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의 사명적 한계
                       - 요 21 : 15 - 21 -
  기독교는 사명의 한계선을 바로 지키는 것이 없다면은 주님은 역사할 수가 없다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명자가 부족하다 하여도 필연코 사명을 감당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이 사명을 맡기신 주님의 의무라고 보게 된다.

  이제 베드로의 사명과 요한 사도의 사명의 한계선을 분명히 주님은 가르쳐 주셨다.


  1. 베드로의 사명적 한계 (15∼19)
  아무리 베드로가 주님의 부활을 철저히 믿지 못하고 주님을 따라가다가 실수한 일이 있다 하여도 주님은 친히 베드로를 찾아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명을 맡긴 목적을 분명히 알려서 베드로를 들어 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를 두 번째 찾아갔다.  

  첫 번에도 목수의 한사람으로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를 부를 때에 나를 따라오면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할 때에 베드로는 용기있게 따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사도의 직을 할 수 없는 인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에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를 찾아갔지마는 밤이 맞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은 어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에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두 번째 찾아갔다. 베드로를 보고 나를 따르라는 말을 하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할 때에 베드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는 주께서 아시나이다 한 마디를 할 때에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거듭하시면서 베드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말했다. 이것이 사명자를 쓰는 주님의 뜻이라고 보게 된다.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은 자가 아무리 부족해도 부활만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성신의 권능을 주어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주시고 단 마음으로 순교까지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모든 종들은 이 사명적인 한계 안에서 움직이는 종들이라고 보게 된다. 완전한 사람에게 성신을 주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신앙이 있다면 무조건 은사를 주어서 들어 쓰되 순교라는 끝을 맺도록 해주는 것이 은혜 시대에 사명자의 한계라고 본다.  




  2.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한계 (20∼23)
  요한은 베드로보다도 실수가 없고 대신 아들이라는 명분을 맡겼지마는 요한에게는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 없고 베드로가 사명을 물어볼 때에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할 때에 모든 사람은 무슨 뜻인 줄을 모르고 죽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에 육이 죽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고 그 사명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머물러 둔다고 하는 뜻을 말하면서 너희는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최고의 영계에 도달하는 사람으로 완전 계시를 받아서 그 글을 통하여 기독교 종말의 역사가 있으므로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성도의 역사가 따로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사명적 영감과 사도 요한의 사명적 영감이 시대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움직이는 종이 되어야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베드로의 사명적인 영감을 받아 그것으로서 끝을 맺는 역사인 줄 알고 계시록을 자기가 받은 영감에 한계를 탈선하여 억지로 해석한다는 것은 큰 과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을 부르는 주님의 심정과 재앙을 나리는 진노의 날에 하나님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종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설 수 있는 사명이 무엇인 것을 모르고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나 얕은 영감에서 과오를 범하는 말이라고 보게 된다.  어야만 될 것이다. 부활을 증거할 목적과 계시록을 증거하는 목적이 시대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한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완전 영감이 있어야 된다. 왜냐하면 영감이라는 것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한계의 영감이 있고 성경 전체의 숨은 비밀을 전하는 영감도 있으니 베드로도 이 영감을 자기는 받지 못했으니 이 예언의 말씀은 새벽 별이 마음에 떠오르는 역사가 있을 때까지는 해석하지를 말라고 벧후1:19∼21까지 말했던 것이다. 바울도 나는 십자가 외에는 더 말할 수 없는 영감이라고 말할 때에 그리스도 한 분을 아는 지식이 자기의 사명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빌3:8∼9).

  우리는 사람이 자기가 진리를 연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교만을 가져오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다. 이날까지의 많은 종들이 여기에서 큰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계시를 받을 적에 자기가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배에는 쓴데 다시 예언하라는 계시를 보았던 것이다(계10:11).

  이것은 앞으로 세계적인 대환란이 올 시기가 이 땅 3분의 1이 피해를 당하고 계시록 9장과 같이 흑암이 세계를 덮고 인명 3분의 1이 죽어버리는 전쟁이 계9:15과 같이 일어날 때에 주님 오실 때이니 그때에 가서 완전 영감의 역사가 올 것을 그는 계시로 보고 쓴 것이 계시록 11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동의 위기를 앞에 논 금일에 와서 소위 세계 평화라는 간판 밑에서 영계 흑암이 교회를 침투하는 이때에 사도 요한이 본 계시록 11장과 같은 영감을 받고 나서는 일이 없이는 기독교의 통일을 가져 올 수도 없고 남은 교회가 될 촛대교회를 이룰 수가 없고 승천하기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선지 사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니 금일에 우리 사명자들은 사도 요한의 계시에 완전 영감을 받아야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교파를 초월하여 완전 계시의 영감으로 하나같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푸른 나무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단체가 나와야만 될 것이다.

  결   론
  사명과 시대 또는 시대와 사명에 대하여서 우리는 바로 알고 이 시대에 선지적인 영감을 받는 일과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복음 운동에 승리를 이루어야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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