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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일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크고도 위대한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게 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오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면박과 휘장을 제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새 시대의 귀한 복을 꼭 받게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질문하신 내용 중에


1. 이뢰자 목사님의 부활

2. 교주부활의 교주에 대하여

3. 집회를 주일에 걸쳐서 하는 문제에 대하여


새일교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답변을 나누어서 드리고자 합니다.


1. 이뢰자 목사님의 부활에 대하여


무덤에 내려가면 찬양하지 못하며 진리를 선포하지도 못하며 호홉이 끊어지면 당일에 그 도모와 모든 계획이 소멸된다고 했습니다(사38:18 시30:9 시146:4).


성경의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고 시간적으로는 첫째와 둘째의 부활의 있습니다.


성경의 어디서도 부활한 후에 사람이 무슨 일이나 역사를 한다는 말씀은 아무데도 없고 오직 믿음과 행함에 따라 지옥의 형벌과 천국의 복을 누리는 것뿐입니다.


부활해서 역사한다는 것은 증인권세의 역사로 계11:1~12절의 역사입니다.

이 사명은 무덤에서 살아나서 할 사명이 아니고 산 자들의 역사입니다.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개혁될 때 세례요한은 사40:3절의 사명자로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세례를 베풀었으나 열두 사도에 들지 아니한 것처럼 은혜시대에서 환난시대로 개혁될 때 성경적으로 해 돋는 동방 땅 끝 북에서 오게 하시고 산에서 신과 말씀이 임하여 아름다운소식을 받으신 성경에 기록 된 사명을 다 하셨기 때문에 다시 부활해서 역사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세례요한처럼 마지막 선지자요, 사도가 아닌 것처럼 변화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이목사님의 부활역사를 믿지 않는 새일교회와의 차이점은 예표적이냐 완전역사냐는 차이점입니다.

성경은 새 힘을 받으면 피곤없고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것인데 이목사님은 72년 8월에 호흡이 끊어져 무덤에 장사 지낸바 된 것은 예표적으로 임한 새 힘이기 때문입니다.


완전역사라고 믿게 되면 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장사 지낸지 45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죽음이 아닌 모략이나 또는 부활해서 역사할 것을 믿는 것은 진리사랑을 받지 않는 자와, 자기의 길을 택하는 자에게 부어 주신다는 유혹의 영의 역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새일교회를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고 시온 대로의 돌을 제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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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일교회의 사이비성에 대해 문의 합니다

 그 쪽 사람들 주장에 의하면 이뢰자 목사라는 사람이 부활해서 역사한다는데 그 무슨 해괴한 소리입니까? 

전형적인 이단사이비의 모습이네요 교주부활

자신들이 이단임을 스스로 자인하면서도 왜 그걸 모르고 있을까요? 안타깝네요


그리고 새일교회라는 곳은 집회를 주일을 걸쳐서 하는 모습도 딱 사이비스럽더군요

그러면 각 교회 신자들이 전원 한 곳으로 모입니까? 

월요일에 학교나 직장에도 안나가겠군요

물론 그렇겠군요 그래야 자신들의 주장이 모순이 되질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이단사이비가 아니라구요?


진솔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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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y헌국 2017.11.30 23:39

    위대하고 놀라운 새일의 비밀을 알아
    주를 위한 수치와 인내로 끝나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새시대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새시대 영광에 참예 하시기를
    바랍니다.

  • ?
    새일 2017.12.02 20:37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신앙으로 승리하시어 주님을 늘 기쁘게 해 드리길 기도합니다. 아멘
  • ?
    새일 2017.12.05 12:43

    하나님의 역사와 기독교 본질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새일교회라 이름하면서 이뢰자목사님이 부활하여 역사한다고 믿거나 죽지 않고 감추어 놓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일단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무속신앙류이며

    그들의 주장은 `이뢰자목사가 두 증인이며 두 증인으로 역사해야 하니 받드시 살아나든지 다시 나타나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너무 무지한 소리입니다.


    출애굽 역사 때도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부르셔서 쓰셨지만 결국 요단 건너 약속의 땅은 밟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8장에 

    사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사8: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갸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 여호와께서 북방으로부터 환난이 온다는 묵시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전하게 하실 때 `두 증인` `우리야`와 `스가랴`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뢰자목사가 부활해서 역사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야`와 `스가랴`도 부활해서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요한과 야고보 두 형제에게 동시에 한 이름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에게 `두 증인`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명은 머물러둔 사명이었던고로 야고보는 목베임 받아 순교했고 사도요한도 계시록의 말씀만 받아서 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만 하고 그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사명이라는 것은 계통적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요한과 야고보도 받드시 부활해서 두 증인으로서 1260일을 예언해야 합니다.


    이뢰자목사와 존 브린트라는 실체도 없는 사람을 두 증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미혹의 소리일뿐입니다.

    사명은 계통적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만 다 하고 남은 사명은 다음 세대와 다음 종들에게 계승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육체가 살아있는 종들을 인쳐서 쓰시는 것이지 무덤에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서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게 쓰임받으신 이뢰자목사님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여 목사님을 욕되게 하지 맙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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