려워 할 때 구주가 난 것을 깨우쳐 주었고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부활을 믿도록끔 깨우쳐 주었고 앞으로도 택한 자를 깨우치기 위하여 천사가 나타날 것이다.

  마땅히 앞으로 될 일을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 계시록인데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 성경대로 이루어질 때에 천사로 하여금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믿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자를 강권으로 믿도록끔 하는 방법이다. 천사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한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 : 제자들로 다 하나가 되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예수는 분명히 성경대로 부활했으니 예수님만 따라가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2대지 : 승천시의 천사의 증거 (행1:6~11)

  부활을 의심하던 제자들을 깨우쳐 주던 천사들은 승천할 때에 다시 나타나서 깨우쳐 준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경을 깨닫게 해서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되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된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 준 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또다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얼마나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을 성경에서 알고도 예수님이 승천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물어 보았다는 것은 너무나 조급한 인간의 생각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주께서 때와 기한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면서 성신 권능을 받아 가지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탁을 하고 구름 타고 승천할 때에 그 제자들은 자세히 하늘을 바라보는 때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증거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세 가지 큰 뜻이 있다.

  첫째 : 완전한 몸으로 승천했다는 것이요.

  둘째 : 그 몸 그대로 온다는 것이요.

  셋째 : 구름을 타고 올라간 그대로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천사 증거의 3대 요소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된다. 오늘에 소위 이단자들의 소리는 예수가 벌써 영으로 왔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막아야 한다. 분명히 뼈와 살이 있는 몸으로서 올라 갈 때에 그 몸 그대로 온다고 했으니 영으로 재림했다는 것은 이단설이 된다.

  또는 구름을 타고 올라간 그대로 온다고 했으니 그 구름을 성도로 해석한다는 것은 이단설이 된다. 이런 무리들은 유다서 12절에 멸망 받을 거짓선지를 물 없는 구름이라고 했다는 것을 이용하여 구름을 성도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는 망령된 말이다.

  또는 주님의 재림은 언제 올는지 알 수 없는 것이며 막연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더구나 흑암이라고 본다. 우리가 그 날과 그 시를 모르지만 승천하신 주님의 말씀이 땅 끝까지 전파된 금일에 주님께서 오지 않고는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은 틀림없이 재림기라고 본다.

  지금 이 때에 주님이 오시지 않는데도 계시록의 천사들이 증거한 말씀에 맞지 않을 거요, 벌써 왔다 하더라도 계시록에 천사들이 지시한 말씀이 맞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이 때는 천사가 지시한 계시록의 말씀이 분명히 응하는 때라고 보며 분명히 승천할 때에 천사가 증거한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결    론

 천사가 증거한 일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니 천사의 증거를 공부한 우리들은 그 일에 대하여 담대히 전할 의무가 있는 것이니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자들이나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증거할 자들이나 다같이 천사들이 증거한 그대로 증거한 자라야 천사의 돕는 은혜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 복음 공부

 

제1과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 요 1:1~14,  요절:5 -

 

  서    론

  학생들, 선생님이 오늘 물어 보는 말을 용기 있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어두운 것이 좋습니까, 밝은 것이 좋습니까? 어느 학생이든지 하나같이 밝은 것이 좋을 줄 압니다. 학생들을 바라보니 매우 눈동자가 곱고 반짝 반짝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 하늘 높이 있는 둥근 태양 빛이 비춰지지 않으면 학생들의 눈동자가 아무리 빛나고 밝다 하여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햇빛만을 받아서 밝히 볼 수 있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꼭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왔다는 것은 저 태양 빛을 뜻한 것이 아니요 진리의 빛을 가르친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참된 이치를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 공자님도 제자들이 인생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할 때에 대답하기를 나는 사람이 어떻게 났는지도 모르니 어떻게 죽은 후에 될 일을 알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님이 난 중국은 어두워 있었습니다.

  옛날 석가모니는 사람이 나서 늙어지고 병들고 죽고 하는 것이 무서워 밤에 몰래 도망을 갔습니다. 이 사람은 인도란 나라의 한 왕의 아들입니다. 왕은 아들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찾아보니 저 산에 가서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왜 가만히 앉아 있을까요? 죽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암만 인간으로 데려오려고 해도 오지 않고 나무아래 앉아서 눈을 감고 뜨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은 6년이나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는 죄를 지으면 불이 붙는 지옥으로 간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안 지으려면 농사도 장사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한 산에 가서 가만히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아무 것도 안하고 산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국가가 발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인도국의 나라는 발전 못하고 어두운 가운데 있었습니다.

  세상에 종교가 많지만 그것은 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이 답답해서 이것 저것 섬겨 볼 때에 하늘에 별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별을 섬기고 해와 달이 움직여지는 것 같을 때에 해와 달을 섬기고 이상한 물이 땅에서 계속으로 솟아 나올 때 물을 섬기고 이상한 짐승이 나타날 때는 짐승을 섬기고 산이 좋은 산이 있으면 산을 섬기고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고 섬긴 것이 이 땅에 어두운데 사는 백성들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므로 모든 것을 분명히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어느 나라든지 다 1971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온 세계의 큰 빛으로 왔다는 것을 뜻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 되는 이치를 학생들과 잠깐 물어 보면서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있던 높은 신인데 하나님이 너는 세상에 내려가서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가르쳐 주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세계를 구원하는 일을 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1~5)

  학생들, 꼭 같이 받아 읽어 주세요. 예수는 영원 전부터 있는 하나님의 아들된 신으로 세상에 올 때에 사람의 몸을 입고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학생들에게 세 번 읽도록 할 것).

 

  2대지 : 빛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 것입니다 (10~12)

  학생들, 대답하여 보세요. 어떤 사람이 학생들을 살려주려고 온다면 학생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반갑습니까, 반갑지 않습니까? 학생들 또 한가지 받아 읽으세요.  우리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살려 주실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예수님같이 권세있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할 줄 믿습니다(꼭 같이 학생들이 두 손길을 모으고 두 번 받아 읽도록 할 것).

 

  3대지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 (14)

  학생들,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가 좋습니까, 세상에서 재미있게 노는게 좋습니까, 진리가 좋습니까, 먹는 빵이 좋습니까, 학생들이 놀기나 좋아하고 먹기나 좋아하는 학생들이 된다면 짐승보다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짐승은 죽어서 없어져도 학생들은 죽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먹기나 좋아하고 놀기나 좋아하다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학생들, 꼭 같이 한번 받아 읽으세요. 우리들은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진리를 밝히 배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혜와 진리를 충만케 하옵소서(꼭 같이 두손을 들고 용기있게 받아 읽도록 할 것).

 

  묻 는  말

 1. 이 세상을 밝게 한 이는 누구?

 2.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무슨 권세를 받습니까?

 3.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2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

- 요 1:29~42,  요절:29 -

 

  서    론

  학생들, 인생은 동물보다도 특별히 종교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낼 때에 법을 내었습니다. 짐승은 사람을 위해 있는 동물이므로 법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는 것이 동물입니다.

  학생들, 소를 보고 남의 곡식 뜯어먹으면 죄가 되니 뜯어먹지 말라하면 소가 알까요? 개보고 너 오늘 집을 잘 지키지 않으면 내가 엄한 벌을 주겠다고 당부하면 개가 알까요? 그러나 사람은 남의 것을 몰래 먹으면 죄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자기가 맡은 일을 안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서 제사할 때에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양이 죽는다는 뜻으로 양을 갖다 놓고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에 이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양이 죽는다는 뜻으로 기도하고 그 양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기 전에 있던 종교인데 이 종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기를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제물로 죽게 하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얼마든지 그 죄를 영원히 용서해 주고 그 사람들도 새로운 시대를 이루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상에 전도하러 나타날 때에 선지자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크게 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증거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1대지 :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기를 세례를 줄 때에 하나님의 성신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걸머진 어린양이 될 사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줄 때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지만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하나님의 성신이 비둘기 같이 임하므로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게 되는 동시에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가장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때부터 담대히 예수를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29~34).

 

  2대지 : 예수를 만민의 죄를 걸머진 어린양인줄 알고 믿고 따라간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따라 가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예수가 온 세계 만민의 죄를 걸머지고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때도 많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런 사람들은 의심없이 믿고 따라가므로 과연 요한의 증거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만민을 위하여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만에 승천하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그때 가서야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학생들도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의 제물로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믿으면 절대로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다 구원해서 새 시대로 보내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인간들이 왜 옛날부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까?

 2. 인간들이 어린 양 제물로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왜 죄 사함을 받습니까?

 3.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무슨 징조가 나타났습니까?

 

 

제3과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

- 요 2:1~11, 요절:11 -

 

  서    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에 음성으로 말씀했지만 그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큰 이적이 나타날 때는 사흘이 되던 날 혼인 잔치 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도 갔던 것입니다.

  이 잔치 집은 가난한 집입니다. 그러므로 손님은 많은데 포도주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이 집에 포도주가 하나도 없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기를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내게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하는 말이 우리 예수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순종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집에 두, 세 통씩 드는 돌 항아리가 여섯 개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했습니다. 그 하인들은 마리아가 부탁한 말대로 물을 길어다가 가득히 채웠습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예수님이 말할 때에 포도주를 맡은 사람에게 그 물을 떠서 주었더니 이상하게도 포도주가 되었는데 먼저 있던 포도주보다도 더 좋은 맛이 있는 포도주입니다. 그때에 연회장은 너무나 신기해서 신랑을 불러 말하되 이런 포도주가 어디서 생겼느냐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한 이적입니다.

  우리 학생들,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예수님도 혼인 잔치를 기뻐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언제나 비유를 말씀할 때도 우리 믿는 사람을 신부라고 하였고 당신을 신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사람을 낼 때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내서 세상 나라를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학생의 부모님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훌륭하게 결혼식을 한 것을 아십니까? 어느 학생이든지 어머니가 결혼식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학생들, 세상에서 혼인 잔치가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제일로 귀한 일이죠. 학생들이 세상에 나게 된 것은 훌륭한 아버지가 훌륭한 어머니를 모시고 훌륭한 가정을 이룬 혼인 잔치가 있으므로 학생들을 낳아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제일 먼저 혼인 잔치에서 큰 축복을 했던 것입니다.

 

  2대지 : 순종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5~8)

  학생들, 오늘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들 저 개울에 가서 물을 길러다가 큰 항아리에 채워 놓으면 내가 포도주를 만들어 놓겠다고 하면 학생들은 순종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으니까 순종할 거예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 일을 하던 사람인줄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그 동네에서 존경하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어른의 말을 순종해야 된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일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학생들이 옳은 일을 하는 어른들의 말을 순종하면 예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3대지 :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9~11)

  학생들, 무슨 일이든지 모든 사람이 만족해지게 하는 일은 예수님이 함께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예수님을 모시고 즐겁게 잔치를 하며 살 때가 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예수님이 함께 하는 세상이 아니요, 마귀가 함께 하므로 서로 싸우고 서로 원망하고 살면서 아무런 재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모시고 재미있게 사는 새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입니다.

  학생들, 지금 성모 마리아는 학생들이 예수님 모시고 사는 새 시대에 들어가기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학생들 곰곰히 생각을 해 봅시다. 만일 학생네 집에서 훌륭한 잔치를 하는데 손님은 많은데 대접할 것이 없다면 마음이 어떠할까요? 가난해서 돈도 없고 어디 가서 사올 수도 없고 잔치를 하다 그만 둘 수도 없고 얼마나 잔치집 주인이 답답할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집에 가서 만족하게 잔치를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학생들 앞으로 학생네 집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예수님이 축복해 주시면 만족하게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묻 는  말

 1. 혼인 잔치 집에 무엇이 없게 되었습니까?

 2. 물 항아리가 몇 개 라고요?

 3. 맑은 물이 무엇이 되었나요?

 4. 지금도 예수님이 함께 하는 집은 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4과  성전에 있는 자들을 책망하신 예수님

- 요 2:13~22,  요절:19 -

 

  서    론

  옛날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 나라에는 서울에 큰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예배하지 않고 양과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진 어린양의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의 제사를 드릴 때까지 그 나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성전을 가서 보니 사람들이 전부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먼 곳에서도 그곳에 와서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는 성전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가 있는 사람들도 제사를 드리려면 자기 나라에 돌아와서 제사를 드려야만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나 양이나 사지 않고는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어 소를 팔고 양을 팔고 또는 돈을 바꾸곤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는 중심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요, 형식에 불과하고 자기네 이익만 생각하는 자이므로 그 중심을 볼 때에 주님은 참을 수 없어서 채찍을 만들어다 몰아내는 일을 하면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오늘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은 지금도 주님께서 그 때와 같이 예배당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예배를 받으실 적에 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1대지 :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께만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13~17)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잘한다해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않으면 찬송을 부르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나 연보하는 것이나 다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천국을 사모하기를 어린아이와 같이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예배당에 올 때에 집에서 올 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을 꼭 믿고 교회 오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2대지 :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심 (18~22)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있는 사람을 다 몰아내고 말씀하기를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지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모든 사람은 말하기를 이 성전을 46년이나 지었는데 당신이 3일만에 짓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옛날 양을 잡아 제사 드리던 그 제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끝을 맺고 주님이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므로 새로운 교회가 세상에 세워질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후부터는 예배를 드리되 양이나 소를 잡아 드리지 않아도 예수님의 십자가 피 공로만 믿으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아 주십니다.

  학생들, 우리는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학생들이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학생들은 가난해도 아무 것도 바치지 못하였어도 마음으로 예수님이 날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고 기도하면 완전히 죄사함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성전이 어디에만 있었습니까?

 2. 무엇을 가지고 제사했습니까?

 3. 지금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됩니까?

 

 

 

논 설 편  

 

1. 급한 일 많은 세상

  누구든지 지금 이 세상을 급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각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1971년이라는 세월은 모든 인류가 정평의 길을 걸어 왔다고 본다. 정평이라는 것은 구렁텅이나 걸리는 올무가 없이 마음놓고 가는 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하는 한마디 음성이 세계 어느 민족이나 다같이 듣고 복을 받을 기간이라고 본다.  

  죄인 오라 할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음성을 하늘의 하나님은 들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은 진노의 날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할 때에 시온의 거룩한 자가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어느 선지나 꼭 같이 묵시를 받았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이 때를 당하여서 급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 준비할 때가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은 세계 문제가 진노의 날에 되는 징조라고 본다. 인간이 볼 때는 임시 편리한 점도 있고 화려한 점도 있고 또는 물질만 있으면 재미있게 살 수가 있다고 볼 수가 있지만 거룩한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전부가 진노할 일이라고 본다.

  모든 인류의 사상 동태나 정치 경제, 문화, 도덕, 종교적 모든 전부는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에 급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각자 인격 문제인데

  우리는 반성할 것은 나 자신이 이러한 상태에서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는 인격이냐는 것을 반성해서 덮어놓고 믿으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지 말고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선지서와 계시록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내 사상과 생활과 모든 행동을 말씀에 대조하여 보면서 철저히 인격 개조를 받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되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만 될 때라고 생각된다. 누구든지 이 때에 제일 급한 문제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되는 인격 문제라고 생각하고 최선의 힘을 다하여야만 되리라고 본다.

 

 2. 제단 문제인데

  이날까지는 개인 신앙에서 개인 구원을 목적하는 때이니 만큼 약간의 부정, 부패가 교회에 있다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말씀에 혼선된 점이 있다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너그러이 용서하는 십자가만 증거하면 그를 믿는 자에게 은혜를 내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남아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교회가 되려면 그야말로 조금도 교회에 부정, 부패가 없는 완전히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동산에는 부드러운 풀들이 무성했지만 북풍 한설이 부딪칠 때는 연한 풀은 쓰러지고 송죽의 푸른 빛 만이 남아 있듯이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절개 있는 성도들로 뭉쳐진 단체를 이루어야 될 것이다.

  알곡을 뿌렸던 농장에 다시 알곡으로 끝을 맺듯이 환란과 핍박 속에서 시작된 교회가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졌던 것 같이 종말에 재앙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완전히 성결한 단체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단이 없이 역사가 내리지 않고 역사가 없이 거룩한 제단이 될 수 없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를 없이 하려는 정치와 교권 속에서 예수는 분명히 부활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예수를 반대하는 정권과 교권을 대항하여 싸운 거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반대하는 정권과 교권을 더불어 싸우게 될 것이다.

  진노의 날에 심판의 대지는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산다는 것이 인종 전멸의 심판인 동시에 먼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도 못하고 절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인다는 것이 기독교가 당할 마지막 환란이다. 이러한 환란 속에서 남은 교회가 되려면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진 교회에서 단체적인 보호를 받는 일이 있으므로 남은 교회가 되어서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되려면 시급히 완전한 무장이 된 성도들이 되도록 할 일이라고 본다. 말씀을 완전히 무장한 자가 아니고서는 촛대 교회의 강단에 설 수도 없고 또는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에 가감된 자를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재앙기가 아니므로 말씀에 혼선되었으나 말씀대로 오는 재앙이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긴급한 일은 재앙의 날에 남을 교회가 되도록 제단을 쌓는 일이 큰 일이라고 본다.

 

  3. 문서 운동인데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에게 묵시를 보일 적에 심판기라는 것은 하나님이 북방의 침략자인 무신론 죄악의 정치를 독수리 같이 강하게 올라가게 하므로 세계 열방을 침투하여 나올 때는 심판기니 누구든지 달려가면서 정한 때의 묵시의 글을 읽어보고 깨닫도록 하면 의인들은 그 말씀을 믿으므로 살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 중에서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일이 있으므로 북방의 세력이 망하는 동시에 재림의 주가 올 것을 가르쳤다.

  우리는 문서 운동에 전력을 두지 않고는 안될 것이니 얼마든지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임하여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변론하는 문서 운동이 있게 되므로 진리 반공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므로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4. 부흥단을 일으키는 일인데

  합3:1~3을 보면 주님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하박국 1장과 같이 북방으로부터 심판의 위령을 가진 악의 세력이 나올 때에 2:3에는 문서 운동을 할 것을 말했고 3장에는 주의 일을 부흥케 할 것을 말했다.

  우리 기독교에서 71년부터 급한 문제는 시대적인 경고의 나팔을 부는 대 부흥단이 나와야 될 일이다. 이 사명은 동방 땅 끝에서 할 사명이라고 사24:14에 말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가 천국 복음 운동을 할 때가 아니고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 운동을 할 때라고 본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부흥 운동은 다시 예언하는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으로써 재림시까지 증거하게 되는 부흥단이 각 나라에서 나오므로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가 될 것이다.

 

  5. 가정 문제인데

이날까지는 자녀를 두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혹은 불행하게도 부모를 두고 자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식구를 슬프게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 오는 환란은 가정이 다같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가정이 되어야만 어린 자녀까지 환란 가운데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되 도덕적인 문제보다도 사상적인 문제로 진리 반공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넣어주는 교훈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만일 청소년들에게 종말관의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청소년의 사상을 바로 지도할 수 없을 것이니 부모나 선생들은 반드시 급선 문제가 어린 청소년들에게 이 시대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공산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진리 사상을 넣어주는데 전력을 두는 것이 급선 문제라고 본다.

  금일에 제일 급한 문제가 청년 학도들을 기독교 종말의 변론의 역사로 바로 지도할 일이 급한 문제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6. 정치 문제인데

정치라는 것은 그 시대를 따라 정치는 변동해야 될 것이다. 봉건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정치에 먹힘을 당하였고 자본주의 정치를 공산주의가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이때에 어떠한 정치를 가져와야 할 것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서 행하는 문제가 급한 문제라고 본다.

  모든 선지의 종말론 묵시의 글을 보면 인류 종말에 북방에 자리잡고 나오는 궤휼적 정책은 참된 진리에 입각하여 진리대로 싸우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같이함으로써 승리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우리 나라의 국가가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고 한 그 사상이 정치인에게 무엇보다도 철두한 것이 있어 가지고 진리 반공 정책을 하는 것이 아니고는 안될 것이다.

  이날까지 종교는 정치와 분리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종교와 정치가 병합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받아 기록할 때에 아무리 북방의 세력이 강하지만 세계를 통일하는 정치는 시온산 정치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정 정치를 가르쳤다.

  신정이라는 것은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신의 보호를 받아 초인간적인 힘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신정 정치를 썼으므로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한 것 같으나 백전 백승의 열매를 거두어 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때에 신의 감동으로 다윗은 예언서를 쓸 적에 필연코 자기의 신정 정치가 세계를 통일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기록했고 다윗 왕국 말기에 그 정치가 다윗의 신앙을 떠나서 속화될 때에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예언을 기록할 적에 아무리 다윗 왕국이라도 신정 정책을 쓰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이방에게 망할 것을 말하고 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라야 하나님이 같이 하므로 세계 통일의 새 시대가 오는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올 것을 가르쳤다.

  이와 같이 되는데는 동방 땅끝 해 돋는 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므로 평화 왕국이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급한 문제는 우리 나라는 신정 정치를 이루는 것이 급한 일이라고 성서를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눈물겹게 소리 높여 할 말은 급한 문제가 강단에 선 종이 시대에 적합한 진리를 양떼들에게 흡족히 먹여 주는 일과 또는 협상주의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진리 반공 운동에 순교적인 투쟁이 있어야 할 것과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종으로서 진리 반공 투사를 길러서 앞에 나서도록 하는 일과 어떻게 하든지 교회가 국가에 대한 큰 관심을 두고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가지고 산 활동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목회를 못하고 삯이나 받아먹는 삯꾼이 된다면 각자가 다 큰 화를 받을 것을 알고 강단에 선 종들이 맹렬히 일어나야 할 때가 이때이며 모든 사명자들은 하나같이 단결해서 잠자는 종들을 깨워주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2. 인생의 근본과 종말

  인생이라는 것은 근본이 무엇이며 종말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을 가지므로써 만이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정로에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가치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인생의 근본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근본과 종말

  이 몸이라는 것은 흙에서 지음 받은 몸이다(창2:7, 3:19). 사람은 몸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영만 있고 몸이 없다면 영이 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신은 신만이 사는 영계라는 것으로써는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혼돈, 공허, 흑암에 있는 물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가 된다.

  창조라는 것은 물체의 것을 가지고 이루어 놓은 것을 가르친 것이다. 물을 갈라 물질계를 창조할 때 많은 물을 궁창 밖으로 몰아내고 크게 공간을 낼 적에 우주 공간 안에서 물체는 활동하여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신께서는 물질계를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창조할 때에 전부가 몸을 위하여 움직이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신의 대행자가 될 수 있는 모양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신께서 사람의 몸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한 것이니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흙에서 난 몸으로 흙에서 난 열매를 먹고 흙에서 난 모든 만물을 조물주의 뜻대로 다스리면 그 몸이 변화해서 영생할 영체가 된다는 것이 사람의 몸을 창조한 신의 공의라는 것이다.

  조물주 신은 사람의 몸이 영생체가 되게 하는 데는 그 사명을 맡기고 그 사명을 대적하는 동물을 냈으니 이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마음의 법이라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얻기로 작정하고 내기할 때에 상대편에 동등한 권리를 주고 서로 마음껏 해보는 것을 사람들이 큰 취미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신의 형상을 받은 증거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신들도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낼 때에 가장 귀한 몸을 이루고자 할 때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뱀은 가장 간교하게 사람을 꾀어보도록 했고 사람은 가장 진실한 사람으로 활동하여 꾀임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활동하면 사람의 몸이 생명과를 먹고 영원히 신과 같이 동거동락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이 가장 간교한 뱀에게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활동하지 않고 가장 간교한 뱀의 말대로 활동했기 때문에 인생의 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몸이 가치 없는 노동을 하게 된 것이 사람의 몸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이 헛된 수고를 하게된 것도 죽게된 것도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그 몸을 움직인 죄라고 본다.

  이제 인간 몸의 종말이라는 것은 조금도 헛된 수고가 없이 영생을 하고 다시는 죽음이 없는 변화체를 이루는 것이 몸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것은 영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요 사람의 몸이 끝을 바로 맺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탄생할 때에 그 몸은 흙에서 났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된 타락한 몸에 속한 것이 아니고 신의 능력으로 마리아 몸에 새로운 물과 피가 생기게 하되, 성령의 역사로써 마리아 몸의 피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마리아 몸에 성신의 역사로 물과 피가 임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의 몸을 탄생케하는 역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도 처음 아담같이 흙에서 창조했더라도 만민을 대속하는 몸이 될 수 없고 흙에서 난 몸으로 타락한 사람의 피를 가지고 이루어졌더라도 구속의 역사를 할 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몸에 새로운 물과 피가 임하도록 하나님의 신은 역사했던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몸은 인생의 몸의 종말을 바로 맺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몸이 끝맺는 날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첫째아담의 불순종으로 몸의 사망이 왔고 둘째아담 예수가 순종하므로 사람의 몸에 영생이 온 것이니 인생의 몸이라는 것은 재앙의 날에 가서야 끝을 맺는 것이다. 재앙이라는 것은 옛 뱀 붉은 용을 통하여 오는 것이니 붉은 용의 간교한 말인 공산당의 변론을 이기고 말씀을 바로 지켜 나가는 자라면 그 몸이 영생할 몸이 되어 구름을 타고 승천하게 되므로 하늘에 속한 몸이 되어 세세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원자핵이 나온 것은 세계 사람의 몸에 큰 재앙을 주는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동방에 말씀이 임하는 것은 그 말씀을 전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히 영생할 몸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2. 영의 근본과 종말

  금일에 유물주의자들은 사람에게 영이 없고 고등동물이 되는 정신작용이 동물보다 우수한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표준하여 나오는 학설이라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영의 활동이 있으므로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발전을 가져오는 인격이라고 본다.

  사람의 영의 근본을 말하자면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였고 슥12:1을 보면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라 하였고 말2:15에 하나님은 영이 유여 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지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할 적에 영을 대하시어 활동을 하도록 할 때에 당신의 요구하신 뜻은 몸에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 영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할 때는 하나님도 그 영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지만 이 죄는 몸에 해당되는 죄요 그 영이 하나님을 대적한 죄는 아니다. 그 영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어린양의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된 자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영원한 속죄를 완성한 보혈이므로 그 피를 믿고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취급하는 일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운 제사로 말미암아 그 의를 보고 무조건 그 영을 구원해 주는 것을 기독교의 중생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것은 인간이 행하므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이라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죽은 영이라는 것은 지옥 갈 영을 가르친 것이요 산 영이라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녀가 된 영들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승리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들이 속죄제를 양을 잡아 드리면서 역사가 내려온 것 뿐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후로는 누구든지 그 보혈을 믿으면 죽은 영들이 되는 마귀의 자녀들이 되었던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의 빛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므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의 근본은 하나님이니 근본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 마귀 권세 아래서 사망의 법으로 다스림을 받게되었던 영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를 받을 적에 천국으로 이름이 옮겨지는 것을 기독교의 영적 구원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죽음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있는데 몸이 죽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온 것이니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로 그 몸은 죽었지만 그 영은 피의 제사를 드리는 영이므로 하나님 앞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이라도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자범죄를 지을 적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양의 피를 제사로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그 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과 같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다 버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 천당이라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죄의 값으로 이루어진 것이요, 영이 구원받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죽은 영도 중생을 받고 죽은 몸도 부활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안식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간교한 사단에게 미혹을 받지 않고 말씀으로 이긴 자가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인간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세계 교회가 모이는 일이 식어지는데 대하여 어떻게 하면 열심히 모일 수 있게 되겠습니까? 만일 이대로 나간다면 큰 문제가 될 일이라고 봅니다.

【답】금일에 교회가 모이는 힘이 식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1.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만한 말씀이 없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 시대는 무엇으로나 큰 변천을 가져오므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거기에 끌려졌으므로 사상, 정신이 다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새로워지는 것이 없이 오히려 모든 것이 퇴보 상태로 들어가고 보니 이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끌려가는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이대로 나간다면 기독교는 아무런 필요 없는 기관이 되고 말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기독교는 이 시대 사람에게 큰 소망을 주고 감화를 주고 큰 개혁을 일으킬 새로운 진리 운동이 나와야만 될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고 각성을 주는 일이 없다면 큰 위기에 떨어지고 말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되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론과 역사가 나타나야만 될 것입니다.

 

  2. 지도자 부패로 봅니다. 과거에는 지도자들이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이므로 예수를 모르는 나라나 지방에 가서도 역사가 일어나므로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보았지만, 금일에 교회가 교권, 물권을 쥐는 동시에 지도자들이 신령한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는데다가 전력을 두지 못하고 교권으로, 물권으로 기울여질 적에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는 상태로 들어가니, 그 종이 서는 강단에 여호와 응답하지 않으므로 예배를 드린들 일반에게 아무런 응답이 나리지 않으므로, 예배는 시간을 지키는데 불과하고 새로운 것을 받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 들어가니 교회에 모이는 것은 우상을 공경하는 사람이 가끔 한번 가서 제사나 드리는 그런 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마귀를 섬기는 식과는 다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이 주고픈 사랑에서 사람에게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응답을 내려 다 소성을 받게 하는 것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니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 생명을 받은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므로 그 생명의 줄을 통하여 오는 공급을 받되 말씀으로 받고 직접 능력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선 종이 하나님과에 연락이 되는 줄이 없다면 아무리 강단에 서 보았던들 예배를 드리는 생명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 교회가 새로운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강단 개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니 욜2:17과 같이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3. 마귀 압력이 허락을 받고 나온 것이니 아무리 마음에는 간절해도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는 자리에서 깊이 잠드는 상태에 있게 되므로 믿음이 다 식어지고 기도의 힘을 잃고 보아도 모르겠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이러한 흑암이 허락을 받고 나오는 것은 변화 성도를 일으킬 때가 온 증거이니 변화 성도라는 것은 권세 역사를 받고 나오는 종들을 가르쳤다.

  종말에 역사라는 것은 마귀 권세를 개방시키고 그것을 이기고 나간 자들로 변화 승천케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써 새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1:3과 같이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 예언할 때에 촛대교회가 나오므로써 세계 교회는 바벨적인 음녀 교회와 증인 권세 촛대교회가 나오므로 버릴 자는 버림을 받고 남을 자는 남아서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끝으로 간곡한 부탁을 드릴 것은 절대적으로 교파의 담을 헐으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굳게 잡고 싸우시기 바랍니다. 또는 남을 보지 말고 먼저 자기의 영계 상태를 주 앞에 검열을 받는데 전력을 두고 또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깨닫기 위하여 심각히 생각하며 이리저리 치우치지 않고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나타나는 진리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서 진리에서 뭉쳐지는 권세 부흥단이 나오므로만이 세계 교회를 크게 각성을 주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문】2. 천국 복음과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주님께서 감람산에 앉았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어보기를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물어볼 때 대답하시기를 난리를 무서워하지 말고 미혹에 들지 않도록 주의할 일을 말씀하면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할 것이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받는데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시었고, 계14:6이하에는 영원한 복음을 가졌는데 바벨론을 심판할 시간이 이르렀다고 하는 것을 사도 요한은 계시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에 있어서는 첫째로 시대를 구분해야 됩니다. 천국 복음이 전파된 후에야 세상 끝이 온다고 하였고 영원한 복음을 전할 때는 바벨론을 심판할 때라고 한 것을 보면 천국 복음은 은혜시대에 전할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심판기에 전할 복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의 복음은 죄인을 불러서 중생을 받게 하는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바벨론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탈 때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되 이 땅위에 남은 백성으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게 하는 복음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세밀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국 복음은 영원한 영생의 나라로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인데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을 증거하므로 사망 아래 다스림을 받던 죽은 영들이 중생을 받는 동시에 몸은 죽으나 영혼은 구원을 받는 것을 목적한 것이니 여기에는 십자가로만이 구원을 받는 속죄 구령의 역사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는 때이므로 죽은 영들이 중생 받는 일은 없으므로 복음을 전하는 때가 아니고 조상적부터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유일신 하나님을 율법에 의하여 속죄제로 공경하는 때요, 천국 복음을 전할 때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아무런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즉시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죽었다가 천년 왕국이 지난 다음에 심판의 부활에서 생명의 부활을 받아 천국의 영원한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영원한 복음은 천년 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갈 자들에게 전하는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앞에 절하는 자는 다 죽게 되는 재앙이 내릴 때에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보호를 받아 지상 왕국에 들어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전하는 복음입니다.

  세세 왕권을 받을 자는 두 가지로 봅니다.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순교한 자는 주 재림시에 왕권으로 부활을 하고 영원한 복음을 환란 가운데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던 자는 재림시에 변화 성도로 왕권을 받아 승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권은 복음을 전하던 자에게 있되 순교를 하기까지 전한 자에게 있고 시민권은 천국 복음을 받아 영혼이 구원받은 자가 천국의 시민권이며 영원한 복음에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자는 천년 왕국의 종족이 됩니다.

  다시 세밀히 말하자면 천국 복음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도들에게 전한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 선지에게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복음인데 이것은 바벨론이 망하고 예루살렘이 복구된 사실을 들어 인간 종말의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입니다(계10:7).

  성경은 목적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전할 복음을 세밀히 가르친 것은 선지서요, 계시록인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라는 것은 한날 한시에 구원받는 복음이 아니고 심판기가 올 때까지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영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했으므로 많은 글이 쓰여져 있지 않고 진노의 날에 온 세상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고 남은 백성이 될 자는 지상 축복을 받는 동시에 영원한 천국에까지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은 직접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3. 사명자가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사명자는 자기 사명이 무엇인 것을 먼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명에 대하여도 환란과 재앙 가운데 남은 종으로 복음을 전할 사명은 은혜시대의 사명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바뀔 때에 사명자들이 사명을 바로 알지 못하므로 혼란을 일으킨 일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올 때에 사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사도를 이단시하고 훼방하다가 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시대에도 환란기가 임박할 때에 환란 가운데 말씀을 전할 사명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자가 있다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금일에 자기 사명을 모르고 환란시대의 종들이 전할 성경을 은혜 시대의 종들이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은혜시대의 사명자는 사도들이 예언서를 해석한 것 외에는 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게 주님께서 부탁할 때 너희는 내가 전해준 말을 땅 끝까지 전파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깨닫게 해 준 성경 외에는 더 연구할 필요도 없고 순수하게 사도가 전한 복음을 그대로 전할 때에 성신의 역사가 강하게 나리는 것만이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 재앙의 날에 전할 말씀은 재앙의 날에 가서 남은 종들이 그 말씀을 분명히 전하도록 하시되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듯이 대표적인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여 대표적인 종이 성경 전체를 바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대표적인 사람을 통하여 환란 가운데 역사할 종들이 하나같이 무장을 받게 되는데는 성경은 대표자가 증거하는 것 외에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려면 대표 사람에게 절대로 순종하는 것과 그가 받은 진리를 가감 없이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꼭 같이 역사하므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될 것입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대표를 세운 후에 대표자가 받은 사명을 함께 하기 위한 사명 외에는 따로 있지를 않습니다. 은혜시대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꼭 같이 하게 되어 있으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문서화 시켜서 이날까지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사명의 통일성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성경 주석이라 해 가지고 신학자들이 자기 멋대로 선지서나 계시록을 썼다는 것은 기독교를 혼란케 한 것밖에는 못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에게 묵시를 보일 때에 계10:11에 다시 예언하라는 부탁을 하시면서 11:1에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라고 한 것은 다시 예언하는 대표 사람이 나오므로 그 사명 아래서 종들이 하나같이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은혜자들이 함부로 내 사명은 따로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세계를 통일할 듯이 떠들어댄다는 것은 탈선된 일이라고 봅니다. 소위 동방 역사라는 간판 밑에서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것은 큰 혼선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므로 세계 열방이 그 빛으로 들어온다고 하였는데 말씀이 없이 무슨 이상한 징조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표제로 삼아 사람을 끌어 보려는 것은 대중을 혼란케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명자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말씀을 햇빛같이 밝히 증거하는 종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말씀이라면 하나같이 떨면서 그 말씀 하나를 바로 전하는 일에만 전력을 두고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마음과 심령 통회에서 하나가 되고 말씀에 떠는 것으로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은 권고하시므로 하나같이 대 승리를 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문】4.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일도 아니요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일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행하시는 일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진리를 사람이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금일에 기독교가 가르치는 일에 다른 종교보다도 시간을 많이 소비하고 또는 많은 종들이 강단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다 되느냐가 큰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이 되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극도로 겸손해야 됩니다.

  이 겸손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겸손보다도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나의 체험을 말하자면 내가 빈민굴에 가서 빈민과 같이 울며 빈민을 위하여 희생 봉사할 때에 불쌍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3일간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십자가를 깊이 깨닫는 묵상에 들어갔습니다. 십자가의 의를 깨닫게 될 때에 전부가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만 될 심정이었습니다. 10개월간 십자가 묵상에서 밤을 새울 때에 10개월이 되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계시록과 선지서가 통달될 것 같은 명랑한 영감이 오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계시록 4~14장까지의 비밀을 영음으로 세 번이나 가르쳐 주는 소리를 듣고 네 번째는 들려오는 대로 기록해서 약 13년 동안 진리를 깨닫는데 들어가는 체험을 말하자면 극도로 더러운 부정을 피우는 사람을 수종들게 할 때, 조금이라도 불평을 두지 않아야 말씀이 밝아지는 체험,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불평을 두지 않아야 말씀이 밝아지는 일,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단 마음으로 순종할 때에 말씀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밝아지는 것은 내가 연구해서가 아니요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한 사람도 무시하지 말고 나보다 낫게 생각이 날 때 말씀은 저절로 밝아지므로 아무런 연구가 없어도 성경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2.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순수라는 것은 성경 말씀의 본문 그대로 읽어서 만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알아 볼 필요도 없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도 말고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연구할 자격도 없고 가감할 권리도 없고 그대로 믿고 증거한다는 순수성을 가질 적에 강단에 서면 뜻밖에 새로운 말씀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체험을 받게 되며 조금도 세상의 말을 하지 않고서 성경 본문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그 시간에 만족함을 받을 말씀이 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한다는 미명하에서 그 말씀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다는 것은 나는 위험한 일로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기에는 성경은 그 한 절에서 독립성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음 읽어 나갈 때에 그 어려운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계속으로 변론을 하셨다고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는 목적을 말하고 다음에는 목적을 이루는 큰 뜻을 말하고 다음은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세밀하게 말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해석을 하여도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해석한 만큼 세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에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여러 가지로 주석을 쓰는 일이 있지만 성경은 주석이 필요 없고 반드시 사람이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할 수 있는 완전한 말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3.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불타는 사랑 속에서 당신이 타락한 인생을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해 주겠다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살려 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 것을 성경 본문에서 발견할 때 성경을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인간의 두뇌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의 비밀을 상상도 못할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이 마음에 올 적에 성경을 증거할 때 사랑의 불꽃이 붙는 역사가 마음에 있으므로 입의 말은 자동적으로 은혜롭게 나오면서 듣는 편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이 있게 됩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직접으로 체험할 말씀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그 말씀을 체험하게 될 때 말씀이 내 생활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 있게 되므로 체험적인 설교가 있는 동시에 성경을 바로 증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성경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 문제이며 자기의 어떤 실력이나 웅변이나 학설은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합니다.

 

 

 

특  집  

 

1. 믿음으로 찬송할 일

  조물주 하나님께서 제일로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역사를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 신의 사랑의 성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에 믿을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 사람의 마음에 가진 종교심이라는 것이다.  동물은 무엇을 믿는 마음을 가질 자격이 없지만 사람은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마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을 때에 자동적으로 사람의 인격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사람이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적에 향상이요 믿음이 없어 그 역사를 받지 못할 적에 타락이라고 본다.

  이제 믿음으로 찬송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이루어진 일을 믿음으로 찬송

  신앙이라는 것은 이루어진 것을 찬송할 증거가 없다면 이 믿음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계통적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과거부터 신용있게 행한 이력서에 의하여 어디가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후에 이날까지 인간에게 초인간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해주신 역사를 믿고 찬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이라는 것은 율법 시대의 사람이 부르던 찬송보다도 은혜 시대의 사람이 부르는 찬송이 더 크고 은혜 시대보다도 환란 시대의 남은 자가 부르는 찬송이 더 크게 된다.

  찬송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여 주시는 것을 받게 될 때에 부르는 것이니 믿음으로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받은 자들이 초인간적인 힘을 받아가지고 부르게 되는 것을 신앙자의 산 노래라는 것이다.

 

  2. 이루어지는 일을 믿음으로 찬송

  과거에 아무리 이루어진 일이 있다하여도 현저히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하면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아무리 뿌리가 박히고 과거에 열매를 맺은 나무라도 현재에 열매를 맺는 일이 없다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라고 볼 수 있다.

  금일에 소위 신이 죽었다는 학설이 나오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미친 학설이라고 본다. 현재에 하나님은 오늘도 강하게 역사를 나리되 기독교 역사상 없던 새 일의 역사가 나리고 있다.

  어떤 신학자가 이적은 폐지라는 학설을 가지고 과거에는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그런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것은 바짝 마른나무가 될 신학설이다. 모든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의 역사를 말했다고 본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조금도 쉬지 않는 열심을 가진 여호와의 신인 것을 믿고 찬송하게 된다.

  만일 오늘에 현저히 이루어지는 역사가 없다면 기독교는 무신론 사상을 대항해 싸울 힘이 나지를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오늘에 이루어지는 일을 찬송하는 일이 날마다 있는 교회가 되며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루어지는 체험을 소리없이 오는 새힘으로 받게 되고 모양이 보이지 않는 중심 성결 변화의 역사를 통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현저히 이루어지는 체험을 과학적인 문자의 표현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산 체험이라는 것이다.

 

  3.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찬송

  믿음이라는 것은 이루어진 것을 믿는 일과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동시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을 소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은 뿌리가 된다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은 새로운 발전이요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은 완전히 열매를 맺는 끝이 될 것이다.  

  이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획선이 있는 것이다. 획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도 가감이 없는 다림줄의 진리를 말한다. 기독교가 지금 이루어질 것을 믿는 신앙이 너무나 혼선 중에 있다고 본다. 어떤 종이 하나님 말씀은 해석하는데 달렸다고 한다는 것은 앞으로 큰 미로에서 헤맬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역사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참된 증인이 나타나게 된다. 증인도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도 있고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사명도 있으니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종들에게는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로 말미암아 속죄, 중생, 성결에 대한 열매를 이루어지는 것으로 체험하게 되고, 이루어질 것을 증거하는 종에게는 이루어질 것이 시작되는 체험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할 적에 친히 요단강에서 예수님께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나리는 것을 보고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증거를 보고 예수는 분명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담대히 증거했던 것이다(요1:33~36). 그 후에 사도들이 그 증거를 받아 믿고 따라갈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했던 것이다.

  말세에 사명자도 이루어질 것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어지는 징조를 새로이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일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믿고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루어진 것이 성경 그대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는 것도 성경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도 성경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 확실한 것을 믿을 때에 다음과 같은 찬송이 있게 된다.

  할렐루야 영광을 돌려 찬송할 일은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고 새노래를 24 장로와 네 생물은 합하여서 새 노래를 불렀다(계5:8~10). 이것이 믿음으로 찬송을 부르는 전체의 요지가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찬송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찬송하는 것이다.

 

 

2. 새해에 새로운 출발을 하는 종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이 해는 새 출발이 없이는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타 오르는 것도 육을 따라오는 생각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신의 격동인줄 믿습니다. 천하가 다 협상의 길을 걷는다 하여도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신앙 양심에 협상이 있을 수 없사옵고, 천하가 다 두려워한다 하여도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인들이 진리의 혼선을 가져온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는 심정으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혼선이 없을 줄 믿나이다.

  진리 안에 살아야 새로운 출발도 새로운 열매도 있겠사오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진리의 봉홧불을 높이 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내리시옵소서. 하나님께서도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끔 강권으로 역사해 줄 것을 믿나이다. 새 출발이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난관이 닥쳐오나이다.

  진리없이 옳은 사상 가질 수 없고 진리없이 옳은 정치가 있을 수 없고 진리없이 옳은 경제 부흥이 있을 수 없고 진리없이 싸움의 승리가 있을 수 없사온즉 시대가 변천하는 이때에 하나님이여, 이 시대에 전할 말씀을 완전히 보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인 것을 셈의 장막에 나타나 주셔야 극동 난제가 해결되겠나이다. 진리에 눈을 뜬 자 시대를 바로 볼 것이고, 진리에 귀가 열린 자 참된 진리의 종을 알게 될 것이고, 진리의 입이 열린 자라야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지금은 이날까지 잠잠히 계셔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계신 줄 믿사오니 어느 사람이 이 시대에 합당한 종이 되겠나이까. 하나같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사람은 사람을 택할 수 없사옵고 사람이 사람을 지도할 수도 없나이다. 종을 택하시는 것도 지도하시는 것도 하나님께 있사온즉 일으켜 주시옵소서.

  인간의 힘과 능이 이 해에 닥쳐오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사오나 여호와의 신이 행할 때에 무엇이 난제라 할 수 있겠나이까. 그러나 사람은 난제를 당할 때에 어찌할 수 없는 고민도 없을 수 없사옵고 자동적으로 약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이로소이다. 이날까지도 난제가 없은 것은 아니로되 이 해부터 닥쳐오는 난제는 인간의 아무런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고 봅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하겠나이다.

  이날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총을 너무나 상상할 수 없이 받았사오나 이것으로만이 해결이 아니옵고 여호와께서 대중적으로 깨닫도록 역사를 나타내 주셔야 되겠나이다. 아무리 나 홀로 받았다 하더라도 이것으로서 할 수가 없사옵고 나를 기르신 아버지께서 강권으로 들어 써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나무가 아무리 자라났다 한들 새로운 순이 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사오며 아무리 용사가 무장되었다 하더라도 용사 홀로 싸운다는 전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온즉 새해에 새로운 순들이 나게 하시며 새로운 용사로 집결케 하옵소서.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 아래서 나를 이 자리에까지 인도하여 강권으로 이 산을 맡기시고 강권으로 수도원을 명령하시고 강권으로 금식 기도의 용사를 일으켜 350명의 40일 금식을 하게 하신 아버지여, 금식의 용사를 일으킨 것으로 끝이 될 수가 어디 있겠나이까.

  이제부터 사랑 용사, 진리의 용사를 일으켜서 많은 종들을 깨우치는 이해가 되게 하시며 이곳에 임한 진리가 새 시대를 이루는 종말의 진리 운동인 것을 정치인이나 문화인이나 종교인이나 농민이나 상인이나 다 하나같이 알도록 말씀 권세 역사를 권세 부흥단으로 일으켜 주시옵소서.   - 아 멘 -

 

 

3. 어린이 공과를 이달부터 보내드리면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날까지 우리는 어린이에 대하여 성의가 부족했다는 것을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이 어린이 공과는 직접으로 읽으시면서 아동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글을 볼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가정에 있는 월간지를 주일학교 시간에 아동들이 가지고 가게하여 학생들이 읽어보게도 하시고 물어 보기도 하시고 선생님이 직접 읽으면서 가르치기도 하는 방식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2. 주일 학교 선생님들은 언제나 학생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아동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면서 이 시대에 예수님 밖에는 세계를 통치할 이가 없고 분명히 주님이 세상에 오실 때가 이때라는 것을 언제나 말할 때에 반드시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중점으로 말해야만 될 것입니다. 계속으로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먼저 공과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알도록끔 하는 공과가 나올 것입니다.

  3. 학생들에게 예배 시간을 엄수하도록 하되 언제나 학생들에게 금년부터는 호소 기도를 시키되 국가에 대한 문제를 놓고 호소하도록 하는 것이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어린이들이라도 진리 반공 사상이 들어가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의 억울한 사정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충격을 받도록 하여서 내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되겠다고 생각이 나도록 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에 제일 훌륭한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아동들에게 넣어 주어야만 될 것입니다.

 

 

4. 새해 새 출발에 네 가지 엄수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예배 시간 엄수

  금년부터 예배 시간을 엄수하되 특히 대예배 시간에는 정식 시간을 범하는 자가 없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적어도 정식 예배 30분 전에 교회에 와서 준비 성가를 불러서 마음의 준비를 갖도록 하여야만 되겠습니다.

 

  2. 주일 엄수

  우리는 모세 율법의 정신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할 때에 율법에 의하여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법에 의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주일을 지키는 자가 예배를 통하여 큰 축복이 올 것을 믿고 예배 시간을 지킨다는 것보다도 주일을 지킨다는 것보다도 좀더 들어가서 주일날에 부활하신 주께서 내게 큰 축복을 나릴 것을 믿고 사58:13~14에 있는 말씀과 같이 오락이나 사사로운 말을 금하고 그날에 존귀성을 가지는 동시에 주님의 영광이 나타난 그날이 즉 나의 생명이 살아난 날로 믿고 그날을 통하여 내게 성산의 축복을 받는 역사가 올 것을 믿고 예배해야 될 것입니다.

  반드시 하루 쉬는 날로 생각지 말고 새로운 힘을 받는 날로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3. 십일조 엄수

  십일조는 말라기 3장을 보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땅 축복을 받을 자에 대하여 언약의 법으로 세운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진노의 날에 온 가정이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진리를 믿고 그 진리에 의하여 신앙으로 바치되 이것은 엄격한 법으로 알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4. 월간지 말씀을 엄격히 지켜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월간지는 매달 그때 그때에 위에서 보내는 말씀을 받아 기록해 보내는 하나님의 변론이오니 이 글을 내 신앙 발전에 만나와 같은 양식으로 알고 한달 동안에 그 말씀을 가지고 신앙 지침을 삼도록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앞으로 더 명랑한 말씀이 변론으로 올 것이며 월간지 출판하는 일을 내일 같이 알고 조금도 이 인쇄 사업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야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새일 중앙 교회 강단에서 성탄절날 직접으로 나려온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이 네 가지를 엄수하신다면 새해부터 누구나 큰 축복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