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7월호)

설  교  편

 1.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눅3:15~17) 

 2.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미5:7~9)

 3. 아름답게 하는 역사 (사4:2~6) 

 4.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다른 천사 (계7:2, 8:3, 10:1~2, 14:6~11)

 5. 교훈을 바로 아는 자가 되자 (요7:14~18) 

 6.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엡3:14~21) 

 7. 주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마음 (약5:7~11) 

 8. 넉넉히 이기게 하는 사랑 (롬8:31~39)

 9. 희생과 열매 (요12:24~36) 

10.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롬7:15~23, 8:12~17)

11.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 (창18:32~19:29) 

12. 진노의 날에 남을 자의 생활 (합3:1~2, 12~19) 

13.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 (슥9:9~17) 

14. 환란을 두려워 아니할 인격 (시49:1~8) 

 

장년 공과편 - 부활하신 예수님의 활동

제1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일 (요20:11~18)

제2과  길을 가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심 (눅24:13~31) 

제3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전파할 것을 알려 주심 (눅24:36~49) 

제4과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하심 (요21:15~23)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22과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 (요17:1~5)

제23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예수님 (요17:21~23) 

제24과  왕이 되신 예수님 (요18:33~38) 

제25과  승리하신 예수님 (요19:25~30) 

 

논 설 편

1.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

2.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열매가 없는 일

3.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 

4. 흑암과 광명에 대하여 

5. 유물론 사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6. 경제 혼란과 인심 동태 

 

신 앙 문 답

1. 기도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기도의 큰 힘을 얻게 될는지 이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기도의 힘을 얻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 앞으로 올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특별한 방침이 있는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3. 영계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큰 사명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누가 큰 사명자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4. 오늘날 무엇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보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나 얻어 보려고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명자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5. 인심이 나날이 변천되는 이때에 어떻게 하여야 신령한 교회를 이 땅에서 보존해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6.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닥쳐오는 이때에 우리 사명자로서 급선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7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

2.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를 발행 한지 일주년을 맞이하면서

3. 말씀을 날마다 받아 기록하는 종의 감상 

4. 21주년 6.25를 맞이하는 아침에 올리는 사명자의 기도 

5. 7월부터 우리 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만 될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광  고 

 

 

 

 

 

 

 

 설 교 편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 눅 3:15~17 -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무리들의 크게 가졌던 기대가 어긋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나고 자기들 나라가 영광스러운 나라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 무리들을 책망하고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영광스럽게 와서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는 어떠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거 했다.

 

  1.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증거함 (15~16)

  그리스도의 왕국은 육적 이스라엘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으므로만 그리스도의 왕국에 가입할 인격이 있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네가 메시야를 영접할 자격이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하므로 책망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신앙 사상을 버리고 이기적인 교권 야욕을 가지고 세례 요한을 책잡고자 할 때에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이를 증거했던 것이다.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는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기에는 너무나 인간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이었다. 유대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애굽의 피난을 거쳐 나사렛 동네에서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정한 때가 왔으므로 세례 요한이 그를 증거하기 위하여 나타났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 나사렛 목수인 예수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할 때에 교만한 바리새 교인과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을 반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알았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오늘날 그리스도가 베푼 성령과 불 세례를 우리가 받게 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는 참된 증거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선지를 통하여 욜2:28에 만민에게 성신을 부어줄 것을 말씀했지만 다시 예언자인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했던 것이다. 이 증거를 믿고 따라가는 제자들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어주는 역사를 받았다. 세계 만방이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는 동시에 역사가 나리는 일이 사도를 통하여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역사를 체험치 못한 자들이라면 세례 요한의 사명과 계통적인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우리 종된 자의 자격은 말씀만 받는 것이 아니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받아야 한다. 만일 현재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역사는 완전 역사라고 볼 수 없다.

 

  2.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신다고 증거함 (17상반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씨를 뿌려 싹이 나게 하고 가꾸는 것과 같은 역사를 하시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아직은 완전한 교회를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과정으로 장성하는 발전 단계에 있다. 그러면 완전한 교회라는 것은 어떤 교회냐 하면 조금도 부정이 없는 청결한 교회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된다.

  기독교의 역사는 교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알곡만 모을 수 있는 청결한 교회가 나타나고 쭉정이만 모이는 바벨적인 교회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타작 마당을 정케한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깨끗한 동산인 촛대교회를 뜻한 것이다. 촛대교회라는 것은 손에 키를 들고 쭉정이와 가라지를 날려 버리듯이 주님께서 강한 역사를 행하시어 쭉정이와 가라지를 몰려 나가도록 해서 알곡만 남은 교회를 말한다. 이 강한 역사라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 완전 소멸되고 완전 청결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기독교가 추수기를 만난 이때에 타작 마당에 남아 있게 되는 완전한 역사를 받아서 그날에 설 수 있는 무장이 되려면 정케된 교회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 지금이 타작 마당을 정케하는 키로 들고 까부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키를 든 주님 앞에 남은 종이요 남은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 말씀 하나를 완전히 믿고 단결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역사는 지금 택한 자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하여 키로 까불어 보는 것은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사30:28를 보면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분다고 하였다. 이때는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을 하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라고 하였다(31~32). 지금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서 교회를 까불어 볼 때가 왔다고 본다.

 

  3.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임 (17하반절)

  하나님께서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 쓰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촛대교회를 세울 모략적인 방법이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때는 모략적인 역사가 없었지만 알곡을 모아들이는 역사에는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 같이하는 것이다. 멸망의 자식을 들어서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요 북방 세력을 들어 쓰고 북방을 없이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알곡을 모아들이는 역사로써 지상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암9:9).

 

  결    론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세 가지 법을 들어서 증거한 것은 모든 선지 예언의 전체를 대지적으로 증거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말세의 변화성도는 세례 요한의 사명을 다시 계대 하는 자들이다. 세례 요한이 선지서를 들어 다시 예언의 말을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선지서 전체의 말씀을 예언하게 된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 미 5:7~9 -

 

  완전 승리의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문에 가르쳤다. 앞으로 짐승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려면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영계에 들어가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며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는 자가 될 것이다.

 

  1.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역사를 계속해서 받는 자 (7)

  아무리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이슬같이 단비같이 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남은 자가 될 수가 없다.  어느 때보다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때에는 여호와께서도 강하게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지금은 분명히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본문을 보면 심판기에 북방 세력이 교회를 짓밟고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남은 자가 될 종들에게 역사를 강하게 나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람도 40년간 기도 생활에 여러 가지 체험이 있지만 금년 71년도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호소 성가를 보내시사 이 성가를 부를 때에 이슬같이 단비같이 쏟아져 내리는 역사를 점점 강하게 받고 있다. 만일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이 위기를 만난 종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역사를 받을 적에 자기도 모르게 인격이 점점 강해지는 증거를 보게 된다. 지금 내리는 역사는 은사가 아니고 권세 새 힘의 역사이다.

 

  2. 사자같이 강하게 되므로 (8)

  우리가 인생을 기다린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인격을 가지지 못한 증거이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게 되는 것은 초인간적인 인격이 이루어질 적에 조금도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세계에서 유물적인 짐승의 사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만일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검은 연기같이 덮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받지 못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짐승의 세력 앞에 짓밟히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물론 공산당을  완전히 이길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강하게 나리는 역사를 받아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기 전에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요 산 체험인 동시에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심판기에 북방을 없이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은 조금도 폐할 수 없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방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도 말씀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말세의 남은 자가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북방의 세력을 없이하게 된다는 것도 분명히 응하게 될 것은 사실이다.

 

  3.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9)

  완전 승리라는 것은 인생을 기다리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슬같이 단비같이 받은 종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기독교는 이날까지 피흘리는 박해의 종교라고 말하리만큼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최후의 승리는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역사가 임하므로써 이루게 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계속적으로 받고 있는 자가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편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북방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진멸 시킬 때가 온 증거이다. 과거 예언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원수를 강하게 들어 쓰신 후에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 준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역사이다. 우리가 원수와 타협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요 원수를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니 만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로서 반드시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힘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었고 성경대로 기독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미5:2~4) 성경대로 북방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성경대로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은 미가 5장을 읽어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름답게 하는 역사

- 사 4:2~6 -

 

  조물주 하나님은 아름답게 하는 역사가 아니고는 역사하지 않는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아름다운 것을 이루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거룩한 신의 영광이 창조 전에도 있었지만 그 영광은 아름답게 하는 역사가 있으므로써만 아름다운 영광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름답게 창조한 것으로써 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더 아름답게 하고자 할 때에 사람을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통과시켜서 더욱 아름답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3장과 같이 극도로 부패되고 악화된 시대를 통과해서 아름답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한 것이다. 인생이 타락했지만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강권적으로 아름답게 해주실 것을 말씀한 것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면 아름답게 하는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대로 말한다.

 

  1. 사람을 아름답게 하심 (2상반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름답게 하시므로써 아름다운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남은 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3)

  아무리 시온이 부패했다 하여도 남은 자가 되게 하실 때에는 더욱 거룩한 자가 되게 하여 거룩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인생 자체는 도저히 거룩하게 될 수 없는 타락한 본질이 있고 악한 세상에 물들었지만 택한 자를 거룩하게 하실 때에는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그 피까지 정결케 하는 역사를 하신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그 영을 중생 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지만 심판기가 올 때에는 당신의 자녀를 그 몸의 피까지 정결케 하셔서 완전 개조를 시키되 죄의 몸을 거룩한 몸이 되도록 소멸의 영과 심판의 영으로 완전히 사로잡아 그 몸의 죄의 본질인 피까지도 정결케 하시는 역사를 말한다. 이것은 받은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의 은혜도 받은 자 밖에는 모르는 것과 같이 몸의 완전 개조를 받는 것도 받은 자 밖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 이 역사는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단체적으로 구원을 받는 역사이므로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로 밤에는 화염 빛을 비추어 준다고 한 것을 보면 단체적인 보호와 구원을 뜻한 것이다(5).  

  앞으로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려면 아무리 환란 재앙이 와도 그 교회는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역사하는데 있어서 그 교회 전체가 완전 개조를 받게 되는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에 중생의 역사가 나릴 적에 3천명이 일시에 중생을 받듯이 기독교 종말의 촛대교회는 하루 사이에 전부 개조를 받는 일이 있을 것이다. 슥3:9를 보면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촛대교회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역사를 나리지 않는다면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전혀 없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강권으로 집회 위에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을 나리시는 것이다.

  첫째아담은 그 몸이 흙에서 지음을 받았고 생령으로 생기를 받았지만 거룩한 영의 역사를 받지 못했으므로 아름다운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그 몸에 부어 주므로 그 몸이 능히 아름다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민족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였거든 하물며 인류 종말에 예수의 거룩한 피를 믿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단체적인 보호가 밤낮으로 같이 할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새 시대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 교회에 역사가 나리는데 따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신의 은사가 나릴 적에도 그 교회 위에 나린 것이요 말세의 완전 개조, 성결 변화의 역사를 나리는 것도 그 교회 위에 나리게 될 것이다.

  셋째 : 특별 보호가 같이 하므로(6)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역사를 나려서 이루어진 단체를 아껴 보호하므로 아무런 피해가 없게 해 주시는 것이다.  여기에 천막을 덮는다는 것은 계7:15과 같이 그 교회를 보호하는 것을 가르쳐서 장막을 쳤다고 한 것이다(사33:20). 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거룩해지므로 거룩한 성회가 되고 거룩한 성회를 이루므로 특별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2. 땅의 소산을 아름답게 하심 (2하반절)

  이 땅의 소산은 사람을 위하여 축복으로 준 것이니 사람이 아름다워지면 땅의 소산도 아름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첫째 : 땅이 아름다워짐(사35:1~2).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저주받았던 땅은 아름다운 성남 성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질 적에 땅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둘째 : 도성이 아름다워짐(사54:11~12)

  아무리 지금 과학적 기술이 발달되었다 하여도 새 시대의 도성과 같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모든 광물까지도 극도로 축복을 받아 아름다운 도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도성은 성도가 주둔하는 도성이 된다. 새 시대의 소산이라는 것은 식물이나 광물이나 동물이나 다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결    론

  아름다운 새 시대를 목적으로 가르친 말씀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일은 슬픈 일이요 그 몸이 완전 개조를 받아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는 것이 아름다운 역사라는 것이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다른 천사

- 계 7:2, 8:3, 10:1~2, 14:6~11 -

 

  인류 종말의 역사는 무엇이냐는 것을 계시록에 다른 천사로 나타낸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인류 종말의 역사를 보여줄 적에 일반적인 천사는 일반적인 세상의 될 일을 보여 주었고 다른 천사는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계시록에 천사를 보내어 계시를 보인 것은 재앙이 오는 순서를 보여줄 적에 환란이 오는 순서를 일곱 나팔로, 심판이 오는 순서를 일곱 대접으로 보여 주었다. 인류 종말의 환란과 재앙과 심판이 올 때에 세상 나라의 강한 세력을 네 천사로 보여주되 땅과 바다를 해친다고 한 것은 인간 세력의 역사적인 전쟁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로 끝을 맺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계시록에 나타난 다른 천사에 대하여 나타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오는 일 (7:2)

  이것은 은혜시대의 역사가 아니고 진노의 날에 역사를 하나님의 인이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시대는 죽은 영들이 예수의 보혈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은혜로 성신을 받게 되므로 민족적 국경에 차별이 없는 은혜시대를 이루어 많은 심령들이 구원을 받은 거요,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별 시켜 남은 자가 되게 하고 악의 세력을 몽땅 없이 하는 종말의 역사를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주권을 뜻한 것이니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의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 주권은 동방에 있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2. 기도의 향을 올리는 일 (8:3)

  이것은 기독교 종말에 기도 특권을 가르친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특권이니 진노의 날에 제사장의 주권은 동방에 있다는 것을 뜻해서 다른 천사가 기도의 향을 올리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시대의 법을 따라 상달되는 것이니 은혜시대에는 십자가 도를 전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기도할 때에 상달되는 것이요, 진노의 날에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을 시험해 볼 때이니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의 기도가 완전히 원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천사의 역사라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시대의 역사가 아니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특별 보호가 있으므로 대 승리를 이루고 이 땅을 정복하는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원한은 죽어 천당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지상 통치 왕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3. 작은 책을 들고 사자같이 부르짖는 일 (10:1~2)

  기독교가 이제 큰 승리를 보게 되는 것은 4복음이나 편지서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책인 계시록으로 대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앞으로 계시록을 들고 크게 부르짖되 사자같이 부르짖는 역사는 해 돋는 동방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다른 천사의 역사다.

  이날까지는 십자가에서 어린양으로 죽으신 예수님과 같이 주의 종들이 원수에게 쓰러지면서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으로 순교를 했지만 작은 책을 들고 사자같이 부르짖을 때는 대적을 쳐 물리치는 권세 역사가 된다.

 

  4. 바벨론이 멸망 받는 일 (14:6~11)

  기독교는 이날까지는 바벨적인 세력에게 억압을 받고 희생을 당했지만 동방에서 나온 다른 천사의 역사는 세계 통일의 완전 승리의 역사가 되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다른 천사의 역사는 기독교 종말의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는 오메가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결    론

  가장 크고도 강한 역사는 다른 천사에게 보여준 역사인데 이 역사는 변화성도를 들어 쓸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이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한 왕국이 이루어진다.

 

 

교훈을 바로 아는 자가 되자

- 요 7:14~18 -

 

  사람의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교훈을 받을 때에 그 교훈이 어떠한 교훈인지를 바로 아는 자가 된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교훈을 할 때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바리새교인과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그 교훈을 듣고도 바로 알지를 못하고 그리스도를 이단시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교훈을 바로 알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 하나님께로 온 교훈이 무엇인지 알라고 말씀하심 (14~16)

  인간들은 사람이 배운 지식이 많은 자라야 그 교훈을 바로 아는 줄 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글을 배워 본 일이 없는데 무식한 사람으로 어떻게 교훈을 하느냐고 하면서 의심하는 무리들에게 내 교훈은 하나님께로 온 교훈이라고 말씀했다. 만일 인생이 머리 속으로 아는 지식으로서만 교훈 한다는 것은 오히려 흑암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소위 박사라고 하는 자들이 교회를 망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 온 교훈을 자기 지식으로 해석을 하고 가르친다는 것이 교회의 쑥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완전한 교훈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작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오는 교훈이 완전한 것인 줄 아는 자라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알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간 지식을 배워서 거기에 국한된 교훈을 한다면 세계 인류를 구원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도 배운 일이 없는데 인간이 할 수 없는 교훈을 하시는 그리스도이시므로 참으로 우리가 믿을 만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자라야 바로 알게 됨 (17)

  세상 교훈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알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로 온 교훈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야 바로 알게 될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교훈을 바로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없이 자기의 안락을 위한 삯꾼이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고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불타는 자라야 시대적인 교훈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목회자라 하여도 그 삯을 따르는 삯꾼이 된다면 교훈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자신이 망할 뿐 아니라 양떼를 죽이는 비참한 일이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라야 참된 교훈을 하게 됨 (18)

  죄 중에 저주받을 큰 죄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는 일이요, 의중에 축복 받을 의는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는 일이다. 이날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명예를 날리는 일을 교훈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으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지도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자기의 욕망을 위하여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지만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빈곤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노방전도, 병자 방문, 죄인들을 환영하며 겟세마네 동산의 피땀의 기도를 드리고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것 전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의 걸음을 걸어 간 것 뿐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전부가 땅의 것을 중심 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가지 비유로, 여러 가지 이적, 기사로 또는 여러 가지 변론을 하실 때에 조금도 타협이 없는 십자가의 길에서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으로 증거한 말씀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의 증거대로 세계 인류가 다 구원을 받게 된 현실에 이르러 우리는 여러 가지 혼선이 많은 교계에서 종말의 교훈을 바로 알아야만 될 때가 왔다.

 

  결    론

  교훈은 완전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금수와 같은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바로 알 때에 하나님같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교훈을 바로 알지를 못할 때에 금수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훈을 바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큰 일이다.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 엡 3:14~21 -

 

  인생이라는 것은 사랑이 없이 살 수 없는 것이니 그 사랑을 바로 가질 적에 바로 살 수 있고 사랑을 바로 가지지 못할 때에 탈선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 있어야만 그 사랑을 통하여 완전 인격, 완전 생활, 완전 열매를 이루어 완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지식이 넘치는 사랑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1. 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게 되는 역사이다 (16~17)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깊이 뿌리를 박게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거짓된 사랑이라는 것은 잠깐 동안에는 도움을 주는 것 같으나 머지 않아 도움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는 날이 갈수록 뿌리를 깊이 박게 된다. 왜냐하면 점점 그 사랑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보이지 않는 깊은 땅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를 흡수하기 위하여 뿌리를 박는 일을 소리 없이 하므로 진액을 풍성히 받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큰 나무가 되는 예와 같다.

  기독교 신앙 생활의 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은 체험을 가지게 될 때에 아무런 난관이 와도 그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점점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규칙이나 도덕적 행위를 초월하여 하나님만 아는 비밀 속에서 소곤거리는 기도와 묵상하는 속에서 진리가 깊이 깨달아지는 체험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성신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2.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하나같이 깨닫는 역사 (18)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약속이니 부분적인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같이 뭉쳐질 수가 도저히 없고 그 사랑의 약속인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완전한 단체를 이루게 된다. 지식 중에 가장 큰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아는 자리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 없이 역사하지 않고 법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하신 진리의 법칙에 의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인 말씀이 얼마나 큰 비밀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써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고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충만케 되는 역사 (19)

  충만이라는 것은 완전을 뜻한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에는 충만이라는 것이 항상 같이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충만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를 모르는 자리에 있다고 본다. 제일 넓고, 길고, 높고, 깊은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아무리 과학자가 연구하여도 이 사랑의 범위를 알 수가 없고 이것을 아는 것은 직접 하나님과 교통을 받는데서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달걀 속에 있는 병아리가 뚫고 나오기 전에는 밝은 세계를 모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심령 상태가 죄악이라는 자체를 벗어날 때에 얼마든지 광명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눈이 있어도 그 눈을 가리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 눈동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사람의 심령이라는 것은 죄로 가리워 놓으면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심령이 되고 만다.

  인간 자체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충만한 것이 올 때에 우리 인간은 거기에서 열매를 맺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부를 당신의 사랑 속에서 인간에게 주자는 것이 자연을 창조한 목적이니 그 사랑을 바로 아는 자에게 충만이라는 것이 오는 것이다.

 

  4. 능력이 교회 안에서 역사함 (20~21)

  하나님의 사랑은 이론이 아니요 능력이 같이 하는 것이다. 이 능력이라는 것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사명이요, 하나님은 그 교회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 영광이 된다. 능력이라는 것은 사랑을 통하여서 인간에게 오게 되고 사람은 그 사랑 속에서 능력을 힘입어 완전에 도달하게 된다.

 

  결    론

  사랑은 완전 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랑은 완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밖에 없는 것이다.

 

 

주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마음

- 약 5:7~11 -

 

  참된 성도는 누구든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이 불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의 억울한 사정은 재림의 날에 가서야 해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사도들도 재림을 기다렸는데 그 주님이 언제 오실는지 막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성신이 역사할 때에 억울함을 당하는 종들의 마음에 재림의 주를 기다리게 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억울함을 당한 성도들에게 큰 축복이 있기 때문에 성신은 어느 종이나 꼭같이 재림을 갈망하고 일하게 했던 것이다.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증거한다.

 

  1. 마음을 굳게 하여야 된다 (7~8)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자라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지를 않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굳게 하여 나가는 자라야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인정을 받게 된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굳게 하지 못할 때에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실 때에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자라야만 인정하는 것이다.

 

  2.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9)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사람은 마귀가 극도로 발악적인 행동을 하며 대항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는 왕권 받을 사람을 참소하라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주 앞에 설 자격을 가지려면 억울함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이 닥쳐오는 것은 왕권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원망할 일을 당해도 원망치 않을 때에 주님은 순교적인 반열에 들 사람으로 인정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어느 종이나 순교적인 생활을 하는 종들은 원망할 일을 많이 당하게 된 것이다. 일을 많이 하는 종일수록 원망할 일을 많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망치 않을 영계에 들어간 자라야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

 

  3. 끝까지 참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10)

  재림의 날에 복 받을 성도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참는 것이 없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들도 끝까지 참음으로 순교를 한 것이다. 끝까지 참는 자에게 묵시로 주신 책은 하나같이 끝까지 참는 자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끝까지 참는 자를 인정하시는 것이므로 그 시대의 비밀을 끝까지 참던 선지에게 역사하시던 하나님은 끝까지 참는 자에게 다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같이 된 자를 찾는 것이 아니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끝까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당신과 같이 영원히 영광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동시에 우리에게 전한 말씀이다.

 

  4. 주께서 긍휼히 여기심 (11)

  주님의 긍휼은 두 가지로 임한다.

  첫째 : 알지 못하고 마귀 흑암에 빠져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봄으로 독생자를 보내어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셔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는 자에게 그 아들의 대속의 피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중생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요,

  둘째 : 주님의 맡긴 사명을 위하여 어떠한 핍박과 환란이 와도 끝까지 참는 사람을 불쌍히 보시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왕권 반열에 들게 하신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시므로 죄를 사하여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므로 왕권의 영광을 주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죄를 사함 받은 사람은 재림의 주를 고대하는 마음이 불타게 성령으로 역사하는 것은 재림의 날에 긍휼 함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용서하기도 하시고 축복하기도 하시는 것이니, 재림의 날에 복된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굳게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자가 된다면 주님의 긍휼하심이 진노의 날에 임하게 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넉넉히 이기게 하는 사랑

- 롬 8:31~39 -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마귀를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넉넉히 이기도록 해서 이기는 자에게 왕국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이긴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을 넉넉히 이기게 하자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넉넉히 이기게 하는 사랑은 무엇이냐는 것을 성경을 읽어서 알 수 있다.

 

  1.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한 사랑 (31~3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랑이 제일 큰사랑이니 그 사랑 속에서는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모든 것을 줄줄 믿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한 하나님께서 벌써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할 때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은 줄 믿고 구하여야 된다(요일5:15).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신 것을 믿는 것이니 그 밖의 것은 벌써 다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된다.

 

  2. 택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사랑 (33)

  아무리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의를 믿는 자를 의롭게 인정하시는 것이니 의로운 사람의 모든 권한은 구하는 대로 받고 보호를 받을 주권이 있고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신자가 어떠한 사람의 악평이나 훼방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완전히 의롭다 함을 받은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보다도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기뻐하지 않을 일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내 원수에게 인정을 받아 보려고 노력한다면 마음에 노할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데 어떤 인간에게 인정을 받아 보려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사람의 어떤 송사나 훼방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는 사랑 (34)

  세상에 제일 큰사랑은 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피땀을 흘리기까지 간구하셨고, 십자가상에서도 손과 발에 못 박혀 피를 쏟으시면서도 인간의 죄를 위하여 간구하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대로 이루어 줄 수밖에 없는 완전한 기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승리라는 것은 간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무조건 하나님께로 역사가 나리므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요, 그런 일이 닥쳐오더라도 넉넉히 이기게 해 주시므로 그런 일을 당치 않은 자보다 더 큰 왕권의 상급을 받게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시다.

 

  4. 택한 자를 버리지 않는 사랑 (35~39)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절대 잃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니 피조물 된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자를 절대로 해칠 수가 없다. 만일 조물주께서 택한 자를 피조물된 자에게 빼앗긴다면 피조물이 조물주보다 강한 것이니 이러한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물주 하나님은 완전한 창조주요, 피조물은 불완전한 것이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사랑에서 어떤 피조물이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가 모든 피조물을 이긴다는 것은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결    론

  하나님은 택한 자를 들어 쓰시되 무엇이나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소불능의 나래 밑에서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 곧 사랑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승리가 있으므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 세세에 있게 되는 것이다.

 

 

희생과 열매

- 요 12:24~36 -

  

  열매라는 것은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식물이 열매를 맺는 것도 땅에서 희생적인 것이 있으므로 열매가 되고 몸이 움직이는 것은 열매가 희생하므로 움직이는 것이요, 영적 활동이 있는 것도 희생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희생과 열매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식물의 희생과 열매 (24)

  밀 한 알이 희생할 때에 많은 열매가 나타난다. 언제나 희생이 있음으로 식물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인데 이 열매는 사람을 돕는 열매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식물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허락을 한 것이다(창1:26~29). 모든 식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쉬지 않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식물이다. 그러므로 사람 하나를 위해서는 모든 만물이 다 희생을 당하도록 하신 것이 창조의 원리이다.

 

  2. 사람의 희생과 열매 (25~26)

  사람이 식물의 희생적인 열매를 먹고도 자기가 할 의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의무라는 것은 진리를 위하여 희생적인 생활이 있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이다. 조물주께서 모든 식물을 사람에게 주고 사람은 진리를 위하여 희생적으로 나가는 자라면 반드시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을 보호하며 그 사람을 위하여 싸워 주는 역사를 하실 뿐만 아니라 큰 축복을 주신다. 축복이라는 것은 세세 왕권의 축복이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무런 희생적인 생활이 없이 식물의 열매만 먹고살라고 내었다면 사람은 한 동물에 불과할 것이로되 사람에게는 진리의 법을 주고 그 법을 지키기 위하여 희생적으로 나가야만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에게 권세를 주어서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승리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진리 대적이 강하다 하여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므로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을 섬기는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세상에 보낸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니 그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자라야 그 왕권의 영광을 같이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법을 세우지 않고는 진실한 사람을 찾아서 존귀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진실한 사람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 희생이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게 원수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3. 예수님의 희생과 열매 (27~36)

  희생이라는 것은 자기 원대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순종하는 것을 희생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할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하시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이 있으므로써만 영광스럽게 되는 일이 있는데 첫째로 마귀를 이기게 되고, 둘째로 모든 사람을 인도하게 되고, 셋째로 모든 사람을 빛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열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사53:10)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아들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고 원하시므로 하시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희생을 당함으로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째아담을 통하여 모든 것이 완전하게 되었다면 성부, 성자, 성신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독생자가 희생하므로 성부, 성자, 성신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둘째 : 영광스러운 일이다 (요12:28~29)

  세상에 많은 사람이 영광을 누려 보려고 전쟁도 했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예수님같이 영광스럽게 된 자는 없는 것이다. 인간 생활에는 고생 중에 고생이요, 낮아진 중에도 비천해진 일이고, 실패 중에도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영광 중에 영광이 된 것이다.

  한 사람이 죽으므로 세계가 살고 한 사람이 죽으므로 하늘에서 기뻐하고 땅에서도 기뻐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신성으로만 계셨다면 무슨 영광이 되며 세상에 와서 한 자선가나, 정치가가 되고 말았다면 그것이 무슨 영광이 될 것인가! 그러나 만국 만민의 죄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 세세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셋째 : 완전 승리의 심판을 이룬 일이다 (요12:31)

  심판이라는 것은 마귀를 이기는 것이니 십자가의 승리가 없었다면 마귀를 이기는 일이 못되고 천지를 창조한 것은 마귀를 기쁘게 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를 공경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승리가 있으므로 인간들은 마귀 권세에서 해방이 되고 완전한 왕국이 이루어지므로 마귀 세력을 완전히 이 땅에서 없애기 때문이다.

 

  결    론

  희생과 열매라는 것은 대자연을 창조한 하나님의 법의 요지가 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희생이 있음으로써만 열매를 맺게 한 것이 창조의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 롬 7:15~23, 8:12~17 -

 

  인생이라는 것은 모양은 하나이지만 두 가지 사람이 있다. 육의 사람이 있고 영의 사람이 있는 것이다. 신앙 자로서 육에 속한 인격을 가질 때와 영에 속한 인격을 가질 때의 차이점은 사도 바울의 간증적인 글을 보아서 알 수 있다.

 

  1. 육의 사람 (7:15~23)

  첫째 : 죄에 끌리는 사람이다 (15~17)

  사람이라는 것은 죄에 끌리면 육에 속한 사람이요, 영에 끌리면 영에 속한 사람이다. 아무리 신자라도 중심에는 죄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죄에 끌리면 아직까지 그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죄가 그 몸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몸에 죄의 역사가 있는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육에 끌려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 중심에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18~20)

  마음에는 원해도 그 원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심령이 자라지 못하고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는 연약한 심령이 된 증거이다. 그 영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는 육에 있는 죄를 이길 수가 없는 것이 육에 속한 사람이다.

  셋째 : 두 가지 법을 섬기게 되는 자이다 (21~23)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도 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에 끌려서 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일도 있을 때가 있다.

  육의 사람이라는 것은 도저히 진리대로 실천할 수가 없는 인격이다(8:7).

 

  2. 영의 사람 (8:12~17)

  첫째 :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인 자이다 (12~13)

  신앙 생활은 성신의 역사로 몸의 행실이 죽어지는 일이 있기 전에는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몸에 병이 있는 아이가 그 몸이 자랄 수 없는 것같이 심령에 죄가 남아 있는 자는 그 영이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이 다 죽게 될 때에 그 영은 자유롭게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므로 나날이 영적 발전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영이 그 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 성령의 인도가 같이 하는 자이다 (14~15)

  성신의 인도라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에게 있을 수 없고 육의 행실이 완전히 죽게 될 때에 성령의 인도 하에서 움직이는 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은 역사할 때에 먼저 그 몸의 마귀세력을 없이 하고자 하는 것이 성신의 원하는 것이니 모든 육체의 행실을 죽이고자 노력할 때에 성신은 강하게 역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마귀와 절대 타협할 수가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하고 숨기는 생활을 할 때에는 성신은 그 사람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신의 인도라는 것은 거룩한 생활로 인도하는 것이다.

  셋째 :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고 고난을 이기고 나가는 사람이다 (16~17)

  육에 속한 사람은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극복할 자격이 없고 영의 사람이 죄악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될 때에 육의 안락을 요구치 않고 영원한 영광을 목적으로 하고 기뻐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요,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결    론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육에 속한 사람이 되었고 둘째아담 그리스도가 승리하므로 성신의 역사가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로 올 때에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움직이는 생활을 말한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되므로 승리의 열매가 있게 되고 승리의 열매가 있으므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

- 창 18:32~19:29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보여준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때 망할 세상의 될 일을 예표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이 재림할 때에 남은 자가 되려면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한 것이다.

  이제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는 비극이다 (18:32~19:5)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멸할 때에 의인이 열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고 소돔성에 천사가 입성했던 것이다. 그때에 롯의 가정에 두 천사가 들어갔을 때에 소돔 백성이 무론 대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발악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멸망 받을 징조가 되었던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해치려는 악당들이 충만한 도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와 같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의로운 사람을 미워하고 해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멸망이 올 증거이다. 예루살렘이 황폐될 때에도 의로운 사람인 예레미야 선지를 공연히 미워하다가 망하였고 주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사도를 미워하다가 황폐화 되었다. 오늘날에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옳은 사람을 미워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멸망이 가까운 증거이다. 주님께서 재림시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은 그만큼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려운 때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2. 악당들이 눈이 어두워진 일이다 (6~11)

  하나님께서 악당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은 그들이 공연히 롯의 집을 해치려고 할 때에 저주했던 것이다. 지금도 공연히 의로운 사람을 해치려는 사람은 눈이 어둡게 될 것이다.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의인을 대적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스가랴 12장을 보면 심판기에 만국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을 치러 모이게 하고 그들로 눈이 멀게 한다고 한 것과 같이 소돔 고모라의 백성도 그와 같이 된 것이다.

  제일 악한 일은 의인을 대적하는 일이다.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서도 죄를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도 짐짓 대중이 일어나서 의인을 해치려는 것은 멸망을 받을 증거이다.

 

  3. 하나님 말씀을 농담 같이 아는 일이다 (12~14)

  언제나 망할 인간들은 농담을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까지라도 오락화시켜 수수께끼 같은 말로 생각을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다림줄의 진리를 두렵게 알지 않고 농담 같이 여기고 비소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두렵게 알지 않고 등한히 안다는 것은 멸망을 받을 증거이다.

 

  4. 의인을 떠나게 한 일이다 (15~22)

  가장 큰 비극은 의인을 악인과 갈라 세울 때이다. 지금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한 곳에 두고 악한 자의 세력을 용납할 때이니 악인들이 자기가 잘난 것 같이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을 보아서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쭉정과 알곡을 한데 두고 있지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있지 못하게 할 때에 인간의 비극은 소돔과 같이 되는 것이다. 교회도 의로운 사람이 있으므로 그 교회가 유지되지만 의로운 사람을 그 교회에서 떠나게 할 때에는 그 교회에 하나님도 떠나는 것이다. 오늘날 와서 망할 교회는 옳은 종을 쫓아내는 일도 있지만 이것은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들의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떠나는 도성은 소돔 고모라 같이 되는 것이다.

 

  5. 하루아침에 멸망 (23~29)

  소돔 고모라가 의인이 떠날 때에 하루아침에 멸망을 당한 것 같이 말세에도 계시록 18장과 같이 망하는 바벨론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한 것은 그 바벨론을 버린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소돔 고모라 같이 불탈 때가 가까운 증거이다. 롯의 처가 소돔 고모라를 돌아보다가 망한 것 같이 심판날에 망할 도성을 사랑한다면 동참죄가 되므로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심판기에 의인은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떠나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결    론

오늘날 가장 복된 나라는 물질이 많은 나라가 아니요, 의인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 나라는 비록 가난한 나라이지만 이 나라에 성도가 많으므로 앞으로 큰 축복이 올 것을 믿는 바이다.

 

 

진노의 날에 남을 자의 생활

- 합 3:1~2, 12~19 -

 

  가장 복 있는 자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이다. 하박국의 묵시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에 대하여 나타난 묵시이다. 이 진노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을 들어서 세계를 어지럽히게 할 때에 심판의 위령이 북방의 침략자에게 있게 하여 남은 자로서 승리케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이 묵시를 보여준 것이다. 1장은 북방 세력이 일어나는 일을 보여 주었고 2장은 북방 세력이 망할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진노의 날에 남을 자의 생활이 어떤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주의 일을 부흥케 하기 위하여 생활을 할 것 (1~2)

  누구든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각성을 받고 일어나서 주의 일을 부흥케 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하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긍휼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오는 것은 부패한 지도자를 없이하려는 목적이니 누구든지 자기의 사적인 생활을 버리고 주의 일만 부흥케 하기 위하여 전 생활을 바치는 자라야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세 가지가 철저해야만 될 것이다.  

  첫째는 시기가 임박한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수년 내에 부흥케 합소서 라고 한 것은 철저한 깨달음이 있는 종에 대하여 가르친 말이다. 여러 가지 징조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북방의 세력이 세계를 침투해 나오는 때에 조금도 사적인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일만 부흥케 한다는 철저한 각오가 있어야만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수 있다. 은혜시대의 종들도 순교를 한 종들은 조금도 자기 사적인 생활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사명 하나를 위하여 전력을 기울여서 순교를 하기까지 싸웠던 것이다. 하물며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자들이 조금이라도 자기 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없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둘째는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마음이 불타야 된다. “주여, 나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하는 마음에서 모든 일을 진행하여야만 된다. 사람이 아무리 인정한다 하여도 주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종은 무엇이나 주님을 위주로 해서 억울함을 참고 나가야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한 것은 그만큼 주님을 갈망하는 뜻을 표시한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마음은 주님과 멀어지는 증거이며 세상의 것을 괴로워하지 않는 증거이다. 주 재림 시기에 되어지는 모든 일은 1장과 같이 성도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만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재림할 때에는 죽고 싶으나 죽음이 피하리만큼 시련이 올 것을 계9:4이하에도 가르쳤다. 괴롭다 할 것을 괴로워하지 않는 것도 그 양심이 죽은 것이다. 오늘날 모든 일은 하박국 1장과 같이 되는 시대이니 주여 나타내시옵소서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이때인 것이다.

 

  2. 기름 준비가 있는 생활 (12~13)

  아무리 진노의 날이 와도 주께서는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이다. 항상 임박한 시기를 만날 때에 각성을 해서 주의 일만 부흥케 하려는 자에게는 기름 같은 성신의 역사가 충만해지므로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되는 것이다.

 

  3.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생활 (17~18)

  아무리 세상에 육적으로 낙심할 일이 온다 하여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는 증거이니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는 생활이 풍부하다 하여도 중심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일이 없다면 망할 것이지만 그와 반대로 아무리 궁핍한 환란에서 딱한 사정을 만났다 하여도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라면 남은 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마음이 변치 않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4. 사슴 같이 뛰는 생활이다 (19)

  아무리 앞길이 막막한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고 사슴같이 뛰는 자라면 모든 일이 다 형통케 되므로 성산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자기 힘을 의지하는 자는 쓰러지지만 하나님의 힘을 받은 자만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로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자이니 우리 사명자는 이 시기가 하박국의 묵시에 의하여 어떠한 때이며 어떻게 생활을 하여 나가야만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

- 슥 9:9~17 -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는 종이다. 하나님이 화평하라고 할 때에 화평하고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이다. 화평하라고 할 때에 화평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화평을 전할 일과 싸울 일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 화평을 전할 때 (9~12)

  첫째 : 겸손하게 나귀를 타심(9)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나사렛 동네의 목수 생활을 거쳐 불쌍한 양떼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일하는 길을 거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힐 적에 그들은 훼방을 하고 조롱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네가 왕이라면 너를 때리는 우리는 누구냐” 하면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일언반구에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말씀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리는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둘째 :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함(10)

  십자가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데 있어서 아무리 과거에는 이방과 유대가 원수였지만 이방인을 압박하던 유대인들이 사도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방 사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율법시대에는 유대인이 이방 사람은 대하지도 않고 좌담을 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은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베드로가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묵시를 보았다. 이 묵시는 기도 중 하늘로부터 둥근 보자기가 내려 왔는데 보자기 속에 더러운 짐승들이 있었다.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2, 3차 들려왔다. 그때에 문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이방 사람 고넬료가 보낸 하인이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 말고 따라가라는 지시를 하였다.  

  베드로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놓게 되었다. 고넬료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 기도를 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데려다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시니 감사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에 베드로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했으니 이 복음을 들어라”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을 때에 그 말을 듣던 이방인들이 즉시 성신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신을 부어 주니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이로써 이방에 화평을 전한다는 말씀이 오늘날 응한 것이다.

  셋째 : 언약의 피로 구원함(11~12)

  화평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는 다 구원한다는 언약의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화평을 전하여도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언약을 믿지 않는 자는 용서 없이 없앤다는 것이 곧 심판이 되는 것이다.

 

  2. 싸워야 할 때 (13~17)

  첫째 : 진노의 날이다(13~14).

  아무리 화평을 전해도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고 심지어 무신론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이방을 치게 하되 하나님은 남방 회리 바람을 타고 행하시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북방을 때려부수는 일을 뜻했다. 어느 선지나 종말에 기독교의 원수는 북방이라고 했으니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북방을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요, 북방과 타협하는 것을 말하고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를 없애는 일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북방 세력을 치는 일이 진노의 날에 올 일이다.

  둘째 : 원수를 진멸함(15)

  이날까지는 화평을 전하는 때이므로 원수를 사랑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원수를 몽땅 없애는 날이므로 피로 이 땅을 적시는 일이 있게 된다.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세상을 모두 없이할 때에는 피가 흐르되 비참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셋째 : 주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새 땅 축복을 받게 됨(16~17)

  원수를 없이하므로 이 땅은 복된 땅이 되어서 모든 생산의 큰 축복을 받아 즐거움을 누리는 새 시대가 온다.

 

  결    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화평을 전하는 일이며 싸우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자를 어리석게 보았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비방하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는 전멸을 시키고 새 땅의 축복이 오므로써만 성도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환란을 두려워 아니할 인격

- 시 49:1~8 -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환란을 만나지 않는 인격이 아니요, 환란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격이다. 그러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격이 되느냐는 데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증거한다.

 

  1. 입에 지혜를 말하는 자 (3상반절)

  사람의 입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는 환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요 지혜로운 말을 할 때에는 환란이 온다 하여도 그 환란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혜의 요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요,

  둘째 : 악한 자가 감히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말하는 것이요,

  셋째 : 많은 사람이 듣고 깨닫도록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에 지혜로운 말이 있는 자는 어려운 난국을 돌파할 인격이 있는 자이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자기를 죽게 하는 일도 되고 자기를 살리게 하는 일도 될 뿐만 아니라 남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것이다. 지혜를 말하는 자는 남도 살리고 자기도 살게 되는 것이다.

 

  2. 마음에 명철을 묵상하는 자 (3하반절)

  마음이라는 것은 그릇과 같은 것이니 명철을 묵상할 때에 점점 밝아지는 것이요, 오해를 품게 될 때에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항상 마음에 명철을 묵상하는 자는 어떠한 환란이 와도 살 길이 무엇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밝아지면 얼마든지 앞길을 내다 볼 수 있고 어두워지면 내일의 멸망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최고 가치라는 것은 명철을 묵상할 때에 먼지 나는 땅 위에 앉아 있더라도 하늘의 세계와 교통할 수 있고 비록 작은 사람의 마음이라도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충만히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철을 묵상하는 자는 앞길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3. 오묘한 말을 푸는 인격이다 (4)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말을 듣고 그 말이 어떠한 뜻에서 한 말인지를 알게 될 때에 미혹을 받지 않게 되고 모든 일이 그 깊은 뜻을 알게 될 때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귀로 듣고 그 오묘한 말을 바로 풀지 못할 때에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과거 주님을 따라 가던 대중이 주님이 말씀하신 오묘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당시에 이 사람들은 보리떡을 먹고는 따라 갔지만 예수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은 알아  듣지 못하겠다고 하며 물러가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도 수많은 인간들이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를 못할 때에는 환란에 빠져 후회 막심한 공포, 수치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시록에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한 것이다. 누구든지 귀로 듣고 오묘한 말을 바로 푸는 자라면 앞으로 오는 환란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환란은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에게 큰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4.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6~8)

  세상에 제일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인격이 재물을 의지한다는 것은 재물보다 못한 인격이고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인격이 재물을 지배하는 자가 될 때에 그 인격은 남을 구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인격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물질을 초월한 역사를 하게 하신다.

 

  결    론

  환란이 오게 되는 동기는 환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격이 되므로 오는 것이니 완전한 인격을 가질 적에 환란이 온다 하여도 환란은 그 인격에 손상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조건이 되는 것이다.

 

 

 

장년 공과편 - 부활하신 예수님의 활동

 

  총    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활동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증거하시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의 활동은 40일간 세상에 나타나서 부활을 증거할 사명자들에게 완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셔서 이루어진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것을 세계 만방에 증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활동하셨으니 이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일

- 요 20:11~18,  요절:17 -

 

  서    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서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로 가장 간절한 소원을 먼저 풀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예수의 부활을 믿고서 예수를 만나 보려고 간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시체라도 한번 만져 보고 귀한 향품을 발라 드리겠다는 목적에서였다(눅24:1, 막16:1). 그러므로 그에게 먼저 나타난 것이다.

  둘째는 겸손을 보여준 것이다. 아무리 거룩한 몸으로 부활했지만 겸손하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여자에게 나타난 것은 조금도 남녀의 차별이나 귀천의 차별을 두지 않고 역사한다는 증거이다.

  셋째로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씀한 진리에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대지 :“마리아야” 하고 부르심 (11~16)

  여기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택한 자를 먼저 부르셨는데 먼저 부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간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둘째로 “내가 너를 잊을 수 없다”는 뜻이요,

  셋째는 “네가 나를 믿으라” 하는 뜻이다.

  이 때에 주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예수를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낙심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간절한 마음이 있다 하여도 주님이 찾아오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 것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님이 3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했는데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부활하신 주님이 옆에 서서 계시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지금도 주님은 택한 자를 찾아오고 부르시는 일이 있음으로서만 바로 깨달아 믿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심 (17상반절)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신 것은 부활하신 후에 누가 먼저 감히 그 귀한 몸을 만질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만 왕의 왕으로 축복하신 다음에 주님을 만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영체의 몸이니 보좌 앞에 갔다 오는 것이 공간에 제한이 없이 자유로 왕래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했다는 것만 알게 해주고 아버지께 갔다 오는 기간은 여러 날 걸린 것이 아니고 저녁 때 제자들을 찾아가서 손을 내밀어 “나를 만져 보고 의심 말고 믿으라”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그 몸이 하나님께 가서 모든 일을 다 결정하고 내려온 기간은 불과 몇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지만 그 여자에게 나를 만져 보라고 한 말씀은 없었다. 왜냐하면 부활을 증거할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기 때문에 친히 만져 보아야만 될 사람이므로 만져 보고 증거하도록 했지만, 여자는 부활을 증거할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므로 그 몸을 만져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3대지 : 너는 내 형제들에게 전하라 하심 (17하반절~18)

  주님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중생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을 사람인데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받아 다시 살았으니 이는 예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예수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 살았으니 중생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의의 열매이므로 얼마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로 중생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얼마든지 아들의 영인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생명의 일체적인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결    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일곱 마귀가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예수의 부활은 이러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부활이라는 것을 뜻했고(막16:9), 누구든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뜻했으며 여자는 남자들의 사명을 도와주라는 뜻에서 속히 이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여 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제2과  길을 가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심

- 눅 24:13~31,  요절:17 -

 

  서    론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도 노방 전도를 많이 하시었고 부활하신 후에도 길을 걸어가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셨다. 그러면 길을 가는 도중에서 성경을 가르친 데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슬픔 중에 길을 가는 제자를 찾아오심 (13~17)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항상 믿음이 부족한 것 뿐 이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비관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인간의 약점을 아심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알지 못하는 사람을 깨닫도록 해 주는데 있어서 친히 찾아 오셔서 동행을 하시며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겸손하게도 두 제자를 찾아 오셔서 동행하시게 되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므로 마음에 낙심을 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들을 바로 깨닫게 할 책임이 있으므로 찾아 오셔서 깨닫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2대지 :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심 (18~27)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패로 생각한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로 말씀과 하신 일이 능하신 선지자로서 죽었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둘째로 이스라엘에 국한된 구속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뿐 그밖에는 더 믿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여자들의 말을 듣고도 부활을 확신하지 아니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은 깨우치실 때에 “미련하고 선지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었다.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루어진 일도 깨닫게 해 주므로써 만 깨달았던 것이니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스스로 알 자는 전혀 없다. 성경은 이루어진 일이나 이루어질 일이나 다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는 전혀 없다.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성경을 깨달은 것은 이루어진 일을 깨달은 것이다.

 

  3대지 : 떡을 가지사 축사하심 (28~31)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떡을 놓고 축사하시었다. 이것을 본다면 식탁을 대할 때에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 앞에 축복을 받을 적에 눈이 밝아져서 주님인 줄 깨닫게 되었다. 성경 말씀을 들을 적에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축복을 받을 적에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결    론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서만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완전한 믿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완전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친히 제자를 찾아다니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신 것은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책임이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있으므로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가 배운 것이 아니고, 주님이 친히 찾아 오셔서 부활을 믿게 하셨으며 또 성경을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사람을 들어 쓸 적에 진리를 바로 깨닫도록 하는 데까지 목적을 두고 친히 활동하신 것이다.

 

 

제3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전파할 것을 알려 주심

- 눅 24:36~49,  요절:47 -

 

  서    론

  주님께서 사명을 맡긴 다음에는 그 사명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 사람을 대신 세울 때에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세운다면 오히려 세우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당신 앞에 증인을 세울 때에 확실한 것이 없게 세운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완전히 깨닫게 하고 직접 증거를 보여 주시고 세우시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확증을 세웠던 것이다.

 

  1대지 : 부활한 몸에 대하여 확증을 세움 (36~43)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은 주님이 나타났는데도 영으로 생각을 할 때에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며 만져 보라고 하시었다. 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었다. 이렇게까지 하신 것은 대표적인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에서 확증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은 대표적인 사도들이 보고 만진 바를 우리가 보고 만진 것과 같이 믿어야만 속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의심한다면 증거한 사도들을 거짓 선지로 아는 것이니 기독교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증거를 그대로 믿을 때에 주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2대지 :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심 (44~47)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증거를 분명히 알도록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부활이 있다 하여도 성경이 이루어진 것이 확실치 않았으면 만민 앞에 합법적인 증거라고 볼 수 없다. 모든 예언이 확실히 이루어진 일이 있음으로써만 모든 민족에게 전파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을 증거하는 기독교가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이것은 완전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성경을 분명히 알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3대지 :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므로 (48~49)

  아무리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었고 성경을 가르쳐 주었다 하여도 성신의 능력을 나리는 역사가 없다면 모든 족속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운동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증인이 될 사도들에게 부활한 몸을 보여주고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고 성신의 능력을 부어 주므로써 완전한 증인의 역사를 하게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도록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택한 자를 믿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속죄를 받은 것은 사도들에게 주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증거이다.

 

  결    론

  사람이 예수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는 일은 너무나 큰 일일 뿐 아니라 너무나 오묘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성신이 깨닫게 해 주므로 이 진리를 분명히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인 동시에 증거가 있고 증거가 있는 동시에 믿는 자로 하여금 완전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된다.

 

 

제4과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하심

- 요 21:15~23,  요절:19 -

 

  서    론

  많은 제자가 있지만 주님은 시몬과 요한을 대표로 세웠다고 본다. 사명적인 이름을 줄 때에도 시몬과 요한에게만 시몬을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셨고 요한은 ‘보아너게’라고 이름을 주시었다(막3:16~17). 베드로라는 뜻은 ‘반석’이란 뜻이요, 보아너게라는 뜻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한 것을 공부한다.

 

  1대지 : 시몬의 사명을 말씀함 (15~19)

  요한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 대신 아들이라는 사명을 맡았지만, 시몬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거듭 물어 볼 때에 베드로는 자기 실수가 있으므로 제자들 앞에서 이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말밖에는 아무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주님은 시몬의 사명을 말씀하실 때에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베드로의 사명은 은혜시대의 총 책임을 맡은 대표적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어느 제자보다도 실수가 있었지만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신과 같이 쓰여지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은혜시대의 사명이라는 것은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는 사명이다. 다시 말하면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마귀의 흑암에서 생명의 빛을 따라나가도록 증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베드로의 계통을 따라 양을 먹이는 사명을 하는 자는 중생의 역사가 나리었던 것이다.

  한 번 설교할 적에 3천명이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대표적으로 쓰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성신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비겁한 사람이었지만, 성신을 받았을 적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싸워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명을 말할 때에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를 띠우고 원치 아니한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한 대로 된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실수가 있다 하여도 그 소원대로 역사를 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죽어도 배반치 않는다고 장담하고는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했지만 성신 권능을 주어서 그 소원대로 죽어도 배반치 않고 증거하게 했던 것이다.

 

  2대지 : 요한의 사명을 말씀함 (20~23)

  베드로는 요한을 향하여 그 사명을 물어 보았던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었다. 이것은 요한의 사명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가서 진리 운동이 일어나되 요한을 통하여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후에 베드로는 네로 황제 박해 때 주님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남은 자가 되어서 밧모 섬에서 계시록을 받았다. 이 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예언의 복음이다. 이 진리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 운동이 아니고, 온 세계가 불로 소멸되는 환란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복음이다(계10:7, 14:6).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의 진리를 주어서 세계 민족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했고, 요한에게는 다시 예언의 말씀인 다림줄의 진리를 계시로 주어 주님 재림시에 계시록 10장 11장과 같이 역사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요한의 받은 계시록을 통하여 일어날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는 계시록을 봉한 책으로 두었지만 이 책을 열어 증거할 때에는 계22:10이하와 같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요, 사9:1~2, 42:6과 같이 역사한 것이다. 그러나 온 세계가 흑암으로 들어가는 대환란이 날 때에 빛이 되는 말씀은 다시 예언의 등불을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빛이 될 것이니 이것이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는 것은 선지서로써 이기며 계시록을 전하는 동시에 선지서를 통하여 큰 변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변론은 여호와의 변론이니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변론이다.

 

  결    론

  우리는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은 자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재앙의 날에는 다시 사도 요한의 사명인 계시록을 전할 수 있는 권세의 종으로 역사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22과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

- 요 17:1~5,  요절:2 -

 

  서    론

  인류 역사상 세계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시기에 세계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느냐 하는 일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공부할 만한 진리가 있는 이는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다스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 예수님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므로 학생들도 예수님을 잘 알아서 믿어야만 됩니다.

 

  1대지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예수님 (1)

  아담 때부터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자격이 없고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하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짓고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마귀의 권세를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할 일이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일이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복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고 싶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 일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천국에 갈 사람이 없고 전부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을 죄인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 일이겠습니까?

 

  2대지 :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 (2~3)

  학생들, 영생을 주시는 이는 예수님이신 것을 다 같이 체험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남에게 영생을 준다고 한 일은 전혀 없고 예수님 한 분만 영생을 주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영생을 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 중생을 받게 되는 일.

  둘째 : 몸이 부활을 받게 되는 일.

  셋째 : 몸이 변화를 받게 되는 일.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오게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에 그 심령이 살아나는 일은 현재 받는 일이요, 죽은 자가 몸이 부활하고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이 변화를 받게 되는 일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되는 일입니다. 학생들도 예수님 오실 때까지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 되면 변화를 받아 승천하게 되고 그때 가서 회개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던 사람은 천사의 보호를 받아 새 시대에 들어갑니다.

 

  3대지 : 창세 이전부터 계시던 예수님 (4~5)

  예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 된 신으로 이 천지가 있기 전부터 계시던 신이십니다. 그런데 마리아 몸에 물과 피가 성신으로 임하여 사람의 몸을 이루어서 그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에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에야 비로소 그 영혼이 있게 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나시기 전부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 있었으므로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천사는 지시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인 신의 한 지위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온 세계 인류에게 하나 같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성신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세계 사람을 심판하기도 하시고 구원하기도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학생들, 예수님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23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예수님

- 요 17:21~23,  요절:22 -

 

  서    론

  세상에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이는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공부하겠습니다. 학생들, 한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도 하나가 되기는 어려운 일 이예요. 아무리 선생님이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 하여도 하나가 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요,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정치를 한다하여도 국민을 하나가 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하나가 되게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 하십니다.

 

  1대지 :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하심 (21)

  어느 나라 사람이고 예수를 참으로 믿는 사람은 생각이나 마음이 다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시되 성신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 하여도 그 마음을 주관할 수 없고 아무리 선생님이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 하여도 그 마음을 주관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대통령이 정치를 잘한다 하여도 국민의 마음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성신으로써 새로운 마음이 생기도록 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새 시대에 갈 사람은 예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므로 어느 나라 사람이나 하나가 되어 이 땅에 전쟁도 없고 서로 평화스럽게 사는 세상을 이루어 놓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2대지 : 영광으로 하나 되게 하심 (22)

  세상의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영광을 얻어 보려고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한 나라 안에서도 소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자기가 높은 자리를 앉아 보려고 합니다. 학생들도 공부할 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생기게 해서 영광을 받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과거 역사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남을 살리고자 하여 자기 재산이나 명예나 생명까지도 버리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영광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님이 주는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영광을 받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학생들 참으로 영광스러운 생활을 하려면 예수님이 주시는 영광을 받아야만 합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이 땅의 사람들이 영광을 받아 보려고 아무리 애쓴다 하여도 결말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학생들이 하나 같이 예수님이 주는 영광을 받고자 할 때에 예수님은 학생들에게 지혜도 주시고 총명도 주시고 능력을 주어서 영광스러운 새 시대의 복을 받도록 해 주십니다.

 

  3대지 : 온전함으로 하나가 되게 하심 (23)

  학생들, 저 사과나무에 사과 열매가 하나 같이 되려면 하나 같이 그루터기에서 오는 진액을 받을 때에 모양도 빛깔도 맛도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학생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하나 같이 받을 때에 예수와 같은 사람이 되므로 하나 같이 되어서 재미있게 사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리 무식했던 베드로도 예수를 믿고 온전하게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천하 사람들이 베드로가 세운 교회에서 하나같이 그 믿음을 본받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지식이 많고 잘난 사람이라도 베드로 같이 세계 인류에게 큰 열매를 맺도록 역사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온전한 역사를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학생들에게 예수님께서 온전한 것을 주시면 아무리 무서운 환란이 온다 하여도 학생들은 천사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세상의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이는 누구십니까?

 2. 누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제24과  왕이 되신 예수님

- 요 18:33~38,  요절:36 -

 

  서    론

  예수님은 세상에 날 때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지시하기를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한 왕으로 세상에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때에도 동방 박사는 별을 보고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된다는 문제 때문에 십자가에 죽였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하였던 일을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빌라도가 예수님께 참으로 왕이냐고 물어 본일 (33~36)

  빌라도라는 사람은 로마 가이사 황제 앞에 총독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 우리 나라도 일본 사람에게 압박을 당할 때에 서울 중앙청에 우리 나라 대통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본의 천황 폐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순종해서 우리 나라를 다스렸던 총독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우리 나라 사람은 아무런 권리가 없었고 일본 총독의 권리 하에서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적에 예루살렘은 빌라도 총독이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권리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왕이라고 한다고 해서 큰 죄로 인정을 하고 반역자로 취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이사 황제가 예루살렘을 지배하는데 예수가 왕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물어 보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나는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한 것은 예수님이 왕이 되는 때는 새 시대에 가서야 올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2대지 :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어 본 일 (37~38)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왕이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어리석은 물음을 했습니다. 학생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려 오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머리에 가시로 관을 만들어 씌우고 손바닥으로 때리면서 “네가 왕이냐”하는 욕설을 하며 또 비소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짐승이 아닙니까?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만왕의 왕 예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인간 죄를 짊어지고 이러한 악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내가 이 진리를 위하여 세상에 왔으니 내가 앞으로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눅22:69). 또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했습니다(마26:64).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 짐승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들은 비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짐승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신을 부어 주시는 것은 확실한 일입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이 나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승천하셔서 지금 보좌 우편에 계셔서 우리에게 성신을 보내시는 예수님은 성경대로 구름을 타고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적에 예루살렘은 어느 나라의 통치를 받았습니까?

 2. 예수님은 왜 이 세상 나라가 내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3. 예수님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제25과  승리하신 예수님

- 요 19:25~30,  요절:30 -

 

  서    론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짊어진 어린양의 몸으로 태어나서 인간들이 죄 값으로 받는 고생을 친히 받으시고 인간들이 자기 죄 값으로 고생하는 많은 병자를 구원해 주시기도 하고 인간들이 받을 저주를 친히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인간의 죄를 위하여 끝가지 기도하시면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사람의 아들 된 본분을 다하심 (25~27)

  예수님께서 33세에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적에 그 앞에서 울고 있던 모친 마리아에게 사도 요한을 대신 아들로 세워서 일생 동안 모친을 받들도록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얼마나 어머니에 대해서 아들 된 본분을 다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어머니에게 순종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앞으로 남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거역한다는 것은 자기 몸을 거역하는 사람이나 같습니다. 자기 몸을 망치는 사람이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2대지 :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영혼이 떠남 (28~30)

  사람이 세상에 나서 자기 맡은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날 때에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기까지 조금도 불평 없이 순종하여야만 만민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가 된다고 성경에 미리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아무리 욕을 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침을 뱉고 하였어도 주님은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에 제일 괴로운 일은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일입니다. 주님은 쓰라리고 아픈 것을 견디시면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으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며 자기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큰 실패를 한 사람 같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다하신 것입니다. 학생들 학생들의 손에 조그만 가시가 찔려도 얼마나 아픕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 한 분이 죽으셨으므로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이 다시 중생을 받게 되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얼마든지 은혜를 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예수님의 이기신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기셨으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를 이기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지만 예수님 한 분이 이기셨으므로 모든 인간들이 예수를 믿고 원수를 이기므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은 누구를 대신 아들로 세우셨습니까?

 2.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논 설 편

 

1.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요 노력을 하여도 참된 노력을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이다

  사람은 노력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먹을 것이 있어도 못사는 것이 인간이다. 먹기를 위하여 노력하는 인격보다도 옳은 일을 위하여 노력할 때에 먹을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는 것이다.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범위에 국한된 인간이라면 동물의 생활과 거리가 멀지 않는 생활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으니 만족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도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간과 같은 범위 하에 있는 사람이다. 자기 하나가 먹고 보니 만족이라는 것이나, 먹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하는 것이나, 그 인격적인 범위는 동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 있다고 만족하는 것보다도 먹을 것이 없다고 염려하는 것보다도 좀더 나아가서 사람이 먹고사는 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찾는 진리의 사람이 될 때에 모든 문제는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 하나가 바로 선 사람이라면 먹고 못 먹는 이 세계를 초월해서 움직일 때에 먹느냐 못 먹느냐 하는 것은 생각에 둘 필요조차 없는 인격에 들어가게 된다.

 

  2. 자기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주권을 침범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본질이요, 남의 주권을 빼앗아 보려는 것이 야욕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에 있어서도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주권을 잃지 않으려고 싸우는 일도 있고 남의 주권을 빼앗아 보려고 싸우는 일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는 자는 약자가 되고 빼앗아 보려고 싸우는 자는 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라는 것은 여기에 국한된 것을 역사라는 것이다.

  이 땅의 전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서 강자가 약자를 먹고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고 할 때에 아무리 주권을 쥐고 움직이던 나라도 그 주권을 빼앗길 때 아무런 열매 없는 허수아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세력을 자랑하던 느부갓네살에게 인류 역사의 강국을 우상으로 보여준 것이다.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허사가 된다는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주권을 위한 싸움은 침략적 정신이 있으므로 언제나 자기가 침략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죄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권은 우리 자유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하는 사람 외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 : 주권을 위한 싸움은 하지 않지만 무조건 남의 말만 듣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도 침략자를 위한 도구가 되니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순종하는 것 외에 어떤 주권이든지 함부로 순종할 수 없다.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주권을 위해 싸우든지 싸우지 못하고 무조건 순종하든지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 :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앞에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었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외식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것을 죄로 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하고 책망을 하셨던 것이다. 도덕이니 수양이니 의식이니 하여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일을 하기 위하여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중심하는 노력 외에 사람에게 보이려는 노력은 다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가면적인 행동을 할 때에 이것은 열매 없는 가을 나무와 같이 되는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종교인으로서 신앙의 대상자인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에 비종교인 보다도 더 헛수고가 많게 된다.

  넷째 :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일이다. 큰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열매가 있지만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어리석고 몽매한 인간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하셨던 것이다.

  무엇이 큰 일이며 작은 일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큰 일을 무너뜨리고 작은 일을 할 때에 이들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큰 사람이냐 작은 사람이냐 하는 것은 여기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사람을 작은 사람이라고 하고 큰 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하고 나서는 사람을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2.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열매가 없는 일

  오늘에 기독교인들이 믿음은 좋은 것 같으나 열매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 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있으므로 그 신앙은 열매가 있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믿음이 좋게 보이나 다음과 같은 신앙이 된다면 열매가 없는 믿음이 된다.

 

  1. 교파에 국한된 신앙

  아무리 열심이 있고 봉사를 잘 하고 전도를 한다 하여도 교파의 관념을 가지고 남의 교파를 공연히 치고 자기 교파만을 내 세우려는 그러한 신앙 노선은 범죄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신앙은 교파적인 관념을 벗어나 십자가 중심에서 남을 살려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것 같이 보여도 깊은 영계에 들어가서 열매를 맺는 생활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2. 독선적인 신앙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은 다 틀리게 보이는 신앙이 있게 될 때에 이것은 자칭 유대인이라는 신앙 노선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의 신앙적인 부족을 깨닫는 것 외에는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 없고 공연히 고집만 많은 사람이 되어 열심이 있다 하여도 영계에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3. 협상적인 신앙

  이 신앙은 사람이 볼 때에는 사랑이 있는 것 같고 도덕 방면으로 볼 때는 신사적이요, 인품으로 볼 때에 호인이요 모든 일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으므로 호감을 주고 흥분을 주고 또 일시적 도덕 방면으로 정당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제일로 가증한 인간으로 보시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절개가 없으므로 음녀와 같이 취급을 하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에서 절대적인 순종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리 열심이 있고 노력이 있다 하여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무슨 운동이니 하여 사업적인 방면으로 볼 때에 열매가 있는 것 같으나 실지는 아무런 열매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4. 신비적인 신앙

  이 신앙은 기도를 많이 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영적 방면으로 노력을 많이 한다 하여도 특별한 열매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인데 진리를 중심 하지 않고 신비를 중심 할 때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마귀의 잘못된 계시나 지시나 환상이나 입신 등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취가 되어 아무리 시간을 보내고 노력을 한다 하여도 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공연히 가정을 망치고 사업을 망치는 일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진리의 합법적인 신앙 노선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인격적인 체험으로 진리가 생활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여도 결말은 허사로 들어가고 마는 일이 있게 된다.

 

 

3.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

  오늘날 불의한 일 같으나 의로운 일도 있고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이 많다는 것을 바로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말한다.

 

  1.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봉건주의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바뀌어질 적에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산다는 것보다도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자본이 있게되는 활동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자본주의의 정신이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일은 인간이 볼 때는 옳은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불의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 자본주의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축복 속에서 자본을 얻는 정신이라는 것은 불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사람의 인격이 자본에 끌려서 도구가 되므로 하나님의 사람보다도 자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자본을 의지할 때에 이것은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 자기의 자본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오는 법이라고 보지만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보면 경제권을 가지고 남을 억압하게 되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계18:3).

 

  2. 협상주의의 정신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싸우면 세계는 전멸이 될 것이니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협상의 노선을 취해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옳은 일 같으나 성경을 보면 붉은 짐승의 표를 받는다든지 경배를 한다는 것은 심판의 대상자라고 하였다(계14:11).

  짐승이라는 것은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그 표를 받고 협상한다는 것은 음녀로 취급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공산주의와 협상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불의라고 본다.

 

  3. 성경을 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성경 주석을 낸다는 것이 옳은 일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불의한 일로 본다. 왜냐 할 때에 성경은 사람이 주석을 쓸 일이 아니고 본문 그대로 읽어서 해석 할 수 있도록 짝이 있고 연관성의 원리가 있고 변론의 완전 조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도들이 선지서를 신약 전서에 옮겨서 기록한 것 외에는 은혜 시대의 종이 전할 사명이 아니요, 해석할 사명도 아니다. 그 밖의 것은 심판기에 전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는 재앙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기록되었으며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증거하기 위하여 선지서 글이 이루어진 것을 글자 그대로 증거한 것 뿐이다. 은혜 시대의 종은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대로 증거할 것 뿐이요, 예언서를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예수님이 선지서대로 행하신 일을 증거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예수 행적을 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말씀한 선지서는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올 때에 그대로 읽어서 설교할 수 있는 심판의 변론이다.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심판의 변론이므로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선지서 본문대로 읽어서 책망할 일, 위로할 일, 앞으로 될 일을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일, 이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의 계약서가 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변경을 시킬 권리가 없고 계약서 그대로 읽어 분명한 것이냐는 것을 확신할 것 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약서를 주신 것이니 이 계약서는 인생에게 복을 받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초림의 주가 오셔서 계약대로 행하셨고 환란 시대에는 재림의 주가 오셔서 계약대로 행하시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약서를 어떤 박사가 주석을 낼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때를 당하여서 자세히 읽고 짝을 맞추어 기록된 대로 증거할 것 뿐이다. 이것 외에는 사람이 침범하는 것은 불의가 되는 것이다(사8:20, 계22:18).

 

  4. 시대를 따라 나간다는 목적에서 속화되는 일이다

  오늘날 소위 과학 문명을 따라가자는 것은 옳은 일 같으나 성경에 비추어 보면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사47:10~11). 과학을 따라 간다는 것보다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도구로 쓸 것 뿐인데 과학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 될 행동이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과학을 따라서 이 시대가 과학 만능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으나 불의가 된다. 왜냐하면 피조물된 물질을 사용하는 지식으로 조물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4. 흑암과 광명에 대하여

  흑암과 광명은 그 시대에 따라 언제나 있는 것이니 그 시대의 흑암이 무엇이며 광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라야 그 시대에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광명과 흑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흑암에 대하여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말하기를 인류 종말의 흑암은 북방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흑암 속에서 올바른 빛의 노선을 찾는 자라야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고 가르쳤다.

  이날까지의 흑암이라는 것은 인간 자신이 범죄 하여 흑암의 세력인 사망의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중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무엇이 흑암인지 광명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마4:14~17).

  그러므로 예수님의 빛이 비쳐질 때에 그 빛을 받은 자는 자동적으로 그 영이 사망의 권세인 흑암을 벗어나서 광명한 빛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골1:13~14). 그러나 이 시대의 흑암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올 흑암이다(사8:22, 60:2, 욜2:1~2, 계9:1~2).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는 흑암의 권세를 개방시켜 당신의 자녀들을 미혹시켜 보시고 그 속에서 이기고 나가는 자를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기독교 종말의 큰 환란은 붉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짐승은 거짓 선지에게 권세를 맡겨 세계를 침투해 나오는 것을 마지막 환란이라고 계시록13장에 가르쳤다. 하나님은 그 몸이 영생을 받아 변화 승천할 종에게는 반드시 흑암의 권세를 대립시켜 그것을 이기는 자로 남은 종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자범죄에서 속죄의 은총을 받을 때에 받는 것이요, 이 몸이 영생하게 되는 것은 마귀의 흑암 세력을 말씀으로 이긴 자라야 완전 변화를 받아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흑암이 무엇이냐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 무신론 사상이요,

  둘째 : 공산주의 사상이요,

  셋째 : 협상주의 사상인 것이다.

  이것은 인류 종말의 심판기에 나올 것을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로 받아 기록한 말씀이다.

 

  2. 광명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는 두 가지 빛을 말했다. 사9:1~2을 보면 갈릴리 해변에서 빛이 나타나 이방의 빛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59:18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원수를 갚는 날에 서방에서는 그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임하고 신이 임하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자손손이 영원한 빛이 될 것을 말할 때에 이사야60장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다. 이 빛은 새 시대를 이루는 빛이라고 이사야 60장 이하에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빛은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 새 시대에 들어가는 말씀을 빛이라고 성경에 가르쳤다. 계시록과 선지서는 지금 이 시대의 빛이 되되 현재 되는 일과 장차 될 일이 햇빛같이 나타났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미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죽은 영이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지막 흑암에서 말씀으로 이긴 자라야 자손만대의 축복을 지상에서 받게되는 것이다(사66:22).

 

 

5. 유물론 사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오늘날 소위 유물론 사상이라는 것이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까지도 그 것을 배우게 될 때에 과학 문명이라는 것은 유물론 사상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종교적으로 받는 영향

  대학을 거친 사람으로서 기독교에 들어올 때에 이미 유물론 사상을 배워 그 영향을 받았으므로 교회에 와 본즉 아무런 감화를 주는 것이 없고, 오히려 교회에 다니므로써 교회를 자기가 배운 유물론 사상으로 지도해 보려는 영향이 있게 되므로 신학교까지도 큰 영향을 받아 나날이 부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시대적인 교훈이 교회에 없기 때문이요, 그들에게 신의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단에 선 종이 유물적 교훈을 받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어보려는 전술을 쓸 적에 그들에게 감화를 주는 것보다도 종교는 하등에 필요가 없다는 마음을 생기게 만드는 영향을 주고 만다.

  강단에 하나님의 역사가 내리지 않고 이 시대의 비밀이 햇빛같이 나타나지 못할 때에는 강단에 선 종이 대중을 끌어 하나님께로 가는 것보다도 오히려 대중에게 끌려 그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주는 것보다도 듣는 자들에게 실족함을 주는 설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신앙을 갈망하던 사람들까지도 세상으로 기울어지는 영향을 주고 만다.

 

  2. 도덕적으로 받는 영향

  사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서 도덕이 좌우된다. 도덕이라는 것은 유물적 사상으로 인생관이 되면 자동적으로 부패되는 것이다.

  유물론 사상이 들어간 청년 남녀의 도덕 부패는 첫째:남녀의 절개를 상실하는 일, 둘째:부모를 공경하는 효성이 없어지는 일, 셋째:사업적인 진실의 양심을 잃어버리는 일, 넷째:정치적인 방면에 애국심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물이 성관계에 있어서 절개가 없듯이, 새끼가 어미에게 아무 도움을 주는 일이 없듯이, 동물이 내 것 네 것이 없이 마구 먹듯이, 동물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보다도 고등 동물적인 죄를 짓고 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죄를 짓는 연구를 할 줄 모르지만 사람은 죄를 짓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3. 사회적으로 받는 영향

  사회라는 것은 서로 돕고 서로 우애하고 서로 믿는 것이 없다면 사회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고 만다. 유물론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동물과 같은 사회가 될 수 있다. 동물이 서로 이유 없이 싸우듯이 오늘에 와서 공연히 민족이 민족을 이웃이 이웃을 형제가 형제를 도와 줄줄 모르고 빼앗아 먹으려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당은 공산주의 사상을 넣어서 사회를 공산화시키기 위하여 백성에게 언론 자유나 출판 자유나 경제 자유나 신앙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짐승을 길을 들이듯이 최고상임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하여 모든 것을 위에서 진행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만을 백성들에게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를 위한 것보다도 공산당의 거두가 되는 사람을 위하여 도구가 되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유물론 사상이 들어간 사람은 이런 정책을 쓰지 않고는 안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을 고등동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만난 이 때에 새 일의 역사가 없이는 종교, 도덕, 사회를 바로 지도할 수가 없고 유물론 공산주의의 피해를 자동적으로 받게되는 것이다. 새 일이라는 것은 이러한 시국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새 일에 대한 진리가 변론으로 나타나며 또는 권리행사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므로써 인간 종말의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6. 경제 혼란과 인심 동태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경제에 국한된 인격이 되지 않고 경제를 초월한 인격이 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러한 인격을 가진 자가 몇 사람이냐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경제 혼란이 닥쳐오는 오늘에 인심 동태를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이냐에 대하여 정치인이나 종교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속담에 인심이라는 것은 광에서부터 좌우된다고 한 말도 있다. 이제 인심 동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닥치는대로 먹고 보자는 것이 다수를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빚을 내어서라도 먹고 보자 또 그 때 그 때에 사기를 해서라도 먹고 보자는 것이다. 사흘 굶으면 도둑질을 안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속담이라면 배가 고파 남의 것을 먹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심 동태다. 남의 것을 먹고 없어서 갚아주지 못하는 것은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심 동태인 것이다.

  2. 어떻게 해서라도 머리를 도끼로 삼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사람이다. 도덕과 양심을 떠나서 상업에는 상업인의 도덕을 떠났고, 정치에는 정치인의 도덕을 떠났고, 종교에는 종교인의 도덕을 떠나서라도 돈을 번다고 악착같이 나서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밤새도록 침상에서 연구를 하여 계획적인 죄를 짓고 다니는 것이다.

  3. 이러한 시국을 당하여서 좀더 심각히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우리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바로 알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나가야 할 것이다. 예언대로 시국이 이렇게 되는 것은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반드시 오되 이 민족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내릴 것을 믿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성도들도 있다.

  사41:17을 보면 동방 땅 끝에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되 동방 땅 끝 사람이 세계적인 역사를 하게 되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을 들어서 역사한다는 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심 동태를 낙심하지 말고 좀 더 각성을 하고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기도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기도의 큰 힘을 얻게 될는지 이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기도의 힘을 얻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기도는 개인적인 목적을 두고 기도할 때도 있고 단체적인 목적을 두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이날까지 기도는 개인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둔 기도이지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성도는 단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힘을 얻습니다. 단체적인 기도라는 것은 합심 호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입을 통하여 이 시대에 필요한 호소 성가를 계속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호소 성가가 계속으로 오는 것을 받아 기록한 것이 15곡이나 됩니다. 이것을 합심해서 부르면 얼마든지 강한 기도를 계속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성가집에 없는 호소 성가는 새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성가집에 없는 성가 여섯 가지가 특별 호소문으로 왔습니다. 출판하여 요구하시는 분들에게 보내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을 부르시면 얼마든지 기도의 힘을 얻게 됩니다. 이 호소 성가에 대하여 간증을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어느 때나 새벽 기도 강단에 서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큰 호소 성가를 받아쓰라는 명령이 나리므로 대중이 그 즉시에 받아쓰게 됩니다. 이 성가를 본음을 바로 찾아 부르게 되면 얼마든지 호소할 수 있는 힘을 대중이 다 받게 됩니다. 이 호소문의 내용은 우리가 마땅히 부르짖어야 될 문제를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체적으로 내리는 권세 능력을 받아 가지고 단체적으로 남은 종이 되어 단체적으로 역사하다가 단체적으로 들림 받는 종들이 환란 중에 역사할 완전 무장을 갖추는데 있어서 이 호소 기도문이 아니고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불러 보면 각자가 체험적인 역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큰 힘을 얻으시려면 반드시 이 시대에 필요한 호소 성가를 불러서 큰 역사를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문】2. 앞으로 올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특별한 방침이 있는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우리 앞의 어려운 난제라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든 것이 난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죽어 천당이라는 복음 운동에는 큰 난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 시대의 축복을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첫째 : 진리 문제요

  둘째 : 영계 문제요

  셋째 : 사상 문제요

  넷째 : 경제 문제요

  다섯째 : 어떻게 하여야 남은 교회, 남은 종, 남은 가정이 되겠느냐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난제가 우리 앞길에 캄캄하리만큼 가로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은 종이 되어 새 시대에 갈 사람에게 가르친 말씀은 너무나 큰 문제이므로 빠진 것이 없이 선지서와 계시록에 똑똑한 언약의 말씀으로 체계있게 변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의하여 움직일 때에 모든 난제는 예언을 성취시키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고 우리는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여호와만을 바라보고 실천에 옮겨가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용기 있게 내딛고 나갈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말 저말 들을 필요도 없이 우리는 순수한 성서 본문에 의하여 그 말씀에 대한 변론을 증거할 것 뿐이요, 모든 전부는 하나님의 역사에 있다는 것을 담대히 믿고 나갈 것 뿐입니다. 어떤 사람의 도움이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일 것이 아니요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날 그날에 닥쳐오는 문제를 말씀에서 해결하고 싸워 나가는 일만 우리의 할 사명인 것입니다.

 

 

【문】3. 영계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큰 사명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누가 큰 사명자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답】자기가 아무리 큰 사명자라고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하는 것은 역사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1. 성경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서 조금도 말씀의 혼선이 없이 완전 변론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말씀의 대표가 나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 대표라는 것은 성경 전체에 대한 완전 변론의 역사로 다시 예언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가 본 묵시는 인류 종말의 완전한 역사는 무엇이냐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그 말씀대로 조금도 가감이 없이 변론을 하여 이루어지는 증거가 가감 없이 있어야 말세의 큰 종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인격 문제입니다.

큰 사명자라는 것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계에서 이말 저말 듣고 치우치지 않으며 이것 저것 보고 치우치지 않는 인격을 가진 자입니다. 인간의 죄악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인격이며 조금도 인간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 인격이라면 종말의 사명을 가진 큰 종이 되는 인격입니다.

 

  3.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말세의 역사라는 것은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는 역사이니 그 입에 말씀이 임하여 무엇이나 말하는 대로  되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그 입술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므로 말하는 대로 새겨지는 문서 운동도 있고 말하는 대로 원수를 제거하고 나가는 역사도 있으므로 그 종을 통하여 원수의 포로 된 자를 해방시키고 마지막 경고의 회개 운동이 일어나므로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사람은 신과 같이 된 사람이니 완전 개조, 성결 변화, 능력 권세를 받아 가지고 역사하는 종입니다.

 

  4. 새 시대를 이루는 종입니다.

죽어 천당이 큰 종의 끝이 아니요, 살아서 남은 종으로 많은 백성을 환란에서 구출시키는 진리 운동의 완전한 승리 열매를 맺는 종입니다.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대표의 종이 나타나서 그 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종이 완전 무장을 갖추게 되고 무장 받은 종들의 단체적인 역사가 있으므로 많은 백성을 환란에서 구출시키는 촛대교회의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교회가 이대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큰 사명자들이  일어나므로 새로운 촛대교회가 이루어지며 그 교회로 말미암아 완전한 평화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일은 큰 사명자가 나오므로 완전히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문】4. 오늘날 무엇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보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나 얻어 보려고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명자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우리는 그들에게 이 시국을 바로 말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국을 말하는데 있어서는 성경에 입각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순서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포심을 줄 것이 아니요, 이러한 어려운 문제가 성경대로 오고 있으며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세상이 망하는 일이 성경대로 되었다면 거기서 남은 자가 하나님의 보호로 새 땅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강한 믿음을 가지도록 소망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조금도 실족함이 없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너그러운 사랑의 용서와 보호와 축복을 말해 주며 오직 우리의 살 길은 여호와의 말씀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조리있게 말하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흥분이나 감정에 도취되지 말고 완전 변론적인 말을 할 때에 그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명자의 할 일은 이러한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종교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나라는 자체가 괴로워하는 자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실패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빛이 되고 힘이 되고 표적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완전 무장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5. 인심이 나날이 변천되는 이때에 어떻게 하여야 신령한 교회를 이 땅에서 보존해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답】이때에 신령한 교회를 유지해 나가려면 다음과 같이 하여야 됩니다.

 

  1. 모이는 시간을 자주 가져서 그 시간에 만족한 은혜를 받아 세상의 어떤 사정이 있다 하여도 확신이 있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확신이 있는 소망을 말씀으로 분명히 가르치고 그 내리는 역사가 모든 교인들에게 만족한 체험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강단에 서는 종이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에게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을 만큼 무장이 되어 항상 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강단에 서야 할 것입니다. 이때에 모든 심령들이 새로워지고 기뻐하는 동시에 어떠한 미혹이 와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강단에 선 지도자가 말씀 변론을 할 때에 그들에게 있던 의심의 안개가 걷혀지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므로 모이는 사람들이 무슨 불평이나 냉정한 마음을 가졌다가도 없어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아무런 구속이 없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부패한 사람들이 교권을 쥐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를 주관해 보려는 폐단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에게 구속을 받지 않는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진리 운동을 하며 자유롭게 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교회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려면 황충 떼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교회 안을 완전히 정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못된 분자가 섞여 있는 것을 묵인하고 그대로 둔다면 거기에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구원 문제보다도 단체적인 구원 문제를 놓고 각자 각자가 정신을 차려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교권이 아니요 말씀 권세에 목적을 두고 뭉쳐지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예언 중심으로 영계가 바로 서야 됩니다. 어떤 사람의 영계 지도나 어떤 학적인 변론을 따르지 말고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일과 이루어지는 일과 이루어질 일을 바로 알아서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난제가 닥쳐올 때에 공연히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말고 더욱 말씀에서 힘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모든 난제가 왜 오느냐는 것을 예언의 말씀에서 깨닫고 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온다는 것을 선지 예언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예언의 말씀에서 완전한 신앙 체계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될 때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역사를 교인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 천당을 목적한 교회보다도 우리 앞에 새 시대가 임박하다는 것을 말씀에서 깨닫고 환란에서 살 길이 무엇이냐는 것을 예언서에서 분명히 깨닫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 더욱 신령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문】6.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닥쳐오는 이때에 우리 사명자로서 급선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이 시대에 닥쳐오는 난제를 능히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이 제일 급한 문제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어떠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모든 일을 시작하여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만다면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도 내가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밀접한 교통이 있으므로 하나님 앞에 검열을 받고 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지느냐, 나의 도구가 되느냐 사단의 도구가 되느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도구가 되는 인격을 먼저 체험하고 직접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그 날 그 날 작은 일에서부터 이길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일을 극복하지 못하면서도 큰 일을 꿈꾼다는 것은 나사가 넘은 기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체험은 나날이 소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종이 압력을 받고 피곤해질 정도라면 거기에서 자기 인격이 어느 정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명자가 일할 인격을 갖추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사단의 참소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무서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마귀 참소를 허락하신 것은 나를 사랑하므로 더 높은 영계로 올리기 위한 선한 방법인 것을 알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머리를 써서 연구하지 말고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갈 때에 어떠한 뜻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작은 두뇌로 연구해 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바로 깨닫는 것은 성신의 역사에 있고 바로 전할 수 있는 것도 성신의 역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할 때에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므로 무기가 되는 진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어 그 진리를 바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3. 자기를 완전히 없이하고 주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을 두고 항상 깊은 묵상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깊은 묵상이 없다면 벌써 마른나무 가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깊은 묵상에서 흘러오는 새로운 영력을 공급받는 산 생명의 활동이 있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풍성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고, 적으면 열매도 적고, 없으면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해결은 주께로 오는 영력이 풍성함에 따라 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오는 영력으로 인격을 받게 될 때에 신령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영력을 주시되 앞으로 오는 모든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주신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세력이 강하면 당신의 종을 강하게 쓰시는 것이니 종말의 역사를 할 수 있는 종을 삼기 위해서 칠 배 영감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보다도 완전 변론의 영감을 받고 마귀의 미혹을 변론 권세의 역사로 없이하는 불의 역사가 말씀을 통하여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특  집  

 

1. 7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

  금년 7월은 새로운 출발을 가져야 할 달이라고 생각하면서 민족의 장래와 국가의 앞일을 신앙 양심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명자 되시는 분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7월부터는 새로운 나라가 되는 순이 나와야만 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이 되어 다시 취임식을 하고 일을 시작할 때에 새로운 순이 되는 새 출발의 역사가 없다면 우리 민족과 국가는 큰 비극이 될 위기에 봉착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과 국가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도자가 해야된다는 것은 이 사람의 의견보다도 성서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의 말씀으로 여러분께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1.  빛을 발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60장을 보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59:19을 보면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59:20을 보아 이것은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 일어나는 역사를 가르쳤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발하라 하는 것은 동방 사람에게 명령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이 빛은 무슨 빛이냐 하면 기독교 종말의 진리 운동을 뜻했다는 것을 사59:21을 보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경제 부흥을 가지고 일할 소망도 보이지 않고 과학 발전을 가지고 일할 소망도 보이지 않으나 세계의 잠든 성도를 깨우쳐 주는 일을 할 때에 사상과 양심이 바른 성도들은 동방에 나타난 진리의 빛을 따라 들어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동방에 나타난 말씀대로 나리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은과 금으로 해결치 못할 모든 난제는 하나님의 역사로써 해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되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역사할 때가 아니고 환란과 재앙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는 역사를 할 때입니다.

  사59:21과 같은 역사는 현저히 이 사람에게 나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것은 1967년 10월에 내 입에 말씀이 임할 때에 도저히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진동이 임한 후, 그때부터 말씀을 계속 입으로 불러서 많은 책자를 내던 중 금번에는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을 내었고 계속으로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월간지에 황해도 사투리가 있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말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습관대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방 말을 쓰실 적에 사투리다, 표준어다 라는 구별을 하시지 않을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말 저말 하실 것 없이 진리가 분명하다면 여러분들은 진리를 전할 것이지 사투리를 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은 외국으로 나갈 책자이니 누구든지 번역할 실력이 계신 분이라면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협력을 하여 진리를 해외로 선포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책자가 나올 것이니 이제부터 번역부를 두어서 진리의 빛을 발하는 일에 단체적인 행동으로 일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 진리 운동은 이 나라 정부에서 큰 관심을 두고 협력하여 멸공 진리를 해외로 선포시킬 적에 이 나라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반드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이 나라의 정치는 신정적인 방면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신정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견으로 정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멸공 진리 운동 방면으로 신의 완전 지혜, 지식, 능력, 권세를 중심한 정치가 신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신정이 필요한 이유는 과학적인 방면으로 남의 나라 정치를 따라 가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계7:1이하를 보면 세계를 황폐화시킬 바람을 네 천사가 잡고 있는데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편에서 나와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를 해하지 말라고 할 때에 이스라엘 지파 중 14만 4천이 나왔다는 것은 종말에 승리의 용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7월부터는 우리라는 단체가 하나님의 인의 권세를 세계에 선포시키는 진리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날까지는 성신의 인을 맞는 일에 진리 운동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인을 맞는 진리 운동이 일어나야만 됩니다. 이것은 천국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지상왕국을 목적한 것이니 계10:7, 11:15과 같이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북방 세력을 없이하며 북방을 지지하던 음녀적인 세상도 없이하고 오직 멸공 진리 운동을 하던 종과 백성만 남아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다윗 왕국인 신정 통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모든 선지가 묵시를 볼 때에 다윗 왕국 시온산 통치는 북방의 세력을 없이하고 온다는 것을 하나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무 총리, 말단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진리 안에서 뭉쳐져야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니 사명자 여러분들은 총 궐기해서 이 나라가 세계를 지도하는 선지 국가가 되도록 싸워 주시기 바랍니다.

 

  3. 금년에 특별 호소 기도문이 여섯 곡이나 왔습니다

  첫절을 소개하자면, 사랑이 식은 우리 마음에 불을 줍소서, 천지 만물 지은 여호와 우리 위에 나타나서, 나는 할 수 없어요 능력 줍소서, 우리 앞에 큰 환란 있사오니 완전 무장 주셔요, 어려운 일 온다해도 주의 능력 승리하리,  완전 지혜 줍소서 입니다.

  여러 사명 동지는 이 호소문을 합심기도로 호소하시어 큰 역사가 임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다 하여도 이 기도문이 아니고는 큰 호소를 올릴 수가 없으니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출판하여 원하시는 분들에게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열 두장을 새로 곡조를 그려 출판을 하여 사용하고자 하오니 이것은 있던 성가집에 첨부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부수를 알려 주신다면 교회 단체로나 개인으로나 우송해 드리겠습니다. 이 성가를 부를 때에 큰 역사가 나리고 있습니다.

 

  4.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가 1년간 발송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문서 운동을 하고자 하오니 각자가 좀더 널리 전파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하겠습니다. 이 월간지는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것이오니 하나님 앞에 동등한 입장에서 다같이 힘을 합하여 배가 운동을 하셔서 더욱 더 많이 출판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2.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를 발행 한지 일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지렁이 같은 야곱에게 임한다는 말씀대로 불학 무식하고 약하고 둔한 이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매달 아무런 피곤 없이 계속으로 글을 쓰도록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나같이 둔하고 사랑이 없는 인간을 들어 쓰는 것은 누구든지 강권 역사이면 다 될 수 있다는 표적이라고 믿어집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을 계속으로 기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이 땅에 오고 있는 증거의 하나라고 믿어집니다.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를 시작할 때에는 단돈 100원의 출판비도 없었지만 농촌에 사는 어떤 학생 마음에 하나님께서 격동을 주어 500권의 월간지를 프린트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에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정식 출판을 3천부에서 5천부까지 하게 되어 1년이라는 해를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간증을 합니다.  

  나로서는 이 글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동시에 떠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1년간 기록할 때에 한 글자도 고치거나 가감한 일이 없이 내 입에 말씀이 오는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간혹 사투리로 나온 말을 표준어로 쓰기 위해서 수정한 일은 있지만 그 밖의 것은 조금도  가감이 없는 글입니다. 교정을 보는데서 잘못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매월 70페이지의 월간지를 가감이 없이 입으로 불러서 책자를 내었다는 것은 이 사람의 생각이 첨부된 곳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첨부될 정도가 될 때는 말씀이 나리지 않으므로 내 생각을 포기하고 무조건 입을 열어 말씀이 오는 대로 기록한 것이 이날까지 발행된 책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명 동지에게 간증을 올리는 바입니다.

  부탁은 이 책을 이제부터는 더 완전한 문서 운동으로 전개코자 하오니 이 말씀을 조금이라도 내가 기록한 글로 생각지 마시고 이해가 되지 않은 말이 있다하여도 깊은 기도를 해보시며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기도가 적으면 깨달아지질 않고 기도가 깊을 때에 크게 감화를 받는 가운데서 읽으면 완전 변론의 방법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생각이나 인간의 어떤 학적으로 보는 것보다도 그 진리의 내막을 묵상하면서 읽을 때에 그 진리의 내용에서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을 저도 항상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연구하지 않고 입에 말씀이 임했다는 그 자체가 이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머리로 연구한다면 한 페이지의 글을 쓰기가 어려운 사람이니 누가 인정하든지, 말든지, 위에서 명령하는 대로 입을 열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밖의 것은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종과 인쇄하는 종님들의 피땀의 수고를 한 일에 대해서 감사할 것 뿐입니다.

  일전의 사례금도 받지 않고 밤을 새워 기록하는 종이나 밤을 새워 교정을 보는 종님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칠 배로 올 것을 믿고 기도할 것 뿐입니다. 본서에 발행자를 이뢰자 라고 써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발행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가 없는 사람이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1년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위에서 말씀을 주지 않으면 이 월간지는  부득불 폐지가 될 것입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수도 공부를 시키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무 생각이 없이 성경을 들고 앉아 입을 놀린 것 뿐이지 아무런 노력을 한 것이 없는 무능한 인간입니다. 이 글을 기록하기에 수고한 종이나 교정을 보아서 출판을 하는 종님들의 수고가 더욱 많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실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사람은 여러 종님들 앞에 무능하고 아무 보잘것 없는 지렁이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것 뿐입니다. 돈도 지식도 힘도 없는 사람이 이 월간지를 홀로 1년간 내었다는 것은 출판비를 계속해서 보내 주신 종님들의 지극한 성의와 이 월간지를 전하기에 노력한 종님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이제부터 더 큰 축복이 임하므로써 이 문서 운동은 큰 발전을 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간곡한 부탁은 배가 운동을 할 결심을 가지시고 총력을 다해 주신다면 이 지렁이 같은 사람의 입을 하나님께서 계속으로 써 주실 줄 확신하는 바입니다.

 

 

3. 말씀을 날마다 받아 기록하는 종의 감상

  막막한 하늘 나를 덮고 있고,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지구는 나를 받들고 있도다. 아무리 하늘이 넓다 한들 하나님의 진리의 사랑에 비할소냐! 아무리 지구가 튼튼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큼 튼튼하지는 못하도다.

  글을 쓰다 창 밖을 내다보니 푸른 산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듯 하구나. 시원한 개울을 바라보니 처량하게 흐르는 물소리는 나와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 하도다.  나를 둘러 싼 검은 바위 우뚝 우뚝 있는 것은 하늘의 천군들이 나를 두른 듯 하고 자연이 좋다고 지절거리는 산새 소리는 시대적인 비밀을 내게 알려 주는 소리같이 들리도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숙였더니 오늘도 하늘의 새 힘 더욱 강하게 와서 피곤이 없는 몸을 만들어 주고 있다.

  새벽 강단에 서니 하늘에서 오는 호소 성가 받아쓰라는 명령이 있어 순종 하였도다. 인간의 5분이라는 시간은 우렁찬 호소 노래의 작사를 기록했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작곡을 하였더니 사람이 만든 악기보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악기가 작곡을 하기가 편리 하도다. 30분 동안에 작사 작곡을 하여 우렁차게 불렀더니 이슬같이 단비같이 역사는 쏟아진다. 주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 시원해 하는 듯 그때 그때 위에서 보내는 호소 성가 부를 때에 모든 종들의 입술은 묘한 입술 같이 보인다. 천사같이 부르는 그 모양 하늘의 세계를 이룬 듯한 감상 붓을 들어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도다.

  바보 같은 머리 속에 아무 생각 없이 “믿습니다” 자본 삼아 말씀이 오는대로 입을 여니 기록하기 재미있고 읽어보니 은혜 된다. 쉬는 시간, 축복의 시간 한 번 기록하여서 판에 새겨 세상에 내어놓을 때 읽는 자마다 마음이 소성을 받을 줄 믿네.

  먼지가 나는 땅 위에 앉았지만 하늘의 교통은 멀지 않네. 진리 안에서 기뻐하고 진리 안에서 복을 받는 이 자리, 작은 돌방 속에 여호와의 말씀 기록하는 장막을 이루고 보니 사람이 만든 호화로운 벽돌 집 보다 하나님이 창조한 돌로 지은 집이 더 귀하다는 감상을 가지도다.

  강권으로 이 산상에 자리잡고 강권으로 글을 받아쓰게 하신 하나님은 강권으로 역사를 해 주셔서 지금은 작은 일 같으나 인간 종말의 새 시대를 이루는 진리 운동이 될 줄 믿네. 매일 같이 쉴 사이 없이 내 입을 써 주시는 하나님은 이 글을 읽는 자의 입을 써 주실 줄을 믿네.

  약한 자로 이 일이 시작되었으니 강한 자로 세계를 정복할 줄 믿네. 어리석은 자로 이 일이 시작되었으니 지혜로운 종들이 많이 일어나서 주린 양떼 살릴 줄 믿도다. 인간들이 아무리 떠들어대어도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고요히 흘러오는 진리의 소리, 내게 승리의 열매를 맺는 길로 인도 하도다. 동방 땅 끝 영광이 되는 이 일은 이 영광을 받을 자 외에는 알 자가 없어 조롱하다 죽으리라.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알지 못하고 떠드는 자보다 지혜로운 자요,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자보다도 입을 열어 이 진리를 만민이 알도록 증거하는 자는 온전한 지혜를 받은 자이다.

  자연을 따라 움직이는 푸른 새 순, 저렇게도 소성 하건마는 하나님의 섭리 따라 바로 움직일 종들이 메마른 나무 중에도 불탄 나무같이 검어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진리 없이 움직이는 동물들은 자기의 할 의무를 하고 있건마는 진리대로 움직일 하나님의 종들이 깊이 잠들어 깰 줄 모른다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슬프다 아리엘 억울하게 되었지만 몇 날이 가지 않아서 세계를 정복하리. 누가 앞설까 하고 묵묵히 보시던 하나님께서 앞섰던 종이 뒤에 서고 뒤에 섰던 종이 앞설 때에 기뻐하실 자도 있고 슬퍼하실 자도 있도다.

 

 

4. 21주년 6.25를 맞이하는아침에 올리는 사명자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관대 징계를 나리기도 하시고 붙들어 주기도 하시고 길러 주기도 하시나이까. 6?25의 무서운 징계를 받고 깨달은 나의 심정, 이날까지 부르짖고 있었사오며 이 아침도 부르짖는 호소를 올렸나이다.

  우리가 매를 맞아야 마땅하고 죽어도 할 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분명히 말세에 동방 땅 끝에서 일어나는 이스라엘로 세우신 것을 확신합니다. 왜정 압박 속에서 백의 민족은 성을 갈고 민족의 역사와 말을 배우지 못하고 남의 나라의 역사와 말을 배우며 남의 나라 신을 섬기는 비참속에서 있던 민족을 들어서 말세의 선지 국가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정한 때가 왔으므로 아시아 땅 기름진 옥토를 다 공산당에게 빼앗기고 남방 땅 끝 박토가 남은 이 나라의 산조차 붉은 산이 되고 만 이 민족의 쓰라린 사정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  

  6.25의 동란을 만난 것도 예언이 이루어진 과정 인줄 믿사오나 이 민족이 아직까지 민족의 사명을 모르고 남의 나라에 가서 임시로 빵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하고 유리하는 민족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붉은 세력이 아시아를 점령하고 동방 땅 끝의 작은 나라를 세워 주신 것은 분명히 선지 국가를 세우기 위한 목적인 줄 믿나이다. 6.25동란의 무서운 환란을 맛보게 한 것은 남의 나라보다도 환란, 재앙 속에서 구원을 받는 복음을 전할 사명 국가이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남의 나라보다 우리 나라에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나이다.

  이 민족의 쓰라린 고통도 말씀이 응하는 과정이라면 이 민족이 복을 받는 말씀도 이루어질 줄 믿나이다.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붉은 세력이 아시아를 덮고 우리 나라를 남게 하신 것이라면 동방 땅 끝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북진하게 되어 세계 열방을 깨우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어찌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있겠나이까.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오니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그 역사 앞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아침도 감사 기도를 올리나이다.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 내게 믿음을 주고 이루어질 말씀이 확실한 소망을 주고 있나이다. 고레스에게 나타나서 명령하시던 아버지여, 이 아침 우리 나라에 나타나 명령을 나리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명령을 나리신다면 순종을 할 것 뿐이로소이다. 진리를 동방에 보내신 아버지여, 진리를 널리 전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진리의 사람으로 뭉쳐지는 나라가 되게 하시며 세계를 지도하는 선지의 국가를 이루어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진리 안에서 길러 주셨사오니 진리 안에서 승리할 것을 믿나이다.

 

 

5. 7월부터 우리 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만 될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어떻게 하여야 반공 정치가 승리할 것이냐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 나라가 6?25 동란을 겪은 후로 세계의 정세는 작년을 아주 먼 옛날로 볼만큼 큰 변천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발전보다도 점점 앞길이 막막한 자리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일을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도 시작을 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이 더 퇴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산에 올라가지 못하고 앉아 있는 사람과 올라가서 굴러 떨어진 사람을 비교한다면 굴러 떨어진 사람보다 앉아 있는 사람이 나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일을 완전히 성공적으로 못할 바에는 보수적인데서 내려온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 나라가 여러 가지 일을 많이 시작했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금년부터 완전한 열매를 이루지 못한다면 보수적인 정치보다도 더 큰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많은 빚을 내어다 무엇을 시작해 놓고 난 뒤 그 빚을 갚을 수 없이 되었다는 것보다도 차라리 빚도 내지 말고 그 일도 시작하지를 말고, 있던 것을 아껴 적게 먹고 생활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완전할 것이다. 공산당을 대하여 싸움을 시작해서 승리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중립이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이나 정치적이나 같다고 본다. 경제 부흥을 완전히 못하겠다면 차라리 백성들을 절약시켜서 빚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정치에 승리하지 못할 바에는 싸우지 말고 있는 백성을 잘 보호해 주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서를 보아서 초자연적인 신의 축복이 없이 경제를 유지할 수 없고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가 같이 하지 않고 정계를 활동해 나가기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형편이다.

  첫째 : 신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사야 60장을 보면 동방의 축복을 말했는데 진리의 빛을 발하여 열방을 깨우칠 적에 열방의 성도들이 각성을 받고 은, 금을 싣고 동방으로 와서 진리의 빛이 나타난 곳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빚을 내어서 돈을 벌려는 것보다도 동방에 임한 진리를 세계에 전파시킬 적에 하나님의 축복은 진리를 따르는 성도를 통하여 우리 나라에 올 것이다.

  우리는 진리 운동을 하되 천국 복음 운동이 아니고 새 시대를 이루는 새 일의 진리를 세계에 전파하여야만 될 것이다. 반공이라는 것은 경제나 무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승리한다는 것을 모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쳤다.  우리 나라의 정객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공산당과 싸우겠다는 것은 공연히 백성을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둘째 :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는 정치가 나오고 교육이 나오고 근로 봉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면 정치나 경제나 교육은 아무런 효과를 이루지 못하고 망한다는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임사호천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 나라는 7월부터 하나님께 부르짖는 역사가 나오지 않고는 공산당과 싸운다는 것은 막연한 일이라고 본다.

 

  2.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지금 우리 민족은 인도하기가 곤란한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정치를 쓰기도 어렵다고 본다. 백성들이 민주적인 정신을 가지는 것보다도 밥만 먹여 주십시오 하는 정신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경제를 초월하여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가진 자는 만인 중에 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공무원까지도 나라만 생각하는 공무원은 심히 적다.

  소위 종교 지도자라 하는 목사들까지도 경제를 초월해서 참된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상으로 목숨을 바치고 나서 싸울 사람은 다수가 못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민족을 어떻게 지도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말한다. 동양 격언에 인심은 즉 천심이라고 한 말이 있다. 성경에도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관한다고 말했다(계17:17, 사19:2).

  지도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정의 자녀도 부모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적에 다 바로 서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복된 가정이 되는 것이요, 나라도 대통령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적에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관해서 복된 나라가 되게 하신다. 사람이라는 것은 먹을 것을 따라 가도록 인도하면 동물에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요, 옳은 진리를 따라 가도록 인도할 때에 그 진리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므로 복된 가정,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민주 국가의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의 인격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화를 주며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그 대통령을 따라갈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인격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권리가 나타나게 되고 옳은 지도를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므로 억지로 남을 지도하는 것보다도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야 된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이 민족을 지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민주적인 정치보다도 신정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과학적인 방면으로는 너무나 뒤떨어진 상태다. 그러므로 도저히 과학적 선진 국가를 따라갈 수가 없고 선진 국가에게 과학을 초월한 역사가 있어서 경제를 부흥한다고 날뛰던 인간들이라도 과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들의 사상은 하루아침에 돌변 될 수가 있다.  

  사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그 자신의 사상이 남을 지도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무신론과 유신론과의 대립이다.  아무리 유신론자라도 신의 체험을 받고 신의 능력을 받고도 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신론자와 싸울 수 없고 아무리 반공이라 하여도 공산당의 변론을 합법적으로 말살시키는 진리의 사람이 아니고는 감히 싸울 자격이 없다고 본다.  

  사상이라는 것은 기계적 보다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기계를 가지고 사상을 지도할 수는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옳은 사상은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우나 못된 사상은 들어가기가 쉽다. 그러므로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이 극도로 타락할 때에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경제가 극도로 부패할 때에도 들어가게 되고 도덕이 극도로 부패한 가운데서도 들어가게 되고 인심이 극도로 악화될 때에도 들어가기 쉬운 것이 공산 사상이다. 이때에 공산당을 대항해서 백성을 지도하는 자가 되려면 적어도 세계적인 공산 사상을 말살시킬 수 있는 자라야 될 것이다.  

  미5:7~9을 보면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이슬 같이 단비같이 역사를 받는 자는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짐승 같은 북방 세력을 없이한다고 하였다. 성서를 바로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자와 싸울 수 없고 성서에 입각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한 자 외에는 유물적 공산주의 사상을 대항해 싸우는 영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이 민족을 지도하는 자가 되려면 유신론자 중에도 신의 능력을 받은 자라야 될 것이고 공산주의와 싸우는 자로서 공산당의 세력을 말살시키는 완전 진리 변론자로 심판권의 역사를 받은 자 밖에는 끝까지 싸워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7월부터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는 영도자와 정치가 나오기 전에는 이 민족의 앞길은 암담할 것 뿐이다. 이 사람으로서 염려하는 것은 7월부터 새로운 변동이 없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징벌이 올까 두려운 것 뿐이니 재앙을 받고 깨닫는 자가 되지 말고 재앙을 받기 전에 깨닫는 지각이 영도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역사가 시작되어야만 될 것이다.

 

 

광 고

  1.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자를 세상에 내 놓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때까지의 인간론 성경 해석법, 요한1서 강의, 조직신학과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의 책들은 수도생들이 달마다 공부하는 학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공부를 해야만 그 내막의 뜻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은 학과가 아니고 누구든지 스스로 읽어보아도 충분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전도용으로 가장 필요한 책인 것입니다. 월간지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에게 그 달 그 달 신령한 양식을 주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지만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은 누구든지 창세기 1장에서부터 계시록 22장까지의 비밀을 논설식으로 설명한 책이므로 필요하실 것입니다.

  8.15 성회 때까지 이 책이 완전히 출판될 것이오니 사용하실 종님들은 미리 책 대를 준비하셔서 오시기 바랍니다. 책 대는 약 100원 정도로 생각되오니 8.15 성회에 오셔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오니 이 일에 대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날 까지는 영어 번역이 허락이 없었지만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은 완전히 전도하기 위한 책자로 외국에 나갈 것이오니 사명 동지 여러분은 외국에 전도 문서 운동을 하는데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곡조 성가를 재판 하고자 합니다. 이 번에는 새로 나온 호소성가를 첨부하여 70장의 성가를 완전 곡조로 출판하고자 합니다. 이 책 대는 재판이므로 이전 곡조 성가보다 약간 감소됩니다. 이 것도 8.15 성회에 사용하시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8.15 성회는 9일부터 16일 새벽까지 있게 됩니다. 8.15가 주일이니 강단의 책임이 계신 분은 미리 개 교회에 지장이 없도록 하시고 8.15는 성산에서 보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금번에 특별한 은혜가 나릴 줄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5.15 성회 때 없던 강한 호소 기도문이 6장이나 온 것은 큰 역사가 나릴 징조라고 봅니다.

  아무쪼록 특별 사명자 중심으로 모여지도록 각자가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금 번 성회는 특별 성회이니 합심 호소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4. 금번 총회는 15일이 주일이므로 14일로 정하였습니다. 각 교회의 총대 되시는 분들은 3인 까지 오시되 14일 전으로 다 오시어 사무 진행을 준비하여 정기 총회가 지장 없이 열려지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 장로, 전도사께서는 14일 전으로 사무를 진행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5. 각 교회 소식난에 대하여 알릴 말씀이 계시면 8월호에 기재하겠사오니 15일 안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교계에 알려야만 될 사정이라면 새일수도원으로 보내시되 매월 15일 안으로 보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