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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믿음
 
  총 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인데 믿음에 대하여 칭찬한 일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한다. 인간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도 믿음을 보고 칭찬하신 것은 믿음으로만이 구원을 받게 하는 복음을 가지고 오신 주님이기 때문이다. 이제 칭찬 받은 믿음에 대하여 이 달에는 공부하고자 한다.
 







제1과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심
- 마 8:5~13,  요절:10 -
 
 서 론
  주님께서 제사장들과 유사와 장로들을 책망하셨지만 어찌하여 아무런 존재 없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했느냐에 대하여 오늘은 공부한다.
 
  1대지 : 간구하는 믿음 (5~7)
  믿음이라는 것은 간구하는 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간구하는 자라면 주시기로 약속하신 주님이니 주 앞에 간구하는 자를 하나도 물리친 일이 없다. 이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위하여 간구할 때에 주님은 서슴치 않고 내가 가서 고치리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인간을 볼 때에 다 같이 죄인들이지만 그 중에서 마음이 간절한 사람을 볼 때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이나 대제사장이나 그 밖의 모든 성직자보다도 마음이 겸손하고 간절한 사람을 기뻐했던 것이다. 지금도 주님 앞에는 간구밖에는 아무런 것도 칭찬 받을 조건이 없는 인간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주고 싶은 심정에서 만민의 죄를 걸머진 어린양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간구에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정욕적으로 간구하는 것도 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간구하는 것도 있으니 이 백부장이 간구하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한 간구이었으므로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2대지 : 예수의 완전성을 믿음 (8~9)
  신앙이라는 것은 대상자의 완전성을 믿을 때에 대상자는 기뻐하는 것이다. 백부장은 군인 백 명을 거느리는 사람인데 자기의 수하에 있는 군사를 명령하면 절대 순종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한번 명령할 때에 무엇이든지 다 순종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명령하신다면 내 하인이 곧 완전하게 되겠나이다” 했던 것이다.
  이 신앙은 합법적인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주님은 완전한 신이시니 하나님의 아들된 권세로써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할 때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무엇이나 다 명령으로 행하는 것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 계셔서 한마디 말씀만 해도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는 모든 난제가 해결될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께서 이러한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신다. 오늘에 신자가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완전성을 믿고 담대히 나가는 자를 보기가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대지 : 이스라엘 중에서 만나 볼 수 없는 믿음 (10~12)
  많은 신앙가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었지만 이러한 합법적인 신앙을 만나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보다도 그 완전성을 믿어야만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그를 지배할 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명령은 천지가 움직이고 없이도 하고 있게도 하는 신의 완전성을 믿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4대지 : 응답을 받은 믿음 (13)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칭찬할 믿음을 가질 적에 직접으로 응답이 내리는 것이다. 백부장은 믿은대로 직접 중풍병으로 누었던 하인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먼데서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할 때에 먼데 있는 중풍병자가 나은 것을 볼 때 안수를 하지 않아도 낫는 기적을 볼 때 그는 더 용기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말하는 대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 응답이라 하는 것이다.
 
 결 론
  믿음이 없이는 우리 인생은 주님을 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죄인은 예수님께서 다 받아들였지만 믿음이 없는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했던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응답을 받는 것을 기독교의 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2과  열 두 해를 혈루증 앓는 여자의 믿음
- 막 5:25~34,  요절:34 -
 
 서 론
  가장 괴롭고 누추한 병은 혈루증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영양이 다 빠져 버리고 언제나 더러운 옷을 입고 사는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에서라도 믿음을 보존하고 그 믿음으로 칭찬을 받고, 구원받은 신앙을 공부할 때에 다음과 같이 배울 점이 있다.
 
  1대지 : 낙망 중에서 주님을 따라 온 일 (25~27)
  이 사람은 많은 의원에게 자기 몸을 의탁하여 수 없이 괴로움을 받았고 많은 재산을 허비하였어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더 병세가 중하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따라온다는 것은 전심 전력을 다해 최후의 용기를 내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실패와 낙망을 당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낼 때에 주님은 불쌍히 보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낙망 중에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참된 신앙 노선이라는 것이다. 택한 자라는 것은 여러 가지 실패를 당하고 최후에 주님을 찾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자가 주님을 더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실패가 없이 주님을 따라 간다는 것이 큰 믿음이 아니요, 실패를 당했지만 낙망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택함을 받은 자의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2대지 : 구원을 확신함 (28~29)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자기 손만 대어도 자기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댈 때에 즉시 완전함을 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여자는 일평생 자기가 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의심 없는 믿음으로 받았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과학을 초월한 것이니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어리석고 단순한 일 같으나 이 중심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오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인간의 생각에 될 것 같이 생각이 되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부인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다. 주 앞에 인정받는 신앙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면 내가 나으리라고 믿는 그러한 믿음이 아니고는 기독교의 본능이 되는 큰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것은 의심 없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3대지 : 예수님께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심 (30~32)
  능력이라는 것은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님께 있는 능력이 의심 없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진액이 충만한 나무뿌리에서 가지로 가는 것은 조금도 그 사이가 틈이 없이 붙어 있을 때에 가는 것과 같다. 능력은 언제나 주님께 있는 것이요, 그 능력이 효과를 주는 것은 전부 완전치 못한 인생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께 능력이 충만하다 하여도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갈 수가 없고 의심 없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만 가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동시에 행함이 있어야 된다. 이 여자가 믿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것은 행함이라고 볼 수 있다.
 
  4대지 : 축복을 받음 (33~34)
  여자는 모든 사실을 주 앞에 고백할 때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하는 축복을 받았다. 신앙이라는 것은 주 앞에 조금도 숨기지 말고 고백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주님께서는 축복을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백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일이지만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데 아니라고 하는 자에게는 자동적으로 노를 발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은 고백하기 전에 먼저 다 아시지만 사람이 정직히 고백할 때에 은밀한 가운데 하는 일을 아시는 주께서 정직하다고 인정하시고 축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따라 오지만 그 중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의심 없는 믿음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께 있는 것을 받는 표가 된다.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할 때에 믿음 하나만을 보시고 역사하기 때문에 아무리 성직자라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책망을 받았고 믿음이 있는 자는 아무리 인간이 볼 때 더러운 사람이지만 큰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주고자 하시는 주님을 기쁘게 하는 거요, 믿음이 없으면 주시고자 하는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므로 오히려 큰 화를 받게 되었다.
 
 




제3과  가나안 여자의 믿음
- 마 15:21~28,  요절:28 -
 
 서 론
  주님께서 믿음이 있는 자를 즉시 응답하지 않고 시험해 보는 일도 있다. 이것은 믿음이 크냐, 작으냐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이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하여 크게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1대지 : 부르짖어도 대답을 아니 하심 (21~23)
  응답이라는 것은 그 즉시에 없다고 기도를 중지한다든지 낙심을 한다는 것은 참된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응답이 없을 때에 더 간절히 구하는 것은 가장 주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무엇을 요청할 때에 빨리 주지를 못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줄줄 믿는 것은 자기를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큰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받을 사람이 끝까지 변치 않고 나가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사30:18를 보면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응답지 않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 끝까지 참는 것을 보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2대지 : 시험을 해 보심 (24~27)
  이 시험은 겸손한 자를 찾기 위한 시험이다. 주께서 택한 자를 시험해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변함이 있나 없나 보자는 것이요,
  둘째 : 겸손하나 겸손하지 않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 : 낙심하지 않나 하나 보자는 것이요, 또는 큰 기대를 가졌나 가지지 않았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이 있는 자는 변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낙심하지도 않고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는다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또는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는 감사할 것 뿐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3대지 :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심 (28)
  주님께서 어느 사도에게도 네 믿음이 작다고 하셨지만 이 여자에게는 네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다. 믿음의 위대성은 주께서 시험할 때에 오히려 감사하는 자라면 큰 믿음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다 주께서 시험을 해보고 그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되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신앙에는 시험을 거친 다음 가서야 큰 믿음이 되는 것이다. 믿음에는 작은 믿음이 있고 큰 믿음이 있는 것이니 작은 믿음은 주께서 시험을 해 볼 때에 마음이 흔들리는 믿음이요(마14:31), 믿음이 크다는 것은 아무리 시험을 해 보아도 오히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다.
 
 결 론
  믿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믿음이다. 많고 많은 사람이 거룩한 옷을 입고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지만, 그 무리는 다 책망을 받고 버림을 받았는데,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믿음이 크다는 칭찬을 받은 것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일이라고 본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의식이나 도덕이나 교리나 신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와도 믿음으로 이기고 나가는 자가 될 때에 이것이 주 앞에 설 수 있는 믿음이라고 본다.
  가나안 여인이 주님 앞에 나와서 2, 3차나 시험을 해 보아도 주여 옳소이다 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위대한 신앙의 본질이 된다. 왜냐하면 죄를 진 인간이 죽어야 마땅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불평도 둘 수가 없다. 무조건 주여 옳소이다 하는 신앙이라야 주님은 그 믿음 위에 축복하시는 것이다.
 




 
제4과  시몬 베드로의 믿음
- 마 16:16~20,  요절:16 -
 
 서 론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베드로의 믿음을 비롯하여 시작된 교회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은 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베드로의 믿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다.
 
  1대지 : 하나님께로 받은 믿음 (16~17)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준 믿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복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르친 것도 아니요, 스스로 연구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알게 해 주므로 믿는 것이 산 믿음이라는 것이다(마13:11).
  믿음은 택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신의 역사로만이 믿게 된다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완전한 표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큰 회석이 있을 적에 입장권이 있어야만 들어가는데는 그 입장권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준 믿음의 표를 가진 자라야 들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마11:27).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잃은 양을 찾는 역사에 한 표적이 되는 것이니 택한 자 외에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 사도적인 신앙이다(행13:48).
 
  2대지 : 마귀를 이기는 믿음 (18)
  믿음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의 권세 아래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이기고 벗어나도록 하는 동시에 완전히 이 땅에서 마귀 권세를 이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승리라는 것이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을 받게 되므로 사망의 권세를 벗어 나는 것이요,
  둘째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므로 이 땅에 마귀 세력을 완전히 없애고 성도로만이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겠다는 예언을 믿고 순종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베드로를 들어 쓰므로 시작된 교회가 세계적인 대 확장을 보았고 예수님의 완전 계시인 계시록의 말씀으로써 종말의 역사가 있으므로 완전 승리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죽은 영이 살아남으로써 교회가 서게 되고 죽은 몸의 부활과 산 몸의 변화가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대지 : 천국의 열쇠를 줌 (19)
  이것은 믿음으로만이 천국에 들어가되 베드로에게 천국복음의 총 책임자로 세운 것이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진리 운동의 열쇠를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는 역사를 개척할 때에 베드로에게 묵시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행10:14~16). 이방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일을 베드로를 통하여 시작했다(행10:44~48).
  하나님은 언제나 시대적인 역사를 할 적에 대표적인 사람에게 주권을 맡기는 것이다. 이 주권이라는 것은 복음의 주권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총을 받고 천국에 가는 복음 운동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는 자들은 목적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요20:30~3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다 영생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영생하는 말씀이라고 한다(요6:68). 이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눅24:47~48).
 
 결 론
  베드로의 신앙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니 이 믿음을 비롯하여 겨자씨 한 알이 온 밭을 덮는 나무가 되듯이 베드로 마음 속에 시작된 믿음의 씨가 금일에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룬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한 번 한 사람에게 오므로 그가 믿고 나가 증거할 때에 그대로 믿으면 똑같이 죄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고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통하여 이루는 회개 운동은 온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중생의 은혜를 받으므로 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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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청수복 2022.03.29 05:45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베드로를 들어 쓰므로 시작된 교회가 세계적인 대 확장을 보았고 예수님의 완전 계시인 계시록의 말씀으로써 종말의 역사가 있으므로 완전 승리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죽은 영이 살아남으로써 교회가 서게 되고 죽은 몸의 부활과 산 몸의 변화가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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