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1월호)

설  교  편

 1. 예정과 그리스도 안의 통일 (엡1:3~14)

 2. 인간 종말의 난제와 심판 (계13:1~10, 14:8~12)

 3.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 (창3:13~15,사65:21~25)

 4. 홀로 된 노아의 가정 (창6:9~22, 7:17~24)

 5. 택한 자의 형통 (출2:1~25) 

 6. 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자 (롬12:1~2)

 7.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를 자격 (시40:1~10)

 8.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사6:1~13) 

 9.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사람이 되자 (합3:1~3) 

10.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생활 (빌3:9~16) 

11. 시험으로 오는 온전 (약1:2~4) 

12.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일 (히12:1~14)

13. 붉은 용의 꾀임과 그리스도의 왕국 (계12:7~12)

14. 충성된 증인과 왕권 (계1:4~7)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의 징조와 성도의 각성

제1과 붉은 용의 꾀임과 교회의 호소 (계12:7~12)

제2과 땅이 불탈 징조와 크게 외칠 일 (사24:4~15) 

제3과 북방이 망할 징조와 내리는 역사 (미5:5~9)

제4과 혼란과 곤고가 올 때에 일어날 일 (눅21:25~36)

제5과 중동 문제와 지혜로운 일 (단11:40~12:3)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8과 빌립보에서 전도한 사도들 (행16:11~34)

제19과 고린도에서 전도한 사도들 (행18:1~11)

제20과 에베소에서 전도한 사도들 (행19:8~20)

제21과 무서워하지 않고 나간 사도들 (행20:23~35)

제22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한 사도들 (행22:1~21) 

 

논 설 편

1.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한다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2. 평화 같으나 죽을 일

3. 시국을 몰라 헛수고하는 일  

4. 숨어 있던 사람이 나타나 일할 때 

 

신 앙 문 답

1. 앞으로 이 세상은 공산주의와 협상하게 될 염려가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는 어떠한 방향을 취하여야 되겠습니까?

2. 우리 백의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살 길이 있게 된다는 것을 신앙 양심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가 있습니까? 

4. 지금 북방 세력이 재침한다고 정부에서까지 비상 사태 선포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    집

1. 새해에 새로운 소망을 말한다 

2. 새해에 새로운 감상속에 새로운 영감으로 나오는 사명자의 말

3. 새해를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4.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종의 부탁

 

 

 

 

 

 

 

 설 교 편

 

예정과 그리스도 안의 통일

- 엡 1:3~14 -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을 목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주 세계를 물 가운데 둔 것은 통일된 완전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인데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셔서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그리스도 안의 통일에 대한 오묘한 진리는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흠이 없는 인격을 이루게 하므로 (3~5)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한 통일을 가져올 수 있는 인격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사람의 인격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전케 하기 위한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늘에 속한 것을 받게 하신 것이요,

  둘째는 흠이 없게 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받아야만 될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하와가 아무런 역사도 해보지 못하고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은 것을 보면 창조를 받을 때에 완전한 인격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지금 기독 신자들이 다 아담 하와같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가장 간교한 마귀에게 속고 만다면 어찌 그리스도의 통일된 왕국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것을 받고 흠이 없게 해 주는 인격을 받으므로만 완전 통일된 이상적 국가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사람이 가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동물과 같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주실 수가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신령하고 흠이 없는 인격을 이루어서 그들로 말미암아 통일된 왕국을 이루므로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다.

 

  2.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므로 (6~9)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을 통하여 영원히 찬송을 받고자 하시므로 그 인격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거저 주는 은혜로 완전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는 일이요,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총명을 받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죄를 자기 스스로 이길 수 없는 것이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만일 은혜로 완전하게 되지 않고 행함으로 완전하게 된다면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보다도 자기가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게 해 줌으로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사람이 무엇이나 다 알게 된다면 서로 자기가 안다고 교만해지기 때문에 거저 주는 지혜 총명을 받아 알게 하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다. 거저 주는 은혜를 받는 것도 사람마다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라야 거저 주는 은혜가 믿어지고 거저 주는 지혜 총명의 역사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3. 기업이 되게 하므로 (10~12)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이루는 것을 원하신다. 이 기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고 싶은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어떤 부모가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 하여도 그것을 줄 수 있는 아들이 없다면 그것은 슬픔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풍성하시지만 이것을 아무런 사람에게나 다 줄 수가 없고 합당한 사람에게만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합당한 사람에게 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기업이 될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기업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있는 것을 받되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받게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기업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인치심을 받게 하므로 (13~14)

  사람이라는 것은 성신의 인치심을 받으므로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른다 하여도 하나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선생이 제자를 가르친다하여도 하나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정치가가 정치를 한다하여도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의 인치심을 받게 될 때에 민족적 차별이 없이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영웅이 되었다 하여도 자기 혼자 영웅이지 사람들을 자기와 같이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성신의 인을 받으므로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도록 예정하시고 성부, 성자, 성신이 역사하실 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죄 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고 완전한 기업을 누리도록 하시므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통일된 가정, 통일된 교회, 통일된 나라, 통일된 세계가 이루어지므로만 인생의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공산당이 공산 정치로써 세계를 통일할 꿈을 꾸고 있지만 이것은 말세에 사람을 까불어 보는 한 키는 될지언정 통일을 이룰 수는 없다.

 

 

인간 종말의 난제와 심판

- 계 13:1~10, 14:8~12 -

 

  하나님께서 시대가 변천될 때에는 언제나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일으켜 놓고 거기에 의해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 누구인 것을 검열해 보고 그 사람에게 모든 주권을 맡기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이루셨다. 이것은 인간 종말의 난제와 심판에 대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홍수 심판 때에도 의로운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데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시어 심판을 면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가서 의로운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난제가 올 때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의로운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극도로 부패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때에 3년 6개월 한재를 내려 의로운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셨고,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 된 생활에서 어찌할 수 없을 때에 고레스에게 나타나 명령하므로 의로운 사람이 승리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구약 때 있었던 성민의 난제와 해결은 인간 종말에 난제와 해결에 대한 예언적인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의 신이라 육적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은 종말에 신령한 이스라엘이 되는 종들에게 미리 주신 교훈이라고 본다. 그러면 인간 종말의 난제와 심판에 대해서 본문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싸움의 난제 (13:1~4)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용에게 큰 권세를 주고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서 사람으로써는 그 권세와 싸울 수 없게 하신 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다 그 권세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그를 따르게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누가 하나님의 완전성을 믿나 믿지 않나 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세계 인류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일이 있은 후에 이러한 난제가 오게 하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방법이 아니고는 쭉정과 알곡을 가르는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용과 짐승에게 큰 권세를 주어서 그를 섬기도록끔 할 때에 끝까지 그 앞에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자만을 남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한 모략적인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자기 생명을 보존해 보려고 할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짐승들이 큰 짐승이 나오면 작은 짐승은 그 앞에 대항을 못하고 떨듯이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어느 때나 강한 세력이 나타나면 그 세력을 따라갔다는 것이 타락한 인생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인간들이 범죄 하여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사망에서 올라온다는 법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법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의 권세를 무서워하고 오히려 예수를 반대하다가 망하는 것이 인간들의 생활이었다.

  둘째는 인간 종말에 붉은 용과 짐승에게 큰 권세를 주어서 인간으로는 그 환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보호하고 용과 짐승의 세력을 없이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고 용과 짐승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섬기다가 용과 짐승이 심판을 받을 때에 같이 받게 된다는 것이 인류 종말이라고 하였다.

 

  2.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난제 (5~10)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대로 두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이 황폐되듯이 인간 종말에도 특별 보호를 받지 않고는 믿음을 지킬 수가 없는 난제가 오게 한 후에 끝까지 참고 나가는 교회는 보호하시고 참지 못하고 짐승 앞에 머리를 숙이며 절하는 교회는 없이 하겠다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신앙을 가진 자라면 아무런 난제가 온다하여도 조금도 피해 없는 보호를 받게 된다.

  계시록 12장은 택한 교회를 보호하는 것을 예비처에 양육을 한다고 가르쳤고 계시록 13장에는 용과 짐승의 세력이 성도를 이긴다고 한 것은 환란 가운데는 성도들이 이 땅에 있지 않고 말씀을 증거하던 종들은 들림을 받고 그 증거를 받고 따라 가던 교회는 보호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짐승이 이기는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이 심판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종은 11장과 같이 역사하다가 들림을 받고 택한 교회는 12장과 같이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신자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자는 다 미혹을 받아 심판을 받게되는 것은 거짓 선지가 짐승의 세력 앞에 경배하도록 미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난제는 거짓 선지가 짐승과 같이 권세를 쥐고 나오는 일이다.

 

  3. 난제를 해결하는 심판 (14:8~12)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악의 세력을 인간의 어떤 정권이 대항해 싸울 수 없게 하시는 것은 심판으로써 세계 통치 시온 정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사람의 결심으로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한 어려운 난제를 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끝까지 신앙 절개를 지키는 자로써 남은 자가 되게 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 앞에 절하는 자를 없애는 심판을 하시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인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우리 앞에 닥쳐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서 심판하시고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데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이 악해진다고 해서 나도 악해지고 남이 방탕해진다고 해서 나도 방탕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이냐, 사람을 중심한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의로운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해 주고 새 시대를 이루는 일이다. 오늘날 모든 난제가 닥쳐 온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일이라고 본다. 심판이라는 것은 행위 심판도 있고 복음 심판도 있는 것이니 인간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은 인종 전멸의 복음 심판이다. 다시 말하면 예언을 지키면 구원해주고 예언을 지키지 않으면 완전히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

- 창 3:13~15, 사 65:21~25 -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기뻐하기도 하시고 가정을 슬퍼하기도 하신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노엽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가정을 이루어 주시고 그 가정을 통하여 의의 씨를 충만케 하라는 것과 의의 권세로 땅을 정복하라는 것과 의로운 인격으로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지만 가정을 바로 다스리지 못하므로 원수가 생기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이기는 가정으로 평화로운 왕국을 이루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의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원수가 생긴 가정 (창3:13~15)

  하나님께서 원수를 내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써 원수가 생긴 것이다. 에덴 동산의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하여도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 나갔다면 뱀은 사람에게 원수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뱀의 가장 간교한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도 더 믿었으므로 가장 간교한 뱀이 원수인 마귀가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뱀은 사람을 속이는 죄를 졌으므로 저주를 받게 되었고 사람은 속았으므로 축복을 잃게 되었는데 사람을 속인 뱀은 그때부터 사람을 계속으로 속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끝까지 속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뱀에게 한번 속아 타락한 인생은 끝까지 속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뱀의 말을 듣지 않고 이겼다면 뱀은 사람에게 감히 피해를 줄 수가 없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귀라는 것은 가장 간교한 뱀이 사람을 속여서 타락시킬 때부터 저주를 받은 동물로써 더 악해지고 최후에는 독한 독사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뱀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간교하게 내신 것은 이기면 얼마든지 승(勝)할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해서 다른 동물과는 상대가 되지 않아도 가장 간교한 뱀과는 상대가 되게 하셨다. 이 상대라는 것은 의의 상대가 아니라 가장 간교해서 속일 수 있는 동물과 가장 정직하여서 속을 수 있는 사람과의 상대이다.

  그런데 정직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거짓이라는 것이 자기에게 있지 않으므로 거짓이라는 자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뱀이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할 때에 하나님을 의심한 것보다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신이신데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나게 되었다.

  언제나 원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달리 생각이 나도록 하는 일과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생각이 나도록 하는 것을 감화로 넣어 주어서 말씀과 사랑과 역사를 탈선된 데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다시 성도의 가정에 들어와서 원수가 되는 일이 있게 된다. 지금도 아무리 마귀가 간교하다 하여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생각하고 사랑을 바로 생각하고 역사를 바로 생각하는 가정에는 원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원수가 없는 가정 (사65:21~25)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에게 억울하게 미혹을 받고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데 있어서는 다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 가정을 이루어 놓는 것이 언약의 말씀의 목표가 된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라 원수가 없는 가정으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가 될 때까지 부분적인 구원으로 그 영을 낙원이라는 영계에 머무르게 하시는 것뿐이다.

  땅위에 원수가 없는 가정 생활을 완전히 이루어 놓으므로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완전히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중생 받은 사람으로 심령의 가난과 통회를 가지고 말씀에 떤다면 권고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고 그 밖에 불의한 자들을 다 없애는 동시에 마귀의 원수 피해가 다시없는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사66:1~2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원수가 없는 가정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은 미혹의 신이요, 그 사랑을 바로 깨닫도록 하는 것은 진리의 신이다. 복된 가정에 원수가 생긴 것은 하나님 사랑을 잘못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가장 간교한 뱀이 인생에게 원수가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킨 일.

  둘째 :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생각하게 한 일.

  셋째 :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일이다.

  가정이 말씀에 순종치 않고 단합되지 못하므로 잃어 버렸던 지상 축복을 말씀에 순종하고 단합된 가정으로 다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합심이 되고 안 되는 것을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되려면,

  첫째는 말씀을 순종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며,

  둘째는 단합된 가정이 되어야 하며,

  셋째는 성별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장 복된 일은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되어 새 땅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원수인 마귀를 없이하는 것은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여 완전한 평화의 가정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원수가 나에게 피해를 주느냐 못 주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모든 일이 다 잘된 것 같으나 원수의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수고는 다 헛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 아무리 좋은 가정이라도 원수가 있게 될 때에 불행을 가져왔고 현재 아무리 고난이 있는 가정이라도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될 때에 영원한 축복이 있게 될 것이다.

 

 

홀로 된 노아의 가정

- 창 6:9~22, 7:17~24 -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에 나타나 역사하실 때에 대중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홀로 된 사람에게 나타나서 비밀을 알리기도 하시고 역사하기도 하시고 구원하기도 하셨다. 언제나 참된 신앙의 사람이라는 것은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홀로 된 노아의 가정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 (9~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홀로 된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동행하기도 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이 고독감을 느낄 때에 그 사람에게 더욱 가까이 하시어 함께 하시고 그 사람을 통하여 당신이 할 일을 하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은 대중 심리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이요, 홀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것을 목적하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만 시대적인 비밀을 알 수도 있고 축복을 받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하고 어리석고 가장 불완전한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리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노아 당시에 누구나 다 노아의 고독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의 사람들이 노아는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했을 것은 사실이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는 노아 때와 같으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2. 홀로 끝 날을 알게 된 노아 (13)

  노아는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에서 홀로 끝 날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끝 날이 왔다는 것을 안 노아가 만나는 사람마다 세상은 끝이라고 할 때에 미친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는 홀로 알고 홀로 정신을 차려 담대히 나섰던 것이다. 지금도 끝 날이 왔다는 것을 말하면 미친 사람으로 알 것이고 끝 날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안 사람이면 사람의 어떤 탄압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하게 된다.

  끝 날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입을 열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도 노아가 아무리 말을 해도 한 사람도 그 말을 알아주는 자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담대히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나갔던 것이다.

 

  3. 홀로 방주를 준비한 노아 (14~22)

  아무리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돕는 자가 없이 홀로 일을 한다는 것은 힘이 빠질 일이요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쓸쓸한 자리에 있게 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종이 홀로 일한다고 해서 힘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할 때에 남이 하면 같이 열심을 내고 남이 하지 않으면 힘을 잃고 만다면 이것은 산 믿음이 있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앞으로 큰 축복을 받으려면 언제나 홀로 일하게 되는데서 더 큰 힘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심 중에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열심도 있고 남에게 끌려서 흥분으로 사는 열심도 있고 자기 홀로 끝까지 모든 일을 진행하는 열심도 있으니 노아와 같은 열심이 있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것이다.

 

  4. 홀로 구원받은 노아의 가정 (7:17~24)

  가장 놀라운 일은 홀로 구원받은 노아 가정의 일이다. 개인적인 구원은 새 시대를 이룰 수 없고 가정적인 구원이라야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되는 일은 노아 때에 된 것과 같다고 한 것은 구원을 받을 자가 심히 적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영혼 구원을 받는 사람은 보통 신앙이 있어도 되지만 영과 육이 아울러서 구원받는 자가 되려면 특별한 신앙에 특별한 일을 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이 죽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결한 마음이 있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 가정이 심판 날에 구원을 받는 것은 특별한 신앙에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가정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며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반드시 홀로 고독감을 느끼는 일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한 일은 대중적으로 있게 되는 일이 아니고 홀로 비밀을 알게되고 홀로 준비를 하게되고 홀로 구원을 받게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시대를 만난 이때에 홀로 된 노아의 가정을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힘을 날마다 얻어야 할 것이다.

 

 

택한 자의 형통

- 출 2:1~25 -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향하여 형통하도록 역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있되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더 형통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는 두려운 일이요, 원망할 일이요,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택한 자를 향하여 더 유익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일이다.

  이제 택한 자의 형통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정한 때에 출생케 하심 (1~3)

  인간이 볼 때에 모세가 출생한 때는 불행한 때였다. 왜냐 하면 바로가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버리는 정치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모세같이 위대한 인물이 날 때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났다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옥동자를 낳은 모세의 부모가 3개월을 숨겨서 기르다 더 기를 수가 없으므로 죽으라고 원수 앞에 내 놓는다는 것은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같이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된다는 것도 불행스러운 일이요 악한 민족에게 이유 없이 아들을 빼앗긴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일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없다면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그 민족에게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씀이 응하지를 않으므로 괴롭게 한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되 하나님의 징벌이 애굽에 올 때가 온 징조이다. 모세의 부모가 장차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시킬 영도자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다.

  극동 난제가 닥쳐 온 오늘 우리가 이 때에 났다는 것이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정한 때에 가장 복된 민족 중에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금 동방 땅 끝에 출생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모세가 애굽의 악정 아래에서 출생한 일과 같이 된 것이며 모세에게 형통한 일이 있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복된 길로 인도하심 (4~10)

  옥동자를 나일강변에 버리는 그 슬픔 인간으로써는 극도로 낙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볼 때는 모세가 버림당한 것 같았으나 실지는 복된 길을 가게 되었다. 쓸쓸한 가정에 태어난 모세가 화려한 바로의 궁궐에 들어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화려하게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품에 안고도 어머니가 아닌 것처럼 하여 아들을 기를 때에 무엇보다도 숨은 기도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숨은 교훈이 많았을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세상 학문을 배우는 것도 특별한 교훈을 받게 되었고 사상적, 종교적인 교훈도 어머니에게 특별히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도탄 중에서 모세를 기르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서 길렀다면 그렇게 안타까운 기도가 어머니에게 없었을 것이고 안타까운 눈물의 교훈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어린 소년의 축복은 어머니의 품에서 기도로 길러주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사람보다도 왜정 시대와 공산 정권 아래에서 눈물겨운 기도를 하며 자라난 일은 큰 축복이 될 일이라고 본다. 인간의 복된 길이라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숨은 비밀에서 있는 것이다. 숨어서 기도하고 숨어서 성경을 보고 숨어서 주의 일을 받드는 그 심정! 이것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이라는 것을 나도 체험한 바이다.

  우리는 복된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기도 생활 40년 동안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어 온 것은 날 택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복된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다.

 

  3. 실패의 길 같으나 성공의 길로 인도하심 (11~22)

  만일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일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일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힘을 믿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인간 감정으로 민족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있으므로 민족을 살리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할 것인데 혈기에 속한 육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하는 일은 실패를 당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모르는 모세에게 쓸쓸한 미디안 목자의 생활 40년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거룩한 장막이 되었다.

  우리도 신과 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 도저히 나가 일할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택한 사람에게는 성공을 가져오는 길로 옮겨지는 형통의 길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실패를 당하여 도망하던 길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당한 모세의 40년 생활은 세 가지로 형통했던 것이다.

  첫째 : 영의 사람이 된 것이요,

  둘째 : 복된 가정을 이룬 것이요,

  셋째 : 원수의 손을 벗어나는 피난처가 된 축복이었다.

  우리도 앞으로 가는 길이 이와 같이 형통이 있게 될 것을 확신하고 세 가지 축복을 받아야 한다. 형통이라는 것은 자기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결    론

  모세가 거친 바로 궁궐의 40년, 미디안 40년이라는 기간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지루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400년이라는 기간을 정해준 때가 차기까지 모세를 길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때에 써야 할 택한 사람은 인간이 볼 때 지루한 것 같으나 쓸 만한 사람이 되도록 기르는 기간을 두고 모든 일이 형통케 하시는 것이다. 조급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고 원망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택한 백성이 부르짖는 호소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자

- 롬 12:1~2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생령이 되게 한 것은 생령 된 사람에게 예배를 받고 예배에 따라 당신에게 있는 것을 풍성히 내려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격에 들어가도록 하시며 예배를 통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도 하시고 완전한 단체를 이루게도 하시고 완전한 나라를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

  성부, 성자, 성신이 홀로 있다는 것은 영광이 될 수 없으므로 생령된 사람을 통하여 예배를 받기도 하시고 생령된 사람에게 당신의 것을 주기도 하시는 것을 영광으로 삼으신다. 그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하기로 한다.

 

  1.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1)

  사람이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적에 육의 사람이 아니요 영의 사람이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몸을 하나님이 주관하면 영의 사람이 되고 마귀가 주관하면 육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내실 때에 당신의 하실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쓰기 위한 질그릇으로 내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신은 몸이 없지만 사람에게 몸을 준 것은 영의 하나님이 그 몸을 통하여 당신의 원하는 뜻을 이루어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을 바친 자에게만 하나님께 있는 감춘 보화를 간직할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예를 든다면 바람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물체가 있으므로 그 강한 바람은 힘을 나타내게 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물과 불이 합해서 강한 바람을 발휘한다 하여도 물체의 비행기나 자동차가 없다면 효과를 조금도 나타낼 수 없음같이 하나님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사람의 몸이 없다면 그 강한 힘은 큰 능력의 역사를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몸을 무소불능의 하나님께 바칠 적에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자동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있게 되는 예배를 가지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그 몸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 없다면 영적 예배가 될 수 없고 한 우상적인 예배의 의식이 되고 말 것이다.

 

  2.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2상반절)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세상으로 치우치게 되면 더러워지고 어두워지고 강퍅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이다(요一5:19).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그 마음이 세상에 기울어진 사람은 마음이 새로워지는 체험을 받지 못한다. 누구든지 날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사람이 되면 조금도 외식이 있을 수 없고 어디를 가나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에서 영적 예배를 날마다 갖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영적 예배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가 찬양대 음악을 맞추어 개회를 하고 폐회를 한다하여도 그 찬양대가 성령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면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설교자가 웅변, 학적, 변론, 역사적인 예화를 든다하여도 그 종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나오는 설교가 아니라면 그 설교는 영적 예배를 가져올 수 없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양식을 나눠주는 설교가 될 때에 마음을 새롭게하는 역사가 되므로 영적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3.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2하반절)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모든 사람이 연합될 때에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따라가는 것이 신령한 예배가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줄 분별하게 되는 영계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행하실 일을 하게 되므로 열매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언제나 영적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치 못하는 사람들이 교권을 쥐고 교회를 움직일 때에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므로 마귀에게 드리는 우상과 같은 교회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임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영적 예배가 있으므로 초인간적인 세계를 알게되고 교통하게 되고 그 세계로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영적 예배를 통하여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게 되며 사람의 생활도 영적 예배를 통하여 열매있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를 자격

- 시 40:1~10 -

 

  새 노래라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속죄 은총을 노래하는 것보다도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참고 나가던 사람으로 자기의 원통함을 하나님이 갚아주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억울한 환경을 벗어나는 새로운 역사를 통하여 감사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니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를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 (1)

  가장 어려운 일은 억울함을 당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으로만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로는 승리할 수 없으나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만이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새 노래를 불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사람이란 완전한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응답 하시므로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2. 반석 위게 굳게 서는 자 (2)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처음에 기가 막힐 웅덩이에 떨어지는 일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끌어 올려주시므로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고 담대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응답을 받으므로만 장부와 같이 굳게 서는 용사가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말로써는 의지하는 것이 쉬운 것 같으나 큰 절망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나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자들은 과연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를 수 있는 용사라고 보게 된다.

 

  3.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 (3)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사람을 구원해 낼 수 있는 종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요,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던 자들이 원수를 이기게 되므로 새 노래를 인하여 원수가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4. 불의와 타협치 않는 자 (4)

  아무리 불의한 자가 교만하고 거짓되게 행한다 하여도 거기에 눌림을 받지 않고 조금도 타협이 없이 나가는 자라야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조금도 불의한 자와 타협치 않아야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을 승리하게 하신다.

 

  5. 주의 법이 마음에 있는 자 (5~8)

  아무리 제사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여도 주의 법이 마음에 없는 자라면 그 예물과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심중에 주의 법이 있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므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승리에 그 사람을 들어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제사라는 것은 심중에 주의 법이 없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고 이미 기록된 말씀 하나만을 중심한 자에게 승리의 열매가 있게되므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

 

  6.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 (9~10)

  진리라는 것은 자기 마음에 숨겨두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일이요, 마음에 있는 진리를 널리 전하는 자라야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본다. 진리는 세계를 구원하는 말씀이니 남을 살리기 위하여 널리 전파하는 자라야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결    론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르는 사람은 완전 승리의 왕권을 받게되는 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윗 왕국에 가입될 자는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새 노래를 부르는 인격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 사 6:1~13 -

 

  세상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제일 적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분주히 왕래하며 노력하는 이 일은 결국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가 하나님께로부터 묵시를 받아 말씀을 전한 일은 이사야가 이 세상에는 없어도 본 성경은 오늘도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는 빛이 되었다.

  이사야 당시에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종이 맨발과 벌거벗은 몸으로 나가 전할 때에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야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만일 이사야가 전한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이 시대에 참된 지혜와 지식을 얻어볼 수 없는 자리에서 흑암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서를 바로 알게되므로 인간 종말의 살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되는 동시에 그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아래에서 승리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의 인격을 가져야만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1. 눈이 열려지는 인격 (1~4)

  이사야는 비록 땅에 사는 육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안이 열려 보좌 세계를 내다보게 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친히 하나님의 보좌 세계를 내다보는 인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역사적으로 선지와 사도들은 다 영계로 보는 눈이 열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약 시대를 이루는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친히 천국의 광경을 보여주셨고 아무리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울이었지만 다메섹 광야에서 주의 광채를 보게되었고 셋째 하늘의 광경을 본 일도 있었다(고후12:1~3). 또 사도 요한은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는 계시를 받아쓴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을 보아야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일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갈 때에 그때 그때 보여주는 일을 받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사람에게 하게 하실 때에 무조건 증거를 보이지도 않고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나를 만져보고 증거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선지와 사도들이 보고 증거한 것을 우리가 본 것과 같이 믿을 때에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2. 입술이 깨끗해지는 인격 (5~7)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눈으로 계시를 보았다 하여도 입에 실수가 있다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를 본 이사야는 자기 입에 실수가 있는 것을 깨닫고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불로 그 입을 깨끗케 하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때마다 자기 입의 실수를 큰 죄로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부족을 용서해 주시고 깨끗한 입술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증거하도록 하실 것이다.

  금일에 교회 부패는 강단에선 종의 입술이 깨끗하지 못할 때에 그때 그때 새로운 말씀이 내리지 않게 되므로 모든 심령들은 다 피곤을 느끼게 되며 이것이 오래갈 때에 교인들의 출석이 은혜롭지 못하여 자연히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는 동시에 그 교회는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식어지는 동시에 교회는 파동이 일어나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자동적으로 세속화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 부패의 모든 책임은 입술이 부정한 종에게 있는 것이다.

 

  3. 정직한 인격 (8~13)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전할 때에 인간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여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전할 것뿐이다. 만일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고 그것을 전하지 않고 감해 버린다해도 죄가 되고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하는 것도 죄가 된다.

  이사야가 전한 말씀은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교훈이니 그 시대 사람이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기록해서 전한 것과 같이 우리가 나가 전해야 된다고 본다. 이사야 때의 사람들은 이사야의 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반대했지만 인류 종말에 거룩한 자만 남게되는 심판기가 올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같이 그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이사야가 인간들이 알지 못 한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큰 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정직하게 그대로 전할 책임이 있고 듣는 사람은 그대로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사야 선지가 정직하게 전한 말씀은 오늘 우리가 다시 예언할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선지 이사야의 증거는 거짓 선지의 세력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누구든지 이사야서를 분명히 알게될 때에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영광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은 영안이 열린 자, 입술이 깨끗한 자, 정직히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라도 완전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니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자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사람이 되자

- 합 3:1~3 -

 

  세상에 유명한 정치가도, 사업가도, 교육가도 각각 자기의 특재를 자랑하고 있다. 정치적인 특재를 가진 자는 정치적인 것으로 남의 권리를 침략하고 있고, 사업적인 특재를 지니고 있는 자는 사업적으로 남의 경제를 침투하고 있고, 교육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는 많은 사람을 지배하는 지도자가 되므로 정치, 경제, 문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현실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본 성경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주의 일을 부흥케 하여야 모든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이 종국을 짓는 진노의 날이 올 때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다.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자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각성을 해야 된다 (2상반절)

  주 재림기에 크게 각성할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을 1장과 2장에 말했다. 우리가 각성할 때는

  첫째 : 인심이 극도로 악화되어 의인이 나설 수 없는 때이요(1:4),

  둘째 : 참으로 믿는 자가 적은 때이요(5),

  셋째 :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을 들어 세상을 치는 때요(6~11),

  넷째 :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방황하는 때요(14),

  다섯째 : 문서 운동을 해서 모든 사람을 깨우쳐야 될 때요(2:1~3),

  여섯째 :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자들이 북방을 치게되는 때라는 것이다(7~8).

  그러므로 지금 이때가 우리가 크게 각성할 때이다. 자신이 크게 각성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충동보다도 하나님 말씀에서 받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서 각성을 하지 못한다면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는데 각성하면 살 수 있을 것이요 각성하지 못하고 잠자는 상태에 있다면 죽는다고 알아야 한다.

 

  2. 급한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된다 (2중반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기가 임박할 때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급한 경고를 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물로 심판할 때에도 노아에게 급한 경고를 내렸고, 소돔 고모라를 불로 심판할 때에도 롯에게 급한 경고를 내렸고, 애굽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출할 때에도 모세에게 급한 경고를 내리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일 하실 때에도 어장에서 그물을 씻고있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급하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던 것이다.

  만일 노아와 롯과 모세와 사도들이 그때에 급하게 순종치 않았던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급한 이 시대에 72년부터는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2, 3년 동안에 주의 일을 부흥케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각성해야 될 때는 왔다.

  오늘날 환란에 빠진 인간들은 북방 붉은 세력의 그물에 걸려들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초인간적인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역사가 없이는 환란에 빠진 인간들이 살 길이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주의 일을 부흥케 한다는 목적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난국을 당하게 하시고 누가 이런 자리에서도 주의 일을 부흥케 한다는 목적을 두고 나서느냐 하는 것을 검열하고 계신다. 만일 이때에 주의 일이 부흥케 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는 버림의 사람이 될 것이니 사명자들은 하나같이 순교적인 생활에서 나서야 할 것이다.

 

  3. 주의 긍휼을 기다려야 된다 (2하반절)

  극도로 어려운 난국을 당하게 된 것은 주의 긍휼하심이 택한 자에게 임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모든 성도들은 어려운 난국이 올 때에 주의 긍휼하심을 입으므로 승리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주님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여 당신의 종들이 거기에서도 자기 맡은 사명을 다해보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충성을 다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나타나는 주의 긍휼은 영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영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되 절대적인 보호가 있으므로 주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오히려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합3:18~19). 과거의 종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주의 역사가 그 종에게 나타난 것은 한 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로되 이제 나타나는 역사는 완전히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러 오시는 재림의 역사이다(3:13).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긍휼을 힘입어서만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주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주의 일만 부흥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    론

  이 때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주의 일을 부흥케 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주님께서 일한 대로 갚아 주시려고 오시기 때문이다(계22:12).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주의 일을 부흥케 하던 자들이요, 망할 자는 자기 일을 부흥케 하던 자들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생활

- 빌 3:9~16 -

 

  인생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기 전에는 올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도덕적 생활이 완전한 생활이 아니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생활이라야 산 생명이 있는 생활이다.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생활은 무엇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오늘의 교회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미명(美名)하에서 그 생활이 속화되었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증거라고 보게 된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생활이다 (9~10)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므로 의롭다함을 받는 생활에 들어간다면 십자가를 믿는 사상에서 십자가를 지게되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중심 사상에서 자동적으로 있게 된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다는 마음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으므로 그 의의 사상이 즉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첫째 :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순종하는 십자가요,

  둘째 : 남을 살리기 위한 십자가요,

  셋째 :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오는 의가 우리에게 역사할 때에 사랑의 법을 순종하는 생활이며 남을 살리기 위한 생활이며 죄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싸우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세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2. 좇아가는 생활이다 (11~12)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좇아가는 생활이 있다. 왜냐하면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왕권의 소망을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 되셨으므로 따라가는 자도 꼭 같이 왕권을 받기 위한 것만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바라본다는 것보다도 1차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생활에 들어갈 때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고 그 왕권을 목적하고 좇아가는 것은 정욕적이 아니고 사명인 것이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 왕권을 목적하고 나가는 불타는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 받은 자라고 볼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있지만 진보적인 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 죄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증거라고 본다. 하나님의 의의 세력이 그 사람을 지배할 때에 자동적으로 불의의 세력과 싸우는 일을 하게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되는 것이다.

 

  3. 항상 부족을 느끼는 생활이다 (13~14)

  누구든지 마음 가운데 내가 된 줄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항상 부족을 깨닫는데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따라가게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보다도 항상 마음 가운데 날이 갈수록 더 받아보려는 마음이 생기게 하신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사는 생활이 푯대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과 같이 조금도 뒤를 돌아다 볼 사이도 없이 모든 일을 바로 해 나가겠다는 생각만 불타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가 온 사람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뒤를 돌아다보고 자랑을 한다든지 낙심을 하는 일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자의 마음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의를 마음에 받은 자는 과거의 것을 자랑하지도 않고 낙심하지도 않고 날마다 푸른 새순이 새로워지듯이 새로워지는 생활에서 진보적인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목적지를 향하여 경주하는 사람이 넘어져도 급히 일어나 뛰며 옆에서 누가 말을 하여도 이말 저말 듣지 않고 거기에 간섭하지도 않고 이것 저것 보지도 않고 남보다 먼저 간다는 것만을 생각하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생활은 인간의 의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 자로써 그 의의 면류관을 목적하고 따라가는 생활이다. 조금도 자기의 행위를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만을 말하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4. 온전히 이루는 생활이다 (15~16)

  우리가 온전히 이루는 생활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한계를 이루게 되는 생활이다.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영혼을 살리는데서 끝난 것이 아니고 의로운 통치 왕국을 이루는 것으로 완전히 이루는 것이니 누구든지 세상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생각이 아니고 사단의 생각이다. 누구든지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위에서 이루어 주는 일만을 목적하고 나가기 때문에 온전함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로 온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로만 온전한 것을 이루는 것이 거룩한 섭리가 된다. 인간의 도덕적 의라는 것은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오는 역사를 힘입어서 완전한 상급을 받으며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데까지가 거룩한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이다.

 

 

시험으로 오는 온전

- 약 1:2~4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온전한 것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온전을 이루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 기독교의 중생이라는 것은 창조를 받을 적에 생령으로 지음받은 그 영이 죽은 자리에서 다시 생령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즉시에 온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통과하므로써 온전을 이루는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시험으로 오는 온전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됨 (2)

  인간 자체에는 온전한 기쁨을 줄만한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으므로만 온전한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밥을 먹고 배부른 것을 기뻐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평안히 노는 것을 기뻐하고 사람이 알아주는 것을 기뻐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있으면 기뻐하는 정도라면 온전한 기쁨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다.

  온전한 소망의 기쁨이라는 것은 시험이 올 때에 인간 물질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으므로만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물질계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새로 받는 체험이 없이는 온전한 것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셨다(마5:11~12). 이것을 온전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스데반이 원수에게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 얼굴이 천사같이 되어 기뻐한 것은 온전한 기쁨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이 올 때에 온전한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생활은 동물의 생활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 하면 동물도 배부르면 기뻐하고 몸이 평안하면 기뻐하기 때문이다.

 

  2.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됨 (3)

  믿음이라는 것은 어려운 시험을 만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더 체험하고 그 사랑의 온전을 맛보게 되므로 신앙이 자라나게 되며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역사를 무엇인지 체험함으로써 믿음이 더 진보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처음에 사귈 때보다도 어려운 난관을 당할 때에 변치 않는 친구라면 더 믿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무소불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때에 그 믿음은 강한 용사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간교한 마귀를 들어서 시험을 해 보시는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사랑하는 자에게 더욱 깨달아 믿게 하시므로 온전한 신앙의 인격을 이루게 하셔서 그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동시에 일한 대로 갚아 주시기 위한 방법이다.

 

  3. 온전 구비함을 가지게 됨 (4)

  하나님에게는 온전 구비한 것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나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해 보고 난 뒤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생활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싹이 나서 자라날 때에 뜨거운 태양이나 찬이슬과 찬비를 맞게 되고 거센 바람에 부딪치고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서 자라게 되어 온전 구비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간교한 마귀를 들어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 보고 거기서 그 인격을 자라게 하여 온전 구비한 왕권의 자격을 이루어 그 사람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을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결    론

  조물주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목적하고 마귀를 들어 쓰시기도 하시고 당신의 종을 들어 쓰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된 자로서 마귀의 시험을 받게 하여 그 시험 가운데서 끝까지 충성되게 나가는 자는 완전한 것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하나님의 선한 방법인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일

- 히 12:1~14 -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여러 가지로 시련과 징계를 주시는 것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까지 목적을 두고 하시는 것이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인데 두 가지로 보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이요,

  둘째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의 의를 나타내게 하여 완전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의와 성도의 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하나님의 의 (1~3)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를 완전케 하고자 하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대로 버려 두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아무리 타락하고 당신을 멀리 떠났어도 그 사람을 다시 완전케 한다는 것이 의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의의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얽매이기 쉬운 죄의 세력을 허락하신 것이요(1),

  둘째 : 완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하신 것이요(2),

  셋째 : 거역하는 자를 향하여 참으신 것이다(3).

  하나님께서 죄의 세력을 용납하신 것은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아무리 인생이 죄에 얽매었다 하여도 이것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일을 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는 완전히 나타난 것이다.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하나님을 의심하도록 시험해 보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하더라도 택한 자는 버리지 않는다는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아담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 아니요, 둘째아담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의로우신 것을 나타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독생자의 의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인간들이 죄에 얽매어 타락했지만 독생자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가 죄에서 해방을 받고 천국이 이루어지는 일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큰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하였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죄인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을 완전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에서 역사하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받게 된다.

 

  2. 성도의 의 (4~14)

  성도의 의라는 것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성도의 의로운 행실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첫째 :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않는 일이요(4~6),

  둘째 : 징계를 받을 때에 더욱 복종하는 일이요(7~9),

  셋째 : 징계를 받고 난 뒤에 화평과 거룩을 좇는 일이다(10~14).

  사람이라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가 없이는 의로운 일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것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까지 목적을 두고 하시는 것이다.

  사람 자체가 행함으로써 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옳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깨닫는 것을 의로운 생각이라고 하며 아무리 징계가 있어도 더욱 순종하는 일을 하면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서 화평과 거룩을 좇는 일을 하므로만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될 수가 있다.

  인생이라는 것은 낙심하지 않고 더욱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밖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세 가지를 행하는 자라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단계에 들어가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징계를 달게 받고 순종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 가장 큰일은 그리스도께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에게 완전하게 되도록 역사하시는 일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창조하실 때에 의의 평강한 열매로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신님께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기까지 역사하시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승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승리로 완전한 의를 완성하였고 모든 사람들은 그 의를 믿고 순종할 때에 그 의의 역사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의의 평강한 열매라는 것이다.

 

 

붉은 용의 꾀임과 그리스도의 왕국

- 계 12:7~1 2-

 

  그리스도의 왕국을 목적하고 붉은 용의 꾀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첫째 :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 후에 있으며

  둘째 : 완전한 말씀의 빛이 나타나는 동시에 있으며

  셋째 : 종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있다

  이와 같이 붉은 용의 꾀임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범죄한 이방 민족들이 용을 섬기던 우상 종교국에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므로 중생을 받고 천국으로 그 영이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붉은 용의 꾀임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온 천하에서 중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꾀어보는 목적은 종말에 햇빛같이 나타나는 말씀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한 방법이다.

  계12:1에 해를 입은 여자는 말씀의 빛이 나타나는 촛대교회를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 촛대교회의 역사가 일어나는 동시에 붉은 용을 내보내어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꾀어보는 일이 있게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으로 꾀어 본 것과 같이 중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꾀어보고 그 꾀임을 받지 않고 햇빛을 입은 여자와 같은 촛대교회로 들어오게 되는 자는 복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꾀어보는 때에 그 꾀임을 받지 않도록 피와 말씀으로 증거하던 종은 남은 종이 되어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 증거를 따라가던 교회는 예비처에 양육을 받게되는데 온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심판이 18장과 같이 올 때에 구원함을 받게된다. 이제 붉은 용의 꾀임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종을 천사가 싸워주게 됨 (7~8)

  하늘에 전쟁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 왕국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다. 그런데 붉은 용의 세력이 개방을 받고 나올 때는 천사가 싸워주는 종이 아니고는 영계가 올라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은혜시대에는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종을 도와주되 그 몸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죽어도 담대히 증거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천사는 말씀을 증거하는 베드로가 옥에 갇힐 때에 옥에도 같이해서 죽지 않게 한 일도 있지만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는 순교하도록 인도하는 일도 했다. 이날까지 주의 종이 천사가 보호하므로 복음을 전하다가 천사의 인도로 천국에 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붉은 용이 천하를 꾀이는 때에 천사가 붉은 용과 큰 전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변화 성도들이 붉은 용과 말씀으로 싸울 때에 붉은 용의 세력이 그 종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싸워주는 것이다.

  지금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하려면 붉은 용과 영적 전쟁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종말의 진리를 증거하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라야 천사의 도와주는 역사 아래에서 승리를 보게될 것이다.

 

  2. 붉은 용이 쫓겨나게 됨 (9~1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왕권의 수가 찰 때까지는 붉은 용의 세력을 공중에서 참소 해 보도록 허락을 하셨다. 왜냐 하면 아무리 붉은 용이 참소 하여도 피와 증거의 말씀으로 이기는 자라야 그리스도의 나라에 왕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나라에 왕권을 받는 수가 완전히 차므로 다시는 종들을 참소 하지 못하도록 천사들을 통하여 마귀를 땅으로 쫓아내려 보내는 것이다.

  변화 성도가 완전히 왕권을 받는 것은 붉은 용의 참소를 이기므로 그 반열에 들게 된다. 이 날까지는 십자가 하나를 증거하기 위하여 순교한 자들이 때를 따라 있었지만 종말에는 승리의 말씀으로 붉은 용의 꾀임을 이긴 자들의 수가 차는 단체가 이루어지므로 지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3. 붉은 용이 땅으로 쫓겨 내려옴 (12)

  붉은 용이 땅으로 쫓겨 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동시에 땅으로 쫓기게 되므로 땅 위에는 특별 보호가 예비처에 없이는 교회가 남을 수가 없는 환란이 일어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니 신 불신을 막론하고 촛대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무리들은 다 그 환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천사가 종들의 역사를 위하여 도와 싸우게 되고 공중 싸움이 끝나는 동시에 천사들은 단12:1과 같이 지상에 내려와서 택한 백성을 보호 양육하는 일에 전력을 두게 된다.

 

  결    론

  붉은 용의 꾀임이라는 것은 심판기에 있게 된다. 그런데 꾀임을 받고 그 앞에 절하고 표 받은 자는 다 불에 사름을 당하게 되고 그 꾀임을 받지 않고 증거의 말씀을 따랐던 백성은 예비처에 양육을 받고 심판 날에 구원을 받게되는 것이 계시록 12장 이하에 나타난 심판의 다림줄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붉은 용의 꾀임을 받지 않고 증거하던 종은 들림을 받고 꾀임을 받지 않고 따라가던 양떼들은 붉은 용을 없이하는 심판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백성이 된다. 그밖에 붉은 용의 꾀임을 받은 무리를 완전히 없이하는 것을 인류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충성된 증인과 왕권

- 계 1:4~ 7-

 

  충성된 증인을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미친 사람으로 알았고, 종교인들은 이단시하였고, 정치인들은 대적으로 알았던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충성된 증인으로 인간이 처음 듣는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에 하나도 그 비밀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원수로 알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생과 창기가 하늘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하실 때에 소위 거룩한 제사장, 교법사, 유사, 장로들은 이단으로 판정을 내렸고 예수님께서 내가 왕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헤롯왕과 빌라도는 자기의 원수로 알았고 다섯 덩어리의 떡과 두 마리의 고기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을 때에 많은 무리가 따라왔지만 예수님께서 너희는 썩어질 양식을 위하지 말고 영생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실 때에 다 물러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가감이 없이 성경을 들어가면서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러 왔고 내가 다시 부활해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세계를 통치하는 일을 한다고 담대히 증거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거를 한 사람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제자들까지라도 십자가 부활에 대하여 확실히 믿지를 않고 최후에 겟세마네와 골고다를 충성된 증인으로 올라가실 때에 다 도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성경이 응하기 위한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이 홀로 충성된 증인이 되어 죽기까지 증거한 것이 전 세계 인류가 믿을만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증거하던 말씀대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증거하던 말씀대로 부활, 승천하여 오늘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므로써 그의 증거와 이루어진 일이 우리의 완전한 신앙의 대상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세계 인류의 구주가 되는 동시에 세계를  통치할 만왕의 왕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일이 없다면 만왕의 왕이 될 수가 없다.

  충성된 증인과 왕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그리스도의 충성과 왕권 (4~5)

  그리스도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므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었다. 만일 그리스도의 충성이 아니라면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이 없는 죽은 영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충성을 통하여 세계 인류가 죄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충성이라는 것은 반드시 큰 열매를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법을 세우신 것은 충성된 증인이 된 사람들로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들어서 쓰는 것은 충성된 증인을 만들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원수 마귀의 세력이 없다면 충성된 사람이 아무런 할 일이 없으므로 강한 마귀의 세력을 충성된 사람에게 대적하게 하여 충성된 증인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도 충성된 증인으로 쓰시기 위하여 마귀 세력으로 대적하게 하셨던 것이다.

 

  2. 성도의 충성과 왕권 (6)

  하나님께서 거룩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한 분이 충성된 증인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을 시키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셔서 충성을 다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므로써 완성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충성된 증인으로 제사장의 일을 하여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서게 되므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 제단 앞에 항상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십자가 능력의 역사는 우리에게로 오되 은혜로 오는 것이다.

  제사장이라는 것은 우리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예수의 피로 산 백성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못 다한 일을 하기 위한 제사장이다(계5:9~10).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충성된 증인으로 죽었다가 부활했다 하여도 우리들이 충성된 증인으로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완전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행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 하셨으므로 우리가 그의 행하신 십자가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면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만민을 위하여 의를 행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고 그 행하신 십자가의 의를 증거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자는 그 왕권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원수를 갚는 왕권 (7)

  충성된 증인으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종들에게 일한 대로 갚아주는 동시에 충성된 증인의 원수들을 다 없애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된 증인을 반대하던 무리들은 예수를 찌른 자라고 하셨다. 가장 두려운 날은 충성된 증인들의 억울한 피 값을 갚는 재림의 날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자가 되려면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강한 마귀인 원수를 들어서 충성된 증인을 대적하게 하시고 충성된 증인으로 왕권의 수가 차게 될 때에는 원수를 갚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충성된 증인의 원수가 되는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고 충성된 증인인 예수님과 종들을 합하여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의 징조와 성도의 각성

 

 총    론

  이날까지 기독교는 각성을 하는 것보다도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을 세계에 선포하여 인류적인 속죄, 인류적인 구원인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역사였다. 그러나 인간 종말의 징조가 보일 때는 이미 속죄의 은총과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각성해서 어떠한 일을 해야만 된다는 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아무리 교회가 섰다하여도 인간 종말의 징조가 나타날 때에 하여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남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시대적인 징조가 무엇인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고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제1과  붉은 용의 꾀임과 교회의 호소

- 계 12:1~9,  요절:9 -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용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나올 때라는 것을 가르쳤다. 이때는 교회로써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오늘 본문이다. 우리가 지금 이때를 인간 종말로 보는 것은 붉은 용의 도구로 쓰여지는 나라가 역사적으로 7대 강국이 완전히 나왔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이 인간 종말에 대한 계시를 볼 때에 인간 종말이란 무엇이라는 것을 천사가 해석해 준 것이다. 계17:9~14을 보면 지혜 있는 뜻이 여기에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동안 계속 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면 천사가 이 말을 할 때에는 로마제국의 도미시안 황제 때인데 다섯은 망하였고 라고 한 말은 구약 시대의 5대 강국을 말하였고 하나는 있다고 한 것은 신약 시대의 로마를 가르쳤으며 앞으로 나오는 왕은 잠깐 계속하리라고 한 것은 일곱째 머리가 나오면 세상은 잠깐 후에 망한다는 말이다.

  구약 5대 강국은 예루살렘을 침략한 나라인데 애굽은 이스라엘을 없이하려던 나라요, 그밖에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도 예루살렘을 침략하던 나라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왕성을 하였고 5대 강국은 망한 것이 사실이다.

  신약 시대에 신약 교회를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박해를 한 나라는 로마제국인데 네로 황제가 나왔다가 죽은 후에 도미시안 황제가 정권을 쥘 때 전에 있던 짐승이 또 나오는데 있어서는 이것이 일곱째 머리에 속한다고 한 것은 심판기에 네로와 같은 악한 정권의 세력이 나와서 만왕의 왕을 대적하되 열 뿔을 놓고 대적할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 종말에 심판의 대상자이다.

  그러므로 지금 네로 황제와 같이 참된 종들을 학살시키는 공산당 정치가 소련에서 시작되어 위성 국가를 놓고 세계를 침투해 나오는 것은 인간 종말이 온 징조이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주고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싸운다고 한 말씀이 즉 인간 종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붉은 용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다 나왔으므로 심판기로 들어가는 때라고 본다. 이제 이러한 때에 교회로서 호소할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본    론

  첫째 : 말씀을 밝히기 위하여.

  둘째 : 성도가 촛대교회를 받들기 위하여.

  셋째 : 순교적인 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 해야 된다는 것을 해를 입은 여자가 발에 달을 딛고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햇빛은 말씀을 밝힌다는 뜻이요, 달이 여자의 발아래 있다고 한 것은 성도가 촛대교회를 받드는 것을 가르친 것이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사도적인 순교 사상을 지키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세 가지를 하기 위하여 해산한 여인같이 부르짖을 때에 철장 권세를 받을 종이 나오게 된다.

  교회를 해코자 하는 붉은 용은 두 가지 방법으로 나오는 것이다.

  첫째는 철장 권세를 받은 남자를 해하고자 하며(3~4),

  둘째는 온 천하를 꾀이는 일을 한다(7~9). 기독교에 철장 권세 역사가 나타나야 할 때가 이 때이다.

  오늘 공부는 붉은 용의 꾀임과 교회의 호소를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보아서 우리 교회가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아야 한다.

 

  결    론

  촛대교회로서 붉은 용의 꾀임을 받지 않으려면 해를 몸에 입고 달을 발아래 딛고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해산의 수고를 다 하여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서 우리는 말씀을 햇빛같이 밝혀야 하며 성도들이 촛대교회 아래 뭉쳐서 받들어야 하며 열두 사도적인 순교 왕권의 계통을 지켜야 될 것이다.

 

 

제2과  땅이 불탈 징조와 크게 외칠 일

- 사 24:4~15,  요절: 6-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을 말씀하실 때에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 엎으시고 빈부 귀천이 일반이 되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에 동방 해변에서부터 크게 외치는 일이 있으므로 동방이 영화롭게 되고 모든 섬들이 영화롭게 될 것을 말씀했다.

  불탈 징조와 크게 외치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분명히 알아보도록 하자.

 

  1대지 : 하나님의 말씀을 파하는 죄로 망하게 됨 (4~5)

  인간 종말에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언약을 파한다고 한 것은 반 기독적인 사회가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언약을 파한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 아니고 말씀을 받고도 배반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과학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이사야서나 모든 구약 성경은 다 과거로 돌리고 마는 폐단이 있다.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만 믿으면 그 밖의 성경은 그렇게 밝힐 필요도 없고 더구나 이사야서는 십자가로써 끝을 맺었다고 하면서 알아 볼 마음도 두지 않고 지나간 역사를 가르쳤다고 하는 신학설로 교회를 망치는 현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사야서에 기록한 말씀은 사7:14, 9:1~2, 40:1~8, 42:1~8, 49:8상반절, 53장, 61:1, 65:1만 사도들이 증거했고, 그 밖의 것은 전체가 오늘에 전할 복음이다(계10:7). 이 복음은 세계를 불로 살라 황폐케 하는 날에 남은 종 남은 백성이 새 시대에 가는 복음이라고 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사야서의 말씀은 북방 세력이 동방 세력에게 망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이 중점이다. 북방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황폐시키고 동방 고레스가 황폐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은 인간 종말에 될 것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해방을 받고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 바벨론 세력 아래에서 압박 받던 성도들이 동방에서 나타난 역사로 말미암아 한곳에 모여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에 온 세계가 불탈 때에 남은 자가 적다고 했는데 이 남은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알려면 이사야 25장, 26장을 보면 된다. 오늘날 공산 정권이 하나님 말씀은 아편과 같다고 말하고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한 신화로 돌리며 신 신학이라는 사상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과거의 한 역사로 보며 정통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선지서 전체를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어진 사실로 보고 만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는 일이 된다. 기독교는 이제 선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크게 외쳐야 할 때가 왔다.

  오늘날 세계 인류가 불탈 수밖에 없는 위기가 왔다고 해서 공산주의와 협상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파하는 음녀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세계가 불타고 새 시대가 온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부인하고 불타지 않도록 한다는 조건에서 협상의 노선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2대지 :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게 됨 (6~15)

  우리 기독교에서 크게 하여야 할 것은 세계가 불타는 날에 구원을 받는 진리를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6절에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불 가운데서도 구원받는 일이 있을 것은 사실이다.

  지금 아시아에는 교회가 다 파괴를 당하고 동방 땅끝 남한에만 남아있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부터 외치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가는 복음 운동을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파하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외치는 자들이 축복을 받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다. 계시록과 선지서 전체는 바벨론 세상이 불탈 때에 구원받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부산 영도에서부터 이 복음이 나타나기 시작된 것은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 나라는 계시록과 선지서를 크게 외치는 일을 하게 되어야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영화롭게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사60:7~9, 13은 동방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결    론

  인간 종말에 세계가 불타서 남은 자가 적게 될 때에 크게 외치는 역사가 있으므로써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72년도부터 크게 외쳐야 할 일이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주 재림의 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해도 세계 정세를 보아서 크게 외쳐야 할 징조이기 때문이다.

 

 

제3과  북방이 망할 징조와 내리는 역사

- 미 5:5~9,  요절:9 -

 

  서    론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에게 묵시를 보여줄 적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가 베들레헴에 날 것을 말씀했고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는 이방 세력이 시온의 딸 된 교회를 괴롭힐 것을 말씀했고 베들레헴에서 난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강이 될 때에는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했다.

  이날까지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시온의 딸 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갈 자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것밖에는 없었다고 본다.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이방 세력에게 시련을 받고 부르짖는 상태에 있었지만 북방 세력이 망할 징조가 나타날 때에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1대지 : 북방이 망할 징조 (5~6)

  인간 종말에는 북방 세력이 극도로 강하게 일어나되 남방과 북방사이에 큰 지경을 정하게 될 것을 말씀했다. 그러나 북방이 망할 때에는 그 지경을 넘어서 내려올 것을 가르쳤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철의 장막이라는 경계를 해 놓고 20여년간 세계를 침투할 공작을 하여 지경을 넘어서려고 온갖 수단을 부리고 있지만 우리 지경을 밟고 넘어서는 날에는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망하게 될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오늘날 인간들이 북방 세력을 이날까지는 멸시했었지만 북방 세력이 남침을 할 기세가 높아짐에 따라 협상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은 북방이 망할 징조가 무엇인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 본문에 앗수르라는 것은 구약시대의 북방을 가르킨 것이 아니고 인류 종말에 북방의 침략자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북방이 남쪽 경계를 짓밟고 넘어서게 되므로 북방이 망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를 내리시기 때문이다.

 

  2대지 :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역사 (7~8)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이 우리 지경을 밟을 때가 되면 환란 가운데 남은 종이 될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슬, 단비같이 내리시므로 그 역사를 받은 자들이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모든 원수를 진멸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만일 이때에 기독교 안에 강한 역사가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여지없이 북방에게 밟힐 수밖에 없는 큰 위기를 만났지만 인간의 힘을 초월한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이슬과 단비같이 내리고 있으므로 짐승의 세력을 무찌르고 나갈 강한 역사를 받게 된다.

  과거 애굽의 바로가 강퍅하게 된 것은 모세를 들어 쓸 징조였고, 아합과 이세벨이 강퍅해진 것은 엘리야를 들어 쓸 징조였고, 바벨론이 강하게 예루살렘을 짓밟은 것은 새로운 종들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복구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모든 선지들은 하나같이 북방 세력을 강하게 들어 환란이 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일어날 때에 될 일이라고 말했다. 만일 북방 세력이 우리 지경을 밟고 내려오는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면 무신론자가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경을 밟고 들어올 때에는 필연코 역사가 일어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종들을 강하게 들어서 북방을 치게 하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강한 용사의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이슬, 단비같이 내리는 역사를 받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인류 종말에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환란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북방을 치는 일이다. 환란도 역사적으로 없던 환란이 일어나게 되며 역사도 기독교에 역사적으로 없었던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제4과  혼란과 곤고가 올 때에 일어날 일

- 눅 21:25~36,  요절:2 8-

 

  서    론

  주님께서 인간 종말을 말씀하실 때에 예루살렘이 이방에게 망할 것을 말씀하셨고 이방 세력이 망할 때가 올 때에 극도로 혼란과 곤고에 떠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서 기절하리라고 하였다.

  이제 혼란과 곤고 중에서 일어나야 할 일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증거한다.

 

  1대지 : 혼란과 곤고 (25)

  본문에 민족들이 바다 파도의 우는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한 것은 극도로 혼란한 세상을 가르쳤다.

  사17:12 이하를 보면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의 뛰노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물이 밀려옴같이 그들도 충돌 하였도다.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밀려옴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고 하였다.

  지금 이때는 혼란 중에 곤고한 때라고 본다. 이 세상은 어제가 옛날이라고 하리만큼 나날이 변천을 가져오는 혼란한 시기를 만났다.

 

  2대지 :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할 일 (26~27)

  앞으로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한다면 무서워 기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 하면 3차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 세상은 한시간 동안이면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마는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욜2:10 이하를 보면 북방 군대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앞으로 북방으로 오는 환란에서 기절할 만큼 두려운 일이 올 것을 성서는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온다고 하였다.

 

  3대지 : 일어나 머리를 들 일 (28)

  일어나서 머리를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한 것은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는데 전력을 두라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려면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확신을 가져야 하며,

  둘째 : 스스로 조심하여야 하며,

  셋째 :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지금 이때에 하나님 말씀 하나만을 생각하고 세상의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 염려에 마음이 둔해지지 않아야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절개가 있어야 하며 쑥물을 먹지 않아야 하며 세상 물질에 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가려면 영적인 사람으로 날마다 심령 소성을 받아서 기도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혼란에 빠지지 말고 공포심을 가지지 말고 용기있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을 갖추고 생활의 준비를 갖추어야만 될 때가 왔다고 본다.

 

 

제5과  중동 문제와 지혜로운 일

- 단 11:40~12:3,  요절12:3 -

 

  서    론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인간 종말의 묵시를 보여줄 적에 중동을 중심하고 환란이 올 것을 말씀하셨다. 다니엘 11장은 중동 문제를 놓고 헬라 시대에 남북 전쟁을 하게되므로 혼란에 빠질 것을 1~20절까지 말했고 인간 종말에 중동을 중심하여 남북대립으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역사가 흘러갈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중동 문제와 지혜로운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대지 : 중동 문제 (40~45)

  인간 종말에는 중동에서 남북으로 대립이 되되 남방 세력이 북방을 대항할 때에 북방 세력이 회오리바람처럼 물이 넘침같이 내려 밀므로 성지도 면치 못하며 애굽에까지 내려오게 되니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방을 대항하지 않고 북방 세력에게 시종 들게 될 것을 말했다.

  지금 북방 공산 세력이 중동을 중심하여 애굽에까지 군사 조약을 맺고 아프리카 사람을 자기 도구로 쓰려는 흉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방에 있는 우리가 두려워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나갈 때에 북방 세력이 크게 번민하게 되므로 발악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을 말했다. 여기에 동북의 소문이라는 것은 중동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극동을 가르쳤다고 본다. 그리고 북방 세력은 도와주는 자가 없으므로 반드시 망할 것을 말씀했다. 12장을 보아서 이때가 주 재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방을 무찌르고 북진하는 역사가 극동에 있을 것을 믿어야 한다. 사41:25, 계11:3이하를 보아서도 알 수 있고 모든 선지서를 상고해 볼 때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극동을 중심해서 있으므로 북진할 것을 알 수 있다.

 

  2대지 : 지혜로운 일 (12:1~3)

  이 때는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때라고 말하였고 역사적으로 없던 환란이 있을 것을 말하는 동시에 주 재림이 될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고 많은 사람을 옳은 곳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다.

  이 때에 지혜로운 일은

  첫째 : 천군의 보호를 믿고 싸우는 일이며,

  둘째 : 주 재림기라는 것을 알고 싸우는 일이며,

  셋째 : 세상을 돌보지 말고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일에 전력을 두는 일이다.

  주님 재림할 때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재림시 까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일한 대로 갚아주시려 오시기 때문이다. 가장 지혜로운 일은 옳은 진리의 사상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진리로 인도하는 일인데 이러한 자들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급한 문제는 북방 세력이 중동을 노리고 나오는 때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북방이 무서워 말한 것이 아니고 이때는 재림의 주가 오실 때이니 맞이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일이 긴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는 것을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8과  빌립보에서 전도한 사도들

- 행 16:11~34,  요절:31 -

 

  서    론

  학생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을 아십니까? 서양이 아니고 우리 아시아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동아시아라고 하며 예수님이 나신 곳은 서아시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저 유럽에서 전도를 하지 않고 우리 아시아에서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루는 사도 바울에게 이상한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환상 가운데 서양 사람이 손을 들고 하는 말이 우리 땅에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서양 빌립보라는 곳에 가서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바울 사도가 서양에 가서 전도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루디아라는 여자가 복음을 받음 (11~15)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빌립보라는 땅으로 건너간 바울은 안식일을 당하여서 예배당이 없으므로 저 시원한 강가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여자들이 있으므로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바울이 전하는 말을 깨달아 듣도록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므로 전도를 듣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서양 문명은 루디아라는 여자 하나가 믿기 시작하므로 거기서부터 교회가 시작되어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학생들 얼마나 훌륭한 여자입니까? 가장 복된 말씀을 남보다 먼저 받아서 남에게 전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학생들, 입으로 먹은 빵은 큰 열매가 나타나지 않아도 말씀을 듣고 따라간 일은 큰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루디아처럼 말씀을 잘 깨달아 듣게되면 학생들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다 복받는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2대지  큰 핍박을 만남 (16~24)

  학생들, 이상한 일이 서양에서도 있었습니다. 서양에도 귀신이 들려서 점을 잘 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점이란 무엇을 가르친 것인지 아십니까? 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들린 여자의 주인은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점치는 여자가 바울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따라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도하는데 너무나 방해가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그 사람에게서 쫓겨 나가므로 다시는 점을 치려고 해도 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주인은 돈을 벌지 못하므로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점치는 여자의 주인은 여러 사람을 데리고 바울과 실라를 핍박하고 붙잡아 가지고 경찰관원들에게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유대인인데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소란케 만드는 일을 하여 우리 로마 사람으로 받지 못하고 행치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이 일어나서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몽둥이로 많이 때린 후 옥에다 가두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먼 나라에 가서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니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3대지 : 큰 역사가 일어남 (25~34)

  아무리 몸이 아프고 배가 고프고 괴로운 일이 와도 사도들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옥에 갇히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났습니다. 그리고 옥문이 열리며 손에 매었던 줄이 다 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옥문을 바라본 간수는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사람들이 다 도망을 간줄 알고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바울은 크게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네 몸을 상치 말라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여기에 있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간수는 등불을 들고 뛰어들어와 바울과 실라 앞에 머리를 숙이며 하는 말이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할 때에 사도들은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옥을 지키던 간수는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고 세례를 받았으며 하나님을 공경하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학생들, 이것을 보세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오히려 유익하도록끔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도우실 때에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묻 는  말

 1. 서양에서 예수를 제일 먼저 믿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2. 바울과 실라가 무슨 일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까?

 3. 옥사장이 어떻게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제19과  고린도에서 전도한 사도들

- 행 18:1~11,  요절:10 -

 

  서    론

  고린도라는 곳은 지중해 바다를 중심하고 있는 반도 섬입니다. 우리 나라가 동해 바다의 반도 섬으로 있듯이 고린도라는 땅은 지중해 나라의 반도 섬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는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화려한 도시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한 일을 오늘은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장막을 만드는 사업을 함 (1~3)

  지금은 교회가 많으므로 교인들이 전도하는 목사님의 생활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가 없는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에 장막을 만드는 사업을 해가며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다면 얼마나 훌륭한 바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낮에는 장막을 만들고 밤에는 전도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많으므로 어느 목사님이나 교회를 가지고 일을 보게되고 핍박도 없고 무서운 고생을 하지도 않지만 처음에 교회가 설 때에 사도들은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친히 노동을 하면서 세웠던 것입니다. 옛날에 핍박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던 종들은 전부가 다 참된 종들입니다. 지금은 아무리 종이 많다 하지만 참된 종이 많은 것이 아니고 거짓 선지가 많다고 봅니다.

 

  2대지  :바울이 유대인을 책망함 (5~7)

  바울은 노동을 해 가면서 복음을 전할 때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인들이 따라 다니면서 훼방을 하고 핍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책망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핍박하니 반드시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말과 같이 예수를 반대하던 유대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사람이라도 참된 종을 반대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3대지 :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전도함 (8~11)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잠잠하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하지를 못하리니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머물러 전도할 때에 큰 교회가 서게되어 성경에 고린도 전서, 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믿기 전에 하나님께서 택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서기 전에 예수님께서 택한 사람이 많다고 말씀한 대로 택한 백성이 많으므로 큰 교회가 서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어느 곳에나 큰 교회가 서는 것은 거기에 택한 백성이 있기 때문에 서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교회가 많은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많은 증거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나라가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처럼 예수를 많이 믿는 나라는 없습니다.

 

  묻 는  말

 1. 바울은 무엇을 만드는 사업을 했습니까?

 2. 유대 나라는 왜 망했습니까?

 3. 고린도에 왜 큰 교회가 설 수 있었습니까?

 

 

제20과  에베소에서 전도한 사도들

- 행 19:8~20,  요절:12 -

 

  서    론

  학생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전부 없이하여야 된다고 하면서 극도로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시면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반대하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회개한 다음에 열심으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러 다닐 적에 동양에서 하고 서양에 가서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서아시아 서울인 에베소에서 전도한 일을 공부하겠습니다. 학생들, 깊이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을 핍박하던 사람이라도 예수님과 같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놀라운 일이 나타난 일에 대하여 성경을 읽어보면서 축복을 받겠습니다.

 

  1대지 : 바울이 희한한 이적을 행함 (8~12)

  바울이 어디를 가나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담대히 증거할 때에 그것을 믿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겉옷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고 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도 귀신이 나가므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희한한 일입니까.

  이렇게 되는 것은 바울이 손을 닦는 손수건이나 입고 있는 옷에까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같이 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병자가 그 옷을 만져도 병이 낫는 일이 있은 것과 같이 예수를 반대하던 바울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대지 : 마귀 역사도 전도가 됨 (13~18)

  에베소에 이상한 요술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요술하는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이 요술하는 사람들이 악귀 들린 사람을 만나서 시험적으로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를 명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악귀들린 사람이 대답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고 있는데 너는 누구냐 하면서 요술하는 사람을 넘어뜨리고 때리므로 요술하는 유대인들은 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것을 본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요술하는 유대인들이 에베소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환영을 받았는데 악귀 들린 사람에게 벌거벗고 쫓겨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술하는 사람보다는 예수가 제일 높은 신이라고 하면서 자동적으로 예수를 믿기 위하여 바울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이것을 보세요. 마귀도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참된 하나님의 종이 누구인지를 다 압니다. 그러므로 마귀 역사도 큰 전도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마귀가 마음대로 주관하기 때문에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 마귀를 이기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3대지 :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회개함 (19~20)

  이것을 본 마술 하는 사람들은 이날까지 한 일은 다 헛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마술 책을 모아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로 살라버리고 예수를 믿게되므로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하며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나라에 점치는 사람과 무당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전부 사람을 속이는 일이므로 망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 이러한 우상이 다 없어지고 복을 받으려면 우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당들이 세계 사람을 다 미혹시키려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부끄러워서 어찌할 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헛된 일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므로 복을 받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묻 는  말

 1.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어떤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까?

 2. 악귀 들린 사람이 마술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혼을 내 주었습니까?

 3. 마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마술 하던 책을 다 어떻게 하였습니까?

 

 

제21과  무서워하지 않고 나가는 사도들

- 행 20:23~35,  요절:24 -

 

  서    론

  사도 바울은 억울하게 환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인으로서 유대교는 배척하고 예수교를 세우려고 열심히 전도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자기 교파 사람인 바울이 예수를 믿고 동양과 서양에 전도하는 것을 크게 미워하여 바울을 어떻게 하든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환란을 앞에 놓고 나가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눈물겨운 부탁을 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말함 (23~25)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결박과 환란이 너를 기다린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박과 환란이 오더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루살렘에 가기를 작정하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하면서 간곡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나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인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2대지 :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함 (26~29)

  교회를 아무리 바로 세웠다 하더라도 그 양떼를 간수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들도 생각해 보세요. 학생들이 아무리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한다 하여도 바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양떼를 잘 인도하는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다 숨김없이 전하였으니 이대로만 나가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하는 종들이 조금도 거짓이 없이 전해 주셨으므로 그대로만 믿고 나가면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 선생님이 전하는 말씀은 우리 마음대로 생각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고 사도 바울께서 전해준 그 복음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3대지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도 복있다고 함 (30~35)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삼 년이나 밤낮으로 쉬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눈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도 복 있다고 한 것은 바울 사도가 남을 살려주기 위하여 수고한 것 같이 모든 사람들이 그 본을 따라가야 복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학생들, 학생들도 남을 가르치고 남을 도와준다면 하나님께서 학생들에게 칠 배나 더 갚아주실 것입니다. 학생들, 얻어먹는 거지가 좋습니까? 불쌍한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더 좋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남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얻어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얻어먹게 되고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일생 동안을 우리들을 살려주기 위하여 눈물 흘리며 땀을 흘리며 피를 흘리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남을 살려주는 일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묻 는  말

 1. 사도 바울은 무엇 때문에 환란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2. 바울은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도를 하였습니까?

 3.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제22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한 사도

- 행 22:1~21, 요절:21 -

 

  학생들, 오늘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자기를 이단이라고 하는 무리들을 앞에 높고 담대히 증거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써 다소라는 땅에 출생했고 가말리엘이라는 문하에서 가장 훌륭한 교훈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사람보다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반대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고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여 옥에 가두기도 했고 대 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에게 공문을 받아 가지고 어디에 있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결박해서 예루살렘에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이라는 곳을 향하여 가는 바울에게 오정쯤 되어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 비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땅에 엎드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할 때에 바울이 대답하기를 주여, 뉘시오니까? 하였습니다.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함께 길을 가던 사람들은 빛은 보면서도 바울에게 말하는 음성은 듣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할 때에 너는 일어나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거기서 네가 어떻게 할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바울은 일어났으나 눈이 보이지 않아 함께 가던 사람이 바울을 데리고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갑자기 소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렇게 눈이 먼 것은 주님의 빛이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명령하시므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바울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 완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전에 가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예루살렘을 떠나 저 먼곳 이방으로 나가 복음을 널리 전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나 자기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담대히 자기가 이렇게 되므로써 예수를 믿고 동양과 서양에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고 바울은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달려들어 바울을 때리며 핍박을 하였습니다.

  학생들, 이것 보세요. 악한 사람은 아무리 주님이 나타난 일을 증거해도 믿지를 않고 핍박을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바울 선생님의 본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과거에 잘못이 있다 하여도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앞으로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묻 는  말

 1. 바울이 어떻게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2. 바울을 찾아와서 세례를 준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3. 바울이 어디를 다니면서 전도를 많이 하였습니까?

 

 

 논 설 편

 

1.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한다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정직하지 않다는 것은 벌써 붉은 용에게 먹힘을 받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붉은 용인 옛 뱀은 가장 간교하게 창조를 받았으므로 그 뱀은 어떻게 하든지 남을 속이는 것이 근본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위 막스주의라는 것은 기만정책을 정통으로 아는 것이 그의 근본 사상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진실이란 것이 근본적인 사상인 동시에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앞으로 행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에게 미리 예언적으로 알려 주지 않으시고는 절대 행하심이 없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완전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여 완전케 해 주겠다는 언약을 세우신 것이 말씀인데 무조건 완전케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고 네가 완전케 해 주겠다는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면 완전케 해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는데 있어서는 먼저 가장 간교한 뱀인 사단의 세력을 내 보내서 완전케 해 주겠다는 말씀을 의심이 나도록 하는 동시에 믿어지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허락 받고 나온 것이 붉은 용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에는 붉은 용의 세력을 들어서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나, 하지 않나 보기 위하여 꾀어보는 것이니 아무리 꾀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완전케 하는 언약의 말씀인 것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셔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동시에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진실한 하나님의 종과 거짓 선지가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거짓된 자와 싸우지 않고 싸우다가는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에서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거짓된 자에게 먹히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거짓된 붉은 용과 짐승의 세력과 거짓선지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하게만 싸워 나간다면 그 밖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전부 역사하셔서 약해도, 가난해도,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이기도록끔 싸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증거를 보여줄 때에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거짓된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게 했고 진실한 사람이 끝까지 싸우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역사이다.

  구약시대에 진실한 사람으로 거짓된 자를 이기게 하시면서 인간 종말에도 완전 승리를 이루고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자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제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실패의 근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지 않고 싸워야만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보아도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앞으로 망하리라고 말씀하였다. 과거 히스기야 왕이 정직한 왕이었지만 바벨론에서 온 거짓된 사신을 받아 들여서 비밀을 다 보여 주었다는 조건으로 그 즉시에 이사야를 통하여 바벨론 사신이 본 것은 다 바벨론이 가져가게 된다고 예언했던 것이다. 과연 그대로 궤휼적인 바벨론 정책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이것을 보아도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자와 타협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망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면 하나님께서 동참죄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를 회개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리시지 않으므로 타협하는 자는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하여도 다 무효가 된다. 예배와 기도라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불의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가기 위하여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응답하기도 하시고 싸워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셋째 :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면 주권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속이자는 사람은 양심을 떠나서 일을 해도 거리낌이 없고 정직한 사람은 양심을 거리끼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거짓된 사람이 주권을 쥐게 되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는 시간부터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니 아무런 일도 바로 할 수가 없게 된다.

  오늘날 공산당은 전부가 거짓인데 그 세력과 협상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공산주의 세력이 평화 통일이니 자유 보장이니 하는 것은 기만 정책을 쓰기 위하여 가지고 나오는 한 표어에 불과하다. 평화라는 것도 거짓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자유라는 것은 거짓이 없는 곳에서라야 이루어지게 되는데 기만 정책을 쓰는 공산주의의 평화와 자유라는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멸망 받을 음녀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정직한 사람에게 큰 시험은 72년부터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협상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직한 양심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협상주의를 배격하고 일어나야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2. 평화 같으나 죽을 일

  어리석은 인간들이 무조건 자기에게 좋게 해주면 거기서 평화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간교한 마귀라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와 평화를 누려 보자고 하는 유혹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가장 간교한 뱀은 어리석은 여자를 찾아와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불만이 생기게 말을 하고 자기와는 평화롭게 생각이 나도록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마귀는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될 것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될까봐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마음이 멀어지게 하고 자기에게로 끌리도록끔 한 것이니 이것이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간교한 뱀은 어리석은 여자에게 정말 사랑하는 줄로 생각할 만큼 꾀었던 것이다. 언제나 꾀임이라는 것은 감언이설이 들어간다. 그런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감언이설을 좋아하게 되며 지혜로운 사람은 충성된 사람의 권고를 달게 받는 것이다. 기독교가 언제나 세상과 평화적으로 타협을 하지 않고 강하게 회개 운동을 일으키며 나갈 때는 부흥되었으며 나라도 복을 받았던 것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일이요, 미혹이라는 것은 죽이기 위해서 평화롭게 말하는 일이다. 이제 평화 같으나 죽을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진리 아닌 것을 가지고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단체가 있지만 진리로 뭉쳐진 단체가 아닌 것은 결말에 가서 아무런 열매 없는 죽은 나무같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역사하시므로써 진리로 하나된 단체를 이루신다.

  이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세우신 법인데 그 법을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같이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란 놈은 언제나 진리가 탈선된 단체를 이루기 위하여 간교한 방침을 쓰게된다.

  오늘날 소위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진리에 가감된 단체를 이루게 된 것은 전부가 사단의 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로 하나되게 위한 평화 외에는 전부가 죽음을 가져오는 평화이므로 사단의 유혹이라고 본다.

 

  2. 인물을 중심하여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어떠한 인물을 숭배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따르면 평화요 따르지 않으면 싸움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인물을 숭배할 수는 전혀 없다. 언제나 인물을 중심하여 이루어졌던 단체는 그 사람이 쓰러질 때에는 아무런 열매 없이 분산되고 만 것은 역사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대표자도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고 모든 대중도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것으로 한 단체를 이루어야만 세계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한정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중심한 단체로 이루어진 평화라야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람에게 아부하고 숭배해서 자기의 권리를 보장해 보려는 일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므로 대표자가 오히려 바른 일을 할 수 없고 인의 장막 속에서 갇혀있던 사람으로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아부하는 사람의 한 도구가 되는 수도 있다.

 

  3. 어떤 주의의 일을 중심하여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이니, 공산주의니, 신비주의니, 인본주의이니, 협상주의이니 하는 등등의 단체가 있다. 그러나 그 주의라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람에게 완전한 평화를 줄 수도 없고 오로지 허영심에 불과한 것으로 되고 만다.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람들은 자기 주의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평화를 누리고 다른 주의는 배격하는 폐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믿고 그 복음을 중심하여 뭉쳐진 단체로써 될 것이다.

 

 

3. 시국을 몰라 헛수고하는 일

  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전부가 다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는 모든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날마다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떠들다가 하루살이 같이 죽으리라고 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집도 지어야 하고 가정도 이루어야 하고 여러 가지 계획도 세워야 되겠지만 이것만 목적을 두었다는 것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집을 짓는데 유명하다고 볼 수 있고 길을 닦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날마다 자기 몸 하나를 단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되어있다. 집을 지을 만한 형편도 못되면서 좋은 집을 짓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요, 도로를 닦고 다닐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면서 그 길을 닦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요, 몸치장을 할 정도의 형편이 되지 못하고도 몸단장에 전력을 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다. 우리가 이 시국에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이 몸이 거처할 집을 짓는 것보다도 나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지금은 집을 높이 짓는 것보다도 자기 인격이 향상하는 것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다 하여야 될 때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인격이 가장 훌륭하다. 소위 현실주의라는 것은 그때 그때의 현실에 따라서 살자는 것인데 이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불의의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가 세력을 쥔 현실에서 불의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세하면 자본주의의 현실을 따르고 공산주의가 우세하면 공산주의의 현실을 따른다는 것은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바람잡이와 같은 생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현실이 올 때에는 자본에 끌리지 않는 인격을 가지고 공산주의의 현실이 올 때에는 그 사상에 흔들리지 않는 인격을 가지고 어찌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이 되는 시국이 왔느냐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다. 계6:1이하를 보면 백마의 2차 승리가 이루어질 때에는 붉은 말과 검은 말이 대립될 것이 보여진 것은 심판기에 가서는 붉은 세력과 검은 세력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붉은 세력이요, 자본주의는 검은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붉은 사람도 되지 말고 검은 사람도 되지 말고 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협상주의의 현실이 온다고 해서 협상을 따르게 되면 얼룩말이 된다. 계시록 6장에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얼룩말로 나타난 것은 흰말이 승리하고 또 두 번째로 승리할 시국에는 붉은 말이나 검은 말이나 얼룩말을 따르지 말고 흰 말을 따라 간 사람이라야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흰 말을 탈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만 할 때가 이 시국이라고 본다.

 

  2. 우리는 빨리 다니는 길을 닦는 것보다도 우리가 앞으로 나갈 신앙 노선을 바로 가지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아무리 빨리 다니는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사상 노선을 바로 가지지 못했다면 빨리 다니는 길이라는 것은 하등에 필요가 없이 될 것이다. 사상전을 할 시국을 만나서 국민들의 사상의 길을 바로 닦아주는 지도자가 못된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로 돌아가고 만다. 공산당은 모든 국민에게 사상을 닦아주느라고 심지어 허위 선전까지 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공산당을 없이할 진리 사상의 길을 닦아주는 일을 해야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고속도로는 잘 닦아 놓았어도 국민들의 진리 사상의 획선을 바로 잡아주지 못한다면 고속도로를 닦은 그 수고는 다 헛수고가 될 것으로 본다.

 

  3. 우리는 겉모양을 단장하는 것보다도 속 사람을 단장하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겉 단장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겉 단장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치라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되어야 하며 백성의 인격을 바로 세우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인격으로 지도하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겉모양만 내는 정치를 하면 백성들도 겉모양을 내고 있는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가 겉모양을 내는 정치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성들까지라도 겉모양만 내려고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지도자가 자기 위신을 세워 보려고 한다는 것은 하는 일이 위태로워져 가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체 하는 것이요, 악한 사람이 선한 체 하는 것이요, 사기꾼이 양심이 바른 것처럼 하는 것이니 우리 나라의 형편은 사람들이 다 겉 단장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든다면 철모르는 미성년들이 겉모양을 내기 좋아하는 것과 같다. 우리 나라의 국민들의 수준이 너무나 얕기 때문에 문화인 인체, 신사 인체, 숙녀 인체 하는 단장을 하고 다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각성을 해서 72년도에 오는 시국은 어떠한 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인격을 바로 세우며 사상 노선을 바로 닦으며 생활 개선을 하되 겉모양을 내지 말고 외빈내부의 생활을 해야될 것이다.

 

 

4. 숨어 있던 사람이 나타나 일할 때

  언제나 위기를 만날 때에는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가서 극도로 위기를 만날 때에 숨어있던 모세를 강권으로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난국을 돌파하게 하였고 북방 이스라엘이 위기를 만날 때에 숨어있던 엘리야를 명령하여 바알 선지에게 승리하게 하였고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을 때에 포로 생활에서 숨어있던 순의 종들을 들어 예루살렘을 복구하게 하였고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하에 있는 유대 나라에 숨어 있던 나사렛 예수가 나타나므로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이루어졌다.

  72년도는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타나야 할 때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지와 예정 아래서 그 시대에 써야할 종들을 다 숨겨 놓았다가 홀연히 나타나게 하셨던 것이다. 극동 난제 위기를 만난 오늘에 극동에서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나서 역사할 것을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할 적에 지렁이 같은 야곱을 새 타작기로 쓴다고 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인격이 숨겨져 있는 가운데서라야 완성되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이미 나타난 종들로 말미암아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위기를 만나게 되면 어떠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기도의 분량이 찬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종말의 역사는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역사이니 만큼 억울함을 당하고 압제를 당하면서도 악으로 대하지 않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기도하던 종들이 기도 응답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남을 압박하던 자는 넘어지고 압박을 당하면서 기도하던 사람은 홀연히 큰 역사가 임하므로써 자신도 감당치 못할 격동이 오게 되어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강하게 나서는 일이 있게 된다.

  이날까지 인간의 방법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들도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나갔지만 종말의 역사는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조금도 필요가 없는 응답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어떠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강권으로 보내듯이, 아모스를 강권으로 보내듯이, 갑자기 농장을 떠나고 직장을 떠나서 나서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위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어떤 사람의 제재를 받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2. 말씀의 변론이 완전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날까지 어떤 주석이나 학설은 모두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완전 변론의 역사를 입에 받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증거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무식하다 하여도 그 입의 변론은 누가 당할 수 없으리 만큼 나타나는 일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의 증거를 들을 때에 택한 자라면 바로 깨닫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일이 있게 된다.

  오늘날 강단에 서는 종들이 너무나 말씀이 혼선된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심판을 나릴 수가 없으시므로 심판의 변론을 바로 하는 종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의 변론이 완전한 종들로 말미암아 거짓선지의 미혹의 영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3.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려면 죄의 생각이나 나쁜 성질까지도 완전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에 죄의 생각이나 죄의 질이 있어 가지고는 도저히 허락받고 나오는 사단의 세력과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는 누구든지 십자가만 믿으면 마귀 세력이 물러가게 되었지만 종말에는 마귀 권세가 허락을 받고 몸에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권세가 있으므로 자신이 죄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허락 받은 사단의 세력을 짓밟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숨어 있으면서 자기의 인격을 완전히 무장한 종들이 나타나므로 북방 세력을 무찌르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짐승의 정권이라는 것은 마귀의 권세를 받았으므로 죄에 관한 것이 남아있는 사람은 그 권세를 무찌르고 나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죄악의 권세를 짐승이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상전이라는 것은 의의 사상과 죄의 사상이 싸우는 것이니 오늘날 공산 사상과 싸우려면 자신이 죄에서 완전히 떠나는 인격을 가져야 주의 천사가 같이 하므로 북방을 무찌르고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북방 세력을 이기는 것은 기도의 응답으로 되는 것이니 기도의 향이 찬 자는 나서게 될 것이고 마귀 미혹을 말씀으로 물리친 자는 공산주의의 변론을 말살시키게 될 것이고 거룩한 인격을 완전히 받은 자는 죄의 세력인 공산주의와 싸우게 될 것이니 우리는 기도로 무장, 성경으로 무장, 변화 성결로 무장을 갖추어야 될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앞으로 이 세상은 공산주의와 협상하게 될 염려가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는 어떠한 방향을 취하여야 되겠습니까?

【답】이날까지는 우리 기독교가 정치와 종교는 분리라는 것을 가지고 정치는 정치요, 종교는 종교라고 하였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사상전을 하는 일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사상전에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한 민주 정당이 아니요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상을 가지고 세계를 통일해서 기독교 사상을 없애고 공산주의의 사회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자기들의 사상에 굴복지 않는 자는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써 싸워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는 공산당과 끝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으로 명확히 밝힌 것이 즉 심판과 새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의 사상을 대적하는 세력은 전부 없애는 심판을 내리고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가 된 사람만 사는 평화 왕국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인류 종말이라는 것은 마귀의 사상과 하나님의 사상으로 대립이 되어 마귀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어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세상 사람이 공산주의와 협상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끝까지 사상적인 투쟁을 해야만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될 것입니다.

 

  2. 성경 본문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의 거짓 선지들은 손에는 성경을 들었지만 입으로는 성경과 거리가 먼 학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공산주의와 협상을 하는 논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공산주의와 타협을 한다는 것은 양의 옷을 입고 이리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옷을 입고 실지는 양떼를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죄의 사상을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죽게 하셨고 마귀를 없애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 것도 죄와 싸우는 일이요, 죄의 세력을 이 땅에서 없애기 위하여 재림하는 것도 죄와 싸우는 일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죄인들에게 죄가 없는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이요, 심판이라는 것은 죄가 없는 사람만 남게 하고 죄인은 완전히 없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와 협상이라는 것은 성경을 대적하는 일이 됩니다.

  성경은 죄와 싸워 이기라는 것이 목적인데 죄의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나가는 미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3.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파라는 것은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가 아니요, 교파에 얽매인 단체라고 봅니다. 교권이라는 것은 성신 떠난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요, 진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상인데 이 사상을 가진 자는 교파를 초월해서 한 단체를 이루게 되는 것은 어떤 규칙이나 도덕에서가 아니요, 마음속에서 진리가 움직이는 불타는 양심 사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가 공산주의를 이기고 새 시대를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단체는 하나님 편이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가 같이 해서 영원한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문】2. 우리 백의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살 길이 있게 된다는 것을 신앙 양심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 신앙 양심으로 성경을 가지고 말한다면 우리 민족의 살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창9:26)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셈의 장막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에 인류 종말에 셈의 장막의 환란은 북방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내려오므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므로 북방 세력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셈의 장막인 아시아가 북방 악의 세력에게 먹힘을 당하고 남은 땅조차 다 협상 국가가 될 우려가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백의 민족이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는 것은 어느 나라보다도 반공심이 강한 사람인데 아시아가 협상으로 기울어진다면 우리 나라에서 저질러 놓은 모든 문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증거한다면 동방 땅 끝 바닷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동방 땅 끝에 나타나시게 되어 모든 세력이 그 역사 앞에 떨게 되므로 원수의 세력이 다 쓰러지게 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이 동방 땅 끝에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나는 하나님을 믿는 양심에서 담대히 말합니다.

  우리 나라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는 지금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첫째 : 이날까지 숨었던 말세의 비밀이 우리 나라에 나타난 일이요,

  둘째 : 멸공 승리의 새 노래가 우리 나라에 나타난 일이요,

  셋째 : 새로운 권세 새 힘의 역사가 우리 나라에 내리고 있는 일이요,

  넷째 : 멸공 진리의 말씀이 우리 나라에 날마다 내리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이 민족에게 소망이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아직까지 두고 보자는 상태에 있지만 동방에 말씀이 나타난지 15년이 되는 오늘에 나타나는 열매를 볼 때에 반드시 우리 민족의 살길은 동방에 나타난 말세 비밀의 복음을 세계에 선포하며 강하게 일어서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어 이 나라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나타나게 되어 어느 나라보다도 빛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성경에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이사야 성경은 동방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친 말씀이요, 계시록은 동방에 나타난 역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 천사의 지시입니다. 과거 역사를 본다면 이것보다도 작은 일이 나타났어도 그 민족의 살 길이 되었거든 하물며 이런 놀라운 일이 이 민족 위에 나타났는데 어찌해서 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망하면 우리 민족이 망할 것이고 하나님이 승리하면 우리 민족이 승리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해 돋는 편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사59:19)

  역사를 비추어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고 절망, 낙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 오셨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백의 민족 위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일은 이미 시작하였고 큰 역사가 임할 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7년간 금식 기도회가 계속된 일입니다.

  1965년 1월부터 40일 금식 기도회가 열렸는데 지금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이 400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없던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에 히스기야 왕의 하룻밤 기도에도 북방 앗수르가 망한 것을 보면 새일 수도원에서 7년 동안 금식 기도회는 필연코 승리의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둘째 : 하늘로부터 오는 호소 기도문이 새일 성가로 왔는데 지금 70여장을 가지고 7년간 매일같이 합심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역사가 올 징조라고 봅니다.

  셋째 : 7년간 조금도 쉬지 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수도회가 계속되어 수많은 멸공 진리 투사가 일어난 일입니다.

  넷째 : 이뢰자 목사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멸공 진리가 강물이 흐르듯이 계속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붓만 들면 멸공 진리의 책자를 낼 수 있는 말씀이 한 종을 통하여 얼마든지 나온다는 것은 승리할 징조라고 봅니다.

  현 기독교 교권주의자들이 공연히 새일 수도원에 일어나는 역사를 이단이라고 탄압을 하지만 진리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탄압하는 교권은 무너져도 탄압을 받고도 묵묵히 기도하던 우리들은 이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양심에서 말하자면 공연히 남의 풍설이나 듣고 함부로 남을 정죄한다는 것은 너무나 망령된 일이라면 억울한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묵묵히 문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3. 우리 나라는 선지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은 앞으로 반공 투쟁에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정부에 큰 축복이 올 일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사상이 없는 사람은 바람 앞의 겨같이 날아갈 것이요, 교회를 다니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사상이 발라서 끝까지 싸우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나타나듯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상 싸움을 하는 정부는 자동적으로 큰 변동을 가져오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는 심을 때부터 바로 심어야 하듯이 신앙이라는 것은 시작할 때부터 사상이 발라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사상이요, 인격이요, 생활이라고 봅니다. 사상과 인격과 생활이 없이 강단에 서는 사람도 가증한 일이요, 사상과 인격과 생활이 없이 공연히 교권만 쥐고 싸우는 것도 가증한 일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소위 거룩한 종교라는 간판 밑에서 가증한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느 교파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열방의 재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사야 60장을 읽어보아도 너무나 똑똑한 사실입니다.

 

 

【문】3.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답】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요 겸손히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고 사26:3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완전하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요 너무나 실수가 많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진노의 날에 어떻게 하면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끝까지 기다리고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고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사25:9, 30:18).

  여기에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 믿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통한 일을 당해도 이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줄 믿고 기다리는 것이며, 아무리 실패를 했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실 줄 믿고 기다리는 것이며, 아무리 궁핍이 와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심지가 견고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마음이 변치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절대 순종하는 마음이 강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7:32).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순종치 않는 자는 진노의 날에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본문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계22:18을 보면 듣고도 가감하게 되면 재앙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절대로 순종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롯의 아내를 구하기 위하여 천사가 손목을 쥐고 나왔지만 순종치 않을 적에 버림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분노한 남편이 아내가 조금이라도 순종치 않는다면 사랑할 수 없고 큰 책망이 있는 것 같이 우리 신랑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조금도 용서가 없을 때이니 아무리 주의 종이라도 불법이 있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계9:4에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한 종을 해하라는 것입니다. 이 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인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인정을 받은 종에게 오는 왕권의 인입니다.

  부활 성도는 순교를 당한 자라야 되고 변화 성도는 아무런 어려움이 와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말씀을 증거하는 자라야 됩니다. 목숨을 바쳐서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그 말씀대로 역사가 내릴 때에 하나님의 인권 역사가 오므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해 주시므로써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수가 없으므로 인정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인정하시고 넘어져도 일으켜 주는 역사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미7: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남은 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말씀이 있으니 이것이 요한 계시록에 보여준 비밀이며 선지서에 가르친 비밀입니다. 죄인을 부르는 날에는 모든 육체가 풀같이 쓰러지게 되었지만 진노의 날에는 당신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절대적인 보호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될 것입니다(사40:10~11).

  성신의 인이라는 것은 은혜시대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역사를 뜻합니다.

 

  4. 죄과를 떠나야만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중생을 목적으로 하고 역사를 내리셨지만 진노의 날에는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정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보호한다고 하시었습니다(사4:4~5). 하나님께서 은혜의 날보다도 진노의 날이 올 때는 더 강하게 역사하셔서 사람의 몸까지 구원을 받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것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인 말씀입니다(계10:7).

 

 

【문】4. 지금 북방 세력이 재침한다고 정부에서까지 비상 사태 선포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성경을 보면 인류 종말에 북방 세력이 지경을 정하고 있다가 그 지경을 밟고 재침할 때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시며 하나님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치게 한다고 분명히 미5:5이하에 말했습니다. 만일 공산당이 남침을 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될 이유가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북방 세력이 동방 아시아를 완전히 차지하고 만다면 동방 땅 끝에서부터 종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무효가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지 않았던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방 세력이 일어나서 재침을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종들을 수풀 속의 사자같이 들어 쓸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금번에 전쟁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무엇보다도 참된 양심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살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 계셔서 우리 머리 위에 이슬, 단비같이 역사를 내리시고 계시면서 참된 종들이 활동을 못하도록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으로 받고 앉아 있기 때문에 북방 무신론자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을 압니다.

  북방 무신론 공산당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으로 역사를 내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로 북진하게 될 때에 철의 장막 속에 있는 백성들은 무신론 공산당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기만적인 정책을 쓰던 그 세력은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전쟁은 사상전인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면 무신론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공 연습을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 합심 호소하는 성회를 열고 정치인이나 민간이나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찾을 때가 온 증거입니다. 동방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에 응답이 내려서 북방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은 어느 선지나 하나같이 묵시를 받은 인간 종말의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단결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게 됩니다.

  사명자들은 이러한 때를 당하여서 교파를 초월하고 합심 단결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호소가 있으면서 멸공 진리를 강하게 들고 일어날 때에 진리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긴급한 시기는 72년도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원수의 세력을 먼저 강하게 들어 쓰시는 것은 당신의 종들을 더 강하게 하여 역사하게 하실 징조입니다. 만일 이때에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잠잠히 있다면 하나님 앞에 큰 막대기를 맞을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72년부터는 이말 저말 하지 말고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말고 동방에 나타난 멸공 진리 운동에 총 궐기하게 될 때에 이 나라는 세계에 빛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특  집  

 

1. 새해에 새로운 소망을 말한다

  72년도는 새로운 소망이 있는 해라는 것을 말한다. 인류 역사상 72년같이 새로운 일이 많은 해는 처음일 것이다. 지금 공산당들은 72년에는 자기들이 큰 승리나 한 것처럼 잠꼬대를 하고 있다. 중공이 유엔에 등장하여 여러 가지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72년을 공산당이 망할 징조가 나타나는 해가 되리라고 본다. 미군이 물러간다고 해서 공산당이 이길 것처럼 하고 있지만 미군보다 강한 하나님의 군대가 일어나게 되니 하나님의 큰 군대 앞에서는 공산당이 할말없이 입을 막고 머리를 숙이게 될 것이다. 입이 닳도록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는 소리를 미친개가 짖듯이 귀가 아프리만큼 하고 있던 공산당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은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을 의지할 때는 잠잠하고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때가 올 때는 강하게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가 너무나 똑똑히 증명하는 사실이다.

  금년 3월에는 동남아시아 5개국이 중립국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볼 때에는 사상이 없는 민족의 소리라고 생각된다. 72년은 중립에 설 때도 아니요 협상할 때도 아니요, 강하게 일어날 때이다. 참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72년에는 누가 사상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반공이라는 이름 하에서 동맹국이니, 군사 협정이니 하고 떠들다가 불리하다고 중립국이니, 협상이니 한다는 것은 바람에 불리어 흔들리는 허수아비 같은 정부이며 돈에 따라가던 품팔이꾼이라고 볼 수 있다. 누가 도와줄 적에는 반공이니, 멸공이니 하다가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반공, 멸공 소리는 언제 했었더냐 하고 고양이 앞에 쥐같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면 그야말로 인간답지 못한 인간이요, 정부답지 못한 정부요, 종교답지 못한 종교이다.

  사상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식충이가 될 것이고 사상이 없는 정부라는 것은 밥벌이하는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고 사상을 지키지 못하는 종교라는 것은 종교 지도자의 한 직업소 밖에는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참된 인간이 누구이며 참된 정치인이 누구이며 참된 종교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72년도를 새로운 소망이 보이는 해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나오고 새로운 교회가 나오고 새로운 정부가 나오고 새로운 역사가 나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맞추어 본다면 우리 나라는 이제부터 새로운 소망이 나타날 때가 왔다고 본다. 달러를 따라가던 사람도 한 정당의 세력을 따라가던 사람도 한 교권의 세력을 따라가던 사람도 하나같이 쓰러지는 때가 온다하여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던 종들은 영권, 물권을 받아 가지고 죽음에서 천국을 바라보던 방향을 살아서 새 시대에 가는 방향으로 돌이키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소망이 넘치는 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경, 귀머거리 같은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좌?우로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참된 진리의 눈을 뜨고 귀가 열린 사람은 가장 넘치는 소망 속에서 넘치는 새 힘을 받고 넘치는 기쁨, 넘치는 사랑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새순같이 새로워지는 인격을 받아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고요한 밤, 침상에 자리잡고 맑은 심령으로 조물주를 바라보니 소리없이 새 힘이 나리도다. 여호와여, 내가 무었이관대 새 힘을 내리시나이까? 이 힘만 승리의 열매가 될 줄 믿나이다.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을 받은 자 되려면 이 말 저말 듣지말고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읽어 그대로 믿고 용기 있게 여호와를 바라보라. 누구든지 새 힘을 받게 되리로다. 72년 부터는 새 힘을 받지 못하는 자는 쓰러질 위기가 왔도다.

 

 명  상

  맑은 아침, 맑은 정신, 맑은 영감에서 맑은 하늘, 맑은 햇빛 오늘도 내 눈을 밝혀 주는구나. 내 눈이 있다한들 아침빛이 아니면 흑암이로다. 이와 같이 내 마음 양심이 있다 하여도 주의 비추는 진리의 빛이 아니라면 흑암이로다. 주의 말씀의 빛 양심속 비쳐주니 나의 나갈 길 환하게 보이도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빛 따라 갈 때에 어둠속에 잠자는 사람들은 어리석게 보는 일도 있도다.

  슬프다! 잠자는 심령이여! 빛을 흑암으로, 단 것을 쓴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은 자 되지말라. 아무리 북방 흑암이 내 덮으나 이 속에 말씀의 빛, 동방에 나타났으니 이 빛의 세력 받은 자 앞에 북방에서 오는 연기 사라지네. 흑암은 무력으로는 물리치지 못해도 말씀의 봉홧불 높이 들면 물러가리로다.

 

 

2. 새해에 새로운 감상속에 새로운 영감으로 나오는 사명자의 말

  하늘 높이 솟아오른 독수리같이 영계가 올라간 자는 이 시대를 멀리 멀리 내다보고 갈팡질팡하는 양떼를 바로 인도하리! 캄캄한 감옥 속에 갇혀있는 죄수들이 배가 고파 빵 하나만을 생각하듯이 죄의 사슬에 매여 흑암 속에 갇혀있는 영들은 국가이니, 정부이니, 가정이니 생각할 여지없이 내가 죽겠는데 하면서 먹을 것만 찾고 있는 굶주린 개같이 허덕이는 인간이 되었다면 이제부터 그의 신세 가련하리, 먹을 것을 입을 것을 찾아 허덕이는 생활이 이날까지는 평탄의 길을 갔지만 이제 그들 앞에는 함정과 올무가 닥쳐왔으니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은 어찌 할꼬?

  산아, 나를 가리우라 바위야, 나를 가리우라 바위야. 나를 숨겨다오 하는 후회 막심의 공포 속에 떨 날이 문 앞에 이르렀구나. 인생살이 그날 그날 살아왔다고 이제도 그날 그날 살아가리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자던 잠 깨어 참된 인도자가 누구인지 찾아 보라. 거짓 선지들의 꾀임의 말을 듣고 미친개가 짖듯이 이단 삼단 하던 말은 금년부터는 다시 하지 말라. 금년에도 이런 사람되면 그의 신세 가련하리.

  이사야가 입의 부정을 떨다가 입이 깨끗해지며 보내심을 받듯이 과거에는 알지 못해서 하지 못할 말을 많이 했지만 금년부터는 하나님 말씀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진리의 사람이 되어 보자. 품팔이 할 곳 없다고 깡패 노릇을 하는 타락한 민족 되지 말고 이제부터 우리 할 일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내냐 네냐 할 것 없이 삶의 길을 따라가는 빛나는 나라의 국민이 되어 보자. 월급 받아 가정 생활 유지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염치없이 국민들에게 오른 손을 내밀던 그 손길. 이제부터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일꾼 되어 깨끗한 손 되고 보면 남의 나라 살려주는 사상 지도 영계 지도를 할 수 있는 선지국가 이루어지리로다.

  골방 속 깊이 묻혀 숨은 봉사 숨은 기도를 하면서 시대의 숨은 비밀을 바로 안 사람들은 잠잠하지 말고 일어나 경고의 나팔 불때는 왔다. 시련 끝에 인정받고 환란 중에 승리하는 용사의 발걸음 돌진의 걸음을 걸어 저 산을 넘어 눈물 없고 전쟁 없고 고통 없는 영광의 새 나라에 들어가 왕권 반열 이루어 보자.

 

 

3. 새해를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사랑의 자체가 되시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71년을 시련의 과정에서 길러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검열 하시옵소서, 나는 나를 판단할 수 없나이다. 나의 판단은 주께 있나이다 내가 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사오니 주의 뜻만을 따르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새해에는 새로운 역사를 꼭 내리셔야만 하겠나이다. 내가 구하기 전에 주께서 먼저 새로운 역사를 이 나라에 내리시기로 예정 하신줄 믿사오니 새로운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새로운 역사를 할 수 있는 단체를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단체가 사람을 중심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도 여지없이 부패해 갈 것이오니 하나님만을 중심한 단체로써 새 일의 역사를 할 수 있는 푸른 나무와 같이 무성한 단체를 이루시되 음녀의 사상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순교자의 동무로 이루어지는 단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이날까지는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한 것이었사오나 이제부터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 성도의 단체가 이루어지는 일이 이 땅에서부터 있게 하옵소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가는 우리라는 단체가 이루어지도록 완전 개조, 성결 변화, 능력 권세를 대중적으로 내리셔야만 하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이때는 완전한 승리의 용사로 뭉쳐진 단체가 아니고는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을 내가 분명히 깨달았사옵나이다. 악마의 미혹을 받아 붉은 용의 권세를 가지고 나오는 붉은 짐승의 단체를 깨쳐버리는 권세의 종들로 뭉쳐지는 단체가 나오는 것은 사람의 힘에 있지 않고 아버지의 강권 역사로만 되겠나이다. 강권으로 인격을 개조시켜 주옵시고 강권으로 무장을 시켜 주시옵시고 강권으로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러한 역사가 있기 전에는 짐승의 군대와 싸울 자는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나이다. 모든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짐승의 세력을 무서워하고 있나이다.

  여호와여, 나타나시옵소서.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일이 이 민족 위에 있게 하옵소서. 만일 여호와께서 이 해에도 잠잠히 계신다면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난국을 만났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옵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이 시대에 세우셨사오니 아버지께 있는 모든 것은 내게 열매로 나타나는 일이 있게 될 줄 믿나이다. 이날까지는 골방 속과 바위틈에서 나를 길러주셨지만 새해부터는 민족 위에 나타나 경고의 나팔을 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내가 잠잠하면 거짓 선지가 한국 교회마저 삼켜 버리겠나이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양떼를 불쌍히 보시는 아버지여, 나를 보지 마시고 당신의 교회와 양떼를 돌보사 강권으로 나를 들어 써 주시옵소서.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며 새로운 역사가 세계를 향하여 진출해 나가는 일이 있도록 용사 집합, 합심 단결의 역사를 주시는 동시에 거짓 선지의 세력을 이 땅에서 말살시키는 승리가 있게 하옵소서. 참된 선지로 움직이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남은 종을 깨우쳐 모으는 역사가 이곳에서부터 단체로 일어나게 하옵소서.

 

 

4.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종의 부탁

  독자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부탁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책은 매달 정기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는 여러 성도님들께 가장 필요한 책이라고 봅니다. 맑은 양심으로 기도하시면서 읽어보신다면 아무리 피곤한 심령이라도 소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의 머리로 연구하여 기록된 책이 아니고 이뢰자 목사님께서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1967년 10월에 빈민굴에서 기도하시던 중 혀가 진동하는 일이 있은 후 입술에 항상 말씀이 같이하므로 입으로 부르시는 대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불러서 기록된 말씀의 칼, 인간론, 성경 해석법과 요한一서 강의, 조직 신학과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의 종말, 새 일 성가집을 이미 세상에 내 놓았고 금년 1월부터는 정식 월간지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새일 수도원에서 수도생들에게 9시간씩 학과를 공부시키시며 쉬는 시간에 제가 이 목사님께서 입으로 말씀을 불러주시는 대로 기록해서 원고를 작성하여 매달 발행하기로 되었습니다.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사람으로써 부탁을 드리오니 널리 이해하시고 다음과 같이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이 목사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대로 성경 본문을 택하시고 제목을 택하시고 그 다음에 부르시는 대로 제가 기록할 때에 정확히 받아 기록하여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출판된 글이오니 이 글을 읽으실 때에 이 목사님의 저작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로써 세상에 나타난 말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성경과 같이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성경 본문을 그대로 설교할 수 있도록 한 변론의 말씀이라고 믿어집니다. 논설과 신앙 문답도 이 목사님의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대로 제가 기록한 글이요, 특집까지도 꼭 같이 기록한 글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읽으실 때에 독자 여러분들께서 영적으로 이 글이 성령으로 온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수도생의 한 사람이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희생 봉사를 하고있는 어린 사람입니다. 이 글을 제가 정서로 쓰려면 기도 없이는 도저히 쓸 수가 없고 하나님의 성신의 돕는 은혜 속에서 기록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으로 목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월간지는 앞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이 올 것으로 믿어집니다.

  왜냐 하면 이 목사님께서는 말씀과 실천이 같으신 분이신데 조금도 쉬지를 못하시고 이 책을 발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토요일에는 서울로 상경해서 새일 중앙 교회를 목회하시고 월요일에는 다시 새일 수도원으로 오셔서 매일같이 쉬지 못하시고 노력하시는 것을 제가 볼 때에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음과 같이 마음에 다짐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 기울여서 정성껏 이 글을 정확히 기록하는 일을 해서 이 사업에 작은 정성이나마 바치고자 합니다. 여러 귀하신 종님들께서는 부족한 저를 위하여 많은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식으로 구독 신청을 하실 분이 계시다면 다음과 같은 주소로 연락해 주십시오. 얼마든지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기록인  조 신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