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10월호)

설  교  편

 1. 참된 기도와 맹세 (사65:13~16)

 2.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는 진리 (히2:9~18) 

 3.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 (사60:4~14) 

 4. 잠잠히 신뢰하는 자의 힘 (사29:1~8, 30:15~17) 

 5. 기독교 흑암과 강권 역사 (사59:9~18) 

 6.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사56:7~8, 66:5~6, 습3:19~20, 미4:6~8) 

 7. 예수를 위한 연회와 신앙의 차이점 (요12:1~11)

 8. 복된 가정을 이룬 비결 (마1:18~25) 

 9.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법 (마7:7~12)

10.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말자 (골2:8~23) 

11. 사명과 인격 문제 (마28:11~20)

12.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 (유3, 20~22) 

13. 십자가의 원수는 멸망 (빌3:17~19)

14. 온전히 담대한 바울 (빌1:19~30) 

 

장년 공과편 - 세계적 선교의 위력

제1과  이방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됨 (행10:28~48)

제2과  성신의 보내심을 받아 선교를 하게 됨 (행13:1~10)

제3과  이방의 빛이 되는 선교 운동 (행13:44~52)

제4과  참된 전도자의 증거 (행14:8~18)

제5과  서방에 선교 개척 (행16:10, 24~34)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5과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는 사도들 (행3:11~26)

제6과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한 사도들 (행4:23~35)

제7과  교회 안에 부정한 일을 없이한 사도들 (행5:1~11) 

제8과  천사의 도움을 받아 전도하는 사도들 (행5:17~32) 

제9과  교회 일을 지혜롭게 한 사도들 (행6:1~7)

 

논 설 편

1.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디게 되는 일 

2. 반공과 멸공에 대한 차이점 

3.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 

4. 인간 종말에 미워하는 일 

5.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

 

신앙문답

1. 쉬지 않고 기도할 마음은 간절한데 도저히 기도의 힘이 나지도 않고 입을 열어 기도할 말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하기를 성경은 각자가 해석할 탓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성명을 듣고자 합니다. 

3.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이 목회를 할 때에 어떻게 하여야 이 시대의 사람들을 깊은 진리로 들어가게 하며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4. 가정 생활에 있어서 날마다 어제가 옛날이라고 말하리만큼 시국이 변천됨에 따라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가정 지도를 해 나가야만 되겠습니까? 

5. 기독교 안에 어린 학생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일에 대하여 이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방법이 있어야만 하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만 되겠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바랍니다.

 

특    집

1. 10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2. 10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부르짖는 소리 

3. 10월부터 사명자들이 나가야 할 방향 

 

 

 

 

 

 

 

설    교    편

 

참된 기도와 맹세

- 사 65:13~16 -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하되 참된 기도를 하여야 되며 맹세를 하되 참된 맹세를 하여야만 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여도 열매가 없고 아무리 맹세를 세워도 열매가 없는 사람이라면 성산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성산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려면 참된 기도와 참된 맹세를 세워야 할 것이다.

 

  1.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 (13~16상반절)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요구하는 바가 어디를 향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인격과 생활은 좌우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차를 타고 가는 나그네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차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싣고 그 목적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니 어디든지 방향을 두는 대로 생활이라는 것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여도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 기도는 우상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진리대로 될 것을 확신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요15:7)

  사람이 무엇을 요구할 때에 확신이 없이 무조건 한다는 것은 바람잡이 생활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언약을 믿는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은 진리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진리의 신이라는 것은 말씀의 언약을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신이라는 것이다.

  둘째 : 진리를 대적하는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약5:13~15)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없이 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을 당하면서도 마귀를 대적하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을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는 목적은 고난이 있어도 진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평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기도하는 자라야 큰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롬8:17~18). 성신님도 소망 중에 길이 참는 자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롬8:24~27).

  셋째 : 사랑에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빌1:8~11)

  누구든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도 외식이 없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라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는 기도이다.

 

  2.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맹세할 것 (16하반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맹세를 요구하시는 신이 아니시고 당신이 맹세를 세우시고 행하시면서 당신의 맹세를 따라 맹세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을 따라갈 적에 자기의 맹세는 없이 무조건 그 말씀을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지를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세가 중심에 없이 있다가 불리한 조건이 있을 때는 말씀을 따라 행치 않고 그 말씀에서 떠나 자기의 주관에 따라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역사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하나님께 맹세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자이다.

  첫째 : 인을 치는 자이다 (요3:33)

  어떤 사람이 계약서를 썼는데 거기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면 계약서를 쓴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는 인을 치는 사람에게 맹세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신앙에서 아들을 바치기까지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맹세를 세웠던 것이다(창22:16~18).

  둘째 : 말씀을 인하여 목숨을 바친 자이다 (계6:9~11, 20:4)

  이 사람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세세 왕권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들이 세상을 통치하게 하기 위하여 심판하시는 것이다. 말씀에 충성을 다하는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씀하신 것은 앞으로 하나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세계 통치권을 맡겨서 세세 왕국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운 종들이 받은 묵시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자에게 환란을 면케 하고 새 시대의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그 진리를 따라서 맹세를 하고 그대로 나가는 자를 진실한 자라 충성된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앞으로 자자손손이 새 땅 축복을 누릴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를 세워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맹세를 하는 자라야 되는 것이다.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해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사30:18-19).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구하기도 하고 목숨을 바쳐 맹세하는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새 시대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는 진리

- 히 2:9~18 -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것을 주시되 고난을 통과한 자라야 주신다는 것이 진리의 대지가 된다. 고난이 없이 온전이 있다는 것은 공의가 아닌 미혹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란 놈은 모든 것이 고난이 없이 될 것 같이 믿어지게 만들어서 미혹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자기의 말만 들으면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에 미혹을 받아 타락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한 것을 주고자 하실 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것을 주는 법을 실천하신 것이다.

  이제 고난으로 온전케 하는 진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고난을 당하므로 영광과 존귀가 있게 하심 (9)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의 법이었다. 독생자가 잠깐 동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므로 만 왕의 왕이 되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실천이 없이 영광을 받으시는 신이 아니요, 실천하므로 이루어지는 일을 영광으로 받으시는 것이다.

 

  2.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 (10~13)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얻게 되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한 형제라 부르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을 삼으신다. 온전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고는 온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가 없다. 이 날까지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자가 있었지만,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고, 세계 인류를 한 형제가 되게 만드는 역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고난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없이 하심 (14)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이는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를 없이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마귀의 자식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마귀가 망하게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시는 것은 마귀를 유익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요, 마귀는 온전한 나라를 이루는데 한 도구로 쓰는 것 뿐이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없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해방을 주는 일과

  둘째 : 마귀를 없이하는 일을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믿으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채우시고 다음에 마귀를 심판하신다.

 

  4.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항상 도우시는 일을 하심 (15~18)

  십자가의 고난은 한 번 죄를 사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아무런 시험이 오더라도 돕는 역사가 있으므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피로 산 백성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무조건 항상 도와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와주는 것은 법이 없이는 도울 수 없지만, 내 것을 내가 간수하는 일은 마땅히 할 의무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 우리를 돕는 것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의무가 있으니 이것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    론

  고난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 자기의 죄 값으로 받는 고난이요,

  둘째 : 남을 살리기 위한 고난도 있는 것이다.

남을 살리기 위한 고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있는 것이요,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다는 조건으로 남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예수님의 고난으로만 온전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

- 사 60:4~14 -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롭게 되는 일은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하시었다(요17:4~5).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걸머진 어린 양 제물로서 십자가에 죽는 일은 천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가장 영화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영광의 집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사59:19~60:3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영광의 집은 말씀이 동방 사람에게 임하여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빛이 되는 것을 가르쳤는데 새 시대가 동방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성도들이 거룩한 물질을 가지고 동방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4~9)

  각 나라의 성도들이 거룩한 물질을 가지고 동방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방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서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알지 못하던 비밀을 각 나라의 성도들에게 깨닫도록 해주는 일이 있을 적에 진리를 분명히 깨달은 성도들은 진리가 나타난 나라를 향하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동방에 나타난 진리로 말미암아 큰 싸움이 일어나게 되므로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을 피하여 진리를 따라 한 곳에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각 나라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다 싣고 진리가 나타난 동방으로 모여드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 진리대로 살아 보려는 데서 진리의 동산을 찾아오는 것이요,

  둘째 : 원수의 세력과 마지막 싸움을 하기 위하여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나라에 복 받을 성도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은 단체적으로 보호하고 단체적으로 들어 쓰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왕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택한 종들은 마지막 환란이 올 때에 한데로 모이지 않고는 도저히 안되기 때문에 모이게 된다. 각 나라의 복된 사람이 영광의 집으로 모여들므로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섬김을 받게 되는 일이다 (10~12)

  하나님께서 어느 나라의 백성이든지 동방의 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전멸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동방의 사람이 심판권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성경의 종말관을 너무나 혼선시켜 나온 것을 동방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므로 하나님 앞에 큰 과오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동방에 임한 말씀으로 교회에 큰 혁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주관이나 신앙 노선이 좋다고 주장하며 동방 사람에게 임한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 진멸시킨다는 것이니 계22:17~19이하, 사28:11이하가 다 동일한 뜻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듯이 동방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흑암을 뚫고 나가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지상 평화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말씀으로 미혹을 이긴 자라야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새 시대의 왕국을 이루는 특권은 말씀을 받은 종에게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떠나서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화를 받을 것이로되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을 살려 주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하여 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여호와의 성읍이 되는 일이다 (13~14)

  동방에 말씀이 나타난 곳을 여호와의 성읍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과거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산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하였고(출19:23, 24:13), 여호와의 사람들이 역사하던 예루살렘을 성지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언적인 율법과 예언의 묵시를 나타낸 일이지만 종말에 여호와의 영광이 동방에 나타나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곳을 여호와의 성읍이라,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중심지가 동방이므로 그곳을 거룩한 곳이라고 칭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제일 영화로운 사람은 지상 축복을 받는 성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이다. 지상 왕국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극도로 영화롭게 되는 일이니 첫째아담이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지 못하므로 저주를 받았지만 동방에 말씀을 받은 종이 대 승리를 보게 되므로 지상에 큰 영광의 새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영화롭게 되는 일이다.

 

  결    론

  가장 복되고 영화로운 일은 동방 역사라고 본다. 성경에 숨어 있는 비밀은 동방 역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남은 역사는 동방 역사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는 비밀을 모르고 망한 것과 같이 말세에도 동방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반대하는 자는 다 망하게 될 것이다.

 

 

잠잠히 신뢰하는 자의 힘

- 사 29:1~8, 30:15~17 -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고자 하실 때에 당신의 사람으로 잠잠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아 넣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도록 하신 후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여호와를 의지하고 낙심치 않는 자의 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슬픔 중에 의뢰하는 자의 힘 (29:1~8)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종이 슬퍼하고 우는 심정으로 당신을 의뢰하게 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택한 자의 눈물을 보고 응답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1~2, 사25:8)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눈물 없이 못 가는 시련의 길을 주시는 것은 원수를 갚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때부터 언제나 택한 자에게는 억울한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한 자를 들어서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 되는 환경에 떨어지게 해서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간절하게 하고 다음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둘째 : 아무런 소망 없는 난관에서 홀연히 역사하기 때문이다 (3~4)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가 원수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음성조차 낮아져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같이 하나님께 아뢸 수밖에 없게 될 때에 응답을 하신다. 이것은 극도로 미약한 가운데서도 작은 소리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는 동시에 크게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미한 소리로 기도를 했더라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 만큼 기도했다면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 : 강한 대적이 잠잠히 쓰러지게 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5~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이 잠잠히 당신 앞에 기도하는 것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동시에 대적을 당신 앞에서 세미한 티끌같이, 불려가는 겨같이 없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들 필요는 전혀 없다. 참된 신앙 양심에는 난관을 만나도 아무런 파동이 없이 잠잠히 신뢰하는 자리에서 여호와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2. 침묵 중에 의뢰하는 자의 힘 (사30:15~17)

  어떠한 어려운 일이 와도 안연한 가운데서 잠잠히 침묵을 지키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는 원수의 세력이 다 전멸을 당하는 날이라도 그는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잠잠히 신뢰하는 자에게 어떠한 일이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생각밖에 큰 응답을 받게 된다 (출14:13)

  아무리 급한 일이 온다 해도 겁을 내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큰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군대가 뒤를 따라 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막혀 큰 위기를 만났을 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였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미리 겁을 먹고 떠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약한 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잠잠히 신뢰하는 힘을 받을 적에 이것은 큰 역사가 올 징조인 것이다.

  둘째 : 오히려 정로를 찾게 된다 (사30:20-21)

  주님의 인도라는 것은 조용히 인도하는 것이니 잠잠히 신뢰하는 자에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게 바른 정로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려운 일이 닥쳐오는 것은 앞길에 더 올바른 길이 나타날 징조라고 본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서 보디발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가야할 정로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모략이었다(사48:17).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자는 당신을 공경한다 하면서 공연히 떠들며 인간 수단 방법으로 불의와 타협을 하고 왕래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안연히 거하며 잠잠히 여호와를 신뢰하면서 그날 그날에 작은 일에 충성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면서 용기있게 나가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나리는 것이다. 새 시대를 축복으로 받을 자는 잠잠히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들이다.

 

 

기독교 흑암과 강권 역사

- 사 59:9~18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에게 기독교 종말의 흑암이 무엇이며 강권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교회가 부패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갔다 하여도 강권 역사를 행하시고 심판을 나리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흑암

  첫째 : 빛을 바라나 어두운 일 (9~10)

  교회가 아무리 애를 써도 흑암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사랑이 떠나고 공평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무시하게 될 때에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나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눈이 있어도 소경이 되고 빛이 있어도 그 빛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흑암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 어두운데 있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요일2:9~11). 기독교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사랑의 본질을 떠나고 공평을 떠나게 될 때에 십자가의 원수가 되므로 자동적으로 흑암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 구원을 바라나 멀어지는 일 (11~13)

  구원이라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죄인을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바라보면서도 죄악을 떠나는 생활이 없다면 그 생활은 구원과 멀어지는 생활이다.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구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죄를 용납할 수 없어서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거짓이 있는 자를 용납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교회 흑암이라는 것은 구원을 바라보면서 성결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셋째 :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는 일 (14~15)

  교회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니로되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게 되면 정직한 사람이 일할 수가 없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교회는 흑암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사도 앞에 불의한 자들이 있다 하여도 다 쓰러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령한 교회로 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교회는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라고 한 것은 불의한 자가 권리를 쥐고 있으므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될 때에 이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강권 역사를 행하고야 심판을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강권 역사

  첫째 : 쓸 사람이 없으므로 강권 역사를 행하시는 일 (16)

  교회의 지도자 부패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질 때는 하나님은 강권 역사로써 새로운 종이 나오도록 하셔야만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스라엘 말기에도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은 지도자 부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지도자들에게 임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복구된 것은 새로운 순의 종이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나오게 하므로 된 것 같이 심판기에도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여호와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고 역사한다고 하신 것은 강권 역사를 뜻한 것이다. 가장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은 지도자 부패라고 본다.

  둘째 : 구원을 베푸시며 원수를 갚는 일 (17~1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 강권 역사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구원을 베푸는 일도 강하게 역사하시고 심판을 나리는 것도 강하게 역사하시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국가에서 적군이 들어올 때에 적군을 치는 것도 강하게 치며 자기 백성을 구해 주는 것도 강하게 다스리는 것과 같다.  

  은혜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때가 아니므로 원수에게 피해를 당해도 그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는 친히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동방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한 것은 동방 역사는 원수를 갚는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진노는 교회 부패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부패되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서 새로운 일꾼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 사 56:7~8, 66:5~6, 습 3:19~20, 미 4:6~8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처음에는 쫓겨나게 하시고 다음에는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과거의 역사요 현재의 역사요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다. 어찌해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쫓겨남을 당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택한 자의 진실성을 알아보자는 목적이요,  

  둘째는 당신의 능력을 세상이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셋째는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쫓겨남을 받은 자가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단체를 이루게 하심 (사56:7~8)

  완전한 단체라는 것은 평안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단체가 아니요, 어려운 일을 당하는데서 사상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단체를 완전한 단체라는 것이다. 쫓겨남을 받은 사람들이 한 단체를 이룰 때에 사상과 정신과 마음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뭉쳐지게 된다. 이 단체는 사상 통일, 정신 통일, 마음 통일을 이룬 단체로서 이상적인 나라를 이룰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당신의 성산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2. 쫓겨난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심 (사66:5~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난 사람을 위하여 원수를 갚되 아무리 당신의 성전이라도 황폐화시키기도 하시고 당신의 자녀라도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낼 때에는 원수로 알고 싸워 주시되 그들을 진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 감정으로 남을 쫓아내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심판의 다림줄의 문제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쫓아내었다면 그 사람은 용서 없이 그 말씀대로 오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 쫓겨난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심 (습3:19~20)

  가장 칭찬과 명성이 높은 자는 진리를 위하여 쫓겨나면서도 싸워 나가던 자들이라고 본다. 우리 나라의 서울에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나라를 위하여 싸운 사람들의 동상을 많이 세운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의 나라를 위하여 진리를 전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운 자라면 얼마나 그 칭찬과 명성이 높을 것인가! 그러므로 시온 대회를 인하여 근심을 하며 괴로움을 당해도 거기에 굴복치 않고 나간 자들이 천하에서 제일 명성이 높아질 것이다.

 

  4. 쫓겨난 자로 영원한 나라를 이루심 (미4:6~8)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장 진실한 자로써 영원한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쫓겨난 자로 강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아무리 그 세력을 자랑하던 강대국이라 하여도 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그 자체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하고 남을 압박하고 쫓아내던 나라들이므로 자기 자체가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쫓겨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싸워 나간 자라면 하나님께서 볼 때에 제일 강한 자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악의 세력을 강하게 해서 당신의 사람을 대적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으로는 원수의 세력을 이길 수 없으므로 쫓겨나게 되지만 끝까지 싸워 나갈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완전한 강국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쫓겨난 자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를 위한 연회와 신앙의 차이점

- 요 12:1~11 -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즐거운 연회를 이룬 일이 있었다. 이것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 대하여 기쁨으로 열려지는 연회이었다.

  이런 연회는 세상에서 드문 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연회를 놓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의 그 신앙 차이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죽어서 장사를 지낸지 나흘만에 나사로가 살아나는 증거를 볼 때에 회개하고 마음이 하나가 될 것 같았지만 이러한 자리에서도 믿음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었다.

 

  1. 마르다와 마리아의 상태 (1~3)

  인간이 볼 때는 훌륭한 성직을 가진 자도 아니요, 훌륭한 성직을 가질 자격도 없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크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에 마르다는 조금도 원망이 없었고, 부활한 후에도 더욱 열심을 얻고 주님을 모시고 즐거운 잔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물심양면으로 봉사하는 생활을 하였다. 몸으로 고생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봉사하였고 물질로도 아낌없이 할 때에 향기로운 기름을 예수님께 붓고 심지어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기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지나친 것 같지만 그 중심이 얼마나 간절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정도였다.

 

  2. 가룟 유다의 상태 (4~6)

  인간이 볼 때는 정당한 말을 하고 사무적인 처리도 명랑하게 하는 것 같았으나 실지는 도둑의 사람이었다. 자기는 연보궤를 맡아 가지고 돈을 훔쳐 가는 일이 있으면서 마리아에게 책망하며 하는 말이 '이 향기로운 기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얼마나 좋은 일인데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붓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면서 역설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이것이 합당한 말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저히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이적 기사를 보고 직접으로 교훈을 받으면서도 성금을 훔치는 일이나 양심에 가책도 없이 뻔뻔스럽게 빈민을 구제한다는 미명을 쓰고 말한다는 것은 가증한 말이 아닐 수 없다.

 

  3. 구경하려고 모여든 무리의 상태 (9)

  진리를 말할 때는 대중이 따르지 않았지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훌륭한 잔치를 베푼다고 하니 큰 무리들이 구경을 하려고 모여들게 되었다. 실지 알고 보면 죽은 나사로가 산 것이 인간에게 유익 되는 것이 아니요, 주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건만 말씀보다도 살아난 나사로를 구경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죽은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것을 직접 본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대중을 선동시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는 다 배반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는 일이 있었다. 이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치 못한다'고 하면서 조롱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이적을 따르는 무리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4.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대제사장들의 상태 (10)

  소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라 하는 무리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를 하니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사단의 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교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이방 사람이라도 이렇게 악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라 하면서 공연히 남을 해치려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것이다. 기독교 종말의 최고 악은 거짓 선지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누구든지 다 죽인다는 것이다.

 

  결    론

  슬프다. 이스라엘이여!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성전에 악당들이 충만했고 거룩한 예루살렘 거리에는 벌레 떼같이 많은 인간들이 아무런 진리를 모르고 공연히 왕래하는 것은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베다니 동리의 외로운 가정에 고아인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가 복 있는 사람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우리는 주님을 위한 즐거운 연회 속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의 차이점을 볼 때에 현 교계를 회상해 볼 필요가 있다.

 

 

복된 가정을 이룬 비결

- 마 1:18~25 -

 

  가장 복된 가정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가정이라고 보게된다. 예수님께서 자라나 역사하시므로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대 사업의 시발점이 되는 가정은 인간이 볼 때에 빈약하고 아무런 권리가 없는 목수의 가정이었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와 같이 복된 가정이 이루어졌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결이 본문에 있다.

 

  1. 성남 성녀로 이루어진 가정 (18~19)

  본문에 마리아에게는 성신으로 잉태가 되었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거룩한 성신의 잉태가 이루어졌고 의로운 요셉에게 복된 여종을 아내로 주었던 것이다. 가정이라는 것은 먼저 거룩한 믿음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축복의 가정이라는 것은 물질이 많은 것보다도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신이 같이 하는 가정이니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비롯하여 대 사업을 개척하시는 것이다.

  부부는 만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룩한 믿음의 토대를 삼은 부부가 만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복된 가정을 이루므로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졌고 요셉과 마리아가 복된 가정을 이루므로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거룩한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남 성녀의 결합이 없이는 아무런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가 되었다하더라도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마리아에게는 큰 불행을 가져올 위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왜냐하면 정혼하고 결혼하기 전에 잉태가 되었다는 것은 남편 될 요셉이 큰 노를 발할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여자가 자기 몸에 동침이 없이 잉태가 되었다 할 때에 아무리 온유한 자라도 분 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2. 주의  천사가 도와주는 가정 (20~21)

  인생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일을 바로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모르는 일을 알려 주기도 하시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도 해 주시고 항상 택한 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세상 학식이 풍부한 사람끼리 부부를 이루었다하여도 복된 가정이 될 수는 없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보내어 도와주는 일이 있어야만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노아의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된 것도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역사가 천사를 통하여 도와주기 때문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무리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하더라도 천사의 돕는 일이 아니었던들 마리아는 생명이 위태한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천사가 현몽하여 가로되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였다. 이러한 지시가 있으므로 가만히 끊고자 하는 마음에 오해를 풀고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앞으로 주의 천사가 지시하고 인도하는 일이 없다면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일을 바로 알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었던 것이다(마11:27).

 

  3.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는 가정 (22~25)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먼저 깨달은 일은 요셉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7:14을 분명히 깨달아서 요셉은 기쁨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여러 가지 난제가 많이 있지만 돌파하고 거룩한 가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요셉과 결혼을 하기 전에 마리아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그때의 사회에 큰 문제거리가 되는 일이다. 지금은 남녀의 결혼식이 있기 전에 동침하는 것을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을 하지 않지만 과거 거룩한 신앙을 가진 자들은 큰 범죄로 알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완전한 부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사회 앞에 자기가 책임을 지고 마리아를 보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처녀가 잉태하는 경우에는 돌로 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잉태를 믿어줄 자는 요셉밖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요셉은 아무런 비소와 조롱이 있다하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성신의 잉태를 철저히 믿고 사7:14을 기억하고 싸워 나갔던 것이다.

  복된 가정을 이루려면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에게 비방을 받는 일이 있다하여도 말씀을 믿고 합심 단결하는 가정이 되어야만 될 것이다.

 

  결    론

  가정이 없이 사회가 있을 수 없고 가정이 없이 교회가 있을 수 없다. 기독교의 진리는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므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니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은 복된 가정이 새로운 나라를 이룬 것을 말한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법

- 마 7:7~12 -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이것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 당신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법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구하여야 준다는 법이다 (7, 8상반절)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준다는 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과 의합된 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주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법이 있다.

  첫째 :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완전케 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 : 나 자체는 힘이 없고 아버지께서 힘을 주셔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구하는 것이다.

  셋째 :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인간이므로 아버지께서 알게 해 주므로만 알 게 된다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자기 부족을 깨닫고 미약을 깨닫고 무식한 것을 깨닫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받고 보니 감사할 것 뿐이라는 데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2. 찾아야 찾는다는 법이다 (7, 8중반절)

  사람이 무엇을 찾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자라고 볼 수 있다. 동물이라는 것은 먹을 것만을 찾는 것이요 식물이라는 것은 수분을 찾는 것이요. 사람이란 자기의 만족을 찾는 것이다. 인생은 자기의 만족을 구할 때에 돈이 있다 하여도 만족이 없고 이 세상에서 명예가 높다 하여도 만족할 수 없고 많은 대중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하여도 만족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보다도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고 골3:1에 말했다. 위의 것을 찾을 수 있는 인격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인격 여하에 따라서 찾는 것이 있으니 위의 것을 찾는 인격을 가진 자라야 마음에 만족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위의 것을 찾는 것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법이다. 왜냐하면 위의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인간은 알지 못하므로 위의 것을 찾는 자가 받는 것은 땅에 있는 사람이 찾는 것 이상에 더 좋은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3. 두드려야 열어 준다는 법이다 (7, 8하반절)

  두드리는 심정을 가진 자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진 자이다. 남의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 달라는 것은 그 만큼 강한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명자가 되려면 인간이 감히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급한 사정이 있어서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주어야할 편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하더라도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서 달라는 것과 같다.  

  눅11:5이하를 보면 어떤 친구가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는 것이다. 밤중에 손님이 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으므로 친구의 집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강청할 때에 친구를 보아서 주는 것보다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준다는 말씀이 기록되었다. 내가 먹기를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대접하기 위해서 강청하는 것이니 그 사정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양떼를 살리기 위하여 강하게 부르짖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 주모가 되는 일을 많이 한 이 기선 목사님은 은혜가 없다고 소문이 나서 교역자로 모셔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한문 서당에 훈장을 하다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 그루터기를 끌어안고 이레 동안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기도할 때에 양떼를 살릴 수 있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되는 날 큰 역사가 그에게 오므로 그때부터 놀라운 대 부흥사가 되어 이적 기사가 나타나고 간데 마다 대 부흥이 일어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강한 기도를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되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략이있다. 이 모략이라는 것은 구하는 일과 찾는 일과 두드리는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환경에 몰아 넣고 그 환경 속에서 구하는 대로 찾는 대로 두드리는 대로 주시되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9~12).

 

  결    론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법은 총 대지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법은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니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자에게 얼마든지 모든 것을 더 좋게 주신다는 것이다. 상급이라는 것은 남을 대접하는 자에게 주는 상급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말자

- 골 2:8~23 -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생활이니 그리스도인이 그 위력을 상실할 때에 아무런 열매 없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잃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이 있어야 한다.

 

  1. 인간 철학을 초월한 데서 충만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8~11)

  오늘날 기독교인의 큰 실패는 기독교 신앙 세계의 산 체험이 없이 인간 철학으로 신앙 세계를 움직여 보려는 것이다. 이것은 조갑지로 바닷물을 되려는 사람과 같으니 인본주의적인 철학에 노략을 당할까 주의할 것이며 인간의 초등 학문적인 철학적 세계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한 것을 체험하여야 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은 인간 철학으로는 감히 그 세계를 도달할 수 없고 육적의 몸을 벗어나서 신의 세계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는 단계로 들어가야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를 이루셨으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의 역사로 인격을 완전히 개조시키는 일이 있게 된다. 이렇게 되므로 철학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세계라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신학자라 하는 자들이 철학을 초월한 신의 세계의 충만을 체험치 못하고 철학적 세계에 노략을 당한 상태에서 신학을 연구하는 자가 있다. 이것은 예를 들면 대학생을 앞에 놓고 강의할 사람이 소학교 학과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나 같다.

 

  2.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생활에서 율법을 초월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12~17)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가 되고 함께 일으킴을 받은 생활이다. ‘나’라는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니 율법을 따라서 행하는 역사가 아니고, 율법에 대한 죄의 세력을 완전히 도말 하고, 십자가의 승리로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받았으므로 그림자가 되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우리를 변론할 필요조차 없고, 율법과 율례를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받으므로써 그리스도의 생활의 위력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에 역사가 없이 신앙 생활을 한다면 이 사람은 아직까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아니요, 죄인의 생활이라고 본다. 과거에 죄를 진 인간들에게 몽학적인 교훈을 한 것이 율법과 계명이다. 우리는 죄인 된 인격을 그대로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죄인 된 인격은 장사한 바 되고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지배하므로 그 역사 아래서 살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육의 사람을 완전히 벗어나 영의 사람으로 움직일 때에 과거에 받지 못하던 하나님의 역사를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이라는 것을 체험하여야만 될 것이다.

 

  3. 일부러 겸손한 자에게 지배를 받지 않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18~19)

  소위 인간 도덕적 겸손이라는 것은 일부러 겸손하게 태도를 취하는데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일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이것에 끌린다면 아무런 상을 받을 수 없이 되므로 자동적으로 영적은 메말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항상 공급을 받아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로 나날이 자라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위력이라고 한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이 아니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 자라나게 하는 역사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생활의 위력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4. 사람의 명한 것과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20~23)

  어떤 사람이 의식이나 필요 없는 숭배나 모양을 내려는 방면으로 치우칠 때에 성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6:1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 중심에서만 그 역사를 받게 될 때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이라는 것은 철학적이나 율례적이나 도덕적이나 인간의 어떤 숭배적인 것을 초월해야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사명과 인격 문제

- 마 28:11~20 -

 

  인생이라는 것은 사명과 인격과의 큰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사명 아래서 그 인격은 좌우된다. 어떤 사람은 사단의 세계로부터 사명을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사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단의 세계로부터 받은 사명과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받은 사명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1. 마귀로부터 받은 사명 (11~15)

  마귀로부터 오는 역사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대제사장들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교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일을 했다. 사단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돈을 가지고 사람을 매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먼저 주면서 사명을 맡기는 것은 분명히 사단의 세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본다.

  사단의 세계로부터 오는 역사는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첫째 : 궤휼적인 음모가 있다.

  둘째 : 세상 권리를 교섭하는 일이 있다.

  셋째 : 빠른 시간에 널리 퍼지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귀의 세력이 가득하므로 궤휼적인 세력은 강해지고 세상 권리를 교섭하는 일이 강해지고 회개 없이 충동을 받는 일이 강해지므로 사단의 세계에서 오는 사명을 받은 자들이 교권과 물권과 정권을 쥐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상에 탄생하면서부터 마귀의 세계에서 역사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하는 사단의 음모는 오늘날에도 대중의 심리를 끌고 있는 것이다. 거짓 선지라는 것은 언제나 이 세 가지가 따라오는 것이니 이 역사가 오늘날 세계적인 거짓 선지의 세력을 이룬 것이다.

 

  2.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16~20)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미약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인간의 방법으로는 너무나 허무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단의 세계로부터 오는 역사는 대중을 움직여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는 큰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는 필연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 있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므로 (18)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고 부활을 전하는 것을 반대하고 교권과 물권과 정권을 가지고 나선 무리가 기독교를 없애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을 다했지만 이미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마귀의 세력은 그리스도의 장중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계1:18~19).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은 영원한 왕권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의 통치권을 받으시고 사명을 맡으셨으므로 아무리 마귀의 역사가 강하다 하여도 승리는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예수님이 실패를 한 것 같으나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세계를 정복한 마귀 세력은 완전히 망하게 되는 일이 시작되었다.

  둘째 :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역사가 있으므로 (19)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역사가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죄에서 마귀의 권세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적에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세례라는 것은 마귀의 종이 되었던 몸은 완전히 없어지고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뜻에서 물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마귀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례에 있어서 속화되었다는 것은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세례는 있으나 없으나 같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례는 의식이 아니요 완전히 마귀 권세를 벗어나는 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말씀하셨다(마3:15). 하나님께서 세례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을 비둘기 같이 나려 세례를 받는 예수님 위에 임했던 것이다. 또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은 인간 죄를 걸머지고 대표로 물에 잠겨 올라오는 것은 모든 의를 이루는 일이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이다.  

  오늘날 마귀의 역사는 이 세례를 속화시키는 일을 한다. 인간이 볼 때는 이 몸이 물에 잠겼다 올라오는 것이 대수롭지 않는 일로 보이지만 이것은 마귀를 완전히 이기는 법이 되는 것이다.

  셋째 :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 있으므로 (20)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다. 오늘날 마귀의 미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 보다도 세상 학문을 더 존중히 여기는 일을 가지고 교회에 침투하여 소위 학사, 박사를 하나님의 기름 부은 목사보다도 더 존중시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사명이라는 것은 세상의 어떤 권세나 지식을 초월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받는 일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로 세계를 정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킬 수 있는 사명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항상 우리와 같이 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결    론

  사명과 인격이라는 것은 전 세계 인류를 정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의 세계에서 오는 사명을 받은 자도 세계적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을 받은 자도 세계적이니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을 받은 자에게 있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

- 유 3, 20~22 -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니요, 신앙 노선의 정로가 있는 반면에 곁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정로를 가기 위해서는 곁길을 가는 자들과 자동적으로 싸우는 일이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신앙 정로가 있는 가운데 곁길이 있게 하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신앙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것을 알 것 (3)

  믿음의 도라는 것은 인간 편에서 저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미리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대로 실천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나타난 것이 구원을 완성한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 역사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고, 구원을 완성하고,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고 구원하는 일은 이미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 그대로 사람에게 주는 것을 속죄와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도라는 것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와 구원을 완성하신 것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거저 받게 되는 것이다.

 

  2.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할 것 (20상반절)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거룩한 성부, 성자, 성신이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역사를 믿음을 통하여 받게 될 때에 ‘나’ 라는 자체는 그 역사를 믿는 신앙에서 날마다 발전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믿으므로 내가 완전해 진다는 것보다도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나’ 라는 것이 전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거룩한 인격을 하나님께 은혜로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으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것도 탈선이요, 내가 예수를 믿으니 내가 행한다고 장담하는 것도 탈선이다. 오직 우리는 거룩한 믿음 위에서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지 말고, 싸워 나가는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계속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할 때에 자아라는 인격은 자아의 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믿음 위에서 날마다 향상되는 것이다.

 

  3. 성령으로 기도할 것 (20하반절)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생활이 없이는 아무런 힘조차 얻지를 못하게 된다. 언제나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으므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승리를 이루게 되어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기도하는 영계에 들어가려면 조금이라도 불의를 용납하지를 않아야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 위에서 불의와 싸워 나갈 때에 성령의 기도는 내게 강하게 역사하므로 완전 승리의 인격을 이루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킬 것 (21상반절)

  우리는 ‘나’ 라는 것이 스스로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나’라는 자체는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려면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된다. 조금이라도 속화된 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생활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바라본다든지 자기의 어떤 욕망을 채워 보려는 것은 참된 신앙에 들어간 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라는 것은 거룩한 믿음인 동시에 인격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겨지는 것을 기독교인의 신앙의 정로라고 한다.

 

  5. 긍휼을 기다리는 것 (21하반절~22)

  긍휼이라는 것은 게으른 자나 타협을 하는 자나 교만한 자에게는 있을 수 없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는 긍휼함을 기다리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불의와 타협하면서 “주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라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 될 것인가!

 

  결    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 원수가 누구냐 하는 것을 말한다.

  첫째 : 정욕대로 행하는 자.

  둘째 : 기롱하는 자.

  셋째 : 당을 짓는 자.

  넷째 : 육에 속한 자.

  다섯째 : 성신이 없는 자.

 

 

십자가의 원수는 멸망

- 빌 3:17~19 -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그냥 두고 멸망을 시킨다면 이것은 불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모태로 날 때부터 억울하게 죄에서 태어나서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도 없고, 공경하려고 해도 공경할 수도 없고, 진리를 들어보려야 들어 볼 수도 없는 것이 세계 인류의 비극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이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듣고도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인간들은 멸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저희의 배로 신을 삼는 일이다 (19상반절)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헐벗고 굶주리며 눈물과 땀과 피흘리기까지 복음을 증거해도 짐짓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고, 자기의 배부르는 것을 목적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는 멸망이라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 없게 생각하는 일

  둘째 : 사람에게 영생이 없다는 일

  셋째 : 사람은 고등 동물이라는 일

  이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인간들을 가리킨 것이다.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는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고 죄를 짓고 다니면서 짐짓 죄를 사하는 진리를 부인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것은 멸망할 자식의 행동이므로 멸망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했기 때문이다.

 

  2. 부끄러운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19중반절)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일은 십자가를 믿지 않고 사는 생활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자기를 살려 주는 것인데, 살리는 일을 오히려 원수로 알고, 자기를 죽이는 일을 영광으로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많이 졌는데, 그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하여 많은 돈을 가지고 조용한 밤에 그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릴 적에 빚에 단련을 받던 사람이 문을 걸어 매고 밤에도 빚을 받으러 왔다고 야단을 친다면 이것이 알고 보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인간들이 자기들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칠 때에 도리어 그 사람을 원수로 알고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죄를 진 인간들에게 죄를 사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싫어한다는 것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를 믿되 젊어서 믿을 일이 아니요, 늙어서 믿을 일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젊어서 훌륭하게 되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줄 알고 젊어서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노는 것을 영광으로 본다면 이 사람이 부끄러운 것을 영광으로 삼는 자이다. 사람이 일생 동안 옳은 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면 세세 왕권의 영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젊어서 마음대로 놀고, 자기 육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영광으로 본다는 것은 영원히 부끄러운 일을 당할 일이라고 본다.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은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부끄럽게 알고 그 날 그날 자기의 육적 안락을 꿈꾸고 살아 나가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와서 인간을 위하여 빈곤의 생활과 노방 전도의 생활과 십자가의 혹독한 형벌을 받으시면서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그 은혜를 모르고 그날그날 자기 육의 만족을 위하여 사는 생활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3. 땅의 일만 생각하는 일이다 (19하반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 땅을 영원한 처소로 삼은 것이 아니다. 천국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 ‘너는 땅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 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 말을 순종하면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몸으로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는 것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땅의 일만 생각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흑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사람을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지도록 해서 신령한 사람으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십자가의 목적이요, 십자가의 사랑인 것이다. 그래도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는 사단의 자식이 되어 멸망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십자가에 죽는 것을 면케 해 달라고 할 때에 ‘사단아, 물러가라’고 책망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것을 생각지 않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로되 하늘의 것을 생각지 않고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대적으로 알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날 그날에 십자가를 지고 위엣 것을 목적하고 싸우는 생활이 아니고는 십자가의 의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결    론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은 죄인이 되는 것보다도 악인이 되는 것이니 악인에게 멸망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온 세상에 전파되고 다음에는 십자가의 원수를 없애고 십자가의 승리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는 영원한 영생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요, 우리 사람의 할 일은 그 의를 순종하는 것 뿐이니 그 의를 대적하는 것이 멸망이 된다.

 

 

온전히 담대한 바울

- 빌 1:19~30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온전히 담대하게 될 때에 그를 들어서 쓰시되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므로 영광을 종에게 주기도 하시고 받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온전히 담대한 바울을 통하여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루는 열매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기독교를 박멸코자 하던 바울이 기독교를 위하여 온전히 담대한 종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될 줄 알므로 (19)

  성신의 역사로써 일하는 바울은 자기 힘으로가 아니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갈 때에 하나님의 신은 강하게 역사했던 것이다.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통과시키면서 역사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성신을 받고 일하는 종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성신의 완전 역사로 모든 것이 완전히 이룰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나가야 한다.

  아무도 바울을 도와주지 않았지만 성신의 도움만 믿고 날마다 싸워 나갈 때에 어디를 가나 교회가 서게 되었던 것이다. 마귀의 역사가 강하면 성신의 역사도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니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욱 담대한 사람이 되면 그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감사할 일이 있게 된다.

 

  2.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는 생각이 있으므로 (20)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바울은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 온전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때에 더욱 강한 힘을 로마 옥중에서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한다는 생각으로 무장된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자기라는 것을 생각지 않으며 죽든지 살든지 여기에 대하여 문제시하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기 위하여 싸우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같이 하므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완전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3. 모든 일을 유익하게 생각하므로 (21~24)

  사도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고 사는 것도 유익하지만 주님 앞에 가는 것보다도 세상에 있어서 일하는 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유익할 것을 생각하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게 되었다.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모든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워 나갔던 것이다.

 

  4. 믿음의 진보가 있을 것을 알므로 (25~26)

  우리는 어려운 일이 온다고 해서 믿음이 없어지는 것보다도 더욱 진보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옥중 생활을 할 때에 약해지지 않고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더할 것을 확실히 알고 오히려 옥중에서도 위로의 편지를 써서 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냈다. 옥 밖에 있는 성도들이 옥중에 있는 바울을 위로하는 것보다도 옥중에 있는 바울이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5. 대적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을 강조하므로 (27~28)

  하나님의 종이 대적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할 자요, 복음을 믿는 자는 구원받을 자라는 것을 담대히 믿고 증거하여야 한다.

 

  6. 은혜로 주신 것은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므로 (29~30)

  우리는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을 하여야 된다. 왜냐하면 은혜를 주신 것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게 하기 위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신 것이다.

 

  결    론

  온전히 담대한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은 우리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는 말씀이라고 본다. 사도 바울이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록한 말씀을 믿는 자라면 바울과 같이 온전히 담대함을 받게 될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세계적 선교의 위력

 

  총    론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너희는 위로부터 나리는 성신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신이 강림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교회에 큰 발전을 가져 왔지만 국경을 넘어 이방 민족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용기조차 가지지를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명령하여 이방 나라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이렇게 된 역사의 위력은 어떻게 된 것이라는 것을 이번 달에는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이방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됨

- 행 10:28~48,  요절:44 -

 

  서    론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는 일에 순종한 것이 위력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방과 유대 사이에 막혔던 장벽이 무너진 일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역사하는 일이 아니라면 안되겠으므로 이방인에게도 지시하고 유대인에게도 지시해서 그 장벽을 무너뜨리게 한 것이다.

 

  1대지 : 유대인에게 지시하심 (28~29)

  베드로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집에 가서 교제한다는 것은 위법인줄 알지만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노라”고 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해변 욥바 피장이 시몬의 집에서 이층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앞에 드리웠다. 자세히 보니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다. 소리가 있어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할 때에 베드로는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라고 하였다. 또 소리가 있어 가로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음성을 세 번이나 듣고 있을 때에 이방 가이사랴에서 사람이 찾아 왔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이나 다 깨끗케 할 것이니 차별 없이 세계적인 선교를 시작하라는 것인 줄 깨닫고 서슴지 않고 이방인의 집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2대지 : 이방인에게 지시하심 (30~33)

  이방인 고넬료는 주의 천사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들이 기도한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빈민을 구제한 것이 하나님께서 기억 하셨다고 하면서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행11:13~14). 이때에 고넬료는 사람을 해변 욥바에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기 위해서는 직접 천사를 보내어 인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방 땅에 선교가 개척된 것은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시작된 것이다.

 

  3대지 : 베드로가 완전히 깨닫게 됨 (34~35)

  베드로가 절대로 이방과 유대가 차별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받으시는 줄로 깨닫고 서슴지 않고 입을 열어 증거하게 되었다.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자가 있고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분명히 깨닫는 일이 있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힘을 얻게 되었다.

 

  4대지 : 화평의 복음을 전함 (36~42)

  화평의 복음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므로 하나같이 중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5대지 : 성신이 이방인들에게 임함 (44~46)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신을 부어 주실 때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방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6대지 : 물로 세례를 줌 (47~48)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일을 베드로가 실행한 것이다(마28:19).

 

  결    론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자와 복음을 받을 자에게 하나같이 지시해서 이방의 전도 문이 열리게 한 것이 세계 만국에 선교를 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기 위해서 직접 천사로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이 있다.

 

 

제2과  성신의 보내심을 받아 선교를 하게 됨

- 행 13:1~10,  요절:2 -

 

  서    론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바나바와 바울을 먼 나라 선교를 위하여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 바나바, 바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전도에 나섰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교파적인 단체에 선교 기관이 있어서 보낸 것이 아니고 성신의 명령에 의하여 순종한 것 뿐이다.

 

  1대지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신의 지시가 나타남 (1~2)

  성신의 지시라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니 성신의 지시가 없이 중대한 일을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에 간절한 기도가 있을 때에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워서 일하게 하라는 성신의 명령이 있게 되었다.

  언제나 참된 종은 성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성신의 역사가 없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칭 선지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신의 지시에 따라서 순종하는 것은 자칭이 아니고 사도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2대지 : 안수하여 보냄 (3~4)

  사명적인 안수라는 것은 성신의 역사 없이 있을 수 없다. 성신의 역사가 없는 안수라는 것은 교회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신의 역사 없이 안수를 하는 자도 안수를 받는 자도 형식을 따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명적인 안수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은 사람이 명령을 받고 나가는 사람에게 안수하는 것이니 이런 안수는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파하는 위력이 되었던 것이다.

 

  3대지 : 거짓 선지를 굴복시킴 (5~12)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쓸 때에 두 가지로 쓰시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눈물 흘려 가며 깨닫도록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시는 것이요, 진리를 듣고도 짐짓 반대하는 거짓 선지는 책망을 해서 굴복시키는 일을 하게 하신다. 바나바와 바울이 유대인 거짓 선지를 책망하여 굴복을 시킨 것은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행한 일이다. 과거에 사도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는 일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기독교를 없애기 위하여 폭행을 한 것은 알지 못하고 한 일이라고 하였다(딤전1:13).

  그러나 바예수는 바울 앞에서 책망을 받고 두 눈이 어두워지게 된 것은 짐짓 복음을 듣고도 방해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성신이 충만하여 말하기를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겠느냐 하면서 바예수를 책망을 했던 것이다. 복음 전도자는 조금도 불의를 용납치 말고 강하게 나가야만 위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절대로 사단의 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과 성신의 명령에 따라서 사명자 안수가 있어야 된다는 것과 전도자는 사단의 자식을 용납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철저히 행해 나갈 때에 선교의 위력을 얻게 된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택한 종을 들어서 쓰는데 있어서는 강권 역사가 있으므로 종된 자로서 보내심을 받게 되므로만 열매가 많게 되는 것이다.

 

 

제3과  이방의 빛이 되는 선교 운동

- 행 13:44~52,  요절:48 -

 

  서    론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으로 퍼져 나가는 빛이 되었다. 모든 선지가 이방의 빛이 되리라고 말씀한 예언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복음이 전하여 지는 곳마다 유대인은 발악적인 행동을 하였고 이방인들은 기뻐서 환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보아서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악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할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1대지 : 유대인들의 시기함 (44~45)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이방인들은 환영하며 말씀을 듣고자 모여들었지만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유대 나라가 망하게 된 동기다. 유대 민족이 예수를 반대하므로 나라를 잃어버리고 오늘날까지 남의 나라로 다니면서 압박을 받고 2차 전쟁 당시에는 독일에서 600만명이 학살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본다면 그 민족에게 얼마나 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말1:11에 해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2대지 : 이방 중심으로만 선교 운동을 함 (46~47)

  어느 곳에 가든지 유대인들은 따라 다니며 복음 운동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이방인을 중심하여 복음 운동을 하는 것이 성서적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예언이 응하는 일이므로 사도들의 마음까지도 다 이방을 향하여 나갈 마음이 불타게 했던 것이다.

 

  3대지 :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음 (48~49)

  복음을 전할 때에 아무 사람이나 다 믿는 것이 아니고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사람만 믿게 된다는 것을 사도들은 말하였던 것이다. 본문을 본다면 소위 성민이란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가 적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 중에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한 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일이라고 본다. 진리 운동이라는 것은 사람의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의 자유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역사라고 보게 된다.

 

  4대지 : 발에 티끌을 떨어버림 (50~52)

  선교자들은 말씀을 전해도 짐짓 반대하는 자를 상종할 필요가 없고 그 사람에게서는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시는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자식이니 그와 동참한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자는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니 조금도 불의의 세력에 눌림을 받지 않고 담대히 나서야만 위력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선교 운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 아래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이 강하고 담대히 나갈 때에 복음 전파의 큰 발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제4과  참된 전도자의 증거

- 행 14:8~18,  요절:15 -

 

  서    론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지만 자기를 숭배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목적하고 활동하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참으로 전도하는 종들의 증거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대지 :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중심하여 역사함 (8~10)

  ‘루스드라’라는 땅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다.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바울의 전하는 말을 듣는 것을 볼 때에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 바울이 큰 소리로 하는 말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게 되었다. 이것이 그 땅에 큰 증거가 된 것이다.

  언제나 참된 전도자는 이적을 중심하지 않고 말씀 하나를 증거할 때에 그 말씀을 믿고 구원받을 만한 믿음에 따라서 놀라운 이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말씀을 떠나서 이적을 중심한다는 것은 참된 진리를 증거하는 종의 역사라고 볼 수 없다.

 

  2대지 : 신과 같이 숭배함을 엄금함 (11~15)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여 쓰스신당의 제사장들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한일이 있었다. 이때에 참된 사도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를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인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못하게 하였다.

  이런 것을 본다면 바나바와 바울은 얼마나 참된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미혹시키는 거짓선지라면 이런 기회를 타서 신과 같이 대접을 받고 숭배를 받으려고 하겠지만 자기를 숭배하려고 하는 일에 대하여 옷을 찢고 하지 못하도록 야단을 치며 말렸다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려는 종들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종들이므로 그 진리 운동은 세계를 정복하는 위력을 가져온 것이다.

 

  3대지 : 하나님만 공경해야 될 것을 증거함 (16~18)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것을 묵인하고 계셨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은혜를 나리고 구원하는 때이니 하나님만 공경해서 복을 받으라고 증거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고 복을 받으라는 것을 목적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종들이므로 가는 곳마다 핍박이 많이 있었지만 필연코 승리는 사도들에게 있게 된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선교 위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핍박이 따르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표적과 증거를 나타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문이 열려지므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참된 전도자는 조금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없는 것이다.

 

 

제5과  서방에 선교 개척

- 행 16:6-10, 24~34,  요절:10 -

 

  서    론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비롯하여 서방으로 전도를 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신 것은 먼저 서방을 중심하여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입을 통하여 야벳이 창대하여 셈의 장막에 깃들인다고 하신 말씀대로 야벳에 창대한 축복을 주기 위하여 서방으로 선교할 문을 열게 한 것이다. 이것을 본문을 들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대지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심 (6~7)

  성령이 바울에게 역사할 때에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다.

  바울도 성신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고 방황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서방으로 바울을 보내어 서방의 교회를 먼저 발전시켜서 아시아로 전도할 하나님의 경륜인 것이다. 이런 뜻이 있다는 것을 알 자는 심히 적었지만 오늘에 와서 경륜이 이루어질 때에 대표적인 바울에게 성신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2대지 : 환상을 보여 주므로 서방으로 건너 감 (8~10)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방 사람에게 전도하게 할 때도 환상을 보여 주었고 바울을 서방 사람에게 전도하게 할 때도 환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욜2:28에 있는 말씀이 응한 것이다. 바울이 환상을 볼 때에 마게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것이었다. 마게도니아 사람은 야벳의 장막에 있는 사람이니만큼 색다른 민족이었지만 바울은 서슴지 않고 서방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용기있게 건너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람은 순종하는 마음이 철저해야만 된다. 순종은 제사보다도 낫다는 말과 같이 바울이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므로 서방에 큰 빛을 비추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3대지 : 옥중에서 역사가 일어남 (24~30)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을 들어 쓸 적에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고 그 가운데서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서방에 건너가서 점하는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는데 바울에게 쫓아와서 소리를 질러 이 사람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같이 여러 날 동안 떠들 때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니 귀신이 즉시 나가게 되었다.

  이 귀신은 점을 치는 귀신이므로 귀신들린 여자의 주인이 이 일로 말미암아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이다. 그런데 귀신이 나가고 점을 칠 수가 없을 때에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원에게 끌고 가서 상관 앞에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는 것이었다. 그때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매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겨졌다. 그때에 옥을 지키던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는 것이다.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우리가 다 여기 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요” 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4대지 : 세례를 베풀게 됨 (31~34)

  그날 밤 옥을 지키던 간수의 온 가정이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으므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서방에 건너가서 처음으로 일어난 역사이다. 인간이 볼 때는 큰 환란을 만났지만 서방에 크게 전도할 문이 열려진 것이다. 선교의 위대한 힘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나 승리를 보게 된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업이라고 본다. 아시아 사람이 서방에 건너가서 제 일보로 대승리를 보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야벳의 장막을 구원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5과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는 사도들

- 행 3:11~26,  요절:13상반절 -

 

  서    론

  학생들, 지난주일 공부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사도들이 어떠한 일을 행하였습니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걸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할 때에 발목에 힘을 얻고 걸어다니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한 일을 했습니다. 그때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찬송할 때에 모든 사람들은 크게 놀래어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에 사도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증거한 사도들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 일이라고 증거함 (11~13)

  모든 사람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를 보고 놀라며 모여들 적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권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한 일이니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사도들은 절대로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만 자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예수는 죽고 만 것이 아니고 분명히 부활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강하게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의심 없이 기도할 때에 구하는 대로 응답이 내리는 것입니다.

 

  2대지 :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므로 11~13이 이루어지는 일을 증거함 (14~16)

  예수님께서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역사가 내리는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무슨 병이든지 다 낫게 되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죄를 사함 받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성신을 받는 일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공자나 석가나 모하메드 같은 사람의 이름으로는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역사가 없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는 학생들에게도 역사가 내리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앉은뱅이가 걷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예수님께서 살아서 역사 한다는 증거입니다.

 

  3대지 : 모든 선지들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함 (17~26)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700여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에게 나타나서 말씀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가 처녀 몸에 잉태하여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므로 그를 믿는 천하에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처녀 몸에 성신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시었고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고 예언대로 다시 살아서 예언대로 승천하고 예언대로 성신을 보내서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예수만 믿으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을 받게 되어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가 복을 받게 된 것은 모든 사도들이 예수님만을 증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치고 싸워 이겼으므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학생들도 예수님만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묻 는  말

 1. 앉은뱅이가 누구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까?

 2. 어찌해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만 응답이 내립니까?

 3.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몇 해 전에 이사야가 예언했습니까?

 

 

제6과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한 사도들

- 행 4:23~35,  요절:32 -

 

  서    론

  아무리 훌륭한 선생들이 많이 있었고 정치인들이 있었다 하여도 사람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볼 때는 무식하고 가난한 사도들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완전히 뭉쳐지는 큰 단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도들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일심으로 하나님께 호소하게 됨 (23~31)

  과거에는 열 두 제자들이 합심이 안되고 서로 자기가 제일이라고 다투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신을 받고는 하나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증거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핍박이 와도 겁을 내지 않고 예수님밖에는 인간을 구원할 자가 없다는 것을 말할 때에 예수님같이 역사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려운 핍박이 올 때는 더 합심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강하게 기도할 때에 땅이 진동하더니 성령이 충만하여졌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합심이 되어 하나님께 호소하면 응답이 나리는 것입니다. 학생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어요? 합심 호소할 때에 땅이 진동하더니 거기 있는 사람들이 성신을 충만히 받아서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합심 호소하면 성신을 받게 되고 담대히 싸워서 승리하는 용사가 됩니다.

 

  2대지 : 마음이 하나가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게 됨 (32~35)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남의 것을 속여먹고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압박을 하고 서로 돈을 많이 벌려고 매우 악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도들의 전도를 받고 마음이 하나가 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물질을 나누어주어서 하나같이 먹고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므로 교회의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이 없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자기 물건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욕심도 없고 다투는 것도 없이 거룩한 단체가 되어서 사도들을 받들어 섬기며 훌륭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에 남은 사람은 마음이 하나가 되어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전쟁이 없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고 재미있게 살게 됩니다. 사도 시대 사람들은 악한 세상에서도 한 단체를 이루어 재미있게 살았는데 우리가 앞으로 사는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없이 다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재미있는 나라가 되고 재미있는 사회가 되어 영원히 복을 받게 되니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묻 는  말

 1. 합심 호소할 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 부자들이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3.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된 것은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제7과  교회 안에 부정한 일을 없이한 사도들

- 행 5:1~11,  요절:5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가운데 무슨 부정한 일을 했는지 다 아시고 계십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아무도 모르게 한 일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 시대에 교회 안에 부정한 일이 없이 해 나간 일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너무나 남을 속이는 부정이 많습니다. 세상의 정객들이나 학교의 선생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라도 남을 속여서 먹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경찰이 부정한 사람을 구속한다 하지만 경찰까지도 남을 속여먹는 일이 많습니다.

 

  1대지 :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연보를 감춤 (1~2)

  어떤 사람이 밭을 팔아서 연보를 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밭을 팔아다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돈을 다 갖다 바치기는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을 팔은 값의 얼마를 감추어 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예배당을 찾아가서 연보를 바칠 때에 밭을 다 팔아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학생들, 이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저주를 받겠습니까?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연보를 보시지를 않고 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밤중에 몰래 감춘 것을 하나님께서 알까요? 모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학생들, 학생들이 어떤 산골에나 골방에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무슨 일을 했든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2대지 : 아나니아의 죽음 (3~6)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사도들 발 앞에 밭을 판 값에서 얼마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책망했습니다.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고 책망할 때에 아나니아가 엎드러져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학생들 이런 일을 보세요. 아나니아가 왜 죽었을까요? 아무도 모르게 돈을 감추고 그 값에서 얼마를 하나님께 바칠 때에 사도들은 아나니아가 말하지 않아도 벌써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의 발 앞에서 쓰러져 죽게 된 것은 성신의 역사를 업신여기므로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이것은 교회의 부정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남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죄를 범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거짓된 행동을 할 때에는 알고 죄를 지은 것이므로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학생들,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이 믿는 형제를 속인다든지 하나님 앞에 거짓된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노여워하시는 것입니다.

 

  3대지 : 삽비라의 죽음 (7~11)

  아나니아가 죽은지 세 시간이 지나서 삽비라가 자기 남편이 죽은 줄 모르고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베드로는 그 여자에게도 물어 보았습니다. 그 땅을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그 아내도 예, 이것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다 라고 하면서 너도 죽으리라 할 때에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죄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 바칠 돈을 감추었다가 남편과 아내가 다 죽었으니 그 집은 얼마나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몰래 죄를 짓는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학생들, 우리는 조금도 거짓이 없이 하나님을 공경해야만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은 어떤 사람이 남을 속이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묻 는  말

 1. 아나니아가 연보 할 돈을 감출 때에 누구만 알았습니까?

 2.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무엇입니까?

 3.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왜 죽었습니까?

 

 

제8과  천사의 도움을 받아 전도하는 사도들

- 행 5:17~32,  요절:19 -

 

  서    론

  하나님께서 어리석고 약한 사람들에게 권능을 주어서 전도할 때에 전도를 못하도록 옥에 가두어도 천사가 나타나서 옥에서 이끌어 내어 전도하게 하신 일에 대하여 오늘은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도와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학생들은 오늘 이 본문에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1대지 : 사도들을 옥에 가둠 (17~18)

  어리석은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돈을 주어 가면서 예수의 부활을 친히 본 군병들을 동원하여 허위 선전을 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적질 해 갔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성신 역사가 일어나게 되니 시기가 가득하여 전도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도들을 옥에다 가두었습니다.  

  학생들, 이것을 보아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도 참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은 이렇게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대지 : 천사가 도와주므로 전도하게 됨 (19~25)

  하나님께서는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옥문을 열고 끌어내며 가로되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옥문이 열려지며 사도들이 옥에서 나와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용기 있게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모든 사람들은 공회를 모아 놓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를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옥에 가서 옥문을 열고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이 눈이 둥그렇게 되어 놀랐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서서 말하기를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사람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옥문을 잠그어 놓았는데 어떻게 사도들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인간들이 놀랄 이상한 일입니다.

 

  3대지 : 사도들이 담대히 예수를 증거하게 됨 (26~32)

  사람들을 보내어 사도들을 다시 잡아 왔습니다.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세우고 소위 대제사장이 하는 말이 우리가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금했는데 예수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전한 것은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와 그 밖의 사도들이 용기있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말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당신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으니 우리는 이 일을 증거하겠노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할 문을 열어 주시되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시면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대제사장들이 왜 사도를 옥에 가두었습니까?

 2. 천사들은 왜 옥에서 사도를 끌어내었습니까?

 3. 왜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말렸을까요?

 

 

제9과  교회 일을 지혜롭게 한 사도들

- 행 6:1~7,  요절:2 -

 

  서    론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역사를 내리시되 모든 일을 사람에게 맡겨서 지혜롭게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려면 자기가 맡은 책임이 무엇이며 남에게 맡겨야 할 일이 무엇인 것을 잘 알아야만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남이 할 일을 내가 해도 어리석은 사람이요, 자기가 해야만 될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는 것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교회의 일을 지혜롭게 한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원망하는 일이 없이 함 (1~2)

  날마다 사람이 많아지고 물질이 많아질 때에 많은 사람을 구제하되 불쌍한 과부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과부와 고아가 와서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사도들은 불쌍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것보다도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더 크다고 생각을 하며 물질을 남에게 주는 일보다도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두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물질이 많아서 남에게 물질을 도와준다고 하여도 돈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학생들도 교회에서 좋은 빵이나 과자를 준다 하여도 학생들이 복 받는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2대지 :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집사로 세움 (3~6)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충만히 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많은 사람 중에서 지혜가 충만한 집사 일곱 사람을 택하여 교회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앞으로 지혜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할 때에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집사의 이름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입니다.

 

  3대지 : 교회가 점점 부흥됨 (7)

  교회 일을 지혜롭게 할 때에 하나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반대하던 제사장들도 많이 따라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일 학교가 날마다 부흥되려면 먼저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지혜를 충만히 받아 가지고 한 사람씩 인도할 때에 날마다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훌륭한 교회가 되어서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학생들 다음 주일날에는 친구 한 사람씩 데리고 나오셔야 됩니다.

 

  묻 는  말

 1. 초대 교회에 물질이 왜 많아졌습니까?

 2. 어떠한 사람을 집사로 내었습니까?

 3. 교회가 부흥되려면 학생들이 무엇을 받아야 됩니까?

 

 

 

 논 설 편

 

1.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디게 되는 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든 일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안될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빠르게 다니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하며 많은 노력을 해서 많은 돈을 들여 교통 시설을 공중으로, 지상으로, 지하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리적으로 깊이 깨닫는 사람이 볼 때는 이 세상 사람이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딘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혼란한 세상을 이루어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에 오히려 피곤을 느끼는 사회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가 되고 보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일에는 너무나 더디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를 당해서 조용한 산을 찾는 사람도 있고 바닷가를 찾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얻지 못하던 신성한 생활을 가져 보려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더딘 사람이라고 본다.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 조속한 시일 내에 과학을 초월한 인격을 얻기 위하여 밤을 새워 가면서 부르짖는 일이 있으므로 모든 난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여호와의 영광이 와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일생 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일초 동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과학적 기계 문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 같이 보고 있지만 이것은 한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화려한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탄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역사가 홀연히 나타난다고 하였다.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은 강권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야 되는 것이요,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홀연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므로 된다고 성경은 가르쳤다.

  인간이 볼 때는 분주하게 왕래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늘의 교통을 받는 사람은 홀연히 변화를 받아 승천하게 되는 일도 있고 도둑같이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난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인하며 그 역사를 부인하며 인간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보려는 과학 만능 주의는 빠른 것 같으나 실지는 더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반공과 멸공에 대한 차이점

  오늘날 반공이라는 두 글자가 많이 붙어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멸공이라는 글자가 씌어진 것은 심히 보기가 드물다. 이제 반공과 멸공에 대하여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반공에 대하여

  이 반공이라는 것은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여러 가지라고 본다.

  첫째 : 자본주의적 반공이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정치가 다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로 공산주의를 완전히 이룬다는 것인데 현 공산주의라는 것은 세계를 공산화시킨다는 것을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시켜서 개인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보다도 개인의 자본이나 자력이나 자신이나 자유 전체를 공산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바치자는 것인데 공산 사회가 완전히 이루기까지는 전 인민의 희생이 들어가야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재산이나 힘이나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산 당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공산 당원이 일반 백성을 마음대로 지배하되 사회주의 정치로 일반 백성을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협력하지 않는 자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공산당의 자격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권리 있게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정부에서 옹호해 주고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주권을 주는 동시에 자본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정치라는 것은 자본이 있는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어서 정부를 밀어 주므로 정부는 개인 자본의 힘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정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얼마든지 개인에게 자유를 주어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정부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므로 자본주의 반공이라는 것은 자본에 의한 정치적 반공이 될 것이다. 이 반공이라는 것은 강한 반공이 될 수가 없다.

  둘째 : 종교 단체적 반공이 있다.

  이것은 종교 단체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반공일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의 종교라는 것은 공산국가를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싸워주는 범위 하에 종교 단체가 소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종교 단체는 공산당의 한 도구가 되는 것이므로 종교 단체에서 이것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 단체의 반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단체의 반공이라는 것은 아무런 생명이 없는 반공 운동이라고 본다.

  셋째 : 사회 단체적 반공이 있다.

  이 반공이라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에서 사회 단체라는 것은 공산 국가를 위한 봉사의 목적을 두는 것 외에는 경제 자유나 언론 자유나 출판 자유가 없고 전부가 공산 사회의 건설의 한 기관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단체적인 반공이라는 것은 이것을 반대하는 반공이다. 사회 사업은 국가의 보장을 받아서 모든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한 것이 목적인데 한 공산 국가를 이루기 위한 것만을 목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공은 권리를 가지고 싸울 능력이 없다고 본다.

 

  2. 멸공에 대하여

  멸공이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권리를 초월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멸공이다.

  이 멸공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정권이나 물권이나 교권을 보장하기 위한 데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여호와 말씀할 때에

  첫째 : 세계적인 기독교 확장이 있을 것과

  둘째 : 인간 종말의 재앙이 북방으로 오는데 있어서는 무신론적 사상과 침략적 정책과 궤휼적 미혹의 세력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것은 전 세계 인류가 큰 환란을 만나게 되는 환란이 되므로, 인간의 부요한 자나 모든 세력을 잡은 자들이 그 앞에서 굴복하게 되는 것을 말씀했으며, 이때에 하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시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상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고 초인간적인 역사가 진리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므로 북방은 멸망을 당하게 되는 동시에 어느 나라든지 북방 세력과 타협을 하던 무리는 다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멸공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나 병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멸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멸망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기독교 종말의 승리를 이루는 역사가 된다. 자본주의 경제권이나 사회 단체나 종교 단체의 반공이 있다 하여도 이것은 완전한 결전을 이루지 못하고 최후의 결전은 어떤 단체를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므로 완전 멸공 심판의 역사가 이루어지되 말씀을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공이라는 것은 사람의 주관이나 권력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요, 멸공이라는 것은 초인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써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종말의 진노 심판을 멸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멸공이 이루어지므로 평화로운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3.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어떠한 사람이 제일 큰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은 심히 적다고 본다. 제일 큰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 적으면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더욱 적을 것은 사실이다. 이제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알고 일하는 자이다.

  시대적인 과거 역사를 들어본다면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 일을 했는지 알지를 못했지만 그 시대가 지나서 볼 때에 누가 그 시대에 큰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첫째 : 노아이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때에 그때 사람들은 미친 사람으로 알고 다 조롱을 했었다. 그러나 홍수 심판이 임하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은 노아가 제일 큰 일을 한 사람이라고 알게 된 것이다.

  둘째 :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말씀 하나를 믿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지시를 받고 천신만고의 시련을 받으며 다닐 적에 아브라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대 종교가 이루어진 것을 볼 때에 아브라함이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 제사로 바친 일이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100세에 가서 이삭을 낳고 이삭을 하나님께 제사로 바친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어리석은 일 같았으나 이것이 제일 큰 일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 요셉이다

  열 두 지파 중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갈 때에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보디발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옥중 생활을 하던 사람이 7년 동안 곡식을 저축한 일은 그때 사람이 볼 때에 필요 없는 일 같았다. 그러나 7년 흉년이 올 때에 가장 큰 일을 한 요셉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넷째 : 모세이다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소망 없는 민족이 되었으나 모세가 양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고자 하오니 보내달라고 말할 때에 바로의 눈에 미친 사람같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의 정권은 그 앞에서 굴복을 하고 역사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모세가 큰 일을 한 자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는 말은 인간이 볼 때에 미미한 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제일 큰 일로 아시고 역사하신 것이다.

  다섯째 : 예수님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간 어린 양 예수다. 나사렛 목수가 유대 광야에 나타날 때에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교만한 유대인들은 나사렛 목수 예수를 무시하고 이단시했지만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어린 양 예수 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가장 큰 일이 된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서 가장 큰 일은 어린 양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것을 만민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들은 레닌맑스주의의 변론을 큰 일로 보고 있지만 이것은 큰 미혹이요 큰 화를 받을 붉은 용의 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전부가 큰 일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계7:2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10:2~3에 힘센 다른 천사가 작은 책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12:3에 큰 붉은 용이 나타나서 해를 입은 여자를 해코자 하는데 있어서는 1절에 큰 이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하나님 편에서도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마귀 편에서도 큰 용이 나타나서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므로 짐승이 큰 말을 한다고 계13:2~5에 말하였다. 거짓 선지도 큰 이적을 행한다고 13절에 말했으니 마귀 편도 큰 일을 하고 하나님 편도 큰 일을 하는 것이 계시록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전부가 큰 일이 닥쳐오는데 있어서는 큰 역사, 큰 환란, 큰 미혹, 큰 승리, 큰 축복이 남은 것이다. 우리의 원수도 큰 권세를 가지고 큰 말을 하며 큰 이적을 가지고 나온다 했으니 오늘날 우리는 붉은 짐승의 큰 말과 거짓 선지의 큰 이적을 이기는 역사가 제일 큰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붉은 정권은 큰 권세를 큰 용에게 받고 큰 말을 하면서 거짓 선지를 통하여 큰 이적을 행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싸움의 대 승리를 본 자는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 인간 종말의 계시라는 것이다.

  이날까지에 큰 일을 한 종들이 많지만 제일 큰 일을 하는 자들은 종말의 비밀을 바로 알고 나가서 증거하는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증거하는 말대로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세계 통일을 하는 자이다

  계15:1이하를 보면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이 나타났다. 이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크고도 기이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16:1에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진노의 큰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하였다. 이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큰 멸망이 오는 것이 보여졌다.

  큰 성 바벨론이 한 시간에 망하는 것이 18장에 보여졌고 19장에는 가장 큰 음성으로 노래할 때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오므로 종들의 피 값을 갚아준다고 하였다. 계시록20장에는 천사가 큰 용을 큰 쇠사슬로 결박해서 무저갱에 가두는 광경이 보여졌고 그 다음에 천년 동안 다시는 미혹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큰 화를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큰 음녀가 되는 바벨론이 망하고 성도들이 대 승리를 보게될 것을 보여 주었다.

  제일 큰 일은 성도들이 붉은 용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고 지상 평화 왕국이 오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제일 큰 일은 성도의 권세 역사라고 본다.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은 인류 종말에 짐승의 세력을 때려부수고 세계 통일을 하는 자이다.

 

 

4. 인간 종말에 미워하는 일

  과거에도 미워하는 일은 있었지만 인간 종말에 극도로 강하게 될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하나님편도 미워하고 마귀편도 미워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마귀편이 미워할 일

  마귀가 미워하는 일이 생긴 것은 예수가 세상에 오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마귀가 미워할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다 마귀의 권세 아래 있었으므로 마귀가 미워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부터 마귀가 미워하게 된 것은 자기를 멸하려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다(요15:18~19).

  마귀가 가장 미워할 일은 마귀를 섬기던 사람이 마귀를 배척하고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십자가를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저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바울을 미워했고 이방인은 이방인대로 바울을 미워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지켜 내려오던 모세 율법과 할례와 제사가 다 필요가 없고 예수만 믿어야만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요, 이방인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던 우상을 때려부수고 모든 신들을 다 버리고 풍속을 버리고 십자가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네 종교와 대적이 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어느 나라에 들어가든지 그 나라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교리를 전하게 되므로 다른 종교보다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워할 일이 더 크게 생긴 것은 다음과 같다.

  성경을 보면 인류 종말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용이요, 붉은 짐승이요, 거짓 선지요, 바벨론이라고 증거하는 자를 마귀도 미워하고 짐승의 정권도 미워하고 거짓 선지도 미워하고 바벨론 세상이 다 미워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 선지들이 부패한 정치와 부패한 종교와 부패한 사회가 다 망할 것을 증거할 때에 그 시대 사람에게 미움을 받은 것과 같이 인류 종말에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 편이 미워할 일

  마24:14이하를 보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세상 끝이 오는데 있어서는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행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절개를 지키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할 일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쑥물을 만들어서 양떼를 죽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사명을 맡아 가지고 교회의 일을 한다 하면서 교회를 망치는 사람이 미운 물건이 된다는 것이다.

  심판의 대상자는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한 데도 불구하고 짐짓 독생자의 거룩한 피를 더럽히며 전한 말씀을 짓밟는 자이다. 이런 무리들은 다시 용서할 수 없고 몽땅 멸망을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5.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

  오늘날 누구를 막론하고 부흥 발전을 원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아도 망하는 사람들이 흥하는 것 같이 보이다가 결말은 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모양을 내는 일이다.

  이것은 정치나 종교나 가정이나 동일하다고 본다. 정치도 남의 나라에게 잘 보이려는 정치는 결국은 먹힘을 당하게 된다. 남의 나라가 볼 때에 부흥 발전을 크게 하는 것 같이 보이려는 정치는 어리석은 정치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남이 잘되는 것 같이 보이면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나라가 볼 때에 겉으론 훌륭하게 보이고 내막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나라에게 정신적으로 벌써 먹힘을 당한 정치라고 본다. 그리고 사람이 어떠한 사람 앞에 잘 보이려고 가면을 쓰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덕을 보자는 정신이니 결국은 정신적으로 먹힘을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도 이웃의 어떤 사람이 잘 사는데 그 사람이 볼 때에 나도 너 만큼 산다고 겉모양을 내려고 한다면 벌써 그 사람에게 먹힘을 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막이 충실해서 잘 사는데 자기는 내막이 잘못되어 가지고서 그 사람과 같이 모양을 내려고 한다는 것은 몇 날이 가지 않아서 그 사람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도 어떤 교회가 부흥 발전한다고 해서 영적으로는 아무 것도 충실치 못한 교회에서 그 교회와 같이 겉모양을 내어 보려고 할 때에 영적으로 충실한 교회에게 자동적으로 눌림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내용이 충실하므로 외형이 발전되었는데 내용이 충실치 못한 교회가 억지로 모양을 내어 보려는 것은 벌써 영적으로 그 교회에게 지배를 받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나 가정이나 교회나 남에게 보이려고 모양을 내는 일은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침략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다.

  정치나 가정이나 교회가 남의 것을 침략해서 흥해 보려는 생각은 결국은 망하는 일이 된다. 침략이라는 것은 남을 해롭게 해 가지고 내가 이익을 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제나 자기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보아도 침략적 정치의 나라는 반드시 망했으며 개인을 보아도 남을 해롭게 해서 자기가 잘 되겠다는 자는 언제나 자기가 망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교파도 남의 교파를 침범해서 자기의 교권을 세우려는 교파는 다 영계가 망치고 말았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침략적 행동으로 일시 흥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일도 있지만 이것은 반드시 망할 일이라고 보게 된다.

 

  3. 진리가 없이 하는 일이다.

  인생과 진리는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는 섭리이므로 진리를 떠난 운동은 처음에는 부흥되는 것 같으나 결말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종교 역사를 볼 때에 진리 없는 부흥 운동은 오히려 불행스러운 일을 가져왔던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어디든지 따라가게 된다. 참 이치라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헛 꿈같이 되고 만다. 마귀는 언제나 진리를 떠나서 사람을 미혹시킬 때에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에 호기심을 주고 일시로 잘 되는 것 같이 보이게 하나 결말은 망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생명이니 진리가 잘못된 단체나 사업이나 사람은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결말은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희생을 다해도 나의 영광이라는 마음을 가진 자 외에는 다 헛수고가 되고 만다.

 

 

 

 신 앙 문 답

 

【문】1. 쉬지 않고 기도할 마음은 간절한데 도저히 기도의 힘이 나지도 않고 입을 열어 기도할 말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답】기도할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은 마음에 성신이 계신 증거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힘이 나지를 않는다는 것은 성신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 있으므로 성신은 강하게 역사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귀의 세력을 개방시켰으므로 누구든지 기도를 할 수 없이 압력을 받게 되는데 다음과 같이 하면 강한 기도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영과 하나님 사이에 연결이 되어서 교통이 될 때에 이것은 입을 열지 않아도 얼마든지 새로운 것이 흘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마음이 있어도 힘이 나지 않는 원인은 하나님과 그 영과의 사이에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가로막고 있는 세력을 마귀 참소라고 합니다. 마귀 참소라는 것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에게 오는 것이니 그 종이 새로운 영계로 올라가는 단계에 들어갈 때에 마귀 참소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새로이 깨닫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새로 깨닫는 마음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에 시대적인 법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숨어있는 비밀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말씀에서 깨달을 때에 그 말씀을 따라 새로운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에는 새로운 힘이라는 것은 절대로 오지를 않습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이미 받은 은사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면 이 시대에 숨은 비밀의 진리를 완전히 깨달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역사가 그 진리를 따라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받은 자 밖에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비밀입니다.

  둘째 : 새로 나의 부족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부족을 새로 깨닫는 데서 영계의 새로운 힘이 오는 것입니다. 사단이라는 놈은 언제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자기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도록 흑암을 넣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명자는 날마다 자기의 부족이 무엇인 것을 깨달아질 적에 깨닫는 것이 고쳐지는 단계로 들어가기 위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깨닫는 자에게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명이라는 것은 자아를 위한 사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형제를 위한 사명이니 조금이라도 형제를 잘못 판단한다든지 영적 손상을 준 일이 있다든지, 사명을 침범한 일이 있을 때에는 이것을 해결하기까지 절대로 새로운 힘이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셋째 : 재정적인 방면에 명랑치를 못했을 때에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그 원인으로 영계가 눌림을 받고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계를 향상시키려면 조금이라도 세상의 안락이나 재리에 대하여 치우치지 말고 전부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될 것을 믿고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안락을 바라는 것보다도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물질적으로 큰 이문을 보는 것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을 큰 이문이 되는 일로 알 때에 그 심령은 절대로 물질에 관한 압력을 받지 않고 점점 영계가 올라가는 동시에 물질 방면도 순조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헛된 수고가 없게 되니 육적으로 볼 때에 큰 이문을 보는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이 주의 사업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명을 가진 사람이 그 한계를 벗어나서 물질 방면으로 흐르게 될 때에 그 영계는 새로운 발전이 없이 잠잠한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철저히 주의해야만 정상적인 기도 생활에서 왕권을 받는 단계의 영적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문】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하기를 성경은 각자가 해석할 탓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성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인데 이것은 이론도 아니요 학설도 아니요 신께서 어떻게 뜻을 정하고 어떻게 행하시겠다는 것을 인간이 알고 순종하게 하시려고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영혼을 살리는 방법을 말씀할 때에 이것은 아들을 보내서 죄를 위하여 죽게 하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아들을 보내서 실천을 하시므로 성경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사도들은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기가 보고 듣고 만진 바에 의하여 성경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기록한 것이 4복음이요, 편지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도들이 증거한 바를 그대로 받아 믿는 자는 사도들이 체험한 그대로 받게 되는데 있어서는 중생과 성결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신의 역사가 성경대로 임하는 것을 받은 자들이 사도가 증거하던 그 복음을 증거하게 되고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다음 사람이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증거해서 계속해 내려온 것이 오늘날 기독교 정통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통 신앙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께서 종말관에 있어서는 분명히 깨닫도록 알려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알아보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 보았다는 것은 아무런 역사가 없고 공연히 쓸데없는 수고를 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큰 죄로 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 법을 따라서 역사하지 않는 때이니 만큼 알려 주지도 않고 그 진리대로 역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날까지 알지 못하던 성경 난해는 은혜시대에 전할 말씀이 아니요, 전부가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역사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이것은 부활성도가 전할 말씀이 아니요 변화성도가 밝히 알아 환란 가운데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갈 백성들에게 가르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환란 재앙 속에서 영, 육이 구원받는 진리는 이날까지 사람이 깨닫지 못하도록 봉해 놓았다가 이제 전할 때가 왔으므로 그 진리를 알도록끔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경을 깨닫게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환란이 임박한 이때에 이날까지 봉해 놓았던 비밀을 공개시켜 대 환란이 오기 전에 이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계시록과 선지서를 본문대로 읽어서 전할 수 있게끔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말 저말 할 필요조차 없도록 말씀한 것이 계시록이요 선지서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은 계시록과 선지서의 본문만 읽어도 읽는 그대로 깨닫는 역사가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같이 성경을 본문에서 완전히 깨닫는 동시에 말씀대로 환란, 재앙에서 말씀대로 복을 받고 말씀대로 역사를 하다가 말씀대로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진리를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을 분명히 깨닫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을 그대로 읽어서 깨달아지도록 하는 역사가 가장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3.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이 목회를 할 때에 어떻게 하여야 이 시대의 사람들을 깊은 진리로 들어가게 하며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목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며 모든 난제를 해결하여 나가게 하기 위한 목적인데 이날까지 목회는 그 사람의 영혼이 중생, 장성, 성결을 받는데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생, 장성, 성결을 받은 자로서 이 시국 난제를 해결하고 나갈 수 있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는 목회가 될 때에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같이 시대적인 여러 가지 난제에 눌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좀더 새로운 영계를 향하여 들어가게 되고 좀더 깊은 진리로 들어가게 될 적에 교회는 질적 향상을 가지는 동시에 양적인 열매도 정상적으로 좋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자신이 변화성도의 인격을 받은 자로써 강단에 설 적에 은사가 나려서 중생을 받는 역사보다도 더 강하게 역사가 내리므로 그 교회는 용사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한 단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선 종이 시기가 박두한 것을 생각하고 강하게 모든 일을 진행하고 긴급한 경고를 강하게 하므로 모든 성도들은 시간마다 각성을 받고 부르짖는 호소를 올리게 되는 동시에 모일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고 시간마다 강한 호소를 올리므로써 조속한 시일 내에 신앙은 큰 발전을 보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때에 목회자는 성경의 완전 지식, 인격의 완전 변화 성결, 영계의 완전 영감 분별을 하게 되므로 모든 성도들은 시간마다 강하게 일어나는 역사를 받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신학교를 나온 종님들이라도 그 신학 정도로는 도저히 이 시대에 목회를 성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은혜시대의 큰 교회라고 하는 기성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영계나 진리 상태로써는 도저히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운 무장을 받은 종들이 나와야만 새로운 출발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무장을 갖추는데 있어서는 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인정하는 새일수도원을 거쳐야만 된다고 봅니다.

 

 

【문】4. 가정 생활에 있어서 날마다 어제가 옛날이라고 말하리만큼 시국이 변천됨에 따라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가정 지도를 해 나가야만 되겠습니까?

【답】가정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따라 조물주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난 가정이 된다면 여기서부터 모든 것은 축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담의 가정은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므로 살인자를 내는 저주받은 가정이 되었고 노아의 가정은 그 비밀을 지켜 나갈 때에 세계 인류의 역사적인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쓸쓸한 생활 같으나 혈혈단신으로 유리하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동거하는 가정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비밀을 받았으므로 복된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젊은 청년 남녀로서 시대적인 비밀을 알고 참고 나갈 때에 가장 영화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정이나, 아브라함의 가정이나, 요셉의 가정보다도 이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아는 가정이라면 그 축복이야말로 얼마나 크다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같이 인간 종말을 말할 때에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는 날에 피해를 당치 않고 구원을 받는 가정이 가장 복되다는 것을 중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국이 변천됨에 따라서 악한 영향을 받는 가정이 되는 것보다도 시대적인 변천의 징조를 볼 때에 더 각성을 하고 더 거룩해지는 가정이 되기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나 그 비밀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녀는 큰 불행이겠지만 이 시대의 비밀을 알아 그 진리에 의하여 자녀를 사상으로 지도하는 부모와 그 교훈을 받아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성별된 생활을 하는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은 시국이 어지러워짐에 따라서 더 거룩하고 성별되게 되므로 더 큰 영적 축복을 받는 동시에 몸에 축복을 받아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제 가정을 지도해 나가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부모가 승리의 왕권을 받기 위하여 가정에 자녀보다도 교회에 대한 문제를 더 중요시하고 움직일 때에 가정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천 생활에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둘째 : 가정에서 합심 호소하는 시간이 많은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못하는 어린 자녀들까지라도 그 호소를 따라서 할 때에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호소 성가를 올릴 수 있는 열심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 가정에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호소 성가를 많이 부를 때에 다같이 기도하는 가정이 되므로 주의 천사가 보호하게 됩니다.

  셋째 : 조금도 빚을 지지 말고 적게 소비하는 생활이 되도록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남의 재물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에서 움직여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잠잠히 축복하시는 일이 있어서 큰 수입이 없다 하여도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생활의 축복을 주므로 외형으로 볼 때는 가난한 자 같으나 실지는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받들어 보려는 마음에서 단합이 될 때에 그 가정의 축복은 왕권의 축복으로 오게 됩니다. 새 시대의 왕권 축복을 받을 정도의 가정이라면 그 가정의 영원한 축복을 빼앗을 자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끝으로 생각할 것은 이 때까지는 개인 구원인 천당을 목적하고 생활했지만 지금은 가정 단체적인 구원을 목적하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진리로 모든 식구들이 하나같이 소망을 가지고 각자가 말씀으로 마음의 무장을 가지는 동시에 말씀 안에서 여러 가지 난제가 와도 조금도 동요를 받지 않고 나갈 때에 홀연히 큰 기사와 이적을 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문】5. 기독교 안에 어린 학생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일에 대하여 이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방법이 있어야만 하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만 되겠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바랍니다.

【답】지금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그전 어린이들과 달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어린이로 취급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린이를 취급할 때에 심각히 무엇을 생각을 해 보는 아이와 같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도록끔 사상으로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막연하게 아동들에게 한 취미나 붙일 정도로 말하지 말고 이 시대에 있어서 앞으로 될 일을 간단히 말해가면서 어떻게 하여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중심하는 동시에 그 학생들의 마음속에 어떠한 노선을 따라 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여야 합니다.

  학생들 앞에는 반드시 이러한 좋은 시대가 온다는 것을 역설하고 절대 죽어 천당을 말하는 것보다도 학생들에게 어떠한 환란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조금도 피해를 당치 않는다는 것을 담대히 믿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을 새 시대에 가는 진리로 인도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방침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 학생들에게 호소 성가를 강하게 부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가를 부르게 할 때에 그 성가의 뜻을 분명히 가르쳐주면서  부르게 해야합니다. 선생이 은혜 있게 인도할 때에 자동적으로 학생들이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나릴 때에 학생들이 체험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급하니 만큼 학생들도 강권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니 학생들이 무엇을 마음에 받도록끔 노력하는 방침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 성경을 가르칠 적에 변론식으로 어린이들에게 물어 보면서 마음이 끌리도록 하는데 있어서는 과연 그 이치가 옳다고 생각이 나도록끔 말을 하되 가장 연하고 부드럽게 말씀을 먹여야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진리 안에서 웃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힘이 나기도 하는 일이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반드시 이 시대와 성경에 대한 말을 합법적으로 하면서 학생들의 살 길은 이러한 말씀이 있다고 할 때에 그 성경을 거듭 받아 읽도록 하여야 합니다.

  선생이 불타는 심정으로 이 말씀을 전할 때에 학생들에게도 감화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에 필요 없는 동화로 하지 말고 진리를 학생들이 재미있게 깨닫도록 변론적인 말로 마음이 새로워지게 해야 됩니다.

  셋째 : 선생이 자기 인격적인 감화를 학생들에게 주는데 있어서는 선생님의 움직이는 태도가 확실히 거짓이 없는 태도인 것을 학생들에게 보일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이란 선생님의 그 인격 감화를 잘 받는 일이 있으니 적어도 주일 학교를 인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해서 영적으로 학생들의 심령을 이끌어 잡아당기는 힘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정신 작용으로 말하는 것보다도 성령으로 말이 나올 때에 학생들에게도 영감이 부딪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공중 마귀 압력은 학생들에게까지 덮고 있으므로 그전 학생과 같지 않고 선생에게 특별한 영력이 있기 전에는 이끌어 진리 안으로 인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 언제나 말을 할 때에 간단한 말이라도 학생들의 마음에 들어가도록 두 세 번씩 “그렇습니다. 안 그렇습니까”하는 말로 다른 쓸데없는 생각이 물러가도록 강력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언제나 학생들에게 옳다는 것을 말할 때는 강력한 열변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인격 감화를 주는데 있어서는 선생님의 인도를 꼭 따라 가야만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도록끔 감화를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깊이 연구하는 것이 없이 임시로 보이는데 따라 가길 좋아하는 것이 있으므로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선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에서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심으로 학생들을 인도할 때에 하나님은 강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섯째:어린이 공과로 가르치되 할 수만 있으면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에서 어린이 공과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학교에 모이는 학생중 글을 볼 수 있는 학생들은 아름다운 소식의 책을 잡고 읽어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읽으면서 듣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따라 읽는 것을 많이 하도록 하며 문답으로 하는 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  집  

 

1. 10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10월은 열매의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도 10월 혁명을 일으켜 인간의 육안으로 볼 때는 대 승리의 열매를 이룬 것 같이 보이는 오늘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입각해서 볼 때에 붉은 혁명이 일어난 것은 진노의 날에 잠깐 동안 악의 세력을 들어 쓰기 위한 방법이요, 이것이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71년도 10월을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도 더 감명 깊게 생각하는 것은 여호와의 산에 새일수도원을 지으라는 명령을 불 가운데서 받고 나와서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성산의 모든 질서가 확립되고 9.24 성회에 큰 역사가 임한데 의하여 10월부터는 열매를 맺어야 할 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10월부터 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감상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 : 진리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는 것을 받아 겨우 서판에 새겨 세상에 내어놓는 정도에서 있었지만 10월부터는 본격적인 진리 싸움을 하기 위하여 나서야 할 때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로 싸우지 않는다면 가련한 양떼는 다 원망하고 낙심할 자리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적인 생활에 들어가서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선포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문서 운동이라고 생각됩니다. 각자 각자가 사명에 불타는 마음에서 문서 운동을 추진하되 교회마다 어느 교인이나 다 인간의 종말 책을 가지고 읽어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진리를 문서 운동으로 널리 전하는 일에 다같이 총 궐기 하도록 하셔야만 되겠습니다. 만일 잠잠히 있다면 하나님편에서 영력을 걷어 갈 것이니 영력을 7배나 받으려면 10월부터 강하게 일어나야만 합니다.

  둘째 : 10월달은 완전한 것을 주시는 달인 줄 믿습니다

  1969년 10월에 하나님께로부터 이 사람에게 일곱 영의 역사가 와서 약 2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호와의 신이 같이 하는 증거가 있으므로 육식은 생선이나 달걀이나 우유까지 조금이라도 사용을 하지 못하게 하므로 순수하게 채식만 한 결과 그 전보다도 배나 강건한 몸이 되었습니다. 몸에 완전한 축복을 이 달에 받았으므로 여러 사명 동지들도 10월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임하는 몸의 축복은 분명히 사명 동지들에게도 임할 일이 온 즉 꼭 같이 이 축복을 받으시고 승리의 용사적인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셋 째: 금년 10월부터 누구든지 강하게 일어만 나신다면 다 큰 역사를 받게 될 것이오니 조금도 잠잠하지 마시고 큰 역사를 받으시는데 있어서는 10월 수도에 많이 참석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축복이 10월부터 성산에 수도하는 종들에게 나릴 것을 믿습니다. 금년 10월은 승리의 용사들의 시발점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믿고 기도하는 바입니다. 적마의 삼 세력을 완전히 멸하는 역사는 10월부터 강하게 일어나야만 될 것입니다.

 

 

2. 10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부르짖는 소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부르짖지 않을 수 없나이다. 새가 죽어도 찍, 짹하고야 죽는데 하물며 사명을 맡은 사람이 지렁이 같이 밟혔지만 꿈틀하다가 그만 둘 수는 없나이다. 여호와 말씀에 지렁이 같은 야곱을 새 타작기로 쓰시겠다고 말씀 하셨사오니 10월은 타작기가 돌아야 될 달이 아닙니까. 눈을 들어 들을 바라보니 무르익은 알곡은 타작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까지 쭉정이와 알곡이 한 곳에 있어서 알곡을 괴롭히는 일도 있었지만 10월부터 알곡은 알곡끼리 쭉정이는 쭉정이 끼리 모여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동서남북 사방에서 알곡을 모아들일 수 있는 추수꾼이 나서야만 되겠나이다. 하나님의 급한 명령 내렸으니 서리찬 바람, 얼음진 강산 보이기 전에 알곡을 속히 모아들일 수 있는 품꾼을 모아 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사뿐히 나리는 봄비로부터 쏟아지는 장마와 조용히 나리는 가을 이슬을 거친 알곡들은 자기 때를 만났다고 황금빛을 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알곡을 모아 촛대교회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말 저말 듣고서 갈팡질팡 하다보니 껍질만 남은 쭉정이 될까봐 두렵사옵니다. 갈팡질팡하는 양떼 숨은 비밀을 먹여서 완전히 진리의 영양 가득차 찬 바람이 분다 하여도 피해 없는 알곡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낙비보다도 조용한 밤 소리없이 나리는 이슬을 먹고 굳어져야 하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잠자는 영을 깨우쳐서 고요한 밤 고요히 자지 말고 깨어서 조물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리 없이 나리는 새 힘 권세 받게 하시옵소서. 아무리 줄기가 무성하고 잎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알곡이 못된다면 슬픔의 날이 올까 두렵사오니 이 나라의 방방곡곡에 확장된 교회마다 기억하소서. 알곡을 모으는 추수꾼을 세워 주시사 쭉정이 알곡 갈라놓는 타작기 돌아 알곡만 모여드는 다림줄의 진리 운동 권세있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차디찬 바람 아직은 오지 않사오나 불가피에 올 가을 바람 불어 오고 있습니다. 너무나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적사오니 아버지의 강권 역사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저희에게 나타나 주셔야 하겠나이다. 우리는 받아야 할 사람으로서 받을 만한 믿음조차 식어졌사오니 받을 수 있는 믿음도 아버지께로부터 와야만 하겠나이다. 무엇을 달라고 해야 되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아 머리는 갈대같이 숙였으나 머리까지 덤덤할 뿐입니다.

  나의 머리 위에 완전 영감을 나리시옵소서. 일해보려고 나서다가 허락 받은 마귀한테 참소를 받고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하는 사명 동지도 눈앞에 많이 보이게 되나이다. 하나님이여, 저들에게 강권 역사가 와야만 하겠사오니 강권 역사에 이끌려서 눈물 흘려 외치는 말씀 권세의 종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 동네, 저 동네, 이 거리, 저 거리, 이 산골, 저 산골 달음박질 쳐 다니면서 경고의 나팔을 불 수 있는 권리 행사의 역사를 시련 받던 종들에게 주셔야 하겠나이다. 9월에 알곡이 될 만한 역사를 나리셨지만 그 은혜를 쏟지 말고 완전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10월이 되게 하옵소서.

  멀리 떠났던 탕자가 돌아올 때에 겸손한 아들의 인격을 기뻐하시던 아버지의 심정 내가 믿고 겸손히 아버지의 집에 품꾼이 되고 싶사오니 10월부터 품꾼이 될 수 있는 인격을 완전히 주옵소서. 봄비가 나릴 때에 씨를 뿌리고 여름비 나릴 때에 가꾸고 찬이슬 나릴 때에 굳어진 알곡 한데로 모아 놓을 촛대교회 방방곡곡 세워 놓고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알곡 모아 영화로운 교회가 이루어져야 하겠사오니 우리가 이 상태에 있어서는 영화로운 교회를 이룰 수가 없나이다. 쭉정이 없는 알곡 창고, 순금 등대 10월달부터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슬픈 소리 들려오네. 극상 포도 심었건만 맛 잃은 들포도 되고 보니 포도원 농부의 슬퍼하는 그 소리 들려오네. 사명 동지 여러분이여, 당신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슬퍼하시지는 않는지요. 이날까지 길러 놓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마음 슬프게 하는 사명자 되지 마시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종이 되어 동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10월이 되도록 총 궐기를 하여 봅시다.  

  이 사람, 저 사람 믿지 말고 각자가 일어나면 너냐, 내냐 할 것 없이 하나같이 권세 새 힘 받을 적에 세세 왕권 통치 반열에 들게 될 것입니다. 조금도 개인의 실수나 단점을 보고 압력을 받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권세 새 힘을 받으시는 종님이 되어 피곤없이 저 산을 같이 넘어가서 안식의 영광 왕권으로 받아 봅시다. 교파를 초월하여 알곡된 성도들은 머지 않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그 날을 깊이 생각하고 불법에 동참하지 말고 진리의 다림줄 안에 하나같이 척량 받은 진리 신앙 양심에서 순교적인 정신을 잊지 말고 돌진해 걸어나가시기 바랍니다.

 

 

3. 10월부터 사명자들이 나가야 할 방향

  사명 동지 여러분은 이날까지에 얼마나 애닯은 심정에서 골방 속 깊이 들어가 하나님 앞에 중심 사정을 알리는 숨은 제단이 있었습니까? 이제는 숨은 제단을 쌓을 때가 아니고 만민이 모여서 말세에 숨은 비밀을 다 알도록끔 나팔을 부는 특별 성회를 열어야만 할 때가 왔습니다. 아무리 골방 속 기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특별 성회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골방 속 기도가 무효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한지 70년 동안 숨은 성도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다 하여도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되기 위해서는 대적의 참소를 깨쳐 버리고 돌진할 때에 불과 3, 4인이 일어났지만 다리오에게 큰 감동이 임하여 권리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리 기도가 있다 하여도 합심 단결해서 일어나는 일이 없다면 권리 행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그 동안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를 찾아볼 수 없어서 하나님만 알게 다락방 교회를 사모하고 기다리던 종들은 전부 일어나서 순금 등대 교회를 완전히 이 세상이 알도록 이루어 놓는 역사가 있어야만 됩니다.

  소련의 노동자와 농민이 낫과 망치를 들고 일어난 혁명의 불길은 세계를 정복하는 불이 된 것이 오늘날 악한 나라를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은 책을 들고 사자같이 외쳐야 할 때가 10월부터라고 봅니다. 우리가 외치지 않는다면 마귀 흑암은 절대로 물러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숨은 비밀을 만민이 알도록 증거해야 붉은 마귀의 미혹의 영은 미혹하지를 못하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속이는 마귀는 속이는 비밀을 폭로시키면 스스로 도망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만민을 꾀라는 사명을 가진 것이니 꾀임을 받지 않도록 진리의 봉홧불을 드는 것이 붉은 마귀를 없이하는데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골방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는 일만 하지 말고 만민을 깨우치는 방향으로 나서야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서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 말씀의 대표를 중심하여 뭉쳐야 할 것입니다.

  숨은 종들의 기도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응답이 나리므로 순교자의 원한이나 골방 속의 숨은 성도의 원한이나 다 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말씀의 대표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입에 말씀을 주어서 이날까지 숨겨 있던 비밀을 횃불같이 들고 나오는 종입니다.  

  이것은 순금 등대 교회를 일으키는 역사이니 인간의 힘과 능이 조금도 섞일 수 없고 하나님의 신이 직접으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 문서 운동은 일점일획도 사람의 의견에 따라 씌어지는 것이 아니고 대표적인 종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달마다 계속으로 말씀이 나타나고 이미 많은 서책이 출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으로 성경 전체를 합법적으로 증거할 수 있는 종의 무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둘째 : 거짓 선지의 교권을 무서워 말고 때려 부숴야 할 것입니다.

  거짓 영의 교권이라는 것은 말씀의 몽둥이를 든 종 앞에 질그릇 같이 깨져 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는 사람에게 와서 거짓 영이 횡설수설했지만 말씀의 권세가 나올 때에 거짓 선지의 교권이라는 것은 아무런 생명 없이 깨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이여 어찌해서 잘못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 교권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겠습니까. 교권 앞에 떨지 마시고 말씀에 떨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 대중 심리에 움직이지 말고 두 세 사람이라도 말씀 권세의 종으로 뭉쳐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대중은 바람 앞에 겨같이 날아갈 것이오니 말씀이 없이 떠드는 대중을 무서워 말고 말씀을 중심하여 뭉쳐집시다. 이러한 단체가 나올 때에 말씀을 주신 여호와께서 행동을 개시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천만인이 모였다 하더라도 말씀이 없는 장소에 여호와 나타나지 않고 3, 4인이 뭉쳐진 골방이라도 여호와 나타날 적에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