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문 답

         

[1 ~ 28] [29 ~ 61] [62 ~ 94] [95 ~ 127]

      (1970년 8월호)

[문] 1. 유일신 종교가 무엇인지를 믿습니까?

[문] 2.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문] 3. 신앙은 어떠한 노선이라야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문] 4. 오늘에 W.C.C라는 신앙 노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 5. 기독교 신앙에 새 일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문] 6. 증인 권세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 7.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계11:6]

[문] 8. 부활 성도의 사명과 변화 성도의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계20:4-6]

[문] 9.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아십니까? [계20:7-9]

[문] 10. 천년 시대는 왜 있느냐를 아십니까? [계20:7-9]

 

(1970년 9월호)

[문] 11.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마리아 몸에 잉태 된데 대하여 정확한 신앙의 확실성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2.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13. 성신의 은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14.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 15. 참된 교회라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 16. 성경을 분명히 바로 알 수 있는데 대하여 분명한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1970년 10월호)

[문] 17. 삼위 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18. 기독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9.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20. 부활 성도와 변화 성도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21. 중생과 성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22.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1970년 11월호)

[문] 23. 영의 생명과 육의 생명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 24. 사람이 어떤 방침으로 살아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자 합니다.

[문] 25. 기독교에서 이적이 나타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26. 신앙 발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27. 마귀 근본과 종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28. 기도 응답 받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1. 유일신 종교가 무엇인지를 믿습니까?

【답】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유일신 종교는 여호와의 신을 믿는 것인데 그 신은 스스로 계신 신이라고 믿으며 그 외의 신은 다 피조물인 동시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신인즉 여호와의 신 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여호와의 신을 대적하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 한 분만을 믿는 자들을 통하여 참된 진리는 세상에 뚜렷이 나타난 것을 유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문】2.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답】성경은 한가지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따라 역사 했고 말씀을 나타냈는데 이루어진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이므로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역사를 대강 쓰고 세밀히 쓴 것뿐이라고 믿으며 또는 그 시대에 법을 말씀한 성경은 직접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사람이 받아 기록한 글이니 만큼 이 글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법도 있고, 이루어질 법도 있으니 이루어진 법은 십자가의 법이요, 이루어지는 현실의 법은 성신의 법인 동시에 이루어질 법은 심판의 다림줄인 예언의 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은 사람이 저술했으므로 약간의 빠진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으로 말씀한 법은 하나도 빠짐이 없고 정확무오한 법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3. 신앙은 어떠한 노선이라야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답】지금 기독교는 여러 가지 신앙 노선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지금의 기독교 신앙은 이루어진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신앙만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백성 된 자들이 그 노선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장성기에 있는 것이므로 오메가의 진리를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 알곡을 모으는 추수기가 아니므로 노선이 동일치 못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속죄 구령이라는 것이 끝이 아니요,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시작이라면 기독교가 완전히 승리적인 평화 왕국을 지상에 이루어 놓는 것은 끝을 맺는 결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 기독교가 큰 혼선을 가져오는 것은 완전한 다림줄의 진리를 잡지 못하고 씨를 뿌리는 일과 가꾸는 일에 불과한 역사요 완전히 결실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끝을 정확히 바로 맺는 신앙 노선을 가진 자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 성도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같이 교파를 초월한 한 단체가 나올 것이니 이것은 계11:1과 같이 되는 때에 완전한 신앙 노선을 하나같이 바로 찾아 끝을 맺게 되는 것을 증인 권세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본문 그대로 읽어서 듣고 지키는 것으로 끝을 맺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문】4. 오늘에 W.C.C 라는 신앙 노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나는 통합을 원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비 성서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노선이니 오늘의 W.C.C의 통합이라는 간판만은 찬성하는 바이나 통합의 방법이 사단의 세력을 막는 방법이 아니고 활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공산 진영에 소위 기독교 공산 연맹 단체의 사람을 회개시키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권리를 허용한다는 것은 기독교가 자체를 망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을 하는 군대가 적군이 자기 진중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망령된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공산당과 조금도 연맹할 수 없는 진리 사상 문제인데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는 자체는 공산당에 이용을 당하는 단체인데 그러한 분자들을 회의석상에 언권을 허용하고 결의권을 준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이 합하는 일이니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백전백패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막대기를 드신 것을 공산당으로 보고 막대기를 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하나님 앞에 하나같이 회개하는 운동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기독교 종말의 기독교 진리로 통합을 시키는 새로운 역사가 있기 전에는 W.C.C 운동 같은 것이라는 것은 하등의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망령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양떼들은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 멀지 않은 장래에 가련한 양들은 울면서 쫓겨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문】5. 기독교 신앙에 새 일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사43:19)

【답】우리 기독교는 새 언약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 피로 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이방과 유대에 담을 막고 세계 통일이라는 진리 운동을 할 수가 없는 시기였지만 계5:9~10을 보면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족속을 사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이날까지의 그리스도의 피를 믿도록 세계 인류에게 교회를 세우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서는 것으로만이 끝이 아니고 교회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새 일이라고 사43:19이하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피가 새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면 새 일은 새 사람만이 사는 새 땅의 새로운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가르쳤습니다. 세밀히 말하자면 새 언약의 피를 믿으므로 세계 인류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일은 은혜 시대라면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므로 새 땅의 에덴 축복을 받는 일은 환란과 재앙 시대를 통과하는 새 일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일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 것입니다.

 

 

【문】6. 증인 권세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11:3)

【답】권세라는 것은 여호와의 신밖에는 가진 자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부활 승천하실 적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셨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만방에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되 어느 나라 민족이든지 다 하나같이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승리가 없었다면 마귀 권세 아래 있는 죽은 영들이 감히 그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고 감히 예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귀와 싸우는 종교니 마귀를 이기는 권세가 없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날까지의 모든 전도자는 십자가를 증거할 때에 그리스도의 권세로 죄가 사해지는 일이 있을 적에 죄의 권세는 자동적으로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빛의 권세가 승리하므로 교회가 세계에 대 확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 권세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인류적으로 큰 화가 올 때에 하나님은 마귀 흑암 세력을 계시록 9장과 같이 개방을 시켜 모든 사람을 크게 시험을 할 때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인데 증인 권세를 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 흑암을 뚫고 나가면서 승리하므로만이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 하므로만이 환란의 재앙을 벗어나게 되므로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는 일인데, 하나님이 종들에게 그 말씀을 따라서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데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을 먼저 세워서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하도록 하는 일이 있으므로, 그 역사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깨닫고 말씀 권세를 받게 되므로 최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을 증인 권세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세의 종들을 통하여 완전한 촛대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교회가 남은 교회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입니다.

 

 

【문】7.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계11:6)

【답】이 역사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일어나는 역사이니 이날까지의 전도 방법은 버림돌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보혈을 증거하는 것이므로 원수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죄인들에게 이적을 보여주므로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생명의 구주인 것을 알게 해서 그들이 십자가의 도를 믿도록 하는 역사이니 얼마든지 핍박하는 자라도 회개할 기회를 기다리는 때였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의 역사는 택한 자를 공산당의 손에서 찾아내기 위하여 원수를 굴복시키는 역사를 할 때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해방을 시키듯이 마지막 때에 억울하게 압박을 받고 신앙 자유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을 그 손에서 해방시켜서 한데로 모아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라는 것은 천당을 목적한 역사가 아니고 지상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택한 자를 찾아내어 새 땅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니 이 역사는 은사 역사가 아니고 권리 행사로 모든 백성을 떨게 해서 굴복하고 돌아오도록 만드는 역사이다. 왜냐 할 때 마귀가 권세를 받고 나와서 교회를 집어삼키는 악한 정치를 할 때에 마귀 세력을 물리치는 일을 하여 강권으로 택한 자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 역사에 끝을 맺는 역사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상태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소위 평화  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공산당을 용납하는 음녀적인 바벨 교회를 때려부수면서 참된 백성을 찾아내며 세계 인류를 붉은 용의 세력 안에서 구출시키는 역사는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라는 것이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어느 나라나 택한 자는 다 깨닫고 순종하게 될 때에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1260일 동안 예언하는 역사로 끝을 맺고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 성도로서 대 승리를 이루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를 이루게 된다.

 

 

【문】8. 부활성도의 사명과 변화성도의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계20:4~6)

【답】부활성도라는 것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순교하기까지 싸운 자를 가르친 것이다.

  1차 부활이란 것은 왕권을 받을 자만이 해당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시므로 임금의 머리가 되셨고(계1:5), 부활 성도는 죽기까지 십자가를 증거 했으므로 왕권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가 편지를 쓸 때에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 하에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 14권의 편지를 쓴 것이 신약 시대에 정통 신학 변론의 요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신학이라는 것은 바울 서신에 의하여 세밀한 변론을 말한 것이 신학자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학설을 말한다해도 순교적인 생활이 없다면 1차 부활에 참여할 수 없다. 아무리 학설이 부족하고 기독교의 종말관을 모른다해도 십자가 하나를 증거 하다가 순교한 자는 아무리 집사의 한 사람이라도 스데반은 왕권의 반열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언제나 사랑하는 종은 그때 그때에 원수를 들어서 순교하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변화성도는 주 재림시까지 살아서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싸움을 하면서 예언을 증거하는 사명이니 그 예언이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예언을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예언이다. 모든 선지는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 두고 묵시를 봤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가 선지서를 증거할 때에 은혜 시대에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사명에서 선지서를 해석한 것 뿐이요, 변화성도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환란 가운데서 남은 자로서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목적 두고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 그대로 읽어서 증거 하는 예언을 하는 것을 변화 성도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환란 중에 남은 종이 증거하는 복음이요, 남은 백성이 순종해야 될 복음이니 지상에서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받게 하는 역사이다.

 

 

【문】9.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아십니까? (계20:7~9)

【답】하나님께서 이날까지 성령의 역사를 내린 것은 천년 왕국에 들어갈 백성을 위한 목적이 아니고 왕국 반열에 들 종들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성신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재림의 주를 고대하면서 쓰러지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을 목적 두고 복음을 전한 것은 새 시대에 들어가는 환란기가 아니므로 천당을 목적하여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은 변화 성도들이 승천하기까지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거짓 선지와 싸우면서 복음을 전할 때에, 거짓 선지도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전하는 것이요, 변화 성도는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말할 때에 거짓 선지는 큰 세력을 잡고 물권을 쥐고 세상 정권을 배경 삼고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순수하게 심판의 다림줄인 진리를 증거하게 될 때에 변화 성도의 슬픈 경고를 듣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말만을 따라서 촛대교회로 들어오는 백성들인데 이 사람들은 변화 승천하는 종들의 마지막 경고를 듣고 따라온 자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새 시대를 신앙하는 자이므로 말씀대로 하나님의 보호를 예비처에서 받은 후 3년반 동안 계시록 13장과 같은 환란이 올 때 12장과 같이 보호를 받고 지상 강림하는 만왕의 왕의 통치시대의 백성이 된다.

  이 사람들은 은혜시대에 회개한 자가 아니고 환란이 일어날 때 따라온 자들이므로 성경의 완전한 진리를 다 알지 못하고 성신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함으로 새 시대 갈 것을 믿고 따라온 백성이다. 이들은 천년 시대에 큰 확장을 이루는 민족이 된다. 그러므로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고 마귀를 다시 놓아서 미혹을 시켜 보고 미혹 받지 않은 자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문】10. 천년 시대는 왜 있느냐를 아십니까? (계20:7~9)

【답】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에 아담에게 축복을 주었지만 아담 하와가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범죄하므로 이 땅은 저주를 받고 창조의 본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본의를 다시 이루어 놓는 것을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천하에 모든 족속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는 약속은 천년 왕국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천국을 말하지 않고 전부 지상 축복의 왕국을 예언했던 것이다.

  만일 지상 평화 왕국이 없다면 하나님은 참신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의 소위 정통 신학자들이 천년 왕국을 부인한다는 것은 모순 중에도 큰 모순이라고 보게 된다. 소위 공산당이라는 변론은 과학적인 지상의 평화 왕국을 꿈꾸는 것인데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의 의의를 모른다면 공산당의 과학적인 변론 앞에 머리 숙이고 협상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

  모든 성경에 인간 종말을 말할 때에 반종교적인 악한 무신론 정책이 북방에서 내려오는데 중동으로 침투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므로 북방은 망하게 되는 동시에 북방과 타협하던 음녀적인 세상이 함께 망한다고 하였고 그 중에서 사상과 신앙 절개를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이 남아서 지상 축복을 받게될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첫째아담은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축복을 빼앗겼지만 인간 종말에 말씀을 지키고 이긴 자들이 지상 축복을 다시 받게 될 것을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공의라는 것은 한번 목적을 정했으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이다. 인생이란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지킬 인격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공의의 법칙을 행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사9:6~7절에 말했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이란 것은 창조의 본의를 이루어 놓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의로 통치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문】11.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마리아 몸에 잉태 된데 대하여 정확한 신앙의 확실성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그리스도의 성령의 잉태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알아야 됩니다.

  1.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진 것은 마리아의 몸의 피를 힘입어 된 것이 아니고 성신의 역사 아래서 마리아 몸에 새로운 피와 새로운 물이 신의 능력으로 임하여 이루어진 몸입니다(요一5:8). 만일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피로 이루어졌다면 마리아도 선악과를 먹은 몸의 계통이요, 또는 마리아의 몸의 피가 뭉쳐서 이루어진다면 남자의 정충을 받아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한 피와 물이 그 몸에 계속으로 임할 때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신은 하나님의 역사를 할 때에 지금도 우리 몸에 와서 역사하면 우리 몸도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이 승리한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이 와서 역사하므로 우리 몸도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생할 몸이 되는 것입니다(롬8:11).

  2.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 죄악을 걸머진 몸으로 날 때에 하나님께서 완전한 몸으로 나게 한 것입니다. 그 몸은 만민의 죄를 걸머질 가치가 있는 것은 직접 조물주 하나님의 신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몸이므로 흙에서 난 몸이 아니요, 하늘로부터 인간에 내려온 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이 흙에서 난 몸에 속했다면 만민의 죄를 걸머질 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고전15:21~22을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의 몸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아담의 흙에서 난 몸이 범죄하므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후에 그 몸에서 나온 자들은 다 선악과를 먹은 피에 의하여 사망을 가져오게 된 것인데 둘째아담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한 몸이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승리했으므로 부활을 하게 되어 지금 성령으로 우리에게 부어 줄 때에 그 역사 아래서 우리 몸도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변화체를 이루는 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은 처음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얼마든지 우리에게 영생의 씨를 줄 수 있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첫째아담의 범죄로 몸에 사망의 씨가 왔고 둘째아담 예수가 승리하므로 그를 통하여 영생할 씨가 우리 몸에 오는 것이니 중생이라는 것은 영이 중생하는 동시에 몸까지도 영생의 진액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게 되므로 그 몸은 죄의 도구가 되지 않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대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몸의 인격이 이루어질 때에 성령의 역사를 받는 분량에 따라서 인격의 차이점을 가지게 됩니다. 중생을 받았지만 그 몸이 그리스도께로 오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쓰여질 수 있는 몸이 되는데는 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 들어갈 때에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변화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한 분이 성령으로 잉태된 그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왕국을 이루는데 있어서 처음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고전15:23).

 

【문】12.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영원한 속죄라는 것은 다시는 속죄제가 필요 없는 것을 뜻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어린양을 잡아 드리는 제물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한 예표에 불과한 영자적인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속죄제라는 것은 생령을 가진 자만이 드릴 수 있고 죽은 영을 가진 자는 그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령적인 사람이 예언의 말씀을 신앙했기 때문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은 생령의 계통적인 사람이라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는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제사가 되었으니 다시는 그 이상 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고 이루어진 속죄제의 피의 공로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믿으면 영생하고 믿지 않으면 멸망이라는 것이 영원한 속죄로 이루어진 법입니다.

  이제 영원한 속죄의 피를 믿는 신앙에는 다음과 같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영원한 속죄는 율법을 도말했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이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오는 인간의 죄를 전부 청산할 영원한 속죄이니 하나님께서 인생을 대할 때에 율법에 의하여 대할 수 없고 신앙의 법인 성령의 생명의 법에 의하여 인생을 대해서 역사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율법에 대한 행위를 의지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완전히 믿는 신앙에 섰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성신의 법에 따라서 역사하는 일이 우리에게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힘이 아니요 영원한 속죄를 믿는 믿음에 따라서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2. 영원한 속죄는 인간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아주 죄를 없애는 능력이 십자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이 기억치 않는 일이 아니요 그 사람의 죄를 전부 청산해 버리는 동시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죄의 세력이 와서 다스리지 못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니 우리는 죄와 싸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에 이끌려 생활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마음에 역사하는 자는 마음에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가 있는데 죄를 짓지 말라는 율법을 두려워하는 것이 영원한 속죄를 믿는 신앙이 아니고 영원한 속죄를 믿는 신앙 속에 완전한 신의 능력이 올 때에 그 사람 마음이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 것보다도 죄를 짓지 아니할 사람을 만들어서 죄와 싸우는 십자가 정병이 되게 하는 것이 영원한 속죄를 믿는 신앙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속죄는 영생의 생명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죽어서 천당에 가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영원한 속죄의 은총을 힘입어서 날마다 하늘로 오는 영생의 진액이 되는 역사를 받을 때에 영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생명을 통하여 나날이 자라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장성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그 마음에 죄를 질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영원한 속죄의 능력의 역사가 없는 자라고 보게 됩니다.

  속죄라는 것은 과거의 지은 죄를 사해 주는 것만이 아니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형체가 이루어지기까지 역사하는 신의 능력이 영원한 속죄를 통하여 영원이라는 나라에 속한 것을 받을 때에 무엇이나 이 땅에 쌓아 놓는 생활이 아니고 영원한 영생의 나라를 위하여 날마다 쌓아 놓는 생활이 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속죄라는 것은 율법은 완전히 폐지가 되고 영원한 성신의 법에 의하여 활동하는 것이 영원한 속죄를 이룬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입니다.

 

 

【문】13. 성신의 은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성신의 은사라는 것은 은사를 위한 은사가 아니고 완전한 진리를 믿게 하고 진보를 행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한 것인데 이 역사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를 하셨으므로 자기를 믿는 사람도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성신의 은사라고 합니다.

 

  1. 은사에 대해서 잘못된 노선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비를 중심한 은사

  은사는 신비만을 중심한다면 오히려 마귀가 틈을 타는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신비를 중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 하나를 바로 믿는 것이 있을 때에 인간의 힘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진리의 신이 진리대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신비라는 것은 신비를 위하여 있는 신비가 아니고 진리를 위한 신비이니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진리라는 것은 인간이 죽은 영이 되고 죽을 몸이 되고 보니 도저히 사망의 법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 사람이 할 수 있어서 진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시겠다는 것이 진리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비라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아들을 보내서 대신 죽게 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그 피를 믿는 자에게 죄가 사해질 적에 성신은 임재해서 역사할 때에 은사로 할 수 있는 목적을 두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자가 그것을 목적하지 않고 은사로서 어떤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는 탈선된 길이 될 때에 마귀는 기회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2) 은사를 악용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은사를 통하여 완전한 성경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은사를 통하여 자기의 어떤 명예나 권리나 또는 물질적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악용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하나님만 영화롭게 한다는 것과 어떠하든지 남을 살린다는 불타는 마음과 또는 세상을 분토같이 보고 하늘의 상급 하나만을 바라보는데서 움직여야 될 것입니다.

  3) 은사를 등한히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은사를 받고 진리의 노선에 바로 서지 못하므로 실패를 당할 때에 은사를 중심한다는 것을 위험하게 보고 은사를 받으려고 하는 필요조차 없다고 하는 자리까지 들어갈 때에 이 사람은 마른나무 가지같이 외식하는 형식주의가 되기가 쉽습니다. 왜냐할 때에 성령은 떠나기 때문입니다.

 

  2. 은사 받은 사람의 완전 결실에 들어가는 노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은사를 받은 자는 봉사에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봉사라는 것은 은사를 받은 자의 사명이니 은사를 받지 못한 자의 사명이라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봉사라는 것은 도덕과 의식을 초월해서 중심에 불타는 마음에서 봉사하는 것이라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엡4:12). 은사를 받은 자의 봉사 없이 하나님의 교회를 이룰 수 없고 성도의 생활을 완전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이라는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2) 진리가 통달되어야 합니다 (고전2:10)

  아무리 은사를 받은 자라도 말씀을 통달하는 일이 없게 되면 아무런 발전이 없는 신앙이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은사로만 장성하는 것이 아니고 은사를 받은 자가 말씀으로써 마귀시험을 이기고 나갈 때에 신앙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목적이 진리를 통달케 하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3) 겸손한 생활입니다 (약4:5~6)

  성령은 온전한 자에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부족을 깨닫는 자에게 고쳐주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겸손이라는 것은 성신님이 가지고 계신 것인데 성신님이 하시는 일을 겸손한 자라야 순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고라도 날마다 겸손해지는 일이 없고 교만해지면 성신과는 대적이 되는 것이니 교만한 자에게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할 때에 강하다고 했던 것입니다(고후11:30). 하나님은 언제나 은사를 받은 종에게 더욱 겸손을 주기 위하여 마귀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에 마음이 겸손해지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항상 봉사하는 일에 전력을 두되 말씀이 밝아지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만 은사 받은 종으로서 완전한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종이 약간의 시험이 올 때 오히려 은사를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며 후퇴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은사를 받은 자로서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 더 겸손한 마음으로 성신님께 순종할 때에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용사가 될 것입니다.

 

 

【문】14.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안식일이라는 것은 흙에서 지음 받은 아담의 몸에 축복한 날입니다. 그 축복이라는 것은 네가 이 땅에서 충만하고 다스리며 세계를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행함이 있는 조건에 의한 축복이 아니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고 네 사명을 이제부터 충실히 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맡긴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고 완전해 질 수 있는 사명을 받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말미암아 지상 축복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축복을 다시 찾아 주마 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인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진 민족에게 십계명을 줄 때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는 계명이 아니고 축복을 주기 위하여 다시 언약을 세울 때에 죄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가르쳐 주는 몽학적 교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안식을 찾아주기 위하여 속죄의 큰 뜻을 이루고자 하여 먼저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공의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죄를 사한다는 것은 완전한 공의를 행하는 일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그 안식일을 사람이 지키므로써 안식의 축복을 받는다는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안식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날은 평안히 쉬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목적 두고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날 완전히 무덤에 들어가서 하루 죽어 있게 된 것은 첫째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안식의 축복을 빼앗긴 것을 찾아주기 위하여 그 죄의 대가를 걸머진 몸으로 죽음에 처하여 있었고 이레 중 첫날에 사망을 뚫고 부활한 것은 잃어버렸던 안식을 개척한 날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을 위해 창조한 것인데 사람의 범죄로 만물이 다 저주를 받았고 둘째아담 예수가 완전히 승리의 부활을 하시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날이 부활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므로 중생 받은 영적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 지키던 안식일이 우리와 하등 관계가 없고, 그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의 부활날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날이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식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니,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신의 법 아래 다스림을 받는 신앙 양심에서 그날을 지키므로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요, 이미 복을 받은 우리들이 그날에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동시에 복 받은 사람으로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을 힘입어 새로워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그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어지는 은총을 크게 입으므로 안식의 축복을 받은 자로서 날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예배하며,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진행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을 지키므로써 복을 받는다든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오히려 무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우리가 지키므로 된다는 조건이 있을 수 없고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복을 주신 주님을 경배하며 섬긴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진리가 없습니다.

  율법이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직접으로 안식을 주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더 받기 위한 마음에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바치는 것인데 이것은 의식이 아니요 은혜 가운데서 마음이 더 간절해지므로써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신령한 세계에서 그날을 지키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억지로 지킨다는 법이 아니고 은혜 속에서 자동적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는 성신의 열매라고 봅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모든 전부가 우리 자체가 행하므로 되는 세계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부활을 통하여 흘러오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이 새로워지는 동시에 몸으로 움직이는 일까지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주일을 지켜야 된다 하는 말은 사도 바울 서신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것뿐인데 우리는 주일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예배를 사모해서 모이게 되므로 그날을 거룩히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보다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안되고 받아야만 된다는 것이 앞서야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떠나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니 성신의 역사 아래서 입도 생활도 몸도 전체가 그날에 바쳐지는 예배가 될 때에 그날 하루의 받은 은총 속에서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든지 활발하게 승리의 길을 걸어나가는 열매로 주일 하루 거룩하게 지내므로 이루어지는 열매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일날을 우리에게 축복할 적에 모세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서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문】15. 참된 교회라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한 자를 찾기 위한 목적에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5경으로 섰던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전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써 이루어질 교회를 가르쳐 준 예언적인 교회요, 그 성전이 황폐되었다가 복구될 것을 중심하여 모든 선지가 묵시를 받아 예언한 것은 주님이 재림할 때 영적 교회가 다 황폐된 가운데 있다가 다시 회복됨으로써 기독교는 완전히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될 것을 목적하고 말씀한 여호와의 책입니다.

  참된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말씀대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예수 이름으로 교회가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 나가므로써 성경대로 죽기까지 순종했고 성경대로 승리의 부활을 하였고 성경대로 승천해서 성경대로 성신을 보내서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사람이 아무런 것도 한 것이 없이 그리스도 한 분이 행하므로 성립된 교회이니 기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행하신 일이 기독교이니 세계적인 대종교로 이루게 된 것은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사람의 행위에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인생 자체에 있을 수 없고 성부, 성자, 성신이 참신인 동시에 그 신의 역사가 기독교를 온 세계에 확장시킨 것이며 사람은 그 역사의 힘에 끌려서 죽기까지 순종할 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2. 이루어질 말씀을 위하여 싸우는 교회입니다

  이날까지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싸워 승리하므로 교회가 선 것이요 이제 끝을 맺는 것은 교회가 예언대로 싸워 승리함으로만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금일에 아무리 기독교가 확장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참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싸워 이기지 못하면 오히려 음녀적인 바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날까지 성령의 은사를 나린 것은 당신이 이기신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십자가만 믿으면 무조건 성령을 부어 주므로 세계 만방에 성신의 역사로서 대승리의 열매를 이룬 것이 기독교라고 봅니다.

  그러나 금일에 있어서 기독교가 이렇게 부패된 것은 그리스도가 약해져서가 아니고 구약 때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화되듯이 말세 영적 교회가 황폐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 응하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이렇게 부패한 것을 당신이 할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해서 교회의 사람들에게 마귀의 흑암을 허락하여 까불어 보기 때문에 교회가 혼란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참된 촛대교회가 나오려면 종말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히 가르치는 종이 필요하고 예언의 말씀대로 새로운 역사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참된 촛대교회는 나타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운 것은 십자가의 법으로 세웠고 교회의 끝을 맺는 것은 예언의 법으로 끝을 맺는 것이니 재림의 주를 맞이할 교회가 되려면 예언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계22:6~7, 16~19).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으로 꾀어본 것 같이 심판기에도 용의 앞잡이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내보내서 교회를 꾀어볼 때에 아무리 꾀어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이라는 것을 믿고 예언을 지키는 교회라야 참된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행하는 일이 참인 동시에 참으로 예언을 지키는 자에게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참으로 도와주고 보호해서 참으로 남은 자가 되어 참으로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참된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극도로 혼란해진 것은 참된 교회가 말세 증인을 통하여 다시 나올 시기가 된 증거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1장에 말세 증인을 세워서 1260일 동안 예언할 때에 참된 교회가 촛대교회로 나올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를 통하여 모든 영들이 중생 받아 천국으로 인도를 받았고 또는 참된 교회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바로 듣고 지키므로 모든 사람이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어 지상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참된 교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문】16. 성경을 분명히 바로 알 수 있는데 대하여 분명한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답】성경은 사람이 스스로 안다는 것은 오히려 큰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있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누구나 다 성경을 들고 자기가 바로 안다는 것이 큰 병적이라고 보게 됩니다. 이제 성경을 바로 아는데 대하여 간단한 시간에 다 말할 수 없으나 요점을 들어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할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목적으로 말씀한 것이 성경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것은 그 시대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도록끔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갈 때에 이스라엘 나라라는 신정 국가가 시작될 때에 그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 모세 5경이란 글입니다. 이 글은 그 민족이 신정 국가를 이루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법을 세운 것인데 이것으로서 그 민족에게 몽학적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①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일,

  ②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짓는 일,

  ③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 일 등 모든 의식의 절차를 가르친 일인데 국민의 모든 행정법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그 법은 그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그 법을 순종하면은 나라가 잘되고 순종치 않으면 그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 중에서 예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그 나라가 신정적인 국가로서, 타락하여 세속화되고 심지어 이방신과 타협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책망을 내리므로 타락한 정치인과 종교인과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므로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는 과정에까지 처할 때에 그 선지들에게 묵시가 나타나기를 심판과 새 시대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지만 참된 종을 대적하는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인간들은 다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말을 순종하는 자라야 남아서 새 시대 가는 이치를 하나님이 묵시로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들에게 나타난 말씀은 그 시대 사람을 책망하는 말 같으나 이 말이 인간 종말의 경고가 됩니다.

  왜냐하면 선지의 묵시의 말씀에 그리스도 탄생을 말했고, 십자가를 말했고, 부활, 승천, 성신 강림,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말하면서 심판이 오되 아무리 시온이며 이스라엘이라도 참된 선지의 말을 듣지 않고 대적하는 자는 다 없이하고 속화된 시온이 망하는 동시에 이방적인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오게 되므로 부패한 이스라엘과 시온이 망하게 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온과 이스라엘은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 간다는 것을 가르쳤으니, 이 시온과 이스라엘은 금일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 된 우리 기독교인을 가르친 말씀이라고 보며, 북방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황폐화시키고 동방 고레스가 바벨론을 칠적에 바벨론의 세력 아래서 서로 개인 신앙을 지키던 자들이 소수이지만 동방 고레스의 명령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을 들어서 인간 종말에 바벨화되는 세상이 될 때에, 참된 성도는 심히 적은 수로되 남은 자가 되어 동방에서 일어나는 권세 역사에서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타나는 동시에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세 5경으로 섰던 교회도 완전히 폐지가 되고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민족에게 말기에 경고를 준 선지서는 전부가 말기를 당한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며 우리가 전할 복음이 됩니다(계10:7). 지금 이때는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이 시대 사람에게 전할 복음이 됩니다.

 

  2. 신약 성경을 말하자면 4복음은 예수 행적인데 메시야가 성경대로 출생하고 성경대로 자라나서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했다는 것을 증거해서 예수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 구주시라는 것을 전도하는 복음인데 이것은 사람이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저술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복음을 전한 행적이며 편지서는 복음을 전한 자들이 교회를 세운 다음에 신자들에게 이단에게 속지 않고 옳은 신앙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기록한 편지인데 이 글은 그 시대 사람에게 썼지만 그때나 금일이나 한 은혜시대이니 만큼 어느 곳에서나 교회를 세울 때에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바로 믿어서 그 영혼이 구원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사도적인 신앙을 보존하여 내려오던 교회가 세속으로 흘러갈 때에는 하나님은 구약 말기에 경고한 선지서가 필요한 동시에 계시록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일에 모든 정치, 사상, 인심 악화, 정치 부패, 모든 되어지는 일은 선지서와 계시록을 맞춰 볼 때에 분명히 진노의 날이 가까운 환란, 재앙기에 접어든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계시록은 주석이 필요 없고 그대로 읽어서 바로 깨달아 듣게 말할 수 있고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이 시대 사람이 깨닫도록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불가피로 오는 환란 재앙 속에서 어떠한 신앙 노선을 가야 남은 자가 되며 새로운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을 햇빛같이 밝히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선지는 북방 세력이 종말에 환란을 일으키고 내려오지만 그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오는 것과 계시록에는 붉은 짐승이 환란을 일으키고 나오지만 이것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가르친 것이니 북방 세력이 망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짝을 맞추어 읽어볼 때 분명히 이때를 주 재림기로 봅니다.

  언제나 성경은 그 시대를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본문을 읽어서 깨닫게 한 것이니 은혜시대는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읽어서 깨닫되 선지서의 은혜시대를 가르친 말씀만 깨달았고 지금 이때는 선지서와 계시록을 맞추어 읽어서 충분히 신자들이 깨닫게 되는 시대입니다. 금일에 기독교가 계시록과 선지서를 읽어서 만족하게 받는 진리 운동이 아니라면 거짓 선지의 미혹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마귀 미혹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본문대로 읽어서 이기는 것이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시대에는 모세 5경을 읽어서 모든 것을 밝혀 나갔고, 은혜 시대는 신약 전서를 읽어서 깨달아 나갔고, 환란시대가 올 때는 계시록과 선지서를 읽어서 깨닫게 되므로 마귀의 미혹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17. 삼위 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삼위 일체라는 것은 그 언어 자체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일체란 뜻은 사상, 정신, 목적, 활동이 동일한 것을 뜻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무엇이나 여호와라고 이름을 말씀하면서 나타나기도 했고 말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라는 신은 나는 스스로 있는 신이라고 했으니 스스로 있는 신은 조물주를 말하는 것인데 조물주께서 역사할 때에 우리가 우리 형상이라 한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역사하시되 동거하는 신이 있었다는 것이 내포됩니다.

  그러므로 예를 든다면 한 집이 있는데 집의 모든 일을 아버지가 하지만 그 안에 아들이 있고 식구가 있을 때에 그 모든 일은 가장의 주권 아래 있되 가장이 하는 일을 협조하는 것과 같은 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여호와라고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아들을 통하여 역사할 것과 성신으로 역사할 것을 예정하시고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낸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천국을 위한 것인데 천국이란 것은 신의 삼위의 영광을 중심하여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신만으로서 나라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창조하여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리는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는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없는 자격이므로 하나님은 간교한 뱀을 만들어 꾀어 보고 사람이 말씀에만 순종할 때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생명과를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성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없는 인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의 활동은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1. 약속을 세움

  이 약속이라는 것은 네가 타락하였지만 나는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고, 부활하게 하고, 승천하게 하여 왕국을 건설하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성신을 부어 주어, 아들과 동등한 왕권을 받는 자의 수가 찰 때에 마귀의 세력을 없이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마귀의 말을 순종하던 자는 다 유황 불 못에 던지우고, 끝까지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자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되 이 천지를 새롭게 해서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을 다시 찾게 하고, 다음에 신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하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이 성립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인간에 나타나 누구든지 그 책을 보고 종교 신앙을 갖게 한 것이 기독교의 근본 진리의 말씀입니다.

 

  2. 아들로 약속을 준행함

  영광이란 것은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누릴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것이니 아들을 사람의 인격을 가지게 하되 첫째아담과 같이 흙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성신으로서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역사해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만민을 약속의 말씀대로 구원하기 위하여 죄의 대가를 걸머진 제물로써 십자가의 화목제를 이루고 부활 승천케 하는데 까지 성자를 통하여 역사한 것입니다. 이것을 도성인신한 성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3. 성신으로 약속을 준행함

  이것은 아들을 통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중생 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은 인생으로서는 성신을 받을 자격이 없으나 아들의 피로 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아무리 중생을 받았더라도 인간 자력으로는 왕국을 이룰 수가 없음으로 성신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인간을 지혜롭게, 약한 인간을 강하게 해서 마귀와 싸워 승리하게 하시므로써, 아들이 승리한 것같이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한 자를 왕국 반열에 들게 하고, 그 수가 찰 때에 하나님은 원수 마귀를 역사하지 못하도록 없이하는 것을 심판이라 하는 것인데, 이 때에 아들을 보내서도 믿지 않는 자와, 성령을 보내서도 순종치 않는 자와, 또는 예언대로 보호하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를 다 없이하고, 예수를 믿고 성신을 받은 자가 예언을 지킨 대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성부 성자 성신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조물주 하나님은 다시 새 일을 행하므로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더러워진 천지를 다시 새롭게 해서 조물주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된 사람으로 누리게 하므로 성부 성자 성신은 사람과 같이 동거하며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길이 길이 받으시면서 당신의 사랑의 뜻을 이루는 영생의 기업을 사람에게 주어서 신의 영광 안에서 길이 길이 찬송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 일체라 하는 것입니다.

 

 

【문】18. 기독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는 조금도 복잡성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는 사람이 어떤 신을 찾거나 어떤 진리를 연구하거나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신께서 사람을 찾고 신께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원칙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금일에 기독교가 복잡성을 띠게 된 것은 신앙의 대상자인 하나님의 불완전이 아니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자들의 과오라고 보게 됩니다. 그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탄생한 것이나 교훈한 것이나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으로써 완전한 교회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부활을 증거하라 모든 죽은 영혼도 다 중생을 받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해서 민족적 국경적 차별이 없이 다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을 뵈올 수 없고 다락방에 들어와서 합심하여 기도를 하던 중에 오순절에 홀연히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큰 불이 혀같이 나타나서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던 그때부터 큰 역사는 일어나서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반대하던 자라도 그 역사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에 건너가 로마에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주후 66년경에 네로 황제라는 악한 임금이 거짓 흉계로 로마 도성에 14개구나 되는 도성을 10구를 자기 손으로 불살라 놓고 기독교인이 이렇게 했다는 누명을 씌워 가지고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일을 할 때에 모든 사도는 다 세상을 떠나되 순교로 세상을 마친 것입니다. 그 후에 기독교는 200년이 가까운 세월을 지상에서 예배를 못드리고 카타콤이라는 산 속에 굴을 파고 거기서 신앙을 보존하며 성서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노 황제 때에 기독교는 큰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어 황제 명령으로 교회를 움직이며 포교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카타콤에서 나온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고 다음에 사람들이 성신의 역사보다도 권리를 쥐고 소위 카톨릭이란 이름 하에서 교회가 사도적인 시대의 교회와는 달라지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이 원인은 카타콤의 성도들의 신앙을 본받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들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숭배라는 것은 그들이 보던 성경이나 그들의 해골이나 또는 패물 기타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자기네는 정통이란 것을 자랑하기 위하여 무형적인 영계 운동보다도 유형적인 어떤 기념품, 사진, 동상 등의 숭배가 시작되어 성신의 법을 어기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질 될 때에 소위 교황이라는 교권이 나와서 신자들의 신앙을 구속시켜 성신의 활동을 못하게 하고, 교황이 명령하는 것만을 순종해야 정통이라는 데서 교회는 진리가 암흑 세계로 들어가고, 교인들은 성경을 듣지 못하고 교황이 기록해 보내는 글만을 가지게 되므로 신앙생활이 전부 의식화되고, 봉건주의적인 교황 권리 아래에서 예속화되는 자리에까지 들어가므로 로마 교인은 이대로 있어서는 도저히 사도들이 전한 교훈의 광명을 세계에다 비출 수 없는 자리에 떨어졌으므로, 하나님은 루터라는 사람을 들어서 쓸 때에 복음의 비밀을 성신의 계시로 알게 해서 교황의 모순된 점을 95조나 발견하여 반기를 들 때에 이것을 비롯하여 종교 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생명이 피해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구교와 신교라는 양파가 생기어 세계적인 선교 활동을 동등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와서 소위 신교라는 파에서 많은 종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신앙 자유를 부르짖는 간판 밑에서 성신의 역사로 시작되었지만 그 자유가 세속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교회는 복잡성을 띠는 폐단이 있으므로 그때 그때에 영계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부패한 교계를 다시 신령한 운동을 일으킬 때에 부패한 교권이 반대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장구한 시일이 흘러갈 때에 많은 교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각 교파가 시작은 신령하게 한다고 했지만 교회가 확장될 때에 또다시 부패성을 띠게 되고 보니 신령한 사람은 소수요 부패한 자가 다수가 될 때에 민주주의 정책을 쓰는 신교는 자동적으로 분열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황의 명령에서만 움직이는 교단이므로 아무리  의식화되고 세속화되었다 하더라도 분열을 가질 수 없는 교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일에 와서 소위 신학자라는 인물이 신 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하는 것을 들고 나오는 현실에 신학계에 큰 복잡성을 띠게 되어 종된 자들이 자기가 들고 나온 신학을 중심하여 교파를 세우고 성경의 원리를 중심하지 않고 신학설을 중심할 때 성경은 오히려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가 이렇게 복잡성을 띠는 이때에 소위 통합이니 합동이니 하는 간판을 들고 야단을 치지만, 이 시대는 어떠한 때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성도들이라면 여기도 저기도 가입할 필요없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성경에서 시대를 바로 알고, 성경에서 우리의 시대적인 사명이 무엇인 것을 바로 알아 현대에 닥쳐오는 난국을 어떻게 돌파한다는 것이 성서로서 분명히 알 것이니, 우리는 복잡한 신학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목적하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맞추어서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계10:6~11).

 

 

【문】19.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이것은 인간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올 때에 남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계7:1이하를 보면 땅과 바다가 큰 피해를 당할 바람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불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다른 천사를 통하여 있는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다나 땅이나 나무나 해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진노의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을 종이 되려면 은혜시대 종으로서 다시 무장을 해야 된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엡1:13을 보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종된 사람에게 오는 인이 아니고 죄인으로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에 받는 성령의 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14만 4천명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사명자들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성신의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과 이마에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이 성서를 보아서 다른 시대라고 봅니다. 계9:4에 보면 첫째 화가 올 때에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검은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오는데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을 보면 인 맞은 종이라야 첫째 화를 피한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화가 오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각 지파라고 한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선지를 통하여 아무리 이방 세력이 강하게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만 필연코 승리는 이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새로운 왕국을 이룰 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한 것을 보면 이방 세력을 없이하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종이 이 14만 4천을 현재 아랍과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이라고 본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에 의하여 큰 모순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으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율법주의자와 싸웠던 것입니다(갈3:28~29). 만일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못되고 현재에 십자가의 도를 배반하는 중동의 이스라엘국이 진짜 이스라엘이라면 십자가는 하등에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계5:9을 보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한 것을 보면 피로 산 백성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요 또는 왕권을 가진다고 한 것을 보면 지상 왕국은 피로 산 백성으로 이루어지되 종들을 통하여 왕국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동방 해 돋는 데라고 한 것은 사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사명이 14만 4천을 일으키는 사명이라고 보게 됩니다. 14만 4천은 강한 용사로서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군대가 되는데 12지파의 모양으로 12반열이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록을 보일 때 변화성도가 일어날 시기, 일어나야 될 환란, 또는 붉은 세력을 없애버릴 심판의 재앙을 뜻한 것이니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14만 4천명으로서 끝을 맺는 역사가 되고 이들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성도가 되는 것입니다(계14:3).

 

 

【문】20. 부활성도와 변화성도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부활성도와 변화성도는 계20:4을 보아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던 자들이라고 봅니다. 부활도 2차가 있는 것이니 1차 부활은 왕권 받을 자를 일으켜서 왕국 조직을 이루어 지상 통치 천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2차 심판의 부활은 천국에 들어갈 자나 지옥에 갈 자를 다 부활시켜 행함에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 것인데 이미 구원을 받은 자 중에도 1차 부활에 참여할 자는 왕권의 반열에 들 자요 2차 부활에 들 자는 천국의 시민권을 받을 자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부활성도는 믿고 구원받은 자가 아니요, 구원받은 자 중에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순교를 당했지만 1차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주님 재림시까지 말씀을 증거하되 기독교 종말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는 그 증거를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 환란 가운데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백성으로 바다의 모래같이 번창하게 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말씀을 증거하다가 공중에 나타나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변화 승천하여 왕국 조직의 반열을 이루어 지상 강림할 때, 변화성도는 계19:19이하와 같이 짐승의 군대를 쳐 없애는 백마 군대가 되어 대승리를 보게 되므로, 부활성도들은 이것을 감사하다고 화답하는 노래를 계19:1~5와 같이 노래하면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부활성도는 부활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왕권 반열이 있고, 변화성도는 변화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반열이 있게 됩니다.

  변화성도는 지상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고 그 자손이 지상 축복을 받는 새 시대 왕족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새 시대라는 천년 왕국은 변화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모든 백성은 다 변화성도의 열매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 통치권을 받되 부활성도는 정치의 문관과 같은 반열이 되고 변화성도는 무관과 같은 반열이 됩니다. 왜냐하면 변화성도는 사명이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가지고 싸우던 사람이므로 거기에 따라서 반열이 조직되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나라의 대통령의 계통적인 반열이 있고 군부의 총사령관의 계통적인 반열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주 재림시에 대표적인 사람의 지도하에서 하나같이 움직이다가 하나같이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니 세밀히 말하자면 부활성도는 베드로의 사명 계통에서 반열이 이루어지고 변화성도는 뢰자의 사명 계통에서 반열이 이루어집니다.

  뢰자라는 것은 요한에게 준 이름인데 피 값을 갚는다는 사명의 뜻이요, 베드로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사명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계통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순교의 피를 흘렸고 뢰자의 사명 계통은 교회를 심판할 때에 쓰여지는 계통입니다. 아무리 베드로의 사명 계통에서 선 교회라도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진노의 날에는 예언의 말씀에 의하여 종들과 교회를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누구든지 네가 죄를 사하면 사하여지고 정하면 정하여 진다고 말했고, 요한 사도에게는 계시록을 줄 적에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가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한다고 했고 감하면 이 책에 기록된 거룩한 성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사명 계통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만을 중심했고 뢰자적인 사명은 재앙의 날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을 일으켜서 지상 왕국을 이루는 사명입니다.

 

 

【문】21. 중생과 성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중생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과정이라면 성결은 완전히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보게 됩니다.

  중생은 누구든지 십자가 부활을 믿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며 숨은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게 되는 동시에 마음에 시원함을 받고 깊이 깨달아지는 마음이 생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가 명백히 믿어지며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는 동시에 죽어도 진리를 위해 산다는 결심이 생기며 누가 아무리 말려도 거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신앙을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 중생 받은 사람의 걸어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결이라는 것은 결심보다도 마음이 성결해지는 데는 죄의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이며 아무리 복잡한 일이 와도 마음이 평화롭고, 아무리 죄의 환경을 보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아무리 억울한 사정을 만나도 마음에 타격을 받지 않고, 아무리 낙심될 일이 와도 마음에 피곤을 느끼지 않고 나가는 것을 성결 단계라고 봅니다.

  이 성결이라는 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직접으로 통하는 세계에서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영계에 도달하며 자기의 구원관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남을 살린다는데 목적을 두고 조금도 괴로움을 생각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을 성결 단계에 있는 사람의 생활이라고 보게 됩니다.

 

 

【문】22.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답】구약은 약속을 세운 것이라면 신약은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구약의 약속을 세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5경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고생하다가 그 민족을 하나님이 징벌하여 해방을 시켜 가나안 땅으로 온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 하나를 목적 둔 글이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증거는 모세5경으로 섰던 교회는 십자가로 끝을 맺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사기,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금일에 새 시대를 이루는 말기에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글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46:10에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민족의 역사에서 나타난 일은 말세 성도에게 영자적인 교훈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그 시대의 묵시를 본 것은 전부가 말세의 새 시대를 이룰 시기를 당하여 지상에 왕국을 이룰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된다고 봅니다(계10:7).

  이제 구약과 신약을 연결 지어 말하자면 모세5경은 십자가의 화목제로 폐지하고 은혜시대의 교회는 구약을 이용하되 사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이용한 것 외에는 신약에다가 더 첨부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성신이 역사해서 은혜시대에 천국을 목적한 성도로서 조금도 혼선된 신앙에 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 놓은 것이니, 우리는 예수 행적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되 그 밖에 구약 성경을 더 가감시키면 순수한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가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게 할 때에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더 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딤전1:5에 우리의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는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시대의 순 복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세밀히 뽑아놓은 성경 절수 외에 다른 성경을 더 가입시키면 신앙의 혼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맞이할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는 변화성도는 모세5경은 필요 없지만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본 묵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이니 만큼 전체를 우리가 그대로 읽어서 전할 복음이 되는 데는 계시록 10장과 11장 같이 다시 예언하는 사명자들이 그대로 읽어서 진노의 날에 남는 백성이 될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되 자기 사명에 따라서 해석하여야 되는 것이니, 사도들이 기록하지 않은 주석책을 사람이 썼다는 것은 완전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4복음서와 편지서 외에 선지서와 계시록 주석이라는 것은 은혜시대 종이 감히 알 수도 없고 전할 사명도 아닌 것이니, 이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들이 전할 말씀인데, 지금 기독교에서 어떤 박사들이 쓴 계시록 주석이나 선지서 주석을 가지고는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고, 오직 특별한 사명자가 나와서 하나님께로 분명히 가르쳐 주는 일을 받으므로만이 전하게 된다는 것을 모든 선지는 미리 말한 것입니다.

  사28:11과 59:21을 보면 환란 가운데 역사할 종에게 입에 말씀을 주어서 모든 비밀을 알도록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은 초림의 주를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의 복음서와 편지서가 연결되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성도가 구약 선지서와 계시록을 연결시켜서 전할 때에 성경은 전체가 다 이루어지며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문】23. 영의 생명과 육의 생명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하나님께서 흙에서 사람의 몸을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호흡을 하게 하되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창2:7에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동물에는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동물이란 것은 활동을 하게 하되 영의 활동이 없는 활동을 하도록 해서 단지 공기와 물을 통하여 움직이는 것 뿐이요 사람은 공기와 물을 초월한 생명을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이 땅에서 공기와 물을 통하지 않고는 육의 생명을 보존할 수가 없는 것이로되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결합된 활동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살되 아무런 발전이 없이 움직이는 것 뿐이요 사람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발전할 기능을 준 것은 하나님 자체가 완전이신 동시에 사람에게도 완전을 주는 것은 사람을 창조할 때 완전케 한 것이 아니고 완전할 수 있는 영과 육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죽으면 없어지고 마는 것이며 사람은 몸은 부활하고 영도 하나님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 동물의 몸과 사람의 몸은 그 생명이 같지 않고 다르다.

  사람의 몸에는 얼마든지 영생할 수 있는 몸이 되게 하는데는 아무런 식물이 없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영생과를 먹으므로 육의 생명이 영생을 하며 그 몸으로 모든 영광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생과라는 것은 몸에 해당되는 것이며 영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은 영생과를 먹기 전에 성신의 역사 아래서 얼마든지 발전해서 그 영이 완전하도록 해주는 것이며 육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날마다 거룩한 생활에 들어가도록 역사해 주시므로 그 몸이 영생과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아담, 하와는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영생과를 따먹을 영생할 인격을 못 이루었지만 예수의 피로 산 백성은 살아서 영생과를 따먹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는 것을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란 것입니다. 사람이 영광을 누리는 것은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결합되는 생활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사랑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문】24. 사람이 어떤 방침으로 살아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자 합니다.

【답】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장 귀한 사명을 맡긴 것은 사명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과 같이 영광을 누리되 하나님께는 몸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영·육이 있는 사람으로 피조물인 만물을 금세에도 내세에도 사용하라는 것이 인생의 가치 있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어떻게 살아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했다 하여도 어떻게 살면 타락한 사람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사용하게 될 수 있느냐는 것을 가르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골3:1).

  사람은 생각을 바로 가질 수도 없게 된 타락한 인간이지만 생각을 바로 가지도록 하는 것을 성신의 역사라고 합니다(롬8:6). 이제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생각을 돌이킬 때에 사람의 생각은 그때부터 바로 깨닫는 지각을 체험하게 됩니다(요一5:20).

  둘째 : 말을 조심하는 것입니다(약3:2~6).

하나님께서 동물보다도 사람에게 말을 주신 것은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임을 지고 갚아 주는 것입니다(마12:37). 말이란 것은 사람에게 준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새 땅의 축복을 받는 일에 대표적인 사람에게 입에 말씀을 준다고 사59:21에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하여 말할 때에 가치가 있고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세상을 생각하여 나가면서 말하는 것은 전부가 아무런 필요 없는 객설이 됩니다. 인생으로서 최고의 가치는 그 입에 열매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이 하시는 일을 종의 입을 통하여 증거하게도 하시고 또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할 특권을 주셨으니 인생의 가치있는 방법은 입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딤후1:3).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적에 양심 하나를 보고 죄를 사하기도 하고 은혜를 내려서 그 사람을 완전히 들어 쓰기도 하는 것이니 언제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게 됩니다. 종교라는 것은 양심을 통하여 신의 존재를 믿는 동시에 그 신께 인정을 받는 생활을 하기 위한 양심이라고 보게 됩니다.

 

 

【문】25. 기독교에서 이적이 나타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이적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 전도를 위하여 나타나는 이적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믿음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요, 너무나 모르는 지방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적 자체가 복음이 아니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기 위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행4:29~31).

  둘째 : 승리를 이루기 위하여 나타나는 이적입니다.

  이것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써 이길 수가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기도록끔 해주시는 것입니다. 행12:1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깊은 옥에 갇혔을 때 천사를 보내어 옥중에서 인도해 나올 때에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한 일이나 철문이 열리게 한 일이나 모든 일은 베드로를 건져내기 위하여 나타난 이적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바로의 압박에서 건져낼 때에도 이적을 통하여 구원했습니다.

  셋째 : 각성을 주기 위하여 나타나는 이적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말기에 잠든 심령을 깨우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인데 이것을 권세 역사라고 합니다.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는 역사입니다(계11:3~6). 이 이적은 원수를 굴복시키고 나가므로 사로잡힌 백성을 찾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교회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2:1이하는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나는데 해를 입은 여자가 발아래 달을 딛고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므로 철장 권세를 받은 자가 나오고 그 교회가 보호받는 광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재림 후에도 이적으로 보호하는 일이 있으므로 만이 교회가 남아서 이 땅에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넷째 : 이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개인적인 인격으로 받는 체험도 있게 하고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기도 하고 어려운 위기를 당할 때에 종을 돕기 위해서도 종말에 완전 승리를 이루기 위하여 있는 것이니 이적을 폐지라 하는 신학설은 모순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큰 이적이 없다면 기독교는 도저히 보존할 수가 없는 위기가 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과거에는 칼빈 신학에서 이적 폐지란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그 신앙관으로는 도저히 발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중심 성결을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에 하늘이 열려지는 광경이 나타날 때부터 약 15년간 계속으로 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받을 때에 그 은혜 한계를 척량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종이 이적을 나타나는 것을 부인한다면 이것은 망령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중심한다는 것도 잘못이요 이적을 부인한다는 것도 탈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약속을 세운 것이니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목적할 때에 이적은 사람이 구해서가 아니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보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잘못이요 이적을 믿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잘못이요 이미 이루어진 말씀을 믿는 동시에 이루어질 일에 그대로 될 것을 믿고 매일같이 충성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문】26. 신앙 발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아 발전하는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아 끝을 맺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난 것이요 하나님의 역사로 자라나는 것이요 하나님이 갚아 주는 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발전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 발전의 요소

  신앙은 사람이 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데는 말씀의 지식이 풍부해야 됩니다. 금일에 교회가 신앙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퇴보 상태에 있는 것은 신앙의 지식이 하나님 말씀에 의하여 너무나 희박한 증거입니다.

  신앙 발전이란 것은 열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아는데서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것은 언제나 퇴보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알아서 그 의에 뜻을 순종할 때 의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은 정신 작용을 발전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의 심령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 발전의 소망

  신앙의 소망이라는 것은 현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완전한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지상 통치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현 교회가 소망의 확실성을 가지지 못할 때에 신앙은 정지 상태에 있습니다. 금일에 있어서 기독 신자에게 어떤 소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고 또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전멸될 위기를 앞에 놓고 이 세파 속에서 우리의 살길이 무엇이냐는 확실한 소망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대로 시대를 따라 역사가 오는 것이니 현 교회가 이 진리를 완전히 깨달아 소망의 확실성을 가지고 담대히 나서는 자라야 그 역사가 임하는 체험을 받게 되어 삼대 확증이라는 체험을 갖게 되므로 소망의 확실성을 가지게 됩니다.

  삼대 확증에 있어서 첫째는 역사적으로 흘러온 신앙의 체계를 확증해야 될 것이요, 둘째는 자신의 인격적인 체험에서 신의 역사를 확증적으로 체험해야 될 것이며 셋째는 실천 생활에서 확증적인 체험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확증이 있으므로써 완전한 소망이 확실한 동시에 그 신앙은 나날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산 속에 있는 귀한 광물을 발견했다면 자동적으로 그 광물을 완전히 내 것을 만들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은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에 있어서도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될 때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열심은 정상적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 발전의 위치

  신앙이 위치라는 것은 가정도 교회도 사업도 신앙의 위치가 됩니다.

  첫째는 가정 환경이 신앙을 발전시키는데 좋은 위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가정을 떠나는 데서 발전이 아니요 가정을 중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에 합당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결혼을 하여도 신앙을 중심해서 자녀를 교육해도 신앙을 중심해서 이루어진 가정이 될 때에 그 가정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는 내 영적 신앙 생활을 위하여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이 있는 교회는 신앙 발전에 오히려 큰 손해를 주는 것이로되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교회의 강단을 통하여 날마다 신앙 발전에 큰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한다 하여도 그 강단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힘이 없다면 그 신앙은 발전에 큰 지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모인 곳에 같이 하신다는 것은 합심된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는 사업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육적만을 위한 사업도 있고 영적을 위한 사업도 있으니 그 사업이 영적의 손해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것을 목적하고 사업을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니 언제나 사업을 통하여 복을 주시고 그 사업에서 천국 건설 운동을 하는데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둘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문】27. 마귀 근본과 종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마귀라는 것은 왜 있느냐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사용한다는 것이 분명히 성경에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들어 쓴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욥2:1~6, 계20:1~3, 7을 보면 욥을 시험한 것도 사단을 들어 썼고 그 밖에 모든 종들이 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일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마귀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한다면 하나님과 동등권을 가진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쓸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을 보아도 원수의 세력을 허락하기도 했고 없애기도 하는 것을 계시에 보였습니다.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마귀를 이기는 자에게 세세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종은 특별히 시험과 핍박이 많도록 한 것은 그 종에게 특별한 왕권의 축복을 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제 마귀 근본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보게 됩니다. 창3:1을 보면 가장 간교하게 뱀을 창조했다고 했고, 계12:9을 보면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이는 자라고 했고, 계20:2을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하는데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으니 미혹을 하게 하는 것도 못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뱀을 들어 사람을 꾈 수 있게 허락을 해서 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는 자라야 그 몸이 영생과를 따먹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생령되는 사람을 시험해 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생령된 아담, 하와를 꾀어 본 것 같이 인간 종말에도 중생 받은 사람을 꾀어 볼 때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에게 미혹 받지 않고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그 몸이 살아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간다는 것이 계시록입니다.

  계22:6, 18~19을 보면 주님 다시 올 때에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복이 있다고 했고 예언을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고 했으니 이것이 살아서 지상왕국에 들어가는 자라고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생령의 사람 아담, 하와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에덴 축복을 빼앗겼고 둘째아담 예수를 믿고 중생 받은 자녀들이 마지막 때에 예언의 말씀을 지키므로 에덴 축복을 다시 받게 되는 것을 기독교 종말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예수를 믿으므로 천당을 가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중생을 받아서 가는 거요, 중생 받은 사람이 마귀 미혹을 이기고 예언의 말씀을 지키므로 지상 축복을 받는 것을 천년시대라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자면 마25:41에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이라고 했고, 계20:10에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어도 하나님 말씀보다도 마귀의 말을 따라간 자는 마귀와 같이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거요, 마귀의 말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령의 사람이 양을 잡아 제사드리므로 받는 구원은 구약 때 사람이요, 죽은 영들이 예수를 믿고 중생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은혜시대 사람이요, 중생 받은 사람이 예언을 지키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환란시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남을 살리기 위하여 말씀을 가지고 싸워 이긴 자는 왕권을 받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시민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행위 심판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심판인데 왕권을 받은 자 외에는 다 그 심판을 거쳐서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됩니다.

 

 

【문】28. 기도 응답 받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응답이라는 것은 어떤 음성이나 환상이나 신비의 체험만을 응답으로 본다는 것은 마귀 미혹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응답 자체는 인생이 할 수 없는 일을 신께서 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할 때 이루어지는 체험을 받은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알고자 할 때에 깨달아지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기 전에 기독교에 영생이 있는 것을 알아보려고 성경을 구해다가 매일같이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를 믿게 되어 이상하게도 죄를 깨닫는 마음이 생기어 눈물 흘려 기도한 다음에 성경이 깨달아지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믿을만한 진리라는 것이 깨달아지는 동시에 심령에 큰 소망을 가지는 생활을 할 때 자동적으로 믿어지는 체험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둘째 : 성결함을 받아 보려고 했을 때에 중심에 성결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성결이라는 것은 인생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응답의 역사로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셋째 : 남을 살려 보려고 밤을 새워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다가 피곤이 없는 세계를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워지는 소성이라는 것은 남을 살려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넷째 : 원망할 일에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뜻밖에 하나님 말씀이 통달되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귀의 시험이 오는 것은 억울하게 하는 일이 있는 중에서 진리가 밝아진다는 체험입니다.

  다섯째 : 낙심할 일에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새힘을 받고 입에 말씀을 받는 체험이 있는데 그때부터 내 입으로 얼마든지 책자를 불러서 쓰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응답이 계속으로 있지만 크게 응답의 단계를 말하자면 다섯 가지로 구분을 지어서 말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나 자체가 바로 서 보려는 기도로써 오는 응답도 있고 원망할 일, 낙심할 일, 억울한 일이 와도 원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다가 받은 체험도 있는데 기도라는 것은 그 신앙 향상에 따라서 그 응답이 있되 때를 따라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하여 있다고 봅니다.

  우리 인격이라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있는 것인데 최고의 영계에 올라가는 자리는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데서가 아니고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데서 남을 살릴 수 있는 종이 되도록 하나님은 들어 쓰는데는 많은 열매로 이루어지는 것이 응답으로 되되 내가 목적한 바가 있다해도 그것은 다 실패로 돌아가고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응답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자리로 들어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은 정도에서 감사하는 기도도 있고, 여러 가지 실패를 당했지만 다시 새로워지는 체험에서 드리는 감사의 기도도 있고, 남을 도와 보려다가 그 사람에게 큰 손해를 보고서 뜻밖에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체험을 받을 때 감사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나의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깨달을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 아래서 우리보다도 먼저 아시고 계신 것인데 사람이 구할 때에 그때 가서야 하나님이 깨닫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예정하신 뜻을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적에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환경과 힘을 주고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있되 무엇이나 인생의 계획밖에 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체험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