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7월호)

 

설  교  편

 1. 하나님의 징계와 택한 가정 (창38:1~11) 

 2. 선과 악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사40:29~31, 계8:13) 

 3. 주안에서 나타나는 열매 (요15:7~11) 

 4.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출3:1~14)

 5.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역사 (행8:26~40)

 6. 제단과 구원 문제 (사19:19~25) 

 7. 순종과 열매 (요2:1~11)

 8.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막10:28~30, 42~45)

 9. 자라나는데서 이루어지는 인격 (엡4:13~16)

10. 하나님 보호로 승리 (사31:4~9)

11. 진 자는 이긴 자의 종 (벧후2:18~22)

12.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슥3:6~10)

13. 기도 응답의 삼대 의의 (요14:14~17)

14.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는 일 (벧전4:7~16)

 

장년 공과편 -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의 인격

제1과  충성되고 지혜로운 인격 (마24:44~47) 

제2과  흠이 없는 인격 (계14:3~5) 

제3과  심지가 견고한 인격 (사26:3~9, 16~19)

제4과  새로운 창조를 받은 인격 (사43:1~7)

제5과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인격 (사62:1~8)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8과  단물이 쑥물이 됨 (계8:10~11) 

제19과  빛의 3분의 1이 어두워짐 (계8:12~13)

제20과  해와 공기가 어두워짐 (계9:1~3)

제21과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피해를 당함 (계9:4~6) 

제22과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계9:13~21)

 

논 설 편

1. 진리를 이용하는 자는 악한 사람이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다

2.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 보다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가 되자 

3.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는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4. 인생의 걸어가는 길은 자력에서보다도 인도자가 필요하다

 

신 앙 문 답

1.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한 것을 알고자 하오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기도에 대하여 정확한 응답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이 속히 자라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이 필요합니까?  

4.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됩니까? 

 

특    집

1. 성산에 대강당 기공 예배를 드리면서 (6월7일) 

2.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발행한지 2주년이 되는 7월을 맞이하면서 사명자가 가지는 감상 

3. 7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부    록

   < 하기 성경 학교 교재 >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제1과  붉은 말 탄 자가 나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계6:2~4) 

 제2과  땅과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하게 되었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계7:1~3, 13~17)

 제3과  인간 지혜와 지식이 별 사이에 올라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옵1:4~9, 15~18)

 제4과  거짓 선지가 권세를 가지고 나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계13:11~18)

 제5과  영광이 동방에 나타났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사59:18~21) 

 

 

 

 

 

 

 

 설 교 편

 

하나님의 징계와 택한 가정

- 창 38:1~11 -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시었다(마1:2~3).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그를 통하여 거룩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조상이 되게 하였다. 인간이 볼 때에 유다의 가정은 불행스럽고도 부도덕한 일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택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은 징계를 나리셨다.

 

  1. 엘을 징계 하심 (6~7)

  아무리 엘이 택한 가정에 거룩한 씨를 전할 사명이 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자이므로 그를 치셨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가정일수록 조금이라도 악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정을 통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때에 택한 가정이 택하지 않은 가정보다 불행스러운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악을 용납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에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택한 가정은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악한 일이 있을 때에 생명을 불러가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택한 자라는 것은 사명을 행하여야만 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2. 오난을 징계하심 (8~10)

  택한 자가 사명을 존중히 알지 않고 자기 이익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난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다. 왜냐하면 거룩한 씨를 전하되 장자의 씨를 전해주라는 법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인간이 볼 때에는 큰 죄가 될 일이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로 보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오난은 거룩한 씨를 전하기 위한 일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치 않고 그 일을 불평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씨로 말미암아 거룩한 종교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오난이 씨를 전하는 일에 순종치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자아를 희생하고 순종치 않을 때에 악한 자로 인정하는 것이니 사명이 있는 택한 가정에는 개인의 이익을 생각지 말고, 그 사명을 더 존중히 해야만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다말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음 (11)

  인간이 볼 때에는 다말이 하는 일이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멸시를 당하면서도 거룩한 씨를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축복하신 것이다. 다말이 유다를 속여 그 몸에서 씨를 전한 것은 인간으로는 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몸의 소생을 통하여 거룩한 종교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맡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수치를 무릅쓰고, 아무리 생명이 위태한 일이라도 불타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열매가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면 의가 되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악이 되는 것이므로 아무리 택한 가정이라도 순종 없이 열매가 있을 수 없다. 열매라는 것은 사람이 해야 될 일을 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라는 것은 순종하는 것밖에는 있을 수 없다. 다말이 아무리 멸시를 받고 무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담대히 나설 때에 그를 통하여 많은 열매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명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용기있게 돌진의 걸음을 걸어서 나간다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명을 맡긴 다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그 사명을 달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과 오난 같이 될까 조심해야 된다.

 

 

선과 악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 사 40:29~31, 계 8:13 -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에 가서 선과 악이 대립되는데 있어서는 선한 자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얻고 악한 자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얻게 되어 최후의 결전을 이루므로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말했다. 선과 악이 독수리같이 올라갈 일은 다음과 같다.

 

  1.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계8:13)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볼 때에 먼저는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을 보았다. 계시록 8장은 악의 세력이 극도로 올라가는 순서를 보여 주었다. 첫째 나팔은 혁명적인 투쟁을 하는 악의 세력을 피 섞인 우박과 불로 보여 주었고, 둘째 나팔은 악의 세력이 세계를 멸망케 할 징조를 보여 주었고, 셋째 나팔은 교회를 망칠 거짓 선지의 행동을 보여 주었고, 넷째 나팔은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독수리 같이 올라가게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오바댜 선지가 묵시를 볼 때에도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 별 사이에 깃들일 때는 의의 세력이 불이 되고 악의 세력은 초개같이 탄다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세상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신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우는 자를 옳다고 인정하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선한 자에게 상급을 주신다면 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씨름을 시켜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고자 할 때에 동등하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상 받을 사람을 골라 세울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악의 세력을 강하게 들어 쓰는 것은 선한 자로 이기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아무리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가도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자에게 악을 이기도록 역사하시는 동시에 선한 자를 세상이 알도록 높이 들어서 쓰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2. 의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사40:29~3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줄 때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동시에 완전 승리를 이루도록 하시어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도록 하시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40장에 말씀하신 것은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첫 번에는 예언적으로 역사하시고 다음에는 완전한 열매가 되도록 역사하신다.

  구약 말기에 아무리 북방 바벨론이 강하게 일어나서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였지만 동방 고레스를 들어서 바벨론을 치는 동시에 예루살렘을 복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동방에서 일어나는 의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일어나게 되므로 북방을 이기고,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예언적인 역사이다(사46:10~11).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의 신이시니, 에덴 동산을 동방에 창설하고 간교한 뱀을 들어 꾀어볼 때에 동방 사람으로서 뱀을 이기지 못하여 저주받게 된 이 땅을 동방 사람으로 하여금 이기게 하여 새 땅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붉은 용의 세력이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게 된 것은 그 세력을 없이할 자를 동방에서 일으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볼 때에 가장 불행스러운 사람이 동방 사람 같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동방에서 나타날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북방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갔으므로 그 세력이 승리할 것 같이 보이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동방 사람이 승리하여 동방에서 하나님을 자랑하며 영화롭게 할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기독교가 아무리 서방에 자리잡고 세계를 움직이는 일이 있지만, 종말에 강한 역사는 동방 사람에게 임하여 세계를 정복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결    론

  악의 본부는 북방에 자리잡고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 종말이다. 그리고 선한 자의 세력은 동방 땅 끝을 자리잡고 일어나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일어날 때는 의의 세력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게 되는 역사가 있으므로 의의 세력이 승리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라면 지금 악의 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의의 세력이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역사가 동방에서 일어날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는 바이다.

 

 

주 안에서 나타나는 열매

- 요 15:7~11 -

 

  인생의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것을 사람에게 주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사랑의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열매 없는 타락의 생활을 하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어 이상적인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열매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 (7)

  아무리 인간들이 애써도 그리스도 안을 떠나서는 아무런 것도 이루어지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만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게 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양심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 생활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 사업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양심, 생활, 사업으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에 다음과 같은 열매가 있다.

  ㄱ. 양심적으로 만족한 성결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중심 성결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ㄴ. 자유로운 생활이 있게 되므로 헛된 수고가 없이 그 날 그 날에 족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ㄷ.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되므로 초인간적인 힘이 와서 여호와를 자랑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주의 제자 된 인격이 이루어지는 일 (8)

  우리 인생의 최고의 인격은 만왕의 왕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인격이다. 제자라는 것은 스승에게 있는 것을 다 배워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있는 것을 옮겨 가진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격이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가난하고 무식하고 무능한 어부를 제자로 택할 때에 바리새인들은 죄인의 친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이니, 아무리 더러운 죄인이라도 거룩하게 되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롭게 되고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능력 있게 된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정치나 교육이나 수양으로는 도저히 그 인격을 이룰 수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 할 때에 완전한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전한 인격을 이루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독생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가장 어리석고 헛된 일은 인간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지 않고 행하는 일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하는 일은 사람이 볼 때에는 훌륭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멸망의 자식들이 하는 일로 보신다. 인간들이 스스로 하는 일은 아무리 수고하여도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의 제자 된 인격을 이룰 수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만 들어가는 자라면 자기도 모르리 만큼 인격이 향상되는 것이다.

 

  3. 기쁨이 충만하게 사는 일 (9~11)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기쁨으로 살아 보려는 데서 되는 일이요, 밤낮으로 글을 읽기를 좋아하면서 서책 생활을 하는 사람도 기쁨으로 살려는 데서 되는 일이다. 사람이 기쁨으로 살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스스로 비관해서 자기 목숨을 끊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기쁨의 생활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물질계를 초월한 기쁨

  둘째 : 인간 도덕을 초월한 기쁨

  셋째 : 인간의 오락을 초월한 기쁨

  이 기쁨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니, 그 기쁨을 체험한 자는 인간 물질계에서 되는 일을 오히려 분토같이 보게 된다. 왜냐하면 물질을 위하여 사는 것 보다도 물질을 바로 사용하기 위하여 사는 생활에서 그 물질을 따라 오는 안락을 불행스럽게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인간 도덕적인 방면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 중심에서 생활하게 되므로 도덕에 국한된 생활을 흑암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을 위한 생활은 외식이 되기 때문이다. 도덕을 초월한 생활의 기쁨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수리가 공중을 향하여 날 듯이 향상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땅 위에 살고 있지만 천국의 것으로 살 수 있는 생활이라면 그리스도 안의 기쁨이 충만한 생활이라고 본다.

 

  결    론

  그리스도 안의 열매라는 것은 땅에서 오는 것을 받는 열매가 아니요, 하늘에서 오는 것을 받는 열매이다. 그러므로 이 열매로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인간에게 큰 축복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 출 3:1~14 -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에 대한 예언적으로 나타난 역사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를 보아서 분명히 알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소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말씀을 완전히 세우실 적에 행하신 일은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증거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세우신 언약대로 행하시는 신이시다 (6, 출2:24)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한 것은 그들에게 언약을 세운 대로 행하시는 신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은 언약대로 복을 받을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동방 땅 끝의 야곱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세운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종을 가르친 것이다.  

  완전한 성경을 인간에게 나타내기 전에도 언약하신 말씀대로 행하셨거든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성경으로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는 동시에 현저히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문서가 없이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기록한 문서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것과 같다.

 

  2. 자기 백성을 고통 중에 건져주시는 신이시다(7~8)

  하나님께서는 친 백성을 고통을 당치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요, 고통을 당하되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건져주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 : 택한 백성들에게 진실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요

  셋째 : 인간 종말에 환란을 당할 백성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당할 적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부르짖는 사람이 된다면 그밖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게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려운 고통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가 배고플 때에는 우는 것밖에는 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어려운 난관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물밀듯이 내려올 때에 시온의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3. 택한 종과 함께 하시는 신이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종과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들어 쓰는 일이 없이는 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과 함께 하시어 그를 들어 쓰시되 그에게 왕권을 주시므로써 승리를 이루게 하는 동시에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영광을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4. 스스로 계신 신이시다 (13~14)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그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순종해야될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조물주가 아닌 신을 공경한다는 것은 주인을 대적하는 종이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된 사람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즉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가 있을 때에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만민이 알게 되는 열매를 맺게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된다.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역사

- 행 8:26~40 -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쓰시는 것은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쓰는 것 뿐이니 택한 종은 겸손히 순종할 것 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하여 택한 종을 들어 쓰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종은 겸손히 그의 역사에 순종할 것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자기의 어떤 방법으로 일한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사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 그 날 일하는 것을 절대로 순종해 나간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아무런 것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천사의 인도를 받게 됨 (26~27)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나타나서 이르기를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조건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는 빌립은 큰 열매를 맺게 되었다. 언제나 하나님의 종이 순종하는 길을 갈 때에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리석은 일 같으나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역사 하시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방 고넬료의 가정에 전도할 때에도 천사의 인도를 받았고, 바울이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갈 때에도 천사의 인도를 받았던 것이다. 크나큰 열매는 베드로가 가이사랴를 향하여 가는 길에서부터 있었고, 구라파를 통하여 세계를 움직이는 운동도 바울이 순종의 걸음을 걷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는 순종의 걸음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축복을 가져오는 열매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종 하나가 순종하는 걸음은 얼마나 귀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도 앞으로 주의 천사의 인도를 따라가는 길에서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2. 성경을 바로 깨닫게 됨 (28~35)

  택한 자는 성경을 읽기 좋아하는 동시에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 국의 큰 국고를 맡은 내시가 길을 가면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성신의 인도로 말미암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사야 53장을 읽게 되었다. 언제나 택함을 입은 사람이 성경의 뜻을 모르고도 은혜롭게 읽게 되는 것은 자기의 어떤 흥분이나 감정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에게 그 성경을 바로 깨닫도록 하는 것은 택한 종을 들어서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천사의 방언을 할지라도 택함을 입지 못한 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로되 택함을 입은 자는 성경 본문을 읽는데서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므로 택한 종을 통하여 간단히 말하여도 깊이 깨달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인간의 학설이 필요가 없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자에게 성경대로 담대히 증거할 것 뿐이다.

  언제나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 본문을 간절한 마음으로 읽게 하는 동시에 그 성경 본문을 깨닫게 하되 선각자를 들어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아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요, 겸손히 성경을 읽는데서 참된 종을 통하여 알게 하는 것이 성신의 역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선각자를 무시하고 자기가 스스로 성경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교만한 일이라고 본다.

 

  3. 세례의 축복을 받게 됨 (36~40)

  오늘에 교회가 세례의 큰 축복을 등한시하는 일이 있다고 본다. 언제나 세례는 성신의 역사 아래서 성신의 인도를 받아 물 속에 잠겨 올라 올 때에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가 이 법을 시행치 않는다는 것은 세례의 축복을 받지 못할 과오가 되는 일이다. 우리는 택한 자의 몸이 성신의 역사로 물에 잠겨 올라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주받았던 사망의 몸은 물에 아주 장례가 되고 축복을 받을 몸으로 물에서 올라오는 것이 세례의 축복이다.

  내시가 물에 잠겨 올라 올 때에 주의 성령이 빌립을 인도한 것을 본다면 얼마나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물에 잠겨 올라 올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한 사실을 보아도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물을 통과시키는 것은 큰 축복을 그 몸에 주기 위한 일이다.

 

  결    론

  택함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택한 종을 만나게 되는 일이나 하나님의 택한 종이 택함을 입은 자를 찾아서 만나게 되는 일은 너무나 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택한 종을 들어 쓰는 주님의 역사이므로 여기에는 조금도 인간의 방법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단과 구원 문제

- 사 19:19~25 -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도 있고, 단체적인 구원도 있다. 영혼 구원은 개인적이라면 몸의 구원은 단체적이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죄인을 부를 때라면 몸을 구원할 때는 세상의 악인들을 없이 할 때다. 그러므로 단체적인 구원에는 반드시 제단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제단과 구원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하기로 한다.

 

  1. 여호와를 위한 제단과 구원 문제 (19~20)

  오늘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단체로는 진노의 날에 몸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쭉정이와 알곡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하여도 끝까지 부르짖는 자들이 합심하여 제단을 쌓게 되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한 제단에 임하여 그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 무장을 갖춘 자들이 남은 종이 되어 끝까지 부르짖는 가운데서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한 제단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그 제단을 중심하여 완전한 표적과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 제단에 나리는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응답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응답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응답도 있고, 단체적인 응답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말에 몸을 구원하는 응답은 단체적으로 오는 응답이므로 여호와의 제단에 응답이 나리는 역사로만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제단에 나리는 역사로만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할 때는 한 제단 중심으로 참된 종들을 깨우쳐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하므로 그 제단을 중심한 단체에 응답을 나리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알곡만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한 방법이다. 알곡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자를 말한다. 앞으로 어느 교파나 새 시대에 들어갈 알곡된 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제단을 중심하여 뭉쳐지게 될 것이다.

 

  2. 간구와 구원 문제 (21~22)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간구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이미 중생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지만, 진노의 날에 영, 육이 구원을 받는 것은 조금도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구하는 기도 응답으로 특별 보호를 받게 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단체적인 구원은 여호와께서 완전히 고쳐주는 일이 있으므로써 영,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게 된다. 몸의 구원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완전한 몸이 되도록 고쳐주는 일이 있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축복과 구원 문제 (23~25)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은혜라면 몸이 구원받는 것은 축복이 된다. 이 축복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받는 축복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대로 어느 나라 민족이든지 특별히 축복을 받은 자들이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축복은 단체적으로 받는 축복이다. 국경의 차별 없이 축복 받은 사람들로 한 단체가 되어 새로운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속죄라는 것은 영혼 구원의 역사라면  축복이라는 것은 몸의 구원을 뜻했다. 아담이 순종치 않았으므로 저주받았던 이 땅에 제단 중심으로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제단에 대해서 등한해지고 개인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끝 날에 영, 육이 아울러 받는 구원은 단체적인 구원인 동시에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순 종 과  열 매

- 요 2:1~11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처음으로 행하신 기적은 물로 극상 포도주가 되게 하신 일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이러한 기사를 먼저 보여 주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큰 진리가 있는 것이니, 순종하는 자에게 좋은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순종치 않으면 극상 포도라도 그 즙이 변한 것과 같이 될 것이요, 절대로 순종한다면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극도로 좋은 열매를 맺는 생활로 변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제 순종과 열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종을 부탁한 일 (1~5)

  가장 어려운 일은 가난한 집에서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대접할 것이 모자라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이것을 크게 염려할 때에 하인들에게 부탁하기를 예수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깊이 생각해 볼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에게 만족히 먹을 만한 것을 주지 못한다면 큰 수치라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만족히 줄 것이 있으려면 예수님께 순종해야만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지금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조건 예수님께 순종하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누구든지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이는 예수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2. 순종할 때에 물이 포도주가 된 일 (6~9)

  인간이 볼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 같다. 예수님께서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히 채우라고 할 때에 무조건 물을 채운 일이나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할 때에 갖다 준 일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즉시에 포도주가 된 것은 아무리 가난하고 부족한 집이라도 예수님께 순종할 때에 부족함이 없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교회 상태는 포도주가 없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극상 포도주를 먹어야만 되겠는데 아무런 영양이 없는 물만 있듯이 극도로 곤경에 빠진 상태에 있는 말세 교회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만 한다면 차고 넘치는 극상 포도주와 같은 진리로 만족함을 얻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 55장을 보면 다윗에게 언약한 확실한 은혜는 극상 포도주와 같은 말씀이라고 가르쳤다. 오늘에 우리는 다윗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에 쓰여지는 종이므로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무조건 순종해야만 되는 것이다.

 

  3. 처음보다 마지막에 좋은 열매가 나타나는 일 (10~11)

  우리 교회는 처음보다도 마지막에 더 풍성한 은혜가 있어야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 기독교가 시작될 때에는 성경의 진리를 다 알지 못하여도 교회가 섰지만, 마지막 때에 가서는 극상 포도주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히 주는 역사가 있어야만 될 것이다. 만약에 말세 교회가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큰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된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는 종이라면 물로 포도주를 만들듯이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서라도 차고도 남음이 있는 은총을 나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주시되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주님의 역사이다.

 

  결    론

  가장 귀한 일이라는 것은 혼인 잔치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모든 손님을 만족히 대접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종말에 가장 영광스러운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만족하게 극상 포도주와 같은 진리를 나누어주는 교회라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열매가 있으려면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 막 10:28~30, 42~45 -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섬김을 받는 일이 아니고 섬기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일을 따라서 갚아 주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것이라는 것은 섬기는 일을 하는데서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을 받아야만 있는 것이니, 섬기는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28~30)

  사람이 물질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은 모든 일이 결국은 실패가 되고 만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은 처음에는 아무런 열매 없는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백 배나 받도록 축복하는 일이 있으므로 그 사람의 인격은 종 된 인격을 완전히 받는 동시에 모든 세상의 일은 그 인격을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처자나 자식이나 전토를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은 인격적인 아무런 유익이 없어도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은 세상의 모든 일을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축복 속에서 더 풍성한 생활을 하게 된다.  가장 위대한 일은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이다.  

  어떤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 청년은 이 말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다. 이것은 재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재물을 가지고라도 섬기는 일을 못하면 돈의 종이 된 생활이요, 아무리 가난해도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한다면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2. 형제를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42~44)

  어떤 사람이 한 평생을 형제에게 도움만 받고 살았다면 그 사람은 불행스러운 인격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하나님 앞에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를 도울 수 있는 인격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로되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완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형제를 도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더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어떤 종이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마다 듣는 자에게 돕는 힘을 하나님께로 받아서 전한다면 능력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강단에 선 종이 쓰러져 가는 자들을 소성시키는 역사가 있다면 그 인격은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서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될 때에 그 인격은 하나님의 도구가 된 인격이라고 본다.  

  가장 위대한 인격은 물질로 형제를 돕는 것보다도 한 번 말할 때에 하늘로부터 역사가 나리는 인격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물질로 형제를 돕는다 하여도 위에서부터 오는 역사가 없다면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죄인을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45)

  죄인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은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고 본다.  자고이래로 임금을 섬기는 충신도 있고, 부모를 섬기는 효자도 있고, 남편을 섬기는 열녀도 있지만 죄인을 섬길 수 있는 인도자는 예수님 뿐이다. 죄인을 섬기는 대속물이 된 몸은 그리스도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먼저 죄인을 섬기는 일이 있게 되므로 세상에 이루어진 것이니, 기독교 안에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근본적인 사상 문제가 기독교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는 일이다. 주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섬기는 일로 시작된 것이니, 서로 섬기는 사람끼리 합해질 적에 하늘에서 얼마든지 역사가 내리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모일 때에 역사가 나리지 않는 것은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원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마24:45~47).

 

  결    론

  섬기려 오신 예수님께서는 섬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섬길 수 있는 것으로 공급하시고, 끝까지 섬기는 자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일을 하므로만 세계를 다스릴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라나는 데서 이루어지는 인격

- 엡 4:13~16 -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향하여 역사하실 때에 단번에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놓는 것이 아니요, 날마다 자라나는데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완전한 인격을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이루어지게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역사가 있다.

 

  1.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 (13)

  하나님께서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게 역사 하시는데 있어서는 믿는 것이나 아는 것이 하나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오늘에 기독교가 믿음이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다든지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같이 믿음을 선물로 주는 동시에 하나같이 진리를 바로 알도록끔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는 것이요,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지식은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분명히 알게 되는 일이나 믿게 되는 일은 전부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완전한 신앙과 지식을 가지게 될 때에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으므로 그리스도의 지체된 인격이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받아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으로만 하나를 이루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생 자체가 완전해지게 한 것이 아니요, 독생자를 믿으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모방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목적하시는 것이다.

 

  2. 흔들리지 않게 하는 역사 (14)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은 자기가 완전히 승리하시고 자기와 같이 승리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고 자라나도록 하시는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예를 든다면 농장에서 일을 하는 농민이 언제나 농작물이 변질되지 않고 심은 그대로 하나같이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를 이루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 단체가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게 하는 역사 (15)

  그리스도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을 통하여 하시되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안에서 날마다 자라나 영원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분량대로 역사하도록 하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가 되기까지가 자라나게 하는 한계이다.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역사를 순종할 때에 그 역사를 힘입어 날마다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일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를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4. 분량대로 되어지는 역사 (16)

  그리스도의 역사가 우리에게 오되 장성의 분량대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것도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은혜를 받은 분량대로 완전한 열매가 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결    론

  가장 귀한 것은 그리스도의 역사가 우리에게 오는 일이요,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역사 아래서 자라나는 대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항상 그리스도와 연락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자아의 인격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보호로 승리

- 사 31:4~9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호 없이 인력으로 승리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은 조금도 하신 것이 없고, 언제나 선지들에게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말씀하실 때에 아무리 북방 원수의 세력이 강하지만, 당신이 친히 백성을 보호 하므로써 승리한다고 하셨다.  

  선지서는 이스라엘이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게 될 때에 모든 선지에게 원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지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워주므로 너희 시온이 이기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 당시에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요, 인류 종말에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이다.  이제 하나님의 보호로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보호의 역사 (4~6)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시온을 위하여 싸워주는 것을 약속할 때에 사자가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리듯이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어도 하나님께 호소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보호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타난 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이방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무시하는 일이므로 진노의 날에 아무리 시온의 자녀이며 종이라 하여도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만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2. 인간 무력을 초월한 역사 (7~8)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들어서 북방을 승리케 하시는 것은 인간의 무력을 초월한 역사로 하시되 북방이 도망을 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에 우리가 북방 세력을 무력으로 쳐서 물리치고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북방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므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북방의 세력이 승리할 것 같이 보인다 하여도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성경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표어를 가지고 이 민족을 깨우치는 일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3. 기호를 인하여 놀라게 하는 역사 (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통하여 승리케 하는데 있어서는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보다도 깃발만 들어도 그 깃발을 보고 원수가 떨도록 역사 하시겠다고 하셨다. 기드온을 들어 쓸 때에도 횃불을 들게 하여 적군을 물리쳤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에 역사를 일으킬 때에도 거룩한 기호를 보고 북방의 강한 세력이 떨게 되는 것은 여호와 친히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기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어떤 산상에서 3일간 철야 기도를 하였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십자가의 기호가 내 눈앞에서 날리는데 푸른 깃발에 은빛 십자가의 기호였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기도할 때에 알려오기를 북방 세력이 저 깃발 앞에서 망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주셨다. 이 노래를 한 절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환란의 고통을 막을 자 누구뇨. 모든 것 완전한 주 예수뿐일세 완전한 승리를 이루운 권세는 주 예수뿐일세” 하는 노래를 주시면서 너는 북방을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북방을 이기는 일은 인간의 정권이 아니요, 주 예수 뿐이라고 하시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십자가의 기호를 반석 위에 꽂고 새일수도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보호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요,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절망 상태에 있을 때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에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야 한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

- 벧후 2:18~22 -

 

  우리 신앙 생활은 항상 싸우는 생활이니, 마귀에게 지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요, 마귀를 이기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허락하여 미혹하게 하시는 것은 이기는 자에게 축복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이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자 (18~19)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이기면 하나님의 종이 되고, 못이기면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일을 하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 성신의 역사이다. 그런데 정욕을 용납하는 자유라는 것은 마귀의 미혹이다. 어떤 종이 정욕을 죽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정욕을 따라가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거짓 선지의 더러운 영의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종된 자격을 갖추려면 먼저 정욕을 이기는데 목적을 두고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만 될 것이다. 정욕이라는 자체는 마귀이니,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항상 마귀의 종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신 것은 마귀의 정욕이 네게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던 것이다(요8:44).

 

  2. 주님을 알고도 죄를 이기지 못한 자 (20)

  만일 어떤 사람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죄에서 벗어남을 받았다가 다시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진 자라면 나중 형편이 더 심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마귀를 대적하고 나가다가 마귀에게 다시 잡히면 더 무서운 마귀의 세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항상 십자가를 지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생활이 있어야만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에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마귀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타협적으로 나간다는 것은 무서운 화가 올 일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다면 순교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자가 되어야만 처음보다도 나중 열매가 더 많아지므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왕권 반열의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죄를 이기지 못한 자는 죄의 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에는 지옥을 면하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을 수는 없는 것이다.

 

  3.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자 (21~22)

  우리가 거룩한 명령을 받고 저버리는 자가 된다면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것이나 동일하다. 그러므로 거룩한 명령을 받은 자는 끝까지 순종해 나가야만 거룩한 명령을 받은 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거룩한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큰 화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기는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니,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를 따라 가는 제자였지만,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십자가를 피하라고 할 때에 “사단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마귀에게 지게 될 때에는 마귀의 종이 된다. 그러므로 항상 거룩한 명령을 받은 자는 충성과 진실을 가지고 나가야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가련한 사람이라는 것은 거룩한 사명을 맡아 가지고도 마귀의 종이 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련한 사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보다도 교회 안에 들어온 자로서 마귀에게 져서 마귀의 종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일이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는 일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 슥 3:6~10 -

 

  인류 역사의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일은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라는 것을 가르칠 때에 구약 교회에 종말을 들어서 신약 교회의 종말을 가르쳤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요, 교회라 하더라도 말씀에 순종치 않을 때에는 망하는 것이요,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승리를 이룬다는 것을 구약 교회의 종말에 된 일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고 안 하는데 의하여 나리는 심판도 있고 그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는 심판도 있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로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로 말미암아 완전한 촛대교회가 이루어지므로 그 교회가 성도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들에게 나타나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말씀을 순종하는 대표의 사람이 권리를 받음 (6~7)

  세상 죄를 짊어진 어린양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여 인류적인 종교가 이루어지게 되어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므로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는 구원을 받아서 천국으로 들어갔고, 기독교 종말에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므로 승리한 대표적인 종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 종이 전하는 말씀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한 단체가 나오는 것이다.

  구약 교회가 바로의 정권 아래서 해방을 받을 때에는 유월절 양의 피로 말미암아 받게 되었고 말씀에 순종치 않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했다가 복구될 때에는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몇 사람을 통하여 복구된 것이다. 이와 같이 어린양 예수의 피로 해방 받은 교회는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로써 바벨론이 망할 때에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도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망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요,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가 나오려면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야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너무나 말씀이 혼선된 이 때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나오는 종이 있으므로만 한 단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순종했으므로 만왕의 왕이 되어 세계적인 구원을 베풀게 되었고, 말세의 종은 말씀 하나를 바로 순종하되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말씀 권세의 역사를 받게 되어 그 말씀으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구약 교회의 종말에 선지 예언을 반대하던 예루살렘이 망할 때에 선지 예언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로 새로운 시대를 이룬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 대표적인 사람을 사단으로 대적하게 하여 아무리 피해를 당했지만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순종하므로 교회가 서게 되었고 말세의 종은 순종하므로 교회를 바로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2. 순종하던 동료들로 열매가 나타남 (8)

  아무리 말씀의 대표가 되는 종이 있다 하여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동료가 없다면 아무런 열매도 나타날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큰 나무 가지가 있다하여도 순이 나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표적인 종이라도 동료들의 순종이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구약 때에 선지의 예언을 그대로 믿는 여호수아가 고레스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을 회복하려고 돌아왔지만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가 없을 때에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짓다가 중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가 일어날 때에 가서야 권리 행사가 나타나므로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촛대교회 역사가 일어나려면 예언의 말씀을 믿고 싸우는 단체가 있어야만 한다.

 

  3. 세계적인 역사가 일어남 (9~10)

  기독교가 이날까지 나라마다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버림돌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므로 된 것이요, 기독교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는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다. 머릿돌 예수를 통하여 일어나는 역사는 진리를 확실히 증거하되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단체가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단체적인 성결의 역사가 오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서로 초대하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죄악을 제하는 역사가 있으므로써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죄를 사함 받는데 있는 것이요, 이 몸이 죽지 않고 새 시대에 가는 것은 몸에까지 죄악성을 제해 버리는 역사가 있으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완전한 대표적인 사람에게 죄과를 제하는 일이 있게 되고(슥3:4), 다음에는 단체적으로 죄악을 제하는 일이 있으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다. 구약 종말에 예루살렘을 복구하는 일이 있을 때에 영광이 나타난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촛대교회를 이루게 되므로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기도 응답의 삼대 의의

- 요 14:14~17 -

 

  하나님께서는 기도대로 이루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영광이 될 보화로운 것이 충만히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홀로 가지고 있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사랑의 신이시며, 그것을 인간에게 주시되 가장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겸손한 신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나리는 것은 법을 떠나서가 아니고 법을 따라 주시되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여야만 주는 의의 (14)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여야만 주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예수의 십자가로 죽은 영들을 살렸기 때문에 중생 받은 영들에게 주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만 주게 되는 것이다.

  둘째 :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의로운 자에게만 주시기 때문에 예수의 의밖에는 하나님의 것을 받을 조건이 없는 것이다.

  셋째 : 하늘과 땅의 권세를 예수에게 맡겼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만 응답을 나리게 되는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없이 함부로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에게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이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들에게 은혜를 나리는 것은 그리스도 순종의 의로운 행동을 따라 주시는 것이다.

 

  2. 예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의의 (15)

  누구든지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이 있게 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이 있을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행하는 자라면 예수님께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응답을 나리시게 된다. 왜냐하면 응답을 나리시는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를 대행자로 쓰시기 때문이다.

 

  3. 주께서 아버지께 구하는 의의 (16~17)

  주님께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더 큰 역사를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통하여 더 큰 역사를 하시기 위한 목적이다. 누구든지 형제를 살려 보려고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자라면 주님께서 그에게 더 큰 은혜를 받게 하시기 위하여 간구하시는 일이 있다. 이것은 형제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는 자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한 목적에서 하시는 기도이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할지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더 큰 역사를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나의 받은 체험에 의하면 남을 살리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일 때에 언제나 구한 것 외에 더 큰 은혜가 오는 것을 받았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받고 있는 나 자신도 의심할 정도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은 자신이 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간구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무조건 주시는 것이라고 본다.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신 열매이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일에도 세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 죄를 철저히 자복하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는 기도가 있다.

  둘째 : 남을 살리고자 하는 자에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대언 기도가 있다.

  셋째 : 택한 자가 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게 될 때에 그를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가 있다.

  우리는 항상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게 될 때에 기도의 응답은 계속으로 나리되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은 택한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되 진리를 따라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하여도 진리에 탈선된 자의 기도는 받을 수 없고, 참으로 희생적인 사랑에서 남을 살리고자 하는 자의 기도는 무조건 주님께서 응답으로 나리신다. 주님께서는 택한 자에게 여러 가지 일을 살펴보시고 진실한 것을 따라 응답을 나리는데 있어서는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는 일

- 벧전 4:7~16 -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무조건 열심을 낸다는 것은 열심이 없던 자보다도 오히려 더 타락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는 일은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우리는 알아야 한다.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할 일 (7)

  기도 생활에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것이 없다면 오히려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도 욕을 돌리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든지 말씀이 혼선되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죄라도 있을까 항상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는 일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든지 구하면 준다 하는 정도의 신앙은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될 수도 있다.

  영광이라는 것은 인간 행위로서는 나타날 수 없고, 기도 응답으로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이방 세력에게 망하여 큰 수치를 당하게 된 것은 정신을 차릴 일에 정신을 차리지 않고, 삼갈 일에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생활에는 방탕의 생활이 있는 것이 원칙이요, 소망이 있는 생활에는 정신을 차리고, 삼가는 생활이 있는 것이 원칙이다. 누구든지 정신을 차리고 삼가할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라면 그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2.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 (8)

  사랑이라는 것은 열심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이 사랑한다 하면서 열심이 없다면 그 사랑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되므로 오히려 자신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씀으로 서로 사랑할 것이 없지만, 소망이 있는 사람으로서 열심으로 사랑치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수치를 당할 일이 된다. 그러므로 열심으로 사랑하는 일이 있어야만 죄를 이기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3. 원망이 없이 서로 봉사하는 일 (9~11)

  봉사라는 것은 사람에게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원망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갚아 주는 것을 목적했다면 원망할 일은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것은 섬김을 받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는 항상 서로 봉사하는 일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4. 시험을 당할 때에 기뻐하는 일 (12~16)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큰 영광을 당신께 돌리게 하는데 있어서는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게 한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영광을 주기도 하시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영광을 받는 일은 가장 큰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한 것은 영광을 받기로 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삼가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과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과 원망이 없이 봉사하는 일과 시험을 당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는 일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세세 왕권을 받게 될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의 인격

 

  총    론

  인류 역사에 가장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는 주 재림시까지 살아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휴거를 받는 자들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몸이 죽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중생시에 즉시 받는 것이요 부활성도의 자격을 가진 자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싸우다가 원수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요, 변화성도의 자격을 가진 자는 원수의 피해를 당치 않고 원수의 세력을 굴복시키며 복음을 전하다가 들림을 받는 것이다. 이제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성도는 어떠한 인격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충성되고 지혜로운 인격

- 마 24:44~47,  요절:47 -

  

  서    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말씀을 전할 종은 충성되고 지혜로운 인격을 가진 자라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재림하는 날에는 충성된 자가 아니고는 나설 수 없는 환란이 오고 지혜로운 자가 아니고는 다 미혹을 받게 되는 마귀의 흑암이 오기 때문이다. 이제 충성되고 지혜로운 인격에 대하여 본문을 보아서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1대지 : 예비하고 있는 인격 (44)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항상 장래를 생각하고 예비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리석은 자는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후회를 하는 것이요, 지혜로운 자는 항상 장래의 일을 생각하며 예비하고 있다가 수치를 당치 않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금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비하고 있는 자라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

 

  2대지 :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인격 (45)

  가장 위대하고도 귀한 일은 주님 오실 때까지 진리의 양식을 남에게 전해 주는 일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진리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이 되려면 하나님의 양떼들에게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진리를 증거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모든 사람을 깨우쳐 주는 일을 하려면 첫째로 ‘나’ 자신이 말씀을 무장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가르치는 종들이 일어나야만 재림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있다. 진리라는 것은 시대적인 진리를 증거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주님 재림하실 때에는 환란 시대이므로 그 시대에 관한 진리를 증거하려면 계시록과 선지서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3대지 : 주인에게 권리를 받는 인격 (46~47)

  권리라는 것은 자녀가 된 자로서 무엇을 구할 권리도 있고, 완전히 집을 다스릴 권리도 있다. 그런데 집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에게만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남은 자로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인격은 어린아이의 인격이 아니요, 장부의 인격을 가져야 된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예비하고 있으면서 진리를 바로 증거하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자들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림의 주를 맞이하려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제2과  흠이 없는 인격

- 계 14:3~5,  요절:3 -

 

  서    론

  14만 4천이라는 사람들을 “땅에서 구속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은 변화성도를 가르쳤다. 어떤 사람이 14만 4천을 현 유대족이라고 말한다면 복음적으로 보아서 말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계5:9 이하를 본다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십자가의 피로 산 백성이라야 참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4만 4천이라는 사람은 생존 변화성도라고 보게 된다.

 

  1대지 : 새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음 (3)

  새 노래라는 것은 완전히 원수를 이기고 새 시대에 들어 갈 승리의 용사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용사적인 인격을 가지고 승리한 자들이 부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억울한 피값을 갚는 권세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변화성도로서 왕권 반열에 들 자라야 부르게 된다.

 

  2대지 : 처음 익은 열매가 될 자격이 있음 (4)

  변화성도가 되려면 완전히 익은 열매와 같이 인격 완성이 되어야 한다. 인격 완성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불의와 동참하지 않고 절개가 있어야 한다.

  둘째 :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셋째 : 완전히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

 

  3대지 : 입에 거짓말이 없음 (5)

  주님 오실 때까지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되려면 정직한 사람으로 담대히 진리를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듯이 아나니아가 베드로를 속이듯이 비겁한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든지 물질에 욕심이 있어서 거짓말을 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담대히 말씀을 증거하는 자라야 변화성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기생 라합과 같이 비밀을 지키는 것 외에는 정직한 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만 입술에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흠이 없는 인격이라는 것은 사람이 볼 때에 부족이 있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부족이 없는 인격이다. 그런데 변화성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흠이 없는 인격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 보이려고 가장을 한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외식하는 자이므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종이 되어야만 변화성도가 되는 것이다.

 

 

제3과  심지가 견고한 인격

- 사 26:3~9, 16~19,  요절:3 -

 

  서    론

  우리는 재림의 주를 영접할 사람이 되려면 심지가 견고하여야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 26장은 변화성도의 인격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남은 종이 되어서 말씀을 증거하려면 심지가 견고한 자로서 어떠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보아서 알 수 있다.

 

  1대지 :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주님만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함 (3~7)

  주님께서는 중심으로 당신만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실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빈궁하고 곤고한 일이 온다 하여도 주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할 것을 가르쳤다.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라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주님의 평강의 은총이 같이 하기 때문이다.

 

  2대지 : 은밀한 중에 중심으로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함 (8~9)

  기도라는 것은 고요한 밤에 은밀한 중에서 영혼이 주를 사모하는 동시에 중심으로 간절히 구할 때에 주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기도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외식이 있다면 은밀한 중에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그러나 중심으로 은밀한 중에서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므로 변화성도의 인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3대지 :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함 (16~18)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려운 환란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는 용사가 되어야 한다. 만일 어떤 종이 조금만 어려운 일이 와도 압력을 받고 쓰러진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을 갖춘 자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이 되려면 어려운 일이 올 때에 강하게 부르짖는 인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4대지 : 쓰러지기까지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함 (19)

  주님께서는 부활성도도 쓰러지기까지 말씀을 증거한 종이라야 왕권 반열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요, 변화성도도 쓰러지기까지 싸우는 자라야 왕권 반열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계20:4).

 

  결    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은 심지가 견고한 자라야 된다는 것은 아무런 환란이 온다 하여도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싸워 나가는 자라야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제4과  새로운 창조를 받은 인격

- 사 43:1~7,  요절:7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창조력을 가지셨으므로 아무리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이지만 다시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다고 본문에 가르쳤다. 이것은 변화성도의 인격을 이루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부활성도라는 것은 중생 받은 자로서 중생의 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한 자요, 변화성도라는 것은 몸에 새로운 창조를 받은 자로서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역사하다가 주님을 영접하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자이다. 이제 새로운 창조를 받은 인격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대지:물과 불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 몸이 됨 (1~2)

  환란 재앙 가운데서 역사하는 변화성도는 물과 불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 몸으로 창조를 받게 된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하는 몸은 물질계를 초월한 몸이니 조금이라도 물질적으로 오는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몸을 받은 자가 대표적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변화성도의 단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몸이 됨 (3~4)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받은 사람의 몸을 가장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몸의 창조를 받은 사람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시는 것이다.

 

  3대지 :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됨 (5~6)

  대표적인 사람이 보배롭고 존귀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하여 동방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이고 서방에서도 모이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로운 몸의 창조를 받은 사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은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할 수 있는 종의 인격을 이루었으므로 권리 행사의 역사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때에 남방 세력이나 북방의 세력도 다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4대지 :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로 하나가 됨 (7)

  기독교의 완전한 단체라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받은 사람들로 한 단체를 이루게 되어 세계적인 역사를 일으키게 되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은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단체적인 역사를 하다가 단체적으로 구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라는 것은 하나같이 영광을 위하여 창조를 받았으므로 다 한 곳으로 모이는 일이 있게 된다.

 

  결    론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의 몸이 죽게 되었고, 둘째아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들의 몸이 새로 지음을 받아 지상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칠 때에 사42장은 그리스도의 교훈이 이방의 빛이 될 것을 말씀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새 일의 교훈이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타락한 인생의 몸을 새로운 몸이 되게 창조하시므로 새로운 역사를 하다가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제5과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인격

- 사 62:1~8,  요절:2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변화성도로서 왕권을 받을 자들에게 새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것은 칭찬을 하는 의미에서 주는 이름이다. 누구든지 그 사명에 따라서 충성을 다할 때에 새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은 왕권 반열에 들 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 이름을 부르게 되는 사람의 인격은 어떠하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대지 : 공의의 빛과 구원의 횃불을 나타내는 자가 되므로 (1~2)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성도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가 되는 말씀을 밝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영혼이 구원받는 진리는 밝혔으나 진노의 날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진리는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진노의 날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진리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들이 밝히 증거하되 열방을 깨우치게 된다.

  아무리 사명이 있다 하여도 종말의 진리를 혼선시키는 자는 변화성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변화성도가 역사할 때에는 흑암이 온 땅을 덮을 때이므로 구원의 횃불을 밝히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의의 빛과 구원의 횃불을 높이 드는 자라야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2대지 : 왕관을 받을 자가 되므로 (3)

  누구든지 왕관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만 새 이름을 불러주게 되고, 그 새 이름에 따라서 왕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새 이름이라는 것은 사명에 따라서 주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사명에 충성을 다할 때에 왕관을 주는 동시에 새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은 가장 영화롭게 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왕관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 완전히 인정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인정이라는 것은 맡은 사명을 하기 위하여 열심 있게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왕권 반열에 들게 하는 것이다.

 

  3대지 :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가 되므로 (4~5)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과 같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하는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 사명을 맡기실 때에 그 사람을 대행자로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을 맡은 자가 충성을 다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4대지 :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자가 되므로 (6~8)

  하나님께서는 사명자가 하는 일은 하나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종일 종야로 쉬지 않고 일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잊지 아니하시고 일한대로 영광을 받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충성되게 한 자를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시므로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 하나님께 새 이름을 받게 되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새 이름에 따라서 왕관을 받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신부의 자격으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8과  단물이 쑥물이 됨

- 계 8:10~11,  요절:11 -

 

  서    론

  학생들, 단물과 쓴 물이 합하면 쓴 물이 달게 되겠습니까?  단물이 쓰게 되겠습니까? 학생들, 누구나 다 단물이 쓰게 된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인간 종말에 단물과 같은 생수의 말씀을 먹이던 하나님의 종들이 쓴 물과 단물을 합해서 먹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죽게 되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1대지 : 쑥이라 하는 이름을 가진 별이 강과 샘에 떨어짐 (10)

  학생들, 별이라는 것은 무슨 뜻으로 나타났을까요? 별은 우리 나라에서도 남을 지도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군대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별을 붙이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계시를 볼 때에 큰 별이 나타나서 강과 샘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는데, 그 별 이름을 쑥이라고 한 것은 교회를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교회를 망치는 거짓 선지를 가르쳤습니다. 교회 안에는 조금이라도 거짓된 사람이 주권을 쥐면 쑥물이 단물에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소위 공산 국가에 있으면서 목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유 진영의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참된 목사가 아니요,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행동을 하는 거짓 선지입니다. 이것은 공산당의 사상을 우리 교회 안에까지 넣어주기 위하여 목사 가장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만 날마다 생수가 솟아오르듯이 강물이 흘러내리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가 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에는 은혜가 내리지 않고 마귀의 역사가 교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악한 사상을 가진 사람을 교회에 받아들이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나리지 않으므로 결국은 마귀의 쑥물이 들어와서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하여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학생들이 쑥물을 먹는 사람들과 같이 되므로 결국은 교회를 다니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는 일이 있게 됩니다.  

  지금 교회가 공산 국가에서 나오는 거짓 선지와 합해지는 것은 쑥물과 단물이 합해지는 것과 꼭 같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단물을 먹고 자라났다 하여도 오늘이라도 단물에 쑥물을 타서 먹으면 학생들은 도저히 살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우리 교회가 단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많은 사람이 살아 왔다 하여도, 이제 와서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나리시지 않으시므로 교회는 마귀의 시험이 들어오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요한에게 쑥물과 같은 마귀의 사상을 절대로 교회에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런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2대지 : 많은 사람이 죽게 됨 (11)

  학생들, 우리는 떡으로만 살게 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므로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망할 때에 같이 망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말씀만 믿고 지키는 사상을 가지고 나가야만 어떠한 재앙이 오는 날이라도 재앙을 받지 않고 새 시대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특별히 주의할 것은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공산당이 나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마귀의 쑥물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이면 영혼도 죽고 몸도 죽는 큰 화를 받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서라도 독약을 먹는다면 즉시 몸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좋은 교훈을 받았다 하여도 나쁜 사상을 가진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면 먼저 좋은 교훈을 받은 것은 다 무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쑥이라는 별은 어떠한 사람을 가르쳤습니까?

 2. 강과 샘은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3. 많은 사람이 왜 죽게 됩니까?

 

 

제19과  빛의 3분의 1이 어두워짐

- 계 8:12~13,  요절:12 -

 

  서    론

  학생들, 어두움이 밝아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밝은 것이 어두워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어느 학생이든지 어두움이 밝아지는 것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가 계시를 볼 때에 해나 달이나 별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빛이 무엇이며 어두움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아는 학생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어둠이 무엇이며 빛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사상적으로는 어두운 것이 무엇이며 밝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오늘 우리 학생들은 무엇이 빛이며 무엇이 어두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도록 공부해야만 됩니다.

 

  1대지 : 빛이 어두워지는 일 (12)

  낮에는 해가 빛을 내므로 사람이 활동을 하게 되고, 밤에는 달과 별이 빛을 내므로 사람이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가 계시를 볼 때에 해와 달과 별의 3분의 1을 쳐서 어둡게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해를 칠 수가 있으며, 달과 별을 칠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사람의 사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햇빛은 예수님의 빛을 뜻했고 달과 별은 말세 성도와 주의 종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공산당이 일어나 세계 3분의 1을 어둡게 했습니다. 지금 공산당 정치 아래서는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전도도 하지 못하고 누구든지 옳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다 쳐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당 정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캄캄한 흑암에 빠졌습니다. 옳은 사상을 가지고 청년들과 학생들을 지도하던 사람은 다 쫓겨서 자유 진영으로 오게 되고, 거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억울하게도 공산당의 손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3분의 1이 캄캄한 흑암에 빠질 것을 미리 사도 요한을 통하여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본다 하여도 이북에는 흑암이요, 이남에는 빛이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여진 대로 오늘에 세상은 3분의 1이 어두워졌습니다. 우리 학생들, 우리는 그 어두운 세상에 살지 않고 남한에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2대지 : 화, 화, 화가 있게 되는 일 (13)

  어찌하여 우리 앞에 화, 화, 화가 있다고 계시록에 말했을까요?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화가 온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옛날 오바댜 선지는 붉은 에돔이 독수리 같이 별 사이에 올라가게 되면 세상에는 큰 화가 오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도 말하기를 북방의 넓은 땅을 점령하고 악한 정치를 하는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때는 큰 화가 올 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큰 화가 온다는 것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화가 온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온다는 것이요, 이 화가 오므로 세상은 우리 학생들이 기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생들은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화가 오는 것은 악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없애기 위하여 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상을 따라 남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 될 때에 평안히 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물로 세상이 망하는 화가 올 때에도 노아의 가정은 평안히 구원을 받았고,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에 탈 때에도 롯의 가정은 천사의 보호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오는 화를 받지 않으려면 죽어 천당 가는 진리를 배울 것이 아니고, 살아서 새 시대에 가는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대로 믿고 하나님을 공경해야 됩니다. 지금 이 땅 3분의 1이 어두워진 세상이 온 것은 분명히 학생들이 살아서 새 시대에 갈 때가 온 증거입니다.

 

  묻 는  말

 1. 해와 달과 별을 쳤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 이 세상에 화가 오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오는 것입니까?

 3. 우리는 지금 죽어 천당을 갈 때입니까?  살아서 새 시대에 갈 때입니까?

 

 

제20과  해와 공기가 어두워짐

- 계 9:1~3,  요절:1 -

 

  서    론

  해와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학생들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오늘이라도 공기가 없어지면 학생들은 호흡을 할 수가 없고, 호흡을 못하면 학생들은 움직이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이 공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햇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께서 저 공중에 불덩어리를 두셨으므로 따뜻한 기후도 우리가 받게 되고, 그 빛을 따라서 눈으로 보고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해와 공기가 캄캄하게 어두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뜻을 분명히 알도록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무저갱의 열쇠를 받음 (1)

  학생들, 열쇠라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아십니까? 아무리 큰집에 들어 갈려고 해도 문이 잠기어 있다면 열쇠로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있는 곳을 무저갱이라고 하는데, 그 무저갱이라는 뜻은 밑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있는 무저갱의 열쇠를 받는 일이 보여졌습니다. 떨어진 별이 그 열쇠를 받았다는 것은 악한 사람이 마귀 권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별이라는 것이 하늘에 있지 땅에 떨어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떨어진 별이라는 것은 남을 지도한다는 사람이 빛을 내지 못하고 사람들을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 공산당은 어디서부터 어떠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렇게도 크게 일어났을까요? 신학교를 다니던 스탈린이라는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하고 일어난 것이 공산당의 시발점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예수 믿다가 타락해서 지금 세계를 어지럽히는 공산당이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그 세력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즉 공산당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공산당이 무섭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공산당이 일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공산당을 없애는 심판이 오고, 예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새 시대가 올 징조라고 봅니다. 학생들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공산당의 세력을 없이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대지 : 연기가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함 (2)

  학생들, 연기가 학생들을 덮으면 눈이 잘 보일까요? 보이지 않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 교회 안에 연기가 꽉 찬다면 학생들은 눈을 뜨지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하므로 죽는다고 야단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마귀가 있는 무저갱에서 연기가 나와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큰 화가 올 때에 마귀의 흑암 권세가 천하를 덮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도 없고 죄도 없고 심판도 없다는 무신론 공산당 사상이 세계를 덮었습니다. 학생들,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은 빛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두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은 흑암입니다. 학생들, 학교에 가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은 마귀의 흑암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을 말하는 사람은 다 마귀 흑암에 빠진 사람이니, 이런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따라가지 않아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무신론 공산당 사상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는 심판이 앞으로 올 것입니다.

 

  3대지 :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옴 (3)

  학생들, 황충이라는 것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황충이는 무엇이든지 사정없이 뜯어 먹으므로 식물에 큰 피해를 주는 벌레입니다. 열대 지방에서는 황충이가 떼를 지어 농장이나 과원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오는 것이 보여진 것은 심판기가 올 때에 악한 무리들이 일어나서 남의 것을 마구 빼앗아 가지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지금 남의 토지나 집이나 공장이나 모든 재산을 마구 빼앗아 가지는 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이것이 공산당입니다. 그러므로 검은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오는 것은 무신론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남의 것을 빼앗아 가지는 짐승과 같이 악하게 행동을 하며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진 것입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악한 황충떼 같은 사람들의 피해를 받지 않고 이기려면 하나님께서 특별 보호하시는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묻 는  말

 1. 땅에 떨어진 별은 누구를 가르친 것입니까?

 2. 연기가 나오는 것은 광명입니까?  흑암입니까?

 3. 황충떼는 악한 사람을 가르쳤습니까?  선한 사람을 가르쳤습니까?

 

 

제21과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피해를 당함

- 계 9:4~6,  요절:4 -

 

  서    론

  이날까지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다 같이 살았지만, 앞으로 환란이 올 때는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은 자 외에는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학생들에게 은혜를 내리시는 것은 앞으로 원수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없이는 어려운 환란이 올 때에 그 환란을 피할 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지금 열심으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다 함께 완전 무장 줍소서 하는 호소를 올리겠습니다(성가 47장).

  학생들, 오늘은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당하고, 인 맞은 사람은 피해를 당하지 않는 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는 역사 (4, 7:3)

  우리 학생들, 다 같이 계7:2~3을 선생님이 읽는 대로 따라 읽어보세요.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어디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까? 해가 돋는 데서부터 라고 했는데, 학생들 아침에 나가서 하늘을 보면 어디서 해가 돋습니까? 누구든지 다 동쪽에서 해가 돋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동방에서 나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동방에 살고 있는 중에도 극동에 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볼 때에 중동에서 해 돋는 편으로 본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극동을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는 역사가 반드시 같이 해야 됩니다. 학생들은 환란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기 위하여 선생님과 같이 항상 호소해야 됩니다.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므로 인의 역사를 받게 되면 마귀가 학생들을 보고 무서워서 다 도망을 가고 맙니다. 아무리 캄캄한 흑암이 온 땅을 덮어도 인의 역사를 받은 사람들은 피해를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이니, 인을 맞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마귀의 인을 맞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인을 맞는 것이 좋습니까?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인을 맞는 것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한 교회에서 한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하나같이 다 보호를 받게 됩니다.

 

  2대지 :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는 환란 (5)

  앞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에 강림하시기 전에 다섯 달 동안 극도로 악한 사람들이 괴롭게 하는 환란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의 역사가 같이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야 피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교회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는 교회가 되기 전에는 이 악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하게 되므로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죽고 싶으리만큼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나 선생님이 권세 역사를 하는 교회라야 악당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3대지 : 극도로 괴로운 환란 (6)

  학생들, 극도로 괴로운 것이 좋습니까? 죽는 것이 좋습니까? 누구든지 너무 괴로울 때는 죽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 세상에는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고, 살기에도 괴로운 환란이 오게 됩니다. 지옥이라는 곳은 뜨거운 불이 있는 데서 죽지도 않고 괴로워서 슬피 우는 곳을 말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오는 환란이 지옥과 같은 괴로운 환란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는 교회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천사의 보호 아래서 감사와 찬송을 올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께서 특별 보호하시는 역사가 있는 교회에 다녀야만 앞으로 극도로 무서운 피해를 당하는 환란에 빠지지 않고 새 시대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모인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말씀을 똑똑히 듣고, 선생님이 부르는 호소 성가를 다 같이 열심히 부르시기 바랍니다.

 

  묻 는  말

 1. 하나님의 인은 어디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까?

 2. 하나님의 인을 맞지 못한 사람들은 왜 피해를 당합니까?

 3. 앞으로 어떠한 교회라야 남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제22과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 계 9:13~21,  요절:15 -

 

  서    론

  학생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동양에서도 극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이 있는 곳을 중동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가난하지만, 중동으로는 석유가 많이 나오는 곳이므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돈이 너무 많아서 돈도 받지 않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공부가 끝나면 학생들을 집에까지 차를 태워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석유가 많이 나오는 그곳을 소련이라는 나라가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석유가 많이 나는 땅은 자유 진영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 다니엘이라는 선지가 인간 종말에 될 것을 묵시로 볼 때에 북방에 악한 정치를 하는 나라 사람들이 중동으로 내려 올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방으로부터 오는 사람들과 하나가 될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동방에서 큰 역사가 일어나므로 그 소문을 듣고 북방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마음이 번민해 하는 자리에서 있다가 망하게 될 것도 보았습니다.  

  오늘은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하여 간단히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네 천사가 놓임 (13~14)

  이 네 천사는 무슨 뜻이라는 것을 13과에서 공부했습니다. 계7:1을 보면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아 땅이나 바다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는 광경이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부하는 말씀에는 네 천사가 놓였는데, 무서운 환란이 일어나는 것이 보여졌습니다. 지금 중동을 중심하여 미, 영, 불, 소 네 나라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있지만, 실지는 어느 나라나 하나같이 원자 무기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지 원자 무기를 쓸 때에 같이 원자 무기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 나라에서 원자 무기를 쓴다면 이 세상은 사람이 다 쓰러져 죽는 무서운 환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함부로 일어나지 않고 정한 때에 가서야 일어난다는 것으로 년, 월, 일, 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라는 뜻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이 때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때입니다.

 

  2대지 : 사람 3분의 1이 죽음 (15~19)

  이날까지 전쟁은 많이 일어났었지만, 백성까지 전부 죽는 전쟁은 없었습니다. 군인이 군인을 상대해서 싸우다가 항복하면 죽이지 않고 서로 평화를 누리고 내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인류가 3분의 1이 죽는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계시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때는 총도 없었고 대포도 없었으므로 단지 칼로 사람을 쳐죽이는 전쟁이었으나 앞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는데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와서 사람을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제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원자탄을 쓰는 것이 아니고 포 전쟁이 일어날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어느 나라나 원자탄을 쓰면 세계 인류는 다 망할 것이니 원자 포나 총을 쓰게 될 것을 보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 우리는 이 전쟁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시지 아니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이 살수가 없는 환란이므로 우리를 환란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3대지 : 악한 세상이 됨 (20~21)

  온 세계가 불타는 전쟁이 있게 되는 후에는 전쟁이 없는 평화 시대가 오지만,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더 악한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 학생들은 피난처에 보호해 주는 일이 있게 되므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공부는 8월에 가서 하겠습니다.

 

  묻 는  말

 1. 이제 전쟁은 어디서 난다고 했습니까?

 2. 사람 얼마나 죽는다고 했습니까?

 3. 중동 전쟁이 일어나고는 평화 시대가 옵니까?  악한 시대가 옵니까?

 

 

 

 논 설 편

 

1. 진리를 이용하는 자는 악한 사람이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는 의로운 사람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성경을 들고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이용하는 사람이냐, 성경의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오늘에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높이 올라가도록 하는 것은 성경을 이용하는 자는 없이하고 성경의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자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는 성경을 들고 성경의 진리를 위하여 싸워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성경을 들고 싸워야 할 조건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무신론 사상을 없애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우리가 무신론자와 싸우려면 우리 자체가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신의 역사를 받아야만 한다. 오늘날 성경을 들고 교회에 다니는 자가 많지만,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은 자는 심히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에 교회가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사가 없다면 무신론자와 싸울 용기조차 낼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우리가 무신론 공산주의를 말살시키는 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새로이 나타나되 이 시대의 비밀의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데서 일어나게 된다.

 

  2. 과학자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오늘에 무신론 과학자들은 과학이 발달되므로 성경은 아무런 가치가 없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되므로써 성경을 바로 알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본다.

  과학이 성경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과학 발전으로 인류 전멸이라는 전쟁이 일어나므로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할 것을 가르쳤다. 성경이 과학을 따라 간다는 것 보다도 과학 발전이 성경의 예언을 이루어 놓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되 무신론 공산 정치는 분명히 심판의 대상자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워야 할 것이다.

 

  3. 협상주의를 없애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모든 성경에 인류 종말에 망하는 땅을 음녀 세상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치와 협상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음녀화 될 우려가 많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협상적인 거짓선지의 미혹을 성경의 진리로 변론하여 말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싸우는 자라야 의로운 종을 구원하시러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 의라는 것은 행하므로써 있는것이 아니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것 밖에는 있을 수 없다. 인류 종말에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대항해서 성경의 진리를 들고 끝까지 변론으로 싸우는 사람만을 보호하고 그 밖에 사람은 다 심판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2.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 보다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가 되자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은 어느 사람이나 다 가지고 있지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가 심히 적은 세상이 되고 보니 자동적으로 멸망의 도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영광을 받고자 할 때에 인생을 먼저 축복하신다. 인간 자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것이 없으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할 때에 우리가 무엇을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영광을 얻고자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는 축복을 받게 된다.

  이제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의 인격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의 인격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의 인격

  누구든지 영광을 얻고자 할 때에 그 인격은 올라갈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조물주 하나님과에 대적이 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영광을 받을 일을 하시는 이는 조물주 하나님밖에는 없다. 그런데 조물주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 사는 인생이 자기 스스로 영광을 받아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예를 든다면 꽃병에 꽂혀 있는 꽃이 잠깐동안은 꽃도 피고 잎이 나올 수 있지만 열매는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조물주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가 홀로 영광을 받아 보려고 하는 자는 잠깐 동안은 활동할 수 있으나 결말은 아무런 열매없는 인격으로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이 아무런 열매가 없는 세상으로 끝을 맺고 마는 것은 전부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수로 아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계18:7).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자기 영광을 목적한 자는 신앙 생활 전체가 다 저주받을 행동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도적의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요5:44).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인격

  누구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는 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되었으므로 마음에서부터 초인간적인 역사를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요, 중심 속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자라면 그 중심 속에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역사하신다.

  사람의 마음은 그릇과 같은 것이니 자기가 영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역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중심에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할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역사가 오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오느냐, 사단의 역사가 오느냐 하는데서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인간이 볼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사람이 약하게 보이지만 오히려 강한 자가 되는 것이요, 인간이 볼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사람이 어리석게 보이지만 오히려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그 사람에게 오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인간의 물질계를 초월한 인격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자라고 본다. 초인간적인 마음이 있게 되므로 그 인격은 전부가 초인간적인 인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 안에 있느냐, 인간을 초월했느냐에 따라서 차이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자의 인격 차이점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는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열심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있게 된다. 죄를 짓는 자도 열심이 있고 의를 행하는 자도 열심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는 그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일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일꾼을 부릴 때에 밥을 많이 먹으라고 권하면서 밥이 일을 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 때에 그 일하는 사람은 주인이 주는 밥을 먹지 않고 보자기에 싸서 나무에 높이 달아 놓았다. 일꾼은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 누워서 그 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에 주인이 와서 일꾼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느냐고 하였다. 일꾼이 대답하기를 주인님이 밥이 일한다고 하기에 밥이 일하나 보려고 밥을 싸서 높이 달아 놓았다고 한다면 그 주인은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에게 밥이라는 것은 일할 수 있도록 효과를 주게 된다. 우리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힘은 밥에 있지 않고 그 힘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오늘에 인간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밥을 위해서 일하는 열심이 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일할 수 있는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힘을 구할 때에 초자연적인 힘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 힘을 받은 자로서 열심히 일 한다면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열심을 내지 않아도 필연적인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아무리 인간들이 생산 확장을 위하여 열심으로 일한다 하여도 초인간적인 힘의 원동력이 어디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열심이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 막심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2. 일을 하고 난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심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그 길로 가면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 열심은 큰 불행을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해서 종말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합법적으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된다.

  오늘날 인간들은 무슨 일이든지 우선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일까지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짐승이 배가 고플 때에 금시 배를 채우기 위하여 싸우는 것과 같다. 지금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다 하여도 손해를 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며, 지금은 자기에게 유익이 있다 하여도 유익을 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지식이 없다면 일한다는 열심만 가지고는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식을 완전히 가지게 되려면 하나님의 지식이 풍성해야만 되는 것이다. 가장 비극은 종교인들이 열심이 있다 하여도 진리의 완전한 지식이 없이 열심으로 기도하고 열심으로 연보하고 열심으로 봉사하다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말기에 모든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주실 때에 너희의 천천의 수양과 하수 같은 기름이 필요가 없고, 아무리 아들을 희생했다 하여도 필요가 없고, 오직 완전한 지혜를 받아야만 된다고 하셨던 것이다. 종교의 열심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진리의 완전한 지식이 없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3. 큰 것을 바라고 열심을 내는 것보다는 작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지식을 먼저 찾아야 한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상공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라도 가장 작은 못 하나가 잘못 되면 비행기는 추락되어 파괴되는 것과 같다.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가장 작은 절수 하나가 잘못될 때에 그 신앙은 독수리같이 올라갈 힘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인간적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법에 따라서 역사하시는 진리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법에서 잘못된 것을 불법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행하고 이적을 행한 사람이라 하여도 말씀대로 심판이 내리는 그 날에 도저히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죄를 용서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법을 목적하고 역사했지만 말씀대로 재앙 심판이 올 때에는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내리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 하여도 조금이라도 진리의 법에서 탈선이 있는 자는 불법자로 인정하게 되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도 그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을 성경에서 바로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식을 따라 열심이 온다는 것은 열매가 있을 것이로되, 열심을 따라 피동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4. 인생의 걸어가는 길은  자력에서보다도 인도자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자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게 낸 것이 아니요, 반드시 인도자를 따라서 일할 수 있게 낸 것이다. 우리가 내일의 일을 모르는 인생이 된 것은 불행이 아니요, 오히려 행복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다 자기 앞길을 내다본다면 이 사회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라는 것은 인도자가 있어서 그를 중심한 단체가 되어야만 아름다운 사회를 누릴 수가 있다. 오늘날 인간들이 너무나 교만하여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자기 고집과 자기 주관을 내세우기 때문에 혼란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라도 모든 인간들이 자기 자력으로는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미약을 깨닫고 나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는 겸손으로 머리를 숙여서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려고 찾지 않아도 참되신 신의 인도가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만일 사람 스스로가 어떤 인도자를 바로 찾아서 따라간다 하여도 질서를 이룰 수 없고, 겸손히 자기 부족을 깨닫는 사람을 찾아 인도해 주는 참신이 있으므로써만 하나가 되는 단체를 이룰 수 있다.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가운데 역사하는 참된 신의 역사는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겸손히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자이다. 나를 참으로 인도할 이는 어떤 사람이 아니요, 무소불능의 신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고요히 머리 숙여 생각하는 정도에 사람이라면 어떠한 신이 참되신 신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다.

  완전이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께서 겸손히 부족을 깨닫는 사람을 살펴보시고 역사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 자력이라는 것은 무엇에 필요하며, 참되신 신의 인도는 무엇에 필요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인간 자력의 필요성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계 속에서 정신 작용을 바로 움직여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정신을 차려 깊이 생각을 해가면서 힘을 기울이고 정성을 기울이고 정신을 집중시켜 하는 것은 인간 자력에 있다고 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무엇이 잘 되기만 바란다면 어리석은 사람의 하나라고 본다.

 

  2. 참된 신의 인도의 필요성

  하나님께서는 정신을 차리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애쓰는 사람을 도와주시며 인도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신의 역사라는 것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일은 마귀의 역사요, 정신이 맑아지게 만들어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힘써 일해도 피곤치 않게 해 주시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이가 즉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있지 않고, 사람이 할 일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동시에 인간의 생각이나 기능으로 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가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신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기술이나 인간의 힘을 초월해서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신의 인도가 없이는 끝을 바로 맺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동물세계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신의 품안에 들어가서만 참된 기쁨이나 평화나 모든 완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신의 품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지만 신의 품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력만을 가지고 살아보려는 것은 결국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만다.

  사람이라는 것은 겸손히 신의 인도를 따라 가는데서만 인생의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참되신 신의 인도를 따라갈 수 있는 인격이 있으므로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참되신 신의 인도를 따라가므로써만 그 길에 결말을 바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한 것을 알고자 하오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오늘에 기독교가 너무나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독교 정로는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열심은 바른 열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를 내세우기 위한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심은 기독교의 대적이 되는 열심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인생이 범죄 하므로 마귀의 권세 아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은 예수의 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의를 보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동시에 완전히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의 역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로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의 일을 한다 하면서 자기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므로 참된 교회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의 역사로 선 교회이니 누구든지 기독교에 들어 와서 일하려면 자기라는 것을 완전히 없이하고 하나님의 의의 역사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만이 정로라는 것입니다.

 

  2. 기독교의 정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사람의 교훈을 가입시킨다면 사단의 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목적인 교회에서 인간의 지식을 중심한다는 것은 교회의 대적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운 말씀이니 가감할 것도 없고 감사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 말씀으로 완전한 단체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의 정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다면 기독교 정로를 대중이 알도록 가르칠 수도 없고 그 정로를 행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3. 기독교 정로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파당 싸움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살려 주자는 목적에서 교회를 세우신 것인데 교회 안에 파당 싸움이라는 것은 마음조차 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오늘에 교회가 파당 싸움이 많다는 것은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을 위한 기독교가 아니고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히 살려 주자는 것인데 타인의 단점을 말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 기독교의 사상과는 방향이 다른 노선이라고 봅니다.

  기독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아니라면 사회의 어떤 단체보다도 미약한 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남을 살리기 위하여 뭉쳐진 단체가 될 때에는 세계를 통일하는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자들에게 세계를 통치하는 왕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정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 정권이 기독교를 짓밟고 나오지만 최후 승리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에게 있는 것은 심판권이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예수님과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로라는 것은 겸손히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생명을 바치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문】2. 기도에 대하여 정확한 응답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오늘에 교회 안에서 기도 응답이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를 모르고 기도하다가 무엇을 보았다든지 음성을 들었다든지 몸에 이상한 증거가 있었다든지 하는 것을 정확한 응답으로 안다는 것은 얼마든지 마귀에게 미혹을 받을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정확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심 성결이라고 봅니다.

  중심 성결의 응답을 받은 자 외에는 기독교를 부흥시킬 인격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심 성결을 응답으로 받지 못한 자가 강단에 선다면 그 강단을 속화시키는 일이 있게 되므로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모든 교인들에게 중심에 변화를 받는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심 성결을 받은 사람이 강단에 서서 교회를 인도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강단에 왔기 때문에 일반에게도 그 응답을 마음 가운데 받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거룩한 단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고 듣는 일이 있다 하여도 중심 성결이 없다면 이것은 얼마든지 마귀가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기도 응답은 중심 성결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신의 역사를 하므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 음성도 들리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심 성결이라는 것은 마귀는 절대로 주지를 못합니다.

 

  2. 진리를 통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도 정확한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성신을 보내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깊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신비가 있다 하여도 진리를 통달하는 일이 없다면 얼마든지 마귀의 미혹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도 진리가 통달되는 일이 없다면 마귀의 도구로 쓰여지는 일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일은 진리를 통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도 응답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오늘에 기도를 하다가 성경 해석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경 전체를 통달하는 역사가 아니라면 성경 부분적인 말씀을 마귀가 사용해 가지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큰 집과 같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집을 짓는데 재목 하나라도 독립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완전한 집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전부 연결되어 완전한 조직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몇 절만 들고 나오는 역사라는 것은 완전한 응답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3.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 응답으로 기쁨을 얻었다 하여도 그 기쁨이 완전한 열매를 주지 못하고 만다면 완전한 응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로 오는 응답의 기쁨은 누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온다 하여도 기쁨을 계속으로 가지고 나갈 때에 정확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흥분적인 기쁨도 있고 정상적인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데 흥분적인 기쁨이라는 것은 마귀를 통해서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신의 응답으로 오는 기쁨은 어떠한 일이 부딪쳐 온다 하여도 기쁜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해결해 나가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완전한 기쁨이 마음에 오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받은 자는 아무리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결국은 완전한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하여도 마음에 정상적인 기쁨이 없다면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와도 기쁨으로 이기고 나가는 일이 있어야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기도 응답에 정확한 것은 중심 성결이 되는 일이며 성경의 진리가 통달되는 일이며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나가야만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문】3. 믿음이 속히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이 필요합니까?

【답】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방침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생기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요,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다음과 같은 방침이 필요하다고 볼 것입니다.

 

  1. 환경과 위치가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같은 나무 두 그루를 하나는 위치와 환경이 좋은데 심고, 한 그루는 위치와 환경이 나쁜데 심었다면 위치와 환경이 좋은 곳에 심은 나무가 빨리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분명히 환경과 위치를 따르게 됩니다. 환경이 좋은 교회는 믿음이 자라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요, 환경이 나쁜 교회는 믿음이 자라나는데 손해가 될 것입니다. 교회 환경이라는 것은 그 교회 강단에서부터 좌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 강단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을만한 환경과 위치에 있다면, 그 강단을 통하여 신앙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 강단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역사가 풍성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그 강단에 침투하지를 못하고 항상 성신님의 역사가 지배하고 있다면 그 교회 환경과 위치는 좋아질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사단의 세력이 침투하는 강단이 된다면 그 교회 환경과 위치는 나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어야만 속히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린이의 몸이 자라나는 것은 그 가정의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큰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그 교회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큰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2. 사상과 정신이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여도 사상과 정신이 바로 되지 못하면 그 신앙은 크게 발전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 사상과 정신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서 조금도 탈선이 없이 하나님의 사상과 연합된 것이 있어야만 됩니다. 연합이라는 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사상에 정복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사상에 연합되지 않고 개인의 주관을 고집하고 나간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므로 큰 발전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상 안에 들어가서 그 사상에 연합될 때에 날마다 소성함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적으로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하나님의 사상과 연합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을 볼 수 없이 마른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3. 신앙 중심이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풍부하게 된다 하여도 믿음에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지 않고, 아무리 생활이 풍부하게 못된다 하여도 믿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따라가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생활 전체를 신앙 중심에서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사는 생활입니다.

  앞으로 모는 난제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는 일이 있어야만 된다고 믿을 때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이익과 손해를 막론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생활 전체를 움직일 때에 신앙은 날마다 자라나게 됩니다. 신앙을 떠나서라도 일을 해 보려는 것은 벌써 주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항상 같이 하는 일이 있으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주의 역사로 해결될 것을 믿고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생활이 신앙 중심에서 손해가 된다 하여도 믿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해 나가는 것이 있어야만 큰 열매가 나타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문】4. 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됩니까?

【답】사람이라는 것은 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약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홀로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낸 것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만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사람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 없는 범위 하에 있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다 될 것 같이 생각하지만, 모든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는 부족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달을 뿐입니다.

  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 방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한 열매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므로만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서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온다 하여도 여호와를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일에 실패를 해 본 사람이 용기 있게 나갈 수 있습니다. 실패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러한 길을 가게 될 때에 완전한 열매라는 것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하나님의 사람은 다 처음에는 실패했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가운데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2.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고 나가는 일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던 사람이라도 중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해질 때에는 모든 일이 다 무효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축복을 받았지만, 말년에 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해지고 이방 신에 대하여 타협이 있을 적에 그 나라는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 열매라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만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큰 일이 아니고 작은 일이라 하여도 완전히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을 맡아 가지고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큰 일을 하라고 맡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했다면 완전히 끝을 맺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시작해서 끝을 맺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진실하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참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크게 들어 쓸 사람은 처음에는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비천한 일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귀한 일을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가장 비천한 일을 바로 해 보려고 하는 그 마음은 존귀한 일을 할 수 있는 사상과 양심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큰 역사를 일으키려고 하실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비천한 자리에 두시는 것은 그 사람의 진실성을 보기 위한 방법입니다.

 

 

 

  특  집

 

1. 성산에 대강당 기공 예배를 드리면서 (6월7일)

  이날까지 대 강당 문제로 여러 곳에 자리를 찾던 중에, 5월 27일 새벽 강단에서 문득 영감이 떠오르기를 성산 댐 아래에 장소를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예배를 드리고 분주한 걸음을 걸어 그 장소를 가보니, 과연 대 강당 터가 될만한 장소인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 강당 터를 성산 안에 숨겨 놓았다가 오늘에 와서 내 눈을 열어 주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사람은 어리석게도 백암동 평지에 장소를 택정하여 대강당을 지으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은 이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신선하고도 명랑한 위치에 대강당 장소를 정하고 6월 7일 기공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대지는 바위가 꽉 덮여 있으므로 석공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매일 석공 기술을 가지고 2, 3천원의 수입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직장을 떠나서 자진하여 대강당 건축을 위하여 희생 봉사를 하겠다는 청년 용사가 성산에 들어왔으므로 아무런 지장 없이 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목공에 몸 바쳐 일하던 종이 자진하여 성산에 들어와서 대강당 건축의 목공을 맡아 하겠다고 하면서 희생 봉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석공 기술자와 목공 기술자가 자진해서 봉사하겠다는 마음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희생 봉사할 종들이 자진해서 나타나게 되어 성산 대 강당은 자재만 구입하면 얼마든지 순조롭게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200평으로 할 예정입니다. 대 강당 장소는 순 반석 위에 돌로 대지를 닦게 되므로 자동적인 반석 위에 200평 건물을 우렁차게 세울 예정입니다. 위치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계룡산 상봉을 뒤에 놓고 남향으로 놓인 대지에 옆에는 반석 위에 맑은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성전을 지을 자연색 돌은 성전 대지를 중심하여 얼마든지 쌓여 있으므로 자재만 구입하면 돌과 시멘트로 놀라운 석조 건물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이 강당은 대 성회를 목적하고 건축하게 됩니다. 이 대 강당을 건축한다면 특별 호소 집회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수도원은 70평 건물로 공부는 하고 있지만 특별 호소 성회를 열만한 장소는 되지 못합니다. 200평 건물을 건축하면 전국에 있는 사명자들은 때를 따라 자유롭게 대회를 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부탁하오며 이 건축에 노력으로 봉사를 할 만한 힘이 계신 분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입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재를 구입할 비용도 누구든지 자진해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대강당이 완공되지 못한다 하여도 8.15 대 성회는 여기에서 열 계획입니다. 이것은 여러 사명자들의 합심 협력이 있으므로 8.15성회에 큰 축복을 받는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금년 8.15특별 성회는 현 수도원에서는 도저히 해 나갈 수가 없다고 봅니다. 대강당을 세우는 것이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고 믿고 우리 수도원 봉사원들과 여러 청년들은 터를 닦기 위하여 밤낮으로 희생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 사명 동지들은 이 대강당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기 위하여 합심 협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독자 소식란

   새일수도원 귀중

  그간 주님 은혜 가운데 안녕하셨습니까? 소인은 다름 아니옵고 “아름다운 소식” 전도용 책자 2월호를 보았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교인으로서 성경 연구를 해야할 마지막 이 시대에 귀 수도원 이뢰자 목사님의 저서를 보고서 저는 많은 감동과, 말세에 마땅히 될 일을 증거하신 말씀을 더욱 더 연구하고자 합니다.

  가능하시면 우선 아름다운 소식을 매월 우송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3월호, 4월호, 5월호 까지 꼭 보내주세요. 꼭 부탁합니다. 보내주시면 현금은 우편으로 우송하겠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농한기를 이용하여 금년에 꼭 새일수도원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그럼, 소인의 부탁을 허용하시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하 말씀 오기를 고대하옵고 이만 그치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귀 수도원 원장님 이하 전 수도생까지 하나님의 평강을 기원하옵고 이만 불비 상서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김  찬  규   상 서

 

 

2.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발행한지 2주년이 되는 7월을 맞이하면서 사명자가 가지는 감상

  1970년 7월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만 2년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이상한 꿈을 꾼 것이 생각납니다. 내가 어떤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우물을 파고 펌프 수도를 놓았는데 물을 퍼 보니 맑은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땅을 파고 보니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흙이 아니요, 전부 고급 빵이 지하에 꽉 찬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빵을 먹어보니 흙 냄새는 하나도 나지를 않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그 빵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빵을 먹는 사람마다 너무나 맛있다고 야단을 하는 광경을 보다가 잠을 깨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내가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을 만나서 땅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이 보여졌습니다. 그 사람이 땅 속에서 나오는데 금 만년필 촉을 들고 나와 이것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발행하라는 명령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출판비가 없이 문서 운동을 하기로 작정하고 염려하던 중에 어떤 농촌의 학생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 출판비를 바치라는 지시가 있다고 하면서 일금 5만원을 바쳤으므로 시작된 것입니다.  

  만 2년이 되는 오늘에 매달 5, 6천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혼자서 입으로 불러서 만 2년동안 월간지를 발행하여도 아무런 피곤을 모르고 있습니다. 매월 마다 100여명의 수도생을 가르치고 있으면서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계속으로 발행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라고 분명히 믿어지는 바입니다.

  앞으로 이 문서 운동은 세계를 상대하여 대 확장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서 운동은 직접으로 하나님의 역사 아래에서 되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고 미약한 종이 70페이지의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를 수도 학과를 공부시켜 가면서, 새일 중앙 교회 목회를 해 가면서, 매달 일주일씩 성회를 인도해 가면서 아무런 지장 없이 만 2년간 발행하게 된 것은 전부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앞으로 더 명랑한 변론의 말씀으로 얼마든지 문서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께서 큰 축복을 받으시려면 이 문서 운동에 합심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7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순종을 제사보다 낫게 여기실진대는 미련하고 약하고 가난한 종이오나 오늘까지 순종한 것 뿐이로소이다. 2년간 아름다운 소식을 어찌 사람이 기록했다고 할 수가 있사오리까.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이 미련한 종은 한 페이지의 글도 쓸 수가 없나이다.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 미련하고 둔한 입술을 사용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가장 어리석고 약하고 무능한 이 사람이라도 들어 쓴다는 표적인 줄로 믿나이다.

  내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사오며 내가 무엇을 아버지께 충성을 했다고 할 수가 있사오리까. 나는 노력한 것도 없으며 충성을 한 것도 없이 입을 열은 것 뿐이로소이다. 축복은 이 월간지를 기록하여 원고에 작성한 종과 출판하기에 수고한 종과 이 말씀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물심 양면을 기울인 종들에게 나려 주시옵소서.

  “나”라는 자체가 조금도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 것 뿐이로소이다. 아버지여, 이 글을 읽는 자마다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부  록  

< 하기 성경 학교 교재 >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총    론

  우리 학생들은 이번 여름 방학기를 허송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세상 과학을 가지고는 새 시대에 가지를 못하므로 지금은 우리 학생들이 새 시대 갈 때가 왔다는 것을 하나님 말씀에서 배우고 새 시대 갈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번 주간에 '새 시대 갈 때는 왔다'는 제목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손뼉을 치면서 성가를 부르겠습니다. 44장을 불러서 복 받는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이 성가를 부를 때에 천만인이 쓰러지는 재앙이 와도 마음이 깨끗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므로 새 시대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새 시대 갈 때는 왔다는 진리를 공부하겠습니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어야만 새 시대 갈 수 있습니다.

 

제1과  붉은 말 탄 자가 나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 계 6:2~4,  요절:4 -

 

  서    론

  학생들, 오늘은 붉은 공산당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은 새 시대 갈 때가 온 증거라는데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주일마다 공부하고 있지만, 오늘은 붉은 말이 나오면 왜 새 시대 갈 때가 왔느냐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에 인간 종말에 가서는 붉은 세력이 허락을 받고 나왔다가 심판을 받게 되므로 새 시대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말이 나올 때부터는 새 시대에 갈 때가 온 일에 대하여 성경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47장으로 지혜 총명 줍소서 하고 호소하겠습니다.

 

  1대지 : 백 말 탄 자가 두 번째 이기려고 할 때에는 심판할 때다 (2)

  학생들, 백 말 탄 자는 누구를 가르쳤는지 아십니까? 우리 학생들, 성경 한 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계19:11~16을 누구든지 크게 읽어보세요. 백 말 탄 자는 마귀편입니까? 예수님편입니까? 분명히 예수님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다 같이 대답해 보세요. 학생들은 백 말 탄 자가 좋습니까? 붉은 말 탄 자가 좋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하나같이 백 말 탄 자가 좋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방학이라고 놀고 있는데 우리 하기 성경 학교로 온 줄로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으로 백말로 보여졌고, 유물론 공산주의는 마음이 악하다는 뜻으로 붉은 말로 보여졌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악한 사람들은 예수를 이겼다고 기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시어 세계 인류를 악의 세력에서 해방시키는 승리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 말 타고 세계를 심판할 만왕의 왕 예수님을 따라 가는 학생들입니다.  

  우리 학생들을 마귀 권세 아래서 해방을 시켜 주신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악의 세력을 없이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세상에 오셔서 승리하시므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므로 악한 세력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마가 두 번째 이기는 것은 새 시대가 오는 때에 심판의 역사입니다.  

 

  2대지 : 붉은 말 탄 자가 허락을 받고 나온 것은 심판 받을 자이다 (3~4)

  학생들, 세상 사람들은 붉은 말 탄 자를 심판 받을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붉은 세력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어느 선지든지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심판이 있고 새 시대가 오는데 있어서는 저 북방으로부터 무신론자가 나오다가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고 나오다가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고, 남의 것을 노략질하고 나오다가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붉은 세력이 나오게 되므로 우리 백의 동포도 평안히 살 수 없는 6.25 동란을 만나서 지금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백의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싸움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나타나서 심판할 때가 온 증거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붉은 세력이 나온 것은 새 시대가 올 때가 가까운 징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싸워 주시는 일이 없다면 붉은 말을 탄 자의 세력을 이길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가 온 증거가 분명하다고 봅니다.  

  우리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붉은 세력이 하는 일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심판할 때가 가까이 온 줄로 알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 됩니다. 완전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저 북방의 세력을 이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다 같이 호소합시다. 성가 47장으로 “완전 승리 줍소서” 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분명히 붉은 세력이 허락 받고 나왔으므로 우리는 새 시대 갈 때가 온 줄 알고, 새 시대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묻 는  말

 1. 흰 말 탄 자는 누구 편이라고 했습니까?

 2. 붉은 말 탄 자는 누구 편이라고 했습니까?

 3. 우리는 왜 붉은 말 탄 자와 싸워야 합니까?

 

 

제2과  땅과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하게 되었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 계 7:1~3, 13~17,  요절:17 -

 

  서    론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오는 전쟁을 무서워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계시록에 인류 마지막 전쟁은 땅이나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에도 땅이나 바다가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에도 땅이나 바다를 피해 줄 무기는 미국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원자탄을 사용하므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되어 끝났던 것입니다. 학생들 이런 말을 들어보아도 원자탄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영국과 프랑스와 소련도 가지고 있으며 중공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땅이나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이 전쟁이 있게 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위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 다같이 성가를 불러서 축복을 받겠습니다. 환란 재앙이 올 때도 사는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 성가를 불러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성가43장). 이제 땅과 바다가 피해를 당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데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땅과 바다를 피해 줄 수 있는 일이 생기므로 새 시대 갈 때는 왔다(1)

  땅과 바다가 피해를 당할 일이 과학적으로 오게 된 것은 사람으로서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봅니다. 학생들, 한시간 동안이면 세계가 땅이나 바다가 전부 생물이 다 죽게 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먼 옛날의 전쟁은 칼을 갈아 가지고 들고 나가 싸우는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총을 가지고 적군을 쏘아 죽이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비행기로 공중전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3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면 온 세계는 한 시간에 전멸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쟁이 오게 된 것은 우리 학생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갈 때가 온 증거가 분명합니다. 학생들, 우리 24장 성가 하나 부르고 2대지를 공부하겠습니다.

 

  2대지 : 해 돋는 편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2~3)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새 시대 가는 역사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 일어날 것을 말했고, 계시록에도 해 돋는 편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 학생들, 성경 한 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사59:19~21을 어느 학생이든지 크게 읽어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이 어느 편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는지 대답해 보세요. 서방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한다고 하였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 영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동방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입에 말씀이 임하므로 그 역사가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영광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있는 계룡산 새일수도원에서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이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부르는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도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말씀이 임해서 나타나는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공과도 목사님께서 부르는 대로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일 교회라는 것은 새 시대 가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말씀이 임해서 나타나는 대로 기록한 책에 의하여 새일 교단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학생들이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분명히 알려면 새일 교회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공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새 시대 가는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3대지 : 큰 환란 중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로 가게 된다 (13~17)

  우리 학생들은 큰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 가는 사람이 되려면 흰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이 흰 옷이라는 것은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학생들이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예수를 믿게 될 때에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이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죄를 사함 받은 사람은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히 있으므로 그들이 모인 교회에는 특별 보호가 같이 하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묻 는  말

 1. 땅이나 바다가 피해를 당하는 일은 언제부터 있습니까?

 2. 새 시대 가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서 일어납니까?

 3.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분명히 알려면 어느 교회에 가야 합니까?

 

 

제3과  인간 지혜와 지식이 별 사이에 올라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 옵 1:4~9, 15~18,  요절:4 -

 

  서    론

  학생들, 오늘에 인간 과학이 달나라에 왕래하게 되고, 75년에 가서는 우주 정거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학생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인력거를 끌고 다니던 사람들이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우리 나라의 양반들은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갈 때에 그것을 보고 귀신이 다닌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예수님을 반대하고 우상만 섬겼기 때문에 이렇게 남의 나라보다도 과학 발전까지 뒤떨어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기계를 발명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천여 가지의 기계를 발명한 에디슨도 기도하면서 발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에 과학은 이렇게 발달하였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오히려 옛날 사람보다도 더 뒤떨어진 것은 우리 학생들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오바댜 선지가 묵시를 볼 때에 인간 지혜와 지식이 별 사이에까지 깃들이게 되면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극도로 발달된 후에 심판이 있고 새 시대가 온다는데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인간 지혜와 지식이 별 사이에 깃들이게 될 때에 심판이 옴 (4~9)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발전한다 하여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 작용이라는 것은 우주 안에 물체를 얼마든지 지혜와 지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한계까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살던 원숭이는 언제나 그 모양대로 있어도, 사람은 해마다 어제가 옛날이라고 할만큼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원숭이와 다른 정신 작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과학자들은 원숭이가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지금 과학자들을 통하여 과학이 발달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옛날에 선지를 통하여 하신 예언대로 인간 과학이 별 사이에까지 깃들이게 된다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학의 지식이 높은 지식입니까? 성경을 아는 지식이 높은 지식입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성경을 아는 지식이 높은 줄을 모르고 성경을 오히려 부인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분명히 이 세상은 악한 사람이 세상에 완전히 없어지는 심판이 올 때라는 것을 성경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2대지 : 선한 자가 악한 자를 이기므로 새 시대가 옴 (15~18)

  성경에 말씀하기를 아무리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별 사이에까지 올라간다 하여도 그것으로써 새 시대를 이룰 수 없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를 들어 쓸 때에 불이 초개를 사르듯이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없이하는 역사가 하나님께로서 오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던 사람들은 불이 되고, 하나님을 공경치 않던 사람들은 초개같이 되므로 반드시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승리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 다 같이 성가 한 장을 부르겠습니다(성가61장).  

  학생들, 세상 과학이 발달되었다고 해서 선한 사람이 많습니까? 악한 사람이 많습니까? 과학이 발달된 것으로 사람이 오히려 악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 발전만 가지고는 새로운 시대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옛날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묻 는  말

 1. 사람이 어디까지 올라가면 심판기라고 했습니까?

 2. 세상은 악한 사람이 이깁니까?  선한 사람이 이깁니까?

 3. 지금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제4과  거짓 선지가 권세를 가지고 나왔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 계 13:11~18,  요절:11 -

 

  서    론

  우리 학생들, 우리가 앞으로 새 시대에 들어가려면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만 됩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새 시대가 올 때에는 거짓 선지가 짐승의 세력과 합해가지고 나와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짐승 앞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다 죽이는 환란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환란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올 것을 요한 사도는 계시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학생들을 속이려고 하는 거짓 선지는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양의 뿔을 가지고 용처럼 말하는 자입니다 (11)

  양이라는 것은 사람을 들어 받는 뿔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양의 뿔이 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짓 선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교권을 쥐고 사람들을 지도하면 거짓 선지가 됩니다. 언제나 교회의 지도자는 양떼를 불쌍히 보는 마음이 있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과 같이 양떼를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어떤 교권을 쥐고 사람을 해치는 것은 거짓 선지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끄는 방침으로 말하는 것도 거짓 선지들이 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학생들을 아무리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하여도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고 세상 과학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말한다면 거짓 선지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임시 듣기에 좋은 말을 하면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이것은 미혹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대지 :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 자입니다 (12)

  참된 선지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경배하게 하는 사람이요, 거짓 선지라는 것은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공산당들은 사람들을 짐승같이 인정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물론 공산주의는 사람을 고등 동물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다 허무한 것 뿐이고, 사람은 짐승처럼 잘 먹다 죽으면 그만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고 가감하는 자들입니다.

  앞으로 우리 학생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학생들의 마음을 유물론 사상으로 인도하는 사람은 다 거짓 선지입니다. 공산 세계에서 자유 진영으로 나오는 소위 목사라는 사람들과 신부라는 사람들은 공산당 앞에 완전히 맹세를 하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 맹세는 누구든지 다 공산당을 지지하고 따라 오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자유 진영에 와서 공산 사상을 지지하도록만 방침을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산당과 협상하자는 사람들은 아무리 목사라도 거짓 선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던 뱀이 용이 되어 지금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볼 것이 아니고 다 다른 방면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을 넣어 주고 있습니다.

 

  3대지 : 이적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14~18)

  마귀도 얼마든지 이상한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불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고 병을 완전히 고치기도 하고 우상을 말하게도 합니다. 거짓 선지가 이 권세를 받고 나와서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 앞에 절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행동이므로 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에 짐승 앞에 절하고 표를 받은 사람은 다 없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는 짐승 앞에 절을 하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아무리 거짓 선지가 와서 이적을 행한다 하여도 거기에 속지 말고,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짐승 앞에 머리 숙여 경배하면 새 시대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가 권세를 받고 나왔으니 분명히 새 시대 갈 때가 온 것입니다.

 

  묻 는  말

 1. 양에 뿔이 있다는 것은 참입니까? 거짓입니까?

 2. 용처럼 말한다는 것은 참말을 하는 것입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3.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어떠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지 아십니까?

 

 

제5과  영광이 동방에 나타났으니 새 시대 갈 때는 왔다

- 사 59:18~21,  요절:19 -

 

  서    론

  학생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죽어 천당을 가는 일이 아니요, 살아서 새 시대에 가는 일입니다. 학생들, 깊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 학생들이 온 세계 인류가 재앙에 죽더라도 천군 천사가 보호해서 눈물 없고 죽음 없고 전쟁이 없는 새 시대에 간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제 동방에 영광이 나타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데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여호와의 강한 역사가 동방으로 옴 (18~19)

  지금 동방 아시아에서 북한이나 중공이나 몽고나 시베리아 넓은 지역에는 하나님의 강한 역사를 받을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학생들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해도 은혜를 받을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한에는 강한 역사가 나리고 있습니다.

  우리 이 시간 강한 역사를 받기 위해서 호소하겠습니다 (성가 47장으로 강한 역사 줍소서). 지금 이 새일 성가도 하나님께서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말씀을 주시므로 부르는 대로 받아 기록한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 호소 성가를 보내신 것은 현재도 강한 역사가 나리고 있지만, 앞으로 더 강한 역사가 임할 징조입니다. 학생들, 우리는 지금 이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을 받아야만 합니다.

 

  2대지 : 동방 사람의 입에 말씀을 줌 (20~21)

  하나님께서 새 시대가 올 때에는 동방 사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서 누구든지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분명히 알도록끔 해주시므로 아무리 환란 재앙이 와도 그 말씀을 통하여 미혹을 받지 않고 새 시대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학생들, 하나같이 말씀을 받아 읽어보세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 말씀은 동방에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임하되 동방 사람의 입에 말씀이 임하므로 그 말씀이 세계를 밝히는 빛이 되어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므로 수많은 책이 세상에 나타나되 언제나 입을 열어 말하는 대로 책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여호와 새일 교단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뢰자 목사님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수많은 책자가 나오므로 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여호와 새일 교단이 나온 것입니다.

  이날까지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새 시대 가는 진리는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일 교회에서 새 시대 가는 진리를 햇빛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다 새일 교회에 나와서 새 시대 가는 진리를 잘 배우므로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고 새 시대에 가게 됩니다. 얼마나 이것이 우리 나라의 영광스러운 일이며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 일입니까? 우리 다 같이 입에 말씀 줍소서 하는 호소를 올리겠습니다. 성가 55장을 불러서 7배로 받겠습니다.

 

  묻 는  말

 1. 동방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역사가 나리고 있는 나라는 어디입니까?

 2. 입술에 말씀이 임한 목사님은 누구십니까?

 3. 우리 새일 교회는 어떻게 되어서 서게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