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9월호)

설  교  편

 1. 증거를 마칠 때에 일어날 전쟁 (계11:6~7)

 2. 하나님의 선택과 영광 (사48:9~11)

 3. 충성된 증인 예수 (요18:33~38)

 4.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 (사66:1~4) 

 5. 진리와 인도 (시42:9~43:5)

 6. 결코 정죄함이 없는 역사 (롬8:1~2, 34~35)

 7. 재앙 중에 여호와를 앙망하자 (미7:1~12) 

 8.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미3:11~12, 7:7~13) 

 9. 기도와 전도의 열매 (골4:2~6)

10.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 (마25:1~13)

11.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 (요일3:1~9)

12.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사51:1~3)

13. 주의 날을 사모하는 성도의 기도 (빌1:9~12)

14.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롬8:3~11)

 

장년 공과편 - 교회 발전의 위력

제1과  인간 권력으로 막을 수 없는 위력 (행5:17~32) 

제2과  교회 지도를 바로 하므로 발전 (행6:1~7)

제3과  순교와 발전 (행7:54~8:8)

제4과  사울의 회개와 교회 발전 (행9:1~18)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과  예수님의 승천을 본 사도들 (행1:6~11) 

제2과  성신 충만 받은 사도들 (행1:12~14, 2:1~4)

제3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 (행2:29~42)

제4과  이적과 기사를 행한 사도들 (행2:43~47, 3:1~10)

 

논 설 편

1.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2.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의 할 일 

3.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

4.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

5.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 

 

신 앙 문 답

1.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고 바로 지켜 나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 기독교 안에 여러 가지 교파가 생겼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가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3. 새일 교회라고 간판을 붙이는데 이 새 일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4. 성경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완전한 다림줄을 잡을 수가 있습니까?

5.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역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성산을 찾은 9월

2. 광  고

※ 여호와새일 교단 (제4회 정기총회 촬요) 

 

 

 

 

 

 

 

 설 교 편

 

증거를 마칠 때에 일어날 전쟁

- 계 11:6~7 -

 

  이날까지의 전쟁은 하나님의 사람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요, 세상 사람이 세상을 대적할 때에 정치적인 야욕을 가진 소위 영웅이라는 사람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1차 전쟁도 세계 통일을 꿈꾸는 정치가가 독일에서 일어나므로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났고, 2차 전쟁이 일어날 때에도 소위 대동아 건설이라는 꿈을 꾸고 나오는 자가 불법적인 전쟁을 일으키므로 일어났는데, 1차나 2차나 정치적인 야욕을 가졌던 자가 망하고 결국은 민주주의적인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세계를 사상으로 정복하려는 짐승의 정책은 계시록 13장과 같이 붉은 용의 권세를 받아 가지고 나오므로 하늘 권세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는 그 권세를 막을 자는 전혀 없게 된 것을 인류 종말의 주 재림기에 오는 환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를 놓고 나오는 사상전이므로 자동적으로 마지막 증인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참된 종만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하여 인력으로 당할 수 없는 마귀 권세를 받은 짐승을 들어서 교회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둘째 :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지막 승리를 이루어 성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마귀의 권세를 개방시키는 것이다.

  셋째 : 증인권세로 세계를 통일하기 위하여 증거를 마칠 때에 전쟁이 일어나게 한다.

  여기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게 된다.

 

  1. 하늘에서 비가 오지 못하게 하는 일 (6상반절)

  이것은 기독교 영계를 통일시키는 역사다. 지금은 종말의 진리가 혼선되었다 하여도 십자가 도에 의하여 영계가 좌우되므로 영계 문제가 혼란치 않고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영들은 중생의 은총을 받게 되었지만 인간 종말의 역사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서 이슬같이 단비같이 역사가 내리므로 영,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때가 된다(미5:7~9).

  그러므로 본문은 권세를 맡긴 증인에게 영권을 맡기므로 그 증인이 영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뜻했다. 증인이 영권을 받았으므로 그 증인을 통하지 않고는 역사가 나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두 증인에게 권세를 맡겨서 증인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종말의 혼란한 영계를 통일시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아무 사람에게나 그 역사를 나리지 않고 그 증인의 증거하는 예언에 따라서 새로운 역사가 내리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 십자가를 증거하는 사람을 통하여 중생의 역사가 내리듯이 기독교 종말에는 증인에게 준 예언의 말씀에 의하여 새로운 역사가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예언대로 이루어진 십자가를 통하여 중생의 역사가 내리게 되고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증인권세의 역사로 새로운 역사가 나려 세계를 영적으로 통일시키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요, 위에서 증인을 세워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대적인 법을 따라 역사할 때에 종을 들어서 쓰신다. 율법 시대에는 율법을 받은 모세에게 전권을 맡겼고 은혜시대에는 십자가 부활을 보고 증거하는 사도들에게 권세를 맡겼고 인류 종말에는 예언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은 종에게 권세를 맡기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으로 땅을 치는 일 (6하반절)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재앙이 아니고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어 그 세력 아래서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모세를 들어서 육적 이스라엘을 바로의 악정 아래서 찾아내듯이 십자가의 권능으로 마귀 권세 아래서 죽은 영들을 구원하듯이 마지막 악의 세력인 짐승의 정권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마귀 권세 아래서 당신의 백성을 찾아내기 위하여 율법시대에도 은혜시대에도 환란 시대에도 역사하는데 특히 마지막 역사는 모든 백성을 짐승의 악한 정치 아래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재앙으로 땅을 치며 원수의 나라로 진격해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붉은 짐승의 나라에까지 전하게 되는 일이다.

 

  3. 전쟁을 하게 되는 일 (7)

  이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를 위하여 싸우는 전쟁이 아니고 세계 통일의 왕국을 놓고 짐승과 싸우는 전쟁인데 짐승은 자기가 세계 통일을 할 것을 확신하고 나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람은 짐승을 이기므로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확신하고 싸우게 되는 것이다. 증인권세 역사로 짐승의 나라를 정복하고 들어갈 때에 모세 앞에서 바로가 발악을 하며 엘리야 앞에서 이세벨이 발악을 하듯이 마지막 증인 앞에서 짐승의 정권이 발악을 하고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는 짐승을 없애 버리는 심판을 내릴 때가 아니고 끝까지 싸우던 종을 휴거 시킬 때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략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종을 죽은 자 같이 쓰러지게 한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아들을 죽게 한 것도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계를 통일할 목적이요 마지막 증인이 쓰러지게 하는 것도 그 증인을 통하여 세계를 통일하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마지막 심판은 증인이 증거하던 예언에 따라서 심판하는 것이다. 그 예언을 지키는 자를 구원하고 지키지 않는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마칠 때에 증인을 휴거시키고 세상을 짐승에게 맡기게 된다.

  이때에 아무런 환란이 와도 예언을 지키는 자는 보호하고 지키지 않는 자는 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하신 후에 도둑같이 지상 강림하면서 증인의 예언을 지키는 자는 구원하고 지키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전멸시키는 것이 새 시대를 이루는 재앙 심판이라는 것이다.

 

  결    론

  인류 종말이라는 것은 증인권세로 마지막 싸움을 싸우게 하여 증인을 따라오는 자는 새 시대에 들어가고 짐승을 따르는 자는 전멸시키므로 세상 나라가 성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증인권세 역사로 짐승의 세력을 대항해 싸워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증거를 마친 후에는 들림을 받게 하고 지상통치가 이루어지는 날에는 세계를 심판하되 짐승의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인 자들은 없이하고 머리를 숙이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는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영광

- 사 48:9~11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영광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모태로부터 택하는 일도 있고 시련 가운데서 택하는 일도 있다.

  첫째는 구원하기로 택한 것이니 모태로 택한 것이요,  

  둘째는 영광을 주기로 택한 것이니 이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종말의 영광을 누리도록 쓰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선택과 영광에 대하여 증거한다.

 

  1. 이름을 위하여 참으심 (9)

  하나님께서는 종을 들어 쓰고자 할 때에 여러 가지 실수가 있다 하여도 중심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당신의 영예를 위하여 참고 멸절 하지 않으시면서 종을 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라도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르는 기간을 두신 것이다.

 

  2. 연단을 시켜 보고 택하심 (10)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 다음에 여러 가지 연단을 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나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만 의지하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완전한 인격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단을 준 후에 하나님은 맹세를 세워 그를 축복하시고 그에게 준 언약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므로 그 약속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연단 시킨 것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을 종들도 연단을 주고 연단 속에서 다시 택해서 왕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사명을 맡은 자는 많으나 연단 속에서 완전히 인정을 받고 왕권의 영광을 받는 자로 택해지는 사람은 적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연단을 받고 거기서 완전히 택함을 받아 영광의 반열에 드는 자이다.

 

  3. 연단 받은 자에게 영광을 주심 (11)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시켜 보시고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연단을 시키는 목적은 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니 연단을 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영광을 주는 것도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 중에서 말세에 귀하게 쓰려고 택한 사람은 더 연단을 주어서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함께 자라는 나무 가운데서 귀하게 쓰기로 택한 나무는 찍어서 깍고 아름답게 다듬어서 귀한 위치에 쓰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자일수록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연단을 시키는 것은 사랑의 징계이다(계3:19).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나를 세운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골1:24).

  주님께서 이날까지 왕권의 영광을 준비한 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종들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도 그 영광을 받을 사람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은 길이 참고 계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자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종들로 지상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이것은 내게 영광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인 줄 알고 오히려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가는 것을 신앙 정로라는 것이다.

 

 

충성된 증인 예수

- 요 18:33~38 -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증거하시므로써 만왕의 왕이 되셨다(계1:5). 만일 그리스도께서 충성된 증인의 한 사람으로 죽기까지 싸워 승리하신 일이 없다면 진리는 이 세상에 널리 전파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충성된 증인으로 승리하셨으므로 모든 종들은 그 증거를 대행하는 것뿐이다.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순종했으니, 다음에 따라가는 자녀들도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왕권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이제 충성된 증인의 증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말한다.

 

  1. 세상 나라를 초월한 것이다 (33~3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절대로 내가 원수에게 피해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세상 나라는 마귀에 속한 것이니 예수님이 인간 죄를 짊어지고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죽는 제사가 있음으로써만 하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원수에게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큰 실패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 그 아들 하나를 죽게 함으로 세상의 마귀를 없앨 권세를 이룬 것이다.

  천국이라는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가 없다면 그 나라를 도저히 이룰 수가 없다. 원수들은 자기네가 승리하는 것 같이 예수를 죽였지만 결국은 마귀를 없애는 일을 마귀가 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자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므로 마귀가 없어질 승리의 왕권이 이루어진 것이다. 언제나 참된 증인은 세상 마귀와 싸우는 세상 나라에서의 승리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이요. 충성된 증인으로 주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게 될 때에 세상 나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2. 참된 왕이시다 (37상반절)

  세상의 왕이라는 것은 참된 왕이 아니므로 그 왕권은 다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참된 왕이라는 것은 영원한 왕이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는 왕이라는 것을 증거했던 것이다. 왕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서 승리한 왕이 아니고는 영원한 왕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왕권을 위하여 죽기까지 싸웠던 것이다. 세상의 어느 왕이나 자기의 정권 야욕을 가지고 싸우다가 정권 야욕을 가진 자에게 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죄를 지었으므로 죄로 말미암아 자기가 남을 피해를 준 것 같이 자기도 피해를 당하는 것이 인간의 왕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의 왕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했으므로 살려 주는 왕으로써 왕국을 이루게 되니 원수가 없는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왕은 그리스도밖에 없고 그 밖의 순교자들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싸우던 자들이 세계를 통치하는 왕국을 말한다.

 

  3.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오신다 (37하반절)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인데 충성된 증인은 예수님이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으로 목적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이 날까지 증거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증거한 말씀을 세계 만방에 전한 것뿐이다(사42:4). 예수님은 만민을 살리는 일을 하셨으므로 만왕의 왕이 되고 그 밖의 증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진리로 인도해 주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므로 만왕의 왕국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가장 큰 일은 진리를 위하여 증거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에 와서 진리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으로 목적을 둔 것이니 사람이 세상에서 진리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 외에 더 큰 일이 없는 것이다. 참된 증인이라는 것은 참된 진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증거한 자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간교한 마귀를 낸 것은 참된 진리를 증거해서 마귀를 이긴 자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결    론

  인생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이 참된 증인이요, 가장 귀한 일이 충성되게 증거한 것이요, 가장 귀한 영광이 충성된 증인이 누리는 세세 왕권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고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도 충성된 증인으로 세상을 마친 것이다. 인생이 세상에 났다가 진리를 위하여 살지 못하고 빵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요, 진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것은 가장 존귀한 영광인 것이다.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

- 사 66:1~4 -

 

  기독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종교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권고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열매가 있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오히려 저주를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본 장의 말씀은 심판기에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를 두고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권고하며 어떠한 사람을 권고하지 않는가 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자 (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권고하기를 기뻐하시되 무조건 권고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자라야 권고하신다.

  첫째 :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둘째 : 심령에 통회하는 자이며,

  셋째 : 말씀에 떠는 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합당치 않게 생각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따라서 일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도저히 권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어떤 고집이나 주관을 버리고 자기 마음보다도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만을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교통하는 것은 심령이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합당치 못한 생각을 가진 것이 없이 자기 부족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만 아는 마음 가운데 지은 죄를 항상 통회할 때에 하나님은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을 권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육의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에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고 외모를 보기 때문에 사람이 보는 도덕적인 행위로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심령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아무리 도덕적인 행위는 옳다하여도 마음 가운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다. 오히려 도덕적인 행위는 부족하다 하여도 심령 통회가 있는 사람은 권고할 것이로되 도덕적으로 행하는 일이 옳게 보여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볼 때에 외식하는 자로 보기 때문에 가까이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므로 진리를 숨김없이 사람에게 깨닫도록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방심하고 존중히 생각을 하지 않고 떠는 마음이 없다면 말씀대로 준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할 때에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한 것보다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데 있어서는 마음에 아무런 욕망이 없이 하나님이 참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바라보고 항상 마음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삼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공장의 주인이 계획하는 것을 직공이 무시하고 자기의 주관을 내세운다면 그 공장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든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보다도 자기 주관을 내세우는 자라면 그 사람의 제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권고하시지 않는 자 (3~4)

  하나님 앞에 아무리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그 제사를 가증히 보게 되는 것은

  첫째 : 자기의 길을 택하는 일과

  둘째 : 가증한 것을 기뻐하는 일과

  셋째 : 순종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제물을 드려도 그 제물을 살인함과 같이 더러운 개같이 돼지의 피와 같이 여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물보다도 진리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보다도 자기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보다도 오히려 마귀가 역사하는 그 일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도저히 역사를 나릴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가 성신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도 세상의 오락적인 기쁨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세상 노래를 좋아한다면 하나님은 성신을 부어 주는 것보다도 유혹을 그들에게 부어 주고 평강보다도 두려워하는 일을 그들에게 주어서 항상 공포 속에서 허덕이는 생활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적에 하나님도 그 예배를 받을 수 없이 되므로 오히려 헛된 예배를 드리다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 부패라는 것은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을 적에 자동적으로 부패한 교회가 되어 멸망을 자취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은 당신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당신의 말씀을 청종치 않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제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때에 모든 일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권고치 않을 적에 모든 일이 재앙의 날에 그 재앙을 면치 못하는 일이 되므로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망하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에 대하여 이 본문에서 깊이 깨달아 헛된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예배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인격과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진리와 인도

- 시 42:9~43:5 -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를 인도할 때에 진리가 없이 인도하는 일이 없고 먼저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범위에 숨어 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시대적인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되면 그 진리대로 주의 인도가 같이하고 그 진리를 널리 전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동시에 진리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진리와 인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낙망 속에서 도움을 받게 됨 (9~11)

  누구든지 진리를 따라가는 길에는 원수의 비방과 압제가 같이 하므로 낙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닥쳐오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도움을 진리대로 체험을 받게 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자식들에게 압제를 받게 되고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진리대로 인도를 받게 되는 종에게는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찬송을 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진리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그 진리를 더 확신하고 그 진리대로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2. 판단 속에서 건져냄을 받게 됨 (43:1)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은 진리대로 판단하는 역사가 있게 될 때에 오히려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씀대로 판단을 내릴 책임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아무리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둘러싼다 하여도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에게 간사하고 불의한 자가 대적을 하게 하면서 판단을 나리는 것은 진리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3. 연약한 중에서 힘을 얻게 됨 (2)

  하나님께서 진리를 따르는 자를 연약한 자리에 버려두시는 것은 당신의 능력으로 역사할 때가 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슬픔 속에서 여호와의 힘은 홀연히 그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4. 진리대로 성산에 이르게 됨 (3)

  진리라는 것은 성산에 이르기까지에 목적을 두고 약속한 말씀이니 그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라면 아무런 환란이 온다 하여도 결국은 성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게 가장 복된 길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아 성산에 이르는 것이다.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은 받을 자가 심히 적으므로 언제나 망할 자들에게 억울하게 압제를 받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5.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됨 (4~5)

  지극히 즐거운 일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인도하시되 극도로 즐거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택한 자를 마귀의 자식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받게 하는 것은 극도로 즐거운 일을 하나님과 같이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귀의 자식들에게 괴로움을 받게 되고 복을 받을 사람도 괴로움을 받게 해서 함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결    론

  진리는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그 진리를 믿는데 진리를 가진 하나님은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인도하고 진리대로 성산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자는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슬픈 것 같으나 오히려 찬송을 하게 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심히 적고 진리의 대적이 되는 마귀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리의 인도를 따라는 자가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고독한 생활에서 슬픔을 당하게 되는 것이 망할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극히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는 당신의 백성이 영광을 받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결코 정죄함이 없는 역사

- 롬 8:1~2, 34~35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역사하시는 일은 죄를 없이 하고자 하여 아들을 죽게 하신 것이니 결코 정죄하지를 않고 역사하시므로 당신의 뜻을 완전히 이루시되 다음과 같이 하신다.

 

  1.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는 역사 (1)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불러서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역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택한 자를 친히 찾으시는 역사로,

  둘째는 강하게 붙들어서 인도하시는 역사로,

  셋째는 완전히 은혜로 다스리는 역사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어려운 일이 올수록 어린이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절대로 택한 자를 당신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역사하되 신자의 마음이 조금도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세상의 쓴잔을 주어서 시련을 시키는 일도 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품안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징계하는 일이 있다(계3:19~20).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당신이 친히 십자가에 죽은 피의 공로로 얼마든지 용서하는 법을 세우신 것은 죄를 범해도 품에 안아 준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택한 자를 다스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승리가 없다면 죄인을 불러서 자기 안에 둘 수가 없을 것이로되 택한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택한 자를 강권으로라도 당신 품안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2. 성신의 법으로 행하는 역사 (2)

  성신의 법이라는 것은 생명의 활동으로 역사하는 것인데 십자가 해방의 역사이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어지도록 하는 것도 성신의 법이요, 죄를 이길 수 있게 역사하는 것도 성신의 법이니, 성신의 법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무조건 역사하는 법이다.

  십자가라는 것은 불택자를 위한 십자가가 아니요, 택자를 위한 십자가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에 벌써 택한 사람을 구속하는 제사가 완성되었으므로 택한 자를 강권으로 성신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신을 찾아서 받는 것이 아니요, 성신이 택한 자에게 강하게 역사하기 위하여 다스리시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죄를 고의적으로 짓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라는 것은 우리가 구할 때에 역사하는 것보다도 구하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이니 택한 자는 십자가의 의가 믿어지면서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심령을 통하여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사람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에게 성신의 법이 해당되므로 택한 사람은 그 법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결심이 아니요, 자기도 모르게 성신에게 이끌려서 믿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택한 자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고 정죄에 이르지 않도록 성신의 법이 그를 다스리는 것이다.

 

  3. 사람이 정죄할 수 없는 역사 (34~35)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정죄하지 않고 성신의 법으로 다스릴 때에 어느 사람이나 그 사람을 다스릴 권리가 없고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만일 기독교 신자가 어떤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든지 어떤 사람에게 정죄를 받아 은혜가 떨어진다든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택한 자를 위하여 간구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간구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첫째는 범죄가 있어도 기도하시고,

  둘째는 위험한 일을 당해도 기도하시고,

  셋째는 크게 역사할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택한 자를 정죄할 수는 없다. 아무리 훼방을 하고 거짓말로 음모를 꾸민다 하여도 결국은 그를 들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일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일이다. 죄가 있어도 책망을 할지언정 절대로 정죄하지 않는 사랑과 죄를 이기도록끔 역사해 주는 사랑과 남을 사랑하도록끔 역사해 주는 사랑과 그리고 남을 가르칠 수 있도록끔 역사해 주는 그 사랑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에게만 오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역사는 불택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어떤 자가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택한 자를 죄를 짓지 않도록 해서 거룩한 자녀를 삼으며 거룩한 종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정죄하지 않는 역사라는 것이다.

 

 

재앙 중에 여호와를 앙망하자

- 미 7:1~12 -

 

  인류 종말의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세상에 재앙이 오는 순서는 먼저 선한 사람이 세상에서 끊쳐지고 정직한 자가 인간 중에 없으므로 도저히 정치인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며 이웃이나 친구나 집안 사람까지 믿을 수가 없는 인심 악화의 혼란기가 오는 것이다. 도저히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심 악화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오는 과정이니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다음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1~6).

 

  1. 응답을 받게 된다 (7)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낙심하지 않고 당신을 바라보는 자에게 응답을 나리신다. 예를 든다면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이 쓰러진 사람이 나를 일으켜 달라고 할 때에 일으켜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없는데 도와 달라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그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무소불능의 하나님의 역사는 난국을 당하는 자에게 그 능력을 베풀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난국을 당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강하게 임할 필요가 없을 것이로되 난국을 당한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호소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역사를 나릴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극도로 악화되고 도저히 믿을 사람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2.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된다 (8)

  하나님께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킨 것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특별한 역사를 나려 넘어져도 일어나게 하시고 아무리 흑암이 덮인 곳이라도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도저히 난국을 돌파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에게 돌파할 수 있게 응답을 내리므로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으로 새 시대를 이룰 작정이므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켜 택한 자를 시련시켜 보는 것이다.

 

  3. 광명에 이르도록 인도하게 된다 (9)

  아무리 범죄를 하였다 하여도 재앙의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께서 광명한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인도하는 일이 있게 된다.

 

  4.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10)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들어서 강한 대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쓰러지고 넘어지는 자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를 강하게 들어 쓰시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하신다. 아무리 모세가 원수에게 죽을까 무서워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이 변치 않을 적에 그를 들어서 원수를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리고 원수가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 일이 있었다. 엘리야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를 이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앙의 날에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백전백승의 용사가 되도록 들어 쓰신다는 것이다.

 

  5.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루게 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왕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 사람으로 원수를 이기게 하므로 원수의 나라까지라도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 앞에 굴복을 당하게 하여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굴복하고 돌아오므로 세계 통일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의로운 통치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이 따라 오도록 역사하시므로 평화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게 한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 역사는 악한 세상에서 외로운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서 대적을 이기게 하므로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을 들어 쓰는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 미 3:11~12, 7:7~13 -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심이 있다 하여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화를 받을 일 (3:11~12)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진노의 날에 화를 받을 자는 소위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라 하면서 돈을 위하여 점을 치는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를 의지하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신념을 가진 자이다. 이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성직을 직업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성직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것보다도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 생활의 무대를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는 사람에게 삯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목적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마6:1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벌써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되므로 이러한 자의 기도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을 수 없고 사단의 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지 못하고 삯군을 위하여 한 직업화되는 단체가 될 때에 거기에 있는 양떼들은 오히려 이용을 당하는 일 밖에는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다면 그 교훈은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는 일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자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되니 그 교회는 진노의 날에 황폐화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될 수도 있고  삯군을 위한 한 단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삯군을 위한 단체라는 것은 거기에 따라가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경외하여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물을 섬기고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한 학과에 불과한 것으로 말씀의 아무런 역사를 체험치 못하고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그 신앙이 의식화되고 한 고질화된 형편에서 그것을 신앙 정로로 아는 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단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교권과 물권과 인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둘째 : 이러한 자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영적 문제보다 육적 생활의 한 방편으로 이모저모로 유익을 보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과거의 발람이가 하나님을 찾았지만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보다도 자기의 명예와 안락을 따라가는 교훈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이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서도 이것을 오히려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종을 받드는 것보다도 그 종의 역사를 시기하여 막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을 바라보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은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일 (7:7~13)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할 사람은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나가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가지 난관을 당해도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의지하고 싸워 나가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첫째 : 엎드려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일이요,

  둘째 : 흑암이 온 땅을 덮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빛을 찾는 일이요,

  셋째 : 범죄가 있다 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자는 대적을 진흙같이 밟고 나가는 용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많은 대중을 구원하는 일이 있게 된다. 이러한 용사의 영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넘어졌다는 것은 용기있게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돌진의 걸음을 걸어 가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어떤 군대는 자기가 위험하다고 도망을 가서 숨은 자도 있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 나갈 때에 부상을 당한 자도 있을 것이다. 이때에 용사는 부상을 당했다 하여도 용기있게 싸운 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삯을 받아먹고 평안히 지내는 자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라면 강한 원수에게 쓰러지는 일이 있다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흑암을 뚫고 나가는 종으로서 흑암의 세력이 그 종을 덮고 나온다 하여도 그 자체가 흑암에 빠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종에게 흑암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의 역사를 주시는 것이요,  사람이 볼 때에 실수하는 범죄가 있다하여도 중심과 사상이 바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버리지 않고 더 강하게 들어 쓰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시는 당신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되 조금이라도 자기의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라면 중심을 보시고 들어쓰시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무리 베드로가 원수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모든 성직자보다도 더 강하게 들어 쓴 것이다.

 

  결    론

  어떤 종이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여도 자기의 안락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기 위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도와 전도의 열매

- 골 4:2~6 -

 

  기독교의 전도 운동이라는 것은 합심 기도가 없이는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도라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서 잃었던 백성을 찾아내는 것이니 아무리 사도 바울이 위대한 역사를 했다 하여도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는 봉사가 없었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봉사가 있으므로 큰 열매가 나타난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기도와 전도의 열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기도에 항상 힘쓰므로 (2상반절)

  기도라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믿음에서 항상 힘써야 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둘째 :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 위하여.

  셋째 : 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일이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 하여도 이 세 가지를 목적으로 하고, 항상 힘쓰는 것이 없다면 역사가 따르지를 않는다. 기도라는 것은 분량이 많으면 역사가 강하고 분량이 적으면 역사가 적고, 분량이 없으면 역사가 없는 것이다.

 

  2. 기도에 항상 감사하므로 (2하반절)

  기도라는 것은 항상 감사할 조건에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요,

  둘째 : 기도를 하므로 얼마든지 받게 되는 일이요,

  셋째 : 기도를 하므로 왕권을 받게 되는 일이다.

  기도라는 것은 감사의 생활이 있게 되므로만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내는 열매가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불평이 있다든지 정욕이 있다든지 의심이 있다든지 하면 이 사람의 기도는 상달될 수 없고, 그 마음에 죄가 있으니 이 죄를 회개할 조건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마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할 때에는 벌써 마음에 승리가 있는 것이니 그 기도는 남을 구원해 주는 열매가 있게 된다.

 

  3. 사명자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므로 (3)

  기도라는 것은 사명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사명자에게 역사를 나린다. 왜냐하면 사명이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 동일한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접으로 말씀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참된 종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따라서 그 종을 들어 쓰되 기도를 하는 자나 말씀을 전하는 자나 동일하게 인정한다.

  어떤 사람이 사명이 크다 하여도 그 사람 혼자서는 할 수 없겠지만, 여러 사명자가 도와주므로 되는 것이다. 바울은 전도 문이 열리는 것도 입이 열리는 것도 다 신앙 동지의 기도로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왕국 건설의 한 단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기도의 열매로 모르는 백성들에게 그 시대의 비밀을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니 항상 은혜 가운데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가 있게 된다. 기도라는 것은 예를 들면 화약과 같고 말씀은 탄알과 같다. 아무리 탄알이 있다 하여도 화약의 분량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과 같이 말씀의 운동이라는 것은 기도가 분량이 차므로 그 말씀이 능력 있게 나가므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열매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역사를 나리는데 있어서는 기도에 따라 나리기 때문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성취시키는 일이니 예수님은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열매가 되었고, 모든 사도와 성도들도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것이 열매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명을 계대하는 것이니 그들의 기도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고 그들의 전한 복음이 열매가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

- 마 25:1~13 -

 

  주께서 가장 중대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씀하실 때에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가르쳐서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도 중대한 일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대 사업을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이 되어 실천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일 큰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의 말씀으로 증거한다.

 

  1. 지혜로운 일 (2, 4)

  지혜라는 것은 그 이치를 바로 알아 그 이치에 꼭 맞도록끔 하는 일을 지혜라는 것이다. 등불이라는 것은 기름이 많기 전에는 완전한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아무리 등이 있다하여도 기름이 없이는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등불을 드는 것으로 만족을 삼는 것이 아니요, 앞으로 그 불이 꺼지고 꺼지지 않는 것을 큰 문제로 알았던 것이다. 무엇이나 앞으로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일은 시작을 했다 하여도 결국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등불이 어두운 밤에 필요하다고 아는 것이 완전한 것이 아니요, 이 등불이 밤에 절대로 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완전일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며 실천에서 완전히 목적을 이루는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헛된 일을 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 결과를 목적으로 두고 나가는 것인데 그 결과를 이룰만한 준비가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계속하여 은혜를 나리는 것은 앞으로 완전한 열매를 이루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누구든지 앞으로 여러 가지 난제를 돌파하고 나가겠다는 결심에서 구할 때에 그 난제를 해결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된다. 우리가 쉬지 않고 일하는 목적은 완전 열매를 이루자는 것인데 열매라는 것은 주님 재림시에 일한 대로 갚아주는 그 날에 가서야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말씀을 세밀히 가르칠 적에 재림의 주가 오는 날에 남은 종으로서 하여야 할 문제를 제일 큰 문제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선지서 전체를 보면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 맞이하는 것을 세밀히 말하지 않았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종들의 역사가 잘못 되지 않도록 세밀히 말씀해 놓았다. 영혼 구원이라는 것은 죽은 영이 중생 받는 시간에 얻는 것이요, 하나님의 종들이 앞으로 오는 어려운 문제를 돌파하고 나가서 새 시대를 완전히 성도의 나라로 이루어 놓는 것을 큰 문제로 말씀한 것이 여호와의 책이다.  

  모든 성도의 기도는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므로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니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도 재림의 주가 오는 날에 될 일을 큰 문제로 여기시는 주님께서 비유로 가르친 말씀이다. 언제나 성신의 역사는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맞이할 인격을 완전히 이루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2. 어리석은 일 (3, 5~9)

  어리석은 자라는 것은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방심하고 있다가 일이 이루어질 적에 급하게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 자이다. 이러한 자들은 앞으로 올 문제를 깊이 생각조차 하지를 못하고 그때 그때 임시 평안을 따라가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런 준비가 없이 그날 그날을 허송 세월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활이다. 누구든지 자기 앞에 급한 일이 올 때에 잘못을 깨닫는 것은 다 가지는 일이지만 앞으로 올 문제를 위하여 완전 준비를 갖추는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심히 적다.  

  주님께서 제일로 기뻐하지 않고 노여워하실 사람은 앞으로 오는 어려운 문제를 등한히 알고 방심과 태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중대한 일을 놓고 노심초사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내 되는 사람이 여기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등한히 알아 남편의 보조를 맞추어 주지 않는 다면 남편에게 그 아내는 큰 원수같이 여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처녀는 신랑을 노엽게 하는 처녀라고 볼 수 있다.

 

  3. 주의 날에 큰 문제가 되는 일 (10~13)

  인간에게 제일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주의 날이다. 지금 인간들은 큰 문제를 문제로 생각지 않고 작은 문제를 문제로 알고 날뛰고 있다. 어리석은 자들은 문을 닫은 후에야 열어달라고 하는 자인데 이러한 자들은 후회 막심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문을 닫기 전에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준비한 자들이 기뻐할 날이 올 때에 때를 잃은 자들은 다 슬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준비가 없이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같이 보이지만 주의 날이 올 때에 가장 지혜로운 자는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자이다. 지금 세상은 쉬지 않고 준비하는 자들을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로 보는 것이다. 주의 날에 주님을 맞이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가 제일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자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가르친 것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이다. 이것은 절반만 준비하게 된다는 말이 아니고 준비가 있고 없는데 따라서 어리석고 지혜롭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결    론

  인간 종말의 비극은 어리석은 자에게 있고 가장 즐거운 일은 지혜로운 자에게 있다는 것을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우리는 기름과 등을 준비하는 인격을 가장 복되고 존귀한 인격이라고 본문을 통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역사할 수 있는 완전 무장이 없는 자라면 도저히 남을 수가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의 날이라는 것은 흑암의 날이므로 완전 준비를 가진 자 외에는 남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

- 요일 3:1~9 -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은 완전 성결의 인격을 이룬 자로써 거룩한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서 쓰신 것은 마귀를 이기는 자를 완전히 성결에 이르른 인격으로 인정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과 성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사랑 (1)

  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고싶은 심정을 가지시고 인간이 그 심정을 알게 하는 동시에 실천적인 증거를 나타낸 사랑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의 비밀은 세상과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세상이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없는 악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명분을 얻게 된다는 것은 그 은혜를 받은 자 밖에는 알 자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사랑을 받아 자녀가 된 자는 깨닫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도 있게 되는데 그것은 거룩한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한 데서 세상에 대적이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의 택함을 입은 자 인고로 미움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요15:19).

 

  2. 왕권을 받게 하는 사랑 (2~3)

  하나님의 사랑의 한계는 죄인을 불러서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는 것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고 거룩한 당신의 아들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해서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성결은 마음에 두지를 않고 한 죄인의 한 사람이 되는 자리에서 만족하여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워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같이 왕권을 누리는 단계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순교자들은 재림의 날에 완전한 구속을 받는 몸이 될 것을 바라보고 순교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다.

 

  3. 죄를 없이하는 사랑 (4~5)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용납하는 사랑이 아니고 죄를 없이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체험을 받으려면 죄와 싸우는 생활에서 자신의 죄의 근성까지 없이할 것을 믿고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를 없이하는 역사를 하시므로 거룩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행함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죄를 없이하는 그 사랑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4.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랑 (6~8)

  어떤 사람이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마귀의 일을 용납한다면 거짓 영의 미혹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조금도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마귀의 일을 없이하는 주님의 역사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 때에 사랑의 씨를 먼저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사랑을 가지셨으므로 말로만 거룩하게 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고 거룩한 씨를 주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를 이길 수 있는 씨를 주어서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 사 5 1:1~3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행하신 일은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대로 복을 받을 종들에게 준 교훈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복을 받을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사람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볼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종하는 생활을 함 (창12:1~4)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사람을 세울 때에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큰 사명을 맡은 사람이 철저히 순종하는 일이 없다면 대중을 지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하셨던 것이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용기있게 말씀을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만일 세계적인 사명을 걸머진 아브라함이 용기있게 걸어 나가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대 사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로되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을 할 때부터 하나님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개척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말씀대로 시행하시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브라함은 어리석은 자 같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와 같이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2. 순종의 제사를 드림 (창22:9~12)

  아브라함은 순종이 제물 보다 낫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로 번제를 드리라고 할 때에 용기있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아들을 제단에 놓을 적에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한 제사로 인정을 하고 그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금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인정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하셨다. 우리의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치기 전에 순종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맡은 자는 조금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해 나갈 때에 우리가 죽지 않았어도 주를 위하여 죽은 것과 같이 인정하는 것이요, 우리가 바친 것이 없다 하여도 바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물을 바쳤다 하여도 중심에 순종이 없다면 받지 않는 것이요, 완전히 바치지를 못했더라도 끝까지 순종할 때에 바치고도 외식하는 자 보다 더 인정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일을 받들 때에 주인은 그 종에게 물질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시키는 일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순종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당신에게 바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몸을 하나님께 바칠 적에 죽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죽지 않고 순종의 제물로 많은 열매가 있기를 원하신다.

  과거의 순교자들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므로 축복의 죽음을 준 것이요, 살아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변화성도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것과 같이 몸을 완전히 바칠 적에 이삭의 몸을 아껴서 죽이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인정을 하시고 우리의 몸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신 말씀대로 거룩한 씨가 새 시대에 번창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게 됨 (창22:18)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은 네가 내 말을 준행했으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대표적인 아브라함의 순종이 우리에게까지 응답이 미쳐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명적인 일체가 되므로 앞서간 종들의 순종한 열매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는 것이니 그들이 간 신앙 노선을 우리가 생각하고 아무런 시련이 와도 순종할 때에 그에게 약속한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고 아무런 어려운 환란이 우리 앞에 온다 하여도 큰 축복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 끝에 인정하고 세우신 언약은 우리 변화성도로서 환란과 재앙을 만나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사람에게 에덴 축복이 올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되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받으므로 잠깐의 시련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이 올 것이다.

 

 

주의 날을 사모하는 성도의 기도

- 빌 1:9~12 -

 

  우리의 기도라는 것은 주의 날을 사모하는 중심에서 할 때에 그 기도는 완전한 열매를 이루게 된다. 주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나리는 것은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나리는 것이다.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자라야 된다.

 

  1.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해지기를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9)

  오늘날 기독교가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진리의 지식이 없고 영계적으로 밝은 자리에 이르지 못하므로 사랑을 바로 베풀지 못하고 비진리를 사랑하고 참된 진리의 사람을 이단시하며 참된 성신의 역사를 사단으로 알고 사단의 역사를 성신으로 아는 폐단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나리지 않는 일이 많다. 기도는 진리에 의하여 상달되는 것인데 진리의 지식이 없이 영계의 분별도 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바리새 교인의 기도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과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기도해야 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와 같고 오직 진리의 깊은 지식에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만 될 것이다. 기도의 중점이 지식에 있지 않고 헛된 허영심에 있게 될 때에는 기도는 오히려 더 손해를 보는 일이 있게 된다. 아무리 사랑이라 하여도 참된 지식과 총명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 자체가 죄를 이루게 된다.

 

  2. 선한 것을 분별하므로 허물이 없이 되기를 목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10)

  성도의 허물이라는 것은 선한 것을 분별치 못할 때에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그 열심은 허물을 더 많이 내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예를 든다면 길을 가는 나그네가 길을 분별치 못하고 잘못된 길로 열심히 걸어간다는 것은 가면 갈수록 더 불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선한 것을 분별치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 해 나간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심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여도 허무한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보다도 분별할 수 있는 그 일을 먼저 목적으로 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목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11)

  기도의 목적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의의 열매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인간 자체가 행했다는 것이 결부되어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서만 상달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기도라는 것은 하등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불완전한 사람에게 응답을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완전한 의의 열매를 얻고자 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의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여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요구하시는 것보다도 그리스도의 의로써 인간에게 응답을 나려 의의 열매가 되게 하여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흑암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인 의로 치우쳐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중심에서 움직일 적에 그 하는 일은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동을 하는 일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자기의 의를 사람 앞에 나타내려는 자를 통하여 있게 된다.

 

  결    론

  기도라는 것은 이방적인 기도도 있고 성도의 기도도 있으니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는 기도는 다 이방적인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정상적인 기도가 있어야 한다. 푸른 나무의 순이 계속으로 진액을 받으므로 열매가 많듯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아무런 실패가 없이 이르는 성도가 되려면 기도의 세 가지 요소가 항상 있어야 한다.

  첫째 : 점점 풍성해지는 일과,

  둘째 : 허물이 없이 되는 일과,

  셋째 : 열매가 충만해지는 일이 있는 사람은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무장을 갖춘 자이다.

  기도라는 것은 날마다 인격이 완전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날에 칭찬 받을 일을 목적으로 두는 생활에서 기도해야만 될 것이다.

 

 

할 수 없는 그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 롬 8:3~11 -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예정 속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섭리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할 수 있게 지은 것보다도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당신이 역사해 주므로 만 할 수 있게 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로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는 동시에 영광스러운 나라를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지만 지킬 수 없는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사람으로서 다 하나가 되게 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각자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내었다는 것으로 통일을 가져올 수 없고 할 수 없는 인간으로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은혜로만 하나가 되는 거룩한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아들의 몸에 죄를 정하심 (3)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법을 숨김없이 인간에게 알도록 발표한 것이 율법과 계명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죄가 무엇이라고 알려준 것은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고, 죄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려준 것뿐이다. 예를 든다면 의사가 병자 자신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병의 내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병이 있는데 이러한 방법을 쓰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가르친 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그 죄를 없이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오직 독생자의 몸에 죄를 정해서 대신 죽는다는 법밖에 없다는 것을 선지서에 가르쳤으며, 그 법대로 실천한 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죄도 알리지를 않으시고 어떠한 방법으로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도 알리지 않으시고 무조건 역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병세를 알려주는 것도 고쳐 주는 것도 의사가 하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알려주는 동시에 어떠한 방법으로 그 죄를 없이해 준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이 날까지 많은 종들을 희생시키면서 인간의 죄를 걸머진 독생자의 십자가를 증거하게 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도덕에 불과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죄를 아들의 몸에 걸머지게 하는데서부터가 인간에게 나타낼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의인 동시에 독생자의 의며 독생자의 의인 동시에 믿는 자의 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에 끌려가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아들의 몸에 걸머지운 것은 인간에게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발표하는 행동 개시의 역사이다.

 

  2. 성령을 좇아 행하게 하심 (4~5)

  인간은 성령을 좇을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이지만 누구든지 독생자의 거룩한 보혈을 믿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므로 믿게 된다. 죄인들이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거기에 결부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으시는 방법의 하나이다. 십자가의 의는 택함 받은 자를 위한 의이니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가 범죄에 있다 하여도 성신으로 역사해서 책망을 하게도 하시고 징계도 하게 하시어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따라오게 하시는 것이다.

  오순절 성신이 임하실 적에 성신의 책망이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나타날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욕하고 때리던 무리들이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 하고 떠는 마음으로 베드로 앞에 울면서 모여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모든 인간들은 알게 되었다. 성신의 역사가 인간들이 반대하여도 택한 자에게 임하는 것은 택한 자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의로 말미암아 성신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신님께 순종하는 것이 의무요, 그 밖의 것은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역사뿐이다.

 

  3. 성령이 거하게 하심 (6~9)

  성령은 거룩한 신이시지만 독생자의 의로 택한 자에게 보냄을 받을 적에 택한 자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요,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죄를 깨닫도록 책망하고 믿어지도록 감화를 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의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신이 거하는 사람을 그리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    론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사람이 죄에서 해방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성신의 인도를 따르는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가 마음에 거하던 지옥 생활에서 성령이 마음에 거하는 천국 생활도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장년 공과편 - 교회 발전의 위력

 

  총    론

  우리는 교회 발전의 위대한 힘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교회라는 것은 인간에 속한 교회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교회이니 교회는 어떠한 가운데서 어떻게 발전하기 시작하여 세계에 확장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서 기독교가 발전한 위력을 우리도 이때에 가져야만 될 것이다.

 

제1과  인간 권력으로 막을 수 없는 위력

- 행 5:17~32,  요절:2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는 인간의 정권이나 교권으로 탄압을 하는 일이 있게 하는 동시에 그 교권과 정권을 초월한 역사로 교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만민이 알도록끔 증거를 하기 위한 방법이다.

 

  1대지 : 주의 천사가 도와준 역사 (17~20)

  소위 대제사장이라는 무리가 교권을 쥐고 사도들을 탄압하며 이방적인 로마의 정권을 배경 삼아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밤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말하기를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일을 천사가 도우지를 않으면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기독교가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는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난국이 올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교권, 정권의 탄압을 받고 발전하지를 못하고 만다면 이것은 생명의 종교라고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에 이러한 증거를 나타낸 것은 기독교 역사가 종말에 가서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보여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알파와 오메가가 언제나 같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역사를 성경에 기록하게 한 것은 이것을 보고 교회는 그 힘이 어떠하다는 것을 만민이 알게 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2대지 : 새벽 예배의 힘 (21~25)

  천사가 옥에 갇힌 사도들을 이끌어 내어 새벽에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게 했던 것이다. 대제사장과 소위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이 함께 회의를 열고 사도들을 옥에서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관속들이 가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던 중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도저히 교회 발전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을 본다면 새벽 기도에 모이는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사들도 새벽 예배를 도와서 역사했던 것이다.

 

  3대지 : 사도들의 담대한 증거 (26~32)

  아무리 비겁한 사람들이라도 성신 충만을 받음으로 인해서 큰 능력을 받아 담대해 질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증거했다.

  첫째,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절대적으로 교권과 정권을 무서워하지를 않아야 된다고 증거했다(26~29).

  둘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30).

  셋째, 예수님은 임금과 구주라는 것을 증거했다(31).

  넷째, 순종하는 자에게 성신을 주신다고 증거했다(32).

  이때는 신약전서가 없었지만 그들이 구두로 증거할 때에 성신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교회가 큰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결    론

  교회 발전의 힘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천사가 도와주는 동시에 성신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서 사도들을 강하게 증거하도록 하면서 그 증거를 도저히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제2과  교회 지도를 바로 하므로 발전

- 행 6:1~7,  요절:4 -

 

  서    론

  교회라는 것은 지도를 바로 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역사를 나리지 않아도 교회는 유지할 수 없고 또 지도를 바로 하지 못하고 사명자들이 혼란하게 되어도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로서 바로 하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사명적인 한계를 바로 하여야 됨 (1~2)

  하나님의 교회는 몸과 같다. 몸이라는 것은 각 지체가 자기의 할 분야를 바로 하게 될 때에 완전한 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도 사명의 한계를 바로 알아서 움직이게 되어야 완전한 교회가 된다. 말씀을 전할 사명자가 물질에 치우친다는 것도 잘못이요, 물질로 움직여야 할 사명자가 그 처리를 잘못해도 안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도 물질을 가지고 구제 사업을 할 때에 사도들이 물질을 맡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은 사명의 한계를 바로 못하는 일인 줄 알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사도들이 사명의 한계를 바로 움직이도록 처리를 할 때에 주의 역사가 더 크게 임하였다.

 

  2대지 : 집사를 세워 물질적인 사명을 맡기게 됨 (3~6)

  물질의 사업보다도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에 전혀 힘쓰는 것이 더 큰 일이므로 사도들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할 때에 물질에 관한 모든 문제는 집사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영적 방면에서 전력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교회 발전의 큰 힘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맡은 사명의 한계를 바로 아는 사람에게 역사하신다. 예를 든다면 세상의 군대도 각자가 맡은 부서를 바로 하여야만 승리하게 되는 것과 같다.

  언제나 강단에서는 종은 신령한 양식을 일반에게 주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되며 교회의 제직은 말씀을 전하는 종을 위하여 물질 방면에 있어서 명철하게 일을 처리해야만 교회에 시험이 없이 발전할 수 있다. 교회 발전이 큰 지장이 되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종이 다른 방면에 치우치게 되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영적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3대지 : 정상적 발전을 가지게 됨 (7)

  생명이 있는 활동이라는 것은 정상으로 점점 왕성하여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푸른 나무가 시냇가에 위치를 정하게 되면 언제나 정상적으로 푸른 빛을 내는 것과 같다. 교회도 말씀이 충만한 위치에 있게 될 때에 정상적으로 부흥 발전을 가져오게 되므로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된다. 교회가 정상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순서는

첫째 : 말씀이 왕성하는 일,

둘째 : 일꾼이 많아지는 일,

셋째 : 대적을 굴복시키는 일이다.

 

  결    론

  교회를 지도하는 자는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니 한 사람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처리하여야 되며 무슨 일이든지 질서 있게 움직이되 인물 선택을 바로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집사로 택하여 세우고 교회를 움직일 때에 정상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교회 지도자는 자기가 직접으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보다도 사람을 바로 택해서 세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언제나 사람을 택해서 세우고 그로 하여금 교회를 발전시키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가 독선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교회 발전의 큰 지장이 있는 것이다.

 

 

제3과  순교와 발전

- 행 7:54~8:8 -

 

  서    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평안한 가운데 두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환란과 핍박 속에서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셔서 더욱 발전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왕권 반열에 들 자를 먼저 집사 중에서 나게 했고,

  둘째 : 집사가 순교하는 동시에 사도 바울이 나오게 했고,

  셋째 : 사도 바울이 나오므로 세계적인 복음 운동이 일어나므로 세계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1대지 : 스데반의 순교

  첫째 : 영안이 열려짐 (54~56)

  하나님께서 기독교 순교의 첫 열매가 되는 스데반에게 영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한 것은 누구든지 순교하는 자는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같이 왕권을 누린다는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

  둘째 : 돌에 맞음 (57~58)

  셋째 : 기도를 함 (59~60)

  스데반이 억울하게 돌에 맞을 적에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면서 순교하였다. 이것은 기독교가 대 승리를 본 처음 열매가 된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비극이요, 낙망할 일이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세계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2대지 : 사울의 핍박과 교회 발전 (8:1~8)

  사울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고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박해가 있어도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간데 마다 복음을 전하므로 교회는 널리 전파되는 동시에 많은 무리가 전도를 받고 돌아올 때에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되었다.

  사울에게 교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핍박을 하게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회개시켜 세계적인 전도사로 삼으셨다(행9:15). 이것을 본다면 기독교라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더 유익이 되도록 하시는 역사가 있다.

  이렇게 악하게 교회를 잔멸시키던 사울을 회개시켜 이방의 사도를 삼은 것은 십자가의 도는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고 증거할 사도를 세우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이러한 사람을 불러서 세우는 것이 큰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가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기독교가 세계를 정복할 위력이다.

 

  결    론

  하나님의 역사는 왕권 받을 사람을 속히 이루자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교회를 세계적으로 확장 시키자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을 들어서 교회를 핍박하여 순교자를 내는 동시에 순교자를 나게 한 박해자 사울이 회개하고 세계적인 복음 운동의 선구자가 되게 한 것이 생명 있는 기독교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제4과  사울의 회개와 교회 발전

- 행 9:1~18,  요절:15 -

 

  서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운 목적은 천국인 동시에 당신의 종들에게 왕권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순교의 피가 흐르게 하고 그 대신 역사하는 종이 나와서 복음을 전하고 또 그 종이 순교하면 다른 종을 세워 역사하게 하여서 기독교 역사를 순교적인 역사로 보게 되는 것이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에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하등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이가 순교한 후에 사울이 회개하고 기독교 발전의 큰 열매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1대지 : 살기가 등등한 사울 (1~2)

  사울은 기독교를 없애 버리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옳게 보는 동시에 큰 격동을 받아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기독교를 없이하는 결정을 하고 사방으로 흩어진 교인들을 없애기 위하여 길을 떠났던 것이다. 사울은 율법주의자로 율법을 숭배하는 사람이니 만큼 기독교를 크게 오해하고 나섰던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불법적인 이단으로 보고 정통 유대교에 충성을 다하는 청년으로 나섰던 것이다.

 

  2대지 : 땅에 엎드려진 사울 (3~5)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사울은 땅에 엎드려졌다. 왜냐하면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기에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인간 세력이라는 것은 감히 주님 앞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빛만 나타나도 꼼짝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으며 공산당들은 기독교를 세상에서 없이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나오지만 주님의 빛이 나타날 때에 엎드려진 사울 같이 되고 말 것이다. 사울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온유하게 나타나셨지만 오늘날 예수님을 반대하고 나오는 원수들은 진노하신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슬피 통곡을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 앞에 감히 머리를 들 수 없이 쓰러지고 말 인간이다.

  지금은 주님께서 잠잠히 계신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때이니 사람마다 주님께서 나타나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도 특별한 종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일이 있다.

 

  3대지 : 눈이 어두워진 사울 (6~9)

  사울의 눈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의 빛이 눈에 비춰졌기 때문이다.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사울은 눈먼 소경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없이 하겠다고 나선 것은 소경 중에도 소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눈을 멀게 하여 절실히 회개를 하도록끔 하게 하신 것이다. 사울이 너무나 강포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4대지 : 이방 사도로 택한 사울 (10~18)

  주님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종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첫째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서 안수하라고 하심

  둘째 :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이라고 하심(13~15)

  셋째 : 핍박을 많이 받으리라고 하심(16)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니 새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를 찾는데 있어서는 아무리 불의한 일을 하여도 찾아서 의로운 종으로 쓰는 것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대로 본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지었다 하여도 회개시켜서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기독교를 박멸시키던 사울이가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한다는 것이 교회 발전의 큰 위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계속하시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공산당이요, 무신론자라도 택한 자는 강권으로 회개시켜 구원하는 것으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위대한 역사를 하실 적에 인간의 생각과는 달라서 인간이 볼 때에는 안될 것 같으나 되게 하시는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총    론

  학생들, 오늘부터는 사도 행전을 공부하겠습니다. 요한 복음을 공부할 때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도 행전을 공부하면 사도들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 머리에 손을 얹고 사명을 맡긴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교회를 제일 먼저 세웠습니다.

  요한 복음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친히 보고 듣고 만진 바를 기록한 책이며 사도 행전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서 아시아로 서양 유럽에까지 복음을 전한 역사입니다. 학생들 이 책을 공부하고 보면 우리가 다니는 이 교회는 어떠한 교회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 교회가 어떻게 되어서 우리 나라에까지 서게 된 것을 잘 공부해야만 됩니다.

 

 

제1과  예수님의 승천을 본 사도들

- 행 1:6~11,  요절:9 -

 

  서    론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세상에서 예수님이 왕이 될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본 제자들은 무서워 다 도망을 가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까지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숨어 있는 사도들을 찾아 왔습니다. 낙심을 했던 사도들은 너무나 기뻐 어찌할 줄 모르고 또 다시 예수님을 용기있게 따라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도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공부를 하겠습니다.

 

  1대지 :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기다리는 사도들 (6~7)

  예수님께서 나신 유대 나라는 심히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도 작지만 유대 나라는 더 작았습니다. 우리 나라의 강원도 만한 영토를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나라에게 압박을 많이 받고 자유가 없이 사는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나실 때에도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원이 자기 나라가 독립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우리 나라가 일본의 압박을 받을 적에 모든 애국 청년들은 독립을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우리 나라를 회복시켜 줄 때가 이 때입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대로 하시는 것이니 너희는 이것을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2대지 : 세계적인 사명을 맡은 사도들 (8~9)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유대 나라나 독립을 시키고 만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유대 나라 하나를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계 사람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민족적인 차별을 두지 말고 세계를 무대로 삼고 일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성신의 권능을 내가 보내 줄 것이니 받아 가지고 천하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 까지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므로 동방 땅 끝 우리 나라에까지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3대지 : 하늘을 쳐다보는 사도들 (10~11)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만일 이렇게 공부하다가 공부를 시키던 선생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면 학생들은 땅을 바라보겠어요, 하늘을 바라보겠어요? 꼭 같이 학생들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 선생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야단이 날 거예요.

  이와 같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이 야단이 났던 것입니다. 이때에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하는 말이 너희들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천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인간의 세상에 출생하신지 33년만에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만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하 사람이 다 예수를 믿게 하신 후에 올라간 그대로 구름을 타고 오시므로 이 세상은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둘째는 무서운 환란이 오게 되었고, 셋째는 무서운 전쟁으로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죽게되는 무기가 산같이 쌓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때입니까? 학생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구름 타고 세상에 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묻 는  말

 1. 오늘부터 누구의 사적을 공부했습니까?

 2.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까?

 3.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승천했나요?

 4. 예수님은 어떤 모양으로 다시 오십니까?

 

 

제2과  성신 충만 받은 사도들

- 행 1:12~14, 2:1~4,  요절2:4 -

 

  서    론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신이 사도들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이제 성신 충만 받은 사도들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학생들, 세상에서 제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성신을 충분히 받아야 됩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여도 성신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신을 충분히 받은 사도들이 행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대지 : 합심하여 기도함 (12~14)

  학생들, 우리는 합심하여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는 합심하여 기도하지 않던 사도들이 승천하신 후에는 합심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성신도 받지 못하고 성신이 온다는 말도 알지를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러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합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을 하던 사도들이 성신을 받기 위하여 열흘 동안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직접으로 본 무리들은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씀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완전히 믿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의심없이 믿고 기도할 때에 강한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학생들, 이 시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까? 그러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선생님이 호소하는 대로 따라 하세요(47장으로 완전 지혜 줍소서).

 

  2대지 : 성신이 강하게 임함 (2:1~4)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 주셨고 승천하신 후 열흘만에 성신이 강림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기도를 하던 중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거기에 앉았던 사람은 전부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받은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운 일이 없지만 각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학생들이 앉았던 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이상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상한 불이 나타나서 번쩍거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학생들도 이런 일을 보면 이상할 거예요. 학생들의 입에서 배운 일이 없는 외국말이 나온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지금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성신이 불 같이 오기도 하고 바람같이 오기도 하고 방언이 입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다음에 모든 사람들은 다 큰 변화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같이 사도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되었고 베드로는 한번 설교할 때에 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대부터 완전히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지금도 합심하여 기도하면 성신의 은혜가 나리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성신을 받아야만 앞으로 환란 가운데 천사의 보호를 받게 되어 새 시대에 갑니다. 예수님이 살아서 역사하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면 하늘에서 은혜가 우리 머리 위에 나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계셔서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은혜를 지금도 나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불을 받고 방언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성경을 잘 깨달아 듣는 지혜와 총명을 받게 되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피해를 당치 않고 새 시대에 가게 됩니다.

 

  묻 는  말

 1. 사도들은 왜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까?

 2. 몇 일만에 성신이 내렸습니까?

 3. 성신이 임할 때에 모든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게 되었습니까?

 

 

제3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

- 행 2:29~42,  요절:32 -

 

  서    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십자가에 죽어 장사된지 사흘만에 무덤을 뚫고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적에 다 도망을 가 문을 걸어 매고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 너희는 나를 만져보고 내가 부활한 것을 나가서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만져보고도 증거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합심 기도하다가 성신이 강림하여 역사 할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담대히 나가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마귀라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예수님이 무덤을 뚫고 부활해서 승천하여 성신을 보내므로 제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때에 예수님을 죽인 무리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이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한 사도들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합시다.

 

  1대지 : 예수님만 부활하심을 증거함 (29~33)

  예루살렘 근방에 옛날 선지들의 무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은 하나도 열리지 않았는데 예수님의 무덤만 열려지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학생들 예수님은 온 세계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옛날 선지자와 성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의 몸은 썩지 않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우리들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릴 필요도 없고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성신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2대지 :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증거함 (34~36)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주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만왕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지 않고 반대하는 자는 다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하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졌으므로 예수가 아니고는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든 선지자나 성인들도 예수로 말미암아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3대지 : 부활을 증거할 때에 큰 역사가 일어남 (37~42)

  이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에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마음을 칼로 찌르는 것 같이 되면서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공자나 석가를 증거할 때에는 성신이 내리지 않아도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때에는 언제나 성신이 내려서 역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성신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세계 사람이 다 믿을 종교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밖에 없습니다. 천하에 제일 큰 종교는 예수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만민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묻 는  말

 1. 예루살렘에 많은 무덤이 있지만 누구의 무덤이 열려 졌습니까?

 2.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에 몇 사람이 회개하였습니까?

 3. 성신은 누가 부어 주십니까?

 

 

제4과  이적과 기사를 행한 사도들

- 행 2:43~3:10,  요절:43 -

 

  서    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너희들이 나를 믿으면 내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6:17~18). 이와 같이 사도들이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사도들이 이적 기사를 행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기사와 이적을 행하므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 함(43)

  학생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모든 기사를 행하신다면 학생들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두려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 전에 강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불학 무식한 사람들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 이적과 기사가 많이 있게 되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신 것은 예수는 분명히 부활 승천하여서 사도들을 들어 쓰는 것을 만민이 알도록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지금도 종들에게 역사가 같이 하는 것은 그 종이 전하는 말을 다 믿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2대지 : 모든 사람들이 사도를 받들기 위하여 하나가 됨 (44~47)

  모든 사람들은 사도들이 역사하는 것을 볼 때에 은혜를 받고 자동적으로 모든 재산을 갖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나누어주며 날마다 한 곳에 모여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교회를 부흥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도 다 같이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자들이 은혜를 받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돈이 없는 사람은 잘 먹지 못하고 굶주리며 돈이 많은 부자들은 잘 먹고 사는 것과 같이 그때 사도들이 사는 나라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서 모든 물건을 나누어주는 일이 있게 되어 어려운 일이 없이 다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공산당은 남의 재산을 빼앗아서 자기 소유로 삼고 부자를 죽이고 압박하지만 그때에는 부자들이 자진해서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보고 다 같이 먹고살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학생들, 지금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훌륭합니까?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를 않고 다 같이 먹고살아야 된다고 자진해서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은 인간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러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대지 : 앉은뱅이가 일어남 (3:1~10)

  예루살렘에 미문이라는 성전 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 앞에 앉아 구걸을 하는 불쌍한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병신입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가 베드로에게 구걸을 할 때에 베드로는 내게 돈은 없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하면서 손목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걸으며 베드로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기이히 여겼던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표적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서지도 못하던 앉은뱅이는 얼마나 기뻐할 일이겠습니까?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가 기뻐서 걷고 뛰듯이 우리들도 예수를 믿고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얼마든지 기뻐 뛰면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묻 는  말

 1. 모든 사람들이 왜 사도들을 두려워했습니까?

 2. 돈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무슨 일을 했습니까?

 3. 앉은뱅이가 누구 이름으로 걸었습니까?

 

 

 

 논 설 편

 

1.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오늘날 세계 통일이라는 간판 밑에서 여러 가지 활동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 지식이 극도로 발달됨에 따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날까지의 전쟁은 세계 통일을 꿈꾸지 못하였지만 오늘의 전쟁은 세계 통일을 하겠다는 데까지 들어갔다. 원자 무기를 사용하면 세계 인류를 한시간에 없앨 수 있으므로 오늘의 전쟁은 인류 전멸이냐, 인류 구원이냐 하는 단계에 도달했고 종교계도 세계 통일의 꿈을 꾸고 합동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정치로나 종교로나 전쟁으로나 자동적으로 세계라는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전쟁이나 종교나 정치는 세계를 정복할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좌우되는 것이다. 이제 세계를 정복할 인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과학 만능을 말하는 지식은 자멸이라는 무서운 전쟁을 일으키는 비극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이루어지는 지식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진리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 종교, 전쟁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가 승리하며 어떠한 전쟁이 승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아는 지식이다. 만일 기독교인으로서 말씀의 지식이 없을 때에 자신이 망쳐지는 인격을 이룰 수밖에 없고 말씀의 지식이 충만할 때에 세계를 살리는 인격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의 지식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되는 것이다.

  소위 신학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는 자도 있지만 현재의 신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성경 지식에 모순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레닌 막스가 소위 유물론 사상으로 변론했지만 이 지식이라는 것은 사람을 고등 동물로 아는 지식이니 이것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지식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짐승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인류 종말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않고는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룰 수가 없다.

  인격이라는 것은 지식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동물이라는 것은 힘이 센 놈이 승리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힘이 있다 하여도 지식이 없으면 지식이 있는 사람의 도구가 된다.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는 지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 나의 나갈 방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방향을 잘못 둘 때에 그 종말은 후회 막심을 이룰 것 뿐이다.

  둘째 : 자신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것이 완전한 지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금물이 된다. 누구든지 자신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을 때에 자기라는 한계를 벗어나서 객관적인 세계의 것을 찾게 된다.

  셋째 : 나를 완전케 할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완전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을 완전케 할 수 있는 대상자가 있으니 이 대상자는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은 삼위 일체를 바로 아는 데서부터 있게 된다. 삼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요 인생들에게 역사하는 성부의 활동과 성자의 활동과 성신의 활동을 알 때에 어떠한 방법으로 활동하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지는 완전한 진리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이 지식을 바로 가지고 나갈 때에 성부 성자 성신의 활동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므로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이루어진다.

 

  2.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생활에 따라서 그 인격이 좌우된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 하여도 그 아는 지식과 생활과의 합리화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활동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참된 지식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 있으므로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생활의 열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학자가 지식을 따라서 그 물체를 사용하는 생활이 있게 되므로 그 가치를 자랑하게 된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기계를 만들었다 하여도 그 기계를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면 그 기계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삼위일체의 진리를 알았다 하여도 그 진리대로 사는 생활이 없을 때에는 거룩한 삼위가 그 사람에게 역사하지를 않는다. 지식이 있어도 순종해야만 삼위는 그 사람에게 역사하므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역사가 같이 하는 생활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십자가의 능력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체험하게 된다.

  둘째 : 성신님께 순종할 때에 성신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확실히 체험하게 되며 많은 열매를 맺게된다.

  셋째 :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천만인이 쓰러지는 재앙의 날에도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이 있지만 생활이 삼위와 의합되지 못했다면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3.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전쟁이 있어야 한다

  전쟁이 없이는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볼 수가 있다. 침략적 전쟁도 있고 평화를 위한 보수적 전쟁도 있다.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전쟁이 있으므로만 있는 것이니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려면 다음과 같은 전쟁이 있어야 한다.

  첫째 : 마음속의 전쟁

  이 전쟁은 인격을 이루는 전쟁이니 마음은 내 가슴에 있지만 전쟁 터는 공중에 있는 것이다. 공중의 세력을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 하는 것이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은 공중 세계에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영계가 있기 때문이다(엡2:2). 어떤 사람의 말에 사람의 몸은 소천지라는 것이 있다. 공중의 세력을 이기고 못 이기는 것은 마음의 전쟁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할 때에 완전 승리를 보게 된다.

  둘째 : 환경에서 싸우는 전쟁

  사람이라는 것은 그때 그때 자기 앞에 닥쳐오는 환경을 돌파하고 나가는 승리가 있게 될 때에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진다. 환경이 좋고 나쁜데서 좌우되는 인격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격이 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것은 환경이 나빠도 그 환경을 돌파하여 좋은 환경을 이루어 놓는 것이 있을 때에 용사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셋째 : 영원한 것을 이루는 전쟁이라는 것은 진리의 사상이 결부되는 것인데 세계를 앞에 놓고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전쟁이다.

  그러므로 붉은 용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므로 세계를 정복할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진다.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격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것이 있으므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놓은 이것을 종말의 성도 통치의 왕국이라는 것이다.

 

 

2.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의 할 일

  신앙이라는 것은 덮어놓고 믿음으로 한다는 것도 좋지만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이 할 일의 한계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 믿음으로 할 일은 사람이 할 수도 없고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을 하지도 않고 믿음으로만 한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믿음으로 할 일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는데 있어서는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알아서 믿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법을 떠난 믿음이 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법을 떠난 믿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법대로 메시야가 오셔서 이날까지 역사가 흘러왔는데 이것을 믿지 않고 메시야가 오므로 지상 평화 왕국이 온다고 믿는 것은 큰 과오를 범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알아서 믿는 것 외에는 아무리 믿음으로 한다고 하여도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또 오늘에 와서 신자라 하면서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덮어놓고 예수만 믿는다는 것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도저히 남은 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무조건 믿는다는 노선은 앞으로 큰 수치를 당할 일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을 믿은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의 변천의 징조가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분명히 믿는 동시에 이루어질 말씀도 예언 글자 그대로 믿고 나가는데 있어서는 예언대로 역사할 책임은 예언을 말씀하신 하나님께 있고 믿는 사람은 그대로 역사할 줄 믿고 따라갈 것 뿐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밖에는 아무런 것도 가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믿음으로 참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당할 때에 말씀대로 이길 것을 믿고 참는 것이다. 말씀대로 믿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신앙 노선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덮어놓고 끝까지 참고 기다린다고 한다면 흑암에 빠진 사람이 갈팡질팡 하면서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참는 일도 바로 참는 일이라야 믿음의 열매가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믿기 위하여 믿음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오늘에 교파가 많이 있으므로 교파의 싸움을 하는 일도 많이 있다. 싸움이라는 것은 진리를 바로 믿기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다 죄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이 적군과 아군을 모르고 무조건 무기를 쓴다면 이것은 오히려 수치를 당하는 일이 되기 쉽고 큰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주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공박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술에 도취된 사람이 아무 사람에게나 욕을 하고 구타하는 일이나 같다.

  그러므로 진리 하나를 바로 믿기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함부로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떠한 행동을 취할 필요도 없다. 진리대로 믿는다는 것도 성경의 법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시대적인 법이니 그 시대의 사람이 그 비밀을 바로 알아서 싸우므로 그 시대적인 사단의 참소를 깨쳐 버리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봉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손해가 있고 고생스러워도 자기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인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순종한다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명예나 권리나 영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믿음의 봉사가 아니다. 믿음으로 봉사를 한다고 말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있을 때에 중지를 하고 만다는 것은 영원한 상급을 목적한 믿음의 봉사가 아니고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는 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으로 하는 일에 대하여는 이 네 가지로 표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제 사람이 할일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조심하는 일이다.

  조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정신 작용을 쓸 필요도 있고 몸의 기술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심은 믿음으로 하는 일이 잘못 될까 조심하는 것이니 이것은 주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는 것보다도 양심적인 행동에서 죄 되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노력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시험에 들까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해야될 일이라는 것이다.

 

  2. 부지런하는 일이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내가 정성을 모아 힘을 다해서 영적 보다도 몸에 관한 노력이 전부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게으르다는 것은 탈선된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은 게으르지 말고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3. 담대할 일이다.

  담대라는 것은 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가는 일인데 이것은 사람 편에서 하여야 할 일이다. 아무리 믿음으로 일한다 하여도 강하게 담대한 것이 적다면 원수를 물리칠 수가 없는 것이다.

 

  4. 정직한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정직하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으로 일한다 하여도 정직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이 정직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적 문제보다도 사람의 도덕적인 행위나 사업적인 방면에서 정직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을 사람이 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믿음으로 하여야 할 일에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3.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여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가 충성을 못해도 남이 충성되지 못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것은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이 내게 충성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어떤 공장에 사장이 있다면 그 사장은 공장 안에 직공들이 충성을 다해서 일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자기 공장이 잘 되겠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든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 줄 사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권을 좀 더 확장시켜 자기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위정자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인 야욕에 속한 것이며 어떤 종교 지도자가 자기를 충성되이 받들라고 한다면 이것도 교권의 야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비진리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종교인으로서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비 진리적인 종교를 위하여 충성을 했다는 이것은 허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 진리를 위하여 수고했으므로 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성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판단을 내릴 때에 비 진리를 위하여 충성한 자는 그만큼 화를 받게 될 것이고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자는 그만큼 큰 축복을 받되 화를 받는 일이나 축복을 받는 일이 다 갑절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했다는 것은 허사인 동시에 후회 막심이라는 슬픔을 가져오는 일이 진노의 날에 있게 될 것이다.

 

  2. 불의한 일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불의한 정치인이나 불의한 일을 꾸며내는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불의의 도구가 된 것이니 이러한 불의한 자가 망할 때에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18:4을 보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도 불의한 일에 동참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불의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 달라는 것이 불의한 자라는 것이다.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불의한 자가 시키는 일에 충성을 했다는 것은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딴 것을 섬기는 일은 전부가 불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섬기기 위하여 일했다는 것은 전부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자기의 영리에 대한 충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영리가 있는 일이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심지어 생명을 바쳐 가면서라도 충성되이 그 일을 해보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죄가 된다는 것보다도 물질을 자기를 위하여 쓰고 하나님을 위하여 쓰지 않는다면 그 물질이 쓰여지는 일이 불의한 일이므로 그 물질을 위하여 모든 일을 충성되이 했다 하여도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충성을 다해야 될 일을 알아보자.

  1) 유일신 종교 신앙 양심에서 유일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대자연을 통하여 오는 모든 축복은 전부 하나님의 의를 위한 일에 열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창조된 물질이니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목적이 의를 위한 것이라면 다 하나님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참된 사랑을 받은 양심에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고자 하는 일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했다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속에서 속죄를 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가 용서를 받은 것 같이 다른 사람도 용서받기를 원하고 자기가 구원받은 것 같이 다른 사람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랑에서 충성을 다하는 일은 전부가 세세 왕권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

  하나님께서 참되신 진리의 말씀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동시에 그 말씀이 거짓된 것같이 생각이 나도록 미혹을 주는 가장 간교한 마귀를 창조해서 지금까지 사람을 꾀어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참되신 말씀은 참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만 알도록 하고 순종치 않는 사람은 유혹의 영을 부어 주고 그 말씀이 거짓된 것 같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쓰시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거짓이 없다고 믿는 사람만을 모아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인간의 두뇌로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의 머리는 자기가 사용하는 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범위로 준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을 사용하는 것 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무조건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머리 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니 나는 연구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에는 무조건 순종한다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머리를 낼 때에 물질계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세계까지 다 알게 했다면 순종을 하고 하지 않는 것은 구별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이 할 것만 깨달아 알도록끔 창조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범위에 두어서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방법인 것이다. 참된 일이라는 것은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 체험이라는 것이다.

 

  2.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힘을 주실 적에 강한 짐승보다도 힘이 약하게 하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믿고 나가면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해준다는 말씀을 믿는 자로써 승리하도록 역사하시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겠다는 것은 거짓말 같으나 이것이 참된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겠다는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는 동시에 그때에 그러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내가 이렇게 해주는 하나님이니 너는 나를 믿고 의지하면 너로 승리하게 역사해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장 약한 사람을 택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없이 믿을 때에 홀연히 나타나서 그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산 체험이라는 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해주겠다는 말씀을, 거짓이 아니고 참이라고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참으로 의지하는 자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지상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3.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물질의 모든 것은 보지만 신을 못 보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두려워서 살 수가 없게 된다.

  신의 영광은 너무나 놀라운 영광이므로 그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신의 역사의 체험만 받게 한 것이다. 오늘날 신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무신론 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이렇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구약 때에 이스라엘에 나타나시되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묵시로 주기 위하여 나타나셨고,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주었고, 지금은 성신을 보내어 볼 수 없는 마음속에 와서 역사하되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에게만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증거도 체험도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 진리를 믿고 보면 하나님의 신이 자기와 함께 하는 증거가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만 모아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잠잠히 숨어 계셔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신은 같이 해서 그 사람이 복을 받게 하신다. 만일 누구든지 다 신을 본다면 진리를 참으로 믿나 믿지 않나 하는 것을 구별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것보다도 보지 못하고 진리를 믿도록 해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의롭게 인정하고 그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보호하기도 하시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하자는 것이 신을 보지 못하게 하시는 경륜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말을 거짓말로 알고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참말로 아는 것은 마귀의 미혹이다.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합법적으로 믿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게 된다.

 

 

5.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

  마귀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그때 그때에 사람의 마음에 맞도록 말을 하고 증거를 보여 주기도 하면서 실지는 거짓을 행하는 일이 마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면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1. 먹어야 산다는 일이다.

  마귀란 놈은 언제나 먹어야 산다는 제목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꾀일 적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마귀는 먹으면 유익하게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한 생각이 나게 해서 결국은 먹고야 말도록 역사했던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고 먹어야 산다는 것이 진실한 것 같으나 이것은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므로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믿지 않고 먹어야 산다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참된 말 같으나 실지 그대로 따라가 보면 결국은 속았다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에는 의심이 나지만 그대로 따라가면 참되신 말씀이라는 것이 완전히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요, 마귀가 하는 말은 처음에는 참인 줄 믿어지나 결국은 참이 아니라는 것이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2. 배워야 산다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볼 때는 합리적인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배워서 참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고 계시로 알게 해 주므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과학을 배우므로 사회가 물질적으로 발전되는 것을 볼 때에 여기에 도취가 되어 인간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존중시하고 자기가 배운 지식을 참인줄 알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비판한다는 것은 자기가 배운 지식과 지혜가 자기를 속이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리석은 자 같으나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참된 진리의 지식을 알도록 성신을 보내서 참된 종의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 학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으로 말한다면 누구나 다 학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진실하다고 인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학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속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워야 산다는 것보다도 진리를 믿어야 산다는 마음에서 믿음으로 배워지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 소위 문명국가일수록 배워야 산다는 것이 표어가 되었지만 이것을 신령한 영계로 본다면 마귀의 미혹의 말이 된다.

 

  3. 교제가 있어야 산다는 일이다.

  이 말은 합법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을 교제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과 교제하면 훌륭해 지고 낮은 사람과 교제하면 위신이 낮아진다는 것이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는 속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는 연락을 베풀 때에 가난한 자, 병자, 죄인들을 데려 다가 대접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적에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다고 하셨고 친히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셨던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외에 인간과의 교제라는 것은 외모로 볼 때에는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에는 거짓이 따르는 교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인간이 인간을 교제하는 일을 스스로 속는 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간과에 교제를 끊지 못해서 참된 신앙 노선을 걷지 못하는 자도 있다. 인간이 인간을 교제하는 일은 다 자기의 유익을 보자는 것이니 참된 진실이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는 교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했던 것이다.

  인생의 참된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찍어서 버린 나뭇가지같이 말라서 불에 던지워진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4. 자본이 있어야 산다는 일이다.

  누구든지 이 말을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이 있어야만 산다는 인격의 사람이 될 때에 얼마든지 거짓이 따르게 되고 심지어 악한 일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자본이 있어야 산다는 말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만 산다는 것으로 참된 양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은 자본이 있어야 살고 돈이 많아서 돈을 잘 내면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을 하고 자본이 없어서 돈을 내지 못하면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사람 앞에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신용가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을 진실로 보시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물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돈 자체가 거짓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위해 돈을 쓸 적에 이것은 상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자본주의 정신에 도취가 되어 돈으로만 신용 본위로 삼는다는 것은 얼마든지 거짓된 미혹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5. 싸우지 않아야 산다는 일이다.

  이 말은 오늘에 와서 가장 참된 말이라고 인정한다. 싸우게 되면 세계 인류가 전멸이요, 싸우지 않아야 인류가 산다는 것이 문화인으로서 인간의 장래를 내다보는 예언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 종말의 심판은 악의 세력과 타협하면 반드시 악의 세력과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요, 붉은 짐승 앞에 머리를 숙여 절하면 죽고 절하지 않아야 산다는 것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붉은 짐승과 싸우지 않아야 산다는 것은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는 거짓 선지의 미혹의 말이다.

 

 

 

 신 앙 문 답

 

【문】1.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고 바로 지켜 나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의 비밀을 가르친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한 것은 그때에 이루어질 일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그 시대가 지나서 될 일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된 것은 전부가 신약시대에 될 일을 가르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면서 묵시가 보여진 것은 전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으로 둔 것이요, 그 나라의 사람들이 모세 율법에 의하여 제사를 드리고 성전을 짓고 나라를 다스린 것은 신약시대의 될 일을 예언적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믿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믿고 다음과 같이 지켜야 합니다.

 

  1. 바로 믿는 일

  첫째 : 제사입니다

  제사라는 것은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양의 피가 완전한 제사가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 말세에 나타나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될 때까지 예언적인 제사로 내려 온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은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제사를 완성한 것이니 누구든지 그 피를 믿고 기도할 때에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의식이 아니요, 완전한 체험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완전 속죄제가 만민의 죄를 대속한 것이므로 누구든지 믿으면 증거를 받게 됩니다.

  둘째 : 생활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도덕적 생활보다도 영적 생활에 들어가서 성신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을 중점 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에게 인간의 모든 죄를 다 걸머지고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보혈을 믿는 사람은 그 죄를 사하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억지로 율법을 행하라는 것보다도 은혜의 법으로 심령을 새롭게 해서 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므로 영적으로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이 새로워지는 것은 도덕보다도 은혜로 이루어지는 생활이니 거룩하여지므로 거룩하게 살게 되고 지혜로워지므로 지혜롭게 살게 되고 사랑이 충만해지므로 기쁨으로 살게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므로 평안히 살 수 있게 됩니다.

  셋째 : 역사입니다

  역사는 자기가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오는 중생의 은사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받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중생을 받고 은사를 받은 종들이 자기가 중생 받은 진리와 은사 받은 진리를 증거할 때에 그 진리가 옳다고 믿어지는 사람에게 중생의 역사가 임하고 은사가 임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기독교는 세계적인 대종교를 이룬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중생과 은사가 내리는 것은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생과 은사를 받지 못하고 교회의 성직을 받은 자가 있게 되므로 교회는 자동적으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나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을 때에 그 비밀을 자기가 체험함으로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진리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2. 바로 지키는 일

  바로 믿으므로 중생을 받고 은사를 받는 역사가 세계를 정복한 때가 은혜시대라고 봅니다. 이제 바로 지키는 일에 대하여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예언을 지키는 일입니다

  예언을 지키라는 것은 은혜시기가 지나서 무서운 환란과 재앙이 올 때를 가르친 것입니다. 중생 받은 사람으로 그 몸이 환란과 재앙을 피하고 살아서 새 시대 가는 때이므로 예언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중생과 은사를 받은 것이며 예언을 지킬 때는 중생과 은사를 받은 사람을 시험을 해 보는데 이것을 환란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 중생을 받게 된 것이요, 이 몸이 살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중생 받은 사람이 예언을 지키므로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미혹을 받으므로 사망이 왔지만 말세에 성도들이 다시 예언을 지키므로 이 세상이 새로워지는데 있어서는 예언을 지킨 사람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환란 재앙이 와서 세계가 전멸될 때에 예언의 말씀대로 보호를 받고 말씀대로 복을 받게 되니 이 세상에는 예언을 지킨 자만 남게 되는 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입니다.

  둘째 : 싸우는 일입니다

  이날까지의 전쟁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영토를 목적으로 하여 싸웠지만 마지막 전쟁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놓고 싸우게 됩니다.

  교회 안에 거짓선지가 들어 와서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지 못하게 하는 시험이 올 때에 예언을 지키는 사람과 거짓선지가 말씀을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그대로 지키지를 않아도 된다는 자들과 말씀을 그대로 지켜야만 환란과 재앙에서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자들이 큰 대립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는 종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재앙으로 땅을 치며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본 거짓선지도 마귀의 요술을 부리는 일이 있지만 권세를 받은 종 앞에서 쓰러지게 되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예언을 지키는 자가 승리하게 되므로 평화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싸우던 종들은 주 재림을 영접하여 들림을 받게 되고 그 예언의 말씀이 옳다고 따라가던 무리들은 예언의 말씀대로 보호를 받으므로 원수의 피해를 당치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중재림에 휴거를 받은 자가 왕권을 받아 가지고 지상 강림하여 지상을 통치할 때에 예언을 믿고 순종하므로 보호를 받고 있던 백성들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왕권을 받은 종들이 말씀대로 지상을 통치하므로 악의 세력은 전멸 당하고 의의 통치 시대가 오는 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입니다.

 

 

【문】2. 기독교 안에 여러 가지 교파가 생겼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가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답】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 여러 가지 교파가 생긴 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것은 교회를 많이 세우는 일이니 이렇게 되려면 여러 가지 교파가 있어야만 되겠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민족들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람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이날까지는 각 교파를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살려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추수기를 당하여서 낫을 들어 거두고 타작기로 두드리고 난 뒤 알곡만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많은 교파를 하나가 되게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습니다.

 

  1. 진리의 대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이 인간의 종말에 대하여 성경을 여러 가지로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한가지 성경을 가지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완전한 해석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십자가를 믿으므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역사를 목적한 교회가 인류 종말에 대한 말씀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종말의 진리라는 것은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우던 자에게 권세 역사가 임하므로 북방 세력이 그 권세 앞에서 떨고 다 도망을 가게 될 것과 북방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는 심판이 오므로 말씀을 지키고 싸우던 사람은 남은 자가 되고 말씀을 지키지 않고 북방의 세력이 무서워서 타협을 하던 자는 망한다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 3년을 앞에 놓고 진리의 대표적인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 종은 선지서와 계시록의 비밀을 가지고 북방 세력이 완전히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증거하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을 믿고 순종하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교인 중에서도 그 말씀을 순종하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가 될 것이고 말씀을 순종치 않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같이 대표적인 사람을 반대하게 됩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진리 하나만을 바로 믿고 따라가는 자들은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한 단체가 이루어지고 그 밖의 사람들은 각각 자기 교파 안에서 종말관의 진리를 순종치 않으므로 거짓 선지에게 먹힘을 당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은 교파 중심이 아니고 말세 증인의 진리로 말미암아 새 시대에 갈 사람이 한데 뭉쳐지므로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될 사람으로 촛대교회가 이루어지게 되고 환란 가운데서 망할 사람들은 진리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데 고집을 부리다가 망하게 됩니다.

 

  2. 진노의 심판이 나리는 일입니다.

  진노의 심판이라는 것은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부패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세속에 물들어 외식하는 무리들을 없애는 것입니다. 진노를 받지 않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첫째 : 천국으로 들어간 자가 있고,

  둘째 : 1차 부활에 왕권을 받을 자와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자가 있고,

  셋째 : 백성 된 자격으로 환란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종족이 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순교를 한 자와 주 재림시까지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거짓 선지와 싸워 이기고 양떼를 바로 인도하던 자들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자가 되어 세세왕권을 받게 되고 그 예언을 믿고 따라 가던 무리는 이 세상이 진노의 심판을 받을 때에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권을 받은 자는 심판권을 받으므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쳐 없애는 일을 하게 되고 종말의 예언을 믿고 순종하던 양떼는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쳐 없애는 진노의 날에 보호를 받아 하나같이 새 시대의 복락을 백성 된 자격으로 받게 되어 이 땅에 충만한 번창을 이루게 되므로 천년 시대의 종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가 되는 것은 남은 종들이 하나가 되어 재림의 주를 영접하고 남은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지상 강림으로 이루어지는 통치 왕국에 들어가게 되므로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문】3. 새일 교회라고 간판을 붙이는데 이 새 일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이날까지의 교회는 예수교라는 간판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친 교훈을 세계 만방에 전하는 때의 일입니다. 사42:2~4를 보면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서에 그리스도의 교훈이 있을 것을 말할 때에 아무런 말씀 없이 그의 교훈을 섬들이 앙망한다고 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교훈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9절에 보면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이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새 일을 고하는 진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선지들에게 전한 복음입니다(계10:7). 다시 말하자면 예수교라는 것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뜻했고 새일교회라는 것은 지상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새 일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새일교회라는 것이 시작된 것은 새일수도원 원장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서책이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새 일이라는 것은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날까지의 교회는 죽어 천당을 목적한 교훈을 가르쳤지만 새 일 교회는 대중앞에서 설교하던 이 뢰자 목사 위에 갑자기 새 일에 대한 교리를 받아쓰라는 명령에 의하여 받아 쓴 12가지의 교리는 선지서의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몸의 구원론을 가르친 것인데 이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일 교회가 시작된 시일은 1968년 1월부터입니다. 현재에 70여 새일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이 뢰자 목사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대중 앞에 서서 입으로 부르는 대로 받아 쓴 법규나 교리나 새일 성가집이나 인간론, 조직 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요한일서 강의, 성경 해석법, 인간의 종말이라는 완전한 조직 체계를 가진 서책에 의하여 한 단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교회가 발전되는 것은 이뢰자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새일수도원을 거친 종들이 공부한 결과 이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되겠다는 결심에서 자진하여 곳곳마다 교회를 세운 것이 2, 3년 내에 70여 교회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으로 교회가 서고 있는 중입니다. 이 교회들은 개 교회 주의인데 진리 하나를 위해서 뭉쳐진 교단이므로 이 목사에게 임한 말씀을 기준하여 진리의 완전 통일을 가지고 맹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이 시국에 멸공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 종말에 북방 세력이 아시아를 중심하여 반 기독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새일을 행하시므로 원수의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사43:14~21).

  세밀히 말하자면 사도들이 선지서에 의하여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쓴 것 외에 선지서와 계시록에 대한 진리를 전부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주의로서 조금이라도 성경에 가감없는 정확한 다림줄의 진리를 증거하려면 오메가적인 정통 교리를 바로 알고 완전한 말씀의 변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서를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비밀로 아는 동시에 완전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하여 기독교 종말론의 혼선을 없이하고 순수한 선지서 본문 그대로 증거하므로써 진리 통합의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새일교회라 하는 것입니다.

 

 

【문】4. 성경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완전한 다림줄을 잡을 수가 있습니까?

【답】다림줄이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될 일을 가르친 것인데 선지서를 다림줄이라고 합니다. 다림줄을 말하자면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것이므로 어느 선지서나 1장에 목적을 말하고 그 다음 장부터는 그 목적을 순서 있게 변론적으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정확한 변론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가르칠 때에 어떠한 노선을 걸어가면 새 시대에 들어가고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라도 어떠한 노선으로 가면 새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환란과 재앙에서 죽는다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입니다. 재앙의 날에 큰 화를 받을 사람에 대해서도 그 획선을 분명히 선지서에서 알 수 있고 환란 재앙 가운데서 남은 자가 되어서 성산의 축복을 받고 길이 길이 복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획선을 분명히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시대에 관한 획선을 말씀하시지 않고 독생자를 보내서 세계 민족을 다 하나 같이 당신께로 돌아오게 한다고 말한 것뿐이고 그 밖의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으로써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새 시대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할 적에 다림줄의 진리를 굳게 잡고 타협하지 않고 나가야만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다림줄의 진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를 믿고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여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고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만 말씀대로 보호를 받고 말씀대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천국에 대한 말씀은 가르치지 않고 지상왕국을 목적하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개인 개인이 죽어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큰 환란과 시험이 없지만 우리 몸이 살아서 지상왕국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란과 시험을 통과해서 남은 자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밝히 가르치기 위해서 구약 말기에 부패한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들을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쳐 없이하고 남은 자로써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부패한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는 다 없이 하는데 있어서는 북방 환란으로 그를 쳐서 없이하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종말에 될 일을 구약 선지 시대에 묵시로 말씀을 주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증거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문】5.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역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삼위 일체의 역사라는 것은 목적이 성도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신 이 삼위만 있다는 것은 아무런 영광이 될 수가 없으므로 삼위는 어떻게 역사한다는 예정 아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 다음은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그 사람을 꾀어 보도록 하셨습니다.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어도 그 뱀의 말을 따라 가지 않고 삼위의 역사를 순종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고 삼위의 역사를 순종치 않고 마귀를 순종한다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마귀를 이길 수가 없고 삼위의 역사를 순종하므로만 마귀를 이길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타락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에게 제사드리는 법을 주어서 정성껏 당신 앞에 드리면 그 제사를 받으시고 부족한 사람에게 역사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께 상달하도록 진심으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강하여도 승리하도록 하셨는데 그 역사는 전부가 인류 종말의 예언적인 역사가 되었습니다. 구약 때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마귀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억울함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으로 마귀의 세력을 의지하는 사람을 이기게 하시면서 인간의 종말에도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지만 필연코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승리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성자 성신의 역사가 필요 없고 아들을 보내서 역사할 것과 성신을 보내서 역사할 것을 간단히 말씀하시면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할 것을 선지서에 변론적으로 여호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성자와 성신이 먼저 역사한 다음에 성부께서 역사하셔서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없이하고 성자와 성신의 역사를 순종해서 열매를 맺은 사람들로 새로운 왕국을 세우겠다는 목적입니다.

  그러면 성부, 성자, 성신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성부의 역사는 예언적으로 나타나되 알파의 역사로 구약 이스라엘에게 역사하면서 오메가의 역사로 끝을 맺을 것을 세밀히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구약시대에 나타나는 동시에 인간 종말의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2. 성자의 역사는 자기 몸으로 구약시대 양의 제사를 완성하시고 누구든지 자기의 피를 믿으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신 역사입니다. 지금은 자기의 피를 믿고 회개한 사람을 위하여 대언기도를 하시는 동시에 성신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3. 성신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 같이 해서 그리스도와 동등한 인격에 도달하기까지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왕국 건설의 수가 차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신앙의 대상자로서 성신을 부어 주는 것 뿐이요, 성신이 역사하므로써 그리스도의 왕국의 수가 차게 되면 성부께서 나타나시되 새 일을 행하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선지시대에 증거를 보여 주시던 여호와께서는 그 예언대로 이루기 위하여 나타나서 당신의 말을 순종치 않고 마귀의 말을 순종하던 자들을 전멸시키는 것을 인류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의 역사는 만민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고 성신의 역사는 왕권 받을 종들의 수가 차기까지 역사하고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시험을 해보듯이 당신의 백성을 마귀로 미혹을 해 보고 미혹을 받지 않고 당신의 말씀을 지킨 자들로 다시 지상왕국의 축복을 받도록 하시므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특  집  

 

1. 성산을 찾은 9월

  1964년 9월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증을 기록합니다. 이 사람은 이러한 거창한 사업을 할 마음조차 가져본 일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실패를 당하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큰 승리를 이루기 위한 시발점이 9월이라고 봅니다. 그 전에 이상한 꿈을 꾼 일이 있었습니다. 꿈에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는 계룡산 상봉 앞에 가서 기도하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1964년 9월 4일에 계룡산 상봉 앞, 현재 새일수도원이 있는 출입문 앞의 큰 바위 사이를 자리잡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첫날밤 하늘로부터 세미한 음성이 처량하게 들려올 때에 너는 이 산에 제단을 쌓고 말세 종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늘로부터 명령이 내려오므로 계룡산 상봉 앞에 편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현재 새일수도원이 선 자리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뒷산을 바라보니 나를 안고 있는 것 같고 앞을 바라보니 만국이 굴복하고 들어오는 것 같은 형상이 보이고 좌우를 바라보니 성을 쌓아 두른 것 같이 감상을 느껴졌습니다.  

  내 마음에 틀림없이 큰 일이 있을 자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던 중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알려오기를 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처자까지 내게 맡기고 이 산에 와서 희생 봉사로 주의 종들을 위하여 수도원 사업을 하라는 명령이 2, 3차나 거듭 있으면서 약 3시간 동안을 계속으로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목회하던 교회에 사직서를 내고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날 나는 우연히 산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산 주인에게 말하기를 이 산이 참 좋은 산이라고 하였더니 산 주인이 말하기를 그 산이 무엇이 좋으냐고 하였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여기가 수도원 자리로 적합하다고 할 때에 그는 돌이 이렇게 많은 이곳에다가 어떻게 수도원을 지을 수 있느냐 하면서 필요하다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땅 400평을 요구하였더니 즉시 승낙을 하면서 자필로 기증서를 써서 내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푼의 돈도 주지 않고 400평이라는 땅을 기증을 받을 때에 너무나 이상해서 나는 물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라고 하니 산 주인이 말하기를 목사님을 볼 때에 초면이지만 내 마음이 기뻐지고 무조건 요구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불도인들이 이 산을 달라고 하여도 줄 마음이 조금도 없던 내가 목사님에게 이 산을 드린다는 것은 자기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즉시 수도원을 짓겠다는 마음은 없었고 하여튼 훌륭한 자리이니 맡아 두었다가 보자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9월 24일 새벽 3시에 하늘로부터 큰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 몸을 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몸이 없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은 나를 둘러싸고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불 속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네 이름을 뢰자라고 주노니 이 이름을 가지고 오늘부터 성전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은 사람이 다듬은 돌로 짓지 말고 자연석을 가지고 짓되 앞에 삼 탑을 쌓고 70평 건물의 집을 튼튼히 지어서 새 시대에 사람들이 기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에 많은 서책이 임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말세의 종들을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나에게 있는 단돈 2,000원으로 공사를 시작할 때에 목회를 보는 교회의 장로님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장로님이 물어볼 때에 내 입장은 너무나 난처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목사가 경솔히 이런 공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공사를 한다 하여도 본 교회의 장로님과 상의가 있은 후에 하는 것이 원칙인데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이 두려워서 빈손으로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님은 나를 붙들고 하는 말이 목사님 망하지 않으려면 오늘이라도 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은 분명히 마귀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역자들이 나를 찾아와 하나같이 말하기를 계룡산에 나타난 이 지시나 불은 다 마귀 역사라고 하면서 포기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체험담을 말하면 동감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누구나 다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언을 내리기를 망해도 내가 망할 것이니 이 일에 대하여 절대 간섭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동역자들은 말하기를 이 목사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자기들은 수도원 반대 운동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생각하기를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이 사업이 안된 다면 이것은 분명히 마귀의 지시다. 그러나 앞으로 두고 보면 안다고 하면서 백암동에 있는 조그마한 집 사랑방 두 칸을 얻고 본 교회에서 이사를 왔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가련한 일이었으나 한 번 하나님 앞에 작정한 일을 후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친수로 노동을 하면서 수도원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일한 결과 지금은 큰 기관이 되었습니다. 현재 수도원에 소속된 교회가 70여 개나 되며 달마다 100여명의 수도생이 공부를 하고 나가며 일본과 미국으로 전도사가 파송되고 350명의 40일 금식 기도자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수도원에서 말씀의 칼, 인간론, 성경 해석법, 요한一서 강의, 선지서 강의, 조직신학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자가 발행되는 것은 한자도 내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내 입에서 말씀이 나타나는 대로 필기하여 낸 것인데 이것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수도원을 방해하기 위하여 허위 선전, 모략 중상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하등에 우리와는 관계가 없고 날마다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자랑할 일이라고 봅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수도원에서 나타난 모든 일을 보면 분명히 계룡산 상봉에 나타난 신은 여호와의 신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금년 9월을 맞이하여 내가 더욱 확신을 가지는 것은 7년 동안 계속으로 수도원을 방해하는 사람들의 운동이 있었지만 수도원 사업은 오늘날에 와서 세계적인 무대를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볼 때에 1964년 9월에 이산에 나타났던 신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신이신 것을 믿고 영광을 돌리는 바입니다.

 

 

2. 광    고

  하나님의 은총이 이미 여러분들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라 명칭을 받게 되어 이 시국을 맞이한 것을 생각할 때에 분명히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나타나게 될 것을 믿고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금년 8. 15를 기하여 큰 은혜가 권세 새 힘으로 임하기 시작한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특별 사명자 집회가 아니요, 일반 대중 집회이므로 특별 사명자들에게 유감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9월 20일부터 25일까지 특별 사명자 집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이미 9월 24일은 해마다 성산을 얻은 기념일로 지켜왔지만 금번에는 일을 기하여 큰 뜻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특별 사명자 집회를 열고 특별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바라는 것은 각자가 사명 동지를 방문하여 금번 성회에 꼭 참석하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9월부터 문서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여야만 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각자가 인간 종말이라는 책을 널리 전하는 일에 힘써 주시고 월간지를 전하는 일에 힘써 주시되 각자가 영적 문제인 것을 생각하고 최고의 힘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하게 일어나면 영계가 7배 영감을 받게 될 것이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큼 영적 손해를 보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계를 보존하려면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될 것입니다. 이 때는 각자가 행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새로운 역사가 올 것입니다.

 

 

여호와 새일 교단  제4회  정기 총회 촬요

일   시 : 주후 1971년 8월 14일 상오 8시

장   소 : 새일수도원

총대 수 : 목사 5명, 장로 6명, 전도사 50명, 집사 55명  합계 126명

개회 설교   이   뢰  자  목사

 

새  임 원

  총회장 : 이 완 만 목사    서기 : 박 능 도 목사

  회  계 : 박 문 수 목사    

 

상임위원

  위원장:구 완 대 목사    서기:안 전 대 전도사

  위  원:송 진 모 목사, 이 완 만 목사, 박 능 도 목사

 

지방회 새 임원

 중부 지방 (경기, 강원, 서울)

    회  장 : 이 뢰 자 목사    서기겸 회계 : 김 진 충 집사

 호남 지방 (충청, 전라)

   회  장 : 송 진 모 목사   서  기 : 박 문 수 목사

   회  계 : 황 명 진 장로

 부흥단

   단  장 : 송 진 모 목사    교육부장 : 박 능 도 목사

   서  기 : 박 문 수 목사    운영부장 겸 회계 : 황 명 진 장로

 영남 지방 (경상남북도, 제주도)

   회    장 : 구 완 대 목사   서    기 : 권 진 흥 목사

   회    계 : 박 국 보        부흥단장 : 최 교 복

   교육부장 : 최 흥 국        운영부장 : 유 활 천

 전도사 안수 : 유진광(대전개척)     문근선(안양)

               전원백(서울중앙)     이봉도(제주)

               안도준(여)(백암)

  아름다운 소식 배가 운동에 각 교회 교역자 되신 분과 집사 되신 분은 협조하여 주셔서 문서 운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