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문 답

   

[1 ~ 28] [29 ~ 61] [62 ~ 94] [95 ~ 127]

(1972년 1월호)

[문] 95. 앞으로 이 세상은 공산주의와 협상하게 될 염려가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는 어떠한 방향을 취하여야 되겠습니까?

[문] 96. 우리 백의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살 길이 있게 된다는 것을 신앙 양심으로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97.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문] 98. 지금 북방 세력이 재침한다고 정부에서까지 비상 사태 선포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72년 2월호)

[문] 99. 오늘날 교회가 너무 복잡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이것을 없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 100.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문] 101. 사람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해야 올바른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문] 102.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왜 많은 파가 생기게 됩니까?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문] 103. 기도라는 것은 어떠한 기도라야 응답의 역사를 받게 됩니까?

 

(1972년 3월호)

[문] 104. 지금 새일 수도원에서는 약 7년이 지나도록 40일 금식이 계속되어 금식한 사람이 450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무슨 이유로 되는 일입니까?

[문] 105. 아름다운소식의 월간지를 이뢰자 목사님이 수도학과를 가르치면서 독단적으로 발행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문] 106.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새일 수도원에 가서 무장을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장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한 것입니까?

[문] 107.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어떠한 노선이라야 종말을 바로 맺을 수 있다는데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1972년 4월호)

[문] 108. 어느 교파나 하나같이 새일 수도원을 합당치 못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1972년 5월호)

[문] 109.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우리의 영, 육이 구원받는 것은 복음이 다르다는데 대하여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문] 110. 지금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 111. 우리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 112.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13. 오늘에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14.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일 수도원을 통하여 교회가 분열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슨 원인으로 분열이 되는 것입니까?

 

(1972년 6월호)

[문] 115.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16. 성경은 어떠한 방법으로 분명히 알도록 전할 수 있습니까?

[문] 117.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열매 있게 살 수 있습니까?

[문] 118.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여야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문] 119. 인간이 사는 생활에 제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문] 120.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72년 7월호)

[문] 121. 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한 것을 알고자 하오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22. 기도에 대하여 정확한 응답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23. 믿음이 속히 자라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이 필요합니까?

[문] 124. 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됩니까?

 

(1972년 8월호)

[문] 125. 기도 생활에 있어서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126.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범죄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게 됩니까?

[문] 127.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당황하게 되는 것이오니 우리의 나갈 노선을 밝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95. 앞으로 이 세상은 공산주의와 협상하게 될 염려가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는 어떠한 방향을 취하여야 되겠습니까?

【답】이날까지는 우리 기독교가 정치와 종교는 분리라는 것을 가지고 정치는 정치요, 종교는 종교라고 하였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사상전을 하는 일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사상전에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한 민주 정당이 아니요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상을 가지고 세계를 통일해서 기독교 사상을 없애고 공산주의의 사회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자기들의 사상에 굴복지 않는 자는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써 싸워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는 공산당과 끝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으로 명확히 밝힌 것이 즉 심판과 새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의 사상을 대적하는 세력은 전부 없애는 심판을 내리고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가 된 사람만 사는 평화 왕국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인류 종말이라는 것은 마귀의 사상과 하나님의 사상으로 대립이 되어 마귀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의 사상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어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세상 사람이 공산주의와 협상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끝까지 사상적인 투쟁을 해야만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될 것입니다.

 

  2. 성경 본문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의 거짓 선지들은 손에는 성경을 들었지만 입으로는 성경과 거리가 먼 학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공산주의와 협상을 하는 논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공산주의와 타협을 한다는 것은 양의 옷을 입고 이리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옷을 입고 실지는 양떼를 죽이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죄의 사상을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죽게 하셨고 마귀를 없애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 것도 죄와 싸우는 일이요, 죄의 세력을 이 땅에서 없애기 위하여 재림하는 것도 죄와 싸우는 일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죄인들에게 죄가 없는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이요, 심판이라는 것은 죄가 없는 사람만 남게 하고 죄인은 완전히 없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와 협상이라는 것은 성경을 대적하는 일이 됩니다.

  성경은 죄와 싸워 이기라는 것이 목적인데 죄의 사상을 용납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나가는 미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3.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파라는 것은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가 아니요, 교파에 얽매인 단체라고 봅니다. 교권이라는 것은 성신 떠난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요, 진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상인데 이 사상을 가진 자는 교파를 초월해서 한 단체를 이루게 되는 것은 어떤 규칙이나 도덕에서가 아니요, 마음속에서 진리가 움직이는 불타는 양심 사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진리 사상으로 뭉쳐진 단체가 공산주의를 이기고 새 시대를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단체는 하나님 편이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가 같이 해서 영원한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문】96. 우리 백의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되어 살 길이 있게 된다는 것을 신앙 양심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 신앙 양심으로 성경을 가지고 말한다면 우리 민족의 살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창9:26)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셈의 장막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에 인류 종말에 셈의 장막의 환란은 북방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내려오므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므로 북방 세력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셈의 장막인 아시아가 북방 악의 세력에게 먹힘을 당하고 남은 땅조차 다 협상 국가가 될 우려가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백의 민족이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는 것은 어느 나라보다도 반공심이 강한 사람인데 아시아가 협상으로 기울어진다면 우리 나라에서 저질러 놓은 모든 문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증거한다면 동방 땅 끝 바닷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동방 땅 끝에 나타나시게 되어 모든 세력이 그 역사 앞에 떨게 되므로 원수의 세력이 다 쓰러지게 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이 동방 땅 끝에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나는 하나님을 믿는 양심에서 담대히 말합니다.

  우리 나라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는 지금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첫째 : 이날까지 숨었던 말세의 비밀이 우리 나라에 나타난 일이요,

  둘째 : 멸공 승리의 새 노래가 우리 나라에 나타난 일이요,

  셋째 : 새로운 권세 새 힘의 역사가 우리 나라에 내리고 있는 일이요,

  넷째 : 멸공 진리의 말씀이 우리 나라에 날마다 내리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이 민족에게 소망이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아직까지 두고 보자는 상태에 있지만 동방에 말씀이 나타난지 15년이 되는 오늘에 나타나는 열매를 볼 때에 반드시 우리 민족의 살길은 동방에 나타난 말세 비밀의 복음을 세계에 선포하며 강하게 일어서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어 이 나라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나타나게 되어 어느 나라보다도 빛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성경에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이사야 성경은 동방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친 말씀이요, 계시록은 동방에 나타난 역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준 천사의 지시입니다. 과거 역사를 본다면 이것보다도 작은 일이 나타났어도 그 민족의 살 길이 되었거든 하물며 이런 놀라운 일이 이 민족 위에 나타났는데 어찌해서 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망하면 우리 민족이 망할 것이고 하나님이 승리하면 우리 민족이 승리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해 돋는 편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사59:19)

  역사를 비추어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소망 없고 절망, 낙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 오셨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백의 민족 위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일은 이미 시작하였고 큰 역사가 임할 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7년간 금식 기도회가 계속된 일입니다.

  1965년 1월부터 40일 금식 기도회가 열렸는데 지금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이 400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없던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에 히스기야 왕의 하룻밤 기도에도 북방 앗수르가 망한 것을 보면 새일 수도원에서 7년 동안 금식 기도회는 필연코 승리의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둘째 : 하늘로부터 오는 호소 기도문이 새일 성가로 왔는데 지금 70여장을 가지고 7년간 매일같이 합심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역사가 올 징조라고 봅니다.

  셋째 : 7년간 조금도 쉬지 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수도회가 계속되어 수많은 멸공 진리 투사가 일어난 일입니다.

  넷째 : 이뢰자 목사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멸공 진리가 강물이 흐르듯이 계속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붓만 들면 멸공 진리의 책자를 낼 수 있는 말씀이 한 종을 통하여 얼마든지 나온다는 것은 승리할 징조라고 봅니다.

  현 기독교 교권주의자들이 공연히 새일 수도원에 일어나는 역사를 이단이라고 탄압을 하지만 진리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탄압하는 교권은 무너져도 탄압을 받고도 묵묵히 기도하던 우리들은 이제부터 일어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양심에서 말하자면 공연히 남의 풍설이나 듣고 함부로 남을 정죄한다는 것은 너무나 망령된 일이라면 억울한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묵묵히 문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3. 우리 나라는 선지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은 앞으로 반공 투쟁에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정부에 큰 축복이 올 일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사상이 없는 사람은 바람 앞의 겨같이 날아갈 것이요, 교회를 다니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사상이 발라서 끝까지 싸우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나타나듯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상 싸움을 하는 정부는 자동적으로 큰 변동을 가져오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는 심을 때부터 바로 심어야 하듯이 신앙이라는 것은 시작할 때부터 사상이 발라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사상이요, 인격이요, 생활이라고 봅니다. 사상과 인격과 생활이 없이 강단에 서는 사람도 가증한 일이요, 사상과 인격과 생활이 없이 공연히 교권만 쥐고 싸우는 것도 가증한 일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소위 거룩한 종교라는 간판 밑에서 가증한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느 교파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열방의 재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사야 60장을 읽어보아도 너무나 똑똑한 사실입니다.

 

 

【문】97.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답】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요 겸손히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고 사26:3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완전하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요 너무나 실수가 많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진노의 날에 어떻게 하면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끝까지 기다리고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고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사25:9, 30:18).

  여기에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 믿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통한 일을 당해도 이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줄 믿고 기다리는 것이며, 아무리 실패를 했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실 줄 믿고 기다리는 것이며, 아무리 궁핍이 와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심지가 견고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마음이 변치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절대 순종하는 마음이 강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7:32).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순종치 않는 자는 진노의 날에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본문 그대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계22:18을 보면 듣고도 가감하게 되면 재앙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절대로 순종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롯의 아내를 구하기 위하여 천사가 손목을 쥐고 나왔지만 순종치 않을 적에 버림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분노한 남편이 아내가 조금이라도 순종치 않는다면 사랑할 수 없고 큰 책망이 있는 것 같이 우리 신랑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조금도 용서가 없을 때이니 아무리 주의 종이라도 불법이 있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계9:4에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한 종을 해하라는 것입니다. 이 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인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인정을 받은 종에게 오는 왕권의 인입니다.

  부활 성도는 순교를 당한 자라야 되고 변화 성도는 아무런 어려움이 와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말씀을 증거하는 자라야 됩니다. 목숨을 바쳐서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그 말씀대로 역사가 내릴 때에 하나님의 인권 역사가 오므로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해 주시므로써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수가 없으므로 인정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인정하시고 넘어져도 일으켜 주는 역사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미7: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남은 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말씀이 있으니 이것이 요한 계시록에 보여준 비밀이며 선지서에 가르친 비밀입니다. 죄인을 부르는 날에는 모든 육체가 풀같이 쓰러지게 되었지만 진노의 날에는 당신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절대적인 보호가 있으므로 남은 자가 될 것입니다(사40:10~11).

  성신의 인이라는 것은 은혜시대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역사를 뜻합니다.

 

  4. 죄과를 떠나야만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중생을 목적으로 하고 역사를 내리셨지만 진노의 날에는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정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보호한다고 하시었습니다(사4:4~5). 하나님께서 은혜의 날보다도 진노의 날이 올 때는 더 강하게 역사하셔서 사람의 몸까지 구원을 받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것이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인 말씀입니다(계10:7).

 

 

【문】98. 지금 북방 세력이 재침한다고 정부에서까지 비상 사태 선포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성경을 보면 인류 종말에 북방 세력이 지경을 정하고 있다가 그 지경을 밟고 재침할 때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시며 하나님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치게 한다고 분명히 미5:5이하에 말했습니다. 만일 공산당이 남침을 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될 이유가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북방 세력이 동방 아시아를 완전히 차지하고 만다면 동방 땅 끝에서부터 종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무효가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지 않았던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방 세력이 일어나서 재침을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종들을 수풀 속의 사자같이 들어 쓸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금번에 전쟁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무엇보다도 참된 양심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살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 계셔서 우리 머리 위에 이슬, 단비같이 역사를 내리시고 계시면서 참된 종들이 활동을 못하도록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으로 받고 앉아 있기 때문에 북방 무신론자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을 압니다.

  북방 무신론 공산당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으로 역사를 내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로 북진하게 될 때에 철의 장막 속에 있는 백성들은 무신론 공산당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기만적인 정책을 쓰던 그 세력은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전쟁은 사상전인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면 무신론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입을 열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공 연습을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 합심 호소하는 성회를 열고 정치인이나 민간이나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찾을 때가 온 증거입니다. 동방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에 응답이 내려서 북방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은 어느 선지나 하나같이 묵시를 받은 인간 종말의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방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단결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게 됩니다.

  사명자들은 이러한 때를 당하여서 교파를 초월하고 합심 단결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호소가 있으면서 멸공 진리를 강하게 들고 일어날 때에 진리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긴급한 시기는 72년도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원수의 세력을 먼저 강하게 들어 쓰시는 것은 당신의 종들을 더 강하게 하여 역사하게 하실 징조입니다. 만일 이때에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잠잠히 있다면 하나님 앞에 큰 막대기를 맞을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72년부터는 이말 저말 하지 말고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말고 동방에 나타난 멸공 진리 운동에 총 궐기하게 될 때에 이 나라는 세계에 빛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문】99. 오늘날 교회가 너무 복잡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이것을 없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는 것이 소망이며, 말씀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복잡해진 원인은 간단히 말하면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도자들이 성경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싸우지 않을 일에는 싸우고, 싸울 일에는 싸우지 않게 되니 자동적으로 교회가 복잡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해서 공산당을 들어 교회를 까불어 보는 역사를 하게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두드리고, 까부는 일을 하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 알곡은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버리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부터 자동적으로 알곡이 되는 사람과 쭉정이가 되는 사람으로 갈라지게 될 것은 사실입니다. 알곡은 멸공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기뻐할 것이요, 쭉정이는 멸공 진리의 말씀을 오히려 반대하고 나가게 됩니다.

  어느 교파나 종말의 진리 운동을 통하여 파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산 믿음을 가진 자들이 멸공 진리의 말씀을 만족하게 받아 들여 이 진리를 따라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교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갈 때에 말씀을 중심한 단체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이 없으므로 혼란에 빠졌던 교회는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이 나타날 때에 각성을 받게 되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 말씀의 빛을 따라 한데 뭉쳐지는 일이 있어 촛대 교회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파를 목적한 것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진리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은 사실입니다. 복잡해진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그 복잡한 일을 없앨 수가 없고, 복잡한 교회에서 명랑한 생각을 가지고 진리를 따라 나온 사람들로 말미암아 푸른 나무와 같이 하나가 되는 단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선거 운동을 할 때에 복잡해졌던 청중이 완전히 당선자가 나왔을 때에는 자동적으로 조용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종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떠들고 있지만, 가장 영계가 높고 말씀이 밝은 종이 나타나서 진리의 봉홧불을 높이 들 적에 그 말씀 앞에서 자동적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11:1~2과 같이 척량 받는 자와 이방에게 밟힐 자가 이때에 완전히 갈라지게 됩니다.

  지금 교회가 극도로 복잡해진 것은 알곡과 쭉정이가 될 사람들이 갈라질 때가 온 징조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복잡한 것을 없이 하기 위하여 친히 그 입에 말씀을 준 종을 나타나게 하므로 사59:21이하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문】100.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예배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부합되어야 응답의 역사가 내리게 됩니다.

  첫째 :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둘째 : 신앙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합리화되어야 하며,

  셋째 : 실천 생활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는 조금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조금도 형제를 판단한다든지, 멸시한다든지, 무시를 하는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불쌍히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택한 자가 잘못된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보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시는 것이니, 우리도 항상 형제를 불쌍히 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있어야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체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조금도 가감이 없이 말씀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있을 때에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날마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희생적인 생활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양심, 사상, 생활이 하나님과 연합된 자라야 예배가 상달되며, 그 예배를 통하여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응답의 역사가 내리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이에 무엇이 막혀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항상 열린 문이 있는 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계3:8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생활이 양심, 사상, 실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려야만 할 형편이 될 때에 언제나 예배를 통하여 그 응답의 역사를 나리게 됩니다.  

  지금 이때에 드릴 예배는 시국 난제 해결을 목적하고,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나 모든 것이 앞으로 오는 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데서 맹렬히 부르짖는 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시국의 난제를 등한히 여기는 일이 있으므로 아무런 응답이 내리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이 시국 난제를 어떻게 하여야 돌파할 수 있겠느냐 하는 불타는 마음에서 예배를 드려야 앞으로 큰 역사가 나리게 될 것입니다.

 

 

【문】101. 사람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해야 올바른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답】인간은 활동이 없이 살 수가 없고, 생명이 없이 활동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활동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기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심히 적다고 봅니다. 그러면 사람의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1. 정신 작용의 활동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도 특수하게 정신 작용이 발달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두뇌를 가졌다고 봅니다. 정치적인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작적인 두뇌가 우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연구하는 일에 있어서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자가 여러 가지로 정신 작용의 활동을 하는 열매가 이 사회를 이루어 놓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이루어 놓은 사회가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패해진 것을 보면, 정신 작용의 활동만으로는 의로운 세계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신 작용을 초월한 활동의 세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한 활동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중생을 받고 보니 인생에게 제일 큰 일이 죽은 영을 살리는 일인 줄 알게 되므로 목숨을 바치고 활동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즉 사도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중생의 역사가 없이는 올바른 생각조차 가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을 받지 못한 자는 그 심령 자체가 바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죽은 영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중생의 체험을 받게 될 때에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깨달아지므로, 자기가 과거에 정신 작용으로 하던 것이 너무나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일이 분토같이 보이게 되며 과학을 초월한 인격을 가지게 되어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활동의 힘을 받아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함이 없으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그의 활동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복음이 확장된 것은 사도 바울의 활동이 승리한 열매라고 봅니다.   

  기독교를 가장 박해하였던 사람으로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어느 사람보다도 더 크게 활동했던 자가 바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생을 받고 그리스도의 능력에 끌려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보게 됩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아는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을 해치려고 하던 정권과 교권은 다 망해 버렸고, 바울이 활동하던 진리 운동은 온 세계를 살리는 대 종교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3. 죽을 몸을 살리기 위한 활동입니다

  가장 큰 활동은 세계 인류가 과학 발전으로 가져온 악의 무기에서 전멸될 수밖에 없는 오늘에, 거기에서 몸을 구원해 준다는 것을 목적한 진리 운동일 것입니다.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 대하여 묵시를 받을 때에 세계 인류가 한시간 동안에 불탈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하게 되지만 거기서 구원해 주는 일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죽은 영을 살려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죽을 몸을 살려주는 것으로 인간 종말의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불에 사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것도 큰 활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 작용의 활동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부패한 정치와 타락한 종교와 악화된 세상이 완전히 없어지게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므로 그 몸이 살아서 지상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가 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정신 작용으로 있는 일이 아니요, 영적 활동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므로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에 영과 육을 아울러 불에서 구원해 주는 일이 제일 큰 일인 것을 말해 놓았으니 우리는 이 역사의 힘을 하나님께 받아서 활동하는 일이 가장 올바른 활동이라고 봅니다. 이 활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행하시는 일이므로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하등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에서 그 말씀을 자세히 읽고, 자세히 듣고, 자세히 증거하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능력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구원해 주시는 일이 있으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102.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왜 많은 파가 생기게 됩니까?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답】오늘날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본질이 떠난 사랑이 될 때에 이것은 오히려 불만이 생기는 단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대로 남에게 주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를 않고, 남에게 사랑 받기를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양떼들이 갈라지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어느 종이든지 양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가는 일 밖에 다른 일을 하게 될 때에 이방인보다도 싸우는 일이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양떼를 살리기 위한 것보다도 이용하려는 마음에서 인간의 사랑으로 포섭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어리석은 교인들이 그 사람을 참된 목자로 아는 일이 있으므로 전부가 자기를 위한 사랑이 되고 보니 파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자기를 위하여 양떼를 포섭하고 양떼는 영적 문제보다도 임시 자기를 좋게 해주는 교역자를 따르게 되니 자동적으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인간의 사랑에서 서로 사귀게 되는 단체에 불과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하나가 되려면 먼저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녹아져서 양떼를 살려 보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활동하는 일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역사를 내리시므로 되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사랑의 본질이 변하게 되면 마른나무 같이 되고 맙니다. 에베소 교회가 모든 것이 다 훌륭하지만 처음 사랑이 없으므로 촛대가 옮겨질 위험이 있으니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기독교는 순교자 동무로 뭉쳐지는 단체가 되므로만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도 있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땅에 이루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103. 기도라는 것은 어떠한 기도라야 응답의 역사를 받게 됩니까?

【답】기도라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는 어떠한 것이냐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 조금이라도 외식이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기도를 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 하여도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데서 응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을 때에 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 조금이라도 말씀에 가감이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말씀에 가감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비 진리와 동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가감된 기도는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40년간 기도 생활에서 말씀이 가감된 기도는 응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내가 40년간 기도하던 중에서 25년은 응답을 받지 못했고, 15년 동안에는 기도할 때마다 정상적으로 내려오는 은혜의 증거가 너무 크므로 과거 신앙 생활이 십자가를 믿기는 했었지만 말씀에 가감된 것이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 조금이라도 마음에 죄가 없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죄가 있는 사람의 기도를 받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요, 죄가 완전히 없어진 사람이 되어 기도할 때에 얼마든지 큰 응답을 나리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기도로써 응답을 받는 생활이 계속으로 있게 되려면 중심 성결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는 사람에게 성결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에서 생기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는 아무런 응답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죄가 있다 하여도 십자가를 믿으므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했던 것이 잘못된 노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중심 성결을 믿는 신앙에서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에 큰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죄의 생각 하나라도 가졌다면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주의 이름으로 올리는 기도는 인간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이름이니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 조금이라도 남을 판단하지 않는 기도라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달되어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형제를 판단하면서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 그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를 불쌍히 보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의 기도는 그것을 청산할 때까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종이 형제를 이단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형제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종이라면 이단이라고 정죄한 사람이 주님 앞에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고려 신학교에 다닐 때에,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하던 죄를 회개한 후부터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일 때문에 은혜의 문이 닫혔다고 봅니다. 유대교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며,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했다가 망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에 우리는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항상 그를 구원코자 하는 마음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응답이 없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기도할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문】104. 지금 새일수도원에서는 약 7년이 지나도록 40일 금식이 계속되어 금식한 사람이 450명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무슨 이유로 되는 일입니까?

【답】금식이라는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 자기의 인격이 개조되기 위하여 금식을 하게 됩니다.  

  둘째 :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금식을 하게 됩니다.

  셋째 : 주의 큰 역사가 응답으로 내리는데 있어서는 금식 기도가 있어야만 되기 때문에 금식을 하게 됩니다.

  지금 새일수도원에서 하고 있는 40일 금식이라는 것은 배고픈 줄을 모르고 하는 것은 물론이요, 별로 몸이 약해지지도 않고 수도 공부를 해 가면서 되는 일입니다. 금식하는 사람들이 하루 10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하루 과일 한 개 정도는 허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찬 마루 바닥에 앉아 정신을 쓰면서 공부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40일 금식을 세 번 한 사람이 여러 사람 됩니다. 이 금식은 대부분이 멸공 진리 운동을 위하여 하는 것인데, 청년 남녀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금식 운동은 1965년 1월에 하늘로부터 이상한 징조가 있은 후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일곱 별이 나타나서 새일수도원 위로 그 빛이 내려온 후부터 금식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를 뜻했다고 봅니다. 일곱이라는 것은 완전 수를 가르쳤는데 종말의 완전 역사는 일곱 영의 역사인 것입니다.

  완전 역사라는 것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말합니다. 이 몸이 완전한 변화체가 되어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되는데 있어서 완전 영감, 완전 개조, 완전 변론의 역사를 받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도 말하기를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여호와께 긍휼을 구하므로 북방의 세력을 치는 응답이 내려오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금식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환란이 올 때에 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강한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40일 금식을 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것을 하므로써 완전한 영계적인 변동이 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지 40일 금식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40일 금식을 남종보다도 여종들이 많이 하게 되는 것은 간곡한 기도로써 받들 사명이 여종님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라는 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받드는 사명이 있으므로 금식을 하는 일이 가장 합당하다고 봅니다.

 

 

【문】105.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이뢰자 목사님이 수도 학과를 가르치면서 독단적으로 발행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과학적으로 본다면 강단에 매일 10시간씩 서서 말하면서 건강을 보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매달 70페이지의 월간지를 발행하되 아무런 피곤이 없이 진행해 나가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10시간씩 강의를 하면서 남은 시간에는 월간지를 쓰고, 토요일마다 서울 새 일 중앙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하고, 월요일 아침에 또다시 수도원으로 와서 수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달 마지막 한 주일은 부흥 집회를 나가면서 아무런 피곤이 없이 건강이 더 좋아지는 것을 현저히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양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육식은 물론이요, 심지어 달걀, 우유, 생선까지도 일체 사용하지 않습니다. 채소만 먹되 밥은 크게 떠서 한 술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의 몸은 점점 더 명랑해지기만 합니다. 60세 가까운 몸이 점점 명랑해진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으므로 의심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사실입니다. 조금이라도 피곤을 느낀다든지 힘없는 모양을 보인 일은 없고, 언제나 자연스러운 태도로 강단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요, 다같이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종을 통하여 매달 100여명의 용사가 무장을 받고 멸공 진리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통하여 한국은 물론이요, 미국, 일본까지라도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종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 진리 운동으로 말미암아 교계나 국가에 큰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각 교파에서는 교권을 가지고 새일수도원을 대항하고 있지만 필연코 승리는 교권에 있지 않고, 쉬지 못하고 일하는 종이 선 제단에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하고 무조건 남을 악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앙 양심을 떠난 자의 행동이라고 보게 됩니다. 아무리 새일수도원에 대하여 악평을 해 보았던들 자기 인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남을 악평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열매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에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문】106.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새일수도원에 가서 무장을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장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한 것입니까?

【답】무장이라는 것은 앞으로 큰 미혹이 올 때에 그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벌써 미혹의 영을 받았다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남에게 함부로 욕을 하게 된다면 정신 이상자나 술 취한 자로 취급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보다도 영적 흑암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무장이라는 것은 사람이 시킬 수 없고, 하나님께로부터 오게 되는 것입니다. 새일수도원에서는 매달 25일내에 인간론, 성경해석법, 변화 성도의 교리, 요한一서 강의, 조직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미혹이 온다 하여도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강단에 서서 말씀을 얼마든지 밝히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무장이며, 인격으로는 중심 성결을 목적한 동시에 그 몸까지도 피곤을 모르게 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피동적인 감정에 끌리지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상적인 투쟁과 양심적인 신앙 생활에서 그날 그날 모든 일을 질서있게 진행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 무장입니다.

  그러므로 무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어려운 일이 부딪혀도 용기있게 일해 나가자는 것을 목적한 것이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온다 하여도 더 강하게 싸워 나가므로 주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는 종의 인격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새일수도원에 와서 공부하게 되면 무장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볼 때에 작은 일 같지만 새일수도원에서 무장하는 이 일은 분명히 새 시대를 이룰 종말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새일수도원에 와서 무장을 해 본 자라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완전 무장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될 때입니다. 지금 공산당이 많은 사람들을 공산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면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일에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새일수도원에서 배우는 학과는 전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쓰라는 명령이 있어서 이 목사의 입을 통하여 내리는 말씀을 대중이 기록하여 출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 무장을 주는 학과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새일수도원에 와서 공부하게 될 때에 이날까지 알지 못했던 성경이 햇빛같이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새일수도원에 와서 수도를 받아 본 자라야 인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이 목사 입술을 통하여 나타난 호소 성가를 같이 부를 때에 이슬과 단비같이 하늘로부터 역사가 나린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완전 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새일수도원을 거쳐야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무장이 없이는 앞으로 아무런 역사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문】107.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어떠한 노선이라야 종말을 바로 맺을 수 있다는데 대하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의 역사를 믿는 것입니다. 알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는 일이요, 오메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끝을 맺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될 때부터 끝을 어떻게 맺는다는 예정 아래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미리 예언적인 증거로 보여주면서 말씀을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한 것이 구약 시대 선지 국가에 나타난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 양의 피로 말미암아 사망의 구렁텅이와 같은 애굽에서 해방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양의 피로 해방 받은 이스라엘은 선지 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 세력과 타협한 무리는 이방에게 망하고 끝까지 이스라엘 사상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황폐화 되었던 예루살렘이 복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 교회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피로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해방을 받아 신령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과 타협이 있으므로 부패했듯이 신령하게 섰던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게 되어 바벨화 되었고, 신령한 교회는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교회 안에서도 신령한 교회의 본부가 되는 하늘의 지성소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타나게 되며, 그 교회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자들이 남은 자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예수님과 교통을 받고 있는 자라면 하나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종말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한 단체가 이루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특별 보호가 같이 하므로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는 변화 성도로써 새 시대의 영광을 왕권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문】108. 어느 교파나 하나같이 새일수도원을 합당치 못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나는 신앙 양심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새일 수도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십자가를 믿는 신앙 양심을 가진 자로서 조금이라도 말씀을 가하든지 감하든지 한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떼를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 십자가를 믿는 신앙 양심을 가진 자로서 조금이라도 공산 사상과 타협한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본능을 상실하는 음녀적인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 십자가를 믿는 신앙 양심을 가진 자로서 오늘에 할 일은 영혼 구원만을 목적하고 나갈 것이 아니요, 이 시국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난국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신앙 사상을 계시록과 선지서를 중심하여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난관이 온다 하여도 강하고 담대히 이겨 나갈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 교회를 무시하거나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좀 더 진보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없었던 난제가 우리 앞에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도자 되는 사람으로서 무관심하게 있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도자에게는 성서를 가르치되 이 시국을 바로 알려 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성서를 들어서 앞으로 어떠한 일이 올 것과 어떠한 역사가 있을 것과 어떠한 미혹이 올 것과 어떠한 신앙 노선을 걸어야 된다는 것을 바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기독교는 큰 위기를 만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깊은 기도로 들어가게 되어 10개월 동안이나 조금의 피곤도 없이 밤을 새워 묵상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계시록을 해석하는 영음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음성을 3차까지는 듣기만 했고, 4차에 들리는 음성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말세 비밀이라는 책입니다.

  계룡산에서 새일수도원이 시작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계룡산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산을 덮었으므로 나는 불 가운데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불 속에서 너는 이름을 우레 뢰, 아들 자로 해서 “뢰자”라고 고치고,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모든 동역자들은 내가 계룡산에서 기도하다가 계룡산 마귀에게 미혹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로는 말하기를 자기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는데 이 목사가 수도원을 짓다가 이방 종교인들에게 쫓겨가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수도원을 지으면 여기에서 역사가 일어나게 되므로 네 민족이 살게 되고 세계를 깨우치게 된다는 명령을 받고 시작했는데, 그 장로는 수도원을 자기에게 맡기면 내가 망하지 않고, 맡기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고 위협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장로에게 신앙 양심을 바로 가지라고 하면서 책망했습니다. 그때에 그 장로는 자기가 잘못 되었다고 자복하면서도 누구의 지시가 옳은지 두고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7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우리 수도원은 세계로 진출할 문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내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많은 서책이 나왔으며, 지금도 계속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는 그때부터 나를 악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버림의 사람이며, 마귀에게 사로 잡혔다고 하는 말을 7년간 여러 부흥사들을 끼고 선전하는데 전력을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장로의 악평하는 말을 듣고 우리 새일 수도원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듣고 이단이라 할 것이 아니라, 친히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도원을 알아보려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참된 하나님의 역사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 마음이 성결해지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 몸에 피곤이 없이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악평하는 자의 말만 듣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가장 불쌍하고도 어리석다고 봅니다. 그러나 앞으로 몰라서 참된 종을 이단시하던 사람들은 깨닫고 돌아올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이라면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하나로 뭉쳐질 것을 믿습니다.

 

 

【문】109.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우리의 영, 육이 구원받는 것은 복음이 다르다는데 대하여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답】오늘의 기독교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날까지 전한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은 조상 적부터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해 온 자들이므로 이미 구원을 받는 일이 있었지만, 마귀를 공경하던 이방 민족으로서 그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천국 복음 운동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마8:11). 그러므로 이날까지에 복음 운동은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는 역사입니다(엡3:6).  

  그러나 말세에 환란과 재앙에서 구원받는 역사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라도 심판 날에 이방과 타협한 자는 이방과 함께 망하고, 아무리 이방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싸워 나가는 자는 특별 보호가 같이하므로 승리하게 되는 동시에 온 천하에 악의 세력을 없이하는 환란과 재앙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종말에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면 말씀대로 환란과 재앙의 날에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날까지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믿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고, 성경대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여 성령을 보내시되 온 천하에 십자가를 증거하므로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게 되었고, 성경대로 온 천하에 교회가 선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과 재앙의 날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다시 무장을 받게 하여 성경 전체를 다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날까지 감추어 놓았던 말세의 비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재앙의 날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간다는 말세의 비밀을 전하던 종들은 선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이 과거에 선지들이 묵시로 보았던 말씀대로 역사하고 그 말씀대로 세세 영광을 누리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복음 운동이라고 합니다(계10:7).

 

 

【문】110. 지금 모든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을 가지게 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인간의 두뇌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볼 때에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만은 이 시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라는 것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으로 세상이 오래 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지금 이때에 제일 어리석은 일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으로 오래 살 줄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행동입니다.

  소위 평화 공존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책망을 받을 음녀 세상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쑥물과 단물이 합해지면 단물이 버리게 되는 것이요, 검은 것과 흰 것이 부딪히게 되면 흰 것이 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평화 공존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공산주의에게는 유리하지만, 신앙 양심이 바르고 사상이 바른 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싸우지 않는 싸움을 신앙 양심이 바른 자가 홀로 싸워 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공산주의와 평화롭게 살아보자는 생각은 공산주의에게 자동적으로 먹힘을 당하게 되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평화 공존이라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완전 무장으로 구성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평화 공존이라는 것을 믿다가 하루아침에 슬피 울며 후회할 날이 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 공존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 보다도 진노의 날에 그리스도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 공존이 문제이지, 공산주의와 평화 공존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화를 누려 영원히 같이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이때에 하나님과 완전한 평화를 이루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과는 멀어지면서 이방의 세력과 가까워지다가 이방 세력에게 망했던 것이 구약 말기에 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이방 세력과 가까워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크게 두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111. 우리가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요즈음에 소위 학적이라, 정통적이라, 정상적이라 하는 말을 가지고 신앙 문제를 자기 중심에서 남을 판단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자체가 완전한 하나님의 계약서요, 하나님의 역사가 계약서대로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을 신앙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자체에 정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 조금도 변함이 없는 역사를 하시므로써 우리는 그 역사에 따라서 정상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나의 신앙 체험에 의하면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합법적으로 믿는 신앙이 아니고는 그 열심이라는 것은 식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을 때에 그대로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하는 생활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역사 하시므로써 푸른 나무가 정상적으로 자라듯이 정상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비록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그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법화 되지 못하면 아무런 역사가 내리지 않으므로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하여도 발전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것이 있으면 산이라도 옮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정상적으로 역사할 때에 비록 작은 일 같으나 큰 열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신 동시에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사람으로서 믿어지게 역사하시되 언제나 믿는 자에게 변함이 없이 역사하므로 아무리 정상적이 못되는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역사 아래서 나날이 소성을 받게 하는데 있어서는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112.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우리 기독 신자는 평화를 반대할 것도 없고, 평화를 위하여 활동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잠깐동안 잠잠한 때도 있고 홀연히 환란이 있는 때도 있다는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애쓴다 하여도 말씀대로 되는 일을 막을 수가 없고, 우리는 말씀대로 내리는 역사를 날마다 받아야 할 것이요, 말씀대로 될 장래를 분명히 알고 두려워 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고 우리는 날마다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에 두고 그날의 수고를 만족으로 알고 충성을 다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할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라면 순종해야할 것이며 아무리 사는 것 같은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 아니라면 순종치 않을 것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생각을 앞세운다는 것은 교만에 가까운 일이니,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생각밖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은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우리의 생각밖에 나타난다는 것은 과거에 성도들에게도 있었고, 우리 앞에 더 크게 있을 것이니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세상에서 말씀대로 오는 평화 왕국을 위하여 활동하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인위적인 평화라는 것은 잠깐인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인위적인 평화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완전한 평화 왕국이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심판 날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인격과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내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전 생활의 목적을 두고 싸워 나가는 것 뿐입니다.

 

 

【문】113. 오늘에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 역사상 이러한 위기는 없었다고 봅니다. 모든 선지는 구약 종말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할 때에 자고이래로 없었던 환란이 오는데 있어서는 전무후무한 환란이 올 것을 말한 것은 구약 시대를 가르쳐 말한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에 종교 부패로 말미암아 올 환란을 가르쳤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황폐된 것을 들어서 계시록에도 바벨론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계시를 보여준 것은 구약 교회가 너무 부패하므로 북방 세력에게 먹힘을 당했던 것 같이 인간 종말에도 교회가 너무 부패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할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이대로 나간다면 바벨화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통하여 예루살렘이 회복되었던 것 같이 적은 소수라도 끝까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을 통하여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다수를 따르지 말고 적은 소수라도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촛대교회를 이루게 되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문】114.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일 수도원을 통하여 교회가 분열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슨 원인으로 분열이 되는 것입니까?

【답】이것은 새일 수도원에서 교회가 분열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말씀 무장을 하고 간 사람들이 현 교파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으므로 자동적으로 교회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 교파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탈선되었다는 것을 우리 수도원을 거쳐간 사람들이 말하게 되므로 공연히 압박하고, 심지어 축출을 시키는 일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무장하고 간 사람들이 아무리 교파에서 탄압을 하여도 우리는 교파를 위하여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하나를 바로 믿고 복을 받자는 것이니 만큼 절대 복종할 수 없다는 여기에서 교회를 짓게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이 지금 80여 처에 교회가 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수도원에서 말씀을 무장을 하고 간 사람들 중에서 교파에서 탄압을 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한 잘 받들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현 기독교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 주석을 많이 발행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사람의 생각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배우는 학과는 절대 사람의 머리로 연구해서 나온 책이 아닙니다. 내 입술에 말씀이 임한 후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마다 수도생들이 붓을 들어 기록한 대로 책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자를 성경과 대조해 보면 성경의 본문 자체가 완전한 조직적인 변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언제나 대중을 앞에 놓고 강단에 서서 입으로 불러 쓴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을 깨달은 종들이 현 기독교에서 발행한 서적은 성경에서 혼선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진리의 문제로 파동이 일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큰 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교파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중심해서 뭉쳐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므로 앞으로 큰 단체가 될 것을 확실한 일입니다.  이 단체라는 것은 멸공 사상이 철두철미한 단체입니다.

 

 

【문】115.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교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공연히 교회를 자기의 어떤 주관이나 어떤 방침으로 이끌어 보려는 것은 그 생각 자체가 탈선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나” 자체가 어떠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먼저 깊이 깨닫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은 목사 된 입장에서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상태에 있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나는 목사이니 내가 교회를 다스릴 책임이 있다고만 생각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종은 “나”라는 것이 없고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내가 미약하오니 어떻게 하오리까 하는 양심의 소리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는 것은 강단에 서는 종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하는 데서부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강단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강단 개혁이라는 것은 어떤 교권이 할 수 없고, 하늘의 영권을 받는 데서부터 되는 것이니, 강단에 영권이 임하므로 교회는 자동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역사를 보아도 종 한 사람이 강단의 영권을 바로 움직이므로 큰 개혁의 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사는 길은 강단에 서는 종이 완전한 무장을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니, 우리는 종 된 자로서 각자가 이 시대에 쓰여질 만한 인격을 찾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큰 역사는 대중이 바로 움직이는 데서부터 시작이 아니요,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나가는 데서부터 그 교회는 바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사람이라도 들어 쓰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큰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 가지 어려운 난제를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것은 그 난제를 해결하도록 역사하는 종을 쓸 때가 온 증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각자 각자가 정신을 차려 완전한 무장을 갖추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모른다면 그 노력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데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이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은 사람마다 직접 하나님께 받아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 경륜을 대표적인 사람에게 분명히 알게 해서 그 경륜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대중적으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므로 되는 것입니다.

 

 

【문】116. 성경은 어떠한 방법으로 분명히 알도록 전할 수 있습니까?

【답】성경은 그 시대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니 만큼 듣는 사람들의 괴로워하는 마음이 만족해질 수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들을 중생케 하는 말씀인 동시에 그 영혼을 소성케 하는 양식이 되고 인간 종말에 온 세계가 불타는 멸망이 올 때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몸을 구원해 주는 동시에 그 몸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은 비교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은 자라야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백성을 사랑하는 사랑에 끌려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전하는데도 열매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녹아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한다 하여도 그 말씀에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이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될 때에 그 말씀을 완전히 깨닫는 일이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시작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써 말씀이 널리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려면 “나” 자체가 그 말씀에서 산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들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다 하여도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자에게 그 무기가 쓰여질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인격이 없다면 그 말씀대로 내리는 역사가 없으므로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이 나에게 인격이 되고, 생활이 되는 자리에 들어가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기계를 쓸 줄 모르면서 그 기계를 남에게 바로 쓰도록 가르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직접 체험하는 생활이 없는 자가 그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117.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열매 있게 살 수 있습니까?

【답】열매라는 것은 식물의 열매도 있고 동물의 열매도 있고 인생의 열매도 있습니다. 식물은 언제나 땅속에 있는 질을 흡수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요, 동물은 그 열매를 먹고 번창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산업 발전이라고 합니다. 이 발전이 있음으로만 인간 생활에 육적 생활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으로서 해야 될 일을 하는데서 열매를 맺게 될 때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지 못하고 모든 일에 실패를 보고 마는 것은 사람으로 열매 맺을 일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제 사람이 열매를 맺는 생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정신 작용을 바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식물이 열매를 많이 맺고 동물이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은 사람이 정신 작용을 바로 움직여서 식물을 가꾸고 동물을 잘 기르는데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남보다 정신 작용이 발달되어 식물의 농장과 동물의 목장을 바로 움직이면 풍부한 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서 완전한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고, 이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는 생활의 한 비용은 될 수가 있습니다.

 

  2. 영적으로 바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의 활동이라는 것은 농장이나 목장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땅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활동이라는 것은 식물계와 동물계를 초월한 참된 교회를 움직이는 일인데 교회가 영적으로 바로 움직이도록 하는 일은 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영적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 양심적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 진리적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사랑의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양심적, 진리적으로 사랑 중심에서 움직이는 자라면 조물주께서는 그 일에 축복하시므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 남을 구원해 주는 일.

  둘째 :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셋째 : 자기가 세세왕권을 받는 일이 있게 되므로 인생의 가치를 완전히 찾는 생활이 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열매가 많은 생활을 하게 되고 이 땅에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는 데까지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매가 되어 하나님의 대자연을 창조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118.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여야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답】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는 것이 불행이 아니요,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그 비밀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승리의 생활을 할 지식조차 가지지 못한 자이므로 필연코 실패가 됩니다.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은 어려운 문제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난제가 있게 하셨느냐 하는 것을 아는 지식은 여호와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좋다는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시대적인 비밀을 말씀할 때에 인간 종말에는 어느 시대보다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난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난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응답을 나려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시되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던 사람은 밟히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자로 승리를 이루게 하여 평화로운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정도에서 생활해야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앞으로 오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인간의 어떤 방법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교만한 자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어려운 난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식하고 가난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러한 난제가 온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그날 닥쳐오는 모든 난제를 하나님께서 해결시킬 줄 믿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자기 생활에 이용한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위하여 순종하는 생활이 있되 희생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생활해야 됩니다. 가장 권위가 있고 복된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이라고 봅니다.

 

 

【문】119. 인간이 사는 생활에 제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답】모든 사람들은 인간이 사는 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의식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의복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주택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 입고 잘 먹고 잘 꾸민 주택에 산다 하여도 거기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첫째 : 종교요,  둘째 : 정치요,  셋째 : 도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떠한 종교가 필요하며 어떠한 정치가 필요하며 어떠한 도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혼란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한 종교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필요한 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필요한 도덕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 봅니다.

  이제 필요한 종교와 정치와 도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종교에 대하여

  종교라는 것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바로 알도록 가르치며 다음 시대에 올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 시대를 바로 가르치는 것은 종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르칠 말씀은 하나님 말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전부 인간 종말을 목적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르칠 말씀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 가르치는 종교가 될 때에 이 시대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날까지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서 세계 인류의 죄를 완전히 사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모든 인간들에게 큰 역사를 일으키는 열매가 있게 되어 기독교가 세워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의 심령이 중생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다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중생의 역사가 있으므로 누구나 십자가의 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중생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의 모든 난제를 해결하려면 새 일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새 일의 진리를 분명히 모른다면 이 시대에 빛이 되는 역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제일 필요한 종교는 새 일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교일 것입니다.

  새 일의 진리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결치 못할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동시에 이 땅에는 거룩한 성도가 통치하는 나라가 온다는 것이니 우리는 새 일의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정치에 대하여

  공산주의 정치와 민주주의 정치가 대립된 현실에 공산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민주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치가 해결할 수 없고 민주주의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신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주권을 옹호하자는 것이라면 공산주의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주권을 없이하고 공산당의 주권으로 세계를 통치하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신정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정적인 역사로만 완전 평화의 통치 왕국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들을 들어 쓰시므로 사상과 양심이 바른 사람만이 땅에 남게 되고 그 밖의 사람은 다 없애는 지상 통치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는 일이 있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세계를 통치하는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3. 도덕에 대하여

  도덕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형식적 도덕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도덕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도덕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로되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므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덕의 생활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가장 필요한 종교를 비롯하여 가장 필요한 정치를 하게 되므로 가장 이상적인 도덕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문】120.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완전한 역사가 없이 완전한 사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열매에 있는 것입니다.

  거짓된 신이라는 것은 말로는 사랑하나 열매가 없는 것이요, 참되신 신이라는 것은 말씀이 계신 동시에 그대로 실천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요,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으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봅니다.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아무리 약하고 어리석고 누추한 사람이라도 순종만 하면 깨끗하게 해 주는 동시에 지혜도 능력도 주어서 하나님의 완전 역사에 쓰여지는 사람이 되게 하여 세세 왕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사랑을 인간에 베풀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는 동시에 얼마든지 은혜를 택한 자에게 부어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얼마든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께만 있고 우리가 그 사랑을 믿고 순종하므로 그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121. 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한 것을 알고자 하오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오늘에 기독교가 너무나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 정로에 대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독교 정로는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열심은 바른 열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를 내세우기 위한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심은 기독교의 대적이 되는 열심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인생이 범죄 하므로 마귀의 권세 아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은 예수의 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의를 보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동시에 완전히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의 역사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로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의 일을 한다 하면서 자기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므로 참된 교회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의 역사로 선 교회이니 누구든지 기독교에 들어 와서 일하려면 자기라는 것을 완전히 없이하고 하나님의 의의 역사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만이 정로라는 것입니다.

 

  2. 기독교의 정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사람의 교훈을 가입시킨다면 사단의 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목적인 교회에서 인간의 지식을 중심한다는 것은 교회의 대적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운 말씀이니 가감할 것도 없고 감사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 말씀으로 완전한 단체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의 정로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다면 기독교 정로를 대중이 알도록 가르칠 수도 없고 그 정로를 행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3. 기독교 정로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파당 싸움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살려 주자는 목적에서 교회를 세우신 것인데 교회 안에 파당 싸움이라는 것은 마음조차 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오늘에 교회가 파당 싸움이 많다는 것은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을 위한 기독교가 아니고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히 살려 주자는 것인데 타인의 단점을 말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 기독교의 사상과는 방향이 다른 노선이라고 봅니다.

  기독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아니라면 사회의 어떤 단체보다도 미약한 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남을 살리기 위하여 뭉쳐진 단체가 될 때에는 세계를 통일하는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자들에게 세계를 통치하는 왕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정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 정권이 기독교를 짓밟고 나오지만 최후 승리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에게 있는 것은 심판권이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은 예수님과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로라는 것은 겸손히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생명을 바치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문】122. 기도에 대하여 정확한 응답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오늘에 교회 안에서 기도 응답이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를 모르고 기도하다가 무엇을 보았다든지 음성을 들었다든지 몸에 이상한 증거가 있었다든지 하는 것을 정확한 응답으로 안다는 것은 얼마든지 마귀에게 미혹을 받을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정확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중심 성결이라고 봅니다.

  중심 성결의 응답을 받은 자 외에는 기독교를 부흥시킬 인격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심 성결을 응답으로 받지 못한 자가 강단에 선다면 그 강단을 속화시키는 일이 있게 되므로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모든 교인들에게 중심에 변화를 받는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심 성결을 받은 사람이 강단에 서서 교회를 인도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강단에 왔기 때문에 일반에게도 그 응답을 마음 가운데 받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거룩한 단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고 듣는 일이 있다 하여도 중심 성결이 없다면 이것은 얼마든지 마귀가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기도 응답은 중심 성결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신의 역사를 하므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 음성도 들리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심 성결이라는 것은 마귀는 절대로 주지를 못합니다.

 

  2. 진리를 통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도 정확한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성신을 보내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깊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신비가 있다 하여도 진리를 통달하는 일이 없다면 얼마든지 마귀의 미혹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도 진리가 통달되는 일이 없다면 마귀의 도구로 쓰여지는 일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일은 진리를 통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도 응답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오늘에 기도를 하다가 성경 해석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경 전체를 통달하는 역사가 아니라면 성경 부분적인 말씀을 마귀가 사용해 가지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큰 집과 같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집을 짓는데 재목 하나라도 독립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완전한 집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의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전부 연결되어 완전한 조직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몇 절만 들고 나오는 역사라는 것은 완전한 응답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3. 완전한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 응답으로 기쁨을 얻었다 하여도 그 기쁨이 완전한 열매를 주지 못하고 만다면 완전한 응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로 오는 응답의 기쁨은 누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온다 하여도 기쁨을 계속으로 가지고 나갈 때에 정확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흥분적인 기쁨도 있고 정상적인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데 흥분적인 기쁨이라는 것은 마귀를 통해서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신의 응답으로 오는 기쁨은 어떠한 일이 부딪쳐 온다 하여도 기쁜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해결해 나가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완전한 기쁨이 마음에 오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을 받은 자는 아무리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결국은 완전한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하여도 마음에 정상적인 기쁨이 없다면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와도 기쁨으로 이기고 나가는 일이 있어야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기도 응답에 정확한 것은 중심 성결이 되는 일이며 성경의 진리가 통달되는 일이며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나가야만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문】123. 믿음이 속히 자라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이 필요합니까?

【답】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방침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생기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요,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다음과 같은 방침이 필요하다고 볼 것입니다.

 

  1. 환경과 위치가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같은 나무 두 그루를 하나는 위치와 환경이 좋은데 심고, 한 그루는 위치와 환경이 나쁜데 심었다면 위치와 환경이 좋은 곳에 심은 나무가 빨리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분명히 환경과 위치를 따르게 됩니다. 환경이 좋은 교회는 믿음이 자라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요, 환경이 나쁜 교회는 믿음이 자라나는데 손해가 될 것입니다. 교회 환경이라는 것은 그 교회 강단에서부터 좌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회 강단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을만한 환경과 위치에 있다면, 그 강단을 통하여 신앙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 강단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역사가 풍성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귀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그 강단에 침투하지를 못하고 항상 성신님의 역사가 지배하고 있다면 그 교회 환경과 위치는 좋아질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사단의 세력이 침투하는 강단이 된다면 그 교회 환경과 위치는 나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어야만 속히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린이의 몸이 자라나는 것은 그 가정의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큰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도 그 교회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큰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2. 사상과 정신이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여도 사상과 정신이 바로 되지 못하면 그 신앙은 크게 발전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 사상과 정신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서 조금도 탈선이 없이 하나님의 사상과 연합된 것이 있어야만 됩니다. 연합이라는 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사상에 정복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사상에 연합되지 않고 개인의 주관을 고집하고 나간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므로 큰 발전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상 안에 들어가서 그 사상에 연합될 때에 날마다 소성함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적으로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하나님의 사상과 연합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을 볼 수 없이 마른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3. 신앙 중심이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풍부하게 된다 하여도 믿음에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지 않고, 아무리 생활이 풍부하게 못된다 하여도 믿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따라가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생활 전체를 신앙 중심에서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사는 생활입니다.

  앞으로 오는 난제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는 일이 있어야만 된다고 믿을 때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이익과 손해를 막론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생활 전체를 움직일 때에 신앙은 날마다 자라나게 됩니다. 신앙을 떠나서라도 일을 해 보려는 것은 벌써 주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항상 같이 하는 일이 있으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주의 역사로 해결될 것을 믿고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생활이 신앙 중심에서 손해가 된다 하여도 믿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해 나가는 것이 있어야만 큰 열매가 나타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문】124. 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됩니까?

【답】사람이라는 것은 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약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홀로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낸 것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만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사람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 없는 범위 하에 있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다 될 것 같이 생각하지만, 모든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는 부족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달을 뿐입니다.

  사람이 완전한 열매를 맺는 방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완전한 열매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므로만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서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온다 하여도 여호와를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일에 실패를 해 본 사람이 용기 있게 나갈 수 있습니다. 실패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러한 길을 가게 될 때에 완전한 열매라는 것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하나님의 사람은 다 처음에는 실패했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가운데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2.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고 나가는 일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던 사람이라도 중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해질 때에는 모든 일이 다 무효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축복을 받았지만, 말년에 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해지고 이방 신에 대하여 타협이 있을 적에 그 나라는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 열매라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만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큰 일이 아니고 작은 일이라 하여도 완전히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을 맡아 가지고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큰 일을 하라고 맡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했다면 완전히 끝을 맺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시작해서 끝을 맺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진실하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참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크게 들어 쓸 사람은 처음에는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비천한 일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귀한 일을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가장 비천한 일을 바로 해 보려고 하는 그 마음은 존귀한 일을 할 수 있는 사상과 양심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큰 역사를 일으키려고 하실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비천한 자리에 두시는 것은 그 사람의 진실성을 보기 위한 방법입니다.

 

 

【문】125. 기도 생활에 있어서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도라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극히 작은 죄라도 용납하지 않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죄 하나라도 용납하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여도 응답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작은 죄라도 용납을 한다는 것은 십자가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습니다. 죄를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 사람에게 상관이 있을 것이요, 죄를 회개치 않고 용납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이 그 사람에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이름이므로 죄를 용납하는 자라는 것은 십자가의 대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으로 지은 죄나 행동으로 지은 죄나 조금이라도 용납치 않고 회개하는 자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오는 응답을 받게 되는데 있어서는 성결이라는 체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결의 체험을 받은 자로서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살리고자 노력하리만큼 역사가 내리는데 있어서는 언제나 정상적으로 신령한 체험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 언제나 정신 작용이 활동하지 않는 고요한 밤, 어두운 밤에 맑은 양심으로 묵묵히 묵상하는데서 깊은 영계의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 합심하여 호소 성가를 강하게 부를 때에 깊은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강한 역사가 힘을 써 호소하리만큼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일 성가의 호소 기도문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 : 하나님의 말씀을 본문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에서 정상적인 영계 체험을 가지게 되므로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동시에 깊은 영계의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심령에 있는 것이니, 영적으로 주를 사모할 때에 사모하리만큼 깊은 영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126.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범죄 하지 않는 단계로 나가게 됩니까?

【답】사람이라는 것은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 속에 교만이나 정욕이나 혈기가 없는 사람은 감정이 나도 그 감정이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정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열매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를 위한 감정은 불의한 일에 동참치 않는 감정이므로 오히려 불의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있게 되고, 항상 마음에 화평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서는 감정이 생겨도 오히려 평화를 일으키는 열매도 있게 되며, 마음에 사랑이 불타는 가운데서는 감정이 생길 때에 오히려 냉정한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격동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이 있다든지 정욕이 있다든지 혈기가 있다든지 하면 그 자체는 사단의 감정을 일으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날 때에 그 마음에 있는 대로 폭발이 되므로 교만과 정욕과 혈기가 있는 사람은 감정을 통하여 남을 억압하고 무시하며, 남의 것을 강탈하며, 남을 사정없이 구타해서 살인을 하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생겨도 범죄치 않으려면 자신 속에 범죄할 만한 근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단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도 생활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목적을 바로 두어야 합니다. 교만과 정욕과 혈기를 그대로 두고 기도한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속에 기도의 대적이 되는 세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감정으로 범죄 하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기를 죽이는 것을 목적하고 노력하는 기도가 있되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데까지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문】127.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여야 될는지 당황하게 되는 것이오니, 우리의 나갈 노선을 밝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우리의 나갈 노선이라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나가던 노선을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사상 노선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 용기있게 나가게 되고, 두려운 일이 올 때에 더 담대하게 나가게 되고, 앞길이 캄캄하게 될 때에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 있어야 그 사람이 노선을 바로 가던 증거라고 봅니다. 언제는 반공주의라는 간판을 붙였던 사람들이 반공 투쟁이 불리하게 된다고 그 간판을 떼고 만다면 그 반공은 진리가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큰 나라가 반공하니 조그마한 나라가 따라가다가 큰 나라가 협상하니 같이 협상한다는 것은 큰 바람에 불리는 생명 없는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  

  영토 전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그 영토를 내놓고 내놓지 않는데서 끝이 나지만, 마음의 영토를 자리잡은 사상이라는 것은 자신이 죽어도 그 사상은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시작될 때부터 정확한 진리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작된 것이니, 아무리 그 진리를 대적하던 강한 세력도 결국은 쓰러지고 기독교의 진리는 필연코 승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생명 없는 허수아비 같은 종교인들은 일본이 소위 대동아 전쟁이라는 미명하에서 신사 참배를 들고나올 때에 일본 기독교 연맹이라고 간판을 붙였고, 해방 후에 공산당이 아시아를 덮고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고 하는 간판을 붙이고 나온 자들이 교회를 지도할 때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정로를 나가는 사람들은 일본 기독교 연맹이니, 공산 기독교 연맹이니 하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정로를 밟아 나온 것이 한국 기독교의 내려온 일입니다. 만일 오늘에 와서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된다면 다시는 기회 없는 때가 온 것이니, 우리는 이때에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싸워 나가는 것으로만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때에 갈팡질팡 한다든지 머뭇거린다면 그 인격 자체가 정로에 서지 못한 것이니, 기독교의 신앙 사상 노선을 완전히 알고 나오던 자라면 가장 크게 일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큰 역사도 이제 있고 큰 축복도 이제 있으니, 우리는 큰 축복을 받는 노선은 걸어오던 길을 그대로 용기있게 나가는데 있습니다