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구원을 확신하는가? / 지은이 존 맥아더 , 옮긴이 이지혜 / 펴낸곳 (주) 대성 / 2016년
5대째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캘리포니아 주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40년 넘게 사역을 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 부임할 때 설교 이외의 모든 교회 업무는 사양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지만,
우리 인간은 많은 의심들로 구원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강력한 가르침, 죄책감, 무지, 불확실성, 유혹, 시험, 새로운 생활, 불순종 의 8가지 의심에 대해 말하고,
이러한 의심에 대해 영적 생활로서 승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어느 교인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내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오랫동안 그레이스 교회를 출석해 왔고,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 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죄의식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으며, 결국 자신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성경 공부를 해 왔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해 왔는데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면서 죄에 대한 모든 유혹을 떨쳐 내기로 결심했지만,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다고 자책하였습니다. (중략)
저자는,
위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하는 이들에게,
구원 받지 못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두에서 언급한 의심을 가지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지게 된 것입니다.
6장에서는 의심을 다루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몇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의심, '강력한 가르침' 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대해 강력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 중에, 확신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우리도 고귀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자기의 죄성을 더 크게 보고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의심, '죄책감' 입니다.
자기 감정에 이끌려, 자신의 죄가 용서받기에는 너무 크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자는, 양심은 용서를 말하지 않으며,
양심이 아는 것이라고는 죄를 깨닫고 죄책감을 갖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의 인용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탄과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눈다....
'마귀는 늘 나를 따라다니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유혹하지.
그래서 내 마음을 얻으려는 속셈이야,
왜냐하면 마귀는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할수록,
사탄의 사랑을 잘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거든.' "
이렇게 사탄이,
하나님의 사랑은 빼버리고, 거룩한 요구 조건만으로 우리를 짓밟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계속 의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덟 번째 의심, '불순종' 입니다.
저자는,
확신이 부족한 가장 분명한 이유는 '불순종'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확신은 순종의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큰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의심 가운데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죄를 다루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
우리의 삶에서 주요한 죄를 제거하면, 나머지 죄는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장수가 죽으면 군대는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골리앗을 죽이자, 블레셋 군사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고 익숙한 죄,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죄를 처단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죄에 빠지면, 빨리 그 죄를 정복하고,
사탄에게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 틈을 주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주는 의심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부정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확신은 순종의 보상이다" 라는 말씀이 새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