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0년 8월호)

설  교  편

1. 짐승의 권세와 진실한 자의 승리 (계17:7~18)

2. 비밀을 알려 주는 사명 (엡3:1~9)

3. 가장 간교한 뱀과 인생 가치 (창3:1~10)

4. 야곱의 축복과 별세 (창49:28~33)

5. 말씀 충만과 기도의 열매 (요15:7~10)

6.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요일1:1~6)

7. 흑암의 권세와 인의 역사 (계9:1~5)

8. 진리가 주는 자유 (요8:31~36)

9. 새끼 양의 뿔과 용의 말 (계13:11~12)

10. 참된 지혜와 열매 (약3:13~18)

11. 제일 큰사랑 (요15:9~17)

12.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 (약4:13~17)

13.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창1:27~31)

14.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 되게 하는 역사 (요17:21~26)

 

장년 공과편 - 변화성도의 축복

제1과  복 받을 자격 (사49:1~7)

제2과  복을 나리는 역사 (사49:8~13)

제3과  축복 받은 종의 권리 (사49:14~26)

제4과  변화성도의 사명 (계10:1~11)

제5과  변화성도의 통일 (계11:1~6)

 

논  설  편

1. 주일 예배에 대하여

2. 평화주의에 대하여

3. 기독교 부흥 운동에 관하여

4. 시대적인 설교에 대하여

5. 자녀 교육에 대하여

※ 변화성도의 교리신조

 

신 앙 문 답

1. 유일신 종교가 무엇인지를 믿습니까?

2.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3. 신앙은 어떠한 노선이라야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4. 오늘에 W.C.C라는 신앙 노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 기독교 신앙에 새 일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사43:19)

6. 증인 권세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11:3)

7.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계11:6)

8. 부활 성도의 사명과 변화 성도의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계20:4~6)

9.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아십니까? (계20:7~9)

10. 천년 시대는 왜 있느냐를 아십니까? (계20:7~9)

 

특   집

1. 8.15 특집: 성도의 탄식 (롬8:23, 사29:1)

2. 8월 소식
   1) 신도안 백암동 새일교회
   2) 새일 수도원을 통하여 현재 이루어지는 열매
   3) 새일 중앙 교회

※ 알리는 말씀

 

설 교 편

짐승의 권세와 진실한 자의 승리

- 계 17:7~18 -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에 침략적인 강대 국가를 짐승으로 가르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짐승이다

  인류 역사상 제일로 강대하다는 나라는 성서적으로 보아서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라고 볼 수 있다. 이 나라들은 중동을 중심 하여 그때 그때에 많은 나라를 침략해서 영토를 넓히고 위세를 날리던 나라들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짐승의 일곱 머리가 다섯은 망했고 하나는 있고 라고 한 것은 로마를 가르쳤다. 그러나 마지막에 만 왕의 왕을 대적하고 나오는 짐승을 일곱째 머리라고 본 것은 인류 종말에 적 그리스도의 정책을 가진 짐승이 나오므로 이것이 망하고는 성도의 나라가 온다고 했으니 금일에 북방에 자리잡은 공산 정책이라고 보게 된다.

 

  2. 종교심이 없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자로서는 남을 해치고 자기가 살려는 중심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남을 살리겠다는 정신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침략적인 정책이라는 것은 전부가 마귀에 속한 세력으로 본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외에는 누구나 다 침략의 정신을 가진 것인데 침략자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날 때에 언제나 시대를 따라서 참된 종교인은 억울하게 순교를 당했던 것이다.

 

  3. 자기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이다

  짐승이라는 것은 자기 하나가 만족하다면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짐승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남이 살고 복 받는 것을 만족으로 아는 것인데 짐승의 세력과 싸우는 것을 가르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들어 쓸 적에 야수적인 사상을 가진 자를 들어서 대항을 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실한 사람을 그 시대 시대에 찾아내어서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제 변화성도의 진실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1) 시련 가운데 변치 않는 자

  하나님은 말세에 변화성도를 골라 세우기 위해서 무서운 시련기를 둔 것이니 시련이라는 것은 거짓 선지의 미혹을 통하여 오는 시련이다(계9:1~5). 무서운 시련을 둔 것은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기 위한 방법이다.

  2) 말씀에 가감 없이 증거하는 종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도구로 붉은 짐승을 들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말씀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골라 세우기 위한 목적이니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과 정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붉은 짐승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대적을 해도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돕는 역사로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다.

  3) 끝까지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자다

  아무리 짐승을 통하여 환란이 일어난다 해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자가 그리스도와 같이 승리하고 세계 통일의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짐승의 세력을 들어 까불어 보고 짐승을 없애는 동시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도 없애 버린다는 것이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니 지금 짐승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은 진실한 자만으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 인줄 알고 누구든지 변치 않고 맡은 일에 충성과 진실을 다하여야만 될 것이다.

 

 

비밀을 알려 주는 사명

- 엡 3:1~9 -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하실 일을 알려주지 않고는 행함이 없는 사랑의 신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리 죄를 지은 인간이라도 살길을 열어 주고 순종치 않을 때에는 순종하는 자만 구원하고 순종치 않는 자는 버려두는 것이 사랑과 공의가 겸전한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기독교란 자체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절망 속에 떨어진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능히 할 수 있다는 비밀을 모든 인류에게 알려주는 것이 어느 종교보다도 특별한 사명이 된다.

  만일 기독교 자체가 하나님의 비밀을 분명히 알려주는 일을 못한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교회가 될 것이다. 이 비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선지들에게 묵시로 보여준 비밀을 인간이 알 수 없으므로 알도록 해 주는데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선지서에 있는 비밀이 이루어진 것을 알려주는 사명이 사도적인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제 비밀을 알려주는 사명자의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교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이방인에게 알려주어야만 이방사람이 살 것을 알 때에 과거에는 아무리 원수가 되었던 나라라도 이제는 내가 순교생활을 하면서 이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 주겠다는 불타는 마음이 일어날 때에 나는 빚진 자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롬1:14).

  왜냐하면 알려주면 그들이 살 것이고 내가 알려주지 않으면 저들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비밀을 알려주는 일에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비밀을 알고도 자기가 괴롭다고 해서 그것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가 될 것이다.

 

  2. 문서 운동이 있어야 한다 (3~5)

  가장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편지라고 본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 기독교는 완전한 비밀을 알려 주는 일에 열매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가 깨달은 것을 기록해서 읽어보고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사도 바울의 큰 열매를 가져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입으로 말한다 해도 합법적인 변론으로 기록된 문서가 없다면 이것은 법적인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묵시로 보여 주면서 받아 기록하도록 한 것이니 이들은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입에서 말씀이 오는 것을 받아서 기록한 것뿐이다(사34:16).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쓴 선지서를 볼 때,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되어 언제나 편지를 쓸 때에 구약의 성경을 표준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에 대한 비밀의 내막을 세밀히 붓을 들어 쓴 것은 바울 사도가 계시로 깨달아 쓴 글이다.

  그러므로 계시라는 것은 앞으로 될 일을 알게 하기 위한 계시도 있고, 이루어진 십자가의 비밀을 밝히 알려 주는 비밀도 있으니, 계시록은 마땅히 될 일을 보여준 계시요, 사도 바울의 서신은 된 일에 대하여 십자가의 의는 무엇이라는 것을 계시로 분명히 깨닫는 대로 쓴 것이 그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글이 되었던 것이다.

 

  3. 능력으로 역사하는 자이다 (6~7)

  아무리 분명히 알았다 하여도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디로 가든지 능력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큰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 자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아무리 할 수 없는 난관이 부딪혀 와도 비밀을 알려 주는 일에 대하여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합법적인 진리를 바로 알려줄 적에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같이 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바울 서신의 쓴 비밀을 전한다 해도 가감한다던가 또는 그 말씀을 이용하는 정도의 사람은 바울 사도에게 역사하던 능력이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데는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의 할 일을 해야만 되는 것이니 일꾼이 되는 자격은 알았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이 와서 자신이 역사할 때에 비밀을 알려줄 수 있는 전도자의 자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을 알려주는 사명자는 하나님과의 합치가 되는 동시에 인간을 대할 때에 남을 살려 준다는 데만 전력을 두는 대접이 있을 적에 주님의 능력의 신은 항상 같이 하므로 더 크게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비밀을 알려 주는 종은 주님의 대행자이니 주님께서 그 종의 수고를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친히 갚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매라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책임지시고 응답해 주실 한계까지 이르는 종이 될 때에 큰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간교한 뱀과 인생 가치

- 창 3:1~10 -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하여서 그 가치에 향상과 타락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간교한 뱀을 낸 것은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가 되는 영생의 과실과 세세 영광을 누리는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은 사람의 과오이다. 하나님은 간교한 뱀을 상대해서 아무리 꾀어도 내 말을 참으로 믿고 순종하면 너는 비록 흙에서 난 몸이지만 영생과를 먹으므로 영생할 몸이 되는 가치와 또는 나와 같이 다스리는 권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 동시에 인생의 가치를 발휘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인생이 가치를 상실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상실한 것이다 (1~3)

  말씀의 존위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말씀인데 사람이 조물주의 말씀에 존위성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그 말씀을 말한다는 것은 사람된 가치를 상실하는 큰 과오가 되었다. 하와가 “보지도 말라”,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한 것은 벌써 합법적인 위치를 떠난 중언부언하는 횡설수설의 말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알고 그 말씀을 증거할 때는 권위있게 말하여야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상실하고 함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 “가져다 붙일 탓” 이라고 하는 말까지 있는 것은 중생받은 성도로써의 그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할 때에 말을 똑똑하게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잃지 말고 입으로 위엄있게 그 말씀을 말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마귀의 간교한 시험이 올 때에 성경을 본문대로 위엄있게 읽어서 마귀를 물리쳤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말씀 자체를 권위있게 증거해야만 마귀는 물러가게 된다.

 

  2. 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일이다 (4~6상반절)

  인생이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말에 충격을 받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마귀 말에 충격 받는 시간에 영적으로 마귀의 흑암이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무리 간교한 뱀이 말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고 마음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가야만 사람은 영적으로 침투해오는 마귀의 압력을 받지 않게 된다. 지금 무신론 공산주의 변론이라는 것은 간교한 옛 뱀인 용의 말이다(계13:7).  

  간교한 뱀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때에만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심판기에도 말한다고 했다. 기독교의 중생의 도리가 십자가의 증거로서 온 세계의 인류를 빛으로 인도한 금일에 와서 간교한 옛 뱀을 다시 말하게 한다. 그것이 소위 유물론 공산주의의 간교한 선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는 귀담아 들을 것도 없고 현재에 그 세력이 강하게 일어난다 해도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도 마음에 충격조차 받을 필요 없는 말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공산주의 변론 앞에서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듣고 서로 이해한다는 말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뱀과 말할 때에 뱀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그 미혹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 변론과는 사정없이 끊어버리는 칼을 써야 한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는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이 법을 준 것은 처음에 뱀의 말에 충격을 받고 미혹 받은 인생이 잃었던 지상 축복을 중생 받은 사람에게 주기 위한 방법으로 용에게 말한 것이 소위 유물적 정책의 공산주의 변론이라는 것이다.

 

  3. 마음이 끌리는 일이 있게 되는 일이다 (6하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준 인격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곳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때에 그때부터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고 그 영이 하나님과만 교통하고 사모할 때에 하나님께로 오는 축복을 받으므로만이 발전하고 또는 완전한 권리를 시행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선악과로 끌렸다는 것은 선악과보다 못한 존재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의 화려하게 보이는 물질에 끌린다면 그 시간에서부터 그 가치를 상실하는 인격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4. 피가 더러워진 일이다 (7)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 빛 아래 살던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즉시에 부끄러운 생각이 난 것은 그 몸이 더러워진 증거이다. 인간들이 부끄러운 생각이 난 것은 가치를 잃어버린 몸이 된 증거이다. 우리 몸이라는 것이 완전한 몸이 될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영원한 영광 속에 들어가므로 영생할 몸이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자체는 자동적으로 몸에서 생긴 것이니 그 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는 증거다. 기독교인이 이 몸이 부끄럽지 않은 영광스러운 몸이 되려면 예언의 말씀을 철저히 지켜서 선악과와 같은 바벨적인 세력에 물들지 않아야 될 것이다.

 

  5.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8~10)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격적인 가치가 상실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하나님과 동거동락할 수 있는 위치를 준 것인데 선악과를 먹을 때에 그 위치를 가질 수 없는 인격이 되었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서 탈선된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날에는 어찌할 줄 모르고 떨게 될 것은 사실이다. 우리 주님이 지상 평화 왕국을 건설하려고 재림할 때에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된다면 이 사람은 뱀의 말을 듣고 그 몸이 죽을 사람이라고 본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간교한 뱀과 말씀을 놓고 싸워 이기면 향상이요, 이기지 못하면 가치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마귀의 지배를 받는 생활로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생의 잃어버린 가치를 둘째아담을 통하여 찾아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야곱의 축복과 별세

- 창 49:28~33 -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쓰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12지파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복을 빌고 세상을 떠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이스라엘에게 선지 사명을 맡겼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 만방에 기록해 전하도록 이스라엘, 야곱의 씨를 통하여 이루어 놓은 일이다. 이것은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승리의 이스라엘인 왕국을 이룰 역사의 표적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이 축복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지상 통치에 왕권 받을 14만 4천명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의 축복 받은 자를 14만 4천에 대표적인 이름으로 기록한 것은 야곱에게 허락한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에 남은 종이 되어 야곱의 왕국을 이룰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은 축복을 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사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에 야곱이라고 한 것은 동방에서부터 변화성도의 역사가 일어나서 야곱의 왕국을 완전히 이룰 것을 뜻한 것이다.

  우리가 야곱의 축복을 받으려면 야곱이 지상 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싸우던 생활이 반드시 있어야만 될 것이다. 축복의 언약을 받은 사람도 싸워 승리하므로 언약을 받았는데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종말의 역사가 어찌 그 말씀을 믿고 싸우지 않는 자에게 올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동방 땅 끝에 야곱이 되려면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에 몸을 바쳐 싸워 나가는 자에게만 있게 될 것이다.

 

  2. 초림의 주를 맞이하게 됨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올 때에 아무리 이스라엘에 많은 성직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야곱의 행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짓 선지였다(요8:39~40). 그러므로 야곱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하여 주님은 갈릴리 해변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사9:1~2과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정신, 사상, 양심이 야곱과 같지 않으면 아무리 성직자라도 야곱의 왕국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야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요8:42~44).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중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순종하는 야곱의 이름으로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세계 통일의 정부가 서게 되는 것은 야곱과 같이 영권 물권을 받은 자만이 있기 때문이다.

 

  3.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됨

  재림의 주를 지상에서 맞이할 자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는 신이시니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지상 왕국이기 때문에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변화성도를 야곱이라고 하고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 야곱의 왕국을 이루는 지상 축복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명자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길 때에 사명 맡은 자의 일생에 다 이룬 것이 아니고 그 후세의 사람을 통하여서도 그 사명을 위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야곱이 맡은 사명으로 끝을 맺는 것을 동방 야곱의 역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 자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와서 그로 말미암아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니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일체가 되는 한 나무가 되기 때문에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역사에 쓰여지는 변화성도는 그 몸이 살아서 야곱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 되므로 야곱은 축복을 하고 별세했지만 그의 축복은 우리에게까지 이루어지는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 자손이 지상 왕국을 이룬 것이 아니고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말씀했기 때문에 과거에 야곱의 자손이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한 책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것이다.

 

  결 론

  야곱의 축복과 별세라는 것은 그때에 야곱이 축복한 그 축복 속에서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대승리를 이루는 교회가 이루어졌고 그 이름으로 세계 통치의 왕국을 이룰 것을 목적두고 야곱은 예언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같이 야곱의 왕국에 가입될 주의 백성이며 종이므로 야곱에게 축복권을 준 것은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열매라고 보게 된다.

 

 

말씀 충만과 기도의 열매

- 요 15:7~10 -

 

  인생의 최고의 인격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것이라고 보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말씀이 없는 인격은 다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니 말씀을 통하여 아무리 부족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은 역사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이 충만한 자에게 기도의 열매가 따라가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말씀이 충만해 지는 일 (7상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품안을 떠나서는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대로 메시야를 보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성경을 많이 읽었지만 그리스도를 대적할 때에 오히려 멸망을 자취하는 불행을 가져 왔던 것이다(요5:39~42).

  성경은 전체가 그리스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자 외에는 그 말씀을 알 수도 없고 말씀이 하등 그 사람과의 필요가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시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야 말씀이 충만해 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가 마음에 충만해지므로 그리스도의 가지 된 자격을 가지고 역사 할 수 있다.

 

  2. 기도의 열매 (7하반절)

  기도의 열매라는 것은 진리가 충만한 자가 진리대로 구할 때에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의 열매이다. 기도라는 것은 진리를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구하는 특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준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후의 일은 전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기도를 통하여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그 말씀을 믿고 구하는 자는 하나같이 열매가 나타나는 것을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이 사람은 말씀이 마음에 거하지 않는 자라고 보게 된다. 말씀이 마음에 거한다는 것은 진리대로 행하신 십자가를 믿고 진리대로 역사 하는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진리의 신 성령이 마음에 역사하므로 진리가 마음에 충만해지고 진리대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은 그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롬8:27~28).

  기도라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서 열매가 있는 것이 아니고 진리가 마음에 충만한 자가 그 법대로 입을 열 때에 진리대로 역사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을 나리는 것이다.

 

  3. 주님의 제자가 됨 (8)

  제자라는 것은 선생과 같이 된 자를 가르쳤다. 주의 제자가 될 때에는 주님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할 말을 종이 하고 주님이 갈 곳을 종이 가는 것이 제자다. 언제나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후에 진리가 충만한 사람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어서 그 기도에 따라 역사 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된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매가 많은 자라야 제자가 된다고 말했다.

  금일에 많은 종이 있지만 그 기도가 열매가 없이 될 때에 교회는 참포도 열매가 없고 오히려 부패한 개포도가 되는 바벨적인 사상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이 충만한 자라야 예배가 상달되고 예배가 상달된 자에게라야 열매가 있고 열매가 있는 자라야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지된 종들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진리라는 것은 자체가 그리스도요 그 진리의 열매는 가지 된 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진리가 충만한 마음에 기도를 바로 할 수 있는 영력이 오고 영력이 있는 기도라야 열매가 있는 것이니 언제나 주의 종된 자는 그 말씀에 충만한 생활이 있어야만 입에 열매 있는 종이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 요일 1:1~6 -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시다 (1)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에 말씀으로 창조했다고 한 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된 만물이라고 보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신, 삼위로서 알파와 오메가의 역사를 하고 있다. 천지를 창조할 때에도 예지와 예정 아래서 영원한 생명을 인생에게 줄 것을 예정하신 범위하에서 창조했다고 보게 된다(마25:34). 창조의 목적은 아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을 이룰 것을 목적하고 창조했다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독생자를 홀로 있게 하는 것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요, 독생자를 통하여 큰 나라를 이루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하여 천국을 이루는 것이 목적인데 아담이 실수함으로 둘째아담 예수를 보냈다는 것이 예정이 아니요, 피조물된 아담이 천국을 이룰 수가 없는 인격이지만 독생자를 통하여 천국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할 때에 사람을 흙으로 창조해서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은 것이 생령이 된 아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이 아니요 생령이다.  

  신이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신 외에는 참된 신이 될 수 없고 피조물된 인생은 그 신의 생명을 통하여 생령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령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에 속한 피조물이 된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2. 인간에 나타난 생명이다 (2)

  인간이 범죄 하므로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와의 동등된 영광을 누릴 수가 없게된 것이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한 몸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난 것은 첫째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인생을 다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생을 다시 생명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물과 피로 임한 몸으로서 대속의 제물이 되는 동시에 그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죄의 난제를 완전히 청산하고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들을 다시 영원한 생명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영생이라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이 참된 신앙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피의 제사이니 아담 때부터 내려오던 희생 제물의 피의 제사는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보고 예언적인 제사에 불과한 것이다. 예언적인 제사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라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속한 몸이 아니고는 영원한 속죄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온 물과 피가 임한 몸이므로 영원한 속죄가 된다.

 

  3. 생명적인 교제 (3)

  생명의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사람에게 흘러올 때에 그 생명을 받으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사귐이라는 것은 사람의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찾아와서 먼저 교제할 수 있는 구속의 일을 하시므로 사람이 그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교제를 갖게 되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그루터기에서 오는 진액이 가지로 가는 것으로 나무에 본색을 나타내고 나무에 본능적인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니,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인간들에게 흘러오는 교제가 있으므로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체가 이루어지는 인격과 그리스도가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열매가 나타난다. 이것이 생명적인 기독교의 열매라는 것이다.

 

  결 론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와의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신의 역사인 그 영원한 생명을 친히 받은 자 외에는 도저히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이란 역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이란 자체는 보고 듣는 것으로써 알 수 없고 친히 그 생명을 받는 사귐이 있으므로만이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흑암 권세와 인의 역사

- 계 9:1~5 -

 

  하나님은 언제나 흑암의 권세를 들어 쓰시면서 하나님의 권세 역사도 종에게 주어 승리하게 하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 신지를 알게도 하고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또는 왕권 자격의 인격을 종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계시록 9장에 있는 흑암의 권세와 인의 역사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종말의 마지막 결전적인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셔서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던 자들을 해방시켜 당신의 나라에 수를 채우는 역사의 끝을 맺는 시기에 관한 것을 보여준 계시다. 이 날까지는 흑암의 권세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 놓는 일을 목적으로 역사 했고(골1:13~14) 인간들이 자범죄로 흑암의 권세 마귀에게 지배를 받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의 역사로 죽었던 영들을 살리는 역사이었다(엡2:1~4). 그러나 여기에 흑암이라는 것은 권세를 주어서 내보내는 흑암이니 이것은 주 재림기에 변화성도를 일으키는 시기에 모략적인 방법이다.

  영적 구원은 십자가 승리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요, 변화성도가 살아서 들림 받는 것은 흑암의 세력을 허락해서 시험해 보는 일이 있고야 남은 자로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썩을 몸이 썩지 않고 영생하는 것은 흑암의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이기는 자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의 변화 승천을 목적한 교훈이다. 마귀를 극도로 강하게 역사 하도록 권세를 주는 것은 당신의 종도 강하게 들어 쓸 때가 왔기 때문이다. 9장에는 흑암의 권세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말했고 10장과 11장에는 변화성도의 강한 역사를 목적 두고 보여준 계시이다.

 

  2. 종된 자의 통일을 목적한다

  이날까지는 시험기가 아니므로 아무리 종된 자들이 혼선이 있다 하여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는 은혜 속에서 길러 주었지만 마지막에는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자는 다 황충떼의 피해를 당하게 하는 것은 교파를 초월하여 종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선한 모략의 방법이다.

  오늘날 기독교 종들의 상태는 너무나 자유적이요, 방랑적인 속화에 떨어진 자들이 오히려 참된 종들을 비난하고 자기 다수적인 클럽을 이뤄 놓고 교권적인 야욕에 날뛰는 자들이 뻔뻔스럽게 강단에 서서 떠들지만 앞으로 종된 자의 심판이 흑암 권세로 올 때에 완전 준비가 없는 자는 전부 흑암 권세 역사를 하는 악당들에게 짓밟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무서운 악당의 피해가 황충떼 같이 모여든다 해도 인의 권세를 받은 종에게 강한 역사가 임하므로 그들을 통하여 참된 교회를 일으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써 보았던들 도저히 일할 수 없는 때가 주 재림기의 환란이라는 것이다.

 

  3. 주님께서 내가 올 때에 믿는 자가 적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주 재림기에 흑암의 세력이 큰 권세를 잡고 나오므로 특별한 종으로 무장을 갖춘 자 외에는 남지를 못하고 떨어질 것을 가르쳤다. 이 흑암이라는 것은 죽고 싶으나 죽음이 피하는 고통을 주는 흑암의 역사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종된 자에게 보응을 내리는 때이므로 조금이라도 형식이 있고 교만이 있고 진리에 탈선이 된 자는 다 쓸어버리는 재앙이니 이 때에 남을 자는 순교자 동무로 인정을 받고 하늘에서 아껴 보호하고 주의 천사가 같이하는 종만이 남은 자가 되어 종말의 역사를 하므로 기독교의 오메가의 역사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누구든지 재림의 주를 살아서 영접할 자는 황충 떼 피해를 당치 않는 자 밖에는 바른 진리를 외칠 수가 없게 되므로 주의 날에 설 자가 인 맞은 종밖에는 없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하고도 복 있는 자는 인 맞은 종이라고 보게 된다. 이날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상 축복의 나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의 역사를 받은 자가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해 돋는 동방에서 나오는 역사로만이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가 될 것이다.

 

 

진리가 주는 자유

- 요 8:31~36 -

 

  인생의 최고 가치는 자유의 생활인데, 진리가 주는 자유가 없다면 그 자유는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안에서 자유를 바로 찾으면 향상이고, 진리 안에서 탈선된 자유를 따를 때에는 타락이 되게 한 것이니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진리로 오는 자유를 방해하도록 한 것은 마귀를 이기는 자에게 참된 자유를 주어서 세세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치 않고 간교한 뱀의 말을 순종했으므로 인생은 진리의 자유를 상실하고 마귀를 통하여 오는 욕심에 끌리는 자리에서 타락을 가져오는 생활이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방랑적인 자유가 인간 타락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금일에 인간들이 참된 진리를 대적하는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육체 정욕을 만족하게 해 보려는 것은 자유의 세계를 이루는 것보다 멸망의 날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제 진리가 주는 자유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진리에 거하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 (31)

  하나님은 자유의 신이시니 말씀을 주시는 동시에 말씀대로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신이시므로 사람이 그 말씀에 거할 때에 아무리 약한 자라도 말씀대로 역사하는 신의 역사를 통하여 무소 불능한 신의 힘으로 참된 진리의 자유를 이룰 수 있는 인격을 얻게 된다. 언제나 인생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인생을 들어서 역사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자유의 생활을 하는 축복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범죄하므로 죄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세력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을 긍휼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인생을 그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자유의 세계를 이루어 주겠다는 것이 복음의 말씀이니 말씀 안에 거하는 자라야 참된 말씀을 주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

  

  2. 진리를 분명히 알므로 (32)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인간에게 말씀한 것이니 그 진리를 분명히 알려면 진리를 따라 갈 때에 진리대로 역사하는 신의 증거를 받으므로 그 진리를 분명히 깨닫는 생활 안에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는 자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생활이 없는 자는 그 진리를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성경을 읽긴 읽지만 그 말씀 안에서 생활하지 않고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념적인 교만에서 오히려 마귀의 일을 하는 자들이 되었다(39~40).

  참된 자유라는 것은 의식과 도덕이 아니고 심령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에서 신의 축복을 받는 생활을 할 때에 참된 자유의 세계를 정복하는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오직 진리를 아는 것은 사람의 정신작용에 있지 않고 영이 하나님의 신과 교통하는 세계에서 영적 활동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진리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쁨의 생활이다.

 

  3. 주님만이 참된 자유를 주심 (36)

  참된 자유는 인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주시므로만이 있는 것이다. 자유를 위하여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 인생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공로도 사랑도 능력도 계시므로 누구든지 주를 믿고 순종할 때에 홀연히 참된 자유를 체험하는 생활을 기독교의 완전한 자유라 하는 것이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을 어둡게 하고 마음에 공포를 주는 신이지만 주님은 사람에게 언제나 완전히 깨닫는 마음을 주어 확실한 소망이 무엇인 것을 알게 하고 소망 중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주는 것이니 아무리 신자라 해도 죄의 생각이 마음을 점령한다면 이것은 주님이 주는 자유를 소유한 자라고 볼 수 없고 아직 그 심령은 마귀에게 속했다고 보게 된다(요8:44).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을 율법 아래 두지 않고 은혜 아래 두어 은혜로써 자유로운 행동을 하게 하되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자로써 참된 평강을 중심에 누리고 참된 기쁨을 가지고 아무런 난관이 와도 용기있게 나가도록 하는 것이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라는 것이다.

 

  결 론

  금일에 인간들이 자유를 찾는 것만은 누구나 인간 본능으로서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자유가 참된 자유이냐 이것이 마귀 미혹이냐를 모르는 사회에서 참된 자유를 진리 안에서 소유한 자만 앞으로 오는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고 새 시대를 정복할 수 있는 용사가 될 것이다.

 

 

새끼 양의 뿔과 용의 말

- 계 13:11~12 -

 

  하나님께서 심판기를 앞에 놓고 참된 크리스챤만이 남은 자가 되게 할 때에 마지막으로 까불어 보는 모략적인 방법이 양의 뿔과 용의 말이라고 했다. 양의 뿔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을 뜻했고 용의 말이라는 것은 간교한 뱀의 말인데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꾀이던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킨 것과 같이 말세에 그러한 방법으로 교회를 침투해 들어오는 유혹을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니 죄가 없는 아담 하와를 뱀을 들어서 꾀어 본 것은 그 몸에 영생과를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뱀의 말을 이기지 못하므로 에덴 축복을 빼앗긴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 종말에 지상축복을 받을 성도들에게 큰 미혹이 오게 한 것은 그 미혹을 이긴 자라야 지상축복을 다시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시험을 해보지 않고 누구든지 무조건 평화 왕국의 축복을 줄 수 없고 반드시 시험을 해보되 다음과 같이 시험이 오도록 하는 것이다.

 

  1. 교권을 따라오는 시험

  기독교가 이날까지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종들이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전도하였으므로 우상이 가득한 나라에서 피 흘린 투쟁이 있게 되므로 흑암을 뚫고 들어가서 빛의 교회가 서게 될 때에 처음에는 무서운 박해가 있었지만 그 빛을 따라서 새로운 문명이 있게 되므로 기독교는 세상에 큰 확장을 보게 되어 피 흘린 종교가 대 환영을 받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교회 안에 교권이라는 것이 나오게 되었다.

  교권이라는 것은 교회가 많은 재정권을 갖게되고 또는 인물에 치우친 숭배가 따르게 될 때에 마귀는 물질을 끼고 우수한 인물을 배경 삼아 교회에 침투하여 교권을 부리므로 참된 성도는 그 아래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종말에 큰 미혹이라는 것이다.

  이 세력은 진리를 중심한 것보다도 세상 적인 물권과 인권을 존중시하며 참된 신앙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가련한 양떼의 피를 빠는 일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 새끼양의 뿔이라는 것이다. 새끼 양이라는 것은 뿔이 없는데 뿔이 있다는 것은 변질을 가르쳤다. 변질이라는 것은 사랑 떠난 교권이다.

 

  2. 세상 학설로 들어오는 미혹

  이 세상이라는 것은 다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요一5:19에 말했으며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자는 미혹의 영이라고 요一4:5~6절에 말했다. 마귀는 언제나 그 시대 사람에게 진리를 바로 믿지 못하도록 할 때에 세상적인 말을 가지고 흑암을 넣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기독교가 짐승의 권세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은 멸망을 당하는 길이라고 계14:9~12에 말했다.

  소위 평화라는 간판 밑에서 붉은 용은 기독교를 침투하고 있다. 마귀 미혹은 언제나 그때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같이 보이나 결국은 멸망이다. 아담·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를 주는 것 같으나 결국은 멸망이었다. 금일에 기독교가 종말의 예언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지상왕국이 없다고 하는 것은 용의 말이라고 본다.

 

  3. 억압을 주는 일이다

  언제나 마귀는 사람이 눌림을 받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다. 말씀대로 살려면 살길을 막막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마귀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고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법이 마귀가 심판기에 마지막으로 쓰는 최후의 발악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마귀 미혹을 이기는 자는 담대해야만 되는 것이다. 모든 과거 사람이 다 그리스도를 신앙하기 위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운 것이 과거 역사이지만 기독교 종말에 미혹이라는 것은 믿는 자에게 들어오는 미혹이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시대와는 다르다.

  이것은 사상적인 문제가 결부되는 것이니 진노의 날에 심판이라는 것은 행위 심판이 아니고 그리스도 왕국이 이루어지기 위한 심판인데 그리스도의 통치가 붉은 짐승의 세력을 없애는 것이니 누구든지 짐승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가입되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이다. 이것을 아는 마귀는 기독교의 교권의 세력을 쥐고 붉은 짐승의 권세를 배경 삼아 짐승의 세력과 싸우지 않고 평화를 누려야 된다는 것이 거짓 선지의 행동이다.

 

  결 론

  인간이라는 것은 동물이 아니요, 양심이 있는 영물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무신론이라는 것은 사람을 고등 동물로 인정하는 것이니 근본적인 사상이 기독교의 진리와 전체적인 대립이 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이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망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참된 지혜와 열매

- 약 3:13~18 -

 

  지혜라는 것은 악마로부터 오는 지혜도 있고, 하나님께로 오는 지혜도 있으니 지혜에 대하여 어떠한 것이 참된 지혜인 것은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이제 참된 지혜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로 온 지혜인데, 이 지혜를 받은 자는 다음과 같다.

 

  1. 성결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롭게 나가는 것같이 보여도 성결이라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오히려 죄를 짓는 도구가 되는 지혜가 될 것이다. 참된 지혜의 성결이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믿는 동시에 그 마음이 성결하여져 하나님의 뜻과 병합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은 성결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마음에 부정이 있을 적에 그 자체는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결이라는 것은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신이 내 마음을 점령할 때에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알게 되므로 모든 일에 조금도 탈선된 과오를 범치 않는 것이다.

 

  2. 화평이다

  이 화평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핍박이나 고난을 당하여도 조금도 불평이 없는 화평을 말한다. 상대편에서 아무리 불평이 있어도 여기에 충격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는 지혜가 충만한 자는 오히려 더 화평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열매가 있다. 그러므로 지혜를 충만히 받은 스데반은 돌로 때리는 악당을 향하여 화평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볼 때에 그들에게 천사같이 보였던 것이다(행6:15, 7:39~60).

 

  3. 관용이다

  언제나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일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실수한 원인을 잘 이해하고 또는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형제의 장래를 내다보는 일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실수가 있는 자라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를 잘 지도할 수 있는 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는 열매가 있다.

 

  4. 양순이다

  이 양순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가 충만할 때에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누구든지 악으로 대하지 않고, 양심적인 인격에서 언제나 순조롭게 나가는 생활을 한다. 억지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행동이요, 양순이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니 누구든지 완전히 깨닫는 지혜가 있다면 그 일에 대하여 불평을 둘 수가 없고, 양순이 있게 된다.

 

  5. 긍휼이다

  완전한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통하여 오는 것이니 남을 위하여 눈물겨운 심정에서 기도하고 붙들어 주는 일이 있게 된다. 누구든지 지혜로운 종은 언제나 양떼를 대할 때에 불쌍히 보는 심정에서 진리를 말하게 된다. 진리라는 자체가 인간을 불쌍히 보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타난 말씀이니 지혜를 받은 자가 진리를 바로 깨달아 증거할 때에 남을 위하여, 살려 보려는 불타는 마음에서 목숨을 바치고 싸우게 된다.

 

  결 론

  완전한 지혜라는 것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고, 위로부터 오는 것이니 이 지혜를 받는 자만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를 맺으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제일 큰사랑

- 요 15:9~17 -

 

  인간들이 누구든지 마음에 사랑을 요구하되 큰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양심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호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일 큰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헤매는 것이 흑암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시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제일 큰 사랑의 비밀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그 사랑을 오히려 어리석게 아는 마음까지 생기도록 하는 것이 마귀 역사라는 것이다.

  이제 제일 큰 사랑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께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랑이다 (9상반절)

  인간이 볼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나서 쓸쓸한 빈곤을 거쳐 나사렛 목수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일이나, 또는 죄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달게 받으시고 죄인을 찾아간 일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령의 고통이 심하여 땀이 피가 되는 일이나,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힐 사형장으로 나갈 때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쓰러지고 넘어지며 십자가를 지고 나간 그 길에 어떠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사렛 예수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소위 대제사장이라는 무리들이 예수는 하나님이 저주했다고 판단을 내리며 비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부활 승천 하셔서 만왕의 왕이 된 일은 하나님의 큰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시 평안을 주고 기분을 주는 것보다 잠깐의 고난을 이기고 나가서 세세 영광을 누린다는 것이 큰 사랑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나사렛 촌 중에 목수의 한사람인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 되고 천하 만민이 그를 믿고 예배하고 섬기게 된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사랑일까!

 

  2. 주님의 사랑 (9하반절)

  이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니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죽을 자를 완전히 살려 주고 병든 자를 완전히 고쳐 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를 인격을 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해주는 사랑이다. 세계 인류가 이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새로운 왕국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사랑이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지식으로 알 수 없고 어떤 힘으로 그 사랑을 끓을 수가 없고 어떤 과학적인 기술로써 그 사랑의 가치를 다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성신의 감동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고 믿을 수도 있고 그 사랑을 마음에 간직 할 수도 있다. 약자가 강자를 위해서 죽는 일이나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을 위해 죽는 일은 인간에게 있을 수 있으나 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을 위해 강자가 약자를 위해서 죽는다는 사랑은 그리스도께만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사랑을 완성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줄 수 있는 신앙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이 사랑은 체험한 자만이 그 사랑 안에서 완전한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3. 친구를 위해 죽는 사랑 (13)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 중에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싸워 주는 사랑이니 십자가 도를 전하는 종들이 세계 인류의 많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이 없어지더라도 눈물 흘리면서 십자가를 증거 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 중에 제일 큰 사랑일 것이다. 우리에게 의복을 주고 먹을 것을 준다 해도 이것으로 큰 사랑이 아니고 우리에게 참된 진리 하나를 전하여 주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그 사랑은 무엇으로 갚을 수 없는 사랑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큰 사랑을 받은 자는 자동적으로 그 사랑이 나를 완전케 할 때에 완전한 인격으로 남을 살릴 수 있는 사랑이 순교한 성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이 아니면 기독교는 과거나 현재, 미래에 완전승리를 이루는 단체가 될 수 없다. 우리 앞에 승리의 길은 이 사랑을 남에게 주자는 불타는 마음에서 나서는 종들에게 완전한 역사가 말씀으로 임하고 능력으로 임하고 권세로서 임하여서 완전승리를 이루는 세계통일의 평화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사랑은 하나님께 있고 예수님께 있고 참된 성도에게 있는 것이니 이 사랑으로서만 마귀를 승리하고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 질 것이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

- 약 4:13~17 -

 

  하나님 자체는 생명이요, 빛이요, 사랑이시며 진리의 신이시므로 그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는 신이시다. 선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을 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이나 인간을 낸 것이나 이날까지 끊임없이 춘하추동 사시 절기를 따라 만족한 것을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자연계를 움직이고 계시며, 자연을 초월한 영계 활동을 움직이며 또는 순종하는 자에게 얼마든지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일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는 사람이 아무런 것도 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가 된다. 죄라는 것은 직접으로 자기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죄요, 남이 나쁜 일을 하도록 하는 것도 죄요, 남을 살려 주라는 사명을 맡아 가지고, 그 사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을 죽이는 죄와 같다. 그러므로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종이 중대한 사명을 맡아 가지고도 그 사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남을 살리고자 하는 주인이 급한 사정을 만난 인간에게 급한 일을 피할 수 있는 소식을 가서 전해 주라고 할 때에 이것을 전해 주지 않았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이제 선을 행치 않는 죄에 대하여 죄가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선한 일인데, 그 일이 안되도록 버려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망친 죄이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다(마25:27~30). 하나님이 언제나 선한 일을 하실 적에 사람을 통하여 하도록 하시는 것은 사람에게 더 큰 축복을 주되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인데, 그 사랑의 법칙을 짐짓 행치 않았다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죄도 된다.

 

  2. 인간을 아끼지 않는 죄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사람을 아름답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끼는 사람을 나도 아껴야 선한 일이 될 것인데, 남을 불쌍히 볼 줄 모르고, 사람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은 큰 죄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껴 주는 것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인데, 남을 도와 보려는 마음이 없을 때에 자동적으로 하나님과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의 죄를 용서할 줄 모르면 처벌을 받게 된다. 제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죄로 죽을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마18:33~35).

 

  3. 삯꾼이 되는 일이다 (미 3:10~11)

  삯꾼이라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일이라는 것은 다 남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인데, 희생적인 정신이 없이 주의 일이라 하면서 주의 일을 통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 자체는 죄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히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더럽힌다는 것은 거룩한 것을 속되게 한다는 것이다. 거룩이라는 자체는 자기 유익을 위한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심정에서 움직이는 것을 신의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종이 그 뜻을 어기고, 자기 욕망을 내세운다면 자동적으로 도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선한 일이라는 것은 값을 받지 않고, 남에게 주려는 것을 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익을 구하지 않고 일하는 자에게 친히 갚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마음이니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인간에게 무엇을 얻어 보려는 것이 있다면 갚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는 불의로 인정된다.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결 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축복하시는 이가 하나님인데 그것을 하지 않는 자는 축복 대신에 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니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선한 일을 행한 자만 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 창 1:27~31 -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는 그때부터 있게된 것인데 사람이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이신고로 홀로 역사할 수 없고 자기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목적 두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동시에 사람을 창조한 것이다.

  모든 만물은 사람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일에 돕는 피조물이 되고 사람은 그 만물의 도움을 받아 일할 수 있는 생활이 있게 된 것이다. 만물이라는 것은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있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복을 받으면 만물이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면 만물은 쇠약해지는 것이 인간 생활의 가치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명이다 (27~28상반절)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복을 줄 수도 있고 화를 줄 수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복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3 가지로 구분을 지어 주시는 것이다.

  1) 만물을 은혜로 주는 축복이다

  모든 동물은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한 활동 기관이다. 그러므로 이 복이라는 것은 절대로 만물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전부 효과를 발휘하여 그 열매로 사람을 돕는 것이다. 사람이 복을 받을 때에 만물은 열매가 좋아지고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할 때에 만물은 열매가 적어지는 것이다. 열매가 좋아지는 것을 물권 축복이라는 것이다. 이 축복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창조시에 무조건 주었던 축복이다.

  2) 왕권의 축복이다

  왕권이라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을 충분히 할 때에 받는 축복이다(계5:10~11). 하나님은 이 축복을 주시는 것은 일한 것이 없이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고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꾀어보고 그 뱀의 세력을 이기면 받는 것이요, 이기지 못하면 받지 못하는 것이 복을 주는 공의로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뱀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했다 하여도 이 왕권을 받기 위해서는 둘째아담 예수를 보내서 역사하는 것이다(계3:21).

  3) 세세 영광이다

  하나님은 세세 영광을 당신이 가지신 동시에 그 영광을 사람에게 주되 왕권으로 주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영광을 준다.

  ① 물질계 보다 더 화려한 도성을 주신다. 이 도성이라는 것은 흙에서 난 몸이 영체가 되어서 누리는 도성이다. 지금은 사람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목적에서 만물을 주셨지만 다음에 주는 영광은 만물을 영광으로 받는 축복이 된다(계21:3~5). 만일 하나님께서 현재 만물만 주고 새로운 다른 것이 없다면 영원한 영광이 될 수 없다. 영원한 영광이라는 것은 영원한 만물이 있어야 될 것이다.

  ② 영광으로 이루어진 도성을 받는다. 지금 이 세상은 영광으로 이루어진 도성이 아니고 만물의 빛으로 이루어진 도성이다. 하늘의 태양이 비춰지므로 이루어지는 것은 잠깐의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계21:23).

  만일 태양의 빛으로 밝아지는 도성만 있고 영광으로 이루어지는 도성이 없다면 사람에게 완전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태양의 빛을 통하여 만물이 회생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니 만일 이 빛이 아니라면 도저히 물질계라는 자체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광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루어졌으므로 햇빛이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2. 충만케 하는 사명이다 (28중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하에서 열매를 많이 이루어 놓는 것을 목적 둔 사명이다. 모든 식물은 씨 맺는 열매로 충만할 사명이 있고 동물은 동물로써 충만케 할 사명이 있고 사람은 사람의 의로운 씨로서 충만케 할 사명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의로운 씨가 충만해지지 않고 악한 씨가 충만해질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게 되었다. 홍수 심판도 악한 씨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요, 인류 종말에 바벨론이 한 시간에 불타는 것도 악한 씨를 없애기 위한 심판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는 심판이다.

  그러므로 새일 역사라는 것은 악한 씨를 없애고 의로운 씨만으로 지면에 채우는 것을 말한다(사43:19~21, 49:20~2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되 네 씨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진다”는 것은 새 시대의 축복을 두고 가르친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 받은 자녀들이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의 표를 받지 않고 남은 자가 지면에 충만해지므로 창조의 목적을 달성시키고 영원한 천국의 수가 차게 되므로 무궁 세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많은 열매를 맺어 충만한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3. 다스리라는 사명이다 (28하반절)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맡긴 것은 바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보다 만물의 종이 되는 데까지 떨어진 것을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뱀에게 미혹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순종했으므로 다스리는 권세를 빼앗기고 만물에게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스리는 권세를 다시 찾아서 의로운 사람이 통치하는 곳을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인데 그 기능을 상실하고 오늘의 과학 발전이 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원자핵으로 말미암아 인류 전멸이라는 비참을 이루게 된 것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버린 인간의 종말이다. 그러므로 물과 불이 당치 못하는 역사가 택한 자에게 임하므로 물질의 피해를 당치 않는 사람으로서 이루어지는 그때의 사람은 자기 사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사명을 받은 자로서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 변화, 성결로써 이루어지는 왕국이라는 것이다.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 되게 하는 역사

- 요 17:21~26 -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한 목적은 온전한 자로 하나가 되게 하는 나라를 이루어 영원히 당신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동시에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선한 모략의 방법을 취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자체가 온전한 신이신 동시에 당신을 공경하고 복을 받을 사람도 온전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하는 열매가 된다.

  이제 온전함을 이루게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보내신 예수를 믿게 하는 일로 하나가 되게 한다 (21)

  인생이라는 것은 자체가 온전한 것이 없는 피조물이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가장 간교한 뱀에게 진 것을 본다면 그 인격으로는 도저히 완전한 나라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질적으로 타락하고 영과 육이 다 사망으로 떨어진 인간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믿음으로만 하나게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이다. 누구든지 보내신 예수를 믿는 양심에는 자기라는 것이 없고 보내신 예수를 받아 들일 적에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행하신 역사는 전부가 믿는 자를 완전케 하는 열매가 된다.

 

  2. 영광을 주심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 (22)

  인간이 자기의 영광을 목적 둔다는 것은 교만의 하나가 될 것이요 주께서 주시는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겸손의 하나가 될 것이다. 누구든지 세상영광을 분토같이 보고 주께서 주시는 영광만을 바라보는 자는 자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영광을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그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영광을 바라본다면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대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 영광 하나를 목적두고 싸울 때에 세상 영광을 분토같이 보는 마음에서 승리의 용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고난을 통해서 오는 영광이니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자라야 그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사람이 자기 영광을 내세우려는 것은 오히려 악한 자가 될 것이다(요12:43).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3. 공평한 사랑을 통하여 (23)

  하나님께서 맏아들 되시는 예수를 사랑한 것 같이 아무런 사람이라도 믿는 사람은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녀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 못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에게 주신 성령을 우리에게도 주시고 그에게도 주었던 사명을 자녀가 되는 저희들을 통하여 행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자녀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대한 것 같이 우리 인간들을 대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서 나라는 자체는 없어지고 그 사랑으로만이 완전해 진다는 것을 믿고 나갈 때 자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은 총동원하여 역사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케 하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된 것 같이 우리 인간들이 그 신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영광을 누리자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장 년 공 과 편 - 변화 성도의 축복

 

제1과  복 받을 자격

- 사 49:1~7,  요절:7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변화성도가 받는 축복을 목적 두고 기록한 글이 선지서의 목적이라고 본다. 이날까지에 기독교에서 전한 복음은 선지 예언대로 메시야가 왔다는 것을 세계에 알려주는 것을 목적 두는 복음이니 이것을 천국 복음이라 한다. 천국 복음이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전할 복음이 아니고 죽어서 영으로 구원받고 심판 때 부활하는 것을 목적 두고 전하는 복음이다.

  변화성도의 축복이라는 것은 재림시까지 살아서 복음을 전하되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둔 복음 운동이니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일을 전하는 복음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시 예언의 선지 사명을 하게 된다.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선지들이 다윗 왕국의 지상 축복을 두고 묵시받은 비밀을 전하는 때를 변화성도가 주님을 맞이할 심판기라고 본다.

 

  1대지 : 모태로 택한 자이다 (1)

  하나님께서 변화성도로 택한 자는 은혜시대의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니고 환란과 재앙의 날에 말씀을 전할 종으로 택한 자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사명을 가지고 일할 종이다. 부활성도는 그때 그때에 교회를 세우고 개척하는 자로서 그 나라 나라의 방방곡곡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한 사람이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고 1900여년이나 수많은 성도가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금일에 와서 세계적인 대 종교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변화성도는 세계를 놓고 “섬들아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하는 역사를 하게 될 것을 1절에 가르쳤다.

 

  2대지 : 입으로 날카로운 칼같이 말씀을 전하는 자 (2)

  가장 복된 사람은 말씀을 조금도 혼선되지 않도록 전해서 많은 사람을 깨우쳐 미혹 받지 않게 하는 자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주 재림시까지 말씀에 혼선이 없이 바로 전하는 자라고 본다(마24:45~46).

 

  3대지 : 영광을 나타낼 일을 한 자이다 (3~4)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대접을 받는 자보다도 인간이 볼 때에는 억울함과 실패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원수를 갚아 줄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고 나간 자이다. 그때 그때에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자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로되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람에게 받는 영광을 원치 않고 수고하며 힘쓰는 자이다.

 

  4대지 :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이다 (5~7)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는 것은 시련 가운데 인정받고 종말에 완전 승리를 이루는 권세 역사를 하는 종이다. 이러한 종이 되려면 아무리 멸시와 미움을 받고 억압을 받았다 하여도 강하게 나가는 자이다. 이러한 자를 통하여 세계 통치의 왕권을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결 론

  변화성도라는 사람은 순교자가 아니고 순교적인 생활에서 영계가 높아지고 말씀이 밝아지고 인격이 완전해진 자로서 원수를 무찌르고 굴복시키는 역사를 하는 자를 가르친 것이다.

 

 

제2과  복을 나리는 역사

- 사 49:8~13,  요절:8 -

 

  서 론

  하나님께서 지상 축복을 나리는 것은 부활성도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변화성도에게 새 시대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데는 다음과 같은 역사가 있다.

 

  1대지 : 응답을 내리심 (8상반절)

  응답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정한 뜻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말씀대로 응답을 내리되 택한 자를 시련 시켜서 인정을 받게 하시고 인정을 받은 자에게 축복을 응답으로 내린다. 변화성도에게는 모든 전부가 땅위에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되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다윗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 응답이라는 것은 죄를 사함 받고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시련 가운데 부르짖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응답이라 한다.

 

  2대지 : 보호의 역사 (8중반절)

  이 보호라는 것은 응답의 역사에 완전 승리를 이루는 열매가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보호 없이 승리할 자는 전혀 없고 승리가 없이는 지상 축복을 받을 수 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목적이 3가지로 되어 있다.

  ① 죄를 사하겠다는 것이요.

  ② 보호한다는 것이요.

  ③ 지상 축복을 준다는 것이 선지서의 3가지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요소는 속죄의 은총을 이룬 것이요, 환란 가운데 보호란 것은 속죄의 은총을 받은 자를 원수의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해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땅 축복을 받게 하는 역사이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는 변화성도가 받는 축복의 대지가 되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새 시대에 들어가면서 부를 노래가 된다. 그러므로 보호를 받는 자가 아니고는 언약의 말씀을 끝까지 증거할 수 없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수도 없다.

  

  3대지 : 나라를 일으키는 역사 (8하반절)

  이 나라라는 것은 하늘 나라를 뜻한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성도의 나라를 가르친 것이다. 성도의 나라라는 것은 변화성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나라인데 복음이 천국을 위한 목적이 아니고 지상에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목적 두고 예언하는 것이 선지의 예언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변화성도가 일어나는 역사는 이사야 60장과 같이 동방 역사로 이 땅위에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쳤다. 기독교의 이날까지 역사는 천국을 목적하고 역사했지만 종말에 이 땅이 황폐가 되고 다시 새로워지는 새 땅 기업을 받는 것을 성도의 나라라 하는 것이다.

 

  4대지 : 긍휼을 베푸는 역사 (9~13)

  이 긍휼이라는 것은 속죄의 뜻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지상의 축복을 받는 일인데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서 절개 있게 말씀을 지켜 나간 자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적에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그에게 주기 위하여 친히 인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므로 각 나라에 남은 자가 새로운 시대에 아름다운 동산의 축복을 받게 된다.

 

  결 론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복을 주기를 기뻐하는 것이 사랑의 심정이지만 복을 주되 말씀대로 주는 것이니 은혜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언대로 주는 것이요, 환란과 재앙의 날에 남은 자로서 새로운 땅의 축복을 받는 것은 거기에 기록된 예언대로 주는 것이니 본문은 변화성도가 받는 축복을 가르친 예언이다.

 

 

제3과  축복 받은 종의 권리

- 사 49:14~26,  요절:17 -

 

  서 론

  이 땅에 많은 사람이 권리를 다투고 있지만 세계 통치의 권리를 다툴 자는 승리 용사의 자격을 가지고 싸워 이긴 변화성도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시련 가운데 인정받은 변화성도는 다음과 같은 권리가 있다.

 

  1대지 : 하나님께서 잊을 수 없는 공로가 있는 자이다 (14~15)

  하나님께서 시련 가운데 변치 않고 충성과 진실을 다한 종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 공로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종을 통하여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열매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권리가 있는 사람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이라고 본다(마24:46~47).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므로 모든 임금의 머리가 되었다(계1:5).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을 다한 자는 왕권의 권리를 받게 된다.

 

  2대지 : 영원한 도성이 있다 (16)

  이 영원한 도성이라는 것은 왕권을 뜻한 것이니 이 왕국이 건설되므로 다시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도성이란 것이다. 세상에 모든 강대국의 정권은 한 때에 깃발을 날렸지만 결국은 전부 망한 것이다. 그러나 이 도성은 항상 있는 도성이다.

 

  3대지 : 모든 백성이 영광이 된다 (17~18)

  새 땅의 국민은 변화성도를 통하여 바로 깨닫고 새로운 시대에 백성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하나같이 변화성도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전부가 그 종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백성이다.

 

  4대지 : 새 땅에 충만해지는 번창이 있다 (19~21)

  지금보다도 새 시대에 인종이 많아질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없는 때이니 더 많이 번창될 것이요, 또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기후가 변천되므로 어느 땅이나 사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질병과 재앙과 죽음이 없는 동산이니 극도로 거룩한 씨가 크게 번창하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될 것이다(창22:17~18).

 

  5대지 : 크게 숭배를 받는다 (22~23)

  아무리 세상에 강대한 정치가 있다 하여도 그 정치 안에는 원수가 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정치에는 모든 국민이 모두 그 왕을 숭배하되 왕권 받은 종의 자손을 숭배하고 왕의 발아래 엎드려 절하며 발에 티끌을 핥는다고 했다. 이것은 백성들이 너무나 감사해서 자진 적으로 받드는 숭배를 말한다.

 

  결 론

  변화성도는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는 일이 있으므로 대적이 전멸을 당하고 지상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기 때문에 어느 용사나 강포한 자가 피해를 줄 수 없고 다 그 앞에서 전멸을 당하게 된다(24~26).

 

 

제4과  변화성도의 사명

- 계 10:1~11,  요절:7 -

 

  서 론

  계시록에 보여준 다른 천사의 역사는 변화성도의 사명을 보여 주었다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변화성도가 역사할 때는 3대 화가 올 때에 그 화를 피하는 역사가 계시록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전할 복음이다(계22:6, 18~19). 이 날까지 전한 복음은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이다. 이 목적은 속죄 구령의 역사다(눅24:44~49). 그러나 변화성도가 전할 때는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지상 왕국을 이루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다른 천사에 대하여 변화성도의 사명이란 것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대지 : 작은 책을 든 천사의 모양 (1~3)

  몸에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경이 보인 것은 하늘로부터 구름 타고 승천할 역사가 오는 광경인데 그 머리에 무지개는 변화성도를 통하여 약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며 얼굴이 해 같다는 것은 어두움을 물리치고 나갈 빛의 역사인데 발이 불기둥 같이 나타난 것은 원수를 완전히 승리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로 말미암아 작은 책의 계시록을 가지고 크게 외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변화성도의 인격은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진노의 날이기 때문이다.

 

  2대지 : 지체하지 않고 지상 왕국이 올 때의 역사이다 (4~6)

  변화성도가 외치는 때는 죽어서 천당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지체하지 않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경고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조물주 하나님을 가르쳐서 맹세하는 일인데 이 맹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절대 몸을 바쳐 급한 경고를 한다는 것이다.

 

  3대지 :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다시 예언함 (7~11)

  이날까지 사도들은 선지서에서 초림의 주가 온 것을 가르치는 목적에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성경을 들어서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변화성도는 선지서의 부분적인 말을 할 때가 아니고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선지서에 말씀한 대로 지상 왕국이 올 것을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계시로 이 책을 받아서 먹으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배에는 쓰다는 것은 이 책을 전하는 때는 십자가의 쓴잔이 없이는 전할 수가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말씀대로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가 합하여 세계적인 큰 세력을 잡고 환란이 일어나는 때이므로 그 세력과 싸우는 데는 순교적인 생활이 없이 전할 수 없을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는 변화성도가 역사할 것을 보여준 동시에 변화성도가 역사할 때에 일어나는 원수의 세력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원수의 세력은 어떻게 들어 쓸 것과 종말의 변화성도를 어떻게 쓸 것을 목적하고 모든 선지에게 하나같이 묵시를 보여주었고 계시록에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사명은 메시야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명이라면 변화성도의 사명은 심판주를 영접할 준비를 시키는 사명이다. 준비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쓸 자가 되려면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되기 때문이다.

 

  결 론

  오늘 10장에 대한 공부는 변화성도의 사명을 목적하고 말한 것이니 언제나 계시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보여준 것이니 계시록 10장은 9장과 같이 화, 화가 올 때에 그 화를 피하는 자는 변화성도의 사명으로만이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제5과  변화성도의 통일

- 계 11:1~6,  요절:1 -

 

  서 론

  변화성도는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같이 통일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부활성도는 십자가만 증거하면 그밖에 성경 해석이 각각 달라도 사명에 대하여 별로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 하나만 증거한다면 누구나 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란과 재앙 가운데 교회를 살리려면 종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지 않으면 도저히 교회가 남을 수 없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통일을 가져올 것이다.

 

  1대지 : 하나같이 척량을 받음 (1)

  이 척량이라는 것은 사도요한이 계시를 볼 때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는 것을 받아 가지고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성도들의 말씀 통일을 보여준 것이다. 척량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법적 척량이니 이 척량을 할 자는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그 종이 전하는 말씀에서 하나가 될 것을 가르쳤다. 사도요한은 계시로 받았지만 말세 주 재림기에 반드시 말씀의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변화성도들이 하나같이 무장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2대지 : 교회 통일 (2~4)

  교회라는 것은 시대를 따라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니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회라면 다 이방 세력에게 밟히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척량을 받지 못한 자는 아무리 거룩한 성이라도 이방 세력에게 밟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촛대교회는 절대로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을 가르쳤으니 앞으로 원수 피해를 당치않고 남을 교회는 들림 받는 권세의 종들이 가르치는 교회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 통일은 교파 중심이 아니고 변화 승천할 성도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통일될 것을 가르쳤다. 남은 종은 변화 승천하고 남은 교회는 환란 중에 피난처에 보호받고 새 땅의 축복을 백성된 자격으로서 받게 된다.

 

  3대지 : 권세 통일 (5~6)

  권세라는 것은 증인 권세 역사인데 누구든지 변화성도는 다 권세를 받게 된다. 본문에 증인이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변화성도가 받는 권세 역사의 대표적인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대표가 있는 동시에 변화성도는 하나같이 권세를 행하게 된다. 이것은 감람나무 같은 한 단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앙으로 땅을 치며 나가는 것은 변화성도가 하나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다. 복음을 전하는 용사들이 짐승의 세력을 대항해서 싸우다가 들림을 받게 된다.

  변화성도는 은사를 받은 종이 다시 권세를 받으므로 남은 종이 되기 때문이다. 계7:2~3에 인맞은 역사가 즉 권세 역사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천사의 역사는 변화성도를 뜻했기 때문이다.

 

  결 론

  변화성도라는 사람은 주 재림시에 하나같이 단체로 역사하다가 단체로 들림을 받는 것이니 부활성도는 역사가 흘러가면서 그때 그때에 순교를 당한 자요, 변화성도는 하나같이 역사하다가 하나같이 들림 받을 무리를 가르쳐 14만 4천이라는 것이다.

 

 

 

논 설 편

 

1. 주일 예배에 대하여

 

  1. 우리는 주일날을 맞이할 때 율법적인 안식의 날로 지킨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적인 법에 의해서 주일 날 역사 하는 것이 아니고 성신의 법에 의하여 역사 하는 때에 주일을 지키는 자가 율법에 의하여 그 날을 지킨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폐단이 있다.

  1) 억지라는 것이 들어가는 폐단이 있다. 언제나 예배하는 자는 성령의 은총 속에 잠겨야만 되는 것인데 율법을 따라서 그 날을 지킬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억지라는 것이 들어간다.

  2) 하루를 쉬겠다는 정신에서 아무런 힘을 내지 않고 육의 평안을 목적 두고 나갈 때에 영적에 대한 간절한 마음조차 식어지고 마는 폐단이 있다. 그렇게 되면 주일을 지키되 자기 육체의 안식을 위하여 쉬는 날이 되고 만다면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이 되는 제사가 되지 않고 예배는 형식에 따라서 잠깐만 드리는 날이 될 것이다.

  3) 주의 날을 하루 쉬는 날로만 생각이 들어가면 오락으로 흐르는 폐단이 있게 된다. 사업에 피곤하던 사람들이 한번 오락을 할 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목적하고 주일날을 하루 재미있게 쉬는 날이 되면 교회는 주일이 오락화되고 예배는 신령한 기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2. 성신의 법으로 지키는 날이 되어야 한다. 성신의 법으로 지킬 때에 신령한 안식의 축복의 날이 되는데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1) 모든 사업을 중지하는 것은 율법을 따라 하지 않고 성신의 법에 의하여 그날을 충만한 은혜를 받는데 전력을 두는 날로 삼아야 된다. 왜냐하면 모든 교인들이 직장이나 농장에 나가서 신령한 것을 접촉하는 시간이 없고 육의 일만 접촉할 때에 그 영들이 곤핍을 느끼고 그 몸도 육의 활동만 했으므로 신령한 은혜 속에 잠겨질 적에 영도 새로워지고 몸도 성령의 은총 속에서 피곤이 없어지는 자리에 들어가야만 신령하게 지키는 안식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교인들이 세상의 일을 잊으리 만큼 새로운 감화를 받고 말씀을 받아야만 된다.

  2) 성심 성의를 다해야 된다. 아침부터 모든 교인들은 신령한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교회에 출석할 때에 예배 시간 전 한시간 정도나 30분전에 도착해서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를 하고 호소하는 성가를 불러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완전한 교통이 되는 세계에 들어가도록 노력한 다음에 정식 대 예배를 드려야만 될 것이다.

  예배라는 것은 준비가 없이 예배가 될 수 없으니 언제나 교역자는 적어도 한시간이나 30분전에 강단에 나가서 교인들을 영적으로 움직이는 성가를 인도하고 합심 호소를 하도록 인도하는 일이 있은 다음에 대 예배를 인도하여야 될 것이다. 교인들이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집에 있다든지 오락을 하고 있다면 벌써 죄를 짓고 들어온 것이니 예배가 될 수 없다.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는 것은 시간이나 지키자는 습관의 예배가 된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공연히 세상 말을 하고 앉은 시간에 벌써 예배에 성심이 없는 사람이 되니 아무런 신령한 은혜가 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시간 전에 모여서 부르짖는 안타까운 심령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애쓰는 마음이 있어서 간절히 호소하는 일이 있은 다음에 예배를 드리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3) 예배는 의식에 매이지 말고 의식을 초월하여 성신의 인도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인들은 예배 시간을 지키는데서 머무르지 말고 은혜를 흡족히 받는데 맛을 얻도록 할 때에 예배하는 자들은 그 은혜를 갈망해서 교회를 그리워하며 미리 모여드는 일이 있어야 된다.

  4) 새로운 말씀이 영적으로 내려야 한다. 강단에 선 사람이 새로이 위에서 오는 말을 하지 않고 냉냉하게 자기가 스스로 깊이 연구했던 것을 말하는 정도는 생명의 꼴이 되지 못하고 마른 꼴이 될 것이다. 언제나 강단은 하늘 보좌와 직접으로 교통을 받는 강단이 되어 그날 그날에 모인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말씀이 내려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목적을 두지 말고 자신이 완전히 설교자의 인격을 하나님께 찾고 성령에 이끌려서 말할 수 있는 데에 들어가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는 것을 목적하고 항상 깊은 기도가 있어야 될 것이다. 설교가 하나님께서 말하게 하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완전히 성령님께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주일예배는 교인들이 1주일간 직장에 나가서 승리할 수 있는 새로움을 주는 거룩한 시간이 될 것이다.

 

 

2. 평화주의에 대하여

  

  평화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평화도 있고 기뻐하지 않는 평화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금일에 평화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마귀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1. 기독교를 망치자는 목적을 두고 들어오는 평화가 있으니 금일에 사상전을 앞에 놓고 모든 난제는 사상 문제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반 기독적인 사상이라는 것은 마귀의 쑥물이요 기독교의 사상은 하나님의 생수인데 쑥물과 생수가 합할 때에 자동적으로 생수는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전에 있어서 공산주의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서로 이해하고 합의를 본다는 것은 백전백패하는 일이 기독교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진실이라는 것이 없다면 즉시에 망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레닌주의의 원 사상은 기만적인 정책을 쓰라는 것인데 기만적인 정책을 쓰는 사상과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실을 가져야 될 기독교 사상과에 서로 합의를 본다는 것은 언제나 기만 정책의 이용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평화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공산당의 사상을 회개시키는 것이 없이 그 사상을 용납하고 서로 합의를 본다는 것은 거짓 선지의 미혹이 된다.

 

  2. 소위 남을 살린다는 간판 밑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불의한 세력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인데 불의한 세력과 싸우지 않고 평화를 보자는 것은 음녀적인 행동이니 심판 날에 망할 바벨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한 주권 쟁탈이나 또는 생존 경쟁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마귀 세력을 때려부수는 종말의 심판을 믿을진대는 하나님의 심판의 다림줄에 의하여 외칠 말은 다음과 같다.

  마귀 세력이 성할 때는 심판기라는 것이 기독교 종말관이니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새로운 시대가 올 때는 북방의 악자 세력이 극도로 강해져서 인력으로 당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일어나 북방을 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데는 북방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싸워 나가던 자에게 새 땅 축복이 오고 그밖에 북방 세력과 타협하던 무리는 전부 심판의 재앙으로 없애 버린다는 것이 모든 선지가 본 묵시인 동시에 계시록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는 기독 신앙 양심에서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에 조금도 악의 세력을 그냥 두고 평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니 술취한 자의 행동이 되고 말 것이다.

 

  3. 어리석은 자의 행동은 현실주의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현실을 위해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고 현실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인생의 참된 가치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바로 분별하도록 가르친 동시에 현실 다음 미래는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선지서나 계시록을 읽어 볼 때에 금일의 현실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고 미래에 관한 소망을 햇빛같이 내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세속화 신학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은 기독교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금일에 과학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이때에 기독교가 과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과학 문명이 성경을 바로 알게 하는 시대적인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인류 종말에 과학 문명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을 미리 말했던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별세계까지 침범할 때는 심판기라는 것을 오바댜 선지는 묵시로 보았던 것이다.

  금일에 세계 인류가 30분만에 전멸을 당하는 과학적인 무기가 나온 것은 성경에 인류 종말에 악자의 세력이 없어지는 일이 이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했고 다음에는 새 시대가 온다고 말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 양심이라면 금일에 인위적인 방법으로 공산당과 평화를 누려보자는 것은 죽어도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망할 자는 붉은 짐승이요, 그의 표를 받은 자라고 가르친 계시록을 보아서 조금도 기독교 사상을 가진 자라면 붉은 짐승의 세력을 무서워 할 것도 없고 그와 타협할 것도 없고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 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진리 안에서 그날 그날에 올바른 정신과 사상 양심으로 충성을 다할 것 뿐이다.

  참된 평화라는 것은 붉은 용, 짐승, 거짓 선지의 세력이 완전히 없어지므로만이 온다는 것을 계시록은 가르쳤다. 우리는 오늘에 붉은 세력이 강하게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세력을 잠깐 동안 높여서 참된 사상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 참된 평화 왕국을 주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라고 보게 된다.

 

 

3. 기독교 부흥 운동에 관하여

 

  기독교는 큰 부흥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될 때가 왔다고 본다. 만일 현실 상태로 나간다면 그야말로 진노의 막대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하였다고 본다. 금일에 기독교가 위기에 처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처음 사랑을 버렸다

  처음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오는 사랑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인데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에 성령의 사랑의 불길이 내릴 적에 아무리 핍박이 오고 환란이 와도 조금도 꺼지지 않고 그 불은 맹렬히 붙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주의 종들이 눈물을 흘려서 부르짖고 외치는 일은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받아야만 될 것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식었느냐에 대하여는 성서의 예언이 응하는 과정이라고 보게 된다. 마24:12을 보면 불법적인 교권이 강단을 좌우하고 교회를 움직일 적에 자연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내리지를 않으니 사랑은 다 식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찾으려면 교회는 큰 혁신이 와야 할 것이다. 소위 불법적인 교권이 무너지는 역사가 와야 할 것이니 이것은 새로운 역사가 나와야 한다.

  새로운 역사라는 것은 현재에 진리의 잘못된 해석을 하는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진리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영계로 들어가서 종말관의 진리를 하나같이 들고나서는 역사가 나타나므로만이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7배 영감으로 오게 될 것이다.

 

  2. 말씀에 맛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

  계시록8장을 보면 셋째 천사가 나팔 불 때에 단물이 쑥물이 된다 했으니 이것은 기독교가 단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리고 쑥물을 먹게 되는 위기를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지고 그 심령에 만족을 주게 하는 진리 운동이 일어나는 데는 이 시대에 여러 가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아시아를 중심하여 적 그리스도적인 북방 세력이 큰 위협을 주고 음녀적인 협상주의가 교권을 쥐고 압력을 주며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전쟁이 공포를 주고 인심 악화로 오는 시련이 피곤을 주는 이때에 이들의 심령에 만족을 주는 진리는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어 천당이라는 목적을 둔 진리 운동을 전할 때는 지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는 계시록과 선지서의 전체의 비밀을 가지고 이 시국을 바로 말해주며 앞으로 난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것을 햇빛같이 드러내 주는 진리 운동의 대 부흥단이 나와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은사로써 대 부흥단이 될 수 없고 시대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각성을 주는 데는 말씀 권세의 부흥단이 나와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부흥은 환란과 재앙을 면코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통하여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교파심을 가진 것이 기독교의 큰 병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지체가 똑같이 혈맥이 통하여야 되겠는데 이것이 막힌다면 몸은 병신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교파의 담을 막고 자기 교파만을 내세우는 야욕적 행동은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행동이 될 것이다.

  한 때에 씨를 뿌리기 위하여 교파적인 행동을 한 일도 하나님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은 교파를 위한 교파가 아니고 그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철저히 전해 보자는 마음이 불이 타서 전할 때에 특별한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니 부패한 자들이 그 종을 대적하려고 일어나매 자동적으로 갈라서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교파라는 것은 루터 종교개혁부터 시작한 것이다. 루터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루터가 교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로마교의 진리의 탈선된 모순을 고쳐야 된다는 진리를 가진 것 뿐이다. 그런데 교황이 루터를 축출하므로 자동적으로 신교가 교파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 후에 긴 시일이 흘러갈 때에 신교에서 신령한 사람이 많이 나오니 그때 그때에 신교 안에서 신령한 세계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교권을 쥐고 신령한 은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할 때에 쫓겨남을 받은 자가 교파를 이루게 된 것이 금일에 와서 여러 가지 교파가 생겼는데 금일에 와서 교파심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이제 부흥은 교파를 초월하여 통합으로 일어날 것인데 소위 합동이니 통합이니 하는 이것이 종말의 부흥 운동이 아니고 이제 최고의 영계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서 시국 난제를 해결할 진리를 들고 하늘 권세와 땅의 권세를 아울러 받고 나가는 일이 있으므로 만이 교파를 초월한 진리 통합의 촛대교회가 나오므로 계11:3 이하와 같이 될 것이다.

  이제 기독교 부흥이라는 것은 완전히 승리의 용사로 남은 종이 되어 북방 세력을 무찌르고 북진하기까지 강하게 역사하므로 철의 장막 속에 있는 양떼를 구출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큰 각성을 주게 될 것이다.

  교파라는 것은 어지러운 환란이 나올 때에는 자동적으로 무너질 것이로되 환란을 이기고 나가는 권세의 종들을 통하여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오므로 환란에서 시작되었던 기독교는 환란에서 끝을 맺을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이 교회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환란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남은 종, 남은 백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4. 시대적인 설교에 대하여

 

  금일에 많은 사람들이 시대적인 진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설교를 하여야 시대적인 설교가 될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이 시대 사람의 심리를 맞추어 설교하는 것보다도 각성하고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어떤 종이 강단에 서서 과학적으로써 이 시대 사람을 끌어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시대에서 공포심을 갖고 피곤을 느끼고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 과학을 초월한 데서 과학자가 깨닫고 돌아오는 설교가 있어야 된다. 과학을 초월한 지혜와 지식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말하는 설교가 있어야 된다.

  만일 금일에 설교자가 과학적 지혜와 지식에 국한된 설교를 하는 것은 과학자에게 아무런 감화를 줄 수 없고 과학자가 깨닫고 돌아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말해야 된다. 또는 과학의 힘에 국한된 활동을 하지 말고 과학의 힘을 초월한 권세와 능력으로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금일에 기독교가 이러한 설교자가 없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다.

 

  2. 금일에 사회 발전을 위하여 교회가 일하는 것보다도 교회가 현실에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교회로 발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교회가 현실 상태에서 사회 발전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하고 이 사회에 물들어서 신령한 교회가 망하게 되는 위기에 도착했다고 본다. 기독교는 공산당에게 끌리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공산당이 벌벌 떨면서 교회를 따라 들어오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예언하기를 종말에는 이방적인 세력이 떨면서 회개하고 들어오는 일이 있는 것이 종말의 역사라고 모든 선지는 하나 같이 묵시를 본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교회는 전하는 말씀이 이 시대 사람에게 각성을 줄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하고 소망이 되는 새 시대에 들어갈 진리를 햇빛같이 밝게 증거해 주는 촛대역사를 일으켜야 된다. 지금 설교자는 간증이나 예화를 할 때가 아니고 선지서의 본문대로 읽어서 이 시대 사람을 깨닫게 하고 확실한 소망을 넣어 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3.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보다도 신의 완전 역사를 하나님께로 받아서 인간의 힘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로만이 하나가 될 것을 믿고 설교자는 자기의 지식이나 어떤 방법을 포기하고 신께서 기뻐하는 일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신이 그 신 앞에 완전히 연합되어 모든 전부를 여호와의 신으로만 행하는 높은 영계로 들어가는데 전력을 두어야 한다.

  주님 재림할 때까지 남은 종으로 설교하려면 설교자 자체가 그 몸이 변화 승천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진 자라야 재림 시까지 촛대교회를 지키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하는 것만을 목적 두지 말고 자기 자신이 날마다 영계가 높은 수준에 올라가는 것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될 것이다. 금일에 교회가 잠자는 상태에 놓인 것은 설교자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죽어 천당가는 준비를 시키는 것보다도 환란과 재앙이 오더라도 남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 시국은 무엇으로 보든지 심판기로 본다. 이 심판이라는 것은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기 위한 심판이니 만큼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 지식을 성경에서 가르치며 그 인격을 새 힘 역사에서 받도록 운동을 해야 된다. 은사로써는 환란 가운데 남을 자의 인격을 이룰 수 없고 권세 새 힘으로써 변화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질 것이니 자신이 권세 새 힘을 받고 강단에 서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5. 자녀 교육에 대하여

 

  우리는 시대가 악하니 만큼 성도의 가정에 자녀 교육 문제가 극히 어려운 때가 왔다고 보게 된다. 성서의 말씀대로 어린아이가 어른을 대적하고 자녀가 부모를 대적한다는 말씀대로 오늘의 학생들은 극히 방탕에 떨어지는 부패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서로 이 시대를 알게 하는 교훈이 있어야 된다

  왜냐하면 금일에 무신론 정책이 극도로 강하여짐에 따라서 학생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사상보다도 없다는 사상에 기울어지는 때가 왔다. 그러므로 금일에 무신론 정책이 발전하여 올라가는 것을 성경을 들어 가지고 교훈하는 것이 있을 때에 학생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그 사상이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니 학생들에게 무신론 사상을 가진 북방 세력은 망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훈이 철저히 있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어린 학생들에게 그 사상을 넣어 주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기를 때에 어려서부터 사상을 바로 넣어 주는 것은 인격을 완성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2. 자녀에게 실천으로 감화를 주는 일이 있어야 된다

  자녀의 마음 가운데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부모와 같이 한다는 생각이 있게 되어야 된다. 만일 하나님의 신의 증거가 그 학생들에게 없게 된다면 학생들은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언제나 가정에서 가정 기도회가 있는 동시에 어린 자녀도 신의 감화를 받도록 노력해야 된다. 만일 부모가 자녀에게 신의 감화로써 교훈하는 일이 없이는 자녀에게 사단은 더 역사 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항상 자녀를 영적으로 움직이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자신이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3. 부모는 책임감을 완수해야 된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책임감을 못하고 만다면 자녀에게 그 권리를 상실한다. 그러므로 항상 자녀에게 대하여 부모가 할 의무교육이 있어야 될 것이다.

  어떤 부모가 가정에 앞으로 자녀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 보이는데도 여기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고 방심적인 태도로써 그 일이 잘못된 뒤에 자녀에 대하여 말해 보았던들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할 것이다. 또는 자녀에 대한 관심을 하나님보다 더 둔다는 것은 탈선된 일이지만 자녀에 대한 문제를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바로 될 것을 믿고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이다.

 

  4. 자녀를 섬기는 자도 되지 말고 억압하는 자도 되지 말고 자녀에게 소망을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자녀가 언제나 부모를 볼 때에 힘이 나도록 되어야 된다. 이것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모가 성심 성의로 무엇을 하는 것을 볼 때에 자녀 마음에도 무엇이나 열심으로 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학생이라는 것은 언제나 보는 것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강하니 만큼 부모의 하는 일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언제나 부모에게서 되어지는 일이 자녀에게 열매가 되는 것이니 이 땅에서 축복 받을 일을 하게 될 때에 자녀도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변화성도의 교리신조

 

  1. 우리는 삼위 일체의 완전성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는 모든 선지의 예언이 성취된 성신의 잉태로 탄생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믿으며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와 승리의 부활로 말미암아 오는 중생과 성신의 법으로 해방된 성도의 생활에서 맺어지는 성신의 열매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2.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말세의 모든 족속이 하나같이 복을 누리는 안식의 축복을 믿으며, 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영만이 아니요, 영, 육이 아울러 들어가는 것을 믿되  왕권으로 들어갈 자도 있고 종족인 백성으로 들어갈 자도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3.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신앙에서 아브라함의 자손 된 것을 믿는 동시에 모든 선지의 예언은 전부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인 것을 믿되 계시록을 중점으로 하는 성경 전체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다.

  4. 우리는 말세 비밀인 계시록의 진리는 모든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세 재앙의 날의 성도로서의 조금도 혼선이 없는 정확한 다림줄의 진리를 굳게 잡고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우리의 싸움의 대상자는 적마의 3세력이니 이것을 심판하여 없이 하는 것은 증인 권세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바이다.

  5. 우리의 동방역사는 어떤 교파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말적인 예언의 말씀을 정확히 증거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세계적인 역사가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6. 우리는 모든 민족을 환란 재앙 속에서 구출시키는 복음은 말세 비밀이라는 것을 믿는 동시에 이 복음을 통하여서만이 하나님은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심으로 모든 교파는 자동적으로 진리 안에 하나가 될 것을 믿는 것이다.

  7. 우리는 통합을 목적으로 하되 진리 통합을 위한 부흥단을 적극 활동하되 누구나 협상주의를 반대하는 자면 다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며 이것을 중점으로 부흥단을 적극 활동하여야만 된다고 믿되 이 역사는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세로 북진할 것을 믿는다.

  8. 우리는 공중재림을 영접하는 자는 순교자와 또는 남은 종으로서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들이며 죽은 자의 부활과 생존성도의 변화 승천을 믿는다.

  9. 우리는 택민 보호를 믿되 예비처의 양육을 받는 일과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지상강림을 영접하는 자는 말세 비밀의 예언을 믿고 거짓선지의 미혹을 받지 않고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라야 바벨론이 망할 때에 남은 백성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10. 우리는 천년왕국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되 종족이 번성하는 것과 왕권 가진 성도의 통치를 믿는 것이다.

  11. 우리는 무궁세계를 신천신지의 영원한 새 도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되 세세의 왕권과 시민권을 믿는 것이다.

  12. 우리는 처음 하늘과 땅은 천년왕국의 종말로 끝을 맺고 새 예루살렘은 현세에 국한되지 않고 영체의 사람으로서 필요한 만물과 화려한 도성이 있되 행위의 심판에 따라서 차별이 있는 보상을 믿는 것이다.

 

 

 

신  앙  문  답

 

  신앙 혼란 시기를 당한 성도들에게 반드시 알아야 할 문답이오니 이 10가지 문답을 읽어보시면 대략한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호에 더 구체적인 신앙문답이 나올 것입니다.

  신앙에 의문되는 점을 가지신 분은 그 목적을 알려주시면 다음호에 답변을 하여 드리겠습니다.

                 ◈ 연락처   서울특별시 종로 1가 3번지 의사빌딩 9층

                           새일중앙교회 「아름다운 소식」

 

【문】1. 유일신 종교가 무엇인지를 믿습니까?

【답】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유일신 종교는 여호와의 신을 믿는 것인데 그 신은 스스로 계신 신이라고 믿으며 그 외의 신은 다 피조물인 동시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신인즉 여호와의 신 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여호와의 신을 대적하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신 한 분만을 믿는 자들을 통하여 참된 진리는 세상에 뚜렷이 나타난 것을 유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문】2.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답】성경은 한가지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따라 역사 했고 말씀을 나타냈는데 이루어진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이므로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역사를 대강 쓰고 세밀히 쓴 것뿐이라고 믿으며 또는 그 시대에 법을 말씀한 성경은 직접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사람이 받아 기록한 글이니 만큼 이 글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법도 있고, 이루어질 법도 있으니 이루어진 법은 십자가의 법이요, 이루어지는 현실의 법은 성신의 법인 동시에 이루어질 법은 심판의 다림줄인 예언의 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은 사람이 저술했으므로 약간의 빠진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으로 말씀한 법은 하나도 빠짐이 없고 정확무오한 법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3. 신앙은 어떠한 노선이라야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답】지금 기독교는 여러 가지 신앙 노선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지금의 기독교 신앙은 이루어진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신앙만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백성 된 자들이 그 노선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장성기에 있는 것이므로 오메가의 진리를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 알곡을 모으는 추수기가 아니므로 노선이 동일치 못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속죄 구령이라는 것이 끝이 아니요,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시작이라면 기독교가 완전히 승리적인 평화 왕국을 지상에 이루어 놓는 것은 끝을 맺는 결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 기독교가 큰 혼선을 가져오는 것은 완전한 다림줄의 진리를 잡지 못하고 씨를 뿌리는 일과 가꾸는 일에 불과한 역사요 완전히 결실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끝을 정확히 바로 맺는 신앙 노선을 가진 자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 성도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같이 교파를 초월한 한 단체가 나올 것이니 이것은 계11:1과 같이 되는 때에 완전한 신앙 노선을 하나같이 바로 찾아 끝을 맺게 되는 것을 증인 권세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본문 그대로 읽어서 듣고 지키는 것으로 끝을 맺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문】4. 오늘에 W.C.C 라는 신앙 노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나는 통합을 원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비 성서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노선이니 오늘의 W.C.C의 통합이라는 간판만은 찬성하는 바이나 통합의 방법이 사단의 세력을 막는 방법이 아니고 활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공산 진영에 소위 기독교 공산 연맹 단체의 사람을 회개시키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권리를 허용한다는 것은 기독교가 자체를 망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을 하는 군대가 적군이 자기 진중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망령된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공산당과 조금도 연맹할 수 없는 진리 사상 문제인데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는 자체는 공산당에 이용을 당하는 단체인데 그러한 분자들을 회의석상에 언권을 허용하고 결의권을 준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이 합하는 일이니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백전백패하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막대기를 드신 것을 공산당으로 보고 막대기를 드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하나님 앞에 하나같이 회개하는 운동과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기독교 종말의 기독교 진리로 통합을 시키는 새로운 역사가 있기 전에는 W.C.C 운동 같은 것이라는 것은 하등의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는 망령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양떼들은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 멀지 않은 장래에 가련한 양들은 울면서 쫓겨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문】5. 기독교 신앙에 새 일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사43:19)

【답】우리 기독교는 새 언약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 피로 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이방과 유대에 담을 막고 세계 통일이라는 진리 운동을 할 수가 없는 시기였지만 계5:9~10을 보면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족속을 사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이날까지의 그리스도의 피를 믿도록 세계 인류에게 교회를 세우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서는 것으로만이 끝이 아니고 교회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새 일이라고 사43:19이하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피가 새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면 새 일은 새 사람만이 사는 새 땅의 새로운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가르쳤습니다. 세밀히 말하자면 새 언약의 피를 믿으므로 세계 인류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일은 은혜 시대라면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므로 새 땅의 에덴 축복을 받는 일은 환란과 재앙 시대를 통과하는 새 일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일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 것입니다.

 

 

【문】6. 증인 권세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11:3)

【답】권세라는 것은 여호와의 신밖에는 가진 자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부활 승천하실 적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권세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셨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만방에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되 어느 나라 민족이든지 다 하나같이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승리가 없었다면 마귀 권세 아래 있는 죽은 영들이 감히 그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고 감히 예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귀와 싸우는 종교니 마귀를 이기는 권세가 없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날까지의 모든 전도자는 십자가를 증거할 때에 그리스도의 권세로 죄가 사해지는 일이 있을 적에 죄의 권세는 자동적으로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빛의 권세가 승리하므로 교회가 세계에 대 확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 권세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인류적으로 큰 화가 올 때에 하나님은 마귀 흑암 세력을 계시록 9장과 같이 개방을 시켜 모든 사람을 크게 시험을 할 때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인데 증인 권세를 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 흑암을 뚫고 나가면서 승리하므로만이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 하므로만이 환란의 재앙을 벗어나게 되므로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는 일인데, 하나님이 종들에게 그 말씀을 따라서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데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을 먼저 세워서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하도록 하는 일이 있으므로, 그 역사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깨닫고 말씀 권세를 받게 되므로 최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을 증인 권세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세의 종들을 통하여 완전한 촛대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교회가 남은 교회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입니다.

 

 

【문】7.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계11:6)

【답】이 역사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일어나는 역사이니 이날까지의 전도 방법은 버림돌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보혈을 증거하는 것이므로 원수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죄인들에게 이적을 보여주므로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생명의 구주인 것을 알게 해서 그들이 십자가의 도를 믿도록 하는 역사이니 얼마든지 핍박하는 자라도 회개할 기회를 기다리는 때였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의 역사는 택한 자를 공산당의 손에서 찾아내기 위하여 원수를 굴복시키는 역사를 할 때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해방을 시키듯이 마지막 때에 억울하게 압박을 받고 신앙 자유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을 그 손에서 해방시켜서 한데로 모아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역사라는 것은 천당을 목적한 역사가 아니고 지상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택한 자를 찾아내어 새 땅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니 이 역사는 은사 역사가 아니고 권리 행사로 모든 백성을 떨게 해서 굴복하고 돌아오도록 만드는 역사이다. 왜냐 할 때 마귀가 권세를 받고 나와서 교회를 집어삼키는 악한 정치를 할 때에 마귀 세력을 물리치는 일을 하여 강권으로 택한 자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 역사에 끝을 맺는 역사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상태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소위 평화  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공산당을 용납하는 음녀적인 바벨 교회를 때려부수면서 참된 백성을 찾아내며 세계 인류를 붉은 용의 세력 안에서 구출시키는 역사는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라는 것이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어느 나라나 택한 자는 다 깨닫고 순종하게 될 때에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1260일 동안 예언하는 역사로 끝을 맺고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 성도로서 대 승리를 이루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를 이루게 된다.

 

 

【문】8. 부활성도의 사명과 변화성도의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계20:4~6)

【답】부활성도라는 것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순교하기까지 싸운 자를 가르친 것이다.

  1차 부활이란 것은 왕권을 받을 자만이 해당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시므로 임금의 머리가 되셨고(계1:5), 부활 성도는 죽기까지 십자가를 증거 했으므로 왕권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가 편지를 쓸 때에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 하에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 14권의 편지를 쓴 것이 신약 시대에 정통 신학 변론의 요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신학이라는 것은 바울 서신에 의하여 세밀한 변론을 말한 것이 신학자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학설을 말한다해도 순교적인 생활이 없다면 1차 부활에 참여할 수 없다. 아무리 학설이 부족하고 기독교의 종말관을 모른다해도 십자가 하나를 증거 하다가 순교한 자는 아무리 집사의 한 사람이라도 스데반은 왕권의 반열에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언제나 사랑하는 종은 그때 그때에 원수를 들어서 순교하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변화성도는 주 재림시까지 살아서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싸움을 하면서 예언을 증거하는 사명이니 그 예언이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예언을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예언이다. 모든 선지는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 두고 묵시를 봤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성도가 선지서를 증거할 때에 은혜 시대에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한 사명에서 선지서를 해석한 것 뿐이요, 변화성도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환란 가운데서 남은 자로서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목적 두고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 그대로 읽어서 증거 하는 예언을 하는 것을 변화 성도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환란 중에 남은 종이 증거하는 복음이요, 남은 백성이 순종해야 될 복음이니 지상에서 새로운 시대의 축복을 받게 하는 역사이다.

 

 

【문】9.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아십니까? (계20:7~9)

【답】하나님께서 이날까지 성령의 역사를 내린 것은 천년 왕국에 들어갈 백성을 위한 목적이 아니고 왕국 반열에 들 종들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성신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재림의 주를 고대하면서 쓰러지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을 목적 두고 복음을 전한 것은 새 시대에 들어가는 환란기가 아니므로 천당을 목적하여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은 변화 성도들이 승천하기까지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거짓 선지와 싸우면서 복음을 전할 때에, 거짓 선지도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전하는 것이요, 변화 성도는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말할 때에 거짓 선지는 큰 세력을 잡고 물권을 쥐고 세상 정권을 배경 삼고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순수하게 심판의 다림줄인 진리를 증거하게 될 때에 변화 성도의 슬픈 경고를 듣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 말만을 따라서 촛대교회로 들어오는 백성들인데 이 사람들은 변화 승천하는 종들의 마지막 경고를 듣고 따라온 자로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새 시대를 신앙하는 자이므로 말씀대로 하나님의 보호를 예비처에서 받은 후 3년반 동안 계시록 13장과 같은 환란이 올 때 12장과 같이 보호를 받고 지상 강림하는 만왕의 왕의 통치시대의 백성이 된다.

  이 사람들은 은혜시대에 회개한 자가 아니고 환란이 일어날 때 따라온 자들이므로 성경의 완전한 진리를 다 알지 못하고 성신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함으로 새 시대 갈 것을 믿고 따라온 백성이다. 이들은 천년 시대에 큰 확장을 이루는 민족이 된다. 그러므로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고 마귀를 다시 놓아서 미혹을 시켜 보고 미혹 받지 않은 자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문】10. 천년 시대는 왜 있느냐를 아십니까? (계20:7~9)

【답】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에 아담에게 축복을 주었지만 아담 하와가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범죄하므로 이 땅은 저주를 받고 창조의 본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본의를 다시 이루어 놓는 것을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천하에 모든 족속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는 약속은 천년 왕국으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천국을 말하지 않고 전부 지상 축복의 왕국을 예언했던 것이다.

  만일 지상 평화 왕국이 없다면 하나님은 참신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의 소위 정통 신학자들이 천년 왕국을 부인한다는 것은 모순 중에도 큰 모순이라고 보게 된다. 소위 공산당이라는 변론은 과학적인 지상의 평화 왕국을 꿈꾸는 것인데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의 의의를 모른다면 공산당의 과학적인 변론 앞에 머리 숙이고 협상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

  모든 성경에 인간 종말을 말할 때에 반종교적인 악한 무신론 정책이 북방에서 내려오는데 중동으로 침투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므로 북방은 망하게 되는 동시에 북방과 타협하던 음녀적인 세상이 함께 망한다고 하였고 그 중에서 사상과 신앙 절개를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이 남아서 지상 축복을 받게될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첫째아담은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축복을 빼앗겼지만 인간 종말에 말씀을 지키고 이긴 자들이 지상 축복을 다시 받게 될 것을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공의라는 것은 한번 목적을 정했으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이다. 인생이란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지킬 인격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공의의 법칙을 행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사9:6~7절에 말했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이란 것은 창조의 본의를 이루어 놓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의로 통치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부탁의 말씀

 

  ① 구독자 여러분께서 신앙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난제가 되는 문제가 있다면 난제점을 기록하여 편지로 연락하시면 문제를 해결하는 논설을 본지에 정확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② 지방 소식이나 성도들의 특이한 일이 있어서 모든 교계에 알려서 필요한 조건이라면 그 사항을 간단 명료하게(200자 원고지 12매 이내) 기록하여 보내 주시면 본지에 정식 게재하여 소식을 모든 성도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③ 책대는 50원이며 이것을 널리 전할 마음이 계셔서 10부 이상을 청구하실 분에게 1부당 40원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또한 1년간 구독하실 분은 400원을 선금으로 보내 주시면 계속 보내 드리겠습니다.

 

   ◎ 본지는 매월 15일 발간, 송료는 본사에서 부담합니다.

    

연락처: 서울특별시 종로 1가 3번지 (의사빌딩 9층)
새   일   중   앙   교   회

충남 논산군 두마면 신도안 백암동
새  일  수  도  원

 

 

 

특 집

 

< 8.15 특집 > 성도의 탄식

- 롬 8:23, 사 29:1 -

 

  슬프다 아리엘이여 연부년 좋을 때가 오려니와 오늘만은 괴롭도다. 나는 신접한 자 같이 인정을 받았지만 나의 원수들은 영웅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그 모양 자랑할만 하도다. 그들은 세계의 땅덩어리를 자기 장중에 넣을만한 기세를 보이고 있구나. 천하사람이 다 나를 대적하고 내 원수는 자기들의 현명한 영도자라고 손들어 환영하며 미친 듯이 날뛰며 그들은 기뻐하도다.

  영안으로 내다볼 때 분명히 조물주는 진노할 일이언만 눈이 먼 인간들은 멸망 받을 일을 모르고 자기들의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며 스스로 미혹을 받도다. 하나님이여 나의 억울함을 아시나이다. 내가 힘써 부르짖는 안타까운 마음 누가 알아주오리까? 중심 보시는 여호와만이 아시고 내게 새 힘을 나리시나이다.

  동방 땅 끝이 민족의 억울한 피 여호와는 기억하실 줄 믿나이다. 어찌하여 우리 겨레들은 이렇게 가도록 산이요 가도록 가시성이요, 가도록 물결치는 파도만이 닥쳐오나이다. 이것이 웬일인가 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오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으로 시대를 알려주고 말씀으로 소망을 밝혀주고 말씀으로서 나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체험을 받을 때에 아버지 말씀만이 오늘도 내일도 미래도 나를 완전히 승리케 하는 능력이오며 권세이오며 새 시대를 정복할 무기가 될 줄 믿나이다.  

  슬프다, 가련한 양떼 때를 따라 양식을 먹어 보려고 입을 벌리고 허덕이다가 쑥물과 독초를 먹고 쓰러지는 그 광경 선한 목자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들의 마음에 얼마나 탄식할 일인가? 소위 신학이라는 간판 밑에서 인학 중에도 사람을 죽이는 인학이 되고 있으니 천인이 공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를 삼켜 버리고 마귀의 쑥물을 먹이자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두고 나오는 소위 협상주의 라는 것이 아닌가?. 협상이라는, 평화라는 간판을 뻔뻔히 내걸고도 실지는 사람을 죽이는 음모 공작을 하고 있는 공산당 앞에 머리 숙이는 음녀들이 신령한 교회를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그 모양, 진리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성도들은 눈물겨운 탄식을 아니할 수 없다.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으며 어찌 일초 일각인들 마음을 놓고 말 한마디인들 말할 수 있으랴.

  참말 앞길이 캄캄한 흑암이로구나. 이 흑암을 뚫고 나가야 할 것이 신랑을 맞이할 신부의 할 일이건만 열 처녀가 다 깊은 잠이 들었도다. 이들을 깨우칠 자는 누구일까? 동방 해 돋는 이 나라에 말씀의 봉홧불 높이 들 사명자는 8.15의 25주년을 맞이하면서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만민 앞에 정식으로 내놓게 되는 이 마당에 슬픈 탄식 금할 수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 제단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하며 다음과 같이 사명 동지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 우리는 말씀에 뭉치자!

  말씀은 이제부터 완전한 변론으로 임하고 있으니 사람의 변론이 하나를 이룰 수 없으나 여호와의 변론은 하나를 이룰 것이니 우리들은 횡설수설 마음대로 입을 열지 말고 마귀의 세력이 소멸되는 변론의 불을 입으로 토하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의 입을 기계로 써서 이제부터 완전한 월간지가 달마다 70페이지 범위 안에서 더 세밀하게 사명자들에게 공급될 것이니 이 문서 운동이야말로 마지막 끝을 맺는 하늘의 멧세지가 될 것이다.

  둘째 : 불타는 사랑에 뭉치자!

  우리는 천천만 순교자의 호소의 응답이 우리에게 올 때 금할 수 없는 불이 일어날 것이니 누구든지 조금도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순교 생활의 험한 길을 서슴지 말고 내딛자. 가고 보면 오히려 평탄이요, 승리일 것이다. 사랑 받지 못해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으니 처음 사랑 잃지 말고 그 사랑 그대로 남에게 주기 위하여 시대적인 말씀에 깊이 들어가 말씀에서부터 양떼를 살릴 수 있는 불꽃이 펄펄 붙어야 할 것이다.

  때를 따라 양떼들에게 나눠줄 양식은 순교의 생활하는 종들에게 이제부터 배고픈 이스라엘에게 때를 따라 나리던 만나같이 나릴 것이니 누구든지 종말의 진리를 바로 알아 시대를 따라 오는 말씀에서 자기 자체가 마음이 뜨거워지고 다음에 강단에 설 때 눈물 흘려 말하는 사랑의 불꽃은 누구든지 마음에 붙게 되어 자동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역사는 이제부터 강하게 내릴 것이다.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 양떼를 죽이는 거짓 선지를 진리의 사랑의 불을 토하여 거꾸러뜨리는 권세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 하나같이 돌진하자!

  우리는 저 산을 넘어야만 될 높은 산 언덕 밑에 다달았으니 이 언덕을 올라가려면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사52:11~13). 절개있는 처녀들이여 신랑은 눈앞에 왔다. 이날까지 더러웠던 옷은 홀딱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옷 의로운 행실로 단장하자(계19:7~8). 주의 날에 설 자는 죄과를 떠나는 자라야 될 것이다(사59:20). 마귀떼는 극도로 우리 옷을 더럽히려고 대적하고 있지만은 이제부터 권리 행사가 나타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 동방에 나타나서 서방을 깨우칠 때가 왔으니 동방 사람 성결하면 서방 사람 굴복한다.

  우리라는 사명 동지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설 때는 8.15를 기하여 때가 온다고 생각하고 여호와의 영광 하나만 바라보고 성결이라는 완전 인격을 하나님께 받는 동시에 변화성도의 인격을 완전히 이루어서 백전백승의 용사로 돌진하여야 할 때는 70년의 8.15라고 생각하고 8.15의 뜻 깊은 성회가 진행되기를 기도하는 바이니, 이 8.15는 우리 민족이 육적 해방을 받았지만 오히려 육적 부패를 가져오는 방랑적인 사회를 이뤄 놓은 현실에 우리의 사명 동지는 영적으로 완전히 해방을 받는 변화성도로 금번 성회에 하늘로 받아 흠과 티가 없이 신부 단장 곱게 하고, 하늘로서 오는 힘을 받은 용사로서 하나같이 돌진하여야만 될 때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아름답다고(사52:7~9)에 말씀했으니 이 달부터 이 월간지를 누구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축복하는 것이니 이 축복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같이 두손 들어 축복을 받으면서 세계 만방에 알려주는 권세 부흥단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는 눈물 흘려 말할 때는 왔으니 이때에 말 못하면 벙어리 개가 될 것이 아닌가 잠잠하지 말고 시온 나팔 높이 불자. 성회를 열자. 때는 왔으니 일어나자(욜2:1).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발행하는 자의 감사

  인류 역사상 가장 복되고도 만족한 세계를 살아서 보는 자 같이 복된 자가 어디 있사오리까? 내가 무엇이관데 이 시대에 나게 하시며 길러 주시고 또는 들어 쓰시나이까. 일점 일획인들 사람의 마음대로 쓸 수는 없나이다. 나는 신의 명령에 순종하여 입을 벌린 것 뿐이고 귀한 종님들이 내 입을 통하여 나타나는 말씀을 기록한 것 뿐이로소이다.

  주여 이 글을 받아 기록해서 이 시대에 선포시키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님들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시옵소서.

 

 

새 일  8 월  소 식

 

  1) 신도안 백암동 새일교회

  우상이 가득한 백암동에 이뢰자 목사님이 6년전에 그곳에 가족을 두고 새일 수도원을 계룡산 상봉 앞에 자리 잡고 많은 석조 건물을 건축하되 수도원 강단 70평, 수도생 기숙사, 기도실, 등의 12동 석조 건물을 완전히 건축 되어 매일같이 10시간씩 수도를 학과로 공부시키는 중 백암동에 있는 가정에는 도저히 와 볼 시간조차 없었지만 가정에서부터 백암동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 목사님 가정에서 봉사하고 있는 주일학교 선생을 비롯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하였던 중, 나날이 발전되어 금년 7월까지의 성전 20평 건물을 아름답게 건축하여 매일같이 희생 봉사하는 수도생들의 피땀으로 성전을 이루어 놓고 미국에서 복음 받은 노동자의 한 사람인 성도가 말세 비밀의 진리를 깨닫고 감격하여 보내준 성금을 통하여 완전히 준공되었는데 현재의 주일학생은 100여명이 모이고 현재는 여선생님 두 사람이 대대적인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대부분이 이교도집 학생들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아이들은 열심히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삼일 날도 거의 같이 모이고 있습니다.

  2) 새일 수도원을 통하여 현재 이루어지는 열매

  이 수도원은 교파를 초월하여 순수한 진리 운동을 목적하고 내려오는데 절대에 교회를 세우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어느 교파나 강단에 서는 종들이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를 혼선되지 않도록 바로 증거해서 협상적인 거짓 선지의 간교한 변론을 막는 것과 진리적인 반공 사상을 철두철미하게 청년들에게 넣어 주어서 일선에 나서 싸워 승리하자는 목적이었는데, 뜻하지 아니한 교회가 이곳 저곳에서 새로 서게 되어 현재에 40처에 달하는 중, 금년에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는 곳이 7, 8처에 달하여 건축을 하는데는 수도원 원장은 조금도 간섭도 없고 도와주는 일이 없이 성도들의 자력으로 건축을 곳곳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나날이 더 많아질 동기가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파가 목적이 아니고 진리 하나를 사수하자는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는 아무런 통지도 없이 수도를 진행 중인데 매월 계속으로 수도생들이 평균 약 50명이라는 수도생이 정식 학과를 공부하는데는 성경 해석법, 변화성도의 교리, 요한일서 강의, 선지서 강의, 조직신학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등의 서책을 학과로 하여 공부하는 중 결심하고 40일 금식한 수도생이 350명에 달하게 되고, 그 밖에도 20일 7일 계속으로 금식을 하며 수도하는 자가 많이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놀랄 일은 25일간 수도 기간에 누구나 성경이 통달되다시피 햇빛같이 밝아지며 나날이 용사들이 푸른 새순 같이 달마나 쓸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소식을 듣고 목사일 보는 종님이 와서 학과를 공부하고 갔으며 일본으로 미국으로, 7월에도 미국에 1인, 일본에 1인이 복음을 들고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3) 새일 중앙 교회

  하나님의 섭리 속에 강권으로 이루어지는 서울 새일중앙교회에 대한 소식을 다음과 같이 알려 드립니다. 이날까지의 서울에 있는 사명자들이 모여서 합심 호소하며 예배할 장소가 없어서 괴로움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 70년 3월 1일부터 숨은 봉사를 하는 종님이 희생적인 헌금을 바치어 중구 도동 2가 3번지 3층 건물에서 장소를 정하고 중앙제단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성도들이 모여서 늘 철야 기도하며 중앙교회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하여 역사하든 중 6월 1일부터 종로구1가 3번지 광화문 비각 옆 9층 빌딩에 예배당으로 60여평 장소를 확정하고 새일중앙교회의 정식 간판을 붙이고 현재 200여명에 달하는 성도가 주일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완전한 제직회를 구성치 않고 모든 성도들은 각자가 사명에 불타는 마음으로 활동 중에 있으므로 교회 활동은 활발성을 띠고 있는 중 앞으로 세계적인 새일중앙교회가 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교파에서 시련 중에 숨은 봉사와 기도를 많이 하는 종들이 모였으므로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될 뿐만 아니요, 아무리 풍랑이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는 촛대교회가 완전히 이루어지므로 이 교회를 통하여 앞으로 세계적인 선교 활동에 본부가 될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현재에도 이 교회에서 자진해서 미국으로 일본으로 새 일에 대한 다림줄의 진리를 들고 건너가고 있습니다. 또는 8월부터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정식 발행할 수 있는 활발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이뢰자 목사님이 주일마다 상경하여 예배를 인도하는데 대 예배 시간에 언제나 강한 은혜가 나리고 있으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일을 같이 맞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합심 호소로 성심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희미한 기색이 없고 다 같이 각성을 받는 형편인데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큰 역사가 홀연히 떨어질 것을 믿는 바입니다.

  현재의 임시 남전도사, 여전도사 2인을 세우고 있는데 모든 사명자는 각자가 다 심방 전도에 전력을 두고 있으므로 앞으로 점점 부흥될 것이 확실합니다. 누구든지 서울에서 만족한 은혜를 받으시려면 서울 종로구 종로1가 3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새일중앙교회에 오시어 주일 예배를 드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찾아오시는 종님들은 중앙청 앞에 알기 쉽게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표준하여 네거리 광화문 비각 옆 의사빌딩에 오시면 새일중앙교회의 간판이 있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올라오면 마지막 층에 새일중앙교회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책에 기록해서 세상에 내놓는 성도들의 감상

  할렐루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책을 기록한 자이며 출판하는 일에 작은 정성이나마 힘을 기울여 봉사한 자들입니다.

  누가 이것을 기록할 자 있사오리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주의 종의 입술을 사용하여 샘솟듯이 솟아나게 하는 말을 일점 일획 가감없이 받아써서 이 책에 정확히 출판하며 여러 사명 동지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요, 우리들도 이걸 받아쓰면서 또는 다시 읽어서 교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눈물겹게 감사한 것 뿐입니다.

  읽도록새 새로워지고 생각하도록 새 진리가 밝아지는 자 얼마나 복 있는 자일까요? 우리들은 분명히 기독교 종말에 오메가의 역사에 한 페이지라고 믿으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 뿐입니다.

받아쓴 사람들 : 조신성, 김광보, 장신복

 

 

알리는 말씀 

 

  1. 누구든지 정식 수도학과를 공부하고자 하시는 분은 매월 1일부터 25일까지 수도회가 진행되오니 오실 분은 식대로 매일 80원, 학과 책대(성경 해석법, 요한일서 강의, 조직신학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새일 성가집, 합계 7백여원)만 준비해 가지고 오시면 모든 설비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수도할 수 있습니다.

  2. 교통은 어디서든지 대전에 하차하면 대흥동 버스 정류소에서 신도안 행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됩니다. 또는 기차로 하차하실 분은 두계역에서 하차하여 신도안 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됩니다.

  3. 서울에서 이 진리를 탐구하실 분은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3번지(광화문 비각 옆) 의사 빌딩 새일중앙교회에 오시면 얼마든지 진리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주일 오전, 오후, 저녁, 매일 저녁 계속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4. 서책을 구독하실 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가 3번지(의사빌딩) 새일중앙교회로 연락하시거나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신도안내 새일수도원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5. 친히 진리를 듣고자하여 강사를 요구하시려면 상기의 주소로 연락하시면 얼마든지 강사를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