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목차
강의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자(7-11)
열린 문이 있는 교회(7-13)
20.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11)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일(14-22)
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18-22)




3 장  강 의

 5. 사데 교회 (1~6)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외형적인 방면은 살았다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상태에 있으나 실지는 열매 없는 죽은 나무 같다(1).


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으니 말씀을 받아 들여 깊이 생각을 하고 지켜서 회개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나간다면 주께서 도적같이 임하게 되는 날에 설 수가 없는 교회다(2~3).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왜냐하면 시대적인 말씀의 밝은 것이 없다면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끝을 바로 맺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동참치 않고 참된 회개에서 열매가 있는 사람이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4).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신앙은 승리적인 생활이 없다면 흰옷을 입은 생활이 아니니 이기는 자라야 흰옷을 입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로서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을 받는다(5~6).
 



 6. 빌라델비아 교회 (7-13)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앞에 열린 문이 있는 교회니 이것은 힘을 다하여 말씀을 지키고 타협치 않은 신앙이기 때문이다(7~8).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승리라는 것은 말씀에서 있는 것이니 이 교회는 자칭 유대인의 세력을 승리할 것이다(9).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는 동시에 시험이 따르게 하는 것이니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면 주께서 그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이 시험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적으로 오는 종말의 시험이다(10).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께서 임할 때에 면류관을 받을 자는 있는 것을 굳게 잡아 싸워야만 한다(11).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승리자로서 기둥같이 쓰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야 새 예루살렘의 왕권을 받게 된다(12~13).
 



 7. 라오디게아 교회 (14-22)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화려한 교회니 인간의 육안으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는 교회가 되었다(14~15).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교회라는 것은 신령한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주님의 입에서 토함을 받을 것이다(16).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이들은 물질 향락에 도취가 되어 영적에 대한 아무런 관심조차 없게 되었다(17).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나 주님은 주고 싶은 사랑으로 그들에게 권하게 되었다(18).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심지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여 열심 있는 회개를 요구한다(19).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은 문을 두드리는 안타까운 재촉을 할 때에 이러한 잠든 교회도 왕권을 주고 싶은 사랑에서 기다리고 있다(20~22).

 주님께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은 교파를 초월하여 주의 재림을 맞이할 교회로서 신앙의 참된 정로는 무엇이냐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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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자
  ( 계 3 : 7 - 11 )
 
  금일에 교회가 많다는 것만은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가 된다. 다른 나라는 과학 문명에 도취가 되어, 있던 교회도 사람이 오지 않으므로 교회가 문을 닫고 또는 예배당을 방매하는 일이 많다는데 우리 나라에는 지금에 와서 해방전 보다도 교회가 대 확장을 보게 된 것은 어느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찾는 열심이 강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빈민들이 사는 부락에도 예배당만은 많은 거액을 들여서 종탑을 높이 쌓고 화려한 성전을 보게 될 때에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이 앞으로 오는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가 문제가 되는 일이다.
  이제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느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 열린 문이 있는 교회 (8)
  교회라는 것은 항상 열려 있는 교회가 되려면 말씀 중심에서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항상 역사를 나리는 것은 어떤 화려한 건물이나 유명한 인물이나 엄숙한 의식이나 떠드는 열심을 보고 은혜를 나리는 것이 아니고 화려한 건물도 유명한 인물도 거룩한 의식도 떠드는 열심도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싸워 나가는 생활에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주님의 역사가 소리 없이 보이는 모양도 없이 흘러오되 나뭇가지에 진액이 계속 오는 것과 같이 항상 은혜의 문은 열려서 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항상 열려 있는 은혜의 문은 조금도 닫히지 않고 강물이 흐르듯이 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될 때에 모든 교인들은 말씀에서 소망의 확신과 받은 은혜에서 날마다 자라나는 인격적 체험을 받음으로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2.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10)
  말씀이라는 것은 지키는 것이 없다면 시험도 핍박도 은혜도 없는 교회가 된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될 때에 참아야만 될 문제가 닥쳐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간교한 뱀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말씀이 바로 서지 못한 교회는 자기의 도구로 삼고 말씀이 바로 선 교회는 극도로 미워하며 훼방하고 조롱하고 압박하도록 악한 자를 들어서 도구로 쓰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는 뱀이 직접 꾀어 보았지만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사에는 악한 사람들을 마귀가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음이 없다면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완전 계시를 볼 때에 사도 요한 같이 참음이 있는 자라야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것을 계시로 보았던 것이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하시는 것이다.

  (1) 사람이 힘을 다해야만 되도록 하는 것이요.

  (2)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이기도록 해 주시는 것이니 작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동시에 큰 시험의 때를 면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택한 한 교회에 주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이길 만한 역사를 하시면서 시험이 오게 하는 것이니 시험을 해보는 이도 하나님이요, 시험의 때를 면케 해주시는 이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으로 시험을 해보는 것이 아니고 시험하는 마귀에게 허락을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말씀을 지키면 더 이상 시험할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마귀에게는 더 화를 주고 당신의 종에게는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3.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11)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운 목적은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니 어떻게 하든지 왕권 받을 종을 나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면류관인 왕권을 빼앗긴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가 되어 심판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촛대교회를 통하여 지상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교회는 사명자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일이 없다면 시험의 때를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큰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은 끝까지 사명에 충성을 다한 자를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고자 하는 선한 모략의 방법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하나님께서 현 교회를 그냥 두고 새 시대를 이룰 수는 전혀 없을 것이다. 반드시 큰 시험의 때를 통과시키되 쭉정과 알곡을 갈라놓고 말씀의 다림줄을 잡고 싸워서 나가는 교회만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우리는 반드시 인내의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만이 큰 시험의 때를 면하고 승리하는 길이라고 보게 된다.
 



 
  열린 문이 있는 교회
  ( 계 3 : 7 - 13 )
 
  교회는 열린 문이 있는 교회가 있고, 없는 교회도 있다. 이는 땅에 세운 교회로서 위로부터 열린 문이 있게 될 때에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완전 승리라는 것은 그 교회로 말미암아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어떠한 교회라야 열린 문이 있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는 교회 (8)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무조건 큰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요 사람으로서 최선의 힘을 다하기까지 적은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의 충성과 진실을 보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능력을 받겠다고 날뛰는 것보다도 이미 받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자기가 말씀을 지켜보려고 하는 것보다도 적은 능력을 받았으므로 말씀대로 큰 능력이 올 것을 믿고 말씀을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둔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능력의 역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믿고 싸우는 자에게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정확 무오한 말씀을 깨닫는데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할 때에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려운 일이 온다 해도 더 큰 역사를 내리시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하면서 그 말씀대로 될 줄 믿고 싸우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책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주의 사랑으로 승리하는 교회 (9)
  참된 승리라는 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느냐에 의하여 있는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궤휼적으로 대항한다 하여도 말씀대로 싸워 나가는 자라면 주님께서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신다. 열린 문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잠히 역사를 내리는 것이니, 누구든지 항상 열린 문이 있는 자라면 왕권을 받게 되므로 원수의 세력이 자동적으로 굴복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방법으로 남을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주의 사랑을 받은 자가 아니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인간 방법을 취하는 시간부터 벌써 주의 사랑을 떠난 행동이니 주의 사랑을 받은 자는 말씀을 따라서 나갈 때에 말씀대로 역사하는 주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게 된다.
 
  3. 주께서 지키는 교회 (10)
  교회라는 것은 항상 은혜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그 교회는 주님께서 보호해 주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교회를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린 문이 없이 닫혀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증거이므로 그 교회는 자동적으로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할 때에 말씀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할 의무가 있으므로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말씀대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4. 면류관을 목적하고 싸우는 교회 (11-12)
  하나님께서 항상 교회에 성신의 역사를 내리시는 것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고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면류관을 목적하고 싸우는 교회라야 항상 열린 문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다리는 것은 면류관을 받을 종들의 수가 차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은 일한 대로 면류관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항상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싸워야만 문이 닫히지 않고 열려 있는 교회가 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결  론
  교회는 열린 문이 있을 때에 승리요 열린 문이 없을 때에 쓰러지고 만다. 그리스도의 완전 사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는 사랑이니 말씀을 지키는데 생명을 아끼지 않는 교회라야 열린 문이 있으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
  ( 계 3 : 8 - 11 )
 
  서  론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섭리 속에서 모태로 택하기도 하고 택함 받은 자의 잘못을 회개시켜 용서하기도 하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너그러운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은 자기가 싸워서 이겨야만 얻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구원 문제가 아니고 왕권 문제가 결부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여 면류관을 뺏기지 않느냐 하는데 대하여 빌라델비아 교회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는 일 (8)
  사람이 볼 때 어떤 큰 이적 기사나 큰 부흥에 이르는 역사는 없으나 순수한 말씀 중심에서 나갔기 때문이다. 신앙의 영계가 올라가는 것은 능력의 역사가 많다는 것만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마7:22 을 보면 아무리 이적과 기사가 있다 하여도 말씀이 바르지 못한 종은 주의 날에 알지 못한다고 하시었다.
 
  2. 내 이름을 배반치 않는 일 (8)
  이것은 극도로 어려운 고통이 닥쳐와서 원망스럽고 낙심될 일 공포를 주는 일이 와도 배반치 아니하였다는 조건이 상급이 된다. 마5:11-12절과 같이 공연히 주님을 위하여 남에게 욕을 먹고 악평을 듣고 핍박을 당하는 일이 올 때에 상급이 제일 크다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 남 보다 시련이 많게 하는 것은 영계를 높이기 위한 모략이다. 본문 9절을 보면 자칭 유대인들이 와서 절하게 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영계의 왕권을 말한 것이다.
 
  3. 숨은 사랑을 받는 일 (9)
  영계란 남이 보기에 은혜를 받는데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볼 때 실패자요, 또는 비천한 자요, 아무 축복도 받지 못한 자 같으나 그 가운데 위로(慰勞)받고 참고 나가는 자는 절대 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상을 받도록 행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닥쳐 올 때 남 모르게 중심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의 숨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4.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한 것이다 (10-11)
  우리는 주님께 은혜를 받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받은 것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일이 더 큰 일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줄 때 잘 간수하고 잃어버리지 않는 자이면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 받은 것은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참고 나가면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기둥과 같이 쓸만한 사람은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고 하셨다. 인내의 말씀이란 언제나 말씀을 지키는 그 곳에는 시험을 하는 마귀가 따라 온다는 뜻이다(10). 그러므로 마귀 시험을 많이 받으면서 나가는 사람은 앞으로 오는 세계적인 큰 환난의 시험을 면케될 것이다. 세밀히 말하면 시련에서 말씀을 지킨 자는 세계적 환난 가운데 역사하는 종이 되기 때문이다. 즉 환난 가운데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시키기 때문이다.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일
  ( 계 3 : 14 - 22 )
 
  서  론
  주님은 역사하실 때 사랑하는 자에게 대하여 모든 일을 진행하시되 사랑의 법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동시에 징계를 나리는 것은 특히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님은 요구 없이 덮어놓고 징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없이 공연히 성이 나서 책망한다면 오히려 책망을 받는 자녀에게 큰 저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고 징계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있어서 자식을 책망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될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징계하시면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 성경을 알 수 있다.
 
  1. 열심을 내 달라는 것이다 (19)
  이것이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에 불타는 심정에서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법은 열심을 내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 은혜를 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열심을 안 내는 게으른 자에게는 징계를 하는 것이요, 열심을 내야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열심이 없이 잠을 잔다면 그대로 은혜를 주시는 주님은 아니다. 열심이 나도록 때리는 것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열심을 내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열심이 없으니 주님의 요구는 괴로운 일에 열심을 내는 자를 원하시는 것이다. 즉 징계가 올 때 열심을 내면 영적 향상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면 부모는 만족한 마음으로 더 기뻐할 것이다.
 
  2.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다 (20)
  주님께서는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은혜를 주는 것이로되 마음 문을 닫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정상적인 은혜를 계속 받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항상 사모하는 마음을 가르친 것이다.

  즉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심정에서 좀더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재촉하는 것은 기도다. 마음을 닫고 기도를 아니하여도 괴로움이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주님이 항상 마음을 재촉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성령이 내게 함께 한다는 증거는 항상 듣고 마음을 열고 먹는 일이다. 누구든지 듣고 먹는 자는 완전한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를 소유하게 된다. 이것이 신앙 향상에 큰 요소가 된다.
 
  3. 보좌에 함께 앉기를 요구한다 (21)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가 당신과 같이 보좌에 앉기까지 재촉하신다. 이 보좌라는 것은 왕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랑하는 종들을 남보다 더 징계를 하고 두드려서 재촉을 하는 것은 최대의 목적인 왕국에 보좌를 주겠다는 사랑의 요구이다.

  이러한 사랑의 요구는 주님밖에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기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을 내라 문을 열라 함께 먹자 이와 같이 요구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먼저 구하니까 준다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요구하는 바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복음적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주고 싶은 사랑 속에 요구하는 심정을 만족하게 들어준다면 보좌에 앉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나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
  ( 계 3 : 18 - 22 )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가지신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되 죄를 용납할 수는 없으므로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회개할 때에 죄를 없이하는 동시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징계라는 것이다.

   이제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과 징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주고 싶은 사랑으로 권함 (18)
  소위 하나님의 사자라 하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캄캄한 사람이 되었어도 주님은 양떼를 불쌍히 보는 사랑 속에서 그 종에게 부요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며 흰옷을 주고자 하는 동시에 그 눈도 밝게 해서 올바른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할 때에 완전한 것을 사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완전치 못한 것을 주님께 맡기고 완전한 것을 받아 가지라는 것이다.
  둘째 : 희생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셋째 :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준다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준다는 것이다. 오늘의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된다고 하였고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까지라도 다 버리고 따라 오는 자라야 된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익이 많이 있다 하여도 주님께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주의 것을 받을 수 있다.
 
  2. 주고 싶은 사랑으로 징계함 (19)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자 할 때에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권해도 순종치 않을 때는 징계를 해서라도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언제나 징계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징계를 받을 때에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열심을 내야만 한다.

  주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소와 나귀보다도 못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소와 나귀도 주인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때릴 때에 열심을 내어서 빨리 하는 일이 소와 나귀에게도 있는데 소위 사람이라 하면서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징계를 받고 열심을 낼 때에 주님은 오히려 징계를 하시고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3. 주고 싶은 사랑에서 문을 두드림 (20)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든다면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열어 달라고 재촉하는 자와 같은 심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랑하는 종에게 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자라면 얼마든지 만족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물질을 초월 한데서 있는 것이니 하늘에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에 들어가므로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기가 직접 받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신앙이라는 것은 직접으로 먹고 마시는 체험이 있음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주고 싶은 사랑으로 보좌에 함께 앉게 함 (21)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부모든지 자식을 기를 때에 영광스런 자리를 얻는 삶이 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역사를 나리는 한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면서 지혜도 총명도 능력도 권세도 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주고 싶어하시는 그 사랑을 믿고 항상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밖에는 아무런 것도 할 자격이 없다.
 
  결  론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아 순종하는 자라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패한 사람이라도 징계하시면서 완전한 것을 주어 영광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먹고 마시므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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