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8월호)

설  교  편

 1. 복 받는 길과 화 받는 길 (렘7:21~28)

 2.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수고 (고전15:9~11)

 3. 예수를 믿는 정로 (갈2:15~21)

 4. 인간 종말에 두 가지 흑암 (계8:12, 9:1~4)

 5.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자 (미5:7~9, 7:7~10) 

 6.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 (요일2:1~6) 

 7. 열린 문이 있는 교회 (계3:7~13)

 8. 마음의 위치를 바로 두는 자가 되자 (마6:19~21) 

 9.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 (시44:1~8)

10.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의 두 가지 노선 (사29:13~24)

11. 그리스도의 권세와 마귀 참소 (계12:10~12)

12. 예수를 섬기는 자의 인격 (요12:24~26)

13. 열매가 나타나는 비결 (막7:24~30)

14. 마지막 재앙과 마지막 역사 (계7:1~4)

 

장년 공과편 - 재림의 주를 영접할 성도의 역사

제1과  크게 외치는 역사 (사24:14~15, 계10:1~3, 미6:1~2) 

제2과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 역사 (사66:18~22)

제3과  순금 등대를 이루는 역사 (슥4:1~7)

제4과  북방 세력을 물리치는 역사 (사31:4~9)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23과  작은 책을 들고 외치는 힘센 천사 (계10:1~3) 

제24과  하나님의 비밀 (계10:5~7, 11:15)

제25과  작은 책을 꿀 같이 받아먹어 본 요한 (계10:8~11) 

제26과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는 역사 (계11:1~2) 

 

논 설 편

 1. 악을 이기는 자는 악한 일에 동참치 않는 자이다. 

 2. 평화라는 것은 진리를 떠나 있을 수 없다. 

 3. 오늘에 시간을 다투어 할 일은 무엇인가

 

신 앙 문 답

 1. 기도 생활에 있어서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범죄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게 됩니까? 

 3.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당황하게 되는 것이오니, 우리의 나갈 노선을 밝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    집

 1. 8.15 대성회를 목적하고 건축하는 대강당

 2. 8.15를 회상하는 성도의 마음 

 3. 8.15에 대강당에서 열려지는 대성회의 의의

 4. 8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5. 알리는 말씀

   ※ 교단 소식

   ※ 광고

 

 

 

 

 

 

 

 설 교 편

 

복 받는 길과 화 받는 길

- 렘 7:21~28 -

 

  가장 악한 일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받고도 짐짓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보다도 하나님을 안다는 백성이 그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이것은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니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이 축복이 아니요, 복 받는 길을 가느냐, 화 받는 길을 가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제 복 받는 길과 화 받는 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복 받는 길 (21~2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라고 하여서 무조건 복을 주신다면 이것은 공의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인도를 받아 나왔지만 복을 받은 자는 심히 적고, 그밖에 대중적으로 큰 화를 받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 받는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첫째 : 제사보다도 순종이 필요하다 (21~23상반절)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도 순종하는 자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은 역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명령을 내려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신다. 제사라는 것은 순종하기 위한 목적에서 드리는 것이니, 제사를 드리고도 순종치 않는다면 제사의 본의를 떠났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희생의 제물이라는 것은 부족한 인생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것으로 드리는 것인데, 순종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된다. 아무리 독생자가 십자가에 죽어서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하여도 순종치 않는 자에게는 예수의 십자가의 제사라는 것은 효과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제사가 순종하는 자에게만 응답을 나리는 것은 죄를 위하여 죽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에게 효과를 줄 수 없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만 효과를 주시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제사이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려도 순종치 않는 자는 그 제사가 무효가 된 것 같이 지금도 순종치 않는 자에게는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다 하여도 그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이 무효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가 십자가를 바로 알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나는 네 하나님이라는 응답을 나리시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같이 하는 것이다.

  둘째 : 귀로 듣는 것보다도 모든 길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23하반절)

  말씀을 듣고라도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면 들은 것이 무효가 될 것이로되 듣고서 그 길로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복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으므로 행한다는 것보다도 괴로워도 그 말씀대로 따라 갈 때에 하나님은 말씀대로 따라오는 자를 절대로 보호하시고 복을 주시되 만족히 주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 받는 길은 제사보다도 그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는 것이다.  

  제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이 제사라면 우리 성도의 생활은 말씀대로 따라가는 것이 생활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백성에게 주시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주는 것이 공의의 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실천이 없어도 복을 준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이다.

 

  2. 화 받는 길 (24~28)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그 말씀을 청종치 않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시키는 행동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그 말씀을 청종치 않을 때에 용서없이 화를 내리는 것이다.  

  이제 화 받는 길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첫째 :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는 일이다 (24)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이 악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가고 악한 마귀가 대신 들어와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면 마귀가 더 강하게 마음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자기의 영토보다도 남의 나라 영토를 점령하게 될 때에 더 강하게 나가는 것과 같다.  

  마귀에 속한 사람에게는 마귀가 발악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는 마귀가 발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씀을 순종치 않는 백성은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이 있게 되므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 참된 선지의 말을 거역하는 일이다 (25~28)

  육적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까지 참된 선지의 말을 듣지 않는 백성이었다. 거짓 선지의 말은 잘 들으면서도 참된 선지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오늘에 교회가 거짓 선지의 말은 듣기를 좋아하고 참된 선지의 말은 듣기 싫어한다면 이것이 화 받을 길이다.

  참된 선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말든지 그대로 전하되 조금도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니, 누구든지 참된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는 자는 큰 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버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말씀대로 심판하는 일이 없이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시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라오는 자에게 말씀대로 복을 주고, 말씀대로 순종치 않고 따라오지 않는 자에게  말씀대로 화를 주므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양의 피로 애굽에서 해방을 받은 것은 기독교가 세계에 전파되는 해방 운동을 뜻했고,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를 원수의 나라에게 먹힘을 당하게 하고 순종하는 자로 원수를 이기고 예루살렘을 복구하게 한 것은 기독교 종말에 심판과 새 시대를 교훈한 것이다.

 

  결    론

  영혼 구원은 죄 사함을 받는데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는 것과 화를 받는 것은 선지의 예언을 순종하고 순종하지 않는데 있다. 우리는 복을 받느냐, 화를 받느냐 하는 시험기에 처해 있는 것이니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수고

- 고전 15:9~11 -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더욱 귀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받는 것이 좋은 일인 줄 아는 것보다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큰 일인 줄 생각하고 수고가 있어야 한다. 은혜라는 것은 수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는 것이니, 이것이 기독교의 열매라는 것이다.

  이제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는 수고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은혜로 된 인격 (9~10상반절)

  사람의 인격도 여러 가지로 되는 것이니, 과학으로 된 인격도 있고 도덕으로 된 인격도 있고 정치로 된 인격도 있다. 그러나 은혜로 된 인격이라는 것은 과학, 도덕, 정치를 초월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를 살리는 인격은 은혜로 된 인격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라도 은혜로 된 인격이 될 때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고 싸워 나가게 됐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나쁜 나무라도 베어서 버리고 좋은 나무를 접붙이면 좋은 나무 열매를 맺게 되는 것과 같다. 은혜로 된 인격은 아무리 남을 죽이려던 사람이라도 그 즉시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나서게 되는 것이다. 바울 하나가 은혜로 된 인격이 될 때에 그 인격을 통하여 인류적인 속죄 구령의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세계적인 복음 확장의 열매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을 본다면 은혜로 된 인격이 얼마나 열매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은혜로 된 수고 (10하반절)

  수고도 저주로 된 수고도 있고, 은혜로 된 수고도 있다. 사람이 땀을 흘려야 먹게 된 수고는 땅이 저주를 받은 증거요, 눈물과 땀을 흘려서 복음을 전하게 된 수고는 이 땅에 천국이 임하는 증거이다. 하늘에서 오는 은혜를 남에게 주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열매요,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아담이 미혹을 받아 범죄한 열매이다. 그러므로 수고를 하되 은혜를 남에게 주기 위하여 수고하는 자라야 은혜가 헛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고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한다면 그 은혜는 헛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나리시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놓기 위한 것이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남에게 대접을 받기 좋아한다는 것은 사단의 시험이요, 은혜를 받은 자로서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간다는 것은 성신의 역사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도 수고하기를 싫어할 때에 그 은혜가 더하여지지를 못하고 은혜가 감하여지므로 나뭇가지가 말라지듯이 자신이 메말라지는 상태에 있게 된다. 은혜를 받은 자라도 순교적인 생활을 함으로만 은혜 위에 은혜를 더 받아서 그리스도와 같이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은혜로 된 열매 (11)

  세상에도 여러 가지로 열매가 나타나는 일이 있지만 은혜로 된  열매만이 영원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산을 하는 일에 열매가 많으므로 세계적인 갑부가 된 일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문학적 소질을 가지고 많은 서책을 내므로 세계적인 박사가 된 일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치적 천재를 가지고 구라파를 자기 손에 넣었던 영웅도 있었지만 그 당시뿐이지 영원한 것은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울이 은혜로 된 인격을 받아 은혜로 된 수고로 많은 사람을 중생 받게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열매는 이 날까지도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이 땅에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예를 든다면 생명이 없는 기계는 처음에는 훌륭하게 보여도 점점 낡아지고 마는 것이로되 생명이 있는 겨자씨는 처음에는 보잘것없이 보여도 점점 자라나서 온 밭을 덮는 나무가 되는 것과 같다. 바울 한 사람이 은혜로 된 열매는 생명적인 종교로서 온 세계를 정복하게 된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한 것이 은혜이며, 가장 귀한 것이 은혜로 되는 수고이다. 그리스도 한 분이 십자가에 죽어서 얼마든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의가 된 것은 은혜를 받은 자의 수고가 있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수고만 한다면 가장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정로

- 갈 2:15~21 -

 

  오늘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정로로 나가지 못한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이 되어 예수님을 존귀하게 아는 것보다도 오히려 욕되게 하는 일이 많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 정로를 걸어 나가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믿음의 노선을 가야만 할 것이다.

 

  1. 율법의 행위를 초월한 의를 얻고자 해야 한다 (15~16)

  만일 어떤 사람이 율법의 행위를 고조하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중심 성결을 목적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정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적 행위는 도덕에 속한 행위로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적인 행위는 중심 성결이 없이 마음에 죄를 질 상태에 있다 하여도 행동으로 율법을 범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질 마음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없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중심 성결이 있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의롭게 인정하시게 되는 것이다.

  성신이 떠난 사람도 도덕적 행위를 가지고 사람에게 옳게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성신이 떠난 사람의 마음은 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성신이 오는 것은 율법적 행위에 의하여 오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심 성결의 의를 받으므로써 일어나는 역사가 성신의 열매이다.

  성신이 떠난 사람이 율법적인 행위를 가지고 성신 받은 사람을 박해한 것이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다.

  육체라는 것은 타락한 죄의 몸이니,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죄악에 속한 생각이 육체를 따라 생기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해야 된다 (17~19)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사람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전부가 외식이 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의롭게 보시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자가 사람 앞에 옳게 보인다 하여도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자의 마음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애를 쓰는 일이 있다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면서 그에게 은총을 나리시는 것이다.

 

  3.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있어야 된다 (20)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나” 라는 것이 있다면 정로를 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게 했으니 나는 내 것이 아니므로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올 수 없게 되었는데, 길을 가던 사람이 줄을 내려보내어 끌어 올려 주었다면 그 사람은 항상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줄을 보내 준 사람이 나를 살려 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것으로 산다는 것이 있어야 정로를 갈 수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 죄인이므로 항상 ‘나’라는 것이 있을 때는 탈선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항상 마음 가운데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이 있는 자라면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성령이 역사하므로 정로를 걸어가게 된다.

 

  4. 항상 하나님의 은혜뿐이라고 해야 된다 (21)

  우리는 사람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율법은 나와 관계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내가 사는 것이 십자가의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절대로 사람이 행하므로써 되는 것이 아니요, 십자가의 의를 통하여 항상 오는 은혜로만 될 것을 믿고 나가는 자라야 정로를 걸을 수 있다.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받는데 있어서는 사람이 행한다는 것은 하등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지 말고 내가 선을 행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이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된다.

 

  결    론

  믿음이라는 것은 정로를 떠난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항상 도덕적 의를 중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중심 성결의 역사를 목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것이 있는 동시에 ‘나’라는 자체가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오는 은혜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만 신앙 정로를 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종말에 두 가지 흑암

- 계 8:12, 9:1~4 -

 

  하나님께서 언제나 흑암의 세력을 들어 쓰기도 하시고 빛의 세력을 들어 쓰시기도 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흑암의 세력이 없이는 빛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요,

  둘째 : 흑암의 세력이 없이는 빛의 세력의 영원한 영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흑암과 빛과 대립을 시켜서 빛의 세력을 승리하게 하는 동시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제 인간 종말에 두 가지 흑암이 무엇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종교 탄압으로 오는 흑암 (8:12)

  지금 이 땅 3분의 1의 지경 내에 흑암이라는 것은 종교 탄압의 흑암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해와 달과 별을 쳐서 어둡게 한다는 것은 종교 탄압을 가르친 것이다. 극동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북방 전체가 종교 탄압의 흑암이 덮인 것은 모든 선지의 예언과 계시록의 예언이 응하는 것이니 이것이 불가피에 인류적인 화가 올 징조가 된다.

  어느 선지나 하나같이 인간 종말의 흑암은 북방에서부터 종교 탄압의 정치가 있을 것을 말했다. 북방에 넓은 땅을 흑암의 정치의 탄압을 받게 한 것은 누구든지 다 이것을 보고 인류 종말의 화가 올 징조 인줄 알고 각성하라는 것이다. 지금 흑암의 세력이 이 땅 1/3을 덮고 그 속에서 세계를 침투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은 심판기가 온 증거이다.

흑암의 정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 전력을 기울여 흑암의 세력을 받들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게 된 것은 세계 인류적으로 무서운 환란이 올 징조가 분명하다. 이것은 누구든지 다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경고의 막대기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에 종들이 방심적인 태도에 머물러서 흑암을 대항해 싸울 무장은 갖추지 않고 오히려 흑암의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이는 난관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화를 피하고 새 시대에 들어갈 성도들에게 완전 무장을 갖추라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종교 탄압의 흑암 세력과 타협한다는 것은 음녀 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난국을 당한 우리는 항상 흑암에 빠질까 조심하는 마음에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써야만 되는 것이다.

 

  2. 종교 미혹으로 오는 흑암 (9:1~4)

  이날까지는 정치적인 종교 탄압을 피하여 국경을 넘어서는 일이 있으면 흑암을 피할 수 있었지만 미혹으로 오는 흑암은 국경이 관계없고 세계적인 흑암이다. 그런데 이 흑암을 뚫고 나가므로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무장이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미혹의 흑암을 뚫고 나가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자라야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문이 가르치고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한 사람만 피해를 주는 황충이의 세력이 나온 것은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지 않는 자는 미혹의 흑암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자만 미혹의 흑암을 이기고 남는다는 뜻이다. 지금 종교 탄압을 하는 공산 정권 아래서는 무조건 종교 탄압을 하지만 미혹의 흑암은 종교 탄압이 아니고 얼마든지 종교 자유를 주는 동시에 종교적인 미혹이 오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말씀을 변질시키는 일,

  둘째 : 신앙 양심을 마비시키는 일,

  셋째 : 사랑의 본질을 변하게 하는 일,

  넷째 : 인간 지혜와 지식을 중심 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종교적 미혹으로 오는 흑암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말씀의 해석이 바로 되고 못되는데 따라서 빛과 흑암이 있게 되고, 신앙 양심을 지키고 못 지키는데 따라서 빛과 흑암이 있게 되고, 사랑의 본질이 변하지 않고 변하는데 따라서 빛과 흑암이 있게 되고, 인간 지혜와 지식을 중심 하느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중심 하느냐에 따라서 빛과 흑암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미혹을 이기려면 말씀 변론을 밝히 하고 신앙 양심을 지켜서 절개가 있어야 하고 사랑의 본질을 변치 않게 하기 위해서 죄의 세력을 조금도 용납치 않아야 하며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오는 미혹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풍성히 받아야 한다. 누구든지 말씀을 바로 변론하고 신앙 양심으로 순교적인 사상을 지키고 사랑의 본질이 변치 않고 조금도 죄의 세력을 용납치 않고 싸워 나가면서 하늘의 지혜와 지식을 받은 자라면 종교적인 거짓 선지의 미혹을 말살시키고 나갈 수 있는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한 성신의 인의 역사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 부활을 증거 했지만 이제부터 종교적인 미혹의 흑암을 막기 위해서는 완전 무장을 갖추어 하나님의 권세의 인의 역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성신의 인은 보증의 인이요(엡1:13). 하나님의 인은 권세의 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첫째 화가 온다 하여도 황충떼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의 인을 받은 자를 피해를 주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만이 남은 자가 되어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결    론

  정치적인 종교 탄압의 흑암을 피하기 위하여는 국경을 넘어서는데 있었고 종교적인 미혹으로 오는 흑암을 이기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미혹으로 오는 흑암이 덮인 이 때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나왔다고 하여서 살길을 찾은 것이 아니요 이제부터는 종교적인 미혹의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무장을 갖추어야만 살 길이 있는 것이다.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자

- 미 5:7~9, 7:7~10 -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 쓰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에게 묵시로 보일 때에 북방 앗수르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북방을 치는데 있어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사자같이 강하게 해서 북방을 친다고 하셨다. 미가서를 보면 어떠한 자가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원수의 세력을 짓밟고 나간다는 것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역사를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이슬 단비 같은 역사를 받으므로 (5:7)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하루아침에 인격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요, 정상적으로 이슬 단비같이 역사를 나리시어 날마다 소성함을 받게 하셔서 조금도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초인간적인 인격을 이루어 놓으시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단계가 없이는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길러서 강하게 들어 쓰시는데 있어서는 정상적인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는 것은 마른나무 같이 되어지는 인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슬과 단비를 맞고 자라나는 푸른 새순 같이 새로워지는 역사를 날마다 이슬 단비 같이 받아야 한다.  

  만일 어떤 신자가 이슬 단비 같이 나리는 역사를 받는 체험이 없다든지,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아 보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이라는 것은 초인간적인 역사를 받으므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2. 권세 역사를 받으므로 (8~9)

  진노의 날에 남을 종이 될 자는 원수를 물리칠 수 있는 권세를 받아서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은혜시대의 종들은 강한 원수 앞에 풀같이 쓰러졌지만, 진노의 날에 남을 종이 될 자는 모든 원수를 진멸 시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원수를 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 쓰여지는 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쓰러지던 종들이 당했던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께서는 원한을 풀어주시되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도록 하시므로써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3. 응답의 역사를 받으므로 (7:7~10)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리실 때에 완전한 사람에게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를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넘어져도 일으켜 주시고 어두움에도 빛이 있게 하시고 범죄한 일이 있다 하여도 깨닫도록 하셔서 원수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약해서 부족함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려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의 말씀을 세웠기 때문이요,

  둘째 : 악한 세상에서 역사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적의 세력이 당신의 사람을 해코자 할 때에는 당신의 사람이 부족이 있다 하여도 강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머니가 위험한 자리에 가서는 어린이를 더 붙들어 주고 안아서 보호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난국을 당할 때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되 너그러이 용서하시면서 그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결    론

  사자같이 강한 인격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악한 사상을 가지고 사자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자도 있고, 선한 사상을 가지고 사자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 승리는 의의 사상으로 사자같이 강한 사람이 통치권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

- 요일 2:1~6 -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케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한 때에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으로 나타났다 하여도 그 시대 사람 중에 선구자라고 볼 수는 있지만, 온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될 때에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것을 알게도 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가 온전해지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의 사랑이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되기를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케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 된 사랑 (1~2)

  타락한 인생을 온전케 하는 역사는 전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죄를 진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지만, 죄 값대로 심판을 나릴 하나님께서 심판 받을 인간에게 심판을 나리지 않고, 화목하자는 사랑에서 먼저 인간의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세우신 것이 인간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사랑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은 오직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열매가 있게 되므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기 위한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독교의 온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 안에 이 사랑의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전부가 거짓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 되신 것을 믿는 양심 속에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을 받은 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사랑 (3~5)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든지 무조건 온전케 된다면 공의가 없는 것이니 공의가 없는 사랑은 심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하기 위하여 지금도 항상 대언기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말씀대로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자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죄를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역사가 오는 것은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의 대언 기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오늘에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만, 그 사랑이 자기 속에서 온전케 되는 체험을 받은 자는 심히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약한 원인이다. 누구든지 말씀대로 행하려는 것이 강한 자라면 그 사랑의 역사도 강하게 오는 것이다.

 

  3. 예수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일 (6)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는 동시에 지금도 행하시는 그 역사대로 따라서 행하는 것을 신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행함으로서 그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불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역사가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므로써 우리는 그 역사에 따라서 행해지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어 열매가 맺어진 가지는 더 가꾸고,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지를 못한 가지는 제하여 버리는 것과 같다.

  신앙 생활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라야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왕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것이니, 그 사랑이 온전케 된 자만 그 사랑 속에서 구하면서 그의 역사대로 쓰여지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랑은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으며,

  둘째는 자기가 이익을 보기 위하여 남을 사랑하는 사랑도 있으며

  셋째는 자기가 남을 사랑하되 그 사람이 온전케 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하나님이 당신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의심없이 믿고 순종하는 사람 속에 온전케 되는 사랑인 것이다.

 

 

열린 문이 있는 교회

- 계 3:7~13 -

 

  교회는 열린 문이 있는 교회가 있고 없는 교회도 있다. 교회는 땅위에 세운 교회로서 위로부터 열린 문이 있게 될 때에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완전 승리라는 것은 그 교회로 말미암아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어떠한 교회라야 열린 문이 있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는 교회 (8)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무조건 큰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요, 사람으로서 최선의 힘을 다하기까지 적은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의 충성과 진실을 보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능력을 받겠다고 날뛰는 것보다도 이미 받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자기가 말씀을 지켜보려고 하는 것보다도 적은 능력을 받았으므로 말씀대로 큰 능력이 올 것을 믿고 말씀을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둔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능력의 역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믿고 싸우는 자에게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정확 무오한 말씀을 깨닫는데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할 때에 말씀대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려운 일이 온다 해도 더 큰 역사를 내리시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하면서 그 말씀대로 될 줄 믿고 싸우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주의 사랑으로 승리하는 교회 (9)

  참된 승리라는 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느냐에 의하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궤휼적으로 대항한다 하여도 말씀대로 싸워 나가는 자라면 주님께서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신다. 열린 문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잠히 역사를 내리는 것이니, 누구든지 항상 열린 문이 있는 자라면 왕권을 받게 되므로 원수의 세력이 자동적으로 굴복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방법으로 남을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주의 사랑을 받은 자가 아니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인간 방법을 취하는 시간부터 벌써 주의 사랑을 떠난 행동이니 주의 사랑을 받은 자는 말씀을 따라서 나갈 때에 말씀대로 역사 하는 주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게 된다.

 

  3. 주께서 지키는 교회 (10)

  교회라는 것은 항상 은혜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그 교회는 주님께서 보호해 주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교회를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린 문이 없이 닫혀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증거이므로 그 교회는 자동적으로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할 때에 말씀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할 의무가 있으므로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말씀대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4. 면류관을 목적하고 싸우는 교회 (11~12)

  하나님께서 항상 교회에 성신의 역사를 내리시는 것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고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면류관을 목적하고 싸우는 교회라야 항상 열린 문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다리는 것은 면류관을 받을 종들의 수가 차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은 일한 대로 면류관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항상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싸워야만 문이 닫히지 않고 열려 있는 교회가 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결    론

  교회는 열린 문이 있을 때에 승리요 열린 문이 없을 때에 쓰러지고 만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는 사랑이니 말씀을 지키는데 생명을 아끼지 않는 교회라야 열린 문이 있으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위치를 바로 두는 자가 되자

- 마 6:19~21 -

 

  사람마다 자기에게 필요한 보물이 있다. 그러므로 그 보물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므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의 위치를 두게 된다. 예를 든다면 개는 먹는 것밖에는 없으므로 작은 빵 한 조각을 땅에 던지고 귀한 보석을 땅에 던진다면 작은 빵 한 조각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보석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같은 사람이라도 그 마음의 위치는 각각 다르게 둘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마음의 위치를 두는데 따라서 그 인격과 생활이 좌우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의 위치를 바로 두는 자가 되려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마음의 위치를 이 땅에 두지 않아야 한다 (19)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할 때에 목적은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마음의 위치를 둔다는 것은 조물주의 대적이 되는 일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주인이 종을 타지방에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보냈더니 그 종은 주인의 집을 마음에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집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그 종은 주인에게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잠깐동안 사명을 가지고 일할 세상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하늘 나라를 위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무리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라도 땅의 것을 생각하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 “사단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을 방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의 예배는 절대로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의를 힘입어 예배한다는 자들이 십자가와는 대적이 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땅에다 마음의 위치를 두는 자라면 예수님의 마음과는 대적이 되는 것이다.

 

  2. 마음의 위치를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데 두어야 한다.(20)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데 마음을 다하는 자이다. 누구든지 중심 보시는 하나님 앞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역사를 나려 주시는 것이다. 나의 체험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 15세 소년으로 세상 만사를 다 허사로 보고 고민하게 되어 영생을 알아보기 위하여 성경을 읽기 좋아한 것이 내가 중생을 받는 단계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 20세 청년으로 먹을 것을 위하여 땀 흘리는 것을 고민하고 주를 위하여 고생하기를 소원하는 기도가 나를 주의 종으로 이루어 놓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 30세 장정으로 순교 생활을 원하고 나선 것이 개척 교회를 많이 세우는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넷째 : 50세 장년으로 쉬지 않고 일해 보려는 것이 오늘에 축복이 된 것으로 믿는 바이다.

  그러므로 나는 알아보려는 데서 중생을 받았고, 고생해 보려는 데서 주의 종이 되었고, 순교해 보려는 데서 많은 교회를 세웠고, 쉬지 않고 일해 보려는 데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게 되었다. 누구든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려는 마음만 있는 자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받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마음의 위치를 참된 보물에 두어야 한다 (21)

  보물이라는 것은 다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제일 유익을 많이 주는 보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완전한 지혜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인격을 가진 자는 세계 땅덩어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보물에 마음을 둔 자이다.

  “미국의 어떠한 위대한 부흥사가 화재를 만나서 거지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친구가 찾아 와서 크게 근심하며, 염려할 때에 부흥사가 말하기를 제일 큰 보화는 조금도 피해를 받지 않았으니 내게 대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때에 친구는 기쁜 낯으로 어떻게 다행으로 제일 귀한 보화를 간직했느냐고 물어 보았다. 부흥사가 대답하기를 내게 있는 가장 큰 보화 되시는 예수님은 불타지 않았으니 만족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우리의 참 보화가 되시는 예수님이 있을 곳을 예비하고 있는 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자라면 예수님과 연합된 자로서 큰 열매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것이 없다 하여도 완전한 것을 줄 수 있는 신앙의 대상자에게 마음을 둔다면 완전한 것을 받는 신앙의 산 체험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음의 위치를 바로 둔 사람끼리 뭉쳐진 단체인 것이니, 이 단체로만 완전한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동물이 아니요, 신의 형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위치를 땅에 두지 않고 하늘에 둠으로써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천국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

- 시 44:1~8 -

 

  인생의 승리라는 것은 주께서 기뻐하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심히 적다.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면 허공을 치는 일이 되고 말 것이요,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조금도 헛된 일이 없이 전부가 다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하게 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열방을 이기게 됨 (1~2)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는 소수요 기뻐하지 않는 자는 다수라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때에는 주께서 기뻐하는 자가 기뻐하지 않는 자들에게 망하는 것 같지만, 주께서 기뻐하지 않는 열방은 다 망하고 기뻐하는 적은 무리를 이기게 한 것은 과거에는 예언이 되고 현재에는 증거가 되고 앞으로는 우리의 소망이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작은 영토를 택한 백성에게 주고 가장 적은 수로 열방을 이기고 가나안 복지에 다윗 왕국을 세우신 것은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되었고, 작은 나라에서 작은 말구유에 탄생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이 열방을 정복하게 된 것은 우리의 증거가 되며, 앞으로 가련하고 빈핍한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세계를 정복한다는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기뻐하지 않으시느냐 하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 짓게 된다.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나라는 망할 것이고, 아무리 약하다 하여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라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2. 인간 무력을 초월한 역사로 이기게 됨 (3)

  주님께서는 무력을 의지하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무력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할 것을 믿고 담대히 싸워 나가는 자에게 역사 하시되 친히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어서 승리케 하여 주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무력으로 남북 통일이 될 것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오직 여호와의 손이 이 민족 위에 나타나므로만 승리할 것을 믿고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천지 만물 지은 여호와, 우리 위에 나타나서 여호와만이 참 신인줄 알게 하시사 우리의 자랑 되게 하시어 주옵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사 우리 나갈 길을 인도하시어 주셔요. 그 큰 권세를 행하시어 할렐루야 영광 하나님께 돌려 줍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호소 성가를 부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을 자랑할 민족이 될 증거라고 본다. 무력을 의지하는 자는 자기도 그 무력에 죽을 것이로되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할 것을 믿는 자는 반드시 구원함을 얻게 될 것이다.

 

  3. 주께서 기뻐하는 자에게 왕이 되시므로 이기게 됨 (4~5)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은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느냐, 마귀가 우리의 왕이 되느냐 하는 문제로 승부가 결정된다.

  계시록을 보면 붉은 용이 자기의 큰 권세를 붉은 짐승에게 주었다고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말세의 증인에게 그 권세를 주어서 짐승과 싸우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큰 권세를 받은 짐승을 이기려면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므로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을 믿고 용기있게 나가야 한다.

 

  4. 하나님만 자랑하게 되므로 이기게 됨 (6~8)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당신의 사람들이 하나님만 자랑하는 일이니, 누구든지 하나님만 자랑하는 자라면 백전 백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로 하여금 당신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난관을 당하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홀연히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므로만 승리한다는 것을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이나 다같이 알게 하여 하나님 앞에 합심 호소 성회를 속히 열어야 한다.

 

  결    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의 승리라는 것은 이제부터 만민이 알도록끔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해야 되며, 조금도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있어야 되며, 조금도 타협하지 말고 절개있게 나가야 된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의 두 가지 노선

- 사 29:13~24 -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아담의 가정에도 가인과 아벨의 두 가지 노선이 있었고 노아의 가정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정에도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 하나는 축복을 받았고 하나는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되 그 제사를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는 신앙 노선이 있고 상달시키지 못하는 신앙 노선이 있다.

  이제 어떠한 노선에 있는 자라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고 화를 받게 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헛되이 예배하는 노선 (13~16)

  첫째 :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일 (13~14)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중심하는 자는 입술로만 공경하게 되고 그 마음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다른 사람의 계약서를 놓고 자기 마음대로 변경시킨다면 계약서를 쓴 사람이 변경시킨 사람에게 계약서대로 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계약서인 말씀을 조금이라도 가감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완전 계약서를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변질시킨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둘째 : 자기의 도모를 하나님 앞에 숨기려 하는 일 (15~16)

  어떤 사람이 인간의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일을 많이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토기장이를 보고 자기의 모양을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조물주 하나님 앞에 한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위에서 나리는 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에 사람들이 조물주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해진 것은 질그릇이 토기장이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자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화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라는 것이 질그릇에 하나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구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되는 것이다.

 

  2. 기쁘고 즐거워하는 노선 (17~24)

  첫째 : 바로 듣고 보게 되는 일 (17~18)

  우리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보게 되는 귀와 눈이 열리게 되므로 즐겁게 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마음이 교만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서도 알지 못하고 마귀라고 하였고,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도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때에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영생의 말씀으로 깨달아 들었던 것이다.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운 바리새 교인들은 사도들을 이단이라고 정죄 했고 극도로 미워하고 훼방했던 것이다.  

  심판기가 올 때에도 인간이 보기에는 귀머거리 소경 같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책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달으므로 기쁘고 즐겁게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둘째 : 겸손하고 빈핍한 자들이 복을 받는 일 (19~24)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나리시는 것은 겸손하고 빈핍한 자의 억울한 일을 원수 갚아 주기 위한 것이니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자는 겸손하고 빈핍한 자라고 하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요, 부족이 있다 하여도 겸손하고 빈핍한 자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공경하는 자들이라 하여도 무조건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 아니요,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기쁘고 즐거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되려면 인간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바로 듣고 바로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마귀 참소

- 계 12:10~12 -

 

 그리스도의 권세가 없다면 마귀 참소가 없을 것이요, 마귀 참소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권세가 완전히 왕국을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세와 마귀 참소에 대한 영계의 비밀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권세와 마귀 참소를 분명히 알고 담대히 싸워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이제 그리스도의 권세는 어떠한 것이며, 마귀 참소는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 한다.

 

  1. 그리스도의 권세 (10상반절)

  그리스도의 권세라는 것은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진 어린양의 몸으로 죽기까지 순종할 때에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성립되었다. 왜냐하면 죄의 권세를 이기는 일은 죄를 완전히 없이할 수 있는 법이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죽기까지 충성했으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는 얼마든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권세가 죄를 사하는 것만으로 다하는 것이 아니요, 속죄를 받게 된 사람으로 왕권을 받는 단계에 들어가는 자의 수가 차므로만 그리스도의 권세는 완전한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의 권세가 심판을 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죄를 사하는 권세의 역사로 수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였다. 죽은 영들이 예수를 믿으므로 중생을 받게 되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마28:18~19, 눅24:46~48).

 

  2. 마귀 참소 (10하반절~11)

  마귀 참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의 왕권을 받을 자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 참소를 허락한 목적이 누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증거의 말씀을 전하는데 충성을 다하나 검열해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역사는 두 가지로 침투하는 것이다.

  첫째는 유형적인 육적 방면으로 침투하고,

  둘째는 무형적인 영적 방면으로 침투한다.

  그러므로 유형적인 마귀 참소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야 이기게 되는 것이요, 무형적인 마귀 참소는 말씀대로 승리하신 보혈의 능력과 말씀대로 이루어질 예언 권세의 역사를 받아야만 이기게 되는 것이다. 마귀 참소라는 것은 구원을 침투할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 참소를 이기고 나가려면 조금도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 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마귀 참소를 받은 것보다도 마귀에게 정복을 당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귀 참소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중심 성결을 받은 자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싸워 나가는 자이다.

 

  3. 마귀 참소가 없어질 때 (12)

  마귀 참소가 있을 때는 하나님의 종들이 역사하는 때요, 마귀 참소가 없어질 때는 하나님의 종들이 역사하지 않고 이 땅에 큰 화가 올 때이다. 그러므로 마귀 참소가 있을 때는 왕권 반열의 수를 채우는 때요, 마귀 참소가 없어질 때는 왕권 반열의 수가 찼으므로 용서 없이 이 땅에 저주를 내리는 때이다.

  우리는 마귀 참소를 받을 때에 두려울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이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만일 마귀 참소가 무서워서 후퇴한다면 큰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이니, 마귀 참소를 받는 자는 더 용기 있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왕권 축복을 받을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결    론

  그리스도의 권세는 천국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역사가 있는 동시에 지상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마귀 참소를 영광으로 알고 나가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권세로 이기는 왕국 건설의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섬기는 자의 인격

- 요 12:24~26 -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을 섬기든지 섬기는 일에 따라서 그 인격이 좌우된다. 왜냐하면 섬기는 일에는 항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 목적도 없이 무엇을 섬긴다면, 이것은 광적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섬기는 자의 인격이 얼마나 존귀하다는 것은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1.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인격이다 (24~25)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주관하지 못하는 것이요, 누가 내 생명을 주관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타락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내 생명을 내가 사랑함으로써가 완전이 아니요, 주님께서 내 생명을 사랑해 주는 것으로만 내게 완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만족이라는 것을 깨닫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자는 주님께서 영생하도록 보존하시므로 영생할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주님의 사랑 속에서 보호받는 자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격이다 (26상반절)

  인생이라는 것은 길을 가는 사람과 같은 생활이니, 누구든지 가지 않을 수 없이 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든지 누구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전혀 없다.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야 “나”자신이 완전해진다는 것을 안다면 거기서부터 바로 사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격을 가진 자는 많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예수를 따라가는 실천 생활이 없다면 신앙의 인격을 가질 수 없다. 인격이라는 것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 생활에 있는 것이니, 누구든지 예수를 따라가는 자라야 예수님이 있는 곳에 영원히 같이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따라오는 자를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셔서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지극히 높은 자리로 걸어 가셨고, 지극히 괴로운 자리에서 평강의 세계를 향하여 걸어 가셨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걸어가신 것은 따라오는 자에게 자기와 같이 되는 인격을 이루어 주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는 그 시간부터 인격적인 산 체험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인격적인 체험을 받은 자라야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에 용감한 생활을 하게 된다.

 

  3.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인격이다 (26하반절)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창조하셨고, 가장 귀하게 쓰시는 동시에 가장 귀하게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 완전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귀한 사람을 세상에 보낸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섬기는 자라면 아무리 어리석고 더럽고 약하고 가난한 자라도 예수와 같이되게 하기 위하여 역사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대제사장이라도 예수를 섬기지 않기 때문에 찍어 버렸고, 아무리 불학 무식한 베드로라도 예수를 섬기기 때문에 예수와 같이 귀하게 들어 쓰셨던 것이다. 나는 체험에 의하여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는 바이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섬기는 것은 당신을 섬기는 것과 같이 인정하시고, 친히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사람을 섬기던 이 사람에게 홀연히 큰 은혜가 오기 시작되어 얼마든지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때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는 수고가 있으리만큼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은혜를 받게 될 때에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   론

  오늘에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섬기는 것을 불행스럽게 알고 오히려 비방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그 인격이 어리석고 어두운 가운데 있는 증거라고 본다. 우리는 예수를 섬김으로만 완전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미 받은 체험으로도 확실하지만 더 크게 받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인격은 예수님을 섬기는 열심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매가 나타나는 비결

- 막 7:24~30 -

 

  인생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생활에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로만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나타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주 앞에 엎드려 간구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5~26)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는 간곡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자라면 주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 은혜의 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족이 많다 하여도 주님밖에는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실 이가 없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는 심정을 가질 때에 그 마음을 주님께서는 인정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주님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많은 자는 열매가 많고, 엎드리는 시간이 없는 자는 열매가 없게 된다.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데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은 받은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말세 복음 운동을 시작하여 어떤 형제의 사기적인 행동을 모르고 그를 귀한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받들어 주다가 많은 물질의 손해를 보게 되었을 때에 약 2개월 동안을 무릎을 펴지 않고, 머리를 들지 않고, 밤낮 주 앞에 엎드려 있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동역자들은 오히려 조롱을 하고 있었지만, 2개월이 지난 후에 뜻밖에 역사가 일어나서 교회가 부흥되고 3, 4년간 부흥 운동을 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주 앞에 엎드리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인간이 보기에 실패 같으나 모든 일은 더 크게 열매가 나타난 것이 나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열매가 나타나는 응답을 보려면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일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는 예수 앞에 엎드리는 자가 가장 약한 것 같으나 승리의 열매는 그 사람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2. 자기 부족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27~28상반절)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큰 열매를 나타나게 하실 때에는 자기 부족을 깨닫지 못한다면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하게도 하신다. 주님께서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즉시로 응답을 하시는 것이 아니요, 자기 부족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준 다음에 응답을 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신 것은 간구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보다 이 죄인들은 개와 같이 취급을 해 온 환경에 있은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도 꼭 같이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개라고 말씀하셨지만 간구 하는 여자는 조금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 하는 말을 할 때에 열매가 나타나는 단계로 들어가는 인격이 된 것이다. 아무리 개같이 취급을 받는다 하여도 거기서 자기 부족을 깨닫고 낙심치 않는다는 것이 큰 열매를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3. 지극히 적은 은혜를 갈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8하반절~30)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과 같이 내가 아무리 더러운 죄인이지만 적은 은혜라도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주님께서 열매를 맺도록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다. “개도 주인의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간구하는 여자의 말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 말을 했으므로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실 때에 큰 열매가 나타나서 간구하는 자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역사가 된다.

 

  결    론

  가장 큰 열매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마귀에게 사로 잡혀 버림을 당했던 사람 하나가 주님 말씀 한마디에 완전해진 것은 마귀를 이기고 싸워 나가야 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일이다. 사람은 엎드려 간구하는 일과 자기 부족을 깨닫는 일과 적은 은혜를 간구하는 일이 있을 때에 마귀는 물러가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 재앙과 마지막 역사

- 계 7:1~4 -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에 인간 종말의 마지막 재앙과 기독교 종말의 마지막 역사를 보여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날까지는 아담, 하와의 범죄로 타락한 인생을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구원해 주는 역사를 하게 하시되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을 구원해 주는 역사가 피의 제사로 이루어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드리기 전에는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을 통하여 그 영들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는 일을 하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제사를 받았고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양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을 양심으로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버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화목제를 자기 몸으로 드리신 다음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그 영혼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을 해주는 일을 하시었다. 그리고 인간 종말에 마지막 재앙으로 땅이나 바다나 다 피해를 당하게 되는 환란의 바람이 불어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의 몸까지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을 언약의 말씀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재앙이 어떠한 방법으로 온다는 것과 그 재앙 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역사 해서 구원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씀하실 때에 마지막 재앙이 오는 것과 마지막 역사가 일어날 것을 계시로 보여준 것이니 네 천사와 다른 천사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인간 종말의 마지막 재앙 (1)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에 인간 종말의 마지막 재앙은 땅에나 바다에나 하나같이 피해를 줄 바람으로 보여 주셨다. 바람이라는 것은 어디든지 생명 호흡을 주관하는 것인데 그 바람을 통하여 땅이나 바다가 피해를 당한다는 것은 마지막에 공기를 통하여 인종이 전멸된 무서운 전쟁이 있을 것을 뜻한 것이다. 사33:11이하를 보면 세계 민족이 횟돌같이 타지는 것은 호흡이 불이 되는 전쟁이 있으므로 될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지금 과학적 전쟁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바람으로 말미암아 생물을 전멸시키는 일이 있게 된 것은 인간 종말에 마지막 재앙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발전의 선구자가 되는 미, 영, 불, 소의 평화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못되고 잠깐 동안에 기독교 마지막 역사를 할 때까지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땅 네 모퉁이에 선 네 천사가 바람을 잡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끝을 맺을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그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싸우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통일하게 된 것은 땅이나 바다에 바람을 불지 못하도록 하는 때가 온 증거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요 잠깐 동안인 것이다. 이 세상이 이렇게 부패된 대로 영구히 둘 수는 없고 잠간이라는 동안에 마지막 재앙이 올 때까지 재앙의 바람이 폭발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것뿐이다. 국제 정세가 무조건 싸우지 않아야 된다는 것으로 통일되게  된 것은 아직까지 기독교에서 할 일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기독교의 마지막 역사 (2~4)

  기독교의 역사는 성신의 인의 역사도 있고 하나님의 인의 역사도 있는 것이다. 성신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속죄 구령의 역사로 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변화 승천의 역사로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몸을 완전히 구속해 주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의 역사에 대하여 기독교 종말의 역사로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진노의 재앙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둘째 :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가 같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셋째 :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그 영혼이 사망에서 올라오는 것을 뜻한 것이 아니요, 그 몸이 재앙에서 벗어나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라는 것은 일어나는 본부가 서방에 있지 않고 동방에 있다는 것을 뜻해서 해 돋는 편이라고 하였다. 사59:19이하를 보면 원수를 갚는 날에는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역사가 동방으로 오되 동방 사람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고 입에 말씀을 두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진리 운동이 이 날까지는 성경대로 오신 초림의 주를 세계 만방에 알려주는 역사요 종말의 역사는 종의 입술에 말씀을 주어 성경 전체의 비밀을 세상이 다 듣도록끔 변론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말씀대로 오는 재앙 속에서 말씀대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히 알게 하는 동시에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역사이니 권세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그 역사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 종들을 통하여 모든 종들이 하나같이 깨닫고 하나같이 그 역사를 받는 일이 있으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완전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육적 아브라함의 씨는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까지 선지 왕국을 이루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나라는 완전히 세계 통일의 평화왕국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 왕국에 들어갈 사람 중에서 인을 맞은 종들은 왕권 반열에 들것을 가르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요, 환란 가운데서 회개하고 나온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인데 구원함을 받아 영과 육이 아울러 새 시대의 시민권을 가지고 들어갈 자들이다.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요 은혜시대에는 십자가 부활을 증거 하기 위하여 역사한 것이며, 환란과 재앙의 날에는 택한 자녀를 새 시대로 인도하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7:9에 나타난 큰 무리는 왕권 반열에 든 자를 섬기기 위하여 새 시대에 들어가는 백성들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땅이나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하는 일이요, 그 재앙 속에서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 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때가 어떠한 때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재림의 주를 영접할 성도의 역사

 

  총    론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역사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로 말미암아 인류 종말의 완전 구원이 성취되며 완전한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되 택한 자는 하나도 잃지 않고 새시대로 인도하는 종말의 역사가 된다.

  이 역사가 있은 후에 다시는 아무런 역사가 없으니 만큼 가장 지혜롭고도 강한 인격을 받은 종들이 완전한 역사를 하게 되므로 완전 구원, 완전 승리, 완전 축복의 열매를 이루므로 지상 평화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1과  크게 외치는 역사

- 사 24:14~15, 계 10:1~3, 미 6:1~2, 요절 계10:3 -

 

  서    론

  이날까지의 전도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증거하되 잠잠히 개인 개인을 찾아가서 믿게 하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은혜의 기간을 두시되 20세기라는 기간을 두었지만 변화성도들이 크게 외치는 기간은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대중적인 구원을 목적하되 세계적인 심판과 세계적인 구원이 된다.

  이것은 강하고 위대한 역사이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7배나 강하게 임하게 되어 크게 외치는 강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크게 외치는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로 알 수 있다.

 

  1대지 :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크게 외치는 역사 (사24:14~15)

  이날까지는 죄인을 부르는 역사이므로 여호와께서 잠잠히 계셨지만 변화성도가 외치는 것은 여호와 진노하셔서 세계 인류를 불로 살라 버리는 날이 임박할 때에 동방 바닷가에서부터 그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친다고 하였다.

  종이라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잠잠하시면 같이 잠잠하게 되는 것이요, 여호와께서 강하게 일어나시면 종도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 들어 쓰시는 종은 크게 외치되 동방에서부터 먼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고 모든 섬들에서도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변화성도의 역사가 동방에서 나올 것을 계7:2에도 말하되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아도 동방 역사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2대지 : 땅과 바다를 밟고 크게 외치는 역사 (계10:1~3)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세계 인류를 다 함께 깨우치는 역사가 아니었지만 종말의 역사는 세계 인류가 다 함께 깨우침을 받는 역사이다. 지금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것은 재림의 날에 세계적인 역사가 일어나되 복음의 역사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환란 재앙도 세계적으로 올 준비를 갖춘 것이다.

  만일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다면 인류적인 큰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을 것이로되 과학 발전이 왔으므로 세계 인류를 한 시간에 없애는 재앙이 오게 되었고 세계 인류를 다 함께 깨우칠 역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인류적인 전멸이라는 전쟁을 앞에 놓고 세계를 깨우치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타난 다른 천사는 분명히 변화성도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3대지 : 여호와의 쟁변을 크게 외치는 역사 (미6:1~2)

  이날까지 전한 복음은 죄인을 부르는 것이었지만 종말에 변화성도가 외치는 역사는 여호와의 쟁변인 것이다. 이 쟁변이라는 것은 용서가 없는 심판을 내린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말기에 선지들이 받은 묵시의 말씀은 용서없는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목적한 심판의 경고의 나팔이 되는 여호와의 쟁변인 것이다.

  사3:13과 41:1을 보아도 여호와의 변론이 있고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세상의 법도 완전한 변론을 한 후에 판사의 판결이 내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는 역사가 있은 후에야 이 땅에 말씀대로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잠잠히 역사하는 것을 목적하였지만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은 크게 외치고, 크게 부르짖고, 크게 싸우는 역사가 된다. 왜냐하면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거짓선지와 싸우다가 들림을 받았듯이 변화성도도 크게 싸우다가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제2과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 역사

- 사 66:18~22,  요절:18 -

 

  서    론

  변화성도는 사상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한데 모아 한 단체를 이루게 하신다. 이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를 이기는 무장이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원수의 세력에 굴복치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어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의 역사를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1대지 : 열방과 열족을 모아 영광을 보게 하는 역사 (18)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지 하나님과 의합된 사상을 가진 자라면 한데로 모아서 영광을 보게 하신다. 이 영광이라는 것은 새 시대의 영광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든지 세세 왕권의 영광을 받고자 하는 자라면 하나님 앞에 사상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북방 세력을 없이 하는 동시에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떠는 자를 권고하신다(사66:2, 5).

  오늘에 소위 공산주의 사상이라는 것은 레닌맑스주의 이론을 정통으로 아는 사상이지만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변론인 말씀을 그대로 따라 가는 사상이다. 이 사상이 자동적으로 뭉쳐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사상이 있으므로 그 말씀 안에서 되는 것이다.

 

  2대지 : 영광을 세계에 선포하는 역사 (19)

  앞으로 변화성도들의 역사라는 것은 새 시대에 들어가는 영광의 빛이 되는 말씀을 세계 열방에 전파하는 것을 목적한다(사60:1~3). 동방에 나타난 말씀의 영광을 세계에 선포한다는 것은 변화성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은혜시대의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이지만 변화성도가 전하는 말씀의 영광의 빛은 택한 자를 한데 모으는 역사이다.

 

  3대지 :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는 역사 (20~21)

  하나님께서 변화성도의 단체를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있는 것이다.

  첫째 : 레위족은 제사장족이니 왕족이 된다는 뜻이 있다.

  둘째 : 몸이 성별된 사람으로서 지상 축복을 받는 족속이 된다는 뜻이 있다.

  셋째 : 새 시대의 왕권을 누리는 족속이 된다는 뜻이 있다.

  과거 구약 때의 레위족은 앞으로 올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레위족을 가르친 예언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 레위족이 모든 지파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하였듯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때에 변화성도의 족속은 열방의 사람이 바치는 예물을 받게 된다(사18:7, 66:12).

 

  4대지 : 자손이 영원한 축복을 받는 역사 (22)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으므로 그 자손이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변화성도가 말씀으로 사상을 지켰기 때문에 그 자손이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일이 변화성도의 가족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변화성도의 자손은 영원히 새 시대의 영광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축복을 받을 자는 심히 적으므로 그 사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한데로 모아 한 단체를 이루는 것이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사상으로 뭉쳐진 변화성도의 단체에 있다. 이 사람들은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단체적으로 길이 길이 누리기 위하여 택한 자들이니 이들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3과  순금 등대를 이루는 역사

- 슥 4:1~7,  요절:6 -

 

  서    론

  하나님께서 구약 말기에 부패한 예루살렘을 바벨론을 들어서 치고 신령한 사람들로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 종말에 부패한 교회는 없어지고 변화성도로 다시 새로운 교회가 나오므로 그 교회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예언적인 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은 순금등대를 일으키는 역사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대지 : 잠든 자를 깨우는 역사 (1~2)

  변화성도가 새로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은 깊이 잠든 성도들을 깨우치는 역사가 있으므로 그들이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순금등대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을 준비한 처녀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한다는 말씀과 같이 기도를 많이 하여서 기름을 준비한 자들이 각성을 받게 될 때에 흑암을 물리치는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은 기도 응답의 역사가 내리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의 교회는 죄인들을 불러서 중생을 받게 하는 동시에 이루어진 교회요, 환란 가운데 흑암 중에서 빛을 발하는 교회는 중생을 받고 시련 가운데 기도하던 종들의 기도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이므로 아무리 흑암 세력이 강하게 온다 하여도 피해를 당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순금등대 꼭대기에 일곱 등잔이 있고 그 등잔에 일곱 관이 있는 것은 완전 준비가 된 변화성도로 이루어진 교회를 가르쳤다.

 

  2대지 : 감람나무 역사 (3)

  감람나무라는 것은 다윗의 왕권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는 것이니 아무리 원수의 참소가 강하게 있다 하여도 승리하는 종들의 역사이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아무리 사울 왕이 참소하지만 그 참소에 걸리지 않고 끝까지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집에 감람나무가 되었던 것이다(시5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무리 악한 자들이 참소하여도 그들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자들이라면 변화성도가 되어 세상에 성도의 나라를 이루게 된다.

 

  3대지 :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역사 (4~6)

  은혜시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 몸을 친히 보고 만진 사람들이 증거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순금등대 교회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하나님의 신이 분명히 알도록끔 가르쳐 주는 역사이니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들을 통하여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게 된다. 부활을 증거한 사도들의 역사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이 아니고 자기들이 친히 목격자 되어서 그대로 증거한 것인데 이것을 기록한 책이 4복음서가 되었다(눅1:1~4).

  그러나 순금등대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종말에 예언의 말씀을 정확히 증거하기 위하여 친히 가르쳐 주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오늘에 기독교가 극도로 종말관이 혼선된 것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한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것으로는 촛대교회를 이룰 수 없으므로 여호와의 신이 직접으로 예언의 말씀을 종의 입술을 통하여 변론하시게 되어 촛대교회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다(사28:11, 59:21).

  지금 이러한 역사가 동방에 나타났으므로 여호와새일교단이라는 단체가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여호와의 신이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 이루어진 것이니 여호와 새일 교단에서 가르치는 다림줄의 진리가 아니고는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정확히 알도록 가르쳐 주는 일이 여호와의 신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대지 : 완전 승리의 역사 (7)

  심판의 권세 역사가 촛대교회에 같이 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버림돌의 예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죄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고 머릿돌의 예수를 통하여 이 땅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라는 것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있게 되는데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한 것은 촛대교회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죄인을 부를 때에는 버림돌 예수의 십자가를 증거하였고 죄인을 심판할 때에는 머릿돌 예수의 다림줄의 진리를 증거하는데 이것이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교회라는 것은 천국을 목적으로 둔 교회도 있고, 새 시대를 목적으로 둔 교회도 있다. 4복음서나 편지서에는 교회라고만 하였는데 계시록에는 촛대라고 한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에 변화성도의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제4과  북방 세력을 물리치는 역사

- 사 31:4~9,  요절:8 -

 

  서    론

  그리스도의 의의 통치 시대가 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북방의 세력을 극도로 강하게 높이시는 동시에 여호와 친히 싸워 주시되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들을 위하여 싸워 주실 것을 목적하고 모든 선지서에 하나같이 기록한 것이다. 이사야서는 변화성도의 역사를 목적으로 두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하여도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를 말한 것은 변화성도의 역사와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하기 위해서 말씀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에는 이 몸이 죽고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약간 기록되었고 전부가 변화성도가 역사할 것을 가르친 동시에 북방 세력을 물리치는 역사가 있고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을 가르쳤다.

  이제 주 재림시에 변화성도들의 역사가 북방의 세력을 물리치는 일이 있다는데 대하여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대지 :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역사 (4~5)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 주시는 역사는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아무도 그를 대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역사이다. 그리고 새가 날개 치며 새끼를 보호함 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올 때에 싸워 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싸워 주시는 역사가 아니라면 도저히 당신의 교회를 유지할 수가 없는 환란이 오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한 교회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2대지 :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 (6~7)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당신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시되 강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다(슥12:8~14). 주 재림시기에 마지막 회개 운동은 원수의 세력을 물리치면서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악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3대지 : 북방 세력이 도망을 가는 역사 (8)

  하나님께서 북방을 물리치는데 있어서는 사람의 칼로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강한 역사로 북방의 세력이 도망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그 세력 아래에 있는 백성을 건져내기 위한 목적이다. 누구든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북방 세력을 대항해 싸우는 자라면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이요, 누구든지 북방 세력과 타협하는 자라면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 철의 장막 속에 있는 양떼들을 구원해 주지 않고 주의 재림이 이루어진다면 철의 장막 속에서 울고 있는 그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누가 돌보아 줄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북방 세력이 낙담하도록 치시는 것이다(사30:29~31).

 

  4대지 : 기호를 인하여 놀라게 하는 역사 (9)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하실 때에 하나님의 기호를 보고 모든 원수가 놀라 물러가게 되는 역사를 하신다. 만일 북방을 무력으로 치게 한다면 택한 자를 구원하는 역사가 될 수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기호를 보고 원수가 떨면서 물러가게 되는 역사로 그 아래에 있는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적은 일을 가지고라도 원수의 세력을 이길 수 있게 하신다. 기드온이 횃불을 들 때에 원수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었고 말세의 역사는 여호와의 기호를 들 때에 북방의 세력이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아끼시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는 가장 미약한 것 같고 가장 어리석은 것 같으나 필연코 승리를 이루게 함으로서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세력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담대히 싸워 나가야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23과  작은 책을 들고 외치는 힘센 천사

- 계 10:1~3,  요절:3 -

 

  서    론

  학생들, 우리가 앞으로 무서운 환란이 올 때에 남은 자가 되어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가는데 있어서는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작은 책이라는 것은 무슨 책일까요?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요한 계시록을 가르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큰 화가 올 때에 이 화를 피하고 새 시대 가는 사람이 되려면 작은 책에 기록된 말세 비밀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오늘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는 힘센 천사의 모양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힘센 천사가 몸에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크게 외치는 모양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들이 크게 역사 할 모양을 보여준 것입니다.

 

  1대지 :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음

  힘센 천사가 구름을 몸에 입고 나타난 것은 죽지 않고 구름을 타고 승천할 사람들의 될 모양을 보여준 것입니다. 학생들 묻는 말에 대답해 보세요. 몸이 죽어서 흙에 묻혀 썩어지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구름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훌륭한 사람은 그 몸이 썩지 않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인데, 예수님께서 그 몸이 썩지 않고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세상에 나타나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예수님과 같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갈 사람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죽지 않고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대지 :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음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머리 위에 역사로 임하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무지개라는 것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으로 두셨던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머리 위에 완전히 깨달아지는 영감으로 임한다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겠습니까! 우리 학생들도 성경을 잘 깨닫는 사람이 되면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 오늘 이 시간에 성경을 깨닫는 역사가 머리 위에 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마음은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 뿐입니다.

 

  3대지 : 그 얼굴은 해 같음

  얼굴이 해 같다고 한 것은 극도로 밝아진 사람이 되어 무엇이든지 다 환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나 다 환하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앉아 있다 하여도 말씀이 환하게 깨달아지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전부 햇빛 같이 밝게 깨달아지는 사람이 되어야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해 같이 밝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난다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모든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대지 : 그 발은 불기둥 같음

  발이 불기둥 같다는 것은 강한 역사를 보여준 것입니다. 학생들, 불이 일어나서 기둥 같이 올라간다면 그 불을 당할 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당하지 못할 정도로 짓밟고 나가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훌륭한 용사입니까? 우리 학생들은 힘이 없어서 쓰러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기둥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5대지 : 바다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침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나타난 것은, 세계를 움직이는 역사를 보여준 것입니다. 누구든지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몸이 죽지 않고 변화 승천할 사람은 이러한 역사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는데 작은 책을 들고 외친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요한 계시록을 잘 공부해서 크게 외치는 사람이 되면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왕권을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 날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힘센 다른 천사라는 것은 세상 과학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말세의 종들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믿지 않는 학생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못된 친구들과 같이 죄를 짓지 말고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큰 힘을 능력으로 받아야 됩니다. 이러한 자가 되어야 새 시대에 들어가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힘센 천사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났습니까?

 2. 작은 책은 무슨 책을 말하는 것입니까?

 3. 제일 훌륭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제24과  하나님의 비밀

- 계 10:5~7, 11:15,  요절10:7 -

 

  서    론

  학생들, 지난 주일에 무슨 천사가 나타난 것을 공부했습니까? 가장 힘센 천사가 나타난 일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오른 손을 들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는 모양을 사도 요한이 계시로 보았습니다.

  학생들, 계11:15을 선생님이 읽는 대로 다 같이 받아 읽어보세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학생들, 세상 나라가 누구의 나라가 된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학생들,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왕 노릇하신다면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기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이라는 것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심 (10:5~6)

  학생들, 저 높은 하늘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깊은 바다 속에나 넓은 땅 위에나 모든 물건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인간끼리도 어떤 사람이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알려 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누가 가르쳐 주기 전에는 어떻게 감히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어떠한 물건이며 어떻게 사용하여야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왕래하고 급행 차가 땅으로 달리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물과 불을 사용하는 법을 잘 연구한 사람들이 물과 불의 힘을 잘 이용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급행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날 그 날 먹고사는 빵 문제를 해결하려고 분주히 왕래하는 자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학생들, 하나님의 비밀을 꼭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이 마음이 있는 자라면 분명히 새 시대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옛날 노아 때에도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당신의 비밀을 노아에게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을 안 노아가 비도 오지 않는 때에 앞으로 비가 와서 물로 심판이 된다고 말하면서 방주를 만들 때에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말대로 40일 동안 밤낮으로 큰비가 오되 조금도 그치지 않고 하늘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땅에서 물이 솟아오를 때에 모든 사람들은 다 물에 잠겨 죽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고 노아를 미친 사람이라고 하던 사람들은 슬피 울면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아를 미친 사람이라고 하던 사람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이 세상의 과학을 배운 것보다도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대지 :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복음을 전하심 (7)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전한 복음은 물로 세상을 심판해 버리는 일이 있을 것이니 방주를 예비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에는 앞으로 내가 불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니,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으려면 내가 가르친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할 말씀이 아닙니다. 그때 선지자들에게는 글로 받아쓰게 하셨고, 우리들에게는 그 뜻을 분명히 알도록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계룡산에 있는 새일 수도원 원장인 이 목사님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빈민굴에서 빈민들의 집을 지어 주고,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천당 가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열 달 동안 철야 기도를 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가서 이 목사님에게 계시록의 숨은 비밀을 세 번씩이나 음성으로 똑똑히 들려주는 일이 있고, 네 번째는 받아쓰라고 하므로 불러 주는 대로 받아쓴 책이 말세 비밀이라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을 받아 기록한 이 목사님은 계시록의 숨은 비밀을 분명히 알게 되어 3년간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다가 1964년 9월 24일부터 새일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새일수도원을 짓게 된 것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기도하던 산을 덮고, 불 가운데서 음성이 들려 오기를 “너는 이름을 뢰자라고 주노니 이 이름을 받아 가지고 오늘부터 성전을 짓기 시작하여 성전을 다 지어 놓으면 말세의 종들을 가르칠 서책을 보내겠노라” 하는 말씀을 듣고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목사님에게 말씀을 주셨으므로 많은 수도생들이 이 목사님의 입에서 말씀이 나타나는 대로 기록하여 많은 서책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자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누구든지 다 알게 될 것입니다.

  달마다 이 책을 가지고 가르치는 새일수도원에 100여명씩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세상이 다 알도록끔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공과도 이 목사님이 기도하고 입에 말씀이 나타나는 대로 받아 기록하여 출판한 책입니다. 우리 새일 교회는 죽어서 천당 가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온 세계가 불로 살라지는 날에 새 시대 가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합니다. 새 일이라는 것은 온 세계가 불탈 때에 거기서 구원받는 복음을 뜻한 것입니다.

 

  3대지 :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됨 (11:15)

  학생들, 우리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왕 노릇 할 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다 죽지 않고 살아서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그 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을 자세히 보면 분명히 이 때가 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라고 봅니다.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무엇 인줄 바로 알고 새 시대로 가는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뢰자 목사님의 입술을 통하여 나타난 책을 가지고 성경을 대조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묻 는  말

 1. 천지 만물을 누가 창조하셨습니까?

 2. 하나님께서 옛날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은 무엇입니까?

 3. 앞으로 세상 나라는 누구의 나라가 됩니까?

 

 

제25과  작은 책을 꿀 같이 받아먹어 본 요한

- 계 10:8~11,  요절:10 -

 

  서    론

 

  사도 요한이 지금으로부터 1880년경에 밧모 섬에서 이 계시록을 받아 기록할 때에 작은 책을 꿀 같이 먹어 본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육의 사람으로 먹어 본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계시를 볼 때에 꿀 같이 먹어 본 것입니다. 이 뜻은 살아서 새 시대 갈 사람들이 작은 책의 진리를 꿀 같이 받아들이게 될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새 시대 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작은 책을 꿀 같이 받아먹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작은 책을 꿀 같이 먹는 일 (8~9)

  학생들, 꿀맛이 어떤지 아십니까? 꿀을 먹어 본 학생들은 잘 아실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달고 맛있는 것은 꿀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천사가 주는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보니 입에 꿀 같이 단 것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살아서 새 시대 갈 사람들이 요한 사도가 받은 계시록의 비밀을 깨닫게 될 때에 꿀 같이 달게 받을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가 지금 계시록의 숨은 비밀을 모른다면 이 세상은 아무런 소망 없이 보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진리를 분명히 깨닫는 사람이 되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소망이 있으므로 계시록의 말씀을 꿀 같이 받아먹게 됩니다. 이 책을 제일 먼저 꿀 같이 깨달아 먹은 사람은 이 뢰자 목사님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이 뢰자 목사님이 꿀 같이 받아먹고 낸 계시록의 공과를 다 같이 먹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 공과를 공부할 때에 꿀 같이 깨달아 먹는 사람은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대지 : 입에서는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는 일 (10)

  입에는 꿀 같이 단데 배에서는 쓰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뜻은 계시록의 말씀을 꿀같이 깨닫고 싸워 나가려면 쓴 것과 같은 시련이 온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뜻은 누구든지 붉은 용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의 표를 받은 자는 심판을 받게 되고 그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세계가 불탈 때에 구원을 받아서 새 시대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붉은 짐승의 정치와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도 붉은 짐승의 세력과 협상을 하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계시록의 말씀대로 지켜 나가려면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싸워서 이겨야만 하므로 쓴 시련이 온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하여도 이기고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새 시대로 인도하시게 됩니다.

 

  3대지 : 다시 예언하는 일 (11)

  누구든지 앞으로 오는 환란과 재앙을 피하고 새 시대에 가려면 다시 예언하는 종들이 전하는 말씀을 지켜야만 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이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잘 듣고 지키면 아무리 환란과 재앙이 온다 하여도 피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서 새 시대에 가게 됩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정치인들까지도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듣고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만 앞으로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옛날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모든 사람이 깨달아 듣도록 가르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나라는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다시 예언을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 계시록의 숨은 비밀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한 민국에 사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새 시대 가는 진리를 배우려고 한다 하더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계시록의 공부를 잘 하므로 환란과 재앙의 날이 온다 하여도 천사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로 다시 예언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우리는 실지로 그 사명을 받은 나라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에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비밀을 꿀 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도록 하신 것은 우리 나라가 앞으로 큰 축복을 받을 일이라고 봅니다.

 

  묻 는  말

 1. 작은 책을 꿀 같이 먹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 입에서는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 다시 예언할 사명은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제26과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는 역사

- 계 11:1~2, 요절:1 -

 

  서    론

  학생들, 척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논이나 밭이나 척량을 해야 완전한 소유권을 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어도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척량을 받은 자라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을 하시게 됩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장난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학생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환란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므로 원수에게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척량을 하게 하시는데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척량을 받는 자 (1)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살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고, 누가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하나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 조그마한 죄도 숨기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기도를 받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동시에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을 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환란의 날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을 분명히 깨달아지도록 해 주십니다. 예언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하는 자라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므로 앞으로 어떠한 환란이 온다 하더라도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생들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아시며,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실 때에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하나님이 완전한 자녀로 인정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생각해 보세요. 학생들이 어떤 아이를 가까이 할 때에 그 아이가 학생들을 반가워하지 않고 마음 가운데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줄 안다면 그 아이를 좋다고 보겠습니까? 나쁘다고 보겠습니까? 어느 학생이든지 다 그런 아이는 나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 학생들을 살펴보실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입으로만 성가를 부르고 마음으로는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나쁘다고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학생들이 참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마음으로 성가도 부르고 말씀도 잘 들으면 하나님께서 귀엽게 보시고 예언의 말씀으로 학생들에게 분명히 깨달아지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2대지 : 척량 받지 못하는 자 (2)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당신의 자녀라고 기뻐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몸은 교회에 와 앉아 있어도 마음이 세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만약 우리 학생들 중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학생들, 다같이 대답해 보세요.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주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마귀가 완전히 주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어느 학생이든지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하여도 그 마음을 마귀가 주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시기 때문에 무서운 환란이 오는 날에 악한 마귀가 도구로 쓰는 사람들에게 먹힘을 당하고 맙니다.

  학생들이 하나님께서 완전히 주관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는 공산당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큰 붉은 용이 도구로 쓰는 악당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악당들에게 피해를 당치 않는 사람이 되려면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척량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교회에 다닌다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무서운 환란이 날 때에 거기서 빠져서 죽고 만다면 얼마나 불쌍한 일이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다 같이 받아 읽어보세요.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학생들, 이 마흔 두 달이라는 것은 몇 년 몇 개월이나 될까요? 1년이 몇 달입니까? 열 두 달입니다. 그러면 마흔 두 달이라는 것은 3년 6개월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배를 정성껏 드리지 않는 사람은 3년 6개월 동안 큰 환란 가운데 떨어져서 죽도록 고생을 하다가 불타는 심판이 올 때에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지금 교회에 와서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합니까? 보지 않아도 됩니까? 우리 학생들은 하나님께 정성껏 경배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이제 성가 7장 1절을 함께 불러 보기로 하겠습니다.

 

  묻 는  말

 1. 척량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어떤 사람이 척량을 받게 됩니까?

 3. 어떤 사람이 척량을 받지 못합니까?

 

 

 

 논 설 편

 

1. 악을 이기는 자는 악한 일에 동참치 않는 자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인생이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악한 일에 동참치 않는 일 밖에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하실 때에 악한 자와 타협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대상자가 악의 세력이므로 악한 자와 타협한다는 것은 악한 자가 망할 때에 같이 망할 일이기 때문이다.

  악의 근본은 마귀요, 의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니 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을 음녀적인 행동으로 보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로운 일을 위하여 싸워야 할 사람이 의로운 일과 악한 일을 동등하게 여기는 타협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 편이나 마귀 편을 동등하게 아는 일이므로 의로운 심판이 내릴 때에 악과 의를 동등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

  오늘에 와서 악의 사상과 의의 사상을 구별하지 않고 동등권을 주어서 평화 통일이니, 민족 운동이니 한다는 것은 벌써 악의 사상에게 먹힘을 당하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본다. 쓴 물과 단물을 한 그릇에 넣어 섞는다면 단물이 쓰게 될 것이며, 흰 페인트와 검은 페인트를 한 그릇에 넣어 섞는다면 흰 페인트가 검게 될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와 같이 언제든지 의로운 일을 위하여 싸워야 할 사람이 악한 일에 동참하게 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일이 있다 하여도 선과 악을 동등시하는 일에는 보호하실 수 없는 것이요, 옳은 일은 옳다고 하고 불의한 일은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불의한 일을 없애기 위하여 싸워 나가는 일에만 보호의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세상에서 같이 살도록 하시지만 선한 자를 돕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신이시다. 이 세상에서 악한 자의 세력을 없애지 않고 자유로운 권세를 준 것은 끝까지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사람을 충성되다 진실하다 인정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남은 자가 되게 하고,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을 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가 근본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백의민족인데, 민족운동을 하려면 백의민족의 사상을 원칙으로 하면서 운동을 하여야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가 싸운다고 해서 그 일에 끌려 자기 민족을 죽이는 일을 해 내려온 가련한 민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큰 나라가 싸울 때에는 제 민족끼리 이유도 없이 싸우다가 큰 나라가 협상한다고 해서 무조건 협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본다면 허수아비가 바람에 놀다가 바람이 잠잠하니 가만히 있는 것과 같은 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백의민족은 예의 도덕에 도취가 되어 한번도 남의 영토를 침범한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도덕보다도 좀더 발전해서 양심과 사상으로 움직이되, 진리에 적합한 사상과 진리에 적합한 양심으로 움직이는 민족이 될 때에 진리를 따라 판결을 내리시는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을 받는 민족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악의 세력이 무서워서 평화라는 말을 가져오는 것보다는 악의 세력을 심판하실 하나님과 평화 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진리의 사상 양심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악의 세력을 용납하면서 소위 사랑이라는 간판을 붙인다면 이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로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은 죄악을 추호도 용납할 수가 없다는데서 죄를 위하여 죽은 것인데, 죄악의 세력을 용납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십자가를 대적하는 음녀적인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을 위한 도덕보다도 진리를 위한 사상 양심에서 진리를 위한 도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덕을 위한 도덕은 생명의 역사가 없어도 진리를 위한 도덕은 생명의 역사가 있는 도덕이 된다. 악을 완전히 이기게 하는 일은 심판으로 되는 것이니, 우리의 할 일은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고 심판이 오는 날까지 많은 사람을 인도해 주는 일을 하되 악에 빠지지 않도록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는 동시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2. 평화라는 것은 진리를 떠나 있을 수 없다

  이날까지에 평화를 부르짖는 사신들이 분주히 왕래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리를 중심한 평화 운동이 아니고는 그 속에 기만적인 정책이 흘러들어 평화를 이용하여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인간 머리 속에 소위 간사한 방침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있는 것은 동물의 세계와는 다르다. 동물이라는 것은 그 머리 속에 간사한 방침을 연구할 만한 것이 없는 미물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장 머리가 좋다는 사람일수록 남이 생각지 못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연구해 내는 일이 있다.

  레닌 전집의 골자는 기만적인 정책을 어느 책보다도 잘 써놓은 것이 장점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하는 레닌은 간교한 사단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감이라는 것도 진리적인 영감이 있으며, 기만적인 영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만적인 영감은 붉은 용인 옛 뱀 즉 사단이요, 마귀의 감화이다.

  창3:1을 읽어보면 뱀은 가장 간교한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와가 가장 간교한 뱀과 싸우지 않고 평화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벌써 사단을 통하여 오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단의 영감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감당하지 못할 만한 욕을 주는 영감이라고 본다. 언제나 가장 간교한 마귀의 역사라는 것은 부드러운 말을 사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이끌되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나게 하는 것이며, 의혹적인 영감을 넣어 주어서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이며, 무엇이나 쉽게 될 것 같이 생각이 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과만 평화를 누리는 사람으로 한 단체를 이루어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과만 평화를 누리나 보기 위해서 가장 간교한 뱀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평화 하는 일을 방해하게 해서 마귀와 화평을 누리는 마음이 생기도록 꾀어 보는 역사를 하게 하시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리 마귀가 꾀어도 끝까지 하나님과만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절개 있게 나가는 자를 합당한 자로 인정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하는 것이요, 그밖에 마귀와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자는 마귀가 있는 유황 불못으로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는 평화라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즉 진리이니,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어떻게 행하시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둔 언약의 말씀이다. 이 언약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라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는 말씀의 언약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는 법을 주었지만, 미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은 타락한 인생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행하겠으니 너희는 믿고 순종하라는 것이 구속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여 타락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침으로 다시 구원해 주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구원해 주겠다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고, 구원해 주겠다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마귀와 평화를 누리는 자는 영원히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과 인생과에 평화를 누리는 것을 목적하고 화목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너그러이 용서하는 법을 썼고, 다음에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않고 평화의 왕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한 사람도 내놓지 않고 전부 없이 하는 것을 평화 왕국을 이루기 위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에는 간교한 뱀인 붉은 용을 내 보내어 붉은 용과 평화를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는 권세를 주게 된다. 이때에 끝까지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가는 자 외에는 붉은 용과 평화를 누리는 바벨론 음녀 세상이 되게 한 후에, 한 시간 동안에 음녀 세상을 불로 살라버리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만을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누리게 하는 것이 심판과 새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진리를 떠나 있을 수 없다. 지금 소위 평화라는 미명하에 기만적인 정책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사단의 미혹을 받지 말고, 진리의 하나님과만 평화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완전한 평화 왕국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3. 오늘에 시간을 다투어 할 일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나 시간을 다투어 일하는 자가 필요했지만, 오늘과 같이 필요한 때는 없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시간을 허송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것은 눈물겨운 심정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할 일을 두고도 일을 하지 않고 쓸데없이 노는 자도 있고, 일을 하려고 하여도 할 일이 없어서 노는 자도 너무나 많은 민족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여야 해결될 것이냐 하는 것을 사상과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을 하면서 염려를 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본다. 일을 하려고 해야 일할 수 없다는 말도 무시할 수가 없고, 할 일을 두고도 맥이 빠져서 일하기 싫다는 말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에 시간을 다투어 할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보기로 한다.

 

  1. 자아의 인격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시간을 다투어 할 일이 있다.

  첫째 : 인격 개조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할 일이다.

  인격 개조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인격을 개조시킬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이시니, 지금은 하나님께서 새 시대의 왕권 반열에 들 사람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강권 역사를 나리는 때이니 만큼 누구든지 자기 인격 개조를 목적으로 두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하루에 죄악을 제해주시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니, 누구든지 인격 개조를 위하여 부르짖는 시간을 금같이 알고 애써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할 일이 없어서 논다는 자도 일할 수 있는 인격을 받기 위하여 노력해야 될 것이고, 할 일을 두고도 맥이 빠져서 논다는 자도 일할  수 있는 인격을 받기 위하여 조물주 하나님께 호소하되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한다.

  이 시대에 일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느냐, 일할 수 있는 인격이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제일 급한 문제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어제가 옛날이라고 생각하리 만큼 시대가 변천된 이 때에, 인격도 고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돈이 많고 적은 것도 문제가 아니요, 지식이 많고 적은 것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제일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수 있는 인격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6장을 보면 다섯째 인을 땔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죽은 영들이 심판을 독촉하는 호소를 할 때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그들의 동무가 될 사람들의 수가 차기를 잠시 동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잠시라는 기간이 어느 때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모든 성경을 다 상고해 볼 때에 오늘이 잠시라는 기간에 들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 완전한 권세 새 힘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를 바라보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야 할 일이다.

  은사라는 것은 회개하는 시간에 받았지만, 권세 새 힘이라는 것은 아무리 난제가 닥쳐온다 하여도 후퇴하지 않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 자에게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시는 역사이다. 할 일이 없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도 잘못이요, 할 일을 놓고도 맥이 빠져서 못한다는 것도 잘못이니 조물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날그날 닥치는 대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서 싸워 나갈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권세 새 힘을 받게 된다. 큰 일을 하려고 영웅심을 가지지 말고 작은 일에서 새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하라!

  셋째 : 매일같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일이다

  지금은 성경의 천체가 다 이루어지는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다 알지 못하고는 미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혼란이 닥쳐 온 이때에, 말씀의 빛을 발하지 않고는 마귀 흑암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지금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보다도 본문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수 있는 때가 왔다. 성경에 이러한 시대를 가르쳤는데, 이 시대가 오기 전의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 보았지만, 오늘에 와서는 성경을 달리 해석할 필요가 없이 본문 그대로 다시 예언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시간을 다투어 가면서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가지 인격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조물주 하나님의 역사로만 완전케 되는 것이니, 조금도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일이 있어야만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2. 자아의 생활 방침을 세우기 위하여 시간을 다투어 가면서 할 일이 있다.

  첫째 : 생활의 위치를 바로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일이다

  이날까지는 개인 영혼 문제를 목적으로 두고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위치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위치를 바로 택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은 하나님께서 단체적인 보호와  단체적인 구원을 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옳게 나가려고 하여도 너무나 교회가 부패했으므로 내가 나가는 교회의 위치를 바로 정해야 한다. 만일 사단의 회가 되는 교회에 위치를 정하게 된다면 가족에 큰 화가 오는 일이 있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말씀이 가감된 교회에는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적 재앙기이니 만큼 영적 흑암의 재앙이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에 위치를 정해야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말씀을 가감하는 교회는 사단의 회가 되고 말씀을 가감하지 않는 교회는 촛대교회가 될 것이니, 촛대교회에 위치를 정하지 않고는 가족적인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둘째 : 경제적인 생활에 대하여 축복 받는 일을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는 돈이 많아서가 축복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경제적인 생활에 축복을 해야만 되는 것은 아무리 재앙이 오는 날에라도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물질에 대하여 부정이 없어야 할 것이며, 철저한 십일조에 힘을 써야 할 것이며, 주일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지상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십일조 현물과 안식일에 대해서 철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물과 양식을 공급하는 가정이 아니고는 새 시대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 사람을 교제하는 일에 대하여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자식도 마귀의 권세를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불의한 자와 불의한 일에 조금이라도 타협이 있는 자라면 그 만큼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고독감이 있다 하여도 불의와 동참하지 않고 나가야 한다.

  심판의 날에 남은 가정이 되려면 조금이라도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가정이 조금이라도 불의의 세력과 타협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는 흑암의 세력이 그 가정에 가득해질 것이니, 가정 전체가 거룩한 보호 밑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노아가 온 가족이 합심되므로 방주를 준비하듯이 우리도 온 가정이 합심하여 불의의 세력과 조금이라도 타협이 없이 다림줄의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는 일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기도 생활에 있어서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도라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극히 작은 죄라도 용납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죄 하나라도 용납하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여도 응답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작은 죄라도 용납을 한다는 것은 십자가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습니다. 죄를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 사람에게 상관이 있을 것이요, 죄를 회개치 않고 용납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 사람에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이름이므로 죄를 용납하는 자라는 것은 십자가의 대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으로 지은 죄나 행동으로 지은 죄나 조금이라도 용납치 않고 회개하는 자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오는 응답을 받게 되는데 있어서는 성결이라는 체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결의 체험을 받은 자로서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살리고자 노력하리만큼 역사가 내리는데 있어서는 언제나 정상적으로 신령한 체험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 언제나 정신 작용이 활동하지 않는 고요한 밤, 어두운 밤에 맑은 양심으로 묵묵히 묵상하는데서 깊은 영계의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 합심하여 호소 성가를 강하게 부를 때에 깊은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강한 역사가 힘을 써 호소하리만큼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일 성가의 호소 기도문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 : 하나님의 말씀을 본문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에서 정상적인 영계 체험을 가지게 되므로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동시에 깊은 영계의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심령에 있는 것이니, 영적으로 주를 사모할 때에 사모하리만큼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2.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범죄 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게 됩니까?

【답】사람이라는 것은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 속에 교만이나 정욕이나 혈기가 없는 사람은 감정이 나도 그 감정이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정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열매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를 위한 감정은 불의한 일에 동참치 않는 감정이므로 오히려 불의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있게 되고, 항상 마음에 화평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서는 감정이 생겨도 오히려 평화를 일으키는 열매도 있게 되며, 마음에 사랑이 불타는 가운데서는 감정이 생길 때에 오히려 냉정한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격동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이 있다든지 정욕이 있다든지 혈기가 있다든지 하면 그 자체는 사단의 감정을 일으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날 때에 그 마음에 있는 대로 폭발이 되므로 교만과 정욕과 혈기가 있는 사람은 감정을 통하여 남을 억압하고 무시하며, 남의 것을 강탈하며, 남을 사정없이 구타해서 살인을 하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생겨도 범죄치 않으려면 자신 속에 범죄할 만한 근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단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도 생활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목적을 바로 두어야 합니다. 교만과 정욕과 혈기를 그대로 두고 기도한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속에 기도의 대적이 되는 세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감정으로 범죄 하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기를 죽이는 것을 목적하고 노력하는 기도가 있되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데까지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문】3.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당황하게 되는 것이오니, 우리의 나갈 노선을 밝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우리의 나갈 노선이라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나가던 노선을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사상 노선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 용기있게 나가게 되고, 두려운 일이 올 때에 더 담대하게 나가게 되고, 앞길이 캄캄하게 될 때에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 있어야 그 사람이 노선을 바로 가던 증거라고 봅니다. 언제는 반공주의라는 간판을 붙였던 사람들이 반공 투쟁이 불리하게 된다고 그 간판을 떼고 만다면 그 반공은 진리가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큰 나라가 반공하니 조그마한 나라가 따라가다가 큰 나라가 협상하니 같이 협상한다는 것은 큰 바람에 불리는 생명 없는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  

  영토 전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 영토를 내놓고 내놓지 않는데서 끝이 나지만, 마음의 영토를 자리잡은 사상이라는 것은 자신이 죽어도 그 사상은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시작될 때부터 정확한 진리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니, 아무리 그 진리를 대적하던 강한 세력도 결국은 쓰러지고 기독교의 진리는 필연코 승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생명 없는 허수아비 같은 종교인들은 일본이 소위 대동아 전쟁이라는 미명하에서 신사 참배를 들고나올 때에 일본 기독교 연맹이라고 간판을 붙였고, 해방 후에 공산당이 아시아를 덮고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고 하는 간판을 붙이고 나온 자들이 교회를 지도할 때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정로를 나가는 사람들은 일본 기독교 연맹이니, 공산 기독교 연맹이니 하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정로를 밟아 나온 것이 한국 기독교의 내려온 일입니다. 만일 오늘에 와서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된다면 다시는 기회 없는 때가 온 것이니, 우리는 이때에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싸워 나가는 것으로만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때에 갈팡질팡 한다든지 머뭇거린다면 그 인격 자체가 정로에 서지 못한 것이니, 기독교의 신앙 사상 노선을 완전히 알고 나오던 자라면 가장 크게 일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큰 역사도 이제 있고 큰 축복도 이제 있으니, 우리는 큰 축복을 받는 노선은 걸어오던 길을 그대로 용기있게 나가는데 있습니다.

 

 

 

 특  집

 

  1.  8.15 대성회를 목적하고 건축하는 대강당

  이날까지 8.15 성회를 할 때마다 수도원의 좁은 장소에서 자유로운 성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많이 올까봐 널리 통지를 하지 못하고 잠잠히 광고 없는 집회를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대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가졌으나 첫째는 대강당 위치가 문제요, 둘째는 건축하는 경비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6월 7일에 대강당 터를 닦기 시작하여 여러 성도들의 희생 봉사로 계속 공사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현재 성전은 70평 건물이지만 대강당은 150평 건물에 2층까지 합하여 200평을 예산하고 지금 계속으로 석조 건물을 쌓고 있습니다.

  자연석 돌을 두 자 넓이로 기초하여 계속으로 건축 중 8.15성회는 준공은 못하더라도 대강당에서 열 수 있도록 끔 할 예정입니다. 건축 도중에서라도 큰 축복을 받을 확신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성금을 가지고 이방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도 성금은 자재를 사는데 만 소비하고 전부 성도들의 피, 땀을 바칠 때에 한 사람도 피곤을 느끼는 것 같지 않게 힘을 얻어 밤낮으로 봉사하는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실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건축비를 바쳐 대강당을 짓는 것보다도 많은 성도들의 희생적인 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대강당은 우렁차고도 자연스러운 건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금번 대성회가 대강당에서 열려지므로 큰 축복이 대중적으로 임할 것을 믿는 바입니다.

  무엇으로 보든지 이 대강당은 많은 변화성도가 모여서 큰 축복을 받을 장소라는 것을 더욱 믿어지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 이 대강당 건축을 위하여 친히 내 일같이 아시고 기도를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 적은 정성이라도 대강당을 위하여 바치는 제사는 큰 축복이 될 것을 믿으시고, 적은 정성이나마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는 역사적인 한 페이지의 큰 열매가 나타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셋째 : 우리 변화성도가 될 종들은 성산에 대강당이 나의 앞길에 큰 힘을 얻는 기관이 될 것을 믿고 이 사업에 다 함께 돌진하면 큰 단체가 이루어지는 일이 있으므로 완전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것을 믿으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2. 8.15를 회상하는 성도의 마음

  1945년 8월 10일 밤에 이상한 꿈을 꾼 것이 생각납니다. 이 꿈을 꾸던 장소는 강원도 고미탄이라는 곳인데, 일본의 잔인한 악정을 피하여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는 것은 해방이었습니다. 그때에 꾸었던 꿈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강산을 기준 하여 북으로는 황해도에서부터 압록강을 건너 북지 남지 전체가 공산군들이 꽉 찼는데, 내가 백마를 타고 공산군들을 짓밟으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 꿈을 생각하니 벌써 중공 세계가 이루어질 것과 북한도 공산 국가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백마를 타고 다녔던 것은 앞으로 될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계시록을 보면 말세에 백마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와 전쟁을 해서 승리하므로 천년 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백마 탄 자의 인격을 받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해야할 때가 이때라고 봅니다.

  오늘에 싸움은 영토를 다투는 것 보다도 사상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때가 왔습니다.  8.15 해방을 맞을 때에 백의 민족끼리 전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을 맞이한 지 27년이 되는 오늘에도 아직까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7월 4일 남북 공동 성명이라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질문이 일주일간 있었지만 질문에서 맺어질 일이 아니요, 정치인들이 사상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인격을 무장하여 모든 국민의 사상을 바로 지도하는 일이 너무나 급한 문제라고 봅니다.

  나는 무력보다도 경제보다도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가 오늘에 제일 급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경제 발전이 있다 하여도 사상이 없는 나라는 흙과 같이 흩어질 것이로되 사상으로 뭉쳐진 나라가 된다면 강철같이 강한 힘이 있어 아무런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

  나는 해방 후에 아무런 성공을 한 일이 없지만 진리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 하나가 자라났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아무리 모든 일에 다 성공을 했다 하여도 믿음이 없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내 마음 믿음으로 깨끗해지고 평화로워지고, 담대해지고, 겸손해져서 조물주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 되는 그 인격 하나가 이 시대에 필요한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고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니, 해방 후 27년 생활에 너무나 실패도 많았고 억울함을 많이 당했지만 내 마음 하나님 앞에 응답 받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이 만족한 것 뿐입니다. 누가 나를 천사같이 본다해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 볼 때에 죄가 있다면 무슨 필요 있으며 아무리 내 손에 억만 딸라를 쥐고 있다 하여도 내 마음에 욕심이 있다면 그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죄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대중을 거느리고 움직이는 위인이 되었다 하여도 내 마음에 교만이 있다면 바람 앞에 등불같이 꺼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오직 내 마음 조물주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응답을 받고 고요히 앉아있는 이 자리가 복 받게 된 자리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지켜주시고 그를 통하여 세계를 정복하도록 해 주실 것을 이사야 26장에 말씀하셨습니다. 백의 민족끼리 해방 후에 전쟁으로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은 해방을 자랑할 일이 못되고 오히려 부끄러워 할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전쟁 없이 백의 민족은 마음조차 희어져서 깨끗한 양심과 사상으로 평화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3. 8.15에 대강당에서 열려지는 대성회의 의의

  이날까지 새일수도원에서 열려진 성회는 이미 수도를 받고 일하는 종들에게 피곤을 없이하는 것을 목적하고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적은 성회라도 단합된 분위기 속에서 각자가 좀더 장성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고 이날까지의 성회를 통하여 우리 수도생들은 나날이 자라나 인격이 무장되는 단계로 올라갔다는 것은 열매를 보아 확증되는 바입니다.

   그러나 금번 대성회는 자라나는 단계에서 머물러 있는 것보다도 널리 대 확장을 가져오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월 7일에 대강당 건축 기공 예배를 드리게 될 때에 8.15의 대성회를 여기에서 해야만 된다는 격동을 받게 되어 수도생들은 다음과 같이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 쓰러지기까지 노력을 바친다는 것이요

  둘째 : 대성회를 열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요

  셋째 :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대강당 기공 예배를 드린 뒤에 간곡한 기도가 중심 되어 그 즉시에 수도생들의 노력으로 공사를 착수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물재 구입에 백여만원이나 되는 것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지불하고 그밖에 석공이나 목공이나 모든 잡부는 일전도 인건비를 소비한 일이 없이 다 희생 봉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 봉사자들의 식대와 그밖에 모든 잡비는 성금에서 지출되어 현재에 지출 비용이 2백만원에 가까워졌습니다.

  150평의 대강당은 8.15 대성회를 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수도생들의 물심양면을 기울여 뭉쳐지는 힘의 열매라고 봅니다.

  석조 건물은 두자 넓이로 담을 싸서 16자 높이로 하되 넓이가 60척, 길이가 90척 정도에 아무리 비가 와도 자유롭게 집회를 할 장막을 이루었습니다. 이날까지는 장소가 좁아서 사람이 많이 올까봐, 널리 광고를 못했지만 금번 대성회는 얼마든지 널리 광고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대성회가 대강당에서 열려진다는 것은 홀연히 아무런 예산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완전한 설비는 다 되지 못했지만, 이미 수도원의 설비가 되어 있고, 수도원을 중심하여 대강당이 건축되었으므로 얼마든지 자유로운 대성회를 열게 되었으니 누구든지 자유롭게 와서 아무런 지장없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금번 대성회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금 난제 해결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응답이 나려야만 될 것입니다. 새일 수도원이 창립된 후로 억울한 압박 속에서 40일 금식을 하며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기간이 7년이 되는 오늘에도 40일 금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40일 금식이라는 것은 해야만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요, 각자가 자동적으로 진리를 위하여 싸워야 된다는 결심에서 이루어진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금번 대성회를 기하여 큰 응답이 나리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사상으로 승리한다는 목적에서 금번 대성회가 열려지는 동시에 새일 수도원에 나타난 진리는 이제부터 세계적인 대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반공이라는 것은 진리의 사상이 없이 열매가 없으니 만큼 완전한 승리는 진리 사상 운동에 있게 될 것이니, 금번 대성회를 통하여 진리 사상 승리 용사의 행동 개시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날까지 반공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진리 사상 결합 단체가 일어나므로만 완전한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3. 난국을 당한 백성에게 난국을 돌파할 역사는 인간 자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에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니만큼 대성회를 통하여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말씀이 나타난 동산에 임하므로, 여호와를 자랑하는 열매가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번 대강당에 열려지는 성회가 도탄 중에 빠진 이 민족을 살리는 시발점이 될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4. 8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우리의 위험을 하감하옵시며 우리의 호소를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이러한 난국을 만난 것은 모든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정한 때에 일 인줄 믿사오나 우리에게 있어야 할 바는 구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이오니 조금도 염려할 것 없이 마음 중심에 넘치는 소망을 가지고 간구하나이다.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쳐 온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올 증거인 줄 믿사오며, 여호와의 산에 대강당을 건축하게 된 일도 우리의 생각밖에 홀연히 이루어진 일이온즉 금번 대성회에 어떠한 역사를 나리시겠나이까! 반드시 우리의 생각밖에   큰 역사가 나릴 것을 믿사옵나이다.

  하나님은 이날까지 길이 참으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셨지만 이제부터 여호와 응답을 나리시되 대중적으로 큰 역사가 나리는데 있어서는 권세 새 힘의 역사로 나릴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크고도 우렁찬 성전을 짓게 하신 아버지여, 이 성전 안에서부터 여호와만이 자랑하는 일이 있되 금번 대성회에 응답이 나릴 것을 믿나이다. 누구든지 큰 축복을 받을 종이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이끌어서 이 대성회에 나리는 축복을 다함께 받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택한 자를 친히 다스릴진대는 금번 대성회를 통하여 완전 승리의 단체가 일어나도록 응답을 나리시옵소서. 금번 대성회가 대강당에서 열려지게 되는 일은 분명히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일이온즉 하나님의 뜻은 세계가 다 알도록 금번 대성회에 나타날 것을 믿사옵나이다.

 

 

5. 알리는 말씀

  하나님의 특별한 큰 은총이 금번 대성회를 통하여 귀 교회와 귀 가정 위에 크게 임할 것을 믿고 다음과 같이 알려 드립니다.

  1. 금번 대성회는 성산 대강당에서 열리게 되오니, 많은 사명자들에게 알려서 다 같이 큰 역사를 받도록 하셔야만 혼란한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함께 일어나는 역사에 같이 쓰여지는 귀한 종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애독하시는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8.15를 기하여 큰 역사를 받게 되어 이 진리 운동에 선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월간지 대금은 8.15 성회에 완전히 완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   단   소   식

- 부산, 경남 지방(남부) 연합 야외 예배 개최 -

  지난 7월 17일 오전 11시에 경남 양산군 내송면 비들기소(沼)에서 '석계교회' '양산중앙새일교회' '김해새일교회' '영화농아새일 교회' '부산새일교회' '부산중앙새일교회' 등 관내 6개 교회가 모여서 최흥국 목사님의 사회와 이완만 목사님의 설교, 유활천 전도사님의 기도로 연합 예배를 마치고 이어서 이완만 목사님의 주례로 43명의 결신자에게 침례를 거행, 이에 따라 성찬식을 거행하는 등 성황리에 연합 예배를 마치고, 경남 지방에 산재해 있는 본 교단 소속 교회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의의 깊은 집회를 가졌다.

 

- 부산 영화 농아 새일 교회 일주년 기념 예배 개최 -

  지난 7월 14일 부산 영화 농아 새일 교회에서는 경남 지방 각 교회의 내빈 다수 참석리에 일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현재 담임자는 오광천 종님이며 교인 수는 남녀 약 40명이 매주 모이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위하여 종님들의 기도와 협조가 있기를 바랍니다.

 

알리는 말씀

  앞으로 각 교회의 소식을 본지에 게재하시기를 원하는 교회에서는 본지 편집실로 소식 내용을 동봉하여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광    고

여 호 와  새 일  교 단

< 제 6 회  정 기 총 회 >

 

일 시 : 주후 1972년 8월 16일

장 소 : 새일수도원

 

  상기와 같이 총회를 소집하오니 각 교회에서는 각 교회에 배당된 총대(總代) 3명씩을 선정하여 총회 당일까지 파송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추신 : 파송시 각 교회에 배정된 상회금을 지참하여 본 회 회계에게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후 1972년 7월  일

여호와 새일 교단

총회장   이    완    만

서  기   박    능    도

개 교 회   각 위

 

본   사   사   령

 

임     기자   김  현  곤   보    편집국장

〃    안  병  정

〃    배  영  환

〃    정  진  우

〃    박  상  하

〃    윤  하  기   보    업무국장

 

1972년  7월  1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