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2년 6월호)

설  교  편

 1. 심판과 평화 (미4:1~5)

 2. 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 (계3:18~22) 

 3.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야곱 (창28:13~15,30:25~27, 31:24~29)

 4.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격 (눅18:9~17)

 5. 기도 응답과 완전 승리 (욜2:15~26)

 6.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집회 (사4:4~6, 미2:12~13)

 7. 택한 종에게 되는 일 (갈1:11~17)

 8. 여호와께서는 인자한 신이시다 (시118:1~7)

 9. 조물주 하나님의 모략적인 역사 (슥12:1~9) 

10. 한 날의 괴로움을 가치있게 살자 (마6:25~34)

11. 우리의 스승 된 바울 (딤전2:5~10)

12. 은혜로 되는 하나님의 섭리 (엡2:1~10) 

13. 복 있는 믿음 (요20:26~29)

14. 재림의 날에 복 있는 종 (눅12:35~48)

 

장년 공과편 - 주 재림시에 교회의 형편

제1과  극도로 혼란한 중에 말씀의 역사 (사28:7~13) 

제2과  불법이 성한 중에 강권 역사 (사59:13~21) 

제3과  말씀을 반대하는 중에 해산의 수고 (사66:5~14)

제4과  큰 시험 중에서 받는 응답 (슥13:2~9)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4과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 (계7:2~3) 

제15과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 (계7:9~17)

제16과  기도 상달과 심판 (계8:1~5)

제17과  땅과 바다의 3분의 1이 피해를 당함 (계8:6~9) 

 

논 설 편

1. 인격을 따르는 것 보다는 인격을 만들어 주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2. 큰 것을 기대 말고 작은 것을 잃지 말라 

3. 모든 일에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 보다도 수고를 달게 해야 된다 

4. 인간 생활의 진보는 받는 데 있다 

5. 높은 것 바라지 말고 낮은 데서 바로 살자 

 

신 앙 문 답

1.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은 어떠한 방법으로 분명히 알도록 전할 수 있습니까?

3.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열매 있게 살 수 있습니까?

4.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여야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5. 인간이 사는 생활에 제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    집

1. 6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2. 6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3. 성산에 불을 밝히면서

4. 촛대교회의 사자가 될 종님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5. 아름다운 소식 6월호를 발행하면서 간단한 말씀을 드립니다

6. 전도사 시취 문제와 답 

7. 시대의 징조를 말하는 성도

 

 

 

 

 

 

 

 설 교 편

 

심판과 평화

- 미 4:1~5 -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할 때에  무조건 타협적인 평화를 가지고 평화 왕국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심판이 있고야 영원한 평화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 왕국에 들어갈 인격을 이루어 놓는 역사가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제 평화 왕국에 들어갈 인격은 어떠한 것이며 어떠한 심판이 있고 어떠한 평화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인격을 이루는 일이 있고 심판이 옴 (1~2)

  하나님께서 말일에 하나님의 성전을 어느 나라나 곳곳마다 견고히 건축케 하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인격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한 성전이다.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제사하던 성전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 보다도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영자적인 역사이었다. 그러나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산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기 위하여 곳곳마다 세워진 성전은 민족적 국경의 차별없이 누구든지 그 성전에 들어가서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까지의 역사는 영혼을 완전케 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여호와의 산에 가서 야곱의 도를 배우는 역사는 야곱의 길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몸까지 구원을 받는 완전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미5:7~9, 사43:1~4). 야곱의 도라는 것은 중생 받은 사람이 지상 축복을 받는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그 길을 가는 자는 물과 불이 당치 못하는 인격을 받아 남은 자가 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2. 강한 이방을 심판하고 평화가 옴 (3)

  하나님께서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굳게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회를 대적하는 강한 이방의 세력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으므로 심판을 나리게 된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시는 전쟁이 없는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지금 공산당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시키는 정책을 하면서 소위 맑스주의라는 것을 합법적인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잠깐동안 들어 쓰는 것 뿐이다. 오늘에 평화주의라는 자들은 강한 이방을 심판하는 것을 구약시대로 보고 지금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평화를 하여야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거짓 선지의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강한 이방의 세력을 심판하는 것이 인간 종말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강한 이방의 세력을 들어서 당신의 백성을 시험해 보고 끝까지 절개있게 나가는 사람을 보호하고 강한 이방을 쳐서 없이했다는 것이 구약 말기에 있었던 역사이었다. 그러나 구약 말기에 된 일은 그때에 평화 왕국이 온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에 심판의 경고를 주는 교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한 이방을 들어 쓸 때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용기있게 나간다면 원수를 없이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평화 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에 완전 평화를 이루고 아무런 난관이 와도 마귀의 세력과 끝까지 싸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다고 인정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이루시게 된다.

 

  3.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자들을 통하여 영원한 평화가 옴 (4~5)

  하나님께서는 싸워 주시되 당신의 이름을 불러 호소하는 사람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신다(욜2:32). 사람 자체는 무능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써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부르짖는 자를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떠한 어려운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입으로 부르게 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찾는 용기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신은 당신의 이름을 불러서 호소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승리하는 일이라고 본다. 인간이 볼 때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가장 미약한 것 같지만 승리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승리는 인간 종말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있으므로 평화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결    론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악의 세력이 없어지는 심판이 있고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산주의의 평화라는 거짓 선전에 속지 말고 성경 본문 그대로 악의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는 심판이 있고야 완전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가야 된다.

 

 

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

- 계 3:18~22 -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가지신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되 죄를 용납할 수는 없으므로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회개할 때에 죄를 없이하는 동시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징계라는 것이다.

  이제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과 징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주고 싶은 사랑으로 권함 (18)

  소위 하나님의 교회에 사자라 하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캄캄한 사람이 되었어도 주님은 양떼를 불쌍히 보는 사랑 속에서 그 종에게 부요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며 흰옷을 주고자 하는 동시에 그 눈도 밝게 해서 올바른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할 때에 완전한 것을 사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완전치 못한 것을 주님께 맡기고 완전한 것을 받아 가지라는 것이다.

  둘째 : 희생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셋째 :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준다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준다는 것이다. 오늘의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된다고 하였고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까지라도 다 버리고 따라 오는 자라야 된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익이 많이 있다 하여도 주님께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주의 것을 받을 수 있다.

 

  2. 주고 싶은 사랑으로 징계함 (19)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자 할 때에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권해도 순종치 않을 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언제나 징계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한데서 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징계를 받을 때에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열심을 내야만 한다. 주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소와 나귀보다도 못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소와 나귀도 주인이 시키는 일은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때릴 때에 열심을 내어서 빨리 하는 일이 소와 나귀에게도 있는데 소위 사람이라 하면서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징계를 받고 열심을 낼 때에 주님은 오히려 징계를 하시고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3. 주고 싶은 사랑에서 문을 두드림 (20)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든다면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열라고 재촉하는 자와 같은 심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랑하는 종에게 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자라면 얼마든지 만족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물질을 초월 한데서 있는 것이니 하늘에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에 들어가므로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기가 직접 받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신앙이라는 것은 직접으로 먹고 마시는 체험이 있으므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주고 싶은 사랑으로 보좌에 함께 앉게 함 (21)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부모든지 자식을 기를 때에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역사를 나리는 한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면서 지혜도 총명도 능력도 권세도 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주고 싶어하시는 그 사랑을 믿고 항상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 밖에는 아무런 것도 할 자격이 없다.

 

  결    론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아 순종하는 자라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패한 사람이라도 징계하시면서 완전한 것을 주어 영광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먹고 마시므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야곱

- 창 28:13~15, 30:25~27, 31:24~29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택한 자가 인간이 볼 때는 완전치 못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있다. 인간이 볼 때에 흠 잡을만한 것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해야 될 사람이 있고 인간이 볼 때는 흠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하시는 야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을 받음 (28:13~15)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실 때에 반드시 함께 해야 될 형편에 있는 야곱이었다. 그러나 에서는 야곱을 해코자 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 에서가 정당한 일을 한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야곱과 함께 해야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둘째 :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셋째 : 축복을 받기 위하여 참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셨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장자의 기업을 판다는 맹세를 했고, 야곱은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맹세를 받았다. 형인 에서는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도 등한히 알았지만 야곱은 그 맹세를 존중히 알고 이삭을 속여서라도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서가 마음이 강퍅해져서 야곱을 해코자 하였지만 야곱은 마음이 평화로운 자리에서 쓸쓸한 벧엘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축복하시되 “이 땅에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고 언약을 세우셨다. 인간 도덕으로는 야곱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해야만 될 일이므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나리는 축복을 갈망하고 싸우면서 참는 마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항상 함께 하신다. 왜냐 하면 말씀대로 행할 책임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므로 축복이 임함 (30:25~27)

  야곱은 인간이 볼 때에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라도 축복을 믿고 싸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신 것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부탁하기를 너는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삼아야만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말을 믿고 14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라헬과 레아를 위하여 희생 봉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축복을 했던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축복을 믿는 마음에서 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육적으로 끌려서 봉사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할 수 없지만, 축복을 믿고 봉사하는 일이므로 야곱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수입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줄 믿는 신앙으로 일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실 책임이 있다.

 

  3. 하나님께서 함께 하므로 피해를 받지 않음 (31:24~29)

  사람이라는 것은 축복을 받을 때에 원수가 있게 된다. 야곱이 큰 축복을 받을 때에 라반은 야곱을 시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자기를 시기하는 라반의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인간이 볼 때는 야곱이 라반의 집을 비밀로 떠나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셨던 것이다. 왜냐 하면 성별된 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므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따라 갈 때에 사람에게는 오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개한 마음을 가진 라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 대해서는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야곱에게 가졌던 오해를 풀고 야곱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만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가는 자에게는 인간이 볼 때에 오해를 할 일이 있다 하여도 결말을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면 인간의 어떤 세력이든지 무서워 말고 담대히 나가야 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결    론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어디를 가든지 평강이 같이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일이 형통하기 때문이다. 형통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실패 같고 어리석은 일 같으나 결말은 큰 열매를 이루는 일이 있게 된다.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격

- 눅 18:9~17 -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할 때에 완전한 사람을 의롭다 할 수는 없다. 오직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자에게만 의롭다 함을 주게 되는 것이니, 아무리 인간이 볼 때에 옳은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의롭다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볼 때에 부족하지만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믿고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을 나리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자격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자 (9~13)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가운데서 난 인간들을 불쌍히 보시는 신이시다. 왜냐 하면 억울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자손들이 다 죄에서 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타락한 인생을 불쌍히 보시므로 행하신 사랑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죄인이 받을 형벌을 받기를 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할 때에 그 사람을 만족히 아시고 의롭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으므로 아들을 보내서 죽게 한 것이다.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잘했다 하여도 하나님의 긍휼을 갈망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적이므로 오히려 자기가 죄를 진 것을 원통히 아는 자보다도 더 불의한 자로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신다.

 

  2. 자기를 낮추는 자 (14)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너무나 어리석고 약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만 하나님의 것을 받을 수 있다. 오늘의 인간들은 너무나 교만해졌다고 본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데서 하나님이 높여줄 적에 완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길 때에 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을 가질 때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받는 체험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의를 아는 것보다도 직접 받는 인격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인격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같이하는 생활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진심으로 받드는 자 (15~17)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 자라야 천국에 간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어린아이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인격이지만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모하는 거와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심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은 그 봉사를 제사로 받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하는 일을 보는 것 보다도 중심을 보시는 것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중심이 깨끗하고 완전한 마음이 있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어린이를 더 아끼고 보호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중심이 깨끗하고 간절하면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면서 그를 붙들어 보호하시는 것이다.

 

  결    론

  의라는 것은 인간 자체에는 있을 수 없고, 하나님만 의로우신 동시에 의를 행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격은 어떠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도 응답과 완전 승리

- 욜 2:15~26 -

 

  인간 종말에 완전 승리는 어떤 무력이나 권력에 있지 않고, 오직 기도 응답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묵시로 모든 선지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히 요엘 선지에게는 어떠한 기도를 하는 자가 완전한 승리를 이룬다는 것을 더 세밀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제 기도 응답과 완전 승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금식일을 정하는 일이 있어야 됨 (15)

  기도라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도 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도 있다. 그런데 완전 승리라는 것은 사랑에 불타는 마음으로 금식하되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있으므로만 열매를 거두게 된다. 금식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은 희생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원한다 하여도 자신을 희생하는데 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큰 응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북방 환란을 인력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북방을 심판하되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 세력을 이기게 하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북방 환란이 올 때에 그 세력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북방을 치시려고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다. 금식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최후 극단에 이를 때에 생명을 바치는 일인데, 금식일을 정하고 부르짖는 기도가 없이는 북방으로부터 오는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응답이 나릴 수가 없다.

  왜냐 하면 북방을 들어 환란이 오게 하는 것은 인간 종말에 참된 시온으로 남은 자가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낙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금식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일이 된다.

 

  2. 단체적인 기도가 있어야 됨 (16)

  만일 어떤 사람이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만났을 때에 자기 홀로 잠잠히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 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환란인데 단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불이 일어났는데 대중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 혼자서 잠잠히 그 불을 끄려고 하는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 그러므로 북방 환란이 올 때는 단체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하여 강한 대책을 세워야 된다는 것이다.

 

  3. 남을 구원코자 하는 기도가 있어야 됨 (17)

  남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짖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눈물 흘리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된 일이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완전 승리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독생자 그리스도가 만민을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하여 완전 승리를 이루도록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위기를 만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종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단체적인 승리를 이루도록 응답하시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워져서 북방을 치심 (18~20)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북방을 들어 환란이 오게도 하시며,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풀 때에 북방을 치기도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막대기를 들어 때리던 자라도 매를 맞는 사람이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 때에 도리어 막대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북방 군대를 들어서 부패한 자들을 치시기는 하지만 거룩한 성회를 열고 부르짖는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방을 쳐 없애므로 말미암아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5. 기도 응답으로 축복을 주심 (21~26)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요, 완전 승리를 목적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소원이 당신의 종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나리는 동시에 축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주었던 축복을 빼앗겼던 인간에게 이것을 다시 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에게 잃었던 축복을 다시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금식일을 정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그 난국을 돌파하게 하시는 동시에 새 땅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집회

- 사 4:4~6, 미 2:12~13 -

 

  하나님께서는 인간 종말에 친히 함께하는 집회가 있으므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집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집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교회가 있지만 이 교회가 이대로 새 시대를 이룰 수 없고 반드시 특별한 집회가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독교라는 단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없다면 앞으로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단체를 이루므로 남은 교회가 되는 동시에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떠한 집회라야 남은 교회가 된다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강권 역사가 나리는 집회 (사4:4)

  앞으로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몸까지 정결케 하는 역사가 나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나리는 것인데 완전 개조, 완전 성결, 완전 변화의 역사가 나리므로 몸의 피까지 정결케 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노의 날이 임박할 때에 나리는 하나님의 강권 역사이다. 은혜시대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그 몸까지 구원하는 역사가 나릴 때에 강권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2. 밤과 낮으로 보호를 받는 집회 (5~6)

  하나님께서 어려운 환란이 올 때에 단체적으로 보호하시되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으로 보호하여 아무런 피해를 당치 않고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하시므로 남은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만 모이는 집회이니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여호와 영광 중에 함께 하므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가 이루어지므로만 있게 될 것이다.

 

  3. 남은 자를 모으는 집회 (미2:12~13)

  하나님께서는 어느 교파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 중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어떠한 시련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을 한데 모으시는데 있어서 친히 선두로 행하신다고 하셨다. 앞으로 교회는 부득불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진실한 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를 기쁘게 받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외식이 있는 자는 오히려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를 듣기 싫어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미2:6, 11).

  앞으로 기독교는 교파가 문제가 아니요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게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거짓 선지의 교권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아래에 굴복하는 자는 버림을 당할 것이요,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진실한 자로 인정하시고 친히 인도하시게 된다. 예를 든다면 타작기를 돌리는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인간 종말에 남은 자를 모아서 한 단체를 이루는 것은 여호와 친히 선두로 행하시는 역사가 있으므로만 있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선지 시대에 선지의 예언을 순종치 않았다가 망하였고, 바벨론의 포로된 자 중에서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남은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복구했던 것은 기독교 종말에 남은 자를 모아 촛대교회를 이루는 동시에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역사이다. 사람 스스로가 완전한 단체를 이룰 수는 전혀 없고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므로만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집회가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집회일 것이다. 세상에 많은 단체가 있다 하여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단체를 통하여서만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어떠한 인물이나 교권을 중심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시는 단체를 이루므로만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택한 종에게 되는 일

- 갈 1:11~17 -

 

  하나님의 택한 종이라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이루어지므로 오직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택한 종에게 되어지는 것은 연구했거나 노력을 했거나 또는 인간의 혜택을 입은 것이 아니요, 홀연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사람이 볼 때는 소망이 없는 것 같아도 뜻밖에 놀라운 일이 있기도 하고, 사람이 볼 때는 악한 것 같아도 홀연히 의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 택한 종에게 되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택한 자라도, 인간이 볼 때에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는 것같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택한 자가 죄 되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죄를 짓지 않도록 방지하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행동을 하도록 버려 두셨다가 갑자기 택한 자를 바로 만들어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제 택한 종에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증거하기로 한다.

 

  1. 계시로 말미암아 되는 일 (11~12)

  택한 종이 일을 하게 되는 일은 인간 지식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요, 인간 도덕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어떤 인도를 받아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극도로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나 다메섹 광야에서 홀연히 계시를 받아 그 즉시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종이 연구해서 된다는 것은 완전한 종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 될 적에 완전한 것을 증거할 수 있는 종이 되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의 역사가 인간 두뇌로 연구해서 된다면 이것은 생명의 종교라고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볼 수도 없다. 왜냐 하면 사람의 연구 안에 있는 것은 전부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계시를 받아 되어진 일은 오늘까지 세계 인류에게 큰 열매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계시를 받지 않고 되는 종은 택한 종이라고 볼 수 없다.

 

  2. 은혜로 부르심을 받게 되는 일 (13~15)

  아무리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은혜로 부르셨다. 이것은 바울이 알지 못해서 핍박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택한 자에게 깨닫도록 할 책임이 있으므로 그를 책망하는 것보다도 은혜로 부르신 것이다.

  누구든지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면 알지 못해서 죄를 지은 일은 있으나 깨닫게 될 때에는 그 즉시에 옳은 일을 하게 된다.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한 것은 너무나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는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핍박한 이유는 유대교 외에 다른 교가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통을 가지고 내려온 유대교를 기독교가 무시한다는 오해를 가졌으며, 유대교를 없이하고 예수교가 우세하게 된다면 자기의 정통은 다 쓸데가 없다는 생각에서 유대 교권으로 기독교를 반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를 모르므로 행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은혜를 깨닫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 언제나 택한 종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스리신다. 깨닫지 못할 때에는 깨닫도록 지혜를 주시며 약할 때에는 이기도록 능력을 주시는 것은 택한 자에게 은혜로 역사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3.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일 (16~17)

  사명이라는 것은 모태로부터 택할 때에 어떻게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으니, 아무리 사람이 애를 써 보아도 그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농부가 장기를 손에 잡고 일할 때에 그 장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농부가 하고자 하는 대로 쓰여지는 것과 같다.

  택한 종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사람으로서 감히 스스로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이 그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이 교회를 제일 많이 세웠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택한 종에게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조금도 인간의 무엇이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신령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는 택한 종이 있으므로써 있게 되는 것이니, 만일 택한 종이 없다면 교회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가장 귀중한 일은 택한 종이 하는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한 신이시다

- 시 118:1~7 -

 

  하나님께서는 무소 불능하신 동시에 완전한 것을 가지고 계신 신이시다. 그러므로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항상 인자하게 사람을 대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고 부정한 것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향하여 항상 인자하신 신이시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모든 일을 인자하게 행하신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택한 자에게 (1~3)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택한 자에게 항상 인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한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아무리 택한 자가 죄 아래 있다 하여도 불쌍히 보고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부모가 자기의 자녀를 대할 때에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항상 중심에 염려하고 근심하면서까지 그가 바로 되기를 바라는 심정과 같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모태로부터 택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잊지도 않으시고, 마귀에게 빼앗기지도 않으신다. 아무리 택한 자가 하나님을 떠났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고, 아무리 택한 자가 어리석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지혜롭게 하기를 원하시고, 아무리 택한 자가 약하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기 원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모든 것을 택한 자에게 주기로 뜻했기 때문이다.

 

  2. 경외하는 자에게 (4)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항상 인자하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만 아는 죄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기쁘시게 대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정직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숨기고 예배하는 자는 가증히 보실 것이로되 하나님을 대할 때마다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는 자는 인자하게 대하시면서 그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숨기는 자는 마음이 강퍅해질 것이로되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통회하는 자라면 마음에 성결함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피실 때에 완전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을 중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3.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5)

  하나님께서는 평안한 가운데서 당신을 향하여 마음이 식어진 자 보다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신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할까 무서워서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로되 원수에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타협치 않고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충성된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사람에게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시므로써 당신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도록끔 역사하신다.

 

  4. 하나님 편에 속한 자에게 (6~7)

  누구든지 아무리 가난하고 약하더라도 항상 그 마음이 하나님 편에 속해 있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고 다른 것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하여 역사를 나릴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자하시게 대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자라면 조금도 마음에 태만한 것이 있을 수 없고 항상 그의 인자하심을 사모하게 되며 그를 가까이 하게 되며 그를 의지하게 되며 그를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공경한지 40년이 되는 오늘날, 하나님은 인자하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될 때에 이전보다도 더욱 더 사모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서든지 이러한 인자를 맛보지 못했고, 하나님께로서만 그 인자하심을 맛보게 될 때에 날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잠잠히 묵상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는 항상 인자하시게 대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만 한다.

 

 

조물주 하나님의 모략적인 역사

- 슥 12:1~9 -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의 영혼을 지으신 조물주의 능력을 가지셨지만 언제나 모략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시므로 참된 신앙을 가진 자 외에는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하시니 만큼 잠잠히 계셔서 당신을 의심없이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를 들어 쓰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모략적인 역사가 있다.

 

  1. 천하 만국으로 사랑하는 자를 치게 하심 (2~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고자 하실 때에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일어나도록 하셔서 사랑하는 자를 치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누구든지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없이 될 때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싸우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시고 통치권을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모아서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작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믿고 의지할 때에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모략을 알고 원수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진노의 날에 다 함께 보호를 받도록 해 주신다.

 

  2. 원수들의 눈이 멀도록 하심 (4)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처음에는 당신의 사람을 아무런 소망이 없게 보이도록 하시지만 홀연히 역사하시되 원수의 세력을 다 눈먼 사람같이 되게 하셔서 원수들이 스스로 망하도록 하신 것이다. 지금 과학적 유물론 사상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있지만 유물론 사상이라는 그 자체가 눈이 먼 자들과 같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눈먼 소경과 같은 사람들이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3. 사랑하는 자로 승리케 하심 (5~6)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승리케 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매우 쉬운 일이다. 예를 든다면 불이 섶을 사를 때에 섶이 많을수록 불은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사람이 역사하는 일은 원수의 세력이 많을수록 강하게 일어나므로 많은 원수를 이기는 것은 불이 섶을 사르는 것과 같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4. 구원을 베푸심 (7)

  이 구원이라는 것은 영, 육이 아울러 받는 구원을 말한다. 이것은 한 사람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구원을 하나님께서 베풀되 공평한 구원을 베풀어 하나같이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5. 종을 하나님 같이 들어 쓰심 (8~9)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신과 같이 들어 쓰고자 하시는 모략적인 방법이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면서 모세를 신과 같이 썼고, 아합의 마음을 강퍅케 하면서 엘리야를 신과 같이 썼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천하 만국을 악하게 하시면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신과 같이 역사하게 하시므로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결    론

  우리가 가장 억울하고도 두려운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은 가장 영화롭고도 아름다운 일을 가져오게 하실 하나님의 모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국제적으로 오는 유물론 공산 정책을 무서워 말고 담대히 나갈 때에 하루아침에 승리하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을 가치있게 살자

- 마 6:25~34 -

 

  인간의 괴로움 중에도 가치있는 괴로움이 있고, 화를 받을 괴로움도 있다. 오늘 우리가 한 날의 괴로움을 가치있게 살아 나간다면 이것이 천국 건설 운동의 용사적인 생활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신 것은 한 날의 괴로움을 가치있게 살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몸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인격으로 사는 생활이라는 것은 모든 일이 다 헛된 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한날의 괴로움을 가치 있게 살려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먹고 입는 일에 끌리지 않는 자 (25~29)

  사람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왜냐 하면 이방적인 생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은 먹고 입는 것 하나만을 생각하고 그 밖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믿는 것이니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체험하는 생활에서 물질 문명을 초월한 인격을 받게 될 때에 먹고 입는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 보다도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수고하게 된다.

  누구든지 완전 개조, 성결 변화, 능력을 받은 자라면 그 밖에 모든 것은 염려할 필요조차 없고 필연적인 열매가 되는데서 자동적으로 먹고도 입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먹고 입는 일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된 인격을 갖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 (30~33)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더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늘 나라를 그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역사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오히려 그것을 반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진리를 가르쳤으므로 그 교훈을 믿는 자가 적게 되었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 역사를 반대하는 자가 세상에서 더 많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영광을 주고 싶은 그 사랑의 심정을 오히려 노엽게 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의합이 되려면 생활 전체를 천국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천국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고, 천국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고, 천국을 위하여 성신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가장 어리석은 자라는 것은 천국이 없다는 자이며, 가장 가증한 자라는 것은 천국이 있다 하면서도 세상 명예와 권리를 얻기 위하여 싸우는 자이다. 누구든지 모든 일 전부를 천국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 있는 자라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

 

  3. 한 날 괴로움을 그날에 족한 줄 아는 자 (34)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 군사된 생활이므로

  둘째 : 남을 살리기 위하여 사는 생활이므로

  셋째 : 왕권을 목적하고 나가는 생활이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날 그날에 부딪혀 오는 모든 문제를 바로 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만왕의 왕을 따라 가는 생활이니 염려할 것은 전혀 없고 날마다 주님을 따라 나가는 생활에서 십자가를 질 것뿐이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염려해야 된다고 하셨다면 족한 생활을 할 수 없겠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너희 천부께서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내 사정을 내가 아는 것보다도 아버지께서 먼저 아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아버지 집에서 매일 같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것뿐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날에 괴로움을 족하게 사는 생활이 되므로 모든 일이 다 열매가 될 것이다.

 

  결    론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런 수고가 없는데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요, 수고를 바로 하는데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수고를 바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한 날의 괴로움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스승 된 바울

- 딤전 2:5~10 -

 

  인간이라는 것은 모든 일에 스승 된 자가 있어야만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 같은 스승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누구든지 바울이 자기에게 참된 스승이 된다고 깨달은 자라면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대제사장과 교법사와 유사와 장로들은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정죄했었다. 그러나 이단이라고 정죄한 자는 아무런 열매가 없이 망하였고 이단이라고 정죄를 받은 바울은 세계 인류를 바로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것을 세계 인류가 알게 되었다.

  이제 바울이 우리의 스승 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그리스도는 중보자이신 것을 밝히 가르침 (5)

  그리스도를 반대했던 바울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보자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일생을 피 흘리면서 싸웠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중보자 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싸우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다 흑암에서 해방을 받고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한 도덕가나 종교가는 될지언정 중보는 될 수 없다.

  바울이 그리스도만이 중보자라고 가르친 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요 확실한 증거를 받은 바울로서 분명히 가르친 것이다. 우리가 바울의 증거를 참이라고 믿어지는 것은 그대로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울이 그리스도를 중보자라고 가르쳤다 하여도 지금 우리에게 산 증거가 없다면 바울은 우리의 참된 스승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증거한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증거가 있으므로 누구든지 이 증거를 받은 자는 하나같이 바울을 참된 스승으로 시인하는 동시에 그가 싸우던 싸움을 계속하여 싸우게 된다.

 

  2. 확실한 증거를 가르침 (6)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가 확실한 만큼 이루어질 증거도 확실한 것이다. 만민의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이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희생하셨다면 이루어질 일이 너무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속죄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앞으로 재림의 주가 올 때에 될 일이 분명한 것이라는 것을 바울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믿는다 하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하여 갈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초림의 주를 통하여 오는 산 체험을 받지 못한 자라고 볼 수 있다.

 

  3. 자기 사명에 대하여 거짓이 없다고 말함 (7)

  참된 스승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주님께서 스승으로 세운 자라야 자격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를 반대하고 폭행을 하던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명령을 받고 나서게 될 때에 언제나 자기 사명에 대하여 서슴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연구했다는 것은 참이라고 할 수 없고 주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라야 참되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그대로 되지를 않으므로 참 말이 될 수 없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은 끝까지 주님께서 책임을 지고 행하시므로 참 말이 되기 때문이다.

 

  4. 하나가 되기를 원함 (8~10)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옥중에서도 남자나 여자나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자기는 희생을 당할지언정 모든 사람들에게 다툼이 없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면 승리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가 되지 않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바울은 가르쳤다.

  만일 서로 다투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 자체가 사단에게 먹힘을 당한 것이니 아무리 기도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며,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해야만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가 되어 기도하여야만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바울이 진리를 바로 가르쳤다 하여도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하나가 못된다면 완전한 열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스승이 없이 아무 것도 바로 할 수가 없고, 스승이 있다 하여도 가르침을 받은 자가 바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진리의 스승인 바울을 표본으로 삼는 단체를 이루어야 한다.

 

 

은혜로 되는 하나님의 섭리

- 엡 2:1~10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함으로 되는 일이 아니요, 당신의 은혜로 되는 일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들어서 쓰시는 것은 인간의 행함으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큰사랑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서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만 되게 하는 법을 세운 것이 하나님의 완전 역사이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살려 주는 은혜 (1~5)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이다. 왜냐 하면 본질적으로 타락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죄를 짓는다는 것은 벌써 악령에게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를 이길 자는 전혀 없다. 사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게 한 것이 하나님의 무한 광대한 사랑의 법이라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 스스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은혜로 구원해 주는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죄를 짓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요 죄를 이길 수 없는 인간을 은혜로 구원하여 죄의 세력을 이기게 하는 것을 은혜의 역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독생자의 거룩한 십자가의 의로 있게 하여 독생자를 통하여 완전한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2. 지극히 풍성한 은혜 (6~7)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죽은 영혼을 살려 주는데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같이 세세 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종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세토록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은혜로 구원해 주는 동시에 얼마든지 은혜로 역사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대행자로 역사하도록 하시는 것은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더 받도록 해서 오는 여러 세대에 길이 길이 영광을 나타내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누구든지 은혜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같이 남도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풍성한 은혜를 나리시는 것이다.

 

  3. 선물로 주는 은혜 (8~10)

  선물이라는 것은 영원히 주는 보화이다. 우리가 은혜로 받은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요, 영원히 받은 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지혜와 총명을 받으면 영원히 지혜 총명이 받은 자의 것이 되는 것이요, 능력과 권세를 받으면 영원히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아서 크면 그것이 작아지지 않고 큰 가지가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영원히 선물로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을 받은 자라도 은혜의 선물을 받은 분량에 따라서 그가 받을 영광의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체가 의를 행함으로써 인격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가 되므로 그 은혜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

 

  결    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기술을 가진 자가 그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기 전에는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에게 은혜를 주므로써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만을 믿고 용기 있게 돌진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책임을 지시고 은혜 가운데서 우리를 다스리시므로 가장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복 있는 믿음

- 요 20:26~29 -

 

  인생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보고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는 죄로 타락한 죄악 세상을 이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믿는 것보다도 그 말씀을 조금도 가감없이 믿는 믿음이라야 하나님과 의합이 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의 말을 그대로 믿어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나를 대적하는 원수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 보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적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가장 복 있는 믿음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 (요20:26~29)

  도마는 예수님을 믿는 사도로서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고 부활한 것을 본 사도의 말도 믿지 않고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었다.

  우리는 예수를 보고 믿는다는 것보다도 친히 예수님을 보고 그 교훈을 받아 증거하는 사도의 증거를 의심없이 믿을 때 사도들에게 있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을 받는 것이 더 복된 일이다. 사도들은 이미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여러 가지 교훈을 받고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는데 우리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우상을 공경하던 민족 중에서 난 사람으로 의심 없는 믿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복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들은 부활을 증거할 대표적인 종들이므로 확증적인 증거를 보여준 것인데 이것은 사도들만을 위하여 보여준 것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믿게 하기 위하여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사도들이 증거한 말씀을 조금도 거짓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은 그들을 거짓이 없는 참된 사도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순교하기까지 부활을 증거한 사실을 본다면 그들의 증거가 조금도 거짓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사도들이 증거한 말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받게 될 때에 거짓이 없는 참된 사도라는 것을 확증하게 된다. 아무리 사도들이 증거했다 하여도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사도의 증거를 참이라고 믿을 수 없다. 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보았다 하더라도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가 없다면 우리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았다 하는 것보다도 직접 나리는 역사를 받는 것이 더 복되다고 볼 수 있다.

 

  2.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믿음 (약1:3~4)

  가장 복된 생활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생활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주시는 것은 부족함이 없이 살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될 것이로되 인내를 온전히 이룬 믿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다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내를 온전히 이룬 믿음을 가진 자는 핍박을 받아도 큰 상급이 되는 것이니 모든 일은 다 영원한 축복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인내를 이루는 믿음이라면 환란과 재앙의 날이라도 남은 자가 될 것이다(계13:10).

 

  결    론

  믿음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주는 선물이므로  사람이 그 믿음을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보고 들었다 하더라도 택함을 받지 않은 자는 믿지를 않는다(요10:26). 사람이 믿게 한다고 해서 믿고 사람이 믿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믿지 못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 하여도 그 진리가 마음에 완전히 믿어진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이기고 말씀대로 오는 축복을 말씀으로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한 몸을 만져 보고서 믿는다는 믿음보다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믿음을 받게 되는데서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람을 통하여 그 믿음의 역사는 완전히 나타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 하면서 실천 생활이 없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에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우리에게 역사 하시므로 말씀대로 오는 모든 축복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재림의 날에 복 있는 종

- 눅 12:35~48 -

 

  인간 생활 중에서 가장 복된 것은 주의 종된 생활이며 종된 자 중에도 가장 복된 자는 재림의 날에 칭찬을 받는 종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재림의 날에 어떠한 종이라야 복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1. 끝까지 기다리는 종 (35~37)

  처음에는 열심이 있고 진실하게 하다가도 그 열심이 식어지고 그 마음이 변하고 마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다. 주님께서 끝까지 기다리고 있는 종이 복있다고 말씀한 것은 주님 재림 하실 때에는 맡은 사명을 감당해 나가기가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이라고 하였다. 극도로 피곤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 올 때에 끝까지 기다리고 자기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자는 주님이 그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섬긴다는 것은 극도로 높은 지위의 왕권을 받는 것을 뜻한 것이다.

  지금은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던 자들도 오히려 그 마음이 식어지고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도 타협적인 노선으로 흐르기 쉬운 때이다. 왜냐 하면 극도로 어려운 시련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종이 되려면 인간으로서 도저히 참고 나갈 수 없는 시련이 올 때에 끝까지 이기고 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살아 나갈 길이 막연한 때에 홀연히 나타나시는 것이다.

 

  2. 예비하고 있는 종 (38~40)

  우리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이 되려면 그 날에 설 수 있는 예비가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그날은 인력으로써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닥쳐오는 날이니 하나님께서 특별 역사를 나리는 것이 없이는 남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주의 날에 나리는 역사라는 것은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응답의 역사이다. 누구든지 이미 기도가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일을 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응답의 역사를 나리시는 것이다.

  이 때는 일한대로 갚아 주는 때이니 만큼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든지 주님께서 갚아줄 만한 일이 없는 자라면 재림의 날에 오는 원수의 피해를 막을 수도 없고 흑암의 세력을 뚫고 나가서 역사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비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응답을 나리시므로써 오히려 재림의 날에 더 용기를 얻게 되고 강한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 재림의 날에 복 있는 사람은 갚아줄 것이 있는 자이다.

 

  3.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 (42~44)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는 그날에 적합한 진리를 남에게 전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날에 전할 진리는 환란 재앙 속에서 구원 받는 말씀이다. 가장 큰 일은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양떼를 살리는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말씀을 전하고는 다시 전할 기회가 없으며 모든 성경의 비밀을 다 전해야만 될 때가 재림의 날이라고 본다.

  재림의 날은 말씀대로 환란과 재앙이 있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원수를 이기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재림의 날에 말씀 증거가 그때에 맞지 않다면 그 사람은 복 있는 것 보다도 더 큰 화를 받게 된다(사8:20).

  가장 복 있는 종은 재림의 날에 많은 사람을 살리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까지에 모든 성경에 숨어 있는 비밀은 주 재림시기에 나누어 줄 양식이 되는 것이다. 재림의 날에 말씀을 바로 전하는 종이 되려면 완전 무장을 갖추어야 되는데, 이 완전 무장이라는 것은 변화성도의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종은 재림의 날에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기다린 자이며 응답이 나려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된 자이며 완전한 진리를 바로 전해서 많은 양떼를 살리는 자이다. 우리는 지금 이때에 끝까지 기다리고 참아야 하며 응답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날까지에 감추어 놓았던 비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아야 한다.

 

 

 

 장 년  공 과 편 - 주 재림시에 교회의 형편

 

  총    론

  우리는 주님 다시 올 때에 교회의 형편은 어떠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한 것은 참된 믿음을 만나 보기가 어려운 정도에 있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지금 많은 교파가 있지만 주님 다시 올 때에 교회 형편은 교파를 초월하여 큰 혼란이 오는 동시에 큰 변동을 가져오게 된다.

  이제 주 재림시에 교회의 형편을 성경을 들어서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극도로 혼란한 중에 말씀의 역사

- 사 28:7~13,  요절:11 -

 

  서    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뒤집어 엎는 심판을 할 것을 24장에 말할 때에 25장은 심판기에 역사가 산을 중심해서 있을 것을 가르쳤고 26장에는 주 재림기에 남을 종이 될 사람의 인격을 말했고 27장은 심판을 말했으며 28장은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는 자들이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빠져서 술 취한 자 같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직접으로 종의 입술을 사용하여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에 전부 심판할 것을 가르쳤다.

 

  1대지 : 혼란한 교계 (7~10)

  교회 혼란이라는 것은 소위 성직을 맡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잘못되이 해석을 하며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있게 되는데 이런 자들이 서는 강단은 극도로 더러운 것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단에 선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증거하지 못한다면 거룩한 강단을 더럽히는 일이 되고 교회의 치리라는 것을 잘못하면 성신을 훼방하는 죄를 범하게 되므로 이러한 자들이 교권을 쥐고 움직일 때에 교계는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들어갈 것을 가르쳤다.

  예를 든다면 독주에 취한 자가 비틀거리며 망령되이 떠들면서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역사를 오히려 이단시하고 자기를 높이는 교만에서 아무런 말도 다 부인하고 자기만 옳다는 것을 말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종된 사람은 극히 겸손한 자리에서 순종하는 것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교회를 혼란케하는 일을 하게 된다.

 

  2대지 : 하나님의 종의 입술을 쓰시는 역사 (11~12)

  하나님께서 혼란에 빠진 교계를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교계에서 인정치 않는 생소한 사람의 입술을 친히 쓰시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상쾌함을 주는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케하는 교계에서 극도로 피곤했던 사람들이 안식에 들어가는 진리의 말씀을 명백히 깨닫게 되는 일이 있을 때에 그들은 극도로 상쾌함을 얻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선지에게 묵시로 말씀을 주었지만 주 재림시기에는 하나님의 종의 입술을 직접 하나님께서 쓰시므로 누구든지 택한자는 다 그 말씀을 듣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안식의 축복을 받게 된다.

 

  3대지 : 순종치 않으므로 망하게 되는 일 (13)

  하나님께서 종의 입술을 들어서 증거해도 순종치 않을 때에 그들은 더욱 혼란에 빠져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마지막 증거를 순종치 않았으므로 반드시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지금 이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계속으로 책자를 기록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역사라고 나는 확실히 믿어진다. 1967년 10월에 내 입술에 말씀이 올 때에 사28:11과 사59:21이 네게 임하는 역사라고 하였는데 그때부터 얼마든지 기록하는 대로 입에서 말씀이 나타나게 되므로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모르던 진리를 변론하는 책자를 내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입술을 통하여 성경에 관한 말씀을 다 변론한 후에는 용서 없는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셨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는 책자를 읽을 때에 만홀히 알지 말고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결    론

  오늘날 너무나 영계가 혼란하고 교계가 혼란한 이 때에 말씀이 하나님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재림의 주가 오실 날이 가까운 증거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리는 완전 무장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제2과  불법이 성한 중에 강권 역사

- 사 59:13~21,  요절:16 -

 

  서    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불법이 성하므로 참된 종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되는데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강권역사를 내리시어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잠잠히 계신다면 불법의 세력을 이기고 나갈 자가 전혀 없으므로 강권역사를 내리시게 된다.

  이제 불법이 성한 중에 강권역사가 나타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대지 : 불법이 성하게 됨 (13~15)

  교회 안에 불법의 세력이 성하게 될 때에는 참된 종이 그 가운데서 쫓겨남을 받게 된다. 왜냐 하면 불법의 일을 행하는 자들이 의로운 종을 쫓아내지 않고는 모든 일을 자기 세력 안에서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증거하는 종은 그 가운데서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불법의 세력이 주권을 쥐고 교회의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므로 그 교회 단체는 한 사람도 옳은 종을 길러 낼 수가 없게 된다.

  교회 안에 불법자가 있다 하여도 그 교회의 모든 치리를 진실한 종들이 할 때에는 모든 일이 진리대로 바로 진행되지만 불법의 세력이 주권을 쥘 때에는 진리대로 모든 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행하게 되니 하나님의 역사는 그 교회 단체에서 거두어 가게 되므로 사단의 회가 되고 만다. 이스라엘 말기에도 불법의 세력이 주권을 쥐게 될 때에 참된 선지들이 핍박을 받고 쫓겨남을 받게 되므로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쳤던 것이다. 이것은 주 재림기에 될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2대지 : 하나님이 강권 역사를 하게 됨 (16~17)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중재자가 될 만한 자가 없으므로 쓸 만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강권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소위 교회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하게 되므로 그 단체 안에서는 한 사람도 쓸 만한 사람이 없게 되어 여호와께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고 그 머리에 구원을 투구로 삼으시며 친히 열심으로 모든 일을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재림의 날에 남은 교회와 남은 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가 이대로 있어 가지고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전혀 없고 하나님의 강권역사로 새로운 종들이 나와야만 된다고 볼 수 있다.

 

  3대지 : 강한 역사가 동방으로 오게 됨 (18~19)

  지금 해 돋는 편에 강한 역사가 임하지 않고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제가 닥쳐 왔다. 이것은 강한 역사가 동방에 임할 때가 온 증거이다. 만일 동방에 강한 역사가 임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교회를 유지할 수가 없는 때가 온 것이다. 모든 교회가 다 황폐화되는 오늘에 우리 남한에 교회가 남게 된 것은 강권 역사가 동방 땅 끝인 우리 나라에서 일어날 때가 온 증거이다. 현재에도 강한 역사가 나리고 있는 곳은 우리 나라라고 본다.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내리게 되는 일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를 깨우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된 자에게 강하게 역사를 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 재림기에 종말의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일어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4대지 : 하나님께서 말씀을 종의 입에 두게 됨 (20~21)

  하나님께서 동방에 역사를 강하게 내리는데 있어서는 말씀을 동방 사람의 입에 두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임하여 역사하는 일이 없이는 혼란한 교계를 바로 잡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동방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므로 그를 통하여 한 단체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쳐서 네 후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후손이라는 것은 사43:5과 같은 뜻이다. 죄과를 떠난 자에게 입에 말씀을 두는 것은 남은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지금 너무나 종들의 말이 혼선되고 더러워졌으므로 강권으로 입술에 말씀을 두는 일이 있게 되어 이 말씀 운동이 영원한 안식의 세계를 이루는 오메가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후손의 후손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말씀 운동으로 이루어지되 강권 역사로 된다는 것이다.

 

  결    론

  불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탈선된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오늘날 교계에서 말씀이 탈선된 것을 그대로 두고 심판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서는 강권역사를 행하시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말씀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제3과  말씀을 반대하는 중에 해산의 수고

- 사 66:5~14,  요절:7 -

 

  서    론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므로 말씀에 떠는 자가 해산의 수고를 하게 된다. 구약말기에 참된 종인 선지의 경고를 반대한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참된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을 반대하는 역사가 교권을 쥐고 일어나지만 필연코 승리는 말씀에 떠는 자에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 강하게 일어날 때에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는 반드시 새 땅의 축복을 받게 된다.

 

  1대지 : 말씀에 떠는 자를 쫓아내는 교회 (5~6)

  심판기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하는 교회라 하는 기관에서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내는 일이 있으므로 그 교회에 큰 화가 올 것을 가르쳐서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 하시는 목소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성전에서 말씀에 떠는 자를 쫓아낸다는 것은 멸망 받을 일이라고 본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교회이므로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오히려 가증히 보시고 그 예배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이 여기신다고 하였다.

 

  2대지 : 쫓겨난 시온의 열매 (7~9)

  미움을 받고 쫓겨나더라도 말씀에 떠는 시온은 말씀대로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되므로 순식간에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해산의 수고를 다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로 하여금 지상왕국의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것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요 말씀에 떠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받게 되므로 초인간적인 역사가 나타나서 순간적으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룰 수 있는 승리를 보게 된다. 본문에 남자를 낳는다는 것은 말씀의 대표적인 사람을 뜻했고 그밖에 순산한다는 것은 대중적인 역사를 뜻한 것이다.

 

  3대지 : 말씀에 떠는 시온의 축복 (10~14)

  아담, 하와는 말씀에 떨지 않았으므로 에덴 축복을 빼앗겼고 인간 종말에 시온은 말씀에 떨고 쫓겨나기까지 싸워 나갔으므로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새 땅의 큰 영광을 받게 되는 동시에 큰 위로와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지 않고는 말씀을 지켜 나갈 수 없게 하신 것은 완전한 성산의 축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결    론

  가장 미운 물건은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내는 자요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자는 말씀에 떠는 사람으로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4과  큰 시험 중에서 받는 응답

- 슥 13:2~9,  요절:9 -

 

  서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아무런 시험 없이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요 큰 시험을 반드시 주어서 그 시험을 이긴 자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종들에게 큰 축복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시험을 통과시키는 일이 있는데 기독교가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게 될 때는 어느 종이나 다 시험을 해 보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예언을 증거하면 박해를 받게 되는 일 (2~3)

  은혜시대에는 우상이 가득한 나라에 가서 그 우상을 버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할 때에 무서운 핍박을 받았고 인간 종말에는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가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은 사상 문제이다. 왜냐 하면 악한 사상을 가진 자가 극도로 강하게 일어났는데 이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할 때에 악한 사상을 가진 자들이 극도로 강하게 일어나 참된 종을 박해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심판기에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사상과 생활에서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까지라도 하나님 말씀과는 대적이 되는 사상과 생활로 들어가는 일이 있기 때문에 종말의 예언을 증거하는 자는 부자지간이라도 죽이자는 생각이 나기까지 큰 대립이 생긴다는 것이다.

 

  2대지 : 원수에게 굴복하는 종들이 하는 일 (4~6)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에게 무서운 박해가 올 때에 원수의 세력이 두려워서 자기의 자체를 숨기고 떠는 상태에 들어가는 종들이 하는 일은 오히려 예언의 말씀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며 의복까지라도 선지의 의복을 입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농부라 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해 보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된다. 왜냐 하면 만일 시험이 없다면 참된 종과 거짓된 종을 갈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3대지 : 시험 중에서 응답을 받는 일 (7~9)

  하나님께서 종들을 원수로 들어 치는 시험을 하시는 것은 진실한 종과 진실치 못한 종을 갈라놓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삼분지 이가 되는 종들이 쓰러지고 삼분지 일이 남는다 하여도 시험을 해 보는 동시에 끝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응답을 내려 그들로 말미암아 새 시대의 왕권을 누리게 하는데 있어서는 영원한 왕국 반열에 들어가게 하며 자기 사명에 일 한데 따라서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지금 많은 종들이 있지만 시험이 올 때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므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자는 심히 적은 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올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되어야만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종된 자를 시험할 때에 시험에 떨어지느냐 남느냐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복된 자는 시험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남은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제일 큰 일은 종된 자를 시험할 때에 그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고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 공과편 - 요한계시록 공부

 

제14과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

- 계 7:2~3,  요절:3 -

 

  서    론

  학생들 우리 기독교가 이날까지 나가서 전도할 때에 예수 믿고 천당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자도 불신자와 같이 그 몸은 죽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죄를 사함 받지 못했으므로 마귀에게 이끌려 마귀가 있는 지옥이라는 세계로 가게 되고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그 죄가 없어졌으므로 죄의 권세 잡은 마귀에게 끌려가지 않고 죄가 없는 사람을 광명한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그 영혼이 즐거운 낙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나 바다가 피해를 당하는 무서운 환란이 올 때는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살던 사람들은 다 없애버리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중에도 특별히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앞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인을 맞는 역사가 있을 것을 다른 천사가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 다른 천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다른 천사 (2)

  학생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면 해가 어느 쪽에서 떠오릅니까? 누구나 다 동쪽에서 해가 올라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학생들 누가 해가 서쪽에서 돋는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일 거예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저 지중해에서 계시를 볼 때에 해 돋는 편에서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본 것은 동편에서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지중해에서 동편이라면 어느 나라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중해에서 동편에 자리잡은 나라 중에서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곳은 우리 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중공 세계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다 죽이고 옥에 가두는 나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중공은 아시아의 넓은 땅을 다 차지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 중공 세계를 지나서 서쪽으로 가면 지중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중해와 우리 나라를 대조한다면 지중해는 아시아와 서양의 어간에 있는 바다요 우리 나라가 있는 이곳의 바다는 일본 섬을 거쳐 건너가면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게 됩니다. 여기에 해 돋는 편이라는 것은 미국을 가르친 것이 아니요 동방 바다 옆을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학생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됩니다.

  미, 영, 불, 소 4대 강국은 세계 인류를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 가지고 지금 위협을 주고 있지만 우리 나라는 아무런 무기도 만들 수 없는 나라라도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나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세계가 불에 사름을 당하는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가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 선지들이 묵시를 볼 때에 동방 땅 끝에서 역사가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책에다 기록했습니다. 그와 같이 사도 요한도 동방 해 돋는 편에서 역사가 일어날 것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이날까지는 이 역사가 무엇인지를 몰랐지만 지금 와서 분명히 알게 되는 진리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우리 나라가 제일 훌륭한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과학이 발달된 나라가 훌륭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역사가 나리고 있는 나라 앞에 다 굴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과학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는 만들었지만 사람을 구원해 주는 역사는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고 하는 애국가는 앞으로 하나님의 보호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2대지 :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 (3)

  학생들 세상 사람 중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종 된 생활이 제일 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친다고 한 것은 앞으로 무서운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특별히 보호해서 진실한 사람들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때가 오므로 세상에는 전쟁도 없고 흉년도 없고 살기 좋은 새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를 든다면 누구든지 한번 도장을 찍으면 변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겠다고 인을 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므로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해도 승리하게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 환란에서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에서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자라야 됩니다. 학생들은 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묻 는  말

 1. 해 돋는 편은 어느 쪽을 가르쳤습니까?

 2. 다른 천사는 무슨 목적으로 나타났습니까?

 3. 사람 중에서 제일 귀한 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제15과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

- 계 7:9~17,  요절:17 -

 

  서    론

  학생들, 제일 깨끗한 것은 무슨 빛깔입니까? 흰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각 나라에서 큰 무리가 다 흰옷을 입고 나타난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인 맞은 종들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승리라는 말입니다.

  이 때까지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지금 회개하고 나올 때에 우리 주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해주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은혜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맞고 원수의 피해를 받지 않게 되므로 열심으로 전도하게 됩니다. 이 때에 그 전도를 받고 마음이 깨끗해진 사람들은 새 시대에 들어가도 왕권을 받지 못하고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들의 받는 영광을 같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흰 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구원을 찬송함 (9~12)

  누구든지 예수 믿고 마음이 깨끗해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특별 보호하여 환란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인력으로 당할 수 없는 환란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피해를 당치 않도록 보호해서 구원해 주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앞으로 마음이 악한 사람들은 다 죽어도 마음이 깨끗해진 사람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2대지 : 밤낮 하나님을 섬김 (13~15)

  무서운 환란이 일어날 때에도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보혈의 능력으로 그 죄를 씻어 주시므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동시에 너무나 기쁨을 이길 수 없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자는 절대적으로 죽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학생들, 앞으로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 될 줄 생각하십니까? 학생들은 열심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3대지 :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새 시대로 들어감 (16~17)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환란 가운데서 새 시대로 가려면 예수님의 인도를 꼭 받아야만 합니다. 학생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는 동시에 특별히 축복을 받게 하시므로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묻 는  말

 1. 새 시대에 들어가려면 마음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2. 학생들은 누구를 열심으로 섬겨야 합니까?

 3. 학생들은 누구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까?

 

 

제16과  기도 상달과 심판

- 계 8:1~5,  요절:4 -

 

  서    론

  학생들,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학생들은 오늘날 자세히 공부해야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셔서 우리 기도를 받아 주시는 것은 앞으로 심판 날에 학생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사람은 이 땅에 심판이 올 때에 구원을 받게 될 것이고 지금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사람은 이 땅에 심판이 올 때에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 땅에 심판이 올 때에는 자기가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가 상달되는 일과 심판하는 일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1대지 : 기도가 상달되는 일 (3~4)

  학생들, 본문을 보면 다른 천사가 두 번째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나타난 다른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아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 가는 것을 요한이 계시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선생님이 물어보는 말에 학생들 다 같이 대답해 보세요. 우리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신 줄 아십니까?

  과거에 일본 사람이 우리 나라에 건너 와서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의 말도 못하게 하고 우리 나라 글도 못 쓰게 하고 우리 나라의 역사도 배우지 못하게 하고 부모님들을 압박하면서 성까지도 일본 사람의 성을 따라서 두 자로 고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애국가나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신사라는 우상을 가지고 와서 섬기라고 하며 우리 나라의 참된 애국자들을 많이 죽였고 우리 나라의 목사님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은 죽으실 때에도 우리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면서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산당이 내려올 때에도 우리 나라의 목사님들과 여러 종님들이 우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공산군들에게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순교를 당하신 목사님들과 종님들은 우리 나라의 학생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앞서간 종님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은 우리 학생들의 기도와 합해서 다 이루어집니다. 우리 학생들 이 시간, 기도 성가를 하나 부르겠습니다. (성가13장)

  우리 학생들이 기도할 줄 모른다 하여도 선생님과 같이 기도 성가를 부르면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학생들이 열심히 호소 성가를 올리면 이 기도대로 학생들에게 응답이 내리게 됩니다.

 

  2대지 : 심판을 하는 일 (5)

  심판이라는 것은 불로 이 땅을 살라 버리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의 기도가 상달될 때에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심판이 올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기도하면 용서해 주시며 아무리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면 얼마든지 은혜를 내리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반대하고 우상 앞에 절하고 거기에 기도하며 복을 달라는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면서도 참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그밖에 여러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심판하실까요?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열심히 기도하게 된다면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 없애버리는 심판 날에 구원을 받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묻 는  말

 1. 우리 나라에서 어떤 분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까?

 2. 우리에게는 누구의 기도가 응답으로 옵니까?

 3.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제17과  땅과 바다의 3분의 1이 피해를 당함

- 계 8:6~9,  요절:6 -

 

  학생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는 지금 얼마나 백성들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입고 무엇이나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모든 공산 국가에서는 백성의 토지나 공장이나 집이나 심지어 모든 기계까지도 전부가 공산당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아무런 소망 없이 일만 해 주는 것 뿐이요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이 공산 세계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공산당이 일어나서 전부 피해를 주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경은 세계 땅의 3분의 1을 다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1900여년 전에 요한에게 이렇게 될 것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세상에 큰 환란이 올 징조로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1대지 : 땅의 3분의 1이 피해 (7)

  요한은 세상 끝에 될 일을 계시로 볼 때에 이상하게도 우박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박이라는 것은 여름에 비가 오다가 무심중 얼음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우박이 올 때에 이상하게도 피가 우박에 섞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박이 떨어진 곳은 전부 핏빛으로 물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불이 나서 모든 나무와 풀을 살라버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옛날 이사야 선지도 묵시를 볼 때에 인간 종말에는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도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힘센 사람들이 강하게 일어나서 우박이 때리듯이 부자를 짓밟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혁명이 일어나는 일이 있게 되어 공산당 세계에는 부자가 다 망해 버리고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서 피로 물들었습니다. 소위 혁명 불길이라는 공산주의는 모든 국민의 자유를 다 살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요한이 인간 종말에 땅 삼분의 일이 피해를 당하는 계시를 본 거와 같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우리 남한까지 피해를 받게 된 것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우리 나라는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더 큰 무서운 일이 생겼습니다.

 

  2대지 : 바다의 3분의 1이 피해 (8~9)

  학생들, 바다에 배를 타고 다녀 보았습니까? 땅은 안심이 되어도 바다는 안심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다로 보여진 것은 이 땅 3분의 1이 피해를 당하게 되는 때는 바다같이 안심할 수 없는 혼란한 세상이 온다는 것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니 바다의 고기들이 다 죽어 버리고 배들이 교통을 못하고 깨어지는 것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학생들, 생각해 보세요. 세계 3분의 1을 덮는 불타는 산이 나타나면 얼마나 무섭게 보이겠습니까?  

  오늘에 악한 사상을 가진 공산 정권은 세계를 한 시간에 불태울 무서운 세력을 가지고 세계를 노리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무서운 무기를 가졌다면 두려움이 없겠지만 악한 사람이 무서운 무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누구나 다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악한 사람이라는 것은 공연히 남을 죽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공산당은 공연히 전쟁을 하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 아래는 바다의 고기가 죽듯이 사람들이 다 자유가 없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 학생들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요, 살아서 새 시대에 갈 때가 온 증거입니다. 학생들 우리들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묻 는  말

 1. 지금 이 땅 3분의 1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까?

 3. 우리는 낙심할 일입니까? 소망이 있는 일입니까?

 

 

 

 논 설 편

 

1. 인격을 따르는 것 보다도 인격을 만들어주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인생이라는 것은 인격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볼 때에 자기보다도 인격이 훌륭해 보이는 사람 앞에는 자동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생기면 작은 나무는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고 큰 짐승이 나타나면 작은 짐승이 그 앞에서 떨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기보다 큰 인격이 나타날 때에 그 사람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인격을 따르는 사람은 그 인격 앞에 눌림을 받을 것 뿐이로되 인격을 완전히 만들어 주는 하나님을 따라갈 때에 다음과 같은 향상이 있다.

 

  1. 행할 수 있는 인격 (요14:12)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언제나 당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 능력을 주어서 역사 하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보다도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놓기 위한 목적에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완전한 것을 인생에게 주고자 하여도 그것을 받을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격을 가진 아들을 통하여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고 완전한 인격을 가진 아들을 통하여 완전한 역사를 누구든지 받게 한 것이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 종교가 된 것은 완전한 인격을 만들어 주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2. 이길 수 있는 인격 (사41:25)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을 때에 자신이 있다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 사람을 들어 쓸 때에 아무런 환란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환란이 있게 하시되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난국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않고 담대히 나가는 자에게 넉넉히 이기도록 하시는 것이다.

  오늘에 인격을 따르는 사람들은 공산당을 이기기가 어렵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으로는 공산당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다. 세계 통일의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인격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을 따르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을 가져야 한다.

 

  3. 살릴 수 있는 인격 (행2:37~41)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대중을 살리는 역사를 하실 때에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베드로를 들어서 대중을 살렸던 것이다. 우리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살리고자 하는 사람을 우리가 살리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가장 큰 일은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요, 남을 살리는 일이다. 누구든지 일편단심 남을 살린다는 마음이 뜨거워 있는 자라면 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을 따르는 인격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

 

 

2. 큰 것을 기대말고 작은 것을 잃지 말라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큰 것을 기대하는 허영심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을 잃지 않는데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고기를 잡는 사람이 큰 고기를 잡아 물에다 놓아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구멍이 난 포대에 돈을 담는 자와 같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작은 데서 큰 것을 이루도록 하셨다. 식물도 작은 씨를 심어서 큰 것을 이루게 하셨고, 동물도 작은 것으로 시작되어 큰 것을 이루게 하셨으니 사람이 큰 것을 얻고자 할 때에 작은 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제 큰 것을 얻는 것은 작은 것을 잃지 않는데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일에 충성하므로 영원한 왕권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이 작은 소자 하나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대중을 거느릴 인격을 상실하는 것이요, 작은 말 한마디를 잘못하여 신용을 잃는다면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누구든지 소자 하나에서 행하는 일이 즉 주께서 갚아 줄 일이 되고 골방 속에서 한 마디 한 말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라면 크고 두려운 날이 올 때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적은 시간을 아끼므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적은 시간을 아끼지 않고 허송하는 자라면 많은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시간을 아껴서 바로 할 때에 영원한 영광을 이루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지극히 적은 시간을 다투어 싸워 나가는 열심이 있어야 한다.

  열심이라는 것은 허영의 열심도 있고 진리의 열심도 있는데 이 진리의 열심이라는 것은 완전한 지식을 따라 살 때에 적은 시간을 가치있게 이용하는 것으로 큰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고 있는 시간에 자지 않고 기도를 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에 쉬지 않고 진리를 상고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오락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진다면 그 생활은 전부 열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적은 시간을 허송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3. 적은 물질을 바로 사용하므로 큰 보화를 상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질이라는 것은 많으므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요, 적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많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을 못하면 큰 화가 되는 것이요, 적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하면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물질의 자체가 가치있는 것보다도 물질을 바로 사용하므로만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여도 그 약이 잘못 사용되어 사람을 죽이는 화를 가져올 수 있고 아무리 적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바로 사용되어 사람을 살리는 열매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 한 절을 잘못 전하므로 큰 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말씀한 절을 바로 전하므로 큰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역사가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을 잃지 않는 일을 먼저 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모든 일에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 보다도 수고를 달게 해야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라고 본다. 그러나 참된 재미를 맛보지 못할 때에 공연히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수고를 달게 하지 않고 먼저 재미부터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참된 재미를 맛보지 못한 자는 발전보다도 일을 하다가 타락의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참된 재미를 얻는 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양심적인 수고가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양심적인 수고를 하는 자라면 참된 기쁨을 주고 평화를 주고 새로운 힘을 주시므로 수고를 하지 않는 자 보다도 더 재미가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양심적인 수고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합당한 수고를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를 나리시므로 수고를 하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진리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참된 진리를 위하여 수고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얻게 되는 인격이 아니요 하늘에서부터 오는 인격이다. 그러므로 이 인격을 얻는 일은 인간 노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로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행하시는 일이니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먼저 역사하는 일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인격이다. 사도 바울이 누구보다도 진리를 위하여 더 많이 수고하였던 것은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부르시므로 다른 사람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더 깨닫고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나갔기 때문이다.

 

  3. 희생적인 수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희생적이 수고가 있는 다음에 가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재미있게 살게 하기 위하여 간교한 뱀을 내어서 꾀어 보셨던 것이다. 이것은 독생자의 희생적인 수고로써 간교한 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므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적인 수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무리 남을 희생시켰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게 될 때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적인 수고를 하게 되므로 최대의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수고로써 재미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자는 기쁨의 세계를 기업으로 받게 된다.

 

 

4. 인간 생활의 진보는 받는 데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받아야 할 의무가 있고 조물주는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든다면 어머니는 자녀를 낳았으므로 어린이에게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어린이는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학생들은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우리는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받을 것을 받지도 못하고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 보다는 주실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이제 받는 자에게만 진보적인 생활이 있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새 생명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받는 이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에게 주겠다는 것을 언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받는 것이 있으므로 생명의 종교라고 한다. 받아야 할 인생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를 바로 알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참된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것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로되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진보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에 기독교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하여도 받는 것이 없다면 그 예배와 기도는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므로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이라고 보게 된다. 참된 종교 신앙에는 항상 받는 것이 있으므로 진보적인 인격과 생활을 가지게 되어 비록 겨자씨 같이 작은 것 같으나 큰 나무를 이루듯이 진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을 이루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고 사는 생활에는 항상 새로운 생명의 은혜가 흘러오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십자가만 자랑할 수 있는 담대한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새로운 지식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지식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물체를 바로 사용하는 지식도 있고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는 그 경륜을 바로 알아 하늘에서 오는 것을 받는 지식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다면 정상적인 진보를 갖지 못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만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아는 지식이 발전할 때에 그 지식을 따라오는 새로운 힘을 계속적으로 받게 되므로 백전백승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적 지식이 발전 했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한 기계에 속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인생이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을 낸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발전됨에 따라서 영원한 영생의 나라에 기업으로 얻는 일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3. 새로운 생활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기도를 할 수록 새로워지고 성경을 볼 수록 새로워지고 찬송을 부를수록 새로워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새로워지는 것이 없다면 기도와 성경과 찬송을 하는 것이 하나님과 하등 관계가 없는 탈선된 노선에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활이 있게 되어 참된 미의 세계를 이루는 생활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천국에서 오는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날마다 받는 것이 있으므로만 참된 진리 안에서 진보하는 생활을 하므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는 단체를 가지게 된다.

 

 

5. 높은 것 바라지 말고 낮은 데서 바로 살자

  사람이라는 것은 남보다 높아지려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높아지는 자가 심히 적은 것은 무슨 원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바로 할 때에 높아지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되는 것이다.

  이제 낮은 데서 바로 사는 생활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노동을 바로 하는 데서

  어떤 농부가 곡식 한 포기를 바로 가꾼다면 그것은 전 국민을 살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있는 것을 소비하는 일 보다도 없는데서 있게 하는 일을 바로 할 때에 조물주 하나님과 연합된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있는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요,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작은 곡식 한 포기를 바로 가꾸는 사람은 대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과 같이 일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우리 나라 국민이 곡식을 가꾸는데 전력을 두지 않고 소비하는 데만 전력을 둔다면 날마다 쇠퇴해 가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의 교회 종들이 작은 양 하나를 찾아서 바로 기르는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면 주님의 역사가 나리지 않으므로 점점 약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큰 역사라는 것은 소자 하나라도 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어떠한 종이 대중을 이끌어 보려는 목적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하여도 한 사람의 심령을 소성시키는 일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면 작은 열매도 맺지 못하는 일이 되고 만다. 누구든지 지극히 작은 소자라도 바로 가르치려고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큰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는 열매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구원하시고 이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셨다.

 

  2. 작은 골방의 생활을 바로 하는 데서

  주님께서 골방에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가르친 것이다. 아무리 대중이 모여서 떠든다 하여도 하나님과 교통이 없다면 무효가 될 것이요, 은밀한 골방에 홀로 앉아 소리 없이 기도하여도 하나님과 교통이 있다면 큰 열매를 응답으로 받게 된다.

  히스기야의 하루 밤 기도에 북방 앗수르가 무너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하루 밤 기도에 마귀의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늘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골방 속에 숨은 성도의 기도가 최후에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이다.

 

  3. 적은 물질을 바로 쓰는 데서

  하나님께서 사렙다 과부의 떡 한 개를 축복할 때에 큰 구원이 그 가정에 왔고 주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를 놓고 축복할 때에 대중을 살리는 일이 되었다. 오늘에 많은 종들이 거액을 들어서 성전을 짓고 있지만 축복이 내리느냐가 문제이다. 우리는 이 때에 적은 물질을 바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가 적은 물질을 가지고 희생할 때에 큰 열매가 되게 하시는 것은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신 앙 문 답

 

【문】1.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교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공연히 교회를 자기의 어떤 주관이나 어떤 방침으로 이끌어 보려는 것은 그 생각 자체가 탈선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나” 자체가 어떠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깊이 깨닫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은 목사 된 입장에서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상태에 있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나는 목사이니 내가 교회를 다스릴 책임이 있다고만 생각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종은 “나”라는 것이 없고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내가 미약하오니 어떻게 하오리까 하는 양심의 소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강단에 서는 종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하는 데서부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강단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 개혁이라는 것은 어떤 교권이 할 수 없고, 하늘의 영권을 받는 데서부터 되는 것이니, 강단에 영권이 임하므로 교회는 자동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역사를 보아도 종 한 사람이 강단의 영권을 바로 움직이므로 큰 개혁의 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사는 길은 강단에 서는 종이 완전한 무장을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니, 우리는 종 된 자로서 각자가 이 시대에 쓰여질 만한 인격을 찾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큰 역사는 대중이 바로 움직이는 데서부터 시작이 아니요,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나가는 데서부터 그 교회는 바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사람이라도 들어 쓰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큰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 가지 어려운 난제를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것은 그 난제를 해결하도록 역사하는 종을 쓸 때가 온 증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각자 각자가 정신을 차려 완전한 무장을 갖추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모른다면 그 노력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데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이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은 사람마다 직접 하나님께 받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 경륜을 대표적인 사람에게 분명히 알게 해서 그 경륜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대중적으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므로 되는 것입니다.

 

 

【문】2. 성경은 어떠한 방법으로 분명히 알도록 전할 수 있습니까?

【답】성경은 그 시대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니 만큼 듣는 사람들의 괴로워하는 마음이 만족해질 수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들을 중생케 하는 말씀인 동시에 그 영혼을 소성케 하는 양식이 되고 인간 종말에 온 세계가 불타는 멸망이 올 때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몸을 구원해 주는 동시에 그 몸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은 비교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은 자라야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백성을 사랑하는 사랑에 끌려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전하는데도 열매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녹아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한다 하여도 그 말씀에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이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을 완전히 깨닫는 일이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시작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써 말씀이 널리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려면 “나” 자체가 그 말씀에서 산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들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다 하여도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자에게 그 무기가 쓰여질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인격이 없다면 그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가 없으므로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이 나에게 인격이 되고, 생활이 되는 자리에 들어가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기계를 쓸 줄 모르면서 그 기계를 남에게 바로 쓰도록 가르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직접 체험하는 생활이 없는 자가 그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3.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열매 있게 살 수 있습니까?

【답】열매라는 것은 식물의 열매도 있고 동물의 열매도 있고 인생의 열매도 있습니다. 식물은 언제나 땅속에 있는 질을 흡수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요, 동물은 그 열매를 먹고 번창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산업 발전이라고 합니다. 이 발전이 있음으로만 인간 생활에 육적 생활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으로서 해야 될 일을 하는데서 열매를 맺게 될 때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모든 일에 실패를 보고 마는 것은 사람으로 열매 맺을 일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제 사람이 열매를 맺는 생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정신 작용을 바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식물이 열매를 많이 맺고 동물이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은 사람이 정신 작용을 바로 움직여서 식물을 가꾸고 동물을 잘 기르는데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남보다 정신 작용이 발달되어 식물의 농장과 동물의 목장을 바로 움직이면 풍부한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서 완전한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고, 이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는 생활의 한 비용은 될 수가 있습니다.

 

  2. 영적으로 바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의 활동이라는 것은 농장이나 목장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땅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활동이라는 것은 식물계와 동물계를 초월한 참된 교회를 움직이는 일인데 교회가 영적으로 바로 움직이도록 하는 일은 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영적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양심적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 진리적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사랑의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양심적, 진리적으로 사랑 중심에서 움직이는 자라면 조물주께서는 그 일에 축복하시므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 남을 구원해 주는 일.

  둘째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셋째 : 자기가 세세왕권을 받는 일이 있게 되므로 인생의 가치를 완전히 찾는 생활이 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열매가 많은 생활을 하게 되고 이 땅에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는 데까지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매가 되어 하나님의 대자연을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4.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여야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답】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는 것이 불행이 아니요,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그 비밀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승리의 생활을 할 지식조차 가지지 못한 자이므로 필연코 실패가 됩니다.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난제가 있게 하셨느냐 하는 것을 아는 지식은 여호와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좋다는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시대적인 비밀을 말씀할 때에 인간 종말에는 어느 시대보다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난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난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응답을 나려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시되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던 사람은 밟히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자로 승리를 이루게 하여 평화로운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정도에서 생활해야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앞으로 오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인간의 어떤 방법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교만한 자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어려운 난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식하고 가난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러한 난제가 온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그날 닥쳐오는 모든 난제를 하나님께서 해결시킬 줄 믿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자기 생활에 이용한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위하여 순종하는 생활이 있되 희생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생활해야 됩니다. 가장 권위가 있고 복된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이라고 봅니다.

 

 

【문】5. 인간이 사는 생활에 제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답】모든 사람들은 인간이 사는 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의복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주택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 입고 잘 먹고 잘 꾸민 주택에 산다 하여도 거기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첫째 : 종교요,  둘째 : 정치요,  셋째 : 도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떠한 종교가 필요하며 어떠한 정치가 필요하며 어떠한 도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혼란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한 종교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필요한 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필요한 도덕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이제 필요한 종교와 정치와 도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종교에 대하여

  종교라는 것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바로 알도록 가르치며 다음 시대에 올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 시대를 바로 가르치는 것은 종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르칠 말씀은 하나님 말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전부 인간 종말을 목적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르칠 말씀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 가르치는 종교가 될 때에 이 시대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날까지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서 세계 인류의 죄를 완전히 사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모든 인간들에게 큰 역사를 일으키는 열매가 있게 되어 기독교가 세워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의 심령이 중생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다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중생의 역사가 있으므로 누구나 십자가의 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중생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의 모든 난제를 해결하려면 새 일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새 일의 진리를 분명히 모른다면 이 시대에 빛이 되는 역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제일 필요한 종교는 새 일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교일 것입니다.

  새 일의 진리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결치 못할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동시에 이 땅에는 거룩한 성도가 통치하는 나라가 온다는 것이니 우리는 새 일의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정치에 대하여

  공산주의 정치와 민주주의 정치가 대립된 현실에 공산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민주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치가 해결할 수 없고 민주주의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신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주권을 옹호하자는 것이라면 공산주의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주권을 없이하고 공산당의 주권으로 세계를 통치하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신정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정적인 역사로만 완전 평화의 통치 왕국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들을 들어 쓰시므로 사상과 양심이 바른 사람만이 땅에 남게 되고 그 밖의 사람은 다 없애는 지상 통치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는 일이 있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세계를 통치하는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3. 도덕에 대하여

  도덕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형식적 도덕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도덕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도덕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로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므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의 생활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가장 필요한 종교를 비롯하여 가장 필요한 정치를 하게 되므로 가장 이상적인 도덕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문】6.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완전한 역사가 없이 완전한 사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열매에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신이라는 것은 말로는 사랑하나 열매가 없는 것이요, 참되신 신이라는 것은 말씀이 계신 동시에 그대로 실천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요,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으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봅니다.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리 약하고 어리석고 누추한 사람이라도 순종만 하면 깨끗하게 해 주는 동시에 지혜도 능력도 주어서 하나님의 완전 역사에 쓰여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세세 왕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사랑을 인간에 베풀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는 동시에 얼마든지 은혜를 택한 자에게 부어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얼마든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께만 있고 우리가 그 사랑을 믿고 순종하므로 그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  집

 

1. 6월을 맞이하는 성도의 감상

  우리는 해마다 6월을 맞이할 때에 6.25 동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잊을 수 없이 6.25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6.25의 동란보다도 더 큰 환란이 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6.25 후에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그날을 잊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북방 세력이 더 큰 전쟁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25 동란은 우리 민족끼리 싸움을 시작하여 일을 크게 저질러 놓은 것인데 지금까지 제 민족을 원수로 알고 항상 서로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이 생각을 한다면 미국과 소련이 싸우는 사이에서 어리석게 백의 민족만 서로 죽이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눈물 흘려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민족으로 피차에 자기 부족을 깨닫고 마음이 희어지는 역사 밖에는 살 길이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검은 마음도 희어지고 공산주의의 붉은 마음도 희어지는 역사가 있게 될 때에 모든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종들이 신과 같이 되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아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시키는 역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쓰여질 것 뿐입니다. 원수의 나라가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느냐 도와주지 않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좀더 가까이 나가서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나를 써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간곡히 해야 됩니다. 우리는 6.25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있다면 큰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완전 무장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2. 6월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을 맞고도 깨닫지 못하는 패역한 백성이 될까 두렵습니다. 북방으로 오는 막대기를 맞고도 더욱 부패해지는 교회가 되며 민족이 된다면 어찌하오리까. 하나님이여 다시는 북방의 막대기를 맞지 않는 교회가 되고 민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푸른 하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아도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변하옵나이다. 6.25 동란에 매를 맞을 때는 큰일났다고 야단을 치던 사람들이 휴전이 된 후에 방심적인 태도에서 이전보다 더 사치하고 방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막대기를 들어 칠 진노가 올까 두려운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교회 안에서 오락을 일삼고 다투고 싸우며 희생 봉사가 없이 게을러진다는 것은 오히려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겠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여 좀 더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좀 더 신령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좀 더 단결하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려야만 되겠나이다. 이 나라를 선지 국가로 쓰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면 어찌하여 나의 간곡한 기도가 무효가 되겠나이까. 반드시 강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으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가 되며 이 나라가 될 것을 믿나이다.

 

 

3. 성산에 불을 밝히면서

  성산에 하늘 높이 깃발을 날리며 수도를 진행 한지도 어언간 7년이 되는 오늘에 불을 밝히게 되는 감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곳을 성산이라고 한다 해서 비방하는 자도 있지만 나는 1964년 9월에 이 산에 와서 기도할 때에 하늘로부터 똑똑하고도 명랑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산은 여호와의 산이라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이 산에서 변화성도를 일으키는 일을 하려고 예정한 것이니 제단 자리를 찾아서 제단을 쌓고 말세의 종을 무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상하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두 번째 알려오기를 의심하지 말고 이 산을 성산으로 알고 제단을 건축하고 종들을 무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두라고 하므로 지금 새일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 터를 찾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또 다시 큰 불이 나려 그 가운데 나를 앉혀 놓고 새 이름을 “뢰자” 라고 주시면서 오늘부터 제단을 쌓기 시작하라는 명령이 있으므로 제단을 시작한 날이 1964년 9월 24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내게는 쓴 잔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역자들이 나를 찾아와서 이 산에서 나타난 음성은 마귀라고 하면서 내가 이 제단을 계속하면 영, 육이 아울러 망할 것이니 절대로 포기하고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 가운데서 명령을 받고 떠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니 조금도 후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새일수도원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가 도와주어도 어려운 일인데 전부 일어나서 방해한다는 것은 쓴 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쓴 잔을 달게 받고 나가면서 수도원 공사를 계속하여 1965년 5월 15일에 헌당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내게 알려 오기를 성산에 불을 밝혀야 축복이 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을 받기를 원하는 나는 친히 장기를 들고 공사를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머리의 생각은 전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느 때든지 전기 공사를 해보겠다는 것을 내 마음 가운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이날까지 내려온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년 3월부터 공사를 한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머리에는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이 명랑하게 생각이 나서 확신을 가지고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예산도 없이 시작했지만 각 곳에 있는 성도들의 불타는 마음으로 단결되어 5월 13일에 준공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나 순조롭게 되어 밤이 맞도록 성산에 불을 밝혀도 아무런 지장 없는 수력 전기 공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여러 교회의 성도들의 물심 양면으로 힘을 써 적은 물을 가지고도 많은 전기를 발전할 수 있는 공사가 이루어진 것은 누구나 이것을 본다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수력 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번 전기 공사에는 한 사람도 격동을 받지 않은 자가 없이 자동적으로 성산에 모여들어 이루어진 일이므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일이라고 믿어집니다. 누구나 성산에 와서 수도하는 자는 마음에 감격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 하면 공사가 너무나 놀랍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사명 동지 여러분들에게 큰 축복이 응답으로 내릴 것을 믿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4. 촛대교회의 사자가 될 종님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촛대교회라는 것은 어두움의 권세가 허락을 받고 온 땅을 덮을 때에 그 흑암을 물리치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개척될 때는 이미 마귀의 권세 아래서 죽은 영들을 중생 받도록 하는 역사였지만 종말에 촛대교회의 역사는 중생 받은 사람을 미혹하는 마귀 세력이 영계를 어지럽히고 진리를 혼선시키는 일을 할 적에 그 흑암의 세력을 완전 영감과 완전 변론을 받으므로 물리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인도하는 종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무장이 있어야 됩니다.

 

  1. 중심 성결이 있어야 됩니다.

  은혜시대에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목적한 진리 운동이니 용서를 받은 사람이 용서 받도록끔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촛대교회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이미 용서를 받은 사람을 시험해 보는 때이니 만큼 마음에 완전 성결이 없이는 도저히 영계를 지도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마음에 죄가 있다면 자기 자체가 사단의 세력에게 정복을 당한 자이므로 허락 받은 마귀를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심 성결을 완전히 받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여야 중심의 죄악을 완전히 소멸하는 역사를 받게 됩니다. 만일 중심에 성결이 없는 사람이 강단에 선다면 공중의 마귀 권세가 강단에 들어오므로 도저히 흑암을 물리칠 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 하면 교회는 강단이 마귀 권세를 이기고 못 이기는데 대하여 그 영계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적군이 그 나라 수도에 들어 왔다면 벌써 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 권세가 얼마든지 교회를 침투할 수 있는 권세를 받고 나오는 이 때에 강단에 서는 종이 중심에 죄가 있다면 마귀 세력을 대항할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서는 종은 마음에 적은 생각 하나라도 합당치 않은 것이 있다면 이것을 큰일로 알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싸우는 기도에서 완전히 물리치는 것이 있어야 하며 항상 중심 성결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하고 숨은 기도가 마음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2. 입술에 변론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입술에 말씀의 변론이 없이는 진리를 대적하고 들어오는 마귀 세력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때에 마귀가 물러갔지만 지금은 말씀의 변론이 있어야만 마귀가 물러가는 것은 미혹을 시켜보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는 자가 아니고는 말씀을 혼선시키는 마귀 미혹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 미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말씀이 혼선되게 하는 것이니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말씀이 혼선되면 얼마든지 마귀의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이 심판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말씀으로 심판할 때이므로 말씀이 혼선되지 않은 자만 심판날에 구원해 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완전 변론의 역사가 있는 종이 강단에 서서 변론하는 교회가 아니고는 마귀 흑암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백성을 모아서 그 영계가 소성하는 것을 목적하고 일했지만 이제 앞으로는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느냐, 못이기느냐 하는 것으로 끝을 맺기 때문에 완전 변론의 역사가 종의 입술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변론을 완전히 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변론을 완전히 받은 종을 통하여 말씀 무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강단에 선 종님들은 하나같이 완전 변론을 입술에 받기 위하여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자세히 읽어보면서 입술에 변론이 오기까지 노력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강단에서 말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마귀의 흑암을 받아들이는 과오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월간지를 발행케 하는 것은 여러 종님들에게 완전 변론을 주고자 하는 역사로 믿어집니다.  누구든지 겸손한 마음으로 월간지를 자세히 읽으면서 변론을 받고자 원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변론의 역사가 입술에 임할 것입니다.

 

  3. 완전한 인격이 있어야 됩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도 남에게 감화를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하였다 하여도 인격적인 감화가 없다면 그 말은 큰 효과를 주지 못합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다 하여도 그 무기를 쓸만한 체격을 가진 군대가 없다면 그 무기는 효과를 발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변론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여도 그 변론을 말할 수 있는 인격이 못되었다면 그 변론과 인격이 부합되지 않으므로 변론의 가치가 나타나지 않고 맙니다.

  내가 시련을 많이 참고 나가는 인격이 있으므로 시련을 받는 자에게 말할 자격이 있고 내가 그 말씀대로 오는 인격을 받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그 말씀을 가지고 변론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 변론을 배워서가 아니요, 그 변론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되었으므로 말씀의 변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샘물이 솟아오를 때에 물을 억지로 올라오게 하지 않아도 땅 속에 샘물 근원이 있으므로 계속으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 변론이라는 것은 그 변론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될 때에 자동적으로 샘물이 솟듯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론의 종이 되려면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됩니다.

  촛대교회의 사자가 되려면 변화성도의 인격을 완전히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촛대교회의 사자가 변화성도의 인격을 가지게 될 때에 변화성도가 증거할 변론이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중생을 받은 자는 중생의 도리를 말할 수 있으며 변화성도가 되는 자는 변화성도에 대한 변론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아름다운 소식 6월호를 발행하면서 간단한 말씀을 드립니다

  3월과 4월은 수력 전기 공사에 본인이 직접 지도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너무 시간이 분주하여 6월호 월간지가 좀 늦게 배달되었습니다. 수도 학과를 가르치면서 책자를 기록한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매일 같이 전기 공사를 하기 위하여 현장에 나가서 여러 가지로 지도하다가 숨찬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와서 아무런 기도 준비도 없이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졸면서 입으로 말씀을 부르기도 하고 누워서 말씀을 부르기도 하고 심지어 무엇을 먹으면서도 말씀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너무나 정신 노동이 지나치다 보니 정신 작용은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있게 되었으나 영적으로 말씀이 나리는 것을 받아 기록한 것 뿐입니다. 나는 아무런 성의가 없었지만 성령님께서는 내가 성의가 없다고 해서 역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조금이라도 지장이 되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언제나 기도하시면서 심각히 읽어보시면 간단한 말이나마 독자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귀한 서책을 쓰는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시간을 내어 중대한 글을 썼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너무나 무성의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기뻐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집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노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분주하게 기록했지만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바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언제나 성령님께 의탁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뢰자”라는 이름은 조금도 이 책에 가담시키지 마시고 성신의 역사로만 이루어진 것을 믿고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도 성신의 역사가 없다면 독자 여러분들에게 열매가 될 수 없지만 내가 아무리 분주한 가운데 이 책을 기록했다 하여도 성신이 역사하신 글이라면 독자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열매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고 기쁨으로 이 책을 기록합니다.

  순종을 제사보다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기 공사를 지도하면서 기록한 이 일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에 많은 잡지가 있지만 참된 진리가 기록된 것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나”같이 무식하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이 이 월간지를 독단적으로 아무런 피곤없이 발행한다는 것은 사람을 자랑할 일이 아니요, 하나님을 자랑할 일이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내가 머리가 비상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한자의 글도 쓸 수 없는 자입니다. 극도로 지식이 발달된 이때에 “나” 같은 무식한 사람을 들어서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하게 하시는 것은 때가 찬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믿습니다.

  사명 동지 여러분께서는 5.15에 대중적으로 내렸던 축복을 하나같이 받으시되 좀더 문서 운동에 새로운 출발이 있기를 바랍니다.

 

 

6. 전도사 시취 문제와 답

【문】1. 그리스도의 교훈과 여호와의 교훈에 관한 것을 세밀히 기록하라.

【답】그리스도의 교훈은 죽은 영을 살려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것이요 여호와의 교훈은 당신의 자녀된 자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지상 평화 왕국으로 인도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는 그리스도의 교훈이요 환란과 재앙 가운데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교훈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문】2. 새일 교단의 시대적인 사명을 기록하라.

【답】새일 교단은 교파를 초월하여 알곡을 모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사명이니 씨를 뿌리는 사명이 아니요 알곡을 거두는 사명입니다.

 

【문】3. 재림시까지 양떼를 이끌고 나갈 일에 대하여 목적을 기록하라.

【답】재림시까지 양떼를 이끌고 나가려면 양떼들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하고 순수한 성경 본문 그대로 다시 예언하는 일을 할 때에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사람은 따라올 것이요 버림을 받을 사람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니 조금도 인간 방법을 취하지 않고 양떼를 살 길로 인도하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문】4. 우리의 원수 세력을 막는 일에 대하여 방침을 말하라.

【답】우리는 허락 받고 나오는 마귀의 세력을 막으려면 조금도 불의의 세력과 타협치 말고 성별된 생활에서 말씀을 변론하되 조금도 가감이 없는 말씀 변론이 있을 적에 말씀대로 역사하는 천사의 보호가 있으므로 원수를 물리치게 될 것입니다.

 

【문】5. 순교자의 뒤를 따르는 생활은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라.

【답】순교라는 것은 말씀으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다가 죽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우리는 그들이 전하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동시에 종말의 음녀적인 사상과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문】6.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어떠한 방침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하라

【답】종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말씀의 대표를 세워서 말씀으로 통일시키는 동시에 그 말씀에 따라 종말의 역사가 나리기도 하고 심판을 베풀기도 하는 것이니 대표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난 말씀 그대로 전하기 위하여 뭉쳐진 단체로써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7. 시대의 징조를 말하는 성도

  하늘에서 정한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속한 자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땅에 속한 자는 땅에 속한 일만 생각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일을 생각하는 동시에 땅의 일도 바로 깨달아 할 수 있다.  오늘에 하늘에 속한 성도라면 다음과 같이 시대 징조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1. 온 천하가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믿으면 구원이요 믿지 않으면 멸망이라 이것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

  2. 온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붉은 세력이 권세있게 나오고 있으니 그 세력과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는 보호가 있고 타협하면 멸망이라 이것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

  3. 협상적인 음녀 사상이 교권을 쥐고 쑥물을 내고 있으니 이 쑥물을 먹으면 흑암이요 먹지 않으면 빛이라 이것이 미혹의 대지가 된다.

  4. 경제권의 세력이 극도로 빈민을 탄압하니 끝까지 참는 자는 보호가 있고 따라가면 보호가 없다.

  5. 인심이 악화되어 극도로 혼란해지니 성별되면 축복이요 물들면 저주라.

  6. 마귀 참소가 극도로 강하니 담대하면 승리하고 비겁하면 지는 것이다.

  7. 사치의 세력이 극도로 화려하니 여기에 끌리지 않으면 거룩해지고 여기에 끌리게 되면 속화된다.

 

 

아름다운 소식을 사모하면서

  안녕하십니까. 먼저 주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교회를 다니는 한 사람입니다. 글을 드림은 다름이 아니옵고 귀 교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아름다운 소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아주 좋은 책자로 생각되어 꼭 보기를 원하오니 수고스러우시지만 저에게도 참된 길을 열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아무쪼록 72년도 새해를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72.  1.  24. 무안군에서 김진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