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12월호)

 

설  교  편

 1. 위대한 인격은 섬기는 자이다 (마20:20~28)

 2.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의 위력 (슥6:9~15)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입술 (말2:5~9)

 4. 인간 최고의 영화 (사60:4~14)

 5. 연단과 의로운 제사 (말3:1~12)

 6. 인간 종말의 제단 문제 (사19:19~25)

 7. 사단의 대적과 종된 자의 왕권 (슥3:1~7)

 8. 성신의 역사와 인격 문제 (롬8:12~17)

 9. 지식과 인간 종말의 문제 (사11:6~16)

10.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 (마5:11~12, 계18:20, 19:6~9)

11. 주안에서 기쁨으로 사는 생활 (빌4:4~7)

12. 성산에서 복 받는 가정 (사65:21~25)

13. 수면에 운행하시던 신의 창조 (창1:1~13)

14. 눈이 밝은 사람이 되자 (마6:22~24, 7:1~5)

 

장년 공과편 - 세계적 선교와 세상 끝

제1과  세계적 성전 확장과 여호와의 산 (사2:1~4) 

제2과  세계가 앙망하는 예수의 교훈과 새 일의 말씀 (사42:1~9) 

제3과  이방을 밝히는 빛과 새 시대를 이루는 빛 (사9:1~2, 60:1~3) 

제4과  피로 사는 일과 왕 노릇 하는 일 (계5:8~10)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4과  순교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도들 (행12:1~12, 23~24)

제15과  성신이 보내는 사도들 (행13:1~12)

제16과  숭배 받는 것을 거절한 사도들 (행14:8~18) 

제17과  복음을 변론하는 사도들 (행15:1~11)

 

논 설 편

1. 삶의 길을 찾는 자는 많으나 참으로 찾은 자는 적은 세상

2.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

3. 열매를 먹고 열매 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4.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로 인생의 가치를 찾자

5.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용사

6.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 

 

신 앙 문 답

1. 오늘날 유물론 사상이 세계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로써 어떠한 방법으로 그를 대항해 싸울 수 있습니까?

2. 지금은 기독교에서 대부분이 생각하기를 그다지 열성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3.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4. 기독교의 단체가 어떠한 방법으로 움직이게 되어야 완전한 단체가 되겠습니까? 

5. 교회가 앞으로 어떠한 역사로 끝을 맺게 되느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6. 믿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마음이 식어지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취미가 없이 되는 오늘날 어떻게 하여야 불이 붙는 교회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특    집

1. 1971년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하고 싶은 말

2. 권  고

3. 연말 성회를 앞에 놓고 올리는 사명자의 기도

4. 알리는 말씀

5. 말세복음 부흥단 회칙

6. 성탄과 평화 (눅2:1~14)

※ 감사 찬송

 

 

 

 

 

 

 

 설 교 편

 

위대한 인격은 섬기는 자이다

- 마 20:20~28 -

 

  주님을 따라 가던 제자들은 다 하나 같이 위대한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주님께 요청하기를 주의 나라에서 우리 두 아들이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던 것이다. 이것을 본 주님께서는 너희가 큰 자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섬기는 자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아버지께서 예비한 자라야 위대한 자가 된다 (22~23)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위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로 하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경륜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택해 세울 적에 대중을 위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는 그 사명을 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도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누가 괴로워도 섬기는 자가 되느냐 하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과거의 선지들도 아무리 동족에게 압박을 당하고 동역자에게 억압을 당해도 끝까지 자기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로 위대한 종을 만드는 모략적 방법이었다. 하늘에서 영원한 왕권을 예비하는 동시에 이 땅에는 당신의 종을 괴롭히는 마귀를 들어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하나같이 고난이 올 때에 더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간 것은 성신의 역사라고 본다.

 

  2.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위대한 인격이다 (24~28)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다 섬김을 받는 것을 위대한 자라 본다.  이것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의 종은 섬길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탄생하실 때에 섬길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이었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피를 받은 몸이라면 섬길 수 없는 몸이겠지만 물과 피로 임한 몸이니 그 몸은 죄와 상관이 없으므로 죄인을 섬길 수 있는 대속물이 될 수 있었다. 예수님의 귀한 몸 하나가 대속물이 되므로 수많은 사람이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인격이다. 한 몸이 죽으므로 세계 인류가 살아난다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 가진 인격인 것이다.  

  그런데 섬기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진리를 떠나 섬기는 일은 우상이 될 것이고 진리 안에서 섬기는 일은 큰 상급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계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섬기신 그 일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종들이 예수님께서 세계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속물이 되신 그 십자가를 증거해서 많은 사람을 살려 주고자 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섬기신 그 사랑의 법을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대중을 섬기는 것이니 이것이 주의 종 된 생활이다. 참된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물질을 아끼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대행자인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섬기는 법칙은 진리에 가감된 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진리를 위하여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이 진리이며 아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은혜시대의 진리라고 하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모든 백성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을 인류 종말의 다림줄의 진리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도 진리 하나를 바로 전해주는 것이 참으로 섬기는 일이요 이것이 가장 위대한 인격을 가진 자의 섬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왕권이라는 것은 진리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자를 말한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진리로도 남을 살리고 물질을 가지고도 남을 살리고 자기 몸으로도 남을 살리는 사람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영으로도 물질로도 남을 섬길 수 있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인격은 무엇으로든지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위대한 인격이라고 보며 이러한 자의 생활이라야 가치 있는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남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도 가치 있는 생활은 이러한 자의 생활이라고 본다.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의 위력

- 슥 6:9~15 -

 

  아무리 택한 예루살렘이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적에 이방 바벨론에게 망하여 황폐화되었고 말씀을 청종할 때에 예루살렘은 권세 있게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종말에 이러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 된다. 이제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위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면류관을 쓰게 됨 (9~11)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들은 면류관을 빼앗겼고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면류관을 복구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 면류관을 쓰고 제사하던 대제사장들이 선지의 말을 청종치 않다가 성전이 다 없어지고 그들도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이 아무리 성전 복구를 목적하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가서야 복구가 되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 대표적인 종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이 합심 단결할 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면류관을 쓰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왕권의 면류관은 절대로 원수를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만 청종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나타나서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명령할 때에 여러 사람들은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다가 방해하는 원수들의 압력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중지했으므로 많은 재앙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학개 선지에게 다시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청종하는 3, 4인이 단결할 때에 아무리 원수들이 방해를 하여도 다리오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강권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는 열매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역사가 일어나고 청종치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주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청종하면 일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시고 난국이 와도 돌파하고 나가는 사람은 여호와 역사하시어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하셨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될 때에 된 일은 오늘날 촛대교회를 일으킬 종들에게 주는 교훈이 되는 것이다.

 

  2.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순이 됨 (12)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마른나무같이 되는 것이요 말씀을 청종하면 푸른 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에 열매를 맺는 인격을 이루게 된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였지만 말씀을 청종할 때에 가서야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그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난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는 일은 몇 사람이 합심 단결하여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권리 행사가 나타나므로 이루어졌다.

 

  3.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영광을 얻게 됨 (13)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있다. 70년간 황폐화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아무 것도 아닌 가난하고도 약한 3, 4인이 합심하여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화려한 성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큰 영광이 되는 일이다. 아무리 고레스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 주겠다고 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았으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말씀을 청종할 때에 고레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다리오 왕에게 하나님이 역사해서 성전이 완축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순금 등대 교회를 완전히 이루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이루어져야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해주시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영광이요 청종치 않을 적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4. 말씀을 청종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됨 (14~15)

  하나님의 종이 말씀에 청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것을 대중이 알도록끔 열매가 나타나서 그 일을 후세에도 기념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종에게 역사가 나타나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도 그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만일 과거에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역사가 없었다면 인간 종말에도 없겠지만 과거 말씀을 청종한 자에게 역사가 있었으므로 종말에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나가야 될 것이다.

 

  결    론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일은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있게 되는 것이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은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아니고는 앞으로 남을 단체가 없을 것이니 우리는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입술

- 말 2:5~9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입술을 가진 자를 대행자로 쓰고자 하시는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는 말을 주지 않았지만 사람의 입술에 말씀을 준 것은 그 말대로 갚아 주시기 위한 목적이다(마12:36~37).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입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진리의 법이 있어야 됨 (5~6상반절)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통일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책에 기록하도록 하시고 그 밖의 사람은 입술에 그 법을 따라서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 입술에 진리의 법을 떠나서 말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강단에 응답의 역사를 나리시지 않는 것이다. 강단에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리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라는 것은 강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 바로 가르쳐서 모든 사람이 그 법대로 믿고 순종하며 그 법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받게 하는 곳이니 언제나 강단에 선 종은 그 입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을 책에 기록하게 하시고 그 법을 따라서 인생에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장 복 있는 자는 입술에 진리의 법이 있는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사는 것도 여기에 있고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진리를 증거할 때에 처음부터 그 법을 따라서 입을 열고자 하여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입술을 당신의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증거하는 자가 그 법을 한 번, 두 번 어기기 시작할 때에는 그 입은 사단의 도구가 된다. 하와가 간교한 뱀을 상대하여 말할 때에 하나님의 법을 떠나 가감하므로 간교한 뱀은 하와에게 침투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마귀와 싸울 때에 입술에 진리의 법을 가지고 마귀를 물리치셨다. 언제나 공중 세력을 가진 마귀는 입술에 진리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를 침투하려고 노리고 있는 것이다.

 

  2. 불의함이 없어야 됨 (6하반절)

  입술에 불의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듣는 자에게 피해를 주는 말이다.

  우리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말하면 그것이 전파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어갈 적에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유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보다도 듣는 자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듣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말은 불의가 된다.

  둘째 : 듣는 자에게 필요가 없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이 상대편에게 필요가 없는 것을 만들어 강제로 판다면 이것이 국가에 손해가 되는 일이므로 국가에서도 막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필요없는 말을 남에게 한다는 것은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며 인격을 잃는 일이며 자동적으로 방랑심이 들어가는 일이다. 방랑이라는 것은 필요 없는 말을 할 때에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이 필요 없는 말을 하면서 웃고 떠든다는 것은 한 오락이 되는 것이니 오락이라는 것은 사람을 방랑에 들어가게 하는 문이 되는 것이다.

  셋째 : 듣는 자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유혹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에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했다면 불의가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 위하여 하는 말이니 그 말하는 자체가 불의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종이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심리학적으로 말을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거짓 선지일 것이다.

 

  3. 지식을 지켜야 됨 (7~8)

  사람이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격 부족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입술에 지식의 말이 있어야 한다. 지식의 말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도 듣는 사람에게 깨달아지도록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깨닫도록 말을 하고 아무리 오해를 가진 자라도 오해가 풀어지도록 말을 하고 아무리 괴로워하던 마음이라도 만족해지도록 말을 하는 것이 입술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도 있고 하나님의 지식도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인간의 지식에 국한된 범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진리를 말할 적에 완전한 지식을 말하지 못하고 혼선이 있게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이니 모든 사람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따라가게 되는데 분명히 지식을 지켜 말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은 입술의 지식을 지켜야만 된다.

  입술에 지식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두 가지의 구분을 지켜야 한다.

  첫째 : 그 사람의 수준을 따라서 말해야 되며,

  둘째 : 그 사람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분명히 말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결    론

  입술이라는 것은 인생에게 준 사명이니 그 입술 하나를 바로 움직이므로 향상될 수 있고 입술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므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입술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하는데 있어서는 불의가 없고 지식을 지켜야 되는 것이다.

 

 

인간 최고의 영화

- 사 60:4~14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빛이요, 생명이요, 사랑이요, 능력이시지만 이것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 영화롭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조건없이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사람을 꾀어보고 아무리 꾀어도 말씀으로 그 마귀를 이길 때에는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다.  

  이제 인간의 최고 영화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영광의 집이 되는 일 (7)

  영광의 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한 곳을 말한다. 사59:18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날에는 서방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하실 것임이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신과 그 말씀이 동방 사람에게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영광이라는 것은 천국의 영광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지상 평화 왕국의 영광을 가르친 것이다. 사40:3이하를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하였다. 이 영광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하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나 해 돋는 편에 나타난 영광은 죄인을 부를 때의 역사가 아니고 원수를 갚는 날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동방에 나타난 영광은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고 하였고 2절에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다.  

  인류 역사상 제일 영화로운 일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제일 중점을 둔 것은 동방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고 권세가 임해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첫째아담이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지 못하므로 이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동방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승리하게 되므로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일은 인류 종말에 큰 축복인 동시에 큰 역사이다.  

  그러므로 열매가 제일 많은 일은 동방에 말씀이 임하여 일어나는 역사이다. 가장 훌륭하고도 영광스러운 곳은 말씀이 임한 장막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임한 영광의 집을 찾아서 모든 족속들이 들어오게 되어 섬김을 받는 일이 있되 열방 재물을 큰 축복 속에서 받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2. 하나님이 나타난 일 (9)

  팔레스틴을 성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땅을 말한다. 그 땅에는 지상 왕국을 이룰 언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기록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 나타나셨지만 동방 땅 끝에는 원수를 갚아 주고 지상에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것이다. 유대 예루살렘에 나타나신 것이 영자적이라면 동방에 나타난 일은 완전히 열매 맺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로운 일은 예언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요, 예언대로 완전히 끝을 맺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가장 영화롭게 되는 곳은 동방에 있되 여호와가 나타난 곳이라고 말씀하였다. 각 나라의 잠든 영들이 각성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동방을 찾아서 비둘기가 날아오듯이 하나님께 드리려는 재물을 가지고 모여든다. 가장 복되고 영화로운 곳은 여호와가 나타난 동방의 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 현저히 하나님께서 나타나 직접 말씀을 알려 주고 역사하시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3. 발 둘 곳이 있는 일 (13)

  인류 역사상 훌륭한 인물이 그곳에 머물러서 본부를 삼고 일해도 그 땅은 영화롭게 된 사실이다. 하물며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중심지로 삼아서 역사하는데 그곳이 얼마나 영화로울 것인가! 그러므로 동방 땅 끝은 하나님께서 발판의 무대를 삼고 역사하므로 그곳에 피해를 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동방에 나타나서 그곳을 중심하여 새 시대를 이루므로 동방은 자동적으로 안식 세계의 중심지가 되어 여호와의 성읍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 대한 민국이 얼마나 영화롭게 될 땅이라는 것을 알 자는 심히 적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간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9일간 눈물 흘려 기도하게 되었다. 매일 6시간씩 눈물 흘리며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열두 별이 한국으로 비쳐지는 것이었다. 그때에 방언이 열리며 내 입에서 통역이 나오기를 너는 네 민족을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열 두 사도적인 역사가 네 나라에서 일어나 열방을 깨우치리라 하는 것이다.

  그후 1964년 8월에 일곱 별이 빛을 내어 이 나라로 내려오면서 완전 역사가 네 나라에 임하리라고 하였다. 1965년 1월에도 일곱 별이 빛을 내어 내려오면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우리 수도원에 40일 금식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지금은 400명에 달하는 금식자가 생기게 되었다. 하늘에서 나타난 이러한 징조를 보아도 너무나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를 통치할 역사의 본부가 되는 동시에 새 시대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바이다.

 

  결    론

  인류 역사상 영화로운 일은 우리 나라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크게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한다. 만일 우리 나라에서 영화롭게 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볼 수가 없다. 우리 나라가 공산당에게 짓밟히고 만다면 모든 성경은 다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이미 동방에 나타났으니 필연코 우리 나라는 영화롭게 된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연단과 의로운 제사

- 말 3:1~12 -

 

  축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그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마귀를 들어서 연단을 시켜 보고 연단 중에서라도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영원한 축복을 주신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제사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연단 중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렸으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연단과 의로운 제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진노의 날에 설 자를 연단시키심 (1~2)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이 임박할 때 그날에 복 받을 자에게는 금을 불에 연단시키듯이 더러운 옷을 잿물에 빨듯이 미리 연단시켜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놓는 것을 목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는 남보다도 더 연단을 받게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여러 가지 시험으로 연단시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놓고자 하시는 것이니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거기서 더 성결하게 된다면 이것은 진노의 날에 복 받을 증거라고 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련이 올 때에 범죄를 한다면 그 인격은 가장 불행스러운 일이지만 시련이 올 때에 더 거룩한 인격을 얻게 된다면 이것은  축복 중에서 큰 축복을 받을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때에 무엇보다도 시련 중에 거룩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 하나를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2.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를 남게 하심 (3~6)

  제사라는 것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회개하는 제사, 둘째 : 감사하는 제사, 셋째 : 의로운 제사가 있다.

  아무리 회개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있다 하여도 시련이 올 때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원망하든지 낙심하든지 한다면 그 사람은 진노의 날에 남을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생을 받고 한때는 기쁨으로 감사를 드렸지만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약해지고 넘어지고 용기있게 나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영혼이 구원받는 신앙 정도와 진노의 날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신앙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에 술수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품꾼의 삯을 억울케 하는 자와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와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는 다 망할 것이로되 오직 야곱의 자손만이 남으리라고 한 것은 야곱이 시련 가운데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것과 같이 끝까지 참고 나가서 승리한 자라야 남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3. 완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를 복을 주심 (7~12)

  십일조라는 것은 이미도 있던 일이지만 특히 본문을 보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땅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되는 법이다. 십일조에 대하여 완전히 축복을 받는 제사가 되게 하려면 먼저 성결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다음에는 아무런 시련이 와도 의로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인내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십일조를 바치되 하나님의 집에 바쳐야 할 것이며 현물에서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의 현물을 받아도 먼저 그 중심을 보시는 것이다. 중심에 성결이 없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교회에 바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현물에서 바치되 현 수입에 따라서 바치지 아니하면 기뻐하지 않으신다. 현물이라는 것은 농업에는 그 해 열매가 현물이요, 상업에는 이익을 얻은 것이 현물이요, 직장 생활에는 봉급이 현물이요,  노동자에게는 품값이 현물이 된다. 누구든지 이 세 가지가 완비된 십일조를 드린다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이 본문에 황충을 금하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포도 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를 복되다 하리라 한 것은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서에 가르친 말씀은 4장과 같이 온 세계가 불탈 때에 남은 자가 될 사람에게 대하여 가르친 교훈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에게 연단을 시키시는 동시에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영원한 축복을 택한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성결한 사람이 되어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오더라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제사를 드리게 될 때에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의 제단 문제

- 사 19:19~25 -

 

  인간이라는 것은 종교가 없이 살 수 없고 종교라는 것은 제단이 없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종말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시대의 사람에게 역사하실 때에 제단을 중심하여 역사하셨다.  

  양심 시대 말기의 노아의 제단,  언약 시대 아브라함의 제단, 율법시대의 유월절 제단, 은혜시대의 다락방 제단이 있었고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을 것을 본문에 말씀하셨다.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중앙 제단 (19)

  주 재림 시기에 극도로 인심이 악화되고 경제가 혼란하고 정치가 부패되고 세계가 미혹을 받는 때에 중앙 제단이라는 것은 그 제단을 통하여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곳을 뜻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진노의 날에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는 역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교회가 많다. 진노의 날에 영, 육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있어서는 어느 교파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한 제단이 나타나서 그 제단을 중심하여 역사가 일어나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나는 여기에 대하여 증거할 말이 있다. 이것은 1964년 9월 5일 밤에 하늘로부터 세미한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이 산에 사19:19과 같은 제단 자리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서 제단을 쌓고 말세의 종을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그날은 현 계룡산 새일수도원이 있기 전에 이 산에 기도하러 왔던 때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음성을 듣고도 주저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 다시 알려오므로 마음에 충격을 받고 산을 편답하던 중 지금 새일수도원 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그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나는 믿는 바이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열매를 볼 때에 분명히 이 제단이 중앙 제단이 된다고 확신이 생긴다. 이 제단으로 말씀이 나려 각 나라로 문서 운동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에 자연적으로 이 제단이 중앙 제단이 될 것은 사실이다.  

  이 제단을 시작한 것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이 산을 덮고 불 가운데서 직접 명령이 내리므로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날부터 단돈 2,000원을 돌 위에 놓고 기도하면서 시작한 것이 1964년 9월 24일 새일수도원 개척의 날이 된다. 누구든지 이곳에 와서 보면 하나같이 이 말이 믿어질 것이다. 교파를 초월하여 중앙 제단이 있으므로 각 교파의 숨은 종들은 지금도 하나같이 호응하는 바이다.

 

  2. 표적과 증거 (20상반절)

  언제나 하나님은 그 시대에 역사가 나타날 적에 한 곳에 먼저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역사를 따라오게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주님이 재림할 때에 나타나는 역사는 한 곳에서부터 일어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표적과 증거로 보여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아무런 역사없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단 중심으로 역사가 일어나되 기둥같이 굳게 서는 종들로 말미암아 큰 증거가 나타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역사를 따라 오게 된다.

 

  3. 구원과 보호 (20하반절)

  세계 인류가 구원을 받고 보호를 받는 일은 반드시 제단을 중심하여 일어날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을 중심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서 세계를 구원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죽은 영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이다. 그러나 여기에 구원과 보호라는 것은 영, 육을 아울러 구원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을 가르쳤다. 어떤 교파를 중심해서 역사하는 것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제단 중심으로 역사하는 것을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각 교파에서 새일수도원을 압박하지만 필연코 승리는 새일수도원에 있을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현저히 계속으로 말씀이 나리는데 있어서는 현 교계에서 이날까지 알지 못하던 성경의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역사하시는 것이니 진리가 임하는 제단을 압박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세계 평화 (21~25)

  세계 평화라는 것은 전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시므로 큰 개혁이 일어나는 동시에 어느 나라나 복 있는 자는 남게 될 것이고 그 밖의 사람은 전멸을 받게 되므로 다 하나가 되어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나 어떤 정권을 중심하여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한 제단을 중심하여 여호와 역사하시므로 끝을 맺되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단의 대적과 종된 자의 왕권

- 슥 3:1~7-

 

  하나님께서 종된 자에게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주고자 하실 때에 사단을 허락해서 그 종을 대적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진실성을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담대한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요

  셋째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단의 대적이 있으므로 완전한 것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본문에서 사단의 대적과 종된 자의 왕권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단의 대적을 받을 종의 자격 (1)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당신의 종을 대적케 하시되 다음과 같은 자격이 있는 자를 대적하게 하신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믿는 자이다.

  둘째 : 용기있게 나가는 자이다.

  셋째 : 대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이다.

  이러한 종에게만 사단의 대적이 있게 하신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를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벌써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니 사단이 대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이 용기있게 나가지 못하고 후퇴한다면 사단에게 벌써 눌린 것이니 사단이 더 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는 어떠한 종이 대중을 위하지 않고 자기 명예나 권리를 위하여 일을 한다면 벌써 사단의 종이 된 자이니 사단이 대적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그러나 말씀을 가감없이 믿으며 용기있게 나가며 대중을 위하여 일해 보려고 하는 자는 사단이 대적하게 된다. 여기에서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고 용기있게 끝까지 나가면서 대중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 자라고 인정을 받게 된다.

 

  2. 그슬린 나무같이 된 자의 인격 (2~3)

  인간이 볼 때에는 비방을 받고 악평을 받을만한 자리에 있다 하여도 이러한 환경에서 마음에 타격을 받지 않고 사단의 압력이 침투하지 못하는 자라면 이 인격은 왕권을 받을 인격이 된다. 이러한 피해를 당하고도 인격에 질적 타락을 받지 않고 더러운 옷만 입었으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에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나 중심 속에 성결함이 없이 되었다면 중심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과 싸우는 사람은 외면적 보다도 중심적으로 모든 일을 주 앞에 인정받게 해 나가야 왕관을 쓸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게 된다.

 

  3.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자의 자격 (4)

  아무리 사람에게 누명을 쓰고 악평을 받더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환영을 받지만 하나님이 중심을 보실 때에 회개할 것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단에게 피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책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4. 천사가 함께 할 자의 자격 (5)

  언제나 주의 천사가 같이 하는 종의 자격을 가진 자는 먼저 사단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사단으로 시험을 해 보고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인정될 때에 주의 천사는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긴 다음에 주의 천사가 같이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왕권을 주어서 천사가 같이 하므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게 해 주기 위한 방법이다.

 

  5. 다스리는 권세를 가질 자의 자격 (6~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에게 권리를 맡기려고 하실 때에 먼저 사단을 들어서 대적케 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단의 대적을 받고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중심과 사상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예루살렘을 복구할 때에 여호수아에게 되어진 일은 말세에 촛대교회를 일으킬 사명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큰 사명을 맡기실 때에는 그 종을 먼저 사단을 허락해서 대적케 하신 후에 인정을 받는 자격을 이루게 하여 모든 권리를 맡겨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꼭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종이 되는 것이 큰 문제다. 누구든지 사단의 대적을 피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 나갈 때에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신의 역사와 인격 문제

- 롬 8:12~1 -

 

  인생이라는 것은 자체에 완전성이 있는 것이 아니요, 완전성이 있는 신의 역사로 그 인격이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완전하게 하신 것이 아니고 성신의 역사를 통하여 완전하게 하시는 것이 당신의 뜻인 동시에 영광이 된다. 그러나 인간 자체에는 성신을 받을 자격이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인하여 성신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롬8:2~4).

  그러면 성신의 역사와 인격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성신의 역사와 육신 문제 (12~13)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의 몸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은 성신의 전이기 때문이다. 신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의 몸을 통하여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도 사람의 몸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요, 성신도 사람의 몸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마귀는 사람의 몸에 정욕이 발생케 만들어서 자기의 도구로 쓰는 것이요, 성신은 몸에 죄된 행실을 죽여서 없이하고 난 뒤에 그 몸을 도구로 써서 의의 병기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롬6:12~14).

  성신은 십자가의 승리로 인하여 우리 몸에 역사하시는 신이시니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는 역사하셔서 몸에 있는 죄의 근성인 정욕을 죽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성신이 몸의 정욕을 죽여주므로 거룩한 인격을 이룰 수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성신의 역사로 몸의 정욕이 죽는다는 것을 체험치 못하고 성결을 부인한다는 것은 큰 과오가 되는 일이라고 본다. 성신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신이시니 육체의 정욕이 성신의 역사로 죽을 것을 믿고 구하는 자에게 역사하셔서 그 몸의 정욕이 죽게 하므로 능히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2. 성신의 역사와 영의 문제 (14~16)

  성신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우리 영과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 영이 성신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성신이 우리 영을 주관하시는 것이다. 첫째는 인도하시며(14), 둘째는 부르짖게 하시며(15), 셋째는 증거하게 하신다(16). 이렇게 되므로 영은 자유롭게 활동하는 영이 된다. 우리의 영은 성신의 인도가 없이는 바른 길을 찾아 나갈 수 없으며 성신의 역사가 없이는 강하게 부르짖는 힘을 얻을 수 없으며 성신의 역사가 없이는 증거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영을 지배하는데 있어서는 성신을 통해서 지배하여 우리 영을 발전시키므로 영적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성신의 역사를 받지 못하고는 영적 활동을 하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현 사회의 사람들은 육으로 사는 생활, 정신 작용으로 사는 생활, 영으로 사는 생활로 나뉘어져 생활하고 있다. 육으로만 사는 자는 정신 작용으로 사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요, 정신 작용으로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신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활동이 있게 된다.

 

  3. 성신의 역사와 생활 문제 (17)

  성신의 역사로 사는 생활은 그리스도와 같이 항상 싸우는 생활이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워 주듯이 성신을 받은 사람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그 전쟁에 한 정병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에게 성신을 부어 주신 목적은 그 한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요, 많은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성신을 받은 자는 자동적으로 싸우는 생활이 있게 된다. 이것은 성신의 역사가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는 것을 목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신을 받은 자는 남을 살려 주기 위하여 순교하기까지 싸우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남을 살려 주기 위하여 고난을 달게 받고 나가는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성신의 역사가 떠나간 종이라고 볼 수 있다.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남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고난을 받을 때에 거기서 더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인정을 받은 종으로서 묵시를 받아 성경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들이 받은 묵시의 글을 바로 전하려면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하고 큰 일은 성신의 역사로 인격이 완성되는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역사로 완전한 왕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신의 역사와 인격 문제를 바로 알고 나가야만 열매 있는 생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식과 인간 종말의 문제

- 사 11:6~16 -

 

  오늘날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이 있는 자가 아니요, 무식한 자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물건에 대해서 아무리 잘 안다 하여도 주인을 모르고 집안에 있는 물건만 좋다 나쁘다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물건에만 눈이 밝은 사람이지 사람 볼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주 안에 있는 물질계의 이치는 잘 알면서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를 모른다는 것은 무식이며 소위 유물론 사상을 가진 짐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동물 중에서 고등 동물은 될지언정 사람 중에서 고등 사람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 고등 동물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 아니고 사람 중에서도 고등 사람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다. 어떠한 지식을 가져야 인간 종말에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종말 (6~9)

  오늘날 유물론 과학자들은 과학이 극도로 발달함으로써 인간이 노동을 적게 하고도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이것이 즉 천국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여덟 시간 노동하던 사람이 두 시간만 노동해도 먹고산다면 이것이 얼마나 평안한 생활이냐고 하는 것이 그들이 인간 종말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일을 적게 하고 먹고사는 것으로 만족이라 한다면 산에서 사는 동물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먹고사니 인간들은 동물의 세계를 이루면 된다는 것인가? 이런 따위의 지식을 가지고는 인간 종말을 바로 알 수도 없고 인간 종말의 합당한 인격을 이룰 수도 없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본다. 물리를 아는 과학, 도리를 아는 철학, 진리를 아는 신학이 있다. 오늘날 신학이라는 간판 밑에 과학을 초월한 지식, 철학을 초월한 지식이 완전히 없다면 그 신학은 자동적으로 퇴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물체에 관한 지식으로 물체를 사용하고 도리를 아는 지식으로 사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완전한 나라를 이룬 것을 새 시대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 교회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박약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날까지에 성자의 역사와 성신의 역사는 이루어진 일이므로 우리가 알았지만 하나님의 새 일의 역사는 모르고 있다.  

  새 일이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없앨 자를 없이하고 남길 자를 남겨 그 남은 자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어 눈물, 죽음, 고통, 전쟁, 질병, 재앙이 없는 땅을 이루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무한한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을 가르쳤다.  

  4복음을 읽어서 예수를 알 수 있고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읽어서 성신을 알 수 있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바로 알게 될 때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계시록과 선지서를 통하여 분명히 안 자라야 새 시대에 들어갈 인격을 이룰 수 있다.

 

  2. 세계 통일의 기호와 인간 종말(10~12)

  이날까지 세계 통일의 기호가 있었던 일은 없었다. 오늘날 소위 붉은 깃발이라는 것은 낫과 망치를 그려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식한 사람들의 깃발이다. 낫을 든 농민과 망치를 든 노동자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 무신론 공산당의 기호인데 반드시 망할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자기의 노동만 제일로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모른다면 소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의 기호는 반드시 십자가의 기호가 될 것이다. 십자가는 서방에 한 일자와 동방에 한 일자가 합해서 십자가이다. 십자가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대표하여 대 승리를 이룬 십자가이니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도 기뻐하고 땅에서도 기뻐할 일이다. 낫과 망치를 들고 일어나서 남을 죽이고 피의 도성을 이루는 것이 소위 공산 국가라면 세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은 승리로 이루어진 나라는 사랑의 동산이다. 이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조물주께서 인간을 사랑해서 역사하는 사랑이니 낫과 망치를 든 사람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기호는 붉은 깃발을 꺾어 넘기고 세계를 통일하는 기호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기호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통일의 기호가 서는 평화 왕국이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본 성경은 어느 나라든지 십자가 기호를 중심하여 모여 든 무리들이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룰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십자가 기호의 세계 통일이 온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만 남은 자가 될 것이다.

 

  3. 완전 승리의 역사와 인간 종말 (13~16)

  본문 성경을 보면 모든 원수가 다 없어지고 남은 자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와 같은 역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오늘날 소위 신학자들 가운데 이적은 폐지라 하는 학설도 있고 과거에는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학설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성경을 기록할 때에 나타난 역사는 인간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신과 같이 들어 쓴다고 말하였다. 지금 소위 협상이라는 간판 밑에서 평화를 꿈꾸고 있지만 이것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하나님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치므로 북방이 망하는 동시에 평화로운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 대략을 들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사야 10장, 미가 5장, 하박국 2장, 요엘 2장, 스가랴 12장, 계시록 11장, 계시록 19장을 보아도 분명히 이것을 가르쳤다. 그 밖에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 선지서와 계시록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현 상태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원수의 세력이 굴복을 하는 큰 역사가 있음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므로 끝을 맺는데 이것을 새 일의 진리라고 한다.

 

  결    론

  지식이라는 것은 그 인격에 따라 있는 것이니 과학만을 체험한 자는 그 지식에 국한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체험한 자는 그 지식에 국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그 체험과 합치가 될 때에 열매를 가져오게 된다. 현 시대가 물질 문명을 가져 온 것은 과학적 지식을 체험한 자들의 활동이라고 보며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의 활동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

- 마 5:11~12, 계 18:20, 19:6~9 -

 

  인생이라는 것은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며 복된 사람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인간으로는 낙망하고 두려워할 일이 올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시었다. 그러면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로 증거한다.

 

  1. 주를 위하여 핍박과 훼방을 받는 일 (마5:11~12)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셨다. 우리 인간이 볼 때에는 분명히 억울한 일이지만 이것이 사람으로서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라고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예수와 같이 되는 일이다.

  둘째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셋째 : 왕국을 이루는 일이다.

  세상에서 핍박을 제일 많이 받고 욕하는 말을 제일 많이 들으신 이는 우리 주님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시므로 마귀의 자식들은 제일로 미워하고 욕하고 핍박할 일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예수님이 가지 않으셨다면 우리 인생은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예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천하에 제일 위대한 일이라고 본다. 일국의 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해도 충신이라고 하고, 한 집의 남편을 위하여 절개를 지켜도 열녀라 하고 한집의 부모를 위하여 성의를 다해도 효자라 하거든, 하물며 만왕의 왕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이것은 세세 왕권을 받는 일이니 제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 된다.

  주님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세상에서 이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걸어가신 길이 이 길이요 모든 선지나 사도나 성도들이 걸어간 길도 다 이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을 바로 알고 용기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2. 원수를 갚아 주는 일 (계18:20)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불사름을 받는 날에 즐거워할 자는 억울하게 핍박을 받고 비방을 받고 나가던 종들이라고 하였다. 이날까지 이 세상은 참된 즐거움의 날을 볼 수 없는 사망, 고통, 전쟁, 흉년, 질병으로 내려왔지만 이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는 일이 있을 때부터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자는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이라 말씀했다. 왜냐하면 다시는 괴로움과 사망이 없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원수를 갚아 주는 날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남을 속이고 압박하고 자기의 정권이나 물권이나 교권을 가진 자들이 향락을 누리는 세상이지만 이것은 풀의 꽃과 같이 쓰러지고 말 것이요, 오직 세상에서 의를 위하여 억울함을 당하던 사람들만 즐거워하는 세세 왕국, 영원한 천국이 올 것이다. 땅에서도 천년 동안 즐거워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즐거워할 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던 자들이다.

 

  3.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일 (19:6~9)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된 인생에게 가장 즐거움을 주는 일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다 하나님을 괴롭히는 일을 했는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순종하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하던 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즐거운 잔치를 베풀어주고 그때부터 영원히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간교한 마귀를 들어 꾀어 보기도 하고 마귀의 강한 세력을 허락해서 당신의 종들을 핍박하기도 하고 죽이게도 한 것은 가장 즐거운 잔치를 베풀어서 그들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왕권을 누리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길이 누리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 제일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가 한시간에 불탈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만난 이 때에 제일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는 각자 각자가 준비하여야만 될 것이다.

 

 

주안에서 기쁨으로 사는 생활

- 빌 4:4~7 -

 

  오늘날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얼마든지 화려하게 살 수도 있고, 빨리 왕래할 수도 있고, 평안히 지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항상 기쁨은 주안에서 사는 생활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항상 기쁨으로 사는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들어 증거한다.

 

  1. 관용심이 있어야 한다 (4~5)

  관용심이라는 것은 최후에 만족을 누리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밖에의 것을 받고 기쁨으로 사는 자는 아무리 괴롭히는 사람이 있고,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 하여도 거기에서 상심하지 않고 관용심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자기가 용서를 받았고, 만족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자기를 괴롭히고 손해를 주는 일에 대하여 조금도 상심을 갖지 않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이 넘치는 생활에서 너그러이 용서하게 되는 것은 억지로가 아니요, 기쁨이 넘치는 마음에서 있게 된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 하늘의 상급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므로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2. 감사함으로 올리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6)

  언제나 기도는 감사함으로 할 조건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일이요, 둘째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받은 일이요, 셋째는 모든 일은 기도로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이루어진 일이니 기도를 할 수 있게 된 은혜를 항상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만 된다.

  우리가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보다도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예정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니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도하는 사람에게 큰 유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있어야 한다 (7)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평강을 소유하지 못한 자라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참된 평강이라는 것은 기도 응답으로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어려운 일이 와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택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에게 평강을 주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평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자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에 가장 복된 생활은 주안에서 사는 생활이니 이러한 자는 세계 인류가 하루살이 같이 쓰러지는 날에라도 참된 평강이 있을 것이다.

 

  결    론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기뻐하게 될 때에 그것을 영광으로 받으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참된 기쁨을 인간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역사하시므로 인간들이 죄값으로 받을 형벌을 당신의 아들에게 담당시키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택한 자에게 기쁨의 생활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주안에서만이 기쁨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자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은 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성산에서 복 받는 가정

- 사 65:21~25 -

 

  조물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동방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복 받을 가정을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축복을 그 가정에 주는데 있어서는 시험을 해 보고야 주겠다는 것이다. 아담, 하와에게 시험이 없이 영원한 축복을 주었다고 한다면 전 세계 인류를 다 하나같이 시험을 해 보지 않고 복을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담, 하와의 가정에도 시험이 있었으니 성산에서 복 받을 가정도 분명히 시험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계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의 가정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잃어버린 성산 축복을 다시 가정에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날까지는 가정적인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개인의 영혼 구원을 목적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가정적인 지상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귀의 자녀들에게 핍박을 받고 훼방을 받는 가운데서 불신자보다도 곤고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는 성산에서 복을 받게 되는 가정 구원인데 이것을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날까지는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준 것이요,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를 마귀로 시험을 해 보고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긴 자의 가정은 성산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가정을 이루어서 영원히 기뻐하는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문으로 증거하면 다음과 같다.

 

  1. 건축과 재배의 축복을 받음 (21~22)

  본문에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 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지금과 같이 건축과 재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거기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길이 길이 살게 될 것과 자기가 재배한 열매를 길이 길이 먹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건축과 재배는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헛된 수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시작하신 일이라면 사람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하여도 그것을 다시 이루어 놓으시는데 이것을 완전 구원의 역사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천당 간다는 것은 원칙으로 알고 살아서 새 시대에 간다는 말씀은 읽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이러한 자의 가족은 원수의 칼 앞에서 다 구푸리고 죽을 것이 기록해졌다(사65:11~12). 아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인류 종말에도 성산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반대하고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반드시 여호와께서 죽이겠다고 말씀하시었다(15).  

  모든 성경은 두 가지로 구분 지어 말할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교훈은 천국을 중심하여 가르친 교훈이요 여호와의 교훈은 지상의 성산 축복을 중심해서 가르친 교훈이다.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요, 성산의 축복을 가정이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자녀가 된 자들이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에 떨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므로 된다고 사66:2에 말씀했다.  

  과거에는 간교한 뱀을 들어서 미혹을 하였지만 심판기에는 말씀에 떠는 자를 교회에서 미워하고 쫓아낸다고 5절에 말하였다. 이것은 거짓 선지로 말씀이 혼선 되도록 미혹하는 일이 있으므로 미혹을 받은 자들이 말씀에 떠는 사람을 미워하고 쫓아내기까지 될 것을 말씀한 것이다.

 

  2. 자손의 축복을 받음 (23)

  아담, 하와가 범죄하므로 그 자손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말세의 성도가 미혹을 이기므로 그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조상이 범죄하므로 자손이 억울하게 망했다면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성산에서 길이 길이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범죄로 속죄 종교가 시작되어 세계적인 인류의 타락을 구원시키는 종교로 이룬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이며 그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 미혹을 이기고 지상의 성산 축복을 받는 나라가 이루어지므로 근본적인 에덴 축복을 다시 받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성산의 축복을 받는 성도의 가정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그 영혼의 구원받는 일은 그 자녀를 세상에 두고 죽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말씀에 떠는 하나님의 종들이 받는 축복은 길이 길이 그 자손이 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해함도 상함도 없는 안식을 받음 (24~25)

  동물들까지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므로 동물들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계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사람이 범죄하므로 자연계까지도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이긴 사람들이 복을 누리는 성산이 이루어 질 때에는 어떠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나 상함을 받는 일이 다시는 없게 된다. 이때에는 동물도 사람을 돕는데 전력을 두게 될 것이고 모든 자연계도 사람을 돕는데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된 가정은 성산의 축복을 받는 가정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정의 전 식구가 후세까지 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예언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 성산의 축복을 받을 주의 종들에게 절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전하기 위하여 빠진 것이 하나도 없도록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선지서이다(사33:16).

 

 

수면에 운행하시던 신의 창조

- 창 1:1~13 -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신이신 동시에 신의 활동하는 세계는 물 위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한다. 신은 뼈와 살이 없으나 신의 자체로서는 물체와 하등에 관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의 역사가 수면에서만 운행하시고 물체를 움직이는 역사가 없었다면 신의 영광은 큰 열매를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여호와의 신이 수면에만 운행하시고 아무런 창조가 없었다면 그 신은 영광을 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로되 수면에 운행하시던 신의 창조가 물속에 들어와서 역사가 있게 되었다.

  신의 세계에서 물질계를 창조하여 물질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당신의 영광으로 받으시는 것은 신의 섭리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 물 속에 한 세계를 이루심 (1~8)

  물 속에 한 세계가 이루어진 일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첫째 : 물체 속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음 (1~2)

  하나님께서 물 위에 운행하실 때에 물 속에 잠겨 있는 물체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이 혼돈, 공허, 흑암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자체가 되시며 빛의 자체가 되신다. 그러므로 물체에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물체의 활동력은 근본이 하나님께 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활동인 빛이 물체에서 떠나간다면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공장의 모든 기계가 자동적으로 돌고 있지만 거기에는 기술자 한 사람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 위에 운행하시다가 물 속에 한 세계를 이루게 된 것은 수면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세계에 완전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천국은 물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니고 물 밖에 나가 있는 세계를 말한다.

  둘째 : 빛이 있으라 하심 (4~5)

  이 빛이라는 것은 생명의 빛을 뜻한 것이다. 그런데 빛이 있으라 할 때에 그 생명의 빛이 비로소 있은 것이 아니고 이미 있던 생명의 빛이 물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기계 속에는 아무런 활동할 힘이 없는데 전력이 기계에 들어올 때에 그 기계는 전력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과 같다. 반드시 선을 따라서 전력이 나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활동은 반드시 물체의 질을 바로 움직여서 창조의 역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 궁창을 만들어 물 속 세계를 이룸 (6~8)

  궁창은 물 속에 한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물을 막고 있는 한계다. 예를 든다면 바다 속에 한 공장을 이루려면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쇠로 완전히 막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장을 세워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쇠벽 안에는 비어 있을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쇠벽 밖에는 물 세계가 되고 쇠벽 안에는 물이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공간에는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공장을 이룰 수 있다. 물 밖의 공기를 쇠벽 안으로 통하게만 한다면 물 속 공장에서 얼마든지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궁창이라는 것은 많은 물을 막고 있는 쇠벽과 같이 물이 우주 공간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조했다고 본다. 궁창 위의 물과 아랫물이 나뉘었다는 것은 많은 물은 궁창 밖에 나가게 되고 궁창으로써 막게 한 후에 궁창 안에 있는 물이 한데로 모여서 바다가 된 것을 말한다. 물에 있던 흙이 한데로 모여서 굳어진 것이 지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궁창 안에 있는 우주 세계는 궁창 밖에 있는 세계의 천국을 이루는 한 공장과 같은 인격 훈련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흙으로 사람을 창조해서 흙에서 활동하도록 해 놓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면 신의 영광의 나라로 옮겨다가 하나님과 동거 동락케 한다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 된다.

 

  2. 지구의 세계를 이루심 (9~13)

  지구의 세계라는 것은 영원한 것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궁창 밖의 세계에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 사람을 꾀어 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바로 사용하나 못하나 시험을 해보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간교한 뱀을 창조한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진실한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목적이니 누구든지 간교한 뱀의 말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자라면 완전히 승리한 자로써 궁창 밖의 천국 세계에서 제일 큰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의 나라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요, 그 밖의 별 세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고 이것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를 위하여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결    론

  물을 갈라 궁창 밖으로 나가게하고 물을 막고 있는 궁창 안에 한 세계를 이루어 그 안에서 사람을 창조하여 간교한 뱀으로 시험을 해보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참이라고 믿고 순종하는 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영원히 동거동락 하자는 것이 수면에 운행하시던 신의 섭리이다.

 

 

눈이 밝은 사람이 되자

- 마 6:22~24, 7:1~5 -

 

  사람이라는 것은 먼저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고 있는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거룩한 사람들이 다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군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성전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바리새교라는 정통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제사장이라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 이단이라고 할 때에 주님께서는 입을 열어 가르치기를 눈이 밝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눈이 어두운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았는데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바알세불이라고 하며 나사렛 이단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1. 섬기는 일에 눈이 밝아야 한다 (6:22~24)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물질을 따라 가게 되면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요 물질을 바로 사용하게 되면 눈이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이 없다면 모든 것은 다 허사가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셔서 그 만물을 사람에게 주신 것은 그 물질을 섬기라고 준 것이 아니요, 물질을 바로 사용하되 현 세상을 위하여 쓰지 말고 천국을 위하여 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눈이 밝은 자는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을 하는 자이다.  

  바리새 교인들은 말로는 정통을 부르짖으면서 돈을 가지고 사람을 사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일을 했다. 이것은 멸망의 자식들이 하는 짓이라고 본다. 우리는 물질을 섬길 때에 멸망이요 물질을 바로 사용할 적에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오는 축복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하늘에 보화가 있게 된다.

  둘째 : 땅위에 축복이 있게 된다.

  셋째 : 항상 주의 축복 속에서 기쁨이 있게 된다.  

  거짓 선지라는 것은 자기에게 돈을 주면 기뻐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노여워하는 것이요, 참된 선지라는 것은 돈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물질을 희생하고 몸을 희생하고 전 생활을 바치는 것이다. 삯을 바라고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를 이용하는 자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나가는 자는 말씀의 용사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전토나 형제나 부모나 모든 것을 버리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로되 그렇지 않은 자는 자동적으로 삯군이 될 것이다.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들이 눈이 어두워 참된 진리를 대적하였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들이 참된 진리를 대적하다가 망하게 될 것이다(미3: 5, 11).

 

  2. 보는 일에 눈이 밝아야 한다 (7:1~5)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부족을 모르고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이 남의 부족도 알게 된다. 바리새교인들은 자기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정죄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가서 전도할 때에 그것을 불의한 일로 보았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해서 범죄자로 판정했고,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하였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 낼 때에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눈에다 검은 안경을 쓰면 다 검게 보이듯이 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옳은 일을 하는 걸 보아도 옳게 보이지 않고 다 자기 마음같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네 눈 속에 티를 빼라 하느냐.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리라 하셨다. 이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 욕심이라는 들보를 뽑아서 없애는 자라야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죄악성을 없애 버리는 일이 있어야 눈이 밝은 종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들보를 뽑은 자의 영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진다.

  둘째 : 성경에 눈이 밝아진다.

  셋째 : 모든 일에 눈이 밝아진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과학 문명이라고 하지만 실지는 흑암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과학 문명은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눈이 밝은 자가 볼 때는 분명히 심판기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의 심판기는 이방의 빛이 되는 그리스도의 교훈이 세계에 전파된 후에 극도로 진리를 대적하는 강한 세력이 북방으로부터 올 것과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설 것과 사랑이 식어지므로 불법이 성하게 될 것과 모든 사람이 짐승의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일 것과 빈민이 부자 앞에 억압을 당할 것과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게 되는 위기가 올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자세히 보고 세상을 본다면 분명히 심판기로 보게 된다. 누구든지 섬기는 눈이 밝고 보는 눈이 밝은 자는 하나같이 이 시대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슬퍼할 자는 눈이 어두운 자요 가장 기뻐할 자는 눈이 밝은 자라고 본다. 눈이 밝으냐 어두우냐 하는 것은 죽느냐, 이기느냐 하는 문제가 결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눈이 밝아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것이며 보는 눈이 밝아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장 년  공 과 편 - 세계적 선교와 세상 끝

 

  총    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성경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언약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를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 세계적인 예언을 하게 된 것이다.

  구약 때에 이루어진 모든 일과 나타난 말씀은 한 유대 민족만 위한 것이 아니다. 유대 족에게 나타난 역사는 세계적인 역사가 되고 선지를 통하여 나타난 말씀도 세계적인 구원과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선교와 세상 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공부하고자 한다.

 

제1과  세계적 성전 확장과 여호와의 산

- 사 2:1~4,  요절:2 -

 

  서  론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만 있었다. 이 성전은 완전한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아니고 영자적인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었다(히10:1).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세계적인 성전 확장이 될 때에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성전은 세계적인 성전 확장을 가져올 때까지 모든 문서가 완전히 성립되는 예언을 하기 위한 성전이었다. 이 성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 지진이 나면서 휘장이 찢어지고 말았다(마27:51).

  이런 증거가 나타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끝이 났다는 뜻인데 어디든지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예배하면 다 성전이 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

 

  1대지 : 세계적 성전 확장 (1~2)

  하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말씀하시기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되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리라”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 어느 나라나 작은 산 위에 굳게 선 것은 세상 끝이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이 어느 나라든지 작은 산 위에 굳게 선 것은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제단을 쌓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성전이나 다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게 된 것은 십자가 제단의 성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십자가를 믿으므로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목적한 성전이다. 이 성전이 천하에 세워지기까지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 20세기에 이른 것이다.

소위 하나님 성전의 대제사장들은 나사렛 예수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때에 자기네가 승리하는 것 같이 생각했지만 그 성전은 완전히 없어지고 대제사장에게 정죄를 받고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사람들이 대 승리를 이루고 세계마다 성전을 굳게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게 된다.

 

  2대지 : 여호와의 산에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성전 (3)

  천하에 나라마다 작은 산 위에 성전이 굳게 선 것은 천국 복음을 증거하여 서게 된 것이요, 여호와의 산에 성전이 있어 야곱의 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 끝에 야곱의 축복을 받는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기 위한 진리 운동이 일어날 것을 뜻한 것이다. 야곱의 도라는 것은 천국 복음을 뜻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야곱의 씨로 지상 왕국을 이룰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구약시대에 선지들에게 야곱의 자손으로 세계 통일의 평화 왕국이 올 것을 가르친 것은 육적 이스라엘이 야곱의 도를 배워서 복 받을 일이 아니요, 세계 만국이 다 그 도를 배워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네 자손이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이 본문 말씀과 합치된 말씀이다.

  이날까지 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야곱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요, 세상 끝에는 야곱에게 허락한 그 축복을 지상에서 받는 역사인데 여호와의 산이 나타나고 거기에 성전이 있어서 야곱의 도가 되는 말씀을 분명히 가르치는데 그 교훈을 따라가는 자들이 새 시대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길을 가지 않는 자는 다 이방과 같이 망할 것이고 야곱의 길을 가는 자는 강한 이방을 심판할 때에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게 된다.

  야곱의 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가르친 것이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장손이지만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이방 여자와 결혼을 하고 장자의 기업을 등한히 알므로 이방 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므로 그를 통하여 선지 국가가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선지를 통하여 심판과 새 시대를 이루는 야곱의 도를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도를 배우고 그 길을 가야만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성신의 역사는 세계 만방에 성전을 세우게 되었고 여호와의 산 성전에서 가르치는 야곱의 도는 완전한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3대지 : 심판과 평화 왕국 (4)

  세상 끝이라는 것은 세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모든 이방 세력을 없이하고 야곱의 길을 걸어가는 자만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야곱의 도를 순종치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요, 순종하는 자는 새로운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새 시대에 야곱의 도를 배워 그대로 행하는 자들이 복 받는 일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 구원이라는 것은 이 땅에 평화 왕국을 이루므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야곱의 도가 되는 지상 왕국에 들어가는 말씀을 분명히 배워서 지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 야곱의 도를 모른다면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당할 것이니 이 교훈을 분명히 배운 자라야 미혹을 받지 않고 새 시대의 안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제2과  세계가 앙망하는 예수의 교훈과 새 일의 말씀

- 사 42:1~9,  요절:9 -

 

  서    론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실 때에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따로 있게 되어 세계가 그 교훈을 바라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 뿐이요, 친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하신 아들을 보내서 세계 모든 민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음 운동이 있은 다음에 하나님의 새 일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사43:19). 그리스도의 교훈과 새 일의 교훈을 잘 구분해야 성경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1대지 : 그리스도의 교훈 (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유한 사람으로 세상에 와서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공의를 완성하므로 십자가의 도로 말미암아 천국 복음의 교훈이 있게 되어 세계 만방이 그 교훈을 받으므로 그 영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을 가르쳐서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십자가의 도를 세계 만방에 전하게 된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새 일의 교훈이 세계에 다시 전파 될 것을 말씀한 것이 선지서이다.

 

  2대지 :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 (5~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땅에 행하는 자에게 성신을 주어서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세워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고 하였다. 성신을 받은 사도들이 이방의 빛이 되는 진리 운동을 할 때에 4복음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로마서로부터 바울이 14권을 쓴 것과 베드로가 쓴 것과 요한 사도가 기록한 것이 이방의 빛이 된다.

  만일 그들의 편지서가 아니었던들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영적 이스라엘을 이룬다는 진리가 완전히 세상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사도들이 쓴 글을 통하여 세계적인 빛이 된 것이다.

 

  3대지 : 새 일을 고하는 교훈 (9)

  새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사같이 일어나서 대적을 치고 이 땅을 성도의 나라로 이루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절개 있게 나간 사람을 보호하고 이방 세력을 없이하되 이방과 타협하는 부패한 종들과 백성까지 완전히 없애 버리고 거룩한 성도와 백성으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 것을 가르친 것이 새 일에 대한 교훈이다.

  그러므로 새 일이라는 것은 악의 세력은 불로 살라 없이하고 이 땅에 남은 자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이사야 전체를 보아도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쳤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새 일을 고한 말씀이다.

 

  결    론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훈이 세계에 전파된 이때에 새 일의 교훈을 바로 알아서 전하는 역사는 계시록과 선지서를 가지고 환란과 재앙에서 영과 육이 구원을 받도록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3과  이방을 밝히는 빛과 새 시대를 이루는 빛

- 사 9:1~2, 60:1~3,  요절60:3 -

 

  서    론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되 빛의 역사가 세계적으로 두 번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사9:1~2은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를 이루는 빛이요, 사60:1~3은 완전히 이 땅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빛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을 밝히는 빛이 무엇이며 새 시대를 이루는 빛은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1대지 : 이방을 밝히는 빛 (9:1~2)

  이방이라는 것은 노아 홍수 후에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법을 세운 후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데 이것을 이방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은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큰 죄로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성민이라는 사람들의 성별된 생활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방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올 때에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오는 것이 원칙이요, 갈릴리에서 나온다는 것은 절대 이단이라고 부인했던 것이다. 이것은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실 때에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다.

  그리스도는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성신을 나리실 적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꼭같이 나리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흑암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적에 “너희가 성신의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십자가의 도를 전하라”고 하셨다. 오늘날 십자가의 도가 세계 인류의 빛이 된 것은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취도다” 하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 빛을 받아 마귀 권세를 벗어나서 광명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일이 이날까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인 것이다.

  이방의 빛이라는 것은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고 그 영을 중생시키는 동시에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하는 역사를 말한다.

 

  2대지 : 새 시대를 이루는 빛 (60:1~3)

  하나님께서 자범죄로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귀 권세 아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능으로 해방을 주어 광명한 나라로 그 영들을 인도하였지만 지상에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때는 마귀 흑암을 개방시켜 누구든지 다 시험을 해 보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쳐서 본문에 흑암이 온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마귀 흑암으로 시험을 해 보듯이 인간 종말에도 하나님께로 돌아 온 자녀들을 흑암의 세력으로 한번 덮어서 시험을 해 볼 때에 말씀의 빛으로 마귀의 미혹을 물리치는 자라야 그 몸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때는 죄인을 부르는 때가 아니고 원수를 갚는 날이라고 사59:19이하에 말했다. “원수를 갚는 날에는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라”고 하였다. 이때는 죄과를 떠난 자라야 구속자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에 역사하는 종은 입술에 말씀이 임하므로 아무런 흑암의 세력이 미혹을 한다 하여도 말씀의 빛으로 그 미혹을 물리치게 된다. 이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나오게 되며 그 빛을 따라 들어오는 자는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그 영혼을 구원시키는 빛의 역사도 있고 그 몸을 구원시키는 빛의 역사도 있으니 이날까지의 역사는 영혼을 구원시키는 빛의 역사요, 인간 종말에 원수를 갚는 진노의 날에는 몸이 구원을 받는 빛의 역사인데 이것은 새 시대로 인도하는 진리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 복음 운동은 이방의 빛이 되었고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는 새 시대를 이루는 빛의 역사가 되므로 다림줄의 진리를 따라서 나가는 자만 흑암을 뚫고 나가 새 시대의 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천국 복음의 빛을 받아 중생한 자라도 새 시대에 들어가는 말씀의 빛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그 몸이 환란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결    론

  인생에게 가장 큰 문제는 시대적인 빛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는 백성이라 하여도 이방의 빛이 되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다가 멸망하였고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교회라 하여도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진리의 빛을 반대한다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다(사60:12).

 

 

제4과  피로 사는 일과 왕 노릇 하는 일

- 계 5:8~10,  요절:10 -

 

  서    론

  기독교는 완전한 공의의 종교인 동시에 사랑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피로 사는 일과 왕 노릇 하는 일에 대하여 그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만일 피로 사는 진리가 없다 하여도 참된 종교가 아니요, 왕 노릇 하는 일이 없다 하여도 완전한 종교가 될 수 없다.

 

  1대지 : 피로 사는 일 (8~9)

  하나님께서는 법을 주실 때에 사람에게는 지키라는 사명을 맡겼고 가장 간교한 뱀에게는 미혹하라는 사명을 맡겼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너를 따르는 자는 네가 다스리고 나를 따르는 자는 내가 다스린다는 법을 세우셨다(요一3:8~10, 마25:41). 그러므로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고 마귀의 말을 듣고 순종한 하와의 말을 들어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그때부터 그 몸은 사망의 법을 가진 마귀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가장 악한 가인 같은 사람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에게 양을 잡아 제사하는 법을 세운 것은 그 영혼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속죄제의 법을 두어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피의 제사를 드리는 자는 그 영혼을 마귀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 천사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이 아주 마귀에게 정복을 당한 자는 그 제사를 받을 수 없고 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말미암아 아무리 마귀의 법에 속하여 사망에 떨어질 죄를 졌다 하여도 그 죄를 용서받게 되면 그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니 이것이 사람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독생자의 보혈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그 즉시 천사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임종시라도 회개하는 자는 그 즉시에 천사가 그 영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가는 것이다. 마귀는 죄를 지은 사람의 영을 지옥으로 끌고 갈 권리가 있고 천사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 나라로 그 영을 인도해 갈 권리가 있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그 피를 믿는 자를 천사가 마귀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싸워 주는 역사였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마귀와 싸워서 이긴 자는 왕권을 받고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마귀를 이기고 구원을 받은 자는 천국의 시민권을 받는다. 많은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증거하는 종과 그 전도를 받고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과 합하여서 이루어진 것이 기독교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되는 일에 대해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 임종시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일

  둘째 : 이미 중생을 받고 세상에 있어서 교회에 봉사하는 일

  셋째 : 쉬지 않고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일이 있으므로 천국을 이루는 열매가 되었다.

  이 역사를 하기 위하여 수많은 종들이 순교를 했고 수많은 사람이 물질을 바쳤고 수많은 사람이 합심하여 교회를 받들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상에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안팎으로 기록된 책이다. 이 책을 주님께서 하나님께 받아 떼는 광경이 보여진 것이 계시록의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나타났다.

 

  2대지 : 왕 노릇 하는 일 (10)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마귀를 들어서 쓴 것은 가장 합당한 사람으로 땅에서 왕 노릇을 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로 한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한 목적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왕국을 이루려는 것보다도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사람을 사서 하나님께 드려 천국을 이루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을 옛 뱀인 붉은 용을 들어서 미혹을 시켜 그 가운데서 안팎으로 기록한 책의 말씀을 지켜서 이긴 자들로 땅에서 왕 노릇하게 하자는 것이다.

  초림의 주가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은 많은 사람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밧모 섬에 있는 요한에게 나타나서 안팎으로 기록한 책을 떼는 것으로 보여준 것은 성도가 땅에서 왕 노릇할 때에 될 일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땅에서 왕 노릇 하는 지상 축복을 받으려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떼어서 보여준 비밀인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이라는 것은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백성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땅에서 왕 노릇 하는 비밀을 기록한 책이다.

  지상 축복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 주님 오실 때까지 계시록을 증거하는 종들과 순교자가 왕권을 받음 (계20:4)

  둘째 : 그 증거를 받고 회개하고 따라 온 무리들이 환란에서 구원을 받음 (계7:9이하)

  셋째 : 성도의 가족이 축복을 받음 (계20:9)

  그러므로 왕 노릇 하는 자와 그 가족은 성도의 진을 이루어 한 도성을 이루게 되고 그밖에 마지막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나온 무리들은 백성으로서 크게 확장을 보게 되지만 그의 자손들 중에서는 미혹을 받고 망하는 일이 있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된 자는 피로 산 백성 중에서도 땅에서 왕 노릇 하는 자라고 본다. 이들은 마지막 때에 예언의 말씀을 지켜서 지상 축복을 자자손손이 받는 자들이다. 계시록 6장 이하는 땅에서 왕 노릇 하는 자들의 원수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어린이 공과편 - 사도행전 공부

 

제14과  순교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도들

- 행 12:1~12, 23~24,  요절:5 -

 

  서    론

  학생들, 오늘 공부하는 말씀은 소위 유대 나라에 왕이라는 헤롯이 사도를 칼로 죽이는 일을 했지만 헤롯은 벌레가 먹어서 죽고 교회는 더 왕성한 일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사도들은 아무리 칼로 자기를 죽이려 하더라도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으므로 교회는 승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1대지 : 헤롯이 야고보를 칼로 죽임 (1~3)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헤롯이 아무 죄도 없는 사도를 칼로 죽일 때에 유대인들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때도 헤롯과 유대인들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40일만에 승천하시고 승천하신지 10일만에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신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할 때에 예수를 죽인 헤롯과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또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날마다 더 부흥되어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2대지 : 베드로도 잡아죽이려 함 (4~12)

  헤롯은 베드로를 잡아 깊은 옥에다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손이 쇠사슬에 매여 옥에 갇히어서 날이 밝으면 헤롯에게 죽을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전 교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밤에 이상하게도 홀연히 주의 천사가 옥중에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베드로를 깨우면서 급히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졌습니다. 그때에 천사는 말하기를 띠를 띠고 신을 들메고 따라오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겉옷까지 입으라고 하므로 베드로는 옷을 다 입고 천사를 따라 갑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이 환상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옥문을 열고 나가는데도 옥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옥문을 지나 큰 철문이 있는데 그 문도 저절로 열려집니다. 베드로는 성 밖에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것은 환상이 아니고 정말로 옥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원수가 베드로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천사를 보내서 건져내어 주었습니다.

 

  3대지 : 헤롯이 죽음 (23~24)

  하나님께서는 헤롯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으므로 천사를 보내어 헤롯을 치니 이상하게도 벌레가 그 몸을 뜯어먹으므로 죽고 말았습니다. 학생들, 이것 보세요. 남을 죽이려는 사람은 죽어도 이렇게 흉칙하게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교회는 더 왕성하고 부흥되었습니다. 학생들, 공산당이 아무리 우리를 핍박하여도 반드시 승리는 우리가 합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보호하고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묻 는  말

 1. 헤롯이 누구를 칼로 죽였습니까?

 2. 베드로는 왜 못 죽였습니까?

 3. 헤롯은 어떻게 되어서 죽었습니까?

 

 

제15과  성신이 보내는 사도들

- 행 13:1~12,  요절:2 -

 

  서    론

  오늘은 기독교를 제일 많이 핍박을 하고 훼방하던 사울이 성신의 보냄을 받아 외국으로 전도하러 간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가면 수리아라는 땅이 있습니다. 거기 안디옥이라는 곳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이 모여 금식을 하며 기도할 때에 성신의 지시가 나타나서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두 사람을 특별히 따로 세워서 선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학생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성신이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옛날에도 성신이 지시해서 모든 일을 했고 지금도 성신이 지시하고 인도하므로 모든 일을 하게 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신은 꼭 같이 역사합니다. 이제 성신이 바나바와 사울을 전도하러 보낸 일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성신의 지시를 따라 안수함 (1~3)

  안디옥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었지만 성신이 지시하기를 바나바와 사울을 특별히 사도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 위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하였습니다. 이 안수라는 것은 완전한 사도로 세워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목사님을 세울 때에는 성신을 받은 종들이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목사가 됩니다. 이와 같이 바나바와 사울을 성신의 명령에 따라 안수할 때에 훌륭한 종이 되는 축복이 내렸던 것입니다.  학생들 가운데서도 앞으로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목사가 될 때에는 머리 위에 안수를 하게 됩니다.

 

  2대지 : 성신의 보내심을 받아 외국으로 감 (4~5)

  누구든지 성신의 인도를 따라가는 자는 아무리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역사가 같이 하므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외국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지만 성신의 인도를 따라 전도를 하게 되므로 지중해를 중심하여 로마에까지 교회가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와 사울이 전도하므로 말미암아 구라파에 큰 문명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발전된 근본지는 바나바와 사울이 전도한 땅입니다.

 

  3대지 : 권세 있게 전도함 (6~12)

  지중해에 바보라는 섬나라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바나바와 사울이 전도할 때에 그 나라의 총독이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 거짓 선지 박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성신이 충만하여 눈을 부릅뜨고 책망하기를 거짓과 악이 가득한 마귀의 자식이요, 너는 옳은 일의 원수로다. 네가 바른 길을 못 가도록 방해하니 소경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거짓 선지는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보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나를 좀 인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총독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더욱 믿었습니다.

  학생들, 사울이라는 사람은 과거의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라고 하던 사람인데 예수를 믿고 성신을 받아 권세 있게 전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학생들도 이러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공산당이 우리를 반대한다 하여도 한번 말할 때에 눈이 멀게도 할 수 있습니다.

 

  묻 는  말

 1.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어느 쪽에 있습니까?

 2. 안디옥 교회에 성신이 나타나서 누구를 보내라고 지시했습니까?

 3. 바보 땅의 총독이 어찌해서 예수를 믿었습니까?

 

 

제16과  숭배 받는 것을 거절한 사도들

- 행 14:8~18,  요절:18 -

 

  서    론

  세상 사람들은 숭배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도들은 숭배 받는 것을 큰 죄로 알고 거절하였는데 오늘은 여기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에 거짓 선지들은 자기가 신과 같이 숭배를 받으려고 여러 가지 허위 선전을 하기도 하고 섬겨달라는 마음에서 자기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많이 행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려고 할 때에 자기들을 숭배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들은 분명히 참된 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대지 :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걸어가게 함 (8~10)

  바나바와 바울은 전도하러 사방으로 다닐 때에 루스드라라는 땅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바울의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행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널리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행한 놀라운 이적입니다.

 

  2대지 : 사도들을 신과 같이 숭배하려고 함 (11~13)

  어리석은 인간들은 조물주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사도들을 통하여 이적과 기사가 나타날 때에 신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왔다고 하면서 사도들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 놀라운 일을 하면 그것이 그 사람이 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루스드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고 사도들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도들이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도 있겠지만 속이지 않고 깨닫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은 조금만 이상한 일이 있으면 거기에 끌려가고 진리를 알아보려고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나무나 돌이나 사람이나 짐승 앞에 절을 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어리석은 일이라고 봅니다.

 

  3대지 : 참된 증거를 함 (14~18)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가, 우리도 너희와 꼭 같은 사람인데 절대로 우리에게 제사한다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니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얼마든지 은혜를 받고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를 과거에는 여러 가지 신을 섬겼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하셨으니, 우리는 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참된 지도자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자기를 숭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와 같이 참된 종들이 전해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바울은 어떠한 사람을 걸어가게 했습니까?

 2.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사하려고 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까?

 3. 사도들은 왜 자기들 앞에 제사를 못하도록 했습니까?

 

 

제17과  복음을 변론하는 사도들

- 행 15:1~11,  요절:11 -

 

  서    론

  학생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떠한 방법으로 공경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때 사람들은 할례를 받은 사람 외에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할례라는 것은 남자를 낳으면 8일만에 그 아이를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를 드릴 때에 양피를 칼로 조금 베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바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행한 자라야 자라나서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에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으니 할례를 받지 못한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라도 꼭 같이 취급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유대인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나 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크게 다투는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은 다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전부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예수도 믿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을 간다는 말입니까? 학생들, 유대인들과 같이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옳습니까? 틀렸습니까? 그래서 사도들은 이방 사람들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강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1대지 : 크게 다툼과 변론이 일어남 (1~5)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들은 크게 다투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일을 판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변론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가야 된다는 사람들과 그 말씀을 반대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사람들의 말이 누가 옳으냐 하는 것을 결정 짓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큰 회의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2대지 :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결정함 (9~11)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이겼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는 증거를 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환상을 보여주므로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십자가를 증거하니 성신이 강림하여 이방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을 그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거역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 믿는다고 증거할 때에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이 다 베드로의 증거가 옳다고 인정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율법을 가르치고 할례를 받는 때가 아니고 예수만 참으로 믿고 기도하면 아무런 죄가 있다 하여도 용서를 받고 성신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학생들도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사도들이 증거한 대로 예수만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담대히 믿어야만 합니다.

 

  묻 는  말

 1.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는 어떠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3. 지금도 예수를 믿으면 사도 시대와 같이 성신을 받게 됩니까?

 

 

 논 설 편

 

1. 삶의 길을 찾는 자는 많으나 참으로 찾은 자는 적은 세상

  누구나 살려고 애쓴다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 보려는 마음이 정욕적이냐, 진리적이냐 하는 데서부터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떻게 해야 살 길이 있느냐는 것을 과거보다도 더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국을 만났다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이것이 인생관의 원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죽는다는 문제보다도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어도 살 수가 없는 문제가 닥쳐 온 것이 시국 난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까지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 이익을 보겠다는 욕심에서 싸우는데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여야 세계를 정복하느냐 하는 넓은 생각에서 꿈을 꾸는 사상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때이니 만큼 크고 넓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좀 더 넓고 높고 깊게 깨닫는 지식에 들어가야 기독교인으로서 삶의 길이 어디 있다는 것을 찾게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천당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 신앙 세계에서 움직일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하여야 난국을 돌파하고 가정을 살리며 교회를 살리며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해방 후 5개년 계획을 다섯 번째 하여 자기네 계획했던 바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자신 속에서 살길이 완성된 것처럼 꿈을 꾸고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알고 보면 공산당이 심판 받을 날은 임박하였다고 본다.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무신론자요, 침략자요, 궤휼자요, 강포를 행하는 자요, 진리를 대적하는 자요, 붉은 짐승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를 심판기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영화롭게 살 수 있는 경제 확보를 해 놓고 화려한 건물을 건축하여 이 시대는 자기의 때라는 생각을 가지고 황금이면 지상 천국이라는 꿈을 꾸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 물질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사치의 세력이 부요해져서 자기만을 영화롭게 하려는 자들이 불의 사름을 당하는 날에 슬피 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물질 문명으로만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물질에 도취된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오히려 가난한 자 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는 이 시대를 염려하고 살길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므로 이 시대의 숨은 비밀을 알 수가 있지만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된 자는 이 시대의 비밀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물질이 많아질수록 영계는 어두워지고 마음은 컴컴해지고 생각은 더욱 둔해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돈이 있어야 산다는 말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의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교리나 신조로만 살 길이 있다고 생각을 하며 깊은 기도와 진리의 세계는 들어가 보려고 하지도 않는 교만한 종교인들은 구원을 바라나 오히려 스스로 속는 불행도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한 빛을 찾고 하나님께서 보내는 신의 능력에서 인격 개조를 받아 신의 사랑에 깊이 들어가서 자신이 그 사랑 속에서 “나”라는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겨 그 사랑 안에서 형제를 대하고 그 진리 안에서 남을 바로 인도하고 그 능력 안에서 인격을 이루어 승리의 생활을 한다면 새 시대를 왕권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살 길은 믿어서 중생을 받았다는 것이 끝이 아니고 아무런 미혹이 와도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자아의 인격이 그 사랑의 능력에서 완전 변화 성결을 이루어야만 된다. 왜냐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야만 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이 꾀인 것과 같이 지금은 붉은 용의 권세를 개방시켜 그 권세가 붉은 짐승의 정권을 움직이고 그의 간교한 말이 거짓 선지의 입을 주관하여 마지막 미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받은 사람으로서 이 미혹을 이기고 나가는 자라야 살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 각각 자기네가 산다는 교만에서 서로 무시하고 미혹에 빠져 스스로 멸망을 자취할 종교 혼란이 왔다. 그러므로 이때에 우리는 교파를 초월하고 어떤 주의와 사상에 끌리지 말고 말씀 하나를 그대로 읽어서 밝아지고 깨끗해지고 강하게 되고 능력 있게 싸워 나가는 길에 서야만 될 것이다.

 

 

2.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

  오늘날 종교인들이 각각 자기가 가장 바로 믿는다는 교만이 들어서 오히려 죄를 짓는 생활에 들어가는 자도 많다고 본다. 이제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항상 나는 믿음이 없어서 어찌할꼬 하는 생각이 있는 자는 향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겨자씨 만큼 있으면 산이라도 옮겨진다고 하신 것은 항상 내 믿음이 적어서 어찌할꼬 하는 마음에서 겸손히 골방에 엎드릴 때에 겨자씨 한 알이 땅속에 묻혀 소리없이 수분을 흡수하여 자라나듯이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적어서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주여, 어찌 하오리까 하는 묵상에 들어가게 될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액을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건강한 사람이 항상 음식의 맛을 알고 달게 먹듯이 심령이 소성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데서 새로이 흘러오는 은혜의 맛을 얻고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2. 항상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믿게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향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라는 자체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세계로 들어가야 될 것이다. 나를 모태로 택한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길러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보호할 이도 하나님이니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이라는 생각에서 깊이 깨달아질 때에 하나님의 세계가 너무 크고 넓으며 내가 믿는 세계는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자라면 그 인격이 향상된 증거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올라갈수록 아래서 보던 것과 달라지듯이 신앙 생활도 향상되는 사람은 항상 지나간 일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고 생각이 나며 새로이 깨달아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3. 항상 나는 시험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구하는 자는 향상하게 된다.

  어려운 시험이 닥쳐 올 때에 원망하지 말고 나는 이 시험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오니 내게 믿음을 주셔서 이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할 때에 뜻밖에 산 체험을 받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신앙 세계로 들어갈 때에 향상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영계가 너무도 어린 사람들이 믿음의 교만을 가지고 공연히 남을 비판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많다고 본다. 그 신앙 세계를 들어가려면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완전 영계에 들어 간 사람의 생활을 비판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나를 떠나가라 하는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3. 열매를 먹고 열매 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나무와 채소와 곡물은 사람을 위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셨고 사람은 그 열매를 먹고 또 열매를 맺어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모든 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그대로 열매를 맺고 있었지만 사람은 사람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범죄하게 되므로 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은 세상이 되어 열매를 먹기 위하여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으면 식물이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어 주지를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열매를 얻기 위하여 수고하고 그 열매를 먹고 또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고 그 열매를 먹고사는 것이 인간들의 생활이 된 것이다.

  소위 생산 확장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일년에 생산 수확이 얼마가 되어야 국가를 유지한다고 방법을 세우고 전 국민이 그 열매를 먹기 위하여 노력했는데도 양식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의 곡식을 구해다 먹는 우리 민족이 되고 보니 1년간 밥벌이도 못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여도 먹지야 못하겠느냐고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밥이나 먹게 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열매를 먹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해도 가련한 일인데 열매도 먹을 수 없는 인간이 된다면 그 가련한 것을 어디에 가서 호소할 것인가. 참으로 인간들의 그 생활의 가치를 무엇에다 비교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한 이때에 열매를 먹고 열매가 있는 인격이 되어야만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자.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먹을 것이 없는 대중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앞에 놓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그 떡과 고기를 주실 때에 남자만 5천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때에 많은 대중은 떡을 먹고 배가 부르는 일이 있었으므로 목적없이 무조건 주님을 따라 온 것이다.

  주님께서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면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양식이니 나를 먹는 사람은 영생을 얻으리라고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은 차마 들을 수가 없다고 하며 다 물러갔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도 가고자 하느냐고 하실 때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영생할 말씀이 있사온즉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였다. 인간이 볼 때는 불학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어부 베드로이지만 영생할 말씀을 듣고 어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가서 열매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한 것은 아무런 상급이 없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수고한 것은 영원한 왕권의 상급이 되는 것이다.

 

  2. 잠깐의 효과를 주는 열매를 먹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싸워 나가자

  인생의 제일 가치 있는 생활은 썩어질 양식을 먹고 영원한 것을 목적하고 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않을 것을 거두어 열매가 되고 잠깐의 고난을 참음으로 영원한 열매가 되고 잠깐의 시간을 소비하여 일한 것이 영원한 나라의 열매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질 열매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영원한 나라를 목적하고 싸워 나갈 때에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생활이 아니고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과 능력과 권세를 주는 동시에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3. 많은 열매를 거두어서 영원한 열매가 되도록 사용하자

  어떤 사람이 남보다는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에 열매가 많은 축복을 받아서 자기가 먹는 것보다도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한다면 이 생활이 잠깐의 열매를 먹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고 본다.

  우리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열매를 많이 거두는 축복을 받아 그 수확이 많을수록 영원한 열매를 많이 맺도록 사용한다면 이 생활이 가장 복된 생활이다. 그러나 많은 수확이 있을 때에 이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만족을 얻어 보려는 것은 그 열매가 많아질수록 죄의 열매가 될 것이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열매를 먹는데서 만족을 누려보려는 생활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조금 먹고 영원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가장 고귀한 사람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4.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로 인생의 가치를 찾자

  인생이라는 것은 교제가 없이 살 수 없고 교제가 없이 일할 수 없고 교제가 없이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도 없다. 교제라는 것은 죄를 짓는 교제도 있고 의를 이루는 교제도 있고 실패하는 교제도 있고 성공하는 교제도 있고 죽는 교제도 있고 사는 교제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라는 것은 어떠한 교제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복음으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1:5)

  사람이라는 것은 돈을 가지고도 교제할 수 있고 식물을 가지고도 교제할 수 있고 한 오락적으로도 교제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복음을 전하므로 말미암아 영원한 교제를 이루는 것이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다.

  바울이 아시아 사람으로 유럽에 건너가 빌립보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빌립보 사람과 교제하게 된 것이 바울 자신에게 큰 상급 받는 일이 되었고 그 교제의 열매에 의하여 구라파인들에게 큰 열매를 이루게 되었다.

  복음적인 교제라는 것은 은과 금을 주어서 그 사람을 구제했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게 되니 그 복음을 믿으므로 중생을 받고 영생을 받은 사람이 될 때에 이 것은 영원한 천국을 이루는 교제이므로 영원히 동거동락하는 교제가 된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단체가 있다 하여도 그것은 영원한 단체가 될 수 없고 복음을 전해서 사귀어진 단체는 영원한 단체가 될 것이다.

 

  2. 거룩한 사랑으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4:1~3)

  부모와 자식의 사랑, 부부의 사랑, 친구의 사랑이 있지만 이 사랑의 교제로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 이 교제로는 한 가정을 이룰 수도 있고 한 사업적인 단체를 이룰 수는 있지만 그 속에는 거룩한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도덕적인 사랑이요 한 사업적인 교제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사랑의 교제라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양심, 사상, 정신이 결합된 교제이다. 거룩한 사랑의 교제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주관적으로 나온 사랑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신이 사람에게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거룩한 사랑의 교제는 그 성신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사랑을 떠나서 교제를 가지게 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한 교제를 가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에서 선악과를 주고 먹고 하는 교제가 있으므로 인간은 사랑의 동산을 떠나서 죽음의 동산, 피땀의 동산, 싸움의 동산을 이루었다. 이러한 인생에게 다시 거룩한 사랑의 동산을 주기 위하여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 사랑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이루어 영원한 사랑의 동산인 낙원이라는 세계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사랑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사랑을 떠난 인생을 그 사랑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3. 축복을 받아서 서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4:18~19)

  영적 축복을 받아서 영적으로 남을 살리는 사명자와 물질의 축복을 받아서 물질로 남을 살리는 사명자와 서로 사귀어지는 일은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것을 왕권을 받는 영광의 교제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이 축복 속에서 서로 교제하는 일이 없다면 이것은 완전한 교제가 될 수 없다.

  강단에 서는 종이 넘치는 축복을 받을 때에 모든 교인들이 만족한 은혜를 받게 되고 교인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을 때에 신령한 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받들어 주게 되면 이것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길 때에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사명을 맡긴 것이 아니고 각자가 사명 한 가지씩 맡아서 서로 축복을 받아 교제를 하는 단체를 이루어 주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므로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주님 앞에 설 때에 영원한 영광을 왕권으로 누리는 단체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5.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용사

  인류 역사를 상고해 본다면 자기의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박하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던 세력은 열매없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강한 세력 앞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일어난 용사들의 열매는 오늘도 우리에게 큰 힘을 주는 진리가 되었다.

  400년간 애굽의 압박 속에서 자기 민족을 살려 보려고 나섰다가 자기 민족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살인 범죄자로 발각이 나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 소망 없는 목자 생활에서 일어난 용사 모세를 통하여 나타난 역사는 그때에 끝을 맺은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열매를 가져올 근본이 되었다(미7:15).

  그리고 애족심에 불타서 작은 물매돌로 골리앗의 머리를 때려죽이고 자기 민족에게 대 환영을 받은 다윗이 버림을 당한 사울에게 7년간이나 억울하게 쫓겨다니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의의 용사로 승리하므로 다윗 왕국에 나타난 여호와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대 승리를 가져올 다림줄의 진리가 되었다.

  70년간 포로 생활에서 고국의 황폐화된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하여 고레스의 명령을 받아 돌아왔지만 15년간 압력 속에서 성전을 준공할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용기있게 나서는 용사들로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된 일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예언적인 역사가 된 것이다. 사람이 볼 때는 미약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도와주므로써 이루어진 일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일이 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들은 동방 땅 끝 붉은 산 밑에 초라한 오막살이집을 쓰고 빈한한 생활 속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아들딸이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은 나타났다.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빈민촌에 종말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을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동방 땅 끝의 야곱은 지렁이 같은 인격이지만 날선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들어 쓰는 일이 있으므로 산같이 높아진 원수의 세력이 거꾸러지고 이 야곱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동방 땅 끝에 닥쳐온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용사가 나올 때가 온 징조라고 본다.

  모든 성경을 비추어 볼 때에 마지막에 세계를 통일할 용사는 동방 땅 끝에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말세의 용사가 동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다면 기독교의 종말의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빈한한 민족이라 하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신앙이 강하고 기도가 강하며 멸공 사상이 강하고 심지어 40일 단식을 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새일수도원만 해도 400명이 초과했는데 이 나라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있는 것은 용사적인 진리의 투쟁을 사상적으로 할 종말의 승리의 종이 나올 징조가 분명하다. 언제나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를 들고 나오는 종은 극도로 빈한하고 혼란하고 악화되고 부패된 환경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다.

 

 

6.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 일에만 목적을 두고 그 언약을 성립시키는 때를 율법시대라 하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때를 은혜시대라고 한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 인생들이 은혜의 법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시대가 오므로 누구든지 은혜로 부르시고 은혜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사망의 구렁텅이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하여 은혜시대에 없던 모든 난제가 닥쳐 온 것이다.

 

  1. 붉은 용의 권세를 들어 쓰는 일이다.

  이날까지는 마귀를 들어서 쓰는 때가 아니고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시키는 때이었지만 지금은 해방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붉은 용의 세력을 들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붉은 정권이 강하게 일어나게 된 것은 붉은 용이 권세를 그들에게 주어서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계13:2이하). 에덴 동산에서는 뱀의 도구가 될 사람이 없으므로 뱀이 직접 아담, 하와를 미혹했지만 지금은 옛 뱀인 붉은 용의 세력 앞에 부하가 많으므로 그 부하를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는 것이다.

  알곡이라는 것은 은혜를 받은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그 마음에 진리가 충만해져서 말씀으로 마지막 붉은 용의 도구가 되는 붉은 짐승과 사상적으로 싸워 승리해야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은 잘못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와를 꾀이던 뱀은 오늘날 붉은 공산당을 도구로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심지어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는 사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혼란케 만드는 유물론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흔들 수 있는 권세를 잡은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신앙의 산 체험을 가지고 말씀에 충만한 자 외에는 다 그 짐승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말 것이다.

  알곡이라는 사람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신의 능력으로 성결이라는 인격을 소유한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충만히 간직한 자이다. 이러한 자들은 이 시대에 더 강하여지고 영계가 깊어지고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사도 시대보다도 7배나 강한 능력을 받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알곡 될 사람은 영계가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이고 쭉정이가 될 사람은 세속주의로 흐르는 동시에 짐승과 협상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2. 진노의 병기를 들어 쓰는 일이다.

  이제 전쟁이 나면 세계는 한 시간 동안에 전멸이라는 문제를 놓고 두 가지 노선으로 흐르게 된다.

  쭉정이가 될 사람들은 그 불이 무서워서 전쟁을 하지 않도록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평화를 가져 와야 한다고 할 것이요, 알곡 될 사람은 세계가 불로 사름을 당할 때에 구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알곡인 사람은 말씀 그대로 진노의 병기로 온 땅을 멸할 때가 왔으니 말씀대로 불에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도 타협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불을 무서워하는 자는 쭉정이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불에서 구원해 준다는 말씀을 믿고 담대히 싸워 나가는 사람은 알곡이 될 것이다.

 

  3. 거짓 선지를 들어 쓰는 일이다.

  거짓 선지는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짐승의 세력을 의지하고 역사하게 된다. 이때에 쭉정이가 될 사람은 그 역사를 따라갈 것이요, 알곡이 될 사람은 아무리 불이 내리고 이적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이적을 중심하지 않고 사상과 그 열매를 중심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그 미혹을 이기고 나가게 될 것이다.

  어떤 이적을 따른다든지 세상 권리를 따른다는 것은 쭉정이가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적보다도 더 분명한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하며 세상 권세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권세 역사를 믿어야 되며 세상의 향락보다도 더 평안한 축복의 안식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환경을 따르는 자는 쭉정이요, 환경을 돌파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알곡이 된다.

 

 

 

 신 앙 문 답  

 

【문】1. 오늘날 유물론 사상이 세계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로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를 대항해 싸울 수 있습니까?

【답】오늘날 유물론 사상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성도로서는 성경을 전부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신을 삼고 북방에 자리잡고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계시록에는 짐승이라고 하였는데 모든 나라의 사람이 자기의 나라를 이 짐승에게 맡긴다고 계17:13, 17절에 말했습니다.

  인류 종말에 심판의 대지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죽고 받지 않은 자는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불로 사르는 자도 짐승이요 성도를 대항해서 싸우는 자도 짐승입니다. 지금은 유물론 사상이 전 세계의 인류를 끌고 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세계 인류는 불탈 수밖에 없는 때가 왔으므로 짐승과 협상을 하는 것보다도 타협치 말고 싸워야 된다는 것을 증거하여야만 됩니다. 이 진리를 분명히 나가서 증거하기 전에는 유물론 사상과 싸울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물론과 싸우는 것은 구원 문제가 결부됩니다. 끝까지 유물론 사상과 싸우려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 성경을 본문대로 읽어서 유물론과 싸울 수 있는 성경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 자신이 하나님의 신과 동행하는 체험적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성별된 생활에서 하나님의 특별 보호를 받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독교가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싸울 때가 아니고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통일하느냐, 성도가 세계를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싸울 때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종말 역사라고 합니다.

 

 

【문】2. 지금은 기독교에서 대부분이 생각하기를 그다지 열성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답】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를 모르고 예수를 믿을 때에 마음에 새로운 것을 체험하게 되니 너무나 기뻤던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새로워지는 단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새로운 체험을 받지 못할 때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새로워진 것은 중생을 받은 것인데 중생 받은 자로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발전을 보지 못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을 이기고 나가야 처음보다도 더 새로운 것이 있는데 시험이 올 때에는 열심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후퇴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위 이지적이라는 학적을 따른다는 것인데 진보가 아니요 퇴보라고 봅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학적이라는 것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신비를 체험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지식으로 삼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식이라는 것은 과학과 철학을 초월한 신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는 것으로 신앙의 지식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이지적인 학적으로 흐를 때에 이 학이라는 것은 인간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처음에는 약간의 새로움이 있는 것 같지만 마른나무와 같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자들이 신비적인 산 체험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독교 안에 있는 성신의 역사를 자기 주관에 맞추어 분석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교회는 속화되는 것입니다.

 

  2.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기독교는 과학을 초월한 새로운 역사가 없게 되므로 과학을 지도하는 신학이 못되고 과학에 눌리는 신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앙으로 이루어진다는 신의 능력을 부인하고 오히려 기독교를 한 문학의 과정으로 아는 폐단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엇이나 전부가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진리를 말하게 되어야 합니다. 기독 신자의 인격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오는 새로운 것이 없게 되면 자동적으로 열심을 낼 수도 없고 열심을 낸다 하여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따르는 열심이 아닌 한 기분, 감정, 흥분에 머무르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기독 신앙은 생명적인 영적 문제이므로 기도할 때나 예배할 때나 언제든지 물질계의 밖에서 오는 것을 먹고 마시는 산 체험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시험이 와도 후퇴하지 말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데서 이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3. 신앙의 법을 떠날 때에 믿음이라는 것은 열심을 낸다 하여도 아무런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열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란 놈은 언제나 신앙으로 살아 보려는 사람에게 신앙의 법에 어긋나는 신비를 끼고도 역사하고, 법에 어긋나는 흥분을 끼고도 역사하고, 법에 어긋나는 사람의 방법을 끼고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나 합법적으로 나갈 때에 그 법에 따라서 새로운 것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항상 진리의 법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사도들은 진리의 법을 가르칠 수 있는 대표의 사람으로 우리가 가르친 교훈 그대로 그 안에 거하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요一2:27).  

  나의 신앙 체험에 의하면 성경을 읽은 지 40년에 25년간은 새로워지는 체험을 받지 못하였고 15년간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체험을 받게 되었는데 성경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만족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새로워지는데서 점점 정상적인 힘을 얻게 되므로 기독교는 법의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그대로 읽어서 이 시국 난제를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새 힘을 받아야만 한다고 담대히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요 성경을 법대로 깨달아 믿게 될 때에 여호와의 열심히 날마다 강하게 오므로써 열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을 낸다는 것보다도 열심이 객관적으로 온다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문】3.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등한히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너무 부패한 증거입니다. 종들 자체가 말씀에 산 체험이 있고 그 말씀을 증거해야만 하는데 종들이 말씀에 산 체험이 없이 그 말씀을 인간 지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한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체험으로는 하나님 말씀은 그 말씀대로 역사가 오는 것을 체험한 자 외에는 알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어느 때 보다도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밝힐 때가 왔다고 봅니다. 1950년 후부터 20년 동안에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때가 왔고 모든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날 붉은 세력이 북방에 자리잡고 일어나는 일이 있으므로 성경을 분명히 더 믿게 되고,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게 되는 위험이 왔으므로 인류 종말에 심판에 관한 말씀이 믿어지고, 기독교가 극도로 부패되어 지도자들이 쑥물을 먹이는 일이 있으므로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진리 운동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과학이 발달되어 달나라에 가게 되므로 인류 종말의 심판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이 붉은 짐승과 협상이 되어 가는 것을 볼 때에 하루아침에 불탈 세상이 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우리는 성경 전체를 세 가지로 밝히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 시대 징조로써 성경을 밝히 알게 되고,

  둘째 : 새로운 역사가 동방에 임하므로 성경을 밝히 알게 되고,

  셋째 : 앞으로 될 일이 현 국제 정세와 일치되므로 성경을 밝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강단에 선 종이 진리의 봉홧불을 밝히 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문】4. 기독교의 단체가 어떠한 방법으로 움직이게 되어야 완전한 단체가 되겠습니까?

【답】오늘날 기독교가 교권 행사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완전한 단체를 이루는 것보다도 양떼를 분산시키는 망령된 행동이라고 봅니다. 교회라는 것은 개인 신앙을 바로 가지므로써 신앙 사상으로 싸우는 것을 중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형적인 교회를 이루었다 하여도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아무런 열매없이 해산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단체를 완전히 이루어 놓으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1. 교인들은 완전한 무장이 갖추어지도록 하는 것을 목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목회자 자신이 완전히 무장을 하여 시간 시간마다 말씀이 햇빛같이 나타나므로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들이 성경 본문이 밝아지고 말씀으로 마음에 만족함을 얻고 새로운 체험을 받는 일이 있도록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2. 교회의 제직이나 청년들까지도 전력을 다하여 수도를 하고 자신이 말씀에 완전히 서서 교회를 받드는 것을 목적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므로 지도자의 뒤를 받들어 싸우되 한 군대와 같은 단체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담임 목사가 싸울 일을 제직과 청년들이 진리 투쟁을 하도록끔 해 놓아야만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단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영계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자리에서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을 더 변론적으로 새롭게 하는 목회를 해야만 합니다. 지금은 목회를 하되 계몽적인 목회를 할 때가 아니고 변론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교회의 모든 행사를 어떤 의식이나 도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보다도 언제나 사상을 따라서 움직이기를 목적해야 합니다.

  교인들의 하는 일이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보다도 다 하나같이 주님 다시 오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각자가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식과 도덕으로 치우치게 되면 외식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앙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조금도 형식이 없는 단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문】5. 교회가 앞으로 어떠한 역사로 끝을 맺게 되느냐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니 만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우기도 하고 말씀대로 부패하기도 하고 말씀대로 각성하기도 하고 말씀대로 승리하기도 할 것이며 말씀대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말씀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말씀 아래서 역사가 시작되어 말씀 안에서 끝을 맺게 됩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되는 기독교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모 마리아의 몸에 성신의 잉태가 될 때부터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싹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는 조건이 성신의 잉태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성신으로 잉태되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말씀대로 된 기독교라 할 수 없습니다. 사7:14에 임마누엘이라 한 것도 신성과 인성을 가르친 것이요, 미5:2에 베들레헴에서 나신 자는 그의 근본이 상고에, 태초에니라 한 것도 신성과 인성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33년 동안 걸어가신 길은 성경 글자 그대로 나서 그대로 행하신 일입니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도, 은 30에 팔린 것도,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소리없이 잠잠하신 것도, 부자 무덤에 장사하신 것도, 썩지 않고 부활하신 것도, 승천, 성신 강림도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리스도의 교훈이 따로 있는 것은 사42:1~4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에는 기록되지 않았고 따로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 그 교훈이며 이방의 빛이라 한 것입니다. 이방의 빛이라는 것은 죽었던 영들이 중생을 받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낙원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마8:11). 그러므로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죽은 영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천국에 가는 역사였는데 이것을 은혜시대의 천국 복음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지들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이방의 세력이 다 없어지고 야곱의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선지서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입니다. 이것은 계10:7과 같이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에 땅을 망케 하는 자들은 멸망을 시키고 지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선지의 예언을 순종치 않으면 망하게 되고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자는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 종말에 세계적인 교회 확장이 십자가의 보혈로 이루어진 다음에 선지서를 밝히 다시 예언하는 일이 계10:11과 같이 있으며 11장과 같이 그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다 이방에 밟히게 되고 순종하는 자를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는 심판과 새 시대를 중점으로 두고 가르쳤습니다.

  기독교에서 다시 예언하는 역사가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를 통하여 계시록과 같이 있게 되며 이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불에 사름을 당하고 오직 말씀을 순종하여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자라야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이 중생을 받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천국에 가는 것은 은사의 역사요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예언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오는 것은 권세 역사가 됩니다. 예언적인 다윗 왕국의 선지를 통하여 적군을 치듯이 기독교 종말에도 이방 세력을 쳐 없이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은사를 받은 종들이 이와 같이 예언 권세의 종으로 끝을 맺는 것을 기독교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문】6. 믿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마음이 식어지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취미가 없이 되는 오늘날 어떻게 하여야 불이 붙는 교회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답】교인들에게 일시 취미를 붙이게 한다는 것보다도 말씀으로 각성을 주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만 바로 깨달아 알게만 해 놓으면 열심을 내지 말라고 해도 열심을 낼 것이고 속화되라고 해도 속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젖만 먹으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 용사에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을 받고 자라나서 용사가 되어야 할 기독교가 날마다 회개, 중생, 천당만 말하고 있으니 이 시대에 그러한 영계를 가지고는 안 된다고 봅니다.

  모든 교인들이 북방의 세력을 두려워하고 경제 혼란으로 고민을 하고 인심 악화에 따라서 상처를 받고 있으며 교회가 새로운 말씀이 없으므로 예배를 한 의식으로만 보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교인들에게 북방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소망을 주는 교훈과 전쟁으로 말미암아 불사름을 당할 때에는 어떠한 살 길이 있다는 것과 경제 혼란이 오는 때에는 어떠한 자라야 경제적인 피해를 받지 않고 나간다는 것과 인심이 악화되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것과 우리 앞에는 어떠한 시대가 온다는 것을 확신이 있도록 증거해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므로 교회는 다시 살게 되고 새로운 역사가 권세 새 힘으로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당가는 노래를 부르지 말고 환란 가운데서 구원을 받아 새 시대에 가는 호소 성가를 불러야 할 것이며 모든 교인들이 성경 본문에서 확실한 소망이 생기도록 가르쳐야 될 것이며 예배 시간마다 이슬과 단비 같이 내리는 역사를 받도록 강단에서 인도하여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강단에 선 종이 진리는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공연히 필요 없는 말만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교인들의 마음에 타격을 주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단점을 강단에서 말하지 말고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하면 살 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진리를 충만히 받도록 전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란 영이 있으므로 그 영이 살아나는 진리 외에는 강단에서 말하지 말고 하늘에서 인정하는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는 한 사람도 상처를 받지 않도록 부드러운 말로 진리를 날카롭게 증거해서 괴로워하던 마음의 모든 난제가 해결이 되도록 증거해야 된다고 봅니다. 교인들을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 포섭한다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니 말씀과 영감으로 교인들을 이끌어야 될 것입니다.

 

 

 

 특  집  

 

1. 1971년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하고 싶은 말

  71년은 시련 속에 자라난 종들이 인정을 받는 해라고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많은 시련 속에서도 신앙 동지들이 원망과 불평이 없이 내려오면서 큰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도 잠잠히 자라나는 순 같이 영계가 소성하는 해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족한 사람도 금년 마지막인 12월호 월간지를 발행하면서 더욱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시련을 겪으면서도 문서 운동을 꾸준히 1년간 해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풍성하더라도 영계가 소성치를 못했다면 이것은 축복이라고 볼 수 없으되 물질적인 시련 속에서도 영적으로 향상해 올라간다면 땅의 것보다도 하늘의 것을 풍성히 받는 생활이니 땅 위에 이루어지는 일은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연말에는 1년간 해 내려오던 모든 일을 결산해 보는 것이 원칙이라면 우리 진리 운동도 이번 달로 결산적인 것으로 이루어 놓고 새해부터는 완전한 것으로 출발하여 완전한 열매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씨가 있으면 싹이 나는 법이요, 생명의 싹이 있으면 자라나는 법이요, 생명의 장성이 있다면 열매가 있는 법입니다. 70년도가 문서 운동의 싹이 튼 해라면 71년도는 장성의 해요, 72년도는 열매의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진보적이라고 봅니다. 금년 1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 기록한 바에 의하면 점점 더 풍성한 은혜가 말씀으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12월호를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에 여러 가지 문제로 염려하던 것이 완전한 열매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금년은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호소 성가가 많이 온 해라고 봅니다. 우리들이 이 호소 성가를 불러 올라간 기도는 반드시 새해를 맞이할 때부터 큰 열매가 나타나리라고 믿어집니다. 그리고 호소 성가를 내려보내시던 하나님께서 다시 40일 금식 기도 운동이 일어나게 하시어 아무런 피곤없이 금식자들이 호소 성가를 부르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으로서 감탄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상 없었던 일이 현저히 40일 금식자가 400명이 초과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큰 역사가 일어날 징조라고 믿어집니다. 이 사람은 40일 금식은 커녕 하루 금식도 못하는데 수도하러 온 청년 남녀들이 지금도 10여명이 금식을 하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을 존경한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응답이 나릴 징조라고 보고 72년을 승리의 해로 맞이할 준비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오락을 하는 것보다도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로서 경고의 나팔을 강하게 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속화시킨다는 것은 진노를 받을 행동이라고 봅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좀더 완전 준비를 갖추는 특별 수도나 기도 기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12월은 사명자들이 특별 수도의 달로 정하시고 입산하시어 큰 변론의 역사를 받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사람에게도 이전보다 변론의 역사가 분명히 더 내려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명 동지들은 72년을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할 것이 아니고 특별 준비를 하여 큰 변론이 일어나는 역사가 우리 나라에 있기 위하여 성산에 모여 금식을 하면서 호소하는 일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해에 호소 성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은 72년도에 역사가 내릴 징조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기도 가운데 격동이 있는 분들은 12월을  특별 수도로 정하고 입산 수도하시기 바랍니다.

 

 

2. 권      고

  1971년의 마지막인 12월을 맞이하면서 눈물 흘려 주 앞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제가 옛날이라는 말과 같이 71년의 해를 맞이했을 때부터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변동이나 국내적으로 오는 난제를 당했으니 양심이 맑고 사상이 철저한 사람이라면 목숨을 바쳐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날까지 반공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수많은 청년이 피를 흘리면서 20년간 싸워 온 오늘날 아무런 열매없이 무조건 협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양심, 사상으로는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도가 더 강하게 일어나서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를 믿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인류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오는 무신론 사상을 가진 침략자의 세력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게 될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쓰시되 모세 때와 같이 역사를 하시므로 북방 세력을 물리치고 그 아래에 있는 택한 백성을 건져 주실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멸공 진리인데 오늘날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고 2500년전 선지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72년부터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하지 않으면 도저히 교회를 살릴 수도 없고 민족을 살릴 수도 없는 긴급한 때를 만난 우리로써 12월을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특별 수도에 목적을 두고 먼저 자신이 완전 무장에 들어가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12월에 선구자가 될 사명자들이 완전한 무장에 들어가는데 있어서는 특별한 역사가 나려야만 되겠습니다. 바라는 것은 아무쪼록 기도하시는 종님들께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호소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부탁드리는 말씀은 문서 운동에 총 궐기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될 것이니 물심 양면으로 문서 운동에 전력을 두되 72년 1월부터는 본격적인 문서 운동을 할 준비를 12월에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인쇄비에 대해서 각자가 총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우리가 물질을 쌓아 둘 때가 아니고 멸공 진리 운동에 아낌없이 바쳐야만 할 때라고 봅니다. 만일 어떤 분이 멸공 진리 운동에 물질을 바치는데 인색한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축복을 받으시려면 문서 운동에 물심 양면으로 기울여 총궐기해서 봉홧불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야만 이사야 60장과 같은 축복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계속으로 말씀이 나리고 있는데 이것을 널리 전하지 못하고 무조건 역사만 기다린다는 것은 예를 든다면 자동차를 몰고 갈 사람이 가만히 핸들을 쥐고 앉아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전력을 바치되 기름을 짜 바치듯이 우리 자신의 생활에서 짜 바치는 힘이 있어야만 사명 동지들에게 하늘에서 공급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고 싶어 하시더라도 할 일은 하지도 않고 받겠다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오는 역사는 은사가 아니고 왕권 축복의 역사이니 만큼 자신들의 희생하는 노력이 없이는 도저히 받을 수도 없고 받을 마음조차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 여러분들이 자손의 축복과 왕권의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총궐기해서 내년에는 꼭 이 나라가 큰 변동을 받도록 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3. 연말 성회를 앞에 놓고 올리는 사명자의 기도

  약한데서 강하게 하시고 어리석은데서 지혜롭게 하시고 식어진 마음에 뜨거운 불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사오니 속히 나리소서.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쓰러질 정도로 피곤이 오고 있나이다. 새 힘을 나리소서. 1년간 몸부림치며 애써본 적도 있지만 도저히 이러한 상태로서는 안되겠나이다. 사자같이 부르짖는 사람이 되도록 이슬과 단비를 나리소서.

  저 산을 넘어가려고 올라가던 중에 더 올라갈 힘없이 한숨만 쉬며 앉아있는 나를 누가 일으켜 주겠나이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약해도 우리는 당신의 자녀요 맥빠져서 쓰러져도 아버지의 자녀이오니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우리가 저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을 어찌 보고만 계시겠나이까. 내가 구하기 전에 먼저 아시고 계신 아버지여, 나는 아버지 사랑의 품에 깊이 안겨야만 저 산을 넘겠나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정결케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앞과 뒤에서 호위하신다는 말씀을 믿으면서도 도저히 정결한 사람이 될 수가 없사오니 나를 정결케 하옵소서. 나를 정결케 하실 공로도 사랑도 능력도 주께 있사오니 어찌해서 나를 불결한 자리에 그냥 두시겠나이까. 하루아침에 인간의 죄악을 제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아버지여, 이 해가 가기 전에 정결한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시옵소서. 정결한 사람이 꼭 되어야 하겠나이다.  

  이날까지는 이리 굴고 저리 굴러 진흙 속의 지렁이 같은 생활을 하였사오나 72년부터는 새 타작기가 되어야만 하겠나이다. 원수가 강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버지의 정하신 뜻이라면 나를 강하게 들어서 저 원수를 이기게 하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겠나이까. 오!  아버지여, 나는 주의 피로 산 백성이온즉 어찌해서 내가 부정한 자리에 있겠나이까. 어찌해서 내가 약한 자리에 있겠나이까.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오니 주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 아  멘 -

 

◆ 평강의 노래 ◆

  인간이 아무리 수고한다 하여도 그 수고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하나님이시니 이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평강을 홀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조물주의 영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한 자라면 다음과 같이 노래하게 된다.

  평강! 평강! 하늘의 평강, 내 마음 지켜주는 평강.

  평강! 평강! 하늘의 평강 내 몸을 보호해 주는 평강.

  이 평강 내 것이니 영원히 영원히 평강. 평강!  내가 누릴 평강.

  너도 나도 평강. 영원 무궁 평강. 세세 왕권 평강. 주안에서 감사하며 기도하던 자에게 영원한 축복이로다. 누구든지 이 평강 부럽거든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하고 다 같이 평강을 누려 보자.

 

 

4. 알리는 말씀

 

  1년간 진리 운동에 이바지한 사명 동지 여러분께 큰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1. 12월 27일부터 1주일간 연말 성회를 열게 됩니다. 과거에도 큰 은혜가 나렸지만 금번에는 72년에 일어날 부흥단과 문서 운동을 목적하고 전력을 다하여 부르짖는 성회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명 동지들에게 널리 알려서 금번 성회에 참석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각 교회에 성직을 맡은 종님들이 꼭 참석하게 하시고 필요 없는 사람들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셔야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연말 성회는 신년도의 큰 문제를 놓고 호소하니 만큼 합심이 되지 않으면 큰 지장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회에 오는 분들을 교회의 제직회에서 상의가 있고 난 뒤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월간지 아름다운 소식의 인쇄비를 꼭 가지고 오시되 그 밖에 밀린 대금이 있는 분들도 금번 성회에 참석하실 때에 지불하도록 하시어 문서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새해 아침에 목사 안수식이 있겠사오니 안수를 받으실 종님이나 그 교회에서는 합심 기도에 전력을 두어 큰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강하게 내리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금번 안수를 받으시는 목사님들을 통하여 큰 영광이 나타나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각 구역장님들은 전도사 시취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을 잘 알아서 상임 위원회에 통과시켜 그 이름을 기록하여 제게로(목사님) 보내 주시면 기도로써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에 아무런 기도도 없이 경솔히 전도사를 세웠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도 대단히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지방 회장 되시는 분들은 적어도 15일 전에 제게로 서신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4. 목사 안수를 받은 종의 교회에서는 목사 취임식을 할 때에 장로 장립식이 있도록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오니 장로 되실 종님들을 미리 입산 수도하시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 안수를 받을 종님이 말씀이 무장되지 않고서는 촛대교회의 장로직을 할 수가 없는 것이오니 신중히 생각하시고 장로를 세우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연말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쉬지 않고 순종하다 보니 이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게 되었나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나를 길러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감사밖에 돌릴 길이 없나이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이 역사를 알지 못하지만 나 홀로 고요히 앉아 그 사랑을 받게 될 때에 이 아침 더욱 기쁨이 넘치나이다. 하나님께서 1년간 내 입을 열어 주시사 아무런 피곤없이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쓰게 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겸손하게 순종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여 부족한 이 종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 뿐이오니 더욱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71년을 저문 날로 보내는 사명자의 노래

푸른 하늘은 1년간 변함없건마는 산 빛은 파래졌다, 노래졌다 하는구나. 나의 마음 저 맑은 하늘의 빛 같이 변치 않으리. 잠자던 새순이 푸릇푸릇 돋아나더니 벌써 열매를 맺었구나. 나도 주의 축복 속에서 백 배의 열매를 맺으리라. 푸른 새순이 맺은 열매는 동물 세계에 도움을 주고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맺은 열매는 영원한 왕국을 이루도다. 금년도 어떻게 하나 하였더니 주의 축복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니 은혜에 감사할 뿐이로다.

 

 

5. 말세 복음 부흥단 회칙

제1장  총    칙

제1조  본부를 서울 새일중앙교회에 둔다.

제2조 :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를 들고 다시 예언하는 것을 무기로 삼되 계시록에 의한 데서 가감이 없이 증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공산주의와 협상적인 거짓 선지의 세력을 말씀의 본문을 읽는 정도에서 완전히 말살시킬 확신을 가지고 나선다.

제4조 : 조물주는 사랑의 신이신 동시에 선지서에 기록된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에 의하여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고 아무리 대적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도 여호와께서 우리 위에 역사하므로써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을 굳게 믿고 목숨을 바쳐 돌진할 것을 맹세한다.

제5조 : 우리는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갖되 어떤 정당이나 어떤 인물을 중심해서 일하지 않고 선지서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국가와 민족을 보호할 것을 믿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나설 것을 맹세한다

제6조 : 우리는 사상전을 하되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 사상의 근본이 되는 동시에 어떠한 사상이 우리를 대항한다 하여도 조금도 굴복치 않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싸워 승리할 것을 굳게 믿는데서 사상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제7조 : 우리는 교파를 초월한 말씀 운동에서 통일될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읽어서 하나같이 깨닫는 사람끼리 한 단체를 이루어 새 시대를 이루기까지 합심 단결할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제2장  조    직

제8조 : 우리는 부흥단을 다음과 같은 조직으로 움직이되 부흥단장은 말세복음을 받은 자로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9조 : 총무 1인을 두어 부흥단 운영을 하게 하되 단장의 지도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총무를 선정하는 방법은 전형 위원을 선택하여 여기에서 2~3인의 총무 후보를 선정한 다음 단장의 기도로써 최후에 1인을 결정한다.

제10조 : 서기 1인, 회계 1인을 둔다. 이 서기와 회계는 매년 개선하여야 하며 선정하는 방법은 전형 위원에서 추천하여 단장의 기도로써 결정된다.

제11조 : 본 부흥단의 정회원은 여호와새일교단에 속해 있는 인사에 한하여 추천의 대상이 되며 추천된 자는 단장의 기도로 결정한다.

제12조 : 준회원을 둔다. 선정하는 방법은 여호와새일교단에 소속한 인사들이 추천한 자는 누구나 준회원의 자격을 갖지만 이들을 다시 정회원들이 합석하여서 결정하기로 한다.

제13조 : 본 부흥단 내에 부흥부를 두고 구성 요원은 정회원으로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새일교단 내의 목사나 전도사는 자동적인 부흥부의 정회원으로서 부흥단 활동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제14조 : 본 부흥단 내에 방문부를 두고 그 구성 요원은 준회원 중에서 선정하되 이를 부흥부에서 결정하기로 한다.

제15조 : 본 부흥단 내에 협력부를 두고 그 구성 요원은 새일교단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본인이 말세 복음을 확신하고 협력하기로 결심한 자는 본 부흥단에 결심서를 제출하여 이를 정회원의 결정으로 정식 협력 부원이 될 수 있다.

제16조 : 사업상 국내외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 결정하여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새일 교단 상임 위원회를 통과하도록 한다.

제17조 : 본 부흥단의 지부는 국내외에 둘 수 있으며 각 지부에 지부 단장을 두어 그 단장의 관장 하에서 활동을 하되 모든 세칙은 각 지부에서 자유로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부 단장은 본부 단장의 지도를 받도록 한다.

제18조 : 본 부흥단은 새일교단에 소속해 있지만 독립적으로 활동할 것을 원칙으로 하며 부흥 운동의 비용은 교파를 초월한 협력 부원들이 활동하는 성금으로 움직이며 재정에 대한 것을 독립적인 활동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에까지 활동할 수 있으나 반드시 본 부흥단장의 지도 를 받아 움직여야 하며 외국에 연락하는 것은 본 단장의 명의로 연락하되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활동하여야 한다.

제19조:부흥부는 정식 회원으로만 구성되며 각 지부의 단장과 간부는 정회원이 아닌 사람으로는 선정할 수 없다.

제20조:외국과 연락이 있을 때에는 외국에 지부를 두고 그 지부 단장과 본부 단장과는 반드시 연락이 있어야 하며 필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임시로 적당한 인물을 택해서 연락하도록 한다.

           1971. 11.

      말 세 복 음 부 흥 단

 

 

6. 성탄과 평화

- 눅 2:1~14 -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홀로 있게 하지 않고 돕는 배필을 주어서 평화의 가정으로 평화의 나라를 이루라는 것이 그들에게 맡긴 사명이었지만 어리석은 여자가 남편을 돕는 것보다도 독단적인 행동을 취할 때부터 마귀는 평화를 깨쳐 버리는 일을 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만들었고 말씀을 의심하는 흑암이 든 여자가 가정에 주인되는 아담에게 상의없이 선악과를 먹고 순진한 남편까지 망치도록 했다는 것이 이날까지의 평화가 없는 가정, 평화가 없는 사회, 평화가 없는 국가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완전 평화라는 것은 유대 땅 말구유에 탄생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올 것을 천군 천사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축복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날까지는 평화 없는 가정, 교회, 국가를 이루는 일로 인류 역사를 이루었지만 이제 이 땅에 완전한 평화가 올 날은 박두하였습니다.  

  오늘에 붉은 용의 세력이 나오는 때에 이 세력을 인간이 막지 못하고 붉은 용과 협상을 하는 72년을 맞이해서 우리는 협상으로써 평화가 아니고 붉은 용의 세력이 이 땅에서 없어지므로써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가 예언을 할 때에도 사7:14에 임마누엘이 처녀 몸에서 나게 되므로 북방 앗수르가 망하고 새 시대가 올 것을 말했고 미가 선지가 예언할 때에도 미5:2에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가 올 것을 말했습니다.  

  앗수르가 강하게 일어나오는데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게 될 때가 이때인줄 아시고 평화 왕국 왕권의 축복을 받으시기 위하여 돌진의 걸음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감   사   찬   송 (73장)

- 성가 4장곡 - (71년 11월 21일 5시 20분)

 

  1. 감사와 찬송을 조물주 여호와 받으시고

     축복을 우리게 나리시옵소서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2. 영광의 찬송을 조물주 여호와 올립니다.

     승리의 찬송을 올리게 합소서

     재앙의 저주는 물러가리

 

  3. 오곡의(성신의)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여호와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4. 가정의 축복을 넘치게 주시어 새 시대의

     왕권의 축복을 영원히 받아서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