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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증거
 
  총 론
  금년 71년을 맞이하여 세례 요한의 증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강림시까지 증거하는 증거를 구체적으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려고 할 때에 과거에 선지시대는 약속을 세우는 시대가 구약 전서가 완전히 기록된 시대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때부터는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시대라고 봅니다.
  금년에 공부는 증거한 종들의 사기를 공부하는 동시에 우리 사명자의 할 일을 실천적으로 배우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1과  세례 요한의 잉태시의 증거
- 눅 1:8~17, 39~44,  요절:17 -
 
 서 론
  세례 요한은 잉태시부터 메시야가 오시는 일을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때에도 앞길을 열어주기 위한 선지를 내세운 것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던 성도들로 메시야를 영접하여 온전한 사도의 직을 받을 사람들을 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잉태시에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일이나 모든 이루어진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간구한 기도 응답 (8~13)
  부친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에 주의 천사는 향단 우편에 서서 너의 기도가 응답되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아들을 간구한 일이 있었는데 응답으로 수태 못하던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제사장족에서 세례 요한이 출생하여 마지막 예언자로 나타나되 이날까지 양을 드리던 제사는 메시야의 어린양의 피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나타나 지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던 것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둘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세례 요한이니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선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라는 예언적인 계시록을 받았다. 그러므로 요한이라는 이름 하에서 두 선지 사명이 나타났다.
 
  2대지 : 주 앞에 큰 자가 됨 (14~17)
  모든 선지 중에도 요한은 메시야를 직접 영접하도록 하는 선지이니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자요 율법시대의 끝을 맺는 선지였다. 이는 모태로부터 성신이 충만함을 입었다고 한 것은 생령의 사람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세상에 나되 예수와 같이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 아니고 그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지의 영으로 역사를 마치는 완전한 영으로 났다고 본다.
  자범죄가 없는 자이며 많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사람으로 날 때에 성신 역사 시대가 오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영접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영적으로 부패된 교계에 나와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는데 모든 부족을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역사가 있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게 깨우쳐 주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선지로서는 큰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시대의 종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이 되기 전 시대의 사람이니 회개를 외쳐도 베드로같이 큰 역사는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신이 내리는 때가 아니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에게 영접하도록끔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므로 열두 사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3대지 : 복중에서 뛰노는 증거가 있음 (눅1:39~44)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6개월 된 태중에 있는 요한이가 기뻐 뛰노는 증거를 보인 것은 모태로부터 성신이 함께하는 증거이다. 이렇게 된 것은 마리아에게 더 확신을 주게 되었고 엘리사벳도 더 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사가랴에게 천사의 지시가 있은 것이나 마리아에게 지시가 있은 것이 꼭 같은 동시에 복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 뛸 때에 분명히 마리아 몸에는 메시야가 잉태되고 엘리사벳의 몸에는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위한 선지가 잉태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주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예수님은 분명히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세례 요한은 잉태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세례 요한의 증거는 메시야를 영접할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선지로 났으니 만큼 예수는 완전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 일에 증인이 되는 세례 요한은 잉태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할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제단에서도 증거가 있었고 메시야를 잉태하는 마리아에게도 큰 증거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제2과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
- 요 1:19~34,  요절:23 -
 
 서 론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의 위신이나 명예나 안락을 생각한다면 바른 증거를 할 수 없다. 증인은 들은 대로 본대로 명령대로 증거하되 본 것도 양심대로 들은 것도 양심대로 명령을 받은 것도 양심대로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참된 증인이니 이 증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인을 말한다. 이제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를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대지 : 사명에 탈선이 안된 증거 (19~23)
  아무리 듣고 본 것이라도 자기가 할 말이 아닌 것을 증거한다면 이것은 월권이라고 본다. 단지 자기가 할 말은 무엇을 책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네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자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이사야 선지가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는데는 사40:3에 가르친 말씀이 내게 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오늘에 주의 종들이 자기의 사명에 한계를 모르고 성경을 함부로 해석할 때에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 사명자는 세례 요한 때부터 주님 재림 때까지 선지 예언을 증거하되 자기가 증거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증거할 때에 열매가 있게 된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증거할 사명을 이사야가 기록한 글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사명의 한계를 바로 말했던 것이다. 구약 때 거짓 선지는 하나님께로 온 말씀이 없는데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일을 했고 신약 때 거짓 선지는 먼저 구약 때 선지들이 예언한 말씀에 맞지 않는 증거를 하는 것이 거짓 선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 때부터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도 선지 예언이 자기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적이 있고 교파가 우승하다 하여도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증거라고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은 구약 선지로 빠짐이 없이 책을 기록하게 하고 그 책대로 행하시는 것이 신약 시대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대지 : 하나님께서 행하라는 대로 함 (24~28, 33)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한대로 행한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종들이 행하라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명을 옮겨가기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할 때에 이것도 사명을 옮겨가는 수가 있다. 모세는 반석을 한 번 치라는데 두 번 쳤다는 조건으로 사명이 옮겨갔고 사울은 하라는 것을 그대로 하지 않을 때에 사명이 옮겨갔다. 이렇게 된 것은 큰 교훈이 된다.
  모세는 선지 중에 첫 선지요 사울은 열왕 중 첫째 왕이었다. 첫째 선지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사명이 옮겨갔고 첫째 왕도 사명에 순종치 않으므로 왕권이 옮겨간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전에 없던 일을 행하는 것이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인데 모든 교권주의자들은 이것을 반대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한 것을 담대히 말하면서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세례라는 것은 완전히 원죄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은 자가 메시야를 영접할 때에 물로 세례를 받게 한 것은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죽게된 몸이 메시야를 영접하게 되므로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몸은 흙에서 난 몸이니 흙이 물에서 나왔으므로 그 몸이 물에 잠겨 올라올 때에 첫째아담의 몸을 벗어나고 둘째아담 예수님과 같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3대지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증거함(29~31)
  증인이라는 사람은 알아주든지 말든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예수를 나사렛 목수로 보는데 요한은 인간의 죄를 걸머진 어린양이라고 할 때에 그 증거를 옳다고 인정할 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목수가 세상 죄를 걸머졌다는 것이 도저히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가 참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행1:21).
  참된 증거라는 것은 처음에는 어리석은 말 같으나 마지막에는 참말 인줄 알게 되고 거짓 증거는 처음에는 참말인 것 같으나 마지막에는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된다. 지금도 거짓 선지의 말은 그때 그때 사람들을 끌기 위해서 말을 꾸며내는 것이요 참된 증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증거하는 것뿐이다.
 
  4대지 :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함 (32~34)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인 줄 알라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노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증거할 때에 확실한 증거를 보지 않고 증거한다는 것은 참이라 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성신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했던 것이다. 지금도 참된 증인은 자기가 직접 체험한 바를 가지고 성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는 자라야 참된 증인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참된 증인은 참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자이다. 세례 요한은 성경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증거했는데 요한에게 대한 것도 성서적이요, 예수님께 대한 것도 성서적인 증거니 요한의 증거가 참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제3과  세례 요한의 경고
- 마 3:1~12,  요절:10 -
 
 서 론
  경고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안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백성들에게 책망을 하는 말이니 아무리 친 백성이라도 합당치 않은 사람은 진노의 날에 망하게 될 것이고 합당한 자라야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세례 요한은 아무리 택한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영접하면 사는 것이요 영접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오는 것은 목적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 가운데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라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대로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1대지 : 회개 운동을 일으킴 (1~6)
  이 회개라는 것은 중생을 일으키는 운동이 아니고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에게 부패를 책망하고 누구든지 회개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요한은 이 경고를 하기 위하여 성별된 생활에서 인간의 화식을 목적하지 않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으로 속화된 인간을 찾아와서 회개를 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죄를 자복 하면서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2대지 : 거짓 선지를 책망함 (7~9)
  거짓 선지란 것은 정통을 말하면서도 사상과 마음은 진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거룩을 말하면서도 마음이 더럽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마음에 남을 이용하는 교만이 있어 자기가 사람의 숭배를 받기 좋아하고 남을 불쌍히 볼 줄을 모르는 자이며 자기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신앙 사상을 가지지 않고 공연히 남의 흠을 잡기를 좋아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세력을 내세워 보려는 자들이다. 이런 무리는 마음에 독사의 독이 있으므로 회개할 기회가 있어도 짐짓 진리를 대적하고 자기네만 정통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대적하러 나왔던 것이다. 이 때에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던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이 조상될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계통적인 신앙 양심이 없고 신앙 양심을 떠난 인간들이라는 것으로 책망한 것이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신앙 양심을 가진 자라면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리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여도 진노의 날에 다 망할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3대지 : 시대를 구분하는 경고 (10~12)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심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농부가 그 손으로 곡식을 가꿀 때도 있고 날 센 타작기를 두르며 사정없이 부수어서 쭉정과 알곡을 갈라놓는 일을 하는 것은 목적이 알곡 하나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모든 사람을 다 중생케 하며, 자라게 하며 완전히 결실케 하시는 것이요 다음에는 알곡만을 모아들이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선지서 전체는 이 진리 하나를 목적 두고 가르친 것이니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때는 은혜시대를 가르쳤고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이 종말에 심판이니 이것이 선지서의 전체 중심 되는 요점이 된다. 그러므로 요한은 예수를 증거할 때에 선지서 전체에 대한 뜻을 들어서 증거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재림의 주가 올 때까지 전할 사명자 들에게까지 다 포함된 것이니 사도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따라가서 그 증거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한 자들이요 금일까지의 기독교 복음 운동은 사도적인 계통을 이룬 것뿐이다. 그러나 변화성도가 전하는 사명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고 심판한다는 경고를 구체적으로 전하게 될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사도적인 사명도 있고 선지적인 사명도 있으니 사도는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요 선지는 이루어질 것을 전하는 사명이다. 그러므로 변화 성도는 선지의 사명을 다시 끝을 맺는 것이다.
 
 결 론
  세례 요한의 경고는 선지적인 사명을 하되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경고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경고는 변화 성도가 하게 될 것이다.
 




 
제4과  세례 요한의 겸손한 증거
- 요 3:26~36,  요절:30 -
 
 서 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증인이 되려면 겸손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증인은 하나님의 종이니 자기의 권리도 명예도 또는 인격도 내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증거하라는 일에 가라면 가고 말하라면 말할 것뿐, 그밖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요한의 겸손한 증거를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위에서 주시는 바가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함 (26~27)
  하나님의 종이 항상 위에로 부터 주시는 것만을 목표하고 조금도 땅의 것을 생각하여 어떤 흥분이나 또는 명예나 위신을 따라서는 안된다. 남이 역사할 때에 그 역사도 위에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내가 역사하는 것도 위에서 주신 줄 믿을 때에 남의 역사나 내 역사나 다 하나님의 역사이니 내가 하든지 남이 하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도 마음에 너냐 나이냐 하는 것이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여야 된다.
  남의 역사가 강하다, 내 역사가 강하다 할 것도 없다. 강해도 위에서 주는 것이요 사람이 스스로 역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 사람이 많이 따르고 따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서로 논할 필요도 없다.
 
  2대지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함 (28~30)
  세례 요한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라고 증거한 다음에 모든 제자를 보고 너희는 내가 증거한 것을 너희가 증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니 나를 증거하지 말고 내가 증거하는 메시야를 증거하라고 부탁할때에 그 제자들이 예수만을 증거하여 예수님으로만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친구가 신랑으로 올 때에 그 결혼식에서 우리 신랑이 왔으니 우리는 기쁘다 하면서 그 잔치의 음식을 먹을 것뿐이고 그밖에는 그 신랑이 축복을 받고 잘 되기를 축하할 것뿐이라고 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셔서 온 천하를 구원하러 오는 일에 승리하시고 즐거운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그는 증거를 마치게 된 것이다.
 
  3대지 : 예수의 증거는 위로부터 온 것이라고 강조함 (31~33)
  하늘에서 온 자는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것이니 이 증거를 받는 자는 이 땅에 심히 적을 것이로되 그의 증거를 받는 자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을 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나사렛 목수 예수가 하는 일은 전부가 하늘의 것을 가져온 것이니 조금도 땅의 것으로 생각지 말고 받아서 그대로 믿으라고 간곡히 말한 것이 요한의 증거다.
 
  4대지 :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 있고 순종치 않으면 진노를 받으리라고 증거함 (34~36)
  예수님이 스스로 증거하는 것보다도 세례 요한이 담대히 증거할 때 많은 사람은 그 증거를 받고 예수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요10:41).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에 오셔서 증거할 때 반드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증거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②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③ 아들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증거하게 한 것이니 이 증거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몸소 예수님이 3년간 전도를 할 때에 받들어 수종을 들고 봉사하도록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사렛 목수의 한 사람으로 복음 전도를 시작할 때에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 승천하기 전이므로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과 동등 되는 사람으로 인정할 때마다 세례 요한은 나는 나사렛 예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이니 나를 따르지 말고 나사렛 예수를 따라 가라고 증거한 것이 요한의 증거이다.
 
 결 론
  참된 종교라는 것은 증인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거짓 종교는 증인이 나가서 하는 일이 인간의 학적이나 권력이나 물질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요 참된 종교의 증인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여호와의 말씀만 증거하고 하나님의 역사만 순종하며 물질을 초월하여 신의 영원한 영광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는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왔다는 것만을 증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을 전부 예수님만 따르도록 소개해 주고 세례 요한은 쓰러져 순교하므로 끝을 맺은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에서 반드시 배울 바는 이것이다.

  ① 서슴치 않고 담대히 외치는 일.
  ②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 한 분만을 내세운 일.
  ③ 자기 사명의 한계를 바로 지켜 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은 일.
  세 가지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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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청수복 2022.03.27 07:14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에서 반드시 배울 바는 이것이다.
    ① 서슴치 않고 담대히 외치는 일.
    ②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 한 분만을 내세운 일.
    ③ 자기 사명의 한계를 바로 지켜 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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