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2월호)

설  교  편

 1. 인간 종말의 완전승리는 하나님의 인 (계7:2~4,9:1~5,14:1~3)

 2.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자 (마11:28~30)

 3.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일 (사24:1~23)

 4.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 (사25:1~12) 

 5. 예언과 신앙 문제 (요14:25~31)

 6. 평화를 보존할 수 없는 일과 심판 (계6:1~4, 19:11~16)

 7. 빛과 어두움 (창1:1~5, 요1:1~5, 사60:1~3)

 8. 택한 자의 기도의 힘 (눅18:1~14)

 9. 거룩한 믿음으로 이룬 가정 (엡5:32~33, 6:1~4) 

10. 가정에 오는 난제와 인류 문제 (창3:6~17, 마1:18~25)

11.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 (롬2:1~8) 

12. 깨닫는 자의 열매 (마13:18~23)

13. 궁창 밑의 역사와 궁창 위의 역사 (겔1:22~28)

14. 기도의 정의 (골1:9~12)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의 환란과 성도의 각성

제1과 북방에서 오는 환란과 성회운동 (욜2:1~17)

제2과 만국이 일어나는 환란과 회개 운동 (슥12:1~14)

제3과 중동 전쟁과 천사의 보호 (단11:40~12:1)

제4과 조약을 파하는 환란과 안정처 (사33:7~24)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23과 로마로 가는 바울 사도 (행23:11~13)

제24과 풍랑을 만난 바울 사도 (행27:9~37)

제25과 멜리데에서 이적을 행한 바울 사도 (행28:1~10) 

제26과 로마에서 전도한 바울 사도 (행28:16~23) 

 

논 설 편

1. 허락 받은 붉은 마귀를 무서워 말라

2. 진실한 자가 이기는 싸움

3. 일할 것은 많으나 바로 일하기는 어려운 세상 

4.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더 믿어지는 일 

5. 작은 일을 바로 할 때에 큰 일은 열매

 

신 앙 문 답

1. 오늘날 교회가 너무 복잡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이것을 없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2.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사람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해야 올바른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4.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왜 많은 파가 생기게 됩니까?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5. 기도라는 것은 어떠한 기도라야 응답의 역사를 받게 됩니까?

 

특    집

1. 소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걸어가는 사명자의 발걸음 

2. 승리의 소망이 넘치는 사명자의 말

3. 72년 2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4. 부탁의 말씀

5. 목사 시취 문제와 답

6. 전도사 시취 문제와 답 

 

 

 

 

 

 

 

 설 교 편

 

인간 종말의 완전 승리는 하나님의 인

- 계 7:2~4, 9:1~5, 14:1~3 -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 경륜이었다고 본다. 아담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못하였으므로 간교한 뱀을 이기지 못하고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인간 종말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은 반드시 붉은 용의 세력을 승리하고 지상에 평화왕국을 이루게 될 것을 말씀했다.

  인간 종말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의 완전 승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해 돋는 편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인 (7:2~4)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최후에 인간으로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인격을 주는 것이다. 성신의 인은 최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에 초보라면 하나님의 인은 끝을 맺는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성신의 인을 맞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는 운동을 했다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은 원수를 완전히 없애는 결전을 보게 된다.

  기독교의 이날까지 역사는 성신의 인을 맞은 종들이 죽어도 변치 않고 십자가를 증거한 것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십자가 중심에서 끝까지 믿고 나가는 것은 불변의 내적 증거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은 내적 증거만 아니요,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원수를 무찌르고 나가는 역사이다.

  모든 선지들에게 이방이 아무리 강하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이스라엘적인 승리의 평화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뜻한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에 인 맞은 종들이 완전히 승리하게 되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목적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참된 종으로서 붉은 세력을 완전히 승리할 용사들은 해 돋는 편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인의 역사에 하나같이 참여하게 된다.

  붉은 짐승의 세력이 세계를 침투해 나오는 이 때에 인간의 권리가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붉은 세력을 없이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는 어느 나라에 있든지 다 한 단체가 되어 붉은 용의 세력을 승리할 용사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사상전이라는 것은 붉은 용의 권세로 역사 하는 편과 하나님의 인의 역사로 역사 하는 편과 대립이 되는 것인데 붉은 용의 권세를 받은 자는 짐승과 거짓 선지요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자는 14만 4천인 변화성도이다.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일어난 성신의 인의 역사가 온 세계를 정복한 오늘에 와서 교회가 확장되었고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종들이 교회를 침투해 들어오는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므로 세계 통일의 평화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환란과 재앙 가운데 완전히 남은 자가 되게 하며 지상에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신의 인은 천국 복음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인은 지상왕국을 이루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 역사를 뜻한 것이다.

 

  2. 황충떼를 이기는 역사 (9:1~5)

  계시록 9장에 지옥에서 나온 연기가 세계를 덮는 광경이 보여진 것은 마귀 흑암의 사상이 세계를 어둡게 할 것을 가르쳤다. 연기 속에서 나오는 황충은 인간 종말에 마귀 권세의 도구로 씌워지는 인간을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없이할 심판기에는 마귀의 세력을 개방시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지 않는 사람은 다 그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일이 있게 하신다. 기독교는 지금 너무나 혼란한 가운데 빠졌다고 본다. 이 교회를 하나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을 보여줄 적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는 명령을 황충에게 내렸다 이것은 종된 자의 심판을 뜻한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할 때에는 인 맞은 종이 아니고는 역사할 수 없는 환란이 오게 하되 죽이는 환란이 아니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피하리 만큼 괴롭히는 환란이 오게 한다. 이런 환란이 오게 하는 것은 영적으로 종들을 심판해서 인 맞은 종만 흑암을 뚫고 나가 역사 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계11:1에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는 다 척량을 하되 성전 밖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다고 한 것은 다시 예언의 말씀으로 무장되지 못한 사람은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의 세력에 짓밟힌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영적 심판이 오는 것은 그 종의 사상에 따라서 진행된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가 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언약을 세우시고 절대 가감 없이 그대로 행하시므로 지상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3. 세계를 심판하는 역사 (14:1~3)

  계시록 14장부터 19장까지는 성도의 심판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14만 4천이 시온산에 섰다는 것은 지상 다윗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세계를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앤다는 심판 권세의 역사이다. 앞으로 인종 전멸의 심판이 있으므로 지상왕국이 이루어지고 행위 심판이 있으므로 신천신지의 무궁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앞에 오는 심판이라는 것은 인 맞은 종들이 전하는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심판이다. 다시 말하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살 것이고 지키지 않는 자는 죽게 되는 재앙 심판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붉은 용의 세력을 개방시켜 시험을 해보는 것은 인종 전멸의 심판을 행하기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세계가 불타므로 인종이 전멸될 때에 남은 백성이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려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이 전하는 말씀을 절대 순종하여야 되는 것이다.

  인 맞은 종은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끝까지 싸우는 용사로서 종말의 경고의 나팔을 불게 되는 것이요 그 밖의 백성들은 그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계7:9이하와 같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인간 종말에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은 종과 맞지 못한 종을 갈라서 영적 심판을 나리고 공중에 휴거가 있게 하시는 것이요 인 맞은 종의 인도를 따르던 교회는 환란 가운데 보호하고 그 밖의 세상은 버렸다가 심판해 없이하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시는 것이다.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자

- 마 11:28~30 -

 

  인간생활의 가치는 배움에 있다고 본다. 정신 작용으로 배워지는 활동에서 물질계가 화려해질 수 있고, 영적으로 배워지는 생활에서 화려한 세계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 작용으로나 영적으로나 배워지는 생활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조그만 그릇에 담긴 물이 불의 힘으로 끓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에 배워지는 것으로 오늘날 물과 불의 힘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빨리 다닐 수 있는 세계를 이루었고, 작은 골방에서 책 하나를 들고 배워지는 생활은 정신작용으로 배워진 것보다도 더 빠른 교통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을 영계 생활이라고 한다.

  그러면 주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생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무거운 짐을 벗어야 함 (28)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무거운 짐을 지었다고 본다. 이 짐이라는 것은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이 아니고, 벗고자 해도 벗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이 짐을 지고 가는 자들은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짐 하나를 벗겨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많은 영도자가 있지만 이 짐을 벗겨 줄 자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왕의 아들로서 옥중 방문을 한 일이 있었다.  옥에 간 왕자는 죄수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이렇게 옥에 와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모든 죄수들은 왕자 앞에 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인데 억울하게 옥에 갇혔다”고 하는 것이다. 그 때에 죄수 한 사람은 왕자 앞에 공손히 엎드려서 하는 말이 “저는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를 지었는데, 이날까지 내 생명이 살아서 있다는 것은 임금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자는 이 죄인에게 말하기를 옳은 사람만 사는 옥중에서 죄인 혼자 있을려니 얼마나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냐고 하면서 당신은 이곳에서 나가 자유롭게 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오실 때에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인간들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겨 주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죽어서 죄인들에게 참된 자유를 주는 역사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린 자는 주님의 멍에를 멜 자격이 있다. 죄 값으로 헛된 수고를 하다가 영원히 멸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사망의 법을 벗어나서 주님의 멍에를 메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2.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심 (29)

  주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사람을 향하여서는 항상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다. 택한 사람이 아무리 주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온유하게 대해 주시는 것은 택한 사람을 바로 깨닫게 하여야 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요一5:20).

  그러므로 사울이 아무리 주님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다메섹을 향하여 갔지만, 주님은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말씀하실 때에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깨닫게 해주셨다. 주님께서 바리새교인을 대할 때에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죄인들을 대할 때에는 온유하게 대해 주신 것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당신을 대적하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었고, 알지를 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대하실 때에 언제나 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대해 주셨던 것이다.

  주님께서 온유와 겸손이 없이 대하신다면 우리는 감히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울 수가 없는 인간들이다. 나는 40년간 신앙 생활에 19세에 교회의 성직을 맡아 가지고 오늘까지 배워진 것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이다. 내가 주를 위하여 일을 하다가 넘어지고 실수가 있을 때에 은혜를 더욱 풍성히 내려 주시는 그 은혜를 받았으므로 믿는 형제가 아무리 실수가 있어도 그 형제에 대하여 조금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대해주셨으므로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형제의 실수를 보고 혈기를 낸다든지, 무시를 한다든지, 악평을 한다면 이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주의 일을 한다 하여도 자기 멍에를 멘 사람이지, 주의 멍에를 메고 나가는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소는 쟁기를 쥔 주인의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뿐이다.

   이와 같이 주의 멍에를 멘 자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지도하시는 대로 순종할 것뿐이지, 한 사람이라도 주님이 용서하는 자를 멸시하거나 압박하거나 저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멍에를 메었기 때문이다.  

 

  3. 쉽고 가벼워짐 (30)

  주님께 배우는 생활은 극도로 쉬워지고 가벼워지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주의 멍에는 승리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 멍에는 주님의 승리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이 하등 필요가 없고, 주의 승리의 능력이 오므로써 배워지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둘째 : 주의 멍에는 능력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승리하신 다음에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시는 것은 왕권 받을 인격이 이루어 지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자는 인격적인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로 말미암아 배워지는 생활이 있게 된다.

  셋째 : 주의 멍에는 사랑의 멍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도 억지가 없고 불타는 사랑에서 오는 역사이니 그 사랑에 이끌려 가는 자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가벼워지는 힘을 얻는 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사람은 주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니 주의 명령에 순종할 것뿐이다.

 

  결    론

  주님께서는 택한 자를 배워 주실 적에 쉽고 가볍게 일하도록 배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시므로 배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일

- 사 24:1~23 -

 

  인생의 제일 큰 목적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가장 귀한 일이며, 복된 일이라고 본다.

  이제 인류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오는 이유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으므로 진노가 옴 (1~13)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실 일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파하는 일이다. 이 파한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 가지고 세웠던 교회를 파괴하는 행동을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 대종교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 열방에 전파하여 어느 민족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소위 유물론 공산주의가 나오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정부가 나오고, 파괴하는 거짓 선지의 교권이 나와서 하나님 말씀은 한 신화로 돌리고, 레닌 맑스주의의 학설을 학교에서까지 학과로 가르치고 있으며, 소위 교회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종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과거로 돌리고 마는 신학이라는 간판 밑에서 인본주의의 학설이 교회를 망치고 있다.

  소위 정통이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십자가를 믿으면 그 밖의 하나님 말씀은 해석할 탓이요, 각각 달리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전부가 다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말할 때에 그 사람의 말은 해석할 탓이요, 그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말을 멸시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언약이라는 것은 한 번 기록하면 일 점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계약서를 쓸 때에도 법칙에서 조금도 가감될 수가 없는데, 조물주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각각 해석할 탓이요, 갖다 붙일 탓이라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도 완전한 사람은 한번 언약을 세우면 조금도 가감하지를 않는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가감할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은 진노를 받을 사람의 하는 말이라고 본다.

  나는 40년간 성경을 보는 생활에서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해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본문 그대로 읽어서 짝을 맞추고 읽어서 각 장의 연관성의 원리를 알게 되고, 읽어서 말씀의 목적과 그 방법이 어떻다는 것을 변론하므로 완전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사야서는 영혼 구원론이 아니고, 진노의 날에 영?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론이라고 분명히 믿게 된다. 이 구원론은 진노의 날에 원수의 세력을 없이할 때에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되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해 준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언약을 파하는 자는 진노의 날에 불에 사름을 당하고 말 것이다(5~6).

 

  2. 크게 외치므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함 (14~23)

  가장 큰 일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어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는 일이라고 본다. 물로 심판할 때에는 의를 전파하는 노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고(벧후2:5) 불로 심판할 때에는 동방 바닷가에서부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던 사람들이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의 섬들에서는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 것을 뜻했고, 동방에서는 외치는 역사를 하므로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노래할 것은 궤휼자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여호와 일어나서 교만한 군대를 없이하고 땅의 왕들을 심판하므로 시온산 통치, 다윗 왕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다. 지금 아무리 궤휼적인 공산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러 나온다 하여도 이것은 형벌 받을 마귀의 정책이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은 사실이다.

  지금 크게 외쳐야할 일은 여호와 일어나서 북방 세력을 쳐서 없이할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라고 하여야 할 것이며, 인간들 앞에는 함정과 올무가 있으니 여기에 빠져서 죽지 않으려면 궤휼자의 정책에 속지 말고 시온산 통치 왕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외쳐야 할 것이며 반드시 공산당은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크게 외쳐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크고도 위대한 일은 세계가 불사름을 당하는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과거에도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있었지만,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자는 자손 만대에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

- 사 25:1~12 -

 

  인생이라는 것은 여호와를 찬송하되 그 시대와 역사에 따라서 찬송하게 된다. 가장 복된 일은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찬송하며, 새 시대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여호와의 진실함을 찬송할 일 (1)

  하나님 말씀을 바로 신앙하는 자들이 언제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게 되는 것은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찬송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점점 하나님께 대한 찬송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멀어지는 생활에서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체험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바른 길을 들어가서 사는 생활은 현재나 미래나 항상 가는 생활이 하나님의 진실성을 체험하게 되므로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승리의 역사를 찬송할 일 (2~3)

  누구든지 신앙의 정로를 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편이 승리하는 일을 보고 찬송하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강한 사람이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후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신앙하는 자에게 있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보호를 찬송할 일 (4~5)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환란이 와도 신앙의 정로를 가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빈궁이 없으며 환란이 없는 것이 아니고 빈궁한 일이 오고 환란이 온다하여도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되므로 더욱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신앙의 정로를 걸어가는 자에게 빈궁이 오는 일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신앙의 목적은 현 사회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새 시대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세상에 목적을 두고 날뛰는 자보다는 빈궁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은 이 땅에서 부요한 자보다도 더 많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의 보호하는 역사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4. 여호와의 시대적인 비밀을 알게 되어 찬송할 일 (6~8)

  하나님께서 시대적인 숨은 비밀을 극상 포도주라고 하신 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비밀은 이방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요, 인간 종말에는 완전한 열매를 맺는 역사이므로 인간 종말의 숨은 비밀을 포도주라고 한 것이다(사55:1~3).

  이사야 성경의 목적은 성도들이 완전히 열매를 맺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비밀을 분명히 알게되는 역사는 산을 중심해서 일어날 것을 가르쳤다. 사24:14의 말씀은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안 사람들이 크게 외칠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본 장에 이 산에서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푼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동방의 산을 중심하여 나타나는 말씀 운동을 일으키는 자는 하나같이 눈물 없고 죽음 없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5.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할 일 (9~12)

  이것은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던 자들이 완전 승리를 보게 되므로 구원을 찬송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그 세력은 다 없어지고 끝까지 기다리던 자만 남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된 신앙의 노선을 가는 사람들이 24장과 같이 마지막 환란이 날 때에 찬송할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력으로는 피할 수가 없는 환란이니 땅이 진동을 하며,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같이 흔들리며, 그 위에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환란중에서 구원함을 받는 자들이 노래할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로를 가는 자라면 진노의 날에 오히려 찬송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시는 일을 노래하게 될 것은 영혼 구원에 대한 찬송이 아니요, 영과 육이 아울러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의 받는 축복은 무엇이냐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것이 이사야서의 요지가 되는 것이다.

 

  결    론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끝까지 기다리던 자들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신앙하는 것 보다도, 직접으로 그 역사를 힘입어 구원을 받을 때에 노래하는 일이다.

 

 

예언과 신앙 문제

- 요 14:25~31 -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인생들에게 믿어서 구원을 받고, 믿어서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역사하실 때에 언제나 미리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하시면서 믿으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나 작고 좁은 두뇌를 가졌고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예언대로 행하시는 일을 믿으라고 할 때에 그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하는 것이 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한번 죄를 범했다고 하여서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고 인생을 버린다는 것은 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때부터 예언대로 행하시면서 믿어 복을 받게 하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아브라함에게 말씀대로 행하시면서 믿게 하심 (창21: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은 성경 전체의 제목과 같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즉시에 씨를 주지 않고 나이 100세가 될 때에야 말씀대로 노쇠한 사라의 몸에서 이삭을 낳게 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길러 이삭을 바치기까지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 믿음 위에 축복하신 것이다.

  둘째 : 모세에게 말씀대로 행하시면서 믿게 하심 (출3:6~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상수리나무 아래서 가나안 땅을 네게 준다고 말씀하셨고,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이 찰 때에 여호와 그들을 그 압박 속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대로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이 찰 때에 모세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 조상에게 말한 대로 가나안 땅으로 네 민족을 인도하겠다고 하시었다.

  그 예언이 응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큰 기사를 행하도록 하시어 이스라엘로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참되신 신이시라는 것을 믿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줄 적에 율법과 계명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세상에 나타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행하는 증거를 믿게 하시면서 그들에게 모세 오경을 주셨다.

  셋째 : 다니엘에게 말씀대로 행하시면서 믿게 하심 (단9:8~11)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모세 율법과 선지의 예언을 순종치 않은 죄로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망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로된 생활에서 조금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성별된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들어 쓸 때는 예언한 말씀이 응하는 증거를 믿게 하시고 그 믿음에 의하여 역사하셨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니엘도 다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믿음의 담대함을 얻어 역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부활을 앞에 놓고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담대히 믿고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예언과 신앙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말씀이 생각나도록 해서 믿게 하심 (25~26)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믿게하시는 동시에 모든 말씀이 다 생각이 나게 하시는 것이다. 사도들이 주님을 따라가면서 그 교훈을 받은 것을 그 때는 다 알지를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언대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신을 보내어 역사하시므로 주님의 말씀이 전부 생각이 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큰 힘을 얻는 동시에 주님의 교훈을 증거할 때에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을 친히 체험을 한 신앙에서 담대히 증거하게 된 것이다. 만일 기독교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 분명하게 없다면 그 믿음도 완전한 믿음에 들어 갈 수 없다.

 

  2. 참 평안을 주어서 믿게 하심 (27)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언대로 역사해 주심을 받게 될 때에 평안함이 따르게 된다. 하나님의 예언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겠다는 것이니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자에게 참 평안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참 평안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고 의심할 때에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언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참으로 믿는 자라면 참 평안을 마음에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3. 원수의 피해를 받지 않고 이기게 하심 (28~31)

  예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이기게 하는 역사이니 아무리 세상에 악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그것이 하등에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이기게 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니 앞으로도 완전히 승리할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생활이다. 성경대로 행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성경대로 행하실 것을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 완전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왕권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라면 이루어질 것을 믿는 신앙은 용기 있게 싸워 나가야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역사가 우리 심령을 살리는 복음이 되었고 예언대로 행하실 역사가 우리 몸까지 구원하는 종말의 역사가 된다.

 

  결    론

  기독교는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믿는 것이니 이미 이루어진 것을 의심 없이 믿으므로 인격적인 체험을 받게 되고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마귀 미혹과 싸워 나가는 자에게 이루어질 심판에서 남은 자가 되어 지상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평화를 보존할 수 없는 일과 심판

- 계 6:1~4, 19:11~16 -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평화를 보존할 수 없는 난제가 올 때에 심판을 내리시고 새 시대를 이루신다는 것을 목적을 두고 과거 선지들에게 묵시로 말씀하셨고 사도 요한에게는 계시로 보여 주셨다. 이날까지의 전쟁이라는 것은 평화를 보존할 수 없어서 싸운 것보다도 영토를 침략하는 침략 국가의 행동으로 전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 대전의 1차 2차는 침략 국가를 없애기 위하여 일어났지만 인류 종말의 전쟁은 도저히 평화를 보존할 수가 없는 난제가 올 것을  계시록 6장에 보여 주었다.

  이사야 선지는 북방 앗수르의 세력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임마누엘이 나타나서 임마누엘의 세력이 세계를 정복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쳤고 모든 소 선지들은 이사야에 기록된 묵시의 말씀과 같이 북방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이 될 때에 재림의 주가 오게 될 것을 목적하고 가르쳤다.

  모든 선지의 예언은 구약 시대의 북방 세력을 예루살렘의 성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이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의 세력 안에서 예루살렘을 망하게 하시기도 하시고 다시 북방 세력을 없애고 예루살렘을 동방 고레스로 복구하시면서 그와 같이 인간 종말에 될 것을 가르쳤다.

  선지 예언서는 예언적인 역사로 구약 말기에 이루어지는 동시에 종말에 다시 이루어질 것으로 되어있고 계시록은 구약 선지 예언서에 묵시를 종합적으로 완전 조직을 이루어 보여줄 적에 다음과 같이 보여 주었다.

 

  1. 백마의 1차 승리가 있은 후 심판기가 올 것을 보여줌 (6:1~2)

  모든 선지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전파된 후에 구약 말기와 같이 북방 환란이 올 것을 말했고 계시록에는 백마를 탄 자가 이기고, 또 이기려 한다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런데 이기고 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를 사망의 법에서 성신의 법으로 해방시키는 역사로 천국 복음이 전파된 것을 뜻한 것이요, 두 번째 이기려 한다는 것은 심판을 뜻한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가 일차 승리를 완전히 이룬 것을 보아서 이차 승리의 심판이 올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심판기로 들어가는 시기가 왔다는 것은 계시록 6장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인류 종말인 심판기에 대한 비밀을 분명히 알려면 계시록을 보면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심판기에 관한 것을 분명히 알아서 심판기에 남은 종, 남은 교회를 일으키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성서를 보아서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십자가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역사도 있고 심판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역사도 있으니 심판의 승리라는 것은 성도로서 마귀 세력을 완전히 이기는 것을 말한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죽은 영을 살려서 구원해 주는 일에 승리를 이루었다면 세계적인 인류 전멸이라는 재앙 심판에서 남은 자가 받을 축복에 관한 진리를 전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2. 붉은 말이 세계 평화를 깨쳐 버리는 환란이 있은 후에 심판기가 올 것을 보여줌 (6:3~4)

  붉은 말이라는 것은 백마의 대적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붉은 말을 허락해서 세계 평화를 깨쳐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하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은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붉은 말과 끝까지 싸우는 자는 심판권을 받게 되고 타협하는 자는 멸망을 받을 음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붉은 말을 들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역사를 한 것이다.

  오늘날 붉은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할 때가 온 증거이니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믿고 절개를 지키는 자는 백마를 타는 자가 될 것이고 절개를 지키지 않고 타협하는 자는 얼룩말이 되어서 붉은 말과 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는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하게 되고 진실치 못한 자들은 붉은 용, 붉은 짐승의 세력이 망할 때에 같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

  오늘날 붉은 말의 세력이 평화를 깨쳐 버린다고 해서 이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요 붉은 세력을 심판할 때에 같이 심판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백마 탄 자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고 붉은 말 탄 자의 환란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검은 말이라고 본다. 이날까지는 검은 말이 붉은 말을 대항하고 있었지만 붉은 말의 세력이 세계 평화를 깨쳐 버리는 위기가 올 때에 검은 말은 아무런 싸울 사상이 없으므로 얼룩말에게 먹힘을 당하고 마는 것이 심판기라는 것이다.

  오늘의 자본주의가 협상으로 흐른다는 것은 아무런 사상이 없는 증거이다. 사상 심판이라는 것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는 다는 것이요 행위 심판이라는 것은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사상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영원한 무궁세계는 행위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백마를 탄 자가 심판할 것을 보여줌 (19:11~16)

  백마 탄 자의 심판이라는 것은 마지막 전쟁을 뜻한다. 이 땅에서 붉은 짐승의 군대를 완전히 없애는 전쟁을 백마 탄 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붉은 세력을 없애는 것은 인간의 병력으로 없앨 수 없고 백마를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없앤다. 백마 탄 군대라는 것은 인간의 몸을 가진 군대가 아니고 완전히 변화체를 가지고 승천하였다가 지상강림한 변화성도인데 이 군대가 붉은 군대를 이 땅에서 없이하는 것을 사상 심판이라는 것이다.

  이 땅의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 무력전으로는 완전한 평화를 이룰 수가 없으며 붉은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이느냐 끝까지 사상적으로 싸우느냐 하는 싸움으로 큰 문제가 되는 바벨론 세상이 된다. 그러므로 백마를 탄 자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믿고 지키는 자라야 변화성도가 되어 완전 승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결    론

  인간 종말에 평화라는 것은 사상 통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영토를 많이 가졌다 하여도 영토적인 전쟁으로 승리할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심판을 나릴 때에 심판 받을 사상이냐 심판을 할 사상이냐 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빛 과  어 두 움

- 창 1:1~5, 요 1:1~5, 사 60:1~3 -

 

  항상 빛과 어두움은 대립되는 것이다. 빛이 없어도 어두움이 있을 수 없고, 어두움이 없어도 빛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물질계나 영계나 우리 육적 생활에 있어서 빛과 어두움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물체의 흑암과 하나님의 빛 (창1:1~5)

  물질의 자체에는 아무런 빛이 없는 혼돈, 공허, 흑암이었다. 유물론자들은 물체 자체에 진화할 힘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흑암에 빠져있는 인간들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한 공상적인 이론에 불과하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믿는 동시에 물체에는 어떠한 활동과 무엇을 낼 수 있는 힘이 전혀 없고 하나님의 생명의 빛의 활동이 물체를 움직일 적에 물체는 하나님의 전능의 힘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물체를 움직여주는 역사아래서 그 물체를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쓸 수는 있다. 예를 든다면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무엇을 가져다 거기에 넣으면 돌아가는 기계가 사람의 마음대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는 것은 물과 불의 힘일 것이다.

  이와 같이 대 자연을 움직이는 활동은 하나님께 있고 그 자연을 통하여 나타나는 열매를 먹고 그 힘을 얻어서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물체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는 흑암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힘의 역사가 물체를 움직여 주므로 사람은 빛의 세계에서 생활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영적 사망의 흑암과 그리스도의 빛 (요1:1~5)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 흑암에 잠겨서 도저히 그 흑암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신 것이다. 물체에 아무런 활동할 힘이 없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와서 활동하므로 대 자연계가 창조되었고 마귀 미혹을 받아 범죄한 인간들이 죄의 흑암의 권세를 벗어날 수 없는 캄캄한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시므로써 모든 영들은 중생을 받아 빛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세계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빛이 어두움을 찾아왔는데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자는 멸망이요, 그 빛을 따라오는 자는 영생이다(요3:18~21).

 

  3. 미혹의 흑암과 말씀의 빛 (사60:1~3)

  그리스도의 빛이 죽은 영을 살리므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천국복음 운동이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흑암의 권세로 모든 사람을 미혹해 보고 말씀의 빛으로 그 흑암을 물리치고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누구든지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자라면 이 땅에 남은 자가 되게하고 말씀의 빛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다 미혹에 빠지게 하는 동시에 미혹하던 마귀를 없이할 때에 다 전멸시키고 남은 자로 지상왕국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사람이 마귀 미혹을 이기지 못하므로 저주받았던 땅을 마귀 미혹을 이긴 자로서 지상축복을 받도록끔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것이 이사야 60장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사59:18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서방에서는 여호와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 같이 오실 것임이라”고 하였고, 21절에 “네 입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은 입에 말씀을 받은 자가 마귀 미혹을 이기므로 영원한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쳤다.

  영이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빛이요,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마귀 흑암의 세력을 말씀의 빛으로 물리치고 이긴 자에게 있게 된다.

 

  결    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이루어진 것은 땅이 혼돈,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서 하나님의 빛의 역사가 들어와 역사하므로 이루어졌고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모든 영들이 천국으로 가는 것은 흑암에 빠진 영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오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마귀 미혹이 온 세계를 덮을 때에 해 돋는 편에서부터 말씀의 빛이 나타나므로 지상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택한 자의 기도의 힘

- 눅 18:1~14 -

 

  사람의 가장 큰 힘은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일을 하시려고 해도 택한 자의 기도가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전부가 택한 자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인데, 택한 자라고 해서 무조건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 밤낮 부르짖는 자의 기도의 힘 (1~8)

  택한 자의 기도라는 것은 그 즉시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기도를 인간 종말에 가서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택한 자에게 특별한 것을 주시는 것은 주님 다시 올 때에 주시는 것이니, 그전 생활은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게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외로운 과부가 억울함을 당하여 재판관 앞에 가서 이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할 때에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처음에는 무시를 하고 말았지만, 계속으로 호소할 때에 억지로라도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 성도의 생활이 외로운 과부가 억울한 생활을 하듯이, 이 세상에서 억울하고 괴로운 일이 오히려 불택자 보다도 더 많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밤낮 기도하여도 어려운 시험이 계속으로 오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 원한을 풀어주므로 왕권의 축복을 영원히 받게 하자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현재 생활에서는 밤낮 부르짖을 수 있는 그 기도의 힘을 받은 자가 밤낮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사람보다도 불행스러운 것 같지만, 이것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된 생활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 생활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심히 적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2. 자기를 낮추는 자의 기도의 힘 (9~14)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의 기도는 아무리 크고 강한 음성으로 부르짖는다 하여도 하나님은 듣지를 않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실 때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기도라는 것은 도덕적 생활에 기준하면 아무런 역사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바리새인이 도덕적으로 사람에게 보이려는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만족으로 알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 눈물 흘리는 회개가 있는 죄인의 기도보다 못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다시 말하자면 손을 들어 기도한다 하여도 중심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기도라면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울면서 중심에 죄를 회개하는 사람의 기도에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기도의 응답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모를 볼 때에는 거룩한 사람이요, 경건한 바리새인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응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없어야 하며, 언제나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가 있어야 여호와께서 응답하신다.

  그러면 기도 생활의 세 가지 요소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중심 성결을 목적하여야 하며,

  둘째 :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여야 하며,

  셋째 : 작은 일에 충성을 목적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이 마음에 성결을 목적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아무런 향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요, 중심 성결을 목적한 기도를 한다면 인격적 향상을 기도로서 얻게 된다. 기도하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의 응답을 내려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려는 목적을 두고 기도할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응답을 하나님께서 내리시게 된다.

  그러므로 밤낮 쉬지 않고 부르짖는 일이 있는 동시에 항상 자기를 낮추는 인격과 생활에 들어갈 때에 주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기도라는 것은 불택자에게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택자에게 있는데 있어서는 구원은 일반적인 구원이로되 그 인격이 이루어지는 일과 생활에 열매가 나타나는 일과 영원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일은 기도의 분량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밤낮 쉬지 않고 기도를 하되 조금도 낙심치 않아야만 주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거룩한 믿음으로 이룬 가정

- 엡 5:32~33, 6:1~4 -

 

  가정은 인류 역사에 시작이 되는 동시에 끝도 가정으로 맺게 된다. 타락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향상도 가정에서부터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가정을 이루어야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할 일 (6:1~3)

  오늘날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을 하려면 가정에서부터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철저해야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부모에게 너무 무관심하게 대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바리새인의 행동이 될 우려가 있다. 바리새인들이 부모보다도 하나님을 더 공경한다는 미명하에서 부모님께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 부모를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을 주님께서 책망하셨다(마15:4~6).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지 말고, 당신만 공경하라고 하신다면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그 법을 어기고 자기를 공경하라고 하신다면 불의와 동참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첫째 :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여야 된다는 것이며,

  둘째 :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여야 된다는 것이며,

  셋째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을 경외하지 않고 부모만 공경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부모에게 불행을 주는 일이요, 축복을 믿지 않고 억지로 도덕적인 행동으로 부모를 공경한다 하여도 그 부모에게 불행을 주는 일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없이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도 부모에게 불행을 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을 경외하지 않거나 축복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부모가 우상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부모에게 축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축복을 믿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를 공경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시므로 부모도 자녀들도 다 같이 복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부모에게 효성하는 것을 극도로 장려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보다도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부모를 우상화시켜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혼백을 접어놓고 거기에 제사하며, 분묘에 제사하면서도 하나님을 공경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야 될 것이요, 자녀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야 될 것이니,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생각으로 부모를 공경하지 말고, 하나님께 보이려는 중심에서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가정에 부모가 죄되는 일을 하는데 자녀가 그 일을 순종한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아니요, 오히려 망하게 하는 일이며, 부모가 옳은 일을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자녀가 그 일에 순종치 않는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식이니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둘째 : 부모님의 수고한 일이 헛되지 않도록 열매를 완전히 맺는 일을 하여야 한다.

  셋째 : 부모님을 봉양해 드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주안에서 행하는 자는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사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일 (6:4)

  거룩한 부모가 되려면 자기를 위하여 자녀를 교훈한다는 것보다도 주를 위하여 자녀를 교훈하되 주의 축복을 받도록 지도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녀에게 타격을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만 거룩한 부모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이 자녀에게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하는 일을 억압하지 말고, 자녀에게 좋은 소망을 보여 주면서 그 소망에 대하여 협력해 주는 것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된다. 예를 든다면 농부가 연한 순이 상하지 않도록 곡식을 잘 가꾸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실천 생활에서 주의 은총을 받으며, 자녀에게 교훈할 때에 자녀들은 부모님이 받고 있는 은총을 자기도 받아 보겠다는 생각이 나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자녀들이 존경하지 못하고 무시할 정도라면 자녀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없는 부모가 되고 말 것이니, 언제나 자녀들이 부모에게 싫증나는 일이 없이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도록끔 해야 한다. 이 사모라는 것은 부모의 덕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요, 부모의 인격과 사상과 정신에 감동을 받고 반드시 부모를 따라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자녀에게 부모님은 자기보다도 더욱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끔 되어야 한다.

  오늘날 주의 종들을 자녀들이 볼 때에 타격을 받을 행동이 가정에서부터 있게되므로 소위 주의 종들의 자녀들이 믿음을 얻지 못하고 세상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영향이 많다. 자녀들이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 부모에게 역사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에 하나님이 없다는 악감을 가지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되는 것이다.

 

  3. 사랑과 경외가 있는 부부 생활 (5:32~33)

  사랑이 있더라도 경외가 없으면 거룩한 부부라 할 수 없으며, 경외가 있고 사랑이 없다고 해도 거룩한 부부라 할 수 없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것이요,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여야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애정인 사랑도 있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거룩한 사랑도 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되 한 애정에 불과한 사랑이라는 것은 아내에게 경외심을 주는 것보다도 방랑한 마음이 생기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의 가정에서는 죄가 없는 거룩한 생활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주되 주님께서 거룩한 사랑으로 교회를 다스리듯 해야 될 것이며, 그 사랑 안에서 아내는 남편을 주를 경외하듯 해야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연애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는 속화된 생활에서 시작된 것이니, 이것은 거룩한 가정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의 부부는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생활에서 사랑하기도 하고, 경외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결    론

  거룩한 믿음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룬 자에게 있는데, 이것이 있음으로만 거룩한 부부가 되며, 거룩한 자녀가 되며, 거룩한 부모가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을 거룩한 믿음의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정에 오는 난제와 인류 문제

- 창 3:6~17, 마 1:18~25 -

 

  하나님께서 인류적인 대 사업을 할 때는 언제나 지극히 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대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역사를 하게 하셨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도 아름다운 동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아름답게 살며 아름다운 영광을 길이 길이 누리라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하와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세계 인류를 타락시켰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시작된 일이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타락의 근본되는 가정과 인류 향상의 근본이 되는 가정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된 가정 (창3:6~17)

  세계 인류를 대표하는 가정에서 여자 하나가 잘못하여 인류적인 큰 영향이 되었다는 것을 볼 때에 사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간교한 마귀를 용납했다는 것이 세계를 망치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조금이라도 불의한 세력을 용납한다는 것은 벌써 자기 사명을 상실하는 일이다.

  하와가 뱀의 말을 물리치지 못하고 거기에 끌려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인류 타락의 근본이 되었다. 사명자가 자기 인격을 상실하고 남에게 끌린다는 것은 자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인류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사명을 가진 자로써 자기 사명의 획선을 조금이라도 남에게 침범을 당하게 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가 맡은 사명에서 사상과 정신이 조금이라도 상실될 때에 그 시간부터 큰 일이 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물리치는데 전력을 두어야 한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하여도 그 충격을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자기의 주인된 남편을 사모하고 따라갔던들 이러한 세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은 자기 사명에 대하여 방해가 되는 충격이 올 때에 이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담이 아내를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자기 사명의 획선을 벗어나기까지 하와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큰 실패가 되었다.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라도 사명을 침범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이 사단아 물러가라 는 책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담이 아내를 책망하지 못하고 그 일에 끌렸다는 것은 세계적인 대표가 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아담과 하와가 사명의 인격을 상실할 때에 수치와 공포와 분쟁이 오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담의 가정에서 시작된 수치 공포 분쟁은 오늘날 인류적인 수치 공포 분쟁이 되었다. 언제나 사명자라는 것은 무엇에 치우치는 일이나 끌리는 일이 없어야만 세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된 가정 (마1:18~25)

  나사렛 동네의 빈한한 가정에서 여자 하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 세계 인류를 향상시키는 근본이 되었다. 인간 도덕으로는 큰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에게 성신의 잉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할 때에 세계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되는 성신의 잉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성경대로 자기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므로 다윗의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영원한 왕국이 될 것을 믿고 자기 앞에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을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앞으로 오는 여러 가지 난제를 생각지 말고, 주의 능력에 무조건 순종할 때에 순종을 제사보다 낫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므로 되는 것이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무소 불능을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무소 불능의 역사가 그 몸에 그 시간부터 시작되어 온 세계 인류에게 큰 구원을 주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의 몸에 잉태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경솔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주의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범죄하지 않고 의를 행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천사의 지시를 받지 못하였던들 요셉은 큰 범죄를 하므로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되는 그리스도 탄생의 대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으므로 천사의 지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닥쳐올 때에 이것을 바로 알아보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가장 거룩한 성도의 자격을 가진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은 신앙 양심으로서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므로 요셉은 묵묵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무엇이나 깊이 생각을 해 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뜻을 기다리는 것이 있기 전에는 세계적인 대표가 되는 사명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수치스러운 일이 온다하여도 주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시행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 도덕적인 방면으로 본다면 처녀로 잉태한 마리아를 요셉이 집으로 데려와 받들어 섬긴다는 것은 비방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들이 비방한다고 거기에 흔들리고 자기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여기에 치우친다면 이 사람은 세계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빈한한 목수의 가정이었지만 둘째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에 출생하여 세계적인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가정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전 세계 인류가 저주 아래로 떨어졌고 한 가정이 순종하므로 전 세계 인류가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난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고 한 가정의 축복이 세계적인 축복이 된 것이다.

 

  결    론

  한 가정의 일이 세계적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가정에서부터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복된 가정, 복된 교회, 복된 나라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

- 롬 2:1~8 -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해서 무조건 판단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요, 용서하는 법을 세우시고 얼마든지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법을 세우시고 끝까지 기다리는데도 불구하고 순종치 않을 때에는 의로운 판단을 하나님께서 나리시는 것이다.

 

  1.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옴 (1~2)

  하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는 자를 진리대로 판단하신다. 남을 판단하면서 자기가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람의 마음은 악에 속해 있는 마음이다. 악이라는 것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하여 남을 판단하는 일이다. 자기 허물은 숨기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그 자체가 형제를 해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니 그 마음은 사단에 속한 마음이다.

  남을 살려 보려는 마음은 간절한데 실수가 있는 사람은 진리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상을 보시고 불쌍히 보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회개하지도 않고 남을 공연히 판단하며 정죄하고자 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행동이므로 주님께서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대적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판단은 진노로 옴 (3~5)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판단을 나리시되 죄를 범하는 그 즉시에 나리시는 것이 아니요, 모든 죄를 합해서 진노의 날에 나리시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날, 그 시에 판단을 나리신다면 이것은 의로운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인자하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길이 참으심이 풍성하시어 각 사람에게 너그러이 대해 주시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련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너그러이 참으시고 기다리는 데도 불구하고 짐짓 하나님을 만홀히 알고 그 인자하심을 오히려 멸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무능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실 때에 겸손히 순종하여야 하며, 길이 참으실 때에 풍성한 은혜를 받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인격을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하는 자는 날마다 진노를 받을 일을 쌓고 있는 생활이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실 때에 같이 참고 나가는 자는 상급을 쌓아 놓는 생활이다.

 

  3. 하나님의 판단은 구하는 대로 옴 (6~8)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는대로 주신다. 그러므로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갚으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어 구하는 대로 주시되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줄 수 있는 공로를 독생자로 이루어 놓으시고, 아무리 죄가 있다 하더라도 속죄를 구하면 속죄를 주시는 것이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나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다.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은 죄이다. 하나님께서 큰사랑을 인간들에게 베풀어도 그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큰 죄로 판단을 나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믿어야 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둘째 :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판단하신다.

  셋째 :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판단하신다.

  오늘날 소위 신자라 하면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무시하고, 공연히 남을 이단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며, 자기 교파를 내세우고자 하며 자기의 권리를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의 죄가 아니요, 교회 안의 죄이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은 거룩한 천국과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없이는 거룩한 나라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모든 말씀을 세울 때에 인생이 할 수 없는 일을 다 해주신다는 언약을 세우고 그 말씀에 의하여 의로운 판단을 나리시게 된다.

 

 

깨닫는 자의 열매

- 마 13:18~23 -

 

  피조물된 인간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데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깨닫는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받는 일이 없이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니, 그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이제 깨닫는 자의 열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감정적으로 각오한 자의 생활 (20~21)

  감정적인 사람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에는 감정으로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할 때에 자기의 인격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하고 좋게 된다는 그 말에만 감정을 받는 자의 생활은 뿌리 없는 꽃과 같다. 땅에서 자라는 꽃과, 병에 꽂힌 꽃이 같은 시간에 아름답게 피었다하여도 꽃병에 꽂힌 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잠깐 후에는 시들어 버릴 것이다.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린 씨와 같은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에 끌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돌밭에 뿌린 씨는 비가 올 때에는 그 수분을 흡수하여 싹이 나서 자랄 수 있지만 위에서 오는 수분이 없는 가뭄이 올 때에는 그 땅 자체에 수분이 없으므로 말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때 그 때에 부딪히는 환경에 따르고 어떤 사람의 힘에 끌리는 인격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감정에 끌리는 피동적인 인격에서 일생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2. 유혹에 끌리는 자의 생활 (22)

  유혹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생활을 하는 자이다.

  첫째:보는 일에 있어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끌리는 대로 생활하는 자이며, 둘째:먹는 일에 있어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끌리는 대로 생활하는 자이며, 셋째:육적 정욕에 끌려서 바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대로 생활하는 자이다.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보는 대로, 먹는 대로, 육의 정욕이 발생하는 대로 끌려가는 것은 유혹에 끌린 자의 생활이다.  이런 자의 생활은 아무런 주관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가시덤불에 뿌린 씨는 자라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자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말씀을 믿으면서도 말씀을 통하여 오는 역사를 받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과 그 마음 사이에 유혹의 역사가 가리워있는 증거이니, 이러한 자는 자유로이 활동을 하지를 못하게 된다.

 

  3. 깨닫는 대로 열매를 맺는 자의 생활 (23)

  이 사람은 깨닫는 자체가 인격적인 체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되므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서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구분을 지을 수 있다. 정신 작용으로 깨닫는 일도 있고, 기술적인 방면으로 깨닫는 일도 있고, 영적 체험으로 깨닫는 일도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적 체험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깨달음이라는 것은 정신 작용이나 인간의 노력을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체험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자력에 국한된 세계에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게 되는 데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말씀대로 체험하는 인격을 가지는 동시에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생활에 들어갈 때에 초인간적인 열매를 맺으므로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이 열매로만 최고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 작용이나 인간 노력에 국한된 생활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없고, 오직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으므로 만족한 생활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바로 깨닫는 사람에게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은 완전한 열매를 맺은 사람으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궁창 밑의 역사와 궁창 위의 역사

- 겔 1:22~28 -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의 한 사람인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에 궁창 밑의 역사와 궁창 위의 역사를 보여 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다 궁창 밑의 역사가 무엇이며, 궁창 위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창1:6~8을 보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된지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고 정하시었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궁창 위의 역사와 궁창 밑의 역사가 어떻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궁창 밑의 역사 (22~26)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는 궁창으로 한계가 정해졌다. 궁창 아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요, 궁창 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세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궁창 아래의 모든 활동은 생물을 통하여 하게 하셨다.

  본 장의 20~21절을 보면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생물체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퀴 같은 것이 돌아가는 모양이 나타난 것은 우주 안의 대 자연계를 움직이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안에 생기가 있는 것은 생물체의 힘에 의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 안의 생기라는 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 아니고, 생물체의 힘이 바퀴 같이 돌아가는 그 역사에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물이 존재할 수 있고, 자연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4장의 네 생물과 같다.

  생물체의 역사가 궁창 밑에서 날개와 같은 힘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보여진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대 자연을 움직이며, 삼라만상의 되어지는 일을 움직여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백합화를 입히고 새를 기른다는 것이 아니고, 생물체의 활동을 있게 해서 식물계나 동물계까지 그 움직이는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오늘이라도 궁창 아래의 생물체의 역사가 없어진다면 이 세계는 아무런 활동이 있을 수가 없다. 이 활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2. 궁창 위의 역사 (26~28)

  “보좌의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과 같은데, 남보석 같은 푸른 광채는 얼마든지 살려줄 수 있는 생명의 근본이 보좌에서부터 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쇠와 같아서 그 속과 그 주위가 불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할 진노의 형편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은 광채가 있는 것은 불변의 언약을 뜻한 것인데,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라고 한 것은 얼마든지 살려줄 수 있는 생명의 자체가 되시며, 심판하여 없이할 공의의 자체가 되시며, 불변의 언약인 진리의 자체가 되시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보좌 위의 역사는 영원한 영생의 생명으로 진노의 심판으로 불변의 약속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을 주시고 역사하시되 순종하면 생명의 역사를 부어 주시는 신이시요, 순종치 않으면 진노의 역사를 부어 주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씀을 순종하는 자라면 변치 않는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푸른 빛 같은 생명의 역사를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 궁창 아래의 활동만 알고, 궁창 위의 활동을 모르고 있다면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자라고 본다. 유물론자들이 네 생물의 활동에 의하여 되어지는 자연계를 스스로 있는 물체의 힘이라고 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것은 산에서 사는 돼지가 도토리를 주워 먹으면서, 이 열매가 위에서 떨어진 것을 모르고, 땅에서 난 줄 알고 땅을 파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유물론자들은 궁창 위의 활동이 있어서 궁창 아래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궁창 위의 활동과 궁창 아래의 활동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정의

- 골 1:9~12 -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교가 날마다 부패되어 가는 원인은 기도의 정의를 모르고 하기 때문이다. 과학 만능이라고 하지만, 암흑의 세상을 이룬 것은 종교인이 탈선된 과오가 있으므로 기도의 산 체험을 받지 못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기도의 정의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인생의 참된 미의 열매라는 것은 기도의 정의를 바로 찾는데 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증거하겠다.

 

  1. 하나님의 뜻을 앎으로 (9)

  우리 인간들은 기도를 통하여서만 신령한 지혜와 총명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들이 정신 작용의 활동을 인간의 본능으로 알고 그 밖의 것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극도로 타락한 인간의 생활이라고 본다. 기도라는 것은 내 영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여야 정의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것도 없이, 무조건 자기 주관이나 소욕을 따라서 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기도가 탈선될 때에 마귀의 미혹을 받는 단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을 목적하고 기도하여야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2. 범사에 기쁘게 행함으로 (10)

  세상에 도덕적 수양이나 철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기쁘게 행하는 일을 할 수 없어도,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도 외식이 없이 중심에서 기쁘게 행해질 적에 선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어 큰 발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 행위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는데 불과하므로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열매를 맺게 되지만, 주님 중심으로 기쁘게 행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축복할 일이므로 초인간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 억지로 하는 것이 있게 된다면 그 기도는 우상 앞에 드리는 기도나 다름이 없다.

  기도의 정의라는 것은 기쁘게 행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므로 나날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발전하여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완전한 생활에서 완전한 왕권의 축복을 받는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3.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므로 (11)

  인간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찾는 것은 오래 참음에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생활은 마귀 세력과 싸우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 참는 힘을 주께서 주시는 능력을 인하여 이루어 나가므로,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왕권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그날 그날의 안락을 요구하는 생활에서 무엇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오래 참음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기도하는 것이 정의가 된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로서 힘을 얻는 것은 금세에서 영광을 누리자는 것이 아니고, 세세 영광을 목적하고 싸워 이기기 위하여 구하는 것이다.

 

  4. 아버지께 감사하게 되므로 (12)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의 생활은 영원한 기업을 목적했으므로 그 기업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자 하여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은 참된 성도가 영광의 기업을 얻는데 손해를 주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때는 실패같이 보이나 성도로서는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으니,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롬8:17).

  기도의 정로는 기업을 얻기 위하여 이 땅에서 모든 일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이니, 조금도 원망할 일이나 낙심할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땅에서 평안이나 영광이나 어떤 권리를 얻고자 한다는 것은 기도의 정의가 아니요, 어떠한 환란과 핍박이 와도 그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나가는 생활을 해야 기도의 정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인격을 먼저 주는 것이 아니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어서 진리를 따라 구하는 자라면 완전한 왕권의 기업을 얻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정의를 바로 알고 나가야만 된다.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의 환란과 성도의 역사

 

  총    론

  하나님께서는 환란을 없이 하여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환란을 있게하고 역사를 하시는데 이는 육적 이스라엘이 당한 환란과 역사를 통하여 인간 종말에 있을 환란과 역사를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사46:10).

  그러므로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먼저 징조가 보이고 다음에는 환란이 오는 것이니 1월호에 나왔던 공과는 징조와 성도의 각성을 목적으로 하고 기록한 것이요, 2월호 공과는 환란과 역사를 목적하고 기록한다. 징조도 예언대로 이루어진 현실이요, 환란도 예언대로 올 것이니 환란과 성도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제1과  북방에서 오는 환란과 성회 운동

- 욜 2:1~17,  요절:12 -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전무후무한 환란이 북방에서 올 것을 요엘 선지에게 묵시로 보여 주었다. 인간이 볼 때는 북방세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기절할 상태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도의 부르짖는 호소를 들으시고 북방을 치므로 그 세력은 완전히 없어지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이제 본문을 들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대지 : 많고 강한 백성이 북방에서 일어남 (1~3)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라는 것은 북방에서 많고 강한 백성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전무후무한 환란인 것을 말씀하였다.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을 벌하기 위해서 북방 백성을 강하게 하여 환란을 일으킨다고 하였으니 오늘날 북방에 자리 잡은 공산 정권이 전국민을 다 사상과 억압으로 다스려서 어린 소년과 청년들을 전부 공산 사상으로 강하게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마지막 환란이 올 징조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시국을 만난 것은 분명히 인종 전멸의 환란 재앙이 오기 시작하는 때라고 본다.

 

  2대지 :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환란이 일어남 (4~10)

  북방 환란이라는 것은 이미 계획적으로 일어나는 환란이므로 그 세력 앞에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진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는 것은 너무나 강한 세력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둔다고 하였다. 이것이 인류 종말의 환란인 것이다.

 

  3대지 : 여호와께서 일어나심 (1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수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도록 허락을 하시고 인력으로 그 세력을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여호와 일어나서 역사하신 일은 과거나 미래나 꼭 같은 것이다. 과거에는 증거를 보여주었고 종말에는 증거를 보여준 그대로 행하시는 것이다.

 

  4대지 : 금식하며 성회를 열어야 함 (12~17)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 올 때에 기도하는 것을 기꺼이 받으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부모님이 자녀를 책망할 때에 그 자녀가 깨닫고 바른 일을 하게 되면 노하신 일을 멈추고 오히려 기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환란이 오게 하지만 금식하며 성회를 열고 합심하여 호소할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시고 북방을 쳐서 없이하고 성회를 열던 주의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평화로운 새 시대를 주어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니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이때에 성회 운동을 일으켜야만 이 나라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므로 살 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우리 앞에는 큰 환란이 있고 큰 역사, 큰 축복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산의 수고를 다해서 부르짖는 성회운동을 금년에 해야만 될 것이다.

 

 

제2과  만국이 일어나는 환란과 회개 운동

- 슥 12:1~14, 요절:8 -

 

  서    론

  인간 종말에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로 일어날 것을 말씀했다. 오늘에 와서 소위 유물론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한 사상이라고 본다. 과거에 기독교가 세계에 전파될 때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반대하던 일이 있었지만 기독교가 옳다고 깨달아질 적에 아무리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독교의 진리를 대적하고 일어나는 운동은 없었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 신앙사상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하나가 되어 일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없이 하는 것을 인간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이제 인간 종말에 세계적인 환란과 회개 운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문을 읽으면서 공부하기로 하겠다.

 

  1대지 : 천하 만국이 교회를 치러 일어남 (1~3)

  마귀를 없이하는 심판이 올 때는 마귀 세력을 개방시켜, 하나님의 교회를 극도로 강하게 대적을 하게 하는 것은 참된 종에게 큰 역사를 하도록 하여 큰 회개 운동을 일으키고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다. 요한 계시록에 생명책에 기록된 자 외에는 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앞에 경배를 하게 된다고 말한 것은 심판기에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사상으로 하나가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유물주의가 큰 권세를 쥐고 나오게 된 것은 심판기가 온 징조라고 본다.

 

  2대지 : 하나님께서 교회가 승리하도록 역사하심 (4~7)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을 도와주는 역사를 하실 때에는 원수의 세력을 들어 당신의 백성에게 어찌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시고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승리하도록 역사해서 영광을 받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소경같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큰 힘을 얻도록 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도록 한 것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3대지 :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 같이 되게 하심 (8~9)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고 모세를 신과 같이 썼고, 인간 종말에도 세계 열방을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도록 강퍅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 같이 들어 쓰므로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4대지 :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남 (10~14)

  마지막 회개 운동은 어느 민족이나 할 것 없이 택한 자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회개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심지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공산당이나 유대교까지라도 다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때에 회개하는 자는 새 시대의 종족이 된다.

 

  결    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세력을 강하게 들어 쓰면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온 세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유물론 사상으로 하나가 되어 간다 하여도 필연코 승리는 우리에게 올 것이다.

 

 

제3과  중동 전쟁과 천사의 보호

- 단 11:40~12:1, 요절 12:1 -

 

  서    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다니엘에게 인간 종말을 보여줄 때에 바벨론이 메데파사에게 망할 것과 메데파사가 헬라에게 망할 것과 헬라시대에 남북전쟁이 있을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도 남북의 전쟁이 있는데 있어서는 중동을 중심하여 북방은 진리를 대적하고 모든 신을 대적하고 자기 힘으로 신을 삼는 세력인데 모든 것이 다 궤휼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전쟁이 북방에서부터 내려오되 물 같이 내려 올 것과 애굽까지 그 세력에게 먹힘을 당할 때에 남방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방을 대항하지 않고 시종을 들게 된다고 하였다.

  이제 중동 전쟁과 천사 보호에 대하여 본문을 그대로 읽어서 간단히 공부하겠다.

 

  1대지 : 남방 왕이 먼저 북방을 치게 됨 (11:40)

  북방의 정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거짓을 행하여 외면적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비밀로 궤휼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방 왕이 부득불 북방을 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북방이 궤휼적 정책으로 남침을 음모하면서도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목적한다고 허위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방 왕이 먼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2대지 : 존귀한 자는 피해를 당치 않음 (11:41~43)

  북방 세력이 회리바람같이, 물이 넘침같이 내려오지만 존귀한 자가 피해를 당하는 환란이 아니요, 인간 종말에 악한 세상을 벌하는 재앙이다.

 

  3대지 : 동북의 소문을 듣고 번민하게 됨 (11:44~45)

  북방 세력이 중동을 침투하는 동시에 아프리카까지 하나가 되는 일이 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북방을 시종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들려 오므로 무신론적인 북방 세력은 큰 번민을 하게 되어 발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극동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사야 41장과 같이 계시록 7장과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힘을 신과 같이 알던 북방은 어찌할 줄 모르고 번민하게 되어 이유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행동을 하다가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이다.

 

  4대지 : 천사의 보호가 있음 (12:1)

  인류 종말의 전쟁이라는 것은 개국 이래에 역사적으로 없던 무서운 전쟁이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해 주는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환란을 오게 하는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하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진리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보호를 믿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무서워 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사상을 가지고 말씀에 굳게 서서 싸워 나갈 때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제4과  조약을 파하는 환란과 안정처

- 사 33:7~24, 요절:16 -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의 환란을 말씀할 때에 대적이 조약을 파하므로 일어난다고 하셨다. 오늘날 공산당은 평화 조약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자기들의 할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도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본 성경을 보면 평화 조약이라는 것은 오히려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울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이제 대적이 조약을 파할 때에 일어나는 환란이 무엇이며 안정처에 관한 역사가 무엇인 것을 본문에서 분명히 배우기로 하자.

 

  1대지 : 평화의 사신들이 슬퍼할 일 (7~9)

  오늘날 평화를 목적으로 하고 협상 운동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평화를 꿈꾸던 사신들이 슬피 울 일이 되고 만다고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세력이 성읍을 멸시하고, 사람을 생각지 않는 불의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지금 공산당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그들에게 이용을 당한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정직한 사람이 궤휼적인 사람과 서로 평화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오히려 궤휼적인 악의 세력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일밖에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궤휼자는 아무 때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악의 세력이 양심을 떠나 법을 떠나 자유로운 행동을 할 때에 세계가 황폐화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대지 : 여호와께서 일어날 일 (10~16)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대적이 조약을 파하므로 일어나는데, 호흡이 불이 되어 민족들이 불에 굽는 횟돌같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이러한 자들을 절대적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어나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어찌할 수 없는 환란을 만났는데 여호와께서 일어나시지 않는다면 생명을 보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녀들을 특별 보호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여호와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3대지 : 안정처에 보호할 일 (17~22)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안정처에 보호하는 것은 악한 세상을 벌하는 때이니 만큼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와 같은 역사가 없이는 남을 자가 있을 수 없으므로 여호와께서 안정처에 같이 해주므로 피해를 당치 않고 구원을 받게 된다.

 

  4대지 : 안정처에 악인을 없이할 일 (23~24)

  하나님께서 안정처에 택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질병으로 소탕시켜 악한 자는 하나도 없게 하신다. 그러므로 택한 자는 안정처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결    론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와도 당신의 택한 백성은 조금도 피해를 당치 않도록 보호해서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안정처에서 보호를 받아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23과  로마로 가는 바울 사도

- 행 23:11~13,  요절:11 -

 

  서    론

  학생들, 바울은 과거에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아십니까? 예수를 믿는 것을 제일 반대하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교인 중에도 가장 열심이 있는 사람으로 모든 조상의 유전을 지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조상 적부터 내려오던 것을 무시한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일도 하지 않고 예수만 믿으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는 유대 사람이나 이방 사람이나 다같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말을 극도로 반대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나서 예수교를 없애려는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세우기 위하여 동양과 서양에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극도로 바울을 미워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말씀을 증거할 때에 유대인들이 모여들어서 바울을 채찍으로 때리고 결박을 해서 이유도 없이 법관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법관들이 조사해 본 결과 이것은 한 종교 문제인 것을 알고 바울을 유대인들이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부는 주님께서 나타나서 바울에게 새로운 힘을 주신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주님께서 밤에 나타나 지시하심 (11)

  바울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워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담대 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증거를 받은 후에 담대한 힘을 얻고 절대 자기가 죽지 않고 로마에 가서 전도하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지만 주님은 그를 보호해서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학생들, 우리들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죽을 것 같고 실패를 당할 것 같으나 오히려 형통할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비참한 일을 당했지만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2대지 : 원수들이 결심함 (12~13)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40여명이 당을 지어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바울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학생들, 이것을 보면 얼마나 유대인들이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거룩한 사도를 공연히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악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이날까지도 외국을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던 하나님의 복음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우리도 예수를 믿고 기도할 때에 아무리 핍박이 있다 하여도 담대히 나가면 하나님께서 같이하므로 승리하게 됩니다. 지금도 악한 사람들이 공연히 참된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은 망할 징조라고 봅니다.

 

  묻 는  말

 1. 유대인들이 바울을 왜 죽이려고 했습니까?

 2.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실 때에 어디에 가서 전도하라고 하였습니까?

 3. 천하에 제일 복음을 많이 전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24과  풍랑을 만난 바울 사도

- 행 27:9~37,  요절:24 -

 

  서    론

  학생들,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에는 자동차나 비행기나 발동기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다니기는 했으나 지금과 같은 배가 아니고, 돛을 달아 그 힘으로 움직이는 배입니다. 이 배는 순풍일 때에는 아무런 염려가 없지만, 광풍을 만나면 큰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이유도 없이 괴롭히며 죽이고자 하기 때문에 가이사 황제에게 가서 모든 일을 판결하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때는 로마가 제일 강한 나라요, 유대 땅 예루살렘까지도 그의 식민지로 있었습니다. 이제 바울이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난 일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바울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풍랑을 만나게 됨 (9~21)

  바울은 배를 탄 사람들에게 앞으로 큰 풍랑이 있어 배를 타고 가다가는 물건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까지도 손해가 올 우려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인정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풍이 순하게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못되어 광풍이 불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배는 바람 부는 대로 밀려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에 밀려 정처없이 다닌지 사흘째 되는 날 사공들은 배의 기구를 바다에다 던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므로 구원을 얻을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바울이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자기의 말을 듣고 떠나지 않았다면 타격과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내일에 무슨 일이 올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대지 : 풍랑 중에서도 기도하게 됨 (22~26)

  어려운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천사는 바울에게 같이 했습니다. 천사는 말하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다 네게 주셨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안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사도 바울이 풍랑을 만나서 전도도 하지 못하고 죽을 사람 같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언제나 천사가 같이 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더 유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천사가 도와줄 때에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와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대지 : 열 나흘만에 음식을 먹게 됨 (27~37)

  바울이 말한 대로 모든 사람들이 죽지를 않고 다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배가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였는데 그 수는 276인 이었습니다. 떡을 모든 사람들 앞에 놓고 하나님께 축사한 다음 바울은 무리들에게 배불리 먹게 하였습니다. 열 나흘 동안 풍랑 속에서 먹지도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이 그 가운데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이 함께 하는 곳은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므로 감사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묻 는  말

 1.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2. 풍랑 속에서 몇 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까?

 3. 배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제25과  멜리데에서 이적을 행한 바울 사도

- 행 28:1~10,  요절:5 -

 

  서    론

  학생들, 지난 주일에는 바울이 큰 풍랑을 만난 일에 대해서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풍랑 가운데서 배가 머무른 곳이 멜리데라는 섬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 섬에서 바울이 행한 이적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풍랑을 만난 가운데서도 전도를 하게 되었고 멜리데라는 섬에 잠깐 머무르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적을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대지 : 독사의 피해를 받지 않음 (1~6)

  학생들, 저 남쪽 나라에 가면 독이 많은 뱀이 있어서 사람이 그 뱀에게 물리면 그 즉시에 죽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독사에게 물려도 죽지 않고 고생만 하고 말지만, 멜리데라는 섬에서는 독사에게 물리면 온 몸에 그 독이 퍼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멜리데의 사람들이 바울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을 동정하여 춥지 않도록 불을 피워 주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을 풍랑 가운데서 먹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다가 그 섬에 머물렀기 때문에 섬의 사람들은 이들을 반가이 영접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을 때에 거기에 붙어 있던 독사가 뜨거움을 인하여 그의 손을 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습니다.

  그 때에 멜리데의 사람들은 바울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왜 쳐다보았을까요? 죽을 줄 알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믿는 사람은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낫고 뱀이나 무슨 독이든지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막16:18). 사람이 뱀의 독에 피해를 당하는 것은 사람이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성신의 권능이 같이하므로 독사의 피해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2대지 : 많은 병자를 고침 (7~10)

  멜리데의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바울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사람에게 안수하여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하여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의 병을 다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바울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함께 온 사람들까지도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에는 로마에 가는 길에서 필요한 것을 배에 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 이것을 보세요. 풍랑을 만나서 모든 물건을 바다에 버렸지만 바울 사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후한 대접을 받고 로마로 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될 때에 모든 것이 없게 되었다 하여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만 된다면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만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풍랑 속에서 먹지도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많은 대접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묻 는  말

 1. 멜리데 섬에서는 사람이 독사에게 물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2. 독사가 바울에게는 왜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까?

 3. 누구로 말미암아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까?

 

 

제26과  로마에서 전도한 바울 사도

- 행 28:16~23,  요절:23 -

 

  서    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로마로 가도록 하신 것은 그곳에서부터 기독교를 시작하여 세계에 전파할 뜻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종교국이라는 것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나라가 문명의 근본지가 됩니다. 이 나라는 아시아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저 먼 서양에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억울한 핍박을 받고 가이사 황제에게 호소할 것을 목적하고 로마에 왔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로마에 와서 전도한 일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군사들이 바울을 지키게 됨(16)

  바울이 고소를 받고 로마에 왔기 때문에 이 나라의 군사가 책임지고 지켜주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이사 황제에게 고백을 하려고 왔기 때문에 누가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보호한 것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고소를 당해서 로마에 간 것이 불행스럽지만 오히려 보호를 받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것 보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2대지 : 전도할 기회를 얻음 (17~22)

  유대인들이 바울을 죄수로 내어 준 일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오히려 전도할 조건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선지들이 우리 이스라엘에 대하여 소망을 말한 것은 이 나라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한 것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진리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자동적으로 전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도 세계적인 하나님이요, 예수님도 세계적인 구세주이신데 이방 사람에게 전도했다는 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학생들, 이것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바울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전도를 한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일입니다.

 

  3대지 : 일자를 정하고 집회를 열게 됨 (23)

  로마에 간 바울이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죄수로 몰려 로마에 재판을 받으려 왔다는 것 때문에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말씀을 전하되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얼마나 유익한 일입니까? 전도를 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바울에게 왔던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잘 드는 칼은 건드릴수록 잘 베어지는 것과 같이 말씀을 전하는 바울에게는 무슨 일이 닥쳐오게 되면 올수록 더 강한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묻 는  말

 1. 세계 문명의 시발점은 어디입니까?

 2. 바울이 로마에 가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3. 어떠한 조건에서 전도할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까?

 

 

 

 논 설 편

 

1. 허락 받은 붉은 마귀를 무서워 말라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은 허락 받고 나오는 붉은 마귀가 무서워서 떨고 있다. 붉은 마귀와 싸우겠다는 결심에서 20년간 수많은 청년을 죽이고 이제 와서 협상이니, 평화이니 하는 인간들은 지식이 없고, 사상이 없고, 먹기 위해서 사는 동물에 가까운 인격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가 도와주면 싸우고, 도와주지 않으면 협상한다는 것은 사상이 바른 사람이 아니요, 돈에 팔려 다니는 사람이라고 본다. 참된 사상이라는 것은 허락 받고 나오는 붉은 마귀를 무서워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상이라는 것은 인생관을 아는 지식에 따라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붉은 마귀를 왜 허락했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라 할 수 없고, 교파라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알아서 난국을 돌파하게 하는 사명을 가진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허락 받고 나오는 붉은 마귀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격을 가진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을 말한다.

 

  1. 이 시대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 붉은 마귀가 아시아를 다 삼켜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조그만 남한을 남게 하신 것은 우리만을 들어서도 북방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조그만 나라, 보잘것없는 민족, 적은 용사를 들어서 마귀의 나라를 이기게 했던 과거의 역사는 인간 종말에 이루어질 예언적인 역사라고 본다. 만일 영토가 크고, 민족이 많고, 군대가 강하고, 돈이 많은 나라를 들어 쓴다면 하나님을 자랑할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41장을 보면, 동방 땅 끝의 사람이 아무리 지렁이 같은 존재이지만 그를 들어서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겠다고 하셨다. 붉은 마귀를 허락한 하나님의 비밀을 분명히 아는 자라면 금년부터 강하게 일어나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극도로 어려운 문제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평안할 때에는 반공 반공하고 어려울 때에는 협상, 협상한다는 것은 허수아비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본다.

 

  2. 하나님께서 동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냐,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냐 하는 것은 금년부터 알게될 것이다.

  언제나 난국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을 통하여 난국이 해결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똑똑히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나오는 붉은 세력을 능히 무찌르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적마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났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도 분명히 이루어질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마귀가 하나님을 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수도원에서 7년간 40일 금식 기도회가 되어졌다는 것은 사람의 어떤 결심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므로 한 것 뿐이다. 40일 금식을 한 사람이 420명에 달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랑거리로 내세우고자 시킨 것이 아니고, 앞으로 어려운 난국이 올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보호하실 뜻이 계시므로 시키신 일이라고 본다.

 

  3.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알 수 있다. 어려운 난제가 올 때에 백성을 살려보겠다는 사랑의 불이 붙는 자라면 애국 애족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가정이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에 집안을 잘 다스려 보겠다고 힘을 쓰는 자라면 참으로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에 어려움이 닥쳐 올 때에 목숨을 바치고 나가는 자라면 진리를 사랑하고, 양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붉은 마귀의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허락하신 것은 당신의 사람을 들어 쓸 때가 온 증거이며 영광을 받으실 때가 온 증거이다.

 

 

2. 진실한 자가 이기는 싸움

  하나님께서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사람을 꾀어보는 것은 진실한 자로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옛 뱀인 붉은 용의 세력을 들어서 본격적으로 꾀어보는 일이 72년에 있다고 본다. 사도 요한이 인간 종말의 완전 계시를 볼 때에 옛 뱀인 붉은 용이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 짐승은 거짓 선지를 앞에 놓고 천하를 꾀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 합심하여 만왕의 왕인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되는 것이 심판기에 오는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는 진실한 자가 이기게 된다고 계17:12~14에 말했다. 심판이라는 것은 진실한 사람만 남게 하고 그 밖의 사람은 모두 없이하는 것인데 이것이 인종 전멸의 심판이다. 진실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이때를 분명히 알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이 말씀을 중심과 사상으로 삼고 끝까지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진실하다고 인정하시게 된다. 진실이라는 것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도덕적으로 진실한 것도 있고,

  둘째 : 사업적으로 진실한 것도 있고,

  셋째 : 사상적으로 진실한 것도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진실이라는 것은 사상적인 것을 말한다. 공산주의의 사회에서는 허위 선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충성된 사람으로 알아주고,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이 없는 말씀을 믿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끝까지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충성된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천사를 동원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진실한 다니엘에게 인류 종말을 말할 때에 북방은 전부가 궤휼적이라고 하였고, 진실한 사람을 위해서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금년부터는 진실한 사람으로 하나가 된 단체가 나와야만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살길은 진실한 사람이 뭉쳐진 단체가 나올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진실한 사람이 뭉쳐진 단체가 어떠한 방법으로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문 그대로 읽어서 시국을 분별하고, 이 나라의 살길을 말하고, 우리 민족의 축복을 말하는 역사가 즉 새일 수도원에서 나타난 진리 운동이다. 우리는 말씀을 가감하는 자를 원수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할 수 있는 단체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될 일에 대하여, 사람이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정확한 변론을 기록하게 했는데 이것이 선지서와 계시록이다. 새일 수도원에서 25일간 공부하면 진리 무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말 같지만, 누구든지 수도를 해보면 하나 같이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인물이나 정권이나 교권이나 물권을 중심하여 뭉쳐진 단체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지 않으시겠지만, 말씀을 가감없이 믿고 순종하는 단체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무리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청년 3, 4인이 바벨론을 이겼던 것이다.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이 말씀에 뭉쳐진 청년 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풀무불을 보통 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여 거기에 던졌지만 결국은 왕이 머리를 숙이고 그들 앞에 굴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살길은 새일 수도원에서 나타난 멸공 진리를 중심하여 몇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기독교의 사상을 바로 가진 사람이라면 새일 수도원에서 일어난 진리 운동을 반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멸공 진리의 사상으로 일어나지를 못하고 협상을 하고 만다면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사단의 회가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만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싸워 나가자! 말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말씀대로 싸워 승리하자!

 

 

3. 일할 것은 많으나 바로 일하기는 어려운 세상

  일이라는 것은 홀로 할 수가 없다. 언제나 옳은 사람이 일하려면 옳은 사람끼리 손길을 마주 잡아야 하는 것이요, 사상이 바른 사람이 일하려면 사상이 바른 사람끼리 합심하여 싸워야 할 것이요,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일을 하려면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끼리 단결해서 나서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는 바로 일하기가 어렵게 되므로 하나님의 특별 보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그런데 일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일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옳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옳은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 국가에서도 다수 가결이 있게되므로 불의한 자가 많게 될 때에 의로운 사람은 홀로 앉아서 울며 탄식할지언정 나서서 이 세상의 주권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린다든지 옳은 사업을 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것은 그 사상 자체가 의인을 없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세상이라는 것은 일할 수 없는 것보다도 의로운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피의 도성이다. 자본주의 정치라는 것은 의인을 죽이는 것은 아니요, 돈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치이다. 그러나 돈이 없이는 아무리 옳은 사람이라도 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공산당은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없애고 있고,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의 세력이 교회를 정복하게 되므로 의로운 사람이 일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2. 참된 진리와 원수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 문명으로 소위 문화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 말씀과는 원수가 되는 사상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고등 동물이라는 이론을 학과로 배워서 사람에게는 영혼도 없다. 사람은 한 물체에 속한 것이니 과학 발전으로 화려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이 문화인들의 뇌속에 정통 교훈과 같이 가득히 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경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진 무식한 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모르고 학교에서까지 유물론을 배워주는 세상이 되었으니 기독교가 이대로 나간다면 유물론 사상에게 먹힘을 당할 위험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성서를 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신과 같이 역사하기 전에는 이 세상을 옳은 진리로 깨우칠 수가 전혀 없을 것이다.

  금년에는 성경을 가지고 문화인을 굴복시키는 진리의 사람이 나타나야만 한다. 앞으로는 성경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 시대에 빛이 되는 진리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3. 죄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죄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양심인데,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라고 본다. 세상의 사람들이 죄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동물보다도 더 악한 세상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죄를 모르는 동물은 미물이지만 죄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인간들은 정신 작용이 극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새긴 기독교 안에서도 죄를 회개할 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슬퍼하실 일이다.

 

 

4.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더 믿어지는 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그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 둔 것이 아니고, 할 수 없는 범위에 두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할 수 있게끔 역사하시는 조물주 하나님을 믿어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할 수 없는 인간들이 해줄 줄 믿고 당신에게 순종하는 것인데, 이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 의심이 나도록 꾀어보는 역사를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믿음이 없으므로 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게끔 꾀이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바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과학이 발달되면 될수록 믿을 수 있는 조건이 더 확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을 말하므로만 종말의 신앙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첫째 : 믿을 수 있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된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성경을 바로 증거하지 못하므로 신앙 운동이 점점 박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루어진 일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루어진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이루어질 성경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믿는데 있어서는 그를 믿음으로 완전한 신이며, 사람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리 믿어도 증거가 없는데 예수를 바로 믿게 되면 그 사람에게 응답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십자가 부활 승천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사람은 그를 통하여 오는 산 체험을 받게 되므로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며 십자가를 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오는 능력에서 자동적인 열매가 십자가를 지고 나갈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지고 나갈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갈 때에 모든 성경의 말씀을 이론이 아닌 산 체험에서 증거하게 될 것이다.

  둘째 : 지킬 수 있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된다.

  지킬 수 있는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은 과학 발전에 비추어 보아서 알 수 있다. 현실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성경에서 바로 알므로 지킬 수 있는 말씀을 확실히 깨달아서 믿게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을 한 시간 정도면 완전히 불태울 수 있는 것은 과학 발전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진리를 더욱 믿게 되는 것은 불탈 수밖에 없는 위기를 과학이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붉은 공산당의 세력이 인력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된 것은 모든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알 수 있는 때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성경대로 공산 정권이 강하게 일어났다면 성경대로 그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더욱 더 믿어지게 된다. 악의 세력이 성경대로 강하게 일어났으면 의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이기게 된다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또는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별세계까지 간다면 이것이 심판기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별세계까지 가는 것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밖에도 세계가 되어지는 모든 것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성경을 읽어서 알 수 있게 된 것은 과학의 발달에 있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서 믿음이 없다는 것은 교회에 책임이 있되 교역자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기만 하면 이전보다도 더 확정적으로 믿을 세상을 만났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미리 성경에 세밀히 말씀하신 것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택한 자녀에게 말씀을 믿어서 미혹을 받지 말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라는 목적에서 기록해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믿음을 더욱 가져야 할 때이다.

 

 

5. 작은 일을 바로 할 때에 큰 일은 열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무엇이나 작은 일이 바로 되어야 큰 일이 열매로 맺어지도록 하셨다. 나무 하나를 두고 본다 하여도 지극히 작은 보리 한 알이 땅에 바로 박혀 진액을 흡수하게 될 때에 국가에 큰 유익을 주는 열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하는 것이 높고 높은 하늘 위에 있는 것을 가져올 수 있는 힘이 된다. 골방 속에서 입을 열지 않고 바로 묵상하게 될 때에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소망은 큰 일을 하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할 수 있는 국민이 되고 정치인이 될 때에 비록 영토가 작고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하여도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므로 있게 된다.

  이제 작은 일을 바로 하므로 큰 일이 열매가 되는 일에 있어서 그 요소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보이지 않는 사상 문제이다

  사상 하나를 바로 가지게 될 때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오는 것이다. 사66:18이하는 인간 종말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들어 쓰실 때에 그 중심 사상을 보고 쓰시되 세계적인 역사를 하게 하시는 동시에 그 자손까지 영원한 복을 받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완전한 사람을 쓰시려고 찾으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과 의합된 사상을 가진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지금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입으로 불러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빈민인 한 사람을 살려 보겠다고 사흘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다가 피곤이 없는 몸이 되어, 15년간 고요히 묵상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입술이 이상하게 되면서부터 말씀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4년 동안이나 계속 입으로 불러서 책을 내었고 지금도 말씀이 임하는 대로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책이나 입으로 불러서 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없었던 놀라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사람 하나가 멸공진리를 변론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누구든지 새일 수도원에서 나타난 책을 읽어보게 되면 성경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되는 동시에 큰 역사를 받게 될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큰 것을 하는데서부터가 아니고, 작은 일에서라도 그 사상이 조물주이신 하나님과 의합 될 때에 큰 역사는 얼마든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적은 물질 하나를 바로 쓰는 문제이다

  물질이라는 것은 바로 쓰면 큰 열매가 있고, 바로 쓰지 못하면 큰 화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것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물 한 그릇이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적은 것이라도 바로 쓰게 될 때에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물질 하나를 바로 쓸 줄 알게만 된다면 모든 문제는 크게 변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람이 물질을 따라 간다는 것은 물질의 종이지만, 적은 물질 하나를 바로 쓸 줄 아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주안의 물질계를 전부 움직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렙다 과부가 보리떡 한 개를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에게 바친 것이 작은 일 같았지만 그것이 3년 6개월 가뭄에서 자기 가정을 구원하는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생산 확장이니 5개년 계획이니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국민들에게 적은 물질을 바로 쓸 수 있게 지도하는 정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물질을 쓰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만 그것을 주시는 이는 조물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적은 물질을 바로 쓰는 사람들이 단체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곳에 같이 하시므로 많은 물질을 가지고 죄를 짓는 사람들보다도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진리 운동을 하는 본부인 새일 수도원이 시작될 때에 2천원을 가지고 했지만, 그 2천원의 가치라는 것은 큰 수도원을 열매로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칠 적에 큰 일을 이루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3. 작은 말 한마디를 바로 하는 문제이다

  약3:6을 보면 혀는 곧 불이라고 했다. 작은 불이 천하를 태울 수도 있는 큰 힘을 가진 것과 같이, 작은 혀 하나를 바로 움직이고 바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따라서 세계가 잘 살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실 때에는 말씀으로 하셨고, 앞으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도 말씀으로 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한 절을 잘못 전했다는 조건으로 자신을 망치고 교회를 망칠 수도 있는 것이요, 작은 말 한마디를 하나님께서 인정하리만큼 했다는 조건으로 그 사람에게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이 필요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큰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참 종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한 말 한마디가 자신을 망치게 할 수도 있고, 교회를 망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양떼를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한 말 한마디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자신이 살게 되는 일도 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극히 조심하는 생활에서 내려온 것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내 입을 쓰시는 열매가 되었다고 믿어지는 바이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서 한마디의 말이라도 필요가 없는 말을 하게된다면 그것이 큰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작은 말 한마디에 하나님께서 기뻐하기도 하시고 작은 말 한마디에 하나님께서 노하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 전에 내가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에 열 시간이나 수도생을 가르치고, 매주일 서울에 가서 목회를 하고, 매달 70페이지의 월간지를 발행할 때에, 쉬는 시간도 없이 너무 분주해서 못하겠다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필요가 없는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산당을 이길 사람은 작은 말 한마디에 응답이 오는 사람이라야 될 것이다.

  암7:1이하를 보면 아무리 황충떼가 강하게 일어나서 피해를 주고 큰 불이 바다와 육지를 먹어 나오지만,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는 기도의 말이 하나님께 상달되므로 황충떼의 피해도 당치않고 불의 피해도 당치 않으리라는 응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 종말에 환란과 재앙에서 남을 자는 한마디의 말에 응답이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묵시라고 본다. 인간 종말에 마지막 싸움에서 원자탄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하는 사람의 기도가 승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가 세계를 정복하는 나라가 되려면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양성시키는 일이 없이는 안될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오늘날 교회가 너무 복잡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이것을 없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는 것이 소망이며, 말씀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복잡해진 원인은 간단히 말하면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도자들이 성경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싸우지 않을 일에는 싸우고, 싸울 일에는 싸우지 않게 되니 자동적으로 교회가 복잡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해서 공산당을 들어 교회를 까불어 보는 역사를 하게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두드리고, 까부는 일을 하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 알곡은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버리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부터 자동적으로 알곡이 되는 사람과 쭉정이가 되는 사람으로 갈라지게 될 것은 사실입니다. 알곡은 멸공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기뻐할 것이요, 쭉정이는 멸공 진리의 말씀을 오히려 반대하고 나가게 됩니다.

  어느 교파나 종말의 진리 운동을 통하여 파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산 믿음을 가진 자들이 멸공 진리의 말씀을 만족하게 받아 들여 이 진리를 따라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교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갈 때에 말씀을 중심한 단체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이 없으므로 혼란에 빠졌던 교회는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이 나타날 때에 각성을 받게 되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 말씀의 빛을 따라 한데 뭉쳐지는 일이 있어 촛대 교회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파를 목적한 것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진리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은 사실입니다. 복잡해진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그 복잡한 일을 없앨 수가 없고, 복잡한 교회에서 명랑한 생각을 가지고 진리를 따라 나온 사람들로 말미암아 푸른 나무와 같이 하나가 되는 단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선거 운동을 할 때에 복잡해졌던 청중이 완전히 당선자가 나왔을 때에는 자동적으로 조용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종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떠들고 있지만, 가장 영계가 높고 말씀이 밝은 종이 나타나서 진리의 봉홧불을 높이 들 적에 그 말씀 앞에서 자동적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11:1~2과 같이 척량 받는 자와 이방에게 밟힐 자가 이때에 완전히 갈라지게 됩니다.

  지금 교회가 극도로 복잡해진 것은 알곡과 쭉정이가 될 사람들이 갈라질 때가 온 징조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복잡한 것을 없이 하기 위하여 친히 그 입에 말씀을 준 종을 나타나게 하므로 사59:21이하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문】2.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예배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부합되어야 응답의 역사가 내리게 됩니다.

  첫째 :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둘째 : 신앙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합리화되어야 하며,

  셋째 : 실천 생활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는 조금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조금도 형제를 판단한다든지, 멸시한다든지, 무시를 하는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불쌍히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택한 자가 잘못된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보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시는 것이니, 우리도 항상 형제를 불쌍히 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있어야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체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조금도 가감이 없이 말씀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있을 때에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날마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희생적인 생활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양심, 사상, 생활이 하나님과 연합된 자라야 예배가 상달되며, 그 예배를 통하여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응답의 역사가 내리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이에 무엇이 막혀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항상 열린 문이 있는 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계3:8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생활이 양심, 사상, 실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려야만 할 형편이 될 때에 언제나 예배를 통하여 그 응답의 역사를 나리게 됩니다.  

  지금 이때에 드릴 예배는 시국 난제 해결을 목적하고,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나 모든 것이 앞으로 오는 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데서 맹렬히 부르짖는 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시국의 난제를 등한히 여기는 일이 있으므로 아무런 응답이 내리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이 시국 난제를 어떻게 하여야 돌파할 수 있겠느냐 하는 불타는 마음에서 예배를 드려야 앞으로 큰 역사가 나리게 될 것입니다.

 

 

【문】3. 사람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해야 올바른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답】인간은 활동이 없이 살 수가 없고, 생명이 없이 활동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활동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기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심히 적다고 봅니다. 그러면 사람의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1. 정신 작용의 활동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도 특수하게 정신 작용이 발달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두뇌를 가졌다고 봅니다. 정치적인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작적인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연구하는 일에 있어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자가 여러 가지로 정신 작용의 활동을 하는 열매가 이 사회를 이루어 놓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이루어 놓은 사회가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패해진 것을 보면, 정신 작용의 활동만으로는 의로운 세계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신 작용을 초월한 활동의 세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한 활동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중생을 받고 보니 인생에게 제일 큰 일이 죽은 영을 살리는 일인 줄 알게 되므로 목숨을 바치고 활동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즉 사도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중생의 역사가 없이는 올바른 생각조차 가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을 받지 못한 자는 그 심령 자체가 바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죽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중생의 체험을 받게 될 때에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깨달아지므로, 자기가 과거에 정신 작용으로 하던 것이 너무나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일이 분토같이 보이게 되며 과학을 초월한 인격을 가지게 되어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활동의 힘을 받아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으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그의 활동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복음이 확장된 것은 사도 바울의 활동이 승리한 열매라고 봅니다.   

  기독교를 가장 박해하였던 사람으로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어느 사람보다도 더 크게 활동했던 자가 바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생을 받고 그리스도의 능력에 끌려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보게 됩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아는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을 해치려고 하던 정권과 교권은 다 망해 버렸고, 바울이 활동하던 진리 운동은 온 세계를 살리는 대 종교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3. 죽을 몸을 살리기 위한 활동입니다

  가장 큰 활동은 세계 인류가 과학 발전으로 가져온 악의 무기에서 전멸될 수밖에 없는 오늘에, 거기에서 몸을 구원해 준다는 것을 목적한 진리 운동일 것입니다.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 대하여 묵시를 받을 때에 세계 인류가 한시간 동안에 불탈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하게 되지만 거기서 구원해 주는 일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죽은 영을 살려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죽을 몸을 살려주는 것으로 인간 종말의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불에 사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것도 큰 활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 작용의 활동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부패한 정치와 타락한 종교와 악화된 세상이 완전히 없어지게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므로 그 몸이 살아서 지상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가 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정신 작용으로 있는 일이 아니요, 영적 활동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므로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에 영과 육을 아울러 불에서 구원해 주는 일이 제일 큰 일인 것을 말해 놓았으니 우리는 이 역사의 힘을 하나님께 받아서 활동하는 일이 가장 올바른 활동이라고 봅니다. 이 활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행하시는 일이므로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하등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에서 그 말씀을 자세히 읽고, 자세히 듣고, 자세히 증거하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능력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구원해 주시는 일이 있으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4.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왜 많은 파가 생기게 됩니까?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답】오늘날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본질이 떠난 사랑이 될 때에 이것은 오히려 불만이 생기는 단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대로 남에게 주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를 않고, 남에게 사랑 받기를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양떼들이 갈라지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어느 종이든지 양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가는 일 밖에 다른 일을 하게 될 때에 이방인보다도 싸우는 일이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양떼를 살리기 위한 것보다도 이용하려는 마음에서 인간의 사랑으로 포섭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어리석은 교인들이 그 사람을 참된 목자로 아는 일이 있으므로 전부가 자기를 위한 사랑이 되고 보니 파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자기를 위하여 양떼를 포섭하고 양떼는 영적 문제보다도 임시 자기를 좋게 해주는 교역자를 따르게 되니 자동적으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인간의 사랑에서 서로 사귀게 되는 단체에 불과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하나가 되려면 먼저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녹아져서 양떼를 살려 보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활동하는 일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역사를 내리시므로 되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사랑의 본질이 변하게 되면 마른나무 같이 되고 맙니다. 에베소 교회가 모든 것이 다 훌륭하지만 처음 사랑이 없으므로 촛대가 옮겨질 위험이 있으니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기독교는 순교자 동무로 뭉쳐지는 단체가 되므로만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도 있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땅에 이루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5. 기도라는 것은 어떠한 기도라야 응답의 역사를 받게 됩니까?

【답】기도라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는 어떠한 것이냐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 조금이라도 외식이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기도를 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 하여도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데서 응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을 때에 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 조금이라도 말씀에 가감이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말씀에 가감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비 진리와 동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가감된 기도는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40년간 기도 생활에서 말씀이 가감된 기도는 응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내가 40년간 기도하던 중에서 25년은 응답을 받지 못했고, 15년 동안에는 기도할 때마다 정상적으로 내려오는 은혜의 증거가 너무 크므로 과거 신앙 생활이 십자가를 믿기는 했었지만 말씀에 가감된 것이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 조금이라도 마음에 죄가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죄가 있는 사람의 기도를 받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요, 죄가 완전히 없어진 사람이 되어 기도할 때에 얼마든지 큰 응답을 나리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도로써 응답을 받는 생활이 계속으로 있게 되려면 중심 성결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는 사람에게 성결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에서 생기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는 아무런 응답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죄가 있다 하여도 십자가를 믿으므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했던 것이 잘못된 노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중심 성결을 믿는 신앙에서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에 큰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죄의 생각 하나라도 가졌다면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주의 이름으로 올리는 기도는 인간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이름이니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 조금이라도 남을 판단하지 않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형제를 판단하면서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 그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를 불쌍히 보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의 기도는 그것을 청산할 때까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종이 형제를 이단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형제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종이라면 이단이라고 정죄한 사람이 주님 앞에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고려 신학교에 다닐 때에,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하던 죄를 회개한 후부터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일 때문에 은혜의 문이 닫혔다고 봅니다. 유대교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며,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했다가 망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에 우리는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항상 그를 구원코자 하는 마음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응답이 없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기도할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특  집  

 

1. 소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걸어가는 사명자의 발걸음

  사명자라는 것은 잠잠히 숨어서 속삭이는 기도를 할 때도 있고, 용기있게 걸어나갈 때도 있다. 그런데 72년은 사명자들이 잠잠히 기도만 할 때가 아니고 용기있게 걸어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누구든지 일어나서 용기있게 걸어가야 하는데 있어서 천국을 향하여 가던 발걸음을 돌려 새 시대를 향하여 용기있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날까지는 천국이냐, 새 시대이냐 하는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새시대로 가는 방향을 정확히 정하고,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크게 외쳐야 할 것이다.

  협상적인 평화를 바란다는 것은 잠꼬대와 같은 소리요,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대적을 쳐 없이하므로 평화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경고의 나팔은 잠든 영혼을 깨우쳐 삶의 길을 찾게 하는 봉홧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대적을 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때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려면 선지서와 계시록을 보면 된다. 만일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지 않는다면 피 값이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니, 금년부터는 빨리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면서도 읽어 볼 수 있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이제부터 일어나게 되면 승리요, 잠잠하면 밟힐 것이니, 우리 사명자들은 총 궐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선지 국가가 되어야만 다음과 같은 3대 축복이 오게 될 것이다.

  첫째 : 이스라엘적인 승리의 왕권 축복이 올 것이요,

  둘째 : 민족이 살 길을 찾게 되는 축복이 올 것이요,

  셋째 : 열방 재물이 들어오는 축복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빨리 달려가면 축복이 오게 될 것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징계의 막대기가 오게 된다.

  1965년 1월에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올 때에 이상하게도 일곱 별의 빛이 이 성산에 내려 비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40일 금식기도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7년이 되는 금년 1월에도 40일 금식자가 25명이나 되는 것은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420명에 다달은 40일 금식자가 멸공 진리 운동을 위하여 계속으로 나오게 된 것은 북방을 굴복시킬 용사의 단체가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일어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격동이 우리에게 올 것이며, 멸공 진리의 나팔을 압록강 두만강까지 들어가면서 불어야 할 때는 왔다. 죽은 자는 일어나지를 못해도 산 자는 일어나리로다. 사람이 결심하고 일어나는 일은 한정이 있어도 7년간 금식 기도의 응답이 나리는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일어나 일하다가 넘어지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잠잠히 기도하다가 일어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으로 되는 것이다.

  공산당은 짐승을 부리듯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푸른 새순이 돋아 나듯 일어나는 것이다. 7년 동안에 금식 기도의 운동이 있은 것은 어떤 사람이 시킨 것이 아니고 청년들이 사상에 불타는 마음과 하나님께 애원하는 마음으로 진행된 일이라면 일어나는 것도 누가 일어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로부터 응답이 올 때에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여호와의 군대라고 한다.

  내가 이 산에서 봉사하게 된지가 7년이나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가운데서 받고 떠는 마음으로 순종한 것뿐이다. 나는 어떠한 명예나 권리나 안락을 생각해 본 일이 없고, 어떻게 하면 이 민족을 살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살릴까 하는 마음밖에는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실 것이다. 만일 내가 스스로 한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금년부터 나는 후퇴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면 돌진의 걸음을 걸어 나가게 될 것이다.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상

  고요한 산천이 나를 위로해 주는구나. 소리없이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구나.

  하나님께서 이 산을 창조하시고 이날까지 숨겨 놓았다가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을 나는 더욱 감사하게 되는도다. 성도들이 이 산에 와서 40일씩 먹지 않고, 눈물겹게 호소하는 저 소리,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되는 구나. 지금도 30명에 달하는 40일 금식자의 그 모습, 흉하지 않고 아름답기만 하니 내 마음이 기쁘도다. 7년간 계속한 금식 기도의 운동이 지금 이 자리에 응답으로 강하게 내리도다.

 

 

2. 승리의 소망이 넘치는 사명자의 말

  푸른 하늘은 나를 덮고 있는 것 같고 웅장한 산은 나를 앉고 둘러 싼 것과 같은 이 자리 남쪽을 내다 볼 때에 우뚝 우뚝 솟아 오른 모든 산봉우리가 내 앞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과 같은 이 자리 거룩한 장막이로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1964년 9월 24일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이 산을 덮고 불속에서 들려오던 그 음성이 새삼스럽게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마음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오늘날 하늘로부터 오는 힘은 나를 길러주고, 말씀을 보내는 대로 기록하다 보니 상쾌하고도 가장 자유로운 문서 운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오는 말씀이 없다면 내가 아름다운 소식의 사장이라는 사명을 걸머진 것이 큰 수치가 되고 말겠지만, 이제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서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 더욱 확실하다. 인간들은 나를 위험한 인물로 보지만, 자기 지식을 믿고 일하는 사람보다는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내가 입술에 말씀이 임했다고 하는 것을 이단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는 영적으로 소경과 귀머거리 같은 사람들이니 그런 사람들이 나를 첩첩이 둘러싼다 하여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소경 많은 것 무섭지 않으며,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많은 것 무섭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보고 기도할 것 뿐이다.

  인간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한 나로서 마땅히 당해야 할 일로 보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수준이 얕다고 하는 말은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그 속의 진리가 수준이 얕다고 하는 말은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진리의 대적이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입을 봉하고 산아 바위야 나를 가리우라고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인물을 상대하여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남의 서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말하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말할 여지가 없는 인물이므로 나와는 상대가 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월간지를 읽어보고 이단이라고 할 것이 있다면 나를 찾아와 만나든지 서신으로 그것을 기록해 보내 주어도 나는 답변할 자료를 가지고 있다.

  무력적인 싸움이라는 것은 무력을 갖춘 자라야 상대가 되는 것이요, 사상적인 싸움이라는 것은 사상을 가진 자라야 상대가 되는 것이요, 진리적인 싸움이라는 것은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자라야 상대가 되는 것이다. 엄마, 아빠 하는 아이들에게 이론적으로 말해 보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과 같이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진리의 변론에 대하여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주님께서 좋은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던지는 것 오히려 불행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날 그날 삯이나 받아먹는 것을 목적한 인물에게는 진주 같은 생명의 말씀 변론이 하등 유익이 없을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진리를 위하여 억울함을 당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이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 운동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은 나를 축복하는 행동이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뿐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그날 그날 기록해서 보내는 것만 나의 할 일이요, 이 글을 읽고 복을 받든지, 화를 받든지 이것은 나에게 책임 있는 일이 아니다.

  만일 내가 볼 때에 날마다 나타나는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탈선된 것이 있다면 이것은 거짓의 영이 분명하므로 나 자체가 이 역사를 반대하고 받아 기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세밀하고, 상쾌하고, 명랑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므로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 입술을 통하여 말씀을 변론하신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실히 믿어지는 마음으로 이 문서 운동을 활발스럽게 해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되면서 독자 여러분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리는 바이다.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잘못 되었다는 말을 하지 말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여도 2차, 3차까지 읽어보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 올 것이다.

  기록하여 보내는 이 사람이나 받아 보시는 여러분이나 다 같은 종의 입장으로 우리는 하나같이 이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믿을진대 이말 저말 들을 것도 없이 강하게 일어나야만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가 일어나면 양떼가 살고, 우리가 일어나지 않고 잠잠히 있으면 양떼들은 죽을 것이니, 가련한 양들을 불쌍히 보는 종이라면 이 문서 운동에 합심 단결하여 일어나기 바란다. 우리가 일어나야만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양떼들은 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은 합심 단결하여 이 시대에 잠든 영혼을 깨우치는 것이 사명이다.

 

 

3. 72년 2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싸워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은데 싸울 용기조차 잃어버린 나의 이 모양 내가 보기에도 가련하거든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슬퍼하실 일이 되겠나이까. 훈련을 받을 때에는 실수가 있어도 은혜를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싸움을 해야 될 이 해에 내가 실수가 있다면 어찌 하오리이까.

  완전한 것 내게는 없어도 아버지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언약의 말씀을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아버지여! 이미 말씀대로 행하신 그 일이 내 영혼을 살렸사온즉,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로 나를 살리되 이 몸이 완전하게 되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신부 단장 갖추게 될 것을 믿나이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제물로 주신 아버지여, 무엇이 내게 부족하겠나이까. 그 사랑 속에서 나를 살리시고, 그 사랑 속에서 나를 기르신 아버지여! 그 사랑 속에서 승리할 것을 굳게 믿나이다. 저 산에서 푸른 새순이 돋아나기 전에 이 나라가 완전한 승리의 선지 왕국이 되는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선지의 나라가 될 때에 푸른 새순과 같은 종들이 나오므로 열방을 깨우치는 열매가 되겠나이다.

  420명 금식의 제물, 40일 먹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없이 기도하게 하신 것은 아무런 지장 없이 이 나라가 승리의 선지 왕국이 될 징조라고 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나라가 선지 왕국이 되는 것은 당신에 강권 역사가 임하므로 될 것이오니 이 나라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고민하는 지도자들에게 여호와 나타나시옵소서.

  오늘에 북방을 무찌르고 북진하는 것은 여호와 나타나므로만 이루어지겠나이다. 히스기야의 하루밤 기도도 북방 앗수르를 이겼거든, 7년간 쉬지 않고 40일 금식 기도 운동의 피의 제사가 무신론자를 회개시키지 못하겠으며, 공산 사상을 없애 버리지 못하겠나이까. 하나님이여 붉은 세력을 없애버리는 심판 권세의 응답을 내리소서. 속히 내려주옵소서.

 

말씀을 기록하는 종의 말

  저는 어린 사람입니다. 중생 체험을 받은 지 겨우 3년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쓸 때마다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시고 복된 자리에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때에 감사하면서도 떨리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서 내리는 말씀을 그대로 기록하여 출판하도록 노력은 하고 있지만 너무 둔한 사람으로 약간의 실수가 있다하여도 기도하시는 마음으로 저를 좋은 일군이 되도록 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사람과 교정보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신다면 여러분에게도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4. 부탁의 말씀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는 사람의 머리로 연구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입술을 통하여 이 시대에 영계 혼란과 말씀 혼선을 없애며 사상 문제를 바로 다스리기 위하여 주시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이 사람은 어떠한 서책을 볼 시간도 없겠지만 사실은 그것을 볼만한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못됩니다. 사람으로써는 이 시대의 비밀을 알지 못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 입술에 변론의 역사를 주셔서 시대의 비밀을 바로 변론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내가 저작을 한 것이라면 이러한 부탁을 드릴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시므로 된 일이니 다음과 같은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읽는 가운데서 심령 소성의 큰 힘을 얻도록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특별한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통하여 말씀 변론의 입이 열려지도록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특별한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에서 우리가 사상적으로 나갈 방향이 무엇인 것을 완전히 찾아 어려운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사상 동지의 결합이 있도록 사명 동지 여러분들이 힘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4.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는 저 혼자서 아무런 자본도 없이 발행하는 것이오니, 월간지의 인쇄비 값만은 속히 보내 주시도록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힘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5.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널리 문서 운동하는 일에 힘을 써야만 하겠습니다. 이 책 한 권을 전한다는 것이 사명 동지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6. 이제부터 더 고상하고 오묘한 문서가 나오게 될 것이니,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우리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각성을 받게 되도록 합심 협력하여 문서 운동에 물심 양면으로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7.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에 있는 광고난에 무엇을 내시려는 마음이 있으시면 한달 전에 본사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5. 목사 시취 문제와 답

【문】1.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연관성을 세밀히 기록하라

【답】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시작을 할 때에는 목적을 정하고 하시는 것이니, 그 방법이 시작이나 끝이나 꼭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덴 동산에서 간교한 옛 뱀을 만들어 꾀어 보시던 하나님은 인간 종말에도 옛 뱀인 붉은 용을 들어서 꾀어 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령의 사람이라도 뱀을 이기지 못했을 때에 죽은 것과 같이 말세에 중생 받은 자라도 뱀의 꾀임을 이기지 못하면 환란에서 죽게 된다. 사람의 몸이 영생하는 것은 뱀의 꾀임을 이겨야 된다는 것이니, 에덴 동산의 법이나 종말의 법이나 꼭 같은 것이다.

 

【문】2. 천하에 제일 큰 일이 무엇이며, 큰 역사가 무엇인 것을 간단히 기록하라

【답】제일 큰 일은 왕국 건설 운동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실 때에 큰 목적은 왕국 건설이었다. 그러므로 제일 큰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왕국 건설 운동의 반열에 들 수 있는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신은 이 인격 완성을 위하여 역사하시고 계신다.

 

【문】3. 우리가 이 시대에 촛대 교회를 세계적으로 일으키는 일은 어떠한 방법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기록하라

【답】세계적인 촛대 교회 운동은 문서 운동이 크게 확장됨에 따라 그 문서를 보고 깨닫는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가지게 되므로 완전 무장을 갖춘 사람들이 초청을 받게 될 때에 나라마다 큰 성회가 열리게 되어 각 나라의 성도들이 각성을 받고 완전 무장을 받아서 촛대 교회는 자동적으로 세계에 널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은혜 시대의 방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각 나라의 숨은 성도가 참된 진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문】4. 사람이 변화 승천하는 것은 어떠한 사상과, 어떠한 영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록하라

【답】변화 성도의 사상은 멸공 사상이 철두철미해야 되며, 영계는 다시 예언하는 선지의 영감을 받아야 한다. 이날까지는 이루어진 일을 정확히 증거했지만, 변화성도는 이루어질 일을 정확히 증거하는 영계에 들어가므로 그 전하는 예언의 말씀대로 그 몸에 변화를 받아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문】5. 신,구약 성경에 제일 요점되는 획선이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라

【답】성경이라는 것은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고 타락한 인생을 다시 에덴 동산에 허락했던 축복을 준다는 것인데, 이것이 기독교 구원의 초점이 되는 동시에 둘째아담 그리스도를 보내서 속죄의 은총으로 죽은 영들을 살리는 것은 영만을 구원하자는 목적이 아니요, 그 몸까지 구원하자는 목적이다. 즉 모든 성경의 목적은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한다는 것이니 재림의 주가 오므로써 지상 왕국이 올 것을 두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보게 된다.

 

【문】6.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라

【답】새 시대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나 힘이 조금이라도 가입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읽어서 변론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될 때에 그 사람에게 참소하던 마귀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귀 참소를 이긴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종말의 예언을 증거할 때에 따라오는 사람은 사상적으로나 진리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이므로 들림 받았던 종들이 지상 통치를 하려 강림할 때에 구원해 주고 그 밖의 사람은 다 없이 하므로써 평화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삼위의 완전성

1. 하나님의 완전성       2. 성자의 완전성         3. 성신의 완전성

첫 째 : 스스로 존재하심    첫 째 : 생명의 빛이심       첫 째 : 완전히 가르치심

둘 째 : 영원 존재하심      둘 째 : 도성 인신 하심      둘 째 : 완전히 고치심

셋 째 : 무소 불능하심      셋 째 : 구원을 완성하심     셋 째 : 완전히 결실케 하심

넷 째 : 진실 무위하심      넷 째 : 성령을 부어 주심    넷 째 : 완전한 인격 이루심

다섯째 : 완전무결하심      다섯째 : 심판을 베푸심      다섯째 : 영원히 같이 하심

 

 

6. 전도사 시취 문제와 답

【문】1. 삼위의 완전성을 기록하라

【답】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신 동시에 영원 존재하시고, 무소 불능하신 신이신 동시에 진실 무위하시므로 조금도 부족이 없는 신이시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동시에 도성인신하여 구원을 완성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는 동시에 심판권을 가지신 신이시다.

  성신은 모든 것을 바로 믿도록 진리를 가르치는 동시에 완전히 고쳐 주기도 하시고 열매를 맺게도 하시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영원히 같이 하시는 신이시다.

 

【문】2.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왜 법으로 두었느냐 하는 것을 설명하라

【답】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동시에 흙으로 창조한 몸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여 먹지 않으면 영생한다는 것이 법인데, 법을 지키는 자라야 그 몸이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교한 뱀을 창조해서 꾀어보는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문】3. 하늘의 천사들이 어떠한 사람을 돕고 있다는 것을 기록하라

【답】하늘의 천사들은 인간의 힘으로 할 것을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다가 할 수 없는 지경에 들어가는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 맡은 사명이다. 이렇게 하는데 있어서는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문】4. 천하에 제일 영계가 높은 사람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기록하라

【답】영계라는 것은 묵시를 받는 영계도 있고, 그 비밀을 인간에게 바로 전하는 영계도 있다. 그러므로 제일 높은 영계를 가진 자는 인간 종말에 모든 선지와 사도가 받은 비밀의 말씀을 완전히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영계를 가진 자이며, 아무리 원수가 강하게 일어난다 하여도 그 세력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문】5. 교회를 목회하려면 어떠한 방법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라

【답】하나님의 말씀이 혼선되지 않도록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말씀이 나타나니 만큼 그 말씀 그대로 전하는 것을 목적하겠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에게 내리는 역사가 나에게도 내리게 되어 인간의 방법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증인 권세의 역사로 남은 교회가 될 것을 믿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갈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

 

【문】6. 지금 이 때에 새일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라

【답】새일 교회라는 것은 환란과 재앙 속에서 양떼를 살리는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니, 모든 사람을 새시대로 인도하는 전권 대사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아무리 교회가 많다 하여도 새일 교회에서 들고 나오는 변화 성도의 교리와 매일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리고 있는 변론의 말씀이 아니고는 마귀 흑암에서 미혹을 이기고 구원을 받게 될 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성  회  소  식

72년 2월 21일부터 26일까지 대전 새일 교회에서(중도극장 맞은편)

이뢰자 목사님을 모시고 성회를 열리게 되오니 많은 기도와 참석을 바랍니다.

대전 새일 교회 재직 일동

 

완전하신 주예수

<성가 74장 곡>

   1. 내 죄 걸머지신 예수여 우리들은 믿음으로

      이기렵니다. 죄의 세력 높아 졌으나

      주의 십자가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 후렴 >
      주 예수여 우리손을 붙드시옵소서

      새 힘을 주어 승리로 환란 풍파를

      이기므로 승전고 울려 마귀세력 없이 하리라

 

   2. 완전승리하신 예수여 우리들도 능력받아

      이기렵니다. 주의 권세 내게 줍소서.

      철장권세로 질그릇치듯 승리하리

 

   3. 신랑주로 오실 예수여 내몸 변화 주심으로

      들림 받으리 원수세력 둘러 쌌으나

      주의 부르는 소리 듣고서 올라가리

 

   4. 세계평화 주실 예수여 우리 맘에 평화주어

      하나가 되어 마귀참소 둘러 쌌으나

      평화의 단체 이루심으로 승리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