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5월호)

설  교  편

 1.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교제 (빌3:20~4:3)

 2.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복 (마24:42~47) 

 3. 소위와 사상을 아시는 하나님의 역사 (사66:18-24)

 4. 실상은 부요한 자가 되자 (계2:8~11) 

 5. 참된 제사가 있는 생활 (히13:12~17)

 6.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의 영광 (사49:14~23) 

 7.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 (창18:16~19)

 8.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 (계10:5~11) 

 9. 땅위에서 합심할 일과 하늘의 응답 (마18:15~20) 

10. 하나님의 영광을 본 가정 (요11:17~44)

11.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될까 조심하라 (약4:1~4)

12.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의 승리 (시118:5~24)

13. 아라랏 산에 걸린 방주와 감람나무 새순 (창8:1~19) 

14. 야곱이 받은 축복 (창28:10~22) 

 

장년 공과편 - 예수님께서 개인전도로 가르친 말씀

제1과  나다나엘에게 가르친 말씀 (요1:47~51) 

제2과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말씀 (요3:1~21)

제3과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르친 말씀 (요4:10~26)

제4과  마르다에게 가르친 말씀 (요11:21~27, 39~44)

제5과  도마에게 가르친 말씀 (요20:24~29)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13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요11:30~44) 

제14과  영광스럽게 된 예수님 (요12:27~33) 

제15과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 (요13:1~15) 

제16과  천국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 (요14:1~3) 

제17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요14:6~11) 

 

논 설 편

1.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사람

2.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

3.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4.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

 

신 앙 문 답

1. 시국이 급한 줄 알면서도 기도 힘이 나지를 않고 점점 가라앉는 일은 무슨 원인입니까?

2. 금일에 기독교가 전부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각 교파가 생겼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3. 기독교 신앙을 양심대로 바로 지키려면 현 사회의 모든 일과는 전부 거리가 멀어져야만 될 형편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신앙 양심을 살려 가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촛대교회를 유지 할 수가 있겠습니까?

4.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저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떠한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말인지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느 신자든지 성경을 들고 자기도 성서적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어떻게 싸워 나가는 것이 옳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되겠습니까?

5. 금일에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일꾼이 있지만 어찌하여 큰 역사는 없이 점점 교회가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는 원인은 무슨 이유입니까?

6. 지금 우리 나라는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막막한 일이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지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5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2. 5월과 우리의 사명 

3. 5월달의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4. 새 나라가 되어 새 출발을 하므로

5. 5.15 성회에 대한 소식

 

 

 

 

 

 

 

 설 교 편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교제

- 빌 3:20~4:3 -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바로 하고 못 하는데 따라서 모든 일의 열매는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미라는 것은 교제가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성도들이 재림의 주를 고대하면서 교제하는 그 단체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완전히 성취하는 것이다. 이제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성도들의 교제를 본문을 통하여 참된 교제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 수 있다.

 

  1. 소망의 확실성 (3:20~21)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라는 것은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전부가 아니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이 완전한 영광의 몸으로 변화가 되도록 역사하실 것을 믿는 것이 확실한 성도들이라야 참된 교제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영원히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고자 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에 오시어 인간이 사는 생활을 친히 하시되 무엇이든지 다 친히 인간의 행할 일을 행하시고, 그 몸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 승천한 것은 자기와 같은 몸으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기 위하여 승천하셔서 지금 성신의 역사를 우리 성도의 몸에 부어 주는 것은 자기와 같이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릴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혼 구원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우리 몸이 변화 승천하는 것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사도 시대에도 이것을 목적한 것은 완전한 성신의 역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신이 오신 목적은 영혼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몸까지 완전하게 영광스러운 몸으로 이루어 놓기 위한 목적이니 초대 교회도 모든 성도들이 재림의 주를 기다리면서 불타는 마음으로 자기 사명에 충성을 다하게 한 것은 주님 다시 올 때에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여 세세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2. 형제를 자기의 면류관으로 아는 사람이다 (4:1)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면류관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믿는 형제를 면류관으로 알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왜냐하면 믿는 형제에게 행하는 일이 내 면류관이 된다는 상급을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이 있는 바울은 인간이 볼 때에 가장 괴로움이 되는 옥중 생활을 했지만 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적에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핍박과 환란을 만나고 옥중에까지 갇힌 것은 자기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고, 형제를 구원해 주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너희는 나의 면류관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은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생각에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목적했기 때문에 형제를 위하여 괴로움을 받고 죽는 데까지 이르러도 그 형제를 내 면류관으로 알고 기뻐하는 것이 참된 교제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3.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게 됨 (2)

  세상에 많은 단체가 있지만, 참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는 단체는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순교적인 생활이라고 본다. 기독교에 여러 가지 단체가 있지만, 이것은 인위적인 단체라고 본다. 어느 교파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단체는 재림시까지 남은 성도들이 뭉쳐진 단체일 것이다. 이 단체야말로 영원한 왕국을 이룰 단체라고 본다.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는 나라는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성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나라는 마음이 하나가 된 나라이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4. 동역자를 서로 돕는 일 (3)

  마음이 하나가 된 단체는 서로 돕는 것으로 아름다운 미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든다면 한 몸의 모든 지체는 하나같이 움직이되 서로 돕는 것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을 건전한 몸이라고 본다. 손은 손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요, 발은 발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지체는 다 이(耳), 목(目), 구(口), 비(鼻)가 자기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요, 서로 돕기 위한 결합 단체이다.

  이와 같이 사명자는 다 자기를 위한 사명이 아니요, 남을 돕기 위한 사명이니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멍에를 같이 하고, 남종과 여종이 서로 돕고 협력할 때에 이것으로 말미암아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명이 큰 자는 더 많은 사람을 돕게 하는 것이니 동역자가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결    론

  참된 교제의 성도가 있으므로 그들을 통하여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고, 재림의 주를 맞이한 자라야 왕권을 받을 수 있다(계20: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복

- 마 24:42~47 -

 

  인생 중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인간이 세상에 났다가 단지 자기를 위하여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인간의 무가치한 생활이라고 본다.

  아무리 충성을 해도 참된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아무리 지혜가 있는 것 같아도 그 지혜가 참된 진리를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스스로 속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지혜는 뱀 같이 하라 한 것은 마귀도 극도로 지혜롭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마10:16).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위하여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된 자의 축복을 본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예비가 있어야 된다 (42~44)

  예비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자기 안락을 위하여 예비하는 자가 있다(눅12:16~22).

  어떤 부자가 물질을 많이 쌓아 놓고 그날 밤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에 하나님은 그날 밤에 그 영혼을 도로 찾아갔다. 이것이 헛수고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쓸데없는 허영심을 가지고 집 위에 집을 짓고 물질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지고 쌓아 놓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로 보게 된다.

  둘째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예비라는 것은 아무런 마귀 미혹이 와도 물리칠 수 있는 진리의 지식을 갖추는 일

  아무리 환란이 와도 그 환란의 피해를 당치 않을 인격을 갖추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종은 항상 게으르지 않고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리 예비하는 일을 목적 두고 전력을 둘 때에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완전 무장을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종된 사람은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고 어떻게 하든지 아무런 난관이 와도 난관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그 목적을 두고 진리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될 것이다.

 

  2. 모든 사람에게 만족함을 주는 종이 되어야 한다 (45~46)

  세상에 제일 큰 일은 참된 진리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세상에 여러 가지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자도 있지만 그 자선 사업으로써 완전한 천국을 이룰 수가 없고 천국을 이루는 일은 오직 진리로 남을 살리는 일로 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일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하시는 일이니 가장 복 있는 자는 이 대 사업에 완전히 끝을 맺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진리로 남을 살리는 자는 성경 전체를 다 가르치는 지혜를 받는 동시에 전무후무한 환란이 와도 변치 않고 충성을 다 하게 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3. 모든 소유를 다 맡게 됨 (47)

  이 천지 만물은 첫째아담의 범죄로 다 저주를 받았지만 둘째아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소유는 주님 올 때까지 진리를 옳게 증거하던 종이 모든 복된 소유를 다 누리게 된다. 이 소유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왕국의 축복을 가르친 것이다. 지상 왕국이라는 것은 재림시까지 남은 종이 되는 변화 성도의 소유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종이 증거하는 진리로 말미암아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하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된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는 것 하나만이 축복을 받는 요소가 될 것이다. 공연히 스스로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종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언제나 그 시대에 비밀을 남에게 알려 주어서 그 종을 통하여 대중을 살리자는 것이 목적이니 재림시까지 남은 종이 되려면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받아 가지고 그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줄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모든 난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올 때에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남은 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을 통하여 완전히 주의 일에 끝을 맺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때가 멀었다느니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주님 올 때에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외식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비밀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나 설교나 모든 하는 일은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기 때문에 큰 화를 받게 될 것이다(마24:48~51).

 

 

소위와 사상을 아시는 하나님의 역사

- 사 66:18~24 -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역사를 일으킬 때에 그 종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시고 당신과 의합이 된 자를 들어 쓰는 것이니 그 종의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합당하고 그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들을 한데로 모아서 역사를 일으켜 그들로 말미암아 완전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족이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에 합하지 못한다면 버릴 것이고 아무리 이방족 중에서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합한 자라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제사장과 레위족을 삼아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 (18)

  하나님께서는 사59:19이하에 말씀하시기를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때에는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고, 60:1에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리니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서 만민을 가리울지라도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말씀했다.

  그러면 서방보다도 해 돋는 편 동방 사람이 소위와 사상을 바로 지도할 수 있는 주권이 있게 될 것이다. 금일에 소위 과학 문명이라 하는 것을 중심한 소위와 사상은 하나님과 대적이 될 것이로되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한 자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 합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 (19)

  하나님께서 당신이 볼 때에 소위와 사상이 옳은 자라면 그를 들어서 종말에 큰 역사를 일으키므로 세계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그 사람의 소위와 사상을 검토하므로써 합당한 자라야 그를 들어서 쓰시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문명으로 오는 새 시대를 말하는 유물론 공산 사상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승리가 있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믿고 일하는 사상을 가진 자라야 그 말씀을 세계에 전파할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심 (20~21)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위와 사상을 바로 가진 자라면 완전한 왕권을 주시되 이스라엘에게 세웠던 그 왕권을 영원히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이스라엘은 약속을 말씀으로 받은 자라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라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는 레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에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것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종말에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싸워 나가는 소위와 사상이 바른 종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라고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를 들어서 유대와 예루살렘에 관한 이상이라고 1장과 2장의 1절에 말한 것은 과거에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결론적으로 분명히 가르친 것이 66:18이하라고 보게 된다. 지금 소위 신학자들이 하나같이 이사야의 경고를 과거에 이스라엘에 대한 것으로 돌린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보게 된다.

 

  4. 자손 만대의 축복을 줌 (22~23)

  하나님께서 소위와 사상을 보고 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을 통하여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데는 그 자손이 함께 복을 누리되 영원한 왕국이 항상 있을 것 같이 그들의 자손과 이름이 항상 있을 것을 말씀했다.

 

  5. 패역한 자를 영원히 없이 함 (24)

  패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을 가진 것을 뜻한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진 자는 영원히 그 자체가 없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소위와 사상이 바른 사람을 택하여 그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되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니 금일에 소위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종교를 아편이라, 독약이라 하는 것이니 이런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납한다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없고 소위와 사상이 바른 자라야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을 축복으로 받되 그 자손까지 받게 될 것이다.

 

 

실상은 부요한 자가 되자

- 계 2:8~11 -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도덕과 의식과 교리를 초월한 생활에서 실상은 부요하다는 주의 은총을 받는 생활이 있어야만 된다. 금일에 교회가 외형적인 발전은 가져 왔다고 볼 수 있으되 실상은 빈곤에 빠진 영적 부패를 볼 때에 오히려 주님은 슬퍼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종이 되려면 실상은 부요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 환란과 궁핍이 있으므로 (9)

  기독교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환란 궁핍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종된 자의 생활은 완전을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을 목적하고 싸우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된 생활은 환란 궁핍이 오는 것이 불행이 아니요, 부요한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다. 이제 환란 궁핍이 올 때에 부요해지는 종의 생활의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첫째 : 환란 궁핍이 오는 원인은, 종이란 생활은 마귀에게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라는 것이 사명이니 마귀 편이 먼저 환란과 궁핍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귀에게 포로된 주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싸울 때에 마귀 편이 하나님의 종을 대항을 하는 조건에서 오는 것을 뜻한 것이다.

  앞서간 모든 종들이 환란과 궁핍을 만난 것은 자기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구원코자 해서 담대히 나설 때에 환란과 궁핍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환란, 궁핍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종은 많은 열매를 맺는 초인간적인 역사를 하게 될 때에 그 종에게 실상은 부요한 축복이 오므로써 많은 교회를 일으키는 열매를 보게 되었다.

  둘째 : 진리를 사수할 때에 오는 것이니 언제나 마귀의 권세는 허락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종이 진리를 사수하나 못하나 보기 위한 목적에서 마귀를 들어서 쓰는 일이 있기 때문에 마귀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종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잠깐의 환란 궁핍이 와도 진리를 사수하는 자에게 뜻밖에 홀연히 실상은 부요한 축복을 받게 된다.

  셋째 : 사상적인 문제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타협을 하자고 하여도 타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사상이다. 언제나 마귀라는 놈은 진리를 강압적으로 대적하다가 할 수 없게 될 때에는 타협적인 방법으로 침투하게 되는데 이것을 용납치를 않아야 된다.

  아무리 히스기야가 강하게 환란 궁핍을 이기고 나갔지만 바벨론 사신에게 타협이 있으므로 바벨론에게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안되고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고 후퇴해도 안되고 원수의 세력이 타협을 하자고 해서 거기에 조금도 용납을 한다면 실패에 들어가는 것이다.

 

  2.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 것 (10상반절)

  하나님의 종이 앞으로 올 난제를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이 그날 그날에 닥쳐오는 일을 실천해 나갈 때에 날마다 더 힘을 얻게 되고, 풍부한 은총이 나릴 때에 앞으로 더 큰 고난이 온다 하여도 아무런 문제없이 능히 돌파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할 것 없이 그 날의 괴로움을 만족히 알고 나가므로써 내일이라는 장차 올 일을 극복할 힘을 더욱 받게 되는 것이다.

 

  3.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 (10하반절)

  기독교의 전쟁은 면류관의 왕권을 목적한 것이다. 어떤 종이 자기 개인의 구원 문제 하나를 믿는다 하여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일이 없다면 그 종은 왕국 건설에 대하여 오히려 방해를 준 자이므로 그 죄를 회개하는 일이 없이는 주 앞에 설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된 생활은 죽도록 충성이라는 것이 없이는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을 들어 쓰는 방법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방법에서 쓰는 것은 왕국 건설을 위하여 그 종에게 왕권을 주기 위한 사랑의 법이 된다.

 

  결    론

  실상은 부요한 종의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움직이는 활동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니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없이 주님 중심에서 면류관을 위한 싸움의 생활이 아니고는 항상 부요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부요하시매 당신의 종에게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자칭 유대인이 되는 교권주의 자들에게 동참치 못하게 하고 오히려 훼방을 받게 하므로 인간이 볼 때는 궁핍을 당한 것 같으나 실상은 부요케 해서 그 종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남은 종이 될 촛대 교회 사자에게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참된 제사가 있는 생활

- 히 13:12~17 -

 

  사람의 가장 가치 있는 생활은 참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참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만 역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앙 생활이 있다 하여도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그 신앙 생활은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고 말 것이다. 가장 허무 맹랑한 생활은 신자라 하면서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참된 제사가 있어야만 그 생활에는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니 참된 제사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몸을 희생하는 생활 (12~13, 롬12:1)

  우리 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려고 하는 자라면 그 몸은 하나님이 받아쓰시는 도구가 되므로 자동적인 제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되 사람의 몸을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소불능의 신은 아무리 부족한 인생이라도 그 몸을 하나님께 희생으로 바칠 때에 무조건 들어서 쓰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참된 가치라는 것은 그 몸이 평안한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몸을 참된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는데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몸을 어디 바치든지 바치는데 따라서 그 생활은 좌우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몸을 바로 바치느냐 못 바치느냐에 따라서 모든 열매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금일에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그 몸을 완전히 바치지 못하는 생활에서는 아무런 체험적인 생활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2.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생활 (14~15)

  누구든지 완전히 몸을 바치는 생활에는 찬송이 인격이 되고 생활이 될 때에 그 찬송은 하나님께 제사가 되는 동시에 입술에 열매가 되는 것이다. 가장 하늘에서 기뻐하는 것은 몸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이 우렁차게 찬송을 올릴 때에 그 찬송은 제사가 되므로 응답이 내리는 것이다. 금일에 소위 교회가 찬송을 부르는 일에 제사가 못된다면 그 예배는 한 의식에 불과한 예배가 될 것이다.

  찬송의 제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성결한 마음으로 찬송할 때에 제사가 된다. 찬송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불탈 때에 그 진리를 입으로 불러 찬송하는 것은 그 심령이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는데서 영적으로 신의 세계와 화답이 있게 된다.

  둘째 : 마귀를 대적하는 마음에서 담대히 부를 때에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되는 제사가 되므로 마귀가 물러가는 새로운 힘이 내리므로 승리의 열매가 된다.

  셋째 :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를 때에 하나님은 그 찬송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그 종의 생활에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있도록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다.

 

  3. 서로 접대하는 것이 제사가 됨 (16~17)

  항상 남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제사로 받으시고 얼마든지 줄 것이 있도록 응답을 나리신다. 우리가 받지 못하는 것은 주고자 하는 마음이 적을 때에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종된 생활은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눈물겹게 생각할 때에 이것이 제사가 되므로 항상 그 종을 통하여 차고 넘침이 있게 한다.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시되 사랑하는 종을 통하여 주시기 때문에 항상 남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므로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는 생활은 받는 자에게 있지 않고, 주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으니 이것은 주는 것이 제사가 된다는 뜻이다.

 

  결    론

  제사라는 것은 언제나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주기를 기뻐하시되 제사를 받으신 후에야 주시는 것이니 몸을 제물로 바치고 입으로 찬송하며 손으로 봉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는 생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의 영광

- 사 49:14~23 -

 

  주님께서 가장 잊지 못할 종은 어떠한 종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금일에 많은 종이 있지만 잊지 못할 종은  첫째로 아무리 시련이 와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이며 아무리 어려운 환란이 와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싸워 나가는 종이며 아무리 주님께서 모략적으로 시험해 보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종일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적에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와도 남편을 도와서 절개 있게 나가는 아내를 통하여 가정의 모든 일이 바로 되어 나갈 때에,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모든 일을 활발스럽게 해나가므로써 성공적으로 된다면 처음보다도 더 그 아내를 잊을 수 없는 것 같이, 주님께서도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처음보다도 모든 일을 해 나갈 때 주님을 위하여 여러 가지 풍파가 닥쳐오고 자기 자신이 크게 손상을 보고 피해를 당한다 하여도 주님의 일만을 부흥케 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는 종이라면 그 종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 될 적에 그 종이 받는 영광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1. 영원한 도성을 받게 됨 (16)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면서 충성을 다하는 종에게는 영원한 왕궁 도성을 맡기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 자연을 창조한 목적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신이신 동시에 홀로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도성을 이루어 충성을 다하던 종들에게 주는 동시에 그 종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사업을 성취시키는 일을 종을 통하여 이루었기 때문이다. 신의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있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있으므로만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2. 모든 나라 사람으로 영광이 되게 함 (17~18)

  종을 대적하던 무리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인 동시에 종을 따라 오던 무리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니 모든 백성은 다 그 종을 통하여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때 축복을 받는 백성은 그 종의 영광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간들은 어떤 주권을 잠깐이라도 쥐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 주권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종은 세세토록 그 백성을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지면에 충만해지므로 (19~21)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적은 돈을 가지고 많은 재산이 이루어질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적은 씨를 뿌려 가지고 많은 열매를 거둘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시련을 당하다가 그 일이 바로 될 때에 기뻐하는 것이 사람의 성품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극복하고 나가면서 복음을 전하므로 진리를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되어 지면에 충만한 강국을 이룰 때에 복음을 전하던 종이 자동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4. 숭배를 받음 (22~23)

  지금은 숭배를 받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 외에 어떤 종을 숭배한다는 것은 숭배하는 사람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요, 숭배를 받는 자도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왕국에 들어가서 종이 숭배를 받게 하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주는 때이므로 이것은 영광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숭배를 받으라고 세운 종이 아니요,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으면서라도 복음을 전하라는 때이므로 하나님의 종이 숭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될 것이로되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그날에는 숭배를 받고 영광을 받아야만 된다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 인간을 잊을 수 없는 일로 혹은 기념비로 동상으로 또는 큰 기념탑이 서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되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큰 영광이 될 것인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억압을 받게 하는 것은 이런 가운데서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그 종을 진실한 자라고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 종에게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인 동시에 사랑의 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이 받는 영광이라고 보게 된다.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

- 창 18:16~19 -

 

  인류 역사의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은 그 인격을 짐승이라고 성경에 기록했다. 이것은 침략적인 정책의 인격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한 자 같으나 아브라함의 가정에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가장 기쁜 소식을 알려준 것은 노쇠한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아서 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제 강국을 이루는 아브라함의 인격은 어떠한 인격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여호와의 친구가 되는 인격 (16~17)

하나님은 당신의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는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비밀을 다 알릴 수 없는 인격이라면 그 인격은 불완전한 인격일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조금도 숨김없이 알려주는 인격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까불어 보아도 변치 않고 나가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인정하고 비밀을 다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본 것은 그 인격을 검열한 것이다. 그러므로 강대 국가를 이룰 인격은 시련 가운데서 인정을 받은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2. 만민을 복을 받게 하는 인격 (18)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위하여 살다 죽는 인격이 아니고 그 인격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인격이라고 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대로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된 것은 영원한 강국을 이루는 일이 된 것이다. 언제나 자기의 영광과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다 망하고 만 것이로되 자기가 희생을 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복을 받게 한다는 그 인격은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왕권에 이르게 되므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강자 같으나 실지에 약한 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코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복을 받게 하려는 인격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남도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원수에게 못박혀 죽은 것은 인간이 볼 때는 약자 같으나 가장 강국을 이루는 인격이라고 본다.

  그때에 로마의 정권과 유대 교권이 강한 것 같았으나 그 정권과 교권은 다 망하고 만 것이요 그리스도의 인격은 만왕의 왕으로서 강대국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의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될 때에 심판 날에 그리스도의 권세를 대적하는 자는 다 망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왕권으로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이 말씀을 믿고 끝까지 참고 나갔다는 것은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의 조상이 된 것이다.

 

  3.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택한 인격 (19)

  인간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를 폐할 자는 없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악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은 자 앞에 다 굴복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하는 일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으로써 강국을 이루는 일의 한 도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택함을 받은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들어서 쓰게 되므로 택함 받지 못한 인간들이 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택한 종이라는 것은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실 경륜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그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그 종의 하는 일을 막을 자는 전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종을 들어서 쓰는 일을 조금도 침범할 권리를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했다.

 

  결    론

  가장 위대하고도 강한 일은 강국을 이루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강대국이라는 나라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거든, 영원하고도 완전한 성도의 강대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격도 여러 가지 시련을 시킨 후에 그 언약을 세웠거든, 하물며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변화 성도의 인격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격보다도 더 위대한 인격을 받아야만 될 것이다. 우리는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마지막 싸움에 승리하는 인격을 가지려면 아브라함의 신앙 인격에서 좀 더 진보하여 향상되는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 좀 더 큰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

- 계 10:5~11 -

 

  기독교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므로써 완전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의 중점이 되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무서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작은 책을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책을 꿀같이 먹을 일 (5~9)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할 사명이 무엇인 것을 보여준 것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천사가 몸에 구름을 입고 내려오는 광경이 나타났다.

  이것은 변화성도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될 것을 뜻한 것이니, 이와 같이 된 자라면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완전한 약속의 말씀이 영감으로 머리 위에 임하는 뜻이요, 얼굴이 해같이 되는 것은 능히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빛의 권세를 뜻한 것이요, 발이 불기둥 같다는 것은 원수를 짓밟고 나갈 승리의 용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를 하는 종은 사자같이 외치되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종말의 경고이다. 그러므로 작은 책을 꿀같이 먹어야만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 것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책이라는 것은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완전 계시의 말씀인 책이니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가르친 것이다(계5:1).

  이날까지의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전한 천국 복음이요 이제 기독교 종말에 다시 예언할 종은 작은 책을 다시 먹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은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비밀을 기록한 계시록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시록을 완전히 먹은 종은 대표적인 종이 나타날 것을 뜻한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받아서 먹을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이다.

 

  2. 쓴 것을 통과함 (10)

  쓴 것이라는 것은 그 말씀이 쓰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완전히 깨달은 종으로서 사단의 피해를 당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쓴잔을 통과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꿀같이 먹었으므로 쓴 잔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 사명이니 그것이 쓴 잔이 되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완전히 먹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 쓴 잔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쓴 것을 통과한 후에야 대표적인 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님도 말세의 종도 다 쓴 잔을 통과한 후에 그 사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말세의 종은 천국을 위한 사명이 아니요,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에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 나라가 되는 이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표도 언약의 대표가 있고 율법의 대표도 있고 구원의 대표도 있고 다시 예언의 대표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 말세의 다시 예언자 이것으로써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그 언약은 모세의 받은 율법으로써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민족적인 종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므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말세의 종이 다시 예언하므로써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에게는 쓴 잔을 통과하고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3. 다시 예언 (11)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심판의 경고를 뜻한 것이니 모든 선지들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묵시를 본 말씀을 말세의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선지들의 받은 묵시를 다시 예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으려면 작은 책의 비밀을 꿀같이 먹고 마귀와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를 이루는 인격이 되므로써 세계적인 역사가 있을 것을 뜻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았지만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뢰자의 영감의 역사를 할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 뿐이다. 많은 제자가 있지만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었으므로 이름대로 역사 했고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심판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용서 없는 심판의 다림줄을 뜻한 것이다.

 

  결    론

  제일 큰 것은 다시 예언의 사명이니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제일 큰 문제를 놓고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중점 했으므로써 종말의 종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것만으로 세계 통일의 역사를 가져올 것이다.

 

 

땅위에서 합심할 일과 하늘의 응답

- 마 18:15~20 -

 

  기독교는 하늘의 응답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모든 일이 좌우되는 것이다. 응답이 있으므로 승리요 응답이 없으므로 부패를 가져오는 것이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요 죽을 죄인들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사명이니 하늘에서 응답을 나리는 교회가 되려면 어떠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권고가 있어야 한다 (15)

  우리는 죄를 용납하는 것도 불법이요 죄를 범하는 자를 무조건 버리는 것도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싸우는 것이 합법적인 교회이다. 그러면 죄를 용납하지도 말고 또는 범죄자를 멸시하지도 말고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속죄의 법이 없다면 권고할 필요가 없겠지만 얼마든지 죄를 사해 주는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는 항상 권고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형제가 실수가 있을 적에 그 사람을 조용히 권고하지 않고 그 죄과를 폭로시키어서 악선전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마귀 편에서 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교회에 들어 올 때에 이것을 막는 방법은 은밀히 들어오는 죄를 은밀히 권고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은밀히 들어오는 죄의 역사를 은밀히 말살시켜 없애는 방침을 하지 않고 떠들며 광포하는 것은 마귀를 더 청해 들이는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할 때에 마귀는 언제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눈물겨운 권고가 없이 남의 죄과를 함부로 대중 앞에 폭로한다는 그 자체가 책임을 질 일이 된다. 왜냐하면 교회를 소란케 한 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죄, 형제의 믿음을 손상케 한 죄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합심된 교회가 되려면 죄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죄의 세력이 발동을 못 하도록 하는 방침은 개인 방문으로 간곡히 권고해서 교회의 덕이 되도록 형제에게 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개인 방문의 권고를 힘써야만 될 것이다.

 

  2. 성별이 있어야 한다 (16~18)

  성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만 집결한 것을 가르친 것보다도 거룩한 사랑으로 성별되어야 한다. 거룩한 사랑이라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를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형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짐짓 진리를 대적할 때는 성별시켜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 사랑이라는 간판 밑에서 회개할 일을 회개치 않고 덮어놓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쑥물과 단물을 한데 섞는 것과 같으므로 교회를 망치는 행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죄를 위하여 피 흘린 십자가의 사랑이니 죄를 회개치 않는 자에게 그 사랑은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랑해 준다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죄를 용납할 수 없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완전 성결을 목적한 십자가이니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성결이요, 작은 죄라도 회개치 않으면 정죄를 하는 것이다. 죄를 없이 하는 방법이 십자가의 승리며 완전 성결을 이루는 것이 십자가의 권능의 역사이다.

 

  3. 합심 기도가 있어야 한다 (19~20)

  기도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에서 합심이 될 때에 그 기도는 즉시로 응답이 나리는 것이요 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합심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이루어진다. 이 땅에 합심 기도의 힘이 아니고는 하늘의 응답이 나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합심이 없이는 응답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응답을 하시되 법을 따라 응답하는 것이니 세계 만민에게 꼭 통일된 법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주고 저 사람은 저렇게도 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를 이루는 것이 못되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라도 합심이 되면 응답이 나리는 것이다.

 

  결    론

  이 땅에서 사는 인간은 아무리 지렁이 같은 인간들이라도 하늘의 응답을 받을 때에는 새 타작기가 될 수가 있다. 어리석어도 지혜를 응답하고 약해도 능력을 응답하고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같이 응답을 나리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중에 큰 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는 일이요, 죄 중에 큰 죄는 남의 죄를 용서할 줄 모르고 남을 압박하는 죄일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가정

- 요 11:17~44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어 많은 가정을 친히 방문했지만, 나사로의 가정을 제일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는 슬픔의 가정, 낙망의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 없는 고아들이 나사로 하나를 믿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 날 그날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두 딸을 두고 한 독자를 불러 가신 하나님 앞에 이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만한 가정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슬픔과 낙망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원망치 아니할 일 (17~21)

  인간이 생각할 때에 원망할 일은 어느 때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늘 와서 유숙하시면서 많은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어 갈 때에 아무리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도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사로는 죽게 되고 말았다. 죽은지 나흘에 가서야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을 찾아 올 때에 한 마디의 원망이 없이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하는 말로 평화스럽게 말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여자로서 경솔하지 않고 말 한 마디 불평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이다. 금일에 와서 너무나 경솔한 여자가 교회에 많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 조금만 불만해도 입으로 불평을 토하고 조금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입으로 악담을 하는 여자가 많은 세상에서도 마르다와 같은 믿음이 있는 자라면 반드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 변치 않고 믿는 일 (22~24)

  믿음이라는 것은 낙망될 일이 와도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질 적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는 택한 자의 믿음을 달아보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데는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은 인정하시고 홀연히 역사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믿음 (25~27)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완전성을 믿지 않을 때는 완전한 역사는 응답으로 올 수가 없다.

 

  4. 부활의 영광을 봄 (39~44)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썩어서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어나 나온 일이다. 이것은 전 세계 인류에게 큰 소망을 주는 일이다. 나사로의 부활이 있으므로 그 즉시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된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전 세계 인류에게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나사로를 말미암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주님 다시 올 때에 한마디 음성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살아 남은 자는 변화를 받을 것을 확실한 증거로 나타났다.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존재가 없는 가정이지만 주님께서 그 가정을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낸 것은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을 나타낼 가정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가정은 아무리 외롭고 가난하고 비천한 생활이라도 주님이 인정하는 가정일 것이다. 언제나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주무시지 않고 친히 도보로 걸어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을 찾아가 주무셨다는 것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정하는 가정은 모략적으로 까불어 본 일은 더 큰 영광을 나타낼 징조였던 것이다. 잠깐 동안 슬픔의 사망이 왔고, 괴로운 병마가 왔지만 이것은 죄 값으로 오는 질병과 사망 가운데서라도 인정받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거로 보여준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슬픔과, 낙망이 없이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슬픈 일, 낙망할 일이 와도 원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주님의 완전성을 믿고 나갈 때에 주님은 친히 찾아 오셔서 썩어진 냄새나는 몸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죄값으로 썩을 몸이라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나타내려면 나사로의 가정을 본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될까 조심하라

- 약 4:1~4 -

 

  기독교의 흑암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을 종교 부패요, 흑암이라고 본다. 구약 말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다가 이방 바벨론에게 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리에 있게 되므로 하나님은 진노의 막대기로 예루살렘을 쳤던 것이다. 주님 당시에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므로 또다시 예루살렘은 망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금일에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무서운 심판이 교회로 올 것이다. 이제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은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로 증거한다.

 

  1. 다투고 싸우는 일이다 (1~2)

  하나님께서 제일 원수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을 대적하고 싸우는 무리들이다. 사41:11~12을 보면 말세에 동방 땅 끝에서 붙들어 쓰는 종을 향하여 다투고 싸우는 자는 다 멸망을 시킨다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가장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종을 대적하는 일이나 공연히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다투고 싸우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은 이런 무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망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2. 정욕적으로 구하는 일 (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는 동시에 정욕으로 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대적으로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기의 뜻을 내세우는 패역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제일 큰 죄는 종교를 악용하는 일인데 자기의 욕망을 채워 보려는 마음에서 아무리 소리를 높여 기도한다 하여도 오히려 하나님은 낯을 가리우시는 것이다(사1:15, 미3:4, 11).

  기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아무리 주의 종이라도 하나님은 대적으로 알고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발람이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하고 했지만, 불의한 삯을 따라 갈 때에 망하고 만 것이다.

  종교인의 제일 큰 비극은 정욕으로 하려고 기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들은 기도할수록 점점 손해요, 흑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덮어놓고 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라의 법에 의하여 신청하지 않고, 문서를 위조하고 신청했다는 것은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불행이 될 것이다.

 

  3. 세상과 벗되는 일 (4)

  우리는 세상을 원수시하고 나간다는 것도 탈선이요, 세상과 벗이 된다는 것도 탈선된 일이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범위 안에서 나가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겸손하게 역사하는 일, 아들을 희생시켜서 역사하는 일,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면서 역사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겸손과 희생과 인내, 이것으로써 역사할 때에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언제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친구가 되는 일을 할 때에는 무엇이나 기도하는 것 밖에의 더 좋은 것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로되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을 한다면 생각 밖에의 두려운 일, 망신하는 일, 크게 수치를 당하는 일이 오게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덮어놓고 자기가 정통이라는 교만, 자기의 주권을 위한 야욕, 자기의 안락을 위한 물욕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슬프고도 부끄러워 할 일은 종교인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을 하다가 원수인 마귀 자식들에게 먹힘을 당하고 포로가 되고 큰 피해를 당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육적 이스라엘의 종말을 깊이 생각하고 구약 선지서를 심판의 다림줄로 알고, 자세히 읽어보면서 자아를 반성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진노의 날에 먼저 막대기를 맞게 될 것이니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때에 나 자체가 어떠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슬퍼하시면서 떠나가는 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사상과 마음을 가진 자에게서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고통중에 부르짖는 자의 승리

- 시 118:5~24 -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덮어놓고 역사하는 신은 아니시다. 반드시 고통이 있게 하고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는 능력의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오는 승리에 대하여 본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1. 여호와는 이러한 자의 편이 되신다 (5~7)

  우리는 고통을 주는 사람이 하나님 편이냐 고통을 받는 자가 하나님 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하나님 편이 아닌 것이니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돕는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던 바로는 망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한 데서부터,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소련 이 7대 강국은 다 거룩한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는 나라로서 한 때는 강국의 기세를 날렸지만 과거나 미래나 다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사람에게 고통이 올 때는 하나님이 싸워줄 때가 온 증거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원수를 끊어 버리심 (8~12)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택한 백성을 괴롭히게 하는 것은 그 원수를 끊어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본다면 강대한 나라가 망할 때는 다 택한 백성을 괴롭히다가 망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 세력이 성도를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이 북방 세력을 끊어 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극도로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는 여호와 일어나서 그 원수 세력을 끊어버리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한다고 예언한 것이다. 애굽도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환영했으나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망했고 그 밖에의 모든 나라도 하나같이 망할 때는 다 성도를 괴롭히다가 망한 것이다. 금일에 소련도 처음에는 기독교 종교국이었으나 성도를 괴롭히는 정치를 하게 된 것은 망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3.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심 (13~17)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기 위한 목적이니 여호와 권능이라는 것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홀연히 나타나서 그 일을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선포를 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권능이 나타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게 한 것은 그와 같이 종말에도 행하시겠다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4. 응답으로 구원하심 (18~24)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자리에서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와도 하나님의 구원은 홀연히 나타나서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고통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자가 된다면 인간의 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요, 그 밖에는 여호와께서 행하시므로 만이 된다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약하고 어리석고 궁핍한 자리에 있다 하여도 고통이 올 때에 부르짖는 힘만 가진 자라면 완전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이 오는 것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인 것을 알고 고통이 올 때에 더 단결하고 더 강하여지고 더 각성을 받고 부르짖는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의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 여러 가지 난제가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날 때가 온 증거인 줄 알고 강하게 부르짖는 용사들이 금년부터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모든 성경에 동방 땅 끝에 부르짖는 역사는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한 것이니 지금 고통을 면할 수 없는 난국이 온 것은 머릿돌 되신 예수님이 나타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변치 않아야 할 것,

  둘째는 원수를 두려워말고 타협치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것을 믿는 신앙에서 강하게 부르짖는 힘을 내어야 할 것,

  셋째는 조금도 후퇴하지 말고 전진의 걸음을 걸어 나갈 때에 고통이 지나고 완전 평화의 나라가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니 잠깐 동안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라랏 산에 걸린 방주와 감람나무 새순

- 창 8:1~19 -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에 노아의 방주로 남은 자가 새 땅을 개척하게 할 때 아라랏 산에 방주가 걸린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후세에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된 일이라고 본다. 지금 방주가 아라랏 산꼭대기에 얼어붙어 있다는 것을 현재 발견하여 배의 형체가 신문에 발표한 사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후가 변천되게 했다는 것도 그 방주를 썩지 않게 얼어 붙이기 위한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하여튼 노아 홍수 심판 후에 기후가 변천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둘째 : 이 땅에 악의 씨를 없애고 인종을 전하는 시발점이 높은 산에 방주가 걸린 것 같이 새 시대를 이루는 촛대교회의 아름다운 소식도 높은 산에서 시작된다고 사40:9이하에 말씀했다. 언제나 하나님은 모두 되어지는 일을 아무런 의의가 없이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될 진리를 표현했다고 본다.

  셋째 : 방주가 높은 곳에 앉게 된 것은 가장 성별된 뜻을 보인 것이다. 속화된 인간에 있지 않고 가장 조용하고 거룩한 산 위에 앉게 한 것은 촛대교회는 성별되어야 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본다. 이제 방주 안으로 들어온 감람나무 새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

 

  1. 비둘기가 가지고 옴 (10~11상반절)

  이 뜻은 비둘기 같은 성신의 역사는 감람나무 왕권의 징조를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참 감람나무의 역사라는 것은 가장 순결한 비둘기 같은 성신의 역사라야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이다.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오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할 때에 하늘 문이 열려지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타났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2. 감람나무 새순을 방주로 들인 것은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의 순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보여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11하반절)

  다윗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감람나무 순이 비둘기를 통하여 방주에 나타난 것은 방주 후에 심판이 있게 될 때는 감람나무 순의 종이 나타날 것을 방주에서 시작된 인간 개척을 감람나무 순으로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다. 물에 잠기어 멸망한 땅 위에 새순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기쁨을 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촛대교회의 순의 종들이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완전한 개척을 시작함 (12~19)

  촛대교회는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교회인데 노아 방주는 분명히 촛대교회를 뜻한 예언이라고 보게 된다. 방주 안에 있는 여덟 식구가 세계 인류의 인종의 씨가 된 것 같이 앞으로 촛대교회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이 새 시대를 이루는 종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라는 것은 감람나무 순의 종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알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 다윗 왕권을 감람나무의 역사라고 시52:8과 슥4:3과 12절, 롬11:24, 계11:4에 말했다. 이것은 전부가 감람나무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 보다도 다윗의 왕권 계통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방주에 나타난 감람나무의 순은 반드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    론

  아라랏산에 방주와 감람나무의 순은 새 시대를 이루는 알파적인 역사가 되는 것이니 종말에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가 감람나무 순과 같은 종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질 때는 노아 때와 같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노아 방주로 말미암아 예언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말세에 방주와 같은 교회로 말미암아 예언이 성취될 것은 새로운 감람나무 순의 종들이 나타나므로 이루어질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방주에 완전한 준비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있게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씨가 된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완전 준비를 갖춘 촛대교회가 있으므로 그 안에서만이 새로운 시대를 이룰 자를 내게 된 것이다. 금일의 교회는 방주의 자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진리를 모르는 교회요,

  둘째로는 합심이 되지 못한 교회요,

  셋째로는 완전히 희생 봉사가 부족한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촛대교회를 이루려면 노아 방주 같이 되어야만 될 것이니 방주 안으로 비둘기를 통하여 푸른 새순이 들어온 것은 완전 준비가 된 교회에서 새 시대를 이루는 왕권이 나올 것을 뜻한 것이다.

 

 

야곱이 받은 축복

- 창 28:10~22 -

 

  야곱이 축복 받은 비결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이니 이것은 행함으로써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의 축복이다(창25:22~23).

  둘째 : 믿음으로 받은 축복이다.

  야곱의 행한 일을 본다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배고픈 형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장자의 기업을 팔라는 일이나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기회를 타서 속이고 축복을 받은 일이나 이 모든 일은 행위로 본다면 복을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축복을 믿는 믿음을 볼 때는 축복을 에서보다도 야곱이가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 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간 일이다.

  어린 야곱이 정든 고향을 떠나 눈물겹게 홀몸으로 적막한 들에서 찬 돌을 베고 쓰러져 있으면서도 담대히 하나님을 바라 본 그 마음을 하나님은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는 야곱의 생활은 아무리 부족한 인생이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남보다도 믿음이 강하다는 것과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축복 받을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야곱이 받은 복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적인 대표가 됨 (13~14)

  가장 큰 축복은 야곱에게 준 축복이니 모든 성경에 이스라엘이라, 야곱이라는 이름 아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복 받을 것을 가르쳐서 종말의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고 말세에 동방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종을 야곱이라 한 것은 야곱의 사명적인 계통을 가르친 것이다. 주님이 탄생할 때도 야곱의 집에 왕이 된다고 말씀했으니 야곱의 축복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이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사람 앞에 모든 일이 부족하다 하여도 축복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무조건 복을 나려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 (15상반절)

  우리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지키거나 말씀을 지켜서가 아니고 택한 자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믿음이나 또는 움직이는 생활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야곱이 미약하고 어리석고 너무나 단순해서 속기를 잘하지만 하나님이 지켜주는 사람이 되므로 어린 소년이 어디를 가나 피해를 당치 않고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3. 약속이 다 이루기까지 역사해 주심 (15하반절)

  야곱에게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은 금일에 우리에게까지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야곱이라고 한 것은 과거의 야곱을 가르친 동시에 그 약속이 말세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기까지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떠나지 않고 다 이루도록 역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끝까지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무조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4. 축복 받은 야곱의 제단 (16~22)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그곳을 잊지 않고 돌을 세워 놓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열의 한 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용기있게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에 그 말씀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실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야곱은 절대로 믿음이 강한 자로 조부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싸웠지만 이때부터는 직접 자기에게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므로 완전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께 받게 된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모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동방 땅 끝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대로 종말의 야곱의 사명을 맡은 우리들에게 역사하므로 야곱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을 새 시대 라 하는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예수께서 개인전도로 가르친 말씀

 

  총    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전도하실 때에 대중을 상대하여 가르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을 앞에 놓고 가르친 시간을 더 중요시하고 겸손하고 사랑스러운 태도로 교훈하신 말씀을 이 달에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나다나엘에게 가르친 말씀

- 요1:47~51,  요절:47 -

 

  서    론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향하여 가르친 말씀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배울 수가 있다.

 

  1대지 :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심 (47)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에 이스라엘 사람 중 유대인으로 세상에 탄생하시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볼 때 너무나 간사하고 전부 거짓이 많은 종교인으로 하나도 쓸 사람이 없어서 이방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간사한 것이 없는 진실한 사람이므로 그들을 참 이스라엘로 인정하시고 사도로 택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성경을 옷단에 기록하고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는 대제사장들과 제사장 무리와 교법사, 유사, 장로들을 볼 때에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하게 되었고 세례요한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책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면 병을 고쳐 주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셨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간사스럽게 일을 하고 행동을 하고 모양을 내고 다닐 적에 너의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했던 것이다(요8:44). 왜냐하면 간사하기 때문이다. 진실하신 예수님께서 간사한 사람을 볼 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책망을 하시며 외식하는 자들은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참 이스라엘이라고 인정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간사함이 없는 사람을 찾아서 죄를 사해주시며 지혜를 주시고 지식을 주시고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는 것을 복음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2대지 : 은밀한 일을 기억하심 (48)

  나다나엘은 자기네 집 앞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날마다 묵상을 하며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은밀한 가운데 중심을 바쳐 묵상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리새교인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언제나 대중을 가르친다는 선생으로서 전부 명예, 교권, 야욕에 끌려 삯꾼의 생활을 하고 있는 부패한 교계를 떠나 한적한 갈릴리 어촌 조용한 곳에 무화과나무를 의지하고 날마다 마음을 바쳐 기도하는 나다나엘은 사도가 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교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대적이 되어 예수님을 마귀라고 판단을 내리고 정죄를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외식하는 자가 된다면 얼마나 영계가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간사함이 없이 은밀하게 보시는 주님 중심에서 기도하는 자는 영계가 밝아서 나사렛 예수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숨은 기도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3대지 : 큰 증거가 나타날 것을 말씀하심 (49~51)

  나다나엘은 자기의 비밀을 안다는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인 줄 알고 말했던 것이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다나엘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 승천하는 일을 보고 증거하는 사명이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만일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증거하는 표적이 더 크게 나타난 일이 없고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는 정도만 가지고는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네가 나를 위하여 증인이 되려면 더 큰 증거를 보아야만 된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들어 쓸 적에 막연하게 믿어라 전하라 하는 것이 아니고 증거할 만한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 주시고 이것을 증거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한 사람을 들어 쓰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와 사도들은 성경을 그 당시에 기록하는 사명이 있으므로 직접으로 증거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가장 완전한 역사는 완전한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처음에 따를 적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고 따랐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 여러 가지 나타난 증거를 기록한 것이 그들이 쓴 신약 전서인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나다나엘을 택하셨지만 친구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도록 소개했고 예수님을 만날 때에 예수님이 그 비밀을 말하므로 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되었고 다음에는 여러 가지 나타나는 증거를 친히 목도하고 완전한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아무리 택한 사람들이지만 처음에는 사람의 인도를 따르게 되고 다음에는 믿음이 생기게 되고 다음에는 큰 증거를 보고 크게 쓰여지는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 역사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되 순서 있게 깨닫도록 하시어 완전한 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제2과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말씀

- 요3:1~21,  요절:5 -

 

  서    론

  주님께서는 대중을 상대하여 말씀할 때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했고 개인에 대하여 말씀할 때는 깊은 진리를 직접으로 말씀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따라오는 심리를 볼 때 참 진리를 알아보려는 것보다도 구경거리로 또는 병이 낫고자 하는 마음으로 따라오는 것을 아는 주님은 진리를 말해주어도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또는 필요조차 없으므로 비유의 말씀을 들어서 간단히 말한 것 뿐이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해서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향해서는 다음과 같은 깊은 도리를 말씀한 것이다.

 

  1대지 : 중생의 도리 (1~13)

  주님께서 중생의 도리를 비로소 처음 입을 열 때에 한 사람을 앞에 놓고 말씀을 했다. 이것을 본다면 주님은 얼마나 겸손하시며 한 사람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타난다. 이제 중생의 도리에 있어서 순서 있게 말씀했다.

  첫째는 중생을 해야만 천국에 간다고 말씀했다.

  여기에 큰 진리가 있으니 중생의 역사는 그 영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라는 것을 뜻했다. 중생이라는 것은 십자가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열매이다.

  둘째는 물과 성신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물에 잠겨서 올라오는 세례와 성신 세례를 받으므로써 완전한 천국의 시민권으로 인정받는 것을 뜻했다.

  성신 세례는 그 영을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를 얻게 하는 것이요, 물세례는 그 몸이 완전히 타락한 원죄에서 벗어나는 뜻이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중생이라는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원죄로 타락한 몸은 물세례로 끝을 맺고 자범죄로 죽은 영혼은 성신 세례로써 완전한 종이 되게 하여 주님 대행자로 쓰는 것을 중생의 역사라는 것이다.

 

  2대지 : 영생의 도리를 말씀하심 (14~17)

  영생이라는 것은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데는 인간의 행위가 결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생자의 의가 아니고는 감히 죽은 영이 살 수도 없고 또는 죽은 몸이 생명의 부활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었다는 것이 영생의 조건이요,

  둘째로는 죽기까지 순종했다는 것이 조건이 되는 동시에 믿었다는 것이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독생자를 주었다는 것이요, 신자의 의는 의심 없이 믿었다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주는 이가 의를 행하므로 주게 되었고 받는 자도 그 의를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영생이라는 것은 독생자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요, 받은 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영생을 받을 조건이 아니고 영생 받은 자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3대지 : 심판의 도리 (18~21)

  심판이라는 것은 율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이니 독생자의 행하신 일을 믿지 않을 적에 이것은 벌써 정죄를 받는 일이 된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믿으면 사죄요, 믿지 않으면 정죄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십자가의 의를 믿을 적에 의를 행하신 예수님은 죄인을 대신하여 행하신 의이므로 무조건 구원을 받는 것이요, 독생자의 행하신 의를 믿지 않고 반대할 때에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다 해도 영적으로 정죄를 받는 것이다.

  그 마음에 빛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적에 벌써 흑암에 빠지게 되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독생자의 의를 반대하고 믿지 않은 죄가 율법을 범한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본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행하라는 법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신 법이니 이 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율법보다도 율법을 초월한 예수님의 대적이 되므로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와 영생의 도리와 심판의 도리를 말한 것은 너무나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중대한 진리를 한 사람을 앞에 놓고 가르친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의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제3과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르친 말씀

- 요4:10~26,  요절:24 -

 

  서    론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여자 하나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이 오늘 교훈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남자로서 진리를 탐구하려 찾아 온 사람이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께서 직접으로 찾아가서 그 여자에게 물을 구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훈을 하신 것이다.

 

  1대지 : 영생의 물을 말씀하심 (10~14)

  인간이 볼 때는 주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나 속화된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먼저 인사를 해도 받지를 않고 무엇을 주어도 받지도 않는 것이 성별된 생활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친히 물을 요청하신 일이나 그 여자에게 무조건 영생의 물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너무나 그 시대 사람이 볼 때는 속화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이러한 자에게 영생을 주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구하는 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죄가 많은 더러운 여자라도 구하면 주겠다는 것을 말씀했다.

 

  2대지 : 은밀한 죄를 말씀하심 (15~19)

  주님께서는 사람을 대할 때에 은밀한 죄가 무엇인 것을 먼저 아시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죄를 먼저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너 같은 사람이라도 나는 영생의 물을 줄려고 왔다고 먼저 말씀을 하시고 죄를 숨기려는 여자에게 네 죄가 이것이 아니냐고 말씀한 것은 그 여자를 무시하는 태도로 말씀한 것이 아니고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남편 다섯이 있지만 맨 먼저 만났던 남편이 네 남편이라고 말씀을 했다.

  주님은 언제나 그 생명을 불쌍히 보는 마음에서 영생을 받을 수 있는 택한 사람을 존경해서 죄를 알려주는 동시에 주님이 누구 신지를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소망을 말해 주고 죄를 알려 주는 것이 순서적인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3대지 : 예배를 가르치심 (20~26)

  첫째 : 바로 알고 예배하는 것을 가르쳤다 (20~22)

  사마리아가 된 원인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남방 예루살렘의 예배를 반대하고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예배했으므로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는 것보다도 진노하셔서 북방 이스라엘을 떠날 때에 자동적으로 사마리아가 되고 만 것이다.

  남방 예루살렘은 버리지 않고 북방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버렸지만 예수님이 유대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어디나 다 같이 예배할 때가 온다는 것을 가르쳤다. 알지 못하고 우상을 공경하던 이방 민족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알고 예배할 때에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말씀하심 (23~26)

  과거는 여러 가지 의식과 유형적인 예배를 직접 제물로 드렸고 또는 신령한 역사는 나리지 않으므로 받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제물로 희생의 제사를 드리신 후에는 유형적인 제물이나 의식보다도 신령한 은혜를 나리시는 주님 앞에 신령한 은사를 받은 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중심하여 예배할 때에 은혜 위에 은혜를 더 받게 되고 진리 위에 진리를 더 깨달아 신령한 양식으로 받을 때에 이 예배를 통하여 얼마든지 복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과거의 예배는 지금의 예배를 목적하고 예언적인 형식에 갖춰진 예배였지만 지금은 그 예배의 진리가 완전히 이루어진 열매가 되므로써 신령과 진리로 충만히 받아서 이루어지는 것 뿐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대중을 대할 때에는 신령한 도리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택한 사람을 만날 때에 한 여자를 앞에 놓고 신령한 영생의 물과 신령한 예배를 가르친 것은 너무나 인간이 볼 때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양식이라고 했던 것이다(요4:32).

 

 

제4과  마르다에게 가르친 말씀

- 요 11:21~27, 39~44,  요절:27 -

 

  서    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중대한 문제를 말할 때에 언제나 인간이 볼 때는 가장 작은 한 사람을 놓고 가르친 교훈을 이 달에는 공부하는 중 마르다에게 가르친 교훈을 공부한다. 마르다는 비록 외로운 고아 중의 한 여자로 자라났지만 가장 예수님을 열심히 받들어 섬긴 여자라고 본다. 그런데 큰 시험을 만나서 주님 앞에 복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인간이 볼 때는 교훈을 받았다가도 다 의심하고 낙심할 정도로 슬프고 딱한 사정을 만난 마르다였다. 왜냐하면 자기 오빠 하나를 믿고 살던 가정에서 둘도 없는 오빠가 죽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낙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낙심치 않고 오히려 주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교훈을 받게 되었다.

 

  1대지 :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란 교훈을 받음 (21~27)

  첫째 :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말씀 (21~24)

  주님께서는 택한 자에게 소망이 되는 말씀을 하실 때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은지 나흘이 되는 날에 주님이 오셔서 나사로가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마르다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나이다 했던 것이다. 교훈이라는 것은 인간이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 믿게 하는 것이 주님의 교훈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주님의 교훈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인데 언제나 주님께서는 그 교훈을 믿을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믿으라는 것이다. 나사로가 죽기 전에 와서 살려주지 않고 죽은지 나흘만에 냄새가 나는 송장을 살려 준다는 말씀은 마르다에게 믿음을 더 길러 주는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둘째 :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심 (25~26)

  마르다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지만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지 못하므로 예수님은 친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이 교훈은 세계 인류에게 큰 소망을 주는 교훈이다. 이 성경 말씀이 즉 성경 전체의 요절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한 여자에게 말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원죄와 자범죄로 죽은 자들에게 죽었더라도 살려 주고 주님 올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은 죽지않고 영원히 살게 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교훈의 총 대지가 된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믿는 자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갈 소망이 되는 말씀이다.

 

  2대지 :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심 (39~40)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방법이다. 마르다가 주님을 믿는 마음이 변치 않았지만 무덤에 장사한지 나흘이 되는 오빠가 다시 살아 나온다는 것은 의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이 부족한 마르다에게 담대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가르쳤다.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는 인간으로서는 두려운 맘, 의심스러운 맘, 원망스러운 맘이 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홀연히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3대지 : 주님의 기도의 교훈 (41~44)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지 않고서도 영광을 나타낼 수 있지만 기도에 대한 교훈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첫째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하시었다.

  이것은 자기의 힘으로가 아니요, 하나님의 응답으로 된다는 것을 대중 앞에 알게 한 것이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보내심을 받아 왔다는 것을 대중 앞에 알게 하는 것이다.

  둘째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할 때에 나사로가 일어나 나온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믿게 하기 위한 실천적인 교훈이다. 만일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고도 이러한 증거가 없다면 어리석은 인간들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음을 아시고 친히 부활의 생명을 믿게 하는 교훈으로 마르다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는 마르다 가정에 준 교훈은 오늘 우리에게 준 교훈으로 알고 용기 있게 나가야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제일 큰 일은 마르다에게 준 교훈의 말씀과 증거라고 보게 된다. 전 세계 인류의 끝을 맺는 역사는 마르다의 가정에 나타난 교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을 존중히 보는 주님의 교훈을 나가서 전하려면 지극히 작은 여자 하나라도 무시하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제5과  도마에게 가르친 말씀

- 요 20:24~29,  요절:27 -

 

  서    론

  주님께서 당신의 종을 들어 그 시대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무장을 줄 때에 그 진리를 정확히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할 사도들에게 친히 주님께서 자기의 부활한 몸을 만져 보도록 하신 것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선구자로 나설 자이므로 그 증거를 믿고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아무리 예수의 부활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 몸을 친히 만져 보기 전에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문을 열지 않고 주님이 나타날 때 모든 사람은 혼령인가 의심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눅24:37). 그러므로 주님을 만져 보지 못한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 것이다.

 

  1대지 : 의심하는 도마를 찾아오심 (24~26)

  주님께서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를 찾아 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사도적인 자격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다른 제자만 주님을 만져 보고 도마는 만져 보지 못한다면 동등한 자격이 없으므로 찾아 온 것이다.

  둘째 : 사도들은 한 단체를 이루어야 될 것이므로 하나같이 부활한 주님을 만져 보았다는 증거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셋째 : 이때는 뚜렷한 문서 운동이 없고 친히 본 자들이 증거해서 완전한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록한 다음에는 그 성경대로 믿어서 천하 사람을 구원을 받게 하시기 때문이다.

 

  2대지 :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심 (27)

  사도가 되는 사람이 부활을 의심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야 남에게 믿으라고 증거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도 있고 이루어진 것을 믿는 것도 있으니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분명히 부활한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행할 일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므로 믿게 할 수도 있지만 행하신 일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죄이다. 지금 성신이 역사하는 데도 부활을 의심하는 것은 더 큰 죄가 될 것이니 성신이 강림하기 전에 주님께서 40일간 계속 나타난 것은 부활을 증거 할 종들을 담대하게 해서 성신 권능을 받아 선구자로 쓰기 위한 목적이다. 성신이 강림한 후로는 주님이 부활을 믿으라고 나타난 일이 극히 적은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성신만 받으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져 본 것보다도 더 확실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3대지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음 (28~29)

  누구든지 부활을 증거하는 전도를 받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죽은 영이라도 즉시 중생을 받고 성신을 받아 하나같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복 있는 자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사람들이 부활을 증거 못하도록 하다가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고 금일에 세계 모든 족속이 부활하신 예수를 의심없이 믿으므로 축복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모든 죽은 영들이 십자가 부활을 믿으므로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오묘한 일이므로 하나님이 택한 자 외에는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금일에 와서 주님의 부활을 믿으므로 중생 받은 자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므로 받는 복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결    론

  천하에 제일 큰 일이 십자가 부활이요, 제일 큰 축복이 십자가를 믿으므로 구원을 받게 되고 또 증거하므로 믿고, 믿음으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을 다 주므로 당신의 만족을 삼고 영광으로 받으시려는 것이 사랑의 자체가 되는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본다. 우리는 부활을 믿도록 친히 찾아오면서 믿으라고 하시던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의심 없는 믿음으로 그 주님께 순종하는 것 뿐이다.

 

 

 

 어 린 이  공 과 편 - 요한복음 공부

 

제13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 요 11:30~44,  요절:44 -

 

  서    론

  학생들, 세상에 제일 불쌍한 사람은 부모도 없고 형도 없고 동생도 없는 사람일 거예요.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들이 있어서 서로 도와주면 재미있게 집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외로운 사람인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이동생 둘을 데리고 살면서 예수님을 섬기며 따라 다니면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병이 들었습니다. 이 병은 무슨 병인지 갑자기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바쁘셔서 나사로가 죽어 장사 한지 나흘만에 그 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때에 울고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누이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울면서 하는 말이 주님이 내 집에 오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를 않았을 것인데 벌써 죽어서 장사 한지가 나흘이 되었습니다 하면서 울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믿지를 않고 지금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이 다음 세상 끝에 가서는 부활하겠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장례를 지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은 말씀하기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 대하여 성경을 보고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예수님께서 눈물 흘리심 (30~37)

  예수님도 인생이 죽는다는 것은 슬퍼하셨습니다. 학생들 세상에서 죽는 것이 좋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서 새 시대 가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낼 때에 죽으라고 낸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으므로 몸에 죽음이 왔습니다. 인생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굴을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였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장례를 지낸지 나흘이 되었는데 얼마나 냄새가 날까요. 송장 냄새는 참 나쁜 냄새입니다. 학생들 맡아 보셨어요?

 

  2대지 :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40~42)

  예수님은 눈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시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학생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면 지금도 하늘에서 예수님은 학생들을 위해서 대신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시는 거예요.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였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줄 믿습니까?

 

  3대지 :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43~44)

  학생들 이것 보세요. 예수님은 냄새가 나는 송장을 보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크게 소리를 내어 불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죽은 송장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수족도 베로 꽁꽁 묶었고 얼굴도 수건으로 싸였는데 예수님은 일어난 송장을 보고 풀어놓으라고 했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부지런히 풀어놓았습니다. 냄새나던 송장이 눈이 빤짝 빤짝하고 또 말도 하면서 그 굴에서 나올 때에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나타나서 한번 말씀하면 죽은 사람이 살기도 하고 학생들의 몸이 변화를 받게도 합니다. 학생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 학생들을 새 시대로 인도 할 것입니다.

 

  묻 는  말

 1. 사람이 죽는 것을 예수님은 기뻐하십니까? 슬퍼하십니까?

 2. 나사로가 무덤에 장사 한지 몇일 만에 살았나요?

 3. 예수님은 무엇을 가지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까?

 

 

제14과  영광스럽게 된 예수님

- 요 12:27~33,  요절:28 -

 

  서    론

  세상에서 제일 영광스럽게 된 자는 누구십니까? 예수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셔서 빈한한 목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올라 갈 때에 모든 사람이 다 이스라엘 왕이라고 호산나를 부르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영광스럽게 보지 않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므로 왕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나사로를 살릴 때에 구경한 사람이 따라 오면서 증거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고야 좋은 밀의 열매를 맺듯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야 많은 열매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큰 징조를 보여 주었습니다.

 

  1대지 : 예수님은 마음이 민망했습니다 (27)

  십자가에 죽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이것이 아플 것입니까?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예수님도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케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위해서 이 때에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온 것은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려고 왔다고 말씀을 할 때에 모든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적을 많이 행하시는 예수님이 원수한테 잡혀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대지 : 하늘로부터 응답이 내림 (28~29)

  예수님은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고 크게 기도하셨습니다. 이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내려 왔습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뇌성 소리가 난다고도 말했고 어떤 사람은 천사가 말한다고도 하였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 죽고 온 천하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학생들은 공부할 때에 고생을 좀 해서라도 성공을 하여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이것도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어요.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서 모든 사람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고 새 시대가 오는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3대지 : 예수님은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30~3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마귀가 세상에서 왕 노릇 하면서 누구든지 다 마귀한테 끌려 지옥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부터는 예수님만 믿으면 그 사람은 마귀가 피해를 주지 못하고 다 도망을 갔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천하에 마귀를 이기신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없이 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 언제나 도망을 가 없어지고 맙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나요?

 2.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3. 예수님은 왜 영광스러워 졌나요?

 

 

제15과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

- 요 13:1~15,  요절:14 -

 

  서    론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떠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에 대하여 그 진리를 학생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학생들 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발이 더럽다고 씻어 주는 선생님이 있는 것을 보았나요? 지금 선생님들은 그런 분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더러운 인간들의 더러운 발을 거룩한 손으로 씻어준 일은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있습니다.

 

  1대지 :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온 증거입니다 (1~3)

  학생들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아이를 씻어 주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더러운 것을 더럽다고 생각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을 사랑한다 해도 자기가 유익이 안되면 사랑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들을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이는 예수님일 것입니다.

 

  2대지 : 가장 친근한 표정을 나타냈습니다 (4~10)

  예수님께서 제자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예수님 대신으로 일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므로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학생들 깊이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다 주님을 배척하는데 이 제자들은 목숨을 바치고 주님을 위하여 일하려고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주님의 일을 열심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렇게도 사랑해 준다는 표적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되게 일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존경해 주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다시 올 때에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은 주님이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발을 씻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존경하는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 가던 제자들은 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왕권을 받았습니다. 학생들도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면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십니다.

 

  3대지 : 본을 보여 주심 (12~15)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사람이 될 때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역사해 주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자기보다도 남을 존경하는 사람을 들어서 쓰시되 하나님의 큰 은혜를 주어 모든 사람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천하에 제일 훌륭한 사람은 남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다른 학생을 무시한다면 학생들이 무시를 당하게 되고 남을 존경하는 사람은 자기가 남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제일로 훌륭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잘 되도록 존경해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을 들어서 많은 사람을 복 받게 하고 그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일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선생님이 있지만 제자의 발을 씻어 주는 예수님 같은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천하에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은 무슨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2.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어준 일이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모본이 되는 일입니까?

 

 

제16과 천국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  

- 요 14:1-, 요절1 -

 

  세상에 많은 선생이 있지만 천국을 분명히 가르쳐 준 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옛날 공자는 제자들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보려고 물어 볼때에 나는 어떻게 되어 사람이 나는 지도 모르겠는데 죽은 후의 될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옛날 석가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아 볼려고 세상에 구경을 나갔습니다.  이 석가는 인도라는 나라에 왕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고 왕궁안에서만 자랐습니다.  첫 번에 결혼식하는 신랑 신부를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았던 거예요.  둘째로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허리를 꼬부리고 지팡이를 짚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석가는 기분이 사나왔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때에 함께 가던 사람이 나이 많아서 죽을려고 저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석가는 나도 저렇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때에 함께 가던 사람이 말하기를 태자께서도 불과 사십년만 지나면 저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사람이 병이 들어서 죽어 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석가는 말하기를 나도 저렇게 죽느냐고 했습니다.  함께 가던 사람이 말하기를 태자도 꼭 저렇게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넷째는 사람을 장례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때에 저것은 무엇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함께 가던 사람이 말하기를 땅에다 죽은 사람을 파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는 산간에 들어 갔는데 왠 사람이 한가하게 앉아서 목탁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것은 뭘하는 것이냐 할 때에 사람이 죽는 것이므로 오는 세상에 좋은 곳을 가겠다고 도를 닦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는 거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산으로 도망 갈 준비를 하고 밤중에 왕이 잠들어 있을 때에 몰래 왕궁을 떠나 깊은 산으로 도망을 가서 가만히 앉아서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여 육년간 도를 닦았습니다.  그것이 불도의 근본적인 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것을 말씀할때에 제자들은 근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이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살으셔서 40일 동안 세상에 나타나 제자들에게 당신이 부활한 몸을 친히 보여 주시면서 만져 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기를 너희는 천하의 어느 곳에나 교회가 서도록 전도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올라 갈 때 천사 둘이 나타나서 너희 주께서 그름을 타고 올라간 것 같이 다시 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신을 내려 보냈습니다.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 성신을 부어 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삼이 좋은 일을 한 대로 하늘 나라에 있을 것을 예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공자, 석가, 예수님을 놓고 누구를 믿어야만 되겠습니까?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될 것입니다.  분명히 하늘 나라가 있다는 것은 다 알수가 있고 어떻게 하면 그 곳을 간다는 것도 예수님을 배우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시대에 가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천년 동안 세상에 살기 좋은 평화로운 시대가 있고 다음에는 누구든지 다 천국에 가서 자기 있을 곳에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학생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가르친 교훈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묻 는  말

1.  사람의 앞 일을 분명히 가르친 이는 누구십니까?

2.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3.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제17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 요 14:6~11,  요절:6 -

 

  서    론

  학생들 무엇이 학생들에게 제일로 필요한지 오늘은 여기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을 주시는 예수님인지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대지 : 길이 되십니다

  학생들 지금 학생들의 앞에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이라는 것은 아스팔트를 깐 길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목적하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길이 됩니다. 세상에 많은 선생도 있고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은 하루 하루 사는 문제를 위하여 날뛰는 사람들입니다. 다 내일 일을 모르는 선생님들이고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광명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지금도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성신을 보내서 마음을 인도하시고 천사를 보내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와도 인도해 주십니다. 학생들은 내일 무슨 일이 있을는지 모르고 있지만 예수님은 미리 다 아시고 학생들을 인도하십니다. 예를 든다면 양을 치는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듯이 예수님은 학생들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역사를 하시고 계십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잘못 가르쳐 주는 사람의 말을 듣고 간다면 얼마나 고생을 하시겠습니까? 학생들이 예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고생만 하다가 환란에 떨어져서 죽게 되고 맙니다. 지금 제일 학생들의 큰 문제는 누구의 인도를 따라야 될는지 복잡한 문제인 거예요.

 

  2대지 : 진리가 되십니다

  학생들 돈이 더 중합니까? 진리가 더 중합니까? 학생들에게 오늘 돈이 있으면 좋겠어요? 돈만 있으면 먹을 것도 마음대로 사먹고 마음대로 다니면서 구경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되면 돈이 있어도 나쁜 사람이 됩니다. 진리라는 것은 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하신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지금 과학이 발전되므로 많은 사람이 빨리 교통하는 것도 그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고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는 무서운 전쟁이 있게 된 것도 그 속에 진리가 있고 학생들이 지금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도 진리가 있습니다. 덮어놓고 세상이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할 때에 새 시대가 올 때는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는 전쟁이 있을 것을 말씀했고 극도로 사람의 지식이 발달되어 아주 화려하고 사치한 세상이 될 것을 말씀했고 사람이 발달해서 독수리 같이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참으로 진리를 바로 지키는 사람은 새 시대 가고 진리를 반대하고 세상의 과학 문명에 도취가 된 사람은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있다가 다 불에 사름을 당하고 말 것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천하 사람이 다 예수님의 진리를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없이 하고 진리를 믿는 사람만 사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리가 되십니다.

 

  3대지 : 생명이 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를 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다 죄인들입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그 죄를 사함 받기 전에는 그 영혼은 마귀한테 붙들려서 지옥을 가게 됩니다. 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호를 받는 자 외에는 다 새 시대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영혼도 살 수 없고 몸은 앞으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나무가 수분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 같이 예수님을 떠난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이 왜 길이 되십니까?

 2. 왜 진리가 되십니까?

 3. 왜 생명이 되십니까?

 

 

 

 논 설 편

 

1.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사람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 인간들이 다 취한 사람같이 된다고 말하였다. 정치인이나 문화인이나 종교인이나 다 사람이 볼 때는 분명한 것 같으나 실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다 취한 사람으로 본다고 했으니 이것은 어떠한 사람이냐는 것을 성서를 통해서 증명한다.

 

  1. 세상의 안락에 도취된 자 (사28:1~5)

  오늘날 물질만 있으면 얼마든지 영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물질문명에 도취가 되기 쉬운 세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보통 자기의 생각밖에 놀랄 일이 있으면 거기에 끌리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금일에 물질문명은 19세기 사람으로 감히 상상도 못하던 세계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사상은 19세기까지 종교가 필요했지만 20세기에는 종교가 필요 없다고까지 되는 현실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자랄 적에 완전한 성년이 되기까지는 부모를 의지하지만 완전한 장부가 되어 무엇이나 자유롭게 활동할 때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이 19세기까지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20세기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금일에 와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20세기 과학 문명은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심판이 올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데 이것을 말하자면 1917년부터 일어난 쏘련 혁명은 종교가 필요 없다는 소위 종교를 대적하는 적색 사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을 기준하여 연구해 볼 때 반드시 종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 소위 레닌맑스주의라는 것이다.

  실지 과학이 발달되므로 성경은 분명히 증거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니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성경이 없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라고 본다.

 

  2. 종교적인 교만에 도취된 자 (사28:8~10)

  소위 정통이라는 신학을 가진 자들이 정통에 취해 가지고 새로운 발전을 모르고 바짝 마른 나무같이 말라 가지고 새로운 순의 종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 소위 바리새교라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을 배운다는 사람들이 메시야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교만에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여 예수를 이단이라고 정죄 했고 성경 해석을 잘못하여 십자가를 반대했다.

  이 사람들이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자들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소위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만 분명한 종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분명한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자들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으면 기분에 취하고 기분이 나빠 성을 내게 될 때에는 거기에 취한 자가 되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종교라는 것이 흥분, 감정에 치우치면 그 종교는 다 마귀 술에 취한 자라고 본다. 종교가 발전할 때에 그 세력에 도취가 되어 진리보다도 그 세력을 따라갈 때에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분명히 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자가 된다. 여기에는 진리의 생수가 없고 마귀의 독주가 따르기 때문이다.

  성령은 언제나 정상적인 진리에 입각하여 역사하는 신이니, 진리에 잘못된 판단이나 해석이 있을 때는 자동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분명히 교회를 처리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금일에 와서 영계 분별의 지식도 없고 성경을 변론하는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일이나 함부로 자행자지하는 것은 종교적인 생활이 똑똑한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종교 생활을 하게된다.

 

  3. 정치적인 권리에 도취된 자 (사19:13~15)

  정치라는 것은 그 시대를 따라 인생을 살 길로 지도해 주는 일에 지식이 없이 덮어놓고 자기에게 권리를 주었다고 함부로 백성을 지도하는 것은 취한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권이라는 것은 인간 자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님께 있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지도하는 자 외에는 모든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그 권리에 도취가 되어 남을 함부로 죽이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하는 정치인은 분명한 사람같이 보이면서도 실지는 취한 자이다.

 

  4. 오락에 도취된 자 (사5:11~14)

  사람이라는 것은 오락적인 방면에 도취가 되면 그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오락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일시 기분을 주는 것 같으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분명한 사람도 분명한 일을 못하게 되는 마술적인 행동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마술이라는 것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하는 흥분을 주어서 사람들을 끌리게 만든 후에 사람을 미혹시키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락적인 방면으로 흐르는 인격은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인격이 무엇에 끌리지 않고, 보이고 들리고 만지는 바를 초월해서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만지는 바를 바로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자라고 본다.

  과학적인 지식에 끌리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인 지식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하며, 정치적인 권리에 끌리지 말고 정치를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하며, 종교적인 어떤 세력에 끌리지 말고 종교 신앙 양심을 바로 갖고 종교 기관을 좌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며, 오락적인 방면으로 끌리는 것보다도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격이라는 것이다.

 

 

2.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

  인생은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이 무엇인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입에 무엇이 잘 먹여지면 그것을 만족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은 잘 먹는 것 같으나 실지는 빼앗기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주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고 굶주린 자에게 떡을 주고 최후에는 죽을 인생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시었다. 또 지금은 성령을 부어 주신다. 이것이 전부 받는 일이다.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은 주시므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2. 주고 싶은 하나님의 종 된 생활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주시고 주는 일의 종이 된 자에게 얼마든지 몇 갑절의 상급을 주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된 생활은 언제나 주는 생활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누구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사람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종을 쓸 때 주고 싶은 사랑 속에서 쓰는 것이니 진리를 남에게 나눠주는 종은 언제나 진리를 공급하는 동시에 하늘의 왕권의 상급을 아울러 주는 것이다. 주의 종으로서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얼마든지 남에게 줄 것이 있게 된다. 이것을 충만한 종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생활이 가장 재미있는 생활이다.

 

  3. 하나님은 거저 주고 거저 받도록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은혜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남에게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축복을 받게 될 때에 이것은 복된 생활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기쁨이나 만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남에게 주는 종을 받들어 주는 생활이다

  아무리 종을 받든다 하여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는 종을 받드는 것은 무효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선지자를 받들면 선지의 상을 받는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언제나 진리를 풍성히 하나님께 받아서 남을 살려주는 종을 받든다면 그 종이 하는 일을 받드는 종도 같이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은 취급한다. 그러므로 참된 종 하나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엘리야에게 떡 한 조각을 준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하나님은 기름과 가루를 공급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주고받는 일과 대표적인 종이 주고 받는 일과 일반적인 성도가 주고받는 일에 대하여 잘 분별할 때에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 하나를 체험할 때에 이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

  소위 공산당들은 배고픈 자에게 빵을 준다는 미명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공산이 아니요, 공상당이라고 볼 수 있다. 공상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일을 공연히 생각을 하며, 하고 본즉 실패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큰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씨가 없이 망하고 마는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3.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에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창조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믿음이 있되 바로 참된 것을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두고 완전치 못한 세상을 두었다고 본다. 이것은 완전치 못한 세상에서 완전한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완전한 세상으로 가게 한 것이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해 주시는 대상자를 믿으므로써 완전한 것을 받으므로 만이 완전한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는 대로 끝을 맺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이다. 믿는 대로 갚아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동시에 가장 간교한 마귀의 말도 있게 하신 것은 믿는 대로 받게 하는 공의로운 법칙에 대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법을 주는 동시에 간교한 뱀을 통하여서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말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 이 세상에 사망, 고통, 슬픔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참 인줄 믿고 타락한 인생에게 다시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미래를 모르는 인간이므로 현재 좋은 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장차는 망하더라도 그때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방침을 쓰는 미혹을 시키는 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요, 하나님은 금시는 괴로움을 주는 것 같으나 장차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축복으로 주자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내일 일을 모르는 인간들은 대부분이 마귀의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제 믿음에 대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만 믿는 다는 소위 과학적 신앙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금일에 문화인들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관을 가진 자들은 그 인격이 물질계 안에 국한된 인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격자는 그 생활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세계에서 오는 것으로 미를 이루고 살아보려는 자들이다.

  이러한 생활은 인생의 생명의 가치를 다 발휘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그런 범위 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공중으로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는 새가 광주리 속에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생활이라고 본다.

 

  2. 신비를 믿는 신비주의적 신앙이 있다.

  이 사람들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믿는 신앙보다는 좀더 들어가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영안으로 본다는 것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신의 역사를 몸에 체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노선은 예를 든다면 아무런 목적 없이 술을 먹고 즐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이 신비의 체험으로만 종교 신앙의 미를 두는 것은 한 광신의 신앙가가 될 수도 있다.

 

  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합법으로 믿는 신앙이 있다.

  이 신앙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 : 소위 정통파라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이적은 폐지라는 학설이 있다. 이것은 신께서 성경을 세상에 나타내 주기 위하여 그 시대에는 이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신비적인 체험을 부인하는 소위 학자적인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앙에는 바리새교인과 같이 외식하는 일이 있게 된다.

  둘째 : 참된 약속을 믿는 동시에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산 체험을 받고 말씀이 교리화된 것보다도 인격화되고 생활화되어 그 말씀을 증거하되 교리적 학설보다도 체험적인 인격을 가지고 생활화되는 세계에서 그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서 증거 할 때에 받는 자들도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동시에 인격과 생활로 체험 있는 은총 속에서 날마다 푸른 새순같이 새로워지는 생활이 있게 된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로되 믿음이 과연 조물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의하여 그 생활은 좌우되고 있다. 신앙은 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조물주를 통하여 완전치 못한 인생에게 주는 것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참된 믿음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믿음을 자신이 가진다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로되 택한 자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준다는 것은 완전한 것을 택한 자에게 주기 위한 사랑의 법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께로 믿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4.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

  금일에 인간 과학적 지식이 극도로 발달하여 19세기 사람으로서 놀랄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금일에 작은 것 같으나 큰 지식이라는 이 체험을 가진 자만이 삶의 길이 있게 될 것이다. 인간들은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을 모르고 종교를 무시하며 작은 지식을 가지고 큰 지식을 판단하며 작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큰 지식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는 일도 있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이라는데 대하여 그 지식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자기 하나를 바로 아는 지식

  모든 인간들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 그것조차도 모르면서 소위 박사라고 하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 때 그 생명을 위하여 활동하는 생활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땅속에 있는 광물을 캐내는 것은 광물 박사라 하면서도 자기 속에 있는 생명 하나를 바로 아는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어떤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했던 것이다. 어떤 부자가 물질을 많이 쌓아 놓고는 말하기를 내 영혼아 편히 지내보자고 할 때에 하나님 편에서는 그 영혼을 그날 밤 부르셨는데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간단히 말했던 것이다.

  소위 유물론 공산당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꼭 같다고 하면서 사람을 고등 동물이라고 하니 자기 생명조차도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세계를 통일해 보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고 웃을 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삼척 동자라도 자기 속에 있는 생명 하나를 바로 알고 그 생명을 위한 진리를 탐구한다면 이 소년은 세계를 통일할 인격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아무리 만리 장성을 길게 쌓고 아방궁을 높이 짓고 자기 혼자 살아보려고 삼신산 불사약을 구하려고 동남 동녀 500인을 동방 바다 섬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이 진시황은 큰 일을 한 것 같으나 그는 어떻게 해야 사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허덕이다 말았다는 것이 동양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것이다.

  나사렛 작은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던 나사렛 예수가 병자 하나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문둥병이 있는 자를 어루만지던 예수님의 역사는 필연코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누가 천국에서 제일 크냐고 하던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앞에 놓고 이 어린이 같이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제일 큰 자가 된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하는 것이 장차 내게 얼마나 큰 일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소위 정치가라 하면서 이것 하나를 모른다면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바람잡이 생활을 하는 무식한 사람일 것이다.

 

  3.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지식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금일에 소위 기독교의 지도자라 하는 자들이 이런 말을 하는 자도 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가게 되면 성경은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감으로써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것으로만이 세계를 바로 알 수 있고 시대를 바로 알 수 있고 앞  길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신학생이 신학교는 성경을 배우는 신학교가 아니고 신학을 배우는 신학교라 하는 것은 위험한 말이라고 본다. 소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 한 절을 잘못 알므로 교회를 망치는 일이 있고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 있는 것이다. 성경 한 절을 바로 알기 위하여 하늘에서 오는 지혜, 지식을 찾는다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과학 연구소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자는 위대한 일로 알고 작은 골방에서 소리 없이 하나님과 교통 받으며 그 시대에 대한 말씀 하나를 바로 알기 위하여 하늘의 지식을 찾는 사람은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라고 보는 세상이 되고 보니 이 세상은 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의 도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리석고 가난한 자 같으나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지식을 받는 자만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는 자격을 가진 자라고 보게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전 생애를 그 지식에 바쳤던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바리새교인들은 바울을 염병 같은 놈이라고도 하고 이단 중의 괴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목수 예수를 바로 아는 지식을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친  바울은 세계 통일의 대종교를 이루는 진리의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감찰할 때에 당신의 말씀 한 절을 바로 아는 지식을 찾는 사람에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새 일의 역사라는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시국이 급한 줄 알면서도 기도 힘이 나지를 않고 점점 가라앉는 일은 무슨 원인입니까?

【답】이것은 영계가 달라진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흑암을 개방시켜 어느 종이나 말세에 사명이 있는 종들을 대항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종들로 하여금 재무장을 시킬 때가 왔기 때문에 어느 종이나 다 새로운 무장을 받아 가지고 일할 때가 왔으므로 과거의 역사는 걷어 가고 새로운 역사를 나리고자 할 때에 마귀로 하여금 자유로운 행동을 하게 하되 종말에 권세의 종을 세워서 그 마귀를 물리치는 역사를 하게 하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새로운 권세 역사를 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로운 역사를 받아야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1. 말씀 권세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날까지 마귀 흑암이 물러간 것은 주님께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므로 누구든지 그 피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게 될 때에 죄에서 해방을 받으므로 죄의 권세를 잡고 있던 마귀는 물러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때가 아니고 새 시대로 인도하기 위하여 예언대로 환란, 재앙이 오게 하고 예언대로 보호가 있고 예언대로 심판이 있고 예언대로 새 시대가 오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때는 예언 권세의 역사로만이 마귀의 흑암이 물러가기 때문에 예언 권세의 역사를 받은 종이 아니고는 흑암을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2. 절대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순종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시대의 회개라는 것은 자기가 계명에 의한 죄를 회개하면 율법을 도말한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로 죄를 사함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의 흑암으로 시험해 볼 때는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도 환란에서 보호받고 새 시대 갈 사람들에게 지킬 예언이므로 그 예언을 바로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흑암이 물러가고 또는 말씀을 받는 자들이 예언의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를 받게 되므로 만이 새로운 역사를 권세 새 힘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든지 반대하는 경우에는 흑암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아담, 하와가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마귀 흑암에 들어간 것이나 같은 것이니 지상에서 아담, 하와가 잃었던 에덴 축복을 다시 받으려면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됩니다.

 

  3. 기도보다도 실천이 앞서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열매를 맺는 단계에 들어가는 때이니 철저한 회개가 있는 동시에 철저하게 싸워 나가는 힘이 강하여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강하게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은혜를 받고도 강하게 싸워 나가는 생활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그 영계는 가라앉아서 잠든 상태로 들어가고 맙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마귀가 침투해 올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귀 권세라는 것은 이전에는 죄를 지은 사람만 점령했지만 지금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도 시험해 볼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강하게 싸워 나가는 영계가 아니라면 자동적으로 마귀 흑암에 눌리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얼마든지 적군이 침투해 들어올 권세가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이 싸워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는 동시에 시국 난제를 돌파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 싸워 나가야만 됩니다. 이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압력에 눌려 영계가 가라앉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장을 갖추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문】2. 금일에 기독교가 전부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각 교파가 생겼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지금 무조건 자기네가 정통이라고만 고집한다는 것은 흑암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똑똑히 모르면서 남을 무조건 그르다고 하면서 자기만 옳게 믿는다고 생각이 나는 자체가 교만이니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고 그 예배와 기도를 받지 않으시므로 아무런 응답도 없는 예배를 드리며 기도한다는 것은 실지 흑암에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성경 전체를 바로 알고 보면 십자가의 도를 바로 믿는 신앙이 있다면 다 하나같이 인정하되 성경을 모르는 것도 하나같이 취급하고 영계가 하나같이 흑암을 거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교파적인 관념을 떠나서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는 신앙 양심에서 이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을 하나같이 깨닫게 될 때에 성경 전체를 다 바로 알게 되므로 진리 통합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소경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다리를 붙들고 기둥 같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배를 만져보면서 바람벽 같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코를 쥐고 큰 구렁이 같다고 하다가 눈을 번쩍 뜨게 되어 본다면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는 사람은 없고 서로 자동적으로 코끼리를 볼 때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하나같이 알 것뿐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밝히 아는 진리의 눈을 뜨게 될 때 자기 해석이 옳다는 생각은 저절로 없어지고 어떻게 되어서 새 시대 간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하나같이 미혹을 받지 않고 남을 때에 자동적으로 그 교회가 촛대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은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고 짐승의 표를 받고 심판을 받는 자와 참된 증인의 말을 듣고 재앙 심판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문】3. 기독교 신앙을 양심대로 바로 지키려면 현 사회의 모든 일과는 전부 거리가 멀어져야만 될 형편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신앙 양심을 살려 가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촛대교회를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세상에 염려와 향락에 마음이 둔하여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성도의 생활을 철저히 해 나가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만 될 것입니다.  

 

  1. 항상 하나님께로 오는 새로운 영감을 받는 일과 항상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새로운 힘을 얻는 일과 항상 주의 천사가 같이 해 주는 생활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일이 축복 속에서 기적적으로 되어 가는 일이 가정에 있기 위하여 가정 제도를 철저히 개혁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는 혁신적인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모든 생활 제도를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는데 가정이 전력을 두듯이 우리는 앞으로 오는 환란과 재앙을 피하고 새 시대에 가는 진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희생적으로 싸워 나가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3. 사상적인 문제에서 모든 일을 해 나갈 때에 어떤 도덕적이나 의리적이나 또는 이기적을 떠나서 사상 하나를 바로 보존하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초자연적인 신비에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때 보다도 사상을 보시고 사상에 따라서 축복도 나리고 재앙도 나리기 때문에 사상적인 투쟁이 철저해야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승리가 있고 새 시대 축복이 올 것을 바라보는 사상입니다.

 

 

【문】4.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저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떠한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말인지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느 신자든지 성경을 들고 자기도 성서적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어떻게 싸워 나가는 것이 옳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되겠습니까?

【답】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떻게 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할 때에 은혜 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교훈하실 것을 말씀했고(사42:3~4),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행하실 일은 하나님이 직접으로 새 일을 알려 주되 어떻게 행하므로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 영광을 누릴 것을 가르칠 때에 직접으로 선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42:9, 34:16).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시대에는 사도들이 기록한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믿으면 은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요 마지막 환란과 재앙이 올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들에게 전해준 말씀,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교훈을 선지서 그대로 읽어서 믿을 때에 계시록과 선지서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므로 그 역사를 힘입어서 보호를 받게 되고 승리하게 되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니요 그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보다도 그 하나님의 교훈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서는 하나님이 행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우리는 글자 그대로 될 것을 믿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온다 하여도 무소불능의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정한 때가 되면 홀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잘못된 신앙 노선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적인 법이 되는 것을 분별할 줄 모르고 혼선시키는 일입니다.

  유대교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던 민족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므로 이방 민족은 은혜 시대에 복을 받는데 은혜 시대에 오히려 망해 버린 것이 유대 나라였습니다.

  이제 기독교가 은혜시대와 환란시대에 대한 진리를 분별을 못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계1:2~3, 계22:6~7, 18~19을 보면 예언을 지켜야만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 하여도 예언을 지키지 않는다면 환란과 재앙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2. 말씀은 그대로 읽어서 은혜 받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은혜 받지 못하고 읽을 때에 마음이 공연히 뒤숭숭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 틈을 타서 마귀는 들어오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느 성경이나 본문 그대로 읽어서 그 뜻을 알게 되고 은혜를 받게 한 성경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금일에 소위 성경 주석이니 해서 이 학설, 저 학설을 끌어 붙이는 것은 마귀의 미혹을 청해 들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이런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을 알고도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치 않을 적에 흑암에 빠지게 되어 모든 성경을 자기의 주관에 붙이게 되는 사람이 될 때에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생활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가시덤불에 뿌린 씨와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그 말씀 하나를 따라서 충성을 다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므로 그 성경이 자기 생활에 체험화 될 때에 모든 성경을 바로 깨닫는 영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5. 금일에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일꾼이 있지만 어찌하여 큰 역사는 없이 점점 교회가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는 원인은 무슨 이유입니까?

【답】언제나 큰 역사라는 것은 대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한 두 사람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이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교회가 많아지고 일꾼이 많아진 것은 사도적인 신앙을 가진 종들의 피 흘린 순교의 열매라고 봅니다. 그러나 금일에 순교의 사상을 가지고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소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 신학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신학이라는 것은 순교적인 생활에서 성신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그 생활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학적인 방면으로 흐르는 것이 시작되어 소위 신 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여러 가지 학설이 나왔는데, 이것은 부패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일이 있게 되므로 교회에 다수가 그것을 따라갈 때에 장구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교회의 주권을 그들이 잡게 될 때에 신령한 종들은 그 교권 아래서 활동할 수가 없게 되므로, 교회에 영적 지도가 미약해지고 소위 현실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과학적 문명을 따라가는 일이 있게 되어서, 교회가 과학을 초월한 것보다도 교회가 과학을 따라가는 영적 퇴보가 있게 되므로 현 교계는 영적 발전을 찾아볼 수 없고 유형적인 교회만 확장되었다고 보게 됩니다.

  둘째 : 교회가 강단이 속화될 때에 예배를 하나님이 받을 수 없으므로 형식에 불과한 예배를 계속할 때에 자동적으로 교회는 세속화되는 것이니 사람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지 못하면 속화라는 것은 따라가는 것보다도 속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 가지가 진액을 받지 못하면 마르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마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강단에 선 종을 통하여 위로부터 내려오는 역사가 없을 때에 그 아래에 있는 교인들은 자동적으로 세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교회에 와서 맛보지 못할 때에 필연적인 열매가 세상에 있는 것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를 찾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 교회는 역사할 사명 가진 지도자는 부패되고 그 아래 있는 양떼는 신령한 것을 찾고 있으니 이 교계는 어떤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아무런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 방침이 성서에 어긋난 데로 흐를 때에 하나님은 그 일에 축복을 하지 않고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니 사람의 방침에서 되는 교회는 아닙니다. 사람의 방침으로 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의 방침으로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승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현 교회가 소위 교권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방법을 가지고 남을 이용하려면 그 시간부터 하나님은 역사를 걷어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이용하는 것 뿐이요 사람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대적이라고 봅니다. 현 교계에 너무나 사람의 방침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보다도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속히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종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한데로 뭉쳐지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넷째 : 기독교는 이 시국에 일할 사명이 무엇인 것을 성서에서 바로 알아 멸공 진리 운동을 하는 일이 있으므로 만이 큰 역사가 일어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성경에 큰 목적은 개인 천당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빛이 이방의 빛이 된 다음에 북방으로부터 마귀의 흑암의 세력이 올 것을 말했고 그 흑암이 없어지는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말씀의 빛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동시에 북방으로 오던 흑암의 세력은 말씀의 빛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시대가 동방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난 빛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으니 지금 유물론 공산 사상은 북방으로부터 오는 흑암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멸공 진리의 봉홧불을 높이 드는 새로운 종들이 나오므로 모세 때 보다도 칠 배나 강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문】6. 지금 우리 나라는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막막한 일이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지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과거에는 모든 문제가 정치나 종교나 큰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는 전쟁도 지금같이 사상적인 문제가 결부되지 않았으므로 종교인과에 큰 관계가 되지 않고 또는 아무런 세상의 정치가 기독교인의 생활과에 큰 문제가 되는 점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우상 종교를 숭배하는 왕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지금 같이 기독교를 집어먹는 사상을 가지고 학설적으로 대립하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위 공산주의라는 것은 한 민주 국가의 정당만도 아니요, 일개 국가의 한 정부만도 아니요, 이것은 사상적인 대립이 기독교에 정면 충돌이 되는 사상을 가지고 세계에 과학적인 지상 통치 공산 국가를 이루므로 다시 전쟁이 없는 시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작은 우리 나라가 아시아 대륙에 동방 땅 끝 반도 중에도 남한에 불과 천리 미만에 길이를 가지고 북에는 대륙을 공산 국가가 점령했고, 망망한 바다만이 둘러 싼 위치에서 우리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 나라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에 새로운 역사는 동방 땅 끝 바다 옆에서부터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죽어 천당의 진리로 난국을 돌파할 수 없고 성도의 나라가 지상에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을 할 사명이 우리 나라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이렇게도 어려운 난제가 많게 된 것은 이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역사가 일어 날 때가 온 것입니다. 모든 선지가 동방 땅 끝의 사람이 극도로 두려워할 일, 겁날 일, 가련한 일, 빈핍으로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이 올 때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올 것을 이사야41장에 말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는 모든 난제가 닥쳐 올 때에 그 난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 될 일도 이와 같이 된다고 한 것이 하나님 말씀에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우리 나라에 정치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만이 세계를 지도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은 이 나라 정치를 방관하지 말고 정치는 하나님의 진리로써 세계를 깨우치는 일에 큰 뜻을 두고 움직이는 일에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은 진리에 따라 오는 것이니 하나님이 보호하는 진리 운동을 해서 새로운 시대로 모든 사람을 인도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이 같이 하므로 세계 모든 민족을 깨우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 각성을 받은 성도들이 각 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자기의 나라같이 사상적으로 알게 될 때에 우리 나라는 세계를 사상으로 지도하는 지도국이 되므로 사상적인 싸움에 승리하는 나라가 되어서 초인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평화 왕국을 이루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정권을 잡는다는 것보다도 정치인들을 멸공 진리가 되는 말씀으로 깨우쳐 줄 책임이 있고 정치인들은 멸공 진리 운동을 적극 후원할 때에 이 나라 정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다음과 같이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 경제 문제가 축복 속에서 해결이 됩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에 유력한 성도들이 동방에서 나타난 진리를 깨닫게 될 때에 사상적으로 동방의 나라를 지지하는 동시에 물질까지 동방의 나라를 위하여 바치는 일이 있게 되므로 모든 문제는 성도의 축복 받은 물질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사60:8~9).

  둘째 : 북진 통일이 됩니다.

  이 역사는 아시아에 해방 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을 잠깐 동안 쳤지만 말씀대로 다시 해방을 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북방을 굴복시키므로 셈의 장막인 아시아는 완전히 공산 정권 아래에서 해방을 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지금 철의 장막 속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공산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전부 우리 나라를 지지하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속았다는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요, 둘째로는 공산 정치만이 제일 옳다는 것이요, 셋째로는 기독교의 진리는 아편이라던 것이 다 허위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공산주의는 자동적으로 아시아에서 굴복을 당하게 됩니다. 단11:44, 계11:3이하와 모든 성경을 보면 북방의 세력이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도망을 간다고 하였고 짓밟힘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공산당이 말하는 평화 통일이 승리한다면 성경은 전부가 거짓말이 될 것이니 어찌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확실한 동시에 예언의 말씀이 조금인들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아시아가 난국을 당한 것은 셈의 장막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증거라고 봅니다.

 

  4. 기독교인은 이때에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확실히 성경에서 알고 천국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지상의 성도의 나라가 오므로 하나님 말씀에 기록한 진리가 다 이루어지는 역사를 순종해서 싸워 나갈 때에 진실한 자로 승리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평화로운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  집  

 

1. 5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이 달은 우리나라의 혁명의 달이요 또는 진리의 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 아래서 새일 수도원이 완전히 창립된 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깃발을 반석 위에 높이 달고 우렁찬 새 노래를 부르면서 새일 수도원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달입니다. 5월 15일은 우리 새일 수도원이 탄생된 날입니다. 언제나 이날을 기억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5월달은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신이 강림할 때에 주님이 구름 타고 승천하고 성신 강림하므로 세계 인류가 새로운 중생의 역사를 받기 시작한 달입니다. 푸른 순이 청청하게 빛을 내는 달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는 5월달에 5?16혁명이야말로 역사적으로 한 페이지를 이룬 날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5월을 맞이할 때에 새일 수도원을 창립하던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겨운 사정도 많이 있고 할렐루야 찬송을 부를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단돈 2천원을 가지고 1964년 9월 24일에 새 일 수도원을 시작하며 8개월간 뼈저린 노동을 한 일은 조금도 잊을 수 없는 노동이라고 봅니다.

  5월 15일에 준공을 하고 하나님께 바친 새일 수도원은 나날이 번창하여 새로이 선 교회가 73처에 달하는 금일에 계속으로 1년 12달 한 번도 쉬는 달이 없이 계속 수도를 진행하는 중 350명의 수도생이 40일 금식 기도를 한 것은 우리 수도원의 앞으로 큰 역사가 일어날 산 제사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단 하루를 금식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수많은 청년 남녀 종들이 와서 찬 바위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면서 40일을 먹지 않고 이 사업을 위하여 기도해 준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줄 일이라고 봅니다. 한 사람이 40일 금식을 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드문 일인데 350명이나 40일씩 금식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 수도원 사명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멸공 진리 운동으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시키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단 일주일 금식도 하기가 어려운 것을 본다면 그때에 된 일은 하나님의 강권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새일 수도원이 1965년 5월 15일에 창립한 것이 한국 교회를 망치는 일이 아니요,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부터 알게 될 것이며 이 민족에게 얼마나 필요한 기관인 것을 이제부터 알게 될 것이며 온 세계가 새일 수도원이 자기네에게 얼마나 필요한 기관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새일 수도원이 자기의 교파에 원수같이 알지만 실지는 원수가 아니고 은인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새일 수도원 같은 기관이 있다는 것은 교회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큰 축복이 되는 기관이라는 것을 금년부터 알게 될 것입니다.  

  새 일이라는 것은 사43:14이하를 보면 북방 세력이 망하고 새로운 시대가 이 땅에 오는 것을 새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북방에 야수적인 침략 정책이 몇 만리의 넓은 대륙을 다 점령하고 삼천리 금수강산 남쪽 천리 길이를 내어놓고 다 먹은 금일에 1964년 9월 24일날 하늘로 벼락불이 내리며 불 속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새일 수도원을 금일부터 시작하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무서워서 그날 짓기로 작정하고 단돈 2천원을 놓고 울던 생각은 어제 같은데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7년이라는 기간에 억울한 일도 너무나 많았지만 내가 받은 축복이라는 것은 기독교 역사상 그 누가 받지 못한 축복을 내가 받았습니다. 나는 그때에 무서워 시작을 하면서도 이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때에 나를 계룡산 마귀에게 홀렸다고 하였지만 이제와 보니 홀린 것이 아니고 영계적으로나 진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혁신적으로 발전을 가져오기 시작한 달이 5월달 인줄 압니다. 나는 새일 수도원을 하지 않았다면 영적 방면으로나 육적 방면으로 이런 축복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매일같이 말씀을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하게 된 것은 여러 사명 동지에게 큰 축복이 되어 열매가 될 것을 믿습니다.

 

 

2. 5월과 우리의 사명

  5월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합심 기도하던 무리들이 성신의 불을 받아 가지고 세계 열방으로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한 달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새로운 나라의 사명을 해야할 일에 대하여 우리 사명자로서 사명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우리는 강하게 단결해서 멸공 진리 운동을 다음과 같이 하기로 합시다. 많은 대중을 이끄는 것보다도 이 나라를 위하여 일할 사명자를 일으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야욕을 떠난 멸공 사상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진리를 무엇인지 성서에 입각하여 이 민족에게 바로 알려주는 일에 전도자는 적극 활동을 하되 정치인과 결합된 활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은혜 시대의 속죄 구령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라고 하였지만 이제 멸공 사상은 분리할 수 없고 결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멸공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을 없애는 역사가 있으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이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완전 역사라는 것은 이 세상을 완전히 성도의 나라로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의 나라라는 것은 이방적인 악의 세력은 없이하고 이스라엘적인 의의 통치로 세상을 다스리는 때를 말합니다.

  공산당은 공산적인 세계 평화 통치를 한다고 미칠 듯이 날뛰고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북방 유물적인 정책의 세력이 반 기독적인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려고 하는 것은 심판기에 새 시대의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시기에 하나님께서 잠깐동안 쭉정이와 알곡을 갈라놓기 위하여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들어서 모든 사람을 시험해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금년부터 새로운 출발을 가지는데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보호의 진리를 선포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역사를 해서 공산당 허위 선전에 속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하고 진리의 빛을 발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나라의 정치인들을 극히 존중히 여기는 동시에 그 정치인으로서 조금도 헛되이 수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적극 기도로 돕고 진리 운동으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을 조금이라도 불평스럽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때 사명자로서 할 일이 아니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는 일을 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치적인 방면에는 선구자가 못되지만 사상, 진리, 영적으로 정치인들에게 각성을 주고 감화를 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사상적인 싸움을 하기 위해서 몸을 바친 자요 우리도 멸공 진리 사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이니 정치인들이 약간의 부족이 있다 하여도 우리는 무시를 하거나 악평을 하는 것이 사명자의 할 일이 아니고 사상적인 노선에서 얼마든지 붙들어 주는 심정으로 나가는 것이 이 시대에 멸공 진리 사상에서 싸우는 참된 진리의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경제 부흥을 위하여 노력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땅을 파는 일은 못한다 하여도 빈곤한 농촌의 농민들에게도 산 소망을 주어서 한 포기 곡식을 가꾸어도 기쁨으로 가꾸게 할 때에 그 효과가 클 것이고 절제 있게 생활하도록 하는 것도 국민의 마음에 올바른 사상이 들어갈 때에 자각적으로 절제 있는 생활을 하게 되므로 적은 것 같으나 경제적인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또는 사명자들이 모든 국민들에게 감화를 줄 적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사상을 가지면 이 나라에 모든 재앙이 물러가고 생산의 확장을 가져오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명자를 일으켜서 외국에까지 보낼 때에 외국의 성도와 긴밀한 연락을 가지게 되므로 이사야 60장과 같이 열방의 성도의 재물이 동방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명자는 지상 축복을 목적한 것이니 만큼 국민 경제의 생활도 큰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복된 나라가 되려면 사명자들이 바로 설 때에 정치인도 농민도 노동자도 다 그 감화를 받아서 새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금일에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는 사람들이 부패해질 때에 인심 악화, 정치 부패, 경제 혼란이 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월달부터 새로이 시작되는 정부에 있어서 사명자들은 큰 관심을 가지고 멸공 진리 운동으로써 돕는 일 뿐 아니라 큰 변동을 일으키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5월달의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나라에 새로이 취임을 받은 대통령이나 또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지혜와 총명의 신이 역사해 주시사 난국을 당한 이 시기에 지혜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은총을 나리시옵소서. 우리 나라에 5월달부터는 신의 역사가 대통령이나 모든 정치인들에게 역사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이 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과거에 다리오 왕의 마음을 격동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준공케 하시던 하나님의 역사가 이 나라 정객들에게 임하여 새 시대를 이루는 사명 국가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에 나타나게 하시고 모든 정치인들과 결합되게 하여서 북진 통일의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옵시고 이 나라에 하나님이 나타날 때에 개인에게만 아니라 정부 위에와 민족 위에 나타나서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언제나 위기를 만난 민족 위에 역사하시고 어찌할 수 없는 낙망에 떨어진 주의 백성들에게 역사하시던 하나님 아버지여  5월달부터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를 나리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인간이 볼 때는 약하지만 강국을 이루는 것이고 인간이 볼 때는 비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이 풍족한 나라를 이룬다는 것이 아버지의 말씀일진대는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열방을 깨우치는 일이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까지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되는 일을 보고 각 나라의 성도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게 하옵소서. 아무쪼록 새로 취임되는 대통령과 모든 정치인들에게 강권으로 역사하시고 이제부터 잠자던 종들이 다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이 달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4. 새 나라가 되어 새 출발을 하므로

  새 일의 축복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

  아무리 기도하면서 생각을 해 보아도 금년 우리 나라는 새 나라가 되지 않고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마음만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60년부터 70년까지 우리 나라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애를 많이 쓴 것은 현저히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나 놀라리 만큼 일을 시작했다고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시작을 놀랍게 하고라도 결말을 완전히 맺지 못하면 시작을 아니한 것만도 못한 영향이 있기도 쉽습니다.

  개인이 가정에서 하는 일도 시작을 해놓고 끝을 못 맺으면 그 가정은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적어도 나라는 큰 살림이라고 하는 살림살이를 놀랍게 시작하고 끝을 완전히 맺지 못한다면 한 집만 못살게 되는 살림보다도 전 국민이 못사는 살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놀랍게 시작을 했다면 좀더 놀랍게 끝을 맺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놀랍게 시작하고 끝을 못 맺는 것이 인격이 아니고 작게 시작하고라도 크게 끝을 맺고 약하게 보이는데서 시작이 되어 가지고 강하게 끝을 맺는 것이 완전한 인격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마음은 10년 동안 일을 많이 시작했다면 71년도부터는 완전히 놀랍게 끝을 맺는 단계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염려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그 시기를 바로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영웅이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71년도부터 80년까지의 기간은 과거 10년과는 좀더 다른 시기로 들어가는 때가 왔다고 봅니다. 과거 10년은 가만히 준비했다면 금년부터는 준비한 것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싸워나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평화 시기보다 평화 왕국을 위하여 싸울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제 새 나라가 되는데 대하여 말합니다. 새 것이라는 것은 이전에 없던 것을 말합니다. 나라라는 것은 전 국민이 합해서 유지되는 것이 나라입니다. 그러면 국민의 사상이 즉 나라의 생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사상을 전부 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진리의 사상으로 바꾸어 놓는 진리 운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산당은 벌써부터 2세 국민을 전부 공산 사상으로 기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공산 사상을 없애 버리는 진리 운동을 가지고 국민의 사상을 하나되게 만드는 역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공산당은 벌써 다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진리 운동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보아도 악한 자의 세력이 먼저 강하게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진리 역사는 마지막에 일어나도 반드시 승리했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지금 공산당이 이렇게 일어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니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일어나는 일은 악의 세력을 없애 버리는 하나님께서 홀연히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새 출발이 있어야 합니다. 출발이라는 것은 사상 없는 출발은 바람에 날아가는 것 같다고 봅니다. 사상이 새로워지므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 출발이 있으므로 새 생활이 있을 것입니다.  출발이라는 것은 기계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엄동 설한을 지나서 새순이 나오는 것은 기계가 아니고 새순입니다.

  그러므로 기계는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여도 새순은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민의 사상을 생명 있는 진리로 움직여질 적에 국민들은 전부 순이 나오듯이 새 출발을 할 것이고 필연적인 열매는 그 진리대로 맺어지는 것은 그 사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인생에게 가르치신 하나님의 역사로 될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식물이 맺어주는 열매를 먹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생명을 받으므로만이 새로운 인격을 받아 새로워지는 생활에서 새로운 출발이 있고 또는 축복이 오므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새 일의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바로 믿고 순종하는 자만 남은 자가 되게 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무리를 이 땅에서 없애버리므로 진리를 순종하던 자만이 남아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새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국민은 새 일의 축복을 받기로 택한 민족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사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에서 가련하고 빈핍한 자리에서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을 만난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새로운 시대를 축복으로 받는다고 하였으니 이 역사는 사43:19에 새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국민은 이날까지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것은 새 일의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이 남의 나라보다도 억울함을 많이 당한 것은 백성들의 큰 죄가 있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큰 섭리가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인류 역사의 억울함을 많이 당한 민족은 아시아를 중심 한다면 팔레스틴이요 우리 나라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신이시니 민족적으로 억울함을 당한 이 민족 위에 현저히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깃발을 높이 드는 새 일의 축복이 금년 새로 취임을 받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정치인들에게 새 나라를 이루는 역사가 하나님께로 와서 새 출발의 새로운 인격을 이루어서 새 일의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되기를 간곡히 기도하면서 바라는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5. 5.15 성회에 대한 소식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귀 교회와 귀 가정에 큰 축복이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지혜, 총명, 능력, 권세의 역사로 임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71년  5.15 성회는 어느 때보다도 이 나라가 새로운 축복을 받는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한 목적과 곳곳마다 시련 속에서 싸우던 사명자들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순의 종된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특별 성회가 10일 저녁부터 시작되어 16일까지 열리게 되었사오니 주일을 부득불 성산에서 축복을 받도록 생각하시고 교역자님들은 본 교회에서 미리 결정을 지어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또는 월간지 아름다운 소식 출판비를 위하여 책 대를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모아서 가지고 오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장  소 :  새 일 수 도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