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컬처_ 독서 후기

by 정진영 posted Aug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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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터 컬처 / 지은이 데이비드 플랫, 옮긴이 최종훈 / 발행처 사단법인 누란노서원 / 2016년


 미국 남침례교회 국제선교이사회의 대표로 일하면서,

 미국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교회지도자를 섬기고 있는 저자는,


 세상의 성공을 쫒는 대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 가능한지 검증하고 싶어,

 '래디컬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복음과 문화가 충돌하는 사이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파해 나가야 하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많은 문제들, 문화라는 틀 안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 즉,


 가난, 낙태, 인종, 신앙의 자유 등을 소주제로 다루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복음과 문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복음이 가지는 공격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첫 구절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로 시작하여,


 창조주로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이 그와 관련이 없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공의로 표출된다고 하면서,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느니라'


 라는 말씀을 통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공격성에 대해,


 현대인들은 본능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고 하는데,


 이러한 인간의 본능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며,


 에덴 동산에서부터 인간의 본능은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뱀은,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의 질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퇴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질문을 던지는 사이에,


 인간은 자신을 심판 받을 대상이 아니라,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악과 나무는, '앎'에 있어서,


 단순히 선과 악의 '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 하는 행위를 가리키게 됩니다.



 즉, 첫 인류가 선악의 열매를 먹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선악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직접 그 책임을 떠맡으려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던진 유혹의 본질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은 도덕을 재단하는 결정권자가 된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에덴동산에서 첫 인류의 반역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빠진 세계관은,


 선악의 판단을 온전히 사회적인 합의에 맡기는 절망적인 주관성만 남게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서, 문화가 옳다고 여기면 옳고, 잘못이라고 여기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앉히는 것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궁극적인 기준을 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즘, 자기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존감, 자신감, 자기만족, 자발성, 자화자찬, 자기사랑 등...


 자신에 몰입하는 정도를 표현하는 단어는 무수히 많으며,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끊임없는 갈망에 사로잡혀 산다면, 죄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문화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에 빠져 있고, 본능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러는, 옳고 그름 따위는 애초에 없으며,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은 죄다 망상이자, 위선이라고 그릇된 논리를 펴며,


 문화의 진보를 핑계삼아, 선악의 기준을 바꾸는 식으로 죄의식을 떨치려 하고,


 탐욕이 잘못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화라는 포장 아래 자행되는 무수한 악행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찌, 저자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낙태'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매년 4천 2백만 건의 낙태가 자행되고 있는데, 매일 115,000 건인 셈입니다.


 저자는, 해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들이 4천 2백만 명씩이나 집단학살 당하는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우,


 여성들 가운데 대략 3분의 1정도는 평생에 한 번쯤은 낙태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오로지 그 분 만이 생명을 부여할 권세와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비춰보면, 낙태는,


 생사여탈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유일하신 주권을 침해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임신 3개월이 되면, 심장, 뇌 등의 장기가 생기는데,


 임신 10-14주 사이에 대부분의 낙태가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때를 절단과 제거의 '최적기'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진행되는 순간에 기구를 들이대거나,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해서,


 하나님이 키우신 생명을 박살내는 것입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태아의 성별이나 장애아 여부도 낙태의 원인입니다.


 남아 선호 사상의 문화권에서는 수많은 여자 아기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태아 검진 과정에서, 다훈증후군의 장애가 발견될 경우, 산모 중 92%가 낙태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유대인들은 본인 또는 부모의 죄 때문에 그런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알며 선포하고 기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치 않거나 성폭행 등으로 인한 임신은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하는지,


 피해 여성의 감정은 무시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상처를 입은 여성이 어떤 아픔을 겪는지 상상 조차 할수도 없으며,


 주위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측은히 여기며, 사랑으로 지원하고,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섬겨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복음과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가장 가혹하게 타압받는 세계 50개국을 매기는 순위에서,


 북한은 오랫동안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소지 하거나,


 남한 또는 중국 크리스천들과 접촉한 혐의가 있는 북한인은 총살형을 받게 됩니다.


 북한 경찰관들이 탈북자로 위장하고 중국 전역의 교회들에 침투하여,


 북한 교회와 연결이 있는지 확인하고,


 북한 크리스천들을 색출해 살해할 목적으로, 가짜 기도 모임도 연다고 합니다.



 남아시아 무슬림의 어느 가정에서는,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딸을 친부모가 독살하기도 합니다.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신학생들의 사례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거느린 나라에서,


 정부와 사회적 탄압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편에서도,


 신학생들은, 새로운 신자 30명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에게 교회를 세워 주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데,


 학위를 받는 졸업생들은 모두 교회 개척의 요건을 채우고 돌아온 자들이었습니다.


 핍박하는 무슬림의 손에 목숨을 잃은 두 학우를 위한 묵념 시간은, 졸업식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이었습니다.




 세계에는 11,000 여 민족 중에, 아직도 6천여 민족, 약 20억 명이 미전도 상태라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복음을 전파받은 우리들에게는,


 복음을 듣지 못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