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5월호)

설  교  편

 1.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주님의 심정 (계6:9~11)

 2. 큰 진노의 날이 올 때에 있을 징조 (계6:1~8)

 3. 해를 받기로 택한 그릇 (행9:10~18) 

 4.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일 (합3:12~14) 

 5.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할 일 (마7:15~21)

 6. 하나님의 인과 이스라엘 문제 (계7:2~8)

 7.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할 일 (엡3:11~13) 

 8. 한 목자에게 있어야 할 단체 (요10:14~18)

 9.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기쁨 (사43:1~7, 65:17~23)

10.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자가 되자 (빌2:12~18)

11. 여호와의 응답과 새 땅 축복 (사49:7~13)

12. 야곱이 복 받는 길 (창28:1~4, 13~15) 

13. 성령과 신부가 말할 일 (계22:17~19) 

14. 아버지의 온전하신 것 같이 온전한 자가 되자 (마5:43~48)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에 교회 승리의 역사

제1과  야곱에게 새 힘을 주므로 승리하게 됨 (사40:27~41:4)

제2과  야곱에게 새 타작기 역사를 주므로 승리하게 됨 (사41:14~20)

제3과  야곱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됨 (사41:25~27)  

제4과  야곱이 새 노래를 부르므로 승리하게 됨 (사42:9~17)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0과  청황색 말 탄 자의 이름은 사망 (계6:7~8)

제11과  순교자 동무의 수가 차기를 기다림 (계6:9~11)

제12과  진노의 큰 날이 오게 됨 (계6:12~17) 

제13과  네 천사가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함 (계7:1)

 

논 설 편

1. 새 것을 좋아하나 새로워지지 못하는 일 

2. 사람의 제일 기쁜 일은 수고를 바로 하는데 있다. 

3.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갈 때에 큰 것을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얻게 된다  

4.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은 자 

5. 노동을 등한시하는  국민이 나라를 망친다 

 

신 앙 문 답

1.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우리의 영, 육이 구원받는 것은 복음이 다르다는데 대하여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지금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우리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4.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오늘에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일수도원을 통하여 교회가 분열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슨 원인으로 분열이 되는 것입니까?

 

특    집

1. 5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감상

2. 1965년 5월 15일을 회상하는 종의 말

3. 5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4. 5월 15일을 맞이하는 종의 영감 

5. 5.15에 큰 축복을 기다리는 종의 마음

6. 독자 여러분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7. 성산에 수력 전기 

 

 

 

 

 

 

 

 설 교 편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주님의 심정

- 계 6:9~11 -

 

  일찍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 되시었다. 그러나 홀로 세계를 통치할 수가 없으므로 만국을 통치할 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면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심정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참된 제자가 생기기를 원하시는 심정 (마16:21~28)

  우리는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라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할 때에 사단이라고 책망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는 것을 목적하고 주님께서 오셨는데, 그 일을 방해하는 자는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라도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십자가에 죽겠다는 예수님께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 제자된 도리이므로 옳은 일 같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에는 베드로가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있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가는 자가 나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뜻에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하면서 목숨을 아끼는 자는 주님께서 함께 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목숨을 아끼는 자에게는 줄 수가 없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에게만 주시되 부족이 있다 하여도 대언 기도하시면서 승리하도록 역사를 하신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볼 때에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하여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합당한 자로 보시는 것이요 인간이 볼 때에 아무리 완전하여도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합당치 못한 자로 보시는 것이다. 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하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가 아니라면 그 권세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2. 참된 사랑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는 심정 (마18:35,계2:4~5)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므로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마음과 중심으로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기도한다 하여도 응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동시에 택한 사람을 살려주기 위한 마음이 불타서 말씀을 전하다가 죽은 자를 가르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라고 하였다(계6:9).

  아무리 원수에게 죽었다 하여도 중심에 남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순교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말씀을 인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원수를 피하지 못해서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가 당신을 잡으러 왔을 때에 피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들이 찾는 예수라 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어찌 받지 않으리요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중심으로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야 하며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에베소 교회가 모든 일을 다 잘 했다 하여도 중심에 남을 살리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없으므로 촛대를 옮겨가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3. 참고 기다리시는 심정 (계6:10~11)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심정은 세 가지라고 본다.

  첫째 : 사랑하는 제자들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기도하는 심정.

  둘째 : 사랑하는 자들이 실수가 있다 하여도 참고 용서하는 심정.

  셋째 : 왕권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심정.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종들을 말씀대로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마귀의 세력을 허락해서 괴롭힐 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심정을 가지셨다.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는 일이 없다면 왕권 반열에 들 자는 이 세상에서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일이 있으므로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과 같이 참고 기다리는 심정이 있어야 한다(사30:18).

 

  결    론

  주님께서는 심판기가 임박할 때에 잠깐이라는 기간을 두고 택한 종들을 극도로 까불어 보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라야 주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 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주님께서 역사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주 재림기에는 환란 가운데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종들을 위해서 역사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교자의 반열에 드는 자라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진노의 날이 올 때에 있을 징조

- 계 6:1~8 -

 

  하나님께서 4대 병마를 보여주신 것은 큰 진노의 날이 올 때에 있을 징조이다. 우리가 진노의 날이 올 때의 징조를 모른다면 노아 때와 같이 후회 막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큰 진노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종이 될 사람들에게 이러한 징조를 보고 정신을 차려 무장을 갖추라는 경고로써 미리 계시를 보여 주셨다. 이제 큰 진노의 날이 올 징조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흰 말의 징조 (1~2)

  큰 진노의 날이라는 것은 백마의 1차 승리가 완전히 끝을 맺게 될 때에 오는 것이다. 1차 승리라는 것은 택한 자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시키는 역사이다. 만일 택한 자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하지 않고 진노의 날이 오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진노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세계 인류에게 베풀어 준 다음에 그 사랑의 법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오게 되어야 완전한 사랑이요 공의의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 말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이 부패되었을 때에 진노의 날이 왔던 것은 인간 종말에 될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역사이다. 유월절 양의 피로 애굽에서 해방을 시켜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배척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될 때에 용서 없는 진노의 날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월절 어린양의 제물로 독생자의 몸이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시어 그를 믿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건만 그들이 이방과 타협할 때에는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 인간 종말에 큰 진노의 날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족속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하게 하셨다.

 

  2. 붉은 말의 징조 (3~4)

  하나님의 대적의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 큰 진노의 날이 올 징조라고 본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사람을 벌하기 위한 진노의 막대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택한 사람이 이러한 징조를 볼 때에 정신을 차려 진노의 날을 피하도록 준비하라는 경고인 것이다.

  오늘날 붉은 세력이 인력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날이 가까운 증거라고 본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 북방 세력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무서운 진노의 날이 올 징조라고 묵시를 보았던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이 극도로 부패했을 때에 진노의 막대기로 쓰여진 것이 북방 세력이었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기독교가 부패하므로 진노의 막대기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붉은 말이라고 본다.

 

  3. 검은 말의 징조 (5~6)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보다도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될 때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보다도 물질을 더 사랑하는 자본주의의 세력이 검은 말로 나타났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본을 따라가는 마음이 강하게 될 때에 빛 되시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흑암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정치라는 것은 물질 문명에 극도로 도취가 되어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저울을 가지고 나타난 것은 물질에 치우친 마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경제권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검은 말이라는 것은 물건을 달아보기 위한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 저울추에만 정신을 쓰듯이 아무런 것도 생각지 못하고 물질에만 마음과 생각을 두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할 징조는 검은 말 탄 자의 행동이라고 본다.

 

  4. 청황색 말의 징조 (7~8)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미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난국이 닥쳐왔다. 왜냐 하면 붉은 말의 세력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 말의 세력 안에서 부익부(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돈을 벌어 부자가 됨)와 빈익빈(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빈자가 됨)의 차이가 너무나 많게 된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되어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불평이 생겨서 붉은 말에게 미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공포심이 생길 때도 미혹을 받게 되고 불평이 강할 때도 미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미혹하는 마귀의 세력은 평화와 공평하게 해준다는 미명을 가지고 나오지만 실지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청황이라는 것은 푸른 색과 누런 색을 가르친 것인데, 분별하기가 어려운 빛이다. 오늘날 평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공산 국가와 협상을 하자는 것도 분별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이것을 통하여 궤휼적인 정책을 쓰는 자와 궤휼적인 이론을 가지고 나오는 거짓 선지들이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 자 외에는 청황색 말에게 미혹을 받게 되는 시국이 오는 것이 큰 진노의 날이 올 징조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징조를 볼 때에 큰 진노의 날이 가까이 온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한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큰 진노의 날이 임박한 징조가 보이는 오늘에 그 진노의 날을 면하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징조가 보이는 시기에는 인격으로 무장을 갖추되 하나님의 진노와 하등에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는데 전력을 두어야 한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큰 진노의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벌하기 위하여 오기 때문이다.

 

 

해를 받기로 택한 그릇

- 행 9:10~18 -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할 때에 주를 위하여 해를 많이 받기로 택한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주를 위하여 해를 많이 받은 자라고 본다.

  십자가의 도를 가장 밝히 증거한 사도는 해를 많이 받은 바울이다.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밝히 증거한 편지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십자가의 도에 대한 변론을 완전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진리를 정확히 변론하는 은혜를 받은 것은 다른 사도보다도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해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해를 많이 받기로 택한 그릇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많은 성도에게 피해를 준 일 (13~14)

  바울은 누구보다도 성도들에게 피해를 많이 준 사람이다. 이것은 유대교의 지나친 열성을 바울이 가졌기 때문이다(갈1:13~16).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열심과 강한 성격을 받았다고 본다. 모태로부터 강한 성격을 받은 자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강하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교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정통을 주장하였으며 율법으로는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와 같이 열심과 강한 성격을 가졌으므로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성도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알지 못해서 과오를 범하고 있는 바울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셨다(딤전1:13~14).

  왜냐하면 아무리 택한 자라도 깨닫게 해주므로만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기 싫어하는 자라면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을 때에는 실수가 있었지만, 알게 될 때에는 그 즉시에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고서 성도를 해치는 일을 했다면 택한 자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택한 자라는 것은 언제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다.

 

  2. 이방인을 위하여 택한 일 (15)

  하나님께서는 예지와 예정이 계시므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하실 때에 어떻게 들어 쓴다는 작정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나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하실 때에 어떠한 일을 하라는 사명을 맡겼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택하여 쓰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뜻대로 부르시기도 하시고, 은혜를 주시기도 하시고, 들어 쓰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준 사명을 바로 알고, 그 일에 순종한다는 것 외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맡은 사명을 알고도 그대로 순종치 않는다면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이 순종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보다도 자기 인격을 상실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밭을 가는 쟁기를 만들 때에 도끼를 사용할 때도 있고 작은 칼을 사용할 때도 있는데 도끼를 작은 칼같이 쓰려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어떠한 일에 쓰여진다는 것도 모르고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인격을 모르는 사람이므로 모든 일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3. 해를 많이 받게 되는 일 (16)

  사도 바울은 택함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해를 많이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었다. 고후11:23이하를 보면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피해를 많이 당한 사도였다. 바울이 이러한 피해를 당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내 이름을 위하여 많은 해를 받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억울한 피해를 많이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는 축복 인줄 알고 바울과 같이 항상 기뻐해야만 될 것이다. 언제나 대표적인 종이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해를 당하는 종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피해를 많이 당하고도 감사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피해를 당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사53:10). 그러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 그리고 심판권을 가질 자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해를 많이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일

- 합 3:12~14 -

 

  하박국서는 예수님께서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시기와 기름 받은 자가 해야할 일을 분명히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북방 침략자의 세력을 들어서 인간을 치는 일이 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북방 세력의 그물에 걸리게 될 것을 1장에 말했고, 택한 종이 각성을 받고 일어나므로 북방이 망하게 될 것을 2장에 말했고, 주께서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을 3장에 말했다.  

  이제 주님께서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분노하시는 일 (12)

  오늘에 되어지는 모든 일은 주님께서 분노하실 일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이날까지 참고 기다리시면서 수많은 종을 희생시켜 천하에 복음을 전했는데, 인간들이 이 사랑을 받지 않는 것도 분노하실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 그 사랑을 떠나 세상의 화려한 것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은 더욱 더 크게 분노하실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그 사랑을 받지 않을 때에 분노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도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을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분노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말세 교회가 그 사랑을 감사할 줄 모르고 세속으로 흐른다는 것은 주님께서 크게 분노하셔서 전멸시킬 때가 온 증거이다. 오늘날 강하게 된 북방 세력은 하나님께서 분노의 날에 쓸 막대기라고 본다.  그러므로 북방 세력을 높이 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받아 증거한 것이다.

 

  2.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일 (13)

  초림의 주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이요, 재림의 주는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재림의 주는 일한 대로 갚아 주시려고 오시는 것이니, 기름 받은 자가 아니고는 갚아 줄 만한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 재림의 주는 끝까지 참고 기다린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이니, 기름 받은 자가 아니고는 끝까지 참고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 재림의 주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 자를 축복하시려고 오시는 것이니, 기름 받은 자가 아니고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기름 같은 성신을 충만히 받은 자라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 같은 성신은 충성되고 진실한 자라야 받기 때문이다.

 

  3. 원수를 갚아 주시는 일 (14)

  이날까지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침략자의 세력에게 피해를 당했지만,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이 땅에서 침략자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므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침략자의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주님께서 원수를 갚는 일을 하실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홀히 알고 악의 세력이 두려워서 대항을 하지 못하고 타협을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원수를 갚아 주시는 주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침략자의 세력이 무서워서 타협하자고 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가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셔서 원수의 세력을 없이할 때가 임박한 것을 알고, 원수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타협하지도 말고, 주의 일만 부흥케 하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할 것 뿐이다.

 

  결    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가장 복 있는 자는 기름 받은 사람이다. 지금도 기름 받은 자가 영광스럽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기름 받은 자가 받는 영광에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학식이 많다든지 물질이 많은 자를 복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복 있는 사람은 기름 받은 자로서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사람인 것이다.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할 일

- 마 7:15~21 -

 

  오늘날 많은 종들이 강단에 서서 자기가 가장 정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통이라고 하면서 열매가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큰 수치가 되는 일이라고 본다. 만일 어떤 농부가 농장을 경영하는데 무성하기만 하고 열매가 하나도 없다면 그 비극이야말로 누가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많은 종들이 강단에 서서 많은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열매가 되는 일이 없다면 가장 가련한 것이 기독교이다.  

  이제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거짓에는 열매가 없음 (15~16)

  종교라는 것은 신앙 대상자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라는 것은 겉모양을 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처음에는 옳은 것 같으나 다음에는 그 근본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겉모양은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도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자라면 처음에는 사람에게 오해를 주는 일이 있어도 다음에는 오해를 했던  사람들이 나타나는 열매를 보고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참된 종이 되려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조금도 없어야 하며, 하나님께만 보이려고 하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외식이 없는 사람에게만 열매를 맺도록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이 있다면 그 때부터 하나님 앞에 큰 과오를 범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하신 것은 진실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마음을 그들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열매를 보고 알라고 하신 것은 외식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역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진실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음 (17~18)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시겠다는 언약이니,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일이 없다면 말씀대로 열매를 맺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좋은 나무가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 때에 조물주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진실한 사람이 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열매라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을 가르쳤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만 사람도 동물도 아름다운 열매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신 것이 아니요, 독생자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때에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끔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역사로써만 좋은 나무의 가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나무는 인생 자체가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있게 된다.

 

  3. 열매를 따라 심판하심 (19~21)

  심판이라는 것은 열매를 맺는 대로 갚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는 열매가 완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많은 종들이 서로가 자기 신앙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가서는 참된 종과 거짓된 종을 완전히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열매를 보아서 참된 종과 거짓된 종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무가 좋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나무가 나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는 참된 사람을 열매로 나게 할 것이요, 거짓 선지는 거짓된 사람을 열매로 나게 할 것이다. 누가 참된 종인지 알려면 그 종을 통하여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 된다.  

  오늘의 교회가 강단에 선 종들이 말씀을 증거할 때에 교인들에게 흡족한 은혜가 내린다면 열매는 자동적으로 맺게 될 것이다. 과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후에도 사도의 계통을 밟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많은 열매를 맺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오늘의 종들이 그 계통의 사람이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그들과 함께 열매대로 갚아 주시는 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계18:20).

 

  결    론

  좋은 나무의 그루터기는 예수님이요, 가지는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루터기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셨고, 지금은 한량없는 은총을 나리시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나무의 그루터기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진액을 받으므로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인과 이스라엘 문제

- 계 7:2~8 -

 

  기독교는 인간 종말에 하나님의 인과 이스라엘 문제를 바로 알아서 싸워 나가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만일 이 문제를 혼선시킨다면 이제부터 기독교는 큰 위기를 당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아니라면 앞으로 오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이스라엘적인 축복이 없다면 이 땅에서 존재할 수 없는 난국을 만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인과 이스라엘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하나님의 인과 기독교 (2)

  본문에 다른 천사라고 한 것은 하나님 편에서 역사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인간 종말에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이 다른 천사가 보여준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자멸이라는 난국을 앞에 놓은 이 때에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날까지는 성신의 인을 중심한 기독교로서 어떠한 박해가 있어도 승리하고 내려 왔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교회를 바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 첫째로 오는 환란이다. 이 환란이라는 것은 어떤 건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만 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에 따라 화를 피하느냐, 피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부된다. 그런데 이것은 불신자나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기독교가 오늘날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종이 아니고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난국을 만났다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마귀 흑암을 물리치는 역사가 없이는 도저히 교회를 이끌고 나갈 수가 없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둘째 : 완전한 영감을 받지 못하고는 진리를 바로 증거할 수 없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셋째 : 순교적인 생활이 없이는 기독교의 사상을 지킬 수가 없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종이라야 흑암을 뚫고 나가면서 이 시대의 비밀을 바로 증거할 수 있는 동시에 순교적인 생활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이 다른 천사의 역사는 천국 복음 운동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지상 왕국을 목적한 것이다(계10:7, 11:15).

  그러므로 우리가 지상 왕국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는 것은 이 몸이 살아서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역사이다. 이 몸이 죽어서 영혼이 구원받는 일은 마귀 미혹을 이기지 못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로 되는 역사라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 육이 구원받는 일은 마귀 미혹을 이긴 자로서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셔서 행하시는 일을 뜻했다. 영혼 구원은 십자가 보혈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몸이 살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예수의 피로 산 자로서 마귀 미혹을 말씀으로 이기고 나가는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 운동의 역사로 기독교의 끝이 아니요, 지상 평화 왕국의 복음 운동으로 끝을 맺는 것을 다른 천사가 들고 나오는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고 한다.

 

  2. 이스라엘과 기독교 (3~8)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르고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유월절 양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기독교가 인간 종말에 받을 축복을 알려 주는 선지 국가이었다. 지상 왕국을 알려준 선지 국가와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는 기독교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제사에 대한 문제

  육적 이스라엘의 제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므로 해마다 드렸고 기독교의 제사는 완전한 것이므로 한 번 드리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완전한 제사를 드린 열매라면 육적 이스라엘은 완전한 제사를 드리기까지 예언적인 제사를 드린 나라이다.

  둘째 : 말씀 증거에 대한 문제

  구약 시대의 선지들은 묵시를 보고 증거한 것 뿐이요 신약 시대의 기독교는 그 묵시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 기독교는 이스라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게 하는 역사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기독교의 사명은 선지들이 묵시로 보았던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방적인 세력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타협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완전 역사가 임하므로 이방적인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이스라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목적하고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증거해야 될 때가 왔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현재 있는 유대인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 모순된 일이다 왜냐 하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예언적으로 나타났던 것이요, 이제 나타나는 이스라엘은 야곱의 축복을 지상에서 받는 우리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열 두 사도는 천국 복음 운동을 중심 하여 뭉쳐진 단체이므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고 하였고, 우리들은 열 두 지파에 속한 단체이므로 다시 예언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을 사도 요한은 계시로 받은 것이다(계10:11). 육적 이스라엘은 완전한 제사가 못되므로 세계 만방에 다시 예언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인류를 십자가의 보혈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에서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으므로 세계 인류에게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중 십 사만 사천에게 인을 맞도록 역사 하는 것은 현재 유대인을 중심 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제사를 드리는 영적 이스라엘을 중심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다시 예언하는 역사를 받은 자가 맞게 된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승리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산 백성이 시련 가운데서 기도로 승리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완전한 승리의 보혈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신다. 만일 양의 피로 제사하는 이스라엘을 중심 해서 종말의 역사를 끝맺는다면 독생자의 완전한 피의 제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반대하는 유대인을 중심 해서 종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에서 너무나 어긋난 일이라고 본다. 지금은 우리 기독교가 이스라엘의 지상 축복을 목적하고 나갈 때이다.

 

  결    론

  우리는 하나님의 인과 이스라엘 문제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탈선이 되지 않는 신앙 노선에 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받은 종으로서 이 땅에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할 일

- 엡 3:11~13 -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믿으므로만 살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동시에 그 사랑을 완전히 믿는 자에게만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인생들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다. 하나님께서 이 사랑을 그대로 다 믿지를 못하는 인생들에게 믿음을 주어서 믿게 하시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산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을 얻게 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예정하신 뜻대로 역사 하시므로 (11)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믿을 때에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을 예정대로 할 수 없는 미약한 인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으로서 예정하신 뜻대로 행하시는 것이니, 그것을 폐할 자는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무런 예정 없이 행하는 신이라면 우리는 담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될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면 예정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은 기독교 종말관이다. 예정대로 오신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정대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이 시국에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분명히 믿어야 한다. 악의 세력이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에 따라 되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의 세력을 이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들어 쓰시는 것은 당신의 자녀를 더 유익하도록 하자는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바로 깨달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예정을 담대히 믿을 때에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게 되므로 (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권리가 있다. 예를 든다면 계약서를 가진 사람은 무엇을 주겠다고 계약서를 쓴 사람 앞에 당당히 나아가서 받을 권리가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주겠다고 언약을 세우셨으므로, 우리가 받고자 하여 당당히 나아갈 때에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고 싶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자는 야곱이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듯이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진 사람을 능력 있게 들어 쓰시는 것이다.

 

  3. 환란이 영광이 되므로 (13)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환란을 사랑하는 자에게 통과시키는 것은 영광을 주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란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가야만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환란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환란이 있을 때에 담대히 나가는 자를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세세 왕권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은 환란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광이라는 것은 환란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영광이라는 자체는 마귀를 이기는 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만일 자기 앞에 환란이 없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환란을 이기고 나가기 위하여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원망할 일에 원망치 않고 낙심할 일에 낙심치 않고, 두려워 할 일에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에게 큰 역사를 주시기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믿고 담대히 나가는 자를 가장 옳은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한 목자에게 있어야 할 단체

- 요 10:14~18 -

 

  세상에는 많은 단체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목자에게 있어야 할 만한 단체는 기독교뿐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한 지도자라 하여도 그 한 사람을 중심해서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완전한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한 때에 일국의 지도자는 있었지만, 세계적인 지도자로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꼭 같이 다스릴 자는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한 목자에게 있어야 할 단체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우리를 분명히 아는 목자 (14~15)

  아무리 세상에서 영웅적인 지도자가 있다 하여도 지도를 받는 사람들을 분명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지도를 받는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면 하나의 단체를 이룰 만한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도 더 세밀하게 우리를 분명히 아시는 목자이시니 우리를 지도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가지신 것이다. 우리가 원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는 선한 방법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죄와 사망의 법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하여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예를 든다면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약이 필요한 것인데, 좋은 음식과 의복을 아무리 많이 갖다 준다 하여도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2.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 (16)

  오늘날 남을 인도할 책임을 가진 자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 인류를 하나가 되도록 인도할 이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억지로 따라오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새롭게 해서 자동적으로 따라 오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 새롭게 하셔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내리지 못한다면 완전한 단체를 이룰 수가 없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자는 마음이 깨끗해지고, 평화를 누리는 동시에 사랑의 격동을 받게 되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반대하던 자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달게 받으며 따라 오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인도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주의 인도를 따라가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 자유로운 권세가 있는 목자 (17~18)

  자유로운 권세가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면 모든 사람을 바로 인도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므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는 목자이시다. 아무리 사랑이 있다 하여도 자유로운 권세가 없는 자는 남을 완전히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에 있다고 본다.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다시 얻기도 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랑을 친히 실천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동시에 그 사랑을 완전히 실천하는 일은 아들에게 행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단체를 이루어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있도록 하신 것이다.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인 동시에 그 사랑을 실천한 일이라고 본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만으로 영원하고도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한 것은 한 목자 안에 뭉쳐진 단체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이 없다면 인간의 미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분명히 아시고, 인도하시고, 자유로운 권세가 있는 예수로 말미암아 한 단체를 이루는 것이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크고도 영원한 섭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기쁨

- 사 43:1~7, 65:17~23 -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은 당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실 때에 사람으로서 가장 기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함을 받은 자가 기뻐하는 것을 가장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때에 그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안다면 하나님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인격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괴롭히지 않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다.

 

  1. 몸의 창조와 기쁨 (43:1~7)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흙으로 사람의 몸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이루어 놓으셨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창조된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이 어떤 동물의 모양으로 창조를 받았다면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볼 때에 아무리 아름다운 동물이라도 사람의 몸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만일 사람의 몸이 그 아름다운 동물 같이 생겼다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창조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몸으로는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의로 말미암아 타락한 사람의 몸까지도 다시 신창조를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사43:1이하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서 새 시대를 영광으로 받을 사람의 몸을 다시 창조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천국 복음 운동의 역사는 그 영혼을 중생 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독교 종말의 새 일의 역사는 몸을 다시 창조해서 그 몸으로 괴로움 없이 영원히 기뻐하는 영광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이제 몸의 창조에 대한 나의 체험을 말한다. 이것은 받은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체험이지만, 성경을 증거하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1958년 3월 19일에 계시록을 해석해 주는 음성을 듣고 받아 기록하게 되었던 것이 지금 이 사람이 문서 운동을 하게 된 시발점이다.

  그때에 신의 역사는 내 머리로부터 몸 전체를 다시 만들어 놓았다. 이 체험을 받은 후에 15년간 조금도 몸에 피곤이 없으며, 괴로움도 없이 점점 소성하여 지금은 58세의 사람으로 청년 때보다 더 씩씩한 몸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기분이 좋아서 기뻐한다든지, 몸을 평안하고 호화롭게 해서 기뻐하는 것보다도 하루에 10시간씩 강단에 서고, 남은 시간은 월간지를 쓰게 되고, 밤에는 묵상 기도를 해도 몸이 점점 상쾌해지는 것을 체험할 때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은 몸에 신 창조를 받으므로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받은 체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역사는 누구든지 앞으로 받게 될 때에 깨닫게 될 것으로 본다. 내가 몸의 구속의 은총을 먼저 받게 된 것은 이 말씀을 담대히 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천지 창조와 기쁨 (65:17~23)

  하나님께서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는 역사는 다음과 같다. 아담이 범죄 하므로 저주받았던 이 땅을 다시 새롭게 하는데 있어서는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되 큰 효과를 주지 않으므로 사람이 살기에 괴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새 시대의 하늘과 땅은 조금이라도 사람에게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이슬과 단비를 흡족히 내리고 효과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들이 영과 육이 아울러 기쁨을 누리는데 있어서는 자손 만대에까지 축복의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은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하여 창조한 것은 전혀 없는데, 사람이 범죄 하였으므로 모든 것이 다 괴로움을 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끝까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가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신천 신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신천 신지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땅에서 기쁨을 누리던 성도들이 대 심판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신천 신지는 하늘 위에 새 도성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65:17이하는 지상에 이루어지는 신천 신지요, 계21:1이하는 하늘에 이루어지는 신천 신지인데 우리 주님께서 요14:1이하와 같이 있을 곳을 예비한 것을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몸의 소생들이 복을 누리는 신천 신지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영체의 사람으로 복을 누리는 신천 신지는 지금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중생과 천국을 목적하였지만, 인간 종말에는 몸의 신창조와 신천 신지의 역사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가르친 말씀은 이 땅에서 축복을 받게 되는 기쁨이다. 인종 전멸의 심판이 있은 후에 이 땅에 신천 신지가 이루어지게 되고, 행함 따라 갚아 주는 심판이 있은 후에 영원한 신천 신지가 하늘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자가 되자

- 빌 2:12~18 -

 

  오늘에 사람들은 인간이 볼 때에 자랑할 만한 일을 많이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사상이나 양심이나 생활을 본다면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저주를 받을 사상이며, 양심이며,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의 과학 문명을 볼 때에 하나의 자랑거리로 끝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의 재림이 가까운 오늘에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으려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항상 복종의 생활을 하는 자 (12)

  만일 어떤 사람이 처음에 복종을 잘했다 하여도 항상 복종치를 않고 변한다면 처음에 복종한 일은 무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복종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방심하지 않고, 두렵고 떠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목표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사람이 처음에도 열심으로 뛰지만, 그 목적지에 가까이 왔을 때에는 더 용기를 내어 참고 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복종하는 생활에 있어서는 주 앞에 설 때까지 더욱 용기를 내어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오늘에 수많은 종들 가운데서 처음에는 열심히 일했다가 얼마 못 가서 그 열심이 식어지고 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그러나 처음보다도 점점 더 열심을 내는 자가 되어야만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끝까지 복종하는 사람을 골라 세우기 위하여 마귀를 허락해서 얼마든지 대항하게 하셨다. 그러나 마귀는 항상 복종하는 자를 해칠 수는 전혀 없는 것이다.

 

  2.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하는 자 (13~15)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잘 할 수가 없다 하여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므로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자가 되려면 원망할 일과 시비할 일이 올 때에 조금이라도 원망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생활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원망할 일과 시비할 일이 올 때에 참지를 못하고 원망과 시비를 하고 만다면 주의 날에 아무런 열매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응답을 내리시기 전에 원망할 일과 시비할 일이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온다 하여도 원망과 시비가 없이 나가는 것만을 목적해야만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다.

 

  3.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자 (16)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이 없다면 모든 수고는 헛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에 전력을 두고 수고해야만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신이시므로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말씀이 탈선된 자에게는 응답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가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유형적인 사업에만 정신을 쓰기 때문에 영적으로 큰 부패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이 탈선된 교회가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불법적인 행동으로 보시고 역사를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도 좋지만 말씀을 밝히지 않는 교회의 사업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패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4. 참된 기쁨을 가지는 자 (17~18)

  기쁨에는 흥분적인 기쁨도 있고, 소망적인 기쁨도 있다. 그런데 참된 기쁨이라는 것은 주를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기뻐한다면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이다.

 

  결    론

  누구든지 주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는 사상이 아니라면 모든 일은 다 헛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이 되어 보려는 것이 간절해야만 주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다.

 

 

여호와의 응답과 새 땅 축복

- 사 49:7~13 -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땅 위의 축복을 주셨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가장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범죄 했으므로 땅 위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눈물, 고통, 죽음의 세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리므로 새 땅의 축복을 줄 것을 언약하신 것이 본문 말씀이다.  

  이제 하나님의 응답과 새 땅 축복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응답 받는 사람 (7)

  하나님께서 이 땅의 어떠한 사람에게 응답을 내리느냐 하는 것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다. 언제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사람이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압제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아벨이 멸시와 미움을 받고 피를 흘리는 일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억울한 피는 이 땅을 적시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있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나님께서 응답 받는 사람에게 멸시와 미움을 받게 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였을까 하는 것은 인간들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가장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이 병들어 죽는 것은 죄의 사망이지만, 응답을 받는 사람이 억울하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게 되어 죽는 것은 의의 사망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응답을 받는 사람이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큰 피해를 당해 온 것이 인류 역사에 선과 악의 싸움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사람은 멸시와 미움을 당하는 동시에 가장 부자유스러운 자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리시므로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 말씀이다.

 

  2. 응답을 받는 때 (8상반절)

  지금은 은혜의 때이다. 그러나 응답을 받는 자가 심히 적은 것은 응답을 받는 때에 응답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의합되지 못한 원인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만 될 때에 이것은 등한시하고 사람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므로 응답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사상을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셔서 가장 진실하고 겸손한 자에게만 응답을 내리시므로 거짓되고 교만한 인간들은 자기가 응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사상인 마귀 흑암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까지도 인본주의 사상에 치우치게 되어 응답을 받지 못하므로 응답 받는 일을 이단시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3. 새 땅을 이루는 역사 (8하반절)

  이날까지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응답 받는 사람을 억울하게 피해를 주어도 여호와 잠잠히 계셨지만, 새 땅을 이루는 역사는 절대적인 보호가 있게 된다. 그리고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땅이 황폐화 될 때에 전멸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황폐화 될 때에 응답 받는 자를 보호하시되 새로운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신다. 보호라는 것은 영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있고 육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새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는 영과 육이 아울러 보호를 받는 것이다.

 

  4. 새 땅의 축복 (9~13)

  사람이 순종치 않으므로 저주를 받았던 땅은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고 보호를 받는 자로서 새로운 축복을 받게 된다. 새 땅이라는 것은 다시 축복을 받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첫째아담으로 저주받았던 땅을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응답 받는 성도에게 축복으로 주신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것을 가지신 동시에 완전한 사람에게 그것을 주고싶어 하신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을 내리어 사람을 완전하게 만드는 동시에 완전한 새 땅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야곱이 복 받는 길

- 창 28:1~4, 13~15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의심 없이 믿는 야곱에게 복 받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야곱이 형인 에서에게 장자의 기업을 팔라고 한 것이 부도덕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중심에 축복을 갈망하는 일이므로 기뻐하셨다. 장자인 에서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았으므로 말씀을 믿고 축복을 사모하는 야곱에게 복 받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 그런데 에서와 야곱에게 있었던 일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말씀이다.  

  이제 야곱이 복 받는 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돕는 배필을 바로 만나는 길 (1~3)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큰 사명이 있다 하여도 돕는 배필을 바로 만나지 못한다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야곱을 불러서 축복한 후에 부탁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이삭의 부탁은 야곱에게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왜냐하면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라야 되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갈망하는 야곱은 이삭의 말을 믿고 여러 가지 시련이 있어도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삼기 위하여 14년간 수고를 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간 봉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무가치한 일이다. 그러나 돕는 배필을 바로 만나기 위하여 수고한 야곱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 받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야곱과 같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야곱이 순종치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말세의 사명자인 14만 4천명을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을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 순종의 열매라는 뜻이다. 야곱이 순종하므로 열매가 되듯이 말세의 사명자가 끝까지 순종할 때에 이스라엘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을 말세의 사명자가 받되 야곱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단체를 이루게 된다.

 

  2.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는 길 (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복지를 주겠다고 허락하셨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말씀을 믿고 싸운 야곱의 씨가 가나안 복지를 축복으로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허락했던 말씀이 있다 하여도 그 말씀을 존중히 알지 않고 장자의 기업을 팥죽 한 그릇에 판다고 말한 에서는 이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장자가 아니라도 말씀을 믿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던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싸우는 것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길이다. 축복은 장자가 받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버림을 당하고 동생이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중심 속에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의하여 좌우된다. 에서는 말씀을 믿지 않았으므로 축복을 빼앗긴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말씀을 믿었으므로 축복을 빼앗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다 하여도 말씀을 믿지 않는 에서에게 축복할 수 없으므로 야곱에게 축복하였던 것이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 (13~15)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과 함께 하시는 신이 아니요,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는 신이시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축복의 기도를 받았기 때문에 장자인 에서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 쫓겨가는 야곱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야곱을 홀로 가게 할 수 없으므로 돌을 베고 찬이슬을 맞으며 광야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아무리 부족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주기 위하여 함께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이삭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야곱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왕국을 이루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할 때에 이스라엘의 왕국인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결    론

  야곱이 복 받는 길과 우리는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말씀대로 될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볼 때는 야곱이 가는 길이 실패 같았지만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이루는 열매를 나타낸 것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할 일

- 계 22:17~19 -

 

  이날까지에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의 역사는 성경의 말씀을 완전히 전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전했다고 본다. 선지들은 이스라엘 말기에 육적 이스라엘이 망할 것과 복구될 것을 말하는 동시에 모든 말씀을 묵시로 받아서 기록한 것이 선지서이다.

  선지서는 선지 시대를 목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적하는 동시에 초림을 증거 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선지들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할 때에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온 메시야라는 것을 목적하되 선지서에 기록한 말씀을 다 증거한 것이 아니고 성신의 잉태와 그리스도의 역사와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부활을 증거 했다. 이것을 증거하게 된 것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마음을 열어 주므로 성경을 깨닫게 되었다(눅24:44~48).

  그러나 성령과 신부가 말하게 되는 것은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들에게 증거하는 것이니 영혼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몸의 구속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4복음서는 선지의 예언을 들어서 예수 행적을 증거한 것이요, 요한계시록은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증거할 말씀을 조직화시켜서 보여진 말씀이다.

  이날까지 계시록은 증거할 시기가 아니므로 그 비밀을 알 자가 없었으나 성령과 신부가 말하게 될 때는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증거 하되 모든 사람이 듣고 지킬 수 있도록 증거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보고 기록했지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신부 자격을 가진 자로서 계시록의 말씀을 듣고 지키므로 재앙의 날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성령과 신부가 증거할 말씀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증거하는 말 (17)

  첫째 : 듣는 자도 오라 하는 말

  둘째 : 목마른 자도 오라 하는 말

  셋째 :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는 말

  은혜시대에는 증거하는 종들이 죄인을 부르는 역사를 증거하되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네 영혼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증거 했지만, 주 재림시에 증거하는 말은 신령한 귀가 열리어 깨달아 듣는 자를 오라 하는 것이요, 목이 말라서 갈급한 자를 오라 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다 생명수를 받으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에게 증거하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하며 생명수와 같은 은혜를 받아서 영생의 몸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종말에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은 신부 자격을 가진 자라야 증거하되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말하게 되므로 예언의 말씀을 분명히 깨닫도록 변론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기독교의 종말관을 너무나 혼선되게 말한 자는 다 성령으로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말했기 때문에 계시록에 대한 해석도 복잡한 자리에 있게 되었지만 신부 자격을 가진 종의 입술을 쓰게 되므로 그 입술에서 나오게 되는 말은 인류 종말에 마지막 경고의 말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지킬 때에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2. 말씀 듣는 자의 주의할 일 (18~19)

  누구든지 다 하나같이 성령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성령으로 말할 때에 그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은 재앙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에 선지들이 한번 경고의 말씀을 전한 다음에 그 말씀에 의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재앙이 온 것과 같이 말세에 다시 예언하는 신부 자격을 가진 종이 마지막 경고의 나팔을 불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감해도 가해도 재앙이라는 것은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대로 재앙이 온다는 것이다.

  이날까지에 계시록을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보았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계시록을 전할 사명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증거 하도록 역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말씀이 가감되었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재앙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시록의 말씀은 재앙의 날에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지상왕국을 축복으로 받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므로 재앙의 날에 가서 대표적인 종이 증거할 것을 가르쳐서 성령과 신부가 말한다고 한 것이다. 신부는 왕권을 받을 종을 가르쳤다. 그 종이 전하는 말은 조금도 혼선이 없는 정확한 다림줄의 진리이므로 한번 증거하고 재앙의 심판이 내리므로 누구든지 가감하는 자는 재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받은 것이요, 재앙의 날에 영, 육이 구원받는 것은 성령과 신부가 말하는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받는 것이므로 주 재림시에 증거하는 종은 완전한 신부의 자격을 가진 종으로서 증거 하게 되므로 마지막 경고의 예언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듣고 그 예언대로 지키는 자는 재앙을 받지 않고 지상왕국의 축복을 받게 된다.

 

  결    론

  가장 긴급한 때는 성령과 신부가 말하게 되는 때이다. 이때는 마지막 재앙이 올 때이므로 성령님이 직접으로 말하게 되는 역사가 있으므로 그 증거에 따라서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완전히 끝을 맺고 재앙의 심판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온전하신 것 같이 온전한 자가 되자

- 마 5:43~48 -

 

  세상에 많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있지만, 온전한 부모가 없으므로 온전한 자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경하는 아버지는 온전하시므로 우리도 온전할 수 있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기는 온전하다 하면서 자식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부모는 온전하다고 볼 수 없다. 온전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온전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요, 남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자를 온전한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한 것은 우리 사람 자체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과 같이 되도록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온전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온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동물은 온전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사람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1. 참된 기도로 (44)

  기도라는 것은 정욕을 따라 구하는 기도는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아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남을 살릴 수 있는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므로써 온전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자를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역사를 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면 천국을 이룰 수가 없으므로 온전한 것을 인간에게 주기 위해서는 참된 기도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참된 기도라는 것은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대로 하는 기도이니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라도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기도하는 자에게 온전한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체험을 너무나 많이 가졌다. 억울함을 당할 때에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뜻밖에 의심날 정도로 받았기 때문에 나를 억울하게 하는 자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정도로 은혜를 받은 체험이 있으므로 참된 기도는 억울함을 당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참된 사랑으로 (45~46)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편벽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하여도 편벽이 있고, 친구가 친구를 사랑한다 하여도 편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편벽이 없는 사랑이니 우리가 그 사랑을 받으므로써 온전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낼 때에 제일로 가난하고 비천한 자리에 나게 하시어 비천한 생활을 하시었고, 가장 비천한 사람을 친히 찾아가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시었고, 그를 택해 세워서 존귀한 종이 되게 하시기도 하시었고, 죽기까지 가장 비천한 악형을 받으시면서 끝까지 천한 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천한 죽음을 하는 살인 강도까지 구원을 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가장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무리 인간들이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사랑하시되 죄를 진 인간이 원치 않아도 친히 찾아 오셔서 사랑을 베풀어 준 것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억지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친자녀에게도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은 도덕이 아니요, 도덕을 초월한 신앙 양심에서 참된 사랑을 남에게 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났으므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열매가 아버지 사랑에서 받은 대로 남에게 주는 것이다. 만일 이 사랑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랑에 속한 심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네 아비는 마귀라고 한 것은 마귀에게 있는 욕심이 네게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이다(요8:44).

 

  3. 참된 도덕으로 (47~48)

  인간이라는 것은 이방적인 도덕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도덕도 있는 것이다. 이방적인 도덕이라는 것은 자기를 나타내려는데 속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도덕이라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경하는 것이니, 아무리 남이 내게 대하여 문안을 하지 않고 무시한다 하여도 나는 그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먼저 그 사람에게 대하여 친근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도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다른 사람이 내게 냉정히 한다고 해서 같이 냉정히 대하는 것이 있다면 이 종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끌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냉정히 대하든지 멸시하든지 거기에 감정에 끌리지 않고 친근히 대하는 태도가 있는 인격이라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인격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인간들이 반대한다 하여도 사람에게 먼저 찾아 오셔서 역사하는 신이시다. 택한 자가 아무리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긴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깨닫도록끔 역사해서 당신의 자녀의 명분을 얻도록끔 역사 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온전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언약을 세우셨고 그 언약의 말씀대로 역사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기도, 참된 사랑, 참된 도덕의 인격을 가져야 한다. 이 인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받은 자녀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인간 종말에 교회 승리의 역사

 

  총    론

  오늘의 전쟁이라는 것은 제국주의 영토 침략적 전쟁이 아니고 사상전이라면, 이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 사상과 마귀 사상으로 대립되어 마귀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승리하게 되어 이 세상은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날까지는 기독교가 악의 세력에게 피해를 당했지만,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히 악의 세력을 이기고 마귀가 없는 세상을 이루는 것을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가 완전 승리하게 되는 진리를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야곱에게 새 힘을 주므로 승리하게 됨

- 사 40:27~41:4,  요절40:31 -

 

  서    론

  이날까지는 은사를 받은 종들이 천국 복음 운동을 할 때에 악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받으면서, 눈물 흘려 기도하며 순교를 당한 일이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이날까지 이르렀다. 이 역사는 완전 승리의 역사가 아니요, 마귀 권세 아래서 택한 자를 해방시키는 역사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승리하셨으므로 모든 죽은 영들이 중생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완전한 승리를 이루기 위하여 택한 백성을 죄에서 해방을 시켜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교회의 완전 승리는 은사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 새 힘을 받게 되므로 기독교의 완전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사라는 것은 만민에게 부어 주는 역사라면, 새 힘이라는 것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승리하도록 부어 주는 역사이다. 이제 야곱이 새 힘을 받게 되므로 완전 승리의 역사가 시작되는 일을 말한다.

 

  1대지 : 시련 끝에 새 힘을 받는 일 (40:27~31)

  은사는 죄를 회개하는 즉시에 선물로 받는 것이요, 새 힘은 시련을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권세 역사로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사는 영혼을 구원시키는 역사라면 새 힘은 몸을 구속하는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에게 원통하고 딱한 사정을 만나게 하는 것은 완전한 역사를 주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은사도 받은 자 밖에는 모르는 것이요, 새 힘도 체험한 자 외에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새 힘은 몸을 완전케 하는 역사라는 것을 증거한다. 1967년 8월 15일에 하나님의 새 힘이 내게 오는 체험을 받고 그 때부터 입에 말씀이 와서 지금까지 계속으로 책자를 입으로 불러 쓰게 되는데 있어서 4년이 지나는 오늘에 새 힘의 열매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된다. 은사를 통하여 심령 소성을 받는 것이 분명하고 새 힘을 통하여 몸이 소성 해서 얼마든지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몸을 이루게 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앞으로 기독교는 새 힘을 받은 종들이 완전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되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2대지 : 민족들의 힘을 새롭게 하는 일 (41:1)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힘을 새롭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여호와 동방 사람을 일으켜 크게 변론하는 일이 있으므로 그 말씀의 변론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각성을 받고 일어나게 되므로 교회는 완전히 승리하는 역사를 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택한 백성들이 피곤을 느끼게 된 것은 완전 변론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이 갈팡질팡하는 상태에서 헤매는 이 때에 그들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변론의 역사가 새 힘을 받은 종을 통하여 있게 되어 승리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대지 : 열왕이 굴복케 되는 일 (2~4)

  이 날까지 기독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라고 하였지만, 인간 종말에 기독교의 역사는 열왕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말세 비밀의 진리는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마지막 증거가 된다.

  지금 유물론 사상이 모든 정치인들을 미혹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유물주의적 정책을 해야 된다는 것이 오늘의 지도자들의 사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동방에서 일어나므로 그 사상은 하루아침에 굴복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유물주의적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미혹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 세계 열왕을 권세로 지도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천국 복음 운동을 하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셨지만,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여호와 친히 일어나셔서 동방에서부터 역사하게 되므로 신정적인 통치 시대가 오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되 이날까지는 독생자의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인간 종말에는 시련 받는 야곱에게 새 힘을 주어서 그 역사로 말미암아 세계를 깨우치는 동시에 완전 승리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2과  야곱에게 새 타작기 역사를 주므로 승리하게 됨

- 사 41:14~20,  요절:15 -

 

  서    론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종말에 완전 승리의 역사를 타작기 역사라고 하셨다. 타작기라는 것은 은혜시대의 역사를 뜻한 것이 아니고, 추수기에 알곡을 모으는 역사를 가르쳤다. 이제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타작기 역사라는데 있어서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하나님이 도와주는 역사 (14)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시키는 역사이므로 아무리 사랑하는 종이라도, 그 몸이 원수의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질병의 피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완전 승리의 역사라는 것은 아무리 지렁이같이 약하고 무시를 당하는 야곱이라도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때에 어떠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도 이기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조물주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는 사람을 피조물된 어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기가 피해를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작기 역사라는 것은 알곡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2대지 : 강한 세력을 없이하는 역사 (15~16)

  이 날까지는 마귀의 강한 세력을 들어서 택한 자를 괴롭히는 일이 있었지만, 추수기에 알곡을 모으는 때에는 아무리 산같이 강하게 높아진 자라도 다 없이하는 역사이다. 죄인을 부르는 동안에는 하나님은 잠잠히 참고 계셨지만, 알곡을 모으는 때에는 알곡 된 참된 하나님의 백성만 남게 하고, 그밖에 모든 세력은 이 땅에서 다 없이하는 것이다.

 

  3대지 : 응답의 역사 (17~20)

  응답이라는 것은 은혜시대의 응답과 재앙의 날의 응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은혜시대의 응답이라는 것은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속죄의 은총이 응답으로 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추수기의 역사는 아무리 가련하고 빈핍한 자라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므로 그들이 승리하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린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가련과 빈핍이 닥쳐왔지만, 종말에 세계 통일의 역사는 동방 땅 끝의 남은 땅이 되는 우리 나라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당이 아시아 땅의 모든 교회를 다 짓밟게 하고 동방 땅끝 이 나라에만 교회를 남기고, 남의 나라보다도 부르짖는 기도를 많이 하게 하신 것은 벌써 이 나라에 응답이 오는 증거라고 본다.

  이 사람이 인도하고 있는 수도원만 하더라도 40일 금식자가 5백 명에 달한 것은 벌써 이 나라에 응답이 오는 증거이다. 대부분의 금식자들은 가련과 빈핍에 처하여 있는 빈민의 아들딸이라고 본다. 벌써 빈민의 자녀들에게 이런 기도의 힘이 임한 것은 가련하고 빈핍한 자에게 축복이 올 증거이다.

 

  결    론

  가장 강한 역사는 지렁이 같은 야곱을 새 타작기같이 쓰는 역사라고 본다. 사람이 볼 때는 가난한 자가 제일 약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나릴 때에 세계를 통일 할 사람은 경제권을 쥔 자나 정권을 쥔 자나 교권을 쥔 자가 아니요, 궁핍 속에서라도 기도하던 사람에게 나리는 역사는 종말에 심판의 역사이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제3과  야곱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됨

- 사 41:25~27,  요절:25 -

 

  서    론

  우리가 이 날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는 성신을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완전히 원수를 승리하게 되는 역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된다. 이 날까지 우리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다는 것이 영혼 구원의 역사이지만 이 땅에 원수를 완전히 없이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여호와 일어나므로 원수를 승리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되는 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대표의 사람이 북에서 나오게 되므로 (25)

  하나님께서는 북방을 들어서 종말에 환란이 오게 하기 위하여 북방의 넓은 땅을 악의 세력에게 맡기므로 북에서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는 압박이 있게 되어 북방에서 하나님의 종이 남방으로 나오게 될 것을 가르쳤다.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으켜 내보낸다고 한 것은 어떤 인간의 생각을 따라 북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북방에서 나오도록 강권 역사할 것을 가르쳤다.

  여기에 대하여 나는 서슴지 않고 증거한다. 공산당 정치 하에서 양떼를 버리고 남쪽으로 나간다는 것은 목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월남하는 것을 합당치 않다고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1949년 4월 22일에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던 중 비몽사몽간에 월남하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일으켜 놓는 증거가 있었다. 그 때는 공산당이 나를 잡으러 오던 날이라는 것을 나는 월남 후에 알았다. 내가 이런 일이 없었던들 공산당의 손에 잡혀 죽었을 것인데, 월남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쓰시려고 강권으로 월남을 시켰다는 것을 이제 와서 더욱 깨닫게 된다.

  그 때는 무슨 일 인줄 몰랐지만 6·25동란 후에 이북 고향에서 월남한 사람의 말을 들으니, 내가 토요일에 월남하게 되었는데 일요일에 공산당이 내가 보던 교회에 나를 잡아가려고 왔다가 교회의 집사들을 잡아가므로 그 집사들은 억울하게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나를 일으켜 월남시키신 이는 하나님이신 줄을 깨달았다.

  내가 이 말을 할 때에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변론으로 나타나게 되어 문서 운동을 하게 될 때에 더욱 그 때에 된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깨닫게 된다. 여호와 새일 교단이라는 단체가 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해 돋는 편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역사를 뜻했다고 본다.

 

  2대지 : 숨은 비밀이 드러나므로 (26)

  해 돋는 편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되 원수를 짓밟는 역사가 일어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어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숨은 비밀인데, 이 진리를 분명히 알게 되는 일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니,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올 때에 바리새인들이 갈릴리에서 일어난 역사로 말미암아 이방의 빛이 되어 민족적 국경의 차별 없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일어나서 기독교를 박해했던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동방 해 돋는 편에서 역사가 일어나되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가 일어남으로써 북방에서 오는 원수 세력을 이기고 남은 자로써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비밀을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숨겨 놓았다가 그 진리를 알도록 끔 하시는 것은 심판기가 온 증거이다. 구약 말기에 동방 고레스를 들어서 바벨론을 치고 황폐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동방 사람에게 역사가 임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비밀을 가르쳤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 갈릴리 나사렛 목수 예수를 믿으므로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는 비밀이다.

  둘째 : 해 돋는 동방 땅 끝에서 여호와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비밀이다.

  기독교에서 이날까지 성경의 진리를 다 안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를 믿음으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비밀을 전한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원수의 세력을 완전히 승리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비밀은 아는 자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성경의 모든 숨은 비밀이 동방 땅 끝인 이 나라에 햇빛같이 나타난 것은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3대지 :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므로 (27)

  이 소식이라는 것은 천국 복음을 뜻한 것이 아니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가장 기쁜 소식은 성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수많은 종들이 억울하게 쓰러졌지만, 그 종들의 억울한 피 값을 갚는 역사가 해 돋는 동방에서 일어나므로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이방 사람에게 전할 소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준다는 것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아니요, 이방적인 세력을 다 없이하고 예루살렘적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을 가르친 것이다. 천국 복음 운동은 죄인을 부르는 역사라면 예루살렘에 전하는 기쁜 소식은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역사이다.

 

  결    론

  우리는 이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회개 운동이라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역사는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없이하고, 성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제4과  야곱이 새 노래를 부르므로 승리하게 됨

- 사 42:9~17,  요절:14 -

 

  서    론

  새 노래라는 것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고, 원수의 세력을 완전히 이기고 이 땅에 성도의 나라가 오는 것을 가르친 노래이다. 그러므로 새 노래를 동방 땅 끝에서부터 크게 부르게 되므로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라고 13절에 말씀했다. 이제 새 노래를 부르므로 승리하게 되는 진리를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새 일을 고하고 새 노래를 부르게 됨 (9~10)

  새 일이라는 것은 천국 복음 운동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지상에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중생과 천국을 중심한 교훈이요,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는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것이다. 새 일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므로 이 땅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역사이다(사43:19). 그러므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새일 성가가 나타난 것은 천국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새 시대를 목적하고 부르는 성가이다. 이 노래는 어떤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서 주신 노래인데, 대중 앞에서 이 사람이 강단에서 증거할 때에 노래를 받아쓰라는 지시가 오므로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나타나는 대로 5~10분에 받아 기록한 것이 새 일 성가이다. 작곡도 어떤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작곡을 받아 기록하라는 지시가 올 때에 내 입에서 작곡이 나오는 대로 음조를 잡아 작곡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가를 현재 부를 때에 강한 역사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새 노래를 부르는 일이 없이는 완전 승리의 인격을 이루는 역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이 노래를 불러 본 사람은 하나같이 자기가 받은 체험을 말하게 된다.

 

  2대지 : 새 노래를 널리 전하게 됨 (11~12)

  본문에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새 노래를 부르는 역사가 땅 끝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직접으로 주신 찬송이므로 여호와의 찬송이라고 한 것이다. 사60:6에는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는 역사를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이 날까지 속죄 은총을 받은 자들이 감사 찬송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새 노래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할 때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이 지을 수 없고, 여호와께서 직접 주신 노래이므로 여호와의 찬송이라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사람은 하나같이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3대지 : 여호와 일어나셔서 대적을 치게 됨 (13~17)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에게 묵시를 보일 적에 인간 종말에 악의 세력을 없이하고 이 땅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여호와께서 친히 일어나셔서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말세에 하나님의 종들을 들어서 원수를 치므로 성도의 나라가 오게 될 것을 말씀했다.

  우리가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민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요, 하나님께로 돌아온 백성을 남은 자가 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은 완전히 세상에서 없이하는 일을 행하시는 것은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시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랫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고 하신 것은 종말에 심판기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새 노래를 부르도록 하시는 것은 새 노래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때에 동방에 나타난 새 노래를 부르는 역사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반드시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서 그 노래의 진리대로 승리할 것을 확실히 믿게 된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0과  청황색 말 탄 자의 이름은 사망

- 계 6:7~8,  요절:8상반절 -

 

  서    론

  학생들, 오늘은 청황색 말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 청황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거예요? 이것은 푸른빛과 누런 빛이 섞인 색입니다. 학생들, 나무가 살면 잎이 푸릅니까? 누렇습니까? 살면 나뭇잎이 보기 좋게 퍼렇지만, 나무가 죽으면 잎이 누렇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는 빛과 죽는 빛이 합해졌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깊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 교회는 살리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공산당은 죽이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공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와 공산당과 서로 싸우지 말고 합해지는 것이 좋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을 죽이려는 악한 사람과 사람을 살리려는 선한 사람이 합하게 되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 선한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청황색 말 탄 자의 이름을 사망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이라는데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음부가 그 뒤를 따름 (8상반절)

  음부라는 것은 마귀가 있는 곳입니다. 학생들, 우리는 공산 사상과 합하게 되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도 공산당과 싸우지 않고 서로 좋게 지내자고 합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큰 죄를 짓는 일이므로 예수님 오실 때에 다 죽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붉은 말을 탄 악한 세력을 없애기 위하여 오시기 때문에 공산당과 협상하는 사람은 공산당과 같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푸른빛과 누런빛이 합해지면 죽는다는 뜻으로서 이름을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아무리 어떤 사람이 공산당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공산 사상을 조금도 용납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2대지 : 땅 4분 1의 권세를 받음 (8중반절)

  오늘에 세계의 권세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활동한 나라는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이라고 보게 됩니다.

  이 나라들은 과학 문명의 선구자가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청황색 말이 땅 4분 1의 권세를 얻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네 나라 가운데 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공산 국가는 옳은 사람을 다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나라와 타협을 하고 나간다는 것은 죽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3대지 : 땅의 짐승으로써 죽임 (8하반절)

  우리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유물론 사상을 가진 사람과 예수 믿는 사람이 함께 합할 수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땅의 짐승으로 죽인다는 것은 유물론 사상을 가진 공산 국가와 타협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공산주의가 미국과 화평을 한다는 것은 실지는 미국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속이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생들은 지금 예수 믿는 닉슨 대통령과 공산당이 화평한다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죽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산당은 겉으로는 좋게 말하면서도 사람을 학살시키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며 사람을 죄 짓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절대로 속지 말고 공산주의와 화평 한다는 것은 청황색 말을 탄 자와 같은 행동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도둑질하는 사람이 좋은 보화를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사랑하는 체 하면서 그 좋은 보화를 빼앗으려고 하는데, 좋은 보화를 가진 사람이 도둑놈과 화평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이와 같이 예수 믿는 사람이 공산당과 화평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묻 는  말

 1. 청황색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 음부라는 것은 누가 있는 곳입니까?

 3. 땅의 짐승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제11과  순교자 동무의 수가 차기를 기다림

- 계 6:9~11,  요절:11 -

 

  서    론

  학생들, 과거에 많은 사람이 죽어 천당에 갔지만 제일 훌륭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병을 앓다 죽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남을 살리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다가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세계를 다스릴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남을 죽이려다가 자기도 죽는 것은 훌륭한 일이 아니지만,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가 죽는 것은 예수님같이 훌륭한 일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러한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오늘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말씀을 전하다가 죽은 사람의 뒤를 따르는 동무들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고 하셨느냐에 대하여 오늘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순교한 종들이 제단 아래 있음 (9)

  학생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없어지지 않고 어린양 예수님이 기도하는 하늘 나라 보좌 앞에 있는 것을 요한은 보았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다가 죽으면 마귀가 있는 곳으로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이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좋은 일을 하다가 죽으면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이 계신 보좌 앞에 가게 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영혼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요,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반드시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그 앞에 있게 됩니다.

  천당을 간 사람 중에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전도하다 억울하게 죽은 영들은 다 한 곳에 모여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활동을 못하므로 없어진다고 보지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영혼은 반드시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대지 : 심판을 독촉함 (10)

  학생들, 이날까지 억울하게 죽은 영들이 자기의 피 값을 원수 갚아 달라고 하는 것을 요한은 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억울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굶고, 헐벗으면서 예수님을 증거 하던 종들에게 그 원한을 이루어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의 원한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은 다 없애고 성도의 나라가 오므로 그들은 다시 부활해서 그 나라의 왕이 되고, 우리는 살아서 그 나라에 들어가 거룩한 사람들로 전쟁 없고, 죽음 없고, 고생 없고, 억울한 피해도 없는 새 시대가 오는 것을 그들도 원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심판을 독촉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을 이대로 둔다면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평안히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면 학생들은 옳은 사람이 되는 교훈도 받을 수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고, 억울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고 말 것입니다.

 

  3대지 :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고 함 (11)

  새 시대의 좋은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좋은 사람들이 세계를 다스려야만 살기가 좋은 시대가 옵니다. 지금 정치인들은 죄를 짓고 나쁜 일을 하면서 자기만 먹고 살려고 남을 속이기도 하면서 백성을 다스리고 있는 세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지도자들을 다 없애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옳은 진리를 증거 하던 사람들로 세계를 다스리게 하는데 있어서는 수가 차야만 그러한 좋은 나라를 이 땅에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 잠잠히 계신 것은 말씀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하는 사람들의 수가 차게 되면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을 다 없애는 심판을 내리고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동안 더 기다려서 수가 차야만 앞서간 순교자들의 원한을 이루어주는 심판을 내리고 새 시대를 이 땅에 이루므로 우리 학생들이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시게 됩니다.

 

  묻 는  말

 1.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2. 앞으로 심판이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3. 새 시대는 어떠한 사람이 다스리게 됩니까?

 

 

제12과  진노의 큰 날이 오게 됨

- 계 6:12~17,  요절:17 -

 

  서    론

  학생들 이 세상은 무서운 진노의 날이 있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새 시대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서 아무리 죄를 진 사람이라도 죄를 다 용서해 주고, 얼마든지 축복을 주시겠다고 가르치지만 세상 사람들이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히려 반대하고 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날마다 부패해 갈 적에 하나님은 더 참으실 수가 없으므로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 없애기 위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세상을 심판할 때에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다 없애버리는 무서운 재앙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은 무서운 진노의 날이 어떻게 온다는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오늘 공부하는 말씀을 두렵게 생각지 말고 열심히 듣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학생들은 그 날이 오면 더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 다닐 때에 어떤 아이가 학생들을 공연히 미워하고 때리고 욕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해코자 하는 아이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제 진노의 큰 날은 어떠한 날이라는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천지가 캄캄하게 되는 날임 (12)

  사도 요한은 큰 지진이 나며, 천지가 캄캄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학생들, 지진을 아십니까? 지진이라는 것은 한번 터지면 지진이 난 지방은 집이 다 무너지고, 사람들이 땅에서 나오는 불에 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배도 드리고 은혜도 받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올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특별 보호가 같이 하는 사람만 살 수 있는 날입니다.

 

  2대지 :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날임 (13)

  요한은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별은 학생들을 잘 인도하는 지도자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이 올 때는 세상에 옳은 지도를 하는 사람들이 다 없어지는 때입니다. 이 때는 세상을 구원하는 때가 아니고, 진노의 날이므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은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목사님도 있고 선생님도 있지만 그 때는 학생들이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가르칠 선생님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는 사람만 남게 됩니다.

 

  3대지 : 극도로 어지러운 날임 (14)

  요한은 시퍼런 하늘이 말려가고 높은 산이 다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나리고 계시지만 그 때는 은혜를 나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지금은 산이 높이 솟아 있듯이 세상에서 돈이 많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교만해 가지고 자기밖에는 없다고 하지만 그 때는 다 거꾸러지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되어 사람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어지러운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마음이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평안히 보호를 받게 됩니다.

 

  4대지 : 크게 두려운 날임 (15~17)

  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까지도 다 벌벌 떠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세상에서 권리를 잡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려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가 믿지 않고 반대하던 예수님이 나타나서 말씀대로 심판을 하게 될 때에 너무나 부끄럽고 무서워서 산아 나를 가리우라, 바위야 나를 가리우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이것은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면 누가 제일 기쁠까요? 예수를 잘 믿던 학생들입니다. 학생들, 오늘 예수님이 나타나면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요? 내가 볼 때에는 큰 일이 날 것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는데 잘 듣지도 않고 떠드는 학생들은 진노의 날이 올 때에 어떻게 될까요?

 

  묻 는  말

 1. 하나님은 왜 진노하십니까?

 2. 이 날에는 누가 제일 기쁠까요?

 3. 진노의 날이 온 다음에는 어떠한 세상이 될까요?

 

 

제13과  네 천사가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함

- 계7:1,  요절:1하반절 -

 

  서    론

  학생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은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서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날아가고, 나무의 과실이 다 떨어지고, 곡식이 다 쓰러지고 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말할 때에 무서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바람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인간 종말에 땅이나 바다나 다 피해를 당하는 무서운 전쟁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과거에는 전쟁이 일어나도 모두 망하는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이 난다면 땅이나 바다나 다 피해를 당하게 될 때가 왔습니다. 오늘은 무서운 바람이 부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섬 (1상반절)

  학생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본 장소는 어디인지 아십니까? 밧모라는 섬입니다. 우리 나라는 서해 바다를 황해라 하고 동쪽으로 가면 바다를 태평양이라고 하는데, 태평양 바다의 복판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를 반도라고 합니다. 반도라는 것은 세 면이 바다에 싸인 땅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은 곳은 밧모라 하는 섬입니다. 그 바다 이름은 지중해라고 합니다. 지중해라는 것은 남쪽에는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있고, 동쪽에는 아시아라는 대륙이 있고, 북쪽에는 북빙양이라는 대륙이 있고, 서쪽에는 유럽이라는 대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바다를 대륙 복판에 있다는 뜻으로 지중해라고 합니다.

  사방 대륙을 놓은 밧모 섬에서 인간 종말에 될 일을 계시로 볼 적에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학생들, 이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 한 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계9:15이하를 보면 네 천사는 마지막 때에 사람을 많이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네 천사가 나타난 것은 인간 종말에 네 나라가 사람을 많이 죽일 무기를 만들어 낼 것을 뜻했습니다.

  지금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노력을 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먼저 만들어 낸 나라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네 나라는 세계에 과학 문명의 지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 문명이 제일 먼저 발달한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입니다. 미국은 그 나라에서 문명이 발달되어 미국이라는 합중국을 세웠습니다. 오늘의 공산 국가인 소련은 각 나라에서 공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합해서 나라를 세웠으므로 연방국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네 나라가 다시 전쟁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고, 이 세상은 한 시간에 멸망을 당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네 나라는 지금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2대지 :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함 (1하반절)

  지금 아무리 공산당이 미국을 욕을 해도, 닉슨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고 공산 국가를 찾아가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인간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이 일어나면 세상은 완전히 망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똑똑히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과학 발전에 따라서 전쟁은 한 바람으로써 세계를 멸망케 할 무기가 나왔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검으로 목을 자르고 총으로 쏘아 사람을 죽였지만, 이제 전쟁이 난다면 한 시간에 땅이나 바다까지도 다 피해를 당하는 전쟁이 있게 된 것을 인류 종말이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볼 때는 지금으로부터 1800년전 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이러한 시국이 왔다는 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대로 심판과 새 시대가 가까운 증거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할 때에 열심으로 성경을 공부해서 이 말씀을 널리 전해야만 됩니다. 학생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때는 심판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류 종말에 땅이나 바다나 피해를 당하는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남은 자가 되어야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왕국에 들어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하는 이 때에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열심으로 성경을 배우며, 열심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받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묻 는  말

 1. 네 천사는 무슨 뜻으로 나타났습니까?

 2.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 지금 세계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논 설 편

 

1. 새 것을 좋아하나 새로워지지 못하는 일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낡은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본 성품이라고 본다. 그러나 새로워지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무엇을 열심히 시작하지만 결말에 가서는 싫증을 내고 마는 것이 인간들이다. 열심히 시작만 하고 결말은 싫증을 내고 만다면 그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은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새 것을 좋아하나 새로워지지 못하는 생활에서 어떻게 하여야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있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새로워지는 마음을 받는 체험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새 나라 새 마을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나서는 일도 있지만 먼저 국민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운동이 없다면 새 나라 새 마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참된 진리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동물과 같이 배를 채우는 것으로 새로워질 수 없고, 마음을 채워주는 진리가 있어야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이치를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진리를 깨달을 적에 마음에 새롭게 하는 역사가 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몸이 새로워지는 진리를 깨달을 적에 몸에 새롭게 하는 역사가 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생활이 새로워지는 진리를 깨달을 적에 생활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합해질 때에 새 나라도 새 마을도 필연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진리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요, 이루어지는 열매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새 나라 새 마을이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이 급선이라고 본다.

 

  2. 새롭게 하시는 이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새롭게 하는 일은 피조물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조물주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애써 보았던들 조물주께서 새롭게 해주는 역사가 없다면 그 수고라는 것은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보다도 오히려 원망, 불평, 낙망을 가지게 된다.

  유물적 사상을 가지고 아무리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다 하여도 그 물건이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물건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더 어둡게 만드는 욕심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진리를 따라오는 역사라는 것을 바로 알 때에 물체에 국한된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오는 새 일의 역사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조물주 하나님의 새 일의 진리를 모른다면 새로운 역사를 받지 못하므로 점점 쇠퇴하여 마른나무와 같이 되므로 아무런 열매를 이 땅에 이룰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 나라와 새 마을을 이루려면 조물주 하나님의 새 일의 역사를 받는 멸공 진리의 운동이 급선 문제라고 본다. 새 일이라는 것은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없이하고 눈물, 고통, 죽음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을 말한다.

 

 

2. 사람의 제일 기쁜 일은 수고를 바로 하는데 있다

  오늘의 모든 사람들이 수고없이 사는 생활에서 자기의 쾌락을 얻어 보려는 것은 벌써 참된 기쁨을 얻을 만한 사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인격은 벌써 참된 인생의 의무를 할 수 없는 인격이므로 이러한 자들이 많은 나라가 될 때에 그 나라는 자동적으로 쇠퇴해지는 것이요, 이러한 자들이 가정에서부터 모든 일을 게을리 할 때에 그 가정은 자동적으로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이제 인생의 제일 기쁜 일이라는 것은 수고를 바로 하는데 있다는 진리를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오늘에 공산사상이라는 것은 근본 자체가 수고를 바로 할 수 없는 사상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농장이나 공장에 가서 일하면 먹을 것을 준다는 정치에서 그 사상은 아무런 발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소망의 확실한 것이 사상이 되면 자나깨나 그 소망을 생각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에 그 수고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게 된다. 그런데 공산 세계는 국민들이 아무런 소망없는 국민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종교적인 소망도 찾아볼 수 없고, 개인적인 생활 향상의 소망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 전 국민은 소망이 없는 사람으로 한 기계에 불과한 인격이 되므로 그 사람들은 한 정치의 도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질 적에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데서 기쁘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는데서 기쁨을 얻는 것은 흥분이나 감정을 초월해서 수고를 기쁨으로 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 완전한 소망이 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서는 수고할 용기가 있지 못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체험한 자로서 수고를 하는 것은 정욕을 떠난 양심에서 다른 사람을 살려준다는 목적을 두고 수고를 하게 되는 것이니, 이 수고를 통하여서만 완전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

  오늘의 단체라는 것은 수고를 바로 하려고 해도 바로 할 수 없는 단체를 이루게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왜냐하면 각자가 다 자기의 소욕을 채우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단체는 사상, 양심이 바른 사람으로서 그 단체에서 같이 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위 종교 단체라고 하는 가운데서도 사상 양심이 바른 사람으로서 그 종교 단체가 하는 일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고가 헛되지 않게 끝을 바로 맺을 단체가 필요하다. 일한 대로 갚아 주려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단체는 수고를 바로 하는 종들이 자동적으로 뭉쳐진 단체라고 본다.

  과거에 초대교회는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부터 일어나서 세계적인 교회 확장을 가져 왔지만, 오늘의 종교 단체라는 것은 사상이 바른 종으로서 그 단체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단체들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하루 하루 사는 생활이 어떻게 하여야 먹고 사느냐 하는 문제가 머리에 꽉차서 밥만 잘 먹여 준다면 어디든지 따라 간다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 현실 사회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사회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동물에 가까운 생활에 들어가는 사회가 된다.

  짐승들이 배만 부르면 좋다고 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아무런 종교심도 없고, 애국심도 없고, 도덕심도 없이 먹고 보자는 생활로 들어간다면 이 사회는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될 염려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있어야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이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활이 될 때에 한 시간도 헛된 수고를 하지 않고 수고를 바로 하는 생활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수고는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수고가 될 때에 수고를 바로 하는 자가 받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생활에서 재앙의 날에도 기쁨으로 찬송하는 생활이 있게 될 것이다.

 

 

3.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갈 때에 큰 것을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대 자연을 창조하실 때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하셨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큰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삼가는 기술자에게 달려있고 대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살피고 계시는 조물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제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가는 자가 큰 것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진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지극히 작은 죄의 생각 하나를 삼가는 자라면 큰 붉은 용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인격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보게 된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인격이 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인격이 있다.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작은 생각 하나를 바로 가졌는지 가지지 않았는지를 모르고 사람을 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창조주로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죄 하나를 아시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큰 인격을 가지려면 지극히 작은 생각 하나라도 삼가는데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말씀할 때에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 있다고 한 것은 중심에 자기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만 사모하는 자라야 거룩하고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신앙 양심에 비추어 경험한 바는 다음과 같다.

  지극히 작은 죄의 생각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종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으므로 나는 인간의 도덕을 초월해서 중심성결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경건한 사람 같으나 중심 속에 작은 죄의 생각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교통을 못한다는 것을 나는 날마다 체험하고 있다.

 

    2. 지극히 작은 말 한마디를 삼가는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법을 따라 역사 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 계약서가 되는 말씀을 삼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입을 들어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확실치 않는 것은 증거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러므로 계시록과 선지서에 대해서는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고 4복음서와 편지서에서만 말씀을 증거 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증거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때에 내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이 된 줄로 생각하는 바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작은 절수 하나라도 분명치 않다면 나는 감히 계시록의 말씀과 선지서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할수가 없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 말씀에서 가감되지 않도록 증거할 수 있게 되므로 나는 날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지만, 작은 말한마디를 삼가지 않으므로써 완전한 하나님의 종의 인격을 이루지 못한 자가 너무나 많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지극히 적은 성금 한 푼을 삼가는 자라면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사람에게 맡겨서 지극히 적은 성금 한 푼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자라면 벌써 도둑으로 인정하게 된다.

  나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지금 큰 수도원 사업을 하게 된 것은 7년간 하나님의 성금에 대하여 동전 한푼도 삼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성산에 들어온 돈을 내 사적으로 소비하는 일이 없이 이 사업을 받들게 된 것은 시작할 때부터 내가 어떤 명예나 권리나 생활의 대책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큰불이 내려와서 나를 불 가운데 앉혀 놓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기를 너는 “뢰자”라는 이름을 주노니 이 이름을 받아 가지고 변화 성도를 일으키는 수도원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순종만 하면 물질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단돈 2천원을 가지고 그 날부터 이 사업을 하기 위하여 자수로 수도원 지대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실 줄 믿고 성금 한 푼을 삼가는 것 뿐이다.

  나는 앞으로 물질의 큰 축복이 우리 수도원에 올 것을 확신하며 내 소원대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지금 이 사람은 너무나 무식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식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으로서 수도원 사업을 해 나가는 일이나,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 사업을 해 나가는 일이나, 여호와 새일 교단을 움직여 나가는 일이나, 새일 중앙 교회에 300여명의 교인을 다스리고 목회하며 나가는 일은 너무나 짐이 무거운 일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도 피곤이 없이 가장 가볍고 명랑하게 일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이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요, 지극히 작은 일에 삼가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역사 하는 일이라고 믿는 바이다.

 

 

4.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은 자

  오늘에 인간들은 인간이 하는 일을 다 지혜로운 일로 보기 때문에 그 일에 있어서 미혹을 받게 된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사람의 정신 작용으로 발달된 것을 보고 놀라게 되는 자

  과거 정신작용이 발달되지 못한 때에 살던 사람의 생활과 오늘날 정신 작용이 발달된 때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인력거를 타고 다니던 것이 오늘에 와서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간다는 것도 놀랄 일이요,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역마를 사용하던 것이 오늘에 와서 전화로 가만히 앉아서 전하게 되었다는 것도 놀랄 일이요, 손으로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땀을 흘려가면서 밤을 새우던 것이 오늘에 와서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가만히 앉아서 무슨 물건이든지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이 놀랄 일이다. 그리고 이 생활이라는 것은 영리적이며 호화로운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는 남의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단병 접전으로 피를 흘리며 싸우던 전쟁이 약 한시간이면 세계 인류를 한 사람이 죽일 수 있는 전쟁이 있게 된 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이것이 참된 지혜이며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 자가 있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 작용에 속한 사람으로서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고등 동물에 불과한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 경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인간 종말에 될 일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 세상이 되어지도록 역사하시는 아래에서 심지어 공산당까지라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의 사람으로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살길이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별 세계까지 깃들이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행함 따라 갚아 주시는 심판을 나리시되 영적으로 움직이던 야곱은 불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움직이던 에돔은 초개가 되게 하므로 불에 살라지게 될 것을 말씀했기 때문이다(옵1:18 이하).

 

  2. 인간 향락에 도취가 되어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없는 자

  인간이 볼 때에 지금 이 때가 얼마든지 호화롭게 살수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황금만능을 자랑할 때라고 본다. 돈만 있으면 현 세상을 천국이라고 할만큼 화려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이러한 자를 보실 때에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지금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라면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생활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때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쉬지 않고 인격 무장을 갖추는데 전력을 두어야할 것이다.

  화려한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불탈 때에 할렐루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무장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할 일이다. 이 인격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완전 역사를 받아야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 성결, 지혜 지식 능력 권세의 역사를 받은 자로서 죄와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완전 변화체를 이루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에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지 않고 세상에 끌리는 생활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가련한 인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3. 종교적인 정통 관념에 굳어져 새로움이 없는 자

  오늘에 소위 정통 신학이라는 학설에 굳어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학설이 제일인 줄 알고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고도 유치한 사람의 하나라고 본다. 왜냐하면 과거에 정통이 그대로 인간 종말에 정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통적인 신앙을 가졌다면 인간 종말에 이 몸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정통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만 잘 믿으면 성경 해석이라는 것은 각각 다르게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면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실지로 가장 어리석은 자이다.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도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과거 사도들이 초림의 주가 오신 것은 선지 예언이 성경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성신의 계시를 받아서 알게될 때에 소위 정통이라는 바리새인들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다가 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오늘에 와서 정통이라고 하는 관념에 굳어진 사람들이 새 일의 진리를 이단시한다면 망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새 일이라는 것은 영혼구원의 역사가 아니고, 택한 자를 재앙의 날에서 그 몸까지 구원하여 새 땅의 축복을 받게 하는 역사이다(사42:9, 43:19).

 

 

5. 노동을 등한시하는 국민이 나라를 망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큰 병은 노동을 등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에 농민들이 농지를 팔아서까지 자식을 공부시켜서라도 취직을 시켜야 되겠다는 관념이라는 것은 나라를 부강케 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 큰 병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직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목적이 다 이루어진 것이 되고 만다면 자동적으로 나라의 생산력은 약해질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민들이 이런 병에 걸린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식민 정책 하에서 너무나 멸시를 받고 노동을 하던 것을 고질로 알았던 부모들이 자기 소원이 좀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자식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에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늙어지면 못 논다” 하는 것은 타락한 민족의 부끄러운 노래라고 본다.

  근본이 바로 되려면 “일하자 일하자 젊어서 일하자, 늙어지면 일 못한다” 하는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조 5백년 동안 내려 온 것은 소위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상놈을 부려먹고, 36년간 왜정 시대에 악독한 사람들이 한국 국민을 너무나 억압을 하고 부려먹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하기가 싫은 일을 하던 습관이 오늘날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농민들이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지만, 그 목적이 일하지 않고 놀면서 먹겠다는 정신이라면 그 공부란 것은 훌륭한 국민을 양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인격이 이루어질 것에 많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일을 싫어하는 원인은 조상들이 일하기 싫어하는데서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국민들의 생활이 잘살 수 있다는 것에 머리를 쓰지 않고, 그날 그날에 먹고 지내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알고 어떻게 하든지 일하지 않고라도 먹고 지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일은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길러내는 일에 너무나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일하는 국민의 생활에서 이러한 가난한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가 조상 적부터 바로 해 내려왔다면 남의 나라보다도 모든 것이 다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방에는 얼마든지 곡창이라고 할 수 있는 대륙을 놓고 동해, 남해, 서해로는 얼마든지 수산을 낼 수 있고, 산이 높은 만큼 얼마든지 전기를 낼 수 있고, 수로가 편리한 만큼 얼마든지 외국과 무역을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과 물, 곧 자연의 경치가 아름답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철의 기후가 적합하므로 무엇이든지 만족히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이다. 그러므로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사시 기후가 적합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못사는 이유를 알아서 전 국민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을 부끄러워하는 국민이 된 것이 첫째 원인이라고 본다.

 

 

 

 신 앙 문 답

 

【문】1.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우리의 영, 육이 구원받는 것은 복음이 다르다는데 대하여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답】오늘의 기독교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날까지 전한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은 조상 적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해 온 자들이므로 이미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지만, 마귀를 공경하던 이방 민족으로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천국 복음 운동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마8:11). 그러므로 이날까지에 복음 운동은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는 역사입니다(엡3:6).  

  그러나 말세에 환란과 재앙에서 구원받는 역사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라도 심판 날에 이방과 타협한 자는 이방과 함께 망하고, 아무리 이방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싸워 나가는 자는 특별 보호가 같이하므로 승리하게 되는 동시에 온 천하에 악의 세력을 없이하는 환란과 재앙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종말에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면 말씀대로 환란과 재앙의 날에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날까지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믿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고, 성경대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여 성령을 보내시되 온 천하에 십자가를 증거하므로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게 되었고, 성경대로 온 천하에 교회가 선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과 재앙의 날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다시 무장을 받게 하여 성경 전체를 다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날까지 감추어 놓았던 말세의 비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재앙의 날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간다는 말세의 비밀을 전하던 종들은 선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이 과거에 선지들이 묵시로 보았던 말씀대로 역사하고 그 말씀대로 세세 영광을 누리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복음 운동이라고 합니다(계10:7).

 

 

【문】2. 지금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인간의 두뇌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볼 때에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만은 이 시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라는 것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으로 세상이 오래 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지금 이때에 제일 어리석은 일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으로 오래 살 줄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행동입니다.

  소위 평화 공존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책망을 받을 음녀 세상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쑥물과 단물이 합해지면 단물이 버리게 되는 것이요, 검은 것과 흰 것이 부딪히게 되면 흰 것이 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평화 공존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공산주의에게는 유리하지만, 신앙 양심이 바르고 사상이 바른 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싸우지 않는 싸움을 신앙 양심이 바른 자가 홀로 싸워 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공산주의와 평화롭게 살아보자는 생각은 공산주의에게 자동적으로 먹힘을 당하게 되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평화 공존이라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완전 무장으로 구성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평화 공존이라는 것을 믿다가 하루아침에 슬피 울며 후회할 날이 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 공존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 보다도 진노의 날에 그리스도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 공존이 문제이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화를 누려 영원히 같이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이때에 하나님과 완전한 평화를 이루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과는 멀어지면서 이방의 세력과 가까워지다가 이방 세력에게 망했던 것이 구약 말기에 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이방 세력과 가까워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크게 두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3. 우리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요즈음에 소위 학적이라, 정통적이라, 정상적이라 하는 말을 가지고 신앙 문제를 자기 중심에서 남을 판단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자체가 완전한 하나님의 계약서요, 하나님의 역사가 계약서대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을 신앙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자체에 정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 조금도 변함이 없는 역사를 하시므로써 우리는 그 역사에 따라서 정상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나의 신앙 체험에 의하면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합법적으로 믿는 신앙이 아니고는 그 열심이라는 것은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을 때에 그대로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하는 생활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역사 하시므로써 푸른 나무가 정상적으로 자라듯이 정상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비록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그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법화 되지 못하면 아무런 역사가 내리지 않으므로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하여도 발전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것이 있으면 산이라도 옮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정상적으로 역사할 때에 비록 작은 일 같으나 큰 열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사람으로서 믿어지게 역사하시되 언제나 믿는 자에게 변함이 없이 역사하므로 아무리 정상적이 못되는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역사 아래서 나날이 소성을 받게 하는데 있어서는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4.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우리 기독 신자는 평화를 반대할 것도 없고, 평화를 위하여 활동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잠깐동안 잠잠한 때도 있고 홀연히 환란이 있는 때도 있다는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애쓴다 하여도 말씀대로 되는 일을 막을 수가 없고, 우리는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를 날마다 받아야 할 것이요, 말씀대로 될 장래를 분명히 알고 두려워 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고 우리는 날마다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에 두고 그날의 수고를 만족으로 알고 충성을 다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할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라면 순종해야할 것이며 아무리 사는 것 같은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 아니라면 순종치 않을 것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생각을 앞세운다는 것은 교만에 가까운 일이니,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생각밖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은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우리의 생각밖에 나타난다는 것은 과거에 성도들에게도 있었고, 우리 앞에 더 크게 있을 것이니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세상에서 말씀대로 오는 평화 왕국을 위하여 활동하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인위적인 평화라는 것은 잠깐인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인위적인 평화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완전한 평화 왕국이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심판 날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인격과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내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전 생활의 목적을 두고 싸워 나가는 것 뿐입니다.

 

 

【문】5. 오늘에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 역사상 이러한 위기는 없었다고 봅니다. 모든 선지는 구약 종말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할 때에 자고이래로 없었던 환란이 오는데 있어서는 전무후무한 환란이 올 것을 말한 것은 구약 시대를 가르쳐 말한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에 종교 부패로 말미암아 올 환란을 가르쳤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황폐된 것을 들어서 계시록에도 바벨론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계시를 보여준 것은 구약 교회가 너무 부패하므로 북방 세력에게 먹힘을 당했던 것 같이 인간 종말에도 교회가 너무 부패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할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바벨화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통하여 예루살렘이 회복되었던 것 같이 적은 소수라도 끝까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을 통하여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다수를 따르지 말고 적은 소수라도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촛대교회를 이루게 되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문】6.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일 수도원을 통하여 교회가 분열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슨 원인으로 분열이 되는 것입니까?

【답】이것은 새일 수도원에서 교회가 분열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말씀 무장을 하고 간 사람들이 현 교파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으므로 자동적으로 교회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 교파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탈선되었다는 것을 우리 수도원을 거쳐간 사람들이 말하게 되므로 공연히 압박하고, 심지어 축출을 시키는 일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무장하고 간 사람들이 아무리 교파에서 탄압을 하여도 우리는 교파를 위하여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하나를 바로 믿고 복을 받자는 것이니 만큼 절대 복종할 수 없다는 여기에서 교회를 짓게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이 지금 80여 처에 교회가 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수도원에서 말씀을 무장을 하고 간 사람들 중에서 교파에서 탄압을 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한 잘 받들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현 기독교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 주석을 많이 발행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사람의 생각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배우는 학과는 절대 사람의 머리로 연구해서 나온 책이 아닙니다. 내 입술에 말씀이 임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마다 수도생들이 붓을 들어 기록한 대로 책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자를 성경과 대조해 보면 성경의 본문 자체가 완전한 조직적인 변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언제나 대중을 앞에 놓고 강단에 서서 입으로 불러 쓴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을 깨달은 종들이 현 기독교에서 발행한 서적은 성경에서 혼선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진리의 문제로 파동이 일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큰 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교파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중심해서 뭉쳐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므로 앞으로 큰 단체가 될 것을 확실한 일입니다.  이 단체라는 것은 멸공 사상이 철두철미한 단체입니다.

 

 

 

 특  집  

 

1. 5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감상

  푸른 새순 자기의 때를 만났다고 날마다 소성하는 그 모양 바라보는 이 마음에 새순의 종이 그립도다. 이때는 새순의 종이 나와야 될 때 인줄 알면서도 나 자신이 새로워지지 못하고 메말라지는 자리에 있게 된다면 나는 어찌 할꼬 하는 마음 조심스럽게 가질 때에 묵묵히 머리 숙여 조물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소성케 하시사 새순 같은 새로운 인격 주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묵상을 하게 된다.

  여호와의 깃발을 반석 위에 꽂은 깃대 위에 높이 달기 시작한 5월 15일의 그 날,  또다시 7년째 맞이하는 그 날이 올 때에 완전한 승리의 깃발 날리며 우렁차게 승리의 개가를 부를 새순의 종들이 단체적으로 일어날 것을 믿고 뜻깊은 감상으로 그 날을 고대하게 된다.  

  7년 동안에 모든 일은 축복 속에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금년 5월부터 성산에 불을 밝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각 곳에 성도들이 물심 양면을 기울여 수력 전기 공사를 받들어 준 일에 대해서 뜻깊은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이미 시작된 일은 다 열매가 나타났는데, 수력 공사만은 시작을 해 본지가 7년이 되었지만 아무런 소망 없이 포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 3월부터 내 마음에 격동을 받게 되어 무조건 공사 개발 예배를 드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뜻밖에 모든 일이 속히 진행되어 불을 밝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밤낮으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있는 성산에 불을 밝히지 못한 나의 마음, 이제 와서 뜻깊은 감상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할 때부터 수력 전기를 할 수 있는 위치를 준비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저수지에서 200미터 수로가 산 중턱으로 순조롭게 돌아와서 100미터 낙차가 되어 자유롭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공사가 이루어진 것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젊은 봉사원들과 여러 종님들의 단합된 힘을 비롯하여 각 곳에서 보내주신 공사비로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말씀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작은 일 같으나 그 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분명히 이번 수력 전기 공사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사라고 봅니다. 이 공사를 위하여 물심 양면으로 받드신 종님들에게 큰 축복이 나릴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한 사람이 공사비를 바쳤다는 것보다도 모든 성도들이 정성껏 바치는 성금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신 제사이므로 이 공사를 통하여 앞으로 성산에 입산하는 종들에게 큰 열매가 될 것을 믿습니다.

 

 

2. 1965년 5월 15일을 회상하는 종의 말

  하나님의 강권 명령을 받고 일금 2천원을 하나님 앞에 놓고 수도원 공사를 시작한 지 8개월에 수도원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당식을 하던 그 날은 나로서는 언제든지 5월을 맞이하면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이런 중대한 기관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너무 하나님의 명령이 무서워서 떠는 마음으로 친수로 8개월간 노동 공사를 해서 하나님께 집을 바친 것 뿐입니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다는 것 뿐 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강권으로 명령한 일이므로 이날까지 강권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에 이 수도원을 통하여 지금 많은 열매가 시련 가운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년부터 칠 배나 큰 축복이 내리는 동시에 큰 열매가 있을 것을 더욱 굳게 믿게 됩니다. 나는 이 수도원을 하나님께 바친지 7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배웠습니다.

  첫째 : 절대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훼방하고 방해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일은 더욱 발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순종할 때에 어떤 사람이 그 일을 방해한다고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방해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일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수도원을 시작할 때에 수많은 사람이 다 내가 실패한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에 작정하기를 이 사업이 실패한다면 나는 공산당과 싸울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나 홀로 하는 말이 “하나님의 명령이 내게 내렸다는 것은 사람들이 방해하여도 이 수도원이 더 잘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이요, 실패하고 만다면 불 가운데서 나타나서 명령하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7년이 되는 오늘에 와서 더욱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큰 힘을 얻게 됩니다.

  둘째 : 절대 정직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2천원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한 번도 돈을 얻으려고 다녀본 일도 없었고, 조금도 빚을 져 본 일도 없었고, 이 사업에 들어 온 성금을 내가 사적으로 한 푼도 써본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작정하기를 하나님의 사업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면 하고 안 주시면 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돈을 많이 가져 본 적도 없고, 돈이 없어서 애써 본 일도 없고, 그때마다 적당한 금액이 생각밖에 들어오므로 이날까지 물질에 대해서 양심에 거리끼는 말이나 행동을 해본 적이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돈 문제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영리적인 사업을 하는 자라고 봅니다.

  셋째 : 절대 순수하게 나가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7년간 한 번도 무슨 활동을 해 본 일이 없이 자동적으로 수도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하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7년 동안에 계속으로 수도회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에, 지금도 달마다 백여명의 수도생이 자동적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나는 수도생을 모집하는 일을 해 본적도 없고, 순수하게 자진해서 오는 사람에게만 수도 학과를 가르친 것뿐입니다.

  지금 우리 수도원에서 세운 교회가 80여 처에 있지만, 한 번도 전도사를 파송 한다든지 전도비를 보낸다든지 내가 친히 찾아가서 교회를 시작한 일은 전혀 없었고, 수도를 받은 종들이 자동적으로 순수하게 말씀을 중심해서 나갈 때에 교회가 선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으로 교회가 서고 있습니다.

  넷째 : 절대 후퇴가 없이 전진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가는 사람은 절대 후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가 막히고 막막한 일이 있다 하여도 변치 않고 전진할 때에 모든 일은 뜻밖에 순조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실 때에 끝까지 참고 후퇴하지 않는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전진해 나가는 사람에게 과학을 초월한 역사를 나리시되 점점 모든 일이 더 쉽게 일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해서 후퇴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 믿고 나갈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면서 역사를 나리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 절대 겸손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이날까지는 사람이 볼 때에 지식이 많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기대했지만, 지금 와서는 누구든지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도 낫게 여기는 것은 누구든지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3. 5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되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키워 주시고, 안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은총을 더욱 감사하나이다.

  나를 강권으로 명령하셔서 이날까지 시련 가운데서도 떨어지지 않고 나오게 하신 아버지여, 이제부터 축복 속에서 승리하게 될 것을 믿나이다. 시련 가운데 나를 기르신 것은 환란 가운데서 승리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인 것을 이제 더욱 깨닫게 되나이다.

  아무리 사람이 부족하다 하여도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해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역사가 나린다는 것을 강하게 체험케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 하나만이 나에게 만족을 주나이다. 한 줄기의 샘들이 흘러 합하고 합해서 강물을 이루어 흐르듯이 모든 성도의 눈물겨운 심정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합해져서 이 달부터 성산에 새 힘이 강하게 내릴 것을 믿나이다.

  나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많은 종들을 일으켜 이 산으로 보내어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신 아버지여, 500명의 40일 금식 기도는 이 산에 큰 응답이 내릴 징조인 것을 믿나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기도의 응답은 금년 5월 15일을 기하여 큰 역사가 이 산에 나릴 것을 믿고 감사함을 드리나이다.

  이 산에서 푸른 깃발, 은빛 십자가인 승리의 기호를 올린지도 만 7년이 되나이다. 반드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돌진하는 용사적인 단체가 금년 5월 15일부터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7년간 이 성산의 역사를 반대했지만, 그들은 양털이 좀에게 먹히듯이 마귀에게 먹힘을 당할지언정 훼방을 받던 우리들은 이제부터 승리의 깃발 들고 돌진하게 될 것을 믿고 감사하나이다.

  아무리 이날까지 지렁이 같이 밟혔지만,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그 역사 이 산에 내릴 것을 믿습니다. 밟히는 기간이 7년이라는 것은 내게 축복이 오는 과정이라면, 이제부터 영광을 돌리는 그 일은 영원한 것이 될 것이로소이다.

 

 

4. 5월 15일을 맞이하는 종의 영감

  슬픈 소리 많더니 기쁜 노래 하늘 높이 울려 오르도다. 지렁이 같이 밟히더니 하루 아침 새 타작기 되어 원수를 없이하는 도다. 말씀이 귀해서 끝까지 붙들고 나가더니 말씀대로 오는 축복을 풍성히 받는 도다.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더니 원수를 이기는 권세 역사가 나리는 도다. 죄의 세력 용납치 않더니 죄를 없이하는 소멸의 영의 역사 강하게 나리는 도다. 쉴 줄 모르고 애를 쓰더니 쉴새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도다.

  사람의 말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더니 말씀 권세의 역사가 나타나도다. 자기 위신을 생각지 않고 싸워 나가더니 세세 왕권 받을 자격 하나님께 받았도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숨은 기도를 하더니 차고 넘치는 새 힘이 흘러 나리는 도다. 듣든지 말든지 충성 되이 말씀을 전하더니 말씀 권세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승리하도다. 적은 물질을 아낌없이 바쳐 보려고 애를 쓰더니 가난한 사람에게 차고 넘치는 축복이 나리는 도다.

 

 

5. 5.15에 큰 축복을 기다리는 종의 마음

  하나님의 축복은 시련 없이 있을 수 없고, 받을만한 인격이 없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축복은 물질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자아의 인격 하나가 바로 되는 것이 더 큰 축복인줄 알고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불타도 완전한 인격은 진노의 날에 더욱 큰 축복이 오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5.15의 7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것은 7년이라는 동안에 복음을 받은 종으로서 그 복음대로 이루어지는 산 체험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고 무슨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요, 종의 인격이 완전 성결, 완전 지혜, 완전 지식, 완전 능력, 완전 권세를 하나님께 받는 것이 완전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지어서 하나님 앞에 드렸다는 것이 완전이 아니옵고 그 제단에 나리는 역사를 받은 것이 완전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면 큰 축복을 나리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성전을 지었지만 인간이 볼 때에 무슨 뚜렷한 축복을 받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모르는 축복을 이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바친 후에 크게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축복은 이 사람 하나만을 위하여 준 것이 아니요, 여러 사명 동지들에게 주신 축복인줄 믿습니다.

  이 성전을 짓고라도 내게 축복이 오지 않았다면 여러 사명 동지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물질에 큰 축복을 받고라도 내 자신이 이러한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여러 사명 동지들에게 큰 열매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축복은 이제부터 여러 사명 동지들이 얼마나 큰 열매가 된다는 것을 금번 성회부터 분명히 알게 될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시련 받던 종님들은 여호와의 산에 불을 밝히고 그 불빛 아래서 나리는 축복을 받아 세계를 밝히는 큰 부흥단이 일어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라며, 세계를 깨우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축복이 우리 교단에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6. 독자 여러분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여러 신앙 동지들의 기도는 이미 내게 응답이 된 것을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기도로만 끝을 맺을 것이 아니요, 유형적인 물질적 방면에도 실천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골방 속에서 기도할 때에 상달된 것은 물질적으로 실천이 있을 때에 응답으로 나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말씀을 만나 같이 내려 주시는 그 은혜를 받고 있는 저희들은 나만 먹고 배부르다고 춤추는데서 끝나지 않고, 남도 먹게 대접을 하겠다고 하는 불타는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이 문서 운동을 5월부터 더 활발스럽게 해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물질적 방면으로 실천이 필요할 줄 압니다.

  그 동안에는 숨은 성도들의 성금으로 이 사업을 지장 없이 해 나왔지만, 이제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자력적인 문서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는 독자 여러분께서 월간지 대금을 5월 15일 성회 때까지 완전히 청산하도록 하셔야만 되겠습니다. 내가 이 부탁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한 데서 하는 것입니다.

  나는 체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알고 있습니다. 절대 축복은 실천 없이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진리의 만나를 배불리 먹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진리 운동을 실천으로 받드는 일이 있을 때에 실천할 수 있는 영권 물권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내릴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았어도 감사의 실천이 없다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을 수가 없는 일이니, 우리는 5월 15일을 맞이하여 실천 단계에 들어갈 때에 홀연히 큰 축복이 나릴 것으로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7년 전에 이 사람에게 명령할 때에 내가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바치면 축복을 나리시겠다고 하신 말씀대로 이 성전을 건축하기에 노력한 자에게 현저히 축복이 내려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도 실천이 있을 때에 축복이 내릴 것을 믿사오니,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말씀을 받으신 여러분들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5월에 꼭 받도록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 5월에 나리는 축복을 한 분도 빼앗기지 마시고, 최선의 힘을 다하여 실천 생활에서 하나같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제 2판으로 성가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전번 성가집에 없던 다섯 가지 성가를 첨부하여 완전 곡조 성가로 출판된 것입니다. 성가를 사용하실 분은 다음과 같은 주소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 3구 (신도안)

          새일수도원 사무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3번지 의사 빌딩 9층

          새일중앙교회 사무실

  3. 하나님의 은총 속에 귀 교회에 큰 축복이 5월을 맞이하여 풍성히 임할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알려 드립니다. 해마다 5월 15일은 특별 성회를 하면서 기념하던 중에 금년에는 특별한 축복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믿어집니다. 과거 역사를 볼 때도 무엇이나 7년이 찰 때는 정한 기한이 된 것이니, 새일 수도원을 완전히 시작 한지 만 7년이 되므로 이제는 열매가 될 줄 압니다.

  7년 동안에 너무나 시련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 나날이 발전한 것은 7년이 차는 오늘에 큰 축복이 나릴 증거라고 봅니다. 아무쪼록 금번 성회에 꼭 축복을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5월 15일이 월요일이므로 부득불 14일 주일은 성산에서 지켜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명자들은 아무쪼록 개 교회에서 결정을 지어 가지고 오셔서 8일부터 16일까지 축복을 받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7. 성산에 수력 전기

  이날까지 성산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불을 밝히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금년 3월부터 수도생들이 마음에 격동을 받아 자진해서 성금을 바치기 시작했다. 성결교에 있는 어떤 장로님이 일금 만원을 전기 공사에 바친다고 하면서 50명이 만원이면 50만원이 되며, 100명이 만원이면 100만원이 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 지금 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금번 전기 공사는 시작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으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고 있다. 수로가 200미터로 돌아와서 100미터 낙차가 되는 것인데, 저수지를 만들 곳도 천작으로 반석이 깔려 있어서 가장 편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낙차 되는 곳에 물탱크를 만드는데도 파고 보니 아래에 반석이 천작으로 깔려 있어 가장 편리를 볼 수 있으며, 튼튼하고도 명랑한 수력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높은 산에 모래를 운반하는 것이 큰 문제이었는데,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하는 일에 의하여 성산에 도로가 자유롭게 차가 왕래할 수 있게 되어 직접 수력 공사 지대에까지 차로 모래를 운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군이 자갈을 추려 가져가느라고 깨끗한 모래만 쌓아 놓은 것을 발견하여 6일간 쉽게 남선리 냇가에서 모래를 차로 실어 날랐다. 그러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성산에 전기 공사는 시작된 것이다. 전기 공사에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되고, 지금은 저수지를 쌓는 일과 물탱크를 만드는 일에 활발성을 띠고 있다.

  각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같이 격동을 받아 입산하여 힘으로 봉사하는 것은 누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각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들이 성심껏 공사비를 보내주므로 모든 일은 완전히 되어 준공될 것을 확신한다. 7년 전에 성산에 불을 밝혀야 된다는 것을 기도 가운데 깨닫고 이날까지 애써 보았다. 그러나 금번 5?15 성회에는 성전에 불을 밝히고 축복 받는 성회를 열게 될 줄 믿는 바이다.

  금번 수력 공사를 하면서 뜻깊은 감상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나 단결이 되었으며 신앙이 자라났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우리 성산에 수력 전기는 큰 공사가 되지는 못하지만 누가 보든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금번 전기 공사에 물심 양면으로 노력하는 성도님들의 가정과 제단에 이번 전기 공사가 성공됨에 따라서 큰 축복이 나릴 것을 믿고 기도하는 바이다.

 

성   회   소   식

7주년을 맞이하는 5.15 특별 대 성회

일 시 : 72년 5월 8일부터 16일까지

장 소 : 새 일 수 도 원

강 사 : 이 뢰 자 목사님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신도안)백암동

새  일  수  도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