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8월호)

설  교  편

 1. 부르짖는 시온의 승리 (미4:9~13)

 2. 기다리시면서 베푸시는 은혜 (사30:18~33)

 3. 영원한 평안과 안전 (사32:15~20)

 4. 문서 운동과 승리 (합2:1~8) 

 5.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가 되자 (골3:15~17) 

 6.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 (시8:1~9) 

 7.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 (사34:16)

 8. 사명자의 완전 결합 (빌4:1~3) 

 9. 지혜로운 일과 인간 종말 (마7:24~27) 

10. 푸른 나무 같은 인격 (시1:1~6)

11. 속히 될 일을 보여준 천사의 지시 (계1:1~3) 

12.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 (미4:1~3)

13.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 (마12:22~37) 

14. 복음에서 교제하는 인격 (빌1:3~11) 

 

장년 공과편 - 주님의 승천과 성신 강림

제1과  주님의 승천과 성도의 유익 (요16:5~13) 

제2과  주님의 승천과 새 출발 (행1:6~14) 

제3과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신을 보내심 (행2:1~13) 

제4과  주의 승천과 교회의 발전 (행2:37~47) 

제5과  주의 승천과 주의 이름의 영화 (행3:6~10, 4:10~12, 29~31)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26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요20:11~18)

제27과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 (요20:19~23) 

제28과  도마에게 나타난 예수님 (요20:24~29) 

제29과  디베랴 바다에 나타난 예수 (요21:1~14) 

제30과  베드로와 요한의 장래를 말씀하신 예수님 (요21:18~23)

 

논 설 편

1. 믿어지면서 속는 일 

2. 힘이 강한 것 같으나 약한 일 

3.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 

4.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 

5.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 

6. 실패가 되는 원인은 무엇 

 

신 앙 문 답

1.오늘날 옳은 신앙 노선을 누가 바로 가졌는지 알기가 어려운 복잡한 교계에서 어떠한 노선이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지 간단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어찌하여 교회가 점점 더 부패해 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3.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활에서 큰 발전을 볼 수가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4.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될는지 나의 마음에 확신을 얻고자 하는 바입니다. 세밀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5.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무신론 사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빛을 나타낼 수가 있겠습니까. 간단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8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2. 8.15와 민족의 사명 

3. 8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4. 8.15를 맞이하는 사명 동지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 광  고

 

 

 

 

 

 

 

 설 교 편

 

부르짖는 시온의 승리

- 미 4:9~13 -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들어서 완전 승리를 이룰 때에 부르짖지 않고는 어찌할 수가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여 난관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자라면 진실한 자로 인정하고 그로 하여금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더 큰 영광을 누리게 한다.  

  부르짖는 시온이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부르짖으므로 열매가 있게 하심 (9~10)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택한 자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가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을 때에 역사하시는데 있어서는 부르짖는 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난제를 놓고 합심하여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탕자를 두고 비유할 때도 아들이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아버지를 찾아와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는 요청을 할 때에 그것을 만족으로 여겼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이것은 영계에 가장 깊은 비밀이 있는 비유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은 원수로 알지만 아무리 미약하고 어리석은 자라도 당신 앞에 부르짖는 자를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10절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이스라엘이 부패하여 세상과 타협을 할 때에 용서없이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이 부르짖고 기도할 때에 강권 역사로 황폐한 예루살렘을 복구하신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교만한 자들은 다 망하고 인간이 볼 때 가장 미약하고 어리석은 자 같으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을 들어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해산하는 여인같이 힘을 다해 부르짖는 데까지이고 그 밖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심 (11~12)

  하나님은 언제나 원수들을 강하게 들어서 쓸 때에 그들이 당신의 자녀를 업신여기고 무시를 하게 하였다가 참된 자녀로 승리하게 하며 원수들을 홀연히 망하게 한다. 모세를 쓸 때에도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하여 깨닫지 못하게 했고, 엘리야가 승리할 때에도 원수들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죽는 시간까지도 엘리야를 무시하고 대적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도 공산당들이 참된 교회를 어리석게 보고 오히려 기독교는 아편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내일의 멸망을 모르는 그들은 타작 마당에 겨같이 날아가고 마는 것이다.

 

  3. 강하게 하여 대적을 치심 (13)

  우리가 부르짖을 때는 극도로 원수에게 멸시를 받을 때요, 우리가 강하게 일어나서 대적을 칠 때는 부르짖던 호소의 응답이 나릴 때이다. 부르짖지도 못하고 원수에게 타협을 하고 만다는 것은 벌써 싸울만한 능력이 떠난 증거이며 아무리 원수 세력이 강해도 부르짖는 사람은 원수를 이길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증거이다. 가장 위대한 일은 인간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교만한 인간들은 부르짖는 호소를 올리는 자를 어리석게 보고 원수들과 협상하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부르짖는 자들에게 원수를 쳐서 없이할 철장 권세의 역사를 나리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성경 글자대로 믿고 부르짖는 자라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성경이나 인간의 어떤 방법을 중심해서 역사할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볼 때에 믿을 수 없고 어리석게 보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말씀했다.

 

  결    론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 항상 부르짖는 자이다. 지금 부르짖는 호소 성가를 주시는 것은 환란 가운데 남은 자가 될 주의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가 온 증거이다. 우리는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되면 대 승리를 보는 열매가 있게 되는 것이다.

 

 

기다리시면서 베푸시는 은혜

- 사 30:18~33 -

 

  조물주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기다리시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 은혜는 은혜시대에 받은 은혜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영과 육이 아울러 받는데 있어서는 영으로 잠깐 받는 은혜가 아니고 영원한 축복을 받되 자손 만대에 까지 받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녀 중에서도 특별한 축복이므로 다음과 같이 역사 하시는 것이다.

 

  1.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 (18)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는 회개했다는 조건보다도 끝까지 참고 기다렸다는 조건에서 주는 은혜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았다 하여도 시련이 올 때에 떨어지고 마는 것은 쭉정이와 같은 믿음이다. 여러 가지로 시련을 시켜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진노의 날에 만민에게 베푸는 축복의 은혜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는 은혜는 죽은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은혜요, 끝까지 기다리고 참는 자에게 주는 은혜는 중생 받은 사람으로서 지상 축복을 누리는 은혜인데 이것은 잠깐이 아니요, 영원한 축복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 생령된 첫째아담이 잃었던 축복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자가 다시 찾게 하는 것을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라는 것이다.

 

  2. 조금이라도 탈선된 길에 서지 않게 하심 (19~21)

  누구든지 마음이 변치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아무리 미혹이 많은 흑암의 날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참된 진리의 스승을 만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복을 받을 자는 복된 종을 만나게 되고 화를 받을 사람은 화가 있는 거짓 선지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본 장 10절 이하를 보면 버림의 자식들이 참된 선지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하면서 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때에 높은 담이 무너지듯이 질그릇이 파쇄 되듯이 망하고 말 것을 가르쳤다. 심판기의 경고인 심판의 다림줄의 말씀을 싫어하고 거짓 선지의 감언 이설을 따른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되므로 진노의 날에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련이 와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여 조금도 미혹을 받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3.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됨 (23~26)

  새 시대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땅의 소산이 풍성함 (23~24)

  둘째 : 높은 산 위에도 시내가 흐르게 됨 (25)

  셋째 : 해가 7배나 빛을 발하므로 기후가 변천됨 (26)

  이 땅에서 큰 축복을 받는 자라야 자손 만대에까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나리는 것이 아니고 지상 축복을 목적으로 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첫째 : 진노가 빽빽한 연기 같이 일어나게 함 (27)

  둘째 : 열방을 까불어 미혹되게 함 (28)

  셋째 : 유월절과 같은 역사 있게 함 (29)

  넷째 : 북방 세력이 낙담하고 망하도록 여호와께서 치심 (30~33)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하시는 것은 끝까지 기다리는 자만 이 땅에서 은혜를 받고 큰 축복을 받는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첫째 : 극도로 까불어 보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 :극도로 미혹을 시키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의 종을 만나는 것을 큰 축복으로 알고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이말 저말 듣지 말고 정로를 향하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애굽을 치듯이 북방을 칠 것이니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이 여호와만 바라보고 용기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바로를 들어서 강하게 쓰듯이 심판기에도 끝까지 기다리는 종들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하여 북방 세력을 강하게 들어 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을 낙담하도록 역사하시는 동시에 전부 소멸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끝까지 기다리는 자가 복을 누리는 새시대가 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생령이 되게 하시고 간교한 뱀으로 미혹을 시켜 보신 것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순종하는 자를 진실한 자라 인정하고 그들로 큰 축복을 주어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미혹을 이기지 못했으므로 흙으로 돌아갔지만 종말에 끝까지 기다리고 참는 자로 지상에 큰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영원한 평안과 안전

- 사 32:15~20 -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목적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동시에 안전하게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을 하나님은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슬픔은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택한 자가 영원히 평안을 누리는 일이다.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우리에게 주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성신을 부어 주심 (15)

  사람이라는 것은 성신을 부어줌을 받기 전에 참된 평안을 소유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사단과 싸우는 생활에서 사단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생령된 사람으로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를 받으므로 완전한 인격을 가질 수 있게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의 자격으로는 성신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만 왕의 왕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기의 소유가 된 자에게 성신을 부어줄 책임이 있고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를 받은 자는 성신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요3:34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라고 하였고 딛3:6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준다고 말씀했다. 성신은 죄 사함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행2:38). 그리고 말세에 남종, 여종에게 부어 주는 역사도 있다(욜2:29).  

  독생자의 피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는 일을 속죄 은혜라 하는 것이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주기 위해 성신을 부어 주는데 있어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2. 공평과 의로 새 땅을 이루심 (16)

  참된 평안이 없는 세상이 된 이유는 공평이 없고 의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위 유물론 공산당이 공평하게 살도록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공평이라는 것은 성신 받은 사람들이 공평으로 정치를 하고 의로 통치할 때에 참된 평안의 안식을 누리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공평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은 성신을 받은 사람들로 하나같이 성결하고 하나같이 지혜롭고 하나같이 겸손하게 되어 모여질 때에 공평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고 필연적으로 의의 통치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참된 공평과 의는 성신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고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화평의 집을 이루심 (18)

  다시는 전쟁이 없고 원수가 없고 마귀가 없는 새 시대이니 모든 집은 화평으로 이루어지고 부락마다 조용히 쉬는 안식의 처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화평의 집을 이루지 않고는 절대로 축복을 나리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평의 집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련을 통과시켜서 성신 받은 종들로 말미암아 화평한 집을 이루므로 무한한 축복이 충만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참된 화평은 성신의 역사를 받은 자만 가지게 되고 성신의 역사를 받은 자라야 화평의 나라를 이루게 된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화평의 집을 이루기 위하여 악의 세력을 들어서 쓰시는 일도 있었다. 알곡을 모으기 위하여 막대기로 두드리고 키로 까불 듯이 인간 종말에 악의 세력이 일어나서 큰 환란이 있는 것은 여기에서 남은 자로 화평의 집을 이루자는 목적이다.

 

  4. 파괴시키고 복을 누리게 하심 (19~20)

  지금 이렇게 부패한 죄악의 도성을 그냥 두고 평안한 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악의 도성은 완전히 파괴시키고 남은 자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성신을 부어 주어 그 인격을 이루어 놓은 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는 일에 강권 역사를 나리고 계시는 것이다.

 

 

문서 운동과 승리

- 합 2:1~8 -

 

  인류 종말의 큰 역사는 문서 운동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과학 문명에서 큰 효과를 거둘 일은 문서운동이다.  

  첫째 : 교통이 자유롭게 된 일이다.

  둘째 : 누구든지 글을 볼 수 있는 문화 발전을 가져온 일이다.

  셋째 : 인쇄 기술이 극도로 발달되어서 얼마든지 세계적인 문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박국 선지에게 인간 종말의 묵시가 나타날 때에 큰 시련이 올 것을 1장에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인심이 악화되게도 하시고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오게도 하시고 세계 사람이 혼란에 빠지게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심 악화와 북방으로부터 오는 환란과 세계적인 혼란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문서 운동을 하라는 묵시를 보여줄 적에 문서운동과 승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심 (1~2)

  지금 우리가 해야할 급선 문제는 정한 때의 묵시를 모든 사람이 무슨 뜻인줄 알도록 명백히 판에 새겨 읽어보게 해야 한다. 공산당은 세계적인 문서 운동에 30억불이라는 돈을 소비한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 기독교가 이 시대 사람에게 읽어보고 깨닫게 하는 문서 운동이 없다는 것은 큰 일이다. 이때에 기독교는 새로운 진리 운동을 하되 이 시대 사람이 읽어서 깨닫고 옳은 사상과 옳은 진리 노선을 찾도록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지금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하는 문서 운동은 이 시대의 빛이 될 수 없고 이때에 하여야 할 묵시가 얼마든지 성경에 있으니 이것을 명백히 알도록 할 책임은 이 사람에게 사명으로 왔다. 이 사람 혼자서 1년간 1,000페이지의 글을 입으로 불러서 문서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전부가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매일 9시간씩 수도 학과를 공부시키고 서울 새일 중앙 교회를 목회 하면서 달마다 1주간씩 부흥 집회를 하고 1,000 페이지의 책자를 발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사명이 확실하다. 1년간 월간지를 발행하고 보니 얼마든지 이 시대의 비밀이 성경 안에 차 있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신앙 동지 여러분들은 달려가면서도 읽어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합심하여 협력이 있기를 바란다.

 

  2.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됨 (3~4)

  이날까지는 죄인을 부르는 일을 하였지만 종말의 문서 운동은 의인은 믿고 살길을 찾을 것이요, 악인들은 오히려 이것을 비방하게 된다. 교파를 막론하고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의 묵시의 비밀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살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는 의로운 사람들을 무장시키기 위하여 묵시의 뜻을 명백히 알도록 문서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니 죄인들을 부르는 일에 중점을 두었지만 진노의 날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믿고 살게 하기 위하여 문서 운동을 하되 명백히 알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3. 각성을 받게 하므로 승리함 (7)

  문서 운동을 해서 이 글을 읽고 각성을 받는 자라면 능히 원수를 이길 용사가 될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보고 읽고 해도 모르는데 읽기만 하여도 각성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격이 올라간 자인 것이다. 문서 운동이 있으므로 각 나라에 숨은 성도들이 읽어보고 깨닫고 나오게 되어 교파를 초월한 부흥단이 나오는 것이다. 부흥이라는 것은 자던 잠을 깨어서 일어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기독교 종말에 읽고 깨닫는 자는 많은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이다.

 

  4.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승리하게 됨 (8)

  재앙의 날에 남은 자라는 것은 권세를 받은 종들을 가르쳤다.  누구든지 문서 운동을 일으킬 때에 깨닫고 나오는 자는 용사의 인격을 가지고 주의 재림을 맞이할 때까지 하나같이 크게 역사할 종들이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마지막 환란에서 남은 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환란에 빠져 북방 세력에게 밟히는데 밟히지 않고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은 새 시대를 정복할 신앙 용사이기 때문이다.

 

  결    론

  기독교 종말의 문서 운동은 누구든지 다 읽어볼 수 있는 문서 운동이다. 이 문서 운동이 있은 다음에 세계적인 심판이 오는 것이다. 이때에 남을 자는 3:17과 같이 나가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가 되자

- 골 3:15~17 -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나 그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되므로서 바로 행하는 열매가 있게 된다. 인간의 정치나 도덕은 마음의 평강이 없이도 행해 나갈 수가 있으나 기독교 신앙 세계에 있어서는 마음의 평강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고, 전부가 외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감사하는 자가 됨 (15)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만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생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일하게 된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에 온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할 때에 항상 감사하는 생활에서 그 날 그 날의 인정받는 일이 있으므로 무엇이나 축복을 받는 열매 있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나뭇가지가 진액이 있으므로 자동적으로 열매가 맺어지듯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에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라고 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평강을 주신다는 뜻이 있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관하는 사람이 되려면 땅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성신을 받고 그 인도를 따라 가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풍성히 거하는 자 (16)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할 때에 가르치는 일이나 권면하는 일이나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일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맡기는 동시에 말씀을 마음에 충만케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가르치는 일이나 권면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이 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할 때에 모든 움직이는 전체가 말씀 안에서 움직이게 되므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기계가 움직이는 것은 자기 힘으로가 아니고, 기름의 힘을 통하여 움직이는 것과 같다. 우리의 활동은 말씀이 충만한 가운데서 움직일 때에 말씀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므로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는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주의 종이라 하여도 말씀이 충만치 못하면 그 사람은 기름이 없는 기계와 다름이 없다.

 

  3.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 (17)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것도 받을 권리가 없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얼마든지 하나님께 받을 특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가 명예나 주권을 버리고, 예수의 이름으로만 행하는 인격이 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게 되므로 예수 이름의 권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늘 위에나 땅 위의 모든 일에는 예수의 이름이 없이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니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는 백전백승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자를 말한다.

  첫째 :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만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는 인간의 어떤 도덕적 행위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은 죄 중에 큰 죄가 될 것이니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다고 자랑하는 자라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이다.

  둘째 : 자기의 어떤 영광을 바라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이다.

  셋째 : 자기의 일을 생각지 않고, 주님의 일만을 생각하고 나가는 자라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이다. 이러한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자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사단의 세력이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생활을 한다면 일생 동안 사단의 종이니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할 때에 일생 동안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생활이니 얼마나 복된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

- 시 8:1~9 -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영광을 좋아하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아름다운 일이며 어떠한 것이 영광이 되는 일인지를 바로 아는 자는 심히 적다.  

  어떠한 일이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 이기게 하는 일 (1~2)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린아이와 같이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서 원수를 이기게 하여 아름답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역사 하실 때에도 자신이 약한 자로 나타나서 권능으로 승리하셨고 모든 제자들도 권능을 주어서 승리하게 하시므로써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도 하시고 또는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신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간 자체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주의 권능이 같이 하므로만 미와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인간이 볼 때에 강한 자를 들어서 쓰는 것이요,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린아이 같이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서 쓰시는 것이다. 약한 자를 들어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서 누구나 당신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들어 쓰시되 말씀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인간이 볼 때는 약한 자이며,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자는 인간이 볼 때에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이나 끝이나 꼭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는 종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미약한 사람이지만 권능으로 원수를 이기게 된다.

 

  2. 조물주께서 권고하시는 일 (3~4)

  조물주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기뻐하시는 동시에 아름다움과 영광을 위하여 친히 권고하시는 역사를 하신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권고하실 때에 미와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권고하지 않으실 때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사30:1~5).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고 말씀에 떠는 자는 권고할 때에 극도로 아름다운 영광을 본다는 것을 이사야 66장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고를 받으려면 마음이 가난한 동시에 심령으로 부족을 통회하고 말씀에 떠는 자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3. 지극히 낮은 데서 존귀로 관을 쓰게 되는 일 (5~9)

  주님께서는 세상에 탄생할 때에도 낮은 자리를 택하셨고 장성할 때도 역사할 때에도 낮은 자리를 택하셨다. 주님께서 낮은 자를 위하여 역사할 때에 죄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제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은 나사렛 목수 예수가 만 왕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높은 데서 낮은 자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은 화를 받을 일이지만 낮은 데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 끝을 맺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일은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아름답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에는 영광을 나타낼 사람을 극도로 낮은 자리에 두고 나중에 존귀로 관을 쓰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를 인간이 알게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극도로 높아지게 하는 것이 진리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역사하기 떄문이다. 겸손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어찌할 수가 없어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하여 낮은 자리를 택하는 것이 영광을 받을 일이다.

 

  결    론

  인간에게 미와 영광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요 이것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 능력과 권능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약한데서 강자를 이기게 되고 지극히 낮은 데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

- 사 34:16 -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들어서 쓰는데 있어서는 책이 없이 역사하신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되어진 일은 책을 이루기 위한 역사이라면 신약 시대에는 그 책대로 행하는 역사이다.  

  완전한 책이라는 것은 세 가지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첫째 : 완전한 역사가 있어야 하고,

  둘째 : 완전한 법이 있어야 하고,  

  셋째 : 완전한 예언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책에는 완전한 역사가 있는 동시에 그 책을 법대로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하였고 앞으로 될 일을 기록하도록 한 것이다. 선지 시대에 된 일은 그때의 역사도 여호와의 책이요, 그 때의 법과 예언이 완전히 기록된 것이 여호와의 책인 것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기록하는 사명 (계10:7)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복음을 전하시었다고 하셨다. 이것은 그 복음을 선지자 자신이 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한 복음을 받아 기록했다는 뜻이다. 복음을 받아 기록하는 선지 시대에 되어지는 일은 선지들이 받아 기록한 복음이 이루어질 때에 될 일을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사46:10).  

  하나님은 언제나 글을 기록할 사람들을 그 글을 기록할 수 있는 위치에다 놓고 그 때에 당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동시에 앞으로 될 일을 복음으로 기록하도록 한 것이 선지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확증적인 언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해 주기 위한 목적이다.  너무나 어리석고 몽매한 인간들에게 아무런 증거가 없이 말씀만 하면 도저히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증거를 보여주면서 여호와의 책을 기록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2. 전하는 사명 (사42:6)

  이날까지의 기독교 사명은 선지서를 전해주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날까지 모든 종들이 이방의 빛이 되도록 역사한 것은 선지서에 이방의 빛이 된다는 정도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 전체의 책을 전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는 것은 빛이다. 어두운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받고 빛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녀가 되게 하는 역사는 선지서에 기록된 대로 역사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24:14를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했다.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복음이다(사9:1~2).

 

  3. 자세히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사명 (계1:3, 계22:7, 17~19, 사34:16)

  오늘날 기독교는 선지서를 자세히 읽어서 깨달아 증거하므로 듣는 자가 자세히 듣고 환란과 재앙을 면하게 되는 사명을 해야할 때이다. 지금은 선지서의 주석이 필요 없고 선지서의 본문대로 자세히 읽고 그 경고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기를 깨닫고 자기의 부패를 깨닫고 돌진해 나갈 노선을 깨달을 때가 왔다.  

  선지서를 기록할 때에 증거로 보여준 일은 오늘에 세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완전히 끝을 맺는 심판기로 들어가는 것을 밝히 알아 다시 예언해야 될 시기가 이때이다. 계10:10~11에 사도 요한은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계시로 받았지만 11:1이하를 보면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을 틀림없이 가르쳤다. 왜냐하면 15절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한 것을 보아서 세상에 그리스도 왕국이 이루어질 때에 일어날 역사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귀 미혹이 극도로 강한 때가 올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책에 빠짐이 없이 기록하게 하신 것은 천국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쳤다. 미혹이 많을 것을 세밀히 가르쳐 자세히 읽어보면 미혹도 받지 않고 환란과 재앙 속에서 살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여호와의 책이다.  

  만일 미혹이 많은 이때에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야만 될 형편에 있도록 여호와의 책에 대강 기록되었다면 현 교회는 큰 위기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과 선지서를 자세히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을 할 수 있고 마귀의 흑암을 뚫고 나가는 봉홧불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말 저말 듣지 말고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는 데서 짝을 맞추어 분명히 증거할 수 있고 얼마든지 여호와의 변론을 가지고 외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문서를 기록하는 법이 있게 하고 그 법을 따라서 준행하시는 심판자이시다. 그러므로 율법에 기록한대로 아들에게 징벌을 나리시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선지서에 기록한 대로 세상에 징벌을 나리시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때는 이때인 것이다.

 

 

사명자의 완전 결합

- 빌 4:1~3 -

 

  세상의 많은 단체가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단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시 어떤 인물이나 사업이나 정치적인 권리로 뭉쳐진 단체라는 것은 한 때에 결합은 될 수 있으나, 영원한 단체를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된 사명자 결합이라는 것은 어느 정권이 피해를 줄 수 없으니 이 단체야말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단체이다. 이 단체에 있어서 어떠하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1. 형제를 참으로 사랑하는 단체 (1)

  참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단체는 참으로 형제를 사모하되 자기의 면류관 같이 여기는 마음에서 사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는 형제 하나를 살려 주는 것을 자기 면류관으로 아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사모할 때에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사명자는 형제를 자기의 면류관 같이 아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이것은 형제 하나가 완전한 축복을 받는 것을 자기가 받는 것같이 여기는 마음이다. 예를 든다면 참 사랑이 있는 부모가 자기 자식이 성공하는 것을 자기 면류관 같이 아는 심정을 가진 것은 자기 혈통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형제가 큰복을 받는 것이 자기의 면류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영적으로 한 계통의 연결이 있는 증거이다.

  지금 교회가 믿는 형제를 자기 면류관 같이 아는 심정이 없다면 그 교회는 자동적으로 완전한 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아무런 열매를 나타내지 못하는 죽은 나무같이 되는 것이다.

 

  2. 마음이 하나가 된 단체 (2)

  인간의 단체라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한 단체를 이룬 것 같으나 마음이 하나가 된 단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단체라는 것은 외형적인 조직을 이루었다는 것보다도 자동적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는 단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진리의 사랑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한 예배나 사업은 벌써 실패를 당한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있어서는 마음에 숨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성신의 불의 역사를 체험한 자로서 하나같이 성결하고, 하나같이 평화롭고, 하나같이 담대하고, 하나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므로 어떤 환란이나 고통이 온다 하여도 그 단체는 해산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환란과 고통이 올 때에 하나같이 마음에서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3. 함께 힘쓰는 단체 (3)

  사명자라는 것은 복음을 위하여 힘쓰는 자이다. 사명자는 불타는 마음에서 나오는 열심으로 어떤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함께 힘을 쓰는 단체이니 남녀의 구별을 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부녀들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다면 바울이 복음 운동을 할 때에 부녀들이 함께 힘써 주므로 대승리를 보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함께 힘쓰는 단체가 없이는 아무리 큰 사명자라도 일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함께 힘쓰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종을 세우신 다음에 그밖에 사명자들은 다 함께 힘쓰도록 역사를 나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을 무시한다든지 반대한다는 것은 주님을 반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종을 대표로 세웠는데 함께 힘쓰지 않는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주님의 일을 파괴시키는 일이므로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함께 힘쓰는 종들을 하나같이 돕는 마음으로 힘을 쓸 적에 큰 역사는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종이 생각하기를 주님이 세운 종은 주님이 돕는다고 말하면서 도와줄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주님께 속한 마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같이 합심하여 힘쓰는 동시에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될 때에 대승리를 이루는 단체가 되는 것이다.

  둘째 : 각각 자기의 사명 분야에서 힘써야 한다. 어떤 종이 힘은 쓰지만, 자기 사명이 아닌 일에 힘을 쓴다는 것은 위법이 된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전쟁을 할 때에 각각 자기가 맡은 부서를 하지 않고, 등한히 안다면 엄벌에 처하는 것같이 주님께서도 자기가 맡은 사명 분야를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탈선된 일로 보시는 것이다. 과거에 사울 왕이 자기 사명 분야를 벗어나서 일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신은 그를 버렸던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역사할 때에 단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려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빌립보 성에 이르러 제 일차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결합된 단체를 이루어 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하는 일이 유럽에서 크게 일어나 오늘날 세계적인 교회 확장을 보게 된 것이다.

 

 

지혜로운 일과 인간 종말

- 마 7:24~27 -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은 종말에 가서야 알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은 현재의 것만을 보고 머리를 쓰고 기술을 부리고 자기의 전생을 바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하는 일의 종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성서에 비추어 본다면 어리석은 자의 하나인 동시에 가장 불행스러운 생활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수고가 오히려 불행을 이루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일과 인간 종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들어서 증거한다.

 

  1.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마13:23)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생활이 있는 자이다. 우리 인간의 지혜라는 것은 과학에 국한된 지혜이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물질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일 밖에는 더 발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물과 불을 바로 쓸 때에 땅으로 달릴 수도 있고 공중으로 나를 수도 있고 사람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모든 일을 인간 노력으로 하는 것 보다도 물과 불의 힘을 통하여 사용하는 지혜이다. 과거 사람들은 물과 불로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 쓰는 것 뿐이었으나 오늘날 인간들의 지혜는 자기의 힘으로 하지 않고 물과 불을 사용하여 그 몸까지라도 이 힘에 의하여 활동하고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 것을 알게 되고,

  둘째 : 인간의 할 일이 무엇인 것을 깨닫게 되고,

  셋째 : 앞으로 나갈 방향이 어느 길이 가장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동시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역사의 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깨닫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 정신 작용으로 깨닫는 일이 있고 영적으로 깨닫는 일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영의 사람이 되므로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신의 교통을 받게 되니 신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말씀을 세계적으로 전한 다음에 바로 깨닫는 자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2.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 (계20:4)

  가장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증거 하다가 목숨을 바친 자이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자 같으나 가장 복되고 영화로운 자는 말씀을 깨달아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던 자이다. 왜냐하면 세세 왕권을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가 평안히 죽는 사람을 복 있는 자라고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가장 어리석은 자가 부요한 생활을 하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치 있는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기 위하여 부모와 처자와 전토를 버리고 목숨까지 버린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집을 짓는 건축자가 영구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영구한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집을 짓듯이 영원한 세세 왕권을 목적으로 하고 생애를 바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일을 하는 자이다.

 

  3. 주님 오실 때까지 진리를 바로 전하는 자 (마24:45~47)

  이미 죽은 자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숨을 바친 자가 복 있는 자요 살아서 주님을 영접할 자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진리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가장 지혜로운 자는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재림시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종은 더욱 지혜로운 종이 되어서 일을 하여야만 된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주님 재림시에 지혜롭게 행하는 종이라고 모든 선지는 가르쳤다. 그러므로 성경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 말씀은 진노의 날에 지혜롭게 일을 하다가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결    론

  가장 지혜로운 자는 말씀을 듣고 행한 자라고 주님은 가르쳤다. 아무리 어리석은 인간이라도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면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이니 어리석은 인간들은 멸시를 하지만 가장 큰 축복을 인간 종말에 받을 자이다.

 

 

푸른 나무 같은 인격

- 시 1:1~6 -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자를 푸른 나무 같이 소성케 하여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처음에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작은 데서 큰 데로, 약한데서 강한 데로, 더러운 데서 성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을 가진 자의 생활을 본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1. 성별된 생활 (1)

  신앙이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사상 정신 마음이 성결하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게 된다. 이것은 억지로가 아니요 사상, 정신, 마음이 그러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불의한 일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면 자신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성별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도덕이 아니요, 완전 성결을 가진 인격에서 이루어진 열매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악한 자의 꾀에 귀를 기울여 들어 따라 간다든지 그러한 자와 같이 교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성결의 인격을 소유할 수가 없다.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은 자동적으로 성별된 생활을 하게 된다. 푸른 나무가 아무리 더러운 땅에 섰다 하여도 빛과 향기를 자동적으로 성별되게 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죄가 많은 세상에서라도 물들지 않고 사는 생활이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이다.

 

  2. 묵상의 생활 (2)

  누구든지 참된 진리가 마음에 있는 자는 자동적으로 묵상 생활을 많이 하게 된다. 푸른 나무가 소리도 없이 잠잠히 소성 하듯이 진리가 마음에 충만한 자는 진리 안에서 산 체험이 있으므로 그 진리를 묵상할 때에 그 마음에는 항상 진리대로 역사하는 신의 감화가 같이하게 된다. 항상 하나님께로 이런 힘이 오게 될 때에 인간을 초월한 힘의 세계에서 초인간적인 인격으로 나날이 소성하는 미의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3. 형통의 생활 (3)

  하나님은 자유의 신이신 동시에 당신을 순종하는 자에게 의를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신이시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다 순조롭게 되므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아무리 악마의 세력이 강하게 대적한다 하여도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을 가진 자에게는 피해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4. 인정받는 생활 (4~6)

  악한 자는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하는 자요, 의인은 자기 부족을 느끼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하는 자이니 이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역사 하시므로 모든 일에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인격이 아니라면 아무런 열매 없는 인생이 된다. 이러한 자가 아무리 열심으로 일을 한다 하여도 그 일은 결국 심판을 받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왕권의 상급을 받는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조물주 하나님께 인정을 받도록 사는 생활이 있어야만 된다. 산 생명이 있는 나무가 시냇가에 서서 푸른빛을 계속으로 내며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생활이라야 나날이 소성해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참된 진리를 주야로 묵상하는 양심을 떠나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라는 것은 기계가 아니고 자유롭게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다. 동물은 큰 차별을 가지게 되는 일이 없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악인과 의인으로 큰 차별을 가지게 된다. 악인이라는 것은 동물보다도 못한 인격이 되고 의인이라는 것은 나날이 소성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원한 왕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속히 될 일을 보여준 천사의 지시

- 계 1:1~3 -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빠짐없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시었고 또 다시 천사를 보내어 인간 종말에 될 일을 지시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 계시록을 보여준 것은 모든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을 변론할 수 있는 책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예를 든다면 기계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빠짐없이 모든 기계를 만들어 놓고 그 기계를 어떻게 맞춰서 어떻게 돌려야 된다는 것을 기록한 책이 있고 그 책을 학과적으로 분명히 공부한 자가 그 기계를 맞추어 돌릴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빠짐없이 변론한 말씀을 종말의 성도로서 그 변론의 비밀을 바로 증거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려면 천사를 보내어 지시한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은 종말관의 진리를 변론할 수 있는 지식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이 없다면 사도들이 선지서에 의하여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증거한 것 외에 진리를 종말의 성도로서 도저히 증거 할 수가 없다. 사도들이 선지서의 예언이 응해진 것을 증거한 것 외에 모든 선지 예언에 숨은 비밀을 다 증거 해야 할 재앙기에 조금도 혼선이 없이 여호와의 책을 증거할 수 있는 정도로 계시록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 종말의 변화성도로서 완전한 무장을 갖추는데 있어서는 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쓴 시련을 통과한 자가 모든 선지의 예언을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가게 된다(계10:7~11).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보고 기록한 것은 종말에 대표 적인 사람이 다시 예언하게 되는 영계는 어떠하다는 것을 계시로 보여준 것이니 계시록을 꿀같이 먹은 자가 아니고는 최고 영계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 구약과 신약에 대하여 잘 분석을 해야 한다. 신약은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사명자로서 없어서는 안될 책이다. 모든 선지 예언이 초림의 주를 예언했지만 4복음과 편지서가 없다면 세계 만방에 십자가 부활에 대한 진리를 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책에 기록한 말씀만 가지고는 은혜시대의 종으로서 가르칠 진리가 완전히 있지 않고 주님이 탄생할 일, 십자가에 죽으실 일, 부활 승천할 일, 성신 강림할 일을 예언으로 간단히 말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셔서 그 예언대로 역사 하기 위하여 친히 가르치고 행하신 일이 4복음인 동시에 편지서는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체험한 자들이 변론적으로 이미 깨달은 일이나 체험한 일을 비롯하여 은혜 시대의 성도로서 가져야 될 신앙 지식을 바로 변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읽으므로 누구든지 그들이 가졌던 신앙을 가지게 되고 그들이 받은 은혜를 같이 받게 되고 그들이 받은 인격을 같이 받게 되고 그들이 전하던 그 말씀을 같이 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 시대의 진리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전 세계 인류에게 재앙을 나릴 때에 하나님의 종과 자녀들이 그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일을 말했다. 사람이 미혹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치고 환란과 재앙이 온다 해도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선지서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말씀한 것인데 이것을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전할 수가 없으므로 계시록을 천사를 통하여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변론을 증거할 종들로서 조금도 혼선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계시를 보여준 것이니 계시록이 없이는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이 여호와의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4복음과 편지서는 은혜 시대의 종들이 이루어지는 일을 바로 증거 하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요 계시록은 마지막 재앙의 날에 이루어질 일을 그 날에 성도들이 바로 증거 하기 위하여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록을 바로 증거하는 종이 되려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 진리의 대표적인 종이 있어야 되는데 있어서는 그 종을 통하여 진리의 척량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계11:1).

  2.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세를 받아야 한다(계11:3).

  3.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어야 한다(계11:4).

 

  결    론

  그러므로 은혜 시대의 종으로서 진리로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일, 권세를 받아 하나가 되는 일, 촛대교회를 이루어서 하나가 되는 일, 이 세 가지가 있으므로 환란과 재앙의 날에 남은 종 남은 백성 남은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성도의 나라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되므로 증거 하던 종은 들림을 받고 지상 통치를 위하여 주님과 성도들이 세상에 올 때는 말세 증인의 예언대로 순종치 않는 자는 전멸을 당하게 되므로 세상은 성도 통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

- 미 4:1~3 -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종말의 진리 운동을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로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께서 생령된 사람에게 지상 축복을 가르치는 것을 야곱의 도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한 것은 이 세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창12:3, 22:18, 26:24, 28:14).

  야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의 모든 선지에게 묵시의 글을 예언으로 쓰게 하실 때에 소위 이스라엘이라 하면서 이방 신을 섬기고 이방 사람과 혼혈을 하는 일과 속화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선지들을 박해할 때에 하나님은 핍박을 당하는 선지들에게 왕권을 주는 동시에 그 왕권이 세계를 통일하는 승리가 있는 것을 언약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될 것이 아니고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 나게 되므로 임마누엘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데 있어서는 어느 때에 복을 받느냐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미가 4장에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나타나서 언약을 세운 말씀을 중심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는 것이다.  

  이제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에 대하여 본 성경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적인 교회 확장이 될 때에 가르치게 됨 (1)

  미가가 이 묵시를 기록할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만 있었지만 미가가 받은 야곱의 도를 만민에게 가르칠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 작은 산 위에 굳게 서는 일이 있으므로 민족들이 그 성전으로 들어올 것을 말했다. 사2:2을 보면 성전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며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거기로 모여든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 확장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대 확장을 보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까지는 모든 족속 중에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로 드리는 역사로 교회가 선 것이다(계5:9~10).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 피로 산 백성이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다고 하였으니 지금은 누구든지 피로 산 백성은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으므로 기도할 수 있는 야곱이가 되는 것이다. 야곱이라는 것은 모태로부터 택한 자인데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졌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엡3:6, 갈3:29).

  오늘날까지는 천국 복음을 전하므로 모든 사람이 영혼 구원을 받았지만 야곱의 도라는 것은 야곱의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동시에 야곱의 씨가 세상에 편만해지는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니 지상에서 야곱의 자손이 복을 누리는 것을 야곱의 도라는 것이다. 이 야곱의 왕국이라는 것은 육적 이스라엘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고 어느 나라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새 시대에 들어가는 야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미5:7).

 

  2. 여호와의 산이 나타남 (2)

  이 여호와의 산이라는 것은 종말의 진리가 나타난 산을 가르쳤다. 이날까지 야곱의 도를 가르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호와의 산이 나타나는 동시에 성전에서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사명자가 나타날 것을 가르쳤다.  

  이 산이라는 것은 어떠한 곳에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성경을 들어서 말할 수 있다. 사40:9을 보면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고 하였고, 사24:15을 보면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고 16절에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한다고 하였다.

  사25:6~7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이 그 가리웠던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임이라고 하였고 10절에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리니 원수의 세력이 다 망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26장을 보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들을 가르쳤다. 그러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산은 동방 바다 옆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불이 우리 나라 새일수도원이 깃들인 계룡산에 나타나서 불로 산을 덮고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이 1964년 9월 24일에 임하여 그날부터 성전을 짓고 모든 서책을 기록할 수 있도록 수도원 원장에게 말씀이 임한 것은 분명히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학과가 되었다. 지금도 얼마든지 종말관의 진리가 서책으로 나오고 있으니 일점 일획도 사람의 생각으로 기록하지 않고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은 세계를 정복할 진리 운동이 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지금은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비방을 하고 있지만 누구든지 새일 수도원 강단에 임한 서책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깨닫게 될 줄 믿는다. 분명히 이 진리 운동이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3. 강한 이방을 판결하고 평화 왕국이 옴 (3)

  계시록의 붉은 용, 붉은 짐승의 세력이 심판의 대상자인데 누구든지 그 짐승의 표를 받으면 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나 여기에 강한 이방을 판결한다는 말씀이 동일한 뜻이다. 역사적인 강대국은 다 강한 이방이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 파사, 헬라, 로마 오늘에 와서 기독교를 대적하고 나오는 공산 국가 쏘련이다. 강한 이방이 역사적으로 내려왔지만 심판기의 강한 이방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고 심판으로만 없어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강한 북방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이 모든 선지서에 하나같이 말한 종말의 경고이다.

  우리가 이방 세력이 강해진다고 해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이방과 같이 망할 행동이 된다. 완전 평화라는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이방세력이 다 없어짐으로만 전쟁이 없는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전쟁은 영토를 다투는 전쟁이므로 이방이 이방과 싸울 때에 역사적인 강국이라는 명칭이 내려왔지만 인류 종말의 전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계를 통일하는데 있어서는 이방적인 세력이 전멸되는 재앙 심판이 오므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는 것이다.  

 

  결    론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는 부활성도가 전하는 천국 복음이 아니고 변화성도가 전하는 심판의 경고의 다림줄이 된다. 모든 선지는 야곱의 왕국이 세계 통일할 것을 묵시로 보았지만 변화성도는 이것을 나가 전하는 역사를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라고 한 것이다. 천국 복음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전한 복음이요,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이라고 계10:7, 11:15에 말했다.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

- 마 12:22~37 -

 

  사람의 입이 여러 가지로 죄를 많이 짓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혼선시키는 말을 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와가 마귀에게 미혹을 받을 때에 당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는 말을 할 때에 마귀에게 먹힘을 당할 첫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둘째 : 남을 판단하는 말이다.

이것은 경솔히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말하는 일인데 망령된 말이 되므로 자기가 스스로 망하는 일이 있게 된다. 미리암이 모세를 판단하다가 자신이 저주를 받게 된 거와 같이 되는 일이다.  

  셋째 : 성신을 거역하는 말인데 이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성신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하는 말이다 (22~25)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칠 때에 바리새 교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 말이 성신을 거역하는 말이다. 이것은 직접 성신의 역사를 보고도 짐짓 반대하기 위하여 마귀의 역사라고 말하는 일인데, 이런 자들은 금생 내생에 사함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남을 함부로 마귀라고 하는 것은 가장 크고도 두려운 말이다. 우리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진리를 가감하는 자에 대해서는 진리가 혼선되지 않게 분명히 말해야 된다. 하와는 말씀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데서 마귀에게 미혹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분명히 밝혀 본문대로 말해서 이 말씀에 가감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 외에는 공연히 남이 역사하는 것을 마귀라고 한다는 것은 삼가 조심할 일이다.

 

  2. 참된 종을 유혹하는 자라고 하는 말이다 (마27:62~6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사람을 유혹하는 거짓 선지라고 정죄의 말을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이럴 수가 없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예수님의 하는 일을 유혹하는 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네가 볼 때에 어리석은 죄인들이 따라가서 어리석어서 미혹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자기네 정통 교파가 되는 바리새교는 이런 일에 절대로 유혹을 받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이다(요7:12).   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니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던 것이다(47~49). 왜냐하면 율법에 어긋난 일인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길을 가고 죄인의 집에 함부로 가는 것을 보면 율법을 모르는 것이라고 판단을 나렸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신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소위 학사, 박사라는 지위에서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볼 때에 떠들고 날뛰는 것은 다 마귀 미혹이라고 보는 자들이 있다. 아무런 것도 체험을 못한 교만한 자들이 성신의 체험을 받는 일을 미혹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말이다 (행24:5)

  소위 정통파라는 자들이 자기네 교파를 지지하지 않으면 덮어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은 성신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교인들이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정죄한 이유는 자기 교파에 있던 사람이 자기 교파를 거역하고 나갔다는 조건에서 정죄했던 것이다.

 

  4. 의인을 죄인이라고 하는 말이다 (요9:24~25)

  바리새교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인정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의 정한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였다. 오늘날에 와서 함부로 남을 죄인이라고 판단을 나리며 자기의 주권에 순종치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는 것은 성신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이라고 인정을 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교만한 사람들이며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성신을 거역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 누구든지 말로 성신을 거역하면 금생과 내생에 사함이 없다는 것을 볼 때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네 말이 네 죄를 정하고 네 말이 너를 의롭다 한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을 하고 성신을 거역하는 말을 할까봐 조심해야 되는데 함부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마12:32~37).

  누구든지 마음에 성신이 충만한 자는 말을 할 때에 성신으로 말을 하게 되고, 사단이 충만한 자는 말을 할 때에 사단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니 함부로 남을 마귀라, 미혹하는 자라, 이단이라, 죄인이라 하는 말은 사단이가 많이 하는 것이다.

 

  결    론

  세상에 제일 악한 자는 성신을 거역하는 말을 하는 자이다. 이 말은 대부분 교회 안의 지도자 측에서 많이 한다. 이것은 교회를 망치는 일이 된다.

 

 

복음에서 교제하는 인격

- 빌 1:3~11 -

 

  인생이라는 것은 교제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악인은 악인을 교제하고, 의인은 의인을 교제하고, 부자는 부자를 교제하고, 빈자는 빈자를 교제하는 것이 사회 생활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으로 교제하는 사회는 아니다.

  복음으로 교제하는 인격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간구하는 자가 됨 (3~4)

  세상에 신자 친구가 있다 하여도 친구가 복 받기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는 심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교제는 항상 간구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이 볼 때에 항상 남이 복 받기를 간구하는 사람을 참된 종으로 인정한다. 만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남이 복 받게 하기 위하여 간구하는 심정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외식하는 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도 항상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성도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2. 소망의 확신을 가지는 자 (6)

  세상의 교제라는 것은 임시 그 때에 따라서 교제를 하는 일이 많지만 복음적인 교제라는 것은 소망의 확신을 가지는 데서 서로 참고 기다리면서 교제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광산에서 광물을 찾는 광부들이 좋은 광물이 있는 것이 확신이 될 때에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희생을 해 가면서 고난을 극복하듯이 복음으로 교제하는 사람도 주의 날에 확신을 소망하는데서 서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교자의 동무적인 교제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 많은 친구가 있지만 주의 날에 설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면 가장 귀한 친구인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교제가 되기 때문이다.

 

  3.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됨 (7)

  세상에 교제라는 것은 한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든지 한 직장에서 재미있게 일을 한다든지 학생이 한 책상에서 공부를 하는 일이 있을 때에 서로 깊이 사귀어지는 것은 자연적으로 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복음으로 교제하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은혜를 함께 항상 받게 될 때에 참된 교제를 은혜 속에서 하게 되므로 그 진리를 위하여 함께 싸워 나가게 되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는 자 (8)

  우리의 교제는 기분이나 오락이나 문학적이 아니고 어떤 세력을 초월해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나가 되는 교제이다. 이것은 혈통적인 관계보다도 영적 관계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교제가 된다. 세상에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마음이 꼭 하나가 되기는 어렵지만 복음적 교제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나가 되는 교제이다.

 

  5. 사랑과 지식을 가진 자 (9~11)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진리의 지식을 받았으므로 점점 진보하는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장성하여 다 같이 왕권을 받는 교제가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서로 발전이 있으므로 끝까지 열매를 맺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교제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끝까지 나가지 못하고 신앙이 식어진다면 자동적으로 완전한 교제를 이룰 수 없고 서로 떠나게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가 자랄 때에 같이 자라는 가지는 같이 열매를 맺을 것이로되 진액을 받지 못하고 말라지는 가지는 자동적으로 찍힘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적인 교제도 그와 같은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생에게 복음을 주고 복음으로 교제한 단체를 이루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것은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교제가 될 때에 복음의 자체는 그리스도이므로 그리스도의 자체가 되는 단체가 이루어지므로 복음대로 활동하는 하나님과 복음으로 교제하는 단체에 하나가 되는 것을 성도의 나라라는 것이다.

 

 

 

 장년 공과편 - 주님의 승천과 성신 강림

 

  총    론

  우리 성도들은 주의 승천과 성신 강림에 대한 진리를 깊이 알아야 한다. 주님이 승천한 이유가 있고 성신이 강림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 그 이유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주님의 승천과 성도의 유익

- 요 16:5~13,  요절:7 -

 

  서    론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의 몸으로 인간의 죄값으로 받은 고통을 다 맛보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성도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만일 승천이 없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까지 계신다면 도저히 왕국 건설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신이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승천으로 우리 성도에게 유익 된 점이 무엇인 것을 말한다.

 

  1대지 : 주님의 대행자가 됨 (5~6, 요20:21~23)

  주님을 따라 가면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과 영광스러운 일을 보고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큰 영광이 있을 것을 믿었던 제자들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근심을 하게 되었다. 실지는 근심뿐만 아니라 낙망 중에까지 들어갔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 내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거와 같이 내가 너희를 보낸다고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신 것은 이들을 주님의 대행자로 세상에 보낸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왕국 건설이다. 자기가 부활 승천하므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성신을 주어서 왕국 건설 운동을 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승천이 있으므로만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사명의 특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주님의 승천이 제자들에게 유익이 됨 (7)

  주님의 십자가는 죄를 사하는 것뿐이고 성신이 오시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주님의 대행자로 역사하게 하므로써 왕권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큰 유익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한 집에 여러 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출세하여 동생들이 있는 가정을 떠나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면 그것이 동생 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거와 같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서 대언 기도 하시면서 성신을 보내게 된 것이 예수님의 동생 되는 사명자 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이다.

 

  3대지 : 성신이 오므로 마귀를 이기게 됨 (8~11)

  만일 주님께서 승천하여 성신을 보내지 않으신다면 아무리 죄 사함을 받았다 하여도 마귀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성신이 오셔서 역사하므로 완전한 승리의 역사가 있게 되어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나가게 된다.

 

  4대지 :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므로 (12~13)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는 제자들이 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승천하셔서 성신이 강림하여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에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도 능히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가난한 가정이 있는데 어린 동생들이 많으므로 공부를 할 수가 없는 형편에 있을 때에 맏형 되는 사람이 먼 곳에 가서 얼마든지 동생들이 공부 할 수 있는 학비를 보내 준다면 그 동생들에게는 형이 떠나간 것이 유익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얼마든지 진리를 깊이 깨닫도록 기름 같은 성신을 내리시므로 땅에 있는 우리들이 진리를 통달케 되는 일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요일2:27).

 

  결    론

  가장 복된 일은 주님이 승천하시어 성신을 보내는 일이다. 첫째아담이 범죄하여 이 몸이 흙으로 돌아가므로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없었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므로 그로 말미암아 성신이 내려 모든 사람들이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되므로 이 땅에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다.

 

 

제2과  주님의 승천과 새 출발

- 행 1:6~14,  요절:14 -

 

  서    론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구름을 타고 승천하기까지는 전부가 타락한 인생의 죄의 대가를 짊어진 생활이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할 때부터는 인간의 타락한 생활에서 새 출발을 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주님을 따라 간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 그들의 생활은 새로운 출발이 되지 못하고 육의 사람으로 일시 주님을 따라가던 자들이었으므로 열매 없이 쓰러지고만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승천할 때부터 새로운 출발을 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새 출발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대지 : 시대를 바로 알게 되므로 (6~8)

  주께서 승천하기 전에는 사도들까지라도 시대를 모르고 그 즉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왕이니 이 땅에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눅24:21).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물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사명이 아니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고 저희 보는데서 승천하시었다. 그때야 모든 사람들은 시대를 바로 알고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 죄를 위하여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할 사명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한 기간으로 정하여 그때부터 새로이 출발한 그 사명은 오늘에까지 계속된 것이다.

 

  2대지 : 재림에 대한 것을 알게 되므로 (9~11)

  이날까지 모든 사람은 초림의 주가 오므로 그 즉시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구약 예언서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세계적인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메시야가 오므로 이 세상은 메시야 통치 왕국이 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승천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너희 주가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구름을 타고 올라간 그대로 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고대하고 새로운 출발을 가지게 된 것이다.

 

  3대지 : 한 곳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게 되므로 (12~14)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을 보고 돌아온 120명의 무리들이 한곳에 모여 합심 기도를 하는 일은 이날까지 없었던 일이다. 심지어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까지도 새로운 출발을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오순절 다락방 교회라고 한다.

 

  결    론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서 이 땅에 타락한 인생들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일에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승천이 없다면 타락한 인생은 새로운 출발을 가질 수 없고 영원히 죄 값으로 흑암의 권세 아래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오므로 어느 민족이나 하나같이 삶의 길을 찾게 되었다.

 

 

제3과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신을 보내심

- 행 2:1~13,  요절:4 -

 

  서    론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천국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하는 말씀을 하시었다.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하였고”(마3:2),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하였으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서 천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리라고 말했고(마3:11), 예수님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했다(행1:5).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게 되었다. 성신이 강림하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역사는 완전히 이 땅에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신을 보내시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징조가 나타났다.

 

  1대지 : 다같이 모인 곳에 보내심 (1)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한데 모여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순종하는 무리들은 10일 동안 개인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단체적으로 한곳에 모여 합심 기도를 계속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이 한데 모이지 않고 각각 개인 행동을 취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면 이러한 역사가 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대로 한곳에 모여서 기다릴 때에 성신을 받았던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성신 역사를 내리려고 하여도 땅에 있는 사람들이 합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기 때문이다(행5:32). 성신을 받는 것은 도덕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부족해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받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강한 바람같이 임하였다 (2)

  성신의 역사가 강한 바람같이 온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모든 만물의 생명은 바람이 없이 있을 수 없다.

  바람이 있으므로 호흡이 있고 바람이 없이는 호흡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신의 역사가 없이는 죽은 영들이 다시 소성할 수가 없다.

  둘째 :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통일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신은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고 계신 것이다.

 

  3대지 :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으로 임하였다 (3)

  불이라는 것은 강하게 일어나는 힘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신의 역사가 나리므로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불은 무한의 번창을 할 수 있는 거와 같이 성신도 무한의 역사를 하고 있다. 불이 가는 곳에는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성신의 역사가 임하는 곳에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4대지 : 방안에 성신이 말하게 하는 방언이 나타남 (4~13)

  성신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의 입을 열어서 말하게 하는 것이니 성신의 역사가 없이 방언을 할 수 없다. 방언이라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의 방언이 있고,

  둘째 : 하나님 편에서 비밀을 알려 주는 방언도 있고,

  셋째 : 말씀을 널리 전파하는 방언도 있다.

언제나 성신은 방언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본래 방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다. 바벨탑을 쌓았다가 각 나라 방언이 생긴 것도 사람이 스스로 한 방언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게 하므로 했던 것이다(창11:7). 그러나 다락방 방언은 저주로 임한 방언이 아니고 저주받은 백성들에게 복음을 속히 전하기 위한 방언이었던 것이다.

 

  결    론

  성신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왕권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아 오는 것이니 성신을 받은 자는 마귀를 이기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기독교는 승리의 용사적인 출발을 하여 세계를 정복하게 된 것이다.

 

 

제4과  주의 승천과 교회의 발전

- 행 2:37~47,  요절:41 -

 

  서    론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한 교회도 세워진 일이 없었고 아무런 발전도 없었지만 승천하신 후에 교회 발전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

 

  1대지 : 종 된 자의 발전 (37~38)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아무런 발전이 없이 결국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것으로 결말을 지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도망을 가서 숨었던 제자들도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하는 인격이 이루어졌던 것은 사람으로 볼 때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대중 앞에서 담대히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때에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베드로 앞에 와서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것은 종 된 자의 인격 발전에 큰 증거이다. 그물 한 채를 가지고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앞에 모든 사람들이 찔림을 받고 머리를 숙이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종된 자의 인격 발전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성신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의 종 된 자들이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점점 미약해지고 열매 없는 마른나무같이 되는 것은 성신의 권능을 받지 못한 증거이다. 누구든지 성신의 권능을 받을 적에 사람의 인격 발전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불과 50일 전에는 작은계집 아이에게 떨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하던 베드로의 인격이 이렇게 올라갔다는 것은 교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발전이 되려면 종 된 자의 인격 발전이 있어야 한다.

 

  2대지 : 교회 발전 (39~42)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한 사람도 완전한 신앙에 선 사람이 없었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는 신자가 일어났다는 것은 교회의 큰 발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완전 승리의 열매로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다. 무서운 박해 속에서 기독교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보좌 우편에 계셔서 대언 기도하시는 열매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주님께서 직접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종의 인격을 발전시켜 쓰실 적에 교회 발전은 그때부터 일어난 것이 세계를 정복하는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3대지 : 경제 발전 (43~47)

  교회의 발전이 있는 동시에 경제까지라도 풍성한 축복을 받아 주의 사업에 활발성을 가지고 일하게 되므로 교회는 영, 육이 아울러 생활의 발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부요한 자들이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성도들의 생활 발전을 위하여 도와주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열매인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발전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여 성신의 역사로 되는 것이니 주님께서 승천하심으로서 지금까지 큰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얼마든지 성령의 역사를 나려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제5과  주의 승천과 주의 이름의 영화

- 행 3:6~10, 4:10~12, 29~31,  요절:6 -

 

  서    론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나는 일이 없었지만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역사가 있게 되었다.

 

  1대지 :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걸어감 (행3:6~10)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역사가 있게 하되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에 놀라운 이적 기사가 나타나게 하시었다. 이것은 인생 자체에게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완전 승리의 이름으로 악마의 세력이 물러가는 동시에 병마가 물러가게 된 것이다.

  인간의 질병이라는 것은 죄 값으로 오는 것이니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때에 무슨 병이든지 다 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사람이나 다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때에 기사가 나타나게 한 것은 베드로를 대표적인 종으로 쓴다는 증거를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시어 모든 성도들이 하나같이 베드로 앞에 뭉쳐지도록 하신 것이다. 언제나 시대를 따라 대표적인 종을 신과 같이 쓰되 사람 스스로가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 때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할 때 기사가 있었고 신약 시대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 기사가 있은 것은 구약 때는 여호와께서 언약을 세우는 때이므로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 기사가 나타나는 것이요, 신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만민의 죄를 사하는 화목 제물이 되셨으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만일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없다면 십자가의 도가 널리 전파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십자가의 도는 세계 만방에 전파된 것이다.

 

  2대지 : 천하 인간이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게 됨 (행4:10~12)

  세상에 많은 영웅도 있고 성인도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으로는 아무런 역사가 없되 예수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될 때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고 예수의 이름으로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것을 자랑하게 된다.

 

  3대지 : 예수의 이름으로 큰 응답이 나림 (행4:29~31)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날 때에 소위 예루살렘 공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권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을 주었다(4:15~18). 그러한 가운데서도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짖는 호소를 올릴 때에 땅이 진동하며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리들은 어려운 핍박이 올 때에 예수의 이름을 더 높이며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서 여러 가지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예수의 이름 아래에서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진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라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교회라면 이것은 예수교가 아니다. 예수교라는 것은 예수의 이름만 자랑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 기사가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큰 응답이 나리는 것을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라는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거와 같이 행하신 일이 있으므로 기독교는 큰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요14:12~13).

 

 

 어린이 공과편 - 요한복음 공부

 

제26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 요 20:11~18,  요절:18 -

 

  서    론

  학생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병은 귀신이 들린 병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본 학생 있습니까?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미쳐서 헛된 말을 하고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고 더러운 곳에도 드러눕고 아무 사람이나 막 때리고 시간도 모르고 밤중에 산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는 귀신이 일곱이나 들어가서 미쳐 다니던 여자입니다(막16:9).

  이런 사람이 이 동네에 있다면 학생들은 그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을까요? 어느 학생이나 다 곁에 오는 것을 싫어할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더러운 여자도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주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이 여자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천하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여자에게 먼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일을 공부합니다.

 

  1대지 : 막달라 마리아의 열심 (11,눅24:1)

  학생들, 예수님께서 날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다가 삼일 째 되는 날에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삼일 째 되던 날 아침에 모든 제자들은 무덤에는 가지 않고 집에서 문을 걸어 매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날  밝기 전에 무덤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부활했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좋은 향품을 사가지고 주님의 시체에다 발라 드리겠다고 갔던 것입니다. 이 향품은 바르면 몸이 썩지 않고 그냥 있는 약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보니 무덤이 비어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을 장례 했던 무덤은 돌을 쪼아 석함을 만들은 무덤입니다. 그런데 덮어놓았던 돌도 굴러서 나가 있고 무덤 안은 텅 비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울었습니다. 왜 울었을까요?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둑질해서 간 줄로 알고 울었습니다. 얼마나 마리아가 열심이 있습니까?

 

  2대지 : 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12~13)

  이 천사는 흰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여자여, 어찌해서 우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대답하기를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천사는 예수가 부활하신 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다. 천사는 왜 내려 왔을까요? 예수의 몸을 무덤에서 일으켜 주기 위하여 왔던 것입니다.

 

  3대지 : 부활하신 예수를 보게 됨 (14~18)

  예수님께서 마리아 뒤에 서서 하시는 말씀이 “여자여, 어찌해서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동산지기인줄 알고 “우리 주님의 시체를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라고 할 때에 예수님은 다시 “마리아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깜짝 놀라면서 예수님인줄 알고 만져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시면서 너는 빨리 가서 내가 부활한 것을 사도들에게 알려 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열심히 제자를 찾아가서 자기에게 예수님이 나타난 것을 증거했습니다. 학생들, 예수님은 얼마나 겸손하십니까? 부활하신 후에도 겸손하게 사람을 찾아 와서 말할 때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여자이지만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학생들도 막달라 마리아 같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묻 는  말

 1. 막달라 마리아는 무슨 병이 들었어요?

 2. 향품은 무엇 하려고 가지고 갔나요?

 3. 부활하신 예수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27과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

- 요 20:19~23,  요절:23 -

 

  서    론

  예수님을 따라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적에 얼마나 무서웠던지 도망을 가 문을 걸어 매고 한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생각해 보세요. 학생들 선생님을 누가 잡아다가 죽이고 학생들도 잡아 갈려고 한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아마 학생들은 숨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을 거예요 이러한 가운데 있을 때에 선생님이 죽었다가 살아 가지고 학생들을 다시 찾아 오셨다면 얼마나 마음이 기쁠 일이겠어요.  

  오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문을 닫은 방안에 나타나심 (19)

  학생들, 문을 잠그고 있는 방안에 어떤 사람이 문을 열지도 않고 나타난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너무나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제자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 그 방안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학생들, 예수가 다시 살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는 평강이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죄 값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될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고통을 주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예수와 같이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 몸과는 다릅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하는 몸입니다. 그래서 사람 앞에 나타날 때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아무리 먼 곳에라도 공중으로 날아서 왕래할 수 있는 몸입니다. 이 몸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고 움직이면 어디든지 갈수 있는 몸입니다. 하늘에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 올 수도 있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몸입니다. 학생들도 이 다음에 하늘 나라에 갈 때에는 이러한 몸이 됩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2대지 :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손을 내어 보이시면서 만져 보아라 할 때에 만져 보니 우리 손과 같이 뼈와 살이 있는 손입니다.  옆구리도 만져 보니 우리 몸과 꼭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문을 열지 않고 들어오셨을까요? 이것을 신령한 몸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이러한 몸을 가지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3대지 :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21~23)

  예수님께서 지금 성신을 보내시는 것은 부활한 몸이 되셔서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보내시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신을 받아야만 예수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신을 받아 가지고 세상에서 역사하셨습니다(마3:16).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신을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지혜롭게 능력있게 일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새 시대에 갈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을 받아야만 됩니다.

 

  묻 는  말

 1. 제자들은 왜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까?

 2. 예수님이 나타나서 너희에게 무엇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까?

 3. 예수님은 무엇을 받으라고 하셨습니까?

 

 

제28과  도마에게 나타난 예수님

- 요 20:24~29,  요절:29 -

 

  서    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는 12사도 중 한 사람인데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에 그곳에 없었으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도마에게 부활의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사명을 가진 대표적인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하고 증거한다는 것은 합당치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하나 같이 증거할 자격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공부합니다.

 

  1대지 : 도마가 부활을 믿지 않음 (24~25)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는 제자들이 친히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하여도 자기가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를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그냥 죽은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서 6시간 동안이나 피를 쏟고 피가 없어서 살 수 없는 몸으로 죽었는데 그 몸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너무나 놀랄 일이 아니겠어요. 학생들의 몸도 피가 없다면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같이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썩어져 흙이 된 사람도 앞으로 부활을 시키는 것인데 예수님의 몸이 부활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너무나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심이 많아도 주님은 책망하시지 않고 그 의심이 없어지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2대지 : 도마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이심 (26~27)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난지가 여드레 되는 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믿도록 역사하시는 신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믿어져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사람은 의심없이 믿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믿는 사람에게 성신이 와서 역사해 주시지 않는다면 억지로 믿을 수가 없고 성신이 역사하므로 확실한 증거가 있게 되어 참으로 믿어지게 됩니다(요5:10).

 

  3대지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심 (29)

  학생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친히 보지는 못했어도 의심없이 믿어진다면 도마보다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의심이 있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그때는 성신이 강림하지 않고 아무런 체험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부활하신 몸을 만져보고 믿으라고 한 것은 친히 보고 만진 자라야 완전히 증거할 사도가 되겠으므로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것을 친히 보고 만진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기록해 놓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읽어보고 믿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기도할 때에 성신을 받게 되므로 지금 사람들은 부활하신 몸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마음에 가지게 됩니다. 학생들도 믿고 기도할 때에 성신이 학생들의 마음에 역사하게 되므로 의심없이 믿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누구든지 의심없이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묻 는 말

 1. 도마는 왜 의심을 했습니까?

 2. 예수님은 도마에게 왜 다시 나타났습니까?

 3. 지금은 믿는 사람에게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

 

 

제29과  디베랴 바다에 나타난 예수

- 요 21:1~14,  요절:6 -

 

  서    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려고 디베랴 바다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과거에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므로 많은 고기를 잡게될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있게 바다에 갔던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을 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이들에게 나타나서 나가 세계 만방에 전도하라고 하셨는데 전도는 하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갔다는 것은 잘한 일입니까? 잘못한 일입니까?

  전도할 사람이 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입니다.

 

  1대지 :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함 (1~3)

  제자들은 밤이 맞도록 그물을 치고 노력을 하였으나 고기 새끼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일이죠. 고기가 많은 곳이 디베랴 바다인데 밤이 맞도록 고기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기를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학생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을 할 때에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배워야 합니다.

 

  2대지 : 순종할 때에 고기를 많이 잡음 (4~7)

  날이 밝아 오자, 제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크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더니 고기가 그물을 잡아 당길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때에 사도 요한은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지금 바닷가에 서신 이가 주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학생들, 이상하죠?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할 때에 이렇게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앞으로 제자들은 주님께 순종해야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예수님께 순종을 잘해야만 무슨 일이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3대지 : 조반을 먹게 됨 (8~14)

  제자들은 예수님이란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용기 있게 의복을 입은 체 바다로 뛰어 내려가 주님이 계신 곳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을 놓았고 떡도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누가 불을 피워 놓고 떡을 갖다 놓았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줄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물에 든 고기를 세어 보니 153마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면서 떡을 저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재미있게 앉아서 조반을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얼마든지 즐거운 잔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학생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즐겁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제자들은 무엇을 하려고 바다에 갔습니까?

 2. 고기를 많이 잡았나요? 못잡았나요?

 3.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이 순종할 때에 고기를 몇 마리를 잡았나요?

 

 

제30과  베드로와 요한의 장래를 말씀하신 예수님

- 요 21:18~23,  요절:22 -

 

  서    론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12제자가 있지만 제일 사랑하고 크게 들어 쓴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이 두 사람은 공부도 못했고 매일같이 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던 어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와 요한을 놓고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말씀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만 하셨습니다.

 

  1대지 : 베드로의 장래를 말씀하심 (18~19)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젊어서는 역사를 많이 하다가 죽을 때는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베드로가 역사를 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이 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베드로를 통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를 죽일려고 사람들이 옥에 가두어 놓으면 천사가 와서 옥에서 나오게 한 일도 있고 한 번 말할 때에 베드로 앞에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죽은 사람이 일어나기도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이때에 로마 나라의 네로 황제라는 악한 왕이 사도들을 죽이려고 거짓 흉계를 꾸몄습니다. 네로 황제가 사람을 시켜 로마 서울의 14구나 되는 도시에 불을 놓게 하여 10구나 되는 도시가 불에 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거짓말로 사도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시켜서 로마를 망하게 하려고 불을 놓았다고 하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공연히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많은 교인들은 베드로를 살리기 위하여 도망을 가기를 권했습니다. 베드로는 죽지 않으려고 남이 모르게 밤에 도망을 가다가 날이 밝아 올적에 동천에서 환한 빛이 나타나며 예수님이 마주 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로마로 죽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왜 또 죽으시렵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니 내가 또 죽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다시 돌아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팔을 벌리고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사랑하는 제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베드로에게 훌륭한 왕권을 주려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병들어 앓다가 죽는 것 보다도 예수님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죽는 것이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큰 영광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2대지 : 요한의 장래를 말씀하심 (20~23)

  베드로가 주님께 요한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이 사람은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까지 머물러 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뜻은 사도 요한이가 세상 종말에 새 시대 갈 사람들에게 전할 복음을 계시로 받아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사명은 말세 비밀을 세상에 전해서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사명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로 받은 말세 비밀대로 이 세상은 붉은 세력이 나와서 세계를 어지럽히는 이때에 요한이 받은 계시록대로 붉은 세력이 완전히 없어지는 심판을 나리기 위하여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숨은 비밀의 해석을 이뢰자 목사님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새일 교회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새로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 앞으로 죽지 않고 보호받아 새 시대에 갈려면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의 말씀대로 붉은 공산당의 사상을 조금도 용납치 않아야 됩니다.

 

  묻 는  말

 1. 베드로는 앞으로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2. 요한은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3.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록의 해석을 누가 받았습니까?

 

 

 논 설 편

 

1. 믿어지면서 속는 일

  인간들은 믿음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어지면서 속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이 흑암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믿어지면서 속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소위 인본주의적인 인격이다.

  이런 무리들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도 자신이 깊이 생각해서 자기 생각에 맞는 것은 믿고 맞지 않는 것은 부인해 버리는 인격이니 이 사람은 스스로 속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든다면 우물 안에 있는 고기를 보고 넓은 바다에서 다니는 거북이가 우물 속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부자유스러우냐고 하면서 내가 사는 바다는 아주 넓다고 하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생각과 의견에 따라서 믿는 사람은 아무런 발전이 없는 우물 속의 고기와 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이 성서를 비판하고 소위 새로운 신학이라고 하는 학설을 낸다는 것은 교만 중에 교만이요 어리석은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인도하는 자나 인도를 받는 자가 다 같이 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2. 무조건 자기에게 이상한 일이 있는 것은 다 완전한 것인 줄 믿는다는 것은 혼란에 빠진 종교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을 믿는 것보다도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다. 초인간적인 어떤 이상한 표적이 나타나면 이것은 다 믿을만한 일이라고 무조건 자기에게 복을 줄줄 안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미개한 사람의 종교심인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명철하고 지혜롭고 삼가고 조심하는 생활에서 합법적인 진리로 분별하는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참된 신앙에서 속지 않고 나가려면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을 합법화시키되 모든 이치에 완전 진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합치가 되는 데서 산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완전한 이치에 부합된 신앙에서 진리를 믿어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그 가운데 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그 이치에 의하여 진리를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히 바로 믿도록 한 것이니 하나님의 진리는 자연 법칙에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을 벗어나서 이상한 증거를 나타내기도 하고 자연에 어긋난 생각도 나게 해서 사람을 망치게 하는 동물성을 가진 마귀이다. 진리를 믿는 자로서 이상한 것을 믿는 것보다도 만물을 창조하신 신의 섭리가 무엇인 것을 말씀에서 바로 알고 그 섭리대로 행하는 진리가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믿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3. 소위 정통이라는 고집을 가지고 자기가 주장하는 근본이 정통이라고 하는 자들은 스스로 속는 인간들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 고집이 들어갈 때에 마른나무같이 되고 만다. 신앙은 최고의 겸손의 인격을 소유하고 자기 의견이라는 주관을 버리고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 진리를 자기의 주관에 붙이려는 것보다도 그 진리를 인간에게 주신 신의 성품을 맞춰서 자기의 생활이 신과에 접근이 될 때에 그 진리를 이론을 떠난 체험에서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진리를 말씀한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인격을 주는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로써 승리하고 진리로써 왕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종이라는 양심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 날 그 날에 순종하는 것 외에 자기 주관을 조금도 가질 수 없고 나의 생각보다도 주님께서 더 먼저 아시는 그의 뜻을 따른다는 양심 생활에 날마다 걸어가야 할 것이다.

 

  4. 자기의 어떤 욕망을 이루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완전한 사랑을 믿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일을 당한다 하여도 만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아의 욕망이 없이 항상 가난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생활이 있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자기 욕망을 바라본다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일이 되므로 하나님 앞에 아무런 것도 받을 수가 없이 된다.

 

 

2. 힘이 강한 것 같으나 약한 일

  가장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인간이다. 속담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야만적인 인간들의 행동을 말한다. 힘이 있으면 강자요 힘이 약하면 약자라고 취급하는 세계는 동물의 세계이다. 동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보다 힘이 강한 짐승이 오면 떨면서 도망을 가는 것이요 힘이 센 짐승은 무조건 약한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기 힘을 믿고 움직이는 인간이 약자 중에서도 약자가 된다.

  과거 역사를 보면 침략적인 정신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무조건 짓밟고 나오던 정치인들은 스스로 자기의 신세가 가련하다는 것을 탄식하면서 종말을 맺은 것이다.

  가장 미친 짓을 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 어떤 마취가 되는 술이나 아편을 먹고 그 힘에 끌려서 사는 인간이다. 술을 먹고 사람을 때리고 못된 짓을 하고 아편을 먹고 힘을 얻어서 기분 좋게 살아보려는 인간들은 미친개와 같은 생활이 된다. 이러한 인간들은 불신 사회에서도 아주 버림을 당한 인간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소위 불량자라는 행세를 하면서 무조건 자기의 요청을 들어 달라고 도덕을 떠난 행동을 하게 되는 무리들은 영과 육이 아울러 약자 중에도 약자가 된다. 그리고 아편의 중독병이 들고 술에 중독이 들고 미색의 더러운 병이 들어 망쳐버린 몸이 되어 몸으로 움직일 수 없는 타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있게 된다. 과거 중국에 아편 중독자가 얼마나 쓰러져 죽었으며 우리 나라에 술의 중독자가 얼마나 생겼으며 음란으로 매독이 든 인간들이 많이 있어 가지고 가정을 망친 비극이 있었다.

  이것을 본다면 자기의 힘을 정상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아편의 힘이나 술의 힘이나 이런 주색에 끌려서 일시 흥분하여 날뛰다 쓰러지는 인간들은 일시 흥분에 도취가 되어 강한 것 같으나 제일 약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정당이나 교권이나 경제권의 힘을 배경삼고 움직이는 자들이다. 이것은 아주 가증한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가장 가증한 자가 교권주의자요, 사회적으로 가장 가증한 인격을 가진 자가 정치 야욕을 가진 자요, 소위 돈을 가지고 자기의 힘을 삼아서 사람을 매수하는 것은 가장 무가치한 인간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육의 힘이나 어떤 물체의 힘이나 교권과 정권의 힘을 초월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세 새 힘을 받는 자라야 세계를 통치할 인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의 묵시를 볼 때에 심판의 대상자는 자기의 힘을 가지고 일하려는 자, 방탕 생활에 빠진 자, 어떤 세상 권리에 치우친 자들이라고 했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은 자만 남아서 새 시대를 정복한다고 하였다.

 

 

3.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

  오늘날 믿음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불의한 일이 너무 많다.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믿음으로 나간다 하면서 타협이 있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믿음으로 한다 하면서 말씀의 탈선된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모든 권능을 행했다 하여도 불법을 행한 자는 주님께서 안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 부흥 운동이라 하면서도 말씀에 가감된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오히려 부흥보다도 쑥물을 먹이는 일이니 죄 중에도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중심하는 신앙이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하는 것은 불의한 일을 얼마든지 범할 수 있는 일이 있게된다.

 

  2.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거짓이 있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외식이 있을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보다도 진노를 받게 된다. 외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가므로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니 외식 자체가 거짓이 된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진실이 없이 행한다는 것은 종교인의 악이라는 것이다. 신앙 세계에서 진실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불의가 된다.

 

  3. 믿음으로 한다 하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일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나라는 자체를 전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일하는데 있어서는 자기의 어떤 명예나 권리를 다툰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불의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자아라는 자체를 조금도 내세울 수 없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만 바라보는 동시에 주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불의가 된다.

 

  4.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교파심을 가지는 일이다.

  교파심이라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죄가 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교파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당신의 의를 믿는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는 것인데 교파심에 치우쳐서 남의 교파를 헐고 자기 교파를 세우려는 야심이 있다면 주님의 의로운 마음을 괴롭히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의를 믿는 동시에 의로운 말씀을 사수한다는 정신에서 싸우는 것 외에 다투는 일은 전부가 불의가 되는 것이다.

 

  5.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인간의 정치성을 띠고 인간 방법을 취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신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인데 인간의 방법이 들어갈 때에 이것은 오히려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일은 믿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하면서 결말은 인간 방법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신으로 시작하고 육으로 끝을 맺는 일이다.

 

  6.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인물을 숭배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이나 인격이나 기술이나 물질에 차이 없이 동등권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무식하고 인격이 훌륭하지 못한 사람에게 더 강하게 주어서 오히려 지식인보다도 인격자 보다도 역사를 더 많이 하셨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앙 세계에서 인물을 조금이라도 숭배한다는 것은 우상이 되기 쉬운 일이다.

 

  7.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자기의 평안을 요구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괴로움을 극복하지 않고는 향상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괴로움을 통과시키는 것은 향상시키자는 것인데, 이것을 피하려는 자는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

 

 

4.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평안을 맛보지 못하고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좋은 집에 살면서 마음이 기쁘지 못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집에 화려한 장치를 해놓고 거기에다 취미를 붙여보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데서 자기 마음의 위안을 받아 보려는 것은 그 인격이 아무런 생명이 없는 물건을 곱게 물을 들여 놓으면 아무런 활동 없이 빛만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자기 집의 아름다운 장치를 취미로 알고 사는 생활이 빛만 좋은 물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이 있는 백합화는 물들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고 향기를 내는 것이니 사람들이 무슨 장치를 해놓고 사는 거기의 취미라는 것은 평안한 것 같으나 오히려 괴로운 일이다.

 

  2. 연락을 일삼고 생활을 하는 일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괴로운 자리에서도 마음이 평안한 것이 인격이다. 그런데 연락을 따라서 자기 괴로운 마음을 잊고자 하는 것은 예를 든다면 괴로운 병이 몸에 있는데 약을 먹고 일시 괴로운 증세를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과 같다. 이런 생활은 매일 약으로 몸의 기분을 돕는 아편쟁이 같은 생활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역경이 닥쳐와도 참 평안을 얻는 것 외에 어떤 위로의 연락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세계를 떠난 행동이다.

 

  3. 어떤 친구에게 취미를 붙이고 자기의 괴로움을 피해 보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보다 우월한 힘이나 기술이나 권리나 인격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자기의 모든 일을 해보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는 그 친구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더 받게 되는 일도 있게 되고 뜻밖에 낙심을 받는 일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참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쳐올수록 참 평안을 받게 되는 체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 친구는 내가 환경이 좋을 때에 친구요, 환경이 나빠질 때에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큰 역사가 있게 하여 참 평안을 얻게 한다.

 

  4. 경제적으로 부요한 가운데 아무런 생활의 염려가 없이 살수 있으면 만족으로 아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배가 부르고 살이 찌므로서 참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생활은 노동을 많이 하는 자 보다도 오히려 몸의 괴로움을 더 가지는 일도 있다. 우리는 몸이 평안한 것보다도 몸이 괴로움을 당하는 환경이 온다 하여도 아무런 피해가 없이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인격 외에는 참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을 위해 있는 몸이니 영적 세계에서 오는 힘에 의하여 그 몸이 좌우될 때에 부요한 생활을 가진 사람보다도 평안한 생활이 있게 된다.

 

  5. 어떤 위치에 따라서 평안을 취하려는 자는 오히려 더 괴로움을 받는 일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위치가 좋은 곳일수록 원수의 피해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위치의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산 깊은 나사렛 동네에서 예수님같이 참된 평안이 있는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신이 같이 하는 위치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위치를 택할 때에 물질을 따르지 않고 화려한 도성을 취하지 않고 여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만족으로 알 때 참 평안이 있었고 롯은 위치를 택할 때에 화려한 도성을 찾아갔다가 큰 화근을 만난 것이다. 오늘날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화려한 위치를 찾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위치를 택하는 것이다.

 

 

5.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

  오늘날 소위 유물주의의 사상을 가진 자는 만져보고 직접으로 본 것 외에는 다 부인하는 것을 자기의 지식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인류 타락의 마지막이 되는 타락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의 종말을 묵시로 받을 때에 무신론적인 짐승의 사상이 교회를 짓밟고 들어오는 것이 마지막 환란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심판기에 누구든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숨어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읽고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서 원수를 갚아 주시고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람의 인격에 대하여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은 영이다. 오늘날 유물론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고등 동물이고 영이 없다는 것이다. 영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데 있어서 사람의 몸에 주인과 같다. 왜냐하면 영적 활동이 있게 될 때에 정신이나 몸까지라도 완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이라는 것은 물질계를 초월해서 조물주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인격이다. 그 영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을 때에 독생자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게된다. 그러므로 그 영이 의롭다함을 받게 될 때에 의로운 영이 되어 의로우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게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을 가진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이다.

 

  2. 사람의 생활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의하여 목표를 둔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는 생활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이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세계에서 오는 것을 체험하게 될 때에 모든 난제가 해결되는 것을 확신하게 되니 확실한 소망이 나타나고 확실한 소망이 있게 될 때에 그 생활은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단계로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완전이라고 하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세계에서 오는 것으로만 현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생활을 하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질계를 창조하신 것은 물질계에서 사람이 생활을 할 때에 물질계 안에 있는 것으로 인생에게 완전을 줄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물질계에 사는 동안에 자연을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물질계 밖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세계의 것을 사람에게 주어서 완전한 인격을 준다는 것이 창조의 큰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물질계 밖에서부터 오는 것을  받으므로만 물질을 사용하는 생활에서 완전한 세계로 옮겨지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숨어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에 완전한 것을 주어서 물질계 밖의 세계의 왕권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이다.

 

  3. 사람의 역사에 대하여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가운데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완전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문학을 배우고 모든 지식을 다 배운 자라고 하여도 없는 것 같은데서 완전하게 되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아무런 열매 없는 활동을 하다가 끝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절망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자리에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써 완전이라는 것으로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계를 볼 때에도 완전이라는 것은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활동이 있으므로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의 의견이나 생활이나 역사도 인간이 볼 때에는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하게 역사하시는 조물주의 능력을 통하여서만 완전이라는 단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임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데서 완전한 것을 숨겨 놓고 당신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 것을 주겠다고 언약을 세우고 그 말씀을 의심 없이 믿는 자에게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을 하나님의 선한 모략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6. 실패가 되는 원인은 무엇

  많은 인간 중 실패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소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돈이 많아지면 성공이요, 돈이 없어지면 실패라고 보며, 취직이 되면 성공이요, 취직을 못하면 실패라고 보며 좋은 친구를 사귀면 성공을 하고 못 사귀면 실패로 보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된다. 그러나 그 이 외에 실패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열매 없는 생활을 하다가 열매 없이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1. 사람이 무엇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가질 때에 실패가 되는 위기가 온다.

  왜냐하면 인간의 일은 언제나 대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적은 항상 사람의 마음에 방심을 가지는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언제나 자신이 있다고 방심하는 마음을 엿본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씨름을 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방심을 한다면 실패의 근본이 되는 것과 같다. 씨름이라는 것은 항상 힘을 쓰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야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혹된 마음이다. 왜냐하면 자기 부족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약자 중에도 약자요, 어리석은 자 중에도 어리석은 것이 나라고 깨달아지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패의 근본이 되는 것은 되지도 못하고 된 체 하는 인격이나 동일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을 대적으로 아시지만 자신이 없게 생각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짐승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물이므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므로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2. 사람이 스스로 속는 일이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므로 실패의 원인이 된다.

  누구든지 속지 않고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공산당이라 하여도 진리를 분명히 안다면 자기들의 사상이 잘못인 줄 알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무신론자는 스스로 속는 자 중에도 인격 전체가 흑암에 빠진 자이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에게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나게 만드는 것이 혼미의 영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혼미라는 것은 자기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나도록 감화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는 자는 자기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3. 큰 일을 작은 일에 희생시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제일 큰 일을 하여야 될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스스로 하셨지만 창조 후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는 사람을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일꾼으로 쓰시려고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름까지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이다(창2:19).

  사람이라는 것은 큰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지식인 동시에 그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작은 일이 희생될 때에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로되 큰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시키는 것을 영광으로 알 때에 그 사람은 분명히 성공을 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있다 하지만 큰 일을 작은 일에 희생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신앙 발전의 열매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4. 잠깐이라는 기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실패의 원인이 된다.

  누구든지 잠깐이라는 시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이것이 근본이 되어 많은 시간을 허송하게 되고 많은 시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는 시간에 되어지는 일이 영원한 세계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항상 그때 그때 살아가는 시간을 아끼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 사람은 많은 시간을 남보다도 더 갖게 되어 생활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기계 두 개가 있는데 한 기계는 잠시도 고장이 나지 않으므로 시간을 허송하지 않게 되고 또 하나의 기계는 고장이 자주 나므로 시간을 많이 허송하게 된다면 같은 하루를 사용했다 하여도 그 열매는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잠깐의 시간도 허송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열매가 많은 사람이 될 것이로되 잠깐의 시간을 허송하는 사람이 되면 영원한 것을 이루는데 큰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5.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무슨 일이든지 참 이치가 없는 일은 없다. 그런데 그 이치를 분명히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시작하는 시간부터 실패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이치를 분명히 알고 일하므로 성공이 될 때에 그것을 보고 욕심이 나서 그 일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보지도 않고 시작한다면 그것이 탈선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나 시작하기 전에 그 이치를 바로 알고 여기에서 자아라는 인격을 그 이치에 부합된 인격인지 이것부터 검열해 보고 그 일을 시작하여야 될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오늘날 옳은 신앙 노선을 누가 바로 가졌는지 알기가 어려운 복잡한 교계에서 어떠한 노선이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지 간단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신앙 노선이라는 것은 어떤 교파나 어떤 신학을 말하는 것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니 만큼 너냐, 나냐 할 것 없이 다음과 같이 성서로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1. 구약과 신약에 대하여 연결성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는 완전한 신앙 노선을 걸어간다는 것보다도 앞으로 세계적인 구원을 약속한 말씀을 기록하는 사명을 야곱의 족속에게 맡겼던 때입니다. 그래서 야곱 족속에게 여호와께서 역사하신 것은 세계적인 구원을 일으킬 예언적인 증거가 되었고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도 세계적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빠짐없이 변론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의 신앙 노선은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대로 탄생하시고 성경대로 세상에서 행하신 일은 전부가 세계적인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세계를 구원할 구원을 완성시킨 것이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일은 구원을 완성하신 일이니 만큼 그 구원을 받아 이 땅에서 활동하게 될 때에 그 구원을 나 혼자만 받을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들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고 싸워 나간 것이 이날까지의 순교자들의 신앙 노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교파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어느 교파에 있든지 주님께서 행하시므로 이루어 놓은 구원을 그대로 받아 산 체험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받은 그대로 남에게 전해 주는 것이 이날까지에 내려온 신앙 계통이란 것입니다. 오늘날 교파가 사업적이나 정치적 방면으로는 서로 다른 방침을 취하는 수가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을 받는 일에는 주님께서 행하신 그대로 믿어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교회가 설 적에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되 제사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를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출5:1~3). 이때는 아무런 성경도 없고 여호와께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네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출3:6~10).

  이렇게 역사하신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민의 나라를 이루어서 세계적인 구원의 언약인 성경을 완전히 이루어 놓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민의 나라에 모든 역사와 말씀이 나타난 것은 세계적인 구원의 대 사업을 할 완전 계약서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계약서를 다 이룬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구원을 성취시킬 신앙 대상을 이룬 것뿐입니다.

  이날까지의 복음은 세계적인 구원의 신앙 대상자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만방에 알린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완전히 베푸는 날은 개인 천당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전히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구원의 끝을 맺는 것입니다.

 

  2.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날까지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께서 세계적으로 큰 구원을 베풀 목적으로 교회를 확장시킨 것뿐입니다. 세계적인 구원을 베푸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 구약 말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던 부패한 교회가 북방 환란에 완전히 망하고 환란 가운데서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동방 고레스의 왕권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시키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 예언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나온 것은 구약 교회를 세우는 역사요,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교회가 심판을 받고 말씀대로 복구된 것은 기독교 종말의 교회 심판과 구원을 뜻한 것입니다.

  이날까지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초림의 주가 오셔서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섰고 교회가 완전히 구원을 받아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은 여호와께서 모든 선지들에게 묵시로 말씀하신 그대로 심판이 오고 그대로 세계적인 구원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교파나 어느 민족이나 막론하고 하나같이 구약 말기의 선지들이 묵시로 받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순종하면 안식의 축복을 받을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환란과 재앙속에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둘째 : 대표적인 사명자가 이 시대에 나타나는데 있어서는 천국 복음의 대표가 아니고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완전 변론의 역사를 하나님께 받은 종으로서 이날까지는 전하지 않은 말씀을 바로 전하도록 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대표가 나타나므로 구원을 세계적으로 베푸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여지는 종들이 되어서 다시 예언의 선지적인 사명을 하는 종들로 하나를 이루어 한 단체가 되는 동시에 많은 백성이 환란과 재앙에서 큰 구원을 받아 영, 육이 아울러 안식의 축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 사명자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이 역사는 교파가 하등에 필요 없고 말씀의 대표적인 사명자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선지들에게 묵시로 보여준 말씀을 전하는데 한 단체가 되는 것으로서 기독교는 완전 통일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문】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어찌하여 교회가 점점 더 부패해 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예배를 드리지 않은 자 보다도 더 마음이 강퍅해지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부패되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강단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종이 하나님과 교통이 없이 인도할 때에 그 사람은 오히려 마귀 세계로부터 오는 흑암을 받아 일반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패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예배를 인도할 강단에는 아무나 서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강단이 속화되는 것은 교역자 양성에 있어서 큰 관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신학교가 성령의 역사로 되지 않고 교수들이 인본주의적인 학적으로만 나갈 때에 그 앞에서 나오는 신학생들은 진리의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보다도 한 정신 작용의 훈련에 불과한 신학을 거치게 되어 아무런 영계의 체험조차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강단에 서서 예배를 인도할 때에 영적 예배가 되지 않고 한 의식화되는 예배가 되므로 모인 영들은 자동적으로 피곤해져서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의 세력에 끌리게 되는 영들이 되기 때문에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패를 가져오게 됩니다.

 

  2. 설교자의 생활이 그 설교와 부합되지 않는 생활에서 설교를 할 때에 그 설교는 일반 양떼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권태증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설교자가 대중과에 서로 영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도 그 설교자에 대하여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떼들이 헌금을 바쳐도 감사함이 없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교회에 축복을 내리지 않게 되니 그 교회는 외식이 있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부패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합심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설교자에 있는 것인데 설교자가 능력이 없으므로 교회는 반드시 형식에 지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말씀을 받아서 증거하는 설교가 아니고는 자동적으로 교회는 속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3. 교회의 모든 사업을 해 나갈 때에 시작은 바로 했다 하지만 끝을 바로 맺지를 못하므로 그 사업은 시작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자리에서 교인들은 일할 힘을 잃게 되니 자동적으로 교회가 부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업이라는 것은 경솔히 시작을 하는 것보다는 먼저 그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는 인격을 기르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군대를 기르지 않고 전쟁을 한다는 것은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요, 씨름을 할 때에 자신이 이길만한 체격도 되지 못하면서 한다는 것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사업이라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이요 씨름이니 신령한 사람이 교회에서 나오도록 역사가 있기 전에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부패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될 때에 모든 일이 바로 되고 신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할 교회가 될 때에 모든 일은 부패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문】3.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활에서 큰 발전을 볼 수가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기독교는 근본이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운 어린 예수가 만왕의 왕이 된다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와 별이 나타나서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신 길은 빈곤의 생활이요, 노동의 생활이요, 병자 방문의 길을 거쳐 죄인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죄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쓰라린 고통인 겟세마네 동산, 몸에 쓰라린 죽음의 고통인 십자가,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대상자 되는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믿는 신앙의 생활도 다른 길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 없이는 절대로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떠한 생활에서 신앙은 발전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습니다.

 

  1. 신앙은 마음에서부터 발전하여야 합니다.만일 어떤 신자가 마음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유형적인 무슨 사업의 발전을 흥미 있게 생각을 한다면 자동적으로 그 인격은 영적으로 움직이는 인격이 못되고 한 사업적으로 움직이는 인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음의 소성과 성결과 참된 평화를 체험하는 데서부터 발전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행위가 부족하다고 하여도 심령 소성, 성결 변화 이것이 마음에 시작된다면 그 사람은 도덕을 초월한 인격에서 도덕적인 열매도 도덕을 중심한 인격보다 놀라운 인격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작은 일에 실천이 있는 데서부터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으로 발전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인격 발전이라는 것입니다. 산중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기에 충성을 다하던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되었고, 목수 생활에서 실천을 하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기독 신앙자 생활의 모본이 되는 일입니다. 만일 작은 일에 충성을 하지 않는 생활에서 큰 역사를 바라보는 신앙이라면 이것은 벌써 탈선된 신앙에 들어간 것이니 이러한 자들은 아무런 발전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로서 큰 것을 보시지 않고 작은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시고 진노하시기도 하시는 것이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큰 일을 하도록 역사를 나리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입니다.

 

  3. 중심 속에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한다는 마음에서 자기의 어떤 위신이나 명예나 권력을 버리고 자기가 아무런 지경에 떨어지더라도 하나님만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변치 않을 적에 그 사람은 모든 일에 큰 발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중심에 하나님만 영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과 의합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사람과 같이 하시므로 초인간적인 발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기독 신앙은 말씀을 중심하여 역사하는 진리의 신을 믿는 것이니 말씀이 조금이라도 가감될 때에 그 신앙은 아무런 역사도 없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신과 대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지를 말고 기록한 말씀 그대로 믿어서 그대로 역사하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도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열심이 아니요, 진리를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생활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진리가 탈선될 때에 큰 과오가 되는 것이요, 열심이 적다 하여도 그 말씀에 합한 신앙이 될 때에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를 이루는 것과 같은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5. 신앙은 그 마음에 사랑의 불꽃이 있어야만 됩니다. 이것이 없다면 불이 꺼진 발동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었지만 우리가 남을 살리고자 하여 불타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열매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울은 기독교의 대적이었지만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사랑으로 그를 중생시키므로 그는 그 사랑에 이끌려 동방과 서방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목숨을 바쳤으므로 기독교는 세계에 대 확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죽든지 살든지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한다고 하면서 불타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결심을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과거에 아무리 죄가 많다 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마음에 불이 붙을 때에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4.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될는지 나의 마음에 확신을 얻고자 하는 바입니다. 세밀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받았을 때부터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 없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은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또다시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일이 있으므로만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한 인격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완전한 인격을 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로운 역사를 받으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4:13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봅니다(요17:1~2).

 

  2.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므로 사람이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의롭다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불의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믿으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가 성신으로 임하게 되어 사람이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죽게 되었을 적에 그 사람을 도와 살려준 사람이 있다면 살린 사람에게 이것이 영화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자력으로는 도저히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의로운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체의 미약을 생각하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인간들의 자력으로 완전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이름으로 역사 하시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는 날에 가서야 완전한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 전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만 자라나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완전하게 된다면 기도도 할 필요가 없고 은혜도 더 받을 필요가 없게 되므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우는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힘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가 예수와 같이 되므로 영원히 왕권을 받아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누리는 동시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격의 완전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될 것입니다.

 

 

【문】5.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무신론 사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빛을 나타낼 수가 있겠습니까. 간단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우리 인생들이 무신론 사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지식에 속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이 발달되어 과거의 미신적 신화에 허무한 것이 드러나게 될 때에 하나님도 그와 같이 생각하므로 무신론자가 나옵니다. 만일 기독교가 지금 이 시대 사람에게 빛이 될 만한 말씀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인간 지식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을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들어서 인간 지식의 발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실이라는 것을 증거하여 그들에게 이 시대적인 말씀을 통하여 새로이 일어나는 역사가 무엇인 것을 알도록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무신론 사상이 나올 것과 종교가 극도로 부패됨에 따라서 협상적인 노선이 있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말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므로 이 시대 사람들이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만일 무신론 사상이 나오지 않았다 하여도 증거할 수가 없는 것이 예언입니다. 왜냐하면 무신론 사상이 심판기에 북방에 자리잡고 나온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신론 사상이 세계에 침투해 들어오므로써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는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이 시대에 일어나리라는 역사도 반드시 일어나므로써 무신론은 허위라는 것을 사회가 모두 알게 되므로 오히려 전도할 문이 더 열리게 될 것입니다. 시대가 악해질 때에 역사가 더욱 더 강하게 일어나서 악한 시대의 사람들이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 것이 구약 시대에 선지들을 통하여 나타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묵시로 줄 때에도 악하고 음란이 가득한 도성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축출하고 압박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 종을 강하게 들어 쓰므로 묵시의 말씀을 준 것은 인간 종말에도 이러한 시대가 올 때에 당신은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악하고 부패한 시대가 올때에 절대로 악해질 것이 아니고 새로운 강한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이전보다도 7배나 강한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라는 것입니다.

 

 

 

 특  집  

 

1. 8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80여년이 되는 오늘의 역사를 생각 할 때에 우리 나라의 8월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적으로 큰 뜻이 있는 달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을 하면 우리 성도들로서의 뜻 깊은 감상을 더욱 가지게 되는 달이기도 하다. 성도들이 왜정 36년에 억울한 피와 해방 후 억울한 피를 생각할 때에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게 된다.

  눈물겨운 심정은 무엇인가! 쓰라린 배를 움켜 지고 초근 목피를 먹던 왜정 말기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말을 하지 못하고 일본말을 잘하는 사람을 인격자로 알아주던 일이나 친일파 정치인들이 참된 성도를 압박하던 일이나 우리 나라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일본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배우면서 소위 천황 폐하의 천조 대신을 교회에다 걸어 놓고 절하던 일이나 피땀 흘려 일한 농민들이 배가 고파서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 껍질을 벗겨 먹던 그 서러움을 생각할 때마다 사람인지라 일본을 원수같이 알게도 된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말하지 말고 우리 나라의 선조들의 잘못을 생각하며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이다.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하려 들어온 종들을 학살하며 복음을 받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소위 선조의 영을 신으로 알고 신주를 모시고 벼슬을 했다는 자랑으로 홍패, 백패를 만들어 두고 양반만 자랑하던 조상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서학이라고 하면서 동학을 하여야 된다고 하는 고집 많은 조상들의 죄값으로 남의 나라보다도 더 도탄 중에 들어갔다고 본다.  

  그러나 8월 달을 맞이할 때에 옥중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로 뜻밖에 해방이라는 날을 받게 된 8.15가 생각이 난다. 만일 8.15 해방이 지체되었다면 한국 교회는 비참한 처지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의 계획이 한국 교회를 전멸시키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약을 먹여서 다 죽이려고 하는 계획까지 있었다는 비밀이 폭로되었던 것이다. 이 사람도 일본 사람을 피하여 북강원도 고미탄 산골의 바위틈에 숨어 사람을 만날까봐 겁을 내는 생활에서 심지어 날짜까지 잊어 버려 어느 날이 주일인지 생각이 나질 않아 덮어놓고 그날그날 눈물 흘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지경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일본은 아시아 북지 남지를 다 점령했으며 남양 군도까지도 점령하고 소위 대동아 건설이라는 간판을 걸고 성전이라 여호와의 신은 서양의 신이요, 천조대신은 동양의 신이니 천조대신으로 동양을 통일하고 여호와의 신을 동양에서 몰아 낸다는 주장을 가지고 의기가 양양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결심하기를 마지막에 무기가 하나도 없어 농부들이 도끼를 들고 나간다 하여도 항복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까지 하던 일본이 무조건 손을 들고 항복을 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박사가 루우즈벨트와 합심하여 원자탄을 만든 그 혜택으로 한국이 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탄 두 개가 일본에 떨어질 때에 그들이 무조건 손을 들지 않으면 천황 폐하까지라도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이 다 불의 사름을 당하게 될 형편이므로 그들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북지, 남지와 남양 군도에 주둔했던 군대를 철수하면서 항복을 하고 심지어 삼천리 금수강산에 살던 일본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일본으로 쫓겨갈 때에 몇 백년이나 살겠다고 지어놓았던 좋은 집들을 다 버리고 알몸만 가게 되었다.  

  이러한 해방을 맞이한 그 날이야 말로 얼마나 기쁜 날이었던가! 이 사람도 산중에 숨어 있다가 태극기 날리는 곳을 달음박질하여 100여리를 도보로 갔던 것이다. 고향에 찾아와 보니 거리마다 이승만이라는 대통령의 이름이 붙었으며 북한에도 붙었던 것이다. 무너진 한국 교회가 일어나고 굶주리던 농민들은 배불리 먹고 자유를 잃었던 애국자들은 용기 있게 모여들었다. 그날에 분기,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왔다면 그야말로 새 시대가 별 것 없으리만큼 이 나라는 복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많은 민족 중에 기쁜 일이 있었겠지만 8.15의 기쁜 날은 그 무엇으로 척량할 수 없는 날이라고 다시 깊이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날은 옛날이 되고 해방된 지 26년이 되는 오늘에 너무나 그날과는 달라진 것이다. 그날보다 더 기쁘게 되고 평화로워졌다고 하여도 이 땅에는 만족이 없을 것인데 그 날이 일장 춘몽같이 잊지 않을 정도로 어렴풋이 되고 말았다는 것은 이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서 우리 나라에서 거지가 되어 돌아갔건만 다시 일어나고 소위 해방이라는 깃발을 든 이 민족은 점점 앞길이 막막한 지경을 만났다는 것은 인간 육안으로 볼 때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민족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소망을 넘치게 가지는 체험을 받게 되었다. 1967년 8월 15일이 다시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계룡산 상봉 비밀굴에서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로부터 알려 오기를 8월 15일에 네게 새 힘이 임할 것이니 이 새 힘을 받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8월 15일 오후 3시에 하늘로부터 새 힘이 내게 나릴 때에 마치 막힌 물이 터져서 힘있게 내려 뻗듯이 내 몸에 내려오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다음과 같이 알려 왔다.  

  너의 민족의 해방은 8.15가 완전한 해방이 아니고 네게 오늘 새 힘이 임하는 이것이 시작이 되어 앞으로 큰 역사가 되므로 네 민족이 앞으로 큰 복을 받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후에 새 힘이 계속으로 내게 나리는 바 점점 강하게 나리고 내 입에 말씀이 임하여 문서 운동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서책이 나와서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을 번역하여 외국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오늘에 더욱 확신하는 바는 8.15 해방 후에 물질의 축복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신령한 영계의 축복은 분명히 우리 나라에 온 것이다. 그러면 물질이 많은 것보다도 이 나라에 하늘로부터 새 힘이 나리고 말씀이 임하여 세계 열방을 이 말씀으로 정복하게 된다는 것을 성서에 비추어 볼 때 확실한 소망이며 축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8월 15일을 앞에 놓고 우리 여호와 새일 교단은 새로운 출발을 가지게 될 것을 믿는다. 금번 8.15총회부터는 새일 교단 법규에 의하여 철저한 처리를 하는 동시에 새로운 종들을 많이 일으키고자 하는 바이다.

 

 

2. 8.15와 민족의 사명

  우리 민족은 8.15와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를 못하므로 이날까지 계속으로 전재, 풍재, 수재, 한재 등의 재앙이 계속되는 이 땅에서 남의 나라보다도 고생은 더 많이 하고도 열매 없는 민족이 되고 있는 것이다.  

  8.15와 민족의 사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8.15 해방 후의 시대와 우리 민족의 할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비추어 본다면 8.15 해방 후는 분명히 인류 종말의 심판기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시록에 붉은 말이 허락을 받고 나오는 때부터가 심판기의 징조가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 아시아는 2차 대전 후에 큰 피해를 당했다고 본다. 아시아 대륙의 교회가 전멸된 일, 국민의 자유가 박탈된 일, 모든 부요한 자들의 멸망 등 여러 가지 피해를 당하는 중 계속해서 민족 골육 상쟁의 피가 흐르고 있는 곳이 아시아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찌하여 아시아에서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보호하셨느냐 하는 것을 우리 민족은 알아야 한다. 우리 남한이 피해를 당한다면 여호와의 말씀인 성경은 헛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종말관은 인류의 원수가 되는 북방 세력이 아시아를 덮고 나올 때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나올 때라고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이 사명을 분명히 알고 전 국민이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의 보호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세계적인 사명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서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인데 검은 말의 경제권 아래에서 돈만 아는 자본주의의 정치를 했기 때문에 점점 부패가 되어 왔었다. 남의 나라들보다도 더 부패되는 것은 돈만 아는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날마다 경제 시련이 심해 갈 때에 전부 돈에 끌리는 정치인 종교인이 되다 보니 그 인격은 돈을 따라 가는데서 부패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가 돈을 따라가는 민족이 된다면 남의 나라보다도 더 경제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물질을 초월한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진리를 들고나서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에게 진리를 바로 가르칠 사명인데 남의 나라 사람의 종교 지도를 교회에서 받다보니 오히려 더 부패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진리를 세계에 선포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나게 되므로만 우리 민족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2.  8.15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보호 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국가를 우상화시키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 위에 어떠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이민족을 지도하는 대통령이나 모든 정치인들이 알아야 하며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는 우리 나라의 모든 일은 실패로 되어질 때가 많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아는 지도자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 나라에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바로 가르치고 지도하게 되는 일이 있을 때에 조속한 시일 내에 이 민족은 분명히 깨닫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세계 민족을 깨우치는 역사가 일어나므로 동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3. 우리 민족은 금년부터 좀더 각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민족적 큰 위기가 닥쳐 올 때에 이 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하여도 사람이 그 뜻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변경시키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명을 가진 종들이 8.15를 기하여 좀더 강하게 일어나는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대중이 다 합심이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것 보다도 몇 사람이라도 합심 단결할 때에 대중이 깨닫고 따라 오도록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명자들은 8.15를 기하여 몇 사람이라도 단결해서 멸공 진리 운동의 봉홧불을 높이 드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3. 8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간곡한 기도

  슬프다. 아리엘이여, 좋은 날이 머지 않아 오겠지만 그 시련을 어떻게 이기고 나갈소냐 하는 말을 스스로 하게 되는 이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절망, 낙망을 당할 때에 뜻밖에 나타나기도 하시고 은혜를 주시기도 하여 이날까지 길러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아무리 원수가 강하다 하여도 나를 시련 속에서 길러주신 것은 그 원수를 이길 수 있는 축복을 주시기 위한 아버지의 선한 모략인줄 믿나이다. 내가 무엇을 하였다고는 생각조차도 가질 수 없고 전부가 하나님의 강권 인줄 깨닫게 될 때에 앞으로 승리할 것이 더욱 더 믿어지나이다.  

  한 줄기의 솟아오르는 샘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거든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게 새 힘의 줄기를 계속으로 보내 주시는데 어찌하여 열매가 적을 수가 있겠나이까! 필연코 큰 열매가 이제부터 나타날 것을 믿나이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었사온 즉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바입니다. 천하 사람이 다 마귀에게 머리를 숙인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붙드는 자가 될 때에 마귀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쳐 없이할 승리의 용사가 될 것을 내가 확실히 믿나이다.

  푸른 새순 나오기 시작하면 많은 순이 나올 징조이온즉 필연코 금번 8월 달을 맞이하여 많은 순의 종이 나올 것을 믿나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겠나이까? 주님의 인도만 따라서 가고 싶은 것 뿐입니다. 혹독한 광풍이 불어와도 내게는 피할 곳이 있사옵고 메마른 사막 같은 땅이 내 앞길에 있다 하여도 이미 열려진 샘, 내게 있사오니 메마르지 않을 줄을 믿나이다. 아무리 악당들이 나를 에워싼다 하여도 악당들을 도구로 쓰는 마귀가 물러가는 말씀 변론의 역사가 내 입에 같이 할 때에 조금도 피해를 당치 않고 승리할 것을 믿나이다.  

  아무리 적은 무리가 나를 진리의 종이라고 따라 온다 하여도 진리로 단합되면 진리에 탈선된 대중을 승리할 줄 믿나이다. 천길, 만길의 낭떠러지 내 앞에 있다 하여도 내 손에 다림줄을 잡았사오니 주님께서 이 줄을 잡아 주실 적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믿습니다.

  푸른 하늘 아득히 멀다해도 주님께서 내게 나리는 역사가 계속될 때에 궁창 밖에 보좌의 세계는 멀지 않는 곳인 것을 체험하게 되나이다. 한마디의 말을 잘못 하여도 큰 일이 날 강단에서 내 입을 써 주신다면 마디마디 나리는 말씀, 대중을 살리는 만나가 될 줄 믿나이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마음, 내가 가졌사오니 중심 보시는 여호와여, 8월을 맞이하여 영광 돌리는 승리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길이 멀다고 생각을 할 필요 없고 자욱자욱 따라 갈 때에 그 길은 먼 길이 아니요, 문 앞에 가까운 줄 믿나이다.  

  주여, 내가 주를 붙들 수 없사오나 주님께서 나를 붙들었사오니 주님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게 될 줄을 믿나이다. 주여, 8월의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4. 8.15를 맞이하는 사명 동지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금년 8.15 성회는 사명 동지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이 임할 것을 믿사오니, 다음과 같이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1. 8.15 성회에 호소문 성가대로 사명자 여러분들에게 축복이 올 것을 믿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의 종말이라는 책자가 사명 동지들에게 큰 무기가 될 것이오니 이것을 바로 사용하셔서 승리의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3. 성가집이 완전한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각 교회마다 전부 사용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교단 법규가 후면에 기록되었사오며, 8.15총회부터 철저히 법규대로 진행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교단에 임할 것을 믿습니다. 아무쪼록 금번 총회에 새 출발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각자가 특별한 노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4. 금번 성회에는 대중적인 축복이 임할 것이오니 아무쪼록 성회가 거룩해 지도록 오시는 분들에게 각 교회에서부터 단속이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큰 축복을 받지 못할 단계에 있는 분들은 참석하지 않도록 하시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종들만 모이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5. 아직까지 한 번이라도 성산에 와 보지 못하신 종님이라도 영계가 깊으신 분은 금번에 꼭 참석하도록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 성회에 오실 때에 곡조 성가집 책 대를 가지고 참석하셔야만 될 사정입니다.

  7. 금번 성회는 특별 성회가 될 것이오니 목회 일을 5년이상 보신 전도사님들은 특별 수도를 하시도록 힘써 주시고, 목사 안수를 받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허락이 온 일이오니 개 교회에서 상의가 있어서 특별 수도를 하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광      고

  1. “새일 성가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성가집에 교단 법규가 첨부되었습니다. 호소문이 완전히 곡조로 출판되어 약 70장의 성가로 출판되는 동시에 먼저 곡조 성가에서 잘못된 것을 22여장이나 고쳤사오니 이제부터 이 성가집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하나같이 이 성가를 사용하시도록 해야만 되겠습니다(책대는 200원입니다)

  2. “인간의 종말” 책이 완전히 출판되었사오니 이것을 사용하시도록 하시어 전도에 많은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책대는 100원입니다)

연락처: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신도안 백암동

       새일 수도원

       서울 종로1가 3번지 의사빌딩 10층     

       새일 중앙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