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11월호)

설  교  편

 1.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새 시대 (계10:5~7, 11:15~19)

 2. 여호와는 두려워하는 자의 피난처 (사8:11~18)

 3. 바벨론의 멸망과 즐거워할 무리 (계18:18~20, 19:1~5) 

 4. 완전 승리의 비결 (계17:13~15, 19:19~21)

 5. 지극히 작은 데서 이루는 완전 역사 (미5:2~4) 

 6.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일 (시42:8~11) 

 7. 사랑과 기쁨 (요15:9~14) 

 8. 제일은 사랑 (고전13:11~13) 

 9. 인간 종말의 미혹 (마24:10~14)

10.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의 생활 (눅21:25~36) 

11.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고 이루어지는 나라 (단7:15~22)

12. 사명자의 호소할 일 (합1:1~17) 

13. 아담 안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의 부활 (고전15:20~28)

 

장년 공과편 - 서방의 교회 확장

제1과  주께서 함께 하심 (행18:1~11)

제2과  로마에 가서 증거할 것을 주께서 말씀하심 (행22:1~21,23:11) 

제3과  로마에 전도의 문이 열림 (행28:16~23)

제4과  바울이 담대히 복음 전파함 (행28:24~31)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0과  성신을 받게 하는 사도들 (행8:14~24)

제11과  큰 핍박을 만난 사도들 (행8:1~3, 9:1~9)

제12과  사울을 환영해 준 사도들 (행9:15~30)

제13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도들 (행11:1~18)

 

논 설 편

1.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 

2.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인간의 행동

3.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

4. 혼란한 교계에서 바로 나갈 획선을 말한다 

5. 천년 시대가 가까워진 증거를 말한다

6.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 

7. 청년을 가치있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자

 

신 앙 문 답

1. 믿음이 자라나서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 종교라는 것은 인생에게 있어야 되는 것인데 어떠한 종교 생활이 인생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3. 인생에 여러 가지 중대한 일이 있지만 이 시대에 제일 중대한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4.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보아도 점점 의문만 생기니 이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5.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주님 오실 때에 가장 큰 자가 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오늘날 청년들이 어느 나라나 방탕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슨 일이며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특    집

1. 11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말

2. 말씀 운동에 관하여 부탁하는 말씀 

3. 권  고

4. 목사 안수 시취 문제와 답 

5. 알리는 말씀

 

 

 

 

 

 

 

 설 교 편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새 시대

- 계 10:5~7, 11:15~19 -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있다. 4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기록한 글이며(눅1:1~4), 또 편지서는 복음을 받은 종들이 복음을 변론한 글이다. 그러나 선지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인데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원수를 갚아 준다는 것을 목적하고 말씀하시었다 (사1:24~27)

  이 복음을 하나님께로 받은 예루살렘이 밟히게 되었고 협상적인 신앙 노선에서 이방신과 타협을 하는 지도자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체가 이방화되어서 오히려 참된 선지들이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는 난관에서 압박을 받게 되고 축출을 받게 되고 억울하게 핍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강한 이방을 없이하겠다는 것과 부패한 정치와 종교와 사회를 다 불사르고 신령한 당신의 사람으로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겠다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참된 종들은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 말씀이로되 그 밖의 사람들은 다 망한다는 말씀이므로 그 시대 사람들이 선지들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복음은 인류 종말에 가서 완전히 전할 복음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류적인 심판이요, 인류적인 구원이니 전세계 인류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야 심판이기 때문이다.

 

  2. 인류적인 구원을 선포하고야 심판이 온다고 말씀하시었다 (사9:1~2, 슥9:10)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어 그 빛을 따라오는 자는 구원하고 따라오지 않는 자는 다 심판하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는 아들을 통하여 모든 나라 사람이 빛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는 때이므로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이방에게 전하신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을 책망하고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었다(마21:31). 그리고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이스라엘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다(마8:11-12). 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시었다(마24: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교훈을 모든 섬들이 앙망하리라고 하시었다(사42:4).

  이 모든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교훈은 유대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전부 이방 사람이 구원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에 이방 세력이 전부 망하고 야곱의 자손이 세계를 통일한다고 한 것은 이방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은혜시대가 지나서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이방을 심판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고 한 것은 구약 시대의 이방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인류 종말의 이방을 가르친 것이다.

 

  3. 말씀을 지키는 자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시었다 (사66:1~2, 5, 계22:6~7)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녀의 권세를 얻은 자들이 이방을 이기고 성도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가르친 교훈이라고 한다.

  첫째아담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그 후손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말세의 성도들이 옛 뱀인 용의 미혹을 이기고 말씀을 지키므로 그 자손이 지상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사66:22, 계20:9). 그러므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순종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4. 상을 주시며 멸망시키는 때를 말씀하시었다 (계11:15~18)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은 선지와 같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던 종들은 구약 때로부터 심판 때까지 다 왕권의 상급을 받게 되고 왕권 받은 종들을 망케 하려던 자들은 멸망시키는 심판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 시대에나 사도 시대에나 지금이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던 종들은 왕 노릇을 하게 되고 참된 종들을 대적하던 무리들은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심판과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은 선지 시대에 가르친 말씀이로되 이것이 인류 종말의 심판의 다림줄이 된다.

 

  결    론

  하나님은 질투의 신이요 보복의 신이시다.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질투하시고 사랑하는 자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하여 보복을 하시는 것이니 여호와께서 선지에게 가르친 말씀은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라는 것과 원수를 갚아 주고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 중점인 것이다.

 

 

여호와는 두려워하는 자의 피난처

- 사 8:11~18 -

 

  하나님께서는 미약한 인간을 들어 강한 자를 이기게 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자를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 처하게 하고 거기서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그 사람을 위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역사하시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불의한 일에 동참치 말아야 역사하심 (11~13)

  하나님께서 조용히 감찰하고 계신 것은 불의의 세력을 강하게 역사하도록 해서 누가 그 세력 앞에 타협치 않나 그것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아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절개가 있는 자에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당신이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마귀의 강한 세력을 들어서 택한 자녀를 까불어 보아서 불의의 세력과 타협을 하는 자는 음녀로 인정하고 타협치 않는 사람은 진실한 아내와 같이 인정하시고 그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남편이라 하고 백성을 아내라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절개를 지키는 자에게만 역사한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을 찾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망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은 진실하신 신이신 고로 조금이라도 변함이 있는 자는 함께 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할 인격이 없다 하여도 마음만은 변치 않아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2. 불의한 자에게 함정과 올무가 되심 (14~15)

  하나님께서 언제나 말씀을 주시고 강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누가 시험에 빠지나, 안 빠지나, 걸리나, 안 걸리나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공경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말씀에 탈선이 될 때는 함정과 올무가 되고 말씀에 순종할 때는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에는 함정과 올무가 있게 된다. 말씀에 순종하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이시므로 과거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가다가 다 함정과 올무에 빠졌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아서 순종하는 무리들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 복구를 목적하고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시련 가운데서 3, 4인이 단결되어 예루살렘을 복구하는 권리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도 되시고 함정과 올무도 되는 것이니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오실 때에는 예언을 지키는 자라야 복 있다고 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함정과 올무에 빠지는 것이요, 지키면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땅의 왕권의 축복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라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여도 당신을 경외하고 그 말씀만 순종하면 그 말씀대로 보호하고 말씀대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3. 기다리며 바라보는 자에게 역사하심 (16~18)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을 목적으로 두고 역사할 때에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검열하시므로 여러 가지 선한 모략이 있기 때문이다. 선한 모략이라는 것은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 낙망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모략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만 된다. 아무리 처음에 모든 일을 바로 해 나갔다 하여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참지 못할 때에는 먼저 수고가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학생들이 선생에게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시험을 볼 때에 합격을 하지 못했다면 그 선생에게 잘한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시험을 치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요 당신의 사람이 끝까지 기다리고 참고 나가는데 보호하지 않고 원수에게 먹힘을 당하게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시험을 해 보고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서 역사하도록 하여 증거케 하시는 것이 공의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신 것은 영적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예언이 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방 신당을 예루살렘 성지에 허락했다는 조건에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외에는 다 사마리아가 되었고 히스기야가 기도로 승리한 용사이지만 이방 바벨론 사신의 예물을 받고 타협을 했다는 조건에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바벨론에게 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북방 세력이 두려워 타협한다는 것은 육적 이스라엘이 망한 거와 같이 될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라야 북방 세력을 이기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과 즐거워할 무리

- 계 18:18~20, 19:1~5 -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하신 후에 이날까지 가장 간교한 마귀의 세력을 들어서 여러 가지로 미혹을 해 보셨다. 이 미혹에서 승리한 자는 종말에 심판을 내리는 날에 즐거워할 자가 된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모든 비밀이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이 무엇 인줄 모르고 바벨의 사치한 음란의 도성에 살면서 영원히 영광을 누리며 자기만을 영화롭게 하려다 한시간 동안에 불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 즐거워할 수 있는 무리들은 어떠한 자이며 어떠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장 복된 무리는 바벨론이 망할 때에 즐거워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억울하게 순교한 자들이다 (계18:18~20, 17:6)

  바벨론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는 귀신의 처소요, 둘째는 음녀요, 셋째는 극도로 사치한 도성이다(계18:2~3).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가 범죄한 후에 타락한 몸에서 아벨을 낳게 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 있을 때부터 바벨론이 망할 때까지 극도로 악의 세력을 강하게 역사하도록 하여 의인을 죽이는 일이 있게 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니 이것은 바벨론을 심판할 때에 즐거워할 수 있는 한 무리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이 무리는 전부가 마귀 자식에게 피해를 억울하게 당했던 자들이다. 이런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은 아담, 하와가 범죄한 원인으로 일어난 싸움인데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종교로써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상달되는 제사를 드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억울하게 죽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에서 주권을 가진 것이 아니고 그 믿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주권을 쥐고 움직이는 악한 세상이 되었으므로 수많은 성도들이 선지 국가에서도 억울하게 죽게 되었던 것이다.

  소위 선지국가라고 하는 미명을 가진 나라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종을 배척하는 죄를 지었으므로 구약 종말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가 바벨론이 망하면서 예루살렘이 복구되는 것으로 구약 역사는 끝을 맺었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후에도 구약 때와 같이 참된 성도들이 전부가 마귀의 자식들에게 억울하게 죽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은 자들이다.

  유대 나라에서는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교 사람들이 마귀의 도구가 되어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게 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소위 유대교 정통이라는 관념 아래서 기독교인들을 학살했고, 로마 시대에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거짓 종교로 누명을 씌우기 위하여 로마 서울의 14구 중에서 10구를 불로 사르게 하고 난 뒤 그것은 기독교인이 했다고 모함을 하여 수많은 성도를 죽였고, 로마에서 소위 카톨릭교 교황권이 종교 개혁시에 개혁파를 수없이 많이 죽였고, 소련 혁명시에 공산당이 수많은 성도를 죽였고, 중공의 모택동이 수많은 성도를 죽였고, 북한의 김일성이가 수많은 성도를 죽인 것이다.

  그 밖에도 그때 그때에 개인이 순교한 일이 많이 있었지만 단체적으로 순교를 당한 일은 초대 교회의 박해, 네로 황제 박해, 교황 박해, 소련 혁명 박해, 중공 박해, 북괴 박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가 흘러와서 수많은 성도를 죽인 세상의 종말을 바벨론이라고 한 것은 구약 교회의 종말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먹혀서 하나님의 성전이 없어진 것 같이 인간 종말에도 참된 교회가 피해를 당해서 없어지는 환란이 오므로 바벨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울한 피를 흘린 피 값을 갚아 줄 때에 과거 구약 때 선지나 성도들이나 신약 때 사도나 성도들이나 함께 기뻐할 날은 이 세상이 한시간에 불타는 때라고 말했다. 지금 온 세계가 한 시간에 불탈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은 바벨론이 망할 때에 즐거워할 무리의 수가 거의 차 가는 때가 왔다고 본다.

 

  2.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므로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19:1~5)

  하나님께서는 구약 선지를 통하여 인간 종말을 경고로 쓸 적에 바벨론을 쳐서 없이하고 새로운 나라가 오므로 성도들이 영원히 기뻐할 것을 말씀했다. 모든 선지의 묵시는 하나같이 바벨론이 망할 것과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이 구약 종말에 끝을 맺었다면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 될 수가 없을 것이로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화목 제물로 전 세계 인류의 죄를 다 탕감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구약 때 양을 잡아 제사한 것보다도 더 의로운 제사를 받아 주시므로 어느 민족이나 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선지 시대에 경고한 말씀대로 심판을 내릴 때에 원수를 없이하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종말에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치듯이 심판기에도 바벨론을 들어서 전 세계 교회를 치게 하고 여기에서 음녀의 세력 앞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자는 남은 자가 되게 하고 바벨론을 없이하는 동시에 거기에 동참한 자까지 없이한다는 것을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다.

  만일 전세계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고 선지 예언대로 구약 종말에 심판을 하고 만다면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 될 수 없을 것이로되 전 세계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세계 만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고 종말에 예언을 하게 할 때에 구약 선지들이 받은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를 다시 예언하게 하고 심판하게 되므로 그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남을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쓰러져 죽게 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다면 불의가 될 것이고 그 사람을 살려주기 위하여 노력 자체가 의가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억울하게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다 죽게 된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성부, 성자, 성신으로써 아무런 역사를 하지 않고 인류를 심판한다면 의로운 심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세계 인류를 위하여 성자의 화목제가 있고, 성신의 역사가 있고, 종말에 하나님의 새 일 역사가 있고서 심판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라고 즐거워하게 된다.

 

  결    론

  의로운 심판이 올 때에 할렐루야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인격이요 위대한 역사라고 본다.

 

 

완전 승리의 비결

- 계 17:13~15, 19:19~21 -

 

  하나님께서 완전 승리를 이룬 자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큰 환란이 된다. 환란이라는 것은 국부적인 환란도 있고 세계적인 환란도 있는 것이니 완전 승리는 세계적인 승리를 말한다.

  이날까지 전쟁의 승전고를 울리는 일도 있었지만 세계적인 승리를 완전히 이룬 일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완전 승리의 비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짐승의 권세로 하나가 되게 하는 일 (13)

  하나님께서 완전 승리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인류 종말에 가서는 망할 자들을 다 짐승의 권세 아래서 하나가 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니 짐승의 권세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게 높이는 것은 완전 승리의 결전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완전 승리를 이룰 기한이 되었으므로 애굽 바로의 마음을 더 강퍅케하여 바로의 권세 아래서 도저히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게 하시고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완전 승리를 이루는 역사를 할 때에 모세를 도구로 쓰되 신과 같이 써서 완전 승리를 이룬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 종말에도 짐승의 권세 아래 모든 사람이 단결되게 하시는 것은 세계 통일의 완전 승리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악의 세력이 완전 승리를 한 것 같이 하신 다음에 완전 승리를 이루고자 하는 짐승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오늘에 와서 모든 사람이 유물론 사상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완전 승리의 세계 통일인 성도의 나라가 올 시기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무리 유물론 사상이 큰 권세를 잡고 나온다 하여도 이것은 기독교의 완전 승리의 역사가 일어날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지는 때를 가르친 것 뿐이다.

 

  2. 진실한 자로 이기게 하는 일 (14)

  완전 승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싸워주는 역사를 받을 인격이 이루어지는데 있다고 본다. 아무리 천신만고의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진실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이니 그리스도의 왕권 반열에 들 자격이 있으므로 억지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승리를 이루게 되는데 있어서는 다시는 싸움이 없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진실도 있고 하나님께 보이려는 진실도 있으니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고 인정이 될 때에 그 시간부터 완전 승리를 이루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은 내 자신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을 완전히 이기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종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는 잠잠히 숨어 계셔서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가 알고자 하여 마귀의 앞잡이 짐승의 세력을 내보내어 미혹을 해보는 것이다.

  이때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다 짐승 앞에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도록 역사하는 것은 진실한 자를 골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앞으로 완전 승리라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가 되는 것이 완전 승리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3. 입에서 나온 말씀의 검으로 승리하는 일 (19:19~21)

  하나님께서 강한 마귀의 세력을 개방시킨 것은 누가 말씀대로 믿고 싸우나 보기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종말의 진리를 완전히 믿고 싸우는 자는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마귀인 옛 뱀을 가장 간교하게 창조한 것은 마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은 참이 아니라고 꾀어 보는 역사를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마귀가 꾀여도 하나님 말씀이 나로 승리하게 한다는 것을 믿고 싸우는 사람을 한데 모아서 완전 승리의 결전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기독교 종말의 싸움이라는 것은 순수한 말씀으로서 승리하는 것이니 아무리 귀한 종이라 하여도 말씀의 검이 없이는 재앙의 날에 승리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권세는 말씀을 가지고 싸우는 자에게 침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귀의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자에게 침범할 권리를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 승리의 비결은 입으로 말씀의 검을 토하는 인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데 전력을 두는 자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축복은 마지막 싸움에서 완전 승리를 이룬 자에게 있는 것이다. 첫째아담은 이기지 못하므로 지상 축복을 빼앗겼지만 인류 종말에 완전 승리를 이루는 자는 마귀를 없이하고 천년 왕국을 이 땅에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완전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인격과 생활에 들어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것이 복 받는 길이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데서 이루는 완전 역사

- 미 5:2~4 -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가장 큰 나라를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데서 일을 시작하여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일을 시작할 때에 가장 작은 자리에서 시작을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베들레헴 여관 말구유에서 시작한 일 (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언적인 역사가 있고야 그 역사대로 실천을 하시는 것이다. 가장 중대한 목적을 둔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질 적에 키가 가장 크고 준수한 사울을 택하여 왕을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면서 그를 버리신 것이다(삼상15:11).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왕을 택할 적에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택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무엘은 가장 작은 목동을 택하였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목동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아서 세계적인 왕국 건설의 왕조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만왕의 왕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한 것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여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사9:6~7).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작은 데서 시작된 일 같으나 이 일이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시작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들어 쓴다는 것이요,

  둘째는 가장 낮은 데서부터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요,

  셋째는 지극히 낮은 자리에 떨어진 인간을 구원해 낸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일도 작은 데서 시작하였고 이루어지는 일도 작은 데서 시작한 것은 어느 사람이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도록 하신 것이다.

  미혹의 역사라는 것은 처음에는 크게 역사하고 마지막은 아무 것도 없는 허망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요, 참된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에는 작은 것 같으나 결말에는 가장 큰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믿고 지극히 작은 데서 부터 큰 것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만 된다는 것을 뜻했다.

 

  2. 해산의 수고를 하게 하는 일 (3)

  하나님께서 왕국을 이루는 인격을 이루는 일에는 반드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된다는 것이 작은 데서 완전을 이루는 공의의 법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은 그때 그때에 평안히 지내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알고 이 땅의 평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충성을 보기 위한 것이다.

  둘째 : 진실성을 보기 위한 것이다.

  셋째 : 강한 인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종이나 진실한 종들은 다 해산의 수고를 다 하도록끔 원수의 세력을 들어서 그를 대적하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마귀를 들어 쓸 때에 강한 나라를 마귀의 도구로 썼고 강한 용사를 마귀의 도구로 들어 쓰면서 당신의 종은 그 세력 앞에서 압박을 받고 심지어 악한 사형을 받게 한 것이 이날까지에 있었던 왕국 건설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주님의 십자가가 어리석은 일이요, 저주를 받은 일이요, 큰 실패를 당하는 일같이 보였지만 이것이 가장 큰 승리를 이루는 역사라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다. 소위 강한 나라라고 불리던 나라도 마귀 세력이 성도를 괴롭힐 때에 자기네가 대 승리를 보는 것 같이 의기가 양양했지만 결국은 바람 앞에 등불같이 꺼지고 만 것이다.

  지금 아무리 붉은 용의 세력이 큰 권세를 가지고 세계 인류에게 압력을 주고 있지만 골방 속에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성도에게 분명히 거꾸러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앗수르가 강하였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기도하는 히스기야 한 사람 앞에 멸망을 당하였고 아무리 바벨론이 강하였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기도하는 청소년 앞에 느부갓네살왕이 절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작은 일 같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작은 성도의 위력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는 시온이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간이므로 우리는 각자 각자가 원수를 무서워말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도 생활이 있어야만 완전한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일 (4)

  오늘날 교만한 인간들은 정권이나 물권이나 병력을 의지하고 이것을 자기의 세력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완전한 역사는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자를 통하여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자를 가장 어리석고 약한 자로 보지만 최후의 승리는 이러한 자로 말미암아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결    론

  우리는 지극히 작은 데서 완전한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어떤 강한 나라나 어떤 병력이나 정권의 세력을 무서워할 것 없이 담대히 싸워 나갈 때에 홀연히 완전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일

- 시 42:8~11 -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본이시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생명을 받은 자로써 산 기도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의무가 사람에게 있고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기도대로 이루어줄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난관을 만나게 하고 거기에서 자기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동시에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를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원수의 압제가 있을 때에 (8~9)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압제를 인하여 밤을 새워 기도하는 자에게 강한 역사를 나려서 승리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의 압제가 올 때는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올 징조이니 압제를 무서워하지 말고 기도하여야 된다. 어찌해서 원수의 압제를 당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담대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둘째 :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기 위하여

  셋째 :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깨닫게 하기 위하여 원수의 압제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나는 기도 생활의 산 체험은 원수의 압제 아래서 기도하다가 전부 순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강권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기간 안에 생각밖에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은혜를 받겠다고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압제를 당할 때에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데서 15년이라는 기간에 더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세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는 광경이 직접으로 나타났는데 못박았던 자리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뼈가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 오며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뚝 뚝 들려오면서 주님은 내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너를 위하여 이렇게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으로 나를 향하여 물어 보시는 것이었다. 그때에 나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금도 불평을 두지 않고 그 고난을 달게 받고 나가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약 15년이 지나도록 계속으로 원수의 압제를 받았다.  이 압제는 원수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내 원수가 되어 나를 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당할 때에 조금도 불평을 두지 않고 기도하니 생명의 은혜가 강수같이 내려오는 체험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심령은 나날이 소성하고 이 몸도 나날이 소성하는 체험을 받게 되어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 기도는 억지로 하는 것보다도 그 생명의 은혜가 흘러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밤을 세워 기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을 체험하며 10개월간 조금도 피곤이 없이 철야 기도를 하는 중 계시록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생명의 하나님께 교통을 받게 되어 얼마든지 기도를 통하여 소성하는 체험을 15년간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인 것을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울하게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일은 생명의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2. 훼방하는 말을 들을 때에 (10)

  누구든지 훼방하는 말을 듣고 같이 훼방하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온전히 훼방하는 사람에게 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훼방하는 사람은 이미 마귀의 도구인데 같이 훼방을 한다면 그 사람도 마귀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훼방하는 말을 듣고도 하나님께만 입을 열어 기도할 때에 거기에서 입술에 열매를 맺는 승리가 있게 된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무리 훼방을 하여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상에서 입곱 가지 말씀을 하시므로 완전히 승리하신 것이다.

  첫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둘째 :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셋째 : 저가 아들이니이다

  넷째 : 내가 심히 목마르다

  다섯째 : 네가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

  여섯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일곱째 : 다 이루었다. 하시는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하시었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하나님의 종으로써 입술에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훼방하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바이다. 내 입에 말씀이 오므로 여러 가지 책자를 계속 발행하게 될 때에 훼방하는 말이 더 많은 것은 훼방하는 사람 자체에 손해가 될지언정 내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 오히려 이것이 내게는 큰 축복이 되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큰상을 받는 일은 나를 인하여 너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리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훼방하는 말을 듣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는 더 큰 축복이 오는 것이다.

 

  3. 낙망과 불안한 일이 있을 때에 (11)

  기도라는 것은 소망이 보일 때보다도 낙망이 올 때에, 마음이 평안히 있을 때보다도 불안이 올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낙망과 불안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된다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써 낙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올 때에 홀연히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좀 더 강하게 하시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용사적인 인격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자체에는 아무 것도 없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 하므로써 원수의 압제를 당하든지 훼방하는 말을 듣든지 낙망과 불안이 닥쳐온다든지 오히려 찬송할 수 있는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

- 요 15:9~14 -

 

  인생이라는 것은 사랑과 기쁨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서 극도로 기쁘게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극도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목적을 두고 사랑하는 것이니 인생으로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아무런 열매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자체이신데 그 사랑을 사람에게 주어야 하나님도 기쁘고, 받은 사람도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는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므로만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므로만 하나님은 영광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사랑 (9~10)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니고는 참 사랑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통적인 사랑이라야 우리 인생에게 열매가 있게 된다. 계통적인 사랑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일

  둘째 : 예수님께서 제자를 사랑하신 일

  셋째 : 제자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

  이것이 계통적인 사랑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걸머지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하신 것은 극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물과 피로 임한 그 몸을 하나님께로 받게 된 것은 큰 축복이라고 본다. 아무리 성자의 신이 있다 하여도 사람의 몸을 하나님께로 받지를 못하였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도 없고 영광을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몸이 없이는 영광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축복은 영광스러운 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만민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인격을 받게 된 일이다. 예수님의 큰 영광은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일이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몸을 하나님께 받았다 하여도 만민을 위하여 죽은 일이 없다면 세계 통일의 왕권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사53:10).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인간이 볼 때는 괴로운 길 같으나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걸어가신 길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아들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예수님이 제자를 사랑한 일에 대하여 말한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이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사명을 맡겨서 세세 왕권을 받게 하였고, 예수님은 제자에게 사명을 맡겨서 세세 왕권을 받게 하려는 사랑이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양떼를 위하여 죽게 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고난을 받게 하고 순교를 당하게 하는 것이 큰 사랑인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종을 남보다도 고난을 더 많이 받게 하신 것은 극히 사랑하는 일이라고 본다.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대행자로 일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같이 받고 그 영광을 같이 받는다는 것은 사랑 중에도 큰 사랑이라고 본다.

  다음은 제자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다. 형제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진리로 가르치고 책망을 하고 붙들어 주고 위로해 주고 서로 기도로 돕는 일이니 내가 용서를 받았으므로 남도 은혜를 받게 하고자 하는 사랑이 불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사랑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라고 본다. 사도들이 그 사명을 받아 피를 흘려 교회를 세움으로서 우리가 그들이 세운 교회에서 그들이 전한 복음 안에서 말세에 큰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된 것은 무엇으로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누구든지 사도가 가르친 교훈 안에 그대로 거하면 사도와 같이 큰 축복을 왕권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순교한 종들의 사랑을 통하여 완전 역사가 변화 성도에게 오는 것은 계통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기쁨 (11~14)

  기쁨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악한 자의 기쁨도 있고 의로운 자의 기쁨도 있으니 악한 자는 남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고 의로운 자는 형제가 복을 받는 것을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해서 이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였던 것이다(요4:34).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완전해지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자기가 고생을 해도 형제가 복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참된 종들의 기쁨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서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기독교의 완전한 승리는 참된 기쁨을 계통적으로 가지는데 있는 것이다. 형제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기쁨으로 순교를 하는 일인데

  첫째는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는 일을 가장 영광으로 생각하시고 기뻐하신 일이다.

  둘째는 모든 사도들이 양떼를 위하여 십자가를 증거하다가 순교하는 것을 기뻐한 일이다.

  셋째는 우리가 그들의 열매로 마지막 싸움을 싸워서 승리하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에 모든 선지나 사도나 성도들이나 다 같이 크게 기뻐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계18:20, 19:5~8).

  세세 왕국이라는 것은 계통적인 기쁨을 받은 자들이 한데 모여서 기쁘게 영광을 누리는 세계를 말한다. 오늘날 이 계통적인 기쁨을 받은 자들이 하나같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우리가 가장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한 사랑 안에 한 기쁨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왕국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통적인 사랑과 기쁨이 있는 자라야 종말의 지상 왕국을 이루는 반열에 들 수가 있다.

 

 

제일은 사랑

- 고전 13:11~13 -

 

  하나님은 사랑의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만족을 이루어 놓는 것을 천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있는 완전한 것을 인생에게 전부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령인 동시에 그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역사를 능력이라는 것이다. 제일인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완전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 (11)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치 못한 자가 완전한 자를 섬기는 사랑도 있고, 완전한 자가 완전치 못한 자를 길러 주는 사랑도 있다. 여기에 제일 가는 사랑은 완전치 못한 자가 완전한 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완전한 자가 완전치 못한 자를 길러 주는 사랑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에는 감히 대조할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자식이 부모를 사랑한다 하여도 길러주신 부모의 사랑엔 비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제일 가는 사랑은 조물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해 주는 사랑인 것이다. 우리 기독교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한다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대한다든지 하는 범위에 국한된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역사가 기독교를 이룬 것이니 그 사랑 안에서 중생 하여 자라나 온전한 사람이 되어 온전한 세세 왕국에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제일 가는 사랑의 종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체험하는 영계에 들어가서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 받아야 된다.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 받은 자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다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는 앞에 사탕을 놓고 좋은 서책을 놓으면 자기에게 사탕이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좋은 서책을 자기의 무기로 사용하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어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때 그때에 자기를 길러 주는 은사를 좋아하겠고, 완전한 장부가 될 때에는 성경 전체에 말씀의 칼을 무기로 쓸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국 복음 운동을 하실 때에는 은사를 중심하여 역사 하셨지만 완전 승리의 지상 왕국을 이룰 때에는 마귀의 권세를 개방하여 여러가지로 시험을 해 보고 시험에서 말씀으로 이긴 자로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하신다.

 

  2.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다 (12)

  우리는 지금 주님의 사랑의 범위를 다 알지 못하되 그 사랑을 받아서 우리가 중생을 받고 은사를 받고 날마다 자라나는 생활에서 사랑을 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분명히 아시고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시는 그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때에야 그 사랑의 목적이 무엇인 것을 다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그 사랑을 다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 사랑의 능력의 역사를 받아 날마다 전진하며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은혜시대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랑 속에서 역사했고, 환란 재앙이 올 때에는 그 몸까지 구속해 주는 역사 아래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땅에서 받는 사랑은 재림시까지에 완전함을 이루어 죽은 자는 부활하고 남은 자는 변화하여 즐거운 혼인 잔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3. 믿음 소망보다도 제일은 사랑이다 (13)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요, 소망이라는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는 것이니 믿음과 소망의 목적은 완전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자체는 사랑이시니 당신의 사랑을 믿고 소망을 얻은 자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어서 이들에게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을 세세 왕권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나 미래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나가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이루어진 세세 왕권의 영광의 기업을 누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대사업은 완성되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신은 사랑의 신이신데 그 사랑의 소원을 다 이루어 놓는 것을 천국의 영광이라고 한다. 지상 왕국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는 천년 왕국이요, 영원한 천국이라는 것은 하늘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새 예루살렘을 영원한 도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의 제일 큰 일은 제일 가는 사랑을 받고 사는 일이라고 본다. 누구나 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제일 가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이것을 받지 못하고 흑암에 떨어진 것을 붉은 용에게 꾀임을 받은 인간이라고 본다.

 

 

인간 종말의 미혹

- 마 24:10~14 -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큰 미혹이 있고 심판이 있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이니 이 마지막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 큰 축복이 있고 이기지 못하는 자에게는 큰 화가 있다. 마지막 시험이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 세계 인류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였으므로 미혹이 있게 된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기간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세계 인류적인 큰 시험과 큰 심판이 있는데 있어서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아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았고 큰 시험을 이기므로 이 땅에서 큰 축복을 왕권으로 받는 일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를 시험해서 시험을 이기는 자로 새로운 성도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 것이다. 큰 시험이 오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서로 미워하는 일 (10)

  인류 종말의 큰 시험은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는 것은 큰 시험을 받은 원인이니 사랑이 있는 기독교 안에 서로 미워하는 마음은 미혹이 오는 증거라고 보아야 한다. 남을 살리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는 마음에 시험이 들어올 수 없고 교회 안에 서로 파당이 생기는 데서 자기도 모르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연히 미워하는 사람을 같이 미워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길 것이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귀가 내 마음에 온 증거로 알고 주의하여야 된다. 우리가 앞으로 오는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항상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사랑 안에 안기워 있어야 할 것이다. 미혹이라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게 될 적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깊이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만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서로 미워한다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으리만큼 마음에 미혹이 온 증거라고 본다.

 

  2. 거짓 선지가 많아지는 일 (11)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지도자 부패를 없애는 재앙이 오는 때를 말한다. 구약 종말에도 거짓 선지들이 많아질 적에 하나님의 큰 재앙이 북방으로 오게 되었고 인류 종말에도 거짓 선지가 많아질 적에 이것을 없애기 위하여 큰 화가 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가장 간교한 뱀이 직접으로 사람을 미혹하였고, 인류 종말에는 붉은 용의 앞잡이 즉 거짓 선지인데 계13:11을 보면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는데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하고 그 앞에 절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잡아죽인다고 한 것은 거짓 선지가 많아져서 세상 권리를 쥐고 행할 것을 말한 것이다. 인간 종말에 거짓 선지가 많아지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 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거짓 선지가 교권을 쥐게 되므로 참된 종은 쫓겨남을 받고 거짓 선지는 한 단체를 이루게 된다.

  둘째 : 마귀가 허락을 받게 되므로 거짓 선지가 많아진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다 미혹을 시켜 보고 심판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 선지를 많이 일어나도록 허락한 것이다.

  셋째 : 거짓 선지를 대중이 환영하게 되는 조건은 극도로 위기를 만날 때에 가면을 쓰고 그 위기를 면케 해 준다는 간판 밑에서 미혹을 하게 된다.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을 인간 종말이라는 것이다.

 

  3. 사랑이 식어지는 일 (12)

  기독교 안에 사랑이 식어지는 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거짓 선지가 강단에서 서게 될 때에 일반 양떼는 다 심령이 메말라지므로 마음이 식어진다.  이것은 성신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 거짓 선지를 따르는 무리가 다수가 될 적에 교회의 모든 일은 성신을 근심케 하는 일로 결정이 되므로 교회의 사랑이 식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계에서 이기고 나가는 자라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결    론

  거짓 선지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한 것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시험을 해 보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니 그 미혹을 받지 않아야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것이고, 주님 재림할 때에는 미혹을 받지 않고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환란에 떨어지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 종말에 미혹을 이기는 자는 지상 축복을 자자손손이 받게 되는 것이다. 죽어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범죄에서 사죄를 받으므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몸이 살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보는 것은 미혹을 이기게 되므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의 생활

- 눅 21:25~36 -

 

  주님께서 가장 어려운 일이 많이 닥쳐오는 때는 재림이 임박할 때라는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임박할 때에 성도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 성경이다.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를 보면 전체가 천당가는 사람의 생활에 대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고 살아서 환란을 이기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사람의 생활을 가르친 것이다.

  어찌해서 영혼 구원받는 사람의 생활을 중심하여 가르치지 않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사람의 생활 문제를 놓고 세밀히 가르쳤느냐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마귀의 세력을 개방시켜 시험을 해 볼 때이므로,

  둘째는 절대로 보호를 받아야 될 때이므로,

  셋째는 가장 사랑하는 자를 아끼시고 그 밖의 사람은 멸망을 시킬 때이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종들에게 미리 세밀하게 말씀하신 것은 그 시대를 지나서는 다시 기회가 없고 용서가 없는 재앙 심판이 오겠으므로 하신 것이다.

 

  1. 징조를 보고 각성할 것 (25~33)

  인간 종말의 징조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모든 민족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하게 된다고 25~26에 말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보거든 너희 구속이 가까웠으니 머리를 들고 각성하라고 하였다. 그밖에 여러 가지 징조를 다 여기에서 말할 수 없으나 이 시국을 볼 때에 극도로 세상이 혼란해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생각한다면 한시간 동안에 세계 인류가 전멸될 전쟁이 눈앞에 이르게 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만 해도 기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난제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피해 보려고 생각하던 정치인들은 서로 협상을 부르짖고 있다. 아무리 약간의 손해가 있다 하여도 싸우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오늘날 가장 지혜로운 정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공산 세력이 세계를 위협하는 이때에 우리가 각성해야 될 것은 무슨 문제보다도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일이다.

 

  2. 마음이 둔해질까봐 조심할 것 (34~35)

  우리의 생활은 조금만 조심하지 않아도 마음이 둔해지는 것이다. 너무나 방탕한 사회가 되었으므로 신앙의 절개를 잃어 버리기 쉽고 너무나 미혹이 많으므로 독주를 먹고 취하기가 쉽고 너무나 경제 혼란이 심하므로 생활 염려에 마음이 압력을 받고 감각이 없이 되기 쉬운 것이니 우리의 생활은 조금도 불의와 동참하지 말고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3.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 (36)

  우리가 장차 올 모든 일을 피하고 주님 앞에 설려면 항상 기도로 승리하여야 한다. 기도라는 것은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종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하여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경륜한 것이 아니고 우리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해결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항상 기도하며 그 기도의 응답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고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모든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주 앞에 서게 된다.

 

  결    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기절하게 될 때에 거기서 조금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승리해 나가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오는 시국 난제를 모두 해결하고 나가는 생활이 있는 자라야 완전한 구속의 은총을 받으므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고 이루어지는 나라

- 단 7:15~22 -

 

  억울하게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는 다니엘에게 묵시가 보일 적에 성도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주는 일이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 줬다. 하나님께서 하나같이 모든 선지에게 원수를 갚아주는 심판이 있은 후에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억울함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 : 앞으로 오는 모든 문제를 돌파하고 나가는 큰 힘을 성도들에게 주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이 말씀을 믿고 참는 자를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여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갚고 성도들에게 지상을 통치하는 왕국의 권세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라고 본다. 원수를 갚는 이유와 성도에게 거룩한 나라를 주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16~18)

  하나님께서 과거부터 언제나 강한 나라를 들어서 다윗 왕국을 괴롭힌 일은 인간 종말에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정치와 나라는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성도를 어떻게 보호하므로 이기게 한다는 것도 과거에 미리 보여준 것이니 다니엘 당시에 바벨론 왕에게 쓰라린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승리가 있게 하여 예루살렘을 복구케 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하나님께서 성도를 도우시므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언제나 성경은 기록하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가 있고 이루어지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가 있으니 과거에 나타난 역사가 분명한 것과 같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도 분명하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 짐승은 구약 시대에도 가르친 말씀이요, 신약 시대에도 가르친 말씀이다. 구약 시대의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네 나라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던 나라요,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영적 교회를 정복하고 들어오는 나라가 네 나라가 된다.  

  지금 강국이라는 나라들은 대부분 다 영적 교회를 부패되게 하는 나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처음에는 돕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말에 가서는 그 나라가 부패하는 동시에 성도를 괴롭히는 짐승과 같은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본시 강대국이라는 것은 종교를 이용하다가 망할 때는 참된 교회를 탄압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세상 권리를 쥐고 나가는 정치는 침략적인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대국을 짐승으로 말한 것은 침략자를 뜻한 것이다. 언제나 큰 짐승이라는 것은 작은 짐승을 잡아 먹는 것이 원칙인 거와 같이 강한 나라는 작은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메데파사나 헬라가 다 그러한 정치를 썼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언제나 참된 종교를 자기 정치적인 도구로 쓰려는 것은 종말에 가서는 다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이 참된 성도를 억울하게 하는 정치를 하다가 원수를 갚는 심판이 오므로 완전히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

 

  2. 성도가 나라를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19~22)

  구약 시대에도 넷째 가는 헬라에서 종말의 성도를 압박하며 각성을 시키는 일이 있고 성경을 없이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 일이 3년반 동안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넷째 가는 나라가 성도를 괴롭히고 성도를 극도로 탄압하여 성도를 이기게 된다고 하였다. 넷째 가는 짐승을 들어 쓴 것은 왕권 받을 종을 검열해 보기 위한 방법이다.

  구약 시대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와서 4대 강국인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탄압을 받은 일이 있고, 신약 시대에는 로마에서 기독교가 승리하고 나와서 미, 영, 불, 소의 사대 강국의 종말을 당하는 이때에 넷째 가는 나라에서 기독교는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원하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한다고 하였다. 성도의 나라라는 것은 억울함을 당하고 순교한 성도들과 인간 종말에 넷째 짐승에게 억울함을 당하던 성도와 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열 뿔의 세력이 교회를 침투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가 넷째 가는 짐승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넷째 짐승은 심판의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의 성도나 신약 시대의 성도가 다 억울함을 당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다. 왜냐하면 억울함을 당한 자에게 영원한 왕국의 권세가 오기 때문이다.

 

  결    론

  우리는 원수를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종이니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 뿐이다.

 

 

사명자의 호소할 일

- 합 1:1~17 -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때가 올 때는 당신의 종들을 어찌할 수 없이 부르짖는 호소를 올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들어가게 하신다. 이것은 참된 종을 들어 쓰기 위하여 모략적으로 시련기를 두는 때이므로 그 때에 하나님의 경륜을 모른다면 다 미혹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에게 주 재림기를 맞이하는 때에 사명자로서 반드시 낙심하지 않고 호소해야 될 문제를 묵시로 보여준 것이다. 시련 가운데 있는 중에 안타까운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아무리 애써도 열매가 없는 일 (1~4)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시되 시기를 따라 하시는 것이다. 시기는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노아 홍수 심판 때에 홍수가 임하는 시간까지 여호와 잠잠히 계시므로 방주의 구원을 믿는 자가 8명 뿐이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기한이 찰 때까지 여호와 잠잠히 계셨고,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가 복구될 때에도 기한이 찰 때까지 잠잠히 계셨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도 기한이 찰 때까지 잠잠히 계셨으므로 언제나 새로운 역사가 올 시기에는 악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는 부패가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 재림기에도 아무리 사명자가 애써 부르짖어도 열매가 없는 것은 여호와 잠잠히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볼 때는 잠잠히 계시는 것 같으나 그때에 하나님의 숨은 비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게 된다.

  첫째 : 믿지를 않게 하심(5)

  주님께서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한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시었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유물주의의 사상으로 흐르는 것은 주 재림기가 된 증거다.

  둘째 : 악의 세력을 일으키심(6~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 소유가 아닌 곳들을 점령하는 북방 사람을 일으켰다고 하시었다. 그런데 이들을 일으킨 것은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이 말씀과 같이 오늘날 북방의 넓은 대륙을 점령한 공산 세력이 본문과 같이 강하기가 식물을 움키려는 독수리의 날음 같이 일어나서 강포를 행하고 사람을 모으기를 모래알 같이 하고 열왕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도성을 비웃고 자기의 힘으로 신을 삼고 죄를 짓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하박국 선지의 묵시대로 되는 이때라고 본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북방 앞에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2. 사망에 이르지 아니할 일 (12)

  우리 사명자의 호소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요 절대 죽지 않고 새 시대를 볼 것을 확신해야 될 것이다. 어느 선지나 다 하나같이 북방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될 때는 심판기이니 누구든지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때에 절대 영혼 구원을 목적하지 말고 사망과 나와는 관계가 없다는 용기를 가지고 새 시대를 목적하고 돌진해야 될 것이다.

 

  3. 끝까지 기다리고 호소해야 될 일 (13~17)

  아무리 부르짖어도 여호와 잠잠할 때는 분명히 때가 임박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아무리 혼란한 사회가 와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눈물 흘려 탄식하는 호소가 있는 종이라면 하나님의 역사를 홀연히 받게 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주권자 없는 곤충 떼같이 고기떼같이 밀려다니는 생활에서 그때 그때에 환경의 지배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지만 이 시대의 사명자는 하나님께 호소하여 응답을 받게 되고 응답에 따라 역사할 때에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결    론

  사명자는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케 하옵소서 하는 호소가 있어야 하며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하는 호소와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는 호소가 있어야 된다(합3:1~2). 이러한 자가 되려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합3:17~18).

 

 

아담 안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의 부활

- 고전 15:20~28-

 

  하나님께서는 죽음이 오는 것도, 생명이 오는 것도, 다 계통적으로 있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다스리되 반드시 그 씨를 따라서 열매가 있게 하신다. 씨라는 것은 악의 씨도 있고 의의 씨도 있고 죽음의 씨도 있고 생명의 씨도 있다. 그러므로 죄의 씨를 주는 계통도 있고 의의 씨를 주는 계통도 있고 죽음의 씨를 주는 계통도 있으며 생명의 씨를 주는 계통도 있는 것이다. 이제 계통적인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아담 안의 죽음 (20~21)

  죽음이라는 자체는 순종치 않는 자에게 오는 법이니 선악과를 먹을 때에 죽음이라는 씨가 사람의 몸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질적 타락이다. 질이라는 것은 생명의 질도 있고, 사망의 질도 있는 것이니 아담을 통하여 인간에게 전해 주는 질은 사망의 질이다. 선악과라는 것은 그 자체가 보통 과실과 같은 질이 아니요, 그것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 질이 있는 과실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낸 것은 순종치 않는 자에게 사망을 주기 위한 법을 따라 낸 과실이요, 생명과는 순종하는 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한 과실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흙에서 지음을 받은 몸이니 완전한 몸으로 창조된 몸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완전한 몸이 되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죽는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몸으로써 자녀를 낳을 때에 그 피의 계통은 다 사망의 몸이 되었다. 이러한 몸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순종해서 하나님의 신의 도구가 될 때에는 그 몸을 다시 영생할 몸으로 이루어 놓는 법을 구속의 법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한 것은 몸의 사망과 영생을 가르친 말씀이다. 아담은 몸의 사망을 받았으나 그 영은 속죄제를 드리므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아담 후에 몸의 타락은 사망의 질이 되는 선악과의 질을 받은 계통이므로 누구든지 그 피를 받은 자는 다 아담 안에서 한 몸 같이 되어 있으므로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이 부활을 받는 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 그리스도 안의 부활 (22~23)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 것은 아담의 후손은 누구든지 다 아담의 몸에서 나왔으므로 그 계통적인 사망을 받게 된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자들은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게 붙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의 모든 자가 부활케 하는 이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예수님의 몸을 물과 피로 임하게 하심 (요一5:6~9)

  그리스도의 몸은 아담의 계통이 아니요, 마리아의 태를 그릇과 같이 사용한 것 뿐이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계통적인 마리아의 몸의 피가 예수님을 이룬 것이 아니고 성신의 역사로 마리아의 몸에 역사해서 물과 피가 임하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영생할 생명으로 이루어진 몸이다. 이러한 몸이기 때문에 만민의 죄를 대속하는 피를 쏟고도 창 자국이 난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렀던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물에 잠겨 올라 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몸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롬6:2~5).

  둘째 : 성신의 전이 됨 (고전6:14~20)

  성신께서 우리의 몸을 다스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성령이 오셔서 역사할 수가 없다.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몸이기 때문에 성신이 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우리 몸이 성신의 도구가 될 때에 아담에게 속한 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몸이므로 죽어도 살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몸이 변화하는 것은 죄에 속한 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몸이므로 영생할 몸으로 완전히 변화를 받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그 몸이 아담 안에 있으므로 죽을 것이요, 주 재림시에 변화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몸이므로 완전히 영생할 몸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이 왕권 받을 사람에게 이루어지므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진다.

 

  3. 불가불 왕 노릇 하는 일 (24~25)

  그리스도의 통치 왕국이 이루어지는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1차 부활에 참여한 자가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왕국은 부득불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인격을 이룬 자들이 통치하게 된다. 이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

 

  4. 만물이 복종하는 일 (27~28)

  첫째아담이 범죄 하므로 만물이 아담 안에서 저주를 받았고, 둘째아담 예수가 승리하므로 만물이 다 복종을 하는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성도의 통치 지상 왕국이라는 것이다.

 

  결    론

  아담 안에서 사망이 옴으로 만물이 저주를 받게 되어 사망을 받을 몸에게는 만물이 복종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한 분이 순종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생명에 속한 몸으로서 만물이 복종하는 완전한 나라를 이룬 것을 그리스도의 통치 왕국이라는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서방의 교회 확장

 

  총    론

  하나님께서는 아시아에서 바울을 서방으로 보내신 것은 먼저 서방에 복음 확장을 시켜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는 경륜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인도하신 것이다. 서방의 교회 확장은 아시아보다 놀라운 발전을 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가 있었다.

 

제1과  주께서 함께 하심

- 행 18:1~11,  요절:10 -

 

  서    론

  바울은 하나님이 돕는 역사가 아니라면 서방에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를 향하여 건너가게 된 것은 분명히 주께서 서방에 뜻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간 것이다. 주의 뜻이 있는 줄 믿고 용기있게 활동할 때에 다음과 같이 했다.

 

  1대지 : 장막을 만드는 업을 함 (1~4)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한다 하여도 사람이 할 일을 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장막을 만드는 업을 하면서 서방에서 전도를 한 것이다. 아무리 주님이 함께 하는 역사가 있는 신령한 종이라도 사람이 기술적으로 할 일은 했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이 함께 한다고 하면서 정신 작용에서 기술적으로 하는 일을 필요 없게 본다면 이것은 사도 바울적인 사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 확장을 시키는 일은 성신 역사에만 있고 사람의 할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는 사명자들에게 사람의 할 일은 하게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친히 역사를 나려 행하시는 것이다. 어떤 종이 자기의 할 일은 하지 않고 전부를 주님께만 맡기고 가만히 있다는 것은 탈선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2대지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증거함 (5~7)

  하나님의 종은 자행자지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증거해야만 교회가 확장되는 것이다. 어떤 종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반대가 있고 핍박이 있다고 하여서 증거를 못한다는 것은 말씀에 붙잡힌 종이라고 볼 수 없다. 말씀에 붙잡힌 종이 아무리 대적이 훼방을 하여도 더 담대히 증거할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사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이 사람을 사로잡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언제나 참된 종은 말씀에 사로 잡혀 증거하면 항상 주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다.

 

  3대지 :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함 (8~11)

  교회라는 것은 아무 곳에나 사람의 마음대로 세울 수가 없다. 택한 백성이 있는 곳에 그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종을 들어 쓰기도 하시고 교회를 세우기도 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두려워 말고 담대히 전할 것 뿐이다.

  사도 바울이 성신의 인도를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에 택한 백성을 찾으시는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어려울 때 나타나서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며 해롭게 할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결    론

  사도 바울은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해서 전도비를 사용하여 교회를 세울 적에 간데 마다 주님께서 함께 하는 증거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절대로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부딪쳐도 용기있게 나가므로 서방에 교회를 확장시킨 것이다.

 

 

제2과  로마에 가서 증거할 것을 주께서 말씀하심

- 행 22:1~21, 23:11,  요절22:21 -

 

  서    론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사명적인 안수를 받고 이방을 중심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증거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증거하고 로마에까지 증거하게 된 일을 공부한다.

 

  1대지 :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일 (22:1~21)

  바울이 이방에 교회를 세울 때에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하지 말고 규례를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바울은 담대히 증거하게 되었다(21:21~40).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에 엄한 교훈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던 자다(22:3). 그러므로 기독교를 핍박해서 사람을 죽이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가두는 일을 했었다(4). 그는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 가지고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만나는대로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던 자이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갈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비춰지는 것을 보고 땅에 엎드러져 음성을 듣게 되었다. 들리는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울이 뉘시오니까 할 때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였다. 그러나 옆에 있던 사람들은 빛은 보았지만 말하는 음성을 듣지는 못하였다. 사울이 말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할 때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너의 모든 할 일을 거기서 누가 일러주리라 하시었다”(9). 이때에 사울은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앞을 보지 못하고 눈이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함께 가던 사람들이 사울을 끌고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사울을 찾아와서 세례를 베풀어주고 안수할 때에 바울은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다. 그 때부터 바울은 담대한 종이 되었다(10~16). 그 후에 바울이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떠나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을 하시었다(17~21).

  그 때부터 바울은 이방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어디에 가나 서슴지 않고 듣든지 말든지 자기가 받은 것을 증거할 때에 예루살렘에서도 대중을 모아 놓고 증거를 하는 것이었다. 듣던 대중들이 감동을 받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어서 바울을 때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큰 사건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바울은 로마에까지 증거하게 된 것이다. 참된 증인이라는 것은 그 증거를 인하여 핍박을 당해도 서슴지 않고 증거하는 사람이다.

 

  2대지 : 주께서 바울에게 담대함을 주신 일 (23:11)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어려운 환란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고 환란이 있게 하면서 두려워 말고 담대히 증거하라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첫째 : 충성된 종이 되어야 왕권을 받기 때문이요,

  둘째 : 마귀의 세력 아래서 주의 백성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요,

  셋째 : 더 큰 상급을 주기 위한 모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참된 종이 더 환란이 많게 되는 것은 그 종의 축복이 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진보가 되는 것이다. 바울도 환란을 만나므로 로마에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다. 인간이 볼 때는 실패를 당하고 죽는 것 같으나 그 길을 감으로써 서방에 교회가 확장되었던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자기를 핍박하던 자라도 강권으로 불러서 아무리 핍박이 와도 자기가 받은 경험을 말하면서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증거할 때에 모든 사람이 그 말에 감동을 받게 되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나가 전할 때에 핍박하던 사람이 감동을 받아 믿게 되고 계속으로 이렇게 된 것이 세계적인 복음 확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박해의 종교라고 하리만큼 누구나 다 박해를 하던 사람이 믿고 자기가 박해를 하던 것 같이 자기도 박해를 받으며 참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의 승리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제3과  로마에 전도의 문이 열림

- 행 28:16~23,  요절:23 -

 

  서    론

  바울이 로마로 가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소송에 걸려서 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자라는 말을 붙였지만 바울은 아무런 죄가 없고 이런 말은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오히려 서방에 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전도의 문을 열어 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1대지 : 소송한 일이 전도의 조건이 됨 (16~20)

  바울은 로마에 가서 유대인 중에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이게 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다고 말함.

  실지는 바울이 유대교를 훼방을 하든지 배척한 것이 아니고 유대교가 이러한 복음을 깨닫고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담대히 말했던 것이다(롬9:1~3).

  둘째 :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함이라고 말함.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므로 소망이 있는데 이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바울의 마음에 통분히 생각을 한 것 뿐이다. 왜냐하면 메시야를 고대하던 나라가 메시야를 반대한다는 것은 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대지 :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 것을 듣고자 함 (21~22)

  기독교는 바울의 사상을 가져야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사상은 유대주의적 사상이 아니고 십자가 중심에서 세계 인류는 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그 말씀을 중심한 사상이다.

  그러므로 유대교와는 반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유대교 사람의 사상은 독선을 가지고 이방인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원수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사상은 바울이 가지고 나온 사상이라야 정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을 세운 것은 세계적인 구원의 종교를 이루기 위한 것이니 구약의 모든 말씀을 육적 이스라엘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상이 아니다.

 

  3대지 : 하나님 나라를 증거함 (23)

  바울은 일자를 정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되 모세 율법과 선지서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을 권하며 합법적인 강론을 했던 것이다. 로마는 로마 대 제국의 서울이니만큼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 합법적인 변론을 듣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변론적인 강론을 할 때에 큰 열매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계적인 복음 확장의 발판이 되었다.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가므로 로마는 기독교의 발전 근본이 된 것이다. 한 때는 네로 황제 박해로 무서운 환란이 있어 많은 순교자를 내었지만 카타콤 시대를 지난 후에 로마 제국은 기독교 종교국이 되었다. 언제나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는데 있어서는 억울한 피가 그 땅을 적시게 되는 일이 있었다.

 

  결    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온다 하여도 일할 문을 열어 주는 일이 있으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하고 로마에 끌려 갈 때에 여러 가지 풍랑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로마에서 크게 이루어진 것이다.

 

 

제4과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파함

- 행 28:24~31,  요절:31 -

 

  서    론

  하나님께서 특별히 바울에게 담대한 힘을 주시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은 로마를 중심하여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가져올 경륜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강권으로 로마로 인도하되 원수들에게 결박을 당하여 머나먼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로 가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벳을 창대케 하는 일을 할 때에 로마를 중심하여 역사를 하게 하신 것은 로마 제국이 가장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수도로 바울을 보내어 거기서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1대지 : 반대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함 (24~27)

  바울은 마음이 강퍅한 유대인에게 무서운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거기서 약해지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생각하고 오히려 용기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보고도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았기 때문인 줄 알고 거기서 완악한 자들에게 조금도 눌림을 받을 필요는 없다. 듣든지 말든지 담대히 전하는 것이 종된 자의 사명이다.

 

  2대지 : 구원을 이방인에게 보내신 줄 알고 담대함 (18)

  바울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반드시 받을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모든 성경은 세계 민족적인 구원을 가르친 것인 줄 깨달은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3대지 : 금하는 사람이 없게 됨 (30~31)

  바울은 이태 동안을 자기 셋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다 영접하여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것을 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에서 자기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정확한 장소를 택하는 일이며,

  둘째는 누구든지 오는 사람을 반가이 영접하는 일이며,

  셋째는 담대히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담대하지 못할 때에는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역사를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하는 사람이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은 벌써 사단에게 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사람이 억지로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신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서방으로 교회를 확장시키려면 로마에 복음을 전하여야만 되겠으므로 바울에게 무서운 환란을 만나게 했던 것이다. 이 환란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총 궐기하는 환란이었다.

  유대인 중에도 바리새교인이요, 바리새교인 중에서도 최고의 열심이 있는 사람이 기독교를 전멸시키려 나섰던 것인데 다메섹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본격적으로 이방 중심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보다도 교회를 더 많이 세우고 율법과 은혜를 잘 구분시켜 유대적인 사상을 버리고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설 때에 아무리 따라 다니면서 유대인들이 방해를 해도 점점 더 강하게 일어나므로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만 오면 총 궐기하여 바울을 없애기를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나타난 것을 보고 유대인들을 전부 격동을 시켜서 죽이려 할 때에 바울은 로마 국적에 이름이 있는 사람이므로 유대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함부로 피해를 줄 수가 없게 되어 로마 황제에게 결판을 내어 달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이 이 일을 알아본즉 로마 제국에는 하등에 관계가 없고 단지 종교 문제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바울은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고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환란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전도의 문을 열어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참된 종에게는 더 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0과  성신을 받게 하는 사도들

- 행 8:14~24,  요절:17 -

 

  서    론

  학생들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합니다. 아무리 학생들을 부모가 가르친다 하여도 학교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하여도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을 받으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 성신은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신을 받게 되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1대지 : 성신 받기를 기도한 일 (14~15)

  초대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신을 받기 위하여 사도들이 기도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성신을 주시고자 하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성신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학생들, 꼭 같이 성신 받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성가 47장.  완전하게 역사하는 여호와여 오셔서 강권 역사 행하므로 성신 부어줍소서. 완전하게 역사하는 주님 예수 오시어 강권 역사 행하므로 성신 부어 줍소서)

  학생들, 지금은 성신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다 같이 성신을 받아야만 합니다. 선생님들은 성신을 받았으니 선생님들과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다같이 성신을 받게 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성신은 꼭 같이 받습니다.  

 

  2대지 : 안수하매 성신을 받게 된 일 (16~17)

  성신을 받은 사도들이 머리 위에 안수할 때에 성신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같이 성신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 안수를 하면 성신을 받게 됩니다. 학생들도 훌륭한 종에게 안수를 받으면 그 종님이 받은 성신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신 받기를 원하는 자는 다 같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으로 구하는 자는 받지를 못합니다. 성신을 받지 못하고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고 참으로 기쁘고 평화롭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도 거룩하고 지혜롭고 담대하고 능력과 권세를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성신을 받아야만 됩니다.

 

  3대지 : 성신을 돈주고 사지 못하는 일 (18~24)

  사도들이 안수하면 성신을 받는 일을 본 시몬이라는 사람이 돈을 사도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서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신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청을 할 때에 사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학생들 돈이 귀합니까? 성신의 은혜가 귀합니까? 돈이라는 것은 물건이니 물건을 사고 파는데는 필요하지만 신령한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를 받는 일에는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돈이 많은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성신을 충만히 받은 사람을 미친 사람같이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보다도 돈을 귀하게 아는 것은 망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하나같이 성신을 충만히 받아야 돈만 아는 세상이 불탈 때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가게 됩니다.

 

  묻 는  말

 1.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2. 성신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3. 성신을 돈주고 살려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제11과  큰 핍박을 만난 사도들

- 행 8:1~3, 9:1~9,  요절8:3 -

 

  서    론

  하나님께서 성신의 역사를 강하게 내리는 동시에 큰 핍박을 당하도록 하는 것은 더 유익하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를 믿기 전에 교회를 크게 핍박하므로 사도들은 큰 핍박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핍박이 있으므로 교회는 더 확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큰 핍박을 만난 일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음 (8:1~3)

  사도들이 택하여 세운 집사 스데반은 비록 집사이지만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된 것은 모세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거스리는 자라고 하면서 모든 대중을 충동시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훼방하는 자이니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에 사울도 그의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을 당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사도들 외에는 다 사방으로 해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그들은 간데 마다 복음을 전하므로 오히려 핍박을 인하여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학생들, 그때 사람들은 열심히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큰 핍박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더 열렬하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을 돌로 때려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래도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 돌로 때리는 사람을 향하여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면서 그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얼마나 예수 믿는 사람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대지 : 사울이 살기가 등등함 (9:1~2)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에 스데반이라는 제자를 돌로 쳐서 죽인 후에 살기가 등등하여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잡아다가 형벌에 처한다고 하며 도망을 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대로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핍박입니까? 여기 학생들 중에서 부모님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하는 학생도 있겠죠. 혹은 형님이나 누님들이 핍박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친구들이 핍박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신앙 자유가 있으므로 아무리 핍박을 하려고 해도 국가에서 보장을 해 줍니다. 그리고 예배를 방해하려는 사람은 고소하면 경찰이 잡아다가 형무소로 보냅니다. 그러나 그때 나라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교인들을 다 잡아 가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교회는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3대지 : 사울이 회개함 (4~9)

  사울은 다메섹이라는 도성을 향하여 가던 길입니다. 다메섹이라는 땅은 우리 나라로 비하면 이북 평양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늘로서 빛이 비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눈을 떠도 볼 수가 없이 엎드러졌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때에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는 음성을 듣고 사울은 너무 무서워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에 사울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지만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빛이 비쳐질 때에 눈이 먼 것입니다. 사울의 눈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안수를 받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묻 는  말

 1. 스데반은 왜 돌에 맞아 죽었습니까?

 2. 믿는 사람을 전부 잡아다가 옥에 가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사울은 어떻게 되어 회개를 했습니까?

 

 

제12과  사울을 환영해 준 사도들

- 행 9:15~30,  요절:27 -

 

  서    론

  기독교를 없애고자 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잡아다가 옥에 가두기를 하던 사울은 예수를 만나서 회개한 다음에 즉시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사도를 대항해서 크게 핍박하던 사울이 사도들과 한 형제가 되어 예수님을 전한 일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주께서 이방을 위하여 택한 종이라고 증거하심 (15~16)

  예수님께서 다메섹 광야에서는 사울에게 나타나 회개를 시키고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나타나서는 사울이라는 사람은 이방 사람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예수의 이름을 전할 사람인데 예수를 위하여 핍박을 많이 받으면서 일할 사람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예수님은 아무리 악한 일을 하여도 모르고 하는 일을 불쌍히 여겨 깨우쳐 주고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 주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십니다.

 

  2대지 :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 함 (17~18)

  주님의 지시를 받은 아나니아는 사람을 죽이려는 사울을 무서워하지 않고 찾아와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며 말하기를 내 형제 사울아,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사울은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세례를 받고 건강한 몸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대지 :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함 (19~25)

  사울은 여러 회당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열심히 전파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다 놀라면서 이 사람이 우리를 해코자 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우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로 끌어가고자 한 것이 아니냐 하면서 사람들이 의심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면서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여러 날 후에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는 계교를 가지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다 사울을 담아 높은 성에서 달아 내려 도망을 가게 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던 사울이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전할 때에 사울과 한 나라의 사람이요, 한 교파 사람인 유대인들이 죽이고자 하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울을 살려 주기 위하여 밤에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 줄 알 수 있습니다.

 

  4대지 : 사도들이 환영하여 줌 (26~30)

  바나바라는 사람은 사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의심하지 말라고 사울의 된 일을 증거해 주고 사도들에게까지 데리고 가서 사울을 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사람은 다 의심하지 않고 함께 열심으로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어떠한 사람이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까?

 2. 바울에게 안수한 사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3.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고자 할 때에 누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까?

 4.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13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도들

- 행 11:1~18,  요절:18 -

 

  서    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각 나라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민족 차별을 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과는 교제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나라의 사람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지도 않고 서로 아무 것도 교제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세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성신 권능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제자들은 성신 권능을 받아 전도하면서도 자기 나라 사람에게는 전도하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꼭 같이 성신의 은혜를 내려 줄 때에 모든 사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를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하나님께서 민족 차별을 두지 말라고 증거하심 (1~9)

  이방 사람에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하게 된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이방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조건으로 이방 사람의 집에 가서 몸을 더럽힌 자가 되었다고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은 그릇에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려와 베드로 앞에 드리워 있는데 그 그릇을 보니 더러운 짐승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에서 두 번째 소리 있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보여준 것은 이방 민족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다 깨끗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2대지 : 성신님께서 의심 말고 일을 진행하라고 하심 (10~14)

  이방 사람 고넬료라는 집에서 보낸 두 사람이 베드로에게 와서 천사가 고넬료라는 사람의 집에 나타나서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여 말씀을 듣고 온 집이 구원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하나님께서도 성신님께서도 하나같이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되 의심하지 말고 빨리 가서 이방 사람들도 복을 받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학생들, 우리도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 순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지요. 성신님은 아무 나라 사람이든지 하나 같이 역사하여 그 영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3대지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16~18)

  하나님께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같이 성신을 말세에 부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사람이나 꼭 같이 성신을 부어 주시므로 하나같이 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베드로가 이방 사람에게 전도한 것을 합당치 않게 생각했지만 이때는 하나같이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꼭 같이 성신을 부어 주어서 다 하나가 되게 하여 그 사람들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감사를 했습니다.

 

  묻 는  말

 1. 베드로가 환상을 볼 때에 어떠한 환상을 보았습니까?

 2. 이방 사람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사람을 왜 베드로에게 보냈습니까?

 3. 하나님은 이방 사람에게 무엇을 보냈습니까?

 

 

 

 논 설 편

 

1.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 무엇인 것을 사람으로서는 알기가 어렵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임시 좋은 것을 따라 살면서 이 일이 결과적으로 나를 망케한다는 것을 아는 자가 몇 사람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인간이 볼 때는 영웅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모르고 있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도 모든 일을 잘하는 것 같으나 그것을 모르고 있고 아무리 문학을 자랑하는 지식인도 아는 것 같으나 이것을 모르고 있는 세상이라고 보게 된다.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화려한 도성을 이루는 일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서 소위 도시 계획이라는 것을 가지고 화려한 시가지를 만들고 화려한 건물을 높이 짓고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오늘날 모든 인간들은 이곳을 좋은 곳이라고 찾아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을 보면 인간 종말에 가서 화려한 도성이 일시간에 무너져 버리므로 그 속에서 남을 자가 심히 적다고 말씀했는데 무슨 원인으로 망하느냐 하면 첫째:사치, 둘째:음란, 셋째:정치 부패, 넷째:도덕 부패, 다섯째;인심 악화, 여섯째:사기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막대기를 그 성에 던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한데 모이도록 죄가 팽창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은 자기 홀로 짓는 것이 아니고 보고 듣고 하는데서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보면 쫓겨난 자, 유리하는 자, 압박을 받는 자,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변가에서 생명을 보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말했다.

 

  2. 소위 평화라, 협상이라 하면서 친선을 도모한다는 일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다 하나같이 옹호하고 있다. 평화라고 해도 망할 평화가 있고 협상이라는 것도 망할 협상이 있으니 이것을 바로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악한 자들이 선한 체하며 자기의 유리한 조건을 내다보고 평화를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속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기만적인 정책을 하는 자들이 자기 정책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자 하는데 그 비밀을 모르고 협상적인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심리를 따른다는 것도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요, 현실에 맞추어 그때 그때에 형편을 따라서 나간다는 것도 좋은 일 같으나 망하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에 억울한 일 같으나 결국은 좋은 일이 되고,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결국은 승리가 되고 어리석은 일 같으나 지혜로운 일이 되고, 가장 고생스러운 일 같으나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알려면 말세 비밀의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이 볼 때에 좋지 못하도록 해서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요, 마귀는 언제나 인간들에게 좋게 보이도록 하면서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의 사람은 진리의 눈을 떠서 이것을 바로 아는 완전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인간의 행동

  언제나 새로운 변동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올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인간들이 하게 될 때에 여호와 일어나서 진노를 베푸시는 동시에 새로운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행동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홍수 심판의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생활을 개척할 때에 아담이 하나님 말씀보다도 여자의 말을 따라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정도이지만 아담의 장자 가인이 차자 아벨을 쳐죽였다는 것은 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는 정도까지 노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동생을 죽인 가인의 혈통이 극도로 번창해지는 동시에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었지만 셋의 후손은 여지없이 가인의 후손에게 피해를 당하게 되어 그대로 두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난국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셋의 후손이 가인의 후손에게 끌려서 몸을 더럽히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악의 씨는 지면에 충만해지고 의로운 자손은 도저히 번성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을 내려 악의 씨를 없애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편케 하였던 것이다. 악의 세력이 팽창하여 의의 세력으로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베풀었던 것이다.

 

  2.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가서 압박을 받을 때에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애굽 사람들이 와서 죽이고 억울한 노동을 시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지없이 악한 애굽인들에게 먹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할 때에 여호와 일어나서 진노의 채찍으로 애굽을 쳐서 이스라엘을 구해낸 것이다.

 

  3. 이 이스라엘이 부패해서 참된 선지들이 도저히 일할 수 없이 되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백성들이 쑥물을 먹고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을 쳐서 황폐화시키고 신령한 순의 종들로 예루살렘을 복구했던 것이다.

 

  4. 기독교가 유대에서 새로이 출발을 가질 적에 메시야를 기다리던 다윗 왕국이 메시야를 환영치 않고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이방 군대를 들어 예루살렘의 성전을 황폐화시키고 기독교로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5. 오늘날 여호와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행동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공산당이 세계를 침투하게 되는 일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므로 붉은 짐승의 세력은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올 징조이다. 하나님을 몰라서 우상을 섬긴다는 것보다도 있던 교회를 없이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대적하는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일이라고 본다.

  둘째 :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알고 세속주의로 흐르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보다도 짓밟아 버리는 행동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부득불 임하게 될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다가 진노를 받은 것과 같은 행동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피를 더럽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등한히 알고 나간다는 것은 짐짓 십자가를 짓밟고 나가는 일이므로 진노를 받을 행동이다.

  셋째 : 진리를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를 없애는 진노가 내릴때인데도 불구하고 적 그리스도국과 협상하는 일이다. 이것은 진노를 함께 받을 행동이다. 왜냐하면 음녀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넷째 : 하나님의 성직을 맡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 교회의 원수이므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상을 망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 하나님의 성금을 함부로 남용하는 일이다. 세상의 물질을 사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성금을 사기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사기꾼이니 용서없이 진노를 받게 된다.

  여섯째 : 동역자를 공연히 치는 일이다. 하나님의 참된 종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와 같이 되는 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줄 일이다.

  일곱째 : 게으른 일이다. 급한 시기를 만난 이때에 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싸움을 패전케 하는 자이다. 전쟁의 날에 싸우지 않고 숨어있는 군인은 엄벌에 처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행동은 진노를 받을 행동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물질 문명이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전부가 진노를 받을 행동이므로 심판기로 보는 것이다.

 

 

3.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

  언제나 마귀의 미혹은 진리인 것같이 말하지만 그 말대로 따라가고 보면 비 진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모든 종교인들이 다 자기 종교의 진리가 제일이라고 하지만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가 무엇인 것을 모르고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열심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짝이 맞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구절 구절이 독립성을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코자 하여 구원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변론한 말씀이니 성경 한 절만 가지고 주장한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가 된다. 그러므로 마귀는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나오지만 짝이 맞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을 짝을 맞추어 증거하여야 될 것이다.

 

  2.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시대의 법을 따라서 있는 것이니 이미 이루어진 법도 있고 이루어지는 법도 있고, 이루어질 법도 있다. 이루어진 법을 이루어질 것으로 말해도 비 진리요, 이루어질 법을 이루어진 것으로 말해도 비 진리요, 현재에 이루어지는 법을 과거나 미래로 본다는 것도 비 진리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루어진 법으로 알아야 될 진리와 이루어지고 있는 법을 현재에 체험하여야 되며 이루어질 예언을, 이루어진 일과 이루어지는 일과에 합법적인 연결을 지어 원리와 변론에 맞아야만 될 것이다. 성경에 짝이 맞는다 하여도 원리가 맞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요, 원리가 맞는 것 같아도 성경 전체에 변론적으로 맞지 않아도 진리가 아니다.

 

  3.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자기 주관에 붙이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의 주관에 의하여 기록된 말씀이니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서 성경을 이용한다는 것은 일반이 들을 적에는 진리같이 보이나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공산주의니 인본주의니, 현실주의니 하는 등의 주의와 사상이 있지만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주관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니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미혹이 되고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아는 사람이 볼 때에는 가소로운 일이 된다.

 

  4. 성경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은 전부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니 이것은 그 역사를 체험한 자로서 본문 그대로 읽어 증거할 진리다. 그런데 조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보지를 못한 사람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역사를 체험치 못한 자기 생활에 맞도록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너무나 어린애와 같은 일이라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 진리와 인격이 떠날 수 없는 것이니 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라야 그 진리를 진리대로 바로 증거할 수 있다고 본다.

 

 

4. 혼란한 교계에서 바로 나갈 획선을 말한다

  우리는 사회도 혼란하거니와 교회의 혼란을 볼 때에 우리가 나갈 획선이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이 혼란한 교계에서 나갈 획선이 무엇인 줄 모른다면 그야말로 비극 중에서도 비극이다. 이제 혼란한 교계에서 나가야 될 획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시대 변천에 대한 영계 획선을 알아야 한다.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서 영계가 바뀌어진다는 것도 알아야 될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그 시대를 따라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데 있어서 우리 영계는 그 시대에 역사를 따라서 나갈 획선이 있다.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로 바뀌어질 적에 하나님 편에서 그 영계를 변동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계의 변동을 모르는 바리새 교인들은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판정을 나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네가 영계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서 백성을 지도한다고 하던 것인데 자기네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인간이 볼 때는 불학 무식하고 더러운 죄인들에게 성신의 역사가 임하기 때문이다.

  소위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무리들이 자기에게는 그런 역사가 없는데 사도들에게 역사가 내릴 적에 영계 변동을 모르고 오히려 성신의 역사를 바알세불이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바리새 교인들의 영계가 메시야를 영접할 만한 영적 사람이었던들 영계 변동을 알았을 것이다. 메시야를 영접할 만한 영적 사람이 아닌 자들이 교권을 쥐고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는 영계를 가진 자들을 억압할 권리가 있으므로 무조건 자기네 직권 행사를 했던 것이다. 대제사장의 직분을 참으로 행할 이는 예수님이신데 이것을 모르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저주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재림의 주를 영접할 영계를 못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서 직권 행사를 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의 전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며 변화성도가 받는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이단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영계는 베드로 계통적인 영계요, 변화성도의 영계는 사도 요한 계통적인 영계이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천국 복음 운동의 영계에 대한 대표자라면 사도 요한은 다시 예언의 영원한 안식 복음 운동의 대표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계가 오순절로 돌아간다는 것보다도 재앙의 날에 변화성도가 되는 영계로 들어가야 한다. 변화성도는 성경 전체를 전하되 권세 영감을 받아야만 싸워 나가게 된다.

 

  2. 말씀 전파의 진리 운동에 대한 변천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때는 앞으로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 운동을 하는 것보다도 영, 육이 아울러 새 시대에 들어가는 영원한 복음의 진리 운동을 해야할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큰 싸움은 진리 싸움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에 신학자들이 성신의 잉태, 십자가의 구속, 부활의 중생, 성신의 은사 이것은 다 통일적으로 되어 있지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말세론이 혼선 중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해석을 따르는 것보다도 선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다림줄의 획선을 바로 찾게되고 계시록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다림줄의 획선을 바로 찾아 아무런 미혹이 와도 본문 성경에서 그대로 읽어 미혹을 물리치고 기독교 종말에 말세론을 하나같이 증거할 수 있는 변론을 찾아야 한다. 쓸데없이 이 주석, 저 주석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주석이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전할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전한 천국 복음 외에 계시록과 선지서는 글자 그대로 읽어서 전할 안식 복음이 된다. 안식의 복음이라는 것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진리를 말한다(계10:7).

 

  3. 교파 문제에 있어서 알아야 한다.

  교파라는 것은 예수교 안에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등의 교파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양떼를 살리는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촛대교회를 세울 것 뿐이다.

  교회는 교파 문제로 획선을 찾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가르치는데 따라서 획선을 찾아야 한다. 어느 교회든지 단에 선 종이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느냐 못 주느냐에 의하여 교회가 남게 되고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님 재림할 때에는 변화성도가 움직이는 교회가 따로 구별되는데 있어서는 환란과 재앙에서 양떼를 살리는 교회만이 특별 보호를 받게 되므로 세계적으로 남은 촛대교회가 새 시대를 이루는 끝을 맺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때는 영계로나 진리로나 교회로나 새로운 변동을 가지게 된다. 그 변동은 하나님께서 영과 육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영계나 진리나 교회가 큰 변동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5. 천년 시대가 가까워진 증거를 말한다

  인간에 천년 시대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 하와를 내서 축복했지만 범죄하므로 지상 축복을 빼앗긴 후에 오늘까지 영혼이 구원받는 일은 있었으나 지상에서 만물을 축복으로 받아 영광을 누린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천년 시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붉은 용의 미혹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지금 천년 시대가 가까웠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붉은 용의 미혹이 짐승의 세력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끼고 세계를 침투하고 있는 일이라고 본다.

  오늘날 붉은 정권은 분명히 붉은 용의 마지막 머리가 되는 세력이라고 보며 오늘날 교계에서 소위 통합이라는 간판 밑에서 한가지 한가지 하는 일을 보면 분명히 붉은 용의 감화를 받은 꾀임의 말이라고 본다. 최고 영계를 가지고 최고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야 이것이 붉은 용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는 것은 이 미혹을 받지 않은 자로 천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환란이 올 시초라고 본다.

 

  2. 천년 시대는 바벨론이 한 시간에 불탄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온 세계 인류의 사상이 붉은 짐승과 협상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는 것은 이 세상이 바벨론이 되는 증거이니 계시록17장을 보면 붉은 짐승을 탄 바벨론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붉은 짐승의 세력 앞에 협상을 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가 지상 강림하시므로 한시간에 이 세상이 불타고 천년 왕국이 올 것을 말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천년 시대가 가까운 때라고 본다.

 

  3. 천년 시대는 인간 종말에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는 역사가 동방 땅 끝에서 나와서 세계를 그 말씀으로 깨우친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천년 시대에 들어가고 순종치 않는 자는 바벨론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하게 된다.

  모든 성경은 동방에서 나타난 말씀에 의하여 환란과 재앙과 심판이 오는 동시에 그 말씀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자가 있으므로 천년 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지금 동방 땅 끝인 이 나라에 새 시대에 들어가는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는 일은 천년 시대가 가까운 증거라고 본다. 지금은 누구나 다 천년 시대의 안식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준비가 있어야 할 때이다.

 

  4. 천년 시대는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 후, 가장 어려운 난제가 닥쳐오는 때에 천년 시대를 목적하고 하나같이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싸우기로 결심한 자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뭉쳐지게 되므로 그들을 통하여 대 승리가 있게 하여 천년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지금 많은 종들이 자동적으로 참된 진리를 따라서 나가야 된다는 충격을 받고 하나같이 종말의 진리를 찾게 된다는 것은 천년 시대에 들어갈 종들의 정한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이 네 가지를 보아서라도 충분히 천년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날과 그 시를 안다는 것은 미혹을 받을 일이지만 여러 가지 징조를 보고 천년 시대를 목적하고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히 있어야 될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천년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은 선지서와 계시록의 말씀을 보아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달리 해석할 필요도 없이 본문 그대로 읽어서 이 시대를 비추어 볼 때에 정치, 종교, 전쟁, 인심 동태, 경제 상태, 사상 문제, 도덕 문제 전체가 추호도 어김이 없이 그대로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6.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

  조물주 하나님은 즐거움을 인생에게 주고 싶어하시고 인생의 본질은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이 의합되지 못하므로 인생은 즐거움을 얻고자 하나 오히려 근심, 고통, 번민, 원망, 공포, 불안이 닥쳐오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 앞에 오히려 진노를 받을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즐거움을 주시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자 하여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있나 없나를 검열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창조해서 쓰는 것은 인생을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니요, 아무리 마귀가 시험을 하여도 거기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만 참으로 내게 즐거움을 주시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아무런 시험이 와도 이것이 있으므로 내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믿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라면 다음과 같은 즐거움을 주시려는 방법이다.

  첫째 : 중심의 즐거움, 둘째 : 몸의 즐거움, 셋째 : 생활의 즐거움, 넷째 : 사업의 즐거움, 다섯째 : 영원한 왕권의 즐거움이다.

  기독교 신앙의 산 체험은 시험 끝에 즐거움이라는 것을 체험한 자라야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움을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행할 일을 빠짐이 없이 기록하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그때에 말씀을 받아 서책에 기록하는 사람에게 괴로운 시험을 있게 하시고 그 시험을 참고 나갈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체험케 하시는 동시에 앞으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인생에게 즐거움을 주시되 어떠한 방법으로 즐거움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대로 행하시는데 있어서 먼저 행하신 일이 인생에게 고통 대신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신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참된 즐거움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 값을 짊어진 몸으로서 인간이 받을 심령 고통과 몸의 고통을 받게 했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자는 영. 육간 아울러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시는 것은 흥분적인 것이 아니고 실지로 체험적인 생활에서 물질로 얻어 볼 수 없는 그 세계의 정상적인 즐거움을 현 세상에서도 가지게 하며 영원히 더 큰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체가 사랑이시다. 당신 안에 있는 모든 보화로운 것을 택한 자에게 주므로 즐거워하시고 못 주게 될 때에 슬퍼하신다.

  인생의 본질은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지만 즐거움의 가치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다.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영원히 고통을 당할 일을 하면서도 일시 즐겁게 해주는 일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는 잠깐의 괴로움이 있게 하시고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잠깐의 즐거움을 따라갈 때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만다.

 

 

7. 청년을 가치 있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자

  오늘날 청년들은 청년을 가치 있게 활동할 줄 모르고 육의 정욕인 피의 작용에 따라 만족을 채워 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동물에 가까운 생활이 된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날 때부터 피를 받을 적에 그 피는 많아질수록 죄질 마음이 강하게 생기는 피를 타고났다. 피가 적으면 죄를 질 마음이 적게 일어나고 피가 많아지면 죄질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 육체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여야 청년으로서 그 좋은 피의 활동을 가치 있게 움직일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중심 사상을 바로 가지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이라는 것은 중심 사상에 따라서 그 피가 움직이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거룩한 중심과 사상을 가질 적에 몸의 피까지도 거룩해지는 가운데서 의에 대한 감화가 그 몸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청년이 혈기 방장이 있다 하여도 그 피의 작용이 마귀의 도구가 되지 않고 성신의 도구가 될 적에 의로운 일을 위하여 그 힘을 소비하는 생활이 있으므로 그 청년을 아무도 당할 자가 없으리 만큼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청년의 피를 성신의 도구로 바쳐지는 자이다. 성신은 청년의 몸을 도구로 쓰시기를 기뻐하신다. 마귀는 청년을 자기의 도구로 쓰려고 미혹을 주고 있고 성신님께서도 청년의 몸을 쓰시려고 강권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2. 청년으로 시간을 아껴 주께 바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하감하실 적에 청년이 시간을 아껴 당신 앞에 바치고자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청년의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귀하다. 청년 때부터 그 시간을 주께 바치는 자라면 일할 시간이 더 풍부히 바쳐지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공장에 노인이 가고 청년이 간다면 누구든지 청년이 더 좋다고 할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청년은 기술을 배워주면 그 공장에 큰 성공이 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생산 공장이라는 것은 청년의 기술이 좋을 때에 성공하고 나쁠 때에 실패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왕국을 건설하는 사업에 청년 하나가 큰 일꾼이 된다면 얼마나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이 사람은 고아의 한 사람이지만 17세부터 주 앞에 시간을 바치는 것을 제일 중대한 일로 알고 40년 신앙 생활에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60세가 가까운 사람으로 매일 학과를 배워주는 시간이 9시간이 넘고 그 밖의 시간은 서책을 쓰는 일에 바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어려서부터 시간을 아끼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청년이 시간을 주께 바쳐보려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본다.

 

  3. 청년의 힘을 의를 위하여 소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청년의 힘이라는 것은 가장 귀하다고 볼 수 있다. 청년이 힘을 아끼고 놀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가장 불행 중에 불행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어떤 청년은 그 힘을 음란, 방탕, 난동을 부리는 일에다 바치고 있는데 이것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청년 때에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가면서 내 힘을 짜 바치는 일이 있으므로 몸이 허약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60세가 가까운 사람으로 청년 때보다도 더 강한 힘을 받아 얼마든지 진리를 위하여 힘을 바치되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에 바치게 될 때에 조금도 피곤이나 권태증이 없이 점점 더 명랑하고 상쾌하고 씩씩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청년이 그 힘을 남의 유익을 위하여 바치는 생활이 가장 축복을 받는 일이라고 더욱 깨닫게 된다.

 

  4. 청년이 필요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는 청년 때부터 필요없이 청년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필요없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같이 알았으므로 친구가 적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없는 말을 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해서 몰래 도망을 가는 일이 많았다.

  하나님과 말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고 좋은 서책을 읽어서 말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내게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신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하여 한번 불러서 기록하면 서책을 계속으로 낼 수 있게 하신 일을 보면 분명히 기뻐하시는 증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축복이 될 줄로 믿는다.

 

 

 

 신 앙 문 답

 

【문】1. 믿음이 자라나서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므로 반드시 자라나는 것인데 그 환경과 그 생활에 의하여 자라나고 자라나지 못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한 알의 씨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씨가 싹이 나서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독립성을 가지고 자라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가꾸어 주는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옳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17세에 중생을 받은 후, 40년간 신앙 생활에서 믿음이 자라나는 일에 대하여 지장 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체험한 바를 말합니다.

  첫째 : 지도자가 교파심을 넣어 주는데 있어서 큰 신앙에 지장을 받아 보았습니다.

  장로 교인으로써 장로교 외에는 다 이단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신앙의 장성을 가지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둘째 : 지도자가 동역자를 탄압하는 일을 볼 때에 마음에 반항심을 가져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존경하던 종을 노회에서 이유도 없이 탄압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노회와 시찰회에 큰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신앙에 타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동역자를 탄압하는 일은 양떼의 신앙을 망치는 일이라고 봅니다.

  셋째 : 지도자가 타협적인 노선으로 지도하는 일을 할 때에 믿음에 큰 지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정 말기에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이라는 조건하에 국민의 의무라는 데서 종교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고 하는 일에 압력을 받아 신앙에 큰 타격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타협하는 일이라는 것은 양떼에게 영적으로 큰 손상을 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넷째 : 지도자들이 복음적이라는 미명하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고 주일 성수나 십일조나 금식기도나 산기도 같은 것은 철저히 해 나갈 필요가 없다는 관념을 양떼에게 주는 일입니다.

  지도자들이 은근히 영적 방면이 그렇게 되도록끔 만들어 놓는 영향을 받을 때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도자는 철저하게 나가야 된다고 지도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섯째 : 지도자들이 양떼들에게 독선주의의 정신을 가지고 자기네가 제일이라는 마음을 넣어 주는 일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받게 될 때에 공연히 남을 비판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앙에 큰 타격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절대로 독선적인 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다음은 신앙이 속히 자라나는 일에 대한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중심 성결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중심 성결을 목적으로 두고 싸우는 일이 있어야만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심에 죄가 있다는 것은 병든 심령이므로 자라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속에 질병이 있으면 자라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중심에 죄가 있는 심령은 병든 아이와 같습니다.

  내가 중심에까지 죄가 없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을 때에는 영적으로 아무런 발전을 보지 못하였고 중심 성결을 목적하고 입산하여 9일간 계속으로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에 중심에 뜨거운 불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중심 성결을 체험한 나로서 신앙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둘째 : 남을 살려 보려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 기도를 하다가 하늘로부터 생수가 내리는 체험을 받고 나날이 소성하는 힘을 받을 적에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 영력을 받게 되어  신앙 장성의 큰 체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무엇보다도 신앙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있어야만 새로운 역사가 온다고 깨달았습니다.

  셋째 : 성경을 짝을 맞추어 그 뜻을 바로 알게 될 때부터 믿음이 빨리 장성하는 것을 체험한 일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신앙 장성에 큰 금물이 된다고 봅니다.

  넷째 :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생각지 않았던 뜻밖에 큰 은혜가 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아무리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 중심에서 성결하게 나가는 자는 믿음이 급속도로 자라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섯째 : 주님의 의로만 내게 새로운 것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자기라는 것을 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자아라는 것을 버리게 될 때에 신앙이 극도로 강하여지고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때에 완전한 진리의 세계가 무엇인 것을 알게 되므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장성에 있어서는 철저한 것이 있어야만 자라나게 되는 것이요, 철저한 것이 없이 나가는데 있어서는 그날이 그날과 같이 항상 평범한 생활에서 아무런 발전도 없이 마른나무같이 되고 만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문】2. 종교라는 것은 인생에게 있어야 되는 것인데 어떠한 종교 생활이 인생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답】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기 위하여 시작된 종교도 있고 신께서 사람을 찾기 위하여 시작된 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신을 찾기 위한 종교는 다신 종교가 되었고 신이 사람을 찾는 종교는 유일신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완전하므로 종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하므로 종교가 필요한데 있어서는 사람이 신을 찾는 종교보다는 신이 사람을 찾는 종교라야 불완전한 인생에게 필요한 종교라고 봅니다. 인생에게 필요한 종교는 어떠한 종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역사적인 법의 종교라야 됩니다.

  종교라는 것은 인생을 위한 종교이니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합리화된 종교가 인생에게 필요한 종교입니다. 이러한 종교가 법의 종교입니다. 종교 신앙의 대상자는 완전한 신이라야 되는 것이니 완전한 신은 오직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신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께서 인생을 창조하시고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는데 있어서는 법에 따라 주신다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세운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법을 지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다른 법을 세워서 지키지 못한 인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대로 실천하시는 신이 즉 여호와의 신이십니다.

  이 종교의 법은 타락한 인생에게 첫째:속죄의 법, 둘째:중생의 법, 셋째:믿음의 법, 넷째:성신의 법, 다섯째:예언의 법 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하여 속죄와 중생과 믿음과 성신의 역사가 있는 종교는 사람의 인격을 완성시킬 적에 도덕을 초월한 생명의 법에서 인생에게 큰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2. 빛의 종교라야 됩니다.

  빛이라는 것은 육안을 밝히는 빛도 있고 마음을 밝히는 빛도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연구한 것이 마음에 빛이 될 수 없고 사람이 연구할 수도 없으며 믿을 수도 없는 범위에서 완전한 신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깨달아 알도록끔 해 주는 역사를 완전한 빛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아의 부족을 깨닫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그 신께서 역사하는 그것을 받아들일 적에 완전한 것을 종교 신앙을 통하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빛의 근본이시니 물체의 빛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영적 생명의 빛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 육간 조물주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빛의 종교라는 것은 사람을 인도할 때에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고 지혜를 초월해서 그 빛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정로를 알게 되는 것이므로 완전히 빛의 종교가 아니고는 사람에게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승리의 종교라야 됩니다.

  인간의 어떤 정권이나 물권이 막을 수 없는 세계에서 움직이는 힘이 있는 종교라야 사람을 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종교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과학적 기계의 힘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너무나 무능한 생활입니다. 종교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정권이나 물권을 이기는 것이 있어야만 인생에게 필요한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종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가 사람을 위하여 있되 완전한 종교가 완전치 못한 인생을 완전케 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완전치 못한 인생은 완전한 종교로만 완전한 인격을 받는 동시에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문】3. 인생에 여러 가지 중대한 일이 있지만 이 시대에 제일 중대한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답】하나님께서 시대를 따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중대한 일을 맡겨서 역사했지만 노아 때나 아브라함 때나 모세 때나 사도 때 보다도 더 중대한 일이 이 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제일 중대한 일은 이 땅에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숨겨 놓았던 말세 비밀을 공개시켜 놓으시고 그 진리에 따라서 인격을 훈련시킬 때이므로 무엇보다도 우리가 변화 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일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하여도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인격이 없다면 모두가 다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이니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어떤 기관보다도 큰 문제는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인격 하나가 이루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심히 적다고 봅니다.

  우리 인격 문제에 있어서 제일 큰 일은

  첫째 : 진리가 완전히 무장되느냐 하는 것이요,

  둘째 : 자아의 인간성이 다 없어지느냐 하는 것이요,

  셋째 : 우리 몸이 죄와 상관이 없는 영체의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요,

  넷째 : 기도의 분량이 차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무장되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을 것이요,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큰 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밤낮으로 해산의 수고를 다 해야 될 일은 자기 인격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인격 문제를 놓고 밤낮 애쓰는 자라면 이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인격 문제를 놓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노력하여야 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시간을 아껴야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할 때에 갑자기 하루 밤  사이에 해결하려는 것보다도 항상 시간을 아껴가면서 정상적인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그날에 닥쳐오는 문제를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해결하며 모든 난제가 온다 하여도 여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바라보고 용기있게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조금도 방심적인 말을 하지 말고 항상 한마디, 한마디 말을 할 적에 마귀 참소에 걸리지 않는 말을 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절대로 말에 주의치 않는 자는 아무리 애써도 완전한 무장을 갖추는 영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3. 날마다 활동하는 일에 대하여 조금도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쓰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목적해야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없이 하나님께만 보이려고 하는 일이 철저해야만 합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활동한다 하여도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높은 건물을 짓고 큰 기계를 사다가 공장을 돌리고 남보다도 새 기계를 구입하여 특별한 수입을 얻어보겠다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큰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가장 작은 일로 보는 것입니다. 고요히 골방 속에 앉아서 소리 없이 하나님과 교통을 받고 하늘의 것을 날마다 받아들여서 하늘의 형체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한 사람은 인간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사람이 가장 큰 일을 하는 자라고 보게 됩니다.

 

 

【문】4.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보아도 점점 의문만 생기니 이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답】성경은 많이 읽었다고 해서 의문이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시대를 따라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사람에게 그 시대의 비밀을 알려 주지 않으면 그 비밀을 알 자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사도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3년간 따라 다녔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마음을 열어주기 전에는 성경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눅24:45).

  사도들이 성경을 많이 읽어서 알았다는 것보다도 주께서 마음을 열어주므로 성경을 깨닫게 되었다면 사도들에게 열어 주지 않은 사도의 사명이 아닌 종말의 변화성도의 선지적으로 사명을 가진 자에게 깨닫도록 열어 주시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 운동은 사도에게 알게 해 주므로 그들이 기록한 편지서로 말미암아 그 복음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이요, 그 밖에 사도들이 증거하지 않은 성경은 전부가 주 재림기에 영, 육이 아울러 보응을 받는 영원한 복음을 사명자들에게 깨닫게 하므로 완전히 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날까지에 혼선이 온 것은 자기 사명이 아닌 성경을 스스로 연구해 보려고 성경을 많이 읽어 본 자들이 억지로 해석하다가 탈선된 과오를 범한 것이라고 봅니다.

  가장 완전한 변론을 기록한 책은 사도의 편지서가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은혜시대의 변론을 말씀하시는 것을 목적하시지 않고 인류 종말에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변론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시대 보다도 환란과 재앙의 날에 영, 육이 구원 받는 진리를 세밀히 변론하신 것은 친히 행하실 일입니다. 아들을 보내서 역사할 일과 성신을 보내서 역사할 일은 은혜시대의 사도들이 신약 전서를 기록할 것을 말씀하신 것 뿐이요(사42:1~8), 하나님께서 은혜시대가 지나서 진노의 날에 행할 일은 그때의 종들이 조금도 미혹을 받지 않고 역사하도록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난제는 인류 종말의 대표적인 종이 나오므로 분명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문】5.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주님 오실 때에 가장 큰 자가 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 주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 많은 사람이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일을 하는 자에게 갚아 주시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기도가 상달된 자라야 주님께서 갚아 줄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남을 많이 구제하고 도와주고 교회 일에 수고를 했다 하더라도 그 기도가 상달되지 못한 자라면 다 무효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상달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상 받을 주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상달되려면 세 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첫째 : 중심 성결을 목적한 회개가 꼭 있어야 하고,

  둘째 :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회개가 있어야 하고,

  셋째 : 항상 자기가 사명에 충성하지 못하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만 기도는 날마다 상달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상달된 자에게는 무엇이나 다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2. 말씀 증거가 조금도 혼선이 없어야 됩니다.

  만일 강단에 선 종이 말씀이 혼선이 될 때에는 수많은 청중을 망치는 것이니 이러한 죄를 짓는 자에게 상급이 있을 수 없고 말씀이 혼선된 증거를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사람도 모든 일이 다 무효가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 진리와 동참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선 종은 하늘에서 주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증거하는 자라야 그 종의 하는 일이 모두 다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증거가 잘못된 종이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열심은 상급과는 하등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준 자가 복 있다고 마24:45~47에 가르쳤습니다. 가장 큰 일은 무슨 일 보다도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이적을 행했다 하더라도 불법의 사람이 되면 아무 것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3. 참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에게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되게 하는 것은 그 종에게 가장 큰 상급을 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큰 상이라는 것은 참았다는 조건에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에게는 남보다도 억울함을 많이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해야 됩니다.

  주님 오실 때에 가장 큰 자가 되려면 영웅심을 가지지 말고 항상 시간을 아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에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더 나리는 동시에 큰 일을 하도록끔 길러서 쓰시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큰 일을 할 욕망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영계에 들어간 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5. 항상 부지런하여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심는 생활이니 항상 중심 속에서 태만이 없이 각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모든 전체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움직일 때에 주님께서는 그 종에게 모든 일이 다 열매가 맺어지도록 해 주시므로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문】6. 오늘날 청년들이 어느 나라나 방탕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슨 일이며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답】사람이라는 것은 그 시대를 따라 그때 그때에 부딪치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날마다 사치해 가는 것을 볼 때에 자연적 사치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에 치우쳐서 그것만이 다인 줄 알 때에 과학을 초월한 종교심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유물적 사상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므로 자동적으로 육적으로만 흐르는 사람이 되어 육의 정욕을 따라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대부분이 과학적인 정신 작용에만 발달되고 영적으로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어졌으므로 종교의 진리가 이 시대의 사람에게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까지 생각하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방탕적인 자유를 자기에게 만족한 일로 생각하고 양심에 거리끼게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주어야 할 교훈은 이 시대에 대한 비밀을 그들의 마음속 깊이 시원히 가르쳐 줄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는 것과 현 시국에 되어지는 일을 성서로써 가르쳐 주는 동시에 다음에는 무엇이 온다는 것을 소망으로 가지게 하여 주며 이 시대는 분명히 심판기라는 것과 반드시 새로운 시대가 청년들에게 온다는 확신이 생기도록 가르쳐 주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공산 세계에서는 반드시 공산주의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합법화 시켜서 말하므로 그 청년들이 강하게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막연하게 죽어 천당이라는 것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청년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줄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과학 발전의 시대가 온 이유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청년들이 알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협상주의라는 것은 청년을 공산당으로 돌이켜 놓는 일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에 분명히 공산당은 심판의 대상자이며 이것이 망하게 되므로 새 시대가 오는데 있어서는 조물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무신론 공산당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청년들이 알도록 가르쳐 주는 일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특  집  

 

1. 11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말

  쓸쓸한 목수의 가정 슬프기 짝이 없다. 타향, 객지 그날 그날 일을 해 살던 젊은 목수 세 살 난 아들을 앞에 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눈물의 가정, 빚을 지고 갚을 길 없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빈민의 가정, 앞길이 막막한 눈물의 가정이 되었도다.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들 11월 4일에 뱃속에서 쓸쓸하게 세상에 나고 보니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날 집 없이 한데 나가 앉은 고아의 사람, 쓸쓸한 냉방 찬 자리에 누워있는 유복자, 어머니도 박대하며 혼자 내버려두고 날이 맞도록 먹을 것 구하러 다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를 뱃속에서 잃어버린 유복자, 울다 못해 기절하고 죽은 모양 가련하다. 어머니가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울고 있을 때에 다시 울고 있는 어린 생명 누가 도와줄소냐?

  눈물 없이 살 수 없는 생활 속에서 말세의 사명자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다. 날 때부터 눈물의 가정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일생 동안 괴로운 일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던들 나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찌하여 일평생을 압박 속에서 원통한 마음 금할 수 없는 생활을 걸어 왔을까 하는 것을 회상할 때에 이것이 나로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성경을 다시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함을 드리게 된다.

  아무런 일전의 학비를 들여본 일이 없이 무가치하게 자라난 이 사람, 우리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는 것 같다. 이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든지 변론할 수 있는 역사를 주시어 이날까지 숨겨 놓았던 인간 종말의 비밀을 만민 앞에 분명히 알도록끔 서책을 내게 된 것은 전부가 하나님의 강권 역사의 하나라고 본다.

  11월을 당할 때마다 내가 세상에 날 때에 그 슬픔의 가정을 회상하는 바는 우리 어머니의 눈물 흘려 말씀하던 일이므로 나로서는 오늘도 여러 사명 동지들 앞에 수치스러운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같이 무가치한 인간도 들어 쓰시는 것은 여러 사명 동지들에게 큰 힘을 주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모든 것이 다 훌륭한 사람 같으면 여러 사명 동지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로되 나는 날 때부터 눈물의 가정에서 출생하여 비천한 사람으로 자라났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들어 쓰시는 것은 사명 동지 여러분들이 나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라고 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가 새 타작기가 된다는 성경 말씀은 오늘 이 사람에게도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달은 모든 곡식이 완전한 열매를 맺어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달입니다. 알곡은 모아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사름을 당하는 일이 11월에 있을 일이 아닙니까. 이러한 달에 알곡을 모아들이는 사명을 가진 종들이 좀더 한데 모여서 강하게 타작기를 두르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하겠습니다. 이 달은 타작기를 두르는 달입니다. 알곡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달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금년 11월에 서울에서부터 사명자가 집결하여 부르짖는 부흥단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만일 알곡을 모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다면 기독교는 큰 위기를 만났다고 봅니다. 알곡을 모으지 않고 서리 찬 얼음산이 된다면 알곡을 다 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파를 막론하고 알곡이 되는 성도들은 한데로 모여야 될 것입니다. 알곡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가감 없이 지키는 자입니다.

  전 세계의 인류가 한 시간에 불탈 때에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다림줄의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불탈 것이고 말씀을 순종하면 불 가운데서 영,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 인류 종말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이 달부터 알곡을 모아들이는 추수꾼들이 강하게 일어나야만 하겠습니다.

 

 

2. 말씀 운동에 관하여 부탁하는 말씀

  기독교는 이날까지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중생을 받아 천국을 목적한 영적 운동을 하여 왔지만 지금은 심령 부흥 운동보다도 말씀 운동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붉은 용의 권세를 내보낸 것은 말씀으로 승리한 자에게 지상 왕국의 축복을 주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중생과 천국이 이날까지의 역사였지만 지금은 승리와 안식이 목적입니다. 승리라는 것은 중생 받은 사람이 허락 받고 나오는 붉은 마귀를 말씀으로 이기는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영혼 구원이 중생이라면 몸의 구속은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운동에 관하여 다섯 가지 요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 둔 변론을 그대로 나가서 증거하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변론이라는 것은 구약 말기에 선지들에게 임한 말씀이니 그때 부패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경고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그때에 끝을 맺는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온 세계 인류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 끝이 올 때에 가서 그 변론의 말씀대로 완전한 심판이 나리고 그 말씀에 의하여 주의 백성에게 영?육의 구원이 있는 동시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변론의 말씀을 떠는 심령에서 그대로 읽어 증거하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2. 완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중생 하는 즉시에 받지만 우리 몸이 살아서 새 시대를 이루는 남은 자가 되려면 영만이 아니라 그 몸까지도 완전 개조를 받아 죄의 질인 더러운 피까지도 다 없어지고 피곤이 없는 몸, 죄와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데 있어서는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호소가 있어야 합니다.

 

  3. 거룩한 단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환란 가운데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 구원이 아니고 단체적 구원이니 만큼 조금도 진리가 혼선이 없는 단체를 이루는 동시에 인간의 방법을 쓰지 않는 단체를 이루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단체가 되는데 있어서는 하나같이 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성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철저한 실천의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성도가 되는 것은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실천이라는 것은 도덕에 국한된 것보다도 도덕을 초월한 중심 성결, 완전 변화의 생활에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실천이 있어야 됩니다.

 

  5. 부르짖는 호소가 있어야 합니다.

  마귀의 흑암이 물러가는 것은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호소가 있어야만 됩니다. 이 호소라는 것은 단체적으로 부르짖는 호소입니다. 꼭 같이 호소 성가를 부르면서 사상과 정신을 집중시키고 각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결사적인 호소가 있어야만 마귀의 세력이 무너지고 권세 새 힘의 역사가 강하게 나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없이는 말씀 운동을 할 인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중생 받는 즉시에 증거할 수 있지만 종말에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은 변론으로서 미혹의 영을 물리칠 수 있는 말씀 무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난관이 부딪친다 하더라도 말씀의 권세를 받은 자라면 그 난관을 극복하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역사가 아니고는 그 난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운동이라는 것은 각자가 자기 주관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요, 말씀의 대표자인 하나님의 사람에게 완전 변론의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변론이 조금도 가감 없이 증거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지식이라는 것은 여호와의 변론을 그대로 가감 없이 읽어서 대중을 살리는 변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증인의 변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변호사가 그 나라 헌법에 의하여 조금도 가감이 없는 범위 하에서 변론을 해야만 그 국민을 살리는 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인 선지서와 계시록을 변론할 때에 조금도 가감이 없이 변론을 하는 자라야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므로 그 사람에게는 새 시대를 이루는 왕권의 역사가 권세로 오게 됩니다.

 

 

3. 권   고

  이 달은 감사의 달입니다. 모든 식물은 소리 없이 대자연의 힘을 비롯하여 쉬지 않고 땅 속에 있는 질소, 인산, 카리를 흡수하여 우리가 일년간 먹고 활동할 기름진 열매를 주었습니다. 대자연을 지배하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1년간 농사를 하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하여도 그 노력이 열매의 값을 다 이룬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식료 값이라는 것은 사람이 수고한 비용을 주는 것이지 실지에 그 식료품의 값은 아닙니다. 사람은 대자연의 힘이 없이는 한 알의 곡식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농사를 짓는 분이나 상업을 하시는 분이나 공장이나 관공서에 취직을 한 사무원들까지도 다 하나같이 1년간 우리가 먹을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11월 23일이 감사절인데 21일부터 1주간을 감사 주간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이 될 것이니 언제나 감사하는 생활에서 금번 추수 감사제를 드리므로 새해를 맞이하여 특별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11월은 대 부흥을 목적하고 활동하는 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영적으로 완전한 열매를 맺는 활동이 있는 동시에 뜻 깊은 감사제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4. 목사 안수 시취 문제와 답

【문】1. 하나님의 예정과 인생 자유에 대한 한계의 획선을 정확히 설명하라

【답】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만 알게 되어 있는 것이요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의 정신 작용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니 사람은 어디까지나 정신 작용으로 활동을 해서 물체를 바로 움직이는 동시에 최후의 노력을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당신의 예정한 섭리를 따라서 영적으로 움직일 적에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게도 해주시고 할 수 없는 일을 하게도 해주시고 이길 수 없는 일을 이기게 해 주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데 있어서는 택한 자에게 의심 없는 믿음을 주어서 모든 일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문】2. 시대적인 하나님의 법에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답】하나님은 법의 하나님이니 법에 따라 역사하는데 있어서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법을 주고 법을 따라 역사하는 것이다. 아담은 죄가 없는 사람이므로 마귀를 들어 꾀어 본 것은 그 법을 지키면 몸이 영원한 왕권의 인격을 이룰 수 있는 조건에서 준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그 영을 버리지 않고 제사의 법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되 영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쁘게 순종하면서 제사할 때에 그 제사를 받고 그 영을 구원해 주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하나님과 의합이 되지 않고 떠나는 자에게는 영까지 버리는 일이 있을 때에 영적으로 버림을 당한 사람과 버림을 당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과 합할 수가 없다는 것이요 영적으로 버림을 당한 사람이 생령인 사람을 피해를 주어서 어찌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물로 심판을 했던 것이다. 물 심판이 있으므로 생령의 사람만이 남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타락이 또 있게 되므로 할례의 법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의합한 사람으로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고 할례 받은 사람으로 나라를 세울 때에 하나님께서 국법, 성전법, 제사법을 세운 것이 율법 시대였다. 그러나 이 법으로써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이 법을 생명의 법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 십자가의 속죄와 성신의 법이라는 것이다. 성신의 법을 따라서 세계를 구원하는데 있어서는 그 몸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예언의 법을 세워서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강해도 성신의 법을 순종한 사람으로 완전 승리를 이루어 지상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문】3. 기독교의 알파적인 역사와 오메가의 역사에 떠날 수 없는 관계에 대하여 정확히 말하라

【답】 하나님께서 잃었던 백성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알파적이 되는 동시에 오메가의 역사는 피로 산 백성을 마귀의 자식과 같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고 그 밖의 사람은 다 심판하는 것이 오메가의 역사다.

 

【문】4. 촛대교회의 목회자로서 여러 가지 난국을 돌파하려면 어떠한 방법을 가져야 된다는 의견을 말하라

【답】모든 난국은 촛대교회를 피해를 주는 문제가 아니고 촛대교회만으로 남은 종, 남은 백성이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촛대교회의 목회자로서는 말씀을 정확히 가르쳐서 교회 전체가 조금도 말씀이 혼선되지 않게 무장을 시킬 때에 난국을 돌파하는 것은 사람의 힘에 있지 않고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문】5. 적 그리스도의 나라와 싸우는 종이 되려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어떠한 인격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라

【답】적 그리스도는 마귀의 권세를 받았으니 말세의 종은 하늘의 권세를 받아야 하며 적 그리스도는 심판의 대상자이니 말세의 종은 그 몸이 죽지 않고 변화해서 심판권을 행할 수 있는 몸이 되는데 있어서는 심령 성결과 몸의 완전 개조가 있어서 주의 천사와 동행하는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한다.

 

【문】6. 현 교계에 눌려 있는 성도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야 그들을 한 단체를 이루어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라

【답】촛대교회의 종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이 될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이끌어서 한데로 모으는 역사가 있을 적에 환경과 모든 문제가 완전 무장을 갖춘 종을 따라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이 올 때에 홀연히 역사가 나타날 것이니 언제나 하나님께서 복된 사람을 이끌어 인도해 들이는 교회가 되도록 모든 준비를 완전히 갖추어야만 될 것이다.

 

 

5. 알리는 말씀

  1. 본 교단에서는 지난 9월 24일 본 수도원에서 이진기 권진흥 배응모 세 분 전도사님의 목사 시취와 안수식이 있었으며, 배응모 목사님의 취임식이 목사님 시무하시는 대구시 동구 두산동 소재 두산새일교회에서 10월 2일 이뢰자 목사님의 주관으로 성대히 거행 하였습니다

  2. 본 교단에서는 내년 1월 1일을 기해서 윤능도 최흥국 최대광 세 분 전도사님의 목사 안수식이 있을 예정이오니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본 교단 소속 중동 교회에서는 1971년 10월 30일 대구시 중동 453번지 중동 교회에서 이근실 구완호 두 분 집사님의 장로 장립식을 구완대 목사님의 주관으로 성대히 거행하였습니다

  4. 금번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새일중앙교회에서 이뢰자 목사님을 모시고 월말 특별 사명자 집회를 성대히 거행하였사오며 11월에도 계속하여 본 교단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열겠사오니 남녀 종님들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고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금번 집회가 끝나면 본 교단 부흥단을 조직하여 적극 활동할 예정이오니 본 부흥단 조직을 위하여 남녀 종님들의 기도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6. 앞으로 각 교회의 특별한 사정이나 본 교단에 속해있는 개 교회에 알릴 말씀이 있으시면 본 아름다운 소식 광고란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하실 분은 새일중앙교회나 새일수도원으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